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여행

中原紀行(중원기행)

서원365 2014. 8. 24. 09:53

2014년 8월 16일

● 참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충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 덕분에 중원지역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 탄금대(彈琴臺)는 본래 대문산이라고 하였는데, 우륵선생이 여기서 제자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으므로 탄금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륵 선생은 본래 가야사람으로서 나중에 신라에 귀화하였다. 왕의 배려로 이곳에 거주하면서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가르쳤고,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탄금대는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이 왜군을 맞아 배수진을 쳤다가 패하여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최후를 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조령은 일당백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그런데 신립 장군은 조령을 버리고 이곳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왜군이 조령에 이르자, 조령의 험준함에 기가 질렸다. 그래서 그 동안 포로로 잡아 놓았던 조선군 중에 부상병을 풀어주면서 조령을 넘게 했다고 한다. 조선군은 전투경험이 없는 군인들이었다. 조령 쪽으로 넘어오는 부상병을 보자 그만 겁에 질려 하나 둘 전선을 이탈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군의 심리전에 말려든 것이었다. 신립 장군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군인들이 도망을 하지 못하도록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립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기마병이 주력이었다. 그런데 전투 당일 비가 와서 진흙에 말발굽이 빠져 기동력을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탄금대는 강과 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하루 머물러 쉬기는 참으로 좋은 곳이다.

탄금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충장공 신립 장군의 비

 

대문산 대흥사 - 공사가 진행 중이다.

 

● 중원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경계가 충주지방까지 내려왔었다는 증거이다. 국보 제205호로서,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石碑)라고 한다. 장수왕 때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뒤 신라는 진흥왕 12년(551년)에 이곳을 점령하여 5년 뒤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하였다. 그 뒤 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경덕왕 16년(757년)애 중원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을 중원지역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중원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 중앙탑은 신라시대에 나라의 중심부를 나타내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국보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바로 옆에 흐르는 남한강은 조정 경기장이다. 공원내에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친구들끼리 만난 것이 오후 4시경이었다. 그래서 탄금대와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이곳 중앙탑을 좀 바쁘게 돌아봤다. 충주 그랜도 호텔에서 또 다른 친구를 오후7시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좀 급하게 이곳을 떠났다.

 

 

 

 

 

 

 

 

 

 

 

8월 17일(일)

● 그랜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두 친구가 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참으로 즐거운 하루 저녁을 보냈다. 농사짓는 친구 부인이 챙겨준 땅콩, 포도, 옥수수, 곶감 등을 맛있게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새벽 1시쯤에 이 친구는 양계장 관리 문제로 돌아가고, 아침에 충주대학(학국교통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는 바쁜 일 때문에 헤어졌다. 남은 세명이 함께 승용차를 이용해 수안보로 향했다.

● 미륵대원지(중원미륵리사지) 미륵불(보물96호)은 목 윗부분은 말끔한데 그 아랫부분은 많이 그을려 있다. 친구는 "윗부분은 얼굴 부분이므로 자주 세수를 하지만, 아랫부분은 옷이므로 자주 세탁을 하지 못해서 그렇다."하였다. 이곳은 전체가 사적3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불은 균형미가 떨어지고 조각 솜씨도 소박하다. 고려시대 문화재로 보인다.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표정이 매우 여성스러워, 미륵불이라기보다는 관음보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마침 지나가는 스님에게 물어보니 미륵불이 맞다고 하였다. 사지 안에는 석등과 매우 큰 돌 거북, 오층석탑(보물95호)도 있었다.

● 미륵대원지에서 걸어서 돌아오다가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하늘재에 대해 물었더니 왕복 1시간 정도만 하면 다녀올 수 있다고 하였다. 복숭아 네 개를 사서 세 개는 먹고 한 개는 맡겨두고 다시 하늘재(계립령)으로 향했다.

 미륵대원지에서 하늘재까지는 2km거리이다. 올라가는 데 대략 30분이 걸린다. 경사가 완만하여 천천히 산책하면서 걷기 좋은 길이다. 좌우에 홍송(紅宋)을 비롯하여 수풀이 울창하다. 길을 포장하지 않아서 자연스런 운치가 있다.

 잿마루에는 하늘재 산장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아주 소박한 집이 있다. 안주와 술을 판다. 하늘재 산장 주인에게 하늘재가 제법 낮아보이는데 왜 험준한 새재를 이용했는지 물으니, 하늘재와 관련하여 우리 역사를 약 30분 정도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는 만복막걸리(전국 술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함) 한 잔을 들면서 즐겁게 설명을 들었다.

 하늘재는 해발 525m로서 고개를 넘으면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로 이어진다. 문경에서는 버스를 타고 하늘재까지 올 수 있다.

● 하늘재에서 수안보로 가서 온천욕을 즐기고 더덕구이가 곁들인 올갱이탕으로 식사를 했다. 올갱이탕은 아내가 끓여주는 것보다는 맛이 많이 못했다. 사진은 대부분 서울 친구(위 사진의 왼편 사람)가 찍은 것이다. 이 친구는 한때 같이 자취를 했었는데 이렇게 함께 하니 참으로 즐거웠다.

'■ 세상 ■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 여행  (0) 201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