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 ■/자투리

참외 서리

서원365 2007. 8. 26. 08:25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이야기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 어느 날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방에 모여 놀고 있었는데, 비가 오니 밖에 나가 놀 수도 없고, 또 방 안에 특별한 놀이 기구도 없어서 좀 심심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참외 서리를 제안하였다. 우리 앞집네가 멀지 않은 곳에 참외 밭을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으니 우리를 잘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즉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비가 오면 어차피 옷은 다 젖으니까 옷을 벗고 가자. 그렇게 하면 발각될 가능성도 적다. 참외밭에 들어가는 위치는 도랑가 쪽이 좋겠다. 거기가 원두막에서 가장 멀다. 들어가면 한 사람이 두 개씩 가져온다.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행동을 개시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들어가자마자 들키고 말았다. 그래서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뺑소니쳐버렸다.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인이 우리를 알아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한 동네 사람을 옷을 벗었다고 모를 리 없잖은가? 옷을 다 입고는 집에 있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동네에서 벗어났다. 다행이 비는 멎었다. 걱정이 보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면 주인에게 혼날 것이고 또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것이다. 온갖 걱정을 다 하는 동안 해는 지고 어두워졌다.

 

할 수 없다. 저녁은 안 먹더라도 집에는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각자 집을 향했다. 고개를 푹숙이고 대문을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씩 웃으시면서

"참외 서리 했었다면서? 앞집 아주머니가 참외 가져다 놨다. 얼마나 먹고싶었으면 그랬겠느냐면서."

 

 마루에 보니 정말 먹음직스런 참외 두 덩이가 놓여있었다. 그 당시 참외를 어떤 맛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로 다시는 그 집에 참외 서리를 가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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