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한글 금강경

한글 금강경 06 - 정신희유분

서원365 2010. 4. 16. 20:51

〇 정신희유분 제6 - 뗏목의 비유로 알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님,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진실한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같은 말을 하지 마라. 여래 멸도 후 후오백세에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사람이 있어서 이 말에 능히 믿는 마음을 내서, 이를 진실하게 여길 것이다.』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다.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들께서 계신 곳에서 모든 선근을 심어서, 이 문장을 들고는 한 순간에 깨끗한 믿음을 내는 사람들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이 중생들이 이와 같은 한량없는 복덕을 얻었음을 다 아시고 다 보신다. 왜냐하면 이 중생들에게는 더 이상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으며 법상도 없고 비법상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중생들이 만약 마음으로 상을 취하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 법상을 취해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법이 아닌 상을 취해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아님도 취하지 마라. 이런 뜻이므로 여래께서는 늘 설법을 하시되, 너희들 비구들은 내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알라.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어찌 비법을 취할 것인가?』

 

* 後五百歲(후오백세)

初五百歲 - 부처님 열반 후 500년으로서 해탈 견고(堅固) 시대라고 한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해탈에 이르게 된다.

第二五百歲 - 초백세 다음의 오백세, 선정 견고 시대라고 한다. 해탈하는 이는 적지만 정진하는 사람이 많다.

第三五百歲 - 그 다음의 오백년을 말하며 다문(多聞) 견고 시대라고 한다. 부처님 말씀이 많이 읽히지만 정진하는 사람은 적다.

第四五百歲 - 부처님 열반 후 1500 ~ 2000년이 되는 시기로서 탑사(塔寺) 견고 시대라고 부른다. 곳곳에 탑과 절이 세워지지만 외형적인 신앙에 머무는 시기이다.

後五百歲 - 그 다음 500년이기도 하고 제4오백세가 지난 모든 시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투쟁 견고 시대라고 한다. 재물과 지위 때문에 서로 다투는 시기다.

 

* 선근(善根) - 착한 뿌리, 좋은 인연의 원인이 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행에서부터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수행과 정진을 모두 포함한다. 이를 적극적 선근이라고 한다면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소극적 선근도 역시 포함한다.

 

* 無法相(무법상) 無非法相 - 여기서 법(法)이란 진리를 말하며 곧 부처님의 말씀이다.

 

* 상을 취한다는 것은 곧 내가 무엇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상이 있게 되며, 동시에 취한다는 것은 곧 집착이 된다. 아상이 있으면 동시에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있게 된다.

취한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은 같은 개념이다. 취함이 없다는 것은 취함도 버림도 없다는 뜻이다.

 

* 說誼의 해설 - 법을 취함은 다만 법이 비법임을 모르기 때문이며, 비법을 취함도 다만 비법이 곧 법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진법계(一眞法界)는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이 없다는 것도 없다.

 

* 뗏목의 비유. 뗏목은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수단이다.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강을 건널 일이 없다면 더 이상 뗏목은 필요치 않다. 그런데 만약 강 건너서도 뗏목을 소중하게 여겨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언변이 있는 사람도 완벽한 표현을 할 수 없다. 더구나 부처님의 설법은 대기설법(對機說法)으로서 상대에 따라 설법이 달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설법이 말하고자 하는 뜻에 관심을 기울여야지 만약 문자에 얽매인다면 곧 진리에서 멀어질 것이다.

 

* 이 부분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이 얼마나 친절하고 자세한지 알 수 있다.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거니와, 또 곡해를 할까 염려 하여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 無比의 해설 - “눈 앞에 보이는 저것이 부처가 아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보이는 저 모든 것이 다 여래이다.” 이 도리를 바로 믿고 안다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이며,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상에 매달리지 않으면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고 우주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법이니 진리니 하는 것도 매달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법이 아니고 진리가 아닌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