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불교 입문

팔정도

서원365 2009. 12. 19. 22:09

1. 正見(바른 견해)

 

 나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결국 괴로움을 불러오지만,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어 마침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보는 것을 바른 견해라고 할까요?

 내가 만든 모든 업은 결국 내가 받게 되며 남이 대신 받을 수 없습니다.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으며,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나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선업에는 반드시 善果(선과)가 주어지고 악업에는 반드시 惡報(악보)가 주어집니다. 삶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현생이 모두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果報(과보)가 현생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를 바로 보고 이해하는 것을 바른 견해라고 합니다.

 

 근본적인 바른 견해는 내생에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태어나려는 관점에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윤회를 벗어버리는 길을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즉, 苦集滅道(고집멸도)의 진리[=四聖諦]를 바로 알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2. 正思 (바른 생각)

 

 생각은 단순한 사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생각을 말합니다. 바른 생각은 모든 존재로 확산되어 갈 수 있는 욕심을 떠남(出離思)과 성내지 않음(無恚思)와 해치지 않음(無害思)의 생각을 뜻합니다. 올바른 생각은 지혜로운 생각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생각이 욕망을 떠나고 사랑을 행하고 폭력을 버리는 것이라면 욕망과 성냄과 폭력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비롯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을 싫어한다. 그들에게도 삶은 사랑스러우므로 그들의 존재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여 괴롭히지도 말고 죽이지도 말아라.

란 말에서 보듯이 보상을 염두에 둔 생각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 속에 자신을 두고 함께 느끼는 생각입니다.

 

3. 正語 (바른 언어)

 

 가. 거짓말을 하지 말 것(不妄語) - 진실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고 말하며, 안다면 '안다'고 말하며, 보지 못했으면 '보지 못했다' 고 말하며, 보았으면 '보았다' 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사소한 이익을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 것(不兩口) - 남을 이간시키지 말며, 화합시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이리 저리 옮겨서 다투게 만드는 것은 거짓말을 아니더라도 아주 나쁜 의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올바른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말은 특히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경우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 것(不惡語) - 거칠고 상스러운 말로 듣는 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욕설, 비꼬는 말, 모욕을 주는 말 등이 이러한 것입니다. 말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하며, 그 말에 사랑이 담겨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 댓글도 대표적인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입니다.

 

 라.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 것(不綺語)- 잡담, 횡설수설하는 말, 농담을 하지 말되 의미 있고 조리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는 유머는 쓸데없는 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음란한 말, 남을 공포심에 몰아넣는 말, 용기를 잃게 만드는 말, 근거도 없이 상상해서 하는 말 등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4. 正業 (올바른 행위)

 올바른 행위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행위라고 합니다. 올바른 행위를 위해선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넓은 의미에서는 언어 활동도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음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三毒(삼독)이라고 부른다.

 

 가.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지 말 것(不殺生) - 죽이지 않을 뿐 아니라 괴롭히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생명들이 생명답게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살생이 똑같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사람을 죽이는 것과 벌레를 죽이는 것, 부모를 죽이는 것과 원수를 죽이는 것, 실수로 살생한 것과 의도적으로 살생한 것이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살생은 피해야 하며,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살생도 피할 수 있으면 가능한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짚신을 신고 다닐 때 스님들이 일부러 엉성한 짚신을 신은 이유도 가능하면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덜 다치게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나.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지 말 것(不偸盜) - 도둑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이 나에게 주지 않았는데도 가지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남이 나에게 주었다고 해도 과도한 물건을 받지 말아야 하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주는 물건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또 상대방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에게 준 물건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인 의미는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고 그들이 사용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는 만족감이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부와 재산을 남을 위해 베푸는 보시의 정신을 키우는 것입니다.

 

 다. 정당하지 않은 성생활을 하지 말 것(不邪淫) - 정당한 성생활이란 결혼한 경우에 부부 간의 성생활이 될 것입니다. 이외의 성생활은 모두 삿된 성생활입니다. 불경에서는 남자 위주로 설명해놓고 있으며 세 가지 여자와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여자. 보호받고 있는 여쟈, 관습에 의해 금지된 여자(비구니나 수녀 같은 여자)

 그리고 위의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강요에 의해 성행위를 하는 경우나 속임수를 사용하는 경우 등도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외에 술을 마시지 말 것(不飮酒)과 불망어(不妄語)를 합쳐 5계로 정해 경계하고 있습니다.

 

5. 正命 (바른 생활)

 생활은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직업적 생활을 말합니다. 올바른 생활이란 우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생활을 말합니다. 탈세, 탈법, 불량 제품 제조, 부동산 투기 등은 우리 사회에 비추어 볼 때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회적 해악이 됩니다. 비록 세속적인 법에는 어긋나지 않더라도 무기나 술의 판매, 독극물의 판매, 고기의 판매, 생명의 판매는 피해야 할 직업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또 기만, 요설, 점술, 고리대부도 잘못된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에 해로운 담배나 마약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역시 바르지 못한 생활입니다. 그 외에도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것, 부당한 이윤을 챙기는 것, 정신적으로 해로운 출판물을 만드는 것 등도 잘못된 생활입니다. 또 앞에서 말한 올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하는 직업 생활도 모두 잘못된 생활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근무 시간에 시간만 보낸다든지, 근무와 무관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 예입니다. 자리를 함부로 비우는 것, 직위나 직책을 이용해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6. 正精進(바른 노력)

 정진은 노력을 말합니다. 이것은 물론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생각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올바른 정진에는 네 가지의 노력(四精勤)이 있습니다.

 

 가. 제어에 의한 노력(律儀勤,samvarappadhana) - 아직 생겨나지 않은 나쁜 상태의 발생을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나쁜 상태란 번뇌로 때 묻은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이 번뇌들을 다섯 가지 장애[五蓋]로 보통 말합니다. 감각적 욕구, 악의(혐오감,미움, 불만, 노여움, 원망, 반감 등), 나태함과 졸음[昏沈], 들뜸과 걱정[掉悔], 의심 등입니다. 이것들이 해탈로 가는 길을 막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나. 극복하려는 노력(斷勤,pahanappadhana) - 이미 일어난 나쁜 상태를 극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 상황에 맞게 치료하는 것 2) 부끄러움(慙)과 창피함(愧)과 같은 도덕적인 양심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3) 나쁜 생각이 일어날 때 관심의 방향을 바꾸는 것 4) 정면돌파에서 무엇이 나쁘며 그러한 것이 생겨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 없애는 것 5) 강한 의지로 억제하는 것 등입니다.

 

 다. 수행에 의한 노력(修勤,bhavanappadhana) - 수행을 통하여 좋은 상태를 생겨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지만 경전에서 특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七覺支,satta bojjhanga)를 들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수행에 의한 노력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서 수행승은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보내버림으로 열반으로 회향하는 새김의 깨달음 고리, 탐구의 깨달음 고리, 정진의 깨달음 고리, 희열의 깨달음 고리, 안온의 깨달음 고리, 집중의 깨달음 고리, 평정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한다.

 

 라. 지킴에 의한 노력(守護勤,anurakkhanappadhana) - 좋은 상태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삶이 괴로움으로 차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탈로 향해 갑니다.

 

7. 正念(바른 새김)

 

 올바른 새김은 마음을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며, 정정진의 힘을 통해 가능합니다. 마음이 분별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청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하자마자 곧 인식 작용을 일으켜 그것을 개념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관적 생각들이 영향을 주어 관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본래의 대상 그 자체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때 있는 그대로를 그냥 보게 하는 것을 바른 새김이라고 합니다. 이는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는 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새김의 토대(四念處)가 있습니다. 정근하여 분명히 알고 올바로 새겨서 다음과 같이 관찰합니다.

 가.신체를 관찰하는 것(身隨觀,kaya anupassana) - 신체의 관찰 중 호흡 새김(安槃念, anapanasati)은 신체에 대한 관찰의 기본적 토대가 되며 명상의 근본적 토대가 됩니다. 신체의 관찰로서 또 중요한 것은 몸을 분석하여 온갖 더러운 것으로 차 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不淨觀) 이를 통해 감각적 욕구 추구를 제어합니다.

 나아가 신체가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음을 관찰합니다. 이를 통해 신체는 죽어서 흩어짐을 관찰하여 그 무상함을 봅니다. 또 사체(死體)를 관찰하고 이를 자기 신체와 비교합니다. 육체에 내가 없음을 깨닫고 갈애가 허무함을 깨닫습니다.

 

 나. 감수를 관찰하는 것(受隨觀,vedananupassana) -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의 여섯 감관의 접촉 때 마다 그 강하고 약한 것, 분명하고 불분명한 것 등의 감수에 대한 관찰을 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감수는 탐욕을, 괴로운 감수는 성냄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성적인 감수는 어리석음을 수반함을 관찰합니다. 관찰을 해보면 감수가 끝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흐름임을 보게 됩니다.

 

 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心隨觀,cittanupassana) - 마음을 관찰의 대상으로 할 경우에 마음의 작용을 수반하는 의식을 관찰합니다. 탐욕이 따르는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 싫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갇힌 마음과 흩어진 마음, 계발되었거나 되지 않음, 능가할 여지가 있는 마음[有上心]과 최상의 마음, 집중되었거나 되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의 도합 16가지의 마음의 작용을 관찰합니다. 관찰하면서 마음의 작용에 대한 관찰은 악하고 불건전함의 유무를 관찰할 뿐 ‘내 것’이니 ‘내가 있음'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즉, 청정한 마음이라고 해서 좋아하지도 않고 때묻은 마음이라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바람직한 마음 상태로 관찰함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마음 상태는 차츰 사라집니다. 이는 버리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찰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나아가 마음의 관찰이 진행되면 어디에서부터 오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는 순수한 마음 또는 의식의 흐름의 지속만이 남게 됩니다.

 

 라. 현상[法]을 관찰하는 것(法隨觀,dhammanupassana) - 여기서 관찰의 대상이란 사유의 대상이 되는 일체를 말합니다. 사물은 외적 대상이지만 마음 속의 온갖 것은 내적 대상이 됩니다. 이를 법이라고 하며 법에 대한 관찰을 다음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1) 다섯 가지 장애의 현상(五蓋法) - 청정한 마음을 덮는 다섯 가지 - 탐욕, 성냄, 나태함과 졸음, 들뜸과 걱정, 의심

 2) 다섯 가지 존재의 취착다발의 현상(五蘊法)에 대한 관찰 -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色], 감수 작용[受], 감수 작용에 의해 받아들인 것을 표상하는 작용[想], 의지와 행위[行], 추리 판단 등 이성적 작용[識] 등의 대상이 되는 것

 3) 여섯 가지 내외적 감역의 법(六內外處法)에 대한 관찰 - 육내처(眼耳鼻舌身意=六根)와 육외처(色聲香味觸法=六境)

 4) 일곱 가지 깨달음 고리(七覺支)에 대한 관찰 - 위에 있음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관찰 -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

 

8. 正定(바른 집중)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가운데 마지막이 올바른 집중 내지 삼매입니다. 명상의 과정에서의 올바른 집중은 선하고 건전한 마음의 상태에서의 집중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쁜 의도를 가진 집중을 삼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중독에 걸린 학생이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삼매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예비 조건이 필요합니다. 계행을 충실히 함, 장애 요소 제거, 자기에게 맞는 가르침, 수행에 맞는 장소 등입니다.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 새김을 수반하며 해탈의 계기로서 작용합니다. 이는 분별심을 떠나며, 욕심과 삿된 마음을 떠난 집중입니다.

 

 잘 집중된 마음은 명상의 주제인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 속에 침투하고 거기에 흡수되어 그것과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정신적 장애의 제거와 마음새김의 확립이라는 삼매의 과정에 수반되는 올바른 집중은 마음의 멈춤(止,samatha)과 대상의 관찰(觀,vipassana)이라는 두 가지 계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멈춤과 관찰의 실천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명상의 장(業處, kammatthana)입니다.

 

 8정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시중에는 이와 관련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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