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아빠는 온종일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담당 의사로부터 할머니가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거동도 못하셨다.
“내가 아무래도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구나.”
할머니는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할머니는 당신이 떠나갈 시간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주변의 사소한 변화조차 모를 만큼 쇠약해져 갔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할머니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끔씩 의식을 잃은 적은 있지만 할머니는 기적처럼 그 해 겨울을 이겨냈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할머니는 세상에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예고한 날보다 6개월을 더 사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나서 엄마는 가족들의 겨울옷을 장롱 속에 넣었다.
“엄마, 우리가 이런 거, 할머니가 정말 모르셨을까?”
“모르셨을 거야. 몇 달을 마루에도 한 번 못 나오시고 누워만 계셨는데 뭘 아셨겠어? 나중엔 엄마 얼굴도 못 알아 보셨는데……”
“하긴 그래.”
“네 아버지가 걱정이다. 저렇게 상심하시다 병나시겠어.”
우리 가족은 6월의 초여름에도 할머니 방에 들어갈 때면 겨울옷으로 갈아 입었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른 채 할머니 방에 들어간 적도 있다. 차가운 얼음을 만지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손을 잡은 적도 있다. 아직도 겨울이어서 손이 차갑다는 것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할머니에게 우리는 봄이 오는 것을 막아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토록 소중한 6개월을 할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가 버린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은 할머니가 계신 멀고 먼 하늘나라까지 강물이 되어 소리 없이 흐를 것이다.
이철환의 "연탄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