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 ■/자투리

영암에서 만난 사람

서원365 2005. 12. 22. 16:19
 

1990년경인가, 확실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산을 좋아해 전국의 산을 거의 매주 주말마다 찾아다녔다. 하루 또는 이틀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산이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라도 쪽은 발길이 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된 이유가 이 지역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라도에 대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모두 전라도에 가서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설마 ‘그럴리야 있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잠재의식에는 나도 모르게 이 지역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하루는 용기를 내어 월출산에를 가보기로 하였다. 모두 사람 사는 곳인데 별일이야 있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겨울이었다. 그러나 영암 쪽은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별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 시외 버스를 이용하여 광주를 거쳐 영암 정류장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월출산에 가는 버스는 승객이 없어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택시를 이용해 월출산 입구까지 갔는데, 월출산에는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겨울 등산 장비가 없이는 오르는 것이 위험하였다. 그래서 결국 등산은 포기하고 말았다. 준비성 없는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그런데 여기 저기 돌아보고 산 아래에 와보니 영암으로 돌아갈 일이 막막하였다.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던 때이니 하릴 없이 털래털래 영암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서서히 기울고 멀리 보이는 마을에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작은 트럭 한 대가 오더니 나를 지나쳐갔다. 그런데 지나쳐 간 트럭이 갑자기 멈추더니 다시 후진을 하여 내게로 오는 것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영암에 갑니다.”

“그럼 잘 됐네요. 저도 그곳에 가는데 같이 갑시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차에 타고 나니

“말씨를 들어보니 이 쪽 분이 아니군요.”

“예, 대구에서 왔습니다.”

“그 먼 곳에서 제 고장을 찾아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그가 고맙단다. 그는 나를 정류장에 내려 주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진한 인상을 남기고.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쯤 뒤에 내 막내 여동생이 전라도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적극 지지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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