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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 용어 해설 ① ㄱ~ㄹ>

서원365 2017. 12. 29. 20:17

                                <불교 용어 ① ㄱ~ㄹ>

        

    불교용어가 어렵다고 합니다. 어려운 것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주 쉬운 말이지만 불교만의 특성으로 인해 이해하기 힘들어 애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런 고충을 겪어 봤기에 처음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용어를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봤습니다.

    그리고 이 용어해설집을 작성함에 있어서 많은 분의 글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교는 스스로 알고, 터득하고, 깨치는 종교이듯이 간단한 불교용어일지라고 제시된 글이 잘 됐다 잘못됐다고 따지기보다 스스로 정의를 내릴 자료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는 계속 수정 보완하고 있는 중입니다. 완결되면 스크랩을 허용하려고 합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ㄱ>------------------------------------------------------------ 

*가관(假觀)---용수(龍樹, 나가르주나)가 확립한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이라는 삼관법(三觀法)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수나라 때 천태대사(538~597) 지의(智顗-智者)가 세운 천태삼관(天台三觀)의 모태가 됐다. 천태삼관(天台三觀)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 일컫는데, 즉,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은 차차 관(觀)이 깊어지는 단계를 말하는데, 공(空)ㆍ가(假)ㆍ중(中) 세 가지 진리를 한마음 가운데서 원만하게 체득하는 것을 일심삼관이라 한다. 이 삼관은 천태종의 중요한 법문으로 교의와 실천의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여러 삼관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설이다.

    여기서 가관(假觀)이란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으로서,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이어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도 실체가 없는 임시적인 가(假)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관을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이라고도 한다. 모든 사물은 공(空)한 것이지만 가(假)라는 모양을 실어 표출된다는 말이다.

공관은 만유현상을 거울에 나타난 허상처럼 보는 것이고, 가관은 거울에 나타난 허상이 비록 실물이 아니나 보는 이의 시각에 들어와 차별을 느끼도록 하기에 그 허상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차별의 허상을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가관이라 한다.

    이와 같이 만유의 모든 법은 공한 것이어서 하나도 실재한 것이 없으나, 그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개 가(假)의 존재라고 관한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가설로 생각해 명상하는 것이 가관이다.---→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천태삼관(天台三觀), 공관(空觀), 중관(中觀),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 참조.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ī-putra)---확실한 생몰연대는 미상으로, BC 150~50년경에 활약한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說) 소속 불교학자였다. 원래 브라만계급 출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해서 유명한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발지론(發智論)>을 저술함으로써 설일체유부 이론을 정립했다. 이 책은 설일체유부 교리를 체계적으로 확립시킨 대표적인 논서로서 널리 연구되며, 많은 주석서도 만들어졌다.

    BC 3세기경 상좌부에 지말분열이 일어나게 되는데, 맨 처음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yavādin)라 자처하던 본상좌부(本上座部)로부터 분리 독립해나가는데, 설일체유부는 가다연니자를 파조(派祖)로 한다. 그러나 가다연니자의 생존시기와 설일체유부 성립시기에는 1세기 정도 차이가 난다.---→발지론(發智論) 참조.

  

*가라분(迦羅分, 歌羅分, 산스크리트어 Kalà)---계분(計分) · 교량분(校量分)이라고도 한다. 시간의 극히 짧은 단위 또는 적은 수량을 말하는, 시간의 경우는 하루의 1,600분의 1, 수량의 경우는 터럭 하나의 100분의 1을 말한다.

  

*가람(伽藍)---산스크리트어 ‘상가람마(sangharama)’를 소리 번역한 것이 승가람마(僧伽藍摩)이고, 이를 줄인 말이 가람이다.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집, 곧 절의 건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절, 사찰, 사원, 도량(道場), 정사(精舍)와 같은 말이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Magadha國) 빈비사라(頻毘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왕이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산스크리트어 라자그리하/Rājagṛha) 부근에 지어서 부처님께 보시한 죽림정사(竹林精舍)가 가람의 시초이다.

     중국의 선종사찰 이래로 정립된 가람의 기본구조는 7당(堂) 가람이다. ①불전(佛殿) ②강당 ③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요사(寮舍) ④부엌(주고/廚庫) ⑤욕실 ⑥동사(東司, 뒷간, 해우소/解憂所) ⑦산문(山門) 등이 7당으로 꼽힌다. 그리고 큰 절의 경우, 금당(金堂) ․ 강당 ․ 탑 ․ 식당 ․ 종루 ․ 경장(經藏) ․ 승방의 일곱을 일컫기도 한다.

     

*가루다(산스크리트어 Garuda)---가루라(迦樓羅)라로 번역하기도 하며, 불경에는 금시조(金翅鳥) 등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독수리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괴물로, 머리엔 여의주가 있고, 항상 입으로 불을 내뿜으며, 금빛 두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336만 리나 되고, 용을 잡아먹고 산다고 하는 전설적인 상상의 새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불교를 수호하는 팔부중[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에 들어가 있다.

     

*가릉빈가(迦陵頻伽, 산스크리트어 Kalavinka)---아름다운 울음소리로 불법을 설하는 상상의 새이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이 새는 극락정토에 살며, 그 형상은 팔부중 하나인 긴나라(緊那羅)와 비슷해서 새 몸에 사람 얼굴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이나 부도, 석등과 같은 석조물에 더러 조각돼 있다. 

      

*가리왕할 인욕선인(迦利王割忍辱仙人)---불교 설화에 가리왕이 인욕선인 육신을 토막 내 잘랐다고 하는 고사를 말한다. 석가모니불이 전생의 어느 때에 남인도 바라문가에 태어났다. 당시의 국왕인 가리왕은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했다. 이때에 인욕선인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왕성 밖에서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다. 마침 왕이 신하들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사방을 구경하며 시원한 나무 그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궁녀들이 왕을 버리고 인욕선인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인욕선인은 그들을 위해 법을 설했다. 왕이 그것을 보고 질투심에 불같은 노여움이 일어 인욕선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인욕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인욕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데까지 노력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이 사람이 한번 시험을 해 보겠노라.” 그러고 황은 칼을 뽑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욕선인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래 참을 만한가?” “참는 데까지 참겠습니다.” 왕은 다시 왼쪽 귀를 베었다. 그리고 손도 베고, 팔도 베었으며, 나중에는 두 다리도 잘랐다. 그리고는 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참을 만한가?” 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자신의 잔인한 행동에 대해 괴로워하고 살려달라고 애걸해야 마음이 시원할 텐데, 인욕선인은 태연하기만 하므로 폭군은 더욱 성을 내고 난폭해졌다. 그런데 이때에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돌과 먼지가 날아와 가리왕의 얼굴을 때리고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날려 가리왕을 덮쳤다. 가리왕은 자신의 악행에 하늘이 벌을 내리는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벌벌 떨며 기어 내려가고 말았다. 왕이 크게 놀라 두려운 마음에 인욕선인 앞에 참회하고 부끄러워했다. 인욕선인이 내 마음속에는 화내는 마음도 탐욕심도 없다고 말하니 가리왕이 더욱 참회하고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불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가만(假滿)---간단히 말하면 법연(法緣)이다. 가만(假滿)은 불법과 인연을 맺고 공부하기 위한 여덟 가지 온전한 인간의 조건인 팔유가(八有暇)와 열 가지 바른 시공간의 인연을 얻는 십원만(十圓滿)을 말한다.

    팔유가는, 지옥, 아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음 등 여덟 가지이고, 십원만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법이 있는 곳에 태어나는 것. 신체가 온전하게 태어나는 것 등 열 가지이다.---→팔유가(八有暇), 팔무가(八無暇), 십원만(十圓滿) 참조.

     

*가명(假名)---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해 되는 것이고, 진실한 자체가 없으므로 거짓 이름을 빌려서 구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법을 ‘거짓 이름[가명]’이라 한다. 또 모든 법은 본래 이름이 없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서 구별(區別-差別)을 말하는 것이므로 온갖 이름이 모두 거짓 이름이다.

    이름뿐인 것, 실체가 아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매달린다. 이름뿐만이 아니라 문자나 언설도 마찬가지 가(假)이다. 아니 사실은 온 우주가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은 <염불론>으로 유명한 청나라 말기 담허(倓虛, 1875~1963) 대사의 법문이다.

    『 어디에 또 ‘나’가 있겠는가? 일곱 가지 인연이 모여서 ‘나’를 형성했지만 사실상 더러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속에는 비린내 나는 더러운 물건들이 담겨져 있다. 지금 이 법문을 하는 이때, 어떤 사람이 가죽으로 된 자루에 똥을 가득 담고 꽁꽁 묶어서 이 법당에 들여 놓는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코를 잡고 멀리 피할 것이다. 혹은 재빨리 이 자루를 법당 밖으로 멀리 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들은 누구나 다 이 똥자루와 같다. 우리의 이 자루는 진짜 가죽자루에 똥을 담은 것보다 결코 깨끗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자루는 아가리를 묶어 놓았지만 사람들의 이 자루는 아래위로 입을 벌리고 있으며,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아홉 구멍으로는 항상 부정한 것들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더러운 가죽자루를 ‘나’라고 집착하고 아끼고 또 아낀다. 이렇게 화장도 하고, 저렇게 보양(保養)도 한다. 부처님의 눈으로 봤을 땐 어리석기 짝이 없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은 ‘나’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물건이며, 나(我) 밑에 적(的)이란 글을 붙여 나의 것이라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몸은 나의 일부분이며, 마치 나의 물건과 같아 내가 사용하고자 할 때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을 땐 놓아 버리고, 폐가 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내려놓지 못한다면 육신의 폐를 입게 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습관은 이 몸을 ‘나’라고 여기고, 나 밖은 사람(人-남)이며, 많은 사람이 모여서 중생이 된다. 모든 중생들이 오래 살고자하는 생각은 이어져 끊이지 않는데, 이것이 수자(壽者-생멸체, 목숨)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이다.

    예컨대 사람(人-남)과 나는(我) 상대가(相對假)이다(대립법-남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남이 있다). 중생은 인성가(因成假-잠시 여러 인연을 빌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이고, 수자(壽者)는 상속가(相續假-아ㆍ인(남)ㆍ중생이 이어져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떠나면 어디에 또 ‘나’가 있겠는가. 하물며 나(我)란 주재(主宰)라는 뜻인데, 사람들의 이 색신(色身)의 ‘나’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사람이 배가 고플 땐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갈증이 날 땐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목숨이 다하면 죽지 않으려야 안 죽을 수 없고, 예쁜걸 보면 보지 않으면 안 되고, 오욕(五慾)의 경계를 만나면 향수(享受)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벌써 주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특히 이런 먹고 마시고 향수(享受)는 생명에 속하는 일인데, 생명은 생멸이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 생명 밖에 또 하나의 혜명(慧命)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히 생멸이 없는 것이다. 무엇이 생멸이 없는 혜명인가? 바로 사람마다 본래 갖고 있는 지각성(知覺性)을 말한다. 이 지각성은 비록 형상이 없지만, 진허공 편법계(盡虛空 遍法界)에 없는 곳이 없고, 아닌 곳이 없다. 이른바 “허공은 큰 깨달음 가운데 생겨 바다의 한 방울과 같다.”

    염불은 곧 자신의 법신혜명을 키우는 것이며, 부처님의 힘과 자력의 힘에 의지해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구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 자신의 본각(本覺)을 회복하는 것이다.---→담허(倓虛, 1875~1963) 참조.     

   

*가미니경(伽彌尼經)---한때 부처님께서 나난다국(那難陀國)의 장촌나(墻村那) 동산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그때 아사라천(阿私羅天)의 아들 가미니(伽彌尼)가 이른 아침에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쭌 내용에 대해 부처님께서 답하신 내용으로 꾸며진 경이다. 아래 내용은 <가미니경>의 일부이다.

   「아사라천의 아들인 가미니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은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하늘을 섬기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자유롭게 좋은 곳으로 오가면서 천상에 난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니, 원컨대 중생으로 하여금 목숨을 마치거든 좋은 곳에 이르게 하거나 천상에 나게 해주십시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마니여!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그러면서 악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도[十不善業道], 곧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성취했다. 그런데 만일 여러 사람이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요구했기 때문에, 이것을 인연으로 죽어서 좋은 곳에 가서 천상에 태어날 수는 없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다. 거기에 어떤 사람이 큰 무거운 돌을 그 물 속에 던져 넣었다.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 돌을 향해 칭찬하고 축원하면서, ‘제발 돌아 떠올라다오.’라고 말했다. 가미니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무거운 돌이 어찌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축원했다고 해서 그 인연으로 돌이 물 위로 떠오를 수 있겠느냐? …“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정진해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해, 열 가지 선한 업도[十善業道]를 성취해,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끊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見解)를 떠나고,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런데 만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요구했기 때문에, 이것을 인연으로 죽어서 악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가미니여! 이른바 이 열 가지 선한 업도는 깨끗해 자연히 위로 올라가 반드시 좋은 곳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기름병[酥油甁]을 물에 던져 부수면 병조각은 밑으로 가라앉고 기름은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 <중아함경(中阿含經)>에 나오는 <가미니경(伽彌尼經)>의 일부이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에 대가미니의 질문을 통해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가 선업을 쌓았다면 선처에 태어날 것이고, 불선업을 쌓았다면 악처에 태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선처에 나게 하거나 악처에 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가미니경>에서 하늘의 신을 섬기는 자가 천상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거운 돌을 연못에 가라앉혀 놓고,“돌아 제발 돌아 떠올라다오.”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이는 하늘의 신에게 기도하는 행위는 돌덩이에 기도하고, 나무에 기도해 소원성취하려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어떤 대상에 기도하는 행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연못에 가라앉은 돌덩이가 떠오르게 하려는 것과 같고, 병속에 들은 기름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초기경전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심으로써 기도 행위를 부정하셨다.

   그런데 대승경전의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은 목련(目連) 존자가 아귀(餓鬼)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세존의 가르침대로 자자일(自恣日)에 여러 부처와 보살, 그리고 승려들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지성으로 공양해 어머니를 제도했다는 효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즉,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승려들에게 공양을 함으로써 전생 및 금생에 돌아가신 어버이 일곱 분을 구제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경전의 부처님 말씀과 대승경전의 부처님 말씀이 다르다. 초기경전에서는 자업자득을 말하고, 대승경전에서는 인과를 ‘무시’하고 있다. <가미니경>에서 부처님은 철저하게 ‘개인이 지은 업이란 누가 대신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셨지만, 대승경전인 <목건련경>에서도 부처님은 우란분재를 올린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런 모순을 만약 외도들이 알게 된다면 뭐라 할지 심히 염려스럽다.  

 

         

*가범달마(伽梵達磨)---서인도 출신 승려, 본명 바가바드 달마(Bhagavad-dharma), ‘존법(尊法)’이라 한역하기도 한다. 당나라 때 중국에 와서 658년 <천수경(千手經)>을 한역했다. 천수경은 그 외에 불공(不空), 지통(智通), 보리류지(菩提流支) 등의 번역본도 있다.     

   

*가부좌(跏趺坐)---가부좌는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약어이다. 결가부좌란 앉는 법의 한 가지로서 가(跏)는 발의 안, 부(趺)는 발의 등을 말하며, 오른쪽 발을 우선 왼쪽 허벅지 위에 얹고 다음에 왼쪽 발을 오른쪽 위에 얹어 앉는 법이다. 그런데 가부좌한 정삼각형 모습은 기하학적인 의미에서 가장 안정된 모습이다. 둥그런 것은 아예 안정이 될 수도 없겠고, 네모꼴보다도 정삼각형은 아래가 무겁고 넓고 위가 좁아서 제일 안정된 모양이다. 그리고 이 정삼각형을 미타(彌陀)의 지인(智印)이라 한다. 아미타는 제불의 본사(本師)요 제불의 왕인데, 미타의 묘관찰지(妙觀察智)의 상징이 정삼각형이다. 밀교에서는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의 상징적인 표치가 정삼각이다. 이 모습이 가부좌하고 똑 같다. 따라서 가부좌할 때는 가장 몸이 안정되고 지혜가 제일 발동되기 쉬운 것이다.---→결가부좌(結跏趺坐) 참조.  

      

*가불매조(呵佛罵祖)---<벽암록(碧巖錄)>에 실려 있는 공안(公案)이다. ‘가불매조(呵佛罵祖)’란 말을 문자적으로만 풀이하면 ‘부처를 꾸짖고 조사(祖師)를 욕하다’라는 말이다. 헌데 이 말이 나온 것엔 나름의 연유가 있다. 당(唐)나라 때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는 자기를 찾아와 문답을 나누었던 덕산 선감(德山宣鑒, 782~865) 선사가 떠난 뒤, 수좌들에게 이르기를 저 덕산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며[가불매조(呵佛罵祖)] 살아갈 자라고 평했다고 한다.

    과연 위산 영우 선사 예언대로 ‘덕산 방(德山棒-덕산의 몽둥이)’으로 잘 알려진 덕산 선사는 어느 날 상당설법(上堂說法)을 하면서 이렇게 설파했다. “부처도 조사도 없고, 달마는 냄새나는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는 별 볼일 없는 마른 똥 막대기이고, 문수와 보현보살은 똥치는 사내에 불과하다. 등각(等覺)이니 묘각(妙覺)이니 하는 오묘한 깨달음도 족쇄를 벗어난 평범한 인간성에 지나지 않으며, 보리와 열반은 당나귀를 매놓는 말뚝에 지나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은 귀신장부이고, 종기의 고름을 닦아내는 휴지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가히 반어와 역설의 언설이었다. 그런데 덕산 선사가 이렇게 부처님을 비롯한 조사들을 욕되게 한 의도가 무엇일까?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에게 얽매임이 있어서는 결코 그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어떤 전통이나 권위에도 얽매이지 말고,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어야만 읽은 경문이나 들은 법문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비슷한 말에 ‘살불살조(殺佛殺祖)’란 말이 있다. 당 말의 고승 임제 의현(臨濟義玄) 선사 법어(法語)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다.---→살불살조(殺佛殺祖) 참조.

     

*가비라국(迦毘羅國, 카필라밧투/Kapila-vatthu)---→카필라밧투(가비라성, 迦毘羅城, Kapila-vatthu), 정반왕(淨飯王, 숫도다나/Suddhodana) 참조.

 

    

*가사(袈裟, 산스크리트어 kasaya)---가사(袈裟)는 승려가 입는 법의(法衣)의 하나. 동냥한 헝겊으로 이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음매가 가로 세로가 마치 논두렁 같아서 전상의(田相衣)라고도 하고, 성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욕의(忍辱衣)라고도 하며, 물들인 옷이라 해서 염의(染衣)라고도 한다.

   규격에는 오조가사(五條袈裟, 일명 안타회/安陀會), 칠조(七條袈裟, 일명 울다나승/鬱多羅僧), 9조~25조가사(일명 승가리/僧伽梨)까지도 있다.

    여기서 조(條)는 사각형 천 조각을 말한다. 따라서 오조가사란 다섯 조각의 천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장삼을 입은 다음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끈으로 매어 고정시킨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승복은 대체로 장삼(長衫), 장삼 안에 입는 옷(평상복), 그리고 가사는 오조가사, 칠조가사, 대가사로 나누고 있다.

    애초에는 사람이 내버린 옷, 죽은 사람의 옷을 주워서 만들었으나 후세에 이르러서는 가사를 만드는 재료가 풍부하고 다양해짐으로써 다소 화려해지는 등 법규에 어긋난 점도 없지 않았다.

승려의 의복을 법의(法衣)라 하는데, 법복(法服), 승복(僧服), 승의(僧衣)이라고도 한다. 근래에는 대개 가사와 장삼만을 일컫기도 한다. 부처님이 정하신 의복은 삼의(三衣)를 원칙으로 했었다. 그런데 더운 지방에 사는 이를 위해 만든 법의(法衣)로서 이것만으로 몸을 가리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추운 날씨 관계로 가사 아래 장삼, 그 안에 내복을 입어 가사와 구별한다.---→분소의(糞掃衣), 칠조가사(七條袈裟) 참조.

    

*가섭[마하가섭(摩訶迦葉, 산스크리트어 마하까사빠/Mahākāśyapa)]---부처님 십대 제자 중 제일인자. 가섭파(迦葉波), 대가섭(大迦葉), 가섭 존자(迦葉尊者), 대음광(大飮光)라고도 한다. 불멸 후 부처님 제자들을 이끈 영도자 역할을 했으며, 불경 제1차 결집을 주도했다.

    마하가섭은 마가다국 서울 라자그라하에서 멀지 않은 마하띠라(Mahātittha)라고 하는 바라문촌 부호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삐빨리(Pippali)였다. 그는 결혼을 원치 않았으나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강제로 끌려 결혼했다. 그러나 서로의 합의로 첫날밤에 잠자리를 꽃 줄로 갈라놓고 각기 따로 잠을 잤다. 그리고 출가를 결심했다. 동시에 아내도 출가를 결심했다. 그들은 함께 머리를 자른 뒤 발우를 손에 들고 우는 하인들을 뒤로 한 채 집을 떠났고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그 후 까사빠는 죽림정사(竹林精舍)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제자가 됐고 아내는 비구니 교단에 출가했다.

    가섭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거친 옷과 거처에 상관없이 진리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 해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어졌으며, 부처님으로부터 첫 번째로 법을 전수 받은 제자이다(선종의 제1대 조사임).

    선종에서는 부처님의 법을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이어 받았다고 본다. 아난존자는 팔만대장경으로 전해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한 가르침인 교(敎)를 이어 받았고, 가섭존자는 말로서 못 다한 부처님의 비밀스런 진리인 마음을 전해 받았다고 한다. 이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하는데 마음과 마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주인공이 바로 가섭존자이다.

   선가에서는 빛을 마시는 뛰어난 존자란 뜻으로 음광승존(飮光勝尊)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 제자 가운데 가섭(迦葉)이란 분이 여럿 있었다.

      ① 첫째는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바로 전해 받은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

      ② 둘째는 삼가섭이라고 하는 삼형제가 있었다. 삼형제 가섭은 가야성(迦倻城)이라는 지방에서 천명이나 되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들은 불을 숭상하는 외도(外道)였으나 부처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했다.

      ③ 초전법륜 당시 녹야원에서 부처님 제자가 된 다섯 비구 중에 십력가섭(十力迦葉)이란 분이 계셨다. 와빠(Vappa, 바파)를 말한다. ---→곽시쌍부(槨示雙趺), 염화미소(拈華微笑), 이심전심(以心傳心) 참조.

 

*가섭마등(迦葉摩騰, 산스크리트어 Kāśyapa-mātaṅga)---중국에 불법을 최초로 전한 인도출신 승려. 축섭마등(竺葉摩騰), 섭마등(攝摩騰), 마등(摩騰)이라고도 한다. 매우 총명해 대 ‧ 소승의 경전과 계율에 통달했고, 중국 후한 효명제(AD 58~75재위) 때인 AD 67년 대월지국(大月氏國) 승려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뤄양(洛陽)에 이르러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등을 번역했는데, 이것이 중국 역경의 시초이다.---→축법란(竺法蘭) 참조.

   

*가섭불(迦葉佛)---선가에서는 음역인 가섭불보다 의역인 음광불(飮光佛)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산스크리트 ‘카샤파부다(Kaśyapa-buddha)’의 음역이다. 석가모니가 출세하기 전, 인간의 수명이 2만 세였을 때, 바라내성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라문 종족으로 브라흐마닷타요, 어머니의 이름은 다나바티이다. 가섭불에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라훌라라는 아들을 두었듯이 출가 전에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의 이름은 집군이요, 당시 왕은 키키왕(汲毗王)이었으며, 나라의 이름은 바라나시(Baranasi)였다고 한다.

   경론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제자, 국왕 등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가섭불의 이름을 딴 마하가섭을 비롯 우루빈나가섭, 가야가섭 등이 활약하기도 했다. 장아함 제1권 <대본경(大本經)>에 의하면, 출가해 니구루다수(尼拘樓陀樹)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제자의 수는 2만 명이었다. 그 중 티싸와 바라드바가 큰 제자이고 집사 즉 비서의 직책을 맡은 제자는 사바미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바로 전 부처님으로 과거칠불 가운데 제6불에 해당하는 분이다. 또한 현재 현겁에 일천불이 출현한다고 하는데 그 중 제3의 부처님이 바로 가섭불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2만 세일 때 출현한 부처님으로 이후 백 년마다 평균 수명이 한살씩 줄어 백세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한 것인데, 가섭불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에 출현한 부처님이라 할 수 있다.

 

      

*가섭선세(迦葉善歲)---부파불교시대 음광부(飮光部) 시조. 성은 가섭, 이름은 선세(善歲). 불멸 후 3백년(BC345~246) 말기에 활동. 어릴 적부터 어질고 총명해 7세 때에 아라한과를 얻고, 사람들의 귀의를 받았다. 또 상좌부 교의가 독자부(犢子部)ㆍ법장부(法藏部) 등으로 발전해가면서 대중에 너무 부화해 그 근본 뜻을 점점 잃어 감을 개탄하고, 상좌부 교의를 유지하기에 힘쓰는 한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음광부를 독립시켰다.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대부분의 물질엔 탄성彈性)이란 게 있다. 탄성이란 외부의 힘에 의해 그 형체가 변형됐다가 힘이 제거되면 원래의 상태로 복원되는 성질을 말한다. 스프링 같은 것은 탄성이 센 물질이고, 점토 같은 것은 탄성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가소성(可塑性)이란 점토처럼 물질이 가진 탄성 이상의 에너지가 주어졌을 때 물질이 변형한 후, 이 힘을 제거했을 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뜻한다. 따라서 탄성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보통 여러 고분자에서 볼 수 있는데, 비닐을 쭉 잡아 당겨 늘어나게 한 후 힘을 제거해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도 가소성이다. 이와 같이 원래 가소성은 물리학에서 논의하던 개념인데, 이런 가소성이 학습이나 수행을 규명하는데 응용된다.  

    특히 신경계 연구에서는 기억, 학습 등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을 ‘뇌의 가소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억, 학습에 있어서 비교적 짧은 기간 사이에 가해진 자극에 의해 뇌 내에 장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가소성 변화가 일어나는 부위는 신경세포간의 접합부인 시냅스(synapse)이며, 적당한 자극을 가하면 그 이후 시냅스에서의 신호전달 효율이 장기적으로 변화되는 현상이 해마, 대뇌피질, 소뇌 등의 시냅스에서 나타나고 있다.

    뇌기능의 가소성(可塑性)을 영어로 Neuro-plasticity라 하는데, 신경(neuron)도 플라스틱(plastic)처럼 성형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까지는 뇌기능의 가소성을 부정했었다. 그러나 그 후 연구결과 뇌 구조는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하면 반영구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뇌에 일정기간 이상 어떤 자극을 가하면 뇌신경계가 변화하고 유지된다는 말이다. 이런 뇌 가소성은 뉴런 피드백 뇌파훈련이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된다. 우리의 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더불어 의지가 있어야 가소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뉴런(neuron)---신경계의 단위로 자극과 흥분을 전달한다. 신경세포체(soma)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신경세포체와 거기서 나온 돌기를 합친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뇌는 각 부위마다 담당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대뇌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며, 소뇌는 평형감각과 운동능력을 담당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정돼 있다고 해왔다. 그러나 가소성이 발견되면서 외부환경과 노력에 의해서 뇌의 담당부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뇌졸중환자가 언어능력을 상실했을 경우, 재활훈련으로 뇌의 다른 부위가 언어능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는 각 부위마다 담당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대뇌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며, 소뇌는 평형감각과 운동능력을 담당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정돼 있다고 해왔다. 그러나 가소성이 발견되면서 외부환경과 노력에 의해서 뇌의 담당부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뇌졸중환자가 언어능력을 상실했을 경우, 재활훈련으로 뇌의 다른 부위가 언어능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 가소성에는 회복 가소성과 적응 가소성이 있다. 회복 가소성은 아동기에 신경세포가 파괴됐을 경우, 잃어버린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적응 가소성은 새로운 환경과 노력(경험)으로 신경계의 스냅스가 강화 혹은 약화돼서 뇌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는 이론으로 주로 대뇌피질에서 생긴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적응 가소성은 후천적인 노력과 평생학습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며, 현실적인 노인성 치매 예방에 희망적인 이야기이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가소성이 더 높지만 그렇다고 어른이나 노인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노인의 뇌도 가소성은 충분히 있기에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다. 훈련을 통한 긍정적인 뇌의 가소성은 훈련 이후에도 그 효과가 지속된다.

    특히 최근 조사에 의하면, 건강한 70세와 건강한 20세는 뇌 혈류량과 산소 소비량에서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실험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노인들 뇌의 특정 영역들에서 사용되는 포도당의 양은 똑같이 실험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20세들과 의미 있는 차이가 나지 않았다. 따라서 각종 질병이 없는 노인의 뇌는 얼마든지 가소성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인이 지혜롭다는 가설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유동적 기능(流動的機能-기억할 수 있는 용량과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능력 등)만이 노화와 함께 유의미하게 퇴화한다. 결정적 기능(決定的機能)은 본래 유동적인 기능을 바탕으로 해 생겨나고, 개인의 문화적, 교육경험에 따라 영향을 받는 기능으로 40세까지, 환경에 따라서는 그 이후에도 발달하는 기능이다. 반면에 유동적 기능은 독특한 신체구조와 성장과정에 기초해 14세경까지 발달하지만 22세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선천적인 기능이다. 뇌 손상이나 정상 노화에 따라 감소되는 지적 능력은 유동적 기능이다. 건망증이 유동적 기능의 감소를 말한다.

    이렇게 결정적 기능(決定的機能)이 노화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며, 심지어는 향상되고, 뇌 대사에 필요한 포도당 양이나 혈류량, 산소 소비량도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사실은 노인들의 발전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뉴런들의 활동으로 인해 성숙한 뇌의 뉴런 간 연결의 강도가 바뀔 수 있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있어서는 신경과학자들이 심지어 뇌의 노화를 환경에 규칙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상쇄시키거나 노화를 역행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소성은 종교적인 수행을 통한 행동의 변화와 용맹정진에 의한 해탈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범한 중생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뛰어난 조사들의 이적(異蹟) 같은 일들도 사실은 이런 가소성의 결과였던 것이다.

    오늘날 교육학에서 평생교육이나 재학습(再學習, relearing)의 원리도 가소성에 기초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도 일종의 재학습이고, 평생교육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가소성이 그 수행에 따르는 과보에 대한 교육학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겠다. 예컨대 산사에 집거하면서 10년 동안 세간에 내려오지 않았다든지, 무문관 수행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뇌 가소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행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극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한 소식했다, 득도했다,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것도 오랜 수행과 투철한 정진을 통해 뇌 가소성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다.

      

*가쇄난(枷鎖難)---옛날 죄인의 목에 씌우는 형구를 가(枷) 혹은 칼이라 하고, 쇄(鎖)는 발에 채우는 쇠사슬을 말한다. 따라서 가쇄난이란 죄인이 돼 목에 칼이 씌워지고 발에 쇠사슬이 채워지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나오는 칠난(七難)의 하나이다.---→칠난(七難) 참조.

       

*가애(罣碍)---장애와 같은 말이다. 장애에는 물질적인 장애와 정신적인 장애가 있겠는데, 이 두 가지 장애가 적어야 된다. 장애가 많으면 수행을 할 수가 없다.   

   

*가애락(可愛樂)---<화엄경>에 잘 나오는 말이다. 가애락(可愛樂)이란 아주 사랑스럽다, 아주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불소행찬(佛所行饌)> 파마품(破魔品)에 마왕(魔王)파순(波旬)의 셋째 딸 이름이 가애락이다.

       

*가야(伽倻, Gaya)---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곳으로. 부다가야(Buddhagaya) 혹은 보드가야(Bodhgaya)라고도 한다.---→보드가야(Bodhgaya) 참조.

    

 

*가야산(伽倻山-일명 상두산/象頭山)---부처님이 정각(正覺)을 이룬 보드가야(Bodhgaya) 부근에 있는 산이다. 가야시산이라고도 한다. 이 산을 경전에서는 상두산(象頭山)이라고 한다. 산이 코끼리 머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코끼리 상, 머리 두자 해서 상두산이다. 이곳 현지에서는 가야Gaya)산이라고 부른다. 가야산 정상에 서면 보드가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가야시산 정상에서 가섭 3현제와 그들이 거느린 일천 명의 제자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삼화[三火 = 삼독(三毒)]를 처음 언급하셨다. 삼화란 탐(貪) ․ 진(瞋) ․ 치(痴)의 삼독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가야시산의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눈이 불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色]이 불타고 있다. 눈의 분별[眼識]이 타오르고 있다. 눈에 보아서 즐거운 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모두 불타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분노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어리석음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심 걱정과 고통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이처럼 귀에서도, 코에서도, 혀에서도, 몸뚱이에서도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불길이 훨훨 타오르고 있다.“ -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말이다.---→‘삼화(三火)의 설법’, ‘불타고 있다’ 참조.

      

*가오욕(呵五欲)---선(禪) 수행에 들어가려면 일상생활 속에서의 번잡함, 사람들과의 관계, 생활에 관련된 잡다한 일들, 문자에 대한 집착 등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수행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잡념 없이 수행정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달마(達摩) 대사는 2조(二祖) 혜가(慧可)에게 이르기를, “밖으로 모든 반연을 끊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道)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수나라 시대에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 대사는 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5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즉, 구오연(具五緣) ․ 가오욕(呵五欲) ․ 기오개(棄五蓋) ․ 조오사(調五事) ․ 행오법(行五法) 다섯인데, 다섯 항목에도 각기 다시 다섯 사항이 있어서 이를 ‘25방편(方便)’이라 한다.

    이 중 가오욕(呵五欲)이란 다섯 가지 욕망을 경계하라는 것으로서, 선 수행을 위한 준비로서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이라는 인간의 다섯 감각기관에서 나오는 욕망에 반연하는 외적 조건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사람마음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운 이성의 외모나 진귀한 물건, 고운 옷[色], 귀를 자극하는 온갖 소리, 음악[聲], 향기로운 냄새, 화장품[香], 미욕(味欲)을 부추기는 맛있는 음식[味],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觸] 등을 조심하라는 말인데, 정해진 계율뿐만 아니라 수행자 자신을 유혹하고 속박하는 외적 조건들을 경계하라는 말이다.---→오구연(具五緣), 기오개(棄五蓋), 이십오방편(25方便) 참조.

      

*가이아(Gaia)의 이론---영국의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이 창시한 지구 시스템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가이아로 보는 이론. 즉, 가이아 이론은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물리ㆍ화학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전 지구의 생물권이 관여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가이아(Gaia)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이다.

    현재 가이아이론은 과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지구환경변화에 대한 세계과학자들의 선언문인 2001년 ‘암스테르담선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또한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재앙을 경고하고 그 대책을 제안한 <가이아의 복수(2008)>, <가이아의 사라지는 얼굴(2009)> 등 저서를 통해 다시금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줬다. 가이아이론에 있어서 ‘지구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설들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가이아는 스스로 모든 생물들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인간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면, 가이아는 그 속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둘째 가이아는 생물과 같은 중요한 기관들과 함께 부속기관을 가지고 있어 필요에 따라 신축 ․ 생장 ․ 소멸이 가능하고, 장소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셋째 가이아는 매우 정교한 자기조절 체계처럼 스스로를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이아(Gaia)가설은 지구상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물리적ㆍ화학적 환경을 생명현상에 적합한 상태로 유지하는 최적조건을 유지하려고 언제나 자기제어기능을 갖추고 자기 스스로 조정하고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지지자들이 증가해 현재는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자가조절(self-regulating) 기능으로 환경을 조절해 존속돼 왔다는 주장이 일반화돼 있다.

그런데 인류는 이제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구의 다른 생물권을 무자비하게 착취한 암적 존재였다. 따라서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는 이와 같은 가이아이론이 주는 암시는 불교의 동체대비(同體大悲)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사상의 가르침이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불가결의 사상임을 가리키고 있다.

     <화엄경> 핵심철학은 한마디로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이다. 이 말은, 연기법 세계관으로 볼 때 세계는 본래 그물코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생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즉, 세계가 마치 살아있는 그물이라면 낱낱의 존재들은 그물코 같이 서로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에 있다. 이렇듯 세계는 본래부터 한 몸 한 생명의 생명공동체여서 함께 평화롭게 사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마치 2000년 후의 가이아 이론을 예견하고 있는 듯한 언설이다.

   즉, 2000년 후의 가이아이론은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일변시켰다. 이러한 입장에서 말한다면 지구는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인류는 지구라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한낱 세포에 불과한 것이다. 우주시대를 의식한 인간의 시야가 지구의 생명권을 현실적인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우주시대라는 이 현황 속에서 가이아이론은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지구생태계의 위기상황이 여러 각도에서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지구가 무진장의 착취 가능한 자원을 갖고 있다는 기본적인 시각이 바뀌고 '우주선 지구호'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지구는 우주를 여행하는 무기적인 수레가 아니라 모든 생명을 내장하는 유기적인 생명체 '가이아'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구는 살아있다. 러브록은 "기분 좋게 지구를 안을 때는 지구 전체가 성스러운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의 생명력은 수많은 생물의 종은 물론 유기물뿐만 아니라, 무기물까지를 포함해 서로 의존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선게(禪偈)에 나타나는 “산천초목은 물론 인간의 배설물까지도 불심이 있다[실유불성(悉有佛性)].”는 정신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서로 의존하며 타(他)의 생존을 유지하게 한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불교에서 살생을 금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로 억제하는 정신은 가이아이론의 사상체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와 가이아이론의 발상법에 의하면 각 개체는 전체의 생명을 구형하고 있다. 즉 다즉일 일즉다(多卽一 一卽多)의 세계이다.

    그런데 오늘날 서양에서 개아를 초월한 트랜스퍼스널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 발달하고 있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즉, 개인(person)을 초월(trans)해 가족, 이웃, 사회, 각종 생물, 자연, 지구, 우주 등 모든 존재는 서로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병들면 연이어 가족이 병들고, 이웃, 사회, 생물, 자연이 병들며, 지구가 병든다고 보는 전포괄적 접근(holistic approach)의 시각이다. 마치 <화엄경>의 상의상관(相依相關),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를 말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서양의 근대 가치관의 근간이 돼 온 합리주의(rationalism), 개인주의(personalism), 객관주의(objectivism), 기계론적 세계관(mechanistic world view) 등에 대한 다각적인 재검토가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뒤 늦게 화엄의 세계가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가이아의 이론이 심리학적 확장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서구 학계에서 개아(個我)를 초월한 트랜스퍼스널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 발달하고 있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즉, 개인(person)을 초월(trans)해 가족, 이웃, 사회, 각종 생물, 자연, 지구, 우주 등 모든 존재는 서로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병들면 연이어 가족이 병들고, 이웃, 사회, 생물, 자연이 병들며, 지구가 병든다고 보는 전포괄적 접근(holistic approach)의 시각이다. 마치 <화엄경>의 상의상관(相依相關),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를 말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서양의 근대 가치관의 근간이 돼 온 합리주의(rationalism), 개인주의(personalism), 객관주의(objectivism), 기계론적 세계관(mechanistic world view) 등에 대한 다각적인 재검토가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뒤 늦게 화엄의 세계가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동체대비(同體大悲), 화엄 사법계(華嚴四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 다즉일 일즉다(多卽一 一卽多) 참조.  

 

 

    *가전연(迦旃延, 빠알리어 Mahā-kaccāyana, 산스크리트 Mahakatyana)①---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가연자(迦延子)라고도 한다. 인도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왕명에 따라 부처님을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했다고 한다. 부처님 10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부처님 말을 논리정연하게 해설해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는 말을 들은 4대 성문(聲聞)의 한 사람이다. 설법 제일이었던 부루나(富樓那) 존자조차도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설법 제일인 부루나와 논의 제일인 가전연을 비교하면 부루나는 재가자들을 상대로 말하는데 뛰어났고, 가전연은 출가자들에게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해설을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많은 내용을 요약해 핵심만을 말하기도 하고, 너무 간략해 뜻이 모호한 내용은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가전연은 총명한 머리로 명석 판명한 논리를 구사해 붓다 말씀을 해설하는데 걸림이 없었다. 그래서 증일아함(제2지품)에서는 “잘 뜻을 분별해 진리를 펴는 데는 가전연 비구가 으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만큼 논리력이 뛰어나 여러 가지 논서의 저자로 추정된다.

    

*가전연(迦旃延, 산스크리트어 Kaccayana)②---여기 가전연은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의 논사로서, AD 2세기경에 행해진 북방불경 제4차 결집(結集) 때, 이에 참여해 <아비달마대비바사론> 편집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경 제4차 결집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 하나는 불멸 600년경(AD 2세기경) 인도를 통일한 쿠샨왕조(대월지국/大月氏國) 카니시카(Kaniska)왕 후원으로 협(脇, 파르스바/Parsva) 존자를 중심으로 해서, 세우(世友), 법구(法句), 묘음(妙音), 각천(覺天) 등 500 나한이 북인도 지금의 인도 캐시미르 지방 건다라국(乾陀羅國) ― 혹은 쿠샨왕국의 수도 환림사에 모여 <아비달마비바사론> 10만송 등을 짓고, 율장, 논장을 해석하니, 모두 30만송의 주석서를 편집했다고 한다. 이때 산스크리트어가 불교 공식어가 됐다. 그리고 이때 결집된 경전이 중국에 전해졌기에 중국엔 산스크리트어 불경이 전파됐다.

     • 다른 하나는 불멸 후 400년경(BC1세기말~AD1세기초) 500명 나한들이 모여 가전연(迦旃延) 나한을 상좌로 하고 마명(馬鳴)보살을 판수로 해서 <아비달마비바사론> 1백만 게(偈)를 지었다는 설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 확실한 논증이 안 되고 있다. 아무튼 설일체유부 논사 가전연이 불경 제4차 결집에 참여해 <아비달마비바사론> 편집에 공헌했다고 전해진다.

         

*가전연경(迦旃延經, 빠알리어 깟짜야나 고따 숫따(Kaccāyanagotta Sutta)---초기경전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 - 상응부아함경(相應部阿含經)]에 실려 있는 초기불교에서 가장 핵심 되는 경의 하나이다. 주요내용은 연기와 중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연기와 중도의 관계는 <가전연경>을 이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가전연경>은 있다(有, atthi) 없다(無, natthi)는 단정적 견해로 이 세상을 파악하지 말고 일어나고(samudaya, 起) 사라짐(norodha, 滅)이라는 연기적 사유로 세상을 꿰뚫어 보라고 한다. 이 경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의 근거가 되기도 하듯이 대승불교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경의 내용을 보자.

     <가전연경(깟짜야나 고따 숫따)>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 제따와나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 그때 깟짜야나 고따 존자가 세존을 뵈러갔다. 뵈러가서 세존께 큰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 한 곁에 앉아서 깟짜야나 곳따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견해라고들 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견해입니까?

   •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거의가다 둘을 의지하고 있나니 '있다(atthi)'거나 '없다(atthi)'는 것이다.

   • 세상의 일어남(samudaya)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는 세상들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세상의 소멸(nirodha)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는 세상들이 있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끌림과 취착 때문에 독단적 해석에 계박이 돼버린다. 그리고 그런 끌림과 취착, 마음의 고집, 독단적 신조(편견), 잠재성향을 ‘나의 자아이다(attaa me)’라고 따라가지 않고, 취착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는다. 고(苦)가 생겨나면 생겨나는구나, 고가 멸하면 멸하는구나 라고 해서 의심하지 않고 혼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런 것이] 그가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은 지혜이다. 이런 것이 참으로 바른 견해[正見]이다.

   •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은 없다는 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여래는 이들 두 극단을 따르지 않고 중간에 의해서 법(dhamma)을 설한다.

   • 무명을 반연해 [업]형성들(상카라)이 있고, [업]형성들을 반연해 알음알이가 있고, 알음알이를 반연해 정신-물질이 있고, 정신-물질을 반연해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반연해 감각접촉이 있고, 감각접촉을 반연해 느낌이 있고, 느낌을 반연해 취착이 있고, 취착을 반연해 존재가 있고, 존재를 반연해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반연해 늙음과 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있다.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남이다.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면 [업]형성들이 소멸하고…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하는 것이다.

   <가전연경>의 핵심은 상견과 단견이라는 양 극단을 떠나서 여래는 중도에 의거해서 법(法), 즉 연기(緣起)를 설한다는 것이다. 이 경에는 부처님이 정등각(正等覺)한 내용, 즉 중도(中道)와 정견(正見)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다. 따라서 부처님 당시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가전연경>에 대해서 논의가 많았다. 그런 만큼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중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이 <가전연경>을 잘 알아야 한다. 여기서 가전연이란 붓다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존자를 말한다.

 

*가지(加持)---부처님의 위대한 힘이 나에게 더해지고 나는 그 힘을 받아 지니기 위해 힘쓰는데,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 수행이나 의식에 의해 부처님의 힘을 자기가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는 행위 전반을 가리킨다. 가지의 가(加)는 가피加被), 지(持)는 섭지(攝持)의 뜻으로 호념(護念), 가호(加護) 등으로 번역도 한다. 즉 ‘가(加)’는 부처님이 지닌 대비심의 힘이 수행자에게 가해지는 것이고, ‘지(持)’는 수행자의 신심에 부처님이 감응하는 것을 수행자가 받아 지니는 것을 말한다.---→가피加被) 참조.

        

*가지성불(加持成佛)---중생이 열심히 수행을 하고, 부처님을 흠앙하는 신심(信心)을 나타내면 부처님이 베푸는 대비력(大悲力)과 서로 어울려서 범부에게 본래 갖추어진 불성(佛性)이 나타나게 되는 것. 즉 수행하는 자의 공부가 깊어감에 따라 부처님 위력이 가지(加持)돼 성불하는 상(相)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수행을 통해 붓다 삼밀(三密)과 중생의 삼밀이 깨달음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경지, 즉 중생과 부처님 법신(法身)이 일여(一如)하게 되는 경지이다. 삼밀(三密)이란 신(身) ‧ 구(口) ‧ 의(意) 삼업을 이르는 말인데, 수행을 열심히 하면, 중생의 삼밀이 대일여래 삼밀과 일치하게 돼 중생과 대일여래가 한 몸을 이루는 경지가 되는데, 이것을 가지성불이라 한다.

      

*가타(伽陀, 산스크리트어 gatha)---번역해서 게송이라 하며,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중송(重頌), 게송(偈頌) 참조.

      

*가피(加被)---가비(加備)ㆍ가호(加護)라고도 하는데, 가지(加持)와 비슷한 말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이 자비의 힘을 베풀어 중생에게 이롭게 힘을 주는 것. 온 마음을 다 기울여 기도를 했을 때 부처님에게서 받는 과보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은총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이다.

    종교생활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떤 말을 일심으로 외우거나 대상(부처님)을 열심히 부름으로 해서, 자기 마음의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가령 어떤 재난을 극복하게 되는 것은, 주문을 외우거나 부처님을 찾음으로 해서 자기의 마음이 변화하고, 마음의 변화로 인해, 실망에 빠진 사람이 용기를 얻거나,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해져서 새로운 환경을 창조(創造)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했던 환경도 이겨내고, 안된다고 생각했던 일도 처리해내면, 이른 바 그것을 부처님의 가피(加被)라고 한다.

    그런데 가피는 가만히 있는 자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만 내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다.

   가피에는 3종 가피가 있다. 즉, 몽중가피(夢中加被), 현증가피(顯證加被), 명훈가피(冥熏加被)가 그것이다.

    ① 몽중가피(夢中加被) ― 꿈을 통해 불ㆍ보살이 나타나 소원성취를 예견하는 것.

    ② 현증가피(顯證加被) ― 지극한 기도가 인연이 돼 눈앞에 바로 드러나는 가피를 말한다. 살아가면서 현실에서 직접 영험을 받는 것.

    ③ 명훈가피(冥熏加被) ― 은근히 자기도 모르게 은혜를 받는 것.---→가지(加持) 참조.

           

*가행(加行, 산스크리트어 prayoga)---가행이란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로서, 더욱 힘써서 마음과 계행(戒行)을 닦고 수행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본래의 수행에 힘을 더해 행하는 것을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서는 가행으로 얻어진 결과를 가행과(加行果)라 하고, 번뇌를 끊는 준비로서 수행하는 단계를 가행도(加行道)라고 한다.---→가행도(加行道) 참조. 

     

*가행도(加行道)---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을 말하며, 사도(四道), 수행사도(修行四道) 혹은 4종도(四種道)라고 하는데, 가행도(加行道), 무간도(無間道), 해탈도(解脫道), 승진도(勝進道)의 4단계이다.

    이 중 하나인 가행도는 방편도(方便道)라고도 한다. ‘가행’이란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이고, 가행도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과정의 첫 단계로서 번뇌를 끊으려고 다시 힘을 더해 수행하는 기간을 말한다.---→사도(四道) 참조.

        ※무간도(無間道)---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즉, 바르게 번뇌를 끊는 도를 말한다.

        ※해탈도(解脫道)---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무간도를 닦은 다음에, 진리를 깨닫고 해탈을 성취하는 것.

        ※승진도(勝進道)---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가행위(加行位)---유식불교(唯識佛敎) 이론에 보살이 부처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수행단계로서 수도5위(修道五位)가 있다. 자량위(資糧道), 가행위(加行道),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가 있어 이를 수도5위라 한다.

제1위인 자량위(資量位)는 깨달음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수행에 필요한 복덕과 지혜를 쌓는 준비단계로서, 나와 네가 서로 짝으로 존재하고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상태이다. 이에 비해 제2위인 가행위(加行位)는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유식수행(唯識修行)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제1위 자량위 단계가 복덕과 지혜로서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면, 가행위는 본격적으로 노력하는 단계로서 인식의 주객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해 현상을 나와 너 또는 나와 대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이는 정신적 습관을 자각하고, 그러한 습관을 제거하는 훈련을 닦아나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참된 유식(唯識)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다.---→수도5위(修道五位) 참조.

   

*가행정진(加行精進)---불교수행에서는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평상시보다 한층 더 정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한다. 용맹정진의 별명이 가행정진이다. 따라서 가행정진은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방법이 보통이다. 7일, 21일, 100일 등으로 할 수 있다. 단, 유념할 것은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내 길게 기간을 잡으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기도가 탄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100일 기도를 하기 위해서 3일, 7일 등 짧은 워밍업의 기도를 해 봐야 한다. 이는 3000배를 시도하기 위해 며칠간 300배, 500배 등을 하는 것과 같다. 기도 분량도 너무 많이 잡으면 나중에 감당이 되지 않아서 그만두는 수가 많으므로 마음만 앞서서는 안 된다. 또한 천일기도 등 장기적인 가행정진을 하는 불자들은 100일 단위로 끊어서 입재, 회향을 반복하면 훨씬 기도가 잘 된다고 한다.

    가행정진 중에는 가급적 오계(五戒)를 범하지 말아야 하고, 혹시 무슨 일로 당일 기도를 놓칠 경우는 다음날에라도 보충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100일 정도만이라도 가행정진을 제대로 한다면 그 법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각(覺)---간단히 말하면 깨달음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불교에서는 그 쓰임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다. 우선 <대승기신론>에서 설명하는 각(覺)의 의미를 살펴보자.

    「각(覺)의 뜻은 마음의 바탕이 망념을 여읜 것을 말한다. 망념을 여읜 모습은 허공계와 같아 어떤 곳이라도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는 법계와 같은 모습이니 곧 여래의 평등한 법신(法身)이다. 이 법신으로 말미암아 본각이라고 한다(所言覺義者 謂心體離念 離念相者 等虛空界 無所不遍 法界一相 卽是如來 平等法身 依此法身 說名本覺).」라고 했다.

    이러한 ‘각(覺)’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나뉘어 쓰인다.

    첫째는 산스크리트의 ‘bodhi’ 곧 보리(菩提)를 옮긴 말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할 때에 가장 완벽하고 지극한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구경각(究竟覺)ㆍ무상각(無上覺)ㆍ정각(正覺)ㆍ대각(大覺)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三菩提), 곧 더없이 높고 가장 올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이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을 중국에서는 각자(覺者)라고도 번역한다.

다만 보살들의 깨달음은 아직 원만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수분각(隨分覺)이라 하며, 삼현위(三賢位)의 성자와 이승(聲聞乘·緣覺乘)은 아직 참된 이치를 완전하게 얻지는 못했으나 비슷하게 깨달았다고 해서 비슷한 깨달음[상사각(相似覺)]이라 한다. 또 범부는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불각(不覺)이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bodhi:菩提) 그 자체의 본질을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둘로 나누기도 한다. 본각이란 본디의 깨달음 성품[각성(覺性)]을 일컫는 것으로, 근본진리의 참된 본체[眞本體]인 진여(眞如)의 이체(理體)를 말한다. 이 진여의 이체인 본디의 깨달음 성품은 누구나 모두 갖추고 있으나, 중생은 오랫동안 무명(無明)의 삶에 물들어 무지와 욕망의 노예가 돼 어둠[迷惑] 속에 헤매고 있어 모르고 있다. 이러한 진실을 알고 이성의 본체를 비로소 깨닫는 것을 시각(始覺)이라고 한다.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이 본각이며, 시각은 수행을 통해 비로소 얻어지는 깨달음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을 이각(二覺)이라 하고, 여기에 구경각(究竟覺)을 더해 삼각(三覺)이라 하며, 이 세 가지에 다시 앞의 상사각과 수분각을 합쳐 오각(五覺)이라 한다.

    둘째는 산스크리트로 ‘vitarka’의 구역(舊譯)으로 각관(覺觀:신역은 尋伺)의 앞부분인 각(覺:신역은 尋)을 이른다. 당나라 현장(玄奘) 이후로 심(尋)이라 번역하고 그 이전에 각이라 번역했던 이 비타르카(vitarka)는 선정의 마음[定心]을 방해하는 마음[心相] 중에서 거친 정신작용을 말한다.       

    이와 같이 범어로 ‘vitarka’인 각(覺)을 현장(玄奘) 스님은 심(尋)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심사(尋伺)’에서 심(尋)은 거칠고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이며, 얕은 사유를 말하고, 사(伺)는 자세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 깊은 사유를 말한다고 했다. 이상의 내용으로 한 각(覺)을 다시 정리하면,

    첫째, 몇 가지 용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보리(菩提)의 신역(新譯)인 각(覺)으로, 사물의 도리를 분명히 아는 것.

      • 미(迷)함을 떠나 진리실상을 증득하는 것.

      • 성불(成佛)의 경지.

      • 불과(佛果)를 얻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승불교에서는 불행의 원인을 번뇌라 했는데, 번뇌를 끊어버리고 삼혹(惑ㆍ業ㆍ苦)을 끊은 경지를 각(覺)이라고 했다. 그리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내세우는 대승불교의 <법화경> 등에서는, 번뇌를 끊지 않아도 각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둘째, 비타르카(Vitarka)를 각(覺) · 심(尋)이라고 번역한다.

관(觀)이 대상의 정밀한 관찰인데 비해, 대상의 대강만을 식별하는 마음작용을 각(覺)이라고 한다.

    셋째,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각(覺)으로, 아뢰야식의 본체, 곧 진여(眞如)ㆍ불(佛)의 이체(理體)를 말하는데, 불(佛)의 삼신(三身)으로 말하면 법신에 해당하는 것을 각이라고 했다.

이상과 같이 각(覺)은 간단히 말하면, 깨달음을 의미하지만, 그 쓰임의 용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각관(覺觀)---각관은 사물을 지각함으로써 생긴 표상을 비교하고 추상하고 총괄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각관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큰 생각과, 미세한 관찰을 말한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거기서 분별하고 느끼고 아는 것을 각관(覺觀)이라고 한다. 들어서 느끼고, 알고, 거기서 판단하는 것이다.

    ‘각(覺)’은 사물을 미루어 짐작하는 마음의 작용 중에서 비교적 엉성한 작용을 말하고, ‘관(觀)’은 각보다는 조금 더 자세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작용을 말한다. 이 둘은 모두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한다.

    현장(玄奘) 이후 유식(唯識)에서는 이를 심(尋, 거칠게 관찰함)과 사(伺, 자세히 살핌)로 번역했다. 각(覺)은 산스크리트어로 vitarka로서 현장은 사(尋)로 번역했으며, 언어로 개념화하고 서술하는 단계의 인식양상이다. 그리고 현장은 관(觀)을 사(伺)로 번역했으며, 언어로 서술되기 이전의 상념(想念) 단계를 말한다. 따라서 각관(覺觀)은 대상을 파악함에 있어서 언설로써 개념화하지 못하고 의식 속에 형상화하거나, 언설의 작용에 의해 개념화해서 객체화하는 작용으로서 이것에 의해 대상을 정립하므로 희론(戱論)이 이루어진다.

    <대지도론>「초품중시바라밀」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수행자에게 이 각관(覺觀)이 좋은 법으로 생각되나, 실제로는 선정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마음에서 그것을 여의기 위해 말하기를 ‘이 각관이 선정을 요동시킨다’고 한다. 비유하면 맑은 물에 파도가 치면 비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 몹시 피로한 사람이 쉴 틈을 얻어 자려고 할 때 곁의 사람이 부르면 갖가지로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연으로 각관을 꾸짖어 없애면 속으로 청정해지고 기쁘고 즐거워서 제2선(禪)에 들어간다.”고 했다.

    다음은 <육묘법문(六妙法門)>에 나오는 말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숨을 헤아릴 때를 맞이해 세심하게 훌륭한 솜씨로 마음을 제약해 헤아리는 법문과 숨에 연유해 미세한 각관(覺觀: 선정의 장애가 되는 마음의 작용)도 일어날 수 없게 하면, 찰나간에도 다른 생각이나 분별심이 생기지 아니한다. 이것은 헤아리는 가운데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묘문(止門)이 성취된 것을 뜻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말이다.

    욕심의 원인을 보건대, “진실로 그러합니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께 그 이치를 듣고 의심 그물이 없어졌습니다.” 제석은 큰 기쁨이 생겼다. 그리하여 다시 다른 이치를 여쭈었다.

    “욕심은 무슨 인(因)으로 생기고 무슨 연(緣)으로 자라며,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심은 각(覺)으로 인해 생기고, 각관(覺觀)으로 반연해 자란다. 각(覺)이 있으면 욕심이 있고, 각관(覺觀)이 없으면 욕심은 곧 사라지느니라.”

    <대지도론>에서 말했다. “마음을 거두면 말이 없을 것이요, 마음이 흐트러지면 말이 있을 것이다. 설법은 각관(覺觀)에서 나오고, 각관이란 거친 일이다. 부처님에게 이런 거친 일은 없을 것이다.”

            * 각(覺) ― 사념(생각)의 시작

            * 관(觀) ― 사념(생각)의 이어짐

   

*각덕(覺德)---신라 진흥왕 무렵의 승려. 성품이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났으며, 법을 구하러 중국 양(梁)나라에 건너갔다. 이것이 신라 승려로서 중국에 가서 법을 구한 최초의 일이다. 그리고 진흥왕 10년(549) 양나라 사신과 함께 부처님 사리를 가지고 귀국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부처님 사리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때 임금은 백관으로 하여금 예의를 갖추고 흥륜사(興輪寺) 앞길까지 나가서 그를 맞이하게 했다고 전한다.

    

*각천(覺天)---본명은 불타데바(佛陀提婆, Buddhadeva)이고, 발타제바(勃駝提婆)라고도 한다. 각천은 AD 1세기경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에 속했던 학승으로, 법구(法救, Dharmatrata), 묘음(妙音, Ghosa), 세우(世友, Vasumitra)와 더불어 바사 4대논사(婆沙四大論師)의 한 사람이다.

        ※바사(婆沙)---비바사(毘婆沙)의 준말. 비바사는 산스크리트어 vibhāṣā의 음사로서 각종 불경의 주석(註釋) 혹은 주석서(註釋書)를 말함.

         

*각행원만(覺行圓滿)---<법화경>에 나오는 말이다. 각행원만이란, 깨달은 것과 행하는 것이 원만하게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남을 위하는 일이 되고, 남을 도와주고 있는 일이 어느 사이에 자기를 위하는 일이 돼, 자기와 남이 아주 원만하게 ‘큰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 모든 사람에게 합장해 예배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삶을 산 결과로서 일생을 마치게 됐을 때, <법화경>의 가르침이 자기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그저 읽기만 하고 있는 동안 그것은 진정한 <법화경>이라 할 수 없고, 남을 위해 노력하고 또 자기 자신도 일심으로 수행해 자기와 남의 구별이 없으면, 그 때 자기의 마음 가운데 “아 이것이 <법화경>이로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그 때부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심이 샘솟아 난다.---→삼각(三覺)② 참조. 

           

*각황(覺皇)---깨달음의 황제, 곧 부처님을 가리킴. 각왕(覺王)이라고도 한다.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이름이 바로 이에 연유하고 있다.   

      

*간경(看經)---간경(看經)은 경을 본다는 의미이다. 그냥 눈으로 스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깊이 꿰뚫어 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읽는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을 뒤돌아보며 부처님처럼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 때문에 간경은 수행으로 자리 잡는다.

   ‘경을 읽다’라는 말엔 경을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읽다[풍경(諷經)], 승당 불전 등에서 경을 송독(誦讀)하다 등의 뜻이었으나 뒤에는 소리 내어 경전을 읽는 독경(讀經)을 포함해서 경전을 연구하기 위해 읽는 것도 다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경전 말씀과 의미를 되새기면서 쓴다고 해서 사경(寫經)하는 것도 간경 범주에 들어갔고, 결국 불경을 공부하는 모든 것을 간경이라 하게 됐다.

  강원에서 승려들이 간경, 즉 경전을 공부할 때는, 배우는 단계와 읽는 단계, 그리고 보는 단계의 구별이 있다. 그리고 보는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자득(自得)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보는 단계’란 정신을 집중해 직관하는 수행실천단계, 자기 마음을 비추어보는 단계를 말한다.

   불자라면 부처님 가르침을 바로 알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통해 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교리를 공부하기 위해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는 경전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 그 뜻을 이해하면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를 간경이라 한다. 자구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본성을 볼 줄 알아야 산 공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지금 읽고 있는 이 설법이 과거 2500년 전에 인도에서 하신 설법이라고 여기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부처님께서 나의 입을 빌려 나의 귀에 설하고 계신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이렇게 몸과 눈과 입과 귀와 뜻과 법문이 일체가 돼 경전을 읽을 때에 비로소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불자들이 경전을 읽는데 그 방법과 목적을 잘못 이해해 주술화 되고 신비화된 가피력 중심의 독송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승이나 인도자도 없이 혼자 속사포처럼 읽어 내려가는 독송이 과연 법을 깨닫고 해탈을 성취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스님이나 법사, 그리고 신도가 함께 돌아볼 일이다.

   경전 읽을 때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을 음미하고, 이해하면서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가야 한다. 경전은 삼보 가운데 법보에 해당하는 귀중하고 성스러운 의지처이다. 경전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면 독송을 제아무리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경전 한 자 한 자의 뜻을 깊이 음미하고 이해하되 자신의 마음이 관조 되도록 읽어야 하겠다.

    

*간경도감(刊經都監)---조선 세조 7년(1461년)에 불교경전을 번역출판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 신미(信眉), 수미(守眉), 학조(學祖) 등 승려와 김수온(金守溫), 한계희(韓繼禧), 강희맹(姜希孟) 등 학자가 실무를 맡았다. 특히 이때 한글로 번역한 불경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간다라(乾陀羅, Gandhāra)---지금의 인도 서북지방,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지역으로서 간다라미술이 번창했던 곳이다. 간다라(Gandhāra)의 중심지는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의 페샤와르(Peshawar)지역이었다.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Gandhari族)이 사는 땅이란 말인데, 산스크리트어로 향기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 지배국 16개국에 거론되기도 했다가 아소카왕의 마우리아왕조를 거쳐, 쿠샨제국에 의해 간다라가 정복됐다. 그리고 1~5세기에 걸쳐 간다라는 쿠샨제국 왕들의 비호 아래 최정점에 이른다.

   간다라의 수도는 푸쉬칼라바티(Pushkalavati-지금의 차르사다)였다가 카니시카왕(Kanishka) 때 페샤와르로 옮겼다.

    • 이 지역은 BC 6세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변경의 한 주였고,

    • BC 4세기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를 무너뜨리고 이곳을 거쳐 펀잡으로 진출했다.

    • BC 3세기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268 BC. 즉위)의 마우리야 제국의 변경이기도 했고,

    • BC 2세기 무렵 인도-그리스 왕국인 박트리아의 도시가 건설됐고,

    • AD 1세기엔 월지족의 쿠샨제국에 속해 차르사다를 수도로 했다가, 카니시카왕(128∼153년 재위) 시대에 푸르샤푸르(페샤와르)로 옮겼다.

   AD 2세기경 쿠샨왕조(대월지국/大月氏國) 카니시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제4차 불전결집을 주도했던 협(脇, Parsva/파르스바) 존자 등이 간다라 출신이다.

   이 지역은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근거지로서 유부의 유명한 논사로서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을 지은 법승(法勝, Dharmaśri, AD 3~4세기),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의 저자 법구(法救, Dharmatrāta) 등이 이 고장 출신이다.

   훗날 유식불교를 발전시킨 무착(無着), 세친(世親), 중현(衆賢)도 이 곳 출신이다. 따라서 대승불교도 간다라지방을 중심으로 흥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타카(Jataka, 本生經)>에는 현재 파카스탄 라왈핀디 부근의 지명을 탁실라(Taxila)라 했는데, 이곳이 한때 간다라 왕국의 수도였고, 학문의 중심지로 언급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간다라 불교와 불교 미술이 퍼져 있던 곳을 넓은 의미의 간다라라는 뜻, ‘Greater Gandara’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소카왕은 다르마, 즉 정법에 의한 삶을 강조하는 칙령을 제국 곳곳에 돌에 새겨 세웠는데, 페샤와르 지역의 비석엔 이 지역 문자인 카로슈티 문자(Kharoṣṭhī script)를 썼다. 이 지방 방언을 간다리어라고 부르고, 이 지역에서만 특별히 쓴 문자를 카로슈티 문자라 했다. 이 시기는 인도 역사뿐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이때 인도인들이 비로소 문자를 쓰게 됐다. 인도에는 오랜 종교 문화 전통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이 문자를 쓰게 된 것은 인더스 문명기를 제외하면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이 비석에 새기게 한 문자가 가장 오랜 유물이다. 이때 두 가지 문자가 나오는데, 하나는 인도 본토에서 쓰던 브라흐미라는 문자이다. 다른 하나는 간다라에서 쓰던 카로슈티 문자이다. 인도 전역에서 브라흐미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간다라만 독자적인 문자를 갖고 있었다. 카로슈티 문자는 아마 페르시아 제국에서 쓰던 아람 문자를 기원전 4세기쯤 변형해서 만든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간다리어(Gandhari語)에 카로슈티 문자로 된 불경 고전이 가끔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간다라 불교의 중요성은 불교가 인도 본토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전파되는데 교량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관관계에서 새롭게 발견된 간다라에서 발견된 경전과 몇몇 초기에 번역된 중국 불전들 사이에 보이는 유사성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대영 박물관 콜렉션에 포함돼 있는 <상기티수타(衆集經, 빠알리어 Saṁgīti Sutta)>의 간다라 사본은 한역의 <장아함>과 매우 밀접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종류의 발견들은 간다라 지방의 불교가 인도와 동아시아 불교를 연결 지었다는 사실을 확고히 해주는 것들이다. 

   특히 간다라는 그리고 1~5세기에 걸쳐 쿠샨 제국 왕들의 비호 아래 전성시를 누렸으나, 1001년 마흐무드 오브 가즈니(Mahmud of Ghazni)가 간다라를 정복한 뒤 더 이상 간다라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게 됐다. 사람과 국가가 소멸하듯, 지명과 국명 같은 명칭도 사라지거나 대체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간다리어(Gandhari語) 참조.

 

    

*간다라(Gandhāra)미술---간다라는 인도 서북지방, 지금의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쳐 있는 지방으로서, 지금의 페샤와르(Peshawar) 지방을 중심으로 했다.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Gandhari族)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이 지역의 특별한 방언을 간다리어라 부르고, 카로슈티라는 문자를 썼다. 간다라미술은 기원 전후부터 4~5세기 동안 간다라지방에 유행한 미술이다.

    기원후 5세기경이 되면 이 지역의 간다리어, 카로슈티라는 문자, 간다라 미술양식이 다 자취를 감춘다. 대신 인도 본토에서 흥기한 고전 산스크리트어, 인도 특유의 미술양식이 이 지역으로 올라온다. 헤게모니 경쟁에서 서북 인도가 패하고, 드디어 갠지스 강 중류의 인도가 승리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도문명을 형성하게 된다.

    간다라미술의 특징은 헬레니즘양식이라 일컫는 그리스 ‧ 로마 풍 조각위주 불교미술을 일컫는다. 동서 문화교류에 의해 생겨난 서방요소가 짙은 미술로서 전통적인 인도미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당시 로마세계에서 유행헸던 헬레니즘미술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해 그 당시 서방 공장(工匠)도 들어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하여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불상(佛像)이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는 보리수 ‧ 스투파(탑) ‧ 법륜(法輪) ‧ 보좌(寶座) 등으로 불교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었으나 간다라미술부터 인간적인 모습의 불상이 조각되기 시작했다. 간다라불상에서 특이한 것은 머리카락이 고수머리가 아니고 물결모양의 장발이라는 점과 용모는 눈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것이 마치 서양 사람과 같다는 점이다. 또 얼굴의 생김새가 인간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점, 착의(着衣)의 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그 모양이 자연스러워 형식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즉, 간다라불상 표현은 헬레니즘양식의 자연주의 ‧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간다리어(Gandhari語)---간다라(Gandhara) 미술로 유명한 간다라는 곳은 인도 서북지방, 지금의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쳐 있는 지방으, 이 지역이 쿠샨제국(대월지국) 지배지역이기도 했다.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Gandhari族)이 사는 땅이란 뜻이고, 이 간다리족의 언어, 즉 간다라지방의 언어가 빠알리어의 자매어격인 간다리어이다. 그러니까 간다리어(Gandhari)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후 4세기까지 간다라 지방(현재의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 지역)에서 쓰던 카로슈티(Kharosthi) 문자로 쓴 간다리족 언어라는 말이다. 간다리족은 인도 베다시대(BC 15세기~6세기)의 성전인 <리그베다>에 이미 언급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봐서, 인도 아리안족의 일파로 짐작된다.

    간다라는 인도의 서북관문으로서 BC 3세기 이래 인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는 했었지만 이곳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적 요소를 고루 지니고 있고, 다양한 민족문화가 섞여 있어서, 여러 면에서 독톡한 지역이었고, 기후 풍토도 인도와는 달랐다. 따라서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미술의 조형형식은 헬레니즘 양식을 적용시켜 일종의 혼합미술로 발전시켰다.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불교 관련 사본들은 대부분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이 사본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간다리어나,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된 불교 사본군을 일컫는 것으로, 여기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법구경>이라든가 <코뿔소경> 등도 수록돼 있다. 카로슈티문자는 현재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타클라마칸사막 남단의 호탄(和田-옛 고탄)지역에서도 사용했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다량의 새로운 필사본들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동의 결과로 생각된다. 이 새로운 사본들은 20세기 초에 발견된 사본들보다 훨씬 오래된 사본들이 많고 그 분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불교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사본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 불교의 전파나 불전 번역의 역사가 다시 이해되고 있다.

   간다리어에 대한 정보의 수집이 상당히 진척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지역의 불교가 원래 어느 정도의 규모였으며,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문헌이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간다라 불교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사본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우리는 간다라지방의 불교에 서서히 근접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리차드 솔로몬 교수는 1970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동양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1975년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산스크리트어와 특히 간다라에서 출토된 카로슈티 비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솔로몬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간다리어로 된 수많은 불전 사본과 그 단편들은 단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간다리어 불장은 원래는 삼장을 두루 갖춘 완전한 형태의 경전군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솔로몬 교수는 이 지역이 AD 1~3세기경, 인도 불교인들의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지금 진행 중인 사본 연구를 통해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언어이자, 빠알리어의 자매어격인 간다리어에 대한 이해가 크게 향상됐으며, 그는 그간 알려져 있지 않던 이 언어가 고대 인도불교에서 사용된 중요한 언어적 표현 수단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다고 역설한다. 솔로몬 교수는 또한 대승 불교의 기원도 간다라 지방에서 시작됐다고 확신한다. <현겁경(賢劫經)>은 기원후 2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간다리어로 보고된 최초의 대승경전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발견은 대승불교가 AD 2세기 무렵 간다라 지방에서 흥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비문들과 기타 자료들의 정보내용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간다라국(乾陀羅國, Gandhāra) 참조.

        ※현겁경(賢劫經)---현겁(賢劫)은 이 세상이 개벽해서 다시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현재의 세상을 이른다. 현겁에는 모두 1,000명의 어진 부처들이 출현하는데, 현겁경은 이 천불의 명칭과 경력을 소개한 경전이다, 산스크리트 원본은 전하지 않으며, 3세기 말 월지국 출신의 학승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

       

        

*간답바(빠알리어 gandhabbha)---산스크리트어로는 gandharva(건달바/乾達婆)라고 한다. 이에 대한 의미와 해석에는 여러 설이 있다.---→건달바(乾達婆), 업력(業力) 참조.

       

*간시궐(乾屍厥)---‘마른 똥 막대기’라는 말. 중국 송 대에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가 던진 화두(話頭)의 하나이다. 어느 스님이 운문에게 “부처란 무엇입니까[여하시불/如何是佛]?”라고 물었을 때, 운문 스님 답이 ‘간시궐[마른 똥 막대기]’이었다.

    흔히 우리는 진리는 성스럽다고만 생각한 나머지 성스러운 커튼에 가려 진실을 제대로 못 볼 수가 있다. ‘무슨 똥 막대기 같은 소리인가!’ 충격적인 이 말은 ‘진리는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고, 깨달음을 얻게 해 주기 위한 화두였다.

    “부처는 똥 막대기다. 그렇게 형편없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도 부처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나. 쇠막대기도, 금 막대기도 모두 똑같은 부처다. 그 공(空)한 바탕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온 세상이 부처다.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다.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운문 선사는 그렇게 똥과 금의 경계를 지웠다.…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면서도 자신의 지옥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 백성호

    옛날 중국의 해우소(解憂所)에는 기다란 팽이채처럼 나무를 깎아 만든 막대기를 세워놓고 화장지 대신에 빙글빙글 돌려 뒤처리를 했다. 또는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처럼 똥통을 휘젓는 막대기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운문 선사가 똥 막대기를 들고 화장실을 나서는 순간에 어떤 납자가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이기에 “응 그래 부처는 이거 똥 막대기야!”라고 했을 것 같다.

당나라 시대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스님이 제시한 [가불매조(呵佛罵祖) -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다] 화두와 비슷한 말이다.---→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가불매조(呵佛罵祖) 참조.

       

*간심간정(看心看淨)---‘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는 말이다. 그러나 육조 혜능(慧能, 638~713) 선사는 이것을 도(道)를 장애하는 인연으로 봤다. 즉,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하는 입장이다.

    신수(神秀) 계통의 중국 북종선(北宗禪)에서 간심간정(看心看淨)은 더러운 것이 있으면 여의고 깨끗함을 형성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간심과 간쟁을 분리해서 닦음을 세우고 있다. 반면 육조 스님의 정혜사상(定慧思想)은 번뇌 그대로 깨끗한 것이고, 깨끗한 그대로 번뇌임을 보라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등이다. 그래서 북종선의 간심간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경(壇經)>에서 말하고 있다.

    다음은 하택 신회(荷澤神會, 670~762) 선사가 준엄하게 북종선을 비판하는 계기가 되는 글이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보는 마음과 보이는 마음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이는 능소(能所)와 주객(主客)을 분리하고 이원화하는 함정이 있다. 능소(能 : 보는 마음, 所 : 보이는 마음)와 주객은 본래 공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혜능(慧能) 선사의 언하변오(言下便悟)와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선(禪)을 계승한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우선 점수법(漸修法)인 수인증과(修因證果)의 주장을 부정하고, 그 실천법인 좌선에 의한 간심간정의 수행도 불필요하다고 거부했다. 그리하여 마조는 언하변오(言下便悟) 돈오견성(頓悟見性)의 선에 알맞은 수행법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설법과 문답을 통해 스승이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가르침을 펴면, 제자는 그 가운데에서 기연(機緣)이 맞는 경우 돈오견성하게 되는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깨달음의 씨앗과 그 씨앗이 싹을 틔울 바탕이 되는 땅이 모두 당사자인 제자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고, 다만 스승의 설법과 문답을 통한 가르침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간접적 조건을 조성하는 빗물과 같은 것으로 보는 입장으로서, 수행이 씨앗이 돼 깨달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수인증과(修因證果)의 입장과는 다르다.---→언하변오(言下便悟), 수인증과(修因證果) 참조.

         ※언하변오(言下便悟)---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각 깨닫는 것.

     

*간심법문(看心法問)---제4조 도신(道信, 580~651) 대사 편 법문이다.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즉 마음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는 법문이다. 간심법문(看心法問)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적문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면서,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한다면[수일불이(守一不移)]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법문이다.

    헌데 간심법문에 관련된 일화가 흥미롭다. 도신선사가 쌍봉산에 사조사(四祖寺)를 세운 유래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새로운 절터를 찾는 도신에게 쌍봉산의 상서로운 기운은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하여 며칠씩 금식을 하며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그 사연을 물었다.

     “스님, 왜 여기서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십니까?”

     “가사 한 벌 놓을 만한 땅에 절을 짓고 싶습니다.”

     “가사 한 벌의 땅 정도쯤이야, 좋습니다. 내가 시주하겠습니다.” 도신이 던진 가사 한 벌을 덮을 땅이란 말이 놀랍게도 사방 십 리에 미치는 넓은 땅을 시주받게 됐다.

    마침내 사조 도신은 쌍봉산 자락에 사조사를 짓고 농토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불법을 전파해 크게 선종의 문을 열었는데, 한 때 사조사의 수행 대중이 5백 명에 이르렀다. 대사는 참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 선논일치(禪農一致) 를 주장했다. 요즘 말로 하면 생활선(生活禪)을 하셨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선사는 몸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하는 농선쌍수(農禪雙修)를 실천하기 위해 탁발에 의존하던 종래의 공양방식을 지양하고 사조사 주변의 농토를 개량해 자급자족하는 선풍을 확립했다.

    그렇게 해서 스님들의 건전한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켰고, 관(官)의 도움이나 백성들의 시주 없이 대중 살림이 가능해졌다. 대사는 한 승려가 먹을거리를 얻어 평생 굶주림을 면하려면 좌선을 근본으로 수행하되 15년은 노동을 병행해야만 된다고 했으며, 이는 훗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하신 백장(百丈懷海, 720~814) 선사의 가르침보다 백년이나 앞선 선지식의 지혜였다.

    도신 대사는 훗날 간화선 수행법으로 발전한,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즉 마음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는 간심법문(看心法問)을 폈다. 간심법문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면서,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한다면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법문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수일불이(守一不移)를 주장했다. 지킬 수(守), 하나 일(一), 아니 불(不), 옮길 이(移), 그래서 하나를 지켜서 옮겨가지 않는댜. 하나를 지켜서 절대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이다. 공정(空淨=空寂)한 눈으로 주의 깊게 일물(一物)을 지켜보고(看一物), 주야를 불문하고 힘을 다해 늘 움직이지 않는다(不動)는 말이다.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할 때는 그 하나를 지켜야 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정신을 가다듬어서 밤낮으로 노력해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수일불이(守一不移)이다. 하나를 지켜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 이 말이다. 마치 새의 발을 묶어놓고 날아가려고 하면 잡아당기고, 날아가려고 하면 다시 잡아당기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섭심(攝心)이라고 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즉 안정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종일토록 지켜보기를 그치지 않으면, 산란한 생각들이 끊어지고 마음이 저절로 정(定)에 들 것이라고 했다. 관세음보살을 하든지, 화두를 잡든지 수일불이(守一不移)해야 한다고 했다. 수일불이(守一不移)를 다른 말로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도 한다.---→도신(道信, 580~651), 심지법문(心地法門), 수심법문(守心法問) 참조.

      

*간탐심(慳貪心)---→육폐심(六蔽心) 참조.

         

*간택(揀擇)---<신심명(信心銘)>에서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할 때에 쓰인다. 분간(分揀)하여 고름, 가려내고 선택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쌀과 뉘가 섞여 있을 때, 돌이나 뉘를 가려내서 버리는 것이 간(揀)이고, 쌀을 취하는 것이 택(擇)이다. 그러니 간은 가려내 버리는 것이고, 택은 선택해서 갖는 것이다. 옛날 조정에서 왕비나 세자비를 뽑는 것을 간택이라 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와 같이 가려내고 선택함으로써 구분 짓는 것을 기피한다.---→‘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참조.

    

*간택(簡擇)---택(擇)은 결택(決擇)의 줄인 말인데, 여럿 중에서 골라내어 선택함의 뜻으로, 지혜 혹은 지혜의 작용을 말하는 한편,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시킨 상태, 해탈 ‧ 열반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지혜는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해서 정지(正智)라고도 하며 삼라만상의 진리를 바르게 가려내는 것이라고 해서 택법(擇法), 간택(簡擇)이라고도 칭한다. 그리고 여기서 지혜는 경험적 사실이나 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증득하는 성인의 간택(簡擇)하는 능력」으로서의 지혜를 말한다.

   

*간혜(乾慧)---건혜(乾慧)와 같은 말.---→건혜(乾慧) 참조.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고려시대 보조(普照) 국사 지눌(知訥)의 저서. 매우 논리적인 논서로 수행방법에 대한 글이다. 보조 선사는 오교(五敎) 중에서는 화엄원교(華嚴圓敎)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봤으며, 선 수행에서는 대혜선(大慧禪)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봤다. 즉, 보조 선사는 화엄의 성불론(成佛論)을 주장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화엄의 성불론이 구체적인 수행법의 제시라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있는 것으로 봤다. 그런 반면에 대혜의 간화선(看話禪)이 ‘화두참구’라는 수행법이므로 화엄의 약점을 상보(相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저술한 <간화결의론>은 수행법으로 간화선을 강조한 논서이다.

        ※대혜선(大慧禪)---중국 남송시대에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 의해 정립된 간화선법을 말한다.

  

*간화선(看話禪)---28대 조사인 달마(達磨) 대사가 중국에 전한 선(禪)은 순수한 인도의 관심선(觀心禪)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차츰 중국적인 것으로 면모를 바꾸면서 체계화돼 갔다. 달마 대사로부터 전승된 선(禪)이 6조 혜능(慧能) 대사 이후에는 여러 계파가 형성돼 9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5家 7宗이 생겨나 선풍(禪風)을 드날리게 됐다. 이 중에서 남송 이후 조동종(曹洞宗)에서 나온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 일명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가 널리 편 묵조선(黙照禪)과 임제종(臨濟宗)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가 확립한 간화선이 가장 대표적인 선풍이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간(看)하는 공부 방법이다.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것을 화두를 보는 선이라는 뜻으로 간화선이라 한다.

    즉, 간화선이란 우주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불교적으로 규명해 나가는데 있어서 화두(話頭)라는 주제를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참선법이다. “소승은 우리 마음의 흙탕물을 맑히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흙탕물은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 가라앉은 흙탕물은 이를테면 죽음 직전의 위기에 처하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소승과 달리 그 흙탕물을 흔들어 뿌리 채 뽑아버리는 것이 간화선이다.” - 수불스님

    이 간화선(看話禪)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본래 참선법에는 간화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默照禪) 전통도 있는데, 한국불교에서는 조동종보다는 임제종(臨濟宗) 기풍이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참선이라고 하면 간화선의 선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화돼 있다. 이러한 간화선이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에 의해 정립되기 이전에는 조사선(祖師禪)이 중국의 전통적인 참선법이었다.

    간화에서 ‘간(看)’은 주시하다, 참구(탐구)하다는 뜻이다. 이것저것 주변 상황에 한눈팔지 않고 ― 딴 생각하지 않고 목표한 것에 정신을 집중해서 주시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화(話)’는 화두를 말한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것은 무분별 직관적인 방법의 참선법으로, 현재 우리나라 선종 사찰에서 현행하는 대표적인 참선법이다.

    헌데 여기서 일컫는 화두(話頭)는 탐구해야 할 주제가 되는 언구, 즉 ‘말’이다. 그런데 말은 말이되 보통 말이 아니라, ‘말 이전의 말’이고, ‘말 밖의 말’을 의미하며, 주로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 말씀이나, 행동, 그리고 문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논리적으로 풀 수 없고, 생각이 끊어진 세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화두 참선은 그 참구하는 방법이 분별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무분별 직관적인 것으로, 염불기도, 간경, 보살행 등 다른 수행법보다 힘들지만 더 빠르고 깊이 들어가며, 지혜와 직관력이 돈발(頓發:문득 떠오름)된다고 해서 수행법의 으뜸으로 친다. 화두 참선법은 위빠사나나 사마타, 지관, 정혜를 닦는 최고의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으로 일구의 공안에 몰두하는데, 예를 들면, “개에게도 불성이 있나(狗子無佛性),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마 3근(麻三斤)… ” 등을 화두로 해서 마음에 의심 덩어리(疑團)을 일으켜서 참구해 의단을 깨뜨리는 것이다. 즉, 의단을 타파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법이 간화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종에서는 체계적이고 기본적 바탕 없이 최고의 경지인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를 목표로 하는 간화선 수행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간화선에 대한 대혜(大慧) 선사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간화선이란 수행 상에서 연구해야만 할 하나의 문제(화두)에 전신을 집중시켜,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절대의 진실에 눈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깨달음은 수행자가 스스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맥 상에 심오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깨달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모두 던져버리고, 마음을 공허하게 해서, 하나의 문제, 예컨대 ‘개에게도 불성이 있나(狗子無佛性)’와 그에 대한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의 대답[무(無)]처럼 화두 그 자체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열쇠이다.”

    그런데 이러한 간화선에도 병폐가 있어서 대혜 선사가 그것을 지적했다. 즉, 그 하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언구 가운데서 깨달음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언구는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오로지 정좌(靜坐)와 관심(觀心)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대혜 선사는 이 가운데 특히 후자를 묵조선(黙照禪)이라고 해서 엄격하게 비판했다.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서산 대사(西山大師)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가 참구하는 공안(公案)에 대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 마치 닭이 알을 안은 것과 같이 하고,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어머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을 것이다. 닭이 알을 안을 때는 더운 기운이 지속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 굶주릴 때 밥 생각하는 것과 목마를 때 물 생각하는 것이나, 어린애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고,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한 것이다. 참선하는 데에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

   그리고 다음은 한국 현대불교의 대선사이며, 석가모니 이래 제77대 조사인 전강(田岡, 1898~1974) 스님의 가르침이다.

    “화두를 잡고 있으면 처음에는 사나운 소나 말처럼 마음대로 달아나고 망상 잡념이 생기고 또 해태심까지 생긴다. 그러나 퇴전하지 말고 계속하고 또 계속해 용맹정진을 다하면 반드시 화두라는 의심 뭉치가 가슴에 꽉 차게 된다. 즉, 늙은 쥐가 쌀 창고를 파고 또 파면 반드시 그것을 뚫고 쌀을 먹게 되는 것과 같이 참선법도 역시 이와 같다. 결심을 하고 또 계속하면 번뇌 망상의 물결 파도가 아무리 세지만 화두를 찾는 힘에는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하는 대중들은 해태심을 내지 말고 대신심(大信心), 대분지(大憤志), 대의정(大疑情)으로 화두만 잡고 매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언하대오(言下大悟)하리라.”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보조 국사(普照國師)가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제창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 보조 국사를 비롯한 여말(麗末) 태고보우 국사에 의해서 제창되고 실수됐던 선법(看話禪)이 조선시대까지도 면면히 계승돼 오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정혜(定慧)니 지관(止觀)이니 하는 근본불교의 명상법과 간화선법이 침체하게 된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러서 경허(鏡虛) 선사가 간화선법으로 견성한 다음, 다시 참선법이 유행하게 돼 오늘날, 간화선법이 한국불교의 주류수행 가풍이 됐다.---→공안(公案), 화두(話頭), ‘공안(公案)과 화두(話頭)의 차이’, 대혜선(大慧禪), ‘재가자(在家者)와 수행’ 참조. 

       

*간화선(看話禪)의 특성---무비 스님은 선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말했다.

     <선(禪)의 7가지 정신>

     1. 간소(簡素) 2. 탈속(脫俗) 3. 자연(自然) 4. 유현(幽玄)

     5. 고고(枯高) 6. 정적(靜寂) 7. 변화(變化)

    이처럼 선은 소박하고 간단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세속적인 것에서 멀리 떠나 고요한 분위기에서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런 것이며, 동시에 변화무쌍한 것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화두를 든다하면 머리를 싸매고 의심하며 용맹정진 하는 것을 연상한다. 그런 화두에 비밀이 있다고 하니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흔히 화두의 비밀을 설명하는데, 양귀비(楊貴妃)와 안록산(安祿山)의 이야기를 들어 설명한다. 이는 대혜(大慧宗杲, 1089~1163) 선사의 <서장(書狀)>에도 있는 내용이고, 시(詩)로써 설명되고 있는데, ‘소염시(小艶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단풍광화불성(一段風光畵不成)

      동방심처설수정(洞房深處說愁情)

      빈호소옥원무사(頻呼小玉元無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

      아름다운 맵시,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그리지 못하리니

깊고 깊은 규방에서 애만 태운다.

      자주 자주 소옥을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이 없고

오직 님께 제 소리를 알리려는 뜻이라네.

    2010년 8월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라는 국제학술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미국의 버클리대 교수인 로버트 샤프는 간화선이 재가자를 위해 창안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샤프 교수는 “간화선은 대혜 선사가 편지글을 이용해서 불교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문인들을 위해 간소화된 선(禪)을 고안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바로 <서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서장>에서 대혜 스님의 상대로 등장하는 인물은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속에서 요즘말로 하면 장관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던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이 궁금한 사항에 대해 대혜 스님에게 묻고, 이에 관해 대혜 스님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것이 <서장>이다.

     이와 같이 당초 간화선은 재가자 ― 지식인들과 일부 비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양귀비와 안록산의 일화를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라 보인다. 또한 하버드대의 나타샤 헬러 박사도 샤프 교수와 같은 입장을 보였는데, 그녀는 “대혜 스님의 가르침은 재가불교의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간화선은 재가신자들의 요구에 맞도록 적응시킨 수행법이다.”라고 밝혔다.

    만일 간화선이 오로지 출가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소염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양귀비와 안록산의 불륜을 예로 들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오욕락(五慾樂) 등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고 은퇴한 재가자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하기 가장 쉬운 것이 아마도 양귀비와 안록산의 정사에 대한 이야기이었을 것이다.

    ‘소염시’에서 양귀비가 안록산과 밀회를 즐기기 위해 부른 말은 “소옥아”였다. 여기서 소옥은 하녀의 이름이다. 그래서 양귀비가 하녀를 “소옥아”하고 부르자마자 “쿵”하고 담 뛰어 넘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화두 타파(話頭打破)라는 것이다.

    양귀비가 하녀 이름인 ‘소옥’을 불렀는데, 왜 안록산이 담을 뛰어 넘었을까. 이에 대해 무비 스님은 설명하기를, 양귀비가 “소옥아”하면서 자기표현을 하자 이를 알아챈 안록산이 담을 뛰어 넘음으로써 양귀비의 의사표현에 답했다는 것이다. 화두를 타파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담 밖에서 언제 부를까 하고 대기하고 있던 안록산이 “소옥아”하고 불렀을 때 “왜 소옥아 하고 불렀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못 읽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의심이 바로 화두(話頭)이다.

    하지만 이는 바른 방법이 못 된다고 했다. “소옥아”하고 부르면 두 말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 선인데, “왜 소옥이라고 했을까?”라고 의심하면, 이는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왜 꽃을 들었을까?”하고 의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었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이에 대해 “왜?”라고 하면 이는 선방에서 참선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안거 철에 수천 명의 스님들이 선방에서 보낸다. 주로 화두를 들고 밤낮으로 용맹정진 하는데,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默動靜)’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화두를 타파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데, 1~2년도 아니고 10년, 20년, 30년, 심지어 평생을 선방에서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무비 스님에 따르면 화두는 3일이면 타파할 수 있다고 한다. 길어야 7일, 좀 ‘둔한 자’는 ‘한 철(3개월)’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두를 타파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 좋은 예가 임제(臨濟) 스님이 황벽(黃蘗) 스님에게 몽둥이세례를 당한 것이고 했다.

    임제 스님이 어느 날 자신의 스승인 황벽 스님에게 “불교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봤다고 한다. 스승의 문하에 들어 온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큰마음 먹고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물어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스승인 황벽 스님은 다짜고짜 주장자로 패기 시작했다. 무려 20대를 맞은 것이다. 더구나 황벽 스님은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생긴 모습도 우락부락 했다. 그래도 임제 스님이 반응을 하지 못하자 또 두들겨 맞았는데, 세 차례나 맞았다. 그래서 한 차례에 20방씩 모두 60방을 맞은 것이다.

    이처럼 영문도 모르고 맞은 임제 스님은 “왜 때렸을까?” 하고 몇 달을 고민하다가 ‘대우 스님’이라는 분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대우 스님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임제 스님은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았는데 바로 이것이 스승인 황벽이 자신을 때린 이유에 대한 답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스승은 제자에게 반지성적이고, 언어와 문자를 거부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이에 대해 무비 스님은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설명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몽둥이질(棒)이나 손가락 들어올리기[수지(竪指)], 꽃을 들어 보이기[염화(拈華)]와 같은 표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왜 몽둥이질을 했을까?”라든가, “왜 손가락을 들어 올렸을까?” 또는 “왜 꽃을 들어 올렸을까?”라고 온갖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사량 분별해 밝히려 하다 보면 8만4천리로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둥이질, 손가락, 꽃 등은 그 것 자체로 봐야지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차선책’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차선책으로 얻어지는 것들은, “소옥아”하고 불렀을 때,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담 바깥에서 “왜 소옥이라고 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선책인데, 바로 이것이 화두이고 참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선책으로서 얻어지는 것도 많다고 한다. 이를 무비 스님은 정신에 근육이 생기고, 뼈가 생기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화두를 들어 참선하는 수행자들은 대담해진다고 한다. 평소 얌전하고 자비롭게 보이던 사람들도 화두를 들면 용감해지고 대범해져서 본심이 드러나게 되는데, 호탕하게 웃는다든가 불같이 화를 낸다든가 하는 정신적인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는 스님은 화두를 들고 있는 스님들에 대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또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나면 단칼에 베어 버릴 듯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깨달음을 위해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선책은 우리의 그릇이 거기까지이고, 우리의 근기가 거기까지이기 때문에 선방에 앉아서 참선하는 것으로 무비 스님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진짜 화두 타파는 어떤 것일까.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 화두라 한다.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에 대해 몽둥이질을 한 것도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이해해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는 액션을 취한 것도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 위해 화두라는 방편을 사용하는데, 몽둥이질을 했다면 “왜 몽둥이질을 했는가”라고 사량 분별하면 이는 차선책으로서 참선이 되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 되받아 쳐 알맞게 ‘맞장구’를 쳐 준다면 이는 현상이 있는 그대로임을 알아 화두가 타파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였을 때 가섭처럼 웃으면 되는 것이다. 그 너머에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꽃을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생각이 멈추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1억짜리 수표를 잃어버렸을 때 하 기가 막혀 더 이상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양귀비기거 “소옥아”하고 불렀을 때 담 넘어가는 “쿵”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쿵’하는 소리도 나지 않고, 왜 때렸을까 하고 온갖 알음알이와 지식을 동원해 사량 분별하면 할수록 진리와 멀어지기 때문에 곧바로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화두 타파이고, 이것이 바로 ‘화두의 비밀’이라고 한다.

   

*갈마(羯磨, karma)---산스크리트어 카르마(karma)의 음역어로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업(業)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불교교단내부의 의식절차인 작법(作法)을 말한다.

    헌데 단지 ‘갈마’라고만 음역하는 경우에는 업을 의미하는 일이 거의 없고, 대개 불교수행자가 계(戒)를 받거나 참회하거나 할 때의 작법을 말한다. 이 작법에 관계하는 승려를 ‘갈마아사리’라고 한다. 나쁜 버릇이 있거나 잘못을 저지른 비구에게 일정 기간 동안 덕이 높은 비구의 지도를 받게 하는 처분 역시 갈마(羯磨)이다. 이때는 벌칙을 가하는 행위, 처분(處分)을 뜻한다. 예컨대, 비구가 재가인(在家人)에게 그릇된 짓을 했을 때, 승단에서 그 비구에게 사과하도록 명령하는 처분이 갈마이다.

      

*갈마사(羯磨師)---갈마는 불교의식을 말하고[작법(作法)], 아사리는 불법의 스승을 일컫는데, 불교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수계할 때)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스승을 말한다. 수계(授戒)의 3사(師) 중 한 사람으로서, 갈마계사(羯磨戒師) 또는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수계아사리(授戒阿闍梨)라고도 한다. 수계할 때 갈마문(羯磨文)을 읽고, 작법(作法) 등을 주도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계단(戒壇)에서 계를 받는 이에게 지침이 되는 스님을 뜻하며, 소승계(小乘戒)에서는 학덕과 법랍을 갖춘 스님으로 선정, 원돈교(圓頓敎)에서는 문수를 갈마아사리로 한다.

        ※화엄의 교학은 원만무애(圓滿無碍)한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원돈교(圓頓敎)라고도 하고, 법계원융(法界圓融)의 진리라고 하여 원융종(圓融宗)이라고도 한다.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karma-acarya)---→갈마사(羯磨師) 참조.

      

*갈애(渴愛, 빠알리어 kama-tanha)---초기불교 부처님의 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심한 탐욕을 갈애라 했다. 즉, 목이 몹시 말라 갈증이 심할 때 간절히 물을 찾듯 범부가 5욕(欲)에 탐착해서 갈망함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4성제(四聖諦)에서 고(苦) 발생 원인을 갈애라 했다. 갈애를 일으키는 행을 하므로 고(苦)가 생긴다. 근본적으로 갈애는 무명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갈애는 사성제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또한 연기ㆍ무아ㆍ공을 모르면 갈애가 생긴다. 이러한 갈애를 끊는 법은 8정도(八正道)를 닦는 것이다.

   ‘갈애(渴愛)’라 번역한 딴하(taṇhā)는 √tṛṣ(목마르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문자적으로 타는 목마름이나 갈증을 뜻하며, 비유적으로 쓰여서 자극에 대한 갈망과 갈애, 채우지 못한 열망의 열병을 뜻한다. 즉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을 때의 강렬한 욕구와 유사하게 감각대상들을 애타게 구하는 것을 그 특성으로 하며, 끊임없는 재생을 일으키는 마음 상태이다.

   12연기에서는 여섯 감각기능(六根, indriya)들이 외부의 감각대상(六境, visaya)들과 맞부딪쳐 감각접촉(觸, phassa)이 일어나고, 이러한 감각접촉에서 느낌(受, vedanā)이 일어나고 이러한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갈애는 다시 집착(取, upādāna)을 불러일으킨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처음으로 선포하실 때, 괴로움의 근원인 갈애는 성스러운 도(道)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출세간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하셨다. 마치 육체적인 갈증이 일어날 때 이 갈증을 채워주고, 없애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듯이, 정신적인 갈애도 완전히 뿌리 뽑고, 없애지 않으면 열반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러한 갈애는 중생을 윤회(saṃsāra)의 사슬에 묶어놓아 계속해서 나고 죽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은 아라한과, 즉 열반을 얻어 갈애가 종식될 때까지 반복된다. 갈애는 일어나는 형태에 따라,

    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kāma-taṇhā),

    ②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vibha-taṇhā),

    ③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ṇhā)의 셋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눈, 귀 등의 일어나는 장소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18가지가 되고 안팎의 장소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18가지가 되고 안팎의 각각으로 36가지가 되고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모두 108가지가 된다. 연기의 구성요소들 가운데서 생사유전(生死流轉)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갈애이다. 그래서 사성제(四聖諦)에서도 고(苦)의 원인을 밝히는 집성제(集聖諦)에서 갈애를 괴로움의 원인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실론섬 주해모음에서 

   중생은 갈애가 있는 한 끊임없이 끝없이 윤회한다고 한다. 갈애가 완전히 소멸할 때 윤회도 끝이 나며 윤회가 끝난 경지를 열반(무여열반, 반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윤회는 갈애가 소멸될 때 다하게 되며 이러한 갈애는 팔정도를 실천함으로 해서 완전히 소멸된다고 했다.

   

*갈애(渴愛)의 소멸---초기경전 상윳따니까야의 <가르침의 수레바퀴에 대한 경(빠왓따나경/Dhammacakkappavattana sutta)>에는,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갈애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포기하고 버려서 집착 없이 해탈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소멸시키는 것이 해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 갈애를 소멸시켜야 하는가. 이에 대해 <초전법륜경>에 아래와 같이 멸성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무명을 연유로 형성이 이루어지고,

      형성을 연유로 의식이 이루어지며, 의식을 연유로 명색이 이루어지고,

      명색을 연유로 육입이 이루어지며, 육입을 연유로 접촉이 이루어지고,

      접촉을 연유로 감수가 이루어지며, 감수를 연유로 갈애가 이루어지고,

      갈애를 연유로 취착이 이루어지며, 취착을 연유로 존재가 이루어지고,

      존재를 연유로 태어남이 이루어지며, 태어남을 연유로 괴로움이 이루어지고,

      괴로움을 연유로 믿음이 이루어지며, 믿음을 연유로 만족이 이루어지고,

      만족을 연유로 희열이 이루어지며, 희열을 연유로 청정함이 이루어지고,

      청정함을 연유로 지복이 이루어지며, 지복을 연유로 삼매가 이루어지고,

      삼매를 연유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이루어지며,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연유로 싫어하여 떠남이 이루어지고,

      싫어하여 떠남을 연유로 갈애를 떠남이 이루어지며,

      갈애를 떠남을 연유로 해탈이 이루어지고,

해탈을 연유로 소멸에 관한 지혜가 이루어진다."』- 상윳따니까야 <우빠니사경- Upanisa sutta-연유의 경> - 전재성 역

     <우빠니사경>에서는 12연기의 순관을 말하면서 역관이 아닌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괴로움 다음에, “괴로움을 연유로 믿음이 이루어지며 …”하는 순이다. 이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믿음-만족-희열-청정함-지복-삼매-있는 그대로 알고 봄-싫어해 떠남-갈애를 떠남-해탈-‘소멸에 관한 지혜’ 순으로 돼 있다.

    ‘싫어해 떠남’은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즉 무상ㆍ고ㆍ무아로 봤을 때 이루어지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갈애 때문이다. 싫어하고 떠나야 될 대상, 염오의 대상을 갈애로 봤다. 이런 갈애가 강화되면 집착(執着)으로 발전한다.

    한 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아 집착 중에 가장 큰 집착이 ‘오온에 대한 집착’이다. 이를 한자어로 ‘오취온(五取蘊)’이라 한다. 그래서 <아닛짜경>, <둑카경>, <아낫따경>에서 오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 집착은 다름 아닌 갈애의 또 다른 이름이다. 12연기에서 집착은 갈애의 다음 단계이다. 그런 집착은 일반적으로 ‘갈애가 더욱 더 강화 된 집착’이라 한다. 집착을 팔리어로 ‘우빠다나(upadana)’라 하는데, 이는 한 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온에 대한 집착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의 몸, 나의 마음이라 해서 집착한다. 이와 같은 집착이 일어나는 이유는 갈애 때문이다.

    이런 갈애로 인해 존재가 윤회하게 되는데, 이런 갈애를 소멸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갈애가 발생되기 이전 단계에서 조치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느낌’이다.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근본요인이 갈애라 했다.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요인이 무명과 갈애이지만, 무명은 과거의 원인이고, 갈애는 미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초전법륜경>에서도 갈애의 소멸이 괴로움의 소멸이고 동시에 윤회의 종식이 된다고 했다.

    느낌의 단계를 지나 갈애로 발전하게 되면 이미 늦는다. 더구나 갈애가 더욱 더 강화 돼 집착이 되면 빼도 박도 못하게 돼 그대로 새로운 태어남(업유)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몸과 마음 자체를 집착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오취온이라 한다. 따라서 느낌 단계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느낌에 대해 “알아차려라!”라고 한다.

   

*감로(甘露)---천신(天神)의 음료,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이라는 뜻. 불교경전에서는 주로 부처님교법이 중생을 잘 제도하는 데에 비유하는 예로 쓰인다. 즉 부처님설법을 감로라 한다.

    

*감로탱화(甘露幀畵)---망자를 구제하기 위한 탱화를 일컫는다. 조상숭배와 영혼숭배신앙이 가미돼 묘사한 불화로서 우란분탱화(盂蘭盆幀畫)라고도 한다.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죽은 어머니 영혼을 아귀의 세계로부터 구하는 것을 주제로 한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사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 즉, 감로탱화는 우리나라의 강한 조상숭배의식과 결합돼 널리 퍼졌던 우란분경신앙을 배경으로 해서, 지옥이나 아귀도에 빠진 가족 ‧ 친지들을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림으로써 그들이 고통을 여의고 극락에 왕생하는 전 과정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감응도교(感應道敎)---감응도교, 감동하면 이에 응한다는 뜻이다. 감동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님 은혜에 감동해 부처님의 거룩하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이에 응해 우리 마음에 커다란 힘을 주신다. 그것이 곧 감응이다. 예컨대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면 부모는 더욱 자식을 사랑한다. 내가 저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저 사람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처님 은혜에 감동해서 법신 부처님을 철통같이 믿는다면 그 믿음의 힘에 의해 부처님 힘이 우리 몸에 가해지고, 그러면 또 더욱 믿음이 깊어진다. 이러한 신앙정서를 감응도교라고 한다. 부처님 마음과 응(應)이 돼 감응도교(感應道敎)가 돼서 중생을 제도하게 되는 것이다.

 

    

*감인대(堪忍待)---감인대(堪忍待)란 견디고 참고 기다려하는 말이다. 우리는 일기일경(一機一境)에 너무 일비일희(一悲一喜)하며 산다. "사바세계는 견디고 참고 기다리며 살아야하는 세상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견뎌 내야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참아야하고, 절망 앞에서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며 살자는 말이다." 모든 수행은 고난과 분노를 견디고 참으며 때가 되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성취된다는 것이다. 비단 수행뿐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덜떨어진 사람일수록 금방 뜨거웠다 금방 차가워진다. 그 과보로 패가와 망신을 자초한다.

          ※일기일경(一機一境)---기(機)는 안에 속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며, 경(境)은 밖을 살피는 경계를 말한다. 부처님이 연꽃을 든 것은 경이 되고, 가섭이 웃는 것은 기가 된다. 다시 말하면, 기(機)는 심기(心機), 경(境)은 외경(外境)이라는 뜻으로서, 선사의 자유 자재한 마음작용이 미묘한 언동(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을 깜빡거리거나, 할/喝을 하는 것 등)이 돼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강거국(康居國)---강국(康國)이라고도 하는데, 당시는 소그디아(Sogdia)란 고대국가였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Samarkand) 지방과 동 투르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걸쳐있었던, 즉 실크로드 중심에 있었던 나라로서, 중국에서는 강국 혹은 강거국이라 불렀다. 불교가 성했으며, 강거국 출신 승려가 중국에 와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들이 중국에 올 경우, 성씨를 주로 강(康)씨로 했었다. 예, 강승개(康僧鎧), 강승회(康僧會).

   당나라시대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도 강거국 출신이고, 안록산(安祿山)도 소그드인이었다고 하며, 심지어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도 소그드, 즉 강국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소그드(Sogd) 문자는 아람문자(Aramaic language)에서 시작됐다. 소그드 문자는 자음 22자로 구성돼 있었고, 소그드 문자가 위구르 문자(回紇 文字: Uighur language), 몽골 문자, 만주 문자 등에 영향을 주었고, 우리 한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소그디아(Sogdia) 참조.

 

*강량야사(畺良耶舍, 산스크리트어 Kālayaśas, 383∼442)---그 이름을 중국식으로는 시칭(時稱)이라 했다. 서역 출신 승려로 성품이 강직하고 욕심이 적었으며, 여러 경전을 많이 열람해 3장(藏)에 통달했다. AD 424년 중국(劉宋)에 왔는데,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과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 을 한역했으며, 특히 선관(禪觀)에 밝아 참선(參禪)을 전수했다.

      

*강승개(康僧鎧, 산스크리트어 상가바르만/Samghavarman, AD 3세기)---강국(康國-강거국) 출신 승려. 승가발마(僧伽跋摩)라 소리번역하기도 한다. ‘강(康)’자는 강거국(康居國) 혹은 강국(康國) 출신이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인 252년 위(魏)나라 뤄양(洛陽)에 와서 중국 최초사찰로 일컬어지는 백마사(白馬寺)에서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등을 번역했다.

   

*강승회(康僧會, ? ~ 280)---강국(康國) 출신 승려로서 중국 삼국시대에 오(吳)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고, 역경승(譯經僧)으로 활약했다. <육도집경(六度集經)> 등을 한역했으며, <법경경주해(法鏡經注解)> 등 저서가 있다.

그는 교지(交趾:베트남 중부)를 거쳐 오나라로 와서 번역 사업에 종사했으나 그의 본뜻은 실천포교에 있었으며, 오주(吳主) 손권을 귀의시켜 강남에 처음으로 건초사(建初寺)를 건립한 것은 유명하다. 또 그는 지겸(支兼)과 더불어 범패에 뛰어났고, 미성(美聲)이었다고 한다.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법화경> ‘화성유품’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 원컨대 이와 같은 공덕이 일체에 널리 미쳐서 우리가 중생과 더불어 모두 부처의 도를 이루기를…”

    그리고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축생 용녀(龍女)의 성불, 곧 사갈라 용왕의 딸 용녀가 성불했다는 사례가 있다. 비록 용녀라고 하지만, 다겁생래로부터 성불 수행하던 중, 인연 따라 축생의 몸으로 있다가 성불 인연이 무르익어 남방으로 가서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 성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축생인 용녀가 성불(成佛)하는 사례를 말씀하시면서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곧 일체중생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전제로 한 구세경(救世經) <법화경>을 설하셨다. 따라서 동업중생(同業衆生)의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가 모든 불자들 삶의 목표가 된 이유다. 혼자 성불은 진정한 성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법화경>의 권능은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구즉착(開口卽錯)---입을 여는 순간 어긋나버린다(틀린다), 말한 즉 곧 틀리다, 입만 벌리면 잘못 된다, 입을 벙긋하는 순간 어긋난다, 대체로 이런 뜻으로서 진리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입을 여는 순간 진리의 참모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빗나가버린다는 말이다. 진리 ‘그 건’은 언어 문자가 아니니까.

    어떤 생각 또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어의 한계, 표현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써 선(禪)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십만 팔천 리나 멀어진다는 뜻인데, 동념즉괴(動念卽乖)라, 생각만 움직여도 곧 어긋난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러함은 언어와 문자로는 어떤 형상, 어떤 경험도 온전히 전하기는 힘듦을 말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가 몹시 쓰리다고 가정할 경우, 그 쓰라림을 아무리 교묘하게 무량한 언설로 잘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말을 하는 사람의 경험을 완전히 느끼고 알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현상도 말로써 온전히 전하기 힘든데, 하물며 진리는 언어라는 수단으로 닿지 못하는 곳, 문자를 세워 전할 수 없는 곳에 있으니, 어떻게 언설로써 완벽하게 전할 수 있으랴. 언어는 한편으로는 이해를 돕는 좋은 가교(架橋)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해를 낳는 나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해의 근원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주제 및 상황에 임해서는 아예 거룩한 침묵[無記]을 보이셨다.

    그리고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 바탕은 마음이라고 할 이름조차 세울 수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인 무상(無相)의 체(體)이다.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므로 적정열반(寂靜涅槃), 본래심(本來心), 당처(當處) 혹은 여래(如來)라고 한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에 집착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므로 이를 망념이라고 하며, 이에 수반해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싶은 분별심과 취사심이 일어나므로 이를 취착(取着)이라고 한다. 즉, 본성의 체성은 한 순간도 작용(움직임)하지 않는 적이 없으므로 근본적으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모든 생각이라는 것에 체성(본성)이 공한 이치를 알고 쓸 따름이다.

이와 같이 개구즉착이란 입을 열자마자 바로 입을 열기 전의 공인 체성을 그르치는 것이고, 동념즉괴(動念卽乖) 또한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이미 본성의 체인 무자성(無自性)인 공성(空性)과 어그러진다는 의미이니, 이는 본성의 체성이 본래 한 티끌도 세울 수 없는 청정(淸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동념즉괴(動念卽乖) 참조. 

     

*개권현실(開權顯實)---방편임을 밝히고 진실을 드러낸다는 말로서, 방편으로서의 가르침을 통해, 진실한 교리를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다.---→전권후실(前權後實), 개현법(開顯法) 참조.

      

*개근현원(開近顯遠)---<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해석함에 나오는 말이다.---→개현법(開顯法) 참조.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법장(法藏)은 진리의 창고로서, 즉 경전을 말하는데, 기도를 시작하는 일은 이 법장을 여는 일이고, 참선에 들어가는 것도 법장을 여는 일이다. ‘옴 아라남 아라다’는 <천수경>의 개법장진언이다.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중국 송(宋) 대에 최초로 조성된 <북송관판대장경(北宋官版大藏經)>을 일컫는다. 약칭 <개보장(開寶藏)>이라 한다. 송 태조 연간인 개보(開寶) 4년(971)에 착수해 다음 대인 송 태종 8년(983)에 완성했으므로 <개보판대장경>이라 통칭되며, 칙명으로 조성됐다고 해서 <칙판대장경(勅版大藏經)> 혹은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이라고도 한다. 오류가 많았다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고려에서 조성된 <초조대장경>이 바로 이 개보판대장경을 바탕으로 했었다고 한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은 당나라 초기 AD 730년에 지승(智昇)이 쓴 불경목록집인데, 당시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송(宋) 대에 조성된 개보판대장경은 바로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의 불전을 판각한 것이다.

   

*개삼현일(開三顯一)---<법화경>에 나오는 말로서,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같은 말인데, 처음 삼승(三乘)을 설해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오로지 대승으로써 제도해 해탈하게 함을 말한다. 여기서 삼(三)은 보살(菩薩)ㆍ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삼승을 나타내는 말이고, 일(一)은 일승(一乘) 즉 불승(佛乘)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살ㆍ성문ㆍ연각 등 삼승의 방편에 의해 진실인 일승 즉 불승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삼승은 방편으로서 진실인 일승에 들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법화경>을 크게 본문(本門)과 적문(迹門)으로 구분했다. 즉, 법화경 8권 28품 중 서품 제1에서 안락행품 제14까지의 전반을 적문,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보현보살권발품 제28품까지의 후반을 본문이라고 구분했다.

   적문이란 본체(本體)로부터 그림자로 비춘 부처, 즉 적불(迹佛)이 설한 문(門,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 적(迹)이란 족적(足跡), 그림자라는 뜻으로 연못에 비친 달의 그림자와 같은 것을 말한다. ― 전반의 14품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인도에 태어나 29세에 출가해, 35세 때에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부처라고 설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여래수량품 제16에 있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는 실로 성불한 이래 무량무변’이라고 선언하고, 구원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이라고 하는 아득히 먼 옛날에 성도했다고 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입장을 밝혔다.

   이것에 의해 이전 경부터 <법화경> 적문까지 견지해 온 시성정각이라는 입장은 구원성도의 본체의 부처가 그림자를 비춘 적불(迹佛)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 14품을 본문, 전반 14품을 적문이라고 하며, 적문의 중심의 되는 것이 방편품이고, 본문의 중심이 수량품이다.

   그리고 삼승과 일승의 관계를 개삼현일(開三顯一)이라 표현했다. 삼승과 일승은 불법(佛法)을 따르는 모든 제자는 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라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말해준다. 또한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부처님과 같은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 가르침에서 대승불교가 기존의 불교계에 인정받는 단계를 넘어 기존의 불교를 수용, 흡수해 새롭게 재해석하는 원대한 이념임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법화경>에서는, <법화경> 이전의 경들에서는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고 했던 이승(二乘, 성문계·연각계)이 차례로 미래 성불의 기별을 받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원(久遠)이라고 하는 아득한 옛날부터 부처였다는 것 등이 밝혀져 있다.---→개권현실(開權顯實) 참조.

   

        

*개시오입(開示悟入)---<법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이다. 제불세존(諸佛世尊)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했나니, 어떤 것을 일러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 일대사인연의 근본목적 네 가지[사불지견(四佛知見)]를 제자인 사리불(舍利弗)에게 설명한 것이다. 즉, ‘개시오입’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네 가지 뜻(목적)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이 진리를 열고, 보고, 깨닫고, 그 길에 들게 하는 일이다. 석가모니불이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開)ㆍ시(示)ㆍ오(悟)ㆍ입(入)하기 위한 근본원(根本願)을 가지고 태자의 몸으로 화현한 것이란 말이다.

     ① 개(開)는 개제(開除) - (장애물 따위를) 열어 헤친다는 말로서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진리를 열게 한다는 말이다.

     ② 시(示)는 현시(顯示) - 깨달은 바를 보여주는 것, 즉 모든 번뇌가 사라진 진리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즉, 진리를 보게 한다는 말이다.

     ③ 오(悟)는 각오(覺悟) - 깨닫는다는 말로서 우주의 본체 그대로가 현상이며, 현상 그대로가 본체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중생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도록 한다는 말이다.

     ④ 입(入)은 증입(證入) - 중생들로 하여금 진리의 본체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중생들을 열반의 길로 인도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불법을 열어 보이고, 법을 통해 진리를 보게 하고,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한다.---→사불지견(四佛知見) 참조.

    

*개아(個我, 뿌드갈라/pudgala=인상/人相=아체/我體)---개아란 <금강경>에서서 말하는 4상(四相) 중 하나인 인상(人相)을 일컫는 말로서, 보특가라(補特伽羅)라 한역하기도 한다. 붓다는 바라문들이 윤회의 주체라 주장하는 아트만(atman-아체/我體)을 현실적으로 경험하기가 불가능한 가공망상의 것이라고 부정했다.

    그러나 부파불교시대에 와서는 윤회에 중심적 주체가 없다는 점을 혼란스럽게 여겼다. 그리하여 무아론(無我論)은 차츰 세력을 잃고, 불명 후 300년 경 부파불교 독자부(犢子部)에서는 생사윤회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윤회하는 개개 존재의 인격주체로 뿌드갈라(pudgala)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즉,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아체/我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바라문들의 주장인 아트만(atman)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것을 개아(個我)라 한역했다.

    이와 같이 뿌드갈라(푸드갈라)란 중생에게 무너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어떤 실체(아체)가 ‘개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로서, 나고 죽음을 영원히 반복하더라도 이 실체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불교가 흥기하던 초창기에는 무아(無我)사상이 강력하게 주장됐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교리가 변용되면서 불교는 차츰 아트만 사상에 동화돼갔다.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조직된 허구임을 모르고 몸과 마음속에 따로 어떤 본질이 숨어 있다고 여기는 그릇 된 착각이 개아, 즉 인상(人相)이다. 이것은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이 뿌드갈라[개아(個我)]를 부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이루어지고, 그 대표적인 것이 공사상(空思想)이다.---→독자부(犢子部), 4상(四相) 참조.

   

*개운 조사(開雲祖師)---개운당 조사(開雲堂祖師)라고도 한다. 1790년(정조 10년)에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일찍 부모를 잃은 고아로 자라 13세에 문경 봉암사로 출가해 혜암(慧庵) 선사 제자가 됐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상주 도장산(道藏山, 828m) 심원사(深源寺)로 들어갔다. 거기서 51세까지 수행 정진한 나머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어 중생으로서 최고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에 개운 스님에 대해 신비화 내지는 과장된 평전이 퍼져 전설적인 인물이 돼 있다. 그래서 그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182세까지 살다가 지리산 묘향암에서 신선이 됐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어 신선이 됐다는 설이 제기된 것이다.

    개운 스님은 지리산으로 가기 전에 <능엄경>의 주석을 달았다. 간략하게 자신의 자서전도 썼다.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만들어, 책의 말미에다가 이런 얘기도 덧붙여 두었다. “이 책을 심원사 천장에 숨겨둔다. 도장산 계곡물에 사는 용들에게 이 책을 잘 보호하라 일렀다. 앞으로 1백년 후에 인연이 닿는 사람이 이 책을 발견해 세상에 전할 것이다. 그때에 가면 바른 도(道)가 널리 퍼지리다. 큰 도를 이루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의심하지 말고 정진해라. 나는 바위에다 맨손으로 글씨를 새겨놓았다. 이것이 정법(正法)을 따라 정진해 내가 도(道)를 이룬 증거이다.”

    그런데 1950년대의 일이다. 양성(陽性)이란 스님이 심원사에 들러 그 책을 발견하고 개운 스님이 당부한 대로 이 책을 출판해 널리 전했다. 책명은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환해산보기(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環解刪補記)>이라 하는데, 보통 줄여서 <유가심인 능엄경(瑜伽心印楞嚴經)>이라 한다. 헌데 이러한 설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도 있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당나라 초기(730년)에 지승(智昇)이 편집한 불경 목록집으로, 당시에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중국 최초의 대장경이라는 송(宋) 대에 조성된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은 바로 이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 불전을 모두 판각한 것이다.

    

*개적현본(開迹顯本)---자취를 밝혀서 근본 부처님을 드러낸다는 뜻이다.---→개현법(開顯法) 참조.   

    

*개차(開遮)---개(開)는 방편으로 어떤 행위를 허락한다는 말이고, 차(遮)는 어떤 행위를 금한다는 말이다. 불교의 계율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 어떤 때는 계율을 어기는 것을 허락하고, 어떤 때는 어기는 것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목숨이 위태롭거나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할 경우에는 방편으로 계율을 어겨도 좋다고 허락하지만 어떤 때는 죽더라도 반드시 계율을 지키라고 한다. 즉, ‘큰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범개차(持犯開遮)라고 한다.---→지범개차(持犯開遮) 참조. 

         

*개현(開顯)---닫힌 것을 열고 숨은 것을 드러내어 진실상(眞實相)을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다. <법화경> 법사품에는, “방편의 문을 열고 진실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開方便門 示眞實相]”을 개현이라고 했다. 개현이란 개권현실(開權顯實), 개삼현일(開三顯一)의 줄인 말이다. 천태대사(天台大師, 538-597)가 말하기를, “<법화경>을 설함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49년 설법 가운데, 앞의 40여 년간은 방편을 진실같이 설하고 굳이 방편을 방편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 <법화경>을 설함에 이르러서는 삼승이 방편[權]이고 일승은 진실[實]이라 해,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냄을 개권현실 ‧ 개삼현일이라 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개현’은 천태교학의 대표적 사상의 하나이다.---→개권현실(開權顯實), 개삼현일(開三顯一) 참조.

 

*개현법(開顯法)---‘개현’이라는 뜻은, 열어서 나타낸다 ― 드러낸다는 뜻으로, <법화경>을 통해 부처님이라고 하는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3천여 년 전 고대 인도에 오신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단순히 금생에 오셔서 성불하신 금생불(今生佛)만이 아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이라는 것을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가 개현법(開顯法)이다.

    즉, ①개근현원(開近顯遠) ②개적현본(開迹顯本) ③개권현실(開權顯實) ④개삼현일(開三顯一) 등의 상대적인 숙어가 여럿 있는데, 이를 줄인 말이 개현법이다.

    그리고 <법화경> 앞부분 14품을 적문법화경(迹門法華經), 뒷부분 14품을 본문법화경(本門法華經)이라고 나누어 말하는데, 이것도 ‘구원의 본불’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이다. 다시 말하면 경전상 구성효과이다.

     ① 개근현원(開近顯遠) ― 가까이 있는 사실에서 출발해, 점차 그 사실의 근원으로 찾아 올라가서 멀리 있는 진실을 알아낸다는 의미이다. 우리들 가까이 눈앞에 계셨던 석가세존을 통해, 부처의 근본체, 우주의 본체적 존재인 본불(本佛)을 깨닫는 이치를 말한다.

    가까운 것이란, 석가세존께서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의 눈앞에 나오셔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80세까지 45년간 중생을 교화하신 후 쿠시나가라 성 밖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셨는데, 이 금생의 부처님 차원에서의 일들을 말한다.

    먼 것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근본을 분석해서 그 가운데 들어 있는 깊은 뜻, 부처님 본체를 잘 살피고 연구한 결과를 말한다. 즉, 그것은 부처님이 한량없는 과거세 백 천 만억 나유타겁에 이미 성불하셨고, 그 부처님이야말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 곧 우주의 본체로서, ‘먼 것’이란 바로 이 본불의 입장을 밝힌 것을 말한다. 그러니 현세에 출현하셨던 석가모니불(迹佛)을 통해 구원의 본불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② 개적현본(開迹顯本) ― 자취를 밝혀서 근본 부처님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역사적인 실존인물이신 석가세존의 발자취를 밝혀서 진짜 본불 본체를 표출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불하신 후 45년간 교(敎)를 설하시면서, 처음엔 불교의 기초지식을 설하셨고, 마지막 8년간 <법화경>을 통해 구원실성(久遠實成)을 선언하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말한다.

    무릇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어른이 3천여 년 전, 고대 인도의 가비라성에서 싯다르타 태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출가해 수행하신 인연으로 깨달음을 여시고, 그 후 45년간 중생을 제도하시다가 80세에 열반하셨다는 역사상 실존 부처님을 전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의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인연에 의한 것이라 했다. 즉, 석가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과거세 백 천 만억 나유타겁에 이미 성불하신, 곧 구원의 본불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존재 ‘큰 하나’라고 했다.

    그러니까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역사상에 등장한 실존의 부처님만 있는 것으로 아는 중생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법화경>은 모든 중생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의 불사(佛事)이다. <법화경>은 금생불로만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켜 놓은 경전이란 말이다. 즉, 역사적인 금생불에서 구원의 본불로 바꾸어 놓는 기점이 바로 <법화경> ‘여래수량품’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석가세존께서 설하신 8만 4천 법문은 방편의 가르치심으로서, 적불(迹佛) 석가모니 부처님과 본불(本佛) 석가모니 부처님을 구분해서 본불 부처님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개적현본이다.---→적문(迹門)과 적불(迹佛) 참조.

     ③ 개권현실(開權顯實) ― 개권현실이란,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불교는 방편의 가르침과 진실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진다. ‘권(權)’은 방편을 뜻하고, ‘실(實)’은 진실을 뜻한다. 그리고 방편의 가르침은 진실의 가르침에 들어가는 길잡이, 도와주는 것임을 밝히는 것으로, 그것이 개권현실이다. 방편으로서의 가르침을 통해, 진실한 교리를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다.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가 그의 저서 <법화현의>에서 제시한 말인데, 보살행(菩薩行)과 더불어 <법화경>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다.

    <법화경>의 중심사상은 크게 진리를 밝히는 부분과 보살의 실천행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진리를 밝히는 부분은 개권현실(開權顯實)을 나타내는 적불(迹佛)사상과 구원실성(久遠實成)을 나타내는 본불(本佛)사상으로 구분된다.

    개권현실(開權顯實)은 적불사상으로서 방편을 열어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의 세계인 구원겁(久遠劫)의 본불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은 중생들의 근기를 고려해 설하신 방편 법문인데, 그 방편을 통해 궁극적인 진실(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존이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에 대해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지만, 그것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일승(一乘)만이 진실이라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강조하는 것이다.

    방편설이란,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하셔서 6년간 고행하시고,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단좌명상(端坐瞑想)하신 인과(因果)로 35세에 정각을 이룬 후부터 72세까지 설하신 것을 방편의 가르침이라 한다. 곧, 방편설이다.

    진실설이란, 부처님이 72세부터 열반에 드시는 80세까지 8년간 설하신 일불승(一佛乘)인 <법화경>을 진실의 가르치심이라 한다. 곧 진실의 교라 한다.

    헌데 이러한 주장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의 입장에서 <법화경>을 가장 완벽한 진실교임을 주장하기 위한 억지 논설이다. <법화경> 자체를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니다. <법화경>이야말로 부처님이 입멸하신 훨씬 후에 대승불도들이 창작한 방편설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이 72세부터 80세까지 8년간 <법화경>만을 설하셨다는 것은 아주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법화경>의 가치를 실추시키고 있다.

     ④ 개삼현일(開三顯一) ― 개삼현일은 셋을 열어서 하나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같은 말인데, 보살ㆍ성문ㆍ연각 등 삼승의 방편설에 의해 진실인 일승(一乘) 즉 불승(佛乘)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뜻이다. 처음 삼승(三乘)을 설해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오로지 대승으로써 제도해 해탈하게 함을 말한다. 그러니 삼승은 방편으로서 진실인 일승에 들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삼승과 일승의 관계를 개삼현일(開三顯一)이라 한다.

    그런데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법화경>을 크게 본문(本門)과 적문(迹門)으로 구분했다. 즉, 법화경 8권 28품 중 서품 제1에서 안락행품 제14까지의 전반을 적문,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보현보살권발품 제28품까지의 후반을 본문이라고 구분했다.

    적문이란 본체(本體)의 그림자인 부처, 즉 적불(迹佛)이 설한 문(門,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여래수량품 제16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구원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이라고 하는 아득히 먼 옛날에 이미 성도했었다고 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이전의 여러 경과 <법화경> 적문까지 견지해 온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는 입장은 구원성도한 본불의 그림자인 적불(迹佛)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개현’의 개념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석가세존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개근현원ㆍ개적현본ㆍ개권현실ㆍ개삼현일은 같은 맥락의 말로서, 모든 일체중생을 금생불(迹佛)에서 본불로 인도해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법화경> 사상을 드러내는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다. 

      

*객진번뇌(客塵煩惱)---객진(客塵)이라고도 한다. 우연히 밖으로부터 들어온 먼지라는 뜻으로, 번뇌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스스로 일으킨 불청객이라서 손님처럼 왔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갈 뿐이다. 그래서 객진번뇌, 허상, 가관(假觀)을 지칭하기도 한다. 즉,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갱락(更樂, 빠알리어 phassa, 산스크리트어 sparśa)---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의 화합 ― 즉, 삼사화합(三事和合)으로 일어나는 마음작용, 이는 촉(觸)과 같은 뜻이다.

    연기법을 설함에 있어 <중아함경>에서는 특이하게도, <연기경>에서 말하는 촉(觸)을 여기서는 갱락(更樂)이라고 한다. 갱락은 반복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이다. 즉, 감촉하는 것을 반복하는 즐거움이라고 한 것이 특이하다. 또한 <연기경>에서의 식(識)을 <중아함경>에서는 각(覺)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해 식(識)과 각(覺)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사용한다. 그래서 육촉처(六觸處)를 육갱락(六更樂)이라 하고, 처(六處)를 인연해 갱락(更樂)이 있고, 갱락을 인연해 각(覺)이 있으며, 각(覺)을 인연해 애(愛)가 있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대구치라경(大拘緻羅經)>에 나오는 말이다.

     존자 사리자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감각이 있습니까?”

     “세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곧 즐거운 감각과 괴로운 감각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입니다. 이것들은 무엇을 인연해 있는가 하면 갱락(更樂)을 인연해 있습니다.” 

      

*거돈사지(居頓寺址)---남한강변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한계산(寒溪山, 535m) 서쪽 기슭에 펼쳐진 절터로서 사적 제168호이다. 발굴조사결과 신라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에 확장 ․ 보수돼 조선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언제 폐사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거돈사지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신라 말 고려 초의 절터로서는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중문지 북쪽엔 3층석탑(보물 제750호)이 남아있고,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종(智宗, 930∼1018)을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남아있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도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뜰 안에 옮겨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법안종(法眼宗)의 주요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해지면서 천태종사찰로 흡수됐다.

   

*거량(擧揚)---법거량(法擧揚)의 줄인 말.---→법거량(法擧揚) 참조.

 

*거래중도(去來中道)---「수행승들이여, 시각(眼)이 생길 때 어떤 다른 것에서 오지 않으며, 그것이 사라져버릴 때 어떤 곳에 축적돼 가지도 않는다.” -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어디서 오는 것(래)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거)도 아니다. 조건에 따라 생성되고 조건에 따라 소멸되는 연기법칙에 따를 뿐임을 말한다. 인과성에 공간적 접근성이 수반되지 않는다.

   즉, 거래중도란 사물이 생겨 날 때에 원인이 결과에 가까이 와서(來) 생겨나거나 멀어져서(去)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거래(去來)에 구속되지 않고 생겨나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인과에서의 근접성은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공적인 근접성과 관계없이 조건적으로 발생하는 연기법을 알아 팔정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거사(居士)---거사란 출가하지 않는 재가 남자신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귀(三歸) ․ 오계(五戒)를 지키며 불교신행(信行)을 하는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 거사(居士)란 말은 부처님 당시 재가 남자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유마힐(維摩詰)거사 이름에서 유래한다.

    세계 3대 거사로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인도 유마힐(維摩詰) 거사, 중국 방(龐) 거사, 신라 부설(浮雪) 거사가 있다. 중국 방 거사는 당나라시대 사람으로 이름은 온(蘊)이라 했으며, 있는 재산을 다 버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부설 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으로 성은 진(陣), 이름은 광세(光世)라 했다. 그 외에 의상 대사 동생 윤필(潤弼) 거사, 파계 후의 원효 대사는 소성(小性) 거사로 행세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백봉(白峯) 김기추(金基秋)(1907~1985) 거사가 있다. <화엄경>의 대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은 김기추 거사를 ‘말법시대의 등불’이라고 격찬했다. 김기추 거사님은 부산 영도(影島)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불심 깊은 재가불자로서 재가수행단체인 보림회(寶林會)를 결성, 운영했고, <유마경대강론>, <금강경송> 등 많은 저서도 남겼으며, 경남 산청에 보림선원(寶林禪院)을 창설해서 수행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입적한 인물이다.---→부설 거사(浮雪居士), 윤필 거사(潤弼居士)참조.

  

*거울과 벽돌---마전성경(磨磚成鏡)을 이르는 말이다.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말인데, 중국 당나라시대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와 그의 제자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에 얽힌 이야기이다.---→마전성경(磨磚成鏡) 참조.

     

*거지성자---불교학자 전재성 박사가 독일 유학 중에 만난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Peter Neujahr)와의 7년간의 교유와 거기에서 배운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독일 쾰른대학에 입학해 초기 유학 시절의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저자는 어느 날 쾰른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의 호숫가에서 한 사람의 거지를 만난다. 그리고 예수처럼 생긴 외모에 비범한 기운을 발산하는 이 거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동서양의 많은 성자들의 이름과 말씀을 줄줄이 토해내는 이 거지야말로 깨달음을 실천하는 진실한 수행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페터 노이야르는 붓다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집과 가족을 떠나 거지처럼 살고 있다. 탁발로 얻은 과일과 채소, 흑빵만으로 하루 한 끼의 식사만을 하고, 몇 겹으로 기운 누더기와 양말 한 켤레로 살아간다. 책에는 페터 노이야르가 저자에게 전해준 붓다와 예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 마호메트와 이슬람의 수피들, 공자와 노자, 장자 가르침의 핵심이 담겨 있어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여러분이 말한 고행은 부처님이 말한 고행이 아닙니다. 나의 고행은 진실을 말하는 것,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송광사 학승들과 대화중에서 ‘왜 고행을 하십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거지성자라는 이 분은 부처님 말씀을 진실로 실천하시고자 노력하시는 분이다.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법을 의지하며, 무소 뿔처럼 홀로 외롭게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끄러움 없이, 철면피하고, 무례하고, 대담하고, 죄악에 오염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있고, 항상 청정을 구하고, 집착 없이, 청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렵다.”…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한 나의 가난에 감사한다.” 페트 노이야르의 말이다.

   한 분의 성자가 이 시대에 밝히는 등불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이다.그 페트 노이야르가 한국에 왔다. 다음은 1999년 11월 전재성 박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페트 노이야르와 나눈 문답 내용이다.

   -왜 집 없이 숲의 나무 밑에 살고 있는가?

   “무소유의 삶은 새처럼 자유롭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숲으로 들어가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허물어진 빈 집에서 명상을 하셨다. 대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다 보니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나무 밑에서 잠자며 탁발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기성종단의 생활과 위배되는 것 아닌가?

   “종교가 조직화되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을 말씀하셨다. 즉, 가르침만을 유일한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계율을 지키지 못해 승단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계율만 지키면 분열과 혼란은 저절로 사라진다. 또 싸움은 무아(無我)사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누가 싸움을 하는지 찾아봐야 한다. 에고에서 나오는 분쟁의 마음은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면 해결된다.”

   -기성승단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부처님은 승가에 어떤 계급이나 서열을 정해주지 않았다. 제자와 문중을 만들게 하지 않았다. 또 승가 내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장치인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을 보름마다 시행하도록 했다. 부처님은 그러한 모임을 통해 제자들이 법을 상기하고 가장 겸손하게 반성하도록 했다. 수행자는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은 변질된다.”

   -어떻게 해서 부처님가르침에 따르게 됐는가?

   “인도 관련 서적을 접하면서 부터다. 그리고 티베트 라마가 인도 고아를 만나 깨달음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키필링의 <킴>이라는 책을 15번쯤 본 것이 불교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인도 보드가야에 갔을 때 버마 승려가 ‘부처님은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부처님 경지는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벽암록> 등 선불교를 공부하고 영국의 선공동체에도 들어갔는데, 가르침과 실천이 부조화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초기불교에 들어가 부처님이 실천한 것을 따르게 됐다.”

         ※키필링---1907년 노벨상을 받은 영국 자가 러디어드 키필링(1865~1936)을 말한다. 유명한 <정글북>의 저자이기도 하다.

   -종교를 보는 눈이 넓은 것 같다.

   “부처님과 위대한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동일하다. 종교들은 욕망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욕망에 패배한다. 부처님께서 오욕을 이기라고 말씀한 것이 그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서 충분하지 않는 분야를 알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가 특히 위대한 점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이 설한 진리의 세계는 분명하고 깨끗한 가르침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25세기나 30세기 인류가 돼야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적인 사상이라고 본다. 부처님 가르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학적이고 물리적이고 아름답다. 또 다른 종교 창시자들과 달리 예언을 배격하고 세월이 변해도 수정처럼 맑은, 변치 않는 진리를 설하셨다. 부처님 법에는 지혜로 인간의 우매함을 걷어낼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깨달음의 추구를 얘기하는 것인가?

   “그렇다. 최종 목표는 깨달음이다. 부처가 되려는 욕심이 있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 단지 수행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현대 과학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의사이다. 어려운 난제들도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저절로 해결된다. 서양에서는 물질문명이 발달해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을 잃어버렸다. 부처님의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사상과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법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실천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보는가?

   “자연이나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은 간단하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5계를 지켜 인간정신이 올바로 서야 한다. 사소한 관찰을 함으로써 진실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짓을 고쳐나갈 때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마음이 따뜻하면 혼탁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현대불교신문 김원우 기자 

 

    

*건달바(乾闥婆, 산스크리트어 gandharva)---빠알리어로는 건답바(gandhabba)라 하는데, 건달바엔 세 가지 뜻이 있다.

     ①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도솔천에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면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으로 팔부중의 하나이다. 심향(尋香), 식향(食香)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의 일종이다.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며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놀고먹는 ‘건달’이란 말도 이 건달바에서 유래됐다.

     ② 정신적인 존재현상을 건달바라 했다. 초기경전의 여러 경에는 건달바가 곧 식(識)이라 했다. 정신적 요소인 이 건달바가 12연기에 있어서 행(行)에서 식(識)으로 전환될 때 개입한다고 한다. 다음은 <맛지마 니까야>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의 때가 아니고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임신이 되지 않고, 부모가 합하고 어머니가 때라 하더라도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임신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합함이 있고, 어머니의 때가 맞고, 건달바가 나타나야 임신이 된다. 그리고 열 달 동안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이때의 건달바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nñāṇa)이다.

     ③ 향기(gandha) 나는 곳에 사는 신을 뜻한다. <상윳따 니까야(S.iii.250f)>에 따르면 간달바의 신은 나무의 뿌리나 껍질이나 수액이나 꽃의 향기에 거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건달바(乾達婆, 산스크리트어 gandharva, 빠알리어 간답바/gandhabba)---고대 인도 신화에서 건달바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기에 이에 대한 의미와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도솔천에서 제석천(帝釋天) 인드라의 시중을 들면서 인드라 신의 궁전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으로서 팔부중의 하나이다. 인도 말로 간다르바 비드야(Gandharva vidya)가 음악을 의미한다.

    그리고 간다(gandha)라는 말은 향(香)을 의미하므로, 간달바는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으로 묘사되며, 이런 어원적으로 해석돼 의역해서 식향(食香) 또는 심향(尋香)이라 한다. 이들은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며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놀고먹는 ‘건달’이란 말도 이 건달바에서 유래됐다.

     ② 정신적인 존재현상을 건달바라 했다. 초기경전의 여러 경에는 건달바가 곧 식(識)이라 했다. 정신적 요소인 이 건달바가 12연기에 있어서 행(行)에서 식(識)으로 전환될 때 개입한다고 한다. 다음은 <맛지마 니까야>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의 때가 아니고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임신이 되지 않고, 부모가 합하고 어머니가 때라 하더라도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임신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합함이 있고, 어머니의 때가 맞고, 건달바가 나타나야 임신이 된다.」그래서 이때의 건달바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nñāṇa)이다.

    건달바는 물의 요정이자 춤의 요정인 압사라(Apsaras)와 어울리며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는 수태를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했다.

    생명체가 어떤 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암수의 결합, 두 번째로 적당한 시기, 세 번째로 캄마 웨가(Kamma-vega)라고 하는 업력이 필요한데, 이 캄마 웨가가 업력(業力)으로서 건달바를 말한다. 즉, 생명체는 업력에 의해서 형성됨을 말한다. 그리고 이 업력은 임종에 임한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방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재생연결식이라고 한다.

     ③ 특히 밀교에서 건달바는 태아와 어린아이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제압해 태아와 어린아이를 수호한다.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이 건달바신왕을 본존으로 삼아 거행하는 불공을 동자경법 또는 건달바법이라고 한다. 

   

*건당(建幢)---스님의 수행과 구도(求道)가 원만(圓滿)해지면 당(幢)을 세우고 법호(法號)를 주던 일. 건당(建幢)이란 깨달은 선사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게 됐음을 뜻한다. 즉, 당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만 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확인을 받아들이고 후학을 지도하겠다는 의미이다.  

   

*건도(建度, Khandhaka)-건도부(建度部)---불교의 율장(律藏)에는 내용면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규범인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다. 이를 계(戒)라고도 하는데 비구계와 비구니계가 이것에 해당된다.

    또 하나 공동생활에서 지켜야할 규범과 규약을 건도(楗度)라 한다. 이를 율(律)이라고 하는데 수계와 설법에 관한 규정,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의 방법, 옷과 약에 관한 법, 안거와 방사에 관한 규정, 다툼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규정 등이 있다. 불교에서 계율이란 이 두 가지를 합성한 말이다.

    그런데 건도부는 법조문과 같은 것만 모은 그런 형식이 아니다. 즉, 어떻게 하라 혹은 하지마라 하는 규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판단에 대한 설명, 부처님이 생각하신 진리의 세계와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직후의 여러 날들을 다룬 내용 등도 들어있다. 그리고 제자들과 신자들을 만나면서 불교교단이 견고하게 확립돼 가는 과정도 보여 준다.

    따라서 건도 부문은 승단 내의 규칙ㆍ규정과 부처님이 판단하신 배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건도부는 대품(Mahavagga)과 소품(Cullvagga)으로 나뉘며,

    대품(大品)은 부처님의 성도에서부터 베나레스에서 처음 교단을 건설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외에 출가 수계 및 계본에 의한 포살식, 의식주에 관한 여러 규정, 승단을 통한 행정절차 및 승단분열시 조정방법이 수록돼 있다.

    소품(小品)은 제1차 ‧ 제2차 결집에 대한 설명과 비구의 재출가, 승단에서 비행을 처리하는 계. 목욕, 의복, 주거와 가구, 음식과 약, 비구의 등급과 스승과 사미의 의무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부수(Parivara)는 19장으로 돼 있으며, 일종의 교리문답으로서 율장에서의 계율을 요약, 분류하고 있다.

    

*건율타야식(乾栗陀耶識, 산스크리트어 Hrdaya-vijnana)---인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의식으로 분별하는 6식까지밖에 못 쓴다. 동물은 의식 판단은 못하니까 6식도 못 쓰고 5식까지만 쓴다. 사람은 6식이 모두가 아니다. 그 아래 제7식이 있고, 7식 아래에 제8식 아뢰야식이 있으며, 제9식 암마라식(菴摩羅識)을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Paramartha, Gunarata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그러던 것이 후대에 더 발전해 제9식 암마라식 다음 그 가장 밑바닥에 제10식 건율타야식(乾栗陀耶識)이 추가됐다. 제8 아뢰야식은 모든 식들의 저장식이고, 제9 암마라식은 선과 악을 초월한 무구(無垢), 백정(白淨)의 세계를 일컬으며, 제10 건율타야식은 최후의 진실심(眞實心), 견실심(堅實沁)을 일컫는데,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불식(佛識)을 말한다. 이것이 불심(佛心)이고, 불성(佛性)이고, 진여(眞如)이며, 불타(佛陀)라는 것이다. 비록 개발이 못 됐을 뿐이지 일체만유 존재의 근본이 불심(佛心)이고, 이것이 또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한다.

    다만 그 존재 자체의 업(業) 따라서 계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을 하면 차근차근 6식, 7식에서 8식으로 나아가고, 8식 다음 더 깊이 들어가면 제9식 다음이 제10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제10식(十識)에 이르면 그때는 성불하게 된다.---→암마라식(菴摩羅識) 참조.

   

*건혜(乾慧)---간혜(乾慧)라 발음하기도 하며, 건혜지(乾慧地)라고도 한다. 아직 원숙하지 못하고 메마른 지혜. 참다운 지혜를 발현하지 못하는 ‘알음알이’ 단계라 할 수 있다. 비록 깨우쳐 지혜를 얻었다고 해도 선정(禪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건혜라 한다. 겨우 욕망의 습기(濕氣)는 말라 없어졌지만 아직 실질적인 덕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효용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건혜라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계행 없는 정(定)은 죽은 물이고, 죽은 물에 사는 용(龍)은 활력이 없고, 정력(定力) 없는 지혜는 건혜(乾慧)일 뿐, 생사의 길에서는 쓸모가 없다.”

    지혜와 반야는 비슷한 말인데, 반야를 지혜로 번역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데에 있다. 즉, 반야(panna)는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예지이므로 건혜(乾慧)에 가까운 뜻의 지혜로 번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예지, 즉 바라밀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 바라밀이 아닌 - 지혜를 불교에서는 간혜라고 한다. 건(乾) 자를 써가지고 간혜 혹은 건혜라 하는데, 성숙되지 않은 ‘알음알이’라고 하는 지해(知解)에 가까운 말이다.

       

*걸식 사사(乞食四事)---비구가 걸식할 때에 지켜야 할 네 가지 행의작법(行儀作法). 탁발 사사라고도 한다.

     ① 주정계(住正戒) ― 심신을 바르게 가져 정계(正戒)에 머무는 일.

     ② 주정위의(住正威儀) ― 용모를 바르게 하고 위의를 점잖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경해 믿게 하는 일.

     ③ 주정명(住正命) ― 부처님의 법도에 따라 걸식하고 다섯 가지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 일.

     ④ 주정각(住正覺) ― 몸은 괴로움의 근본인 줄을 알아서 음식은 겨우 몸을 지탱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탁발을 하는 승려를 볼 수 없다. 인심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풍요로워 스님들이 탁발하기를 꺼려서 그런지, 부처님 법이 무너지고 있는 단면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허긴 기독교 신자들이 많아져서 스님들을 폄하하는가 하면,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걷기 싫어서 자가용을 타야하고, 호화로운 옷을 걸쳐야 하며, 어떤 여승의 경우 멋 부리기를 좋아하니 이런 풍토에서 걸식은 가당치 않는 일일 것이다.

    


*겁(劫, 산스크리트어 kalpa)---겁(劫)은 칼파(Kalpa)의 음역어로, 겁파(劫波, 劫破) 또는 갈랍파(羯臘波)라 음역하기도 한다. 분별시분(分別時分), 분별시절(分別時節), 장시(長時), 대시(大時) 등으로 의역하고 있다.

    불교의 시간개념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한다.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이란 뜻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년을 1겁이라 했다. 그 외에 겁에 관한 시간 개념으로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① 연ㆍ월ㆍ일이나 어떤 시간의 단위로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광겁(曠劫)ㆍ영겁(永劫)이라 한다.

     ②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사방(四方) 40리의 성안에 개자(芥子)를 가득 채우고 백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개자가 다 없어져도 겁(劫)은 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사방 40리 되는 바위를 백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비유에 근거해 긴 시간을 반석겁(磐石劫)이라 한다.

     ③ 2종의 진점겁(塵點劫)이 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먹으로 삼아 그 먹이 다 닳도록 갈아서 만든 먹물로 일천국토(一千國土, 세계)를 지날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고 하고, 그 먹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부수어 만든 수없는 먼지 하나하나를 일겁(一劫)으로 한 그 모든 겁(劫)을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이라고 한다.

    또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五百千萬億那由他阿僧祗, 아주 많은 수의 단위)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어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五百千萬億那由他阿僧祗)의 세계(국토)를 지날 때마다 그 먼지를 하나씩 떨어뜨려 그 먼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다시 먼지로 부수어서 그중 한 먼지를 일겁(一劫)으로 셈한다고 할 때, 저 모든 먼지 수의 겁(劫)을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 또는 오백억진점겁(五百億塵點劫)이라 한다. <법화경>에 나와 있는 진점입원겁(塵點入遠劫)이나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시간과 수량을 나타내는 말들로는 겁(劫) 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모두 과장된 내용이다.

     • 찰나(刹那, ksana) - 아주 짧은 시간, 75분의1초라는 주장이 있다.

     • 아유타(阿由陀)---아승기(阿僧祇)와 더불어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의 단위임.

     • 나유타(那由他, nayuta) -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 아유타(阿由陀)의 백배라고 한다. 천만 혹은 천억이라 표현한다.

     • 미진수(微塵數, parmanu) - 세세하게 부서진 것 같이 수많음.

     • 항하사수(恒河沙數), 항하진수(恒河塵數) - 항하(갠지스강) 모래처럼 많은 수량.

     • 모호(模湖) - 확실하지 않은 모양 또는 애매한 상태.

     • 순식(瞬息) - 수유의 1/10, 눈을 한 번 깜빡이고(瞬), 숨을 한 번 쉬는(息) 짧은 시간, 순식간이 찰나의 100배 정도.

     • 탄지(彈指) - 찰나의 10배, 역시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 탄지지간(彈指之間)의 줄임말로 손가락(指)을 튕길(彈) 사이(間)라는 뜻.

     • 수유(須臾) - 순식의 10배 또는 준순(浚巡의 1/10, 지극히 짧은 시간, 불전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인도에서 주야의 30분의 1.

     • 준순(浚巡) - 수유의 10배 또는 모호의 1/10.

     • 소겁(小劫, 산스크리트어 antara-kalpa) - 사람의 목숨이 8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서 열 살이 되기까지의 동안. 또는 열 살에서 100년마다 한 살씩 늘어서 8만 살에 이르는 동안.---→사겁(四劫) 참조.

    

*겁화(劫火, 산스크리트어 kalpagni)---인간세계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는 큰 불을 말한다. 세계가 파멸될 때 일어난다. 불교에서 세상은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되풀이하는데, 괴의 마지막이 되면 큰 불과 큰 바람, 큰 물이 일어난다고 했다. 큰 불을 겁화, 큰 바람을 겁풍(劫風), 큰 물을 겁수(劫水)라고 한다.

   

*게송(偈頌, 산스크리트 gāthā)---산스크리트어 가타(gāthā)의 음사인 게(偈)와 의역인 송(頌)을 함께 부른 것이다. 게송을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형식이 있으나 불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8음절을 하나의 구(句)로 하여 2개의 구가 하나의 행(行)을 이루고, 다시 2개의 행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32음절의 시이다.

    내용은 붓다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중요한 교리를 서술할 때 운문으로 쓴 것을 게송이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운문으로 표현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고기송(孤起頌)과 중송(重頌)이다.

    고기송은 산문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구경(法句經)>이다.

    중송은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요약해서 설한 것이다. 여기서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고 ‘거듭’을 의미한다. 즉, 본론의 산문 내용을 좀 더 자상하고 미세하게 표현해 산문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중복해서 운문체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의 경우, 각 품마다 그 말미에 그 품의 핵심내용을 다시 중송으로 읊고 있다. 이 중송을 일명 기야(祇夜)라고도 한다.

게송은 바로 게타의 게(偈)와 중송의 송(頌)을 따서 게송(偈頌)이라 하게 된 것이라서 고기송이든 중송이든 모두 게송이라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고기송(孤起頌), 중송(重頌), 십이분경(十二分經) 참조.  

 

*게타(偈陀)---가타(gatha, 伽陀)라고도 하는데, 게송이란 말이다.

 

*격외구(格外句)---격식(규격) 밖의 초월한 말 밖의 소식을 이르는 선문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말이나 문자로써 의논 할 수 없는 이치나 말뜻을 벗어난 말을 이르는 것으로 선법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이 격외구로 이르는 선법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이르는 것이다. 일체를 뛰어넘은 향상의 어구, 즉 향상일구인 것이며, 조사가 전한 말씀(어구)이다. 다시 말하면, 말 밖의 소식이요, 뜻이 붙지 않는 선지도리로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인 불성은 말로써 이를 수 없기에 뜻이 붙지 않은 말 밖의 도리로써 이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아~시원하다" 하는 것과 같다. 거듭 설명하자면, 격외구(格外句)는 말 밖의 의지(義旨)를 활구로써 들어 보이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말 밖의 소식이다. 말 밖의 소식이라는 것은 말을 쓰되 말뜻이 직역되지 않고 숨긴 뜻으로 쓰며, 아는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알려고 참구하게 하는 방편으로 쓰는 선문(禪門)의 것이다. 이를 대치해 말 가운데 뜻과 자취를 들어 보이는 교문(敎門)인 차별구(差別句)가 있다.

      

*격외도리(格外道理)---논리를 초월한 언어의 도리를 말한다. 또한 언어의 격식이나 관례를 초월한 말이지만 진리를 담고 있음을 말한다. 설정된 언어의 뜻에 구애받지 않고 부정과 긍정 양 날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언어의 격식을 뛰어넘는 진리에 대한 표현이다. 말이 있으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이 뜨고, 옳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틀이 잡히고, 논리가 생기고, 문법이 생기고, 격식이 생겨, 격식을 벗어나면 틀렸다, 그리고 아니다 하는 갈등이 생긴다. 때문에 진리는 옳다 혹은 그르다 하는 이분법을 뛰어넘는 곳에 있으므로 그 표현도 통상적인 격식과는 달라진다. 선문답(禪問答)이나 화두(話頭)의 경우 대개 격외도리에 해당한다.

    스승이 제자를 보니 공부가 거의 끝나갈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를 거량(擧揚)해 의심을 돈발(頓發)시켜 준다. 이렇게 돈발 된 의심 때문에 무기(無記)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 스승이 제자에게 의심을 돈발 시켜주기 위해 거량한 격외도리를 화두(話頭)라고 한다. 혹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무언가에 콱 막힌 듯하고 더 뚫고 나가지 못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를 거량해 의심을 돈발시켜줘 미망을 한 순간에 벗어버리게 하는 것이 화두이다.

    다음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의 수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제 선사는 중국 선종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창시한 분이다. 고려시대 태고종사(太古宗師) 보우(普愚) 국사에게 법을 전한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가 임제 선사의 문하이니 따지고 보면 보우 역시 임제문손인 셈이다. 임제 선사는 제자를 지도할 때 장황한 설명을 피하고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즐겨 사용했다. 어느 날 경전을 강론하는 좌주(座主) 스님이 임제 선사를 찾아갔을 때 임제 선사가 좌주 스님에게 물었다.

     “좌주는 무슨 경을 강론하는가?”

     “저는 깊이 공부하지 않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백법론(百法論)>을 대강 읽었을 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은 경전을 통달했고 한 사람은 통달하지 못했다면 같은가 다른가?”

     “통달했다면 같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면 다릅니다.”

    이때 임제 선사를 시봉하던 악보(樂普) 스님이 뒤에 서 있다가 말했다.

     “좌주 스님 여기가 어디라고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합니까?”

    이때 임제 스님이 악보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악보 스님이 임제 선사를 향해 대답대신 “악(喔)”하고 소리쳤다. 임제 선사가 좌주를 전송하고 돌아와 악보에게 물었다.

     “아까 나에게 소리쳤는가?”

     “그렇습니다.”

    임제 선사는 대답이 끝나기 전에 악보의 따귀를 한 대 후려쳤다. 지나친 분별심(分別心)은 공부에 해가 된다는 교훈을 법(法)으로 보인 것이다.

        ※<백법론(百法論)>의 원명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名門論)>으로 세친이 지은 유식의 중요한 경전이다.

   

*격외선(格外禪)---말이나 글로써 나타낼 수 있는 이치를 초월한 선법. 의리선(義理禪)을 넘어선 구경선(究竟禪)을 말한다. 불교의 경전에 수록된 부처가 설법한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한 마음의 법리(法理)인 교외별전(敎外別傳), 격식과 단계를 벗어난 수행의 이치인 격외도리(格外道理), 글자에 구애받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에 의한 선을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이러함을 바탕으로 한 선(禪)을 줄여서 격외선이라 한다. 격외선이란 이치적인 접근이 가능한 의리선(義理禪)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통상적인 논리와 지식, 견해 등을 초월한 선의 경지를 말한다. 말하자면 조사선(祖師禪)과 그 계통을 이어받은 간화선(看話禪)을 일컫는다.

    6조 혜능(慧能) 계통의 격외선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하는데, 이 남종의 격외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신라 말 도의(道義) 선사였으며, 그를 이어 많은 선사가 격외선법(格外禪法)을 중국에서 받아들여 산문(山門)을 열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아홉 산문이 이루어졌으므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일컬었고, 그 이후는 물론 지금도 조계종(曹溪宗)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참선법은 격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의리선(義理禪), 조사선(祖師禪), 간화선(看話禪) 참조.

   

*격의불교(格義佛敎)---원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기타 방언으로 기록된 불경(佛經)의 한역(漢譯) 사업은 중국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수행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특히 청담현학(淸談玄學)을 즐기던 당시의 도가적(道家的) 불교 지식인들이 도가의 개념을 빌어 공(空) 사상을 논의했는데, 이와 같이 중국 고유의 이념을 빌어 와서 ‘의미의 짝 맞추기’하는 것을 격의불교(格義佛敎)라 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됐을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불교교리가 많았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유교나 도교 등 중국고유사상으로부터 유사한 개념이나 용어를 차용해 설명한 편법을 가리켜 격의(格義)라 했다. 이렇게 기존 자국 언어를 빌어 이질적인 문화를 방편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격의라 했는데, 불교 도입초기인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나타났던 불교교리 이해 및 연구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불교교의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가져와서 오호16국 시대에 이르러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과 그의 제자 승조(僧肇, 384~414)에 의해 극복돼 나갔다.

   

*견(見, 산스크리트어 dṛṣṭi 혹은 darśana, 빠알리어 diṭṭhi)---견(見)의 원어는 다르샤나(darsana)이다. 이는 ‘보다’는 뜻의 동사어근 √drs에서 파생된 말로서 다만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실상이나 존재 본성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철학을 다르샤나라고 했는데, 불교는 붓다(Buddha) 다르샤나, 자이나교는 자인(Jain) 다르샤나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意見)이나 생각(生覺), 주장(主張)을 말한다. 생각하며 헤아리고 사물(事物)에 대한 견해(見解)를 정하는 사상(思想), 주장(主張), 정견(正見), 사견(邪見) 등으로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편벽된 견해나 주장과 같이 나쁜 의미로 사용된다.

    불교용어로서 견(見)은 일반적으로 보는 것, 보는 힘ㆍ작용(특히 정신적으로) 또는 지혜ㆍ견해를 뜻하며, 넓은 뜻으로는 어떤 일에 대한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혜(慧)의 작용의 하나로 보며 팔정도(八正道)의 정견(正見)이 그것이다. 아견(我見) 등은 악견(惡見)이지만, 견(見)만으로도 악견을 뜻할 때가 있다. 외도(外道)의 62견 등이라고 할 때는 여러 학파의 학설체계를 말한다. 좋은 의미의 견은 정견(正見) 혹은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는 표현 속에 인정된다.

    그 외에 심려(審慮: 심사숙고)하고 결탁(決度: 확인 판단)하는 것, 또는 심려와 결탁을 통해 형성된 의견, 주장을 말한다. 즉, 견(見)의 본질적 성질은 심려(審慮)와 결탁(決度)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모두 견(見)이 혜(慧), 반야(般若) 또는 지혜(智慧), 즉 판단작용 또는 식별력의 일종이라고 봤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견(見)은 바른 견해나 주장인 정견(正見)과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나 주장인 부정견(不正見),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5견(五見)의 경우처럼 부정견(不正見),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 등 부정적인 의미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견의 분류에는 2견 · 4견 · 5견 · 7견 · 8견 · 10견 · 62견 등이 있다. 대표적인 분류로는 8견(八見)을 들 수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견은 유신견(有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계금취(戒禁取), 견취(見取)의 5견(五見) 또는 5염오견(五染汚見: 5종의 그릇된 견해)과 세간정견(世間正見), 유학정견(有學正見), 무학정견(無學正見)의 3정견(三正見)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8견(八見)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구사론>에 따르면 8정도의 정견(正見)이 세간정견, 유학정견, 무학정견의 3가지로 세분돼 정의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간정견은 유루혜(有漏慧)에 속하고, 유학정견과 무학정견은 무루혜(無漏慧)에 속하며, 무루혜의 일부라도 성취하면 성자가 된다고 한다.

        ※세간정견(世間正見)---세속의 정견(바른 견해)을 말한다.

        ※유학정견(有學正見)---유학(有學:무루지를 성취한 성자)의 정견. 예류자 이상의 경지를 실현한 예류자(豫流者), 일래자(一來者), 불환자(不還者)를 유학(有學, sekha/sekkha)이라 한다.

        ※무학정견(無學正見)---무학(無學:성도를 모두 성취한 성자)의 정견, 아라한(阿羅漢)은 더 배울 게 없는 위이므로 무학이라 한다. 따라서 아라한의 정견을 말한다.

        ※유루혜(有漏慧)---무루혜가 성인의 지혜인데 비해 유루혜는 범부의 지혜이다.

        ※무루혜(無漏慧)---더러운 번뇌와 무명(無明)이 없어지고 공(空)ㆍ무아(無我)의 상주실상(常住實相)을 확실히 깨닫는 지혜를 무루혜라 한다. 모든 지혜 가운데 가장 높은 부처님 지혜가 무루혜이다.

    그리고 견과 비슷한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전후 문장의 맥락을 살펴서 파악해야 한다.

     • 관(觀) - 자기 생각을 떨쳐버리고 보는 것. 보통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관(觀)이라는 말 속에는 일관성 있는 생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 사(思) - 의도가 있는 생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분별이나 판단의 뜻도 있다.

     • 념(念) - 생각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망념(妄念)이라고 하면 헛된 생각이다. 기억이나 새김의 뜻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팔정도의 정념(正念)은 바른 기억이나 바른 새김으로 봐야 할 것이다.

     • 상(想) - 어떤 대상을 떠올리는 것. 

         

*견견 문문 각각 지지(見見聞聞覺覺知知)---언제나 보이는 것은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은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은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은 알기만 하라. 즉, 볼 땐 볼 뿐, 들을 땐 들을 뿐, 느낄 땐 느낄 뿐, 알 땐 알 뿐! 이처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 연소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품의 자리인 시비분별이 없는 그 자리를 바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 <바히야경(Bahiyasutta)>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사 많은 현상과 사물들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며, 또 알지 못하고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왜곡해 보고 듣고 느끼며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왜곡된 채 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으며, 또 다른 그 사람은 거기에 보태고 비틀어서 다시 전달해주고 있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정확히 보고 ‘나’를 놓아버릴 때에 자유로운 ‘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바히야경>은 <우다나경(Udana)> 제1품인 ‘깨달음의 품’ 10번째에 나오는 경(법구경은 두번째 경)이다. <우다나경>에서 우다나(優陀那)란 감흥 해 저절로 나오는 말로, 한역하면 자설(自說) 또는 무문자설(無問自說)이 된다. 이 <우다나경>은 부처님의 우다나를 모은 것으로, 빠알리어 경장 중 소부(小部, 쿳다까니까야)의 세 번째 경이다.

   

*견(見)과 관(觀)---사람이 사물을 보는 데는 단순히 눈에 비치는 대로 피상적으로 보느냐 마음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견(見)과 관(觀)으로 구분된다. 견(見)은 눈에 비치는 대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견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벽이라고 하듯이 단편적인 면밖에는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관(觀)이라 한다. 대체로 이렇게 견과 관에 대한 해석이 일반적이다.

   흔히 대화를 할 때, "제 사견(私見)입니다만"하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견이 전형적인 견(見)이다. 사견은 자기가 자라온 여건, 환경, 교육, 경험치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의견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내 기준으로 보면 상대의 의견은 모두가 틀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한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견(見)’이라 하며, 멀리 있는 것을 큰 눈으로 살피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고, 그리하여 남의 어려움을 살필 때에는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견(見)’의 눈으로 봐야 하며, 남의 잘못을 대할 때에는 한 걸음 뒤에서 대자대비 한 큰 눈으로 살피는 ‘관(觀)'의 눈으로 봐야 하고, 또 내 잘못에는 ‘견(見)’의 눈으로 자세히 살펴야 하며, 내 어려움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관(觀)’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극히 통속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견(見)은 낮은 수준의 단어이고, 관(觀)은 보다 심오한 개념의 단어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극히 위험한 해석이다. 견(見)도 정견(正見), 지견(知見)과 같이 수준 높은 말에도 쓰인다.

초기경을 통해서 견과 관에 대해서 살펴보면, 중국에서 관으로 옮긴 원어는 일단 위빠사나(vipassanaa)로 이해된다. 지관(止觀)이라 할 때, 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vipassanaa를 관으로 옮긴 경우는 법의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견으로 옮긴 대표적인 용어가 정견(正見, sammaa-dit*t*hi)으로서 정견(正見)은 사성제에 대한 이해와 연기를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런데 딧티(dit*t*hi)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거의 대부분 삿된 견해(邪見)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지견(知見, ñāṇadassana)이라는 말은 안목(眼目)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후대로 올수록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견이니 관이니 하는 술어를 쓸 때, 확실한 기준 없이 쓰는 사람 입장에서 그냥 썼다. 그러므로 견과 관을 뚜렷이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견도(見道, 산스크리트어 darśana-mārga)---초기불교에 있어서 성문과 보살 수행단계인 삼도(三道)의 첫 단계로서 통속적으로 견성오도(見性悟道)한 위치를 말한다. 번뇌가 없는 청정한 지혜에 의해 4제(四諦)와 12연기(12緣起) 도리를 깨닫는 수행과정을 말한다. 4제를 명료하게 관찰해 견혹(見惑)을 끊고, 무루(無漏)의 바른 지혜를 발휘해 4제와 같은 진리를 통찰하는 단계이므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견도 - 견성오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견도(見道)는 부파불교의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의 수행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며, 대승불교(화엄경)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마지막인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의 십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 즉 환희지(歡喜地=初地)에 해당하는데, 이 이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성자라고 한다.---→삼도(三道) 참조.

        ※삼도(三道)---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말함.

        ※예류향(預流向)---초기불교 성문(聲聞)의 수행 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 사과(四果) 중 수다원을 예류향이라 함.

        ※통달위(通達位)---유식설(唯識說)에서, 수행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수도 5위(修道5位) 중 셋째 단계.

        ※10지(十地)---<화엄경>에 천명한 보살수행단계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가 10지이다. 

      

*견문각지(見聞覺知)---견(見) ‧ 문(聞) ‧ 각(覺) ‧ 지(知)가 합쳐진 것으로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견(見) ‧ 문(聞) ‧ 각(覺)은 전5식의 마음작용에 해당하고, 지(知)는 제6 의식과 이보다 더 심층의 식(識)들의 마음작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견문각지(見聞覺知)는 마음[心], 즉 6식 또는 8식이 객관세계를 접촉하는 것을 총칭한다.

    마음의 모든 인식활동 또는 인식기능을 통칭하면서, 그것을 견ㆍ문ㆍ각ㆍ지 네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각지(覺知)는 ‘깨달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느끼고 안다’로 풀이해야 한다. 견문각지는 불교의 인식론(유식론)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기능인 여섯 가지 인식(六識) 작용 - 내지 여덟 가지 인식작용을 네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마음(意)의 여섯 가지 인식기관이 있고, 이 기관들은 각각 고유의 인식기능이 있다. 그 기능의 작용을 보면, 눈은 보고(見), 귀는 듣고(聞), 코는 냄새를 맡으며(聞), 혀는 맛을 느끼고(覺), 피부(온 몸)는 촉감 등을 느끼고(覺), 마음은 앞의 다섯 가지를 통합하거나 고유의 기억작용 등과 연계해서 판단하고 아는(知) 것이다. 다시 말해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이 지닌 탁월한 모든 능력을 요약한 것이며, 그 작용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듣는다.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 숨어 있다. 분명 탁월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흔히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이 탁월한 인식능력을 왜 불교에서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인식능력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주인 노릇하게 두지 말라는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분별’ 해서 아는 그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없다 - 그만큼 감각이라는 게 부정확하다 -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바로 갈등과 싸움으로 이어져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세상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전쟁도 그 시작은 단순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은 낱낱의 생각들이 절대적으로 영원히 옳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이미 일어난 그 생각에 절대적 가치를 두지 말고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지혜로 밝게 보라는 말이다. 중도적 지혜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생각이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번갯불 같은 것임을 밝게 봐야 한다. 한 생각이 일어나 끌려가기 시작하면 그림자처럼 고통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그 자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송강 스님

    그러니 견문각지란 육식(六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은 견문각지로 살아간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와 혀와 몸으로 느끼고, 의식으로 많은 것을 안다[覺知]. 이것을 분별식(分別識)이라고 한다. 각지(覺知)는 분별하여 안다. 이건 산이다, 이건 몸이다, 이건 넓다, 작다, 좋다, 싫다,… 이렇게 미추호오(美醜好惡)를 분별한다. 그런데 이러함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 생각이기 때문이다.

*견번뇌(見煩惱)---<대지도론>에 견애 이번뇌(見愛二煩惱)를 설하고 있다. 여기서 견번뇌란 존재의 이치에 대한 번뇌, 이성(理性)에 의한 번뇌, 즉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 등과 같이, 이치를 명료하게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지적 번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애번뇌(愛煩惱)란 탐(貪)ㆍ진(瞋)ㆍ치(癡) 등과 같이,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심리적 번뇌를 말한다.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유식학(唯識學)에서 설하는 4분설에 나오는 말이다. 견분(見分)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상분은 인식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견분은 보고 인식하므로 주관이고, 상분은 보이는, 보여지는 대상, 즉 인식주관에 드러난 인식대상인 객관을 말한다. 견분ㆍ상분 모두 마음 작용인데, 견분은 인식하는 장(場)이 되고, 상분은 인식하는 대상이다. 즉, 견분은 사물(事物)을 인식하는 주체인 심식(心識) 작용이고, 그 반대가 인식의 대상인 상분(相分)이다. 여기서 주관의 부분을 견분(見分)이라 하고, 객관의 부분 즉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影像)을 상분(相分)이라고 한다.

    견분은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뜻으로 법을 알아보는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로서 사물을 마음 안에서 인식하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상분은 마음속에 객체인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견분은 대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이므로, 수행에 있어서 만일 견분이 없다면 관조(觀照)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유식(唯識) 4분설(四分說), 견문각지(見聞覺知) 참조.

   

*견사혹(見思惑)---천태종의 번뇌론에, ① 견사혹(見思惑) ② 진사혹(塵沙惑) ③ 무명혹(無明惑)의 삼혹(三惑)이 있다.

    그 중 견사혹(見思惑)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으면서 불도의 성취를 방해하는 번뇌를 말하는데, 견혹(見惑)과 사혹(思惑)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견혹(見惑)은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의 5리사(五利使)를 말하고, 사혹(思惑)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의 오둔사(五鈍使)를 말한다. 5리사와 5둔사를 합쳐 십사(十使)라 하니, 견사혹은 결국 십사를 말한다.

여기서 ‘이(利)’는 예리하다는 뜻이고, ‘사(使)’란 번뇌를 뜻한다. 이것을 끊는 순서로는 수행단계 수도5위의 견도위(見道位)에서 견혹(見惑)이 끊어지고, 수도위(修道位)에서 사혹(思惑)이 끊어진다고 한다.

        ※견도위(見道位)와 수도위(修道位)---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성도하기 위한 다섯 단계 수행과정을 수도5위라 하는데, 이에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견도위(見道位/통달위), 수도위(修道位/수습위), 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가 있으며, 그 중에 제3위가 견도위이고, 제4위가 수도위이다. 특히 견혹(見惑)이란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를 말하며, 이 견혹을 이혹(理惑)이라고도 한다.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인 이혹(견혹)은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즉, 알게 되면 자연히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 한다.

 

   특히 견혹(見惑)이란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를 말하며, 이 견혹을 이혹(理惑)이라고도 한다.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인 이혹(견혹)은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즉, 알게 되면 자연히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 한다. 

    그리고 사혹(思惑)이란 수혹(修惑)이라고도 하는데, 구생혹(俱生惑)이라 해서 태어남과 동시에 따라오는 번뇌이다. 견혹(見惑)처럼 분별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번뇌가 아니라, 훈습적이고 감정상의 미혹이기 때문에 떨쳐버리기가 오히려 어렵다.견혹이 후천적인 번뇌라면, 사혹은 선천적인 번뇌이고, 견혹은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성제의 이치만 바로 알면 바로 해결되지만, 사혹은 올바른 수행에 의해서만 닦아 없앨 수 있다.

    번뇌를 극복하는 해탈사상은 대 ․ 소승을 막론하고 불교수행의 근본대의가 돼 있다. 헌데 대승불교가 일어나고부터 번뇌는 꼭 끊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그대로 두고도 수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꼭 번뇌를 끊으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끊지 않고 ― 그대로 두고 수행을 한다는 말이다. 잘못 들으면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말이지만, 번뇌가 일어나도 그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견상(見相)---3세(細)의 하나. 능견상(能見相)의 준말임. 무명의 망념이 움직이면 이 움직임에 의해 사물을 보는 작용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능견상(能見相) 곧 견상이다. 이때의 보는 작용이라는 것은 실제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 극히 미세한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즉, 상주부동(常住不動)하는 진여가 무명(無明)을 일으키는 동시에 흔들리는 모양을 드러내고, 다시 주관적으로 반연하는 보는 작용을 일으키는데, 그 반연하는 보는 작용을 견상이라 한다.---→삼세(三細), 견처(見處) 참조.

   

*견색명심(見色明心)---<벽암록>에 견색명심 문성오도(見色明心聞聲悟道)라는 선어(禪語)가 있다. 사물의 모양을 보고 거기에 응해 마음을 밝히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친다는 말이다. 이는 곧 산하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 일체만물 모두가 불성을 갖춘 진리의 세계 아님이 없고, 선의 세계가 아님이 없다는 무처불시선(無處不是禪)의 경계를 말하고 있다.---→문성오도(聞聲悟道) 참조.

   

*견성(見性)---견성의 ‘성(性)’은 본성을 가리킨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견성이란 본래의 자기면목, 즉 본시 그대로의 자기 본성(本性)을 본다 ― 깨닫는다는 뜻이다. 보통 깨달음의 경우 견성이라 하고, 일반적 지식은 견해라 한다. 즉, 진리의 영역을 견성이라 하고, 지식의 영역을 견해라 한다.

    견성이란 말은 육조 혜능(慧能, 638~713) 대사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과연 달마(達磨, ?~528) 대사가 중국에 와 "이심전심 견성성불(以心傳心 見性成佛)"이란 말을 했는지 역사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혜능 이전엔 ‘관조(觀照)’ 또는 ‘적조(寂照)’로서 깨달음을 보편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혜능이 ‘조(照)’ 대신에 ‘견(見)’을 넣어 "견성"이라고 한 것이다. 관조와 적조가 편견에 빠지기 쉬웠던 데 비해 견성은 혜능 당대에 성불로까지 파악됐던 것은 흥미롭다.

    세상을 지식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형상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른 점도 있다. 우리의 인식, 다시 말해서 안식(眼識)의 허망함을 알고, 안식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무상(無想)의 상태가 견성이다. 본연의 자기는 항상 존재하는데 어째서 보지 못할까, 생각에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구름이 계속 덮여 있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견성이요, 진리의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결국 견성(見性), 성불(成佛), 해탈(解脫), 득도(得道), 돈오(頓悟), 혜오(慧悟), 확철대오(廓徹大悟), 깨우침, 한 소식 등이 모두 같은 말이다.

    달마(達磨) 조사, 그리고 육조 혜능(慧能) 선사도 성품을 보면 ― 각자의 본래면목(본성)을 보면, 부처를 이룬 것과 같다[견성성불(見性成佛)]고 가르쳤고, 그 가르침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불성(佛性) 그대로인데, 경계에 따라 본성이 흐려지는 것이므로,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라 했다. 즉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自性)을 깨달아 아는 것이 견성이다.

    부처의 성품이 있는 것과, 부처의 성품을 발견하는 것과, 부처의 성품을 완전히 드러낸 것에는 차이가 있다. 부처의 성품을 한번 힐끗 봤다고 부처가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중생에겐 불성이 있지만 가려져 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바로 불성이 가려져 있느냐, 완전히 드러나져 있느냐 하는 차이다. 뭐가 가리느냐, 바로 망념에 물든 내 마음이 가리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이 마음, 움직이는 이 마음은 허상이고, ‘나’가 아니다. 그냥 생겼다가 사라지는 생각의 파편들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구름에 가린 하늘과 같다. 그래서 하늘의 태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태양은 언제나 거기에서 빛나고 있다. 그 구름을 단 한방에 모조리 치워버리는 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이고, 꾸준히 수행을 하면서 조금씩 치워나가는 것이 돈오점수(頓悟漸修)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견성성불(見性成佛)’은 자기본성을 보면, 즉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참나]을 깨쳐서 알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이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 달마(菩提達摩, ?~528) 대사의 가르침으로,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깨달아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깨치게 되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이 ‘견성성불’은 자기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쳐야 한다는 선종(禪宗)의 이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견(見)’이란 눈으로 본다 ‧ 돌이켜 본다 ‧ 터득 한다 ‧ 생각 ‧ 변별 ‧ 견해라고 하는 뜻이 담겨있다. 보는 것과 깨쳐 아는 것이라는 뜻이 함께 함축된 글자이다. 그리고 견성(見性)의 ‘성(性)’은 본심(本心), 본성(本性)을 말한다. 마음의 본질, 마음의 주체, 마음의 실체로서 선문에서는 불성(佛性), 자성(自性) 또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한다.

    그리고 ‘견성(見性)’이란 ‘견불성(見佛性)’의 준말로 “불성을 본다 - 깨친다”는 뜻인데, 불성은 곧 ‘중도(中道)’를 의미하며, 견성은 ‘중도의 자각’이다. 따라서 견성성불은 중도를 자각해 자기본성(본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본래의 자기면목(自己面目), 본시 그대로의 자기본성을 깨치면 성불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리는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자기 본래면목을 찾게 되면 그것이 곧 성불이 된다는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것이 교종(敎宗)이라면, 선종은 부처님의 마음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학수행이나 계율을 통해 마음을 맑게 함으로써 지혜를 얻는 교종과는 달리, 선종에서는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단번에 깨쳐서 - 돈오(頓悟)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문득 깨쳐서 자기 본래의 성품을 바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해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면, 즉 견성하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본래 자기 안에 부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견성성불은 중국 선종의 6조 혜능(慧能, 638~713)을 시조로 하는 남종선(南宗禪)에서 강조했다. 견성성불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중국 양(梁)나라시대 보량(寶亮, 444~509)이 지은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확립된 것은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부터이다.

    <육조단경> ‘반야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 본래 스스로의 성품이 청정하니 만약 자신의 이 마음을 알면 그대로 견성이라, 모두 도를 이루리라(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우리의 본래 성품이 바로 부처이며, 이 본래 성품을 떠나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本性是佛 離性無別佛)”.

    이러한 생각은 부처는 하나가 아니라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의 불성설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을 선불교에서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며, ‘자성이 부처(自性是佛)’라는 심성(心性) 이해로 받아들여 성립시킨 사상이 곧 견성성불설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달마의 견성성불설을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달마는 사람들이 헷갈리기 좋도록 교묘하게 암시와 최면을 걸고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구절 속에 들어있는 '성불(成佛)'이 그것이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은 달마의 선이 마치 성불의 첩경인 줄로 깜빡 속고 말았다. 성불, 부처가 되라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달마가 말하는 부처는 신선이지, 석가세존이 이루신 부처가 아니다. 그 방법도 석가세존이 가르쳐주신 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달마는 직지인심(直旨人心)해서 견성(見性)하면 그 자리에서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헛소리를 했다. 공부도 필요 없고, 경전도 소용없으며, 근기도 막론이고, 아저씨나, 아줌마나 할배나 할매나, 심지어 개나 소나 전부 자기 마음 하나 척 바로 보고 자기 본성을 척 보면 곧바로 부처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달마 이후 천년이상 지나도록 마음 하나 바로 보고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성불한 사람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견성성불에서 ‘불(佛)’은 부처님이 아니라 ‘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처님은 초기불교경전인 <5부 니까야> 를 통해서 자신의 오온을 먼저 관해 ― 오온의 성품을 통찰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우선 선업과 공덕이 있어야 한다. 보시(보살행)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7불통게(七佛通戒)에도 나오는 제악막작(諸惡莫作)과 중선봉행(衆善奉行)이다.

   이렇게 선업의 힘이 쌓이면 사마타 수행을 거쳐 자정기의(自淨其意) 하면, 위빠사나 수행으로 있는 그대로 아는 통찰지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직관하는 지혜. 그리고 고ㆍ집ㆍ멸ㆍ도 사성제를 경험으로 체득하는 지혜가 생긴다. 그 결과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 모든 갈애가 소멸된  아라한이 돼 생사윤회의 고리를 잘라버리게 된다. 이런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7불통계로 잘 전수돼왔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후 수백 년이 지나자 부처님 당시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달해 윤회를 끊는 것보다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보살행을 하며 모든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윤회를 끊지 않고 어딘가에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시지 않은 수많은 보살이 출현하고 수만 억 불국토와 수만 억 부처님이 출현하고, 드디어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이론까지 나왔다. 헌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아에 완전히 반대 되는, 재생이 아닌 환생이론으로 바뀌면서, “나는 죽을 때 몸은 버리고 마음은 어딘가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을 사는 나의 실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자아(아트만)사상, 즉 힌두교의 이론이 삽입된 변질된 불교가 됐다는 것이다.

   내가 윤회를 끊어 완전히 소멸되는 것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이라는 근사한 삶을 사는 나의 환생을 중생들이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이러한 현란한 이론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게 돼,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선불교가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불교는 대승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불해 윤회를 끊는 것보다는 보살행을 강조한 것에 반발해 마음만 깨치면 부처라는 견성성불을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성불은 모든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하는 것이다. 결코 18불공법을 지닌 부처님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불교의 견성성불은 오온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견성과 탐 ․ 진 ․ 치라는 모든 번뇌나 집착을 소멸한 아라한의 경지를 성불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는 우선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선업을 행하는 것을 중요시했고, 거기에 다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로 해탈 열반(아라한)을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교가 부처님 입멸로 힘을 잃게 되면서 해탈 열반보다는 보살행을 주장하는 대승불교가 일어났고, 다시 이런 대승불교에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행을 강조하지 않고 우선 자신의 견성성불―아라한이 되는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보니 더 후퇴해버린 것이다.---→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참조.

              

*견성성불(見性成佛)과 화두 참선---참선을 하면서 화두를 들었으면 그 화두를 깨쳐야 된다고 하는데, 화두를 깨친다는 말은 견성성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화두의 의미를 안 것일 뿐이다. 화두를 깨쳤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두뇌 세포가 더 많이 활성화 되거나 정신이 좀 맑아 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화두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첫째, 경전과 조사들의 어록을 통해 언어 문자로써 짐작하고 추측하는 것으로는 화두를 참으로 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화두란 법외지법 물외지물(法外之法 物外之物)을 가리키는 것으로 화두의 언어란 단순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화두라는 의식의 틀을 홀연히 깨지고, 그 너머 진여(眞如) 세계를 직관하는 것으로, 이것을 화두를 깨쳤다는 것인데, 곧 견성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견성했다고 곧 성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견성즉성불(見性卽成佛)’이라는 말이 있으나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견성성불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는 것이다 → ‘견성성불(見性成佛)’ 참조.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阿羅漢) 이상은 오를 수 없다. 중생은 아라한이 한계이다. 따라서 견성즉성불(見性卽成佛)이란 위험한 표현이다. 화두 참구를 통해 얻은 견성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다. 자성(自性)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으나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무시겁(無始劫)으로 내려오면서 쌓아온 기(氣)와 습(習)은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지 않는다. 업장(業障)도 자기 힘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백겁동안 지은 죄업이라도 한 생각 깨쳐 광명을 보면 찰나에 없어진다 ―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하는 말도 이치상으로는 말이 되는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힘들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오직 붓다의 화신에게만 가능하다.

    흔히 선가(禪家)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새벽 별을 보고 깨쳐 붓다가 되셨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확철대오(廓撤大悟) 했다고 해서 붓다라고 할 수 없다. 오랜 생(生) 동안 여러 단계와 관문을 통과해서 불신(佛身)을 얻어야 붓다가 되는 것이다. 대오견성은 아라한 자리에 이른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비관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견성성불 요익중생(見性成佛饒益衆生)---안으로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밝고 바르게 보아 앎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어 성불할 것이며, 밖으로는 중생을 널리 구제해 이롭게 한다는 가르침이다. 대승불교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 같은 말이고,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경우, 우리역사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비슷한 말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참조.

  

*견성오도(見性悟道)---견성과 오도를 합친 말이다. 견성은 본래성품을 깨닫는 것이고, 오도는 번뇌를 해탈하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래성품을 찾아 깨달으면 번뇌 망상을 해탈하고 반야의 지혜광명을 얻어서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간화선에 있어서 화두를 가지고 자신의 성품을 잘 관찰하면 도를 깨달을 수 있고, 부처의 경지가 될 수 있다는 말로서 견성성불(見性成佛)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견성(見性)과 부처님의 정각(正覺)은 다르다. 견성(見性)은 자기에게 있는 불성(佛性)의 본바탕을 보는 것인데, 그 본바탕은 모든 부처님과 꼭 같다. 그러나 견성한다고 해서 부처님과 같은 육신통(六神通)ㆍ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ㆍ사무소외(四無所畏)와 같은 만덕의 묘용(妙用)이 다 나타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이 곧 석가모니불의 견성오도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의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선사(禪師)가 참선하다가 견성한 것은 자기의 불성(佛性)을 발견한 것이니 그 불성을 발견한 뒤에 자꾸 닦아서 최후에 부처님 경지가 완성되도록 하라고 가르친 것은 만고불역(萬古不易)의 큰 교지(敎旨)이다. 이것과 달리 말하는 것은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소리이다.

   

*견유몰유(遣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말인데,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有)와 공(空)을 상대로 말하고 있는데 현상적으로 보이는 일체 문제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논함으로써 사람 심리(心理)의 깊은 곳을 다루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미는, “있음의 세계 즉, 세상 삶이 어렵다고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면 벗어나겠다는 그 마음이 더 큰 문제가 되고, 공적(空寂)함을 추구하면 구하는 그 마음이 이미 공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내 몸이라고 하는 이 육신이 있는 한 결코 세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내 몸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 몸이 곧 세상이라면 어디로 벗어난다는 말인가? 그리고 세상을 벗어나려는 목적이 내 몸 하나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그건 벗어나려는 게 결코 아니다. 이 몸에 대한 집착이다. 공(空)함의 대자유(大自由)마저 이 몸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업(業)의 작용이다. 자기 생각에 자기가 속고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 속는 줄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있음을 버리려고 할수록 오히려 있음에 더 깊이 빠져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사람이 어떤 일에 중독됐을 때 무조건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몸에서 그것을 요구하는 욕구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

    또 부부지간에 살다가 한 쪽에서 바람이 났을 때, 그 바람을 막으려고 강력한 경고나 행동을 하게 되면 뜻밖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사귀거나 이성교제를 할 경우,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면 의심을 사서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구나 공(空)이란 이 몸을 떠나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이 몸이 세상이라면 세상 법 떠나서 공을 알려면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세상 법 떠나서 공을 찾는다면 이미 양변에 떨어진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 지닌 제7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과거에 지은 업들 중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에 집착해 그 ‘나’란 존재를 보존하고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하고자 온갖 생각을 다하고, 그 생각들을 제6 의식으로 하여금 집행하게 한다. 그러나 제6 의식은 제7 말나식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현재 자기로서 해야 할 일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능력이 있어 본래부터 청정한 제8 아뢰야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이 욕구를 원력(願力)이라 하는데, 이 원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제7 말나식과 접전(接戰)을 벌려야 한다.

    그런데 접전을 벌리게 되면 말나식도 그 동안의 업력에 의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있는 것을 없애려고 하던 것이 오히려 있음에 빠지게 되고, 공(空)하게 되려하다가 오히려 공을 등지는 사례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없애고자 하는 업의 종자를 하나하나 찾아 소멸시켜가는 방법을 택해 서서히 진행하든지 아니면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처럼 백 척이나 되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더라도 한발 앞으로 나간다는 정신으로 대담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서 상(相) 속에서 상을 떠나야 되고, 공(空) 속에서 공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세상사 귀찮다고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보기 싫은 꼴 안 보려고 눈감고 살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보기 싫다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은 대상인가. 보고 싶은 꼴 안 보고 시각장애로서 살지 않으려면 오만 꼴 다 보고 살아야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느 선까지를 봐야 할지, 어느 것을 안 봐야 할지 하루 종일 그것을 분별하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 있음의 세계란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림자인데 어떻게 환영의 그림자를 실체화시킬 수가 있겠나? 그래서 “있음을 버리려면 오히려 있음에 빠진다”고 한 것이다.

    반대로 공(空) 함을 따르면 모양도 빛깔도 없는 공을 따를 수가 없다. 공(空)을 좋아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공을 등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空)이란 공을 추구하는 그 생각이 끊어진 상태, 시비분별 끊어진 곳, 내가 없어진 자리이다. 내가 없어진다면 죽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 몸이 바로 이 자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고 양변을 벗어나 완전한 행복,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에 드는 것을 말한다. 대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을 따르면 공함을 등진다”고 했으니 이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가.

   

*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옛날 어떤 스님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멧돼지가 쫓아와서 대들기에 그 코를 쥐어 잡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의 코를 잡고 있었더라는 것이다. 이런 제 정신이 아닌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제 마음의 움직임 탓이므로, 마음의 틈을 타서 마(魔)가 침노해서 벌어진 일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지어내 바깥 마를 불러들인 것이다. 마(魔)란 바른 생각을 잃어버린 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옛 말에 벽에 틈이 나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나면 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는 것이라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재주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려라 하는 것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견효자이작고(見孝子而斫股) 참조.

   

*견지(見地)---일반사회에서는 어떤 사물을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수행의 기틀이 잡힌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일컫는다. 즉, 삼계(三界 -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어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는 경지이다.

천태종에서는 보살 수행의 단계로서 통교(通敎) 10지(地)를 말하는데, 통교 10지는 초발심(初發心) 단계에서 부처의 지위까지를 열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그 통교 10지 중, 제4위가 견지(見地)이다.---→‘통교(通敎) 10지(地)’ 참조.

   

*견처(見處)---자기가 보는 입장, 자기견해, 자기가 파악하고 있는 바란 뜻이고, ‘견(見)’은 견해, 세계관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경지. 비록 다른 사람은 잘 몰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 깨쳤는가는 자신이 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깨쳤다고 칭찬해 주어도 스스로 볼 때 깨치지 못했다면 깨치지 못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몰라도 스스로가 아는 깨친 경지가 있다.

    경계는 곧 외계의 대상이고, 경계상(境界相)은 마음작용인 견상(見相)에 의해 인지되는 대상을 말한다. 망상심이 일어남에 따라 경계를 비추어 나타내는 의지적 작용이 작용할 때 거기에는 반영돼 나타나는바 경계상이 존재한다. 그것이 견처이다. 따라서 견처란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에 의해 나타난 차별의 상, 허망의 상에 불과한 것이며, 진여의 본성에 적응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이 멎어 없어진다면, 거기에 비추어 나타나는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잡다한 생각을 가진 중생들이 모여 사는 사바세계에선 각자 제가 처한 위치(집단)에 따라 제 눈에 안경으로 제가 옳다는 아상(我相)으로 서로 다른 견해가 상충 격돌하게 된다. a 또는 a 집단은 a가 옳다하고 b 또는 b 집단은 b가 옳다 주장 고집하는 바, 그것이 제 나름의 견처(見處)인 것이다.

  

*견 청정(見淸淨, 빠알리어 diṭṭhi-visuddhi)---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마음의 청정(visuddhi)을 닦음의 일곱 단계를 칠 청정(七淸淨)이라 하는데, 그 하나가 견 청정이다. 초기경전인 <역마차경(驛馬車經/Rathaviniitasutta)-중부아함(맛지마니까야) 제24경>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왕이 다른 지역으로 갈 때 일곱 대의 역마차를 번갈아 타고 그곳에 당도하는 것에 비유해서 7청정이 설해져 있으며, 초기불교 수행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경이다. 7청정은 아래와 같다.

     ① 계 청정(戒淸淨) ② 마음 청정(心淸淨) ③ 견 청정(見淸淨)

     ④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도의 청정(渡疑淸淨)

     ⑤ 도(道)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 청정(知見淸淨)

     ⑥ 도(道) 닦음에 대한 지견 청정(知見淸淨)

     ⑦ 지와 견에 의한 청정(知見淸淨)

    여기서 순서에 따라, 계의 청정은 마음의 청정을 위해서, 마음의 청정은 견 청정을 위해서, 견 청정은 의심을 제거하는 청정을 위해서, …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수행을 해서 완전한 열반에 이르기 위해 닦는 것이 7청정 수행이다. 수행체제에서 단계적으로 먼저 계 청정이 이루어져야 계 청정을 통해 마음의 청정이 이루어지고, 마음의 청정에서 견 청정 즉 정견(正見)에 이르게 된다.

견 청정이란 ‘아는 혹은 이해하는’ 단계이다. 학교를 비유하자면,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수업을 받거나 교과서를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 그것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심 청정(心淸淨)에 닮았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차츰 깊어진다. 공부하면 할수록 이해가 깊어진다. 그리고 머리가 영리해진다. 이것이 위빠사나 실천의 경우, 견 청정의 단계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아론(自我論)’은 잘못이다. 무상(無常)이 올바르다.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삶과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밝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욕망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세계는 신(神)이 창조한 것도, 우연히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인연(因緣)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등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하게 된다. 이것이 견 청정이다.---→칠 청정(七淸淨), 심청정(心淸淨),계청정(戒淸淨) 참조.

  

*견취견(見取見)---<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5견[(五見=오리사(五利使)]의 하나.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해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졸렬한 지견(知見)을 잘못 믿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목구멍이 좁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것을 흔히 견취견에 비유한다. 견취견은 자기가 한번 긍정한 것에 집착해서 절대로 고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므로 목구멍이 좁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것에 비유한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좌파들이 주로 이렇다. 불교공부를 함에도 자기마음에 드는 것만 믿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무시한다면 그 게 다 견취견이다.

    공자님이 60대에 들면, 이순(耳順)이라고 해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귀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래 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자신만의 울타리,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겨서 이순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을 얻어 견취견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이 들면 오히려 똥고집이 세지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주변사람과 잘 다투는 경우, 의견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결국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다.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로 자기주장만 하니까 그렇다.---오견(五見), 견혹(見惑) 참조.

 

*견해(見解, 빠알리어 diṭṭhi)---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너무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견해의 문제에 대한 고뇌를 누구보다 많이 하신 분이 바로 붓다이다. 그래서 붓다는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長部)>의 첫 번째가 되는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과거에 관한 것 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것 44가지로 나누어서 모두 62가지로 분류해서 심도 있게 설명하셨다.

    그리고 붓다는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셨다. 견해란 “느껴진 것(vedayita) 혹은 체험되고(anubhūta) 경험된 것(anu-bhavana)”으로 설명하셨다. 그리고 경험된 것은 감각기능(根)과 대상(境)과 알음알이(識)의 세 가지가 서로 조우함을 조건으로 일어나는데, 이러한 조건발생을 연기(緣起)라고 하셨다.

    이렇게 붓다께서는 견해를 감각기능(6근) ‧ 감각대상(6경) ‧ 알음알이(6식), 즉 근(根) ․ 경(境) ․ 식(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 기인한 감각접촉의 산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견해에 해당하는 말이 상(想, 빠알리어 산냐/saññā)이다.

    그런데 우리마음은 어느 정도의 견해(見解)ㆍ신앙(信仰)ㆍ미신(迷信)ㆍ사고(思考)ㆍ철학(哲學) 등으로 억압당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치성을 드린다, 기도를 한다, 제령(除靈-나쁜 영을 쫓아냄)을 한다, 점을 친다, 명소를 찾아 우주의 힘을 받는다, 풍수(風水)나 방위학(方位學)에 의지한다, 아무런 신앙이 없음에도 모든 종교가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종교마다 경의(敬意)를 느끼거나 위협을 느낀다, ……”, 이와 같이 끝이 없다. 따라서 견해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라고 하는 사람은「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견해」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이 견해에 갇혀 있는 것은 존재의 욕구에 갇혀 있기도 하다. 존재욕이 있으면 당연히 두려움, 공포감, 불안으로부터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이것은 성냄의 감정이다. 이 두 가지(욕구와 성냄)는 무지(無知)로부터 일어난다. 요컨대「견해가 있다」라는 것은 마음이 오염돼 있는 것이다.---→견청정(見淸淨, 빠알리어 diṭṭhi-visuddhi), 상(想 빠알리어 산냐/saññā) 참조.

    

*견혹(見惑)---견혹은 2혹(二惑)의 하나로 사혹(思惑)에 대칭되는 말이다. ‘혹(惑)’이란 마음의 미혹, 번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견혹이란 진실의 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따라 분별하는,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이고, 후천적 번뇌이다. 이에 비해 사혹이란 세간의 현상에서 일어나는 탐 ‧ 진 ‧ 치 따위 습관적 ․ 선천적 번뇌를 말한다. 견혹에는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견취견(見取見)의 오리사(五利使)가 있다. 견혹과 사혹, 이 두 혹(惑)을 끊는 데에는 순서가 있으니, 먼저 견혹을 끊고 뒤에 사혹을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견혹을 끊는 단계를 견도위(見道位), 사혹을 끊는 단계를 수도위(修道位)라 한다.

     • 신견(身見)이란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 등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모든 일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 변견(邊見)은 사물을 한쪽으로만 보는 것이다. 사물은 모든 면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데, 한쪽에 치우친 단견(斷見) 또는 상견(常見)과 같은 견해에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편견이 이에 해당한다.

     • 사견(邪見)은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는 생각들로서 바른 인과(因果)를 뒤집어서 제 복만 구하는 삿된 견해를 말한다.

     • 계금취견(戒禁取見)은 자기가 한번 부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디까지나 부정을 고집하는 것으로 여기서 ‘계(戒)’란 부정(否定)을 말한다. 야당이 여당이 하는 일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계금취견이다.

     • 견취견(見取見)은 계금취견과는 달리 자기가 긍정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타좌(打坐) 수행을 하다 경계가 나타나거나 빛을 보기도 하는데, 이 빛이야말로 도(道)라고 생각해 이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견취견에 빠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견해와 관념상의 문제이다.

    견혹을 때로는 이혹(理惑)이라고도 하는데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러한 지적인 번뇌이므로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알게 되면 쉽게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고 한다. 이치에 관한 번뇌, 이론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견도위에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할 때 문득 다 끊어진다.---→오견[(五見)=오리사(五利使))], 오위(五位) 참조.

       

*견효자이작고(見孝子而斫股)---옛날 어떤 스님이 좌선을 하고 있는데 상복을 입은 사람이 송장을 메고 와서, '당신이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고 달려드는지라, 옥신각신 시비를 하던 끝에 도끼로 그 상주를 찍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더라는 말이다. 참선을 하는 건 좋지만 상성성(常惺惺) 하지 않고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을 놓고 있은 나머지 제 생각으로 마(魔)를 지어낸 것이다. 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와 비슷한 말이다.---→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 참조.

    

*결(結, 빠알리어 saṃyojana, 산스크리트어 bandhana)---결은 번뇌의 다른 이름, 결박(結縛)을 뜻한다. 결박의 일반 사전적인 뜻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두 팔이나 다리를 묶는 것'으로, 번뇌는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게 하므로, 즉 중생을 미혹된 상태에 결박시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지 못하게 하므로 결(結)이라고 한다. 흔히 속박(束縛) · 결박(繫縛) · 계박(繫縛)의 뜻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결에는 2결(二結) · 3결(三結) · 4결(四結) · 5결(五結) · 9결(九結) · 10결(十結) · 98결(九十八結) · 108결(百八結) 등으로 구분한다.---→구결(九結) 참조.

 

       

*결가부좌(結跏趺坐)---수행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로서, 두 다리를 서로 교차시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 줄여서 가부좌(跏趺坐) ‧ 결좌(結坐)라고도 하는데, 항마좌와 길상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항마좌(降魔坐)---먼저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도 오른손을 밑에 두고 왼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천태종(天台宗)이나 선종(禪宗)과 같은 현교(顯敎)에서 많이 사용하며, 요가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 길상좌(吉祥坐)---먼저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은 왼손을 밑에 두고 오른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길상좌는 밀교(密敎)에서 많이 사용되며, 연화좌(蓮華坐)라고도 한다.

    이러한 가부좌의 자세는 원래 인도의 요가 수행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타마 붓다도 결가부좌의 자세로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성취했다. 이 때문에 좌불상은 모두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좌의 자세는 인도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 앉음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방 상좌부 불교국의 스님들은 대부분 결가부좌로 앉지를 못한다. 오랫동안 의자와 침대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다리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의자와 침대문화가 가져 다 준 부작용인 셈이다.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부위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퇴화하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중국, 특히 대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침대와 의자 문화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도 결가부좌의 자세로 바닥에 앉지를 못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의자와 침대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다다미 바닥 위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가부좌로 앉거나 꿇어앉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현재의 한국인은 중국인과 일본인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가부좌는 보다 높은 정신적 경지를 체험하기 위한 참선, 즉 명상수행에 꼭 필요한 자세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세속의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유익한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안방에 침대가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남방의 사람들처럼 가부좌의 자세를 잃어버릴까 크게 염려스럽다. - 마성 스님 ---→가부좌(跏趺坐) 참조.

          

*결사(結使, 산스크리트어 bandhana)---<법구경>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결(結)’은 결박하다, ‘사(使)’는 번뇌란 의미이다. 그래서 결사란 몸과 마음이 번뇌에 결박당해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번뇌라는 놈은 우리 마음속에 꽁꽁 맺혀 있다. 그 맺힌 것들이 우리 행동을 방해하며 복잡하고 불편한 행위로 이끌어간다. 그런 번뇌의 모습을 결사(結使)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이 탐욕이나 무명에 휩싸여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이와 같이 결사란 우리의 마음을 결박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탐욕(貪慾) ․ 무명(無明) ․ 사견(邪見) ․ 애착(愛着) ․ 교만(驕慢) ․ 취착(取着) 따위를 말한다.   

   

*결사(結社)---불교혁신운동을 말한다. 불교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는 운동은 시대마다 있었으나 특히 고려시대 태동한 운동을 결사(結社)라 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결탁해 세속의 명예와 권력, 재물을 탐하는 승려가 많았다. 이에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이다.

    그 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 스님의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지눌은 수선사(修禪社: 현재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 ‧ 기복 ‧ 미신 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불교를 척결,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를 주창했다. 무신(武臣)난에 의해 정치가 혼란해지고, 부패한 승려들에 의해 교단이 타락해갈 때 일어난 혁신운동이었다.

    한편 지눌과 비슷한 시기에 요세(了世)는 강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를 중심으로 무신난 이후 혼란한 사회와 타락한 불교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한 신앙결사로 백련결사운동을 통해 천태종을 중흥시켰다.

    그리고 최근 결사로는 1947년 가을에 결행된 봉암결사(鳳巖結社)가 유명하다. 해방 후 성철, 청담, 자운, 보문, 우봉 스님들이 문경 봉암사에 모여, ‘부처님 당시의 수행가풍을 되살리자’고 결의해, 일제에 의해 무너진 불교계의 개혁운동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일제하에 왜곡되고 타락했던 불교계 풍토로 인해 스님들이 수행은 뒷전이고 물욕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사업가나 정치인도 아닌 주제에 대형고급차에 비단가사를 걸치고, 운동부족으로 인해 비만에 걸려 중 흉내만 내고 있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은 “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대부분 돌중들은 봉암결사의 정신을 깊이깊이 새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직한 것이 봉암결사였다. 그리하여 한국불교 본래의 화두선풍(話頭禪風)을 재정립하는 불교정화의 계기를 만들었다.---→수선사(修禪社) 참조.

   

    

*결생심(結生心, 빠알리어 patisandhi-citta)---주로 남방 상좌부불교에서 논의되는 말이다. 결생(結生)이란 중생이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결생심을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식(識)이라고 하는 마음은 죽기 직전에 일어나는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死沒心)에 의해, 즉시 다음 생의 결생심(結生心)이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마지막 마음이 사몰심(死沒心)인데 반해 결생심은 인간이 태어날 때의 처음 마음이다. 이 마음은 태어날 당시에 일어난 마음인데, 일생의 문제를 과보심(果報心)으로 결정하고 소멸한 뒤에 바로 다음 마음인 유분심(有分心)이 일어나서 그 마음이 평생 계속해서 생멸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새로운 생명에 연결 된다고 한다.

    「사몰심 --> 결생심(재생연결식) --> 바왕가 찌따(유분심, 잠재의식)」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마음은 곧바로 다음 생의 마음으로 전달된다. 그런 단계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죽자마자 순간적으로 빠르게 다음 생으로 건너 가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함은 사(死)와 다음의 결생(結生)은 빈틈없이 연속하고 있음을 말한다. 앞의 찰나는 사(死)이고 다음의 찰나는 결생(結生)이다.

   결생심(結生心)이 생겨나면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성장해 간다. 그 생명이 결생한 마음은 일생동안 유분(有分)이라는 작용을 한다. 결생심이 유분심(바왕가 찌따)에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태어날 때의 마음이 일생 동안 이어진다. 이 마음이 금생의 우리들의 기본적인 마음이다. 그 기본적인 마음이 계속 이어지고, 그 기본적인 마음을 평생 동안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에 DNA가 구성된다. 일단 DNA의 시스템이 결정돼버리면 죽을 때까지 어쩔 수가 없다. 최초에 조합된 프로그램으로 일생 살아 나가야 한다.

   이때 일어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마음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는 마음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께서도 태어날 당시는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네 가지 마음은 다음과 같다.

     ①선심(善心) ②불선심(不善心) ③과보심(果報心, 異熟心) ④무표심(無表心)

   누구나 선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과보심은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심이 아니라 전생의 업에 따른 과보심이다. 이 과보심이 한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무표심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마음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의 경우에 선심과 불선심이 없어지고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이것이 무표심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벼락을 맞아 여유 있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신동이나 천재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모든 것이 다 신의 뜻일까. 아니면 우연의 산물일까. 불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모든 것이 업(業)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천재의 경우 이미 전생에 그들의 특출한 능력기반을 닦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타고난 성향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 또한 업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인 업의 주인이고 상속자이며, 업은 그가 태어난 모태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기도 하다. 그들이 짓는 업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 135경  이른바 ‘선인선과 악인악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은 축적된 결과이다. 그것도 금생뿐만 아니라 과거 전생에서부터 축적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향을 빠알리어로 ‘짜리따(carita)’라 한다. 짜리따는 ‘행동, 성향, 처신, 기질’이라는 뜻이다. 즉, 중생이 가지는 성벽이나 기질을 뜻한다. 중생의 성향과 기질이 다양한 것은 중생이 지은 업(業)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불교에서 “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nca/쁘라빤짜)”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희(戱)’는 진실이 모자라는 것이고, ‘론(論)’은 사물에 대한 생각이 진리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말한다. 따라서 희론이란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헛소리에 가까운 쓸데없는 말장난, 망언, 망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서 희론을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것이라 했다.

   최근 남방불교의 아비담마가 도입되면서 침체한 우리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에도 이해하지 못할 허황된 희론이 많이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결생심(結生心), 사몰심(死沒心),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바왕가찌따bhavanga citta)니 하는 것 등으로, 언뜻 보기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깊이 사유해보면 완전히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소리다.---→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사몰심(死沒心), 바왕가 찌따(빠알리어 bhavanga citta) 참조. 

 


             

*결제(結制)---안거(安居)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두 번 있다. 안거 기간은 대개 3달 동안인데, 그 안거를 시작함을 결제라 한다. 여름의 결제를 결하(結夏), 겨울의 경우를 결동(結冬)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안거가 끝나는 것은 해제(解制)라 한다.

    그런데 결제엔 단순히 안거가 시작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결제란 ‘맺고 억제하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승려들이 안거(安居)를 맺는 일을 결제라 하며, 입제(入制)라고도 한다. 안거 기간엔 스님들이 외출을 하지 않고 한데 모여 수행을 하는데, 스님들의 개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을 억제하고 다른 스님들과 화합을 하면서 수행을 한다. 수행에 참여하는 스님들은 이때 대분심(大憤心). 대포고(大怖苦). 대용맹정신(大勇猛精進)의 마음을 일으켜 수행에 들어간다. 따라서 결제란 이런 큰마음의 결심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자기의 주인공을 마음이라 하고,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며, 진여자성(眞如自性)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지만 어느 하나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 자기의 주인공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가장 보람된 일이며, 가장 행복한 일이라 한다. 결제란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한 특별한제도이다. 마음 닦는 일일수록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애쓰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큰 일일수록 시작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고, “처음 마음을 내었을 때 이미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다(初發心時便正覺)”는 말도 있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하여 “첫걸음에 잘못이 있으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初步有錯 天地顯隔)”이라고 하듯이 시작의 중요성을 잘 헤아린 말이 곧 결제이다.---→안거(安居, 산스크리트어 varsika) 참조.

    

 

*결탁(決度, 산스크리트어 saṃtīraṇa)---판단하고 헤아린다는 뜻인데, 불교에서는 ‘확인 판단’이란 뜻으로 쓰고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결탁(決度: 확인판단)은 심려(審慮: 심사숙고)와 함께, 정견(正見)이건 악견(惡見)이건 모든 견(見: 견해)의 마음작용의 본질[性]을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구사론>에서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견(見: 견해)이라 이름 한다[審慮為先決度名見]."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6식(六識) 중 전5식은 ‘심려한 후 결탁하는 능력’, 즉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 능력은 6식 중에서 오직 제6 의식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해, 전5식과 제6 의식을 분별하고 있다.

또한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다른 말로는 추탁(推度: 추리판단) 또는 추구탁(推求度: 추리하고 탐구해 판단함)이라고도 한다. 추탁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추측하다, 미루어 짐작하다, 헤아리다는 뜻이다.

   

*결택(決擇, 산스크리트어 nirvedha, nairvedhika)---판단[決]해 간택(簡擇)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택(擇)이란 간택(簡擇)의 뜻으로 지혜 혹은 지혜의 작용을 말한다. 또한 택(擇)은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시킨 상태, 해탈 ‧ 열반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결택은 지혜로써 모든 의심[疑]을 결단(決斷: 판단해 끊음)해 이치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 것, 즉 이치를 완전히 알게[擇] 된 것, 이치를 체득[擇]하게 된 것, 의심을 끊고 이치를 분별함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무루지(無漏智)로 모든 의심[疑]을 결단(決斷)해 4성제(四聖諦)의 진리를 완전히 알게 된 것, 즉 4성제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 것, 이런 경우를 말한다.

    

*결택정안(決擇正眼)---결택정안이라 함은 명안조사(明眼祖師)를 만나 화두를 결택(決擇)받아 대의정(大(疑情)으로 참구해 확철대오함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을 증명해 부처님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런데 깨치는 정도에도 천층만층(千層万層)이 있다.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이라야 잘못 깨친 것과 설익은 깨침을 판단하해 줄 수 있으며, 바르고 깊게 인도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친 것을 무사자오외도(無師自悟外道)라고 한다. 따라서 설사 혼자 깨쳤다 하더라도 스승을 찾아가서 인가(印可)를 받아야 한다. 이러함을 결택정안이라 한다. 그래서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도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해봐야 한다(然이나 一念子를 爆地一破然後에 須訪明師하여 決擇正眼이니라)」

    도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더 깊어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가지고 만족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깨친 뒤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될 수도 있다고 경책하고 있다.

   

*결합인설(結合因說)---붓다 생존 당시 바라문들은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올바른 업보설(業報說)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주장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①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②숙작인설(宿作因說) ③결합인설(結合因說) ④계급인설(階級因說) ⑤우연인설(偶然因說)

    그 중 하나인 결합인설은 이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지ㆍ수ㆍ화ㆍ풍 등의 몇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고 주장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결합상태는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확정돼 그것이 한평생 일정불변하게 존속하기 때문에 금세의 우리 노력에 의해 운명을 변화시킬 여지는 전혀 없다고 했다. 따라서 결합인설도 카스트제도를 합리화시키려는 일종의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계급인설(階級因說) 참조.

   

*겸익(謙益)---백제승려. 백제 성왕 4년(526년)에 인도로 가서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율부(律部)를 깊이 공부하고, 성왕 9년(531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 아비달마 논서들과 <오부율(五部律)>을 가지고 인도 승려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했다. 겸익이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오자 성왕은 국내 고승들을 불러 겸익을 도와 번역케 하고 주석서를 짓게 했으며, 왕이 몸소 서문을 썼다고 한다. 겸익의 율학으로 백제불교는 예의와 의식에 치중하는 계율중심 불교가 됐으며, 이것이 훗날 일본율종의 토대가 됐다.

   

*경(經, 빠알리어 sutta, suttanta, 산스크리트어 sutra)---경(經)이란 날실이란 뜻이나 가르침의 기본 틀, 가르침을 꿰뚫는 요점이란 의미로 쓰였다. 고대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교 또는 학문의 기본 이론을 정리한 짧은 문장을 경(經, sutta)이라 불렀다. 따라서 함부로 경이라 하지 않았다. 불교의 경우, 반드시 붓다 가르침을 문장으로 정리한 것만을 경 혹은 경전이라 했다. 그런데 수탄타(suttanta)는 잘 조직되고 정리돼 주제의 견고한 핵심을 제공하는 설법을 의미했다. 따라서 빠알리어의 경우, sutta와 suttanta, 두 말을 같이 썼다. 예컨대,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과 합송경(合誦經, Sangiti Suttanta)의 경우가 그렇다다.

    

*경(境)---근(根)의 대상, 외계의 존재, 현상, 사물, 감관(感官)과 마음에 의해 지각되고 사려 되는 대상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귀ㆍ눈ㆍ코ㆍ혀ㆍ몸ㆍ의(意)의 여섯 기관(6根)이 감각작용을 일으키는 대상 즉 육경(6境)을 말한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진(6塵)이라고도 한다. 경계(境界)를 의미할 때도 있다. 이럴 경우엔 마음의 상태. 경지를 말한다.

    

*경계(境界, 산스크리트어 visaya)---일반적으로 경계라 하면, 영역, 영토, 변경의 끝, 국경 같은 것을 말하는데, 산(山), 강(江), 바다, 호수, 혹은 돌(경계석) 등 자연물에 의해 경계가 표시된다. 따라서 이럴 경우, 경계란 자기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혹은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도시와 산의 경계, 하늘과 바다의 경계 따위와 같이 서로 다른 자연물과 자연물 사이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나 불교에서 경계라 함은 이런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불교에서는 어떤 한계를 경계(境界, boundary)라고 부른다.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뿐 아니라 느낌이나 생각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모두 경계가 있다. 생각이나 느낌도 다른 것과 차별돼야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계가 생기면 동시에 이쪽과 저쪽이 생긴다. 이쪽과 저쪽은 서로 붙어서 동시에 존재한다. 저쪽이 없는 이쪽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분별을 하지 않으면 경계도 생겨나지 않고 이쪽저쪽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저쪽과 이쪽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뿐 어느 한 쪽만 독립해 따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을 ‘연기한다’고 말 한다. 모든 경계는 연기하고, 연기하는 것은 있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다. 있는 것 같은데 실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공(空, sunyata)하다고 한다.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無)는 뜻이 아니라 정해진 모양이 없이 늘 변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정의(定義)를 내리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정의가 모여 개념이 되고, 개념이 모여 지식이 되고, 지식이 모여 원리나 법칙이 된다.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개념이나 지식, 원리나 법칙 등에는 모두 경계가 있고, 경계가 있으므로 연기한다.

   연기는 모든 인류, 모든 상황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사유법칙일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에 적용되는 존재원리이기도 하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인(因)이란 씨앗 같은 내부조건이고 연(緣)이란 물, 온도, 햇빛 같은 외부조건이다. 인이 연을 만나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연쇄적으로 일으키며 삼천대천세계를 나타나게 만든다. 이를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라고 한다. 모든 과학의 토대가 되는 인과(因果)의 법칙도 연기에 속한다. 연기는 불교의 핵심교리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 있어서 경계는 정신적인 용어인데, 이도 쓰이는 상황에 따라 그 뜻이 약간씩 다르다.  

     ① 경지(境地)란 뜻으로 쓰일 때 ― 몸이나 마음, 기술 따위가 어떤 단계에 도달해 있는 상태, 혹은 수행으로 도달한 결과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② 상황(狀況)의 뜻으로 쓰일 때 ―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과거의 업에 따라 주어진 현재의 지위나 처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도 쓰인다.

     ③ 모든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 지각할 수 있는 일, 인식하거나 가치판단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을 가리킨다. 감각기관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우리 몸의 기관을 말한다[육근(六根)]. 즉, 인식이 미치는 범위 혹은 대상[육경(六境)]를 뜻한다.

     ④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곧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을 말한다. 이 경우, 나를 주관(主觀)이라고 할 때 일체의 객관(客觀)이 경계가 된다. 생로병사ㆍ희로애락ㆍ빈부귀천ㆍ염정미추ㆍ삼독오욕ㆍ부모형제ㆍ춘하추동ㆍ동서남북 등 인간생활에서 맞게 되는 모든 일과 환경이 다 경계이다.

     ⑤ 시비ㆍ선악이 분간되는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 이 경우, 경계ㆍ계경ㆍ계역 따위가 혼용될 수 있다.

     ⑥ 구분이란 뜻으로 쓰인다. “무아(無我)에는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두 가지가 있다. 대승불교는 특히 법무아를 많이 얘기한다. 법무아란 밖의 대상도 실재하지 않지만 마음 자체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안과 밖이 경계가 없음을 얘기한다.”

이런 많은 경우가 경계이듯이 인간은 항상 경계 속에서 살아가고, 경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되며, 경계가 곧 삶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경계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또는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사람의 참 가치도 경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천만 경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경계에 끌려가거나 물들지 않고, 나와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하나가 되는 경지, 곧 주객일체(主客一體)ㆍ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가 바로 해탈을 향한 세계이다.

    다음엔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의 법문을 보자.

    『공부할 때에는 여러 가지 경계가 많이 나온다. 우리 마음은 바로 우주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는 지옥도 있고, 아귀도 있고, 축생도 있고, 천상도 있고, 또는 극락이 다 잠재해 있는 것이다. 십법계(十法界) 곧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부처 등 일체만법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본래로 다 갖추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닦아나가면 잠재의식에 들어있던 업의 종자들이 업장(業障) 따라 그에 상응한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과거 전생에 경험했던 것들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불쑥 나올 수가 있단 말이다. 더러는 우리 영식(靈識)이 맑아져서 방안에 있는데도 저만치 바깥까지 투시해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영식이 맑아지면 누구나가 가지가지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헌데 아무리 좋은 경계라도 집착하면 병이 되고 나쁜 경계라도 집착하지 않으면 무방한 것이니 자성(自性) 곧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고서 정진해나가면 필경에는 불생불멸한 진여법성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는 것이다.』

 

     

*경계(境界), 그 수준---춘성(春城. 1891~1977) 스님은 만해(萬海, 1879∼1944) 스님의 유일한 상좌(제자)였다. 스님은 언행에 승속을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걸쭉한 입담은 수많은 일화를 남겨 놓았다. 스님은 <화엄경>을 거꾸로 외울 정도로 경학에 밝았고, 유언을 “다비한 재와 사리를 서해바다에 버려라”라고 할 정도로 걸림 없는 삶을 실천한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스님 곁에서 수십 년을 공부한 보살님이 계셨는데, 그 보살님의 손녀딸이17~8세에 이르게 됐다. 손녀딸이 그 정도 나이면 스님의 ‘말 귀’를 이해할 것 같아 노보살님은 손녀딸에게 “춘성 스님께 가서 법문 좀 청해 듣고 오너라”라고 했다.

   손녀딸은 춘성 스님께 정중히 삼배를 올리고, “할머니가 스님 법문을 듣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며, 다소곳이 앉아 법문을 기다렸다. 노보살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스님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내 물건이 너무 커서 작은 네 것에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손녀딸은 스님의 그 말에 질겁을 했다. 얼굴은 홍당무가 된 채로 할머니에게 달려와 울면서 스님의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노보살님은 “이것아, 내가 염려했던 대로구나, 네 소갈 머리가 그렇게 작으니 스님의 큰 말씀이 어디 들어가겠느냐?” 하며 스님이 역시 안목이 높다고 한탄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말 귀’를 알아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듣는 ‘말귀’의 수준도 모두 그 경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중생심은 그 경계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그 각각의 다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착각이나 오류라 하더라도 본인은 그 당시에는 전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작 문제이다. 경계의 한계 때문이다. ‘큰 것’이라니 그 손녀딸은 크다는 것을 무엇으로 받아들여 질겁을 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것인가. 섹스 심볼로 생각했으니 춘성 스님의 큰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경계반야(境界般若)---→‘반야(般若)의 종류’ 참조.

   

*경계상(境界相)---경계란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곧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을 말한다. 이 경우, 나를 주관(主觀)이라고 할 때 일체의 객관(客觀)이 경계가 된다. 생로병사ㆍ희로애락ㆍ빈부귀천ㆍ시비이해ㆍ염정미추ㆍ삼독오욕ㆍ부모형제ㆍ춘하추동ㆍ동서남북 등 인간생활에서 맞게 되는 모든 일과 환경이 다 경계이다.

   경계는 이와 같이 외계의 대상, 곧 인식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경계상은 주관, 즉 마음에 인식되는 외계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명(無明)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 인식주관 앞에 나타나는 객관계를 경계상이라 한다. 이는 삼세(三細)의 하나로서, 망념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現相)에 해당한다.

  마음의 작용인 견상(見相)에 의해 인지되는 대상으로서, 망상이 일어남에 따라 경계를 비추어 나타내는 의지적 작용이 작용할 때 거기에는 반영돼 나타나는바 경계의 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에 의해 나타난 차별상으로서, 허망의 상에 불과한 것이며, 진여의 본성에 적응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이 없다면, 거기에 비추어 나타나는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연애를 할 때는 모든 것이 예뻐 뵌다. 심지어 얼굴에 붙어 있는 검은 점조차 매력적으로 보인다. 망념의 작용으로 나타난 경계상이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권태기에 접어들면, “내 눈도 삐었었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예뻐했을까 하고 후회하게 되고, 검은 점이 보기 싫어진다. 이 모든 것이 망념의 작용이고, 경계상이다.

    경계상을 좀 어렵게 말하면, 능견상(能見相)으로 인식하는 대경(對境)을 말한다. 이는 주관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대상으로, 오직 망념(妄念)에 의해 나타나는 차별상이니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은 없을 것이다.

    무상(無相)의 일심이 한 생각이 일어남에 따라 흔들려서 주객의 경계가 성립된다. 능견상[주체]과 경계상[객체]은 늘 동시에 일어난다. 능견상에 의해 경계상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세 가지 미세 번뇌[삼세(三細)]는 동시에 의존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선후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능견상과 경계상은 둘 중의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도 사라진다.---→삼세육추(三細六麤) 참조.

       ※삼세(三細)란---<대승기신론>에서 설하는, 무명(無明)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의 세 가 지 미세한 모습을 말한다. ① 무명업상(無明業相) ― 무명에 의해 최초로 마음이 움직이지만 아직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상태. ② 능견상(能見相) ―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일어나는 인식 주관. ③ 경계상(境界相) ― 인식 주관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객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줄여서 <전등록(傳燈錄)>이라고도 한다. 중국 송(宋)대의 경덕 원년(1004)에 고승 승천 도원(承天道原)이 엮었다.

    붓다 이후 역대 법맥(法脈)을 체계화해서, 진리의 등불이 어떻게 전해지고 이어져 왔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은 과거칠불과 역대 인도 조사와 중국 조사들의 법맥, 즉 서천(西天) 28조와 동토(東土) 6조를 거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의 제자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밝혔다. 그리고 선사들의 행적과 치열한 수행기록, 깨달음의 기연과 법어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승과과목에 들어 있었다.

    저자는 도원(道原)ㆍ도원(道元)ㆍ도언(道彦)ㆍ도원(道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그의 생존연대ㆍ경력 등이 모두 미상이지만, 매우 상세한 승전(僧傳)을 기록하고 있어 선종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조사들의 말이나 문답과 의문을 좌선의 대상으로 하는 간화선(看話禪)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전등록(傳燈錄)>은 송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 1004년에 편찬됐으므로 연호를 붙여 <경덕전등록>이라 하는 것이 본래의 이름이다. 편찬자는 도원(道原)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진(拱辰)이 편찬했다는 이설도 있다. 공진이 책을 지어 가지고 임금에게 헌상하러 경사(京師, 서울)로 가던 도중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어느 스님에게 이 책을 보였더니 나중에 그 스님이 몰래 책을 훔쳐 가 먼저 임금에게 바치고 자기의 저작인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등록> 뒤에 정앙(鄭昻)이 쓴 발(跋)에는 공진이 지은 것이라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지 도원이 지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경량부(經量部, 빠알리어 숫타바다/Suttavāda, 산스크리트어 사우트란티카/Sautrā–ntika)---부파불교시대 상좌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Vaibhashika)에서 분리된 부파이다.

   과거엔 세우(世友, AD1~2세기경)의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거해 경량부가 설일체유부로부터 분리 독립했다고 여겨왔으나 최근에는 기원후 1세기경 설일체유부에 이단자 그룹인 ‘비유자(譬喩者)’라는 논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들 비유자(譬喩者)들의 교의가 논사(論師) 쿠마랄라타(Kumāralāta)를 거쳐서 그의 제자 슈릴라타(Śrīlāta)에 이르러 정비돼, 4세기경 부파로 성립했다. 이들은 유부가 경(經)의 주된 취지를 일탈한 논장에 너무 의존한다고 보고, 경장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경량부’라 자칭했다.

    이들은 “(누가 설한 것이든) 법성(法性)에 어긋나지 않으면 불설(佛說)”이라고 주장하는 설일체유부의 불설론(佛說論)을 비판하고, 불타에 의해 직접 설해진 것이 확실한 불설(佛說)을 요의경(了義經)으로 간주해 “이러한 경(經)만을 인식의 근거[量]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경량부(經量部)’라 이름 했다. 그리고 세친(世親)은 이들의 사유에 기초해 <구사론>을 저술했기 때문에 세친은 경량부 논사라거나 비유자라 불리기도 했다.

   이 부파는 불교의 4대 철학파의 한 파로 지칭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독자적인 논전은 없다. 그래서 그 학설을 <구사론>, <성실론> 등의 다른 논전을 통해서 고찰하는 수 밖에 없다.

   설일체유부의 법의 이론은 법의 실체성과 현상(現相)하는 것은 순간마다 생멸한다고 하는 찰라멸을 설한다. 다시 말하면 현상의 사물은 찰라멸이면서도 사물의 본질인 법체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는 삼세실유 법체항존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량부는 사물은 단지 현재 한 찰라에만 존재하며 과거, 미래의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현존재체과미무체(現存在體過未無體)를 설했다.

    이러한 찰라성의 입장에서 볼 때 실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질과 마음, 마음의 작용을 하나로써 생각한 심리현상이고 그것도 현재 한 찰라에만 존재하는 순간적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경량부는 법의 분류에 있어서도 유부의 오위 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에 대해 색법의 사대(四大)와 심법만을 인정했다. 또한 무위법(無爲法)의 열반을 유부가 실체적인 것으로 보는데 반해 경량부는 열반이란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제법이 적멸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실체가 아니라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인식이론에 있어서도 경량부는 존재를 순간적인 법들의 연속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유부의 외계의 모든 대상을 직접 지각한다는 설을 부인했다. 존재가 찰라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현재 찰라적인 어떤 사물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사물을 우리들의 의식 속에 간직하게 되고 만다. 지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지나간 대상에 대한 인상에 불과하므로 우리들의 지각은 외계의 대상을 알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외적 대상이 직접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외적 대상의 표상 또는 모사인 우리들의 지각으로부터 추리해 아는 것이라 했다.

    업의 이론에 대해서 유부는 의업(意業)을 마음의 작용으로 간주하지만 외적으로 표현되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은 물질이라 했다. 그러나 경량부는 행위의 본질은 의사에 있다고 보고 신업과 구업은 단순히 의업의 표출된 형태로 업은 물질적 색(色)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심소법(心所法)에 속한다고 봤다.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간의 찰라멸적인 마음의 흐름 가운데서 일어나는 특수한 변화, 즉 상속 전변 차별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는 동일한 본질로서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는 미세한 의식이 있어 그 의식 속에 지식이나 행위에 대한 인식이나 영향력을 종자(習氣)의 형태로 남기는데 이를 훈습(薰習)이라 한다. 이 종자가 잠재적으로 마음의 흐름과 함께 상속하고 성장해 때가 되면 현세화(現行)해 업보의 결과를 낳는다. 경량부의 이러한 종자 훈습설은 유식설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게 됐다. 

 

 

 *경묘(境妙)---적문십묘(迹門十妙)의 하나. 지혜에 따라 관조하는 10묘(妙)ㆍ4제(諦)ㆍ3제(諦)등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대상은 실상(實相)이며 사려의 범위를 넘게 되므로 묘(妙)라 했다.---→적문십묘(迹門十妙) 참조.

   

*경봉(鏡峰, 1892년∼1982년)---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덕유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했으나,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출가를 했다.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와 고성 건봉사(乾鳳寺) 조실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말년에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통도사화엄산림법회’가 경봉 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래는 경봉스님이 ‘물’에 대해 읊은 게송이다. 물 한 가지를 가지고 사유하면서 중생을 일깨운 탁월한 게송이다.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주는 것이 물이다.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물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 것이 바로 물이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경분별(經分別, 빠알리어 Sutta-vibhanga)---율장(律藏)은 삼장(三藏)의 하나로서, 붓다가 제정한 계율의 조례를 모은 교전(敎典)을 일컫는다. 그 율장 내용이 계본(戒本-경분별/經分別), 갈마본(羯磨本-건도부/健度部), 부수(付隨)의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계본을 일명 경분별이라고도 한다. 경분별은 율장의 핵심으로서 계본(Patimokkha)에 대한 해설이다. 즉, 계본 각 조항과 그 성립의 인연, 조문 자구의 해석과 아울러 조문 운용의 실례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비구의 227계를 설하고 있는 대분별(大分別, Maha-vibhanga)과

     비구니 311계를 설하는 비구니분별(比丘尼分別, Bhikkhuni-vibhanga)로 구별된다.

    ‘경분별(經分別)’이란 말은 經(sutta)의 설명 혹은 해석이란 뜻이다. 경분별은 나열된 문제에 대해 개개의 규정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가를 언급하고 있다.

    상가에 들어간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칙을 모은 것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산스크리트어 Pratimoksya)-(Patimokkha, Pratimoksasutra, 戒經․戒本)라 한다. 이것은 이른바 250계(비구니의 조문은 이보다 많다)이다. 단 이 중에는 상가가 주체가 돼 실행하는 갈마(수계나 참회 때의 의식)는 포함되지 않는다. 비구의 바라제목차는 8절로 돼 있으며, 비구니의 바라제목차는 7절로 돼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파라이법(Parajika)이다. 이것은 유(游-성행위)ㆍ도(盜-도둑질)ㆍ단인명(斷人命-살인)ㆍ대망어(大妄語-큰 거짓말)의 4조(비구니는 8조)로서 이것들을 범하면 상가로부터 추방되고 다시는 상가에 들어갈 수가 없다.

     

*경안(經眼)---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경안이다. 경전을 보고 이해할 만한 안목(眼目), 경전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안목을 말한다. 따라서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경안이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경전을 볼 때는 경안이 있어야 혜안이 생긴다. 예컨대 초월적인 이야기나 천상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건 거짓말이다 이건 옳고 이건 틀린다고 왁자지껄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것은 그대로 놔두면 된다. 겉으로 드러난 초월적 이야기보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가르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경전에 그렇게 씌어 있으니 무조건 초월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요즈음의 초기불교가 위빠사나수행이니 사띠수행이니 하는 등의 수행위주로 전파되고 있다. 실질적인 생활불교의 가르침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남방과 한국의 사회구조나 풍습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가르침을 놓고도 우왕좌왕하게 된다. 또한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우리들을 체질적으로 이해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수록 올바른 불자라면 책만 들고 초기불교를 한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생활도 초기불교식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선불교에 반발하고 한국불교에 반발해서 초기불교를 선택하다가 과거 부파불교시대에 날밤을 세워가며 논쟁하던 것 이상으로 교리논쟁을 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청정도론> 등의 논장을 앞세워 교리를 주장한다. 오계(五戒)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청정도론>이 어떻고, 팔리어 경전이 어떻고 하는 게 결코 초기불교 하는 것이 아니다. 학승도 아닌 불자들이 교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면 남의 목장에서 남의 소나 세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구나 한국 불자들은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불교 = 깨달음(성불)>이라는 등식에 얽매여 있거나 아니면 기복불교에 갇혀 있다. 그렇다가 보니 초기불교를 대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깨달음"을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초기불교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붓다라는 인간과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종교이다. 그분의 가르침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이다. 관념적으로 깨달음이나 논하고 희론이나 일삼는 가르침이 아니다. 따라서 두 눈을 밝게 뜨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전을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눈 뜬 소경이나 다름이 없다. 경안(經眼)이란 경을 볼 때 내가 아난이 돼,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그 회상에 함께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경전구절을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을 수지 독송한다는 것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산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음을 꿰뚫어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경안(輕安, Passaddhi)---불교 용어로 가벼울 경, 편안할 안자인데,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한 것을 이름 하는 것으로 우리가 참 진리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이것이 진리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즉, 참선하다가 의정을 일으켜 법신도리와 상응하게 되면 심신이 거뜬해짐(輕安)을 느끼고 일거일동에 모두 막히거나 걸림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함을 말한다.

        ※경안각지(輕安覺支)---수행하는 과정에서 수행자에게 평온한 기쁨이 생기고, 나아가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경쾌해진 상태를 말함. 수행을 통해 심신이 매우 편안하고 지극히 가벼운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경전(經典)---경전(經典)은 종교의 믿음 또는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문서이다. 불교에서 경전은 부처님의 언행을 기록한 것을 뜻하며, 불경(佛經)이라고도 한다. 불교경전은 BC 6세기의 고타마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모아, 그가 사용했던 마가다어와 관계가 깊은 빠알리어로 정리돼 암송으로 구전되다가 훗날 문자로 정착됐다.

    그리하여 부파불교시대에 각 부파에는 나름대로의 경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경은,

    ① BC 3세기 아소카왕의 3차 결집 때 상좌부가 주도하여 공식적으로 만든 빠알리어 <니까야>와

    ② AD 2세기 카니시카왕의 4차 결집 때 설일체유부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산스크리트어 <아가마(아함경)> 뿐이다.

    그 이유는 니까야의 경우 아소카대왕의 명으로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상좌부의 분별설부가 니까야를 지금껏 잘 보존하여 왔기 때문이며, 또한 아가마는 북인도에서 번성한 쿠샨왕조에서 보호되다가 북방으로 전래돼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아함경>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경전들은 인도의 정치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의 침입과 힌두교의 포섭으로 불교가 소멸됐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흘러 불경이 본격적으로 인도 밖으로 전파되면서 인도 고전 표준어 격인 산스크리트어를 채택했다. 여기서부터 정통적이라고 여겨지는 빠알리어로 보존된 소승불교 상좌부(上座部, Theravda)의 문헌과 보다 널리 전파된 대승불교의 수많은 문헌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됐다. 동아시아로 전파된 대승불교 경전은 티베트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로 번역되고 증광됐다.

   흔히들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전은 신약과 구약 두 종류뿐인데, 불교의 성전은 왜 그렇게 많으냐고 한다. 그 차이는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한 말은 물론 그 제자들이 한 말도 성전 속에 넣어서 계산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한 말을 이해하기 쉽도록 쓴 이른바 참고서(論藏)도 성전에 넣어서 계산하기 때문에 분량이 많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소품반야경>에 전하고 있다. 어느 날 불제자의 한사람인 수보리가 석존의 명을 받고 설법을 하려고 할 때, 불제자의 한사람인 사리불이 이 설법은 수보리의 힘인가 석존의 힘인가라고 의문을 품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즉, 불제자의 설법이라도 그 불제자가 법을 깨달은 후에 하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설법과 같아서 제자가 말하더라도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석존 이외에 사람이 행한 설법이라도 그것을 설한 사람이 불법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설은 불설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이라는 것은 석존 이외의 사람들에 의해서도 설해지는 것인데,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석존의 깨달음 자체가 중심이어야 하며 그로부터 이탈되면 불법이 될 수 없다. 즉 석존의 깨달은 내용과 어긋나는 것은 경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경(經)ㆍ율(律)ㆍ논(論) 세 가지를 합한 것을 일체경, 또는 대장경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세 가지 가운데에서 경의 부분이 주부(主部)를 이루고, 율(律)과 논(論)은 경의 부수적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불설이 중심이 돼야 하는 것으로, 이 불설을 중심으로 해서 율이 부가되고 논이 전개돼 있으며, 일체경이나 대장경은 그들 전부를 모두 합한 일대 불교총서(佛敎叢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경전은 일차적으로 출가승을 위한 교리수행서의 성격이 짙다. 경전내용에서 출가 할 것을 권유하고, 대부분의 설법이 출가승 위주로 돼 있다. 그래서 경전마다 시작도 “비구들이여…”라고 해서 설법의 대상자가 출가비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설법의 대상자가 출가승이라고 해서 일반재가자들에게 전혀 무의미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분명히 출가승을 위한 경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경전해석의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의 45년 행적을 되돌아 볼 때 재가자들을 위한 가르침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고 또 재가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분들의 에피소드도 상당할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이것은 경전의 전승이 전적으로 수행승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전승의 내용이 수행승 위주로 그리고 출가주의 위주로 전승이 되고, 수행승들에게 불리하거나 또는 재가자들과의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불교경전의 특징과 이의 활용에 주의를 요할 점이 있다.

  『첫째, 불교 경전은 그 전체로서 하나의 정합적 내용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경전의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해주는 이 구절 저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 혹은 해답”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할 수 있다. 경전은 성립의 공간적 역사적 환경에 따라 서로 상충되고 모순되는 내용들이 함께 경전 전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 세심하게 텍스트의 역사적 성격 그리고 맥락을 살피지 않고서는 경전의 내용을 인용해서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해답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든다면, 경전에서 우리는 세속의 일에 참여할 근거도 찾을 수 있지만 세속의 일에 결코 참여해서는 안 되는 근거 또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생명윤리의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됐을 때 나는 한 사람의 학자가 처음에는 경전의 이러저러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취하다가 나중에는 또 다른 경전을 인용하면서 ‘찬성’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사람에게서 벌어진 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많은 경우 서로 입장이 다른 두 학자가 경전의 서로 다른 곳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소위 ‘불교적 논지’라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조차 있다.

   둘째, 불교 경전은 특히 경(經)의 경우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는 체계적 이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사태’를 설명하고 그 사태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 ‘사태’의 상황적 맥락을 떠날 경우 설명력을 상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經)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전거로 전혀 상황이 다른 현안에 대한 불교적 입장으로 일반화하거나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경(經)이 논리적 정합성의 추구가 아닌 ‘사태’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사실성(reality)이 뛰어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활용한다면 사회적 현안문제에 대한 매우 훌륭한 해석학적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태’에 따른 상황적 맥락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적용의 오류’에 관한 문제이다. 우선 두 가지 종류의 ‘적용의 오류’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종류의 오류는 출가자 혹은 출가자 집단인 상가에 대한 담론을 세속사회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경우이다. 불교 경전은 양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대부분 출가자를 위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사회를 (공간적으로, 심리적으로) 떠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대반열반경>에서 붇다가 “너희들은 정치와 관련 된 일에 대해 논의하지 말 것이며…”라는 구절을 불교가 정치적 일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해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 구절은 명백하게 비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또 초기불교의 승단의 구조와 제도에 주목해 불교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적 공동체“ 심지어 ”무정부주의“적인 입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붓다 당시의 출가와 재가라고 하는 이원적 구조를 간과한 적용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오류는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무아’ 혹은 ‘열반’과 같은 본체론적인 담론을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 윤리의 문제에 곧 바로 작용함으로써 공허하고 현실성 없는 결론으로 맺어지는 경우이다.』- 실론섬

 

     

*경전 결집---→불경결집(佛經(結集) 참조.

         

*경전(經典) 번역---한나라 무제(武帝)가 서역 진출 정책을 펴서 동서의 교통로를 열었다. 후세에 이 길을 실크로드라 부르는데, 비단 같은 물자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종교까지도 서로 소통하는 중요 교통로가 됐다. 이 실크로드를 타고 불교가 차츰 동쪽으로 진행해 중국에 전래된 때는 기원후 1세기가 되면서였다. 그 뒤를 이어 비단길을 걸어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전법승들이 중국에 불교경전을 처음 전한 것은 후한(後漢) 무렵이었다. 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제국, 지금의 이란), 대월지국(大月支國=쿠샨제국-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강거국(康居國-사마르칸트) 등 소위 서역이라 일컫는 중앙아시아의 사문(沙門)들이 불교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온 삼장(三藏)이 통과했던 지역에도 불교가 전파됐고, 그 지역에 포교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시 개발된 실크로드를 따라 2세기 이후 후한(後漢)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불경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역 전법승들이 불교를 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경전을 한문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때 산스크리트의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이들은 주로 실크로드 주변에 위치한 국가 출신의 불교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중국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중국인의 도움을 받았다.

    역경에는 일단 말만의 번역과, 그 말을 문자로 다시 옮겨 책으로 펴내는 일이 있다. 이 역경에 종사하는 승려를 역경삼장(譯經三藏)이라고 하는데, 중국에는 수많은 역경삼장들이 산스크리트를 비롯한 인도어 및 중앙아시아어의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魏志)>의 <위략서융전(魏略西戎傳)>에, BC 2년 대월지국(大月氏國) 사자가 <부도경(浮屠經)>을 전해와서 번역했다고 한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역경은 이미 전한(前漢)시대에 일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실한 한역(漢譯)의 기원은 AD 58∼75년(후한 明帝 때) 인도 승려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뤄양[洛陽]에 와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등 5부를 번역한 것을 기원으로 해서, 147∼188년(후한 桓帝, 靈帝 때) 안식국(安息國)에서 중국에 온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의 번역으로 이어진다. 안세고는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번역했고, 지루참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을 번역했다.

    처음 북부지역인 뤄양(洛陽)ㆍ장안(長安) 지역에 전래된 불교는 그 뒤 역경승 지겸(支謙)이 오(吳)나라의 서울 건업(建業)에서 포교하고, 월남에서 북상한 강승회(康僧會) 역시 오나라에 들어와 포교에 종사함으로써 점차 남부중국에까지 교세를 확장하게 됐다. 특히 불도징(佛圖澄)은 중앙아시아의 구자국인(龜玆國人)으로서 신통력과 주술로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고 국왕의 고문을 지냈다. 그의 제자 도안(道安)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신임을 받아 경전목록과 중국인 출가자를 위한 생활규범을 작성했다. 또 도안의 제자 혜원(慧遠)은 여산(廬山)에서 백련사(白蓮寺)를 짓고 염불 중심의 결사운동(結社運動)을 전개했다.

    특히 혜원의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은 불교의 보편주의와 중국의 민족주의가 대립하면서 불교가 중국적 풍토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관한 논설이다. 또한 서진(西晉)시대에는 축법호(竺法護)가 <정법화경(正法華經)>, <광찬반야경(光讚般若經)> 등을 번역했다.

    이 무렵 중국의 일반 사상계에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성행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불교를 노장사상에 의해 이해하려는 풍조가 현저히 나타났다. 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하는데, 불교사상의 공(空)을 노장 사상의 무(無)와 대비해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격의불교의 특징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에서 정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고, 동시에 중국 사대부 층이 불교에 접근하는 길을 터놓은 것이기도 했다. 또 불교의 윤회사상이 도입돼 전생ㆍ현생ㆍ내세에 대한 인과응보 개념이 중국인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것도 이때였다.

    중국 불교의 역경사(譯經史)나 사상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인물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소승불교를, 나중에는 대승불교를 공부했던 그는 <대품반야경>, <금강반야경>, <묘법연화경>, <유마경>, <아미타경> 등의 대승경전과 용수의 <중론>, <십이문론> 등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논서들을 번역 소개해 중국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줬다. 특히 중관사상은 그의 한역(漢譯)을 근거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승조(僧肇)는 <조론(肇論)>을 저술해 중국인이 이해한 공사상을 피력했다. 이 <조론>의 영향은 이후 중국불교사상계를 풍미했고, 구마라습이 번역한 <중론>, <십이문론>은 중국의 삼론종(三論宗) 성립 근거가 됐다. 그 뒤를 이어 역경승 불타발타라(佛謁跋陀羅)는 <화엄경>을 번역했다.

    담무참(曇無讖)은 <열반경>을 번역해서 중국불교에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다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는 사상을 전래해 불성설(佛性說)을 전개시켰다.

    또 한편 역경승 진제삼장(眞諦三藏)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 유식학파 경전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의 대표적인 논서인 <대승기신론>을 번역해 당나라 화엄종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경전들은 역경이 이루어진 것과 거의 같은 시기, 또는 100∼200년의 간격을 두고 모두 우리나라에 전래됐으며, 우리나라 고승들에 의해 깊이 있게 연구되고 유포됐다. 이들 경전들이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골격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승려들 중에서도 역경에 직접 참여한 고승들이 있었다. 백제의 겸익은 중인도의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범어(梵語)를 배우고, 특히 율부(律部)를 전공한 뒤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할 때 범문(梵文)으로 된 율문(律文)을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번역했다.

    또 신라의 원측(圓測)은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인도로부터 돌아와서 역경을 할 때 그 역장(譯場)의 증의(證義)로서 참석했고, 그 뒤에도 당나라에서 역경과 저술 등에 종사했으며, 신라의 승려 승장(勝莊)도 당나라에 머물면서 의정(義淨)의 역장에서 증의가 됐다.

    경전을 제대로 번역해야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엄정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는데, 경전들의 한역화 과정은 대단히 철저하고 치밀해서 내용상 원본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전문가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후원 아래 국가적 사업으로 집단을 이루어 한자 한자 옮기고 정리했다.

    이렇게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확하게 번역해나갔으나 한자로 된 북방경전은 인도로부터 직접 전수된 경전에 비해 그 본래의 의미가 다소 변질되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담고 있을 소지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경전을 번역할 때 원본을 그 나라 실정에 맞게 첨삭 개조하기도 하고, 그 뜻을 이어 새로운 경전을 편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 불교가 북방 중앙아시아로 전해지면서 다소 변질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다시 중국에 전해지면서 한역과정에 중국 실정에 맞게 번역하거나 새로운 경전을 편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중국 찬술의 위경(僞經)이 다수 있다고 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중국에 토학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경전 번역 사업에는 다양한 분업의 직책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보인다. 시대적, 역장별 상황에 따라 직책의 가감이 있었고, 그 수행하는 역할에도 차이가 발생했다. 복잡한 내용은 생략하고,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① 역주(譯主) ― 정면 좌석에 앉아서 원전의 문장을 낭독하는 사람. 주로 서역승으로서, 번역자로 기록되는 이가 바로 이 역주다.

    역주는 역장(譯場)을 주관하며, 초기의 역주들은 번역과 설법을 겸했기 때문에 역장에는 수많은 대중이 참여했다. 예를 들어 구마라습(鳩滅什)의 역장에는 3,000여 명, 담무참(曇無讖)의 역장에는 500여 명,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역장에는 700여 명, 보리유지(菩提流志)의 역장에는 1,0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해 역경불사에 동참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玄奘)과 같은 수ㆍ당 이후의 역주들은 전국에서 선발된 소수의 정예 인원들로 전문 번역단을 구성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번역 구술하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불필요한 논의를 줄이는 등 전문성과 효율성을 지향했다.

     ② 증의(證義) ― 역주의 왼편에 앉아 역주와 함께 원문의 뜻과 구성을 검토하는 역할이다. 범어의 의미가 번역을 통해 의미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번역된 문장에 대해 교리적으로 점검하고 역주와 토론한다. 이를 위해 주로 번역 문장이 원문의 뜻에 부합하는지, 불법의 이치에 모순되지 않는지를 점검했다. 증의는 역장에서 빠질 수 없는 인원으로 역주, 윤문과 함께 3대 직책에 해당한다.

     ③ 증문(證文) ― 역주의 오른쪽에 앉아, 역주가 낭독하는 범어 문장을 듣고, 그 글자와 발음에 관해 검토하는 직책이다.

     ④ 서자(書字) ― 범어 원문의 낭독을 자세히 듣고, 그 음을 중국 글자로 옮기는 과정, 즉 범음(梵音)을 한자로 음사하는 직책이다. 이를테면 sutra를 음사해서 ‘수다라(修多羅)’로 하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⑤ 필수(筆受) ― 역주가 한어로 구술하거나, 도어가 옮긴 말을 충실히 받아 적는 역할이다. 범음을 옮겨서 중국어로 만드는 역할이다. 서자(書字)가 음사의 단계에 있는데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역의 단계이다. 이를테면 ‘수다라(修多羅)’를 번역해 ‘경(經)’이라 하는 일 따위이다. 단, 여기서는 아직도 단어의 번역 단계이다. 대체로 필수는 철문(綴文)과 그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⑥ 철문(綴文) ― 필수가 받아 적은 거친 번역문을 다시 정리해 자연스러운 한문 문장으로 바꾸는 역할이다. 문자를 연결시켜서 구절을 이루는 역할도 한다. 번역된 단어를 늘어놓고, 그 순서를 고쳐서 중국어의 문법에 맞는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⑦ 참역(參譯) ― 번역된 문장을 원문과 대조, 검토하면서 문장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⑧ 간정(刊定) ― 불필요하게 긴 부분을 잘라내어 구절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이다. 군더더기를 제하고 정확하게 원문의 뜻을 확정하는 과정이다. 지리한(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돼 따분하고 싫증이 나는) 데를 깎아 구절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명(明)’ 이란 무명(無明)이 없는 것이라 해서, ‘무무명(無無明)’이라 돼있는 것을 두 ‘무(無)’를 삭제해서 다만 ‘명(明)’이라고 하는 따위이다.

     ⑨ 윤문(潤文) ― 마지막으로 문장을 손질하는 과정이다. 주로 전문 승려로 임명하고 남향해 자리를 잡는다고 돼 있다. 역주(譯主) 다음 가는 중요 직책이다. 그 임무는 문장의 마지막 손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의 번역에 보이는 '일체고액(一切苦厄)'이라는 구절은 범어 원본에 없다. 또 '시고공중(是故空中)'이라 돼 있는 ‘시고(是故)’도 원본에는 안 보인다. 그것들은 윤문이 문장을 손질할 때 넣은 것이 분명하다. 윤문의 역할에 따라 문장이 유려해지기도 하고 거칠어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경우에 따라 시설되기도 했다.

     • 증범의(證梵義) ― 범어의 의미가 번역을 통해 의미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 증범본(證梵本) ― 불법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과 학문적 이해에 바탕 해 범어 원본의 설명과 표현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로서 주로 서역인이 맡았다.

     • 증선의(證禪義) ―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에 기초해 번역문이 불법의 도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했다.

     • 도어(度語) ― 역주의 경전 해석을 한어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하는 역할이다. 역어(譯語), 전어(傳語)라고도 하며 통역의 역할을 수행했다. 도어가 있었으므로 한어를 하지 못하는 서역의 삼장도 중국에서 역장을 맡을 수 있었다. 구마라습이나 현장, 의정과 같이 범어에 능통할 경우, 역주 스스로 도어를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서자(書字)가 도어(度語)를 맡기도 했다.

     • 교감(校勘) ― 여러 자료와 대조해 번역문의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 번역된 경전 중에 위작으로 의심되는 것, 결본으로 완전하지 않은 것 등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었다.

     • 범패(梵唄) ― 음율이 있는 문장일 경우, 범패를 두어 번역본이 낭송하기에 적당한 음률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을 했다.

     • 감호대사(監護大使) ― 황제의 명을 받은 대신으로서 역경을 감독하고 위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승려가 맡는 경우도 있었다. 감호대사는 명목은 감독이었지만 황제를 대신해 역경에 필요한 제반 조건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 감역(監譯), 감열(監閱)로도 불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우리가 구마라습 번역이라고 알고 있지만 구마라습 혼자서 한 것이 아니다. 많은 인원의 역할과 도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구마라습 번역의 경전 문장이 유려해서 널리 보급된 것도 당시 구마라습을 도운 윤문(潤文)의 뛰어난 역할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이런 관제와 직책의 서술은 당시 역경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파악함에 있어서, 그 과정이 마치 눈앞에 보듯이 실감 있게 전해준다.

    이렇게 전문적이고도 집단적으로 번역된 한역 경전들은 그 내용이 대단히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원본이 실전돼 구할 수 없게 되면 한역 경전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역으로 정확히 추정할 수도 있다. 이러함을 통해 경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저술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종파가 성립되기도 했다. 대장경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이러한 과정의 총결산이자, 토착화돼 문화의 일부가 된 불교사상의 정수를 담은 것이다. 

    

*경전 암송---→불전암송(佛典暗誦) 참조.

            

*경절문(徑截門)---‘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간다는 뜻으로, 소위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단도직입적인 길을 말한다.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수행 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간화선으로 곧바로 본래면목, 즉 진제(眞諦)를 터득,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 경절(徑截)이고, 그 수행법이 경절문이다. 경절문이란 질러가는 문, 지름길로 통하는 문, 수행의 빠른 방법,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경문에 나오는 ‘문(門)’은 대개 출입문이란 의미 이외에, 따위, 부류, 그런 종류, 상태, 가르침 등의 의미가 있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최초로 이 이론을 정립했다. 지눌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지어서 일체의 언어와 문자, 이론과 사유를 초월해서 화두를 잡아 활구(活句)로 증입(證入)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말을 여의고 지해(知解:알음알이)를 잊는 경절문의 방편을 인증해 참선하는 자만이 해탈할 수 있다.”는 경절문 사상을 천명했다. 또한 경절문을 곧바로 체득할 수 있는 방편으로는 간화선(看話禪)을 채택했다. 즉, 화두를 통해서 곧바로 본래면목을 깨닫게 하는 방편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지눌 이후 우리나라의 선종에서는 간화선을 방편으로 한 경절문의 공부가 주류를 이루게 됐고, 오히려 불교의 교학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일어나게 됐다.

   조선 중기의 고승 휴정(休靜)이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경절이란,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물결을 곧바로 질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간화선에 입각한 경절문을 크게 중시했다. 그의 제자인 언기(彦機)도 <심검설(尋劍說)>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경절문ㆍ원돈문(圓頓門)ㆍ염불문(念佛門)으로 나눈 뒤 경절문을 최상의 법문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불교의 선 수행에서도 이 경절문 법문이 중요시되고 있다.

   

*경집(經集)---숫따 니빠타(Sutta-nipata)를 말한다. 빠알리어 삼장 가운데 경장(經藏 Sutta Piṭaka)의 소부(小部, 굿다까니까야/Khuddaka Nikāya)에는 15개의 작은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숫따 니빠타>이다.

빠알리어 sutta는 경(經)이란 말이고, nipāta는 모음, 집성(集成)이라는 뜻이므로 경집(經集)이라 번역한다. 아마도 이 경은 각장의 작은 경들에 각기 이름을 부여하기 전의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것인 듯한데, 이 경의 각장이 각각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땐가 뒤에 경 이름을 붙여 모아 하나의 경으로 합해졌기 때문에 경집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전에 경 이름이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차후에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내용은 여러 가지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것으로, 갖가지 설화, 대화, 짧은 서정시, 격언, 속요(俗謠) 등을 운문(게송)으로 엮은 것이기에 마치 시문집(詩文集)과 같고, 그 속에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닛데사(義釋, Niddesa), 숫따 니빠타(Sutta-nipata)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다.---→숫따 니빠타(Sutta-nipata, 경집/經集) 참조.

 

    

*경행(經行)---고려시대에 민간의 질병과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스님들이 향불을 들고 북을 치며 불경을 외면서 거리를 걸어가며 복을 빌었던 불교행사를 일컫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스님들이 좌선하다가 졸음을 막기 위해, 또는 건강을 위해 일정한 구역을 가볍게 거니는 것을 경행(經行)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원칙적으로 포행(布行) 혹은 경행(輕行)이라 한다.---→포행(布行) 참조.

     

*경허(鏡虛, 1849년~1912년)---조선말기 승려, 속성은 송씨(宋氏), 속명은 동욱(東旭), 법호는 경허(鏡虛)이며, 법명이 성우(惺牛)이다. 조선 500년 동안 잠자던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킨 근세 최고 선승이라 평하고 있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했다. 개심사, 부석사, 범어사, 해인사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교화활동을 펴면서 크게 선풍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엔 주로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수월(水月), 만공(滿空)과 한암(漢岩), 용성(龍城)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선종 1대 조사인 마하가섭 존자 이래 75대 조사라고 한다.

    “경허(鏡虛) 선사는 봉건적 잔재를 깨부수고 오염된 조선불교를 깨끗이 씻어냈다. 경허를 통해 한국불교는 다시 회생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허 문하에서 배출된 고승들이 주도한 1954년 이후 불교정화운동에 의해 현대한국불교가 정립된 것을 보면, 한국불교는 선구자 경허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허는 잿밥에만 골몰하며 목탁을 두드리던 구한말 불교계에 선(禪)의 정신과 선종교단으로서 한국불교가 지녀야 할 전통의 복원을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일상적인 안목에서 보면 파계승이라 오해 받을 괴이하게 여겨질 정도의 일화를 많이 남겼다. 문둥병에 걸린 여자와 몇 달을 동침했고, 남의 여인을 희롱한 뒤 몰매를 맞기도 했으며, 술에 만취해서 법당에 오르는 등 낡은 윤리의 틀로는 파악할 수 없는 행적들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돌연 환속해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해서, 서당 훈장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술 담배를 즐겨, 윤리와 도덕을 한국불교에서 깔아뭉개기 시작한 것은 경허 성우(鏡虛 惺牛) 이후라고 평하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대표적 불교 학자였던 이능화(李能和) 같은 사람은 경허를 사악한 자, 사기꾼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18년도 간행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경허 스님을 음행과 투도를 끊임없이 자행한 무법자이며, 선종총림에서 마땅하게 제거돼야 할 마설(魔說)을 설한 기인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그리하여 후대인들 중에도 경허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일탈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일탈은 한두 번에서 끝나야 하고 지속돼서는 안 된다. 깨달았다고 하여 막행막식을 해도 좋다는 것은 율장 그 어디에도 없다. 부처님도 그러신 적이 없고 마조, 조주, 대혜 종고, 그리고 보조 국사, 청허 휴정 등 역대 고승들도 음주와 여색을 한 적은 없다. 심지어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불음주, 불사음계를 범하면 추방하라고 명시돼 있다. 경허 스님의 반복적 지속적인 술과 여색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승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경허 스님은 선은 크게 일으켰지만 동시에 한국불교를 깊은 수령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이 ‘깨달은 선승의 무애행’이고 ‘깨달은 분상에서 대 자유인의 경지’라고 왜곡돼선 안 된다. 무애자재란 번뇌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며, 욕망으로 인해 본분사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차법(開遮法, 허용과 제한)이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막행막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 윤창화

    “무명(無明)과 갈애(渴愛)가 일어나지 않도록 뿌리 뽑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통한 수행이 필요하다. 이는 사성제(四聖諦)의 마지막 진리로서 명확하게 설명돼 있다. 연기법(緣起法)을 이해한 것을 ‘깨달아 해탈한 것’이라고 잘못 알게 되면, 갈애가 일어나는 대로, 혹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는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하게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대표적인 예로 경허 스님을 들고 있다. 깨달음과 해탈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경허 스님의 막행막식을 걸림 없는 행 또는 기인의 행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러러보며 따르기도 한다. 경허 스님은 연기법을 이해한 상태에 불과하며, 그 막행막식을 보면 경전에서 정의되고 있는 수다원(須陀洹) 상태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경허 스님도 말년에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고 한다.”

    경허는 1912년 4월 함남 갑산군 웅이방 도하동에서 육신의 옷을 벗었다. 세수 67, 법랍 59세였다. 임종게만이 그의 열반을 지켰다. 경허 스님의 열반송이다.

      “마음의 달 홀로 둥근데 신령스러운 빛은 삼라만상을 삼키네,

       빛과 만상이 모두 사라졌으니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心月孤圓 光呑萬像 光境俱忘 復是何物)”

    어떻든 현재 ‘북 송담 남 진제(北松譚 南眞際)’ 두 큰스님의 경우에, 송담 스님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 스님은 경허(75대)-혜월(76대)-운봉(77대)-향곡(78대)-진제(79대)의 계보이다.

    경허 스님에 대한 평은 계속되지만, 고려 말 불교의 부패와 퇴락, 조선 오백년간에 걸친 불교탄압, 그리고 일제침략 등으로 거의 멸종될 위기에 있던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분이 경허 스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한 몸을 불살랐다고 본다. 당시 깨달았다는 분도 오직 경허 선사 한 분 정도였다. 당시 워낙 문맹률도 높아, 불자들은 대승불교의 신격화된 부처님과 보살들의 영향으로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인간 붓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또한 대승경전의 부처님처럼 신이나 절대자로 착각하고, 그분은 아무런 인간적인 갈등도 고민도 없는 완벽한 분으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런 상황의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데, 그것도 동조자도 없이 혼자 힘으로….

    경허 선사도 깨달음을 얻은 뒤 많은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산 속에 홀로 구름과 물과 산을 벗 삼아 일생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분은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그런 삶을 포기하고 온 몸으로 직접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행동이 막행막식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지 결코 제 삼자가 함부로 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실론섬

   경허 스님의 법제자에 대해서는, ‘경허성우선사 법어집간행회’가 편찬한 <경허법어>에, 수월 음관(水月音觀, 1855~1928),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2~1937), 용성 진종(龍城震鐘, 1864~1940), 침운 현주(枕雲玄住, ?), 혜봉(慧峰, ?~?),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으로 돼있다.

 

     

*경흥(憬興, 생몰연대미상)---신라 고승. 웅천주(熊川州, 현 공주) 출생. 18세에 승려가 돼 경(經)ㆍ율(律)ㆍ논(論) 삼장에 통달했다. 681년 문무왕(文武王)의 유언에 따라 신문왕(神文王)에 의해 국로(國老)가 돼, 삼랑사(三郞寺)에서 저술에 정열을 쏟으며 법상종(法相宗)을 발전시켰다. 저서에 <열반경소(涅槃經疏)>, <법화경소(法華經疏)>, <금광명경술찬(金光明經述贊)>, <미륵경술찬(彌勒經述贊)>, <유가론소(瑜伽論疏)>, <유가기(瑜伽記)>, <기신론문답(起信論問答)>,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등 다양하다.      

      

*계(界, 산스트리트어 dhatu, 빠알리어 dhatud)---계(界)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영역, 경지, 상황 등으로 해석하지만 세계라는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라 하면 달이 있고, 태양이 빛나고, 별이 있고, 그 지구 속에 인간이 살고 있는 이런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에서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바깥 세계만 세계가 아니라 마음속에 그린 것(의식)까지 합한 것이 불교적 세계관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계(界)란 말은 종족의 뜻도 있고, 본생(本生)의 뜻도 있으며, 영역, 세계라는 뜻도 있는데, 육근, 육경, 육식의 18개가 동시 작용할 때를 계(界-18계)라고 부른다.

   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안 ․ 이 ․ 비 ․ 설 ․ 신 ․ 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색 ․ 성 ․ 향 ․ 미 ․ 촉 ․ 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육진/六塵)을 합해 12처라 하는데, 이 12처(處)에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 일어나서 이 6식(識)을 더한 18개가 모인 것을 18계라고 한다. 결국 18계란 십이처에 인식작용의 주체인 육식을 포함한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 전체를 계라고 한다.---→경계(境界, 산스크리트어 visaya), 십팔계(十八界) 참조.

   

*계(戒)---→‘계(戒, sila)와 율(律, vinaya)’ 참조.

   

*계경(契經)---빠알리어 숫타(sutta), 산스크리트어 수트라(sūtra)의 의역이며, 음역어로는 수다라(修多羅)라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을 가리킨다. 계(契)는 계합(契合) 부함(符合)의 뜻으로 경전 가르침(내용)이 정법의 이치에도 맞고, 중생의 근기에도 맞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에서 계경이라고 하건 수다라라고 하건, 경전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미는 '부처 즉 깨달은 자로서의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가르침' 또는 '그러한 가르침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즉, 불교경전의 다른 이름이다.

    

*계금취견(戒禁取見)---<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5견[(五見=오리사(五利使)]의 하나. 계금(戒禁)에 대해 생기는 그릇된 소견―잘못된 계율이나 금지조항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받들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그릇된 견해로서, 잘못된 도를 고집해 그것이 천상(天上)에 태어나거나 해탈(解脫)하는 도가 된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見解)이다.

    계율과 의례에 대한 잘못된 집착으로 타당한 이유는 배제된 채, 무조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무조건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무조건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한다, 무조건 생명체를 죽여선 안 된다, 무조건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앞 뒤 사정없이 ‘…무조건’하고 선ㆍ불선도 구분하지 않고, 윤리ㆍ도덕과 전통ㆍ권위에 묶여서 중도를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계율과 의례에 대한 취착 즉,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계도견(戒盜見)이라고도 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명상을 하거나 계율을 지킬 필요는 없다. 법문을 잘 듣고 정신과 물질의 본성을 암기해서 알면 된다.”라고 설법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수행법은 계ㆍ정ㆍ혜의 세 가지 도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설법은 계율과 의식에 대한 잘못된 취착(取着)으로 이도 또한 계금취견이다. 도에서 벗어나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한번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디까지나 고집을 부리는 것 따위이다.---→견혹(見惑), 오견(五見) 참조.

   

*계급인설(階級因說)---붓다 생존 당시의 바라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 올바른 업보설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주장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①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②숙작인설(宿作因說) ③결합인설(結合因說) ④계급인설(階級因說) ⑤우연인설(偶然因說)

    그 중 하나인 계급인설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흑(黑), 청(靑), 적(赤), 황(黃), 백(白), 순백(純白)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돼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숙명론으로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결합인설(結合因說) 참조.

   

*계단(戒壇)---계율을 수여하고 받는 의식을 행하기 위해 마련된 단을 말한다. 주로 정식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장소이다.---→금강계단(金剛戒壇), 구족계(具足戒) 참조.

    

*계론(界論, 界說論, 빠알리어 다뚜까타/Dhatukatha)---부파불교시대 남방 상좌부의 논서인데, 작자는 미상이다. ‘요소(dhātu)들에 관한 가르침(kathā)’으로 번역되는 <계론>은 술어가 나타내는 개념의 내포(內包) ‧ 외연(外延)을 엄격하고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것들 서로의 포섭 ‧ 피포섭 관계, 상반(相伴)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관계 등을 논하는 극히 형식적이고도 번쇄한 논서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다. <법집론>을 보충한 논서이다.

   

*계박(繫縛)---마음이 번뇌나 망상 등에 의해, 혹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구속돼 자유를 잃은 상태를 말한다. 박(縛)은 결박(結縛), 구속(拘束), 속박(束縛) 등의 뜻으로,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가 마음을 결박해 생사의 감옥에 가두는 것을 뜻한다. 즉, 번뇌가 마음을 묶어서 선법(善法)을 자유로이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염(離染)을 가로막아 그 결과 생사의 감옥에 가두어진 상태에 계속 처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염(離染, 산스크리트어 virāga)은 이탐(離貪) 또는 이욕(離欲)이라고도 하는데, 좁은 뜻으로는 탐(貪)을 떠나는 것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모든 번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박(縛)은 계(繫, 산스크리트어 grantha-얽맴)와 동의어로도 사용된다.

   

*계분별관(界分別觀)---계차별관(界差別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나에게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를 버리기 위해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 등을 주시함으로써 이것들이 모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수행법이 계분별관이다.

    계분별관은 오정심관(五停心觀) 중 한 수행법인데, 일체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영원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계분별관 수련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을 무시하고 나를 내세우는 사람, 비겁한 사람, 교활한 사람, 지기 싫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자기중심적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 자신의 신분, 학력, 가문들을 내세우는 사람 등에게 해당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세계란 십팔계(十八界)를 말한다.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의 18개가 동시 작용할 때를 이를 합해 십팔계(十八界)라 한다. 그러니까 계분별관(界分別觀)이라는 것은 이 십팔계의 모든 법은 지 ․ 수 ․ 화 ․ 풍 ․ 공 ․ 식(地水火風空識)의 육대(六大)화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관해 아견(我見)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은 사대(四大)라고 해서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이고, 여기에 공(空)과 식(識)을 더한 것을 육대(六大)라고 하는데, 이 십팔계라고 하는 존재들은 독자적으로 부동한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육대(여섯 가지 요소)가 합해져서 사람도 되고, 물질도 되고, 형상도 되고, 운동도 하고, 있다가도 없어지고, 이 모두가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이것이 고정적으로 있다고 하는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집착을 붙잡고 놓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견(我見(자기고집)이고, 그것(我見)을 버려라 하는 것이 계분별관이다.---→오정심관(五停心觀), 육대(六大) 참조.

   

*계빈국(罽賓國, 카슈미르/Kashmir)---계빈국은 인도 북부에서 AD 2~5세기에 불교가 매우 성행했었던 고대국가로서 AD 7세기까지 존속했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펀자브(Punjab) 북쪽, 카불(Kabul) 동쪽에 있었다고도 하고,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현 아프간의 수도 카불 일대를 계빈국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로 현 카슈미르(Kashmir) 지역이었다고 하는 의견으로 좁혀져 있다.

   현재 카슈미르(Kashmir) 지역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 부분의 남쪽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면적은 약 22만km2로 한반도 면적과 비슷하다. 아열대 기후인 인도대륙과 달리 이곳은 고원지대라서 쾌적한 환경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보석, 그 중에서도 루비는 카슈미르 산이 최상급이라고 한다. 다만 이 지역이 북부는 파키스탄령이고, 남부는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주, 동쪽은 중국이 관할하는 아크사이친의 고원지대, 이렇게 삼분된 상태로 국경분쟁이 있고, 인도 점령지의 경우 주민의 70% 이상이 이슬람교도로서 인도 정부에 반향하고 있어서 이래저래 치안이 불안한 상태이다.

   카슈미르 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국을 중국에선 계빈이라 했다. 계빈은 중국에 비교적 잘 알려졌던 나라였다. 불교관계 한역(漢譯) 전적(典籍)에도 계빈이 자주 나온다. 이 계빈국이 한(漢) 무제(武帝, 재위 BC 141~87) 때부터 중국과 통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나라 때에도 계빈국과 왕래가 있어 계빈에서 사신을 파견해 오고 명마 등 조공을 바친 일이 있었다.

    이미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에 의해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됐으며, AD 2세기 쿠샨 왕조 카니시카왕 때는 쿠샨제국에 복속돼 불교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쿠산 왕조 이후 계빈국은 폐르시아(지금의 이란) 사산왕조에 복속돼 이슬람화 됐으며, 6세기 중엽에는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돼 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와 통교가 있었던 것을 보면 계빈국은 강대국에 복속되면서도 자치권은 누린 상태로 오래 존속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현장(玄奘)은 카슈미르에 2년간 머물면서 <구사론>과 <순정리론>을 학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초기불교사를 장식한 역경승들 중 많은 이가 카슈미르 출신이거나 이곳으로 유학했고, 법현(法顯), 현장(玄奘), 혜초(慧超) 등의 구법승 또한 이곳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고 나갔다. 현장(629~645년 인도여행)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간다라(페샤와르)-오장나(밍고라)-탁샤실라(탁실라)-카슈미르-책가(시알코트)-치나북티(암리차르 일대)를 거쳐 중인도로 들어갔고, 해로로 입국한 혜초는 치나북티-책가-카슈미르-간다라를 거쳐 출국했다. 이렇듯 카슈미르와 간다라는 불교학의 고향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불교의 전초기지와 같은 곳이었다.」- 권오민   

   다음은 계빈국에 관련된 인사들이다.

     • 계빈국은 불교가 매우 성행했던 나라로서, 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이 어려서 계빈국에 유학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 비마라차(卑魔羅叉, 산스크리트어 Vimalāksā, 337~413)---계빈국 승려. 무구안(無垢眼)이라고 번역. 구마라습(344~413)도 그에게 율법을 배웠다. 유송(劉宋)에 와서 율장을 선양하다가 77세로 입적했다. 그는 특히 눈이 푸르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은 청안율사(靑眼律師)라 불렀다고 한다.

     • 구나발마(求那跋摩, Gunavarman, 367~431)---공덕개(功德鎧)라고 번역하는데 북인도 계빈국 출신으로 20세에 출가해 스리랑카를 경유해 자바 섬에 이르러 불교를 전파하고, 424년에 해로로 중국[유송(劉宋)[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사분비구니갈마법(四分比丘尼羯磨法)>,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 등 10종 18권을 번역했고, 비구니 승단 구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 불타야사(佛陀耶舍, 산스크리트어 Buddaha-yasas)---계빈국 출신으로 구마라습의 역경사업을 도왔으며, 스스로 <장아함경>과 <사분율>을 번역했다.

     • 불야다라(弗若多羅, 산스크리트어 Punyatãra)---계빈국 출신으로서 공덕화(功德華)라고도 한다. 경ㆍ율ㆍ논 3장에 통달했으며, 399년 중국 후진(後秦=姚秦)에 와서 구마라습과 함께 <십송률(十誦律)> 번역에 종사했다.

     • 선종 제24대 조사 사자(師子) 존자는 계빈국에서 교화를 폈다. 그런데 당시 불심이 깊던 계빈국왕이 모함에 빠져 폐불 군주로 돌변하자 사자 존자가 의연히 막아섰다. 이에 왕이 물었다.

     “스님은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소?”

     “오온이 공함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래, 삶과 죽음을 벗어났소?”

     “삶과 죽음을 이미 벗어났습니다.”

     “그럼 내게 머리를 줄 수 있겠군.”

     “본래 내 것이 아니데 어찌 아까워하겠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은 사자 존자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하얀 젖이 하늘로 솟구쳤고, 왕은 팔이 저절로 떨어져 7일만에 죽었다고 한다.

     • 제25대 조사​​ 바사사다(婆舍斯多, ?~325) 존자는 출생지가 계빈국이었다.

     • 상가데바(승가제바/僧伽提婆, Samghadeva)---본래 성은 구담씨(瞿曇氏)로 중천(衆天), 혹은 제화(提和)라고도 하는데, 계빈국 출신의 삼장(三藏)으로 동진(東晉)시대인 317년 <증일아함경>을 최초로 한역했다. 그는 AD 4세기 중반 전진(前秦)왕 부견(符堅) 시대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종사했고, 동진(東晋)시대까지 활약해서 <대념처경(大念處經)>, <옥야경(玉耶經)> 등도 한역했다.

     • 불타집(佛馱什)---불타집은 한역해서 각수(覺壽)라 하며,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부파불교시대 미사색부(彌沙塞部) 출신으로 5세기에 중국 남북조시대에 남조 송(宋)나라에 와서 <오분율(五分律)>을 한역했다. 미사색부를 화지부(化地部)라고도 한다.

      • <반야심경>은 여러 차례 번역됐는데, 가장 널리 읽혀지는 것은 당나라 현장 법사 번역본이고, 계빈국 출신의 반야(般若)ㆍ이언(利言)이 공역한 <반야심경> 또한 유명하다.

     • <화엄경> 중 <40화엄>은 8세기 말 계빈국 출신의 학승 반야삼장(般若三藏, 푸라주나/Prajna)이 한역했다.

     • <원각경>은 당나라시대 계빈국 출신의 승려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했다.

    

 

*계수(稽首, 산스크리트어 Vandana, Vandi)---반담(伴談)ㆍ반제(伴題)라 음역. 계수례(稽首禮)라고도 한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여 공경의 뜻을 표하는 예법을 말한다. <천수경>에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主)”란 말이 나온다.

    

*계수념(戒隨念)---수념(隨念)이란 늘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을 늘 기억하면 불수념(佛隨念)이 되고, 가르침을 늘 기억하면 법수념(法隨念)이 된다. 따라서 계수념이란 자기가 지키는 계를 늘 기억하고 고찰하는 것이다. 불교도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수념(隨念)이다. 불도(佛道)는 계ㆍ정ㆍ혜(戒定慧)라는 삼학으로 성립되고 있다. 불도를 성공으로 이끄는 세 걸음 가운데 첫째가 계(戒)이다. 계(戒)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도덕을 중시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도는 단지 도덕적으로 되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엄중하게 지켜야 하는 도덕항목이 목록으로 제시돼 있다. 그것이 계율(戒律)이다. 계율(戒律)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 열광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의 집중력을 올려서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훈련이다. 해탈을 이루게 하는 기초이다. 형식적이고 열광적으로 계(戒)를 지키면 성장해야 할 마음이 오히려 경직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역효과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겨난다. 이 상황은 불교에서 계금취(戒禁取)라고 한다. 10종류의 번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필수조건인 계율을 지켜야 하지만 그것이 계금취(戒禁取)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계수념(戒隨念)은 그러한 일을 막아준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자신이 매일 지키고 있는 계율에 대해 이성을 바탕으로 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하나의 계수념이다.

     

*계신족론(界身足論,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dhātukāya-pāda-śāstra)---원명은 아비달마계신족론(阿毘達磨界身足論)으로서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 논서 7론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세우(世友, 바수미트라/Vasumitra)로 돼 있고, 당(唐)의 현장(玄奘)이 한역했다. 이는 마음과 마음작용에 대한 해석을 크게 진전시키고 있다. 이에 이르면, 법수(法數)에 따라 정리된 술어(아가마 이래의 법수 외에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법수도 나타남)에 대해 극히 복잡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개 술어 사이 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미세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어, 아비달마 논의의 번쇄함과 정치함의 도를 더하고 있다.

     

*계아착상자(計我著相者)---계아(計我)는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범부의 속성, 혹은 범부를 말한다. 착상(著相)이란 집착하는 마음이 엉겨 굳어서 조금도 변통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기에만 집착해 있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계행을 주시는 뜻을 모른다. 자비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좋을 대로만 욕심을 부려서 거리낌이 없고 남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이른 바 계아착상자이다.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인정사정없는 경제동물이다. 오늘날 천민자본주의 인간상의 전형이다.

        

*계(戒, 산스크리트어 sila)와 율(律, vinaya)---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계(戒, sila)와 율(律, vinaya)을 별개로 사용해 ‘계율(戒律)’이라고 붙여 쓰지 않았으나, 한역하면서 ‘계율’이라는 합성어가 생겨나고, 한국이나 일본불교도 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계와 율이 동일한 뜻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일상어로 사용할 때에 완전히 구별 지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엄격히 살펴보면 계와 율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계(戒)란 선행을 이끌려는 자발적 도덕규범인데 비해 율(律)은 승가의 질서유지를 위한 강제적 규칙이다.

   붓다의 재세 시에도 출가자들의 파계 행위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만들어진 것이 율이다. 계는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불도들의 일상적인 삶의 지침이라 할 수 있고, 율은 계를 어겼을 경우 처벌하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와 율은 다르다. 계는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다 지켜야 하지만 재가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다섯 가지(오계)이다. 율은 출가승이 지켜야 하는 것인데, 오계는 율 속에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보면, 계는 재가자, 율은 출가자의 것이라 볼 수 있다.

    종교윤리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나는 규범윤리이며, 다른 하나는 응용윤리이다. 계율이란 종교윤리에서는 규범윤리에 속하는 것이며, 윤리의 정합성을 논하기 이전에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일종의 강제성이 내포돼 있다.

    규범윤리에 속하는 계율은 세분하면 개인에 관한 조항과 단체에 관한 조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에 관한 것을 계(戒)라 하고, 단체에 관한 것을 율(律)이라 한다. 결국 개인적인 규범과 단체규범을 합쳐 계율이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교도는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 5계(五戒)이다. 그 외에 대승계의 대표적인 계율로서 재가불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십선계(十善戒), 그리고 팔재계(八齋戒)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규범이며, 기타 교단을 운영하기 위한 조항이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시설된 조항 등은 모두 단체규범이다.

 

     • 계(戒, 산스크리트어 Sila, 시라/尸羅) ― 계란 불교에 귀의한 자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습관 ․ 관습 ․ 경향을 말하는데, 여기서 악을 버리고 잘못을 예방[방비지악(防非止惡)]하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윤리적 행위, 즉 선행을 일컫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戒)란 규율을 지키고자하는 자발적인 마음작용, 자신을 제어하는 규칙을 지키려고 부처님에게 맹세하고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오계(五戒) 가운데 불살생계(不殺生戒)라는 것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계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방 안에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대로 두면 밤새 피를 빨릴 것이고 결국 뒤척거리다 날밤을 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두 손바닥을 쳐서 모기를 터뜨려 죽이고 말았다. 손바닥 안에서 묘한 피의 습기가 느껴지고, 한 순간 찜찜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쫓을 걸 그랬나?” 이 경우 우리는 불살생계를 어겼다 해서 벌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모기를 죽이기 전에 느끼게 되는 망설임과, 죽인 후에 느끼는 찜찜함이다. 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옳지 못한 행동을 앞에 두고 느끼게 되는 죄책감이나 갈등을 통해, 두 번 다시 똑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참회하고 이를 계기로 올바른 행동들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새 이것은 좋은 습관으로 발전하고, 결국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평안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게 된다.

    그리하여 성철(性徹) 스님은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더러워진다. 흙 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똥 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라고 하셨다. “계(戒)는 천상에 오르는 사다리요, 열반(涅槃)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거늘 어디에 그런 사다리와 문이 또 있을까!” 불교 수행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불교는 지혜와 해탈을 위해 계ㆍ정ㆍ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함을 가르친다. 생활에서 계를 닦아 마음의 고요함과 청정함에 이르며, 마음의 청정함에 이르게 될 때 지혜를 증득(證得)하게 된다.

    그리고 계란 우리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을 통제함으로써 자신과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덕을 쌓는 것이다. 계는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계가 공감, 친절, 사랑의 뇌를 이루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계는 조절에 주로 의존하는데, 긍정적인 경향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것을 억제한다. 나아가서 계(戒)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 구도자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바로 그것이다.

    “윤리나 도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계(戒) 역시 사람인 이상 모두가 지니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특히 불교도라면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항상 계의 정신을 상기하며 악행에 대한 꺼림을 통해 자신의 심신을 평안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행을 일삼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사람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선행의 실천’, 이것이야말로 불교도로서의 출발이자 깨달음을 향한 첫걸음이다.” - 이자랑.

 

     • 율(律, 산스크리트어 vinaya) ― 법률 ․ 규칙의 뜻이다. 출가한 제자들에게 악행이 있을 때마다 그 행위를 금지하고 벌칙을 규정했는데, 그 조항들을 모은 부처님 가르침을 뜻한다. 율이란 한 나라의 법률 내지 한 단체의 규칙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어떤 단체에 가입하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단체가 제시하는 회원조약에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를 어겼을 때는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에 나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외국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그 나라의 법률 하에 있게 된다. 율도 이와 같다. 일반인이었던 사람이 출가라는 행위를 통해 승가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는 승가가 제시하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 만약 그가 따르지 않고 불자가 되기 전일 때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승가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소 강제적이기는 해도 승가의 질서를 유지해 그 안에 있는 모든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하고 화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계와 율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우리는 계율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하며, 이를 승가의 규칙으로서의 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계에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강제성은 없다. 오로지 자발적인 정신력의 문제이다. 한편, 율 역시 계의 정신을 기반으로 지켜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강제적인 규칙이라 해도 자발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언제 바닷물에 씻겨 나갈지 모를 모래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는 수행자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고, 율은 무리를 이룬 집단인 대중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계’가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도덕과 비슷한 데 비해, ‘율’은 타율적인 규칙으로 법률과 비슷하다. ‘율’은 출가교단(出家敎團-僧團)의 교단규칙으로 단체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입단자들은 이를 지키도록 강요되지만, 불교수행으로서는 이를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므로 ‘계’의 입장에서 ‘율’을 지키고,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타율적 의미의 율보다 자율적 의미의 계를 더 강조하는 데에 불교계율의 특징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바닷다에게 “데바닷다여, 교단에는 계율과 규칙은 본질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청화(淸華, 1924~2003) 스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률 가운데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다. 계율은 우리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우주의 질서이다.”라고 하셨다.

   계율은 주로 율장(律藏)에 실려 있다. 계율이란 부처님이 제정한 교단생활의 규칙을 말하며, 계본(戒本)ㆍ건도부(犍度部)ㆍ경분별(經分別)ㆍ부수(附隨)로 이루어졌다. 율장이 최초로 성립된 것은 석가모니 열반 직후 제1결집 때의 일이며, 이때 결집된 율이 그 후 점차 정리, 조직돼 오늘에 전해진 율장이 됐다.

    율장에는 남방 상좌부의 팔리율과 더불어 화지부의 <오분율> 30권, 법장부의 <사분율> 60권, 대중부의 <마하승기율> 40권, 설일체유부의 <십송율> 61권, 설일체유부의 <유부신율> 170여 권 등이 있다.

  

 

*계율의 성립과 분류

     (1) 계율의 성립---율장(律藏)이 성립된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불교경전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연대를 유추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율장의 성립연대는 부파분열 이후 즉, 불멸 후 300년 이후(서기 150년경)로 보인다.

물론 율장의 내용은 다소 변형되고 증보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BC 1세기경(불멸후 300∼4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사분율(四分律)ㆍ오분율(五分律)이며, 다음으로 AD 1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십송율(十誦律)>이고, 그 후 다시 AD 2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승기율(僧祇律)>이고, 최후에 성립된 것이 AD 4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유부율(有部律)>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빠알리 율은 <십송율(十誦律)>에 가까운 것으로 AD 100년 전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역(漢譯) 율장의 번역 연대는, <십송율>은 서기 404년, <사분율>은 412년, <승기율>은 416년, <오분율>은 524년, 그리고 <유부율>은 703년경이다.

    

    (2) 계율의 분류---<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계법(戒法) … 부처님께서 정한 법.

        ② 계체(戒體) … 계를 지키려고 하는 불자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말한다. 즉, 수계식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결의는 ‘계체(戒體)’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돼 수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이후 그 사람이 불교도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따라서 수계를 통해 계체가 원만히 이루어질 때 계품에 맞는 신분이 만들어지게 된다.

    특히 한역(漢譯)으로 전해지는 율(律)이나 논(論)에는 ‘계체(戒体)’라는 것이 있어서 이 문제가 각양각색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계를 거침으로써 발생해 몸에 배게 되는 ‘방비지악(防非止惡-죄를 방지하고 악을 그치게 함)의 힘인 것이다. 빠알리율에서 말하는 ’비구성(比丘性, bhikkhu-bhāva)’이 계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③ 계행(戒行) … 계체가 낱낱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④ 계상(戒相) … 신자로서 계행을 지킴으로서 겉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계행을 하는 불교 신자의 모습은 남다를 것이다. 그 게 계상이다. 

    가. 소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 오계(五戒) … ㉮ 살생을 하지 말라. ㉯ 훔치지 말라. ㉰ 음행하지 말라. ㉱ 거짓말 하지 말라. ㉲ 술 마시지 말라.

    ㈏ 팔계(八戒) ― 오계에 아래 셋을 더한 것.

      ㉳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지 말라.

      ㉴ 노래하고 풍류에 휩싸이지 말며, 일부러 가서 구경하지도 말라.

      ㉵ 높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 십계(十戒) ― 팔계에 아래 둘을 더한 것.

      ㉶ 때 아닌 적에 먹지 말라.

      ㉷ 제 빛인 금이나 물들인 은이나 다른 보물을 갖지 말라.

    ㈑ 삼귀의계(三歸依戒) ― 불교에 처음 귀의할 때 하는 의식으로, 곧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 비구의 250계

    ㈓ 비구니의 348계

   나. 대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보살이 수행하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의 하나가 돼 보다 적극적인 수행덕목으로 발전했으며, 일체의 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로 구분한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섭율의계(攝律義戒) ― 계율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곧, 5계ㆍ10계ㆍ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義) 등을 통한 윤리기준이다.

    ㈏ 섭선법계(攝善法戒) ― 금계(禁戒)로서 만족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이타(利他)적인 선행을 닦아가는 것이다. 곧, 선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총섭(總攝)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원칙이다.

    ㈐ 섭중생계(攝衆生戒) ― 궁극적으로 중생을 보살로, 그리고 부처로 성취시켜 불국토를 실현하는 것이다. 곧,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원칙에 따르는 윤리기준이다.

 

*계인(契印)---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수인(手印)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수인(手印)은 손의 형상으로서 진리와 서원을 전달하는 것이고, 계인(契印)은 특별한 물건을 들어 그 구제적인 내용과 의미를 표현한다. 즉,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은 수인을 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보살들과 신장님들은 물건을 손에 들고 계인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손에 든 물건으로 그 뜻을 전하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한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고를 고쳐주기 위해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약기인(藥器印)이라 한다. 즉, 중생의 고난과 업장을 멸해 주고, 병마를 치료해주시는 서원의 상징으로 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계인(契印)을 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흔히 중생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가피하는 상징으로 감로수병을 들고 있는 감로인(甘露印)을 하고 있다. 혹은 업보와 고뇌로 힘들어하는 중생들에 대한 구제의 상징으로 연꽃을 들고 있는 자비인(慈悲印)을 하기도 한다.

   지장보살은 고통 받는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서원의 상징으로 육환장(六環杖) 지팡이를 들고 있고, 꽃. 약기(藥器) 등 각종 지물을 들고 있는데, 이를 비원인(悲願印) 혹은 구제인(救濟印)이라 한다.  

  

*계(戒, 빠알리어 sīla) ․ 정(定, samādhi) ․ 혜(慧, paññā)---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을 부처님 가르침의 요약이라고 한다. 따라서 계학, 정학, 혜학의 삼학은 수행자가 닦아야 할 세 가지 영역이다. 계(戒)는 계율을 말하고, 정(定)은 삼매를 말하며, 혜(慧)는 반야를 말하는 것이다. <청정도론>은 “계(戒)는 나쁜 세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내고, 집중(定)은 욕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지혜(慧)는 모든 존재(삼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낸다.”라고 적고 있다.

   계 ․ 정 ․ 혜 이 세 가지 가운데 특히 계(戒)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계는 선정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정(調整)’이라고도 한다. ‘심신의 조정’ 없이는 정신을 통일 ·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행경(遊行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세존께서는 발지국(拔祗國)을 돌아다니시다가 구리(拘利)촌에 이르러 어느 나무 밑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네 가지 깊은 법이 있다. 첫 번째는 거룩한 계(戒)이고, 두 번째는 거룩한 선정[定]이며, 세 번째는 거룩한 지혜이고, 네 번째는 거룩한 해탈(解脫)이다. 이 법은 미묘해 알기 어렵다. 나와 너희들은 이것을 밝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나고 죽는 가운데 끝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발지국(拔祗國, 산스크리트어 vṛji, 빠알리어 vajji)---지금의 파트나(Patna) 북쪽에 인접해 있던 인도 고대국가, 바이샬리(vaiśālī)를 중심으로 비데하족(videha族)ㆍ릿차비족(licchavi族)ㆍ브리지족(vṛji族) 등으로 형성돼 있었는데, 기원전 6세기에 마가다국(magadha國)에게 멸망당했다.

    그리고 또 부처님은 콜리성 북쪽 한 나무 아래에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 계ㆍ정ㆍ혜가 있으면 덕이 자라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리다. 그리고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 뒤에 다시 윤회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삼학(三學, 산스크리트어 tisso sikkhā) 참조.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의 조화와 문제점---불교의 교학 및 실천 체계는 전통적으로 계ㆍ정ㆍ혜 삼학의 완성으로 설명된다. 이들 세 가지는 서로 바탕이 되고 떠받들면서 향상하고 확장, 심화되는 관계에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빠지거나 온전치 못하면 나머지 둘은 무의미한 것이 되며, 하나하나는 다른 둘의 조건이자 결과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렇게 삼학의 유기적 이해와 실천이 있어야 올라른 불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점은? 앞으로 채우고 이루어내야 할 과제는? 아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계율을 소홀히 여기는 일반적 풍조다. 여기에는 여러 문제가 뒤섞여 있지만, 우선 계율 가운데는 지키려야 지킬 수 없는 조항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승불교의 편협한 계율 이해와 형식적 지계(持戒)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도 환경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 없게 됐거나 불합리한 조항들을 삭제, 수정하거나 새롭게 제정하지도 못한다. 이렇다가 보니, 율(律)은 초심자 길들이기에나 필요한 장치이고, 계(戒)는 편할 대로 늘였다 줄였다 말 그대로 자심계(自心戒)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책무에는 무관심이다. 자비, 평등, 평화의 원칙과 실천을 등한시하고 있다. - 21세기 사회에 적합성을 묻는 대중공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교학과 특정 교리의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 한글로 번역돼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전들을 보면 한눈에 우리 실력이 보이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오래전에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한글대장경을 보면 우리 스승님들의 한문 실력, 우리말 솜씨, 거기다 가장 기본적인 교리의 이해 정도가 드러난다. ‘覺’ 자만 나오면 무조건 ‘깨달음’이고, ‘法’ 자는 그냥 ‘불법(佛法)’이며, ‘空’ 자는 모두 ‘텅 빈’이다.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소의경전이라는 <금강경>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 불교 법회에 나오는 코흘리개들도 달달 외우는 <반야심경>을 앞뒤 맞춰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시치미 떼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심심 미묘한 도리라고 한다. 계율, 아비달마, 위빠사나(vipassanā) 말만 나오면 소승 딱지를 붙이려 든다. 그러나 소위 대승경전에서 지계(持戒)나 혜(慧), 관(觀) 자를 다 빼면 무엇이 남고, 아비달마를 모르는데 어떻게 유식, 화엄을 읽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제대로 담아 줘야 한다.

   셋째, 수행과 일상생활의 괴리이다. 중국불교 역사에서 인도식 출가 수행자의 기본 정신인 무소유의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선농일치(禪農一致)’ 즉 ‘생산활동과 수행을 분리하지 않음’을 내세운 것은 가히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선종을 그 기원으로 삼는 우리 승가에 이 전통은 다만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 수행의 근본 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업설(業說)이다. 경전에서는 업(業, karma)을 ‘의도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행자가 성성하게 깨어 있으라는 것은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 모두를 의도된 행위로 만들라는 말이다. 업설은 따라서, 모든 행위가 ‘주체적 결단’을 통한 의도된 행위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는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에 입각한 자기 개발 노력은 모두 수행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얼토당토않은 무아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가소롭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일반 재가불자들에게조차 좌선만이 최고의 수행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수행이 특정 카스트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 같은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거기다 이미 고타마 붓다에 의해 정리된 사마타(samatha-止, 定, 寂)와 위빠사나(vipa-ssanā-觀, 慧, 照)의 문제를 지금까지 따지고 있다. 삼매(samādhi)를 ‘등지(等持)’라고 옮긴 옛사람들이 이미 답을 준 것이다. 이것은 곧 지(止)와 관(觀)의 균형을 말한다. 지가 빠진 관이나 조(照)가 작동하지 않는 적(寂)은 바른 선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대 적적성성(寂寂惺惺)의 논란은 둥근 공을 놓고 어디가 앞이냐를 따지는 불필요한 싸움이다. 양쪽은 똑같이 삼매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고, 삼매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이미 여러 부파의 발생과 성쇠를 거쳤고, 인도반도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불교는 중도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늘 중심을 곧게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긴 불교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의 핵으로 기억하는 용수, 무착, 세친, 보리달마, 혜능 등 옛 스승들의 업적은 다름 아닌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의 정신, 현실 세계로의 복귀였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쳤을 때, 대사회적 유연성을 잃고 굳어 갈 때, 혹은 전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흐르지 못하고 정체돼 있을 때, 둑을 뚫고 새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끌어들인 새물은 이미 거기 있었던 우물,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에서 퍼 올린 것이다. 가장 오래된 샘에서 새물을 길어 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파야 할 우물도 바로 그 자리다. - 재연 스님

 

    

*계족산(鷄足山, 쿠르키하르/Kurkihar)---인도 동북부, 비하르주(州)에 있는 산.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야(buddhagayā) 동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으로 정상에 큰 불교승원지가 있다. 사방 약 200m와 사방 40m인 2개의 유적구(遺跡丘)가 있다. 1930년 발굴에 의해 큰 유적구에서 약 150체의 상(像, 대부분은 브론즈)을 위시해서 대좌, 수정 소탑, 종, 도기 등 230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기록된 계족산이 이곳에 해당된다고 한다. 닭발처럼 세 가지로 나누어진 듯 생긴 산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가 여기서 부처님 의발을 간직하고 있다가 다음 세상에 미륵불이 나타나면 전한다고 하는 전설적인 산이다. 이런 성스러운 계족산이기에 그 이름을 따서 중국과 우리나라 여러 곳에 계족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계청정(戒淸淨)---마음청정에는 7단계가 있는데, 계청정(戒淸淨), 심청정(心淸淨), 견청정(見淸淨), 도의청정(度疑淸淨), 도비도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지견청정(知見淸淨)의 단계이다.

    여기서 계청정(戒淸淨)은 계율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격을 세탁해서 인간다운 성격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청정에 성공하면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생활할 수가 있다. 기타는 다음과 같다.

     • 심청정(心淸淨) ― 마음을 세탁해서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 견청정(見淸淨) ― 견해ㆍ의견ㆍ사고방식을 세탁해서 어엿한 철학자, 과학자가 된다.

     • 도의청정(度疑淸淨) ― 이것은「의심을 건넌다.」라는 단계이다.

     • 도(道) 비도(非道) 지견청정(智見淸靖) ― 도의청정에서 진리를 아는 단계까지 이르면, 다음으로 지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올바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미 의심은 없다. 거기까지 이르면 올바름에 대하여 지혜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도(道)와 도가 아닌 것(非道)에 대한 지견(智見)이다.「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깨닫기 위해, 진리를 알기위해서는 이런 방식이다.」라는 방법론을 찾아낸다. 이 방법론은 과학의 세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 「어느 것이 도(道)인가? 어느 것이 도(道)가 아닌가?」라는 지혜가 생겨난 사람은 다음에 그 도(道)를 실천해 보게 된다. 자신이 결정한 연구방법대로 실제 연구하는 것이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이다.

•     지견청정(智見淸靖) ― 마지막은 지혜가 생겨나는 단계이다. 가설을 입증(立證)하기 위한 연구를 실제로 추진해 보면 어떻게 될까? 가설이 입증된다. 진리에 이르는 길(道)을 알고, 실제로 그 방법을 실천해 보면 비로소 7번째인 지견청정(智見淸淨)이 나타난다.---→견청정(見淸淨), 심청정(心淸淨) 참조.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 스님이 조계산에서 수선사(修禪社)를 만들고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을 때, 처음 불문에 들어온 사람과 수선사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본문 907자로 구성된 한국판 백장청규(百丈淸規)라 하겠다. 수선사는 송광사(松廣寺) 이전의 옛 이름으로 불사 전에는 작은 암자에 불과했다. 조선 초기부터는 원효 대사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한 권으로 엮어져서 전국 사찰 규모의 청규로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처음 불문에 들어온 초심자를 경계한 것으로서 가장 많이 비중을 두었다.

    둘째는 일반 승려를 경계하고 있다. 승려들이 대화. 토론. 대인관계. 출행(出行). 공양(供養) 때에 갖추어야 할 주의사항 등, 흔히 저질러 지고 있는 잘못들과 사원생활의 화합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를 경계했다.

    셋째는 선방에서 수행하는 자들을 경계한 것이다.---→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참조.

    

*계학(戒學, 산스크리트어 sīlasikkhā)---불법수행자는 반드시 닦아야할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의 삼학(三學) 중 계학은 마음의 청정을 지켜 마음을 맑게 하고, 말과 행실을 다스려 마음의 진실을 지켜가는 계율에 관한 것이다. 즉, 붓다가 제정한 계율을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불자는 계 ‧ 정 ‧ 혜(戒 ․ 定 ․ 慧)에 의지해 마음을 닦고 불법을 성취하게 되는데, 그 첫 과정이 계학(戒學)이다. 계를 행하면 선정(禪定)이 생긴다고 해 인계생정(因戒生定)이라고 한다. 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이 곧 계학(戒學)으로서, 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과 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붓다 가르침이다.---→삼학(三學) 참조.

     

*계향훈수(戒香薰修)---이 말은 대승경전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말이다. "계율의 향기가 몸에 배어 그 사람의 덕의 향기가 사방으로 번져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훈수(薰修)는 훈습(薰習)이라고도 쓴다. 그 몸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불교는 사부대중을 불문하고 오계. 팔계. 십계. 비구/비구니계 등의 계율을 지키는 것을 중시해왔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모든 사부대중의 스승으로서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모범을 보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오계의 첫 조항인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일에서 떠나는 것"을 일생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그것을 되풀이해서 마음에 새겨갈 때 생물을 해치지 않는 일종의 잠재적인 힘이 그의 몸에서 생겨나 어떤 상황에서 생명을 죽이고자 손이 움직여도 계율의 자재력과 힘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게 만든다. 스스로가 이런 상태에 이르면 비로소 계율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율의 원어 sila의 원래 의미는 "습관"이란 뜻이다.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이 되면서 대부분의 계율사항이 명령조이거나 또는 계율을 법을 설법하듯 공부하는 가르침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으나 불교에서 계율이란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계율을 스스로 적극 지켜간다는 자율적인 의미이다.

따라서 계율이 완전히 몸에 배어 습관화가 되는 수행이야말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 실론섬

   

  

*계현(戒賢, 산스크리트어 Sīlabhadra, 529~645)---동인도출신 유식학 승려. 마가다국(Magadha國) 나란타사(Nālandā, 那爛陀寺)에 출가해 호법(護法, 530~561)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뒤를 이어 나란타사를 총괄했으며, 현장(玄奘, 602~664)의 스승이다. 629년에 인도에 들어간 현장이 630년 나란타를 방문했을 당시 계현은 나란타사 주지이자 학장이었다.

   계현은 무착(아상가) - 세친(바수반두) - 진나(陳那, 디그나가/Dignāga, 480~540)와 호법(護法, 다르마팔라/Dharmapāla, 530~561)으로 계승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대학승이었으며, 현장이 궁금해 하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 때 계현(戒賢, 실라바드라)은 현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이 중국을 떠나던 해에 계현은 중병에 걸려 죽게 됐다. 그러나 그 때 미륵보살이 꿈에 나타나 “삼년 뒤에 동방에서 한 구도승이 찾아올 것이니 살아남아서 그에게 법을 전하도록 하라.”는 수기를 받고 병이 씻은 듯이 낫는 몽중가피를 입은 터였다. 현장을 보자마자 그가 미륵보살에게 부촉 받은 그 구도승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5년 동안 유식학(唯識學)을 가르쳐서 그의 법을 잇게 했다. 시험도 없이 바로 입학하는 특혜에다가 상수 제자로 특별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현장의 구도 열정에 제불보살이 감동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계현은 그때 106세의 고령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열과 성을 다해 현장에게 <유가사지론>, <현양론>, <대법론>, <인명론> 등 여러 논서를 집중해서 직접 가르쳤다. 현장은 여기서 수학한 것을 바탕으로 귀국한 후에는 일생을 역경에 바친다.

   그리고 630년 현장이 나란타사를 방문하기 바로 전에 학장의 자리에서 은퇴한 호법(護法)은 유식학의 양대 분파 중 하나인 유상유식(有相唯識)을 발전시켰던 인물로서 <성유식보생론(成唯識寶生論)>을 저술했으며,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계현(戒賢)은 호법의 사상을 현장에게 전수시켜 중국 법상종(法相宗)을 개창케 하기도 했다.

 

   

*고(苦, 빠알리어 dukkha, 산스크리트어 duhkha)---고(苦)는 무상(無常), 무아(無我)와 더불어 삼유위상(三有爲相-현상계에 있어서의 세 가지의 모습)으로서 불교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나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해서는 불교 이외의 일반사람이라도 이를 쉽게 인정하지만,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해서는 무상이나 무아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기본가치는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체개고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제법실상이며,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앞의 두 명제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병, 무명이며, 세 명제는 불교의 인식론(認識論)이다.

   부처님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주제들은 인간들이 당면한 괴로움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을 무기(無記)라고 했다.

    불교의 당면목적은 고통의 해결이다. 그런데 중생이 겪는 고의 원인은 무지와 집착,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즉, 중생이 겪는 고통이란 이런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마음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탐 ․ 진 ․ 치가 고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은 모두 고통을 겪고 있기에 경전에는 ‘모든 것은 고다[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고(苦)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이고(二苦), 삼고(三苦), 사고(四苦), 팔고(八苦)의 구분이 있다.

    이고(二苦)란 것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내고(內苦)와 밖에서 들어오는 외고(外苦)을 가리킨 것이요,

    삼고(三苦)란 것은 내고와 외고를 합해 고고(苦苦)라 하고, 낙(樂)의 부정, 곧 낙의 파괴되는 것을 괴고(壞苦)라 하고, 모든 것에 상(常)이 없고 자꾸 변하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생기는 것을 행고(行苦)라 해, 고고ㆍ괴고ㆍ행고를 삼고라 한다.

    사고(四苦)란 것은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 네 가지 신체적인 고통을 가리킴이요,

    팔고(八苦)는 사고에 네 가지를 더하여 팔고라고 한다. 네 가지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면서도 함께 살아야 되는 원증회고(怨僧會苦),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五陰)이 성한 오음성고(五陰盛苦)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고통은 중생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고, 중생의 고통을 대표하는 현실적인 고통이다. 그런데 이 고를 성질에 따라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등 3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 고고(苦苦)---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육체적 고통[四苦]을 말한다.

     • 괴고(壞苦)---‘하고자 하나 뜻과 같이 안 되고, 이루어 놓은 것이 무너지는 고통’이다. 즉, 무상(無常)의 법칙에 바탕 해서 일어나는 ‘변화하고 무너지는 고통’을 말한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하는 고통이 여기에 해당한다.

     • 행고(行苦)---인간이 자신에 대해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고 집착함에 따라 나타나는 고통인데,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한다.

고통(苦)은 본래 없는 것이나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다.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고(苦)라고 하나, 이것은 순환(巡還;無常)의 과정일 뿐, 내가 있다[유아(有我)]고 생각하면 고통도 있는 것이고, 없다[무아(無我)]고 생각하면, 고통은 없는 것이다. 본래 죽지 않음을 모르고[불생불멸(不生不滅)], 죽지 않으려 하니 그것이 고통이다.---→고제(苦諦, 苦聖諦, 빠알리어 Dukkha-saccā), 괴로움(빠알리어 duhkha)의 극복 참조.

   

*고거심(高擧心)---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는 마음상태 또는 남에 대해 자신을 높이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고고(苦苦)---삼고(三苦)의 하나. 육체적 고통.---→고(苦, 빠알리어 dukkha), 삼고(三苦) 참조.

   

*고골관(枯骨觀)---관법수행의 하나로서 백골관(白骨觀) 혹은 골상관(骨想觀)이라고도 한다. 오정심관(五停心觀) 중 부정관(不淨觀)과 관계가 깊다. 인간 육체의 각 부분이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관찰해 탐욕의 번뇌를 없애는 수행법이 부정관인데, 고골관이란 앙상하게 뼈만 남기고 썩어버리는 시체의 모습을 관함으로써 욕망에서 벗어나 인생무상을 터득하고자 하는 수행방법이다. 죽음 뒤에 남는 하얀 뼈, 즉 백골을 떠올리며 자기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으로 위빠사나와 같은 부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도 위빠사나의 한 부류이다. 특히 사념처관 중에 신념처관(身念處觀)이 백골관과 가깝다. 신라 승려 자장(慈藏)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닦았다는 고골관(枯骨觀)이나 부정관(不淨觀)의 ‘관(觀)’도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는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명상법으로서, 한역에서는 ‘관(觀)’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관이란 지혜로써 객관의 경계를 관찰해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가령 부정관이라 하면 인간육체가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생각으로 관해 탐욕의 번뇌를 멸하는 것이다.---→오정심관(五停心觀), 부정관(不淨觀), 사념처관(四念處觀) 참조.

    

*고구(苦俱, 빠알리어 dukkha sahagata)---고구(苦俱)란 고(苦)를 생기게 하는 원인으로써 인간, 자연 현상, 이데올로기 등을 말한다. 또는 고와 더불어 일어나는(느끼게 하는) 감정을 고구(苦俱)라 한다.---→사구(捨俱) 참조.

     

*고구정녕(苦口丁寧)---일반에서는 잘 쓰지 않는데, 큰 스님들이 가끔 쓰는 말이다. 고구(苦口)란 입이 쓰도록(입에서 쓴 내가 나도록/입이 닳도록)이라는 뜻이고, 정녕(丁寧)은 부탁하다, 당부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구정녕(苦口丁寧)은 ‘입이 쓰도록 당부하다’가 된다. 정녕(丁寧)과 유사한 단어에는 분부(吩咐)、부촉(咐囑) 등이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해 간언(諫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 정녕(丁寧)에서 정(丁)은 단단함을, 녕(寧)은 정성스러움을 뜻한다.

   

*고균비구(古筠比丘)---중국 원(元)나라 몽산(蒙山)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몽산 덕이(蒙山德異, 1231~1308) 참조.

  

*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紀)---후한 명제(AD57~75) 때부터 당 태종(626~649) 때의 현장(玄奘)까지 각각 한역한 경론을 서술한 문헌으로 당 나라 때 정매(靖邁)가 편찬했다. 총 4권임.

   

*고기송(孤起頌)---산스크리트어 Gatha를 한역한 말, 음역해서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가타(伽陀), 게송(偈頌) 참조.

  

*고달사지(高達寺址)---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래산 줄기인 우두산(일명 혜목산) 아래에 있는 사적 제382호의 거대한 절터이다. 처음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봉황암(鳳凰庵)이란 이름으로 창건돼 있다가, 고려에 들어와서 광종의 왕사인 원종(元宗;869~958) 대사가 우거한 이래 국가의 비호를 받아 거찰 고달사(高達寺)가 됐다. 남한강변의 여러 폐사지 중 원주 부론면 법천사지(法泉寺址)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절터의 하나이다.

    원종 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90세로 입적했다. 법명은 찬유(璨幽)이고,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元宗)’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慧眞)’이라 내렸다. 그리하여 고달사는 고려 5대 사찰의 하나였다고 전하며, 일명 고달원(高達院)이라 해서 희양원(曦陽院), 도봉원(道峰院)과 더불어 대표적인 수행도량인 삼원(三院)의 하나로 대찰이었다. 희양원이란 지금도 건재한 경북 문경 봉암사(鳳巖寺)를 일컬었고, 도봉원이란 현재 도봉산 도봉서원 자리에 있었던 영국사(寧國寺)를 일컬었으며, 이들 세 선원(禪院)은 선풍이 뛰어나고, 선후배간의 법통계승이 명확해 광종의 특별한 관심과 칭송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달사는 그 후의 기록이 전혀 없어 그토록 융성했던 절이 언제 어떻게 폐사됐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폐사된 것으로 전해온다. 현재 남아있는 주요문화재로는 신라 말 고승 원감(圓鑑;787~869) 국사 현욱(玄昱)의 부도로 추정되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부도, 보물 제6호 원종대사혜진탑비의 귀부와 이수, 보물 제8호 석불대좌(臺座). 보물 제7호 원종대사혜진탑(元宗大師慧眞塔) 등이 있다. 그러나 보물 제282호 고달사지쌍사자석등은 여러 곡절을 겪은 끝에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돼 있다.

   

*고두례(叩頭禮)---머리(頭)를 조아린다(叩)는 뜻이다. 고두배(叩頭拜) 또는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한다. 아무리 무수히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삼배 뿐 아니라 108배를 비롯해 모든 절의 마지막 절 끝에 머리를 땅에 다시 한 번 조아리는 것을 ‘고두(叩頭)의 예’라 한다. 이는 자신의 발원(發願)을 빈다 해서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하는데,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고, 지극한 존경심에 대한 여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마지막 큰 절을 완료해 몸이 오체투지의 상태가 되고, 두 손바닥이 부처님을 받들기 위해 위로 향한 자세에서 고두를 하기 위해서는 일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손바닥이 땅을 향하도록 한 다음 엎드린 자세에서 팔꿈치를 들지 말고 머리와 어깨만을 들었다가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데, 머리를 들었을 때에 시선을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한다. 머리와 어깨만을 잠깐 들었다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 단순한 동작으로 할 수도 있고, 머리와 어깨를 약간 들고 팔꿈치를 땅에서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손으로 합장자세를 취했다가 손을 풀고 다시 두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방법도 있다.

     

  

*고락중도(苦樂中道)---「수행승들이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탐착을 일삼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 - S56.11」

    고락중도란 낙천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영원주의나 비관적이고 고행주의적인 허무주의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에 속하므로 잘못된 쾌락주의나 고행주의를 버리고 연기법적인 팔정도의 길을 가는 것이 고락중도이다.

   초기불교에서 연기설과 관련된 고락중도는 다른 중도사상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고락중도는 일반적인 인과관계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수행적 인과관계에 관련된 특수한 속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려불교(전기와 후기 불교의 차이)---고려불교를 전체적으로 볼 때, 태조 당시부터 기복과 호국불교라는 특색을 가지게 된 신불사상은, 한편으로는 <고려대장경-초조대장경, 속장경, 팔만대장경>과 같은 거대한 민족문화 사업을 이룩해 놓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복적 속신적(俗信的) 저속성이 시대정신의 선도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가끔 요승(妖僧)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불법을 흐리게 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볼 때, 대각국사(大覺國師) 이전에는 계율종 · 법상종 · 열반종 · 법성종 · 원융종 · 선적종의 6종파(宗派-5교종과 선종)가 학종(學宗)으로 존재했는데, 이를 5교9산으로 통칭했다.

   대각국사 이후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남산계율종(南山戒律宗) · 법상종(法相宗) · 중도종(中道宗) · 화엄원융종(華嚴圓融宗) · 시흥종(始興宗)의 5교종과 조계선종(曹溪禪宗), 그리고 천태종을 합쳐서 7종파로 됐는데, 이 7종시대는 5교양종이라 통칭했다. 6종 또는 7종의 고려 전 시대를 통해 9산선문에서는 많은 선장(禪匠)을 배출해 크게 번성했다. 특히 나말과 고려 초는 선종의 전성기라고 할 만 했다.

   고려 초기 불교는 균여(均如) 대사를 중심으로 한 화엄종이 성행했다. 귀족들이 지원해 개경 부근 흥왕사(興王寺)와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현화리에 현화사(玄化寺)가 세워졌고, 유식계통의 법상종(法相宗)이 융성했으나 여러 종파로 분열돼 뚜렷한 구심점이 없었다.

   고려의 천태종은 고려 초기에 법안종(法眼宗-선종의 일파) 계통의 승려들이 대거 합류함으로써 중국과는 달리 선종에 속하게 됐다. 그런데 당시 천태종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조계 혜능 이래의 전통적 선종을 고수한 승려들이 자신들을 조계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12세기에 들자,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으로 개편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등장해 분열된 불교종파 통합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흥왕사를 본찰로 해 화엄종 중심의 교종 통합운동을 전개했으며, 경기도 개풍군 중서면에 국청사(國淸寺)를 건립하고 선종통합과 천태종을 창시함으로써 다시 불교가 융성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의천이 죽은 뒤 후대에 오면서 개경(開京) 중심의 귀족불교로 변질돼가자, 이에 대한 반발로 지눌(知訥)을 중심으로 한 선종이 교종인 천태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눌의 결사운동과 선종을 중심으로 한 통합운동으로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눌은 명리에 집착하는 불교계를 비판했으며, 선교일치를 완성시켰다.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선교병수(禪敎倂修) 삼문이 바로 그것이다.

   지눌에 의한 조계종으로 내면적 통일은 됐지만 구산문파가 열립해 자파만 옹호함을 능사로 삼으니, 그때 보우(普愚, 1301-1382)가 구산선문의 병폐를 우려하고 피아의 우열을 없애기 위해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9산(山)을 통합하려고 했고, 그 취지를 공민왕에게 헌언(獻言)해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지눌에 의해 한국 특유의 종지가 확립돼 내면적 통일을 봤고, 공민왕 5년 보우에 의해 외면적으로 통일된 조계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선종의 중심세력은 선문9산파 중 가지산파(迦智山派)였는데 이 파의 보우(普愚)와 혜근(慧勤)이 중국에 가서 선종인 임제종의 선법을 받고 돌아오면서 한국에서 임제종이 시작됐다. 보우는 선의 지적 이해를 철저히 배격하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보우가 불교교단을 다시 정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그리고 이후 원(元)의 간섭시기에 이르러 불교계는 개혁의지가 퇴색하고, 사원은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며, 상업에 관여하기도 해 부패가 극심해진다. 그리하여 심지어 술장사와 고리대금업까지 하다가 결국 당대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민중들에게조차 버림받게 됐다.

    한편 유학에 있어서는 새로운 사상인 성리학이 대두되고, 이를 배경으로 한 정치세력으로 신흥사대부 계층이 등장해 경제개혁을 통한 체제변혁을 추진했다. 이에 즈음한 불교는 그에 상응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부패와 정치권과의 결탁, 신돈(辛旽)의 발호 등으로 쇠퇴하게 됐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에 의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불교는 사상계의 주도적인 위치에서 밀려나게 되고, 임제종의 법맥만이 혼수(混修)-무학(無學)-기화(己和) 등에 의해 겨우 조선에 이어졌다.---→수선사(修禪社) 참조.

 

    

*고법지인(苦法智忍, 산스크리트어 duḥkha-dharma-jñāna-kṣānti)---고법지인(苦法智忍)을 고법인(苦法忍)이라고도 하는데, 욕계의 고제(苦諦)를 명료하게 주시해 그것에 대한 미혹을 끊고 확실하게 인정하는 지혜이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번뇌론과 수행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특히 견도(見道)의 증득과 관련해 사용된다.

    견도(見道)는 4성제를 관찰해 견혹(見惑)을 끊는 계위로 이 이상의 계위에 이른 유정을 성자 또는 성인이라고 한다. 부파불교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 수행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며, 대승불교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수행계위에서는 초지(初地), 즉 10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인 환희지(歡喜地)에 해당한다.

    고법지인(苦法智忍=고법인/苦法忍)은 고법지(苦法智)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데, 고법인(苦法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법지(苦法智)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지(苦智)는 4성제 가운데 고제(苦諦)를 아는 무루지를 말하는데, 고법지(苦法智)는 고지(苦智)의 일종이다.

    

*고봉 경욱(高峰景煜, 1890~1961)---법명이 景煜(경욱)으로 대구 출신이다. 조선 세조시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인 박팽년의 후손으로 15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했다고 한다. 1911년 경북 상주 남장사(南長寺)에 입산 이해봉 선사를 은사로 득도하고, 경욱(慶昱)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5년 팔공산 파계사 선실에서 좌선 중 홀연히 오도 견성했다고 한다.

   일제 때 대구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왜경에게 체포된 후 마산 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출옥 후, 내원암(內院庵)을 거쳐, 예산 덕숭산 정혜사 조실을 지냈고, 마곡사 은적암, 미타사 조실 등을 거쳐 서울 수유동 화계사 조실로 계시다가 1961년 세수 72세, 법랍 61세로 열반에 들었다.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린 스님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분이 숭산 행원(崇山行願, 1927~2004년) 큰스님인데, 이 숭산 행원 스님의 은사 스님이 바로 고봉 경욱 스님이다.

 

 

*고봉 원묘(高峰 原妙, 1238~1295)---고봉 선사는 중국 조사선 임제종의 선맥을 이은 임제 선사의 18대 적손이자, 육조 혜능의 23대 손이다. 고봉은 1238년 중국 남송(南宋) 당시 강소성 소주부 오강현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해 사미계를 수지하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7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18세에 천태교학을 배워 법화교의(法華敎義)를 통달하고, 20세가 되자 교학의 길을 버리고 선(禪)에 들었다. 사교입선(捨敎入禪)치고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그로부터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가 3년 사한(死限)을 세우고 정진했다. 머리도 깎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으며 평상에 눕지도 않은 채, 먹고 입는 것조차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41세 때, 항주 천목산 서봉(西峰)의 사자암에 들어가 '사관(死關)'이란 간판을 걸고 15년간 마을 어귀를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자꾸만 중국 전역에 알려지고 그를 찾는 학인들이 끊이지 않아 커다란 회상을 이루게 되니 이른바 '고봉회상'이요 '서봉회상'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수계한 자가 수만 명에 달했으며, 늘 삼관(三關)을 베풀어 학인을 제접했으니, 즉 삼관 화두로 시험했다고 한다. 그 삼관은 아래 세 문구이다.

     ①밝은 해가 허공에 떠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에 가렸는가?

    ②사람마다 그림자가 있어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되, 무엇 때문에 밟혀지지 않는가?

    ③온 대지가 불구덩이 이다. 무슨 삼매를 얻어야 불에 타지 않겠는가? 

   원나라 때인 1295년 12월 1일, 향을 사르고 옷을 고요히 여미고 단정히 앉아 적멸에 드니, 세수가 57세요, 법랍이 43세였다.

   고봉 선사 저서로는 <고봉묘선사어록> 1권과 <고봉화상선요> 1권이 있다. 특히 <선요(禪要)>에 나오는 법문은 주로 고봉 선사 만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선(禪)에 대한 입장이 쳬계화 되고, 깨달음이 완전히 성취된 뒤에 나왔기 때문에 조사선의 핵심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저서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선 조선 중기에 강원(講院)의 중등 과정인 사집과(四集科)에 편입시킨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계종 강원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주석서로는 연담(蓮潭) 유일(有一)의 <선요사기(禪要私記)> 1권, 백파(白坡) 긍선(亘璇)의 <선요기(禪要記)> 1권이 있다.---→선요(禪要) 참조. 

 

   

*고사업(故思業)과 불고사업(不故思業)---사업(思業)이란 마음속에서 짓는 업,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고사업(故思業)은 충분히 숙고해 결정한 후, 결정해 작위한 고의적인 업을 말한다. 불고사업(不故思業)이란 고사업과는 반대로 고의성이 없이 뜻밖에 저지르게 된 업을 말한다. 고사업에도 증장업(增長業)과 부증장업(不增長業)이 있는데, 전자는 즉극적으로 강하게 지은 업이고 후자는 소극적으로 약하게 지은 업을 말한다.

    

 

*고선사 서당화상비(高仙寺 誓幢和尙碑)---통일신라시기에 불교 교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원효(元曉, 617년-686년) 대사의 일대기를 적은 비이다.---→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 참조.

   

*고시래(古矢來)---들놀이ㆍ산놀이ㆍ뱃놀이 갔을 때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먹기 전에 자리 밖으로 ‘고시래’ 하고 음식을 던지는 일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고수레ㆍ고시레ㆍ고시비ㆍ고시내 등으로도 불린다. 이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히 행사를 치르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 들어있는 동시에, 그 근처 잡귀들에게 너희들도 먹고 물러가라 하는 잡귀 추방의 주술적 의미도 포함돼 있다. 옛날 고씨(高氏) 성을 가진 어떤 지주가 있었는데 마음이 후덕해서 소작인 가정형편을 참작해 소작료를 경감해주었으므로 그 지방 농민들이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 후로 그 지방의 농민들은 물론 다른 지방 농민들까지도 음식물이 생기면 먼저 후덕한 고씨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고시례(高氏禮)’하고 음식물을 조금씩 던졌다고 하는 속설이 전하기도 한다.

    

*고싱가 살라(Gosingasala) 숲---부처님 생존 당시 어느 날 고명한 직제자들이 함께 성스러운 살라(Sala)꽃이 만개한 고싱가 숲 동산에 머물렀다. 이 때 사리자(Sāriputta)가 아난다(Ananda), 레와따(Revata), 아누룻다(Annuruddha), 마하가섭Mahākāśyapa), 마하목련(Mahamoggallana) 존자에게 “고싱가의 살라 숲은 아름답습니다. 밤이면 달빛이 밝고 살라 꽃이 만개해 마치 천상의 향기가 두루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 고싱가 살라 숲을 더 빛나게 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제자들이 각기 나름의 답을 말했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처님께 가서 누구 말이 옳은지 여쭈어 보았다. “세존이시여, 누가 가장 잘 말했습니까?” “사리자(사리푸타)여, 그대들 모두가 다 각자의 방법에 따라 잘 말했다. 이제 어떤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하는 지에 대한 내 말을 들어라. 여기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앉아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취착이 없어져서 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할 때까지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 라고 결심한다. 이런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한다.” 라고 부처님께서 설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부처님 말씀에 크게 기뻐했다.

    이 일화는 수행자의 자세, 마음 지키기 등에 관해서 세상을 빛내는 사람은 특별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보다도 일상생활의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법문이다. 이 내용은 맛지마 니까야(中部, Majjhima-Nikāya) <마하 고싱가경(Mahagosingasalasutta)>에 실려 있다.

   

*고(苦)의 종류---고통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12가지로 크게 분류 된다.

    ➀ 태어남(jāti), ➁ 늙음(jarā), ➂ 죽음(maraṇa), ➃ 슬픔(soka),

    ➄ 비탄(parideva), ➅ 육체적인 고통(dukkha),

    ➆ 정신적인 고통(domanassa), ➇ 절망(upāyāsa),

    ➈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appiyasampayoga),

    ➉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piyavippayoga),

    ⑪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icchitālābha),

    ⑫ 집착하는 무더기(upādāna-kkhandha).

 

      

*고제(苦諦, 苦聖諦, 산스크리트어 Duhkha satya, 빠알리어 Dukkha-saccā)---사성제(四聖諦)의 하나.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고(苦)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고(苦)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것으로서 매우 논리적이며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괴로움(苦)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함으로써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고제(苦諦)에는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어야(死)하는 네 가지 괴로움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만 하는 인연들(애별리고/愛別離苦), 만나기 싫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들(원증회고/怨憎會苦), 얻으려고(갖고 싶어도)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구부득고/求不得苦), 육체의 본능(끌려 다니는 것)이 왕성해지는 것(오음성고/五陰盛苦), 이렇게 네 가지 고통, 해서 도합 8가지 괴로움을 경전에서 팔고(八苦)라고 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즐겁다고 생각 하는 것이 있으나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들이기에 항상 괴로움에 쌓여서 안정되지 않으므로 괴로움(苦)인 것이다. 그렇다고 불교에서 인생에서의 행복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붓다는 일반적으로 물질적 정신적인 여러 형태의 행복을 인정하셨다. 그러한 행복을 인정하고 찬양한 후, 그것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쉽다'라고 하셨다. 즉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괴로움인 것이다. 왜 괴로운가? 고(苦)에는 세 가지 성질(三性)이 있다.

     ① 고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괴롭다(苦苦性) - 육체적 아픔(苦)과 정신적 번민(惱)이 일어나기 때문에 괴롭다.

     ②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괴롭다(壞苦性) - 좋아하고 애착하는 것이 변화하기 때문에 괴롭다.

     ③ 행위가 업을 짓기 때문에 괴롭다(行苦性) - 행위마다 자아에 집착해서 윤회의 업을 짓기 때문에 고가 따른다.

    다름은 청화(靑華) 스님의 고(苦)에 대한 법문이다.

    『중생의 낙(樂)이라는 것은 사실은 흔적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한번 생각해 보면, 생로병사(生老病死) 때문이다. 날 때의 고통, 살려는 고통, 늙어서 고통, 병들어 고통, 헤어지는 고통, 미운사람 만나는 고통, 구해서 얻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이 몸뚱아리 원수가 장기(藏器)가 가득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조화로운 상태는 없는 것이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사사일협(四蛇一匧)이라 ― 넉 사(四)자. 뱀 사(蛇)자. 한 일(一)자. 상자 협(匧)자 ― 네 마리 독사가 한 상자에 모여 있는 것이 우리 몸뚱이라는 말이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이란 말이다. 바람 기운. 물 기운. 불 기운 또는 땅 기운,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잠시 동안 조화를 이룬 것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때는 없다.

    음식을 더 먹으면 더 먹은 대로, 덜 먹으면 덜 먹은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이라는 것은 우리 업(業) 따라서, 업을 긁어모아서 잠시 동안 그와 같이 각 원소가 합해 있는지라 우리 몸이 완전무결할 때가 없다. 따라서 몸 자체로 봐도 이것이 모두 괴로움뿐이다.

    그리고 생각은 무엇인가? 우리 범부(凡夫)의 생각은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없다. 바로 보지 못하니까 바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바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바로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마음의 안심입명(安心入命) ―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몸도 편안하지 못하고, 맘도 평안하지 못하고, 끝내는 한계상황에서 오는 여러 가지 핍박만 있다. 따라서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한 사람들이 '인생은 안락이다'고 생각한다. 그런다가 취생몽사(醉生夢死) 해서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보면 인생은 고(苦)뿐이다.

    따라서 고를 피하기 위해, 고통을 이기기 위해 불교가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다른 종교는 고의 원인을 확실히 모른다. 우리는 우선 '인생'이라는 것이 고다, 일체개고(一切皆苦)다, 다시 말해 인생은 고행 바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자가 깨달아서 ― 우주를 다 통달해서 항시 불성(佛性)을 보는 경지 같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은 한, 우리 중생의 견해로는 아무리 따져 봐도 고(苦)뿐이다. 고를 분명히 느껴야만 참다운 수행자이다. 고를 느끼기 때문에 스님들도 출가수행자가 된 것이다.”

    붓다는 <초전법륜경>에서,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성자들만이 아는 진리인 고성제(苦聖諦)이다. 비구들이여!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관해서, 나의 내면에 안목(眼目, cakkhu)이 일어나고, 통찰(洞察, ñāṇa)이 일어나고, 지혜(知慧, paññā)가 일어나고, 영지(靈知, vijja-통찰지혜)가 일어나고, 광명(光, aloka)이 일어났다.”라는 게송을 읊었다.

    이 게송은 고제에 관해서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아는 지혜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고성제다’라는 말씀에서 ‘이것이’란, 태어남에서 시작해서 오취온(五取蘊)으로 끝나는 괴로움의 다양한 범주를 가리킨다. 오취온에 대해서는 대체로 배워서 알고 있다. 그러나 오취온을 스스로 경험해서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이다.

    앉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매순간마다 드러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오취온이다. 성자들은 이러한 대상에서 오직 무서운 고통과 괴로움만을 보지만, 범부들은 정반대로 본다. 범부들은 이러한 대상들을 고통과 괴로움의 구현으로 보지 않고, 즐겁고 유익한 것으로 본다. 그들은 아름다운 형상을 보거나, 듣고 싶은 소리, 감미롭고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미로운 향기를 맡고, 맛난 음식을 맛보고, 즐거운 감촉을 누리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욕계(欲界)의 중생들은 감촉을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상상과 몽상에 젖는 것도 또한 즐거워한다. 몽상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끔찍한 일이자 커다란 손실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고 들리는 이 모든 것들은 고제인 오취온이다. 위빠사나 명상 수행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게 돼있는, 무상(無常) ‧ 고(苦) 등의 무서운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괴로움의 진리에 눈을 뜨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위빠사나 도(道)를 충분히 닦으셨기 때문에 아라한도(阿羅漢道)의 지혜를 얻어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성스러운 지복인, 열반을 보셨다. 열반이라는 가장 뛰어나고 가장 성스러운 지복을 보셨기 때문에 붓다께서는 오취온에서 오직 무서운 고통과 괴로움만이 있다는 것을 보신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안 것도 아니고, 다른 사문에게서 배운 수행법으로 안 것도 아니다. 이는 스스로 계발한 팔정도를 통해서 직관적인 지혜로서 알아낸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법인, 눈... 등이 나에게 생겼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말씀과 함께, 실로 자신은 어떠한 외부의 지도나 가르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과 직관적인 지혜로 진리를 찾아서 바르게 깨달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되셨음을 선포하셨다. 실제로 그러한 공개적인 선포는 필요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나형외도(裸形外道)인 니간다(Nigantha)가 행하는 절식과 같은 고행이 성스럽고 거룩한 수행인 것으로 큰 존경을 받았다.

    다섯 비구들도 초기에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붓다께서, 남으로부터 들어서가 아니고 사유와 추론을 통해서도 아니며, 스스로의 깨달음과 체험, 직관적인 지혜를 통해서 수행과 지혜를 이루었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을 때, 비로소 다섯 비구들은 세존께서 진정으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셨음을 확신하게 됐다.

    외부 도움 없이 직관적인 지혜를 얻는 것은 정등각자와 벽지불((辟支佛)만의 고유영역이다. 붓다 제자들은 오로지 붓다 가르침을 듣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과 지혜의 단계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원한다면 그러한 지혜를 대념처경(大念處經) 등과 같은 경전에 기술하고 있는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전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오취온을 있는 그대로, 단지 괴로움과 괴로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붓다가 이렇게 선포하신 것은, 다섯 비구들로 하여금, 오취온의 자연적 성품을 보기 위해 정진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苦, 빠알리어 duhkha), '괴로움(빠알리어 duhkha)의 극복' 참조.

   

*고존숙(古尊宿)---고(古)와 존(尊)은 모두 경어. 숙은 노숙(老宿)이란 말. 오랜 수행경력을 가진 선문(禪門)의 위대한 선승-선덕(禪德)에 대한 존칭으로서, 장로 ‧ 원로와 같은 말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5) 선사는 무심선(無心禪)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30여 년간 지주(池州) 남전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밭을 갈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세상의 시비와 사상의 추구마저 잊어버리는 무심선(無心禪)을 터득함으로써 훗날 선승들에게 고존숙(古尊宿)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무심선(無心禪) 참조.

    

*고칙(古則)---선종의 공안(公案)과 같은 말이다. 고인(古人)들이 들어 보인 어구(語句)는 참선하는 이의 법칙이 되므로 고칙(古則)이라고 한다. 즉, 고칙은 옛 어른들이 남겨 놓은 법칙이란 뜻으로 규범과 모범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로부터 선가(禪家)에 전해져 내려오는 특유의 어구나 제기되는 문제를 말하므로 화두(話頭) ․ 공안(公案)을 고칙이라고도 한다.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참선하는 수행자에게 본보기가 되는 고인(古人), 곧 부처나 조사의 파격적인 문답 또는 언행(言行).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부처나 조사의 역설적인 말이나 문답을 모두 고칙이라고 한다.

    공안에는 고칙공안(古則公案)과 현성공안(現成公案)이 있다. 공안을 일명 고칙(古則)이라고 하지만 고칙공안은 고래로부터 전해 오는 지난날의 옛 조사 선사들이 남긴 공안을 말하며, 현성공안은 현재 생성돼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는 입장에서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공안으로 보는 것이다.---→공안(公案) 참조.

   

*고타마 싯다르타(산스크리트어 Gautama Siddhartha, 瞿曇 悉達多, 빠알리어 Gotama Siddhattha)---고타마는 성, 싯다르타는 이름, 사까무니(석가)는 종족의 이름, 붓다(Buddha, 佛陀)는 그가 정각을 얻어 진리를 깨달은 후에 붙여진 명칭이다. 붓다란 깨달은 자 혹은 깨어난 자를 의미한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세존(Bhagava)이라 불렀으며, 스스로는 여래(Tathagata)라 칭했다.---→석가모니 참조.

*고탄(Khotan)---허텐((Ho-t'ien-호탄/Hotan)의 옛 지명---→호탄(Hotan, 和闐, 和田), 우전국(于田國, 于蚊國, 于闐國) 참조.

   

*고행(苦行, 산스크리트어 tapas)---고행은 선정(禪定)과 함께 고대인도 종교가들이 행하던 보편적인 수행방법이었다. 당시로서는 수행자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라고 여겼다.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대단한 고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이나교에서는 육체를 철저히 괴롭혀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킴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게 돼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었다. 붓다도 처음 출가해서 고행외도(苦行外道) 스승인 발가바(Bhargava)에게 가서 가지가지 심각한 고행을 했다.

   어찌 보면 고행은 욕심을 날려버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큰 고행의 성과는 아마 육체가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을 수행자에게 명확하게 일러준다는 사실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욕망에서 벗어난다면 물질에서는 해방된 수행자라 칭송됐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한 존경과 신뢰로 새로운 신망을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당시 수행자들이 얻은 최고의 경지였다.

   그래서 붓다도 마음을 제어하는 고행, 호흡을 중지하는 고행, 단식에 의한 고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뼈와 가죽만 남았고, 눈이 움푹 들어갔으며, 피부는 검게 말라버려 마치 해골처럼 됐다고 한다. 간다라미술 조각품에 있는 유명한 ‘붓다 고행상’은 그 당시 붓다 모습을 사실적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그런데 몸을 학대해봤자 찾아오는 것은 생명력의 소진(消盡)뿐이었다. 그때 붓다가 깨달은 것이 바로 ‘중도(中道)의 진리’다. 즉, 몸(身) 역시 정신(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붓다는 그런 극단적인 고행이 무의미하다고 반발을 한 것이다. 고행을 포기한다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행을 통해서도 얻어지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행으로도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는 가능한 단계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정각에 이르려면 고행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붓다는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택했다. 붓다는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 깨닫고, 이것을 버리고 고락(苦樂) 양면을 떠난 심신의 조화를 얻는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으로 알고 알려 주셨다.

   정신적 쾌락이나 깨달음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온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공연히 육체를 괴롭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육체는 더럽다’는 인식을 버릴 때 마음은 맑고 투명하게 된다. 심신 모두 기쁨과 쾌락으로 충만하게 된다. 불가에서 말하는 ‘광명편조(光明遍照, 빛은 두루 비친다)’라는 말도 고행으로는 불가능한 경지이다. 이렇듯 붓다 고행은 구도를 위한 궁극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 부처님의 경험과 중도(中道)사상에 의해 규명된 것이다.

 

        

*곰(gom)---티베트어로서 명상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명상이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바바나(bhavana)이며, 티베트어로는 곰(gom)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특정한 습관이나 존재방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개발’의 의미를 지닌다. 반면 티베트어로는 익숙함을 개발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불교 전통에서 명상은 선택된 물건이나 사실, 주제, 습관, 관점, 존재방식 등을 이용해 익숙함을 개발하는 의도적인 정신활동을 의미한다.

    명상으로 번역되는 티베트어 곰(gom)은 좀 더 정확한 말로 ‘친밀해지기’라는 뜻이라 한다. 명상이 단순히 나무그늘 아래 한적히 앉아 마음을 쉬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자신의 내면 관조, 현상계와 사물들을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과의 친화란 말이다.

   

*공(空, 산스크리트어 sunya, sunyata)---‘공(空)’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sunya’는 형용사로서 속이 텅 빈, 부풀어 오른, 공허한 등의 뜻을 가졌고, 명사 ‘sunyata’라는 공한 것, 공성(空性), 영(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공이란 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절대적 무존재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는 있으되, 그것이 결정되거나 특별한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허공은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허공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지된다. 이 말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하자니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당나라시대 현장(玄奘) 법사가 처음으로 빌 공(空)자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 ‘공(空)’이라는 글자가 산스크리트 원어 ‘sunya, sunyata’의 참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空(공)’이라는 한자에 너무 집착하면 원래 의미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불교에 있어서 ‘공(空)’의 개념은 특수하다. 공사상(空思想)은 초기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연기설(緣起說)의 일차적 변신이요, 재해석으로서 붓다의 기본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밝힌 대승불교 핵심사상이다. 따라서 공사상은 대승불교를 사상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철학사상이라 단언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공은 말이나 관념에 의한 고정화를 일체 배제하는 구실을 가지고 있고, 사물에 대한 고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곧 중도(中道)의 생각에 이어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한 존재론적 또는 인식론적 무(無)의 관념과는 구별된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말을 부정한다. 그리고 공은 인연(因緣)에 대한 해석이다. 인연으로 인해 태어난 것이기에 실체가 없다는 말로서,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 모든 고정된 속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 부정은 단순히 소극적인 허무가 아니라 모든 속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 무애자재(無礙自在)하는 존재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일종의 초월의 경지이다.

   「공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지 아무것도 없다거나 텅 빈 허공과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반야심경>에서도 명쾌하게 밝히고 있듯이 공은 오온을 그 토대로 한다. 그래서 조견오온개공이라 했다.」- 각묵 스님

    이러한 공사상을 정립한 사람이 용수(龍樹, 나가르주나/Nagarjuna, 150?-250?)이다. 불멸 후 100여년이 지나자 교리의 해석문제로 의견충돌이 일어나서 점차 교파가 분열되기 시작함으로써 부파불교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소위 부파불교시대의 특징인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교학이 등장해 번쇄한 논장이 무성하게 발전했고, 윤회에 있어서는 중심적 주체가 없다는 점을 혼란스럽게 여겼다.

   그에 따라 불멸 후 300년경에 이르자 초기불교에 있어서 주류를 이루었던 무아론(無我論)은 차츰 세력을 잃어가는 한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법체설(法體說)을 주장하고, 독자부(犢子部)에선 생사 윤회하는 개개 존재의 인격주체로서 개아(個我, 人相, 뿌드갈라/pudgala)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이러한 부파불교 아비달마교학의 잘못된 교의에 반기를 든 사람이 대승불교 중관학파의 개조 용수(龍樹)였다. 그는 명저 <중론(中論, Madhyamaka-Sastra)>을 통해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반야경> 계통 공(空)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켜 부파불교의 법체설이나 개아설을 뒤집었다. 용수는 법체(法體)나 개아(個我), 개체(個體), 이런 말들은 모두 ‘나의 본질’이라고 하는 브라만의 아트만(atman-我體)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공격하면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서 자성(自性)이란 존재할 수 없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 - 공(空)」이라 주장했다. 곧 공이란 자성(自性)이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공(空)은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법체설과 독자부의 개아설 등 유아론(有我論)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즉, 부파불교에서 주장한 체성(體性)을 공격하기 위해 공(空)이란 말을 썼고, 체성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개개 인간의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공이란 말을 썼다.

   용수의 공사상(空思想)을 기반으로 해 새로운 경전을 결집한 대승불교는 그 후 ‘유식(唯識)’과 ‘여래장(如來藏)’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경전에서 공(空)이란 참마음(眞心), 여래장(如來藏) 혹은 불성(佛性), 이(理) 등의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공사상을 성립시킨 <중론(中論)>이 주로 법의 고찰을 추구한 것과 달리 유식학 등 새로운 사상들은 공사상에 입각해 마음의 본질에 대한 규명에 중점을 두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여래장사상과 마음의 현실적 기능분석에 중점을 둔 유식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여래장사상이고, 유식설이 아무리 뛰어난 논설이라고 해도, 공의 개념을 이론으로 이해하려 들면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불교는 원칙적으로 깨달음의 종교이다. 그래서 불교의 ‘공(空)’은 알음알이로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공은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이며, 초월이고, 체득해야 하는 깨달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공을 알면 불교를 다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평생 공을 알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모르고 간 사람이 더 많다. 이론적으로 문자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바탕으로 하되 치열하고도 기나긴 수행 끝에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고 하니, 더 이상의 것을 알려면 수행을 통한 깨달음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언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 깨달음으로만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 혹은 중도(中道) 같은 심오한 가르침을 이해할 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 그리고 내가 참고로 할 수 있는 책, 자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체계들을 동원해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세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예컨대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연구하고 개발한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경지이다. 지금 ‘공(空)’이란 주제로 설명하고 있는 이 글도 엇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공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공을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말 큰 사전에 있는 단어들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말이다. 때문에 불교에서 ‘깨쳐라’고 하는 말을 자꾸 하는 것이다. 깨쳐야 이해할 수 있는 경계이다. 아니면, 최소한도 지금까지의 지식체계를 다 버리고, 부처님 가르침인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범부는 그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문자로 어느 정도 알아야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중생들 속성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인데, 역시 범부들의 중생다운 행위에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空)의 또 다른 측면을 보자.

   공이란 곧 평등(平等)을 말한다. 인간에게는 남자ㆍ여자, 착하다ㆍ악하다, 부자다ㆍ가난하다, 미남ㆍ추남, 늙은이ㆍ젊은이 등 여러 가지 분별이 있다. 그렇지마는 다른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분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라고 하는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일체사물은 가지가지로 변해가지마는 그 변해가는 것 가운데 일관(一貫)되게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즉, 변한다고 하면서도 그 변하는 과정에 어떤 순서[준거(準據)] 같은 것이 있다. 예컨대 봄(春) 다음에 반드시 여름(夏)이 오고, 여름 다음에는 가을(秋)이 온다. 이어서 겨울(冬)이 온다. 이런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변화 가운데에도 일관되게 변하지 않는 ― 큰 것을 포착하는 것이 공을 아는 길이 된다. 공은 초월이기 때문이다. 색(색)은 유한한 무엇인가를 말하고, 공은 무한한 무엇인가를 일컫는다.

   공이라는 것은 차별이나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무차멸(無差別), 곧 평등한 무엇인가를 잡는 것을 말한다. 흔히 공(空)하다고 하니까, 모든 것이 다 허무, 허망하다며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 영민하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말 공(空)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천지간의 만물은 모두 다 각각 다르다. 인간도 다 다르다. 그러나 그 다른 사물, 인간을 떠나서 도(道)를 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차별 있는 사물, 인생을 떠나지 않고, 그 차별 있는 사물, 인생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그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평등한 이치를 포착하는 것이다. 결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차별 가운데서 평등한 이치를 잘 감별한 이가 혜명 수보리(慧命須菩提) 존자였다. 그래서 공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칭했다.

   공을 어떤 분들은 무(無)라고 해석하고, 어떤 분들은 수학에서 말하는 제로(0)라고 주장하는데, 공이라고 하는 말은 무(無)도 아니고, 제로(0)의 개념도 아니다. 공(空)과 무(無)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없다(無)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가지가지로 변해가는 것을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에 일관(一貫)되게 들어있는 평등ㆍ무차별의 이치(理致)조차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空)하다는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체가 없어서 모양이나 형태가 없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만 무(無)는 공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無)와 공(空)의 의미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무(無)는 ‘존재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은 존재의 부정이 아니다. 다만 영원한 실체(자성)가 없다는 말이다. 공은 말이나 관념에 의한 고정화를 일체 배제하는 구실을 가지고 있고, 사물에 대한 고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 곧 중도(中道)의 생각에 이어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한 존재론적 또는 인식론적 무(無)의 관념과는 구별된다.

   공을 설명함에 마음에 비유해 보자. 즉,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모양이나 실체가 없다. 그렇지만 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온갖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 몸뚱이도 움직인다. 만약 마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마음이라는 말도 없어야 하며, 없다는 표현 또한 붙일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가 다시 생각이 일어나곤 한다. 그 원래 자리,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 그 자리의 마음이 공이다.

   그러니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그 빈자리에서 또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니 무(無)는 아니다. 다만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는 따로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공(空)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비어 있다. 비어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무(無)-없다’는 주체건 자아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몸은 분명히 있다. 또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 실체가 공이라는 것이다. 비어 있어 공이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없는 듯 있는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산스크리트어 ‘sunya'에 해당하는 공의 참뜻에 가까운 말이다. 허공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허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텅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다. 그 비어 있는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충만 돼 있다. 그래서 텅 빈 마음, 그곳에서 온갖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범부중생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은 번뇌 망상이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수행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오고 가나 분명히 현상으로는 작용하고 있다. 즉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현상으로서는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진공은 ‘참다운 공’을 말하며, 묘유는 ‘묘하게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묘하게 존재하는 진공묘유의 관계, 이것이 나아가면 불교 우주관이고 본질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공이라는 말은 무엇인가가 비어 있는 것을 말한다. 우주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공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은 모든 현상세계를 이룰 수 있고, 모든 형상을 포용할 수 있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이란 자기부정이며, 철저한 초월의 영역이고, 공 자체도 공하며, 공(空)한 그것도 공한 것을 공공(空空)이라고 한다. 이를 필경공(畢竟空)이라고 한다. 구극의 공(空)이란 뜻이다.

   진공묘유란 진실로 비운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비웠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비움의 작용은 있다. 도인(道人)이 그 작용을 일으키면, 그에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등의 번뇌 없이 마음을 내는 작용이므로 도력(道力)이라 하지만 범부중생이 작용을 하면 온갖 번뇌 망상이 덩달아 일어나므로 생각이나 행위 모든 것이 난잡할 수밖에 없다. 진공묘유의 작용은 지혜에 속하지만 군더더기가 붙은 마음작용은 번뇌일 뿐이다.

   공(空)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빛[因]이 프리즘[緣]을 통과하면 7색의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果]과 같아서, 진실로 비어있다(眞空)는 것은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妙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진공묘유란 불변하는 실체 없이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하며, 공(空)을 근원으로 해 존재하는 절대진리를 말한다. 공의 당체(當體-본체)는 공이 아니라 진공묘유이다. 그리고 좀 더 발전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유식학에서는 진공묘유 그 자리가 바로 자성(自性) 혹은 불성(佛性)의 자리라고 한다.

   이 우주 공간이 비어있는 것이지 무(無)의 상태는 아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것 같지만 실은 꽉 차있다. 진공묘유의 상태란 말이다. 이 우주 공간엔 의식의 파장이 꽉 차 있다. 이것을 기(氣)라 할 수도 있고, 에너지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진하면 이 우주 공간의 파장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깨달음이고, 신통력이기도 하다.

   강(江) 상류의 개천에서 산란을 한 연어가 넓은 바다에 나가 몇 년을 있다가도 회귀할 수 있는 것이라든지, 몇 백리 밖에 팔려나간 진돗개가 되돌아 집을 찾아온다든지 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모두 중생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부사의(不思議)한 공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 무한대의 우주공간, 그 속의 지구까지 포함한 거대한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고 있다. 만약 수시로 오차가 생긴다면 지구는 오래 가지 못하고 폭발해버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그 근원을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조화라고 하고,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의 작용이라고 한다. 하느님이라고 이름 하든 알라라고 이름 하든 이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고, 지구는 그 속에서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면서 4계절이 있고, 밤낮이 연속되는 이 작용의 근원을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공을 바람과 같다고 비유로써 말씀하셨다. 바람은 모양을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이란 그 모양을 볼 수는 없지만 결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공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공(空)에 관해 말해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불법 최고 지혜인 진여지혜(眞如智慧)는 언어나 문자로 분별하고 헤아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무분별지(無分別智)라 한다. 즉 반야지혜를 무분별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진여(眞如)의 모양은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모든 생각과 분별을 초월한 참 지혜로서만 알 수 있다고 해서 무분별지라고 하며, 그것이 곧 공(空)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공(空)은 범부 중생이 추구하는 가치, 이치, 이념 이런 것을 초월한 경계이다.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의 논리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곧 부처님의 절대불변의 경지를 말한다. 진여(眞如), 불성(佛性), 자성청정(自性淸淨),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차별절대(無差別絶對)와 같은 경계는 인간(중생)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도 없는, 인간으로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이해하고 느낄 수도 없는 경계, 중생의 한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경계이다.---→진공묘유(眞空妙有) 참조. 

        

*공(空)② - 공(空)ㆍ연기(緣起)ㆍ무아(無我)---대승불교철학의 핵심인 공사상은 대승에서 주장하는 반야지혜에 대한 규명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규명이다. 공사상을 체계화시킨 용수(龍樹)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 지혜로운 자로서 무수한 이타행(利他行)을 행한 근본 종교체험이 공에 대한 체득(體得)이라고 확신했다. 공의 체득은 윤회로부터 해탈을 가져오고 열반에 이르게 하는 근거인 것이다. 그리고 공의 체득이 가능한 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바와 같이 우리 삶이 연기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공이란 말은 없다는 의미이지만, 무엇인가가 있다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없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인간에게 윤회와 번뇌를 일으키는 근거로서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나 실체(實體) 등이 본래 없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공을 체득하는 경계는 인간의 의식상 가장 깊고 높은 차원인 승의(勝義)의 경계로서, 이 경계를 체득하면 열반의 세계가 전개된다.

    그리고 공의 경계는 세속(世俗)으로서 연기의 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연기의 세계에 의거해 공의 경계가 드러난다. 공이 연기의 세계에 의거한다는 것은 철저한 연기적 사유(思惟)를 통해야 공의 경계가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연기적 사유에 의거하는 세계란 우리의 삶이 성립되는 세계이자 존재하는 세계이다. 존재하는 세계란 연기의 세계로서 존재물 상호간에 의존적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로서, 항상 변화하는 무상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는 변하지 않는 궁극적 실체 등에 의거하는 세계가 아닌 까닭에 절대적인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가유(假有)의 세계이다. 가유의 세계로서 연기의 세속세계를 세속유(世俗有)라고 표현한다.

    이 세속유로서 가유의 세계에 대해 어떠한 집착도 가지지 않고 연기적인 의식이 깊어짐에 따라 생겨나는 세계가 승의공(勝義空)의 경계이다. 이러한 승의공의 경계를 체득해야 열반의 경지에 이르고, 이 경지에서 대승보살의 이타행과 자비행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승의공과 세속유의 경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도(中道)의 길이며, 이 중도의 길은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이와 같이 공사상의 체계는 중도의 길과 열반의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변하지 않는 실체의 개념을 부정하는 철저한 무아(無我)의 정신이 담겨있다. 무아설은 초기불교 이래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로서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로 구분돼 논의됐다. 인간의 내면에서 의식 일체를 통괄하는 절대적인 실체로서 ‘아(我)’가 없다는 것이 인무아이다. 이 인무아 외에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로서 법(法)에 대한 고찰이 생겨나,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자성(自性)을 갖는 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고가 생겨났다. 용수가 강조하는 공사상의 근저에는 인무아는 물론 법의 자성을 부정하는 법무아에 대한 개념이 담겨있다.

    그리고 공의 체득은 이러한 법의 자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부정의 의미가 담겨있다. 용수는 법무아를 법의 무자성(無自性)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연기적인 사유에 투철해 공을 체득한다는 것은 인무아와 법무아에 투철해진다는 것으로, 부처님의 근본교리인 무아설에 철저해진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공사상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무아와 연기에 의거해 세워졌다. 무아와 연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는 공의 체득이라는 승의의 경계를 통해 열반의 길로 나아간다. 이 열반의 길은 대승보살이 실천하는 진정한 이타행과 자비행의 길인 것이다. 공사상은 부처님 깨달음의 근본체계를 대승의 입장에서 조명하고 밝힌 것으로, 이 공사상의 체계는 후대 인도사상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이태승 

    공은 연기의 법칙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연기는 상호의존성 상호관계성이다. 어느 누구도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성을 윤리도덕의 가치규범으로 완성된 개념이 공이다. 공은 인격의 완성이다. 나를 내 세우면 항상 상대와 갈등하고 대립한다. 나를 비우고 버려야한다. 그것이 공이다.

   

*공 ‧ 가 ‧ 중(空假中)의 원리---중국 수나라시대 천태대사(天台大師, 538~597) 지의(智顗)가 세운 삼관법(三觀法)을 말한다. 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공(空),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한다는 가(假), 여기서 가는 차별상을 말한다.

   그리고 공(空)이나 가(假)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이 셋을 공ㆍ가ㆍ중 3제(三諦)라 하며, 이 진리를 관찰함을 공가중 3관(三觀)이라고 한다. 파도가 바다를 떠나서 존재하지 못하듯 공(空)ㆍ가(假)ㆍ중(中)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다. 이것이 공ㆍ가ㆍ중의 원리이다. 가는 차별관, 공은 평등관, 중은 통일관을 말한다.

    <반야경>에 공 또한 공한 것이라 가르치니, 그 공이란 무엇인가. 그 때의 공은 가 시설(假施設)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은 공이다. 실상은 연기하므로 고정된 실체성이 비어 있는 공이 맞지만 그 실상에 대해 잠정적으로 일시적으로 그 실상을 볼 수가 있다. 이때의 실상은 ‘가 시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실상이 공이라고 했듯이 모든 것이 공한 것인데, 그 공을 ‘붙잡고’ 있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런 걸 ‘무기공(無記空)’ 혹은 ‘공병(空病)’에 걸렸다고 한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부정의 방식이지만 ‘가 시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있긴 있다는 긍정이다. 그렇다면 진짜 실상은 무엇일까. 중관학파에서는 진짜 실상은 ‘중도’ 밖에 없다고 말한다. 중도란 부정도 아니고 긍정도 아니다. 이렇게 언어의 표현을 넘어선 궁극적 입장을 공(진제)이라 하고, ‘가 시설’된 방편의 입장을 가(속제)라 하며, 이 두 가지 진리를 포괄해 유무 양변을 떠난 것을 중(중도)이라 한다. 이것이 중론(中論)이라고 명명한 요인이다. 이 공ㆍ가ㆍ중(空假中)을 중관학파에서는 ‘세 가지 진리’라 해 3제라 하는데, 다 ‘대등한’ 입장으로 본다.

     • 공제(空諦) - 삼라만상은 공무(空無)해서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이 없다.

     • 가제(假諦) - 한 물건도 실재한 것이 아니지만, 모든 현상은 뚜렷하게 있다.

     • 중제(中諦) - 모든 법은 공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며 또 공이면서 유, 유이면서 공이다.

   그리고 3관(觀)은,

     • 공제(空諦)를 관하는 것을 공관(空觀),

     • 가제(假諦)를 관하는 것을 가관(假觀),

     • 중제(中諦)를 관하는 것을 중관(中觀)이라 한다. 대개 3제는 관(觀)할 바 이치에 대해 말하고, 3관은 관하는 지혜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유일하게 반성적 사유가 가능한 생물의 종이다. 따라서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물을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이는 불성(佛性)의 자각 곧 해탈에 이르는 출발점이기도 한다. 이러한 반성적 사유에 의해 우주의 모든 사물을 면밀히 고찰해 보면, 그 크기가 아주 작은 양성자나 중성자에서부터 대단히 큰 천체에 이르기까지 거기엔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직 연기(緣起)에 의해 서로 상의상관(相依相關) 관계로 존재할 뿐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므로 제법무아(諸法無我)이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그렇다고 색이 변화해 공이 되고, 공이 변화해 색이 되는 관계는 아니다. 즉,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란 시간이 경과하면 색이 변해 공이 되고 공이 변해 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색과 공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색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색이라는 것이다. 공이란 색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 색이 있는 자리를 떠나서 따로 공이 존재하지 않고, 색 역시 공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물리학의 상대론적 양자역학이 이해하는 진공(眞空)의 개념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완벽하게 차 있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락(Paul A M Dirac)은 진공이 실제로 텅 빈 것이 아니라 아주 약한 에너지(Zero-point energy)로 채워져 있고, 이 에너지에 의해 입자와 반입자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연구진이 이 사실을 영상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공의 자리가 바로 색의 세계이며, 색의 그 자리가 바로 공의 세계이다. 따라서 색과 공은 분리해 낼 수 있는 두 세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이와 같이 색은 곧 가(假)라 하고, 일체 모든 사물은 오직 무아(無我)여서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이라고 하며, 또한 그 둘의 양변을 떠나면서 그 양변을 포용해 중(中)이라고 한다. 공ㆍ가ㆍ중 그것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다. 그러므로 가라 하면 공과 중이 따라 오고, 공이라 하면 가와 중이 따라 오며, 중이라 하면 가와 공이 따라 온다. 이렇듯 공과 가와 중이 거칠 것이 없이 원융무애 하니 이를 일러 공ㆍ가ㆍ중 삼제원융(空假中三諦圓融)라 한다.

        ※가시설(假施設, prajnapti)---방편시설(方便施設-임시로 세운 이론)을 말한다. ---→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참조.

 

 

*공(空, 산스크리트어 sunya) 개념의 특징---‘공(空)’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sunya’는 형용사로서 속이 텅 빈, 부풀어 오른, 공허한 등의 뜻을 가졌고, 명사 ‘sunyata’는 공한 것, 공성(空性), 영(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공이란 텅 비어있다는 뜻이 되겠다. 이것은 절대적 무(無) 존재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는 있으되, 그것이 결정되거나 특별한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하자니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당나라시대 현장(玄奘) 법사가 빌 공(空)자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사상을 정립한 사람이 AD 2세기 중관학(中觀學)을 수립한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이다.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에서는 법체설(法體說)을 주장하고, 독자부에선 윤회하는 인격 주체로 개아(個我, 뿌드갈라/pudgala)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용수는 아를 비판하면서 법체니 개체니 하는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이는 곧 「무자성(無自性) - 공」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 ‘공(空)’이라는 글자가 산스크리트 원어 ‘sunya, sunyata’의 참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空(공)’이라는 한자에 너무 집착하면 원래 의미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공(空)이란 말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ti), 자아(自我, atman)라고 하는 것들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체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대승불교의 근본교의로 현상계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생멸하는 존재이며(연기하는 존재), 고정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고,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무아(無我)이고, 무아이기 때문에 공이라 했다. 따라서 공이나 중도(中道)는 연기법의 연장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무(無)라고 해석하고, 어떤 분들은 수학에서 말하는 제로(0)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공이라고 하는 말은 무의 개념이 아니다. 공(空)과 무(無),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 없다(無)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공(空)하다는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체가 없어서 모양이나 형태가 없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만 무(無)는 공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無)와 공(空)의 의미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무는 ‘존재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은 존재의 부정이 아니다. 다만 영원한 실체(자성)가 없다는 말이다. 공은 없는 게 아고, 비어있다는 말이다. 비어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즉, 공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본성이 공하다, 비어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공은 불이(不二) ― 이원적 대립의 극복으로 요약된다. <반야심경>에서도 공을 부증불감(不增不減)으로 설명한다. 부증불감은 증가와 감소를 동시에 부정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대립되는 개념 전체를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공은 새로운 차원의 철학으로 전개된다.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절대 평등(平等)의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공’ 혹은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할 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경험한 것, 그리고 내가 참고로 할 수 있는 사전이나 책, 자료들을 동원해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세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예컨대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연구하고 개발한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경지이다. 지금 <공(空)>이란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 글도 엇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공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공을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말 큰 사전에 있는 단어들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말이다. 때문에 불교에서 ‘깨쳐라’고 하는 말을 자꾸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지식체계를 다 버리고, 또 다른 부처님 가르침의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말을 부정한다. 우리의 몸은 분명히 있다. 또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 실체가 없다. 우리 몸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 몸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계속 변한다, 흐른다, ― 즉, 연기한다. 따라서 비실체이다. 연기하는 것의 특징은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의존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음이다. 즉, 실체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은 ‘무상, 무아, 비어 있다, 흐른다’라고 표현한다. 공이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불교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고 한다. 그러나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은 비어있는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가졌다. 비어 있는 곳을 채우기 위해 흐른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면 높낮이가 있지만 그 본질에서 보면 물이라고 하는 것은 빈 곳을 채운다.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채우고, 채워지면 넘쳐서 다시 흐른다. 비어있는 곳으로 흐르는 것이 공의 속성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그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불교에서는 현상적 차원에서 이렇게 실체가 없음을 이름 해 공(空)이라고 한다.

   사람이나 자연, 모든 것이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찰나찰나 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변하는 것이라면 영원한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영원한 ‘나’와 영원한 ‘나의 것’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무상하며, 변화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어떠한 것에도 ‘영원한 나’ ‘영원한 나의 것’이 없다 - 무아(無我)라는 이 사실 ― 그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셨거나 나타나지 않았거나 관계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참다운 진리이다. 무아(無我)란 그 스스로의 자아(自我)가 없기 때문이며, 자아가 없는 무아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空)이라 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직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일체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본성이 공하며, 또한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관하라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세계나 자신을 대하면서 실체론적 사고를 중단할 때,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도 알맹이가 없구나 하고 진실하게 느낄 때, 공이 작동한다. 공은 말이나 관념에 의한 고정화를 일체 배제하는 구실을 가지고 있고, 공이나 중도는 속박을 부수는 도구이며, 사물에 대한 고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곧 중도(中道)의 생각에 이어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한 존재론적 또는 인식론적 무(無)의 관념과는 구별된다.

   공이란 곧 평등(平等)을 말한다. 인간에게는 착하다ㆍ악하다, 부자다ㆍ빈자다, 미남 ‧ 추남, 남ㆍ녀 등 여러 가지 분별이 있다. 그렇지마는 여기엔 모두 인간이라고 하는 평등한 면이 있다. 또 일체의 사물은 가지가지로 변해가지마는 그 변해가는 것 가운데 일관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변한다고 하는 그 변하는 과정에는 어떤 준거(準據)의 틀, 곧 어떤 원칙이 있다. 예컨대 봄 다음에 반드시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이어서 겨울이 온다. 이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변화 가운데를 일관해서 변하지 않는 큰 것을 포착하는 것이 공을 아는 길이 된다.

공이라는 것은 차별이나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무차멸, 곧 평등한 무엇인가를 잡는 것을 말한다. 흔히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니까, 모든 것이 다 허무ㆍ허망하다며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이 있다. 영민하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말 공(空)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색(色)’이란 모양을 뜻하며, 곧 차별을 뜻한다. ‘즉(卽)’은 떨어지지 않음(不離)을 의미한다. ‘공(空)’은 평등, 즉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부언하면 차별이 있는 것, 곧 가지가지로 변해가는 것을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를 일관해 있는 평등의 이치를 구한다는 것이 곧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색(색)은 유한한 무엇인가를 말하고, 공은 무한한 무엇인가를 일컫는다.

   천지간의 만물이 다 각각 다르다. 인간도 다 다르다. 그러나 그 다른 인간을 떠나서 도(道)를 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차별 있는 인생을 떠나지 않고, 그 차별 있는 인생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그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평등한 이치를 포착하는 것이다. 결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차별 가운데서 평등한 이치를 잘 분별하는 장점을 갖춘 이가 혜명 수보리(慧命須菩提) 존자였다. 그래서 공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칭했다.

    공사상은 인간의 그릇된 입장을 파사(破邪)해 현정(顯正)하는 데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현상계에 집착하면 그것이 공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또 열반에 집착하면 열반 또한 공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여러 가지 대상이 본질적으로 공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대립적인 상대의식이 공하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를 넘어선 절대 또한 공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으로 공은 가설적인 이름을 붙여 공이라고 한 것일 따름이며, 공 자체는 진리가 아니고 진리를 밝히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반야경> ‘문승품 제18’에서 다음과 같이, 즉 “일체의 존재[法]는 공이며, 그 공도 또한 공이다. 상(常)도 아니요, 멸(滅)도 아닌 까닭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되는가. 성품 스스로가 그러하므로, 저절로 그렇게 되기[성자이(性自爾)] 때문이다. 이를 공공(空空)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공 역시 공한 것이므로 공을 집착해서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공성(空性)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낀 갖가지 분별망상의 때를 씻어내기 위해 공의 가르침에 의지하지만 그런 공의 가르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의 가르침에 집착하는 것, 다시 말해 공견(空見)을 갖는 것 역시 또 다른 망상분별일 뿐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공도 역시 공하다”고 가르친다.

   공이란 자기부정이며, 철저한 초월의 영역이며, 공 자체도 공하며, 영원한 실체(자성)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현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공은 인연에 대한 해석이다. 인연으로 인해 태어난 것이기에 실체가 없다는 말로서,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 모든 고정된 속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 부정은 단순히 소극적인 허무가 아니라 모든 속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 무애자재(無礙自在)한 절대적인 존재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공은 집착하지 않는 것, 얽매이지 않는 것, 머물지 않는 것이다. 공이란 철저한 초월의 영역이며, 공 자체도 공하며, 영원한 실체(자성)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현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는 따로 없다.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오고 가나 분명히 현상으로는 작용하나니, 즉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현상으로는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진공은 참다운 공을 말하며, 묘유는 묘하게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묘하게 존재하는 진공묘유의 관계, 이것이 나아가면 불교의 우주관이고 본질관이기도 하다.

    진공묘유란 진실로 비운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목탁을 보라 텅 비어 있어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범종각의 범종을 보라 속이 텅 비어 일승원음(一乘圓音)의 완성된 음운(音韻)이 나는 것이다. 텅 빈 충만, 비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며,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원리라 한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하다.

   비웠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비움의 작용은 있다. 도인(道人)이 그 작용을 일으키면 그에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등의 번뇌 없이 마음을 내는 작용이므로 도력(道力)이라 하지만 범부중생이 작용을 하면 온갖 망념이 덩달아 일어나므로 생각이나 행위, 모든 것이 난잡할 수밖에 없다. 진공묘유의 작용은 지혜에 속하지만 군더더기가 붙은 마음의 작용은 번뇌일 뿐이다.

    공(空)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빛[因]이 프리즘[緣]을 통과하면 7색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果]과 같아서 진실로 비어있다(眞空)는 것은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妙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진공묘유란 불변하는 실체 없이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하며, 공을 근원으로 해서 존재한다. 공의 당체(當體-본체)는 공이 아니라 진공묘유이다. 그리고 좀 더 발전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진공묘유 그 자리가 바로 불성(佛性)의 자리를 말한다.

   이 무한대의 우주공간, 그 속의 지구까지 포함한 거대한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고 있다. 만약 수시로 오차가 생긴다면 지구는 오래 가지 못하고 폭발해버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그 근원을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조화라고 하고,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의 작용이라고 한다. 하느님이라고 이름 하든 알라라고 이름 하든 이 우주공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고, 지구는 그 속에서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면서 4계절이 있고, 밤낮이 연속되는 이 작용의 근원을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에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이란 말이 나온다.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제법의 본질이 곧 공상(空相)이라는 말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본질적으로 공 한 것이라는 말이다. 공은 본래모습이 없지만, 중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공한 모습이란 용어를 쓴 것고, 공한 모습이라서 불생불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공한 모양은 바로 불생불멸을 비롯한 남 녀, 남 북, 밤 낮 등 온갖 상대개념을 다 포함하고 있다. 공한 본질 속에는 이 모든 것을 흡수함과 동시에 표상으로 확산시키는 상반된 작용을 갖고 있다. 그만큼 공은 역동적이다.

   그리고 일체법이 존재하는 모양이 바로 공이기 때문에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본질에 있어서 생성과 소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이면에 모든 현상은 생할 수도 있고, 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이기 때문이다.

    공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공에 관한 이 책 저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공이란 이런 것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 책이 없다. 이 글도 그렇지만 기껏해야 공의 특징을 나열하는 정도이다. 왜 그런가. 불교는 원칙적으로 깨달음의 종교이다. 그래서 불교의 ‘공(空)’을 이론적으로 혹은 알음알이로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공은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이며, 체득해야 하는 깨달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공을 알면 불교를 다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평생 공을 알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모르고 간 사람이 더 많다. 이론적으로 문자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바탕으로 하되 치열하고도 기나긴 수행 끝에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의 것을 알려면 수행을 통한 깨달음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언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공이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으로만 닿은 수 있는 영역이다.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해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야지혜로서 공관은 용수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제설(二諦說)의 입장에서 명확히 그 구분이 요구됐던 것이다. 이처럼 반야경계 경전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우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온갖 집착에서, 작은 명예에서, 사소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기를 텅 비울 때 모든 것이 비로소 하나가 되며, 자기를 텅 비울 때 그 어떤 것에도 대립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 드러난다. 즉, 텅 비울 때 오묘한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모든 고난으로부터 해탈된 자기, 모순과 갈등을 벗어버린 자기, 개체인 자기로부터 전체인 자기로 변신이 있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이다. 부처는 단지 먼저 이루어진 인격일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온전한 인간에 이르는 길이다.」 -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 중에서

    우리 중생은 ‘내 것’이라 할 게 하나도 없고, ‘내 것’도 아닌데 ‘내 것’인 양 여기면서 가지고 지키려고 발버둥 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한다. 고집도 욕심도 사랑까지도 모두 탁 놓아버려야 한다. 그게 바로 공의 영역이다.

 

      

*공겁(空劫)---우주는 일정하게 네 가지 주기를 반복하면서 성ㆍ주ㆍ괴ㆍ공(成住壞空) 하는데, 이 우주가 성립했다가 무(無)로 돌아가는 기간을 성겁(成劫) ‧ 주겁(住劫) ‧ 괴겁(壞劫) ‧ 공겁(空劫)으로 나누어 이를 사겁(四劫)이라 한다.

    각 겁(各劫)은 제가끔 20소겁(小劫)으로 이루어져 있고, 20소겁을 1중겁(中劫)이라 하고, 4중겁을 1대겁(大劫)이라 하므로 결국 한 우주는 1대겁(大劫)을 시간단위로 해서 생성소멸하고 있다.

    그리고 1소급(小劫)의 기간은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세부터 백 년마다 한 살씩 감소돼 10세에 이르고, 10세로부터 다시 백 년에 한 살씩 늘어나 8만 4천세가 되는 긴 기간이다. 따라서 실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긴 시간의 상징적인 개념이다.

    특히 괴겁의 시대가 지나면 공겁의 시대가 오는데, 공겁은 불교 우주관을 토대로 한 공막기(空漠期)를 말한다. 이 공막기는 세계가 파괴돼 아무 것도 없는 허공만이 존재하는 상태로 지속되는 지극히 긴 기간이다. 공겁 다음에는 다시 80겁을 주기로 성ㆍ주ㆍ괴ㆍ공이 반복돼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사겁(四劫) 참조.

  

*공견(空見)---공(空)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공을 깨닫지 못하고, 머릿속 이해 수준에 머물면 자칫 허무감에 빠질 수 있다. 즉, 공의 극단에 치우쳐 허무주의에 빠진 공의 세계관이라는 의미에서 공견이라고 부른다. 자칫 이러한 공견에 빠질 경우 모든 가치판단이 상실돼 선악의 구분을 무시하는 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공을 잘못 이해해 공(空)에 집착하다가, 공에 사로잡힌 그릇된 견해로서 근본적으로 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므로 공병(空病)이라 할 수 있다. 용수(龍樹, 나가르주나)는 이런 공견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공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不能正觀空) 자기 스스로를 해친다(鈍根則自害). 주문을 잘못 외거나(如不善呪術) 독사를 잘못 잡는 것처럼(不善捉毒蛇).”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설익은 무당이 주문을 잘못 욀 경우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또 독사를 잡을 때 물리지 않기 위해서 머리가 움직이지 않게 목을 꽉 쥐어야 한다. 실수로 다른 곳을 잡을 경우 오히려 독사에게 물린다. 공의 진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올바로 이해할 경우에는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어 주고 삶과 죽음의 고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기사회생의 명약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잘못 이해할 경우 독약이 돼 우리 몸과 마음을 해칠 수가 있다.

    이와 비슷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날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초라한 행색으로 밥이나 한술 얻어먹으려고 어느 사찰을 방문했는데, 그 절의 주지가 돈 있어 뵈는 신도는 극진이 접대하면서 행색이 초라한 자기는 박대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지에게 따졌다고 한다. 분별하지 말라는 절간에서 사람을 이렇게 차별해서 되느냐고, 그러자 주지 왈, “대접을 하는 게 안하는 것이요, 안하는 게 하는 것이올시다.”라고 어쭙잖게 공의 도리를 써 먹은 것이다.

    그러자 박문수가 주지의 머리를 딱! 소리가 나도록 갈겨주면서, “이놈아 그러면 때리는 게 안 때리는 거고, 안 때리는 게 때리는 거다.” 라고 하면서 혼쭐을 냈단다.

   이처럼 깊은 의미를 품은 공의 도리가 깊은 이치를 모르는 자에겐 한갓 말장난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기초가 부실하고 수행력이 없이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해 내지 못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만큼 공의 도리는 어려운 것이다.

    <중론(中論)> 제13 관행품(觀行品)에서 용수는 진제적(眞諦的) 조망을 속제적(俗諦的) 규범으로 착각하는 공견(공의 세계관)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세계관[견해]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大聖說空法), 공의 진리를 말씀하셨다(爲離諸見故). 그러나 만일 공을 다시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는 자가 있다면(若復見有空), 어떤 부처님도 그런 자를 구제하지 못하신다(諸佛所不化).”

    공(空)이란 마치 빨랫비누와 같다. 얼룩진 옷에 묻은 때를 빨 때 비누를 이용해 때를 지운다. 그러나 때가 지워졌다고 해서 빨래가 끝난 것이 아니다. 때를 지우기 위해 사용했던 비눗기를 말끔히 헹구어 내야 한다. 공의 가르침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 사고방식에 낀 갖가지 망상분별의 때를 씻어 내기 위해 공의 가르침에 의지하지만 그런 공의 가르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의 가르침에 집착하는 것, 다시 말해 공견(空見)을 갖는 것 역시 또 다른 망상분별일 뿐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공도 역시 공하다”고 가르친다.

    언어와 분별로 이루어진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마치 뗏목과 같은 것이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경고하고 논증하기 위해 공의 가르침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경고와 논증은 공의 가르침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적용돼야 한다. 공의 가르침 역시 언어와 분별에 의해 표출된 것이기에 또 다른 뗏목일 뿐이다. 그래서 용수(龍樹)는 “모든 것이 공하다”는 공의 가르침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를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

    “만일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若有不空法), 공한 것이 있으리라(則應有空法). 그러나 공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實無不空法), 어떻게 공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何得有空法).”

    모든 것이 공하다는 말은 공하지 않은 것은 전혀 없다는 말과 그 의미가 같다. 그런데 공한 것이 있으려면 공하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 마치 긴 것이 있으려면 길지 않은 것, 즉 짧은 것이 있어야 하고, 호랑이라는 생각이 존재하려면 호랑이 아닌 것이 존재해야 하듯이… . 그런데 모든 것이 공하다면, 공하지 않은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기에 공이라는 말이 무의미해지고 만다. 모든 것에 공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어진다. 모든 것은 공할 것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공의 의미이다. 공이라는 말에 의해 모든 것에 자성(自性)이 있다는 분별을 세척해 주지만, 공 역시 자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공병(空病) 참조.

   

*공공(空空)---<반야경(般若經)>에 나오는 십팔공(十八空)의 하나로서, 공(空)에 대한 분별이나 집착이 끊어진 상태이며, 공도 또한 공함을 말한다.

   공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며, 무아이기 때문에 공인 것이다. 이때의 공은 고락(苦樂)과 유무(有無)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다. 공의 사상은 인간의 그릇된 입장을 파사(破邪)하여 현정(顯正)하는데 있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현상계에 집착하면 그것이 공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또 열반에 집착하면 열반 또한 공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가지가지 대상이 본질적으로 공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반야경>에서 설한 18공의 경우도 이와 같은 것이다.

    -우선 사물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인간의 육근(六根)이 공하다(內空).

    -다음으로는 육근의 대상이 되는 육경(六境)이 공하다(外空).

   이렇게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관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집착의 대상이 공함을 밝히고, 마침내는 그 공도 또한 공임(空空)을 설한다. 이는 육근(六根)과 육경(六境), 그리고 그것에 의지한 아(我)와 아소(我所) 모두 실체가 없고, 자성(自性)이 없는 공(空)한 것인데, 그 공(空) 또한 공(空)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컨대, 공은 마치 비누와 같아서 공이라는 비누로 분별이라는 때를 빨았으면 그 공의 비눗기도 다시 헹궈내야 한다[공공]. 공의 가치가 남아 있으면 가치판단이 상실된 악취공(惡趣空)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낀 갖가지 망상분별의 때를 씻어 내기 위해 공의 가르침에 의지하지만 그런 공의 가르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의 가르침에 집착하는 것, 다시 말해 공견(空見)을 갖는 것 역시 또 다른 망상분별일 뿐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공도 역시 공하다”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반야경> 문승품 제18에는 “일체의 존재[法]는 공이며, 그 공도 또한 공이다. 상(常)도 아니요, 멸(滅)도 아닌 까닭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되는가. 성품 스스로가 그러하므로, 저절로 그렇게 되기[성자이(性自爾)] 때문이다. 이를 공공이라 부른다.”라고 했다. 이는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하는 관념에 집착해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빠져버리는 공병(空病)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설이다.

 

     

*공공적적(空空寂寂)---불변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는 상태를 말하며, 줄여서 공적(空寂)이라 한다. 공적(空寂)하다에서 ‘공(空)’은 이차별(離差別), 곧 차별을 떠남을 뜻하고, ‘적(寂)’은 이변화(離變化), 곧 변화를 떠남을 말한다. 그러니까 공적(空寂)이라는 말은 차별을 떠나고 변화를 떠나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의 도(道), 곧 진여(眞如)를 말한다.

    그리고「성(性)과 상(相)이 공적(空寂)하여」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는데 비해,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 모습을 말한다. 따라서 공적이린 형상이 있는 것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공무(空無)해 아무 것도 생각하고 분별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평등하고 변하지 않는 상주불변체를 확고하게 포착하는 것을 이른 바 불교 신앙의 이상(理想)으로 ‘성(性)과 상(相)이 공적(空寂)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공공적적해 찾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즉,

     • 우주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비어 있어 불변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텅 비어 매우 고요하다는 말이다.

     • 번뇌나 집착이 없이 무아무심(無我無心)이라는 뜻이다.

    즉, 우주에 형상이 있는 것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공무(空無)해 아무것도 생각하고 분별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청화(淸華) 스님은 우주에 형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공무(空無)해 아무것도 분별할 것이 없으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여의어라 하셨다. 그것이 곧 공공적적(空空寂寂)이다. 그러니 이 몸은 공적(空寂)해서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한 것도 없다. 이번 생에 잠시 인연 따라 나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인연 따라 갈 뿐인 것이다.---→공적(空寂) 참조.

    

*공(空)과 무(無)---공(空)과 무(無)는 다르다. 중생들은 견해에 집착하고, 그 견해의 가장 큰 두 줄기는 있다(有)와 없다(無)이다. 중생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은

있다(有)와 없다(無) 이 두 가지에 박혀 있다.

   깨달음이 곧 공(空)이다. 공(空)이 곧 깨달음의 근본 핵심이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공(空)을 들으면 공(空)을 아무 것도 없는 무(無)로 여긴다. 깨달음이 전혀 없어 공(空)이 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핵심 진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공(空)이다. 공이 곧 지혜이며, 해탈의 뿌리이다. 이것은 대승, 소승, 금강승 모두에게 공통사항이다. 공(空)이 아니면 해탈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승경전에서도 나와 있다시피, 삼해탈문이 바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無作)이다. 해탈할 수 있는 문(門)이 바로 삼해탈문이고, 그 세 가지가 바로 공ㆍ무상ㆍ무원이다. 공ㆍ무상ㆍ무원은 다 같은 뜻이다. 공하기에 모습이 없고, 공하기에 바람(작위)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만 부처님의 자비로써 중생의 성향에 따라 문을 세 개 열어놓으신 것일 뿐이다.

   왜 공(空)인가? 바로 인과 연이 화합해서 생겨났으므로 거기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어서 공이다.

   왜 무상(無相)인가? 비어 있으니 거기엔 그 어떠한 모양(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무원(無願=無作)인가? 비어 모습이 없는데 뭘 짓거나 뭘 바란다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은 결국 다 같은 뜻이다. 단 하나를 세 가지로 표현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해탈의 문은 공(空)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공(空)은 비었다는 의미고, 무(無)는 없다는 뜻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돼 있다. 몸이 무(無)일까. 몸은 없지 않다. 몸은 아주 없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몸이 항상 영원한가. 영원히 있는가(有). 중생들은 영원하다고 여긴다. 영원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몸에 집착한다. 몸이 영원하지 않다고 확실히 안다면, 몸에 집착할 수가 없다.

   몸은 변한다. 몸은 항상 변해간다. 그래서 몸이 병들고, 늙어간다. 몸과 마음이 변해가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어리석은 중생이다. 몸은 아주 없는 무(無)가 아니다. 그렇다고 영원한 실체가 있는(有)도 아니다. 그러나 중생은 진리를 몰라서 항상 유무(有無), 이 두 가지 견해에 매달려 있다. 몸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실체가 있어서 영원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몸의 존재방식은? 바로 공(空)이다.

   몸은 공(空)한 것이다. 이게 진실이다. 몸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몸은 공한 것이다. 몸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몸은 허깨비와 같다. 그래서 <금강경>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했다. 이 몸은 꿈ㆍ허깨비ㆍ거품ㆍ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꿈ㆍ허깨비ㆍ거품ㆍ그림자는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이게 바로 공의 뜻이다. 이와 같이 몸의 존재방식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바로 공한 것이다. 이렇게 공과 무는 완전히 다르다.

    유는 상주론(常住論), 무는 단멸론(斷滅論), 공은 중도(中道)이다. 중도란 유무 양쪽에 치우치지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중도의 뜻은 그 어떤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겨우 유무 양쪽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견해에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공(空)과 연기(緣起)---‘공(空)’은 인연(因緣)을 말한다. 인연으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공은 실체가 없다. 공 현상은 공이다. 인연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공은 곧 인연에 대한 해석이다. 공이라는 말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고, 실체가 없다는 말은 인연이라는 말이다.

   왜 인연은 실체가 없는가? 돌을 조각해서 사람 모습을 만들면 돌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석수가 사람으로 다듬었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은 의지해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것을 연기(緣起)라고 한다. 인연 연(緣)자 일어날 기(起)자이다.    

   연(緣)은 의지한다는 뜻으로 석수에 의지해서 돌이 사람이 됐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지해서 조성된 것이고, 석수가 없으면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우리말 <춘향전> 가사에 미륵님이 살찌는 것은 석수쟁이 솜씨에 매였다 이런 말이 있다. 돌이 미륵이 되는데 돌미륵도 그냥 미륵이 되는 게 아니라 석수쟁이가 다듬는 대로 되는 것이다. 그게 연기라는 말이다. 이 ‘연기’를 여러 다른 분야에 적용해도 다 들어맞게 돼 있다.

   어머니는 아들과 딸에 의지해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아들딸이 없으면 어머니가 될 수 없다. 마누라는 남편 때문에 마누라가 되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 때문에 남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의지해서 된다. 그래서 의지해서 되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우주관이고 본질관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현상관이고 세계관이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말미암아서 저것이 있고 저것으로 말미암아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것의 실체가 아니고, 저것은 저것의 실체가 아니다. 이게 공(空)이다.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다. 죽음을 떠나서 삶의 실체가 없고 삶을 떠나서 죽음의 실체가 없다. 그러니까 실체가 없고 공이다.

   이 말을 어려운 말을 써서 자성(自性)이 없다고 한다. 실체가 자성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는 말을 무자성(無自性)이라고 한다. 그 무자성의 내용이 연기이다. 그리고 무자성은 바로 공이다. 따라서 이 공이라는 말은 모든 것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어남을 말한다. 인연법을 말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인연이니까 현상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색(色)은 현상인데, 색은 말하자면 석수를 잘 만나면 예쁜 사람으로 다듬어지고 고약한 석수를 만나면 고약한 모양으로 다듬어지며, 석수 나름으로 모양이 된다. 돌은 아무 힘이 없다. 그래서 공이다.

   또 다리 놓는 사람 만나면 돌이 다리가 된다. 다리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석수의 노력을 통해서 다리가 된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가 기둥이 되는 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목수에 의해서 기둥이 된다. 돌이나 나무(色)는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될 수 없다. 그래서 공이라는 것이다.

   공은 연기의 법칙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연기는 상호의존성 상호관계성이다. 어느 누구도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성을 윤리도덕의 가치규범으로 완성된 개념이 공이다. 공은 인격의 완성이다. 나를 내 세우면 항상 상대와 갈등하고 대립한다. 나를 비우고 버려야한다. 그것이 공이다.

   같은 밀가루인데 빵도 되고 수제비도 되고 칼국수도 되고 범벅도 된다. 이게 전부 인연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본질을 무자성이라 하는 것이다. 곧 스스로의 본성이 없고 인연에 의지해서 이루어짐을 말한다.

   「불교에서 "실체가 없다"고 하는 설명이 공(空)에 관해 행해지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부파불교인들이 이 ‘실체’라는 개념을 중요시해서 이 실체라는 것에 어떤 의미로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실체라는 사고를 부정하고 파괴함으로써 어떤 대상을 실체화하는 것을 타파하는 도구로 순야(Sunya-공)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즉 실천적인 면에서 말하면 실체라는 사고는 실천의 경우에는 "사로잡힘(집착)"이라는 것이 된다. 실체라는 것은 사로잡힘으로써 개물(個物)로부터 추상돼 성립된다. 예컨대 시계라는 것은 시각을 표현한다는 개념을 추구해나감으로써 개개의 시계로부터 시계의 실체가 탄생한다. 그래서 공(空)이란 것을 실천적인 의미로 보면 사로잡힘을 없애는,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공을 설명하는데 실체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논리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실천적인 표현이다. 부파불교시대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실체를 생각하고 또는 실천에서도 어떤 제약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자세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그것을 배척하며 나아가서는 부처님의 원음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슬로건으로서 대승불교의, 그리고 <반야경>의 공이 설해지고 주장됐다.

   <반야경>을 보면 거기에 많이 나오는 공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전혀 돼있지 않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실천적으로 사로잡히지 않음(無執着)이라는 표현, 이것은 간단한 듯하나 막상 그것을 실천하려면 매우 어렵다.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그 일에 열중하면 그것은 거꾸로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전혀 설명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반야경>은 거듭 거듭 공(空)이라는 것으로도 부족해 다시 한 번 공이라고 말하고 마침내 "공은 역시 공이다"라고 말한다.

"사로잡히지 않는다" 또는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을 어떠한 형태로 논리적으로 또 실천과 결부시켜 훌륭하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는 초기 <반야경> 시기에는 적지 않는 무리가 따랐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가르주나(용수)라는 뛰어난 학자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공(空)의 논리는 마침내 용수라는 사람에 의해서 우수한 이론으로 성립됐다.

   용수는 <중론(中論)>이라는 책에서 공(空)의 이론을 "연기"라는 것을 도입해 설명했다. 연기(緣起)는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결과라든가 이것이 이유이고 이것이 귀결이라든가, 그러한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초기불교에서는 연기가 논해졌다. 또한 인연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원인과 조건, 그리고 결과라는 것을 포함한 개념으로서의 연기(緣起)는 초기불교시대를 지나 점점 발전돼 왔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고 하면, 그는 어머니이며, 딸이며, 아내이다, 그밖에도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에 서 있다. 즉, 넓게는 국민이고 유권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한 여자를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서 볼 수는 없다. 용수는 <중론(中論)>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거듭 거듭 강조하고 했다. 그러함으로써 어떤 고정된 견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런 용수의 학설에 따라 앞에서 말한 "논리적으로 실체를 부정한다"는 것과 "실천적으로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 두 가지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중론>은 대승불교에서 지극히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전부 450송의 시로 돼있고, 그것이 27장으로 나누어 있다.…

   <중론>은 공을 연기설로 설명했고, 그때까지 <반야경>을 설했던 사람들은 이로 인해 공(空)의 참뜻을 바로 이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공(空)에도 사로잡히지 않게 됐다.」- 실론섬

 

  

*공(空)과 제로(0)---불교에서는 이 유(有)와 무(無) 이외에 또 하나의 사고방식을 만들고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것이 공(空 = 0. Sunya)이다. 예를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해 숫자의 가장 기초 단위는 1이라는 숫자이다. 여기에 대응되는 것은 마이너스 1이라는 숫자이다. 즉, 마이너스 1이 있고 그리고 마이너스 2라는 식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수는 1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0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십이라고 할 때는 1 다음에 0을 쓴다. 백일 때는 1 다음에 0을 두 개 붙여 100이라고 쓴다. 그 뒤 101, 102로 써 나간다.

   이것은 희랍이나 로마에서 백이라고 할 때 C 를 쓰고 II 를 쓰는 것과 전혀 다른 방법이다. 인도에서는 백이라든가 C 라든가 하는 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1과 0이라는 문자를 나란히 놓고 한마디로 자리에 따라 수를 포현해 가면서 101, 102… 또는 그 이상의 어떤 큰 수도 모두 그것만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돼 있다. 여기에는 인도에서 발견한 0이 교묘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숫자의 자리 잡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로(0)란 플러스 1과 마이너스 1의 중강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0에 대응하는 숫자는 없다. 1에는 반드시 마이너스 1이라는 식의 대응하는 것이 있는데 0에는 플러스 0도 마이너스 0도 없다. 이 0 이라는 숫자는 인도인이 발견하고 아라비아인이 인도로부터 배워서 유럽에 전했다.

   그런데 이 0이야말로 <반야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순야(sunya), 즉 공이다. ‘순야’라는 말 자체가 숫자의 0을 뜻한다. 0이라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는 숫자이다. 우리가 흔히들 102라고 할 때 십 자리를 차지하는 수는 없으므로 0을 쓴다. 그런데 없다고 해서 떼어 버리면 12가 된다. 전혀 다른 수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도무지 제거할 수가 없는 것이 0이라는 숫자이다.

   이처럼 0은 실은 없지만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그 실물에 상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없는데도 그것을 제거할 수가 없다. 이른바 아무것에도 대응하지 않고 또한 실물이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그러한 것이 0이라는 숫자이다. 이것이 범어에서 말하는 순야(Sunya)라는 것이다. - 실론섬

     

 

*공관(空觀)---공관이란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자성(自性)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관상(觀想)하는 수행법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천태종 입장에서는 관법(觀法)의 내용을 공ㆍ가ㆍ중(空假中) 삼종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 하고, 그 중 하나가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이라고 하며, 바로 공관을 말한다.

    우주 사이에 벌려있는 수많은 현상은 모두 인연소생(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기 함)에 따라 생긴 것으로, 그 실체가 없고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공적무상(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현상계의 일체법은 다 실체가 없는 공이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물든 우리들의 번뇌 또한 그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라고 관해 마음의 본바탕인 불성(佛性)을 깨닫고자 함을 말한다.---→공 ‧ 가 ‧ 중(空假中)의 원리, 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 참조.

   

*공교(空敎)---불교철학의 발전단계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삼시교판설(三時敎判說)이라 한다. 이 분류는 붓다 교설 중에서 유식학이 최상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 논사가 정립한 이론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 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 제1시교---처음 초기로 제1시교 법문을 유교(有敎)라 한다, 우리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범안(凡眼)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 제2시교---보다 높은 차원으로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중생이 보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고 일체가 공이요 무상이다’ 이러한 높은 차원에서 모두를 다 부정하는 단계, 이것이 공교(空敎)이다. <반야경> ‧ <금강경> 등의 사상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 제3시교---제3시교는 바로 중도교(中道敎)이다. 제1시교와 같이 너와 나의 실재를 고집하는 편견과 제2시교에서 말하는 바, 일체만법이 무상하다고 하는 공(空)의 한 면만을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부정해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은 유(有)의 개념과 공(空)의 개념을 초극한 중도의 묘한 이치,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불성(佛性) 경계를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공의 참뜻을 중도(中道)라 해 그 중도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제3시의 중도교(中道敎)는 유(有)와 공(空)을 동시에 드러내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해심밀경> ‧ <화엄경>의 가르침이다.

        

*공능(功能, 산스크리트어 samartha)---작용(作用), 기능(機能), 능력. 잠재력 수련법의 효능 즉 효과, 어떤 법(法) 즉 존재가 지니고 있는, 어떤 결과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근(根) · 경(境) · 식(識)의 3사(三事)가 화합(和合)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들 3사의 각각이 모두 마음작용을 생겨나게 하는 공능(功能) 즉 작용(作用)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이러한 공능 즉 작용에 의거해 3사화합의 상태로부터 마음작용이 생겨나는 것을 변이(變異)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마음의 공능(功能)을 화가에 비유해, 우주일체 만물만상이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셨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경우 아무렇게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인생철학과 사상을 담은 마음의 표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음을 담은 그림이기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자기 자신의 온갖 능력을 계발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담은 공능을 한 물건이라고도 하고, 진아(眞我)라고도 하며,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법계(法界)라고도 하며, 이것을 달리 마음이라고도 한다.---→공용(功用) 참조.

      

*공덕(功德, 산스크리트 구나/guna)---공양하는 덕, 불교에서 장차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쌓는 선행을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덕이라 하면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보시가 중요한 공덕이기는 하나, 행한 해위의 결과에 집착을 하면 오히려 선업이 아니라 악업이 될 수도 있다. 업(業)이든 복(福)이든 ‘짓는 행위’는 공덕이 아니다. 공덕을 쌓고자 의도한 행위는 공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덕을 쌓고자 한다면 겸손과 하심으로 남을 공경하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깨끗한 보시여야 한다. 그리고 베풀기에 앞서 자기 자신 안으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밖으로 하심과 겸손으로 일관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육조 혜능(慧能) 대사는 공덕을 한마디로 말하면, 눈을 안으로 돌려 자기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이라 했다.

   “성품을 보는 것이 공(功)이요, 평등은 이것이 덕(德)이니 생각 생각이 막힘없어 항상 본성의 진실묘용(眞實妙用)을 보는 것이 공덕이 되는 것이니라.”라 했다.

   그리하여 달마(達磨) 대사가 처음 양무제(梁武帝)를 만났을 때 무제가 묻기를 ‘짐이 일생동안 절을 많이 짓고, 스님을 공양하고, 널리 보시를 하고, 재(齋)를 베풀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하니, 달마 대사의 말이 “실로 공덕이 없음이라.” 했다는데, 그 이치가 무엇입니까 하는 물음에, 육조 대사께서 말씀 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느니라.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마음이 삿되어 정법을 알지 못하고 절을 짓고, 공양을 올리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푸니, 이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라. 이런 복이 공덕이 될 수는 없느니라. 공덕은 법신 중에 있는 것이요, 복을 닦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절을 크게 짖고 보시를 하거나 재(齎) 올리는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지 공덕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공덕은 법신 중에 있는 것이고,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덕이 법신 중에 있다는 말은 공덕은 진리 자체에 있다는 말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공덕이라는 뜻이다. 진리는 깨닫지 않고 물질적인 보시만 해서는 아무 공덕이 없다는 뜻이다.

        

*공덕림(功德林)---선나(禪那) 또는 선(禪)을 뜻하는 말로서, 선(禪)을 이르는 별칭이다. 선근(善根) 공덕을 많이 쌓는 일이 마치 수풀이 무성한 것과 같다는 말. 수풀이 무성하면 많은 짐승ㆍ새ㆍ벌레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덕을 많이 쌓으면 그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입게 된다.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한다. 공덕이란 자기나 남이나 누구나 간에 유익되게 하는 것이고, 총림, 이것은 그야말로 숲처럼 무한공덕이란 말이다, 총(叢)은 ‘딸기 총’으로, 무더기로 많이 있다는 뜻이다. 공덕이 하나 둘이 아니라 마치 딸기 넝쿨이나 숲 모양으로 한도 끝도 없이 많은 것이 공덕총림이다. 그러데 그것이 선으로 말미암아 온갖 공덕이 축적된다고 해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찰(禪刹)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 하는데, 공덕총림(功德叢林)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선정의 뜻풀이다. 즉, 선정(禪定)을 잘 실행함으로써 공덕을 쌓는 결과가 된다는 선정의 효과를 표시하는 말이므로, 선(禪) 또는 선정을 대신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다음은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設偈品)에 나오는 말이다. “야마천궁에 결가부좌하고 앉으신 부처님의 주위에 여러 세계로부터 열 분의 부처님과 열 분의 보살이 모여들어 각각 결가부좌하고 앉았다. 그 열 분의 부처님 이름에는 상주안(常住眼). 무량안(無量眼) 등과 같이 모두 '안(眼)'자가 붙어 있으며, 열 분의 보살 이름에는 공덕림(功德林). 혜림(慧林) 등과 같이 모두 '림(林)'자가 붙어 있었다. 보살의 이름에 '림'자가 붙은 이유는 법계의 수행을 행하고 법계의 덕을 완성하는 것을 나타내어 그 덕이 높고 넓음을 나무에 비유해 '림'이라고 했다.”    

    

*공덕행(功德行)의 토대---공덕행의 토대는 경에서 보시로 이루어진 공덕행, 지계로 이루어진 공덕행, 수행으로 이루어진 공덕행을 말하는데, 이를 좀 더 세분하면 다음의 10가지를 든다.

     ① 보시(布施, dāna), ② 지계(持戒, sīla), ③ 수행(修行, bhāvanā),

     ④ 공경(恭敬, acāyana), ⑤ 봉사(奉仕), ⑥ 회향(廻向, pattidāna),

     ⑦ 더불어 기뻐 함(隨喜), ⑧ 법을 가르침(說法), ⑨ 법을 들음(聞法),

     ⑩ 자기 견해를 바로잡음. 

          

*공륜(空輪)---사륜의 맨 아래 허공을 말함.---→사륜(四輪) 참조.

   

*공무(空無)---모든 사물은 낱낱의 자성이 없음을 말한다. 즉,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본성이 없음을 말한다. 형상 있는 일체의 사물은 개개의 자성(自性), 곧 실체가 없으므로 공무(空無)라 하며, 만물은 모두 인연의 소생으로서 그 본성은 실유(實有)의 것이 아니므로 공(空)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무릇 형상을 갖춘 만물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본래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공무(空無) 한 것으로 통한다. 그리고 마음은 본래 공무(空無) 해 걸림이 없으니 각자 자기의 마음이 근본으로 공무(空無)함을 알 때 마음의 공(空)과 상(相)을 여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불가에서 이르기를 무릇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화합해 모인 것은 이별을 거쳐, 괴멸돼 마침내 공무(空無)에 이른다는 대자연의 이치를 말한다. 그리고 선종(禪宗)에서는 낙공(落空), 즉 허무주의에 떨어짐을 공무라 지칭하는데, 요즘 말로는 ‘모든 것이 다 쓸데없다.’는 식의 생각을 공무라 한다.

    우리들 삶에서 만약 결과가 목적이라면, 배설을 위해 밥을 먹고, 어른이 되기 위해 성장하고, 인생의 목적은 죽음이고, 생명의 결과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무(空無)라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나온다. 웃고 울고 즐기고 부대끼고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이 인생이고, 만나고 좋아하고 싸우고 정들고 때론 헤어지기도 하는 과정이 사랑이다. 인간의 삶은 죽기 전까지 매순간 순간이 다 의미가 있다. 그게 인간이 인간 존재 자체로 존엄한 이유다.

    불교에서 겁(劫-칼파/Kalpa)은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 지속되고 파괴돼 공무(空無)가 되는 시간을 말하며,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시간을 의미한다.

       ※공무(空無)에 떨어지는 병통---억지로 망념을 다스려 공무(空無)에 떨어지는 병통을 말한다. 다음은 현사 스님의 법문이다.

     "이런 식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心念]을 단단히 검속해 모든 현상[事]을 싸잡아 공(空)으로 귀결시키고, 눈을 딱 감고서 겨우 망념이 일어날라치면 갖은 방법으로 부숴 없애고, 미세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곧 억눌러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단견(斷見)에 빠진 외도[空無外道]로서 혼(魂)만 흩어지지 않았을 뿐 영락없는 죽은 사람이라, 깜깜하고 아득하여 아무런 느낌이나 인식이 없다. 이는 마치 자기 귀를 틀어막고 남도 못 듣겠거니 하면서 방울달린 말[馬]을 훔친다는 이야기와 같으니 부질없이 자기를 속일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사람의 병통은 의심을 일으키지 않고 공안을 참구하지도 않으며, 온몸으로 깨달아 보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알음알이로 망념만을 다스리려 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설사 이런 사람은 맑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사실은 미세한 번뇌[命根]까지는 끊지 못했으니 결국 참선하는 납자라고 할 수 없다.

             

*공무변처(空無邊處, akasanancayatana)---사무색처(四無色處)의 하나. 무색계(無色界)의 제1천(天)으로 물질적 요소를 초월한 정신적 요소만을 갖춘 이들이 산다. 물질인 이 육신을 싫어하고, 끝이 없는 허공의 자재(自在)함을 기뻐하며, 공이 가없다는 이치를 아는 경지를 공무변처라 한다. 또한 허공은 끝이 없다는 이치를 체득해서 태어나는 곳이다.

    akasa(허공)+ananca(끝없음)+ayatana(장소)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여기서 ‘무변(無邊)’은 가없는, 혹은 한없는 그러한 의미이고, ‘처(處)’는 처지, 경지, 곳이란 말이다. 따라서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경지, 그런 이들이 사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불교는 초기 근본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밀교 이렇게 발전하면서 엉뚱한 이론을 만들어 혼란을 주는 면이 없지 않다. 이런 불합리한 논설은 폐기해야 하는데, 그 폐기해야 할 교설의 하나가 바로 사무색처(四無色處)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공무변처(空無邊處), 다음에 나오는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따위의 이론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도 있다.---→사무색처(四無色處) 참조.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사무색정(四無色定)의 하나. 선정에는 그 정신통일 상태의 높낮이에 따라 초선(初禪) ․ 제이선(第二禪) ․ 제삼선(第三禪) ․ 제사선(第四禪)의 네 선정이 있고, 또 그 위의 탁월한 선정으로서 무색계선정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따위가 있다.

    이와 같이 공무변처정은 무색계선정 중 첫 번째 선정으로서 물질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물질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경지이다. 공무변처정은 외부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끝없는 공간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의식이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가없는 허공을 생각에 떠올리면서 염(念)하는 정신통일.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에 들어가기 위해 닦고 익히는 선정을 일컫는다. 물질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물질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경지이다.---사무색정(四無色定),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참조.

    

*공ㆍ무상ㆍ무작(空無相無作)---공ㆍ무상ㆍ무원(無願)이라고도 하는데, 실체가 없음, 차별상이 없음, 욕구가 없음을 말한다. 이 셋은 3해탈문(三解脫門)이라고도 하며, 해탈의 방법이 되는 3가지 선정의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空)이란 일체의 것이 다 평등이라는 뜻이다. 얼굴이 각기 달라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 지혜가 있건 없건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공(空)이다.

무상(無相)이란 일체의 사물을 평등하다고 보고 차별하지 않는 태도이다. 상(相)은 차별상(差別相)이다. 그런가 하면, 하고도 했다는 상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고도 줬다는 생색을 내지 않음이다.

   무작(無作)이란 함이 없는 것이다. 무위(無爲)의 경지이다. 일부러 짓는 것이 없는 것으로, 공(空) 하니까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원(無願)은 원하거나 구하는 생각을 버림을 말한다. 무상이기에 구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공ㆍ무상ㆍ무작(空無相無作)의 삶이란 탐ㆍ진ㆍ치 삼독에서 멀어지는 생활을 하며, 인연으로 생하고 멸하는 이치를 알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며, 어느 곳에 있든지 지금 행하는 이 일이 나의 마지막 일이다고 생각하며 자타(自他)를 구별하지 않고 여한이 없이 사는 것으로 이것이 진실한 도의 길이다.

   공(空)은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는 것이고, 무상(無相)은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보는 것이고, 무작(無作)은 원하거나 구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이렇게 세 단계의 삼해탈로 마음을 다스리면 소승교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일체중생구제론, 즉 대승의 <법화경>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람마다 각각 다른 처지, 다른 지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각자에 알맞은 도(道)와 교를 주어 필경에는 일불승으로 인도해야 한다. 모두 행복하게 해주리라, 모두 부처님 경지에 도달하게 해주리라 하는 목표를 세워 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불승까지 도달하기에는 각자가 처해 있는 곳이 각각 다르니까, 모두 같은 방법으로는 일불승에 이르게 할 수 없으므로 사람에 따라 차별의 교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등 위에 입각해서 차별을 행하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은 상대에 따라 각각 알맞도록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설하셨다. 변변찮은 사람에게는 변변찮은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교를 설하시고, 고상한 사람에게는 고상한 사람이 감탄하도록 교를 설하셨다. 그렇다고 특별히 작위(作爲)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극히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렇게 되는 무작ㆍ무위의 경지에서 그렇게 이루어져야 심해탈이 될 수 있다. 

       

*공무아(空無我)---공이 곧 무아이고, 무아가 곧 공이라는 말이다. 초기불교에서 중요시 되던 삼법인 가운데 ‘무아(無我)’라 한 것을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무아는 곧 공과 다름이 없다. 대승불교나 근본불교의 공통된 주요사상 가운데 하나가 이 무아사상과 공사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란, 근본불교나 대승불교는 물론 심지어 선종에 이르기까지 색의 자성(自性)이 공하다는 색성공(色性空)을 말한다. 색 그대로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색의 자성이 본래 공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색의 자성이 공하므로 모든 법은 서로 연기해 생한다. 만약 색의 자성이 공하지 않다면 결코 연기가 성립할 수 없다. 연기가 성립되는 것은 반드시 자성공(自性空)이 근본이 돼야 한다. 색은 무아라고 하는 것은 색은 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무아라 했다.

    <반야심경> 첫머리에 오온이 개공(皆空)이므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요, 제법이 공상이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라고 했다. 색은 곧 법인데, 색은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곧 공이고 실체가 없는 공이 곧 색이다. 이것은 공이 그대로 색이며 색이 그대로 공이라는 것이다. 색즉공, 공무아를 말하고 있다.

    세존은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색(色)은 무아(無我)이니라. 수(受)는 무아이니라. 상(想)은 무아이니라. 행(行)은 무아이니라. 식(識)은 무아이니라. 비구들이여, 이런 까닭에 소유한 색의 과거. 미래. 현재. 안. 밖. 거침. 미세. 열등. 수승. 멈. 가까움. 등 이것은 나의 것(我所)이 아니며 나의 주체(我體)가 아니라고,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써 여실히 봐야 할 것이니라.” - <남전대 제14 상응부경전> 여기서 색은 무아라고 하는 것은 색은 공이라고는 뜻이다.

    불교경전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인정되는 초기경전에서 공무아(空無我)를 분명히 말씀하셨고, 따라서 공이 곧 무아이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면, 얼음은 이미 물이 아니고 물은 이미 얼음이 아니다.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하고 물질이 에너지로 전환하면, 에너지는 이미 물질이 아니고 물질은 이미 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을 전제한 우리 중생이 보는 관점이다. 중도의 관점에서 보면 얼음 그대로가 물이며 물 그대로가 얼음이고, 물질 그대로가 에너지이며 에너지 그대로가 물질이다. 그래서 색즉공(色卽空)인 것이고, 공무아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전제로 해서 보는 우리 중생의 관점으로, 무아이기 때문에 공이라든가, 공이기 때문에 무아라든가 하는 이해로서는 절대로 공무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못된다. 체(體)가 곧 용(用)으로서 공이 곧 무아이다. 이것이 중도이다. 만약에 우리가 시간을 전제로 해서 부처님 말씀을 설명하게 되면 과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견해가 되고 만다. 깨달음은 차치하고 이론만이라도, 이 위대한 구경의 진리를 과학의 발아래에다가 내 팽개쳐서는 안 된다. - <백일법문>

  

*공문(空門)---공문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1) 불교 자체를 공문이라 한다.

     불교 근본사상이 공(空)에 두고 있으므로 불문(佛門)을 공문(空門)이라고도 한다. 깨달음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공적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공문(空門)이라 한다. 그러니 공문은 곧 불문으로서,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 째 관문이 공문인 것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문짝을 달지 않은 일주문(一柱門)을 가장 앞쪽에 세운다. 문짝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일주문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죄 많은 사람, 깨끗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다 들어올 수 있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 일주문이요 공문이다.

 

   (2) 제법이 공(空)임을 사무쳐 아는 것을 공문이라 한다.

    삼법인(三法印)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세 가지 진리, 제행무상(諸行無常)ㆍ제법무아(諸法無我)ㆍ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한다. 따라서 삼법인을 여실히 안다면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의 성스러운 진리를 통해 열반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해탈을 얻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문이 세 가지가 있다. 이를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 한다.

    첫째가 공문(空門)이다. 일체법은 모두 자성(自性)이 없고 인연이 화합해 생겨나는 것임을 여실히 관하고 통달하면 자재(自在)함을 얻는다고 했다. 제법이 무아(無我)이며 공(空)임을 사무쳐 아는 것이다.

    둘째는 무상문(無相門)이다. 일체법이 공(空)임을 통달하고,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차별상(差別相)이 없음을 여실히 관해 통달하면 차별상을 여의고 자재함을 얻게 된다.

    셋째는 무원문(無願門)이다. 일체법이 공(空)이요 무상(無相)임을 여실히 안다면 바라는 바가 없을 것이다. 바란다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이므로 무엇을 구할 때 얻어지지 않으면 고(苦)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제법의 실상을 안다면 무엇을 바라는 욕망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원하고 구할 대상이 없는 것이므로 생사윤회의 동력이 되는 업(業)을 짓지 않으므로 업으로 인한 고통이 생기지 않게 되므로 자재함을 얻는다.

    이렇게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등의 삼삼매(三三昧)에 의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므로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 하고, 그 첫째가 공문이다.

 

    (3) 사문(四門)의 하나가 공문이고, 사구(四句)의 하나가 공문이다.

     천태종에서는 진성(眞性)의 이(理)에 증득해 들어가는 문으로서 존재의 양상을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즉, 교법을 유와 공으로 분별해 제1이 유문(有門), 제2가 공문(空門), 제3이 역유역공문(亦有亦空門), 제4가 비유비공문(非有非空門), 이렇게 4문으로 나눈다. 여기서 유(有)는 있다, 무(無)는 없다, 역유역무(亦有亦無)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비유비무(非有非無)는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 이런 논리구조이다. 모든 존재를 이 네 가지 논리형식으로 고찰하는 방법을 사문(四門)이라 한다. 이는 유(有)에 집착함을 다스리기 위해 온갖 사물을 실체와 자성(自性)이 없다고 말한 공리(空理)의 법문이다.

     따라서 원교(圓敎)의 중심사상을 유(有) · 공(空) · 역공역유(亦空亦有) · 비유비무(非有非無)의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원교란 중도(中道)를 바르게 나타낸 것으로 양변을 다 차단함이다. 유ㆍ무(有無)도 차단하고, 고ㆍ락(苦樂)도 차단하며, 선과 악, 생사와 열반, 마구니와 부처 등 상대적인 것은 모두 차단해버린다. 상대적인 어느 한 쪽을 집착하게 되면 변견으로서 불법이 아니고 중도도 아니다. 이와 같이 원교는 중도를 표방한 것인데, 양변을 떠난 동시에 양변에 원융해 공(空)도 아니고 가(假)도 아니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다.

    이러한 원교의 중도관에 따르면 십법계의 중생을 보되 거울 속의 모습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아서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밝은 거울 속의 사람을 볼 때 그 안에 분명히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아니며, 물속에 달이 비치어 달이 물속에 있기는 있지만 실제로 달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현상계의 모든 것이 환(幻)인 줄을 확실히 알면 현실에 구애되지 않지만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은 제 마음으로 주위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구속이 되고 속기도 한다.

   그러므로 있다 하면 용(用)이고, 없다 하면 체(體)이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 하면 체와 용을 초월한 것이다.「이렇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런 것을 체와 용이라 이름 할 뿐이다.」라고하면 체와 용을 겸한 것이 되는데, 이것이 불교의 사구(四句)가 된다.

       • 이것을 현상계의 삼라만상은 있는 것이 공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소견을 제1구(句)의 유문(有門)이라 하고,

      • 모든 것은 그 근본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공이라고 보는 것을 제2구의 공문(空門)이라 하며,

      •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면 제3구인 역유역공문(亦有亦空門)이라 하고,

      •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 제4구의 비유비공문(非有非空門)이라 한다.

    나쁘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은 반드시 좋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데, 또 한 사람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사람이 있다. 정반합(正反合)의 서양 논리로는 이렇게 긍정 부정해서 그 양자를 종합해서 진보하는 정반합의 법칙으로 끝나지만 불교에서는 하나가 더 있다.

    즉,「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게 더 있다. 그러면 이론이 다 끝난 것 같지만 하나 더해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래야 마지막 이론이 끝난다. 그러니 이것으로 보더라도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보다 불교의 사구논법이 훨씬 완전한 논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구백비(四句百非)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백까지만이 아니다. 곧 온갖 것, 온갖 이치를 다 부정해 어떠한 존재나 이론, 원리 무엇이든지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백비(百非)라 한 것이지, 사구 자체에 이미 백 가지로 부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래서 사구백비라 한다. 사구로 네 번 부정하는 것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어서 백비란 말을 붙였지만 사실은 사구 가운데 이미 백비의 원리가 다 들어있다.

     • 처음에 있다 하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부정으로 봐서 제1비(第一非)가 되고,

     • 다음에 없다 하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란 제2비(第二非)이다.

     •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제3비(第三非)가 되고,

     •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은 제4비(第四非)가 된다.

    그런데 또 중생들이 이 사구의 논법에 집착해서 사구의 본래 뜻을 바로 깨달을 줄은 모르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그것만을 주장하니까 그런 주장을 부정하는 제5비(第五非)가 또 나오게 된다, 이렇게 정반합을 부정하고 사구를 부정하고 거기다 다시 아니 비(非)자를 하나 더 붙이면 긍정이 되는데, 다시 또 비(非)자를 붙이면 부정이 된다. 이렇게 비자를 계속 붙여서 사고ㆍ관념을 초월하자는 궁극적인 듯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백비를 세웠다. 

       

*공반야(共般若)---<대지도론>에서는 2종 반야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공반야(共般若)로서 공(共)은 공동의 뜻이다. 이 공반야는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을 위해 공통으로 설한 반야법문으로 〈반야경〉등 여러 대승경전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불공반야(不共般若)로서 불공(不共)은 공동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불공반야는 보살 전문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는 보살만을 위해 말한 것으로 성문ㆍ연각에는 공통하지 않은 반야의 법문이다. 이는〈화엄경>에서 말한 것들로서 〈화엄경>은 부처님 지혜를 끝까지 다해 말한 것이어서 2승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불공이라고 한다.

    

*공병(空病)---공병이란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하는 관념에 집착해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빠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공(空)의 이치에만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빠져드는 그릇된 견해이다. 그리하여 공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무(空無)하다는 뜻이나, 허무주의로 잘못 해석해 불교의 본뜻에 맞지 않는 것을 단멸공(斷滅空)이라 하고, 악취공(惡取空)이라고도 하는 공병이다.

처음 공 이론이 성립되고, 그 후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이런 공의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공견(空見)에 빠지게 됐다. 이를테면 모든 것은 공이다 해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것을 공견(空見) 혹은 공병(空病)이라고 하는데, 공사상(空思想)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공은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는 절대 무(絶對無)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물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자아(自我)가 없어서 무아(無我)라고 하고, 자아가 없는 무아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자성인 공(空)이라고 한다.

    초기 대승경전인 <반야경>은 원시불교의 연기관(緣起觀)과 부파불교의 공관(空觀)을 총합해 일체제법이 공이라고 했다.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관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집착의 대상이 공함을 밝히고, 마침내는 그 공도 또한 공임을 설했다. 이는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하는 관념에 집착해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빠져 버리는 공병(空病)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설이다. 이러한 교설은 대립적인 상대의식이 공하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를 넘어선 절대 또한 공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용수(龍樹, 나가르주나)는 <중론(中論)>에서 ‘모든 인연에 따라 생겨지는 현상을 공이라 하고, 또한 이것을 가명(假名)이라 하고, 또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칭한다. 일찍이 하나의 현상도 인연에 따르지 않고 생한 것은 없으니, 이런 고로 일체 현상은 공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따라서 공은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는 절대무(絶對無)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특히 <반야심경>에서는 물질적인 현상과 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떠날 수 없는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물의 본질이 공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공은 그 파악되는 사물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가 공이라고 관하는 것을 공관(空觀)이라 한다. 공은 허무가 아니고, 공을 관하는 것은 진실한 가치의 발견이므로, 진공(眞空) 그대로가 묘유(妙有)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을 허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악취공(惡取空)이라 한다. - 박영동 ---→공(空), 공견(空見), 악취공(惡取空) 참조.

    

*공부선(功夫選)---공부선은 공민왕이 마음먹고 불교계를 개혁하려고 실시한 승과(僧科)였다. 그 규모가 불교사상 유래가 없는 대규모 행사로서, 이때 나옹(懶翁, 1320년∼1376년) 화상이 이를 주관하게 되면서 나옹은 이후 실질적인 고려불교의 1인자 역할을 구축하게 됐다.

    그리고 이때 공부선의 판단기준으로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을 만들었으나, 공부선의 자리에서는 시간문제가 있어 사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때 작성된 공부십절목은 나옹의 선사상이 가장 체계적으로 온축돼 있는 자료라고 한다.

    공부십절목이라는 명칭은 몽산(蒙山)의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과 유사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차제론(次第論)으로 돼 있기 때문에 양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 의한 독창적인 것이다. 공부십절목은… 선수행의 문제제기와 성숙, 그리고 이의 완성으로서의 돈오(頓悟), 끝으로 깨달음 이후의 작용에 관한 것이다. 나옹은 공부십절목을 단순히 혼자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선문(禪門)의 전설(前說)과 당시의 일반론에 근거해서 만들었다. 그럼에도 공부십절목이 주목될 수 있는 것은, 나옹이 당시의 선불교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을 통해서 선의 정신을 새롭게 창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즉 공부십절목에는 중국의 선불교를 넘어서려는, 고려 선불교의 정신이 온축돼 있다. - 염중섭

    나옹 선사의 공부십절목 요약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세상 사람들은 색을 보되 그 색을 넘어서지 못하고, 소리를 듣되 그 소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색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② 이미 성색(聲色)을 초월했다면 반드시 올바른 공부가 필요하니,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③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④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콧구멍(鼻軫-본래면목)을 타파해야 할 것이니, 콧구멍(본래면목)을 타파했을 때는 어떠한가.

     ⑤ 콧구멍을 타파하면 냉냉담담하고, 전혀 재미가 없고 기력도 없으며,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환신(幻身-허깨비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 줄을 모른다 했으니, 이것이 어떤 경계인가.

     ⑥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 (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한 생각도 잃 지 아니하여,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⑦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처럼 졸지에 꺾이고 갑자기 끊어진 때에 이르러서, 그때는 어떠 한 것이 그대의 자성 (自性) 인가.

     ⑧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본래의 작용과 인연에 응용하는 것인가.

     ⑨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초탈해야 하는 것이니, 죽을 때 어떻게 초탈할 것인가.

     ⑩ 이미 생사를 해탈했다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四大)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선사가 제시한 열 가지 공부 방법을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이라 한다. 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는 본래 부처인 진심(眞心)을 올바로 드러낼 수 있도록 지눌은 중국 및 우리나라 조사(祖師)들이 언급했던 참선하는 방법을 집대성해 열 가지로 구성하고 독창적인 해석을 가했다. 그는 열 가지 무심공부를 순서에 따라서 차례대로 닦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한 가지만을 택해서 공부를 성취하면 그릇된 마음이 사라지고 진심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자기 근기(根機)와 버릇에 맞추어서 익혀갈 것을 당부했다. 10절목의 뜻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각찰(覺察) ― 깨달아 살핀다는 글자의 뜻과는 달리, 생각을 하지 않는 공부이다. 수도자가 처음에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다가 망념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이번에는 망념을 없앴다는 생각, 깨달았다는 생각이 남게 되는데, 그것마저도 없애는 공부를 각찰이라고 한다. 즉,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수도자의 경우 화두만을 생각하고, 망념이 일어날 때는 곧 각찰해서 화두로 돌아가게 하는 수행법이다.

     ② 휴헐(休歇) ― 쉬고 쉬는 공부방법이다. 악은 물론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선에도 집착하지 않는 공부이다. 즉, 선악 등 모든 이원화된 생각을 쉴 때 진심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바보같이, 말뚝처럼’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마음 쉬는 공부를 강조했다.

     ③ 민심존경(泯心存境) ― 마음속의 망상을 없애고 경계를 두는 공부로서, 모든 망념을 다 쉬어 바깥 경계를 돌아보지 않고, 다만 스스로 마음을 쉬는 것이다. 마음속의 망심이 모두 사라지면 대상의 경계가 있다고 해도 장애가 될 수 없다. 신라 원효(元曉) 대사는 이러한 공부를 여실수행(如實修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④ 민경존심(泯境存心) ― 경계를 없애고 마음을 두는 공부이다. 모든 대상세계가 헛된 것이라고 보고 대상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진심만이 온전하게 남아서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⑤ 민심민경(泯心泯境) ― 마음도 없애고 대상도 없애는 공부이다. 먼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의 모든 것이 헛됨을 알아서 경계를 없애고, 다음에 주관적인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없앤다.

     ⑥ 존심존경(存心存境) ― 마음도 두고 대상도 두는 공부방법이다. 공부를 할 때 마음이 있을 자리에 가 있고, 경계가 경계의 본자리에 머물러서 각각이 있을 자리에 분명히 있으면, 마음과 경계가 서로 맞서게 되더라도 마음은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경계가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지 않으며, 서로가 남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시비비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망년된 생각이 나지 않아서 진심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⑦ 내외전체(內外全體) ― 안과 밖이 모두 체(體)라고 보는 공부방법이다. 공부를 할 때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내신외기(內身外器) 등 모든 것이 진심의 체라고 생각하는 것, 즉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는 공부이다.

     ⑧ 내외전용(內外全用) ― 안과 밖이 모두 진심의 작용이라고 보는 공부이다. 말하고, 밥 먹고, 옷 입는, 모든 행위는 진심에 근거해 행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 몸을 떠나서 따로 진심의 작용이나 도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⑨ 즉체즉용(卽體卽用) ― 체가 곧 용이요, 용이 곧 체임을 깨닫는 공부이다. 공부를 할 때 고요한 진심의 체를 바탕으로 해서 밝게 보는 작용을 잃지 않는 것이다. 즉, 마음을 고요히 했을 때 밝게 보는 작용이 나오고, 밝게 보는 가운데 역시 고요함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그렇게 되게 하는 공부이다.

     ⑩ 투출체용(透出體用) ― 체와 용을 함께 표출시키는 공부로서, 안과 밖,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 등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하나의 큰 해탈문(解脫門)으로 만들어서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이 온몸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지눌은 이 열 가지 공부방법이 모두 무심공부이기 때문에 억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인위적으로 애씀이 없이 이루어지는 자연공부(自然功夫)ㆍ무공지공(無功之功)이 돼야 한다고 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런데 고려 후기의 선승인 나옹 혜근(懶翁慧根, 1320-1376) 선사가 제시한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도 있다.---→공부선(功夫選) 참조.

   

*공불이색(空不異色)---공(空)은 형상이 없다. 색(色)은 형상이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형상 없는 공(空)이 형상 있는 색(色)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색은 유형이지만 그것이 무상한 것이다. 항상 변해가기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공'이라 한다. 초기불교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했다. 색은 법(사물)에 해당하므로 무아, 즉 실체가 없다. 이와 같이 실체가 없는 색이므로 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므로 공과 색은 다르지 않다. 즉 공불이색(空不異色)이란 말이다.

    색이 비록 형상 있이 있다고 하지만 무상하므로 결국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다 없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색불이공이다. 그러나 형상이 없어졌다가도 다시 또 형상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공불이색이다. 그래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 되는 것이다. 공(空)은 형상 없는 본래자리, 색(色)은 형상 있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우주 만유는 불생불멸의 진리 따라 형상 있는 것은 형상 없는 것으로 바뀌고, 형상 없는 것은 다시 형상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색을 보고 공이 될 것을 알고, 공을 보고 다시 색이 될 것임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마음공부이다.

  「색물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원리가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등가원리가 이를 말하고 있다.---→‘불생불멸과 중도(性徹 스님 법문)’,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참조.

                    

*공삼매(空三昧, 산스크리트어 śūnyatā-samādhi)---공삼마지(空三摩地)라고도 한다. 불교 용어로서의 한자어 공(空)에는 허공 · 공간을 의미하는 공(空, 산스크리트어 ākāśa)이 있는데, 지(地, prthivī) ․ 수(水, ap) ․ 화(火, tejas) ․ 풍(風, vāyu) ․ 공(空, ākāśa) ․ 식(識, vijñśna)의 6대에서의 공이 이 경우이다.

    또 어떤 것의 실제 내용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하다고 할 때의 공함[空, śūnyatā]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일체개공에서의 공이 이 경우이다. 공삼매(空三昧)에서의 공은 후자의 경우이다.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관조하는 삼매를 말한다. 즉, 공삼매는 일체 모든 현상[일체제법]이 다 공함(śūnyat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교의 4성제 가운데 고제(苦諦), 즉 '일체가 다 고(苦)'라고 하는 진리의 네 가지 모습[행상(行相)] 가운데에서 공, 무아 두 가지 모습을 보는 것과 상응하는 삼매이다. 이 삼매를 통해 모든 현상이 인연으로 일어나며, 나와 나의 것 둘이 모두 공함을 본다. 즉, 중도를 깨달아 이사무애(理事無碍)하고 사사무애(事事無碍)함이 공삼매이다.

    공(空)삼매, 무상(無相)삼매, 무원(無願)삼매를 삼삼매(三三昧)라 하는데, 중도를 깨달아 오로지 반야만이 뚜렷한 지혜가 무상삼매이며, 중도를 깨달아 이미 만족해 더 구할 것이 없음이 무원삼매이다.---→삼삼매(三三昧) 참조.

   

*공상(空相, śūnyatā-lakṣaṇa)---제법개공(諸法皆空)의 모양, 공한 모습을 말한다.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생긴 것으로 그 자성(自性)이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상(空相)이라 한다.

     

*공상(共相, 빠알리어 sāmañña-lakkhaṇa)---공상이란 다른 것과 공통되는 일반적인 성질을 말한다. 여러 가지 것에 공통한 모양, 이를테면 낱낱 물건의 자체는 자상(自相, paccatta-lakkhana=sabhava-lakkhana)이고, 꽃이 푸르고, 과일이 푸르고, 옷 빛깔이 푸르고 한 것은 자타가 공통하게 알고 있는 푸른빛이므로 공상이다. 가을의 산이 빨갛고 불이 빨갛고 옷이 빨갛다고 할 때의 공통의 빨강을 가리켜 공상 (共相)이라고 하고, 파랑 혹은 노랑 등과 구별되는 빨강 그 자체를 가리켜 자상(自相) 또는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소나무와 장미꽃은 각각 자상을 지녔지만 다 같이 식물이란 점에서 공상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불공상(不共相)이란 다른 것과 공통되지 않는, 자기에게만 속한 모양을 말한다. 이에 반해 공상(共相)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함께 받아쓰는 과보인 세간(器世間), 즉 산하대지 등 현상계가 변해 흘러가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불공상이란 타자가 따로 없는 자기이고, 천상천하에 자기뿐인 상인 것이다.

따라서 법은 자상과 공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불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다. 법들에는 보편적인 특징인 공상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특징인 자상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중국에서는 보편적 특징을 공상으로, 개별적 특징을 자상으로 번역했다. 이 자상과 공상은 법(dhamma)을 파악하고 구명하고 이해하고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아비담마와 중관(中觀)과 유식(唯識)과 여래장(如來藏) 계열의 모든 논서에 적용돼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상과 공상에 대한 이해 없이 불교교학을 논할 수가 없다. - 각묵 스님

  

*공성(空性, 산스크리트어 sunyata)---공(空)의 상태를 말한다. 비어 있고, 연기(緣起)하고 있는 것을 공성(空性)이라고 한다. 즉, 공성이란 변화의 이유를 말하고, 무상(無常), 연기(緣起), 모든 존재의 참 모습, 중(中)의 실천[중도(中道)]이다. 또한 공성은 진여실상(眞如實相), 불성(佛性) 등 여러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무릇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성이다. 본래부터 굳어있고 고정된 것이라면 어떤 것도 새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성이기 때문에 거룩한 마음을 내어 해탈도, 성불도 가능하고, 공성이기 때문에 지금은 어려우나 내일의 희망이 있다. 색(色)은 유한한 무엇인가를 말하고, 공(空)은 무한한 무엇인가를 일컫는다.

    그리고 공성은 호(好)ㆍ불호(不好)에 관계없이 만법(萬法)에 평등하다. 마치 텅 빈 거울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그대로 비춰주는 것과 같다. 이러하므로 마음공부 자체가 곧 수행이며, 마음공부의 목표는 마음의 본질인 공성(空性)을 깨닫는 것이다.

    <법화경> 이전엔 자비와 공성이 차원이 다른 것으로 생각했다. 자비는 주로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행위의 덕목인데 비해, 공성은 일상의 사고방식으로는 체득할 수 없는 초월적 경지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자비와 공성을 함께 구현해야 할 사명으로 천명하고, 인내는 자비와 공성을 구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했다.

    공성이란 분별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떨쳐 버렸을 때 만나는 우리 삶의 본디 모습인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한다. 때문에 공성이란 삶의 밑바탕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드러난 삶 그대로 공(空)인 연기관계를 말한다.

 

     

*공성(空性)에 대한 바른 이해---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비로소 지혜가 완성되는 기초를 갖게 된다. 물질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의식[色受想行識]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한 내가 사실은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임을 알게 될 때 깨달음의 길을 가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깨달음의 세계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현 위치와 실상을 제대로 알 때 바로 여기가 가길 원한 그 곳이다. 자신의 인지의 틀에 대해 들여다보는 반성적 사유 과정을 통해 세계에 대한 나의 이해가 잘 못됐음을, 무명(無明)이었음을 알고 공부를 시작해야한다.

   <반야심경>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결정된 것은 없으며 존재는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공”에 대한 바른 이해의 전제가 필요하다. 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 풀리지 않는다. 늘 우리가 들어내고 있는 유(有)는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존재로 당연히 생멸의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존재란 취해서 발생된 것일 뿐, 모든 것은 공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꽃은 단지 피니까 꽃이며 더러움과 깨끗함도 때가 묻으니 더러울 뿐, 본래 더러운 것은 아니다. 결과는 "행위"에 의존해 나타나며 이것이 세계이다. 삶 오로지 자신의 행위에 의해 선택되며, 미리 결정된 것은 없다. 공성의 관점에서, 어떠한 삶에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불성(佛性)이란 누구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바른 견해를 통한 정진 결과, 피안에 도달했다면 이에 이르게 한 지혜의 뗏목에서도 내려야한다. 그는 이미 삶의 전도된 생각이나 어떠한 두려움으로부터도 멀리 떠나 있다. - 근본불교연구회

 

      

*공시교(空始敎)---당나라시대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은 불교의 가르침을 소승교(小乘敎) ․ 대승시교(大乘始敎) ․ 대승종교(大乘終敎) ․ 돈교(頓敎) ․ 원교(圓敎) 등의 5교(五敎)로 분류했다. 그 중 대승시교란 소승으로서 처음 대승에 들어온 이들의 얕은 교법, 즉 대승불교 가운데 초보적인 단계라는 의미에서 시교(始敎)라 한 것이며, 여기에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의 둘이 있고, 상시교는 유식학, 공시교는 중관론을 말한다.

    상시교는 유식학과 이에 관련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 <해심밀경> ․ <유식론> 등을 말하고, 공시교는 공(空)사상을 설한 <반야경> ․ <중론> ․ <백론> ․ <십이문론> 등 일체의 모든 것은 공(空)이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곧 현상작용의 면에서 모든 사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식설을 상시교라 하고, 모든 사상은 다 공이라는 진리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사상(반야경ㆍ삼론종 등)을 공시교라 했다. 그러니 상시교는 유식학에 해당하고, 공시교는 중관론에 해당한다. 

     

*공실도인(空室道人, ?~1124)---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 양기파의 효영 중온(曉塋仲溫) 스님이 1155년경 지은 <나호야록(羅湖野綠)>에 나오는 비구니 이름이다. 

    공실도인은 명문 범(范)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귀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고요히 참선하는 것을 즐겼다. 젊은 날, 하루는 소양 운암사의 황룡 사심(黃龍死心, 1044~1115) 선사를 찾아뵈었는데, 한마디 말끝에 요체를 깨닫고 게송을 지어 사심 선사를 찬탄했다.

     “소양의 사심 선사 신령한 근원 매우 깊어

      귀로는 색을 보고 눈으로 소리 듣는다.

      범인은 명철하고 성인은 혼매하며 뒤로는 부귀하나 앞으로 가난하여

      중생에 이익 되고 만물을 제도하니 쇠를 녹여 황금을 만드는데

      단청의 겉모양은 옛 것도, 지금 것도 아니로다.”

    이에 사심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죽은 마음(死心)’은 참이 아닌데 어디에다 찬양하는가.

      죽은 마음을 찬양한다면, 죽은 마음이란 형상이 없다.

      허공을 찬양한다면, 허공은 자취가 없다.

      형상과 자취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말을 할 수 있다면 친히 사심(死心)을 보리라.”

    이에 공실도인이 응대했다.

     “죽은 마음은 참이 아니요, 참은 죽은 마음이 아닙니다.

      허공이란 형상이 없고 묘유(妙有)는 형체가 없습니다.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면 친히 사심을 볼 수 있겠지요.”

    이에 선사는 미소를 지었다. 선문답의 차원이 매우 높다.

    영원(靈源惟淸:?∼1115) 선사가 그녀에게 공실도인(空室道人)이라는 법호를 지어주었는데, 이때부터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그녀가 금릉에서 살 때(1111~1117년), 원오(圓悟克勤, 1063~1135) 선사는 장산사의 주지로 있었고 불안(佛眼淸遠, 1067~1120) 선사도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기연이 맞아 두 선사가 칭찬했지만, 그녀는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 같았다. 도(道)의 운치는 매우 담담했으나 바른 견해를 드러낼 때는 치밀하고 엄격했다.

    그녀의 게송 중에 <법계관(法界觀)>을 읽고 쓴 구절이 있다.

     “사물과 나는 원래 둘이 아니니 삼라만상이 거울에 비친 상처럼 똑 같구나.

      밝고 밝아 주체와 상대를 초월하고 분명하고 분명해 진공(眞空)을 깨쳤네. 한 몸에 많은 법을 지님은 제석천의 법 그물에 얽힌 듯한데,

      겹겹이 쌓인 끝없는 뜻은 움직임과 고요함에 모두 통하는구나.”

    또한 그녀는 보령사에서 목욕탕을 마련하고 문 위에 글을 지어 붙였다.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

      티끌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오묘한 이 하나를 말해내야 모두가 목욕할 수 있으리라.

      옛 신령스런 이는 등을 문지를 줄만 아는데,

      보살은 언제 마음 밝힌 적 있었던고.

      ‘때 묻지 않은 곳(離垢地)’을 깨닫고자 하면 온몸에서 흠뻑 땀을 빼야 하리라. 물은 때물  과 때를 한꺼번에 없앤다 해도 여기에 이르러 또 한 번 씻어야 하리라.”

    뒷날 고소산 서축원(西竺院)에서 삭발을 하고 비구니가 돼 승려 생활에 전념했으며, 1124년    가부좌한 채 좌탈입망(坐脫立亡)했다.

    효영 스님은 그녀를 이렇게 평했다.

    “공실도인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에 얽매이지 않았고, 미련 없이 월상녀(月上女: 유마거사의 딸)를 뒤따라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으로 달려 나갔다. 또한 비구니로서 철마(鐵磨 : 위산 선사와 선문답했던 유철마 비구니) 스님과 쌍벽을 이루었다." 

   

*공심(空心)---자기고집에 집착하지 않는 텅 빈 마음. 아무런 욕심도 없고, 사량 계교 번뇌 망상도 없이 순수하고 청정한 본래마음을 말한다. 물 흐르고 바람 불듯 자연과 하나 된 마음이다. 이와 같이 공심은 천지자연의 운행과 같다. 공심은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 그저 노력한 만큼, 정성들인 만큼 자연스럽게 되는 마음이다.

     부처님께서는 일체가 모두 공하다[一切皆空]고 말씀하셨다. 지ㆍ수ㆍ화ㆍ풍 사대(四大),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만법이 모두 공하다. 우리의 육체 또한 공하고, 각 사람 사람이 모두 공하므로, 현재 이 자리의 모든 것이 공하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러한 자리에 있을 때, 산하대지 일체가 모두 공심이고, 이것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야 지혜로써 살아가고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육체와 온 우주 또한 그와 같이 관찰해 고정된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이것이 바로 공심(空心)이고 불심(佛心)이다.

     

*공안(公案)---공안은 공부안독(公府案牘)의 약칭으로서, 공안(公案)의 사전적 의미는 관청에서 사용하는 문서라는 뜻이며, 공정해서 범치 못할 법령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법과 사회적 규범이 명확하게 자리 잡지 않았던 고대에는 관청의 문서 자체가 공정한 법령이어서 이에 따라 시비를 판단하는 표준규범이며 법이었다. 그런 관공서의 문서를 가리키는 말이 공안이다.

    이것이 선가(禪家)에 받아들여져서 선가에서 사용하는 특유의 용어로서 참선 수행자가 궁구하는 문제를 말하게 됐다. 즉, 선종에서 조사(祖師)가 깨달은 기연(機緣)이나 학인을 인도하던 사실을 기록해 후세에 공부하는 규범이 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문서란 뜻에서 유래된 이 공안은 참선수행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규범성과 판단의 준칙이 되는 핵심적인 명제를 의미하게 됐다.

    선(禪)을 시작하는 제자들의 정진을 돕기 위해 스승이 과제로 제기하는 파격적인 선문답(禪問答)으로서 간결하고도 역설적인 문구나 물음인데, 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다. 한국불교의 참선수행도 공안참구를 통해서 이루어질 정도로 공안은 선의 핵심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공안을 화두(話頭)라고도 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화두와 공안은 약간 다르다. 화두는 공안보다 좀 더 간결하고 핵심적이다. 즉, 공안은 선문답 전체를 가리키지만 화두는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한 구(句)를 뜻한다.

    결국 공안은 간화선(看話禪) 또는 공안선(公案禪)의 수행에서 화두(話頭)로 사용하는, 뛰어난 선(禪) 수행자의 깨달음이나 인연 또는 언행으로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참선하는 수행자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되는 부처나 조사의 파격적인 언행(言行)으로서,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부처나 조사의 역설적인 말이나 문답을 말한다.

    공안에는 고칙공안(古則公案)과 현성공안(現成公案)이 있다. 공안을 일명 고칙(古則)이라고 하지만 고칙공안은 고래로부터 전해 오는 지난날의 옛 조사 선사들이 남긴 공안을 말하며, 현성공안은 현재 생성돼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는 입장에서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공안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곧 진리 그 자체이므로 그것을 참선하는 수행자에게 제시된 과제로 한 것을 말한다. 꼭 ‘무(無)’자나 ‘이 뭣고’만이 화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마음에서 보면 우주만유가 다 화두라는 것이다.---→화두(話頭), ‘공안(公案)과 화두(話頭)의 차이’, 현성공안(現成公案) 참조.

    

*공안(公案)과 화두(話頭)의 차이---간화선에 있어서 그 핵심인 공안(公案)과 화두(話頭)를 두고 그동안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엄격히 다르다. 본래 공안이란 관공서의 문서를 가리켜 부르는 말로서, 위반해서는 안 되는 공정한 법령을 말했으며, 그 법령에 따라 시비를 판단하는 표준이 됐다. 이후 이러한 공안의 의미가 선종에 채용돼 깨달음의 정도를 판정하는 규범의 뜻으로 쓰였다. 공안은 중국에서 선종이 성립된 이후에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전등록(傳燈錄)>에 수록된 1,700 공안은 이후로 선종의 가풍을 주도하는 핵심이 되기도 했다.

    공안은 당대에 옛 선사들이 제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흔히 사용했던 선문답(禪問答)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사건 사례에 불과하지만, 화두는 공안 가운데 핵심이 되는 언구(言句)를 참구(參究)하는 것으로 비록 공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나에게 적용되는 공부법인 것이다. 즉, 공안집(公案集)에 수록된 공안들은 과거사건으로 나의 삶과는 무관하게 ‘저기에 놓인 것’이지만 화두는 내게 직접적으로 대답을 요청하는 절박한 실존적 과제이다.

    화두(話頭)란 참선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함에 있어서 스승이 제자에게 제시되는 문제(주제)를 일컫는다. 즉, 수행하는 과정에서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나 핵심주제이다. 그리하여 화두를 통해 ― 화두를 들고 수행자가 큰 의심을 일으키고[참구(參究)], 스스로 그 의심삼매에 들어 무심의 경계에 든 후, 홀연히 무엇을 보거나, 혹은 무엇을 듣는  찰나에 화두를 타파(打破-깨달음)하게 되는데, 그런 수행법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을 확립시킨 중국 남송(南宋) 시대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화두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지, 공안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삿된 마귀다.”라고 할 정도로 화두와 공안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화두(話頭) 참조.

      

*공양(供養, 산스크리트어 pujana)---공양은 보통 음식ㆍ의복 등을 삼보(三寶)에게 공급해 자양(資養)한다는 뜻을 지닌다. 불공(佛供)을 ‘붓다 뿌자(Buddha-puja)’라 한다. 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을 말한다. 마성 스님의 글에 따르면 공양이 다음과 같이 정리 된다. 공양이란,

     첫째, 불(佛)·법(法)·승(僧) 삼보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치는 것이다.

     둘째, 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이란 뜻이다.

     셋째, 봉사함을 말한다.

     넷째,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한다. 그런 공양개념을 빼면 세 가지이다.

첫 번 째 의미는 삼보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치는 것이다. 이는 남방 테라바다 불교와 의미가 다르다. 한국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해 향·등·차·과일·꽃·쌀 이렇게 여섯 가지를 부처님 전에 올리는 것을 말하지만, 남방 테라바다 전통에서는 단지 향과 꽃을 올릴 뿐이다. 특히 꽃의 경우 핀 꽃을 꺾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꽃을 주어서 바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의 불상 앞을 보면 매우 소박하다.

    공양의 두 번째 의미는 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의 뜻이다. 테라바다 불교의 경우 오로지 부처님 한분만을 믿기 때문에 불공의 의미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공경과 찬탄, 칭송, 예배가 될 수밖에 있다.

    그리고 세 번 째 공양의 의미는 봉사이다. 이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가 진정한 공양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불 ․ 법 ․ 승 삼보에 대한 공양이다. 이런 공양에는 기대하고 바라는 기도가 있을 수 없다.

    공양은 불 ‧ 법 ‧ 승 삼보나 사자(死者)의 영혼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로서, 원래는 주로 신체적 행위를 말해 왔는데, 나중에는 정신적, 물질적인 것까지를 포함하게 됐다. 즉, 독경과 예불을 함으로써 숭경(崇敬)의 뜻을 나타내는 공경공양의 정신적 태도 외에 시주(施主)하는 것까지 포함하게 됐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공양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이종공양(二種供養) ― 향화ㆍ음식 등 재물(財物)을 공양하는 이(利)공양과 교설(敎說)과 같이 수행해 중생에 이익을 주는 법(法)공양.

     ② 삼종공양 ― 향화ㆍ음식을 바치는 이공양, 찬탄 공경하는 경(敬)공양, 불법을 받아서 수행하는 행(行)공양.

     ③ 사사공양(四事供養) ― 음식ㆍ의복ㆍ와구(臥具)ㆍ탕약공양.

     ④ 오공양(五供養) ― 등(燈), 다(茶), 화(花), 병(騈:떡), 과(果)를 차례로 부처님 전에 올린다. 이는 밀교의 공양방식으로서, 이와 관련해서 오공양작법무(五供養作法舞)라 해서 나비춤 형태의 춤사위가 펼쳐지기도 한다. 즉, 오공양(五供養)은 몸으로 다섯 가지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춤 혹은 불교 무용을 작법(作法)이라고 하며, 불교의식(영산재, 수륙재 등)에 등장하는 행사 중에 하나이다. 이때 사용되는 음악을 범패(梵唄)라고 한다. 이러한 불교 무용(작법)에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이 있다. 바라춤은 양손에 큰 바라를 들고 추는 춤이고, 법고춤은 양손에 방망이를 들고 법고를 치면서 하는 작법이다. 그 외에 육종공양, 십종공양 등도 있다.

 

 

*공양구(供養具)---공양구는 불ㆍ보살 전에 공양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法具)와 스님에게 올리는 반승(飯僧) 행사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매우 중요한 불교용품으로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공양구로는 촛대, 향로, 다기, 화병(꽃병), 정병(물병), 발우 등이 있다.

   

*공양주(供養主)---공사(供司) 혹은 반두(飯頭)라고도 한다. 원래는 절에서 음식을 짓는 소임을 맡은 행자나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식사를 준비하는 여자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편화돼 있다.

    또 공양주는 삼보에 재물을 시주하는 불자 또는 시주하기를 권하거나 공양을 받는 이를 이르기도 한다. 그러다가보니 "공양한다"란 용어도 음식을 드는 것으로 쓰이고 있으나 이렇게 쓰이게 된 어원이 음식 준비하는 공양주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이다.

     

*공업(共業)---부파불교시대 <구사론>에서부터 공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받는 업을 별업(別業)이라 하고, 집단으로 받아내는 업을 공업(共業)이라 한다. 즉,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짓는 업을 공업이라 하는데, 사회분위기라든가 어떤 집단의 독특한 문화유형이나 그 집단의 통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이민자 집단을 차별하고 괴롭힌다든지, 외국인 노동자를 혹사하는 인종차별 따위가 대표적 공업이다. 그리고 사주팔자는 별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헌데 같은 사주를 가진 자라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람과 부유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공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사주가 같다 하더라도 성취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별업의 대표적인 것으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다. 자기가 저지른 과보가 자기에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헌데 장마 때 한강에 흙탕물이 내려가고, 온갖 쓰레기가 쓸려 내려간다고 할 때, 이것은 어느 개인이 저질은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의 책임, 곧 공업이다.

    공업에 관한 것이 <화엄경> ‘여래출현품’에도 나온다. “이런 것이 모두 중생들의 공업과 보살들의 선근으로 일으키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저마다 마땅한 대로 받아쓰게 된다.” 여기서 ‘이런 것’이란 삼천대천세계가 한량없는 인연과 한량없는 사실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그리고 공업에 대해 법정 스님은 ‘공동으로 선악의 행위를 하고, 공동으로 고락의 과보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공왕(空王)---부처님의 다른 명호. 부처님 법(法)을 공법(空法)이라 하고, 불타를 공왕(空王)이라 하는데, 모든 잘못된 집착을 여의고, 열반에 들어가는 요문(要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공용(功用)---공용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기능(機能), 효능, 용도, 작용, 효험, 공덕, 애써 노력함, 원(願), 공 들인 보람, 의식적인 노력 등의 뜻이 있다.

     • 공용 (功用)은 모든 동작과 말 그리고 생각 등으로 짓는 것을 더욱 노력해 행한다는 뜻이 있다. 정행(正行)에 대한 준비수행으로서, 이렇게 해 얻어지는 것을 가행득(加行得)이라 한다.

     • 선가(禪家)에서는 수행에 노력하는 것, 혹은 수행한 효과를 말한다. 수행으로 마음의 힘을 얻으면 반드시 현실적으로 공용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 공용은 인식주관의 작용, 분별하고 차별하는 의식작용, 분별과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으로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즉, 3업(三業)의 작용을 말한다.

     • 적정(寂靜)은 마음(6식 또는 8식)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무공용(無功用) - 공용(功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 힘써 노력함[功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심왕, 즉 심법)은 언제나 사(捨-평등함)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 공용(功用)이란 공부의 작용을 말한다. 수행승이 힘써 경전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는 일들을 공용이라고 말한다.

     • 유식유가행파의 수행론에 따르면, 보살이 공관(空觀)을 닦음에 있어서 초지(初地)에서 제7지(第七地)까지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공관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제7지까지를 유공용지(有功用地) 또는 간단히 공용(功用)이라 한다. 반면, 제8지(第八地)부터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관(空觀)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이유로 제8지 이상을 무공용지(無功用地) 또는 간단히 무공용(無功用)이라 한다.

     • 수도하는 사람은 이런 말(글) 저런 말(글)을 듣고 사량분별로써 이리 저리 맞추고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화두가 적적(寂寂)한 중에 성성(惺惺)하고 성성한 중에 적적해서 성성불매(惺惺不昧)로 가거나 오거나 앉으나 누우나 한결같고, 오매(寤寐)에도 한결같아서 공용(功用)이 없는 곳이 없다. 이렇게 일주일만 연속되면 홀연히 화두가 타파되는 동시에 문득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된다.

     • <화엄경> 십지품에 나오는 말이다. 제8부동지보살(第八不動地菩薩)이 공용(功用)이 없는 지혜로 한 티끌 속에서 큰 법의 바퀴[法論]를 굴리어,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함에 득실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지혜의 바다로 들어간다.… 제7지에서는 모든 불법을 일으키므로 모두 보리분법을 가득 채우게 된다. 왜냐하면 보살이 초지에서 제7지에 이르도록 지혜의 공용이 있는 부분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이 공용의 힘으로 제8지에 들어가 제10지에 이르도록 공용이 없는 행을 두루 성취하기 때문이다.

     • 공능(功能), 공용(功用), 공덕(功德)의 비교

     ㆍ공능(功能) ; 공(功)의 힘, 보람, 공용(功用)과 능력(能力)이란 뜻으로, 공을 들인 보람을 나타내는 능력, 또는 결과를 일으킬만한 법의 힘 또는 능력을 말한다.

     ㆍ공용(功用) ; 공들임, 하는 일, 수행한 효과, 작용 등을 말하는데, 신ㆍ구ㆍ의(身口意)로 짓는 모든 동작과 말과 생각 등을 말한다.

     ㆍ공덕(功德) ; 쌓은 덕, 좋은 덕, 복덕을 말한다.---→공능(功能, 산스크리트어 samartha) 참조.      

     

*공(空)의 종류---크게는 18공(十八空)까지 나누어진다. 18공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3권 및 <대집경(大集經)> 제54권에 나오는 말이다.

    내용은 1) 내공(內空), 2) 외공(外空), 3) 내외공(內外空), 4) 공공(空空), 5) 대공(大空), 6) 제일의공(第一義空), 7) 유위공(有爲空), 8) 무위공(無爲空), 9) 필경공(畢竟空), 10) 무시공(無始空), 11) 산공(散空), 12) 성공(性空), 13) 자상공(自相空), 14) 제법공(諸法空), 15) 불가득공(不可得空), 16) 무법공(無法空), 17) 유법공(有法空),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등으로 나눈다.

    

*공이불공(空而不空)---<휴휴암좌선문〉에 나오는 말로서,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가득 차서 없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진리는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과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조화에 따라 무궁무진한 조화가 나타나 천차만별의 현실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유이비유(有而非有)와 상대되는 말이다.

     

*공작명왕(孔雀明王, 산스크리트어 Mahamayun-vidyarajni)---밀교의 독특한 명왕 중 하나이다. ‘명(明)’은 진언, 다라니를 가리키고, 명왕(明王)은 주문(呪文)을 관할하는 왕자(王者)로서 지혜의 작용에 의해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불(方便佛)이다. 명왕은 교화하거나 구제하기 어려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여래나 보살이 무서운 형상으로 변신해 나타난 화신이다.

    명왕은 밀교가 성립하면서 등장했고, 5세기경 공작명왕이 최초로 등장했다. 공작명왕은 독초나 해충, 독사를 잡아먹는 공작을 신격화한 것으로 모든 중생의 정신적인 번뇌를 제거해 안락함을 주는 명왕이다. 원래 명왕은 분노형으로 표현하지만 공작명왕 형상은 분노형이 아니고 자비로운 보살형으로 공작을 타고 있다.---→명왕(明王) 참조.

    

*공작명왕경(孔雀明王經, Mahanayuri-Vidyarajni)---<불모대금요공작명왕경(佛母大金耀孔雀明王經)>의 약칭으로 밀교경전인데, 당나라시대에 인도 출신 승려 불공금강(不空金剛)이 한역했다. 경전에는 뱀에 대한 공작의 적개심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전래돼 온 <자타카(Jataka, 本生譚)>에는 금색공작의 호신주(護身呪)가 독사를 비롯한 갖가지 재앙을 제거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밀교적인 요소가 더해져 완성된 것이 <공작명왕경>이다.

        ※호신주(護身呪)---빠알리어로 ‘빠릿따(paritta)’라 한다. 호신주를 외면 자신의 안녕을 지켜 주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사고와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신성한 문구(주문)이다.

    공작새가 공작명왕으로 불교에 등장하는데 아열대 지방인 인도엔 독사가 많으므로 독사 잡아먹는 공작새가 모토다. 불모대공작명왕보살이라고도 한다. 기원이 오랜 밀교인 잡밀(雜密)에서 말하는 불존(佛尊)이다. 명왕이지만 분노형은 아니다. 공작명왕 대다라니를 수지독송하면 독사 맹독이나 재앙, 질병을 쫓아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가 전한다. 한 스님이 나무를 하다 뱀에게 엄지발가락을 물려 고통 받고 있을 때 부처님이 ‘불모공작명왕대다라니’ 설법을 했다고 한다. 다라니가 독은 물론 모든 병을 낫게 했단다. 한국불교 대표 밀교종단 진각종은 매년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에 불 뿜는 공작 등으로 장식한다.

 

*공적(空寂)---공공적적(空空寂寂)의 준말.---→공공적적(空空寂寂) 참조.

    

*공적영지(空寂靈知)---불교적 진리를 표현하는 말로서, 진공묘유(眞空妙有)와 함께 불교진리의 본질적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텅 비우고 알아차릴 때 지혜가 드러난다. 텅 비움은 공적(空寂)이요 알아차림은 영지(靈知)라고 할 수 있다. 신령스런 깨달음 그것을 곧 영지라고 표현하고, 텅 비우고 알아차리는 것은 곧 지혜요 전지전능(全知全能)이다.

    이와 같이 ‘공적(空寂)’은 텅 비어서 고요한 상태를 묘사한 말인데, 적적(寂寂)ㆍ적정(寂靜)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지(靈知)’는 문자 그대로 신령스러운 지혜광명을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공적영지(空寂靈知)란 텅 비고 고요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밝고 신령스럽게 나타나는 지혜의 작용을 말한다. 이는 진리의 본체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육조단경>에서는 정혜일치(定慧一體)라고 정리했다. 고요함은 정(定)이고 신령스럽게 아는 앎은 혜(慧)이다.

   그런데 교학(敎學)에서 말하는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선종(禪宗)에서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하고, 원효 대사는 성자신해(性自神解-성품이 스스로 신비롭게 풀리다)라 했으며, <단경>에서는 정혜일체(定慧一體) 또는 무념(無念)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 1158∼1210)은 그의 저서 <수심결(修心訣)>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므로 번뇌 망상도 본래 고요하고 티끌세상도 본래 비었다. 모든 법이 다 비어 고요한 곳[空寂]에서는 신령스러운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텅 비어 고요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의 선지식이 은밀히 서로 전수한 법인(法印)이다. 이 마음만 깨달으면 참으로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를 뛰어넘고 본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는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은 모든 개별적 사물이나 개체의식의 경계가 사라진 곳을 뜻한다. 모든 개체의 경계를 넘어선 무한과 공이 그것이다. 불교는 이 공이 추상적인 빈 공간이어서, 순수 질료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신령한 앎인 영지(靈知)가 빛나고 있다는 것, 그 점에서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공(空)은 영지(靈知)의 마음이다.

    이처럼 무한의 공이 ‘스스로를 신령스럽게 아는 것’을 원효는 ‘성자신해(性自神解)’라고 하고, 지눌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했다. 그러니 공적영지가 온전치 못하면 불안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적(空寂)과 영지(靈知)에, 어느 쪽 하나라도 결하면 온전하다 할 수 없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귄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빈 마음으로 보라는 말이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공적영지(空寂靈知)이다. 텅 비어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앎의 이 자리가 본심(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공종(空宗)---→상종(相宗)ㆍ공종(空宗)ㆍ성종(性宗) 참조.

        

*공중무색(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이 현상계의 본질의 차원인 공(空)의 입장에서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각작용과 지각작용 그리고 의지적 충동과 식별작용도 없느니라.”

    이런 까닭에 공 가운데는 물질적 존재인 색(色)이 없다는 것이다. 공 가운데 색의 실체는 없다는 말이다. 색이 없다는 것은 색이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라 색은 인연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모든 법이 공(空)하므로 공(空)한 가운데 색(色)을 찾으려 하나 얻을 수 없고 색(色)이 없으니 찾아봐도 찾을 수 없으니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는 의식의 작용도 없다는 말이다.

    생명에는, 광물과 같은 부동의 생명도 있다면, 식물과 같은 정태의 생명도 있고, 동물과 같이 이동하는 생명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체적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즉, 물질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불안정한 것이다. 이것에 비해서, 공(空)의 세계, 실재계는, 의식계이기 때문에, 매우 정묘한 심적인 세계이다. 공의 세계, 즉 영혼, 의식의 중심, 마음의 세계는, 육체의 오관(五觀)을 통해서 본 현상계와는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를 영원불변의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 가합에 의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아닌 '현상'일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모든 존재가 연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기적 존재란 외부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스스로' 독립한 존재가 아닌 수많은 외부의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상호의존(상의성) 돼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많은 인과 연은 서로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서로 조건 지워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수많은 인과 연 중에서 단 하나라도 영원불변하지 않다면 그 모두가 영원불변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모든 존재가 연기적 존재라면 그들의 속성은 반드시 '공'하게 된다. 즉, 작용(현상)은 있지만 실체는 없다. '공'한데, 즉 실체가 없는 현상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무슨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고, 더럽고 깨끗함이 있겠는가.

    그리고 <반야심경>에서 이 문장 이후부터 본격적인 ‘무(無)’의 행렬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없다, 없다’고 하며 계속되는 부정의 연속은 사실 <아함경>에서 붓다가 설한 교리체계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일으키는 이런 의문에 대해 붓다는 5온과 12처라고 설했다. 5온(五蘊)은 불교의 인간관이며, 12처(十二處)는 불교의 세계관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12연기는 고통[苦]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이며, 사성제(四聖諦)는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붓다가 설한 내용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이 모두를 ‘없다[無]’고 부정하고 있다. 초기불교의 핵심교리를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모두 부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이러한 부정은 소승불교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승의 공사상(空思想)이라는 큰 진리 속에 모두를 부정함으로써 그 핵심교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계승하고 확대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없다’고 하는 무(無)의 나열법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기 위해서이다. 아함부 경전에서 붓다는 진리의 가르침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했다면,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라는 부정을 통해 진리가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진짜 있는 것은 공(空)뿐이라고 말하고자 한 것이다.

    ‘공중무색’에 담겨있는 두 갈래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한다. 공(空)은 색(色)의 본질이고 색은 공이 인연 따라 그 자리에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의 세계, 무의 세계는 본질의 차원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시간적으로 영원할 뿐 아니라 더럽혀질 수도 늘고 줄 수도 없는 청정무구한 부처님 성품자리이다. 그에 비해 색은 찰나적으로 머물다 갈 것이므로 공의 존재성에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태양빛 앞에서 반딧불은 빛이라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본질의 껍데기인 겉모습은 그 순간 그 상황에 가장 맞는 모습을 띠지만, 그것이 본질의 영원한 껍데기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색은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공에는 정해진 색이 없고 정해진 모습이 없다[空中無定色]’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컵에 물을 떠 놓았을 때는 물이 그 컵의 모양을 띠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 컵의 모양이 그 물의 정해진 모양은 절대 아니다. 그 순간의 상황에 맞는 어떤 모양이라도 다 드러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모양이 정해진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중무색 이후를 이해하는 두 가지 큰 줄기이다. - 능인신문에서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이라는 문장에서 불교의 인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공 가운데 색의 실체는 없으며, 수상행식도 안비설신의도 색성향미촉법도 눈앞의 세계 내지는 의식의 세계도 실체는 없다.”는 말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색수상행식과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과 안계와 의식계 모두는 공하기 때문에 모두가 실체가 없다는 얘기다.

    불교의 세계관은 5온, 12처, 18계로 표현되는데 이 모두가 공해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5온은 색수상행식을 말하며, 이는 사람의 구성 요소라는 얘기다. 헌데 5온은 단순히 사람의 구성 요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색(色)은 물질이요, 수(受)는 감정이고, 상(想)은 개념작용, 행(行)은 수와 상을 제외한 여러 형성작용이고, 식이란 의식작용을 말하는데, 이 다섯 가지로 이 세계가 구성돼 있다. 잘 생각해보면, 이 다섯 가지 말고 더 예를 들어 보려면 마땅한 예를 찾을 수 없다.

    한번 따져 보자. 우선 이 세계를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면, 무생물은 오온의 색수상행식 중 색(물질)이다. 그럼 생물, 예를 들어 사람을 생각해보면, 사람은 물질과 비물질로 구성돼 있다. 사람을 구성하는 비물질은 여러 정신작용이다. 그 여러 정신작용 중에서 기쁘고 슬프고 하는 감정의 작용, 산이요 바다요 강물이요 하는 개념화 작용,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행동의 작용, 대한민국이 드디어 선진국이 됐다고 생각하는 의식작용, 이와 같이 물질인 색과 여러 정신 작용인 수, 상, 행, 식의 오온으로 사람, 그리고 이 세계는 구성돼 있다.

    그리고 12처와 18계는 불교의 인식세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여준다. 인식의 객체가 없으면 인식의 주체도 없다. 인식의 주체가 없으면 인식의 객체도 없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인식세계다. 12처에 6식을 더한 것이 18계다. 즉, 불교의 세계가 된다. 12처는 6내처(6근)과 6외처(6경)을 말한다. 6근은 인식의 주체가 인식의 객체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기관(장소)를 뜻한다.

    6근은 6경과 일대일로 대응되는데, 안-색, 이-성, 비-향, 설-미, 신-촉, 의-법, 이런 식으로 대응된다. 그리고 물질의 감지는 눈에서, 소리의 감지는 귀에서, 맛의 감지는 혀에서, 접촉의 감지는 몸에서, 세상의 감지는 의에서… 이런 식이다.

    그런데 과연 물질을 감지하는데 눈이 필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식작용이 눈에서 일어날까,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다고 할 때, 달에 대한 색깔과 모양을 망원경이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6경을 감지하는 데는 6근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데는 각각의 의식 장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6식(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6경과 6근의 조건으로부터 생겨난 이유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온으로 구성돼 있고, 6경과 6근과 6식의 일대일 대응으로 작동된다. 그런데 오온과 18계(6경+6근+6식)의 실체는 없다. 그러나 작용은 있다. 따라서 오온과 18계는 공하며 그들 모두의 실체는 없다. 결국 오온(색수상행식), 십이처(육근+육경), 십팔계(육근+육경+육식), 모두가 공하다는 말이다.

     

*공즉시색(空卽是色)---<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이 나온다.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라는 말이다.

    물질(색)이 알고 보면 공이요,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공이 곧 물질(색)이라는 말로서 물질과 비어 있는 공의 세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색과 공이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색과 공의 관계는 물과 파도의 관계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고, 하늘은 텅 빈 것 같지만 그 속에는 해와 달과 구름이 있어 이 모두가 한 덩어리로 얽혀 있다. 마찬가지로 공과 색도 한 덩어리란 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형상 없는 것이 되고(색즉시공), 형상 없는 것은 다시 형상 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공즉시색)는 말이다. 따라서 색즉시공의 이치를 깨치면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공즉시색의 이치를 깨치면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지 않아서 현실세계는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임을 알게 된다. 현실세계가 무질서한 것 같지만 모두가 상의상관 관계 속에 나름대로 질서를 지니고 있기에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모습이다.

    상대적인 현실을 버리고 곧바로 절대적인 공(空)만 쫓으면 환상 속에 빠지기 쉬우므로 현실을 굳건히 한 상태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찾으라 ― 단계를 밟아서 차근차근 가라는 말이다. 그래서 절대의 바탕인 공을 깨달으면 상대적인 이 세상이 가(假, 거짓)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다음 다시 이 상대적인 세상마저도 공과 분리가 되지 않고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리하여 색은 공을 통해서 완전함을 얻고, 공은 색을 통해서 아름답게 피어나게 된다.

    그리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은 세상만물이 비어있지만, 즉 절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는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양(색)은 엄연히 존재하며 자아에게는 분명한 현실임을 강조한다. 현실에서 출발해 현실을 바탕으로 사물의 공성 ― 혹은 절대바탕인 공을 깨달으라는 의미로 본다. 일체중생이나 우주 만물이 모두 인연화합으로 생긴 일시적 존재이기는 하나, 인연의 상속(相續)에 의해서 공(空) 자체 그대로가 색(色)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색물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원리가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등가원리가 이를 말하고 있다.---→ ‘불생불멸과 중도(性徹 스님 법문)’,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참조.

 

*공포경(恐怖經)---초기경전인 <잡아함경 845경>으로 윤회문제에 대해 설하고 있다. 그리고 <공포경>이란 이름은 중생들이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음은 <공포경>의 일부이다.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없어지게 하고, 세 가지 일을 결정해 의혹이 생기지 않으며, 성현의 바른 도를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그런 거룩한 제자들은 스스로 수기해 “지옥ㆍ축생ㆍ아귀 등 나쁜 세계가 이미 다하고, 수다원(須陀洹)이 돼, 나쁜 세계의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바르게 삼보리(三菩提)로 향해,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계를 오가며 태어났다가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나리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없어지게 하는 것인가?

   혹 살생(殺生)을 하면 그 죄의 인연으로 원한과 두려움이 생기지만, 만일 그가 살생을 여의면 저 살생한 죄로 인한 원한과 그 인연으로 생겨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만일 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술 마신 죄가 있으면 원한과 그 인연으로 두려움이 생기지만, 만일 그가 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술 마신 죄로 생기는 원한을 여의면, 그 인연으로 생기는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 이것을 죄로 인한 원한과 그 인연으로 생기는 두려움을 없어지게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일을 결정하면 의혹이 생기지 않는 것인가?

    부처님에 대해 결정해 의혹을 여의고, 법과 승가에 대해 결정해 의혹을 여의는 것이다. 이것을 세 가지 법을 결정하면 의혹을 여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거룩한 도(道)를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인가?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임을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라고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다. 이것을 거룩한 도를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만일 이 다섯 가지 죄로 인한 두려움과 원한을 없어지게 하고, 세 가지 법을 결정해 의혹을 여의며, 거룩한 도(道)를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이러한 거룩한 제자는 스스로 수기해 “나는 지옥의 고통이 다하고, 축생ㆍ아귀 등 나쁜 세계에 태어남이 다했으며, 수다원이 돼 나쁜 세계의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바르게 삼보리로 나아가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계를 오가며 태어났다가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나리라”고 말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을 없어지게 하고[오계(五戒)를 확실히 지키고], 세 가지 일을 결정해 의혹이 생기지 않으며[불ㆍ법ㆍ승 삼보(三寶)를 의심하지 않으며], 성현의 바른 도[사성제(四聖諦)]를 사실 그대로 통달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공한처(空閑處, 산스크리트어 araṇya/阿蘭若)---세상과 동떨어져 시끄러운 소음으로부터 떠난 조용한 곳, 한적한 삼림 속, 마을에서 떨어져 수행자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빈터를 말한다. 결국 암자를 지을 만한 터와 같은 곳이다. 이를 아란야(阿蘭若) 혹은 원리처(遠離處)라 번역하기도 하고, 아란야(阿蘭若)를 줄여서 난야(蘭若)라고도 한다.

    

*공화(空華)---공화(空花)라고도 하는데, 번뇌로 생기는 온갖 망상을 공화라 한다. 본래 실체가 없는 현상세계를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 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마치 꽃이 퍼져있는 것처럼 허상이 난무하는 것과 같이 잘못 보는 일, 혹은 사람이 어떤 딱딱한 물건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을 때 눈앞에 순간적으로 번쩍 하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공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공화는 실재가 아니고 거짓이라는 말. 인간세상의 부귀영화 희로애락도 다 몽환공화 같은 것이므로 거기에 속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혜가 어두운 사람은 몽환공화를 실재로 잘못 알아서 그것을 붙잡으려고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허공 꽃(幻華) 참조.

      

*과거불사상(過去佛思想)---석가모니 그 이전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 여섯 부처님과 석가모니불을 합쳐 과거칠불(過去七佛)이라 하는데, 석가모니 이전에도 깨달음을 얻은 불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과거칠불(過去七佛) 참조.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과거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말로서, <금강경)>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에 나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세계 가운데 있는바 모든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가 말한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고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니, 그것은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를 이해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아침이 밝아서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을 한다.」

    이것은 일상으로 행하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처럼 별일이 없을 때는 우리 마음은 없다. 이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고, 본래 마음이고, 본성이다. 이와 같이 최초의 우리 마음은 텅 빈 무심(無心)이고, 무위(無爲)이며, 무작(無作)이고, 무주(無住)이다.

    그러던 것이 상황이 바뀌면 돌변해서 문제가 생긴다. 없던 마음이 일어난다.

    「어제, 하루 종일 분주히 일하다가 퇴근 무렵, 친구하고 약속 시간에 쫓겨 미처 처리하지 않은 계약에 관한 건에 문제가 생겼다. 출근해서 보니까. 미처 처리하지 않은 그 건을 눈치 챈 다른 회사 직원이 약삭빠르게 비집고 들어와서 그 계약 건을 그 회사 쪽으로 가져가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터져 회사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히게 됐고, 그래서 상사에게 야단맞고, 시말서까지 썼다.」

    이렇게 되고나니, 자리에 와 앉아 있어도 안절부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루 종일 번뇌 망상에 시달렸다.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심지어 사표 내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이처럼 엉뚱한 사단이 생기니, 이런 조건이 발생하니, 온갖 마음이 함께 일어난다.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퇴근 무렵에 경사가 터졌다.「며칠 전 처리했던 건에 대박이 터졌다. 아침에 야단맞은 그 계약 건보다 훨씬 큰 계약 건에 대박이 터진 것이다. 회사에 막대한 이익이 생기는 경사였다. 과내에 소동이 벌어지고, 과장이 불러서 갔더니 아침에 썼던 시말서를 되돌려주며 함박웃음이다.」 일이 역전된 것이다.

    그러니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마음이란 게 이와 같다. 조건과 상황에 따라 온갖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은 독자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조건적이다. 그리고 이렇듯 마음엔 실체가 없다. 현재 이 순간에 일어나는 마음조차 고정된 실체가 없는 찰나 생 찰나 멸하는, ― 상황과 조건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니 내 마음, 현재의 내 마음조차 내가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과거에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붙잡고, 그 과거의 마음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괴로워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마찬가지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지레 분별하고 상상하고 추측하면서 울고 웃는다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이미 지나가 흘러가버린 마음을 붙잡아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가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마음을 미리 붙잡아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가 없으며,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일어난 마음도 찰라 멸하는지라 이미 흘러 지나가버린 과거 마음이 돼버리기 때문에 그 마음도 붙잡아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도 없다.

    그래서 과거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즉, 공연히 마음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그 마음에 빠지고, 집착하며, 또한 그 마음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즐거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서 <금강경>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은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 했다. - 법상 스님의 <금강경과 마음공부>에서 요약.

    결국 <금강경>에서 말하는, “과거심도 얻을 수가 없으며, 현재심도 얻을 수가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가 없다”고 설한 것은, 마음은 모양도 형체도 색깔도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의 본체는 얻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낸 것이 중생의 삼계이니, 삼계도 불가득인 것이다. 즉, 일체의 모든 존재나 삼라만상은 텅 비어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을 모양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여래를 친견하리라”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무심의 경지에서 지금 여기 자기의 일을 지혜롭게 하고 있는 그 당체가 여래이며 법신이라는 사실을 체득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달마(達磨) 대사가 혜가(慧可)에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라! 내가 그대를 위해 안심시켜 주마!”라고 말하자 혜가는 “불안한 마음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不可得)”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달마는 “내가 그대를 안심시켜 주었다”고 해, 혜가는 얻을 수가 없는(不可得) 그 마음이 안심을 체득한 경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유명한 안심법문을 전하고 있다. 반산 화상이 “삼계에 무법(無法)인데 어디서 마음을 구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가 텅 비어 공(空)한데 어디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구하고 얻을 수도 없는 마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물속에 비친 달을 주우려고 하는 것과 같이 착각과 환상에 떨어지게 된다. 불법은 심법(心法)이다. 마음 밖에서 불법이나 진실을 추구하고 불도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다. 그래서 “마음 밖에 법은 없다” “마음 밖에서 불도를 구하는 것은 외도”라고 선승들이 강조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시대에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가 말했다.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今 更無時節)”이라고,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직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며,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자신답게 주인답게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인데, 그 한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빛깔이요 무게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이 돼가고 있는가. 바로 지금 현재만 있을 뿐, 또 다른 시절이란 없다. 이처럼 자신답게 산다면 지금 이 순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고, 현재의 마음은 순간순간 흐르고 있으며,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러면 어느 마음에 점을 찍어야[點心] 할까?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과 점심(點心)에 얽힌 덕산 선감(德山宣鑒, 782~865) 선사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덕산 선감(德山宣鑒, 782~865) 참조. 

 

    

*과거2인(過去二因)---12연기(十二緣起)를 태생학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열두 가지 가운데 무명(無明)ㆍ행(行)이 과거세의 2인(因)이 돼 식(識)ㆍ명색(名色)ㆍ육처(六處)ㆍ촉(觸)ㆍ수(受)라는 현재세의 5과(果)를 초래하고, 다시 애(愛)ㆍ취(取)ㆍ유(有)가 현재세의 3인(因)이 돼, 생(生)ㆍ노사(老死)라는 미래세의 2과(果)를 초래해 괴로운 생존을 되풀이 한다는 견해이다. 이는 삼세에 걸쳐 인과가 겹침으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한다. 즉, 괴로움을 멸해 해탈로 향하는 과정―삼세양중인과를 설명함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열두 가지 가운데 무명(無明)과 행(行)은 과거세의 번뇌와 선악의 행위, 식(識)은 수태(受胎)하는 찰나, 명색(名色)은 수태 후 약 1개월 사이, 육처(六處)는 태내에서 눈ㆍ귀ㆍ코 등의 기관이 완성되는 단계, 촉(觸)은 출생해서 단순한 감각 작용을 일으키는 단계, 수(受)는 단순한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 애(愛)는 재물이나 애욕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단계, 취(取)는 집착이 증대하는 단계, 유(有)는 집착으로 그릇된 행위를 일으키는 단계, 생(生)은 미래세에 태어나는 단계, 노사(老死)는 미래세에 태어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로 해석한다.

   

*과거칠불(過去七佛)---과거칠불은 석가모니까지(석가를 포함해) 등장한 7명의 부처를 말한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어서 불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석가모니 이전에도 깨달은 불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불타는 오직 석가모니 한 사람일 뿐이며, 나머지 6명의 불타는 과거불 사상이 전개됨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과거불 사상은 불타의 본생담 및 미래불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대승불교에서 전개된 불타관의 원천이 됐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이 불교라는 종교를 이룬 것은 단지 석가모니 일대만의 사업이 아니고, 과거에서 이미 성도해 성불한 전생의 공덕이 누적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해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이 전개됐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과거칠불을 각기 모시는 가람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의 부처님은 무수히 많지만 불전에서는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출현하신 일곱 부처님을 과거불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고 이러한 부처님들의 일대기를 모은 경전이 바로 <불종성경(佛種姓經, Buddhavaṃsa)>이다. 과거칠불은 아래와 같다.

     ➀ 비바시불(毘婆尸佛, Vipassi Buddha)-위빠시불,

     ➁ 시기불(尸棄佛, Sikhi Buddha)-시키불,

     ➂ 비사부불(毘舍浮佛, Vessabhu Buddha)-웨사부불,

     ④ 구류손불(拘留孫佛, Kakusandha Buddha)-까꾸산다불,

     ⑤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Konagamana Buddha)-코나가마나불,

     ⑥ 가섭불(迦葉佛, Kassapa Buddha)-까사빠불,

     ⑦ 구담불(瞿曇佛, Gotama Buddha, 석가모니불)-고따마불이다.

   이 중에서 ①비바시불(毘婆尸佛), ②시기불(尸棄佛), ③비사부불(毘舍浮佛), 네 분은 장엄겁(莊嚴劫)에 나타나신 부처님이고, 현겁에 출현하신 부처님은 ④구류손불 ⑤구나함모니불 ⑥가섭불 ⑦석가모니불, 네 분이다. 그리고 현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은 미륵불(彌勒佛, Metteyya Buddha)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미륵불을 포함해서 다섯 분 부처님들께서 출현하시어 장엄하시는 멋진 겁이요, 핵심이 되는 겁이라고 세존께서 칭찬하셨기 때문에 현재의 겁을 ‘행운의 겁(賢劫, bhadda-kappa)’이라고 한다. 즉,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겁보다 출현하시지 않는 겁이 훨씬 더 많은데, 현재 겁에 무려 다섯 분의 부처님들이 출현하셨고 또 출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어서 불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석가모니 이전에도 깨달음을 얻은 불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불타는 오직 석가모니 한 사람일 뿐이며, 나머지 6명의 부처님은 대승불교에서 과거불사상이 전개됨에 따라 창작된 부처이다.

            ※장엄겁(莊嚴劫)---과거ㆍ현재ㆍ미래의 3대겁(三大劫) 가운데서, 현재를 현겁(賢劫), 미래를 성수겁(星宿劫)이라함에 대해 과거의 대겁을 장엄겁이라 함.

     

   

*과거칠불(過去七佛) 성립 배경---과거칠불의 성립 배경에 대해서는 붓다시대의 종교사상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정통 바라문 사상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신흥 사상가였던 사문 그룹에서 자이나교의 개조였던 니간타 나따뿟따(Nigantha Nataputta)와 사캬무니 붓다(Sākyamuni Buddha)는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두 종교의 조직이나 운영 체제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니간타 나따뿟다가 사캬무니 붓다보다 12년 정도 선배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출신 성분과 행적도 거의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자이나교의 제도를 불교가 모방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자이나교에서 먼저 여성을 출가시켰다. 그것을 본 붓다도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불교의 칠불사상도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붓다와 같은 시대 왓지(Vajji)의 웨살리(Vesali) 부근에서 왕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32세에 출가해 사문이 되어 12년간 고행한 끝에 마침내 완전지(完全智)를 얻었으며, 그 후 30년간 교화활동을 하다가 72세에 입멸했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자신이 자이나교를 최초로 개창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있던 니간타의 전통을 계승한 자라고 했다. 이를테면 자이나교의 중흥조라고 자처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교설에 대한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이 최초로 자이나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니간타의 제22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니간타의 영향을 받아 붓다도 자신이 불교의 개조가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여섯 명의 붓다(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루손불, 구나함불, 가섭불)가 있었다고 말하게 됐다. 불멸후에는 제자들이 석가모니불까지 포함시켜 과거칠불이 있었다고 주장하게 됐다. 세상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붓다가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다섯 고행자들을 교화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가는 도중에 아지비까 교도였던 우빠까(Upaka)를 만났지만, 그는 붓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수행하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사람으로 취급해 버렸다.

   인지가 발달하지 않았던 기원전 6세기에 붓다의 사성제나 연기법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붓다는 그 연기법은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그 길(팔정도)을 따라가기만 하면 옛 궁전(열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인도에 과거불의 스뚜빠(stupa, 塔)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과거불을 추모하기 위해 후대에 조성한 것일 뿐, 실제로 과거불이 실존했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자이나교의 과거 니간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의 교설이 틀림없는 진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해야만 한다. - 마성 스님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줄여서 <인과경>이라고도 한다. <과거현재인과경>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송나라 때인 444년~453년경에 총 4권으로 번역했다. 경전의 명칭은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를 설명한다는 뜻이다. 붓다가 스스로 자신의 전기(傳記)를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붓다 자신이 과거세에 보광여래(普光如來) 밑에서 선혜선인(善慧仙人)으로 태어나 출가해 득도했으며, 그 인연이 영겁의 세월이 흘러서도 사라지지 않아 현세에서 부처로 태어났다는 내용이다. 선혜선인의 출가와 득도, 보광여래의 예언, 도솔천에 태어난 일 등 전생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 세상에 태어난 뒤에 일어난 여러 일화들을 나열했다. 전생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는 근거 없는, 완전히 창작된 내용이다.

    그리고 서역 출신의 축대력(竺大力)과 강맹상(康孟詳)이 공동 번역한 <수행본기경>, 월지국 출신의 지겸(支謙)이 번역한 <태자서응본기경>, 서진의 섭도진(攝道眞)이 번역한 <보살본기경> 등도 같은 경으로 무두 <과거현재인과경>의 다른 번역이라고 한다.

    이 경은 문장이 유려하고 때로는 대승적인 사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은 붓다 자신이 설한 형식을 갖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이지만,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과거의 종자 인연은 무량겁을 지날지라도 마침내 멸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고 설함으로써 과거의 종자 인연으로부터 현재의 과보를 얻는다고 강조한 데서 <과거현재인과경>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경은 중생이 받고 있는 현재의 과보가 천차만별한 것은 다 전생의 업인이라고 설한 점으로 달리 <선약인과경>이라고도 한다.

     

*과문(科文)---과문(科文)에 관한 유학(儒學)에서 개념과 불교에서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 유학 입장에서 ‘과문(科文)’이란 고려ㆍ조선시대 과거 문과(文科)에 통용되던 여러 가지 문체의 글을 말한다. 과문의 주종은 시(詩)ㆍ부(賦)ㆍ표(表)ㆍ책(策)ㆍ의(疑)ㆍ의(義)로서 흔히 ‘과문육체(科文六體)’라 불렀다. 이 가운데 의(疑)ㆍ의(義)는 경서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특별한 정식(程式-표준방식)이 요구되지 않는 고문체이다. 그러나 표(表)ㆍ책(策) 등은 주로 내용이 시무(時務)에 관련된 것이고, 일정한 정식이 요구되고 격률의 형식이 까다롭고, 전고(典故)를 많이 사용하므로 특별한 훈련 없이는 쉽게 지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유생들은 과문법을 익히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과문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과거시험 때 응시자가 제출하는 답안지를 과문이라 하기도 했다.

     • 불교에서 ‘과문(科文)’이란 경론(經論)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도표 등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을 말했다. 이를 위해 경론을 내용에 따라 단락을 나누어 경전 해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그리고 경전(經典)이나 논서(論書)를 해석함에 있어서 내용에 따라 문단(文段)을 짓는 것을 과문(科文)ㆍ과장(科章)ㆍ과절(科節)ㆍ과단(科段)ㆍ분과(分科) 등의 용어를 썼다.

    형식은 간단한 어구와 줄을 그어 그 내용을 도표ㆍ그림 등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과문이란 경론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시각적으로 표시하든가, 또는 알기 쉽게 해석하기 위해 내용에 따라 문단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되면서 불교의 학문전통과 교육전통 전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과문은 현재 한국 강원에서 실행되고 있는 불교의 살아있는 전통이기도 하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의 문헌해석학과 과문(科文)의 전통’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 관한 불교신문 기사를 일부를 게재한다.

    『‘과문’이란 경론의 해석을 위해 구조를 장절(章節)로 분석해 트리(tree) 구조로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되면서 불교의 학문전통과 교육전승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문을 통한 해석학 전통은 10세기 후반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그 명맥을 한국의 일부 강원교육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불교학연구회장 조은수 서울대 교수는 과문이 디지털 불교문헌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전통 불교문헌의 활용도를 높이는 실험의 시금석이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조은수 교수는 “과문에 대한 구조적 연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문학 문헌전산화를 위해 좋은 모델이 된다”며 “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문헌전산화를 추진하는 현실에서 과문과 장소에 대한 구조적 연구는 불교 문헌 및 인문학 문헌 일반의 전산화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문의 방법과 체계가 독창적인 특성과 장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에 따르면 과문은 대량의 주석문헌이 생산됨에 따라 그 문헌을 읽고 연구ㆍ비교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문헌간의 관계를 정하고 평가하는 일종의 표준으로서 역할을 했다. 대규모 원전과 다층의 장소들을 수십 단계에 달하는 구조로 분석하고 이를 다시 하나의 체계로 묶어 통합시키는 방법을 통해 주석문헌을 체계화 한 일종의 ‘문헌분석시스템’이라는 것이다.』- 2014,5,3 불교신문기사

    결국 과문(科文)이란 경론을 구조적으로 섬세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불교의 문헌분석 방법론의 백미라고 한다. 그리고 경전 해석학으로서 동양에서도 분석적 사유를 했다는 증거로서, 과문의 존재는 불교의 종교전통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양의 대표적인 학문전통으로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과보(果報)---인과응보(因果應報)의 줄인 말이다. 과보(果報)란 앞서 한 행동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를 말한다. 즉 선한 행동을 했으면 선한 열매를 얻는 것이고, 악한 행동을 했다면 악한 열매를 얻는 것이니[善因善果 惡因惡果], 행동과 결과에는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를 통틀어 과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제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제 스스로 받음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한다.

    과보는 어느 때 어떻게 받을 것인지 다 확정돼 있어 도저히 면(免) 하려야 면할 수 없는 강력하고 무서운 과보로써 오직 순응하고 감수해야 한다. 과보는 정해져 있으나 받을 시기는 기연에 따라 갚아야 한다. 어떤 과보를 어떻게 받으라는 것은 이미 결정돼 변경할 수 없으나, 어느 때 받아야 될 것인가의 문제만 미정(未定)돼 있는데, 과보(果報)에는 현보(現報)ㆍ순보(順報)ㆍ순후보(順後報)가 있다.

    과보는 인을 심어서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환경이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된다고 본다. 짓는 그 즉시로 받게 되는 것을 순현보(順現報), 짓는 즉시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 받기는 받되 언제 받게 될지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로 구분한다.

     

*과보심(果  報心)---마음은 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나의 마음이 아니고 무아(無我)다. 마음은 매순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므로 나의 것이 아니며,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 마음은 현재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행위를 원인으로 인해서 생긴 결과의 마음도 함께 있다. 이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과보심(果報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심은 선 과보심(善果報心)과 어울리고 불선심은 불선 과보심(不善果報心)과 어울린다. 선심을 갖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불선 과보심이 많으면 선심이 있어도 불선심으로 바뀐다. 불선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선 과보심이 많으면 불선심이 있어도 선심으로 바뀐다. 과보심은 조건에 의해서 생긴 인과응보의 마음이다. 과보심은 과거에 행위를 한 원인으로 인해 생긴 결과의 마음으로 자신의 그림자와 같다. 이처럼 마음은 현재의 마음만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과보심이 있어서 항상 영향을 미친다.

    과보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관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축적된 성향이다. 선 과보심이 생기도록 하려면 수행을 해서 선업을 쌓아야 한다. - 묘원

     

*과성삼매(果成三昧)와 인행삼매(因行三昧)---염불을 함에 있어서 일심으로 부처님 이름을 외운다든지, 또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를 관찰한다든지, 또는 일심으로 법신불(法身佛)을 실상으로 관조하는 수행법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인행삼매]라 한다. 그리고 인행의 염불삼매가 성숙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가고 혹은 시방불(十方佛)이 현전(現前)하며, 혹은 법신(法身)의 실상에 계합되는데 이를 과성의 염불삼매[과성삼매]라 한다.---→인행삼매(因行三昧) 참조.

     

*과위(果位)---과위는 수행에 의해 증득된 결과로서의 불위(佛位), 즉 부처의 지위ㆍ경지 또는 계위(階位)를 말한다. 과지(果地)라고도 한다. 불과(佛果)란 부처라는 결과라는 뜻이며, 부처 또는 여래의 계위 또는 지위라는 뜻에서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ㆍ불과위(佛果位)라고도 한다. 여기서 지(地)와 위(位)는 모두 수행상의 지위 또는 경지, 즉 수행 계위를 뜻한다.---→인위(因位) 참조.

    

*과해(果海)---붓다의 경지, 즉 불과(佛果)의 덕이 넓고 큰 것을 바다에 비유한 말이다. 중국 화엄종 제4조인 청량 징관(淸凉澄觀, 738~839) 조사는 붓다의 깨달음은 말을 떠나있다고 했고, 또 “성해(性海)의 과분(果分)은 마땅히 가히 설할 바 없다”고 했으며, “과해(果海)는 생각을 떠나있으면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성해(性海)---변하지 않는 진리나 청정한 본성을 바다에 비유한 말. 진리의 세계.

 

*과현인과경(過現因果經)---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의 줄인 말이다.---→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참조.

      

*곽시쌍부(槨示雙趺)---중인도(中印度) 쿠시나가라(kuśinagara)라는 도시의 성(城)밖에 있는 발제하(跋提河)라는 언덕에는 사라(sala)나무 네 쌍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라수가 둘씩 쌍으로 네 쌍이 서 있었다고 해서 사라쌍수(娑羅雙樹)라 한다. 붓다는 그 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다.

    이 무렵 부처님 수제자인 가섭(迦葉) 존자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중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북쪽에 있던 기사굴산(빠알리어 기자쿠타/Gijjhakūṭa, 耆闍崛多山-영축산)이라는 곳에서 선정을 닦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고 해와 달빛이 없어졌으며 동시에 새와 짐승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다. 가섭 존자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것은 부처님께서 몸이 쇠약해서 입적을 알리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섭은 바로 신통력으로 곧 달려가고 싶었으나 경망스럽게 행동을 할 수가 없어 7일간을 걸어서 발제하에 도착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칠일이 지난 뒤라서 이미 입관이 이루어진 후였는데, 가섭이 늦게야 와서는 관 주위를 세 번 돌면서 슬피 울며 경례를 드리고 말하기를 “이제 부처님을 대하니 어떤 면으로 봐도 열반하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원하옵건대 제가 경례를 드린 것에 대한 표시를 해 주소서.”라고 발원을 했다. 그 때 부처님 두 발이 널 밖으로 나왔다. 그 발에서는 천개의 해가 환하게 조명한 것과 같이 밝게 빛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두 발이 관 속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러한 부사의한 경지를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하고, 이에 대해 <선문염송(禪門念誦)>에서는 다음과 같이 찬탄하고 있다. “영혼의 근원은 본래 담적(湛寂)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가 없고 현재도 없다. 마음의 묘체(妙諦)는 신령스럽고 밝은 것인데 어찌 생(生)과 사(死)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이 발제하 언덕에서 부처님이 널 밖으로 두발을 보이실 수 있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두 발을 관(棺) 밖으로 내보인 것[槨示雙趺]’은 부처님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이는 선종에서 가섭 존자가 부처님 법을 이어받았다고 인용되는 삼처전심(三處傳心) 가운데 하나이다.

     

*관(觀)---불교에 있어서 ‘관(觀)’의 의미는 특별하다. 단순히 ‘본다’는 차원을 넘어서 보고, 듣고, 공감하고, 심지어 겉으로 드러난 것을 초월해 본질과 핵심을 꿰뚫어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들고나는 생각을 마음 한자리에 놓고, 무(無)의 상태로 집중해, 산란을 멈추고 평온하게 된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주시하되, 관(觀)은 자기 생각을 떨쳐버리고 염(染)이 없는 지혜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함을 말한다.

    본래 ‘관(觀)’은 중국 고전에서는 황새를 의미하는 관(鸛)과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견(見)이 합쳐진 형성문자라 한다. 그리하여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본다는 견(見)의 의미가 아니라 신비의 새라고 할 수 있는 관(鸛)이 들려주는 신령스런 소리까지 듣고 보는 형이상학적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관(觀)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말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에서의 ‘관(觀)’을 들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해서 세상 모든 존재가 토해내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소리를 단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심지어 그 고통을 함께 하며, 해탈에 이르도록 보살펴 준다.

    <주역(周易)>에서는 관(觀)할 때는 몸을 씻고도 감히 두려워 제사를 올리지 못하듯, 그렇게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관(觀)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라는 것인가. 그것은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이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관(觀)에는 본다는 뜻뿐만 아니라 반복된 생각과 행동으로 만들어진 정신의 습관까지 포함하며, 일관성 있는 생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역사관(歷史觀)이라든가 인생관(人生觀), 세계관(世界觀) 하는 경우의 ‘관(觀)’이 그것이다. 그리고 어떤 인생관, 어떤 세계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위가 결정되고, 결국엔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이 결정된다.

    그런데 불교에서 ‘관(觀)’은 산스크리트어 위빠사나(vipasyna, 毘鉢舍那)의 의역이다. 지관(止觀) 수행에서 지(止) 수행을 통해 마음이 지의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속에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관을 통찰명상(洞察瞑想)이라 하며, 통찰명상을 하면 자신이 그동안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고 욕심을 부리고 조급해 했는지 알게 된다. 즉 관(觀)은 대상의 변화를 지켜봄으로써 그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수행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에 의해 얻은 앎은 자신을 지혜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즉, 관(觀)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빠사나란 법(法)을 사유(思惟)하는 것을 말한다. 위빠사나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찰나삼매, 즉 순간적인 고요한 마음의 집중을 얻어야 한다.

    삼매(三昧)는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의 음사로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지혜가 깊어져서 외부의 어떠한 소리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자 한 대상에 마음이 일심불난(一心不亂)하게 몰입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삼매,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삼매에 들었다고 말하고, 또는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定)이라 한다.

    그리하여 불교에서 지(止)는 정(定)에, 관(觀)은 혜(慧)에 해당한다고 한다. 즉, 지는 주체의 확립, 관은 이 주체의 확립에서 모든 현상을 전체적 ‧ 객관적으로 관찰해 정확히 판단하고 자유로이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지관(止觀)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균등하게 담는 수행법으로서, 지(止)는 멈추어 모든 번뇌를 그치는 것이고, 관(觀)은 자신의 본래마음을 관찰하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지(止)와 관(觀) 참조.

    

*관(觀)과 견(見)---관(觀)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견(見)과 견주어 살펴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관이나 견, 모두 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견(見)’이라 하고, 멀리 있는 것을 큰 눈으로 살피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 이와 같이 겉으로 나타난 뜻은 같으나 사용에 따라서 다름이 있다.

    견(見)은 형체인 모양을 보고, 관(觀)은 그 속의 마음을 본다. 그래서 관(觀)자는 모양 속에 들어있는 근본을 본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견(見)이 바깥에 중심을 둔다면 관은 내면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다.

    관의 눈이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고, 견의 눈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다. 육안으로 상대를 보면 보이는 것에만 마음이 이끌리고 변화에만 현혹돼 뜻하지 않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항상 마음의 눈으로 전체를 꿰뚫어보고 상대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마음 움직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상의 경험에서도 사물을 보는 시각과 안목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을 본다. 눈이 트이지 않고 식견(識見)이 막혀 있으면, 그는 흡사 죽통(竹筒) 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다른 발상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보다 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는 법을 모른다. 이게 어디 세속의 일만이겠는가. 초세간(超世間)을 지향하는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제까지 사물을 보던 방식을 확 바꾸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안목’이다. 사물과 안목은 둘이 아니다. 사물은 우리의 안목에 종속된다. 삼계유심(三界唯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지 않던가. 이는 사물은 없고 안목만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쉽게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기실 물건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눈앞에 드러난 것들을 판단하고, 그것들을 연관시키는 방식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러니 <금강경>에서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 했다.

    사물을 판단하고 연관시키는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물은 각자에게 서로 달리 나타난다. <법화경>의 비유에, 같은 물이라도 사람에게는 마실 물로 보이고,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보이며, 아귀에게는 피고름으로 보인다고 했다.

    망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멈추어 서서(止), 달리 생각하는 법(觀)’을 닦아야 한다. 멈추어 서지 않으면 망상은 해오던 대로 계속 빠른 속도로 삐꺽대며 굴러간다. 수레바퀴의 동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고요한 곳(靜處)을 찾아 틀어 앉아야 한다(坐禪).’ 흐르는 물에서는 얼굴을 비출 수 없고, 더러운 거울은 사용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다르게 보라고, 제발 다르게 보라고 주문한다.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실제,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함을 조건(照見)함으로써 일체의 고액(苦厄)을 뛰어넘으셨다”고 했다. 이는 조견, 즉 보는 행위가 해탈의 관건이며, 실천의 최상승이라는 것을 역력히 일러주고 있다.

     • 견(見)---눈으로 보는 것→견학

     • 관(觀)---마음으로 보는 것,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관찰

     • 간(看)---마음을 거치지 않고 손이 먼저 나가는 것→간호사

        

*관견(管見)---자신의 욕망과 관심이라는 좁은 대롱(竹筒)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편견이다. 때문에 사태의 다른 측면은 물론이고, 전체를 보기는 더욱 아득하다. 즉, 중생들에게 세상은 모두 나(我)의 이미지(相)로만 존재한다. 중생은 자기 욕망과 관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불교는 이와 같은 세속의 좁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올라 거기서 세상을 조견(照見)하라는 ‘조감(鳥瞰)’을 권고하는 종교이다. 꿈 깨서 꿈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흔히 “근시안적(近視眼的)이다”라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관견과 같은 맥락의 말들이다.

       ※조감(鳥瞰)---새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서 굽어보는 것.

          

*관견(觀見)과 관지(觀知)---<관무량수경>은 극락정토의 장엄함과 그곳에 주재하시는 무량수불(아미타불), 그리고 그 좌우에 보좌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관견(觀見)이란 여기서 이러한 극락정토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말하고, 관지(觀知)란 여기서 무량수불에 귀의해 구원을 받는 타력신앙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정토사상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관기음성(觀其音聲)---<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나오는 말이다. 깊은 선정에서 나오는 지혜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觀)’은 시각(視覺)으로 보는 영역을 넘어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음성을 본다[관기음성(觀其音聲)]는 것도 소리를 청각을 통해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소리를 낸 동기와 나아가서 그 사람의 온갖 정신 상태까지도 이해한다는 말이다.  

      

*관(觀)·련(練)·훈(熏)·수(修)---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 538~597)가 출세간 선법을 네 부류로 나눈 것을 말한다. 출세간 선법들을 관찰하고[觀], 단련하고[練], 몸에 배게 해[熏], 마침내 자재로움을 얻게 되는[修] 순서로 소개한 것이다. 불교의 초기 선법을 행함에 있어 지의가 몸소 체험한 것을 대중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수련과정이다.

  

*관륵(灌勒)---백제 승려. 백제 무왕 3년(602)에 천문 ․ 지리 ․ 역서(曆書) ․ 둔갑술(遁甲術) ․ 방술(方術) ․ 의학 분야 등 책을 일본에 전했으며, 삼론종(三論宗)을 강하고, 일본 최초 승정이 돼, 일본 불교계를 이끌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관경(觀經)>이라고도 한다. 유송(劉宋)시대인 AD 424년에 서역 출신 역경승 강량야사(畺良耶舍, 산스크리트어 kālayaśas/칼라야사, 383∼442)가 한역한 것이 전하고 있으며, <아미타경>, <무량수경>과 함께 정토삼부경의 하나로서 우리나라 정토신앙 중심경전으로 유통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본이나 티베트 본은 산실되고 한역본만 남아있다.

    부처님 생존 당시 인도 마가다국 아사세(阿闍世) 태자가 부왕인 빈비사라(頻毘娑羅, 산스크리트어 Bimbisara)왕을 가두어 왕위를 찬탈했으므로 모후인 위제희(韋提希) 왕후가 몰래 왕에게 음식을 가져다줘 목숨을 연명하게 했다. 그것을 알아챈 아사세 태자가 모후인 위제희 왕후마저 옥에 가뒀다. 이에 왕후는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지성으로 예배하고 자기를 교화해 주기를 빌었다. 이에 부처님은 극락세계를 보여주시고 16관법을 일러줘 왕비와 시녀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했다. 왕비는 16관법 등 법문을 듣고 생사를 초월한 무생인(無生忍) 경지 -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500명 시녀들도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상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관무량수경의 주요내용이다.

    <관무량수경> 중심내용은 16관법이다. 16관법이란 지는 해를 보고 극락세계를 관하는 일상관(日想觀), 극락세계의 대지가 수면이나 얼음처럼 평탄함을 관하는 수상관(水想觀) 등 16가지 관법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정토신앙이 성행하면서 널리 행해졌던 관법이다.

        ※무생인(無生忍)---무생법인(無生法忍)의 준말이다. 무생법인은 말 그대로 무생의 이치, 모든 존재가 다 본래 생한 바가 없다는 진리, 즉 ‘남[生]이 없는 진리’, 따라서 ‘불멸의 진리’를 이르는 말로서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으며, 일체의 것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의 진리를 확실히 알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무생법인이란 불생불멸이라는 실상법(實相法)을 잘 알고, 그 진리에 머물러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말한다.---→무생법인 참조.

        ※유송(劉宋)---양자강 이북을 5호16국에 잃어버리고, 서진(西晉) 황실의 계승을 천명한 동진(東晉)은 서진의 영토를 되찾으려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됐다. 동진을 계승한 국가들이 이어진 왕조를 남조라고 하며, 송(宋)=유송(劉宋), 제(齊)=남제(南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수(隋)나라에게 멸망당했다.

    

*관문(觀門)---마음으로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하니 관문이란 마음의 문이란 말이다. ‘문(門)’이라고 비유하는 까닭은 관하는 것은 법문(法門)에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나 부처, 정토 등을 관하는 것은 법문(法門)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므로 관문이라 한다. 그리고 관문이란 관법(觀法)과 같은 말로서 법을 관찰한다는 말이다. 마음의 본성이나 진리를 자세히 주시하는 관법수행, 지혜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주시하는 수행법을 일컬음이다.

    또한 관문이란 천태종에서 말하는 육통묘문(六通妙門=6묘문/妙門)의 하나이기도 하다. 즉, 천태종에서 세운 6종 선관(禪觀)인 6묘문(妙門)의 하나란 말인데, 천태사상체계는 이론체계인 교문(敎門)과 실천체계인 관문(觀門)으로 구성돼 있다. 교문과 관문을 하나로 하면서 완벽한 조화와 하모니를 이루어 거대한 대승사상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사람이 천태대사 지의(智顗)이다.---→육통묘문(六通妙門=6묘문/妙門) 참조.

      

*관문상(慣聞想)---누구나 다 아는 쉬운 것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 그것쯤이야 다 아는 것인데 - 하듯이 함부로 용이심(容易心)을 내는 것을 말한다.---→반대말 ; 현애상(縣崖想) 참조.

      

*관문상(慣聞相)---수행자가 걸리기 쉬운 병폐의 한 가지. 법문의 뜻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번 들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법문의 뜻을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법문이란 똑 같은 것을 여러 번 들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러 번 들었다고 스스로 아는 체하고 보면 법문의 참 뜻을 알기 어렵고, 아만심이 커지게 된다. 수행자는 관문상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관법(觀法)---관조(觀照)하는 정신수행방법이다. 지혜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주시하는 수행, 마음으로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이다. 이 관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분류하면 진리(法)를 관조하는 관법(觀法)과 마음을 관조하는 관심(觀心)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천태종에서 말하는 십승관법(十乘觀法), <관무량수경> 16관법(觀法) 등이 있다.---→관상(觀想), 십승관법(十乘觀法), 십육관법(十六觀法) 참조.

     

*관불(灌佛)---청정한 감로수로 아기부처님의 몸을 씻는 의식이다. 즉, 불상을 물로 깨끗이 씻는 의식으로 부처님 오신 날 주요의식의 하나이다. 관욕(灌浴), 욕불(浴佛)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부처님이 탄생할 때 9마리 용(龍)이 갓 태어난 아이를 향수로 목욕시켰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부처님 형상을 깨끗이 씻으면 자신의 마음에 쌓인 죄와 번뇌를 씻고 맑고 깨끗해지며 복을 누리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인도에서 관정(灌頂)이라 해 국왕이 왕위에 오를 때 4대해의 바닷물을 그 정수리에 뿌려 축하한 의식에서 유래돼 후에 수계자나 일정한 지위에 오르는 수도자의 정수리에 향수를 끼얹는 의식으로 변형 됐다.

   


*관불삼매(觀佛三昧)---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해 부처님이 현전(現前)하는 경지를 관불삼매라 한다. 즉, 부처님을 마음에 떠올리고 삼매에 들어가면, 부처님이 수행자 앞에 현전(現前)하는 것이다. 당시에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법이 불탑 앞에서 행해진 것으로, 불탑예배와 관련해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관불삼매(觀佛三昧)와 염불삼매는 서로 다른 것으로, 이름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다. 잘 모르고서, 이를 분별하지 못해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삼매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통해 삼매의 경지에 이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의 삼매가 있다. 그 중 불타의 모습이나 위대성을 관상(觀想)함으로써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관불삼매라 한다.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산스크리트어 buddha-dhyaha-samadhisagara-sutra)---<관불경>이라고도 한다. 동진(東晋)시대에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覺賢, 359-429)가 한역한 것으로서,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 역은 현존하지 않는다. <관불삼매해경>의 성립장소에 관해서는, 이 경에서 설하는 부처님 상호와 간다라 불상 모양이 일치되는 점, 이 경에서 설하는 전설이 간다라 유물의 그림과 합치하는 점 등으로 보아 간다라지방이나 그 부근에서 대략 2~3세기경에 조성됐을 것으로 본다.

       

*관상(觀想)---‘관(觀)’이란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아 일정한 경계를 응시하는 것이고, 관상이란 ‘마음의 상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뚜렷이 그리는 심상화(心想化-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나 상상을 의미한다. 그렇게 지속적인 의도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그 결과 대상사물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관상이란 내적 관조(觀照)를 통해 진리를 직관적(直觀的)으로 인식하는 행위를 말한다.---→관법(觀法) 참조.

    

*관상염불(觀像念佛)---정토종 4종 염불의 하나. 관상염불에는 생각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과 보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다. 관상염불(觀像念佛)은 염불하면서 부처님의 상호를 관함을 말한다. 즉, 단정히 앉아 순일한 마음으로 부처님 상호를 관하며 염불하는 것. 즉,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라는 원만 덕상을 갖춘 부처님 성상(聖像)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삼매에 들면 분명히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관상염불은 일심(一心)으로 한 부처님의 성상을 관하고 생각하는 것인데, 한 부처님을 보게 되면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하며, 이렇게 닦으면 죄장(罪障)이 소멸돼 불토에 왕생한다고 한다. 즉, 이 염불을 닦은 수행자는 죽은 뒤에 그 부처님 정토에 왕생한다고 한다.

         ※정토종 4종 염불---칭명(稱名)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實相)염불, 관상(觀想)염불의 네 가지 염불법을 말한다.

     

*관상염불(觀想念佛)---정토종 4종 염불 - 칭명(稱名)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實相)염불, 관상(觀想)염불의 하나이다. 염불하면서 극락세계를 관함을 말한다. 정토종에서 염불은 아미타불에 생각을 응집시켜, 그 광대한 대비원력에 의해서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행이다. 이러한 염불 행에는 아미타불의 법신(法身)을 염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과 아미타불의 상호를 관하는 관상염불(觀像念佛)과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다. 관상염불(觀像念佛)과 관상염불(觀想念佛)은 발음은 같으나 앞의 것은 부처님 상(像)을 관찰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부처님 공덕을 상상하는 것이다.

    즉, 관상염불(觀想念佛)이란 부처님의 공덕을 마음속으로 살피고 생각하는 것인데,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통일해 부처님 자비공덕(慈悲功德)이나 훤히 빛나는 지혜광명(智慧光明) 등 부처님 공덕을 상상하는 염불이다. 그리하여 부처님 공덕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처님 이름만 외우는 것만이 염불은 아니다. 염불소리를 아니 내더라도 부처님의 모양만 바라보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고, 공덕을 생각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어, 그냥 부처님 이름만 부르는 칭명염불보다는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관상염불(觀想念佛)의 경우, 일반 대중이 하기는 어렵다. 부처님에겐 무량한 공능(功能)이나 공덕(功德)이 있지만 대중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관상염불(觀相念佛)---칭명염불(稱名念佛)은 공(空)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치를 따라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하배(下輩)가 행한다. 이에 비해 관상염불(觀相念佛)의 관법은 반드시 공(空)의 도리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가능하다. 공관(空觀)이 확립되고 순리발심(順理發心)해야 지관(止觀)으로 보신불의 경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은 칭명염불로 믿음을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

    관상염불(觀相念佛)은 호흡의 조절과 지관(止觀)의 고요한 자세가 요구되는데, 지관에 의지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법으로서,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아 고요한 가운데 최상의 선행(禪行)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요한 가운데 선을 행하는 정선문(定善門)이다.

    관상염불(觀相念佛)은 정토의 모습을 관하는 것으로서 금생에 정토의 경계를 감득함으로써 문득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관상염불(觀相念佛)의 첫 번째 단계는 일상관(日想觀)이다. 칭명염불 행자도 이 관을 행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관하는 과정에서 염불은 소리를 내거나, 마음속으로 해도 상관없다. 염불은 믿음이 결정되고, 관법이 익숙해지면 어떤 자세에서도 가능하다. 다만 졸음은 도적이다. 두 번째는 수상관(水想觀)이다. 관법은 일상관만 익히면 그 외는 쉽게 이루어진다.

        ※수상관(水想觀)---정토의 대지(大地)를 관상(觀想)하는 방편으로서 행하는 관법. 먼저 물의 맑은 것을 관하고 차차 생각을 나아가게 해서 유리와 같은 정토의 대지가 넓고 편편해 높고 낮은 데가 없으며, 또 그 광명이 안팎에 두루 비친 모양을 관함에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관상염불(觀相念佛)은 보신불의 경계를 깊이 관찰함으로써 관불삼매(觀佛三昧)를 성취하고 법신(法身) 경계를 감득해 ‘일체 경계는 일심(一心)인 지혜’를 증득하도록 인도한다. 이러함 때문에 관상염불을 염불선이라고 말한다.

    ‘관(觀)’이란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아 일정한 경계를 응시하는 것으로, ‘상(相)’이란 정토의 경계이다. 염불은 아미타불 덕상(德相)을 생각(念)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상염불은 정토의 경계를 관하고 아미타불의 덕상을 염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유념유상(有念有相)의 도라고 부른다. 관상(觀相)을 심화함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쉬고 법(法)을 받아들여 관하는 마음과 경계가 일치되면 밝은 거울과 같이 무심한 경계를 거두어들이는 심적 상태를 체험하는데 이것을 관불삼매(觀佛三昧)라고 부른다. 이 관불삼매로써 정토의 경계를 감득(感得)하게 된다.

         ※정선문(定善門)---정토 수행문에는 정선문(定善門)과 산선문(散善門)이 있는데, 정선문은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아 염불하는 것이고, 산선문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산란한 마음으로 악을 버리고 선을 닦으며 염불하는 것이다.

         ※순리발심(順理發心)---발보리심(發菩提心)에는 수사발심(隨事發心)과 순리발심(順理發心)의 두 가지가 있는데, 수사발심은 번뇌가 무수하지만 모두 끊기를 원하며, 선법(善法)이 무량하지만 모두 닦기를 원하고, 중생이 무변하지만 모두 제도하기를 원한다. 이 세 가지 일을 결정해 기약하고 원하는 것이다. 순리발심은 모든 법이 다 허깨비 같고 꿈과 같아서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므로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진 경계임을 믿고 이해해, 이 믿고 이해하는 데에 의지해 광대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구마라습은 관세음(觀世音), 현장(玄奘) 법사는 관자재(觀自在)라 번역했다. 줄여서 관음(觀音) ‧ 관세음(觀世音) ‧ 관음보살(觀音菩薩)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타(Avalokita)’는 관(觀)하다는 뜻이고, ‘이스바라(Isvara)’는 자재천(自在天)이란 의미로서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이스바라(산스크리트어 Īśvara)는 힌두교 시바(Śiva) 신의 별칭이다. 시바 신이 불교에 받아들여져서 자재천(自在天, Mahesvara)이 됐다. 따라서 이스바라 역시 자재천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장(玄奘)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관자재보살이 바로 자재천을 말한다고 했다.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라 불리는 관자재는 자재천을 말하는데, 자재천은 산스크리트어로 이스바라(Isvara)라 하고 시바(siva)와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의 시바신앙이 불교에 전이 돼 관세음보살이 되고 천수다라니가 만들어 졌다고 본다.

 

   그리고 관세음은 ‘세간의 소리’를 관한다, 즉 이타행(利他行)에 비중을 둔 뜻이고,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한다, 즉 자리(自利) 수행에 비중을 둔 뜻이다. 따라서 관자재(觀自在)라고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편이지만 큰 차이가 없으므로 문제될 것은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로 일반화돼 있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형성된 시기는 AD 1세기말 무렵이며, 먼저 인도 북부지방에서 성행했고, 6세기경에는 모든 불교사원에서 관음상을 모실 정도로 널리 퍼졌다. 중국에 전해진 것은 2세경으로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비교적 일찍 전해졌다.

   관세음보살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형상 또한 부드럽고 자비로운 여상(女相)이다. 천변만화하는 형태를 띠는데, 이것을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하며, 나타나는 형태에 따라 천수관음(千手觀音), 십일면관음, 여의륜광음(如意輪觀音), 준제관음(准提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혹은 32면관음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눈을 가졌다는 인드라 신이나 비슈누, 시바와 같은 힌두교 신의 특성을 불교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 입멸 이후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誓願)으로 하는 보살이며, 현세에 이익을 주는 보살로 알려져 신도들에게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피할 수 있는 곤경은 화란(火難), 수난(水難), 풍난(風難), 검난(劍難), 귀난(鬼難-귀신난), 옥난(獄難), 도난(盜難)의 일곱 가지이다. 이것을 7난이라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 남쪽에 있는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 머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보타락가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관세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을 원통전(圓通殿) 또는 관음전(觀音殿)이라 하는데, 그 절의 중심 전각일 경우에는 원통전이라 하고, 부속 전각일 경우 관음전이라 한다.

    관음에는 6관음, 7관음, 32관음, 33관음이 있는데, 이 중 일반적으로 관음이라 하는 것은 6관음 중 성관음(聖觀音)을 가리킨다.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관음은 성관음을 뜻한다.

     

*관심(觀心)---관심이란 참선과 같은 수행으로서 자기 마음을 관조(觀照)해 그 본성을 밝히는 것이다. 마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마음을 관조하면 일체를 관조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일체사물에 대한 올바른 정찰(正察)은 해탈에 이르는 방도로서 중요시돼 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수행의 의의를 지닌다. 수행이란 흐트러진 마음, 즉 방심(放心=散心)을 챙겨서 관심(觀心)을 하는 것이다. 우주 사이의 모든 사(事)와 물(物)이 항상 변화하고 그 자체로서 고유한 것이 아니므로 진실한 자태로 있는 원래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형상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관찰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 본성을 깨달았다고 하면, 모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선가 스님들이 좌선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찾기 위해 용맹 정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심간정(觀心看淨)---대통신수(大通神秀, 606∼706) 선사 계통의 북종선 선법으로, 마음을 관하여 청정한 자리를 봄을 말한다. 즉, 마음이 깨끗하다고 관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하려면 좌선섭심(坐禪攝心)을 해야 한다. 섭심(攝心)은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즉 망념을 다스려 고요히 머무는 수행이다.

    신수(神秀)의 관심법문의 사상적 근거로는 대승불교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들 수 있는데, 자성청정심은 4조 도신(道信)의 “수일불이(守一不移)”한 본래심이며, 5조 홍인(弘忍)의 “수본진심(守本眞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성청정심은 마치 구름에 가린 태양과 같으므로 본래의 청정심을 관해 밖으로 들어내는 작업이 관심수행의 요체이다.

    묻기를, 만약에 어떤 사람이 불도를 구함에 마땅히 어떤 수행법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 되는가라고 하면, 그 답은, 오직 관심의 한 법이 일체법을 포괄하니 불법수행의 최고 덕목이다. 그리하여 신수는 일체 모든 법을 포괄하고 있는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선수행의 요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지ㆍ수ㆍ화ㆍ풍 사대가 모여 몸을 이루고, 만법을 세우는 것은 마음이 주체가 된다. 몸은 허망해서 곧 몸을 공함을 보니 비로소 묘용을 나타내고, 마음은 실체가 없어 마음이 환(幻)인 줄 관하면 바로 진여와 같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관심론>에서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 일체 모든 법은 오직 마음의 소생이다. 만약 능히 마음을 요달하면 만행을 모두 갖추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마음을 닦아 해탈하는 것이나 삼계에 윤회함도 모두 이 마음에 의지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은 출세의 문이 되며, 마음은 해탈의 나루터이다”라고 했다.---→간심간정(看心看淨) 참조.

   

*관심론(觀心論)---마음을 관함에 대한 이론인데 관심론에는,

     ① 수(隋)나라시대의 천태대사 지의(智顗)가 지은 <관심론>.

     ② 당(唐)나라시대의 신수(神秀)가 지은 <관심론>이 있으나

     ③ 달마 관심론(達磨觀心論)이 가장 유명하다.

    2조 혜가(慧可)가 달마대사께 불도를 구하려면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요긴한가라고 묻자, 이에 달마대사는 관심법이 가장 요긴하다고 답했다. 마음을 관하는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기 때문이다. 관심법이란 자기 마음을 언제든지 잊지 않고 들여다보고 비춰 보는 방법으로서, 이 법 말고 다른 법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나 무명(無明)에 덮인 까닭으로 해탈할 수 없다' 하시니, 불성(佛性)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다. 다만 능히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은 지혜가 명료(明了)하게 그 덮인 바를 여의면 이름 하여 해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알라 일체 모든 선이 깨달음으로써 근본을 삼으니, 그 깨달음의 근본으로 인해서 마침내 능히 모든 공덕의 나무를 나타나게 하며 열반의 열매가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나니 이와 같이 마음을 관하는 것을 이름 하여 깨닫는 다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관심문(觀心門)---불교의 교리와 사상을 연구하는 이론적 방면을 교문(敎門) 또는 교상문(敎相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 실천 수행을 중시하는 방면을 관심문이라고 한다.

    

*관심석(觀心釋)---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가 <법화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네 가지 입장에서 해석을 했다. 이것을 사종석(四種釋) 혹은 천태 4대석례(大釋例)라고 하는데, 그 하나가 관심석이다. 관심석이란 <법화경>의 각 구절에 대해 마음으로 관하는 수행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즉, 경문의 뜻을 직접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보는 수행의 관점에서 거듭 해석한다. 낱낱의 경문을 자기 마음에 비추고, 그 마음을 관함에서 해석한다. 일반적으로는 불법의 사상과 실천정신에 의거해 독자적인 해석을 펼치는 법문이 관심석이다. 선승들이 많이 하는 실천 해석이다.---→사종석(四種釋)

        

*관심선(觀心禪)--마음을 관하는 선으로, 달마(達磨) 대사가 중국에 전한 선(禪)이 순수한 인도의 관심선(觀心禪)이었다. ‘마음의 문제를 잘 관찰하는 것, 이것이 모든 수행을 다 포섭하고 있다’, 이런 기치 아래 선불교를 주창한 것이 관심선(觀心禪)이다. 관심선이 초기 선불교이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간화선도 생기고, 염불선도 생기고, 관조선도 생겼다.---→‘선법(禪法)의 종류’ 참조.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보리 달마(菩提達磨)가 한 말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 달마 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대혁명을 일으켰다. 경(經), 염불 등을 다 부인하고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法)이 들어있으니, 곧 바로 진심(眞心)을 관(觀)해 성품을 보고 깨달아 부처가 되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은 모든 것이 자라나는 뿌리이다. 만일 그대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이 거기에 포함된다. 그것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그 나무의 모든 열매와 꽃들, 모든 가지와 잎들이 뿌리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그 뿌리를 자른다면 그 나무는 죽는다.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깨달음에 이른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수행을 하더라도 헛된 것이다. 모든 선과 악이 그대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 너머에서 무엇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법정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상은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사물의 실상을 조용히 지켜보고 나의 내면의 흐름을, 내 생각의 실상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안팎으로 지켜보는 일이다. 보리 달마는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는 말을 했다. ‘마음 하나 살펴보는 이 한 가지 일이 이 세상 모든 현상을 다 거두어들인다.’는 말이다.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관음경(觀音經)---<법화경(法華經)> 제25「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따로 떼 내어 독립된 경으로 만든 것이다. 송나라시대 성리학학자들은 애초에 예기(禮記)를 구성하는 편명(編名) 중 하나에 불과하던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각각 분리시켜 전혀 별개의 경전처럼 독립케 한 소이와 같다 하겠다, 

    <관음경>은 본문과 5언 4구체인 게송 26수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 경은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은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觀世音)이라 일컫게 됐는지, 그 명호의 유래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에 대한 부처님 답변 형식으로 관음보살이 지닌 여러 위력을 설파하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5호16국의 하나인 북량(北涼)의 지배자 저거몽손(沮渠蒙遜)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인도 출신 역경승 담무참(曇無讖, 358~433)이 <법화경> 보문품을 외우라고 권했고, 이 경을 읽고 건강을 회복한 저거몽손이 보문품을 따로 떼 내어 널리 유통시키면서 <관음경>이라 이름 했다. 그리고 <반야심경>이 <대반야경>의 진수이듯이 <관음경>은 <법화경>의 진수이다. 아래 경문은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문장이다.

    『선남자여 만약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를 받는다 해도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듣고 그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해탈케 하며,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설사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보살의 위신력으로 불이 그 사람을 태우지 못하게 하며, 만약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하느니라.

    그리고 보배를 구하려고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태풍에 밀려 나찰(那刹)에게 잡혀갔을 때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보살의 이름을 염하는 이가 있으면 모두가 난을 벗어나며, 어떤 사람이 피해를 당할 때에 보살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과 몽둥이가 부서지고 죄가 있거나 없거나 고랑을 채우거나 쇠줄로 결박했을 때는 그것이 모두 부서지며, 상인들이 원적을 만났을 때도 보살을 염하면 원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생들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찾아가서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관음칭명(觀音稱名)만으로 일곱 가지 난(七難)을 면할 수 있다는 것으로 칠난(七難)이란 화난(火難)ㆍ수난(水難)ㆍ풍난(風難)ㆍ왕난(王難)ㆍ귀난(鬼難)ㆍ가쇄난(枷鎖難)ㆍ원적난(怨賊難) 등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여기서 화난과 수난, 풍난은 불과 물 또는 바람 등에 의해서 일어나는 외부적인 난 외에 자신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와 악업(惡業)을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왕난(王難)은 권력에 의해 당하는 난을 말하고, 귀난(鬼難)은 각종 병에 걸리는 것을 말하며, 가쇄난(枷鎖難)은 목에 형틀을 두르고 사슬을 차는 등으로 구속되고 감옥에 갇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원적난(怨賊難)은 원수와 도둑으로부터 당하는 수난을 말하는 것으로 어떠한 외부적인 어려움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막론하고 관세음보살의 힘에 의지하면 모든 재난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요지이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부르는 자는 다시 한 걸음 더 들어가 아집과 분별망집(分別妄執)을 부정하는 철저한 수행(修行)에 힘써야 할 것이다. 분별망집이 공(空)한 본래 청정한 마음에는 나와 남, 안과 밖, 부처와 중생 등 일체의 차별이 없다. 내 마음이 곧 관세음이고, 관세음이 곧 내 마음이다. 따라서 밖에서 비치던 관세음보살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해입상응(解入相應)이라 한다. 밖에서 들어온 관세음보살(入)과 중생 본래의 마음(解)이 서로 하나가 된다(相應)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부르는 자는 마침내는 바로 그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래 청정한 마음의 관세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부름에 능히 응하는 응신(應身)으로서의 관세음보살이 돼야 한다. 이와 같이 관음신앙의 특징은 현실적으로 우리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고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구고구난(救苦救難)의 영험기록과 신앙체험의 사실에 있다.

관세음보살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은 실로 깊고 오묘하므로 절대적인 관음신앙 속에서는 기적과 같은 영험이 곧장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불교에 수많은 영험담이 전해지지만 관음신앙에 결부 된 것이 아주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지만 <법화경>에서는 석가모니불의 중생구제를 돕기 위해 이 사바세계의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을 주처로 정하고 이 사바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관음선종(觀音禪宗)---미국에 전한 한국불교의 일종이다. 숭산(崇山, 1927~2004) 선사는 미국에 불교를 선교함에 있어서, 한국불교 전통을 살리면서 서양인들에게 맞는 한국불교를 새로이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조계종 소속이면서 미국에 선교했던 숭산 선사가 설립한 관음선종이다. 관음선종의 특징은 미국적 환경에 맞추어 재가불자도 승복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조계종 계율이 금욕을 요하지만 관음선종에서는 기혼, 미혼의 재가자에게 다 스님의 계를 내려주고 선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숭산(崇山) 참조.

    

*관음현의(觀音玄義)---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 대사가 지은 저서 명. 천태 지의 대사가 <법화경>을 해석한 <관음현의(觀音玄義)>를 보면, 지옥이 부처님의 십법계를 갖추고 있는 경전 근거와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열반경>의 "무릇 마음이 있다면 응당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얻을 수 있다"는 경문을 가지고 지옥에도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설명하고, <유마경>의 "일체의 모든 중생에게는 보리(菩提)의 모습이 있다`는 경문으로 지옥에 부처님의 모습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에는 신(神)에 의한 최후의 심판에 즈음해 지옥에 갈 자로 판정된 자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진다는 ‘영구책임론’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러한 이론은 없다. 바로 악인에게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극악자도 본성에는 선을 함유하며 그것에 의해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서는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했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한 제바달다에게 천왕여래의 수기를 줌으로써 악인성불을 보증하셨다.

    한편 부처는 선한 성질(性善)을 가지며 선한 행위(修善)를 이룩한 자로서 악한 행위(修惡)는 없다. 그러나 악한 성질(性惡)까지도 버렸던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처에게도 성(性)으로서 악이 있다. 부처에게 성악(性惡)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극악한 사람이 악을 행해 죄를 범하게 된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고, 마침내는 구제능력도 나온다. 선(善)만으로는 악을 알 수가 없다.

    요컨대 지옥부터 보살까지의 모든 중생은 성선이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성불할 가능성이 있고, 부처는 성악이 있으나 거기에 자유자재 하므로 모든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에 대해 <관음현의>는 다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는 성악을 끊지 못한다 할지라도 능히 악에 도달한다. 악에 도달하기 때문에 악에 있어서 자재하다. 그러므로 악에 물든 바가 되지 않고, 수악(修惡-후천적 악행)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부처에게는 영원히 악행이 없다. 자재하기 때문에 널리 모든 악의 법문을 방편으로 사용해 중생을 교화제도 한다. 하루 종일 이것을 사용하지만 종일 물들지 않는다.”

    부처에게 성(性)으로서 악(性惡)이 있다는 것은 부처가 악에 속박 당한 것이 아니고, 악에 매우 통달해 주체적 자유를 가지고 자유자재하게 악을 제어하고, 그것에 의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부처는 악을 사용할지라도 그것에 물드는 적이 없다. 결국 행위로서의 악(修惡)은 불(佛)에게 없다는 말이다.- 지광

    

*관자재(觀自在)---관세음(觀世音)과 같은 말. 관자재는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데스바라(Avalokitesvara)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아바로키타(Avalokita)의 관(觀)과 이스바라(isvara)의 자재(自在)를 합한 것이다. 그래서 관자재보살은 보는 것에 있어서 자유자재한 분이란 뜻이다. 그리하여 관자재보살은 지혜에 의한 바라밀행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는 분이고, 중생의 괴로운 마음을 직관지(直觀智)로 투시하는 보살이다.---→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참조.  

        

*관정(灌頂, 561-632)---→장안 관정(章安灌頂) 참조.  

        

*관정(灌頂)---밀교에서 행하는 일종의 물에 의한 세례의식이다. 밀교에서 여러 수행을 마친 승려가 아사리 지위에 오를 때 행하는 의식이다. 또 아사리가 제자 승려에게 법을 전할 때 행하는 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고대 인도에서 국왕이 즉위할 때 바닷물을 머리에 부어서 축하하는 의식을 관정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관정위(灌頂位, 산스크리트어 Abhi Scana, Abhi Seke)---물을 머리에 붓는다는 뜻인데, 고대 인도에서 임금이 왕위에 오르거나 태자를 세우는 의식을 할 때 머리(정수리)에 바닷물을 붓는 의식을 말한다. 기독교에서 세례를 할 때 이마에 물을 붓는 의식도 일종의 관정위이다. 보살의 십지(十地) 수행 중 제9지에서 제10법운지(法雲地)에 들 때에도 지혜의 물(智水)을 그 정수리에 붓는 의식을 행했다. 이런 때 법왕의 직을 받는다고 해서 수직관정(受職灌頂)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직관정을 받은 보살 10지를 관정지(灌頂地)라고 한다. 관정위는 이 관정지를 말하며, 또한 등각(等覺)을 말하기도 하는, 수행보살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높은 수행위이다

   

*관조(觀照)---가장 불교적인 용어 중 하나이다. 관조(觀照)는 나를 보다, 찬찬히 들여다 보다, 주관을 섞지 않고 조용한 마음으로 대상의 본질을 바라본다, 본래 마음의 본바탕을 살펴보다 등의 말로서 청정심(淸淨心)이요 평상심(平常心)이요 일심의 부동심(不動心)을 말한다. 본래 뜻은 고요한 마음과 지혜로써 사리(事理)를 관찰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상을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나 논리적 사변(論理的思辨)에 의하지 않고, 반야지혜로써 사리를 바르게 비추어 보아 밝고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결국 관조는 정적 ‧ 지적 ‧ 객관적인 직관(直觀)을 뜻한다. 지혜로 모든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비추어 봄을 말한다. 종범 스님은, 작관(作觀) +조견(照見) ⇒ 관조(觀照)라고 하셨다.

    

*관조반야(觀照般若)---→‘반야(般若)의 종류’ 참조.

     

*관찰법인(觀察法忍)---관찰법인은 자기에게 부당한 짓을 해 오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하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 “지금은 그가 그릇된 짓을 하고 있지마는 그도 역시 부처님이 될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회가 돌아오면 반드시 지금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행동만 보고 그를 악한 사람으로 단정해 버려서는 안 된다.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다. 어떤 악인(惡人)이라도 악(惡)으로만 뭉쳐진 사람은 없다. 지금은 악(惡)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마음 밑바닥에는 역시 거룩한 불성이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 절대의 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악인(惡人)이라도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해서 그 가르침을 실행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그를 가르쳐 인도해서 하루속히 부처님 가르침에 눈뜨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을 관찰법인(觀察法忍)이라고 한다. 법(法)이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물 또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기를 비롯한 모든 사물의 본성을 잘 관찰해 보고 경솔하게 성낸다든가 배척한다든가 하지 않는 것이 관찰법인이다. 안수고인(安授苦忍)은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 생기고, 관찰법인은 남을 생각하는 데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이다. 이 두 가지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그것이 진정한 인(忍)이다. ---→안수고인(安授苦忍) 참조.

      

*관찰의선(觀察義禪)---<능가경>에 나오는 사종선(四種禪)의 하나. 대승불교의 후기에 등장한 <능가경(楞伽經)>은 선과 교에 다 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능가경에서는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인 이승(二乘)과 외도들이 행하는 선을 어리석은 범부가 행하는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이라 했다. 그리고 인ㆍ법무아(人ㆍ法無我)를 관하는 선을 관찰의선(觀察義禪)이라 했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진여의 경지에 입각한 선을 반연여선(攀緣如禪)이라 했다. 그리고 여래의 지혜에 들어간 선을 여래선(如來禪)이라 했다. 이는 달마 스님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 2조 혜가(慧可)에게 <능가경>을 전했다는 근본 뜻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관찰의선은 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이치를 알고, 그 이치에 따라 대상를 자세히 주시하는 수행이다. 여기서 ‘의(義)’란 법(法 - 사물, 존재)이라는 의미로서, 자기의 몸[人]과 일체의 객관적 존재[法]도 공ㆍ무아라고 관해 인ㆍ법 이무아(人ㆍ法二無我)를 깨닫는 선을 말한다.---→사종선(四種禪) 참조.

    

*관행(觀行)---관(觀)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해 본다는 뜻이므로 이치를 생각하고 안으로 비추어 보는 것이고, 행(行)은 실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교학을 공부하는 이는 눈과 입으로만 건성으로 경전을 읽지 말고 마음으로 돌이켜 비추어 보는[회광반조(回光反照)]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에 돌이켜 살피지 않으면 경 보는 일이 아무런 이익도 없다(心不反照 看經無益)”고 한다.

      

*광대심(廣大心)---대승보살의 사종심(四種心)의 하나이다. <금강경>에는 구류중생(九類衆生)을 (섭수해) 제도하겠다고 하는 마음이라 했다. 광대심은 이 모든 중생들을 나와 똑 같다고 생각해서 보호하겠다는 넓은 광대무변한 마음, 곧 모든 중생을 차별 없이 이롭게 하겠다는 무연대비심(無緣大悲心)을 말한다. 광(廣)은 일체 모든 대상 곧 경문에서 말하는 구류중생(九類衆生)에 대한 넓은 섭수심이고, 대(大)는 모든 중생에 대해 차별 없이 대하는 보살심이다. 경문에서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 있는 바 일체중생과 중생에 섭수되는 것 내지 있는 바 중생계와 중생계에 섭수되는 바를 낸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사종심(四種心)---<금강경>에 나오는 말인데, 첫째가 광대심(廣大心)으로 모든 중생을 (섭수해) 제도하겠다고 마음이요, 둘째가 제일심(第一心)으로 부처의 세계에 들어 열반락을 즐기겠다는 원력을 내는 마음이다. 세 번째가 상심(常心)으로 고통을 여의고 열반에 이르겠다는 ‘항상한 마음’이고 네 번째가 부전도심(不顚倒心)으로 중생이라는 분별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사종심(四種心) 참조.

        

*광도중생(廣度衆生)---중생에게 널리 법을 펼치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이다. <화엄경>에 “광도중생(廣度衆生) 유여교량(猶如橋梁)”이라 했다.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는 것이 마치 강을 건너는 다리와 같다는 말이다. 즉, 중생들을 널리 제도한다는 것은 고통스런 이 세속적인 삶이 전개되는 차안(此岸)에서 모든 고통이 해결된 피안(彼岸)인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다리와 같다는 말이다. 요즘은 비에 떠내려가는 다리가 흔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큰 비가 오면 떠내려가는 다리가 흔했다. 다리가 없으면 건너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광도중생이 곧 다리 역할 해서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광명변조(光明遍照)---변조(遍照)란 부처의 빛이 시방(十方)세계와 사람의 마음을 두루 비춘다는 뜻이다. 따라서 광명변조란 해와 달과 별의 광명이 온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듯, 무량수불의 자비가 넓고 커서 그 공덕과 광명이 시방세계 중생을 널리 밝게 비춰 제도해 준다는 뜻이다. 즉, 진리의 지혜광명이 시방 삼세 일체중생의 무명 번뇌를 밝게 비춰 준다는 뜻이다.  

     

*광명진언(光明眞言)---원래 진언은 뜻을 풀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언을 매우 중요시 했던 밀종(密宗)에서는 진언의 각 글자를 풀이했다. 뜻을 잘 알아야 관(觀)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관(觀)이 잘 돼야 보다 빨리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명진언은 모두 아홉 단어로 구성돼 있다. 

   광명진언은 바이로차나(Vairocana, 비로자나불)법신 진언으로서, 모든 불보살의 총주(總呪)이며, 그 의미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어두운 카르마(業)를 몰아내고, 악귀나 잡귀도 광명진언 속에서는 빛이 어두움을 소멸시키듯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당(唐)나라시대 불공(不空, Amoghavajra)이 번역한 경전인, <불공견색비로자나불대관정광명진언경(不空羂索毘盧遮那佛大灌頂光明眞言經)>에 광명진언(光明眞言)이 소개돼 있다. 주문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이고, 그 뜻은 “비로자나 법신의 광명으로 무명과 업장을 걷어내고 자성의 밝은 본성이 드러나게 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수행 중에 장애가 생길 때, 과거 습관이나 업장을 조복받기 위해, 과거 잘못을 참회할 때 이 진언을 외운다.

     • 옴(OM) - 모든 진언의 근본 음이며,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미임. ‘옴’ 자에 귀명의 뜻이 있다. 시방삼세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귀의해 부처님의 광명과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외운다.

     • 아모카(amogha) -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이시여! 성취하지 못하는 바 없는 부처님이시여! 라는 뜻. 내 마음의 북방에 항상 계신 불공성취불의 명호이다. 불공성취불은 성소작지(成所作智)의 덕에 머무르며 일체중생을 위해 가깝게 사바세계에 모습을 나타내어 교화하시는 역사상의 부처님 곧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 바이로차나(vairocana) - 비로자나 부처님(大日如來). 내 마음의 중앙에 항상 계신 비로자나불 곧 법신불의 명호이며, 대일여래라고도 한다. 법신불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으로서, 마치 태양이 세간의 어둠을 없애고 일체의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시방삼세의 온 우주법계에 두루 충만해, 무한한 빛을 비추는 우주적 통일체의 상징으로서 ‘광명의 부처님’을 가리킨다. 법신불은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의 덕에 머무르며 일체 천지만물 속에 내재하는 불신으로 사람을 포함한 온갖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 마하무드라(mahmudra) - 마하는 큰(大), 무드라는 도장 인(印)이므로 대인(大印)으로 번역된다. 큰 도장(대수인/大手印)을 지니신 분이여! 내 마음의 동방에 항상 계신 아촉불의 명호이다. 아촉불은 대원경지(大圓鏡智)의 덕에 머무르며 우주법계의 만상을 명료하게 조견하고, 중생의 번뇌를 퇴치해 모든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보리심을 개발해, 해탈케 하시는 부처님이다. 대원경지란 우주법계의 법계 만상을 여실하게 현현하는 지혜로 일체를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청정한 거울에 비유해 말한 것이다.

     • 마니(mani)- 마니보주(摩尼寶珠=如意寶珠)를 지니신 분이여! 보생여래(寶生如來)를 뜻함. 내 마음의 남방에 항상 계신 보생불의 명호이다. 대원력성취인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은 묘관찰지(妙觀察智)의 덕에 머무르며 중생을 위해 설법해서 의심을 끊게 하고, 대자비로 일체 중생을 섭수해 극락정토로 이끄는 부처이다.

     • 파드마(padma) - 연꽃을 지닌 아미타여래를 뜻하며, 연꽃을 상징한다.

     • 즈바라(suvara) - 생사윤회의 원인인 미혹의 어둠을 한 순간에 없애주는 광명을 뜻함.

     • 프라바릍타야(pravarttaya)- 전변(轉變)한다는 뜻. 나의 본심, 보리심, 진심, 일심을 개발해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뜻. 이상에서 말한 “부처님의 광명이여! 그 빛을 발하소서” 라는 뜻으로, 이 부분을 염송할 때는 자신의 안으로부터 부처님의 광명이 솟아나와 자신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충만 돼 있는 모습을 마음에 뚜렷하게 그리고 그 빛이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 이웃과 우리나라 전 세계 우주법계로 두루 퍼져 모든 중생들이 그 빛 속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모습을 심상화(心象化) 한다.

     • 훔(hum) - 완성, 성취의 의미를 지닌다. 진언을 마무리하는 근본 음이다. 부처님께 감사와 귀의를 다짐하는 소리이고. 모든 진언을 마무리 짓는 근본 음이다. ‘훔’ 자를 외울 때는 이상에서 말한 오불(五佛)의 지혜 광명이 자신 안에서 종합 완성된 모습을 마음에 그리면서 모든 부처님들께 지극한 감사와 귀의를 다짐한다.

         ※총주(總呪)---모든 진언(주문)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대일여래의 딴 이름. 그 몸이 광대해서 법계의 사물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광율(廣律)---불교 율장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이 광율(廣律)이다. 광율은 부파불교시대 조성된 것으로 출가자(비구ㆍ비구니)의 생활규범인 계율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광율 가운데 계율의 조문만 추출한 것을 계본(戒本)이라 하고, 승단회의ㆍ종교의식ㆍ승단 내의 규율과 예의 등을 편집한 것을 갈마본(羯磨本)이라 한다.

      

*광음천(光音天)---빛을 말(목소리)로 삼은 하늘이라는 뜻이다. 광음천(光音天)은 불교의 세계관인 삼계 중 색계의 제이선천(第二禪天)에 속하며, 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의 여섯째 하늘이다.

이 하늘의 중생은 음성이 없고, 말을 할 때 입에서 맑은 빛을 내는데, 그 빛이 말이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말할 때 입으로 광명을 내어 말의 작용을 하므로 광음천이라 한다. 광음천은 이와 같이 빛(光)을 음성(音)으로 사용하는 천인(天人)을 말한다. 색계(色界)에 속하는 세계에 사는 천상에 실재하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들은 남녀의 구분이 없고 몸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굉장히 부드러운(soft)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쁨을 음식으로 삼는다. 지구가 형성될 무렵에 지구에 태어난 최초의 생명체가 바로 이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요즘 말로 순간이동에 의해 광음천에서 지구로 왔다. 이들이 지구에 살면서 퇴화해 남녀로 분화되고 인류가 됐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불교 우주관이라는 넓은 얼개를 형성함에 있어서 한 부분으로 창작된 것이다. 불교 교의 전체를 우주의 모습에 비대해 얼개를 구성할 때 하나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부분적으로 창작신화는 불가피한 것이므로 과학성 여부에 너무 비중을 둬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광장설(廣長舌)---광장설이란 부처님께서 몸에 갖추신 삼십이상(三十二相) 가운데 하나이다. 혀가 넓고, 길고, 얇고, 보드라운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혀를 길 게 내어 보이신 일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은 일체가 진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신체언어(身體言語)이다. 장광설(長廣舌)이라고도 한다.

     

*광찬경(光讚經)---원명은 광찬반야바라밀경(光讚般若波羅蜜經)으로서, 서진(西晋)시대인 AD 286년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했다.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의 다른 번역임.   

    

*광통율사(光統律師, 468-537)---법명은 혜광(慧光). <화엄경>의 대가로 중국 북위(北魏)의 국통(國統)이었으나 당시 북위에 머물던 달마 대사(達磨大師)을 질투해 인도출신 승려 보리류지(菩提流支)와 더불어 달마 대사를 독살했다고 한다. 그 후 달마 대사는 관 속에 두 개의 신발짝만 남기고 서천(西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괴겁(壞劫)---불교 우주관에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무너져가는 시기를 말한다. 삼천대천세계는 항상 성겁(成劫) ․ 주겁(住劫) ․ 괴겁(壞劫) ․ 공겁(空劫) 네 시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우주가 성립했다가 무(無)로 돌아가는 기간을 넷으로 나누는데, 우주가 성립되는 지극히 긴 기간인 성겁(成劫), 머무르는 기간인 주겁(住劫), 파괴돼가는 기간인 괴겁(壞劫), 파괴돼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지속되는 기간인 공겁(空劫), 이를 사겁(四劫)이라 하며, 각 겁(各劫)은 제가끔 20소겁(小劫)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기세간인 우주는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80겁을 주기로 성 ․ 주 ․ 괴 ․ 공(成․住․壞․空)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생멸변화를 하고 있다.---→겁(劫), 성주괴공(成住壞空) 참조.

     

*괴고(壞苦)---삼고(三苦)의 하나. 애착을 느끼던 것들, 소중이 이룩해 놓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없어지는 데에서 오는 고통. 예컨대, 평생을 이룩해놓은 재산을 못난 자식 놈이 하루아침에 말아먹었을 때 오는 고통, 평생을 쌓아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고통, 그렇게도 정성 드려 가꾸고 다듬은 얼굴이 흐르는 세월을 못 이겨 주름살이 늘어나는 고통, 그렇게 다정했던 사이인데 어쭙잖은 일로 오해가 생겨 사이가 나빠지는 고통, 이런 것들이 모두 괴고이다.---→삼고(三苦) 참조.

     

*괴로움(苦, 빠알리어 dukkha)의 극복---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비구들이여, 누가 말하기를 ‘나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지 않고,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지 않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리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뽀족지붕 경(S56:44)

     그러므로 괴로움의 실체를 바로 알고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괴로움에 관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사성제(四聖諦)이다.

     불교는 윤회와 괴로움을 벗어나는 해탈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사성제를 알지 못하면 윤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괴로움을 알기 위해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냥 괴로움을 알려고 하기보다 싫어하고, 불편하게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움을 싫어하고 외면만 해서는 영원토록 괴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청정도론>에 의하면, “괴로움(dukkha)은 괴롭게 하기 때문에, 혹은 행복을 막기 때문에 괴로움이라 한다. “dukkha는 더럽고 미운 아이를 dupputta라고 하듯 du는 더럽고 밉다는 뜻이다. 텅 빈 허공을 kha라고 하듯 kha라는 말은 ‘비었다.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다. 괴로움의 진리(dukkha)는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영원함, 아름다움, 행복, 자아’가 없기 때문에 비었다. 그러므로 더럽고 텅 비었기 때문에 괴로움(dukkha)이라 한다. -청정도론(Vis16.16)“라고 했다.

    부처님이 최초로 행한 설법은 당신이 깨달으신 내용으로서 사성제(四聖諦)이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천명하셨다.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오취온(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인가? 그것은 취착하는(집착과 함께 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하는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하는 상카라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로서, 요컨대 취착하는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라고 하셨다. 또한 <초전법륜경>에서는, “싫어하는 [대상]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라고 하면서,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괴로움을 설하시기도 하셨다. 그리하여 <기반경>에서는 전통적인 12연기로서 고의 발생과정을 설명하시고, 이어서 괴로움을 극복하는 <기반경> 나름의 12연기를 펼쳤다. 즉, 괴로움을 기반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괴로움(번뇌)이 멸진되는 과정을 설하셨다.

    전통적인 12연기는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괴로움)로서, <기반경> 연기는 괴로움 → 믿음(공덕의 어머니) → 환희(기쁨) → 희열 → 경안(편안하고 유연함) → 행복 → 삼매(고요함. 맑음. 밝음) → 여실지견(무상ㆍ고ㆍ무아=공=통찰지)→ 염오(자각) → 이욕(내려놓음) → 해탈(벗어남) → 열반(번뇌의 멸진)으로 괴로움을 극복한다고 했다. – 기반경(S12:23).

    이와 같은 내용을 <기반경>에서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괴로움이 일어나는 과정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과정(해탈 열반의 과정)을 함께 설명하고 있으며, 수행체계와 관련된 설명을 하고 있다.

    무명에서 괴로움까지는 일반 중생들이 윤회의 괴로움을 겪는 과정을 나타낸다. 이 윤회의 괴로움을 알고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일어나면, 믿음을 기반으로 환희하게 되고, 환희를 기반으로 희열을 경험하며, 희열을 기반으로 고요함에 이르고, 고요함을 기반으로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을 기반으로 바른 삼매에 들게 되고, 바른 삼매를 기반으로 여실지견(如實知見)하게 된다. 이 과정이 사념처 수행(四念處修行) 또는 팔정도 수행(八正道修行)의 과정이다.

    이어서, 여실지견을 하게 되면, 여실지견을 기반으로 세상(윤회)을 염오(厭惡)하게 되고, 염오를 기반으로 이탐(離貪)하게 되며, 이탐을 기반으로 일시적 심해탈(心解脫)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이 사마타(Samatha, 止) 수행의 과정이다.

    이어서, 일시적 심해탈을 하게 되면, 오온(五蘊)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명확하게 알고 보게 돼 번뇌가 멸진하게 되고 부동의 심해탈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위빠사나(Vipassana, 觀) 수행의 과정으로서, 번뇌가 멸진되는 과정이다. 부동의 심해탈에 이르게 되면 삼매에서 나오게 되더라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유여열반 상태가 된다.

    부처님 가르침을 아는 것으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바르게 배워서 안 다음에는 바르게 보기 위한(경험하기 위한) 수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을 바르게 보기 위한 수행일까? 바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실상을 바르게 보는 수행이다. 무상-고-무아를 배워 아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배워 아는 것은 번뇌의 멸진을 위한 절반의 과정일 뿐이다. 배워 아는 것도 우리가 현상을 보는 수준에서 배워 아는 것이므로 완전히 바르게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현상을 보는 수준에서 배워 아는 것은 번뇌의 멸진을 위한 첫째 단계이다.

    위 <기반경>의 전 과정을 완전히 경험하며 보게 될 때 번뇌가 멸진된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범부 중생들은 믿음부터 번뇌의 멸진까지의 과정(수행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해탈 열반할 수 없다. 그럼, 수행을 통해 현상을 바르게 보는(경험하는) 과정으로 <기반경>을 알아보자.

    수행은 <기반경>의 중간부분에 있는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현재 삶의 고(dukkha)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고(둑카)는 윤회의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윤회의 괴로움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리 수행한다고 해도 번뇌가 멸진될 수 없다. 현재 삶의 기본적 실상인 고(둑카)를 경험하지 못하므로 수행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수행을 한다고 해도 괴로움의 실상을 바르게 경험하지 못하고 하는 수행이므로 번뇌가 멸진될 수 없으며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지 즐거움에 반대되는 의미의 괴로움에서만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회의 괴로움을 전혀 모르거나 알아도 경험한 상태가 아니므로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윤회의 괴로움을 경험한 상태로 부처님 가르침을 듣게 되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의 목적을 바르게 알게 되고 가르침을 바르게 믿게 된다. 즉, 윤회의 괴로움을 경험한 사람만이 수행의 목적을 바르게 정립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괴로움을 경험해 부처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믿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 목적에 따라 수행하게 되므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단계에까지 갈 수가 없다. 어떻게 하든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이 세워져야 번뇌가 멸진돼 해탈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믿음에서 사념처 수행(팔정도 수행)을 바르게 하게 될 때, 환희, 희열, 고요함, 행복을 거쳐 바른 삼매에 들게 되고, 이에 따라 현상을 여실지견 하게 된다. 그런데 무엇을 여실지견 하게 되는 것일까?

    이 여실지견이란 현상이 전체적으로 무아임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유신견(有身見)이라는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단계를 깨달음의 첫 단계라고 한다. 더 이상 중생들 삶의 길로 퇴보하지 않게 되므로 해탈 열반의 흐름에 들었다고 한다.

    이 단계에서 수행을 계속하게 됨에 따라, 염오하고, 이탐하는 과정을 거쳐 찌따(citta, 마음을 정의하는 하나의 상태)가 일시적으로 해탈하는 ‘일시적 해탈’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수행을 앞에서 말한 사마타(Samatha, 止) 수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사념처 수행이 바른 삼매의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을 말할 뿐이다. 즉, 바른 삼매에서 일시적 해탈에 이르기까지 사념처 수행이 진행되는 과정을 사마타 수행이라고 한다. 이 사마타 수행은 찌따를 일시적으로 해탈시켜 고요하게 하는 수행이므로 사마타 수행이라고 이름 한다.

    사마타 수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요하게 있는 과정이 아니다. 다섯 가지 기능(믿음, 노력, 사띠, 사마디, 빤냐)이 함께 활발하게 작용하는 수행이다. 앞의 사념처 수행은 바른 삼매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띠(念, sati)가 주가 되는 수행이라면, 사마타 수행은 바른 삼매가 일어난 상태에서 사마디(Samadhi, 定)가 주가 되는 수행이다.

    앞에서 말한 위빠사나(Vipassana, 觀) 수행은 바른 삼매가 일어난 상태에서 빤냐(panna, 般若)가 주가 되는 수행이다. 사념처 수행이나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에서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수행하는 노력은 기본이다. 그리고 모든 수행(사념처 수행, 사마타 수행, 위빠사나 수행)은 다섯 가지 기능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임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찌따가 일시적 심해탈에 이르게 된 상태에서 수행을 계속하는 것을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한다. 이 위빠사나 수행으로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명확하게 보고 경험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경험은 현상이 무상임을 철저히 알고 보는 과정이다. 이로써 사성제를 통찰하게 되고 수행이 완성하게 되며, <기반경>의 전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즉, 수행이 완성되기 전에는 무명부터 괴로움까지의 단계를 배워서 알기만 했지만, 이제 명확히 볼 수 있게 돼 괴로움의 과정이 반복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단계를 깨달음의 두 번째 단계라고 하며, 번뇌가 뿌리 뽑혀 삼매에 들지 않은 상태에서도 더 이상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부동의 심해탈’ 단계라고 한다. 이 단계를 거친 자를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한다.- 호잔 ---→고(苦, 빠알리어 duhkha), 고제(苦諦, 빠알리어 Dukkha-saccā) 참조.

        

*괴일체세간포외(壞一切世間怖畏)---<법화경>에 나오는 말로서, 부처님의 교(敎)에 의지하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타파하는 힘, 곧 어떠한 환경에서도 두렵거나 무섭지가 않다는 뜻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와 더불어 송시대 선종을 대표하는 대선사였다. 천동 정각(天童正覺)이라고도 한다. 굉지 정각 선사는 조동종(曹洞宗) 제10대 조사로서 당대 말기에 형성된 조동의 가풍에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가미해 조동종의 묵조선을 대성시켰다. 이것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에 의해 형성된 간화선(看話禪)과 거의 때를 같이 한 것으로 이후 선종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저서에〈묵조명(默照銘)〉이 있다.

   

*교관겸수(敎觀兼修)---선교병수(禪敎倂修), 정혜쌍수(定慧雙修)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주장으로, ‘교(敎)’는 교리와 형식을 말하고, ‘관(觀)’은 참선과 수양을 의미해서, 교리체계인 교(敎)와 실천수행법인 지관(止觀)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교관겸수사상은 고려시대 천태종을 중심으로 실천됐으며, 지눌(知訥)의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의 뚜렷한 전통으로 전승됐다. 원효 대사의 회통불교와 맥을 같이 한다.---→정혜(定慧), 정혜쌍수(定慧雙修) 참조.

   

*교담미(僑曇彌)---부처님의 이모이기도 하고, 양모이기도 한 마하 파자파티(산스크리트어 Mahapajapati, 大愛道尼)의 원래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가우타미(Gautamī)로서, 이를 음역해서 교담미(僑曇彌) 혹은 구담미(瞿曇彌)라고 부르기도 한다.---→마하 파자파티(산스크리트어 Mahapajapati, 大愛道尼) 참조.

        

*교문(敎門)---부처님께서 말과 글로써 가르친 것을 교(敎)라 한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불교에 입문하는 길이 많은데, 이를 통틀어 ‘팔만사천 법문’이라 한다. 따라서 대장경(大藏經)이 곧 교문(敎門)이다. 즉, 교문(敎門)이란 가르쳐 깨달아 알게 한다는 뜻이니 말(글)에 차서(次序)가 있고 뜻이 들어나 있게 가르침으로 이런 법문(法門)을 이르는 말이 교문이다. 이에 대해 선문(禪門)이 있으니 선문이란 말(글)에 들어나는 뜻을 담지 않으며 차례를 뛰어넘어 직지인심(直指人心) 해서 말끝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일러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교(敎)라고 하는데, 그 말과 글로 된 내용을 통해 부처님 법을 배우는 것을 교문이라 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법을 전하는 것을 선문이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자는 보라’고 하는 가르침이고, -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넘기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열반(涅槃)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다. 또한 지혜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을 가진 진리이다.

      

*교범파제(憍梵波提, Gavāṃpati)---교범발제(憍梵鉢提), 가범파제(伽梵波提)라고도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등장하는 아라한, 사리불의 제자, 계율을 잘 알아 ‘해율제일(解律第一)’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법화경> 서품에도 그 이름이 나온다. 항상 온화하고 우아하며 한적한 곳에 머무르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할 줄 아는 호부장자(豪富長者)였다. 교범파제는 전생에 비구였는데, 남의 조 밭에서 이삭 하나를 따서 영글었는지 영글지 않았는가를 보다가 몇 알을 땅에 떨어뜨려서 이로 인해 500년 동안 소가 돼 그 빚을 갚다가 사람의 몸을 받았다고 한다.

       

*교상(敎相)---가르침의 모습, 설해 놓은 경전의 내용, 부처님께서 한평생 동안 설한 모든 가르침의 실상을 말한다. 단, 밀교에서는 교법에 대한 해석을 교상이라 한다.

          

*교상판석(敎相判釋)---교상판석에서 ‘교상(敎相)’이란 가르침의 모습, 즉 붓다가 한평생 설한 모든 가르침의 실상을 말하고, ‘판석(判釋)’에서 ‘판(判)’은 부판(部判), 쪼개어 판단한다는 뜻이며, ‘석(釋)’은 해석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란 붓다께서 일생동안 설하고 가르진 다양한 경전(經典)을 시대별로 혹은 그 뜻의 깊고 얕음에 따라, 그 경의 성격에 따라 분류 정리를 해서 경전의 의미와 내용 등을 체계화해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즉, 방대해 종잡기 어려운 팔만대장경의 사상을 가르침의 수준, 가르침의 형식 등으로 분별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인 것을 말한다.

   즉, 경에 설한 형식, 방법, 순서, 또는 그 의미와 내용 등을 따라 붓다의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분류해 체계화함으로써 붓다의 참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초기불교(원시불교) 다음에 부파불교가 발달하는 한편, 그 뒤를 이어 대승불교가 흥기했는데, 중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에는 이러한 인도불교의 발전단계와 상관없이 초기불교경전과 부파불교 논서, 그리고 대승불교경전들이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 한꺼번에 들어왔다. 따라서 다양한 경전 간에 모호한 차이도 있고, 상호모순 돼 보이는 교설도 있었다. 이러한 것이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불교가 외국의 낯선 문화라서 난해한데다가 경전마저 뒤섞여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어느 것이 최고 가르침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중국인 나름으로 그들 입장에서 불교경전을 분류해서 체계를 세운 것이 남북조시대에 시작된 교상판석이다. 줄여서 교판(敎判)이라 약칭하기도 하는데, 경전성립순서는 무시한 채 경전성격에 따라 분류를 했다. 따라서 교상판석은 중국불교 특징이기도 하고, 교상판석의 목적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종파(宗派)의 교의를 선양하고, 자기네 경전이 최고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따라서 교상판석이 종파성립의 필수요건처럼 되기도 해서 여러 형태의 교판이 있었고, 이러한 데에서 억지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 그런 한계점이 있었다.

    아무튼 복잡한 불교이론체계를 중국 나름의 입장에서 교학적으로 정리해 교판(敎判)을 잘 세운 대표적인 이가 천태종의 지의(智顗, 538~597) 대사와 화엄종의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었다.

    이들에 의해 천태종의 오시 팔교(五時八敎)과

    화엄종의 오교 십종(五敎十宗)이 이루어졌다.

    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ㆍ열반으로 정리된 천태종의 5시교판,

    소승교-대승시교(始敎)-대승종교(終敎)-돈교(頓敎)-원교(圓敎)로 정리된 화엄교판(敎判) 등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천태종 오시팔교에서 5시란 붓다 일생 동안의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눈 것이니,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로서 붓다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직후 불교 최고의 진리인 <화엄경>을 21일간 설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녹야원시(麗野苑時)로서 <화엄경>을 설하신 후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비구들을 위해 소승교를 설한 것을 말한다. 이후 12년간 주로 소승교만을 설해, 이때의 설법을 결집한 것이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해서 이 시기를 아함시(阿含時)라고도 한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로서 아함시 후 8년간 대 ‧ 소승의 법을 함께 설해 영리한 근기(根機)나 둔한 근기나 간에 고르게 이해시키는 시기를 말한다. 이때 <유마경> ․ <능가경> ․ <능엄삼매경> ․ <금강경> ․ <승만경> 등을 설했다는 것이다.

    넷째 반야시(般若時)로서 방등시 후 22년간 모든 <반야경>을 설하셨는데, 주로 공사상(空思想) 등을 설법하신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마지막 법화ㆍ열반시(法華涅槃時)로서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법화경>은 8년간 설법했으며, <열반경>은 붓다가 열반에 드시는 최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에 설법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을 했지만 이 모두는 사실과 다른 완전한 허구이다. <아함경>보다 먼저 <화엄경>을 설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리고 8교란 붓다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의 방식을 달리했으므로 그 교화 방법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누니, 화의사교(化儀四敎)는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이고, 붓다가 설한 설법의 내용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눈 화법사교(化法四敎)는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를 말해 이 둘은 8교라 한다.

    그리고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오교십종(五敎十宗)으로 교판을 단행했다. 붓다가 행한 모든 교설을 화엄종 입장에서 분류 ․ 비판한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불교교리)을 설법의 형식과 내용상으로 얕고 높음에 따라 우열을 판단해 5교(五敎: 다섯 가르침)와 10종(十宗: 열 가지 종파 또는 종지)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중 5교는 당나라시대 화엄종을 창시한 두순(杜順)의 교판을 현수 법장(賢首法藏)이 발전 ․ 체계화해 화엄종을 확립했다.

이상의 교상판석에 있어서 원교(圓敎)를 불교의 최고 위치에 두었다는 특징이 있다. 지의 대사는 원교를 <법화경>과 <화엄경>이라 하고, 현수 대사는 <법화경>을 돈교에 <화엄경>만을 원교라고 주장했는데, 천태 ․ 화엄 양 종파에서 원교를 불교 최고의 원리로 삼은 것은 같다.

    위와 같은 천태 지의 대사나, 현수 법장 모두 당시로는 획기적 노력으로 교상판석을 이루었으나 요즘과 같은 문헌학적인 연구가 전무했던 당시이므로 과학적 근거 없이 종파별로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에 와서 보면 오히려 문헌조작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으며, 잘못된 것이라 비판되고 있다.

    천태 대사의 교판에서 <화엄경>을 가장 먼저 설했다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고, <법화경>을 맨 나중에 설했다는 것도 잘못됐으며, 현수 대사가 분류한 오교 역시 아무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화엄경> ‧ <법화경> 모두 부처님이 설하신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이들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교상판석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오시교판(五時敎判=오시팔교), 오교십종(五敎十宗) 참조.

    

*교선일치(敎禪一致)---교종과 선종의 사상과 수행을 일치시키려는 주장. 교선일치 사상은 중국 당나라 중기 화엄종의 제4조인 청량 징관(淸凉澄觀, 738~839)으로부터 시작돼 제5조인 규봉 종밀(圭峰宗密)에 이르러 명백하게 나타난다. 송나라 때에 와서는 선종과 교종이 융합을 이루었다. 송나라 이후에는 대중적인 염불과 선을 융합시킨 염불선이 성행했다.   

    

*교수사(敎授師)---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라고도 한다. 계(戒)를 받는 이를 인도해 수계하는 계단(戒壇)에 대한 여러 가지 작법(作法-요령)을 가르쳐주는 스님.

   

*교외별전(敎外別傳)---선종(禪宗)에서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을 말한다[이심전심(以心傳心)]. 조사선(祖師禪)에서는, 불교의 진수는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체험에 의해서만 전해진다고 말한다. 부처님이 언어로써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교내(敎內)의 법이라면, 교외(敎外)의 법은 부처님의 마음을 직접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표월지(標月指: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진리를 달에 비유한다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으며, 이에 반해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달마(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조사선(祖師禪)에서는, 불교의 진수는 어떤 경전문구에도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체험에 의해서만 전해진다고 했다. 이는 정법안장(正法眼藏),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염화미소(拈華微笑), 이심전심(以心傳心) 등의 말과 더불어 선(禪) 입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이란 불교의 진수가 비밀리에 따로 전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밀리에 따로 은밀하고 내밀한 전수법에 의해서 전해진 적이 없다. 부처님은 깨달아 아신 모든 것을 모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근기와 지식과 이해의 정도에 따라 공개리에, 백일하에 투명하게 전해주셨지, 어느 누구에게도 은밀한 속삼임을 들려주신 적이 없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해서 다자탑전반분좌(多子塔前畔分座),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搛花微笑), 니련선하곽시쌍부(泥蓮河畔槨示雙趺)가 조사선에서 교외별전이 된 근거라는 것이다.---→염화미소(拈華微笑) 참조.

      

*교장총록(敎藏總錄)---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중심이 돼 고승들이 쓴 장 ․ 소(章ㆍ疏)를 모아 편찬한 불경 해석서이다. 원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고, 줄여서 교장(敎藏)이라 한다. <교장총록>은 서역 ․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經) ․ 율(律) ․ 논(論) 삼장(三藏)의 정본(正本) 이외 주석서인 장 ․ 소(章ㆍ疏)만을 수집해 편찬했으므로 정식 대장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장경(續藏經)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초조대장경이 완간된 뒤 고려 문종(文宗) 대에서 선종(宣宗) 대까지 25년의 기간을 두고 초조대장경에 누락된 국내는 물론 송(宋) ․ 요(遼) ․ 일본(日本) 등지까지 산재한 주석서를 최대한으로 수집한 대단한 불경 해석서였으나 몽고 침략 때 모두 소실돼 현재 전하지 않는다.

   

*교전아난 선전가섭(敎傳阿難禪傳迦葉)---교학은 아난(아난다)에게 전하고, 선은 가섭에게 전했다는 말이다. 아난은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었지만 선을 통해 마음을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님 법맥은 가섭에게 전해진 것이다. 아난의 입을 통해 경전이 형성됐지만, 20여 년을 더 수행한 후에 가섭으로부터 법맥을 이어받아 2대조사가 됐다. 가섭은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서 부처님의 마음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에 ‘선시불심 교시불어(禪是佛心敎是佛語)’란 말이 있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만으로는 부처님 마음을 깨칠 수 없고, 선을 통해서 부처님 마음을 깨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종(敎宗)---불교에서 교종이란 경전(붓다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종파들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 불교가 도입된 초기에 해당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중기까지는 주로 대승불교가 교종중심으로 발전했고, 중국에 있어서도 당(唐)나라시대까지는 교종 일색이었다.

    이 시대에는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만이 불교신행의 근거였고, 법보(法寶)인 경전을 신행의 의지처로 삼았으므로 학문적 소양이 있어야만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로 상류층의 지적 여가이자 교양영역으로 평가를 받았고, 왕실중심으로는 국가안녕과 왕실번영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서민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귀족불교 내지는 의식행사 중심의 호국불교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보니 주요경전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교파가 생겨나게 됐는데, 경전 중에서도 <화엄경>이 최고 경전이라 해서 이를 소의경전으로 한 화엄종이 생겨났고, <법화경>이 부처님의 진실한 의중(意中)과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해서 이를 소의경전으로 한 법화종, 천태종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통일신라 후기에 선종(禪宗)이 들어오면서 교종은 그 세력이 위축됐다.

    

*교진여(憍陳如)---빠알리어 안나 콘단냐(aññā-koṇḍañña)이다. 붓다가 성도(成道)한 후 초전법륜(初轉法輪) 당시 불제자가 돼 제일 먼저 깨달음을 얻어 다섯 비구의 우두머리가 됐다.---→꼰단냐(Kondanna) 참조.

   

*구거(九居)---구유정거(九有情居)의 약칭. 중생이 머물고자 원하는 곳이 9가지임을 말한다.

     ① 욕계의 인천(人天) ― 중생의 몸이 여러 가지고 생각도 서로 다른 곳.

     ② 범상천(梵象天) ― 몸은 다르나 생각이 같은 곳.

     ③ 극광정천(極光淨天) ― 몸은 같으나 생각이 다른 곳.

     ④ 변정천(遍淨天) ― 몸도 생각도 같은 곳.

     ⑤ 무상천(無想天) ― 생각도 없고 그 생각하는 대상도 없는 곳.

     ⑥ 공무변처(空無邊處) ― 끝없는 허공의 자재함을 좋아하는 중생이 사는 곳.

     ⑦ 식무변처(識無邊處) ― 생각을 여읜 곳.

     ⑧ 무소유처(無所有處) ― 적정(寂靜)하고 무상(無想)한 정(定)에 주(住)하는 곳.

     ⑨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식처(識處)의 유상(有想)을 여의고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무상(無想)도 여읜 곳.

    

*구게왕국(Guge, 古格王國)---구게왕국은 9세기 티베트 토번(吐蕃)왕국이 분열된 뒤 성립된 지방 정권으로 비교적 세력이 강성한 국가였다고 한다. 토번 마지막 왕 랑다마(郎達瑪)가 죽은 뒤 벌어진 수차례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지더니마(吉德尼瑪) 왕자가 아리(阿里) 지역으로 도피해 새로 세운 왕국이었다.

    지더니마는 후에 아리 지역을 세 부분으로 나눠 세 아들들에게 나눠줬는데, 이들 나라가 라다크왕국, 푸란왕국, 그리고 구게왕국이다. 중심지는 히말라야 산맥 북서부 지금의 티베트와 라다크 중간 지대, 지금은 중국 땅 자다현(Zadha, 札達縣, 해발 3500m) 지역으로 퇼링(Tholing)이라고도 한다.

   구게왕국은 지더니마의 셋째 아들인 더짜오(德朝)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서장왕신기(西藏王臣記)>에 따르면 구게왕국은 700여 년간 16명의 왕이 차례로 통치했으며, 강성했을 때는 서쪽으로 캐시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까지도 지배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왕국은 인도, 네팔, 티베트를 잇는 국제 교역의 중심에 서 있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산에 토굴을 파고 살았으며, 이런 독특한 지형에 적응해 살면서도 그들이 꽃피운 불교미술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1203년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할 당시, 잔존 세력들이 이 구게왕국으로 도망 왔다고 한다.

   이렇게 700년을 이어오던 왕국은 1635년 라다크 군대의 침공을 받고 패망했다고 하는데, 금은보화를 노린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망했다고도 한다.

    

*구결(九結)---9종의 결박이란 뜻. ‘결(結)’은 번뇌를 뜻한다. 중생을 결박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데 방해하는 9종의 번뇌이다. 말은 결박이지만 사회적 제약도 아니고, 타인에 의한 제약도 아니다. 스스로 자초하는 결박인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중생은 자유와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박을 갈구하며 사는 것 같다. 구결(九結)은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은 <아비달마품류족론>에 의한 것이다.

     1. 애결(愛結): 탐(貪), 애욕.

     2. 에결(恚結): 진(瞋), 성냄.

     3. 만결(慢結): 만(慢), 자만.

     4. 무명결(無明結): 치(癡), 무지. 지혜가 없는 것.

     5. 견결(見結): 편견,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의 3견(三見).

     6. 취결(取結): 집착,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2취(二取)

     7. 의결(疑結): 의심, 진리[諦]에 대해 망설이는 것.

     8. 질결(嫉結): 질투, 마음이 질투하고 꺼리는 것.

     9. 간결(慳結): 인색, 마음이 비루하고 인색한 것.

    

*구경(究竟, 산스크리트어 uttara)---독특한 불교용어로서 주로 궁극의, 완전한, 최종의 극치, 그리고 최상, 최고의 경지를 이룩함, 궁극에 도달함 등의 의미가 있다. 예컨대 최극무상(最極無上)의 진리를 불(佛)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내어 구경법신(究竟法身)이라고 하고, 불교의 지고최종(至高最終)의 목적인 대반열반(大般涅槃)을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

     ① 끝에까지 이르는, 완전한 성취, 완성.

     ② 지극(至極), 궁극, 최후·완결.

     ③ 이르다, 도달하다, 궁극에까지 도달하다,

     ④ 철저하게 체득하다,

     ⑤ 성취·달성·실현하는 일, 완성,

     ⑥ 최후에 이른 곳, 최후의 목적,

     ⑦ 구경위(究竟位)의 준말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지위 등을 일컫는다. 그 외에도 마침내, 결국, 결과 등의 뜻이 있다.---→구경위(究竟位) 참조.

     

*구경각(究竟覺)---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서 궁극적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경지를 이른다. 즉 붓다와 같은 완전한 깨달음, 곧 부처의 상태를 이룬 것이나 부처가 되는 자리를 뜻한다.

     구경각을 가리키는 다른 낱말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보리(菩提) 또는 각(覺), 묘각(妙覺), 묘각지(妙覺地), 묘각해지(妙覺海地), 적멸심(寂滅心), 적멸심 묘각지(寂滅心妙覺地), 반야(般若), 마하반야(摩訶般若) 등이 있다.

     여러 불교 종파와 경전에서는 구경각을 깨우치게 되는 선정(禪定)도 거론하는데, 예컨대 <화엄경>과 화엄종의 교의에 따르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면 비로소 구경각을 깨우쳐 부처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금강경>에 따르면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의거해, <수능엄경>에 따르면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의거해 구경각을 깨치게 된다고 했다.

     대승불교의 주요 논서 중 하나인 <대승기신론>에서는 수행을 통해 증득한 깨달음의 경지의 차이를 불각(不覺)·상사각(相似覺)·수분각(隨分覺)·구경각(究竟覺)의 4각(四覺)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묘각(妙覺)은 온갖 번뇌(煩惱)를 끊어버린 부처의 지위로 불교의 구경각(究竟覺)을 가리킨다. 묘각은 대승불교의 보살 수행계위 중 마지막의 불과(佛果)를 가리키는데, <화엄경>에 나오는 41위(四十一位)나 <영락경>에 나오는 52위(五十二位)의 마지막 지위에 해당한다.

특히 <영락경>에 나오는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迴向)·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의 52위는 <화엄경>의 10주·10행·10회·10지·불지(佛地)의 41위에 기반 해 성립된 보살 수행계위로서, 대승불교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보살 수행계위이다. 이들 수행계위에 대한 교의에 따르면, 등각보살 즉 등각의 지위에 있는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무명(無明), 즉 최초[元品]의 무명, 무시무명(無始無明)인 원품무명(元品無明), 근본무명(根本無明)을 끊고 묘각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했다.

     묘각(妙覺)은 묘각지(妙覺地)라고도 하며, 또는 묘각 바다의 지위라는 뜻에서 묘각해지(妙覺海地)라고도 한다. 또한 적멸심(寂滅心) 또는 적멸심 묘각지(寂滅心妙覺地)라고도 한다.---→사각(四覺) 참조.

    

*구경위(究竟位)---유식(唯識) 수도 5위(修道5位), 즉 유식불교에서 있어서 수행 5단계[5위(位)]의 하나로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지위(경지)를 말한다.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고 진리를 증득해 최종의 불과(佛果)에 도달한 지위이다. 이를 구경각(究竟覺)을 이룬 경지라 한다.

     따라서 구경위(究竟位)는 진여를 성취한 단계, 구경의 경지, 대해탈과 대보리의 지혜를 성취하고 무주상열반(無住相涅槃)인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궁극적인 불도수행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경지이다.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어서 체성이 원만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무루(無漏)라 하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어 부사의(不思議)라 하고, 더 이상 멸진해야 할 번뇌가 없기에 항상 상주한다고 하고, 모든 유정들을 안락하게 하므로 안락신이라 하고, 영원히 다시 묶이지 않으므로 해탈신이라 하고, 최고의 적묵(寂黙)을 이루었기에 대성인이라 하고, 한량없는 공덕의 법으로 장엄됐기에 법신이라 한다.

      

*구경일승(究竟一乘)---구경이란 곧 가없고 끊어짐이 없음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곧 불승(佛乘)이다. 성문승과 연각승이 모두 가르침에 들어가는 까닭에 삼승은 곧 일승이다. 일승을 얻은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곧 열반의 세계이다. 열반의 세계는 곧 여래의 법신과 다름이 없다. 여래는 곧 법신이다. 구경법신(究竟法身)이란 곧 구경일승(究竟一乘)이다. 따라서 구경일승이란 완벽한 일승을 말한다.

     

*구공(俱空)---삼공(三空)의 하나. 삼공은 아공(我空)ㆍ법공(法空)ㆍ구공(俱空)을 말한다.

     • 아공(我空) ― 연기에 의해 지 ․ 수 ․ 화 ․ 풍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임시적으로 결합된 가짜 ‘나’를 두고 실재한다고 고집하는 아집(我執)을 부정하는 것이다.

     • 법공(法空) ― 객관세계의 일체법이 공함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을 깨뜨리는 것이다.

     • 구공(俱空) ― 이러한 아공, 법공마저도 버리고 초월해서 공(空)하다는 생각까지도 비워 마음자리의 본성에 계합(契合)함을 말한다. 필경공(畢竟空)과 비슷한 말이다.---→삼공(三空), 필경공(畢竟空) 참조.

          

*구구상투(句句相投)---→‘기기상응(機機相應) 구구상투(句句相投)’ 참조.  

    

*구극(究極)---진리의 가장 오묘하고 깊은 경지를 말한다. 진리의 마지막 경지까지 도달해 더 이상의 것이 없는, 최고라는 의미이다. 로서, 궁극(窮極)과 같은 의미이다.---→궁극(窮極) 참조.

            

*구나발마(求那跋摩, Gunavarman, 367~431)---공덕개(功德鎧)라고도 한다. 고대 불교가 성행하던 계빈국(罽賓國, 현 카슈미르) 왕족 출신으로, 일찍이 출가에 경ㆍ율ㆍ논 삼장에 밝았다. 구나발마는 30세 때 계빈 왕이 후사 없이 타계하자, 사람들은 종실인 그에게 계위할 것을 간곡히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사양하고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얼마 후 홀연히 사자국(獅子國, 현 스리랑카)에서 배를 타고 사파국(闍婆國, 현 수마트라나 자바)에 이르러 전교를 했다. 그리고 다시 424년 해로로 중국 남송(南宋)에 왔다. 그 후 기원사(祇洹寺) 등지에서 역경(譯經)에 전념해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사분비구니갈마법(四分比丘尼羯磨法)>,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 등 다수의 역서를 남겼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산스크리트어 Gunabhadra, 394~468)---중부인도출신 승려. 공덕현(功德賢)이라고도 한다. 바라문족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천문ㆍ수학ㆍ의술ㆍ주술(呪術), 오명론(五明論) 등에 정통했으며, <아비담잡심론(阿毘曇雜心論)>을 읽고 불교에 귀의, 대승불교를 공부했으며, 435년에 스리랑카를 경유 해로로 남송(南宋=劉宋)으로 와서 경전번역에 종사했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승만경(勝鬘經)>, <능가경(楞伽經)>, <대법고경(大法鼓經)>, <화엄경(華嚴經)> 등 중요한 불경을 번역했다.

        ※오명론(五明論)---내명(內明)ㆍ인명(因明)ㆍ성명(聲明)ㆍ의방명(醫方明)ㆍ공교명(工巧明)의 다섯 학문을 합친 말이다. 내명(內明)은 불교학이고, 인명(因明)은 불교논리학이며, 성명(聲明)은 문법과 음률에 관한 학문이고, 의방명(醫方明)은 불교의학, 공교명(工巧明)은 건축학이다. <오명론>은 위(魏)의 명제(明帝) 때에 파두마국(波頭摩國)의 삼장율사(三藏律師) 양나발타라(攘那跋陀羅)가 사나야사(闍那耶舍)와 같이 한역했다. 여기서 명(明)은 학문이란 뜻이다.

 

*구념심행(口念心行)---<육조단경>에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심행(口念心行)하라.”는 말이 나온다. 또 <선가귀감 52>에 “염불(念佛)이라 하는 것은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고, 마음으로 할 때 비로소 염불이 된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에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라고 했다. 즉, 구념심행이란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실행해서 마음과 입이 합치돼야 함을 말한다. 이것이 염불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마하반야바라밀” 혹은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마음은 집에도 갔다가 작년에 놀러갔던 바닷가에도 갔다가, 또 과거로도 갔다가 미래로도 갔다가, 이러면 그것은 진정한 염불이라고 할 수가 없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든 관세음보살을 염하든 자기가 염하고 있는 소리를 자기가 들어야 된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구담(瞿曇)---고타마(산스크리트어 Gautama)의 음역, 즉 석가모니 종족의 성씨(姓氏)을 말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를 구담씨라고도 한다.

    

*구담승가제바(瞿曇僧伽提婆)---구담승가제바는 4세기 말 인도 계빈국(현 카슈미르지역) 출신으로 중국식 이름으로는 중천(衆天)이라고 하는데, 전진(前秦)시대에 중국에 와서 혜원(慧遠), 축불념(竺佛念) 등과 함께 주로 논서를 번역했다. 그는 중국에 머물면서 불전을 강의하며 중국어를 공부하는 도중, 기존 <아함경> 번역이 미비한 점을 발견하고 <중아함경(中阿含經)>과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등도 번역했다.

      

*구두선(口頭禪)---입에 붙은 선(禪)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답게 공부하고 깨칠 따름이지,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 따위는 필요치 않은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하는 것을 구두선이라 한다. 즉, 수행은 하지 않고, 선(禪)에 대해 장황하게 말만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조사어록에 담겨있는 구절의 참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언구(言句)에 현혹돼 마치 깨달음 얻은 양 입으로만 떠드는 것을 말한다. 입으로만 수행하는 선이라고 매도하는 선어(禪語)인데, 이 구두선 폐해 때문에 야호선(野狐禪)이니 앵무새선이니 하는 유사한 선어들도 나왔고, 공염불이란 말도 나왔다.---→문자선(文字禪) 참조.

    

*구루(산스크리트어 Guru)---힌두교, 불교, 시크교 및 기타 종교에서 스승을 일컫는 말로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지칭한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생님을 통칭하는 용어이고, 서구사회에서는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철학과 종교지도자들을 지칭한다.

    

*구루요가(Guru Yoga)---‘구루(Guru)’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스승(mentor)을 의미하며, 구루요가는 스승과 하나 되기 위한 명상이다. 즉, 명상으로 스승을 심상화(心象化)하는 수행법이 구루요가이다. 스승이 내 속으로 들어오기를 청하고, 그의 신성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그와 하나로 결합하는 수행으로서, 상상 속에서 스승과 결합하면, 나와 스승은 더 이상 둘이 아니다. 내가 스승이 되고, 내가 붓다가 된다.

    이상으로 볼 때, 구루요가란 참된 스승을 찾아서 스승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진리의 가르침대로 따라 사는 것이다. 즉 구루(스승)의 본성과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법으로 이 수행을 통해서 스승의 깨달은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계합되는 방법을 얻는다. 티베트불교에 있어서 수행의 진수는 ‘구루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 紫羅帳裏撒珍珠)---<화엄경>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 나오는 말이다. 아홉 가지 종류의 중생들이 한 법계에 함께 살아간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더없이 아름답고 존귀하며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즉,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인데,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돼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해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비스님

   불교는 여하한 명목으로든 살상을 금하고, 따라서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담을 쌓아놓은 것을 보면 큰 돌은 큰 돌대로 작은 돌은 작은 돌대로 각자 맡은 역할을 모두 잘 하고 있다. 작은 돌이 필요한 곳에는 큰 돌을 깨서 작게 만들어 쓴다. 그 작은 돌이 없으면 큰 돌은 그 자리를 지탱할 수가 없다. 큰 돌 작은 돌이 각기 자기 역할을 다하기에 튼튼한 담이 된다.

   이와 같이 사람도 못나고 잘난 사람이 따로 없다. 못난 사람도 그 사람은 그 위치에서 그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작은 돌을 작다고 빼어버리면 담이 무너지듯, 못난 사람이 없으면 잘난 사람 자리도 지탱하기 어렵다.   

   아홉 종류의 생명들도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불상(佛像)이 소중한 것이라고 해서 일체 사물들로 모두 불상을 만든다면 어찌 되겠는가. 불상은 탁자 위에 올려놓아야 빛을 낸다. 탁자가 없는 불상은 존재 가치가 없다. 탁자나 불상이나 동등하기 때문이다. 다만 역할이 다를 뿐이다. 온갖 생명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모두가 아름답다.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이 값지다. 하나하나가 모두 비단 위에 진주를 쏟아놓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구류중생(九類衆生)---중생(衆生)은 인간에만 국한될 수는 없고, 정확하게 ‘살아있는 모든 것’이며, 요새 말로는 생물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생물 중에서도 식물은 제외되며 동물만을 지칭한다(우리말 짐승이 중생에서 전화된 것임). 전통적으로 인도에서는 중생, 즉 ‘사뜨바(sattva)’를 9종류로 나누어, 크게 세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첫 카테고리는 태어나는 방식에 관한 분류로 4종류가 들어간다.

     1) 난생(卵生) - 알에서 태어나는 것임.

     2) 태생(胎生) - 자궁의 태반에서 태어나는 것임.

     3) 습생(濕生) - 물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물고기, 모기 등의 곤충류가 이에 속함.

     4) 화생(化生) - 아무 근거 없이 갑자기 홀연히 태어나는 것으로 도깨비나 신, 귀신 그리고 지옥의 존재와 같은 것임.

    두 번째 카테고리는 형태의 유무에 관한 분류로서 다음 두 종류가 들어간다.

     1) 유색(有色) - 형태를 가진 모든 생물.

     2) 무색(無色) - 형태가 없는 신(神), 귀신과 같은 것들.

    세 번째 카테고리는 지각의 유무로 분류되는 것으로서 마지막 3종류가 들어간다.

     1) 유상(有想) - 오관(五官)의 지각을 가진 존재.

     2) 무상(無想) - 물리적 오관(五官)의 지각을 갖지 않는 천상의 존재들.

     3)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 - 지각을 가졌다고도 안 가졌다고도 말할 수 없는 지고(至高)의 신(神)들.

    이렇게 해서 일체중생의 종류를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유색(有色), 무색(無色), 유상(有想), 무상(無想),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아홉 가지로 분류한 것을 구류중생이라 한다.

     

*구리태자(拘利太子, 산스크리트어 Koliputra)---붓다의 숙부 가비라성 곡반왕(斛飯王)의 맏아들로서 붓다에겐 사촌 동생이다. 붓다 성도 후 처음으로 녹야원에서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의 한 사람으로 마하나마(Mahanama) 혹은 마남구리(摩男拘利)라고도 하며, 구리태자(俱利太子)라고도 한다. 오백나한의 한 사람으로 마하남(摩訶男, Mahanama) 존자라고도 한다. 석가족의 마지막 왕 마하나마(Mahanama)와 이름과 같다. ---→‘다섯 비구(五比丘)’ 참조.

     

*구마라다(鳩摩羅多, 鳩摩羅陀, 산스크리트어 Kumarālabdha, ?~AD 22)---북인도 덕차시라(德叉尸羅, takṣaśila) 출신, 혹은 대월지국(大月氏國) 출신이라고도 하는 학승으로, 인도불교 19대 조사(祖師)이고, 경량부(經量部)의 논사(論師)였다.

    8가지 신통력이 있어서 제2 붓다로 불리기도 했다. 브라만 출신으로 출가해서 승가야사(僧伽耶舍)에게 배우고, 여러 논(論)을 지어 포교에도 힘썼다. 일찍이 경전의 깊은 뜻을 연구, 하루에 3만 2000개의 말을 외어 썼다고 하며, 경전의 깊은 뜻을 연구해 <일출론(日出論)>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성실론(成實論)>을 지은 하리발마(訶梨跋摩)와 사야다(闍夜多)에게 법을 전했다고 한다.

        

*구마라습(鳩摩羅什, 쿠마라지바/Kumārajīva, 344~413)---중국명 동수(童壽)이다. 아버지는 인도인 구마라염(鳩摩羅炎)이며, 어머니는 구자국(龜玆國) 왕의 누이 기바(耆婆)였다. 태어난 곳은 구자국(쿠차)으로서 현재 중국 신강성 위그루 자치구에 속하는 곳이다.

   아버지가 카슈미르 출신으로 대학승인 쿠마라야나(Kumārāyana)였는데, 구차국에 전도하러 왔다가 왕실의 꼬임에 빠져 환속해 공주와 결혼하고 구마라습을 낳았고, 구마라습을 출가시켜 삼장법사로 키웠다.

   구마라습은 7세에 출가했으며, 북인도 계빈국(罽賓國-현 카슈미르)으로 가서 소승불교를 배웠다. 귀국 도중 카슈가르에서 대승불교, 특히 중관학(中觀學)을 배웠고, 구자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대승불교선양에 전념했으며, 그의 명성은 서역제국은 물론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이에 전진(前秦) 왕 부견(符堅)은 구마라습을 데려올 욕심으로 383년 여광(呂光)을 시켜 구자국을 치게 했다. 그리하여 여광이 구마라습을 데리고 귀국 길에 올랐으나 그 사이 전진(前秦)이 패망했으므로 여광은 고장(姑臧)이란 곳에 머무르면서 독립해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구마라습도 여광에게 붙들려 그대로 양주에서 12년간을 머물렀다. 고생을 했지마는 다행하게도 이때 한자(漢字)와 중국어에 통달하게 됐다. 여광(呂光) 이후, 여소(呂紹)ㆍ여찬(呂纂)을 지나 여융(呂隆)에 이르러 후진(後秦) 황제 요흥(姚興)에게 항복하게 되자, 구마라습은 요흥의 영접(迎接)을 받아 장안(長安)에 들어갔다. 그때가 서기 401년이었다. 요흥은 구마라습을 국사로 예우하고 경(經)ㆍ논(論)을 번역하게 했다. 요흥의 뜻에 따라 중국여성과 혼인, 환속한 이후 그는 경전 한역에 전념하면서,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미타경> 등 여러 대승경전과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십주비바사론>, <성실론> 등 논서를 비롯해 경전과 논서 70부 384권을 역출함으로써 중국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위대한 역경승이었다. 그의 번역은 간결하고 유려한 달의적(達意的) 번역이어서 오늘날까지 많이 읽히고 있으며, 특히 대승 논부는 이때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졌고, 그는 격의불교(格義佛敎)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구마라습은 당의 현장(玄奘)과 함께 2대 역성(譯聖)으로 불리며, 또한 진제(真諦), 불공금강(不空金剛)과 함께 4대 역경가(譯經家)로 꼽기도 한다. 구마라습 문하에는 3천여 명이 있었으며, 도생(道生)ㆍ승조(僧肇)ㆍ도융(道融)을 비롯한 많은 고승이 배출됐다.

   

*9만(九慢)---<구사론(俱舍論)>에 나오는데, 만(慢)을 7만(七慢: 일곱 가지 거만) 또는 9만(九慢: 아홉 가지 거만)으로 나누는데, 9만은 다음과 같다.

     ①아승만(我勝慢) ― 나는 그보다 잘 났다는 자만감.

     ②아등만(我等慢) ― 나는 그와 대등하다는 생각.

     ③아열만(我劣慢) ― 나는 그만 못하다는 열등감.

     ④유승아만(有勝我慢) ― 남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

     ⑤유등아만(有等我慢) ― 남이 나와 대등하다는 생각.

     ⑥유열아만(有劣我慢) ― 남이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

     ⑦무승아만(無勝我慢) ― 남이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생각.

     ⑧무등아만(無等我慢) ― 남이 나와 대등한 것이 없다는 생각.

     ⑨무열아만(無劣我慢) ― 남이 나만 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

    이런 아홉 가지 잘못된 편견이 9만이다. 모든 사물의 장단점을 보지 못하고 단편만 보는 것으로 이런 편견은 깨달음을 얻는데 장애가 됨을 경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만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사만(四慢)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밖에 칠만(七慢)도 있다.---→사만(四慢), 칠만(七慢) 참조.

 

 

*구법승(求法僧)---인도(天竺國)로의 구법여행은 대략 AD 3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구법승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주자행(朱子行)을 비롯해 여러 순례승들이 서역을 찾아 나섰다. 주자행은 AD 260년 무렵 <도행반야경>의 원본을 구하기 위해 서역의 우전국(于闐國-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서쪽, 지금의 和田 지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방광반야경>을 구해 282년 그의 제자 법요(法饒)를 시켜 중국(낙양)에 전했으며, 그는 거기서 80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보운(寶雲)이 397년 서역을 향했으며, 지맹(智猛)은 404년 동지 15명과 더불어 인도로 향했고, 지엄(智嚴)은 427년 인도로 향했다. 그리하여 후세에 그 이름이 전해진 스님의 숫자만 해도 169명에 이르고, 의정(義淨) 스님의 저서인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올라 있는 스님만도 57명이다. 이 중에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스님도 올라있다. 이 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구법여행을 떠났다.

   당시 인도로 여행하는 길은 바다로 가는 길과 육로로 가는 두 길이 있었다. 육로로 가는 길도 티베트-미얀마를 경유하는 길과 실크로드를 따라 가는 길이 있었다. 주로 실크로드 길을 택했는데, 타림분지-파미르고원을 넘어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을 거쳐 인도로 가는 험한 길이었다. 법현 스님은 그의 <불국기(佛國記)>에서 실크로드의 험악한 풍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악귀(惡鬼)와 열풍(熱風)이 많다. 이와 만나면 모두 죽어남은 것이라고 없다. 위엔 날아다니는 새가 없고, 땅에는 달리는 짐승이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방향조차 감 잡을 수 없다. 다만 사람이 죽어 썩은 뼈를 표식으로 삼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현장 스님도 실크로드의 험악함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사막의 모래는 흘러 날아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 바람 따라 이루어진다. 사람의 지나간 자취를 찾을 수 없어 길을 잃는 일이 허다하다. 사방이 망망대해 같아서 갈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물이 적고 열풍이 많다. 바람이 일어나면 사람과 짐승이 정신이 희미해져 병에 걸린다. 이로써 목숨을 잃게 된다.』

    이와 같이 당시 인도로의 여행은 언제 어디서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길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구법승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법승은 끊이지 않았다. 이들 구법승이 남긴 여행기가 현재까지 전해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구법승의 여행기>

    ① 법현(法顯, 317~420) – 불국기(佛國記). 역유천축기전(歷遊天竺記傳)

    ② 현장(玄奘, 602~664) -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서유기).

    ③ 혜초(慧超, 704~787) - 신라 승,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④ 의정(義淨, 635~713) -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①, ②, ③을 3대 여행기라 하고, ④까지를 4대 여행기라 한다.

 

    • 법현(法顯)은 육지로 갔다가 바다로 돌아왔다. 법현은 동진(東晉)시대 인물로 항상 중국에 율장이 부조함을 개탄하다가 혜경(慧景), 도정(道整), 혜달(慧達) 등과 뜻을 모아 AD399년 장안을 출발했다. 돈황(燉煌)을 거쳐 타크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로 들어갔다. 인도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순례하고, 계율과 범어를 배우고, 인도를 비롯한 30여개국을 여행한 후 413년 배로 귀국했다.

    • 현장(玄奘)은 당나라시대 12세에 출가해 여러 경론을 배웠으나 그 내용들에 서로 모순이 있어 의심스러움으로 현지에 가서 직접 배우고자 629년 출발했다. 그리하여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633년 인도에 도착했다. 그 역시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 참배하고, 나란타대학에서 계현(戒賢) 법사로부터 유가론, 인명론, 구사론 들을 3년 동안 학습했다. 그는 17년 동안 130여개국을 순례하고 645년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처님 진신사리 150과와 대ㆍ소승의 경ㆍ율ㆍ논 520질 657부 등 많은 경론과 불상을 가져왔다.

    • 의정(義淨)은 역시 당나라 스님으로 671년 37세 나이로 바닷길로 인도에 가서 30여개국을 여행하며 여러 성지를 둘러봤다. 그리고 나란타대학에서 대ㆍ소승의 깊은 이치를 공부했다. 그는 불학(佛學) 연구뿐만 아니라 천축 의약을 연구해 의학 분야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20여년을 인도에 머물다가 694년 범본 경ㆍ율ㆍ론 삼장 400부를 가지고 해로로 귀국했다. 이후 역경에 종사하며 <화엄경> 등 56부 230권을 번역했다고 한다. 의정(義淨)은 그의 저서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641년 부터 691년까지 무려 50여 년 동안 57 명의 스님들이 구법하기 위해 인도를 순방한 사적(事蹟)을 선후를 가려서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당시의 인도 및 동남아시아 등지의 사정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문화교류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 혜초(慧超)는 신라 승려이긴 하지만 언제 중국으로 건너갔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신라 경덕왕 때 중국에 건너가 밀교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서 불도를 배웠다. 그는 금강지의 권유를 받아 723년(19세), 어린 나이로 바닷길로 수마트라와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로 가서 부처님 유적을 둘러보고 나란타대학에서 수학한 후, 오천축국(五天竺國)과 페르샤, 아라비아까지 순례했다. 귀국은 실크로드를 따라 733년에 중국에 돌아왔다. 10여년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저술해 담았다. 중국에 와서 오대산(五臺山)에 있었으며, 금강지의 역장(譯場)에서 많은 불경을 번역했다.

    1906~09년 사이에 프랑스의 학자 펠리오(Pelliot)가 중국 간쑤 성[甘肅省] 지방을 탐사하다가 돈황(敦煌) 명사산 천불동(鳴沙山千佛洞)의 석실(石室)에서 앞뒤가 떨어진 책 2권(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구병시식(救病施食)---구병시식(救病施食)은 다른 말로 구명시식(救命施食)이라고도 한다. 구병시식이나 구명시식은 같은 의미로 "병을 낫기 위해 음식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즉, 병든 환자가 병을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불ㆍ보살의 신묘한 가피력으로 축귀(逐鬼)하는 것을 구병시식이라 부른다.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제례의식으로서 시식(施食)이란 지옥에서 굶주린 고통 받는 가엾은 고혼들에게 공양물을 베풀어 그들의 원한을 달래는 일이다.

   사람이 병이 들어 병원치료로서도 잘 났지 않을 때나 접신 빙의(憑依-귀신 들리는 것)가 돼 원인 모를 여러 가지 증세의 병들로 앓거나 그로 인해 집안이 이상하게 뭔가 잘못 돼가는 이러한 경우에 조상 천도재(薦度齋)와 더불어 별도의 의식을 행해서 이 고통에서 헤어나게 하는 의식을 말한다. 즉, 귀신병이라고 하는 빙의현상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불교의식이다. 그러나 이 구병시식은 아무나 치루는 의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들을 다루는 의식이므로 그만한 법력이 있어서 치루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효험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신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빙의(憑依), 천도재(薦度齋) 참조.

        

*구분교(九分敎, 빠알리어 navaṅga-sāsana)---구부경(九部經)이라고도 한다.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엔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기억해 전승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도 어떤 통일성을 갖추어 정비할 필요성이 요구됐고, 그 결과 기억하기 편리하도록 분류했다. 그것이 구분교(九分敎) 혹은 십이분교(十二分敎)라는 분류이다. 이 분류는 제자들이 기억한 부처님의 법문을 형식상으로 정리해 기억하기 편리하게 하는 동시에 경전으로서의 체계를 정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경전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아홉 가지로 분류한 것이니 부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이란 말이기도 하다. 구분교(9分敎)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법화경>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구분교는 남전경장(니까야)에만 나오고 북전경전(아함경)에는 십이분교(12分敎)가 나온다.---→십이분경(十二分經) 참조.

     ① 수다라(修多羅, 산스크리트어 sūtra 팔리어 sutta) ― 경(經) 혹은 계경(契經)이라 번역. 산문체로 설한 것.

     ② 가타(伽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 게(偈)라고도 음사. 게송(偈頌)·풍송(諷頌)·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함.

     ③ 본사(本事, 산스크리트어 itivṛttaka) ― 불제자의 과거 인연을 설한 부분.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이 여기에 해당함.

     ④ 본생담(本生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ātaka) ― 붓다의 전생 이야기.

     ⑤ 미증유(未曾有, 산스크리트어 adbhuta) ― 붓다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설한 부분. 희귀한 공덕·기적에 관한 교설임.

     ⑥ 인연담(因緣譚, 산스크리트어 nidāna) ― 붓다를 만나 설법을 듣게 된 인연을 설한 부분. 서품(序品)이 여기에 해당함.

     ⑦ 비유(譬喩, 산스크리트어 avadāna) ― 비유로써 가르침을 설한 부분. 불제자에 관한 과거세(過去世) 이야기. 이야기가 교훈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⑧ 기야(祇夜, 산스크리트어 geya 팔리어 geyya) - 응송(應頌)·중송(重頌)이라 번역.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

     ⑨ 우파제사(優婆提舍, 산스크리트어 upadeṣa) ― 논의(論議)라고 번역. 교리에 대해 문답한 부분. 경(經)의 해설과 주해(註解).

        ※여시어(如是語) - 산스크리트어 iti vuttaka 를 번역한 말로 이제불다가(伊帝弗多迦)라 음역되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전 첫 머리에 보면 여시아문(evam maya-srutam)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말은 곧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말 속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여시어(如是語)는 정형문구(定型文句)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12분교에는 9분교에 없는 베달라(방광), 우다나(자설), 수기(授記) 세 가지가 추가 된다. 십이분교(12分敎)는 북전(北傳)의 문헌(산스크리트어 및 한역 경론)에만 나오고, 구분교는 남전경장(니까야)에 나온다.

     

     ⑩ 방광(方廣) : 베달라(vedalla, 毘陀羅) ―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중층적으로 기뻐하며 질문하는 교리 문답. 정형구(定型句)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⑪ 자설(自說) : 우다나(udāna) ― 부처님이 감흥적(感興的)으로 서술한 시(詩).

     ⑫ 수기(授記) 혹은 화가라(和伽羅) ― 산스크리트어 베야까라나(vyākaraṇa)의 음사. 수기(授記)라고 번역. 기설(記說)이라고도 한다. 경의 말뜻을 문답식으로 해석하고, 부처가 제자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

   

*구비(九譬)---<법화경>의 9가지 비유를 말한다. 소승의 가르침에서는 성문승 혹은 연각승, 보살승을 증득해 번뇌를 여의고 열반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했으나, 대승의 진리를 펴는 <법화경>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각자에게 있는 불성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서 확신해서 느끼고 그것을 환히 보고 깨닫는 성불(成佛)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 중생들이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매우 실감나고 격조 높은 비유를 많이 담고 있다. 즉, 법을 말하고, 비유(譬喩)를 들어 경전을 뒷받침하도록 비유를 들고 있다. 그 중 이름난 아홉 가지 비유를 구비라고 한다.

    구유(九譬)는 법화칠유(法華七喩)에 ⑧착정비유(鑿井譬喩), ⑨부소비유(父少譬喩), 둘을 더한 것이다.

     ① ‘비유품(譬喩品)’에 나오는 화택유(火宅喩).---→삼거가(三車家) 참조.

     ② ‘신해품(信解品)’에 나오는 궁자 비유(窮子譬喩).

     ③ 약초유품(藥草喩品)에 나오는 약초비유.

     ④ ‘화성유품(化城喩品)’에 나오는 화성비유.

     ⑤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 나오는 계주비유(繫珠譬喩).

     ⑥ ‘안락행품(安樂行品)’에 나오는 왕계비유(王繫譬喩).

     ⑦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나오는 의사비유(醫師譬喩).

이상은 칠유와 같다.---→‘법화칠유(法華七喩)’ 참조.

     ⑧ ‘법사품(法師品)’에 착정비유(鑿井譬喩)가 나온다. 우물을 팔 때 깊이에 따라 마른 흙에서 차츰 젖은 흙으로, 다시 물기가 많은 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이 가깝다는 것을 알게 돼 결국 물을 찾아낸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점차 일승에 이르는 단계를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착정비유’ 대신 ‘맹인비유(盲人譬喩)’를 넣는 경우도 있다. 맹인비유(盲人譬喩)는 선천적인 맹인이 약초로 시력을 얻고 나서 점차 이전의 무지를 각성해 진실한 여래의 지혜를 얻는다는 비유이다.

     ⑨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 부소비유(父少譬喩)가 나온다. 부처님이 성도하고 교화한 지 40여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땅으로부터 수많은 보살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언제 이렇게 많은 보살들을 교화했느냐"는 감탄으로, 스물다섯의 젊은이가 백 살 된 노인을 보고 아들이라 하고, 백 살 된 노인 또한 그 젊은이를 보고 아버지라 한다면 믿지 않는 것처럼 이 경의 가르침이 몹시 심오함을 비유한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원명이 아비달마구사론(산스크리트어 Abhidharmakosa-sastra, 阿毘達磨俱舍論)이다. 즉, 아비달마구사론이란 ‘아비달마코샤(anhidharmakośa)'를 음역한 것이다. 그리고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이라고도 한다.  

   <청정도론>은 남방 상좌부불교 부동의 준거가 되는 주석서이고, <구사론>은 경량부적인 견해를 수용한 설일체유부의 논서로서 소위 소승불교의 대표적 논서이다.

   AD 4세기 경 세친(世親, 바수반두, 320~400?)이 설일체유부의 교의체계를 간결하게 요약 해설한 백과사전식 논서인데, 설일체유부 교의를 체계화함에 있어서 비바사사(주석가)의 설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부파 특히 경량부설까지도 참조해 비판적 태도로 저술한 점에 특색이 있다. 세친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속한 인물이었으며, 훗날 대승불교 유식파로 전향하기 전 지은 것이 <구사론>이다. 고ㆍ집ㆍ멸ㆍ도 사성제(四聖諦)를 큰 축으로 해서 불교의 방대한 교설을 정리했으며, 계(界), 근(根), 세간(世間), 업(業), 수면(隨眠), 현성(賢聖), 지(智), 정(定), 파아(破我)의 9품으로 구성돼 있다.

    <구사론>은 불교철학 또는 불교의 교상(敎相)과 교학체계를 배우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해해야할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논서이다. 이것은 'dharma' 즉 '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 혹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를 뜻하고, 그것을 담아서 전승(傳承)한 것이 아가마(아함)이다. 그리고 이 아가마에 담긴 'dharma'를 자료로 삼아 그것에 대해서(abhi-) 철학적으로 연구해 체계화시킨 '대법(對法)'으로서 불교사에서 가장 잘 정돈된 교학체계서이다.

   후대에 발달된 중관학(中觀學)이나 유식학(唯識學)도 <구사론>을 바탕으로 다르마를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사론>을 무시하고는 중관(中觀)이나 유식(唯識)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대승의 교학체계인 유식학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학을 중관의 공사상(空思想)에 의해 비판을 한 다음에 그것을 대승적으로 변용시킨 대승의 아비다르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 교학자들은 옛날부터 '구사 팔년(俱舍八年) 유식 삼년(唯識三年)'이라는 말이 시사 하듯이 전통적으로 유식학에 뜻을 둔 불교학자는 아비달마불교의 꽃이자 열매인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을 먼저 공부하는 것이 순서였다.

   인도 승려 진제(眞諦, 파라마르타/Paramartha, 499~569)는 중국 남조(南朝) 양 무제(武帝)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와서 한역한 것이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이다. 이를 줄여서 <구사석론(俱舍釋論)>이라 한다. 그리고 그 후 당나라 때 현장(玄奘)이 이를 다시 번역해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라 했고, 줄여서 <구사론>이라 했다. 그래서 진제의 번역을 구구사(舊俱舍)라 하고, 현장의 번역을 신구사(新俱舍)라 한다.

    이 책은 명실상부 부파불교의 교학을 대표하는 명저로서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교리 문제에서 매우 권위 있는 저서로 중시돼왔고, 부파교학의 표준입문서로 활용돼왔다. <구사론>이 불교학의 기초이론으로써 오랫동안 평가돼온 것은 그 교의가 정연한 체계로 논술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600개의 게송(偈頌)과 각 송에 대해 세친 자신이 붙인 8,000연의 산문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사론>은 기본적으로 아비달마7론이나 <대비바사론>을 근거로 하면서도, 이전의 논서와는 그 체계를 달리하는 <아비담심론>과 이를 개량 증보한 <아비담심경론>ㆍ<잡아비담심론>의 조직과 내용을 토대로 해 작성된 논서이다.” - 권오민

    그리고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7대 아비달마 논서[7론(七論)]에 대한 입문서이자 체계적 요약서로서, 철학 ‧ 우주론 ‧ 윤리학 ‧ 구원론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는 로마가톨릭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神學大全)>이 차지하는 위치에 비견돼왔다. 남방불교의 <청정도론>에 대비되는 북방불교의 아비달마를 집대성한 대표적 논서이고,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남아있다.

    <구사론>이 저술돼 반포된 직후 한편으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설을 비판하고자 설일체유부의 정통학설을 밝힌 논서로서 세 종류가 현존한다. 현장(玄奬)의 한역(漢譯)으로만 존재하는 카슈미르 정통유부의 종장 중현(衆賢, Sanghabhadra)이 지은<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俚論)>과<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그리고 아비달마의 등불이라는 뜻의 작자 미상인 <아비달마디파(Abhidharmadipa)>가 바로 그것이다.

    <구사론>은 소위 말하는 소승불교의 근본이론서이기도 하지만 북방의 스님들도 ‘구사8, 유식3’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사론 공부에 8년을 바치라고 했다. 옛날에 이력종장(履歷宗匠)이 되기 위해서는 15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8년을 <구사론>을 공부하고, 3년은 대승 아비달마라 불리는 유식공부를 하고, 나머지 4년을 대승 경론을 공부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아비달마는 법을 이해하는 핵심중의 핵심으로 옛날 중국의 큰스님들도 강조한 바 있다.

        ※이력종장(履歷宗匠)---스님이 되면 강원에서 불경을 배워야 하는데, 정한 바 경전을 모두 배운 사람, 즉 정해진 경전을 다 배운 종사를 말한다. 이론에 밝은 큰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구산(九山 秀蓮, 1909∼1983)---현대한국불교 수행자들의 사표. 송광사, 백양사, 해인사, 동화사 금당선원 등에서 수십 년 안거를 행한 선사다. 53년 통영 미래사를 창건, 62년 동화사 주지, 69년 송광사에 조계총림을 개설한 후 초대방장을 맡았다. 73년 불일국제선원을 개원한 이래 79년 미국 LA 고려사, 82년 스위스 제네바 불승사, 미국 카멜 대각사를 개원하는 등 해외포교에 진력해 큰 성과를 남겼다. 이와 함께 69년 불일회를 창립해 총재에 취임한 후 국내 대중포교 현대화에도 큰 획을 그었다. 효봉 스님 법맥을 이은 구산 스님은 한국 선불교 중흥에 크게 이바지했고, 송광사 중창불사를 이뤄냈다.

      

*구산선문(九山禪門)---신라말기 부패해가는 귀족중심의 교종(敎宗)에 대항해 일어난 선종 사찰을 의미한다. 이들은 달마선법을 계승해 깊은 산속에 참선(參禪)을 중심으로 수행 도량을 일으켰다. 특히 신라 말, 고려 초에 흥기한 지방 호족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기풍인 선법을 획기적으로 진작시킨 아홉 사찰(구산선문)은 아래와 같다.

     1. 가지산문(迦智山門) ― 도의(道義) ― 장흥 보림사

     2. 동리산문(桐裏山門) ― 혜철(慧徹) ― 곡성 태안사

     3. 실상산문(實相山門) ― 홍척(洪陟) ― 남원 실상사

     4. 봉림산문(鳳林山門) ― 현욱(玄昱) ― 창원 봉림사

     5. 사자산문(師子山門) ― 도윤(道允) ― 영월 법흥사

     6. 성주산문(聖住山門) ― 낭혜(朗慧) ― 보령 성주사

     7. 사굴산문(闍崛山門) ― 범일(梵日) ― 강릉 굴산사

     8. 희양산문(曦陽山門) ― 도헌(道憲) ― 문경 봉암사

     9. 수미산문(須彌山門) ― 이엄(利嚴) ― 해주 광조사

       

*구상(九想)---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옛날 수도자들은 인생의 무상을 똑바로 보기 위해 백골관 혹은 부정관(不淨觀)이란 수행방법을 썼다. 수도자들은 산이나 묘지로 찾아가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송장 곁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을 마주 내려다보고 앉아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데, 썩어가는 시체를 보는 데에도 그 순서가 있으니 이것을 구상(九想)이라 한다.

     ① 장상(脹想) - 죽은 자의 육체가 부풀어 팽창한 모습.

     ② 청어상(青瘀想) - 곪고 엉기는 검푸르게 변한 모습.

     ③ 괴상(壞想) - 시체가 썩어 뼈에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모습.

     ④ 혈도상(血塗想) - 파괴된 시신이 이후 혈육으로 땅이 얼룩져 있는 모습.

     ⑤ 농란상(膿爛想) - 부패돼 고름으로 문드러지는 모습.

     ⑥ 담상(噉想) - 조수(鳥獸)가 와서 시신을 먹는 모습.

     ⑦ 산상(散想) - 조수가 먹은 이후 시신이 나눠지고 깨어져 흩어진 모습.

     ⑧ 골상(骨想) - 혈육이 없어지고 마침내 백골이 뒤죽박죽 돼 있는 모습.

     ⑨ 소상(燒想) - 백골 또는 불에 탄 재가 돼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

    이쯤 되면 시체가 곧 나요, 내가 곧 그 시체이다. 시체가 욕심낼 것이 무엇이며, 자랑할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실체일진대 당신이 자랑하는 학벌, 재산 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상과 같이 시신이 아홉 가지 모습으로 썩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과정이 구상이다. - <중아함경(中阿含經)>

    

*구상차제(九相次第)---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인과업보(因果業報)의 법칙에 따라 생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부질없는 생각 때문에 삶과 죽음 그리고 고통의 바다를 유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을 잘못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괴로움을 받기까지의 인과(因果)의 연쇄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구상차제라는 9단계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기신론>에서의 아뢰야식은 유식학파에서 말하는 단순한 장식(藏識)의 의미가 아니라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서 각(覺)과 불각(不覺)의 두 뜻을 지니며 일체법을 섭수하고 일체법을 낳는 근본이 되는 식이다. 여기서 불각은 다시 근본불각인 무명(無明)과, 무명에서 비롯한 지말불각인 삼세육추(三細六麤)로 나눠지는데, 이 삼세육추가 바로 구상차제이다.

     따라서 구상차제(九相次第)란 근본불각인 무명에서 시작된 미혹함이 지말불각인 삼세육추라는 아홉 가지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으로서, 우리가 진여라는 본마음에서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와 육도윤회를 거듭해온 연기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삼세육추(三細六麤)란 세 가지의 미세한 마음작용과 여섯 가지 거친 마음작용을 말한다. 삼세육추 가운데 최초의 무명업상(無明業相)이 가장 미세한 것이며, 이하로 점차로 거칠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삼세육추가 나오게 되는 원인인 근본무명은 무엇을 깨닫지 못해서 불각이라 하는지 <기신론>의 구절을 인용해 보자.

    「불각이라는 것은 이른바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망념이 있게 된다. 그러나 망념은 자체의 모습이 없어서 본각을 떠나 있지는 않다.」라고 하고 있다. 즉, 불각은 진여 혹은 진리가 절대적이고 평등해 생각 이전의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근본불각에 의해 진여는 평등한 것에서 조금씩이나마 움직여간다. 그리하여 지말불각인 삼세육추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이다.---→삼세육추(三細六麤) 참조.

    

*구생기(俱生起)---태어남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 따라서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질 또는 번뇌를 말한다. 후천적인 분별에 의한 번뇌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번뇌. 이에 반해,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것(번뇌)을 분별기(分別起)라고 한다.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성욕, 식욕 등과 같은 선천적이며 원천적인 번뇌를 말하며, 이는 묘각(妙覺)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소멸하게 되며, 동시에 성불의 경지에 오르면 완전히 정화되는 아주 끈질긴 번뇌이다. 출가자의 신행에 가장 큰 장애요소이다. 반대말 - 후천적인 번뇌[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

     

*구생연(俱生緣, 빠알리어 사하쟈따 빠짜야/sahajata-paccaya)---함께 일어나는 조건이라는 말인데, ‘구(俱)’란 두 가지 것이 얽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통상 마음이라 일컫는, 거기에는 마음의 주체가 되는 심왕(心王)과 그에 종속돼 있는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 마음부수)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광고를 보다가, “아! 이 게 그 로렉스 시계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심왕], 동시에 “그 시계 좋다, 가지고 싶다.” 하는 욕심이 일어난다[심소]. 이때 ‘롤렉스시계구나.’ 하는 것은 심왕이고, 좋다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심소이다. 이와 같이 마음은 혼자서는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심왕은 마음부수(심소)와 함께 일어난다. 이와 같이 함께 일어나는 관계를 구생연(俱生緣)이라 한다.

    

*구시나가라---→쿠시나가라(Kuśinagara, 拘尸那揭羅/구시나갈라) 참조.

     

*구시화문(口是禍門)---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라는 뜻인데, 말을 한 번 잘못 뱉으면 큰 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TV 중계를 하는 토론에 나온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향해, “나 당신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 한 마디가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박 후보의 승리에 보탬을 줬는가 하면, 이로 인해 이 후보는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이 게 바로 구시화문의 현상이다.

       

*98수면(九十八隨眠)---여기서 수면(隨眠)은 번뇌를 뜻한다. 그래서 98근본번뇌(九十八根本煩惱)라고도 한다. 근본번뇌를 3계(三界)와 5부(五部)의 측면에서 세분했을 때 얻어지는 98가지의 근본번뇌들을 말한다.

    그리고 모든 번뇌의 근본번뇌를 육수면이라 하는데,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견(見)이다. 여기서 견(見)을 다시 오견(五見)으로 세분해서 합치면 10수면이 된다. 10수면(근본번뇌)를 3계(三界)와 5부(五部)의 측면에서 세분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 98수면이다. 이와 같이 근본번뇌를 3계와 5부로 분별해 98수면을 세우는 것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10수면을 3계로 나누고, 다시 5부로 나누는 것이므로 10×3×5=150가지의 수면이 돼야 하지만, 10수면 가운데 3계 모두에 존재하지는 않는 수면이 있고, 또한 5부 모두를 갖추지 않은 수면도 있기 때문에 98가지가 된다. 그리고 98수면과 수번뇌인 10전(十纏)을 합한 것이 108번뇌이다.

        ※3계란 욕계 ‧ 색계 ‧ 무색계를 말하고, 5부란 견고소단(見苦所斷) ‧ 견집소단(見集所斷) ‧ 견멸소단(見滅所斷) ‧ 견도소단(見道所斷) ‧ 수도소단(修道所斷)을 말한다.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학설이다.---→5부(五部), 10수면(十隨眠), 10전(十纏) 참조.

 

*구업(口業)---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삼업(三業)의 하나이다. 업(業)은 인간이 짓는 행위를 말하며, 그 종류에 신업, 구업, 의업이 있고, 빛깔로는 선업(善業), 악업(惡業), 무기업(無記業-아무 뜻 없이 하는 행위)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신중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구업이다. 그래서 <천수경> 첫머리에 구업을 청정케 하려는 주문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놓아 더욱 강조한 듯하다.

     구업의 종류를 분별하자면, 거짓말(妄語)과 바른 말(正語), 이간질하는 말(兩舌)과 참되고 화합시키는 말(眞語), 남을 악담하는 말(惡語)과 사랑스런 말(愛語), 이익을 쫓아 아첨하는 말(綺語)과 실속 있는 진실된 말(實語)을 열거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삼업 중에서도 구업은 입만 열면 이뤄지고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해 마구 내뱉는 구습(口習)으로 인해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아주 일어난다. 오늘날 정제되지 않은, 마구 내뱉는 조악(粗惡)한 말들의 홍수가 이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말이란 우리의 생각과 감정, 뜻이나 사상 등을 나타낼 때 쓰이는 보편적 수단이다. 말은 또한 사람과 사람간의 의사소통의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는 말에 비견될 만한 것이 없다. 오늘날 문명시대에 온갖 언론매체, 인터넷, 스마트폰, SNS, 영상, 편지 등의 다양한 의사 전달 수단이 개발돼 응용되고는 있지만 뜻과 함께 정(情)을 담고 직접 바로 상대에게 건넬 수 있는 수단으로 말 이상의 효용성을 지닌 다른 것은 없다.

    그런데 말이란 “씨”가 있어 “성공의 열쇠”가 되는가 하면 “화(禍)를 키우는 종자”가 되기도 하므로 “양날을 가진 칼”이기에 어김이 없는바 말을 여하히 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인생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느냐 파멸로 몰아가느냐의 관건이 된다 할 수 있다.

    말에는 말하는 이의 인격과 품성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말 몇 마디 해보면 금방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거칠고 상스런 말을 쓰는 사람의 인격이 고상하고 원만할 리가 없다. 말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구업(口業)은 생사윤회하는 괴로움의 원인이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큰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말과 관련한 경구(警句)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만큼 말의 무게와 가치를 강조한 속담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도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이니 이는 곧 성인의 말이로다. 험담하지 않고 사랑으로 말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거짓 없이 진실한 말이 세 번 째이며, 법답지 않음을 피하는 법다운 말이 네 번 째니라.” - <잡아함경>

     그러니 팔정도의 하나로 정어(正語, 빠알리어 Samma-vaca)가 들어 있다. 정어는 올바른 언어논리, 올바른 언어생활, 반야의 언어논리, 바르고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어논리가 그릇되거나 왜곡돼선 안 된다. 남을 비웃고, 비방하고, 이중적인 말을 하지 말고, 순수하면서도 부드럽고, 분명하면서도 때에 맞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정어는 팔정도의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로 닦아진 고결한 마음을 나타내는 첫 번째 상(相)이다. 그리고 올바른 언어를 바탕으로 올바른 행위[정업(正業)])가 이루어지고, 올바른 행위를 바탕으로 올바른 생활[정명(正命)]이 실현되는 법이다.

 

     

*구업(九業)---불교에서 말하는 9가지 업. 삼계(三界) 중에서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에 각기 존재하는 작업(作業)ㆍ무작업(無作業)ㆍ비작비무작업(非作非無作業)과 무색계에 존재하는 무작업ㆍ비작비무작업ㆍ무루업(無漏業)을 합쳐 9업이라 한다.

     • 작업(作業) - ‘업을 짓는 행위’를 일컫는다. 뜻을 결정한 뒤에 외부로 표현되는 신(身)ㆍ구(口) 2업, 곧 언어ㆍ동작을 말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라고 해서 표업(表業)이라고도 한다.

     • 무작업(無作業) -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표업(表業) 혹은 작업(作業)이라고 하는데 비해, 짓고 난 후에도 간직하고 있는, 항상 쫓아다니며 일어나는 습관처럼 밖에 나타나지 않고 업이 상속되는 업으로 무표업(無表業)이라고도 한다.

     • 비작비무작업(非作非無作業) - 의업(意業)인 마음, 정신작용을 말한다.

     • 무루업(無漏業) - 번뇌의 더러움을 벗어난 언어ㆍ동작ㆍ의념(意念)을 말한다.

         ※의념(意念)---의념은 마음의 힘을 활용해 특정한 영상이나 물체에 집중하는 능력을 말한다. 넓게는 사람의 사유 활동을 말하지만 좁게는 텔레파시 같은 것이 의념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 ‘생각’이란 말로 쓰인다.

          

*구오연(具五緣)---중국 수나라 시대에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선(禪)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5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그 다섯 항목 중 하나가 구오연이다. 구오연은 참선수행을 하기 위한 기초조건으로서 어떤 뜻을 세우더라도 이 기초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해서 수행방편 처음에 이것을 세우라고 했다.

     1) 지계청정(持戒淸淨) - 계율을 지켜서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한다.

     2) 의식구족(衣食具足) - 옷가지 약간과 최소한의 음식을 갖추어야 한다.

     3) 한거정처(閑居靜處) - 시끄럽지 않은 조용한 수행 공간을 정한다.

     4) 식제연무(息諸緣務) - 일상 업무, 친인척 등 모든 생활 인연들에서 일단 떠나야 한다.

     5) 득선지식(得善知識) - 수행을 지도해 줄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25방편(方便) 참조.

       

*구원실성(久遠實成)---<법화경(法華經)>의 중심사상은 개권현실(開權顯實), 구원성실(久遠實成), 회삼귀일(會三歸一)인데, 이를 다시 진리(眞理)를 밝히는 부분과 보살(菩薩)의 실천행(實踐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진리를 밝히는 부분은 개권현실과 구원실성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개권현실의 ‘권(權)’은 방편(方便) 또는 적절한 수단'을 뜻하고 ‘실(實)’은 진실(眞實)을 뜻하는 말로서 방편(權)을 열어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實)의 세계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 구원실성은 부처님이 멀고 먼 옛날에 성불했다는 말이다. 석가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멀고 먼 아주 오랜 옛날, ― 즉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 전에 부처님이 계셨다. 그 부처님의 이름은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고, 그 나라는 호성(好成)이며, 그 시대를 대상(大相)이라 한다. 대통지승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실 때, 온 우주가 부처님의 지혜로 밝아지고, 그 깨달음의 빛으로 여섯 방향으로 진동했다[육종진동(六種震動)]고 한다. 

   여기서 실(實)은 바로 부처님을 뜻하는 말로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성을 지닌 초월적 존재인 부처님은 한없는 과거로부터 한없는 미래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법화경(法華經)>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16에 나타나는, 역사적 석가의 성불에 대응해 석가불(釋迦佛)의 영원불멸을 설하고 있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인 한량없는 무한한 세월 이전에 이미 성불했다고 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사실 구원실성 했으나 방편으로 금생에 성불한 것처럼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석가모니불이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開)ㆍ시(示)ㆍ오(悟)ㆍ입(入)하기 위한 근본원(根本願)을 가지고 태자의 몸으로 화현한 것은 방편이라는 것이다.

     • 회삼귀일(會三歸一)은 개삼현일(開三顯一)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삼(三)은 보살(菩薩) ‧ 성문(聲聞) ‧ 연각(緣覺)의 삼승(三乘)을 나타내는 말이고, 일(一)은 일승(一乘) 즉 불승(佛乘)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살 ‧ 성문 ‧ 연각 등 삼승의 방편에 의해서 진실인 일승 즉 불승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뜻으로 <법화경> 방편품(方便品)과 비유품(譬喩品), 신해품(信解品) 등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사람들은 내(석존)가 젊은 나이에 출가해서 수행해, 가야성 근처의 보리수 밑에서 성불했다고 많이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사실은 오백진점겁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옛날(久遠)에 이미 성불했다. 그 이래, 이 사바세계와 다른 무량한 국토에서 중생을 무수히 교화했다. 이처럼 내 수명은 무량하고 상주(常住)이며 불멸하다.”고 했다. 이와 같이 ‘석존은 아득한 구원에 성불했다.’는 것을 구원설실(久遠實成)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석존이 금세(今世)에 비로소 성불했다고 하는 것을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석존이 80세에 입멸했다. 그러니 부처의 수명도 역시 유한하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의문이다.

    그런데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수량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수량품은, 금세에 비로소 성불해 입멸하는 시성정각의 석존은 방편의 부처이고, 상주불멸 하는 구원실성의 석존이야말로 진실한 부처라고 밝힌 것이다. 부처님의 생명은 진실로 영원하지만, 중생의 구도심을 높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유한한 모습을 나타내고, 또 방편으로서 입멸한 것이다. 이것이 수량품의 답이다.

    

*구유인(俱有因, 산스크리트어 sahabhu-hetu)---육인(六因)의 하나. 서로 간에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는 일체의 유위법을 말한다. 즉, 구유인은 서로에 대해 결과가 되는 법으로 어떤 사물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결과와 동시 병존하는 원인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인이 되고 과(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과관계를 공간적인 의존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팡이 세 개를 서로 의지해 세웠을 경우 각각의 지팡이는 다른 지팡이의 구유인이 된다는 말이다. 두 개 이상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관계일 때의 그 원인을 말한다.

    밥상과 그 다리는 서로가 서로에 의존해 동시에 존재하듯이 '구유'라고 하는 말은 결과와 동시 병존한다는 뜻이다. 곧 구유인이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구유인을 상인들이 서로에 의지해 험난한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하고, 상응인(相應因)을 각기 평등한 입장에서 함께 식사하고 사업을 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즉, 서로 조화해서 동일 목적으로 향하는 원인, 결과와 동시에 생기하는 원인을 상응인이라고 한다.---→육인(六因), 상응인(相應因) 참조.

      

*구자국(龜玆國)---→쿠차(庫車, 龜玆, 屈支 Kucha) 참조.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우리나라 선종에서는 깨달음을 위한 화두로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이는 <열반경>에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 한 불성사상에 입각하면 “개에게도 틀림없이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는가.” 하는 의문을 제시하는 문제이다. 이를 ‘조주무자(趙州無字)’라고도 한다. 이 화두를 참선하는 방편으로 제시한 이는 송나라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로서, 당시의 승려와 속인들에게 권고해 실천하게 했다. <대혜어록> 30권 중 25∼30권까지는 주로 이 화두를 공부하는 방편을 지도한 서신 문답을 모은 것이다. 중국 선의 특징은 격외소식(格外消息)이라 해 경전의 상식을 뛰어넘어서 법거량(法擧量)을 해왔다.

   당나라 때 한 수행승이 조주(趙州從諗, 778~897)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이에 조주 선사의 답은,

   “없다(無).”고 했다.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이에 조주 선사는,

   “업식성(業識性-중생심, 분별심)이 있기 때문이니라.”라고 했다.

   업식성이란 업을 짓는 성품으로서 차별의식과 분별의식을 가리킨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남자다 여자다 등 흑백논리로 따지는 마음을 업식성 또는 중생심이라 한다. 조주 선사가 수행승에게 ‘없다’고 한 것은, 그대가 만일 개가 짐승이라고 해서 불성이 없을 것이라고, 혹은 영리한 짐승이라 불성이 있을 것이라고 분별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결국 어리석은 중생심으로서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고 하는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분별심은 망상으로서 깨달음을 막는 장애이기 때문이다. 분별은 선택을 요구하고, 선택은 집착을 낳는다. 집착은 중생심으로서 괴로움과 번뇌를 낳는다. 깨달음은 분별 망상과 집착을 여의는 데에 있다.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싸움질 좀 그만해라! 있으면 어쩔 것이고, 없으면 어쩔 것이냐. 부질없는 망상 집어치워라! 그래도 떨쳐버릴 수 없다면 그 속에 들어가 보거라. 일단 들어가면 60일 정도 있어야 나온다. 누구든 개새끼가 돼 나온다. 이 얼마나 통렬하게 비꼬는 말인가.

개에게 불성이 있다, 없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다, 없다’고 하는 분별심을 먼저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분별심을 가지고 있는 한 성불할 수 없다. 조주 선사는 유무상대(有無相對)의 ‘무(無)’를 뛰어넘은 깨달음의 절대 경지를 ‘무(無)’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개에게 불성이 있고, 없고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쓸데없는데 시간 보내지 말고 네가 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다른 풀이.

   <열반경>에 일체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했는데 왜 없다고 말씀하실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을까? 조주 스님은 <열반경>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을까? 하고 그 연유에 몰두해 계속 집중하되 나중에는 “무(無)”라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산란됨 없이 집중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게 될 때, 무(無)는 참구(參究)하는 단서가 됨으로써 바로 공안이 되는 것이다.

참선 수행자는 가부좌 틀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은 후 이와 같은 화두를 들고 그 답을 찾아내기 위해 몇 달, 몇 년을 노력한다. 화두를 풀기 위해 머리를 굴려서는 안 된다. 단지 의문만 강화시키면 된다.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 무(無)라고 했을까? 조주 스님은 왜 무(無)라고 했을까? 왜 무(無)라고 했을까? … 이것이 참선하는 방법이다.

   앞이 꽉 막혀 있다. 출구가 없다. 너무 궁금하고 참으로 의심스러운 ‘화두’만이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조주가 내린 ‘무(無)’라는 답을 ‘있음’에 대립되는 ‘없음’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있음’이라고 이해해도 안 되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라고 이해해도 안 된다. 조주의 ‘무’자에 대해 생각을 집어넣을 수가 없다. 이것이 화두이다. 그러나 의심만 떠올리며 집요하게 물어 들어가다가 은산철벽과 같던 화두가 와르르 무너질 때, 캄캄하던 앞이 탁 깨질 때 깨달음이 열린다. 우리나라의 선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의문을 해결해 견성(見性)을 했다고 한다.   

       

*구잡비유집경(舊雜譬喩集經)---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에서 강거국(康居國) 출신 강승회(康僧會, ? ~ 280)가 한역했다. <구잡비유경>ㆍ<구비유경>이라고도 하며, 별칭으로 <잡비유경>ㆍ<잡비유집경>ㆍ<잡비집경>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제자들의 위업과 덕에 대한 인연 이야기를 담아 놓은 비유담이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이야기도 있다.

    <보시의 크기>

    옛날 어떤 부인이 불법에 귀의해 계행을 잘 지켰다. 어느 날 부처님이 그 집에 가서 걸식을 청하자 부인은 곧 발우에 밥을 담고는 물러나 예배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했다. “하나를 심으면 열이 생기고, 열을 심으면 백이 생기며, 백을 심으면 천이 생긴다. 이렇게 많이 생기고 억이 생기니 결국은 깨달음을 얻게 되느니라.”

    불법을 믿지 않는 남편은 뒤에서 잠자코 부처님의 축원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부처님은 어찌 그리 허풍이 심하십니까? 한 발우의 밥을 보시하면서 어떻게 그런 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까?” 이에 부처님은 말했다.

    “너는 지금 어디서 왔는가.” “저는 성 안에서 왔습니다.”

    “성 안에서 자라는 큰 나무를 본적이 있는가.”

    “물론이죠. 높이는 40리에 해마다 수만 섬의 열매를 땁니다.”

    “그 씨는 얼마나 큰가.” “겨자만 합니다.” “한 되쯤 심었던가.”

    “그저 씨 하나를 심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말했다. “겨자만한 열매 하나를 심어 어떻게 그 높이가 40리나 되며 수십만 개의 열매가 열릴 수 있는가. 생각이 없는 땅이지만 그 갚음이 그러한데, 하물며 기뻐하면서 한 발우의 밥을 보시하는 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구정육(九淨肉)---비구승이나 수행승은 육식을 금하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나 부득이 한 경우에 허락받고 먹을 수 있는 아홉 가지 정육(淨肉)을 말한다. 이는 계율에서아래와 같이 육식할 수 있는 예외의 규정을 두고 있다. 즉, 병든 비구에 한해서는 삼정육, 오정육, 구정육 등을 허락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삼종정육(三種淨肉) - 삼정육(三淨肉)이라고도 함.

      ① 자신을 위해서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짐승의 고기(不見)

      ② 남으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해 듣지 않은 것(不耳)

      ③ 자신을 위해 살생했을 것이란 의심이 가지 않는 것(不疑)

  • 오종정육(五種淨肉 - 위 3정육 포함)

     ④ 수명이 다해 자연히 죽은 오수(鳥獸)의 고기

     ⑤ 맹수나 오수가 먹다 남은 고기

  • 구종정육(九種淨肉 - 위 5정육 포함)

    ⑥ 자신을 위해서 죽이지 않은 고기

    ⑦ 자연히 죽은 지 여러 날이 돼 말라붙은 고기

    ⑧ 미리 약속함이 없이 우연히 먹게 된 고기

    ⑨ 당시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인 고기 

      

*구족(具足)---빠짐없이 고루 갖추었다는 뜻.

     

*구족계(具足戒, 산스크리트어 upasapanna)---출가한 사람이 정식 승려가 될 때 받는 계율을 말한다. 모든 계가 완전히 구비됐다고 해서 구족계(具足戒)라 한다. 즉 교단에서 비구, 비구니가 되기 위해 받는 계가 구족계로서, 불교 율전인 <사분율(四分律)>에는 비구는 250계가 있으며, 비구니는 346계가 있다.

    불교에서 ‘출가’란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는 뜻이며, 구족계를 받게 되면 정식 승려가 된다. 비구계(比丘戒) ․ 비구니계(比丘尼戒)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구족계를 받으려면 20세 이상 70세 미만이고, 승려로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몸이 튼튼하고 병이 없어야 하고, 죄과가 없는 이로서, 사미계(沙彌戒) 또는 사미니계(沙彌尼戒)를 받은 뒤 3년이 경과해야 한다. 구족계를 받는 장소는 통도사 계단, 해인사 계단, 범어사 계단과 같이 계단(戒壇)이 있는 곳이라야 한다.---→계단(戒壇) 참조. 

       

    

*구족원상(具足圓相)---원상(圓相), 즉 동그라미는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처음도 끝도 없는 영원함과 완전한 깨달음을 상징한다. 선적(禪的) 개념으로서의 원(圓)을 기하학적 도형인 원(圓)에 결부시킨 것이 원상이다

    그런데 원의 기하학적 정의는 무엇이며, 또 원상이 마음의 본성을 찾는 선(禪)의 상징으로 선택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기하학적으로 볼 때 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점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호상에서의 점의 무한한 선회는 영원성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호는 중심의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원호 상의 무수한 점은 모두 중심에 통섭되는 속성을 가진다. 그리고 원은 크기가 크거나 작다고 하더라도 항상 원으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특성을 지니며, 원호 안에 내포된 모든 것은 원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전체성의 사상과 직접 연결돼 있다. 이처럼 원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속성들은 선종에서 말하는 원상(圓相)의 개념과 부합되는 점이 많다.

    선(禪)의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일원상(一圓相)은 “조금도 부족함과 결함이 없는 보편성과 구족(具足)의 타당성을 지닌 신묘하고 불가사의한 것”을 말한다. 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원족(圓足)ㆍ원돈(圓頓)ㆍ원통(圓通)ㆍ원묘(圓妙)ㆍ원만(圓滿) 등의 개념이 있다. 원족은 하나를 거론함에 일체의 모든 것이 스스로 수용됨을 뜻하고,

    원돈은 처음과 끝의 구별도 없거니와 수행의 단계를 거친 것이 아닌 순간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원통은 불ㆍ보살이 깨달은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원통의 원(圓)은 본성이 만물에 두루 미치고 있는 것을 말하며, 통(通)은 뛰어난 행동이 거리낌이 없음을 뜻한다.

    원묘는 피차의 구별이 없는 일체불이의 절대 평등상태를 일컫는 것이며,

    원만은 모든 법을 두루 갖추어서 잘못되거나 흠이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호상의 무수한 점들이 중심의 한 점에 통섭돼 있다는 점, 이것이 하나를 거론함에도 일체의 모든 것이 스스로 수용되는 원족(圓足)의 개념과 연결된 것이다. 또한 시작도 마침도 없고, 처음과 끝의 구별이 없는 원호의 기하학적 특성은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순간의 깨달음, 즉 원돈(圓頓)의 개념과 결부돼 있다. 그리고 크거나 작은 것을 불문하고 모든 원이 가지고 있는 포괄성, 그리고 전체성의 상징성은 본성이 만물에 두루 미치는 것을 뜻하는 원통의 개념과 연결돼 있다. -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한편 원은 그 모양이 만월(滿月)과 비슷해 만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불가에서는 보리심(菩提心)을 흔히 만월에 비유하는데, 그것은 밝고 깨끗하며, 광명을 천지에 두루 비치어도 분별됨이 없는 것이 보름달과 같기 때문이다. 달은 원통의 개념과 상응하고, 원통의 개념은 또한 원상의 이미지로 환원된다.

    원상은 선(禪)의 추상적 개념인 원상(圓相)을 원의 형태로써 상징화, 시각화 한 것으로, 예배의 대상이나 장엄용으로 제작된 사찰의 여타 그림들과 구별된다. 원상은 오묘한 불법 진리 자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징표이기 때문에 원상이 갖는 의의는 원의 형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있다. 이런 원상이 구족하다는 말이 구족원상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이란 말이기도 하다. 원만구족이란 다른 말로 하면 원전무결(完全無缺)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천지만물 우주만유의 바탕이자 근본이 원만구족하다, 완전무결하다는 뜻이다.

        

*구종식(九種食)---9가지 음식. 처음 하나는 육체를 단련하는 음식이고, 나머지 8가지는 심신을 북돋우거나 수련하는 것으로 ‘식(食)’이라 하지만 음식은 아니다.

     1) 단식(段食) - 씹어서 먹는 먹을거리. 사람이나 짐승이 먹는 음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2) 촉식(觸食) - 기쁘고 즐거운 감정을 일으키는 감촉에 의해서 몸과 마음을 기르는 것.

     3) 사식(思食) - 사상이나 희망에 의해 몸을 충족시키는 것.

     4) 식식(識食) - 마음의 힘으로 능히 몸을 부지하는 것.

     5) 선열식(禪悅食) - 수행하는 수행자가 그 힘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

     6) 법희식(法喜食) - 불법에 의해 몸과 마음을 기르는 것.

     7) 원식(願食) - 소원에 의해 목숨을 이어가는 것.

     8) 염식(念食) - 수행하는 사람이 지혜를 증익(增益)하는 것.

     9) 해탈식(解脫食) - 불도를 증득한 이가 열반의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

      

*구중(九衆)---부처님의 제자를 9종으로 나눈 것. ①비구(比丘), ②비구니(比丘尼), ③사미(沙彌), ④사미니(沙彌尼), ⑤식차마나(式叉摩那), ⑥우바새(優婆塞), ⑦우바리(優婆夷)의 7중(衆)에 ⑧출가자(出家者-팔계재를 받아 지키는 사람)와 ⑨출가니(出家尼-팔계재를 받아 지키는 여자)를 더한 것을 말하는데, 출가자ㆍ출가니와 비구ㆍ비구니와의 구별은 확실하지 않다.

      

*구지(九地)---중생의 마음과 생존상태를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삼계(三界)로 나누고, 3계(界)를 다시 9종으로 나눈 것. 즉, 욕계를 1지(地)로 하고, 색계와 무색계는 각기 4지(地)로 나누었다.

     1) 욕계 오취지(欲界五趣地) - 욕계 안에 있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5취(趣)를 합해 1지(地)로 하고, 이들이 섞여 사는 곳이라 해서 욕계 오취지(欲界五趣地) 혹은 오취 잡거지(五趣雜居地)라 한다.

           ※취(趣)---중생이 번뇌로 인해 악업을 짓고, 그 업인으로 끌려가서 사는 곳.

     2) 이생 희락지(離生喜樂地) - 욕계를 떠남으로써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을 말함.

     3) 정생 희락지(定生喜樂地) - 선정(禪定)으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제2선천(第二禪天)을 말함.

     4) 이희 묘락지(離喜妙樂地) - 제2선천의 기쁨을 떠남으로써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제3선천(第三禪天)을 말함.

     5) 사념 청정지(捨念淸淨地) - 마음이 평온해 생각이 청정한 색계 제4선천(第四禪天)의 경지를 말함.

     6)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1천의 경지를 말함.

     7)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 마음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2천의 경지를 말함.

     8)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3천의 경지를 말함.

     9)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무색계 제4천의 경지를 말함. 욕계 ․ 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무색계 제4천의 경지이다.

     

*구지수지(俱肢竪指)---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35)의 저서 <벽암록(碧巖錄)>과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의 저서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공안의 하나. 중국 5대10국 시대에 구지(俱肢) 스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구지 스님은 그의 스승 천룡(天龍) 스님에게 배운 대로 누가 무어라고 말을 걸면 손가락 하나만 불쑥 들 뿐이었다. 그런데 시중드는 동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외인이 찾아들어 동자에게 묻기를, “스님께서 어떤 법을 중요하게 설하시던가?” 라고 했다.

    그런데 동자 역시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후에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칼로 동자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파 통곡하며 달아날 때 스님이 동자를 불렀다. 그러자 동자, 머리를 돌렸다. 이때 스님이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 동자 문득 깨쳤다고 한다.

    이후에도 누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면 불쑥 손가락 하나, “안녕히 계십시오!” 해도 불쑥 손가락 하나. 누가 “선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도 불쑥 손가락 하나. 이렇게 불쑥 내세운 손가락 하나에 온 우주가 포함돼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와 해답이 이 손가락 하나에서 전개된다. 구지 스님은 세상을 마지막 떠날 때도 “나는 천룡(天龍) 일지두(一指頭)의 선(禪)을 배워서 평생 썼어도 못다 썼다…”며 손가락 하나를 불쑥 세우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아주 통쾌하게 생을 마감했다.

      

*9차제정(九次第定)---<대지도론(大智度論)>에 나오는 이론으로 차제정(次第定)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순차적인 수행단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삼매수행은 여덟 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차원이 높아갈수록 번뇌가 정화된다. 이를 팔선정(八禪定) 혹은 팔등지(八等地)라고 하는데, 초선 ․ 이선 ․ 삼선 ․ 사선 ․ 공무변처선(空無邊處禪) ․ 식무변처선(識無邊處禪) ․ 무소유처선(無所有處禪) ․ 비상비비상처선(非想非非想處禪)의 단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팔선정을 닦은 후 다시 그 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행단계인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것을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 불렀다. 부처님은 구차제정이라는 선정을 통해 중생들 세계는 중생들 마음에서 연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중생들 세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三界)는 구차제정을 통해 드러난 중생세계 모습이라는 것이다.

    ― 9차제정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초선(제1선)에 들면 말이 그치며,

     제이선에 들면 생각 일으킴과 추론적 사유가 그치고,

     제삼선에 들면 희열이 그치며,

     제사선에 들면 입출식(入出息)이 그치고, → 4선정을 닦으면 색계18천에 태어난다.

     (제5선)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면 물질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제6선)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면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고,

     (제7선)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면 식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제8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 그친다.→ 4무색선정을 닦으면 무색계4천에 태어남(여기까지가 8등지임)

     8등지에 멸진정(滅盡定)을 더한 것이 9차제정이다. 멸진정을 상수멸정(想受滅定) 혹은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들면 인식과 느낌이 그친다. 즉 열반에 이른 것이다. 이 수행과정이 9차제정이다.

     멸진정은 모든 번뇌가 다한 경지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나함(阿那含)의 경지이다. 이 경지에 들면 다시는 이 사바세계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불환과(不還果)라고도 한다. 여기까지가 9차제정이다. 그 다음 마지막 단계가 아라한(阿羅漢)의 단계이다.

    그런데 여기 질문이 있단다. 근세 최고의 선승이라는 성철(性徹) 스님은 구차제정 중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까? 어떤 단계에 이르렀다면 본인은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다. 그거야 성철 스님한테 물어 봐야지, 내가 성철 스님이 아닌데, 알 수 있나.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정말 의미 있게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인데, 부처님이 아니고는 누구의 경지가 어디인가를 얘기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구차제정이라는 절차는 정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공허한 희론(戱論)일까?---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사무색처(四無色處), 멸진정(滅盡定) 참조.

      

*구천(九天)---하늘을 총 9개의 방위로 나누어 이르는 이름이다. 중앙은 균천(均天), 동쪽은 창천(蒼天), 북동쪽은 변천(變天), 북쪽은 현천(玄天), 북서쪽은 유천(幽天), 서쪽은 호천(昊天), 남서쪽은 주천(朱天), 남쪽은 염천(炎天), 남동쪽은 양천(陽天)이다.

   

*구천(九泉)---구원(九原)과 같은 뜻으로 지하(地下)를 의미한다. 황천(黃泉)이라고도 하고, 음부(陰府)ㆍ명도(冥途)ㆍ유도(幽都)ㆍ염라국(閻羅國)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저승이라고도 한다. 구천(九泉)ㆍ황천(黃泉)이라 할 때는 물이 있는 땅속, 깊은 밑바닥, 지옥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저승은 사람이 이승에서 생을 다해 죽어서 가는 곳을 통칭하는 것이므로 구천과 저승의 차이는 없다고 하겠다. 굳이 차이를 둔다면 구천은 저승의 하위 개념으로 두면 되겠다.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는 말은 극락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는 의미이다. 한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는 것을 말한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을 보면 억울하게 죽거나 원한이 맺힌 귀신들이다. 마치 사람으로 말하자면 집을 나와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불행히도 안식을 찾을만한 곳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한편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 할 때, 죽은 혼이 하늘을 돌아다닌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데, 원칙적으로 구천ㆍ황천은 하늘이 아니고 지하이다.

        

*구품수혹(九品修惑)---상상품(上上品) · 상중품(上中品) · 상하품(上下品), 중상품(中上品) · 중중품(中中品) · 중하품(中下品), 하상품(下上品) · 하중품(下中品) · 하하품(下下品)의 수혹을 말하는데, 먼저 상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이생(二生), 즉 두 차례 태어나야 하고, 다시 상중품ㆍ상하품ㆍ중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각각 일생(一生)씩이 요구되며, 중중품ㆍ중하품을 끊기 위해서는 이 둘을 합쳐서 일생이 요구되고, 나머지 하상품ㆍ하중품ㆍ하하품을 끊기 위해서도 역시 또 한 생이 요구된다.

     • 사다함(斯陀含)은 6생(六生)에 걸쳐 6품까지를 끊은 성문이므로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한 생만 거치면 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사다함을 일왕래(一往來), 즉 '한번 다녀간다.'고 하는 것이다.

     • 아나함(阿那含)은 성문의 세번 째 지위로서 불래(不來) 혹은 불환(不還)이라 한역한다. 즉 인간 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계의 9품수혹 중 6품을 끊고 사다함이 된 성문이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다시 태어나 일생(一生)동안 다 끊어 아나함이 되고서는, 색계의 제4선천(第四禪天)의 일부인 오나함천(五那含天=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견견천, 색구경천)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

     • 아라한(阿羅漢)은 성문의 마지막 지위로서 수행이 최고 극치에 이른 성인이다. 아라한은 '무적(無賊) · 불생(不生) · 응공(應供)'이라 번역하는데, 무적이라 함은 번뇌의 도적이 깨끗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불생이라 함은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응공이라 함은 인간세계와 하늘계에서 어떠한 공양이라도 받아도 타당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아라한이 끊어야 할 번뇌는 색계와 무색계의 수도혹(修道惑)으로서 탐(貪) · 치(痴) · 만(慢) 등 세 가지가 주구성분이 된다. 이미 아나함의 과위를 얻은 이가 오나함천에 태어나 살피니, 아직 상계의 수도혹이 남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끊기는 너무 미세하여 색계의 것을 넷으로, 무색계의 것도 넷으로 하여 총 여덟 가지로 나누고, 이들 여덟 가지 몫을 다시 각각 아홉 등분으로 나누어 모두 72품으로 하는데, 이 중에서 71품까지를 끊으면 아라한향(雅羅漢向)이라 하고 72품을 다 끊어야 아라한이라 하는 것이다.

      

*구품왕생(九品往生)---<무량수경>은 삼배(三輩)를 말하고, <관무량수경>은 구품(九品)을 말한다. 삼배는 상배(上輩)ㆍ중배(中輩)ㆍ하배(下輩)를 말하는 것이고, 구품은 크게 상품(上品)ㆍ중품(中品)ㆍ하품(下品)을 말하고, 상품은 다시 상품상생ㆍ상품중생ㆍ상품하생으로, 중품은 중품상생ㆍ중품중생ㆍ중품하생으로, 하품은 하품상생ㆍ하품중생ㆍ하품하생으로 나누어 총 구품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각각 극락에 가는 방법을 밝힌 것이 구품왕생이다.

     ① 상품상생(上品上生)은 지성심(至誠心), 신심(信心),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을 일으키고, 자비심이 커서 살생하지 않고, 5계ㆍ8계ㆍ10계 등의 계율을 다 지키는 사람으로, 모든 행동이 올바르며, 대승경전을 지성으로 읽고 외우고, 부처님과 부처님 교법ㆍ승가ㆍ계행ㆍ보시 등의 계행을 지켜 그 공덕을 회향(廻向)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

     ② 상품중생(上品中生)은 대승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지는 않더라도 그 뜻을 깨달은 사람으로, 인과의 이치를 깊이 믿고 대승을 비방하지 않으므로 극락왕생을 하게 된다.

     ③ 상품하생(上品下生)은 인과의 이치를 믿고 대승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으로, 아미타불을 믿어서 보리심을 내고 이 공덕을 회향해 극락왕생하게 된다.

     ④ 중품상생(中品上生)은 소승의 오계와 팔계를 지키고 수행에 필요한 여러 계행을 닦으면서 오역을 범하지 않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허물이 없어 이 공덕을 회향해 극락왕생한다.

     ⑤ 중품중생(中品中生)은 일주야(一晝夜) 동안 계를 지킨 소승하선(小乘下善)의 범부가 그 공덕을 회향해 죽을 때에 불ㆍ보살의 내영을 받고 정토에 왕생해 반겁(半劫)을 지내고 아라한과를 얻는다.

     ⑥ 중품하생(中品下生)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간의 공덕을 지키는 범부가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48대원과 그 정토의 훌륭한 일들을 듣고, 정토에 왕생해 일 소겁(一小劫)을 지나서 아라한과를 얻게 된다.

     ⑦ 하품상생(下品上生)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지만, 임종 때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받아 합장하며,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을 하면 그 공덕으로 50억겁(億劫) 동안 생사(生死) 윤회할 죄를 덜고,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⑧ 하품중생(下品中生)은 모든 계행을 범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승단에 속한 물건을 훔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허무맹랑한 법을 설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10가지 위덕과 신통력, 계ㆍ정ㆍ혜 등을 찬탄하는 것을 들으면 무거운 죄를 벗고 왕생한다.

     ⑨ 하품하생(下品下生)은 오역(五逆), 십악(十惡) 등 온갖 중한 죄를 범해 가지가지 악한 짓을 저질러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임종할 때 선지식을 만나 여러 가지 미묘한 법을 듣고 염불하는 방법을 배우나 고통이 심해 염불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 이 공덕으로 80억겁의 무거운 죄가 소멸돼 극락에 왕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무량수경>의 하배(下輩)와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下品下生)이다. 오탁악세와 말법(末法)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근기가 하열(下劣)하고 둔하며 의심이 많고 의지는 약해 <무량수경>의 상배ㆍ중배, <관무량수경>의 상품ㆍ중품은 닦기 힘들다. 그렇다면 <무량수경>의 하배(下輩)와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은 무엇인가. 경전을 보자.

    <무량수경>의 하배(下輩) ― 근기가 하열한 하배자(下輩者)라 하는 것은, 시방세계의 여러 천신과 인간들 중에서 설령 여러 가지 공덕을 쌓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생각을 오직 한 곳에 모아 다만 열 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그 명호를 부르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願)을 세우는 이나, 혹은 심오한 법문을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의지해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한번이라도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그 명호를 외우며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는 이들을 말한다.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下品下生) ― 하품하생은 늘 악업을 짓는 중생으로서, 오역죄와 십악 등 가지가지의 악업을 지어 그 무거운 죄업의 과보로, 응당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을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도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게 돼 선지식이 그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안위(安慰)해 주고 미묘한 법문을 들려주어 지성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는 괴로움이 극심해 부처님을 생각할 경황이 없다. 그래서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그대가 만약 부처님을 생각할 수가 없다면 다만 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해라.” 고 타이른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가 끊기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염불하는 동안에 8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업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목숨을 마칠 때는 마치 태양과 같은 찬란한 황금의 연꽃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 그는 순식간에 바로 극락세계의 보배 연못 연꽃 속에 태어난.

    위 경문에서 오역죄(五逆罪)와 정법(正法)을 비방한 사람은 염불을 열 번 해도 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고 하는 예외를 두었지만, <무량수경>보다 늦게 설해진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는 정법 비방을 제외하고 오역죄를 지은 사람도 임종 시에 참회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구하(九夏)---더운 여름철의 90일 동안을 구하라 한다.

     

*구해탈(俱解脫)---‘구(俱)’란 두 가지 것이 얽혀 있다는 의미이다. 지혜에 의한 해탈인 혜해탈(慧解脫)과 또 하나 정(定)에 의한 해탈이 합쳐지는 것이다. 특히 정(定) 중에서도 최고도의 정까지도 체험한 정해탈(定解脫)이 합쳐졌을 때에 구해탈이라 한다. 번뇌에 의한 장애나 선정에 의한 해탈 장애, 즉 평범한 사람의 선정 한계를 극복할 때에 나타나는 해탈이다.

    지혜의 힘에 의해 이 세상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문제나 타인문제마저도 해결할 수 있는 경지가 되며, 나아가 선정도 깊어져서, 그리하여 차츰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고, 본래세계에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되는 데까지 간다. 그리고 드디어 멸진정(滅盡定)이라고 불리는 최고도 선정까지 들어가면, 이른바 대우주생명과 일체가 되는 경지를 맛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대우주와 일체가 돼 녹아 들어가는 듯한 선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른바 「불타의 깨달음」을 얻는 경우를 가리켜 구해탈이라 한다. 좀 어려운 말로는 수행자가 무색정(無色定)을 얻어 해탈했을 때를 구해탈(俱解脫)이라 한다.---→정해탈(定解脫) 참조.

         ※무색정(無色定)---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과 같은 말인데,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말한다. 사무색정은 1)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2)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3)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4)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말한다.

     

*구화산(九華山, 해발 1,342m)---중국 내륙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있는 산, 중국 4대 불교 명산의 하나로서, 신라 제33대 성덕왕 아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년) 스님이 성불하신 곳이다. 구화산 월신보전(月身寶殿)에 모신 남무대원지장왕보살(南無大願地藏王菩薩) 상이 바로 신라 출신 김교각 스님의 미이라라고 한다.---→김교각(金喬覺) 참조.

         ※중국 불교 4대 성지---산서성 오대산(2,893m, 문수보살 성지), 사천성 아미산(3,099m, 보현보살 성지), 절강성 보타산(291m, 관음보살의 성지), 그리고 이곳 안휘성 구화산(1,342m, 지장보살 성지).

  

*국사삼환(國師三喚)---국사가 세 번 부르다는 말이다. 무문관 제17칙이다. 여기 나오는 국사는 육조 혜능 선사의 제자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 국사를 말하고, 내용은 남양 국사의 시자였던 탐원(耽源) 스님과의 이야기이다. 이 글은 “과연 시자(侍者)가 국사를 버린 곳이 어디인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가) 본칙(本則) ― 혜충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불렀다. 시자는 세 번 답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저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리고 있었구나.”

    나) 평창(評唱) 및 송(頌) ― 국사가 세 번이나 시자를 부르니 혀가 땅에 떨어졌다. 시자는 세 번을 대답하니 마음 빛(和光)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사가 늙어서 마음이 외로워져 소의 머리를 억지로 눌러서 풀을 먹이려 했다. 그러나 시자는 그것을 받을 기분이 아니어서, 모처럼 진수성찬도 배가 부른 사람이 먹기에는 맞지 않다. 말해보라, 어디가 그 시자가 국사를 저버린 곳인가? 나라가 맑게 다스려지면 재간 있는 사람이 귀하게 대접 받고, 집안이 부유하면 어린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

    다) 송(頌) ―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1260) 스님이 계송으로 말했다. “구멍 없는 무쇠 큰칼을 사람 목에 채우려하니 허물이 자손에까지 미쳐 바빠지게 됐구나. 선종(禪宗)의 문호(門戶)를 지키려고 생각한다면 다시 맨발로 칼산을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네.” 얻는다고 집착할수록 도(道)는 점점 멀어져간다.

    라) 착어(着語) - 청안(淸眼)이 덧붙임.

국사가 세 번 부르니 시자가 세 번 답하다.

     ① 국사가 옆에 있는 시자를 왜 세 번씩이나 불렀나?

     ② 국사가 시자를 저버렸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③ 시자는 국사를 저버렸다면 그 저버린 뜻은 어디에 있는가?

    마) 설명 ― 국사는 남양 혜충(南陽慧忠) 선사이고, 시자는 탐원 응진(耽源應眞) 스님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세 번 부르고 세 번 답한 사실에는 나름의 비밀이 숨어있다. 스승은 ‘저버렸다’는 말로 제자를 힐책하는듯하지만 예사롭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구멍 없는 무쇠 큰칼이 목에 채워질 판에 무슨 분별과 알음알이가 용납되겠는가. 스승이 혓바닥이 땅에 떨어질 정도의 자비심을 보인 보람이 있었든지 제자 또한 화광(和光), 즉 마음 빛을 그대로 드러냈다. 텅 비고 텅 비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영주(靈珠-신령스런 구슬)에 비추어진 대역량인(大力量人)들의 교감,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인다. 일부러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는 스승의 은혜가 크고 깊으니 제자의 법기(法器)가 운 좋게도 잘 받쳐주고 있다. 억지로 소의 머리를 눌러 풀을 먹이려 하지만 상대는 그러한 배려를 받아야 할 정도로 철부지가 아니다. 배부른 사람에게 진수성찬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문(無門慧開) 선사의 닦달처럼 어디가 그 시자가 국사를 저버린 곳인가? 집안이 너무 부유해 어린아이의 버릇이 나빠진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소에게 억지로 풀을 먹여 키우려 하지만 정작 그 소는 먹지 않으려 한다. 시자는 더 이상 스승의 자비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밖으로 무엇을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기 살림이 이미 튼튼하다는 뜻이다. 득도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얻는다는 집착이 있는 이상 도(道)는 십만 팔천 리 멀어질 수밖에 없다.

법을 전하는 일은 선종(禪宗)의 문호(門戶)를 지키는 불사(佛事)이다. 그러려면 맨발로 칼산을 오르듯이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을 비롯해 모든 선지식들이 그러하셨다. 덕분에 거울 속의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고 빙그레 웃으니 겸연쩍게 같이 웃는 날이 있게 되는 것이다. 날마다 동거한 보람이 있어 오늘 지금 하나로 나타난다. 그래서 스승의 은혜는 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삼아 드려도 모자란다고 한다. 그 보은을 생각하면 후학으로서 면목이 없다.

         ※줄탁동시---너와 나, 안과 밖이 동시에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성과를 말한다. 예컨대 어미닭이 정성껏 품은 알이 20일 쯤 되면 알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알을 뚫고 나올 곳을 골라 쪼기 시작한다. 그러나 힘이 부치는데, 이때 귀를 기울이던 어미닭이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준다. 이와 같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쪼아서 드디어 알을 깨고 새 생명이 탄생한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선문답에도 격식이 있다. 제대로 된 선문답이라면 언제나 이와 같이 알듯 말듯 보일 듯 말듯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긴 여운을 남긴다. 선기(禪機)ㆍ선미(禪味)ㆍ선향(禪香)에 젖어서 선천(禪天)ㆍ선지(禪地)의 복락을 누리는 것이 선인(禪人)들의 일생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부르고 답하는 일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며,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그냥 때가 돼 식사하는 일이며, 피곤해 잠자는 일이다. - 무비 스님.

        ※혜충(慧忠) 국사는 선승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황제가 제자를 자처할 정도로 명망이 높아 국사(國師)라 불렸다. 아마도 황제를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빛을 전하려고 했지만, 자기와 그렇게도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시자에겐 무관심했던 사실을 늦게야 자각한 듯하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래서 혜충 선사가 자신을 아주 오랫동안 도와주던 시자를 부른다. “얘야!” 그러자 시자가 대답한다. 이어서 혜충 선사가 “얘야!” 또 불렀다. 이렇게 세 번 부를 때마다 시자가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시자가 “예” 하고 세 번째 대답하는 바로 그 순간 혜충 선사의 우려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등잔 밑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혜충 선사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시자 스님은 어느 사이엔가 깨달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혜충 선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등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오히려 네가 나를 등지고 있었구나!”

    스승이 제자를 등진다는 것은 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방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제자가 스승을 등진다는 것은 제자가 이미 깨달음에 이르렀지만 마치 배울 것이 있는 것처럼 스승 곁에 있었다는 말이다. 이미 제자는 스승을 스승이라고 집착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제자의 눈에는 혜충이 가진 모든 특징들이 환히 보였던 셈이다. 비오는 날 차를 좋아하는 것, 장이 안 좋은지 자꾸 방귀를 끼는 일, 푹 익힌 채소를 좋아하는 것 등, 한 마디로 시자 스님은 혜충 선사를 스승이라고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저 늙은 스님에 불과한 것이 바로 ‘선생’이란 지위였으니까. 이렇게 진여의 마음을 얻었는데도, 그는 스승 앞에서 그냥 제자로 있었던 것이다. - 강신주  

     

*국집(局執)---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산스크리트어 Kundali)---명왕(明王)이란 교화하거나 구제하기 어려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여래나 보살이 무서운 형상으로 변신해 나타난 화신(化身)이다. ‘명(明)’은 명주(明呪), 즉 진언(眞言)을 말한다. 군다리명왕은 오방(五方) 중 남방에 배치된 명왕이며, 머리 하나에 팔이 여덟이고 두 다리에는 12마리 뱀이 휘감겨있다. 이 뱀은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나타낸다고 한다. 모든 아수라와 악귀를 항복시킨다고 하며, 힌두교 영향을 받은 명왕이다.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천수경>에 나오는 보살이다. 보배병을 들고 있으며, 일체고액을 제도해 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이다. 즉, 우주중심에서 파멸과 고통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엄히 막아내고 선(善)을 굳건히 지켜가는 임무를 담당하는데, 별나라마다 침입을 일삼는 악마를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일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급한 보살로, 힌두교 영향을 받아 불교에 편입된 대표적인 보살이다.

    그리고 12지신에서 유신장((酉神將-닭띠)이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이라 한다. 군다리보살은 악마를 지키다가 깜빡 조는 순간에 들이닥친 악마들이 인간세상을 혼란케 하고, 악마의 행위를 자행케 했기 때문에 큰 칼을 빼들고 지상에 내려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 닭의 신이 됐다고 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말로 장님 코끼리만지기라는 뜻이다. 코끼리의 고사를 통해 모든 중생들이 석가모니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무릇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를 대각(大覺)하시어 일체지(一切智)를 터득하신 분이라 중생과는 다르시다는 비유이다.  

        

*군생(群生)---유정(有情)ㆍ중생(衆生)ㆍ군맹(群萌)ㆍ군품(群品)ㆍ함식(含識)ㆍ함령(含靈)ㆍ함생(含生)이 다 같은 말이다.---→함식(含識) 참조.

            

*군양승(群羊僧)---<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말이다. 양떼가 많아도 용맹한 호랑이 한 마리를 공격할 수 없는 것처럼 무능한 승려들 무리를 일컫는다. 혀는 있으되 법을 설하지 못하는 무능한 벙어리 승려인 아양승(啞羊僧)과 같다고 했다. 비슷한 말에 조서승(鳥鼠僧)이란 게 있다.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스님’이라는 말인데, 정체가 명확하지 않아 출가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자, 혹은 스님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낮추어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아양승(啞羊僧) 참조.

        

*굴기하심(屈己下心)---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 자신을 굽히고 마음을 겸손하게 갖는 것을 말하는데, 유학에서도 쓰이고, 일반사회에서도 쓰는 말이다.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겸손해 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높여주는 마음자세이다. 항상 자기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줄 알며, 인욕하고 참회 반성하는 데에서 굴기하심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비굴한 마음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넓게 포용하는 마음에서 남을 이해해 주고 감싸주며 스스로 겸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충무공(忠武公)도 부하를 통솔함에 있어서 항상 굴기하심 하셨다고 한다.

         

*굽타왕조(Gupta dynasty, AD 320~550년경)---찬드라굽타1세가 건국한 고대인도 통일왕조임. 3세기 중엽에 쿠샨왕조가 멸망한 후 수많은 군소 왕국들이 부침(浮沈)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가다 지방(지금의 비하르州)을 중심으로 북인도를 통일한 제국이었다.

   굽타시대는 고대인도의 문예부흥기로 자주 언급된다. 이때 십진법이 개발되고, 불교에 있어서는 유식학파의 무착(無着, 아상가/Asanga, AD310~390)과 세친(世親, 바수반두/Vasubandhu, 320~400?) 등이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체계를 세워, 안혜(安慧, Sthiramati, 500~550무렵), 호법(護法, 530~561) 등이 이를 계승 발전시켰으며, 불호(佛護, 470~540)와 청변(淸辨, 500~570) 등은 중관학(中觀學)을 확립했다. 불교논리학의 초석을 세운 진나(陳那, Dignāga, 480~540)와 법칭(法稱, Dhamakirti, 600~650)도 이 시기에 활동했으며, 설일체유부의 경우도 세친과 중현(衆賢, Samghabhadra, 5C후반)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즉, 이 시기는 불교학의 정초를 놓은 위대한 논사들이 활약부파불교에서는 아비달마불교의 전성기라고 하겠고, 유식학과 여래장사상이 발달해 대승불교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700~1899년 전이지만 한 왕조 내에 이와 같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는 것은 학문과 사상, 종교의 자유가 확보됐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난숙한 왕조문화의 당당한 자신감이 보여주는 관용이고, 포섭력이었다고 하겠다. 유명한 간다라(Gandhāra)미술도 이때가 전성기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굽타 왕조는 이러한 불교의 융성에 자극받아 대중적 신앙으로 기반을 넓히고 등장한 힌두교를 국교로 삼아 신전을 건설하는 등 힌두교를 널리 지원했다. 굽타 왕조의 안정된 정치체제 밑에 문학과 예술이 발달했으며 학문도 번창했다.

    굽타 왕조는 불교를 탄압하지 않았지만 불교는 점차 힌두교의 세력에 밀리면서 힌두교적 요소를 섭취하거나 동화되기 시작했다. 즉, 인도 불교는 마우리아 왕조 이후 500여 년 만에 다시 통일 왕조를 건설한 굽타 왕조(320~500경)에 들어오면서부터 힌두교의 부흥에 밀려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7세기에 인도를 방문한 당(唐)나라의 현장(玄奬) 법사에 의하면 불교는 이미 세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불교 사원들은 황폐화되고 있었다. 특히 불교 내에서는 힌두교 밀교(密敎)의 영향을 받아 탄트라(Tantra)라는 밀의적 가르침을 담은 경전들이 성립됐으며 인도 불교는 전적으로 밀교화 되다시피 했다.

    한편 굽타시대에는 인도의 민족의식이 부활하고 고전문화가 완성됐다. 그 결과 인도의 고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와 <라마야나(Ramayana)>, 힌두교 성전인 <푸라나(Purana>가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것도 이 때였으며, 인도 정통 6파철학의 수트라와 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주석서도 이 시기 제작됐다.

   그리하여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민간신앙을 융합한 힌두교가 형성되기도 했다. 힌두교가 발전하면서 카스트의 영향력이 커져 이에 따른 생활방식을 규정한 ‘마누 법전’이 힌두교도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한 왕조 시기에 이처럼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일은 세계사상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굿다까 니까야---→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 참조.

         

*궁극(窮極)--- 마지막 경지까지 도달해 더 이상의 것이 없는, 최고라는 의미로서, 극도에 도달함, 사물이나 이치의 마지막 단계, 또는 마지막 단계까지 도달하는 것, 진리의 가장 오묘(奧妙)하고 깊은 경지를 말하며, 구극(究極)과 같이 쓰이고 있다.

    다음은 <신심명(信心銘)> 에 나오는 말이다.

    “구경궁극(究竟窮極) 중 구경(究竟)은 ‘사리(事理)의 마지막,’ 궁극(窮極)은 ‘가장 마지막’이니 같은 뜻을 반복해 더 이상 높은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게송에서 ‘지동무동(止動無動)’이라 해 일체 번뇌를 소멸하고 중생제도의 길로 나가고, ‘양기불성(兩旣不成)’에서 대립되는 양단(兩段)이 성립되지 않으니, ‘만법제관(萬法齊觀)’하여 만법을 있는 그대로 편견(偏見) 없이 가지런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니 사리(事理)의 가장 마지막인 구경(究竟)에 이르게 되는지라, 이에는 궤칙(軌則-일정한 법칙), 즉 궤도(軌道)도 없고 법칙도 없다. 구경에는 결국 공성(空性)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공성은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는 것이나 바람과 같이 움직이기도 하므로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또 크다고 할 수도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며,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입을 열면 잘못이 된다고 할 정도이니 궤칙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라 했다.

다음은 고승들의 열반에 관한 얘기이다.

    고려의 보조 국사(普照國師)는 법상을 차려놓고 제자들과 백문백답을 끝마친 다음 법상에서 내려와 마루에 걸터앉은 채 그대로 조용히 열반하셨다. 죽음은 범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 국사나 현대의 한암(漢岩) 선사 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죽음이 아무 거리낌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에 잠이 들듯 아주 태연히 죽을 수 있다. 이리하여 한암 선사가 아홉 살 때, ’반고(盤古)씨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궁극(窮極)을 캐묻던 어린 소년이었는데, 76세 때에 바로 그 반고 이전의 궁극의 세계로 조용히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한암 선사는 그 궁극의 세계를 넘어서 더 멀리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물질의 궁극에 관한 얘기이다.

    물리학에 있어서 쿼크(Quark)는 소립자 바리온(baryon)과 메존(meson)을 이루는 기본입자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쿼크는 물질의 궁극(窮極)이라 할 수 있다.

          ※<사략(史略)>에 ‘태고에 천황(天皇)씨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반고(盤古)씨가 있었다고 했다. 중국 전설상의 천자인데, 천지개벽 때 처음 태어났으며, 부부 음양의 시초요 천지만물의조상이라 한다.----구경(究竟), 궁극적 실재(窮極的實在, 빠알리어 빠라맛타/paramattha)참조.

         

*궁극적 실재(窮極的實在, 빠알리어 빠라맛타/paramattha)---아비담마에 의하면 존재에는 인습적인 것(sammuti)과 궁극적인 것(paramattha)의 두 가지가 있다.

    인습적인 것은 보통의 개념적 생각(pannatti)과 인습적 표현(vohara)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중생, 사람, 남자, 여자, 동물 등,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의 분석적이지 못한 밑그림을 구성하는, 외관상 견고하게 남아 있는 산, 바위, 나무, 집 등 여러 대상들이 모두 인습적인 것에 포함된다.

    이런 개념들은 궁극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아비담마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 개념들이 나타내는 대상은 그들 자체로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아비담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고유한 성질(사바와/sabhava)을 가진 실재가 아니다. 여러 궁극적인 것들이 모여져 이루어진 것들을 편의상 각각 다른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을 뿐이다.

    paramattha(빠라맛타)는 parama(최고의, 최상의)+attha(이치, 뜻)의 합성어이다. 최고의 이치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승의(勝義)’라고 직역했고, 여기에다 진리(諦)를 뜻하는 삿짜(sacca)를 첨가해서 빠라맛타삿짜(paramattha-sacca)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며, 그래서 승의제(勝義諦)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진제(眞諦)라 하기도 한다. 이것이 궁극적 실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세간에서 통용되는 진리는 속제(俗諦, sammuti-sacca)라고 한다.

    궁극적인 것은 그 자신의 고유한 성질(sabhava)을 가진다. 이것은 최종적인 것이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존재의 구성성분이며, 경험을 정확하게 분석한 결과로서 존재하는 구극의 단위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법(dhamma)이라 한다. 이런 궁극적인 것들은 더 이상 분해되지 않고 이들 자체가 다양한 경험으로 뭉뚱그려진 개념적 존재들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요 실재이다.

예를 들면 '사람' '남자' '여자' 등은 인습적인 것이지 구극의 단위가 아니다. '사람'이란 지ㆍ수ㆍ화ㆍ풍의 사대와 그에서 파생된 물질인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 등과 마음(意), 이 마음과 같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신작용(마음부수)들이라는 최소단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땅의 요소나 물의 요소, 감각접촉, 느낌, 의도 등은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그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가진 궁극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란 것은 인습적인 존재의 영역에 속하며, 땅의 요소 등은 궁극적인 실재라 부른다.

    이처럼 우리가 아비담마의 분석적 도구를 가지고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런 '인간' 등의 개념 그 자체는 궁극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정신 - 물질적(名色, nama-rupa)인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정신 - 물질적인 과정들은 모두 최소단위들이 매순간 특정한 조건하에서 서로 조합돼 생멸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런 그들 자신의 고유한 성질(sabhava)을 가진 최소단위(dhamma)들을 아비담마에서는 궁극적 실재(paramattha, 혹은 구경법)라 한다.

이러한 궁극적 실재는 정신 - 물질적인 현상의 구체적 본질로서 존재하지만 너무 미세하고 심오해서 훈련이 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이것들을 인식할 수 없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은 개념(pannatti)들로 뒤덮여 있어서 궁극적 실재를 보지 못한다. 대상을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요니소 마나시까라, yoniso manasikara, 如理作意)으로써 개념을 넘어서 보게 되고 인간은 궁극적 실재를 앎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 실재는 최상의 지혜(智)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네 가지 궁극적 실재>

    아비담마에서는 마음(心王, citta), 마음부수(心所, cetasika), 색(色-물질, rupa), 열반(nibbana)의 네 가지 궁극적 실재를 설하고 있다. 여기서 마음은 1가지이고 마음부수는 52가지이며 물질은 18가지이고(10가지 추상물질은 제외), 열반은 1가지이다. 이렇게 해서 모두 72가지 궁극적 실재 혹은 구경법이 있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존재나 개인을 오온(五蘊, panca-khandha)으로 분석하셨다. 물질의 무더기(色蘊,rupa-khandha), 느낌의 무더기(受蘊, vedana-khandha), 인식의 무더기(想蘊, sanna-khandha), 상카라들의 무더기(行蘊, sankhara-khandha), 알음아리이 무더기(識蘊, vinnana-khandha)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식온은 아비담마의 마음(心王)과 일치하고, 수온, 상온, 행온은 마음부수(心所)와 일치하며, 색온은 물질(18가지 구체적인 물질)과 일치한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마음, 마음부수, 물질에다 열반(Nibbana)을 포함해 모두 네 가지 궁극적 실재를 설한다. 열반은 오온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형성된 것들에 내재한 괴로움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탈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음, 마음부수, 물질은 유위법(有爲法, sankhata-dhamma, 형성된 것들)이라 하며, 열반은 무위법(無爲法, asankhata-dhamma,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 부른다.

    아비담마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런 궁극적 실재들이야말로 이 모든 세상, 즉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서부터 출세간의 경지에까지 항상 존재하는 최소의 단위이다. 존재를 이런 최소의 단위, 구극의 단위로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체(vibhajja)해서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가 없다고 설하는 것이 아비담마이다.

    아비담마는 개념(pannatti)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이 궁극적 실재인 법(dhamma)들의 특징과 역할 등을 분석해 규명하고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인연취산(因緣聚散)을 거듭하고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둔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근본적인 관심이다.

    법을 궁극적 실재라고 하면 혹자는 "그것은 제법무아라는 부처님의 근본사상과 상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아비담마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유한 특징(sabhava-lakkhana)과 보편적 특징(sammana-lakkhana) 두 가지 측면으로 법을 고찰한다.

    각각의 법들은 모두 그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는 있지만 무상ㆍ고ㆍ무아라는 보편적인 특징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열반은 형성된 것(sankhata)이 아니므로 무상과 고를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무아는 그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경에서도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라고 표현하며, "모든 법들은 자아가 없다(諸法無我)"라고 무아를 가르치고 있다. 이 제법(諸法, sabbe dhamma)에는 열반도 포함된다. 열반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열반은 탐ㆍ진ㆍ치가 소멸된 경지라서 이런 모든 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궁극적 실재라 한다고 해서 불변하는 어떤 존재론적인 특정한 것을 상징하려든다면 이는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빠라맛타/paramattha)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 실론섬 주해모음  

    

*궁극적 진리(진리의 본체)---불교에서는 이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 여래, 열반, 해탈, 적멸, 원적, 공적, 진제, 성제, 승의제, 제일의제, 제일의공, 공, 진공, 진여, 여여, 여실, 법계, 법신, 법성, 불성, 본성, 진성, 견성, 실상, 무상, 무아, 중도, 한 물건, 한 소식, 한 생각 등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권(權)…가(假) 또는 임시, 방편을 의미함. 진실에 이끌기 위해 근기(根機)에 응해 일시적으로 설하는 법. 실(實)에 대칭이 되는 말이다.

           ※실(實)…진실을 의미함. 마지막 궁극의 변하지 않는 참되고 완전한 법을 지칭한다.

            

*권교(權敎)--여기서 ‘권(權)’은 가(假) 또는 방편(方便)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권교란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방편으로써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진실한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중생의 근기와 욕망에 따라 그에 응해 설하신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깊은 진리는 보통 상식으로는 대번에 알아듣기 어려우므로, 처음엔 일시적인 방편으로 얕은 이치인 권교를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을 가르쳤다. 따라서 권교란 진정한 가르침인 실교(實敎=圓敎)에 대칭되는 말이다.

    <법화경>에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전권후실(前權後實), 곧 권교(방편교)에서 실교로 들어가는 순서를 밟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권교를 설하실 때는 아무렇게나 설하신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권교를 설하시는 것은 상대의 근기가 낮으니까 수타의교(隨他意敎), 곧 상대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그에 맞게 설하신 것뿐이다. 부처님께서 권교를 설하실 때는 곧 수타의교를, 수타의교를 설하실 때는 수자의교(隨自意敎), 곧 진실의 가르치심 <법화경>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시고 설하셨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권교(權敎)라는 것은 실교(實敎), 곧 일불승 <법화경>을 설하시기 위한 길잡이인 셈이다.---→실교(實敎), 권실(權實) 참조.

    

*권교방편(權巧方便)---권방편(權方便)이라고도 한다. 방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진리 그 자체를 진리로 직접 표현하기 힘들 때, 깨달음을 향해 가는 간접적 수단을 말한다. 권교방편이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부처님이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베풀듯이 정교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 혹은 부처님이 중생을 지도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지혜를 말한다.    

       

*권대승(權大乘)---실대승(實大乘)에 대칭되는 말로서, 일시적인 방편으로 설한 대승의 가르침을 말한다. 실대승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 수단이란 말이다. 특히 종파적 입장에서, 대승불교의 여러 종파에서는 서로 자기들의 종파를 진실이라 하고, 그것에 대립하는 입장을 권대승이라고 한다. 예컨대 천태종(天台宗)과 화엄종(華嚴宗)의 입장에서 자기네의 일승교를 실대승이라 하고, 이에 비해 법상종(法相宗)과 삼론종(三論宗)의 삼승교를 가리켜 권대승이라 한다. 반대로 삼승교에서는 일승교를 권대승이라 한다.---→삼승교(三乘敎), 실대승(實大乘) 참조.

          

•권불(權佛)---여기서 ‘권(權)’은 임시방편을 의미한다. 진실로 이끌기 위해 근기에 맞게 일시적으로 설하는 법으로, 실(實)에 대칭이 되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석가모니불인데도 실불(實佛)로서의 석가모니불과 권불로서의 석가모니불로 구분한다.  

    천태종에서는,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나서 29세 때 출가, 6년간 고행 끝에 35세에 성도(成道)해, 이후 45년간 설법하고, 80세에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바세계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투신 권불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 약사유리광불, 대일여래, 정광불, 미륵불… 등도 모두 권불이라 한다.

    권불(權佛)은 구원실성의 본불의 그림자로서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부처를 말한다. 사바세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잠시 일대사인연으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부처를 적불(迹佛)이라 하는데, 권불과 적불은 같은 개념이다.

    이에 비해 실불(實佛)은 <법화경> 제16 여래수량품에서 비로소 유일하게 부처님의 본래 경지를 열어서 본체를 밝히신 것을 말한다. 먼 옛날인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 만억 나유타 겁에 이미 부처님을 이루셨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부처님의 비밀한 신통의 힘으로써 가지가지 법을 설하셨고, 가지가지 몸을 나타내셨으며, 중생제도를 위해 방편으로 열반에 드시기도 했고, 항상 모든 곳에 머무르시어 멸하지 않고 법을 설하고 계시는 구원실성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한다.

    이와 같이, 같은 석가모니불이라도 실불의 입장에서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님이고, 권불의 입장에서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부처님이다.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에서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적불(迹佛) 참조.

    

*권속반야(眷屬般若)---→‘반야(般若)의 종류’ 참조.

       

*권승(權乘)---권(權)과 실(實) 두 글자는 대칭되는 말로서, 근기에 맞도록 가설한 방편을 권(權)이라 하고, 수단이 아닌 불변의 진실을 실(實)이라 한다. 그러므로 권승은 진승(眞乘ㆍ實乘)에 대칭되는 말로서 일불승(一佛乘最上乘)에 이르게 하는 단계적 교설을 말한다. 즉, 일승에 이르는 과정의 이승(二乘)과 삼승(三乘)의 교설이 모두 권승이다.

     

*권실(權實)--권교(權敎)와 실교(實敎)의 약칭이다. 때에 따라 근기에 맞도록 가설(假說)한 방편을 권(權)이라 하고, 수단이나 가설이 아닌 구경불변(究竟不變)하는 진실을 실(實)이라고 한다. 즉 수단적인 가르침과 진실된 가르침을 뜻한다. 이 권실관계는 체(體)ㆍ용(用)ㆍ이(理)ㆍ사(事)의 관계와 같아, 사물의 차별상을 인식하는 것을 권지, 실상의 이치에 통달한 것을 실지라고 한다.

    권과 실의 판단은 종파에 따라 달라 천태종과 화엄종에서는 <법화경>을 근거로 해서,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三乘)은 사람의 이해능력에 따른 방편적 가르침이므로 권교이고, 불타의 일승(一乘)이 진실한 대승(大乘)은 실교라 하고 있다. 한편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일승을 권교, 삼승을 실교라 하며, 삼론종(三論宗)에서는 이승을 권교, 일승은 실교라고 한다. 이러한 종파에 따른 차이는 중국불교의 특색인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초래한 종파 사이의 아전인수격의 논술이라 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불교교리의 사적 발전과정을 담고 있다. 이 권실이교(權實二敎)는 권교가 곧 실교라고 하는 권실불이(權實不二)의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권교(權敎), 실교(實敎) 참조.

     

*권지(權智)---부처와 보살이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

      

*권청(勸請)---일반적으로 신불(神佛)의 내림(來臨)을 비는 것을 권청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에게 설법을 해 주기를 원하거나 열반에 들려는 부처님에게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러 주기를 원하는 것을 일컫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을 때, 범천왕(梵天王)이 그 깨달음의 경지를 널리 대중에게 설해 주시기를 권했던 것이 권청의 시초이다.

    <증일아함경> 권청품(勸請品)의 제1경에 전하는 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도(道)를 얻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얻은 깊은 이 법은 밝히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달아 알기 어렵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설령 내가 남을 위해 이 묘한 법을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받아주지 않거나 또 받들어 실천하지 않으면 부질없이 수고롭고 손해만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 어찌 꼭 설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세존의 고민을 알고, 그때 범천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세상 중생들도…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근기는 이미 성숙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만다면, 그 또한 애달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부디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들을 위해 설법해주소서.’」

       

*권현(權現, 산스크리트어 avatara)---화신(化身), 권화(權化)와 같은 말이다. 부처님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불 ‧ 보살 등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즉 불ㆍ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부러 신(神)이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귀경(歸敬)---불법에 귀의(歸依)해 경례(敬禮)한다. 또는 귀의해 공경한다는 말로서, 귀명(歸命)ㆍ귀경(歸敬)ㆍ귀의(歸依)ㆍ경례(敬禮)ㆍ구아(救我)ㆍ도아(度我) 등이 다 같은 말이며, 나무아미타불을 의미한다.

     

*귀경게(歸敬偈, 산스크리트어 magalaloka)---주로 논서나 주석서의 첫머리에 실리는 게송으로서 불ㆍ보살이나 스승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보통 해당 논서의 주제가 이 귀경게(歸敬偈)에 잘 나타난다.

    세친(世親, 바수반두, 320~400)는 그가 지은 〈구사론〉 첫머리에 귀경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논서(論書)를 쓰려는 사람은 자신의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 지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먼저 스승의 수승한 능력을 찬탄하면서 스승에게 경배를 올린다.”

    용수(龍樹, Nagarjuna)의 <중론(中論)>을 중송(中頌) 또는 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용수는 <중론>에서 중도를 선양하기 위해 여덟 가지 부정의 논법인 팔부중도(八不中道)을 구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중론> 서두의 귀경게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귀경게 중에서도 용수가 <중론> 첫머리에 읊은 귀경게가 특히 유명하다. 그래서 ‘귀경게’라 하면, 보통 <중론>의 귀경게를 지칭한다. 용수는 귀경게의 팔부중도(八不中道)를 통해, 부처님이 중생들이 생각하는 생멸거래일이단상(生滅去來一異斷常)의 여덟 가지 어리석은 견해 대신 ‘연기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따라서 팔부중도는 연기를 바탕으로 한 공(空)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거(不來不去), 이런 인연을 능히 설하시어 여러 희론(戱論)을 소멸시키시니, 설법자 가운데 최고인 분에게 나는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라고 하면서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제시했다.

    이 귀경게의 팔불 게송이 중론의 핵심을 요약한 것으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연기의 이법(理法)이 생(生) ․ 멸(滅) ․ 상(常) ․ 단(斷) ․ 일(一) ․ 이(異) ․ 내(來) ․ 거(去)의 여덟 가지 잘못된 견해[팔사(八邪)]를 떠난 것임을 파악할 때 참다운 공(空)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고, 팔사가 떨어져 무소득(無所得)의 바른 견해에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이리하여 팔부중도(八不中道)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인연법으로 허망하고 사악한 이론들을 모조리 때려잡은 것, ― 파사현정(破邪顯正)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중론>의 첫 구절 귀경게(歸敬偈)는 용수가 부처님의 진리 중 으뜸인 연기법을 가지고 당시에 횡행하던 잘못된 이론들을 모조리 타파한 후에 부처님께 자랑스럽게 절하는 용수의 자부심을 나타낸 문장이다.---→팔부정관(八不正觀), 팔부중도(八不中道) 참조.

      

*귀명(歸命, 산스크리트어 namas)---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 즉 귀의(歸依)를 의미한다. 부처님을 깊이 믿는다는 뜻임. 부처님을 진심으로 공경해 몸과 목숨을 바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등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믿음을 의미하며, 산스크리트어 나무[南無]로 음역된다. 귀명정례(歸命頂禮,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것)와 같은 신체의 동작과 지심귀명(至心歸命, 마음속으로 귀의하는 것)의 양면을 포함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올리는 예불은 물론 경전과 논서의 처음도 이 귀명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귀명을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분이 원효(元曉) 대사이다. 원효 대사는 귀(歸)의 모습을 공손히 따르는 것이며,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귀(歸)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명(命)은 목숨의 뿌리이며, 모든 근(根)을 통제함으로 하나뿐인 몸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주인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 가운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 하나뿐인 목숨으로 위없는 존귀한 이를 받드는 것이다. 믿음의 지극함을 나타내어 목숨을 바쳐 귀의한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귀모토각(龜毛兎角)---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란 말인데,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인도 논리학, 나아가서는 불교 논리학인 인명론(因明論)에서 사용됐던 것으로 인식대상의 부재를 나타내며 형이상학적 실체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비유에 공화(空華)가 있다. 그것은 안질에 걸린 사람이 환영(幻影)으로 인해 공중에 꽃이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이, 실체가 없는 것을 그릇된 관념에 의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 속에 자아(自我:atman)가 상주한다고 생각하며 존재자 중에 실체가 있다고 보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며, 이는 번뇌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비유이다.---→공화(空華), 환(幻) 참조.

      

*귀의(歸依, 산스크리트어 namas)---귀명(歸命)과 같은 말이다. 부처님이나 스님에게 귀순해 의지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종교적 관념에서는 귀의나 구원은 절대자를 전제하고, 신앙으로서 ‘귀의’는 외적 절대자에 대한 귀의이고, 구원 또한 절대자에 의해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신앙적 관념을 말한다. 따라서 귀의라는 말은 다분히 타력신앙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육조단경>에서 혜능(慧能, 638~713) 선사는 외적인 절대자로서의 부처님을 배제하고, 자기 몸 안에 있는 부처에게 귀의를 강조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귀의와 혜능 계통의 선불교에서 귀의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산스크리트어 namas(돌아가 의지함)을 소리 번역하면 남무(南無)이다. 그런데 ‘남’보다 ‘나’가 원음에 가까우므로 ‘나무’라 읽는 것이 더 정확하다.

    불ㆍ법ㆍ승에 귀의하는 귀의삼보(歸依三寶)는 불교신앙의 전부를 나타낸다. 부처님의 유계(遺誡)인 자귀의 자등명(自歸依 自證明)과 법귀의 법등명(法歸依 法證明)은 자기와 진리에 의지해 노력하는 것이 곧 진리에 맞는 옳은 삶임을 뜻한다.3보에 귀의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귀의불무상존(歸依佛無上尊) ― 부처는 최상무상(最上無上)의 인격 완성자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 불법은 탐욕을 떠나게 하는 존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 귀의승화합존(歸依僧和合尊) ― 불교 교단은 평등화합의 이상사회이기 때문에 귀의한다.---→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참조.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불법은 탐욕을 떠나게 하는 존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 일체의 욕심을 떠나 청정무구한 불법(佛法)에 돌아가 의지하겠다는 의미이다.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삼귀의의 하나.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며 복혜양족(福慧兩足-복과 혜를 고루 갖추는 것) 한 분이므로, 그러한 부처님에게 돌아가 의지하겠다는 말이다.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삼귀의의 하나. 승은 일체의 대중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이므로 승에게 귀의한다는 뜻. 귀의불양족존ㆍ귀의법이욕존ㆍ귀의승중중존을 삼귀의(三歸依) 또는 귀의삼보(歸依三寶)라 한다.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일심의 근원에 돌아가 중생을 요익케 하라”고 했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널리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는 의미로 원효(元曉) 대사가 한 말이다.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을 말하며, 대승불교의 궁극적 이상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 거의 같은 뜻이다.

 

           

*귀자모(鬼子母)---어린아이를 수호하는 신. 본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나찰(羅刹)귀신이었으나 부처님이 그녀의 막내아들을 감추고 교화한 결과 부처님께 귀의해서 아이들을 보호하게 됐다.

      

*규기(窺基, 632~682)---당나라시대 법상종(法相宗) 개조. 자은 대사(慈恩大師) 혹은 대승기(大乘基)라고도 한다. 17세에 출가, 현장(玄奘)의 수제자가 됐으며, 28세 때 스승을 도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했고, 반야심경 주석서인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과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등을 저술했다.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년~841년)---당나라시대 선사. 어려서부터 유교와 불교를 배우고 28세에 출가했으며, 징관(淸凉 澄觀, 738~839)의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읽고 크게 감동 받아 징관에게 화엄학을 배웠다. 규봉은 중국불교사에서 가장 저명한 선종사가이며, 초조 두순(杜順, 557~640), 제2조 지엄(至嚴, 602~668), 제3조 법장(賢首法藏, 643~712), 제4조 징관(澄觀, 737~838), 제5조 종밀(宗密, 780~841)로 이어지는 화엄종 계보에서 중국 화엄종의 제 5조이기도 하다. 두순(杜順), 지엄(智儼)을 거쳐 법장(法藏:643~712)에 의해 완성된 화엄사상은 징관(澄觀), 종밀(宗密)에 의해 계승 발전됐다.

    종밀은 선과 화엄사상을 깊이 탐구를 하고, 821년부터 종남산(終南山) 규봉(圭峰) 초당사(草堂寺)에서 저술에 전념하면서 그 당시 사분오열돼 서로 반목하고 있는 종파불교 현실을 크게 개탄해 이를 종식시키고자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제창했다. 그리하여 종밀은 중국 화엄종의 제5대 종사이기도 하면서 중국 선종의 하나인 하택종의 선사(禪師)이기도 했다. 시호는 정혜선사(定慧禪師). 저서에 <원각경과문(圓覺經科文)>ㆍ<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ㆍ<원각경약소(圓覺經略疏)>ㆍ<행원품수소의기(行願品隨疏義記)>ㆍ<원인론(原人論)> 등이 있으며, 특히 교와 선을 회통하고자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저술했다.  

 

*균여(均如, 923~973)---고려 초기의 고승. 15세 때 사촌형 선균(善均)을 따라 출가, 영통사(靈通寺)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그는 화엄종이 남악(南岳)과 북악(北岳) 양종으로 대립해 있음을 개탄, 북악의 법통을 계승해 남악까지 종합해 독자적인 입의정종(立義定宗)을 확립했다. 964년(광종 15), 광종이 그를 위해 발원해 송악산 아래에 창건한 귀법사의 주지로서, 왕명에 따라 제사를 받들며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 입적했다.

   그가 지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을 노래로 풀이한 것이다. 균여는 한문경전을 읽을 수 없는 백성들이 <화엄경>의 요점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내용을 사뇌가(향가)로 지었다. 화엄사상을 민중 속에 퍼뜨리기 위해 향가로 노래한 <보현십원가>는 고려시대의 향가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향가의 전성기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그리이스계 혼합불교라은 의미이다. 내용면에서는 대승불교를 뜻한다.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와 대비되는 것으로 순수 불교에 그리스, 페르시아의 사상, 힌두교 사상 등이 습합돼 나온 불교이다.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미륵불 등이 그리스-페르시아계이고, 관세음보살은 힌두교 계통이다. 특히 ‘그레코(Greco)’가 ‘그리스의’ 하는 뜻하므로 그리이스계 혼합불교란 말이다.

    그리스가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인도에 등지에 그리스계 식민왕국을 세우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박트리아를 비롯해서 그리스-인도 왕국이 세워진 서북부인도의 간다라 지방인 탁실라를 중심으로 해서 융합된 문화이다. 특히 쿠샨왕조에 의해 박트리아왕국은 멸망했으나 간다라미술은 쿠샨왕조에 이르러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계 식민국인 인도-그리스왕국(박트리아)의 메난드로스 1세(Menander, 재위 BC 165-130) 왕은 그레코-불교도 왕이었고, 불교철학에 대한 나가세나 비구와의 문답을 내용으로 한 <밀린다팡하(Milinda Pañha>를 생산한 주인공이다. 그리하여 박트리아에서는 그레코 불교를 국교로 했었다.---→박트리아(Bactria) 왕국 참조.

        

 

*극락(極樂, 산스크리트어 sukhavati/수카바티=수하마제/須訶摩提)---극락(極樂)은 보통 극락정토(極樂淨土)라 일컬어지는데, 극락은 지극히 즐겁다는 뜻이요, 정토는 깨끗한 땅이란 뜻이다. 극락정토는 자연환경이 좋고 물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모든 대중이 자유와 평등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불교 최상의 이상향을 말한다.

    극락세계ㆍ극락정토ㆍ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ㆍ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ㆍ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ㆍ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ㆍ서방정토(西方淨土)ㆍ안락국(安樂國)ㆍ안락정토(安樂淨土)ㆍ안양정토(安養淨土)ㆍ안양세계(安養世界)ㆍ미타정토(彌陀淨土)ㆍ금색세계(金色世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세속에서도 흔히 행복하고 안락한 곳이라 할 때 극락 혹은 극락세계라는 표현을 잘 쓴다.

    극락의 내용은 <아미타경>에 설해져 있다. 극락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간 곳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아미타불 정토로서 아미타불 전신인 법장(法藏) 비구의 이상을 실현한 국토이다.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어 불과(佛果)를 얻은 사람만이 죽어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은 항상 아미타불이 계셔서 설법하고 있으며, 모든 일이 원만 구족해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이다. 이곳에 태어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즐거움을 받는다고 한다. 예컨대, 부처님의 몸과 같이 32상(相)과 신통을 얻고, 마음대로 법을 듣고, 부처님에게 공양하면 깨달음이 열린다고 한다. 단, 극락에도 변지(邊地), 의성(疑城), 태궁(胎宮) 등으로 불리는 변두리가 있어서,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혹을 품는 사람은 이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경에는 극락세계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없었다. 다만 부파불교시대를 지나면서 시설된 것으로 대승불교에 와서 구체화 됐다.

    그리고 극락이 삼계에 속하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한 논란은 대체로 극락이 삼계(三界) 밖의 불국토(佛國土)라는 설과 삼계에 포함된다는 두 가지 설로 요약된다.

     ① 극락은 삼계 밖이라는 설---극락왕생을 중시하는 정토종(淨土宗) 계열에서는 극락을 삼계(三界)와는 별개의 세계로 보는 타방정토설을 따른다.

정토종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중국에서 성립된 불교종파로서, 중국적 특징이라 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내세운 종파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지해 타력본원설(他力本願說)을 받아들여, 정토에 왕생하는 것도, 정토에서 보살행을 닦는 것도, 모두 아미타불 본원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으며, 부처님 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다. 초기불교의 자력신앙(自力信仰) 입장과는 많이 다르고, 전형적인 타력신앙(他力信仰)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토사상은 석존(釋尊)이 설하신 적도 없고, 오히려 석존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사상이다. 불교는 석존의 교설을 토대로 성립한 종교이다. 그 교설이란 다름 아닌 석존 자신의 깨달음에 근거한 성불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석존 교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또한 그 목적이 만인성불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정신력이 약한 중생들이 쉽게 구원받을 길을 찾다가 신에 의지하고 싶어 찾아낸 것이 정토신앙 타력본원설이다. 자연인인 석존을 신격화하려니, 이미 설해 놓고 남긴 흔적이 너무 장황하고 방대해서 도저히 이를 숨기고 신격화하기가 어려워 새로 신격을 만들어낸 것이 아미타불이요, 비로자나불이고, 관세음보살이다.

    그리고 석존의 생생한 사실적인 가르침은 중생들 생각과 논리에 의해 조금씩 변질돼 갔다. 그리하여 석존께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전개되고 있다. 아마도 영민하고 약삭빠른 자들이 쉽게 편하게 지내려고 만들어내어, 그리고 우매한 중생을 끌어들이려고 창작한 타력신앙사상이고, 이들에 의해 설정된 극락세계가 삼계 밖의 서방정토이다.

     ② 극락이 삼계 안에 포함된다는 설---색계 천상 가운데 절정인 정거천(淨居天)이 극락이라는 주장이다. 정거(淨居)는 정(淨, 산스크리트어 śuddha-청정)과 거(居, 산스크리트어 vāsa-처소)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청정한 거처(pure abode)이며, 청정한 업[淨業]을 이룬 성인이 태어나 거주하는 처소를 말하는데, 상상의 세계이다. 삼계 중 색계(色界) 제4선천(第四禪天)에 속한다.

    남방불교에서는 정거천에 5정거천이 있다고 해서, ➀무번천(無煩天), ➁무열천(無熱天), ➂선현천(善現天), ➃선견천(善見天), ➄색구경천(色究境天) 등 다섯 가지 하늘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북방불교에서는 여기에 무운천(無雲天), 복생천(福生天)을 더해 일곱 하늘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초기불교 이래의 교학에 따르면, 성문4과(聲聞四果) 가운데 제3과(제3단계)에 이른, 즉 번뇌를 다 여읜 불환과(不還果-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한 성인들만이 태어나서 거처하는 처소[處] 또는 하늘[天]이다. 즉, 정거천은 불환과를 얻은 성자(아나함)들만 태어날 수 있는 아주 수승한 천상이다. 아나함들은 다시는 이보다 더 낮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여기에 태어나서 머물다가 아라한(阿羅漢)이 되고, 열반에 든다고 한다.

    정거천은 수승하고 행복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삼계에 속하는 한 그것은 한계가 있다. 불환과라는 수승한 경지를 얻은 성자들이 머무는 곳이지만 그것은 무상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극락도 삼계에 속하는 한 역시 무상한 곳이다.---→아나함(阿那含) 참조.

     • 극락(極樂)과 천상(天上)은 전혀 다르다.

    천상(천국, 천당)은 삼계(三界) 속에 있다. 욕계 천상, 색계천상, 무색계천상이 있으며, 이들 천상은 우리의 마음이 만든 곳이며, 우리가 지은 업대로 가는 곳이다. 즉, 천상계는 중생의 업에 의해 지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원력으로 만들어진 극락과는 비교가 못 된다. 무량수불(無量壽佛)은 불국토 중에서 가장 수승한 극락이라는 곳을 만드셨고, 극락에는 윤회나 일체 고통이 없다.

    극락은 우리보다 뛰어난 다른 차원의 세상이고, 극락에 일단 태어나면 그곳에서 생사의 세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윤회가 없다. 천상에는 윤회가 있다.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수행자(즉 보살)로서 극락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일생보처(一生補處, 다음 생에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약속된 경지)의 위치라서 최상인 것이다.

    그리고 극락은 선업을 쌓은 결과 태어나는 곳이지만 천상세계에는 삼매 수행을 통해서 태어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상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 수명의 한계가 있다. 그 수명이 다하면 다른 곳에 태어나야한다. 이렇게 볼 때, 천상이란 별도의 세계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매 수행에 얻어지는 정신세계라 하겠다.

     • 기독교 천국(천당)은 극락에 더 가깝다.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 속의 천상(육욕천)보다는 극락이 기독교 천국(천당)과 비슷하다 하겠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불교의 극락은 기독교 천국과 달리 그 자체가 끝인 게 아니다. 다만 최종단계인 성불이 약속된 단계이다. 물론 죽음과 윤회는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불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기독교의 천국처럼 죄인이라도 갈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나, 구품왕생이라 해서 천국과는 달리 죄를 지은 정도에 따라 9가지 등급으로 나누는 차별대우가 있다. 가장 낮은 등급인 하품하생(下品下生)부터 가장 수승한 상품상생(上品上生)까지 9등급이 있다. 불교의 극락과 기독교의 천국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 구품왕생일 것이다. 극락에 올 때 생전에 자신이 해 온 행동에 따라 극락에서의 대우가 달라지는데, 이 대우는 총 9단계로 나뉘어져 있어 이것을 구품왕생이라 한다. 정토삼부경 중 <무량수경>에 기술돼 있다.---→‘구품왕생(九品往生)’ 참조.

     • 극락과 천상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삼계나 천상, 극락과 같은 환상의 세계나 초월적 세계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삼계는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가진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초기경전에 나오는 초월적인 현상이나 윤회,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같은 의견을 가진 저명한 일본인 불교학자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의 <삼계(三界)와 출세간(出世間)>이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의 통속설에 의하면, 세계에 관한 설명으로 삼계(三界)와 출세간(出世間)이야기가 있다. 삼계는 선악업에 의한 생사윤회의 세계이고, 출세간은 윤회를 초탈한 열반계라고 돼 있다.… 초기불교를 공부한다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불교의 세계관이 이 우주를 설명하는 유일한 잣대인 것으로 잘못 알거나, 그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는 이 우주에 실재(實在)하지 않는다.… 요컨대, 이것은 초기불교에서 관념적으로, 기껏해야 비유적 ․ 신화적으로 선정이나 선정에 의해 도달되는 세계를 설명한 것을 부파불교가 사실적 ․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불합리하기 그지없게 된 것이다.… ”

    그러나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불교 우주관이라는 넓은 얼개를 형성함에 있어서 한 부분으로 창작된 것이고, 불교 교의 전체를 우주의 모습에 비대해 얼개를 구성할 때 하나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부분적으로 창작신화는 불가피한 것이므로 과학성 여부에 너무 비중을 둬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존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각자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크게 불교라는 큰 틀에서 시설된 가상의 정신세계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겠다.--→천상(天上)과 극락(極樂) 참조.

    

*극락전(極樂殿)---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사찰의 당우(전각)을 말한다. 극락보전(極樂寶殿), 혹은 무량수전(無量壽殿), 보광명전(普光明殿), 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해 내부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한국불교에서는 대웅전(大雄殿), 대적광전(大寂光殿)과 함께 3대 불전으로 꼽힐 만큼 중요한 전각이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 천 억 불국토를 비추고([無量光], 수명 또한 한량없어 백 천 억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無量壽]. 그래서 이 부처를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이라 하고 보광명전이라고도 한다. 아미타전은 이 부처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로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둔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국보 18)을 들 수 있다. 전각은 남향이고 아미타불상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불상 앞에서 기원하는 사람은 극락이 있는 서쪽을 향하게 돼 있다. 부여의 무량사 극락전(無量寺極樂殿:보물 356)이나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無爲寺極樂殿:국보 13) 등도 같은 경우이다. 김천 직지사(直指寺)처럼 극락전을 아예 서쪽에 동향으로 세운 곳도 있다.

     

*극미(極微, 산스크리트어 paramāṇu)---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시각 대상의 최소 단위. 극미를 미진(微塵)이라고도 한다.

    〈아함경(阿含經)〉등의 초기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여러 선어록에서도 진술된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색(물질)이 4대종(四大種)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사대종이란 지ㆍ수ㆍ화ㆍ풍으로 모든 존재가 이 네 가지 원소에 의해 구성됐다고 한다. 부파불교 시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 등은 4대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색(물질)의 양적인 최소단위를 극미(極微)라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4대종에 의해 최소 인식 단위로서의 미세 물질입자인 미취(微聚:극미의 한 유형)라는 극미가 형성되고, 다시 미취가 모여서 점차 커다란 물질을 형성하고, 마침내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4대종은 물질의 질적(質的) 구극(究極)으로 이해되게 됐고, 극미는 물질의 양적 구극으로 이해되게 됐다. 그리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설에 의하면, 이 극미는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만약 있다 할지라도 어떠한 작용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극미진(極微塵)---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따르면 하나의 극미진(極微塵)만이 존재할 수없고, 적어도 7개 이상의 극미진이 집합해 하나의 미취(微聚)를 이룬다고 한다. 그 집합 성색(成色)하는 과정은 중심의 일주미진이 상하와 사방의 극미진과 합해 일미취(一微聚)가 된다. 이 극소의 미진으로부터 형상을 볼 수 없는 극유진(隙遊塵)에 이르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7극미진이 일미취(一微聚)

     7미취진이 일금진(一金塵: 쇠 속을 통과하는 먼지)

     7금진이 일수진(一水塵: 물속을 지나도 물이 묻지 않는 먼지)

     7수진이 일토모진(一兎毛塵: 토끼의 털끝만 함)

     7토모진이 일양모진(一羊毛塵: 양의 털끝만 함)

     7양모진이 일유극진(一遊隙塵)이라 한다.

    극유진(隙遊塵)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문틈 사이의 일광에 의해서 보이는 먼지이며, 극미진이란 물질인 색으로서는 마지막 단계이다. 이를 지나면 곧 공의 세계가 나타나므로 허공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해서 인허진(隣虛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집합된 먼지가 진대(塵大)한 지구의 덩어리로 형성하는 과정은,

     7극유진이 일기진(一蟣塵: 서캐만한 먼지)

     7기진이 일슬진(一蝨塵: 이만한 먼지)

     7슬진이 일광맥진(보리알만한 먼지)

     7광맥진이 일지절(一指節: 손가락만한 먼지)

     3지절이 일지진(一指塵: 손가락 한 개만한 먼지)이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점점 집합해 마침내 대지(大地)와 하(河)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므로 인허진의계를 지나면 곧 공이기 때문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 지관 스님

         

*근(根, 산스크리트어 indriya)---근(根)의 어원은 인드리야(indriya)로서 어원적으로 인드라 신의 권능이라는 뜻이고, 이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어떤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는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를 6근(六根)으로 표현함으로써 인드라 신이 그 어떤 외적인 힘에 굴복하지 않고 독자적이고 절대적인 힘으로 스스로 운영해 나가듯이 육근으로써 인간도 그 어떤 외적 요인(예를 들면, 어떤 절대 신이나 우주로부터의 힘과 같은 것)에도 결정됨이 없이(영향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 자유의지적 존재로서 운영해 나가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6근은 6경과 짝을 이루는 가르침으로서 육경(六境)이란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이라는 여섯 가지 인식대상을 뜻한다. 이처럼 6경이 대응해야 6근의 작용 역시 그 존재가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근(根)이라 한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등 오근(五根)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작용을 해서, 즉 눈이라는 근을 통해서 사물을 보면 모양과 색깔이 나타나나고. 귀라는 근을 통해서 소리가 나타나고, 코라는 근을 통해서는 냄새, 혀라는 근을 통해서 맛, 몸이라는 근을 통해서 촉각이 나타난다. 그래서 근에 의해서 모양과 색깔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識-마음)을 일으키는 - 증상(增上)하는 근거라고 해서 근(根)이라 이름 하고, 유식에서는 종자(種子)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이라 하면 대부분 상식선에서 외형적 기관만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 eyes는 눈(眼)만 가리킬 뿐인데, 안근(眼根)은 의미가 더 포괄적이다. 눈에는 눈알 외에 시신경이 있다. 안근이란 눈알과 시신경에다가 눈의 역할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그래서 근(根)에는 외형적 모양 외에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증상하는 힘이 있다는 말인데, 지배적인 힘 혹은 성장시키는 힘까지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사론>에서는 “최고의 지배력과 빛을 냄을 근이라고 이름하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근은 증상(增上)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했다. 안근은 단순한 눈알만이 아니라 보는 작용까지 포함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근(根)이란 기관보다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진 개념이다.

    그리고 아비달마논사들은 5근 뿐만 아니라 전체 근을 22가지로 정리했다. 이 ‘22근’이란 ‘사물에 대해 증상의 의미를 특별히 갖고 있는 22가지 법’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여기엔 5근 외에 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명근(命根)이라든지, 촉(觸)에 따른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 등 5수근(五受根)이 있고, 번뇌를 제거하고 성도(聖道)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수승한 작용인 신근(信根)ㆍ근근(勤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의 5무루근(五無漏根) 등도 있다. 이와 같이 여러 근이 있어, 도합 22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근을 크게 두 종류, 부진근(扶塵根, 依處)과 승의근(勝義根, 淨色)으로 나누는데, 자세한 것은 각기 부진근(扶塵根)과 승의근(勝義根) 항목을 참조할 일이다.

         ※증상(增上, 산스크리트어 aupacayika, adhipati)---‘증상(增上)’이란 어떤 일에 영향을 주는 힘을 뜻한다. 뿌리는 나무를 증상시킨다. 그래서 근(根)은 증상(增上)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부진근(扶塵根), 승의근(勝義根) 참조.

         

*근ㆍ경ㆍ식(根境識)---감각기관과 의식기능을 근(根)이라 하고, 그 기관과 기능의 대상을 경(境)이라 하며, 그 기관과 기능으로 대상을 식별하는 마음작용을 식(識)이라 한다. 따라서 근(根)과 경(境), 그리고 식(識)을 합친 말이 근ㆍ경ㆍ식(根境識)이다.

   그리고 6근(根)과 6경(境)을 합쳐 12처라 한다. 육근(六根)은 안ㆍ이ㆍ비ㆍ설ㆍ신의 5관, 즉 5근(根)에 의근(意根)을 넣어서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근(根)이라 함은 초목의 뿌리라는 그러한 근으로, 근원 혹은 근본이라는 뜻이다. 즉, 육근(六根)이 육식(六識)이란 외경(外境)을 인식하는 경우에 그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근이라고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근을 부진근(扶塵根), 승의근(勝義根)의 둘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부진근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등 신체의 기관인 오근(五根)을 말하고, 승의근은 마음을 지칭한다. 즉, 승의근은 마음을 일으켜 바깥 대경(對境)을 감각하며 내계(內界)에 식(識)을 일으키는 의근(意根)을 말한다.

   가령 눈을 뜨고 볼 때, 안구는 부진근이고, 시신경은 승의근이다. 만약에 안구는 있어도 시신경이 마비돼 있으면 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시신경은 아무리 건전해도 안구가 없으면, 장님처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런고로 승의근과 부진근, 시신경과 안구의 둘이 완전히 갖추어야 비로소 우리들의 눈은 눈의 작용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역시 다른 오근(五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다음 육경(六境)이란, 육근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색, 성, 향, 미, 촉, 법이다. 육근에 대한 여섯 가지의 경계라는 뜻으로, 육경(六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육경을 또한 육진(六塵)이라고 하기도 한다. 진(塵)이라 함은, 무엇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우리들의 맑은 마음을 더럽히고, 미혹되게 하는 것은, 이 마음 밖에서 오는 색과 성과 향과 미와 촉과 법이니, 육경을 또한 육진이라고도 하니, “육진의 경계”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육진 중에서 법진(法塵)은 의근(意根)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기쁘다든가, 슬프다든가, 밉다든가, 예쁘다든가 하는 정신상의 작용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소위 12처(處)라고 말하며, 이것을 또한 12입(入)'라고도 한다. ‘처(處)’라고 함은 장소로 생장의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받아 넣어서 의식을 잘 생장시킴으로 해서 이것을 십이처라 한 것이다. 그래서 근(根)과 경(境)은 서로 얽혀 들어간다는 뜻에서 십이처를 또한 십이입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界)라는 것은, 18계라고 하는 것으로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 육식(六識)을 합쳐서 십팔계(十八界)가 되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들의 인식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근(根)과 경(境)과 식(識)의 세 가지가 서로 응해서 일치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근(根)과 경(境)만 있고 식(識)이 없으면, 즉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본 것 같지 않다. 무슨 일이고 열심히 하고 있으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간다. 한 시간 두 시간이 5분이나 10분밖에 안된 것 같다. 그러나 한 시간이 10분이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시간을 초월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있어도 없는 것 같이 되는 것이다. 식(識)이 시간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에 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계(界)라고 하는 글자는, 철학의 세계라든가, 신록의 세계라든가 하는 그런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차별이라든가, 구별 혹은 영역이라든가 하는 뜻이다. 따라서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 것은, 18종의 세계로서, 즉 근과 경과 식이 상대관계에 의해서 생긴 18의 세계다.

   그리고 안근(眼根)과 색경(色境)과 안식(眼識)이 화합하면, 여기에 눈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세계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즉 안계(眼界), 눈의 세계이다. 눈의 세계는 우리들 눈에 비쳐 오는 곱게 물든 단풍이 보인다. 우리들의 눈은, 안구를 통해서 단풍이라고 하는 색의 세계를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한번 단풍놀이를 갈까하게 되면, 벌써 눈의 영역이 아니다.

   <증일아함경>에는 “눈은 색으로써 식을 삼고”, “귀는 성(聲)으로써 식을 삼는다”고 했다. 눈의 음식은 색이다. 귀의 음식은 소리다. 그래서 좋은 구경 보고 싶다, 좋은 음악 소리 듣고 싶다고 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향불을 피운다. 이것은 중유(지옥에는 안가고 극락에도 못 가는 영혼)라는 중생은 향을 가지고 식(음식)을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물은 다만 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눈에도, 귀에도, 코에도 필요한 것이다.

   다음은 귀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좋은 명곡을 감상한다는 것은 귀를 먹이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귀먹은 사람은 귀의 형용만은 있으나, 긴요한 청각신경이 마비돼 있으므로,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다음은 혀의 세계이다. 즉, 미각의 세계다. 병이 들어서 열이 나든지 하면 맛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돼 있어, 혀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즉, 미각이 없기 때문에 맛을 느끼지 못한다. 즉, ‘입맛 없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오관(五官)의 중심이 돼 있는 안, 이, 비, 설, 신의 오근과 그 대상이 되는 색, 성, 향, 미, 촉의 오경, 이러한 것을 통일하는 인식의 주체가 제6의식(意識)이다. 이 의식이 의근(意根)을 의지해서, 일체의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제6의식은 일체의 만물을 널리 인식한다는 뜻에서 ‘광연식’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현재만이 아니고, 과거의 일, 장래의 일까지라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이 제6의식의 작용이다. 이 제6의식은 말하자면 오식(前5識)의 주인공이다. 이 주인공이 든든해 있을 때에 안, 이, 비, 설, 신의 오식(일명 전오식)은 명령대로 잘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 생각의 주체가 제6의식이다.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의 인식작용이라는 것은, 결국 근과 경과 식의 화합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식(識)이란 인식의 주체로서,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근은 그 식이 의지하는 곳, 경은 마음(식)에 의해서 인식되는 바의 대상을 말한다.

   우리들의 인식을 떠나서는 일체 만물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반야심경>에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없으면,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 법도 없고, 안계(眼界)도 없고, 의식계(意識界)도 없다고 한 것은, 결국 일체는 모두가 공이라고 한 것을 자세히 분석해서 설명한 것이다. 두뇌가 명석한 사람은 처음부터 일체가 공이라고 하면 곧 알아채지만, 아직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오온이 공인 것을 설명하고, 그래도 모르는 이에게는 육근과 육경이 공인 것을 설명하고, 그래도 또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좀 더 육근과 육경과 육식의 관계를 설명해서, 즉 인연으로 해서 만들어진 우리들의 세계와 존재는 모두가 공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근경식(根境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인식기관인 육근(六根)이 그 대상인 육경(六境)을 대함으로써 일어나는데, 육근이 육경을 대할 때 일어나는 인식작용이 육식(六識)이다. 이렇게 육근, 육경, 육식을 합쳐 ‘근경식(根境識)’이라 하고, 이들이 모여 인식이 성립하는 것을 ‘근경식 삼사화합’이라 한다.---→삼사화합(三事和合) 참조.

             

*근기(根機, 산스크리트어 indriya)---인간의 소질과 능력을 말한다. 세상에 성장하는 모든 것은 뿌리가 있기 마련인데, 뿌리는 줄기의 굵기와 크기 그리고 세월의 흐름만큼 땅에 의지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또한 줄기는 크기만큼 햇살을 머금고 뿌리는 깊이만큼 수분을 모아 각기 종자의 특성을 드러내며,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결실을 맺는다. 이러한 작용의 힘을 근기(根機)라고 한다. 이와 같이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그 능력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교법의 수준을 달리한다. 이것을 식물의 성장에 비유한 것이 근기다.

    ‘근기(根機)’에서 근(根)은 물건의 근본 되는 힘, 지배적인 힘, 혹은 성장시키는 힘이란 뜻이다. 기(機)는 발동한다는 뜻으로 교법을 듣고 닦아 증(證)해 얻는 능력 혹은 교법을 받는 중생의 성능을 말한다. 따라서 근기란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능력 및 교화할 수 있거나 교화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의 타고난 그릇, 역량, 천성, 성품 등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불법(佛法)을 만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혼신을 다해 배우려는 자가 있고, 혹여 만나더라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자가 있으며, 아예 만나지도 못하고 한 삶을 마감하는 자가 있는 것도 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예리한 근기[利根]과 중간정도의 근기[中根]과 둔탁한 근기[鈍根]의 구별이 있고, 또한 8만4천 방편이 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붓다는 설법할 때 항상 그 말을 들을 대상의 근기를 먼저 살피고 그에 알맞게 설법했는데,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 또는 수기설법(隨機說法)이라 한다. 이 때 스승의 근기와 배우는 자의 근기가 서로 계합하는 것을 두기(逗機)라 하며, 이를 선가(禪家)에서는 투기(投機)라 하기도 한다.

    흔히 수행을 하려면 ‘근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근기는 무엇인가를 담을 만한 크기와 모양인 근성과 그것을 자기화할 수 있는 기질들을 가리킨다.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유전적 능력, 그리고 자란 환경과 배경에 따라 생긴 특징이나 경험, 교육을 통해서 형성된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사론> 에서는 “최고의 지배력과 빛을 냄을 근이라고 이름하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근은 증상(增上)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했다. 부처님은 상대하게 되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문을 설하셨는데, 근기가 하열한 사람에게는 <아함경(阿含經)>을 설하시고, 근기가 수승한 사람에게는 <방등경(方等經)>,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설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은 <아함경> 뿐이니 이건 대승불교에서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근본경전(根本經典)---<아함경(阿含經)>이라고 부르는 한 무리 경전군(經典群)을 일컫는 말이다. 붓다 원음이 살아 있는 경전이기에 근본경전이라고 한다. <아함경>에 수용돼 있는 경전군을 남방불교에서는 빤짜-니까야(Panca-nikaya)라고 통틀어서 부르는데, 대개 <팔리어 삼장(三藏, Tipiṭaka)>을 말한다.---→‘니까야((Nikaya)와 북방 아함경(阿含經)의 관계’ 참조.

  

*근본무명(根本無明)---무명(無明)이란 우리의 청정한 본성인 본래마음을 흐리게 하는 미혹인 어두움을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자성청정(自性淸淨)해 본래 밝고 밝아 일체를 비춰보는 대원경지(大圓鏡智)인 것이다. 다만 그 청정본연의 자성(自性)이 스스로의 망념과 업인으로 인해 밝고 맑은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것이 가려져 반야의 지혜가 발현되지 못하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한다. 이 본래 갖춘 밝은 반야지혜가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 근본원인이 돼 마음이 어두워 중생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근본이라 해서 본래부터 있었던 근본인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순서상 처음에 두어 이름을 근본무명이라 하지만 그 시작은 계란과 닭의 관계처럼 아상(我相)으로 인한 집착이 먼저이기에 근본의 시작은 무명에 있다.

           

*근본번뇌(根本煩惱, 산스크리트어 mūla-kleśa)---번뇌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거나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등 미혹하게 하는 정신작용을 말하는데, 혹(惑)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 업(業)을 짓게 되며,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미혹의 세계를 헤매게 된다. 이것을 혹(惑)ㆍ업(業)ㆍ고(苦)의 삼도(三道)라고 한다.

    유식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지말번뇌(枝末煩惱)로 구분한다. 근본번뇌란 번뇌의 체(體)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며, 본혹ㆍ근본혹이라 하거나 수면(隨眠)이라 한다. 지말번뇌란 근본번뇌에 수반해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서 수혹ㆍ지말혹ㆍ수번뇌라 한다. 다만 수번뇌는 ‘심왕에 붙어 다니는 번뇌’란 의미로 이해하고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근본번뇌란 다른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 되는 번뇌로서, 근본번뇌에는 탐(貪, 욕심), 진(瞋, 성냄), 치(癡, 어리석음), 만(慢, 거만), 의(疑, 의심), 견(見, 삿된 소견)의 6번뇌가 있다. 이들 6가지를 6근본번뇌(六根本煩惱) 또는 6수면(六隨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견(見)’은 모든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견(惡見) 즉 부정견(不正見)인 삿된 5견(五見)을 말한다. 5견은 신경(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인데, 5리사(五利使)라고도 한다. 이 5리사와 위의 5번뇌를 합친 10가지 번뇌를 10번뇌 또는 10사(十使)라 하며, 이 중 탐(貪). 진(瞋). 치(痴) 3가지는 모든 악업을 낳는 근본이므로 삼독심(三毒心)이라 한다.---→지말번뇌(枝末煩惱), 수면(隨眠) 참조.

               

*근본분열(根本分裂)---부처님 입멸 후 처음엔 인도 서쪽 지방과 서남방으로 전도가 진행되고 불교교단은 서서히 이 두 방면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점차 불교교단이 인도 각지로 진출, 정착해 갔다. 이와 같이 교세가 널리 퍼져가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환경도 점차 변해서 교단의 율법적용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게 됐다. 근본분열을 기록하는 대표적인 자료로는 <도사(島史, Dīpavaṃsa/디빠왕사)>와 <대사(大史, Mahāvaṃsa/마하왕사)> 등의 초기 빠알리어 스리랑카 역사자료와,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이나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등 설일체유부 계통의 문헌이 있다. 그런데 이 양자가 전하는 근본분열의 배경이나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인도 동북방 갠지스강 건너편에 있는 도시 베살리(Vēsalῑ, 웨살리, 毗舍離, 산스크리트어 Vaisali)는 상업도시로 유명했다. 거기에 왓지족(Vajji, 밧지족)들이 살고 있었다.

    불멸 후 100년경(BC 4세경), 스리랑카의 편년체 역사서이자 남방불교의 자료인 <도사(島史, Dipavamsa)>와 <대사(大史, Mahavamsa)>에 따르면, 동북부 비구 승단에 속한 왓지족의 비구가 계율에 대한 새로운 열 가지 안[십사(十事)]을 승인해 줄 것과 이에 따라 계율을 수정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인도 서부 마유라(摩偷羅)국의 비구였던 야사(耶舍)는 인도 동부와 서부의 700명의 장로(長老:상좌/上座)를 초청해 베살리에서 제2회 불전결집을 열어 주로 율장(律藏)을 편집하고 교단의 통제에 힘을 기울였다.

    제2회 불전결집은 칠백결집 또는 베살리 결집이라고도 한다. 제2회 결집에서 동북부 비구 승단이 주장하는, 계율에 대한 열 가지 새로운 견해[십사(十事)]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을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 부른다. 제2회 결집 당시에는 분열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남방불교에 대한 자료인 <도사(島史, Dipavamsa)> 등에 따르면, 그 후에 제2회 결집의 결정에 불복한 진보적인 동부 승단의 비구들이 1만명의 다수인을 모아 독자적인 결집을 열어 계율을 수정했다. 이를 대결집(大結集)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로부터 이탈해 대중부(大衆部)를 결성했다.

    이렇게 해서 불교 교단은 계율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 산스크리트어 Sthaviravāda/스타비라바다, Theravāda/테라바다)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 Mahāsāṃghika/마하상기카)의 둘로 분열됐다. 이를 근본분열(根本分裂) 또는 근본이부 분열(根本二部分裂)이라 하며, 상좌부와 대중부를 근본이부(根本二部)라 했다. 근본분열을 계기로 인도 불교는 부파불교의 시대로 들어가게 됐다.

    한편, 근본분열의 발생 계기에 대해서, 북방불교의 자료에서는 위에 기술된 남방불교의 내용과는 다르다. 즉,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을 포함한 북방불교의 자료들에 따르면, 불멸 후 100여년 경에, 대천(大天, Mahādeva)이라는 진보파 비구가 교의에 관한 다섯 가지의 새로운 안을 주장하며 그것을 승인해 줄 것을 교단에 요구했는데, 이 다섯 가지 안을 대천 오사(大天五事)라 한다. 이로 인해 대천 오사에 찬성하는 진보파인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들은 남방불교의 자료가 사실인 것으로 보고 있다.---→왓지족(Vajji, 밧지족), 십사(十事) 혹은 오사(五事), 불전결집(佛典結集) 참조.

       

*근본불교(根本佛敎)---붓다의 가르침이 훼손되지 않고 붓다 원음이 그대로 전해오던 불멸 후 100여년까지의 초창기 불교를 원시불교 혹은 초기불교, 또는 근본불교라 한다.

   시대적으로 봐서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 부파불교(部派佛敎) ―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나눈다. 그리고 원시불교를 다시 부처님 당시와 직계자제들이 있었던 불멸후 30년까지를 근본불교라 세분하고, 그 후부터 불멸 후 백 년까지를 협의의 원시불교로 나누기도 한다. 아무튼 부처님 원음이 교단을 확실히 지배하던 시대의 불교를 근본불교라 한다.

   그런데 명칭에 있어서 근본불교는 다소 교조적인 의미가 있고, 원시불교는 비하적인 의미가 담긴 표현이어서, 지금은 ‘초기불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다만 부처님 당시와 직계자제들이 있었던 불멸후 30년까지를 근본불교라 세분하는 경향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그리고 부파불교는 소승불교로서 불멸 후 백 년경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까지 4~500년 사이를 말하고, 대승불교는 BC 1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새로운 불교를 말한다.

   그러므로 원시불교(초기불교)와 부파불교인 소승불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시불교(초기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해 모든 교설이 설해져 있었다. 그러나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장한 소승불교로서 중도사상이 희박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부처님 사상을 훼손한 변질된 불교이며 정통 불교가 아니라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원시불교, 초기불교, 그리고 근본불교라는 말은 그 당시엔 없던 말인데, 2천 년이 훨씬 지난 근래에 들어와 생긴 이름이다.

   근본불교(fundamental buddhism)란 이름은 마치 '근본주의'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근본불교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불교의 근본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불멸 후 30년까지, 부처님 직제자가 살아 있었을 당시를 말한다.

   원시불교(primitive buddhism)란 이름은 일본인 학자가 붙인 이름으로, 그때까지는 부파불교를 시발로 보던 관점을 그 이전으로 끌어 올리는 효과가 있었는데, 말의 어감이 다소 비하하는듯하면서 석가세존 중심의 불교라는 점을 강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초기불교(early buddhism)란 이름은 시대적인 이름으로 부처님시대 불교라는 의미가 충분히 살려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를 지칭하는지 불분명한 단점이 있지만 지금은 대체로 이 말을 쓰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빠알리어 니까야>와 <청정도론>은 근본불교가 아닌 아비달마 불교이며, 아비달마 불교이면서도 부처님의 정수를 놓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아비달마 불교는 크게 20여개의 부파로 나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나뉘는 가운데 어느 부파는 교학의 정수를, 어느 부파는 수행의 정수를, 어느 부파는 불제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우선하는 부파 등으로 나뉘었다면, 남방 상좌부는 이해하기 쉬운 불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대승불자들이 당시 상좌부 불교에 대해 법실유(法實有)라 해서 비판했을 때, 그것에서 상좌부 불교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해서 인도 문화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던 상좌부는 반성과 변화가 나타나는데, 스리랑카라는 변방에 있던 남방 상좌부는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비판을 벗어난 채 ‘법실유’ 전통을 이어오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지금 초기불교 운운하면서 한국에 남방불교를 전하는 이들은 ‘실유법’을 주장하는 상좌부 불교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유법’으로 해석하고 있는 남방 상좌부는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방 상좌부 불교는 ‘실유법’을 주장하는 불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쌍윳다니까야>에는 실유법에 거슬리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hyojin ---→초기불교, 원시불교 참조.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사상적 차이---마스다니 후미오(增谷文雄)는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을 다음의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① 개인(個人)과 대중(大衆)의 문제이다.

    오래된 불교적 술어로 표현하면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문제이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동시에 또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인은 과연 어느 쪽 삶에 중점을 두고 불교적 생활을 생각할 것인지, 그 선택에 있어 소승불교 쪽에 선 사람과, 대승불교 쪽에 선 사람들은 서로 갈리어 길을 달리해 왔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역사가 말해 주는 사실이다. 이것은 ‘개인의 도’와 ‘대중의 도’를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물론 대승불교는 ‘대중의 도’를 지향하고 있다.

     ② 분석(分析)과 직관(直觀)의 문제이다.

    오래된 불교의 표현을 빌리면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문제이다. 이들은 모두 불교에 있어서의 방법론이다. 분석적 방법과 직관적 파악 중 어느 것이 불교인의 방법으로서 훌륭한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고타마 붓다는 존재를 논하고, 세계를 논하고, 인간을 논함에 있어 빈번히 분석적 방법을 구사했다. 또한 그 제자 중에도 사리불(Sāriputta, 舍利弗)이나 가전연(Kaccāyana, 迦旃延)와 같은 분석의 명인이 있었다. 따라서 초기경전에서 번거롭기 그지없는 분석의 결과를 자주 보게 된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 쪽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분석적 방법보다는 직관적 방법을 중시해 ‘분별지(分別智)’를 낮게 보고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높게 보았다. 이것은 분석과 직관을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특히 대승불교 중에서도 우리나라 불교가 지향하는 선불교는 무분별지를 높게 보고 있다.

     ③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의 문제이다.

    옛 불교 술어로 표현하면 현행(現行)과 종자(種子)의 문제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심리학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오히려 불교의 실천문제였다. 현행이란 현실적인 신(身)ㆍ구(口)ㆍ의(意)의 행위를 뜻한다. 종자란 대승불교 학자들이 지어낸 말로서, 그것(현행)이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타마 붓다가 제자들을 지도함에 있어 사용한 방법은, 먼저 뜻(意)으로 잘 정리한 생각에 따라 신(身)ㆍ구(口)의 실천도 정리해 간다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실천에 있어서 왕도(王道)일 것이다. 그러나 실천에 있어 현실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덧 그 반대로 하고 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부터 문제를 추구해가자 무의식의 세계, 심층심리의 문제가 크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불교의 실천은 다시 한 번 새로운 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이런 흐름은 불교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추구해 온 가장 흥미 있는 경위(經緯)의 하나이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④ 나한(羅漢)과 보살(菩薩)의 문제이다.

    이것은 차라리 새로운 인간상으로서의 보살의 등장이라고 하는 편이 보다 적절할지도 모른다. 나한이란 ‘아라한트(Arahant)’를 음역해 아라한(阿羅漢)이라고 쓰고, 그것을 다시 약해서 ‘나한’이라고 한 것이다. 열반의 경지에 안주하는 불교적 성자의 이상상(理想像)을 가리키며, 주로 대승불교 쪽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대승에서, 자기완성에 전념하는 정통파의 방법을 비판하고 대중의 구제야말로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다시 그것을 구체적인 인간상 위에 구상화시켜, 나한이라는 정통파가 지어낸 성자의 이상에 맞서서, 보살이라는 새로운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내세운 것이다. 보살이란 ‘보디삿따(Bodhisatta)’ 또는 ‘보디사뜨바(Bodhisatva)’를 음역해 ‘보리살타(菩提薩埵)’라 쓰고, 그것을 다시 약해서 ‘보살’이라고 한 말이다. 이 말은 초기경전에 있어서는 단순히 불교수행자로서 이 길을 가는 자라는 정도의 뜻이었으나 바야흐로 대승불교에서는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이를 새로운 불교인의 이상상(理想像)으로서 내세운 것이다. 이것은 나한과 보살을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⑤ 이성(理性)과 감정(感情)의 문제이다.

    고타마 붓다가 그 제자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이성과 감정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두었을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일은 극력 이를 배격했다. 특히 이 점에 있어 인상 깊은 것은 이 스승은 그러한 교화의 방법으로 음악과 예술을 이용한 일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불교가 훌륭한 불ㆍ보살이나 제천(諸天)의 상(像; 조각)을 자랑으로 삼지만, 놀라운 것은 초기불교에는 그러한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한 조각 등은 대체 어느 시대에 제작된 것일까? 아마도 대승불교가 번성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이 불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되고 있으나 대승불교가 초기의 불교에 비해 훨씬 인간의 감정에 중점을 둔 경향이 강해진 것은 여러 면에서 분명하다. 이것은 이성과 감정을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모두 40권으로 돼 있으며, 당나라의 학승 의정(義淨)이 한역했다. 의정은 어려서 출가해 법현과 현장 스님처럼 직접 인도에 가서 불법을 구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27세에 해로로 인도에 가서 30여국을 돌아다녔고, 나란타사에서 대ㆍ소승을 연구하다 20여년 만에 귀국했다. 그 후 줄곧 역경사업에 종사해 <화엄경> 등 56부, 230권을 번역했는데, 주로 율부에 속하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의정의 주요저서로는 <남해기귀내법전>과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이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는 다른 율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극히 말단적인 계율조목들을 열거하고, 그 제정 동기와 그것을 잘 지킨 불제자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특히 이 율의 제35권 후반부터 제40권까지는 부처님의 내력과 불멸 후 비구들이 모여 경ㆍ율ㆍ론 삼장을 정리한 두 차례의 결집과 정을 소개하고 있다.

    제18권에서는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대의 불교도들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율을 보면, 화장이 원칙이나 나무가 없어서 화장하기 어려우면 강에다 던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수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매장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단 여름철에는 땅을 잘못 파다가 그 속에 있는 벌레들을 죽일 수도 있으므로 깊은 산 속에 시신을 안치하고 풀잎으로 가려도 된다고 했다. 이것은 도교식의 풍장(風葬)과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시신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이 모든 것이 덧없다고 설법한 내용이 들어 있는 <삼계무상경>을 외워야 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제39권에는 불전 제1결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1결집에는 500명의 비구들이 참석했다고 해서 흔히 오백결집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제1결집에 모인 불제자들 중에서 아난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아라한의 경지에 든 비구들이었다. 이에 제1결집을 주관했던 가섭은 아난이 아직 아라한이 아닌 점과 부처님 재세시 시중을 들며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불허했다. 가섭이 지적한 아난의 잘못이란 부처님에게 졸라서 여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해서 불법이 오래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과, 부처님이 열반 예언을 하기 전에 1겁의 세월 동안 세상에 머무시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아난은 할 수 없이 더 수도해서 아라한의 경지에 든 다음에야 제1결집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집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먼저 항상 부처님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왔던 아난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상대로 부처님이 설법하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 그때 들은 부처님 말을 암송했다. 그러면 나머지 비구들이 그 내용이 부처님이 말한 것과 맞는지 안 맞는지 일일이 따져보고 나서 경으로 확정했다. 이렇게 해서 정리된 것이 바로 경장이다.

   다음으로 부처님 재세 시 계율을 가장 잘 지키기로 유명했던 우파리 존자가 부처님이 그때그때 제정한 계율을 암송했고, 경을 취급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율을 확정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율장이다.

   끝으로 가섭은 후세로 갈수록 사람들이 경과 율의 글귀에만 매달려 그 깊은 이치를 모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직접 경과 율을 설명한 논의 내용을 암송하고 정확성 여부를 결정했는데, 이것은 논장이다. 이렇게 해서 경ㆍ율ㆍ론 삼장이 집성된 것이다.

 

         

*근본식(根本識)---근식(根識)이라고도 하며, 제8식 아뢰야식의 별칭이다. 안식(眼識)ㆍ이식(耳識)… 등 6식과 제7 말나식 등 모든 식이 의지하는 곳이 근본심식(心識)인 아뢰야식이므로 그렇게 부른다. 즉, 아뢰야식은 의식의 깊은 뿌리이므로 근본식이라 한다.

 

*근본중송(根本中頌, 산스크리트어 Mūla-madhyamaka-kārikā)---아무런 수식 없이 줄여서 <중송(中頌, Madhyamaka-karika)>이라고도 한다. <근본중송(根本中頌)>은 ‘근본이 되는 중도(中道)의 의미를 나타내는 게송(偈頌)’이란 뜻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전체 27장 450여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의 저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자 후대 불교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중론(中論)>을 비롯한 다양한 주석서가 저술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근본중송>의 근본 목적은 <귀경게>에서 나타나듯 불교사상의 근본으로서 붓다가 깨달은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를 논증하고 있다. 연기란 연(緣)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으로, 무엇인가 생겨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연, 즉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다. <귀경게>에서 나타나듯 나가르주나는 연기를 여덟 가지의 부정, 즉 팔불(八不)로 서술하고 있다. 이 여덟 가지 부정으로서 연기는 <근본중송> 제1장 제5게의 ’이것들을 연으로 하여 [그것이] 생긴다‘는 연기의 원칙에서 보듯 연기의 상호 관계, 즉 이것(X)과 그것(Y)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곧 연기의 관계에 있는 X와 Y를 살펴보면, 이것들은 서로 밀접히 관련돼 Y가 생겨난 것도 X와 상관없이 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생(不生)이며, X도 그 자체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Y가 생기는데 어떤 작용을 한다는 의미에서 불멸(不滅)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X와 Y는 상주(常住)하는 것도 아니고(不常), 완전히 단멸하는 것도 아니며(不斷), 또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며(不一), 전혀 다른 것도 아니다(不異).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시간적인 의미에서 X가 Y로 오는 것도 아니며(不來), Y에서 X로 가는 것도 아니다(不去).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는 여덟 가지 부정의 형태로서 연기의 도리를 드러내고, 이 연기의 도리가 진리이며, 타 학파의 견해와 구별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연기가 불교교리의 근본임을 밝힌 뒤, 나가르주나는 이러한 연기의 도리로써 불교 이외의 타 학파의 견해를 논파한다. 여기에서 논파의 대상이 되는 주된 대상은 연기의 개념과 대립되는 부파불교에서 주장한 ‘실체(實體)’의 개념이다. 실체란 변화하지 않고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는 초기불교 이래의 전통에서 아(我), 즉 아트만에 해당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나가르주나는 <근본중송> 전체에 걸쳐 실체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비판해 가고 있으며, 특히 그중에서도 자성(自性)의 개념을 대표적인 실체로 간주해 비판하고 있다.

   유명한 ‘귀경게(歸敬偈)’란 바로 <근본중송>의 첫머리 서문 격인데, 내용이 ‘팔불(八不)’이며, 팔부중도(八不中道), 팔부중관(八不中觀), 팔부정관(八不正觀)이라 하기도 한다. 팔부중도의 ‘팔불(八不)’은 아래와 같다.

     • 불생역불멸(不生亦不滅) -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 불상역부단(不常亦不㫁) -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단절된 것도 아니며,

     • 불일역불이(不一亦不異) -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 불래역불출(不來亦不出) -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중론(中論), 팔부중도(八不中道), 중송(中頌, Madhyamaka-kārikā) 참조.  

   

          

*근본지(根本智)---무분별지(無分別智) 혹은 실지(實智), 반야지(般若智)라고도 한다.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떠나, 판단이나 추리에 의하지 않고,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 진실한 모습을 밝게 파악하는 지혜이다. 일체현상은 본질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서 모든 분별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 지혜이다.

    좀 어려운 말로는, 곧바로 진리에 계합해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의 차별이 없는 절대 참 지혜. 즉, 선정에 들어 일체존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깨닫는 지혜를 근본지라고 한다.

    그리고 근본지는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깨달은 자만이 갖고 있는 지혜이다. 붓다는 일체중생은 모두 근본지(根本智)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일체중생의 근본지는 가려져 있어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중생들에 숨겨져 있는 근본지를 발현하는 것이 수행이고, 그 궁극이 깨달음이다. 근본지에 반대되는 말은 후득지(後得智) 또는 차별지(差別智)이다. 다양한 사건과 시련에서 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가 후득지이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사물을 아는 것, 즉 인식하는 것을 반연(攀緣)이라고도 하고, 반연된 인식대상을 소연(所緣)이라 하며, 반연하는 인식작용을 능연(能緣)이라 한다. ---→후득지(後得智) 참조.

     

*근사경험(近死經驗-近死體驗, 臨死體驗, Near Death Experience)---지금까지 인류가 죽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종교는 그 종교 나름대로의 도그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그 종교가 갖고 있는 죽음관은 그 도그마에 의해 윤색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그런 종교들이 제시하는 죽음관은 그리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대중적인 불교 신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죽음 뒤의 세계라는 것은 절의 명부전에 그려져 있는 지옥도와 같이 매우 우화적인 것에 그쳤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근사경험, 임사체험 또는 근사체험에 대한 관심과 학술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2004년도에 제작된 BBC방송의 다큐멘터리 <사후 체험, 난 죽음을 보았다(원제: The Day I Died)>는 바로 최근까지의 근사체험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와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또한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그 사람이 살았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근사(近死)란 영혼의 육체이탈 현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Near Death Experience(NDE)라고 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근사연구(近死硏究)라고 한다.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 상태(Out of Body Experience), 줄여서 ‘OBE’라고 한다. 일종의 죽음 경험인데, 근사경험을 연구한 미국의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가 수집한 근사경험의 전형은 다음과 같다.

   “처음 죽었을 때는 캄캄한 어떤 터널 같은 곳을 빠져나간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 자신의 신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을까? 내가 죽었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아주 밝은 광명이 나타난다.

   그 광명 속에서 자기가 지나간 한평생에 걸쳐 겪은 모든 일들이 잠깐 동안에 나타난다. 그 뒤에 자기가 아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서로 위로도 하고 소식도 묻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혼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든지 가족들이 장사 지낼 의논을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그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이러한 근사(近死)경험을 영혼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뇌 기능의 변화로 현대의학은 설명한다. 정신과 의사 칼 얀센(Karl L.R. Jansen)은 자신이 직접 근사경험을 경험했던 사람이며, 또한 케타민(ketamine, 인격을 해리시키는 마취약)을 주사 맞아 케타민에 의한 의식의 변화가 근사경험과 같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서 오타고(Otago)대학에서 내과 수련을 받은 칼 얀센은 그 후 오클랜드(Auckland)대학에서 뇌 연구를 하고, 영국으로 가서 옥스퍼드(Oxford)대학에서 임상약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의 런던정신과병원에서 정신과 수련을 받았다. 지금은 영국 왕립 정신과의사회 회원이며, 근사경험의 케타민 모델과 환각제인 엑스타시(Ecstasy, NMDA)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고 있다.

    케타민을 사용해 생기는 근사경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사경험은 인격을 해리(解離)시키는 약인 케타민을 사용해서 유도해 낼 수 있다. 신경과학 발전은 뇌-마음 중간 영역에 관여하는 기제에 관해 최근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뇌?쪽에서 볼 때, 근사경험이란 뇌 수용체에 의한 신경 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차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임사체험은 그것을 경험한 인간의 그 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정도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임사체험 연구의 제일인자인 정신과의사 러셀 노이에스(R. Noyes)의 연구에 의하면,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자주 다음과 같은 태도 변화가 보인다고 한다.

    ① 죽음에 대한 공포의 감소,

    ②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감각,

    ③ 삶의 중요성이나 숙명이라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감각,

    ④ 신 혹은 운명에 의해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다는 확신,

    ⑤ 사후에도 존재가 계속된다는 강한 신념 등이다.

    또 이 연구에서는 임사체험자에게는, 삶의 소중함, 중요한 것이나 긴급한 것에 관한 우선순위의 재검토, 컨트롤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수용성 등이라는 감각이 높아지는 일도 보고되고, 이러한 변화는 그 체험을 한 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공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보통사람의 경우, 죽음 이후에 삶이 지속됨을 인정하는 것은 현재의 삶의 의미의 생각할 때 중요하다. 불교는 생사의 반복적인 연속성(윤회)의 틀 속에서 죽음을 이해하며,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케타민(Ketamine)---폐시실린(Phencyclidine)계 약품으로 주사 시에 통증이 없으며 조직의 자극도 없다. 일반적인 정맥마취제와는 달리 중추신경계의 특정부위에 작용해 탁월한 진통작용을 타내며 환자는 눈을 뜬 채로 있기도 해서 깨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억이나 의식이 전혀 없는 해리성(解離性) 마취(dissociative anesthesia)상태를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환각과도 관계가 있다.---→차시환생(借屍還生), ‘영혼(靈魂), 윤회(輪廻)의 문제’, 바르도(Bardo) 참조.

 

    

*근접삼매(近接三昧, 빠알리어 upacara-samadhi)---삼매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찰나삼매(刹那三昧), 근접삼매(近接三昧), 본삼매(本三昧)가 그것이다. 찰나삼매, 근접삼매, 본삼매, 이렇게 점차로 깊은 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세 가지 삼매의 구분은 초기불교에서는 없었으며, 부파불교시대에 선정에 대한 해석이다.  

   찰나삼매는 선정 수행을 전제로 닦지 않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 도중에 나타나는 순간적인 삼매이다. 그리고 지관(止觀)수행을 위해서 수행자는 어느 수준까지의 근접삼매와 본삼매에 이르는 Samatha수행을 먼저 닦아야 한다. 그리고 바른 마음집중은 근접삼매와 본삼매(安止三昧)의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근접삼매는 초선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초선에 접근해가는 마음집중을 말하며, 본삼매(안지삼매)는 초선에서 제4선에 이르는 네 가지 선정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을 말한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삼매는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삼매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5가지 덮개(五蓋)를 일시적으로 멈추게 한다. 즉 마음이 집중되면,

    ①감각적 욕망에의 희구(欲愛), ②나쁜 의도(惡意),

    ③혼침과 졸음(昏沈 睡眠), ④들뜸과 회한(掉擧 惡作),

    ⑤회의적인 의심(疑)이라는 다섯 가지 부정적인 심리현상이 일시적으로 가라앉는다. 오개가 가라앉는 것으로 마음이 집중되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삼매(三昧)는 사마디(samadhi)라고 한다. 즉, 고요해진 상태를 말한다. 물론 고요해진 상태도 위에서처럼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차이가 나겠지만 일을 할 때에도 삼매에 들어 갈 수 있으며, 글을 쓸 때에도 공부할 때에도 나름대로의 삼매가 있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특별히 아주 수승한 상태의 깊은 고요의 상태를 구별, 특별한 사마디 상태를 선정(禪定)이라 한다. 그래서 선정인 선나(禪那 jhana)를 본삼매(本三昧)라고 한다. 이보다 낮은 상태를 근접삼매, 아주 짧은 삼매를찰라삼매(刹那三昧), 그 외에 간단한 삼매를 잠정삼매(暫定三昧)라고 구분 짓는다.---→본삼매(本三昧) 참조.

      

    

*근(根, indriya), 처(處, āyatana), 계(界, dhatu)---6근(根), 12처(處), 18계(界) 하듯이 안ㆍ의ㆍ비ㆍ설ㆍ신ㆍ의의 여섯 가지는 어떤 문맥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인드리야(indriya-근, 기능)라는 술어로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아야따나(āyatana-처, 장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다뚜(dhatu-계, 요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난다.

   인드리야와 아야따나와 다뚜, 이 셋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노)의 여섯 가지에만 국한하면 이 셋이 지칭하는 것은 꼭 같다. 즉, 안근은 안처이고 동시에 안계가 된다. 의근은 의처이고 의계이다.

   이 같이 같은 것을 두고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작용이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철수를 상황이나 역할, 작용에 따라서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이과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처한 상황과 역할 등에 의해서 그 명칭일 달라질 뿐이지 이런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그 당체는 동일하다.

   그와 같이 눈의 역할이나 작용 등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눈의 기능(안근)이라 부르기도 하고, 눈의 장소(감각장소, 眼處ㆍ眼入)라고도 부르고, 눈의 요소(眼界)라고도 부르고, 눈의 문(眼門)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눈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눈의 감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인드리야(indriya)를 중국에서는 근(根)으로 옮겼다. 눈에는 형상을 보는 눈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기능과 능력이 있다. 이런 보는 기능은 귀ㆍ코 등 다른 기관에는 없는 눈만의 고유한 기능이고 형상은 반드시 이러한 눈을 통해서만 인지가 된다. 그래서 눈은 형상이라는 대상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지배자(인드라)라 하겠다. 지배자라는 의미를 살려서 인드리야(지배하는 것, 고유한 능력, 고유한 기능)라 한다. 동일하게, 귀는 소리를 듣는 고유의 기능이 있다. 귀 말고는 다른 기관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로 각각 냄새ㆍ맛ㆍ촉감을 감지하는 고유한 기능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인드리야(기능)라 한다.

   그리고 눈이 보는 작용을 할 때 보는 작용과 관계된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눈을 장소로 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눈은 장소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눈은 마음(알음알이, 식)과 마음부수들이 대상, 즉 형상을 만나는 장소이다. 따라서 눈을 안처(眼處)라고도 한다.

   그리고 눈은 형상을 본다는 고유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강조할 때는 눈의 요소(짝쿠 다뚜-cakku dhatu-眼界)라고 한다. 그리고 눈은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대상을 만나는 문이기도 하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을 눈의 문(짝쿠 드와라-cakkhu dvara-眼門)이라고 한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역할과 작용을 하는 눈은 형상에 민감한(sensitive) 특징을 가진 물질로 돼 있다고 해서 눈의 감성(짝쿠 빠사다-cakku pasādā)이라는 하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것을 그 역할이나 작용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즉, 안근(인드리야)은 안처(아야따나)이고 동시에 안계(다뚜)가 되고, 의근은 의처이고 의계이지 눈의 기능이 따로 있고, 눈의 장소가 따로 있고, 눈의 요소가 따로 있고, 눈의 문이 따로 있고, 눈의 감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온(蘊, 빠알리어 khandha)ㆍ처(處, āyatana)ㆍ계(界, dhatu)’ 참조.   

          

*근행정(近行定, upācāra-samādhi)---<청정도론>을 비롯한 남방상좌부불교의 논서들에서 주로 논의되는 용어로서, 삼매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의 하나이다. 즉, 순간적인 마음집중을 찰나정(刹那定, khanika-samadhi)이라 하고, 깊은 삼매에 도달하려고 접근해가는 근행정, 그리고 깊은 삼매로 초선에서 4선에 이르는 색계정(色界定)과 무색계정(無色界定)에 완전히 도달해 있는 상태를 말하는 안지정(安止定, appana-jhyana-samadhi), 이렇게 삼매를 셋으로 나눈다.

    여기서 근행정은 근접삼매의 일종으로서, 완전히 집중에 몰입돼 있는 상태인 안지정(安止定, appanā-samādhi)에 가까이 접근한 상태이다. 근행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섯 가지 장애[(오개(五蓋)]를 먼저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근행정(近行定)의 경우는 아직 불안정해 명상을 중단하면 그 상태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근행정이 비록 안지정보다 불안정한 상태지만, 마음을 고르게 유지시키는 선정으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다. 근접삼매인 근행정(近行定)에서 안지정(安止定)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사마디이다. 근행정과 안지정의 차이는 집중상태의 강약에 있다. 신(信)ㆍ정진(精進)ㆍ념(念)ㆍ정(定)ㆍ혜(慧)의 오근(五根)이 충분하게 배육 됐을 때 정력(定力)은 근행정을 초월해 안지정에 도달한다. 안지정에 들게 되는 것을 선나(禪那) 혹은 약해서 선(禪)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선나에 도달할 때 마음은 간단없이 사상(似相, patibhaga nimitta)을 알아차린다. 이것이 몇 시간 혹은 밤이 세도록 혹은 하루 종일 지속된다. 선정에 도달한 때의 명상대상을 사상(似相)이라 한다.

        

*금강(金剛, 산스크리트어 바즈라/Vajra)---금강(다이아몬드)은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예리하기 때문에 불교경전 속의 진리가 예리하고 단단한 것에 대한 비유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즉, 금강의 단단한 것은 본각(本覺)의 진성(眞性)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마라습은 “금강(金剛)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그 빛이 수십 리를 비추인다. 반야(般若)의 지혜광명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 범정(凡情)의 망상을 비취 보아서 무명을 깨뜨려 버린다.“고 했다.

    헌데 산스크리트어 바즈라(Vajra)에는 벼락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바즈라는 인드라 신이 갖고 다니는 무기이기도 한데, 이것은 다름 아닌 벼락을 의미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 혹은 신을 집금강(執金剛) 지금강(持金剛)이라 한다. 그러므로 금강저를 가지고 부처님을 옹호하는 시종력사(侍從力士)와 화엄신중(華嚴神衆)을 금강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도론(智度論)>에서는 “마니보주는 제석천왕이 금강(金剛)을 사용해 아수라와 싸울 때 사용한 무기인데, 그 파편이 염부제에 떨어진 것이다.“라고 했다.

    ‘금강’이 불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을 정리해보면,

     ① 견고성 ― 불법 역시 자신의 견고성을 유지하면서 사법(邪法)을 깨뜨린다.

     ② 희귀성 ― 금강석과 불법은 흔히 만날 수 없는 귀한 것이다.

     ③ 순수성과 청정성 ― 금강석과 불법에는 불순물이 없고, 청정성을 추구한다.

     ④ 광명성 ― 금강석과 불법은 모두 찬란한 빛을 발한다.

        

*금강경(金剛經, 산스크리트어 Vajracchedika-prajna paramita sutra)---<반야심경>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대승불교경전들 가운데 하나로, 반야부의 기본사상을 함축하고 있다. 원명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인데, 줄여서 <금강경(金剛經)>이라 한다.

    대승 경전이다 보니, 제목부터가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개념인 ‘반야바라밀’을 포함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Prajñāpāramitā를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가리킨다.

    앞에 붙은 한자 금강(金剛)은 산스크리트어 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인데, 와즈라(Vajra)는 벼락ㆍ번개ㆍ금강석과 같이 강한 힘을 말한다. 그리고 cchedikā는 자르는 것, 부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제목의 뜻은 마음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와즈라(Vajra)의 뜻이 다이아몬드인지, 번개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것은 와즈라의 뜻이 아니라, 그것을 번역한 한자어 금강(金剛)의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와즈라 자체는 인드라의 벼락(번개)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이 <금강경>은 산스크리트어 본으로도 남아 있으며, 중국 번역본으로는 구마라습(402~413) 번역 외에 북위의 보리유지(菩提流支), 진(陳)의 진제(眞諦), 수나라의 달마굽타, 당나라 현장(玄奘)과 의정(義淨)의 번역본 등 5가지가 있다. 이 중 구마라습의 번역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된 원본에 비해 생략된 구절이 많다. 하지만 한문 특유의 운율을 살린 유려한 번역 덕에 오히려 402년에 구마라습이 번역본이 널리 퍼져있다.

    <금강경>은 <반야경(般若經)> 중 가장 간결하고 중심된 부분인데, 성립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AD 1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분량은 한자로 5,249자 약 300송쯤 되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공’이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보살행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면서도 ‘보리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 대승불교 경전 중에서도 상당히 초기에 정립된 경전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특히 대승경전 특유의 여러 불ㆍ보살들이 잔뜩 나타나지도 않고,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 1250명만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초기불교 경전들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모든 불경에는 저자가 기록돼 있지 않다.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직설을 암송해 기록한 아함경전군들과 달리 대승경전들은 찬불승(讚佛僧)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들 경전들 역시 불설(佛說)의 핵심인 중도(中道)ㆍ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한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정되며, 저자는 모두 붓다로 귀결된다. 이처럼 불경에서의 저자의 부재는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기를 역설하는 불교의 보편적인 어법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국불교에 있어서는 삼론(三論), 법상(法相), 화엄(華嚴), 천태(天台) 등 제종(諸宗)은 물론 선종(禪宗)에서 특히 근본경전으로 널리 독송되고 있는 것은 이 경의 철학이 그 만큼 깊고 밝기 때문이다. 더욱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경은 종헌(宗憲)에도 뚜렷이 소의경전으로 나타낼 정도의 기본경전으로서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고 연구되고 있다.

   후세 사람들, 특히 중국에서 불교교의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종파별로 교상판석을 행했는데, 그 중 화엄종 교판에서 말하는 오교(五敎) 분류, 즉 소승교, 대승시교, 대승종교, 돈교(敎), 일승원교(一乘圓敎)에서 <금강경>은 이 가운데 대승시교(大乘始敎)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승시교(大乘始敎)는 공사상(空思想)을 중심으로 대승에 처음 들어가는 가르침을 말하기 때문이다.

    경의 주요내용은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10대제자 중 공(空)사상에 가장 밝았다는 수보리(須菩提)로부터 물음을 받고,

     ①반야바라밀의 심오한 이치에 대해 문답식 대화를 전개하면서,

     ②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그리고 대승불교 보살사상과 초기 공(空)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내용이 압축돼 있다.

     ④헌데 반야부 계통 경전의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상(空思想)을 설하고 있지만 공(空)이란 글자를 전혀 사용치 않으면서도 공의 이치를 유감없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 경이 대승불교 초기에 성립된 것으로 아직 공이라는 술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금강경>은 그 뜻이 오묘해서 누군가 설명을 해 주지 않는 한 스스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매번 법문을 들을 때마다 새롭고, 때로 법문하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해석 또한 다양한 경우가 허다하다. 불교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출가자에게든 재가자에게든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처럼 돼 있다.   

    <금강경>의 주제는 보시바라밀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고, <금강경>의 핵심은 ‘상(相-산냐)의 척파를 부르짖고 있다. 따라서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금강경 논리학---<금강경>에서 전개하는 논리는 초월의 논리학이다.---→불법 비불법(佛法 非佛法) 참조.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조선 성종 13년(1482)에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 ‘야보송(冶父頌)과 종경 제강((宗鏡提綱)’을 채택하고, 거기에 조선 초기 함허당 득통의 저술인 <함허설의(函虛說義)>를 합쳐 3가에 구결을 달고 언해해 간행한 책이다.

    한계희·강희맹의 발문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문종과 수양대군(세조)에게 언해하게 했으나, 일부밖에 번역되지 않아 성종 때 자성대비가 학조에게 교정시켜 성종 13년(1482)에 간행했다. 활자본 5권 5책이다.

      

*금강경 야보송(金剛經 冶父頌)---12세기 중국 송나라 시대에 도겸(道謙) 선사의 제자인 야보 도천(冶父道川) 선사가 <금강경>을 읽고 착어(着語)와 송(頌)을 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실려 있다. 특히 선시(禪詩)의 대가였던 야보 스님의 야보송(冶父頌)이 유명하다. 다음은 야보 선사의 선시이다.

    「물은 부처에 비유함이요 파도는 중생에 비유함이라

      본질에서 보면 부처니 중생이니 부질없는 사량이라

      물이 파도요, 파도가 물일진대 군더더기 없는 그곳 천지가 온통 부처님 세계이리라, 그러나 나는 천진불이 아니므로 번뇌에 떼를 쓸고 또 쓸어야 하리라.」---→야보 선사(冶父禪師) 참조.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한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다섯 사람의 주석서를 모은 책이다.

     ① 당(唐) 규봉 종밀(圭峰宗密)의 금강반야경소론찬요(金剛般若經疏論纂要),

     ② 당(唐)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해의(金剛般若波羅蜜多經解義),

     ③ 양(梁) 부대사(傅大士)의 금강경제강송(金剛經提綱頌),

     ④ 송(宋) 야보 도천(冶父道川)의 착어(着語)와 송(頌)인 금강경주(金剛經註),

     ⑤ 송(宋) 예장 종경(豫章宗鏡)의 금강경제강(金剛經提綱).

    이상 다섯 권이 본래 별본(別本)으로 유포되고 있었던 것을 하나로 묶은 책인데, 누가 합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금강계(金剛界, vajra-dhtu)---밀교의 2대 교의에는 태장계(胎藏界, garbha-dhtu)와 금강계(金剛界)가 있다. 이 중 금강계는 마하비로자나(대일여래) 지덕(智德)을 나타내 보이는 부문을 말한다. 곧 대일여래의 지혜는 완벽하고 견고해서 모든 번뇌를 쳐부술 힘을 지니고 있다 하여 금강(金剛)이라고 했다. 밀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대일여래의 나타남이라고 했으며, 그 지덕을 나타내는 쪽을 금강계라 하고, 이성(理性)을 나타내는 쪽을 태장계(胎藏界)라 했다. 우리 마음에는 본래 불성인 ‘이(理)’와 번뇌를 깨뜨리는 ‘지(智)’의 양면이 있듯이 그것 그대로 대일여래에게도 ‘이’와 ‘지’ 양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자를 ‘이법신(理法身) 대일여래’ 또는 태장계, 후자를 ‘지법신(智法身) 대일여래’ 또는 금강계라고 한다.---→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金剛界) 참조.

        

*금강계단(金剛戒壇)---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불교는 전통적으로 계(戒) ․ 정(定) ․ 혜(慧)의 삼학(三學)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계를 가장 강조하면서 부처의 현존(現存)을 상징하는 불사리(佛舍利)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집행하는데, 그 의식장소로 조성한 것이 금강계단이다. 이 계단은 인도에서 유래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 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얻어 귀국한 후,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금강계단을 만든 것이 최초이다. 금강보계(金剛寶戒)에서 유래된 말로 금강과 같이 보배로운 계단이라는 뜻이다. 형태는 네모난 2층 석단(石壇)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바탕이 되는 비교적 넓은 단 위에 상대적으로 좁은 또 하나의 단을 조성하고, 그 중심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석종형(石鍾形) 부도를 안치해 놓은 구조로 돼 있다. 계단 형태는 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 사찰 여러 곳에 계단이 있으나 특히 신라 선덕왕 15년에 설치된 통도사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고, 그 외에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금강계단은 보물 제539호, 덕유산 백련사 금강계단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이며, 그 외에도 여럿이 있다.---→ 계단(戒壇) 참조.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금강계는 밀교의 본질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지덕(知德)이라는 측면에서 설한 것이다. 금강은 견고함을 의미하는데 대일여래의 지덕은 견고해 그 어떤 번뇌라도 모두 멸해버리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와 상대 되는 말인 태장계(胎藏界)는 대일여래를 자비(慈悲)의 측면에서 설한 것이다. 그러니 남성적(금강계), 여성적(태장계) 원리에 근거해 받아들였다.

    금강계는 <금강정경(金剛頂經)>, 태장계는 <대일경(大日經)> 설에 의존하고 있다. <금강정경> 말씀에 기초해 금강계의 묘미를 그린 그림이 금강계만다라이다. 금강계만다라는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라고도 부른다. 그 내용에 따라 불과(佛果) 실상을 9회(會)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구(金剛鉤)---밀교 법구(密敎法具)의 하나. 끌어당기는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마치 갈고리와 같은 법구를 사용해서 중생을 이끌고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밧줄과 자물쇠로 잡아두며 마음을 경각시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금강권(金剛圈)과 율극봉(栗棘蓬)---금강권이란 다이아몬드로 만든 감옥을 말한다. 매우 단단해서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즉, 금강권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말이다. 사량 분별은커녕 아예 머리를 굴리지 못하도록 꽉 틀어막은 상황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과 비슷한 말인데, 화두(話頭) 수행에 있어서 이러함이 의단(疑團)이고, 수행자가 선(禪)의 체험이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잘못된 길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율극봉(栗棘蓬) 역시 비슷한 말이다. 율극봉이란 밤송이인데, 이것이 목에 걸리면 삼키려 해도 아프고 뱉으려 해도 아프고 그냥 있어도 아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린 상황을 말한다. 역시 의단으로 인해 꽉 막힌 상황을 말한다. ‘금강권(金剛圈)과 율극봉(栗棘蓬)’은 깨달음에 가까운, 깨달음 직전의 상황으로서, 이런 상황을 타파하는 순간 깨달음이 온다.

      수불(修弗) 스님은 수행자가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함에 따라 의심의 느낌이 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다. 수행자는 목이 막히고 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마치 몸이 감옥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진다. 수불스님은 선(禪) 문헌인 <선요(禪要)>에 나오는 표현에 근거해 이러한 현상은 “은산철벽(銀山鐵壁)과 조우하는 것, 혹은 율극봉(栗棘蓬)을 삼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 단계는 의정(疑情)의 단계에서 의단(疑團), 즉 의심의 덩어리로 전환된 단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활구를 참(參-탐구)하면 율극봉을 삼키거나 금강권에 갇히게 되는 때가 온다. 그래서 조사들은 한결같이 활구를 참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나 사구를 참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활구(活句)와 사구(死句)’, 율극봉(栗棘蓬), 의정(疑情) 참조.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밀교 금강계만다라에 등장하는 16대보살의 한분이다. 밀호(密號)는 원만금강(圓滿金剛), 만원금강(滿願金剛), 종종금강(種種金剛)이라 한다. 또는 허공기보살(虛空旗菩薩), 선리중생(善利衆生), 금강보장(金剛寶藏) 등으로도 불린다.

    <60화엄경>에서 52계위를 설하는 설주(說主)와 설처(說處)를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서 제6 타화천궁회(他化天宮會)의 설주가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이다.

    그리고 10회향(廻向)이란 <화엄경>에서 설하는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位) 가운데서, 제31위에서 제40위까지의 단계인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덕을 다시 중생에게 되돌려주는 경지이다. 여기서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이 지광(智光)삼매에 들어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었고, 그 삼매에서 일어나 열 가지 회향을 말했다.---→십회향(十廻向) 참조.

        

*금강령(金剛鈴; Vajra-ghanta)---밀교법구(密敎法具)의 하나. 승려들이 지녔던 요령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회나 의식 등을 행할 때 마음속에 감추어진 불성을 깨우기 위해 사용한다. 방울 바깥에 보살·사천왕·명왕상 등이 조각되며, 손잡이 부분은 금강저의 모양과 유사하다. 송광사 금동요령은 보물 제176호로 지정돼 있다.

          

*금강명경(金光明經, 산스크리트어 수바르나 프라바사/Suvarnaprabhāsa)---금광명경은 예로부터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는 경전이라 해 <법화경>, <인왕경>과 더불어 호국3부경(護國三部經)의 하나였다. <금강명경>은 여러 번역본이 있으나 5세기 초 북량(北凉)시대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4권 본이 대표적이다. 밀교경전의 하나로 사천왕에 의한 국가보호나 현세이익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전인데, 그 찬란한 내용이 마치 금강과 같이 빛난다고 해 이름을 <금광명경>이라 했단다.

     

*금강문(金剛門)---사찰에서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문이다. 금강역사는 사찰에 범접하는 삿된 무리를 다스리는 호법신장이다. 금강문을 지나면 새로운 단단하고 굳은 불경 속 진리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해 금강문이라 한다. 사찰에 따라 금강문을 생략하고, 일주문 다음에 바로 천왕문(사천왕문)이 있는 경우가 있다. 금강문이 없는 경우에는 사천왕문 문짝에 금강역사를 그림으로 그려 모신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Vajracchedika-prajna paramitasutra)---줄여서 <금강경(金剛經)>이라 한다.---→금강경(金剛經) 참조.

          

*금강살타(金剛薩陀, 산스크리트어 vajrasattva)---밀교에서 중요시하는 보살임. 지금강(持金剛)ㆍ집금강(執金剛) ․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 명칭이 뜻하는 것은 금강과 같은 불변의 진리를 성취한 살타(薩埵), 즉 ‘유정’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 ‘바주라사트바(vajrasattva)’에서 ‘vajra’가 금강이라 의역, ‘sattva’가 살타란 말로 음역돼, 이것이 합쳐져서 ‘금강살타’가 됐다. 금강살타는 보살과 달리 열반을 성취했으면서도 중생의 세계를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구호하기 때문에 성불을 미루고 중생을 구호하는 입장으로서 현교의 보살과 다르고, 보살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한다.

    금강살타(금강수보살)는 진리 그 자체인 대일여래와 중생을 포함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대일여래와 중생을 연결하는 접점에 있는 초인적 존재이다. 탱화의 경우 한 손에 방편을 뜻하는 도르제(Dorje,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고, 다른 손엔 지혜를 뜻하는 딜부(drilbu, 요령/搖鈴)을 들고 있다.

    

*금강삼매(金剛三昧)---금강정(金剛定)ㆍ金剛喩定(금강유정)ㆍ금강심(金剛心)이라고도 한다. ‘금강’이란 견고하다는 말인데, 그것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을 말한다. 이 금강삼매는 성문ㆍ보살들이 수행을 마치고 맨 마지막 번뇌를 끊을 때에 드는 것이다. 소승은 아라한과를 얻기 전에 유정지(有頂地)의 제9품 혹(惑)을 끊는 선정을 말하고, 대승은 제10지 보살이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구생소지장(俱生所知障)과 저절로 일어나는 번뇌장 종자를 한꺼번에 끊고 불지(佛地)에 들어가기 위해 드는 선정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등각(等覺) 보살이 원품무명(元品無明)을 끊고 묘각(妙覺)을 증득(證)하기 위해 드는 선정을 말한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금강삼매경>은 <대승기신론>의 논리를 기본적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경은 7세기 전후 당나라에서 조성된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있다. 그것은 중국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 나타났던 여러 문제된 설과 교리를 총 말라 해서 엮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라에서 680년 경 원효(元曉, 617년-686) 대사가 지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원효 대사는 왕과 고승들 앞에서 <금강삼매경>을 강론해 존경을 받았다는 말이 전한다. 마음의 고요는 어떤 지식적인 매개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삼매(三昧)에 들 때에만 누릴 수 있다. 이 삼매를 중심으로 설해진 경전이 <금강삼매경>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마음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해 놓은 경전이다. 즉, 본래의 자기를 보기 위해 마음 찾아 삼매에 드는 길을 제시했으며, 압축된 문장이 특징이다.

   <금강삼매경>은 “<법화경>을 모델로 하고 있어 그 구조가 <법화경>과 거의 비슷하다. 부처님이 깊은 삼매에 드신 것으로 시작하고, 삼매에서 나오신 후 이 경전에 대해 설법이 시작된다. <법화경>에서 직접 구조를 따 온 것이다.

   설법은 인도에서 이루어졌고, 관중은 인도의 보살과 이라한, 가루다, 마후라가 등과 같은 인도의 신들이며, 인도풍의 용어를 쓰는 등 진경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 한 것 같다.

   이 경은 ‘여래장’계열 경전이라 하지만 새로운 선불교 전통의 초기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문헌에 <금강삼매경>은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용왕’에게 직접 받은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로 가던 신라 사절이 황해를 건너던 중 용궁으로 불려가 허벅지에 이 경전을 꿰매 넣고 다시 신라로 돌아가 대안(大安) 성자에게 흩어진 순서를 바로 잡게 해서 이를 원효에게 전해 여기에 주석을 달게 하라는 용왕의 명을 듣는다. 전부 용왕이 직접 명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 경전이 원효를 위해 씌어졌을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중국에는 이와 유사한 문헌이 전혀 없다. 실제로 이 경이 중국에 처음 알려졌을 때, 원효가 쓴 경론과 관련해서 알려졌다. 원효는 생의 말기에 이 경에 대한 논소를 썼고, 당시 원효는 아시아 전역에 잘 알려진 저명한 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글은 즉시 중국으로 전파됐다." - 진흙속의 연꽃

   대안(大安, 571~644) 성자의 본래 이름을 알 수 없다. 대안은 항상 특이한 모습으로 장터거리에 살았다. 괴이한 옷차림을 하고 항상 저잣거리에서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대안, 대안” 하고 다닌 데서 그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서민을 교화했으므로 대안 성자라 불리었다. 대안과 원효는 스승과 제자처럼 지낸 사이였다고도 한다.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왕이, 마구 뒤섞인 채로 신라에 들어온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정리해달라고 대안을 초청하자, 그는 궁에 들어가지 않고, 그 경을 자신에게 가지고 오게 해 경전의 순서를 맞춰 8품으로 정리했으며, 또한 이 경전은 원효(元曉)만이 강의할 수 있다고 추천해, 원효로 하여금 이 경의 주석서인 <금강삼매경론>을 짓게 했다고 한다.

   이 때 원효 대사는 상주(尙州)에 있었다. 사자가 경전을 받들고 갔더니 원효는 그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소를 타고 마중 나왔다. 사자가 경을 올렸더니 원효는 슬쩍 보고 소의 두 뿔 사이에 벼루를 놓고 붓을 들어 주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소를 타고 서라벌에 이르기 전에 소(疏) 5권을 지었다. 그래서 이것을 각승(角乘)이라고도 부르니 곧 소를 타고 소 뿔 사이에 필연(筆硯)을 놓고 대승경전의 <금강삼매경소(疏)>를 지었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

   왕은 곧 황룡사(皇龍寺)에 법석(法席)을 베풀고 이것을 강설케 했는데, 원효 대사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어 밤사이에 이 주석 5권을 훔쳐 갔다. 대사가 강경을 하려 하니 책이 없었다. 그래서 대사는 왕에게 연유를 아뢰어 3일간을 연기하고 다시 3권의 소를 지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3권의 소(疏)인데, 이것을 약소(略疏)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원효의 글이 아니고, 보살이 쓴 글이라 해서 논(論)이라고 붙여 후대에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이라 부른다. 이러한 일화들 역시 금강삼매경의 저자가 원효 대사임을 시사하고 있다.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에 대한 해석서로 원효(元曉) 대사의 저술이다. <금강삼매경론>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더불어 원효 대사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불교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금강삼매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원효 대사는 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서를 쓴 것이다. 찬술 시기는 신라시대인 대략 7세기 중후반으로 보고 있다.

    <금강삼매경>이 위경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방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한 통찰력으로 경전의 오의를 명확히 천명한 원효 대사의 <금강삼매경론> 저술의 공덕에 힘입은 바 크다. 원효 대사는 <금강삼매경론>을 통해 자신의 핵심사상인 일심(一心)법과 중도(中道)와 화쟁(和諍) 논리를 토대로 대승교학과 그 실천에 대한 것을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다.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산스크리트어 바즈라파니/Vajra-pani, Vajra-dhara)---'금강저를 들고 있는 자'라는 뜻으로 한자 이름으로 금강역사(金剛力士) 또는 금강수(金剛手)라고 부른다.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는 강력한 결심을 상징한다.

    오른손에는 금강저(Vajr)를 쥐고 왼손에는 그물을 들고, 머리에는 해골 왕관을 쓰고 있다. 분노에 찬 표정에 세 번째 눈을 갖고 있으며, 목에는 뱀 목걸이가 걸려있고, 허리띠는 호랑이 가죽이다.

    금강역사가 인도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중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됨에 따라 헬레니즘 영향이 불교에 스며들어 헤라클레스가 금강역사로 변모한 것이라고 한다.---→금강역사(金剛力士, Vajrapani) 참조.

 

*금강승(金剛乘 = 密教, Vajra-yana)---대승과 소승에 비해서 밀교를 금강승(金剛乘)이라 하며, 금강승불교, 탄트라불교라고도 한다. 금강승은 피안의 저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금강 수레라서 반듯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금강(金剛)이란 인간 속에 내재하는, 절대적으로 진실하며 파괴되지 않는 그 무엇(힌두교에서는 이를 ‘아트만’이라 함)으로서 인간이 신과 동일하게 될 수 있는 인자(因子)이며, 승(乘)이란 불(佛)과의 합일을 위해 노력할 때에 도움을 받는 결정적 수단으로서 탈 것을 말한다. 따라서 금강승이란 ‘탄트라’라는 용어처럼 티베트불교를 일컫는 상징적인 용어로서 수행자들이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부처가 되는 방법이라는 속뜻을 암시하고 있는 용어이다.

   대승불교는 6세기 이후 중관학(中觀學)과 유식학(唯識學)의 상호대립 속에 부파불교시대의 아미달마처럼 이론이 너무 번쇄해져서 그 기능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금강승불교는 이런 사변적인 대승불교사상으로부터 개인 삶에서의 불교사상 실현으로 전환함을 의미했다.

   소승의 목표가 자기 자신을 위한 아라한의 해탈이며, 대승의 목표가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 활동하는 높은 보살이라면, 금강승은 빨리 완벽한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을 자유자재로 구원해 줄 전지전능한 성불을 이루는 것이다. 대승에서는 3아승기겁에 걸친 보살도를 행한 후 성불을 하지만, 밀교인 금강승에서는 현생에서의 성불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수행의 목표로 봐서는 소승보다 높고, 성불하는 수행기간에서 대승보다 빠르다. 즉, 대승 보살이 3아승기겁이 걸려야 성불하지만 금강승은 현생에 당장 성불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금강승은 불교의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금강승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현교(顯敎)인 소승과 대승불교는 금강승을 수행할 예비기초과정에 해당되며, 소승과 대승불교를 철저히 수행한 뒤에야 금강승 수행에의 접근과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에서는 대승을 바라밀승(波羅密乘)이라 낮추어 부른다.

   그러면서도 밀교는 많은 오래를 받는다. 예건대, 티베르 사원에 가면 남존(男尊)과 여존(女尊)이 부둥켜안고서 성교하는 모습의 불상인 합체존(合體尊)이 모셔져 있다. 합체존을 티베트어로 ‘얍윰(Yab Yum)’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어 ‘얍’은 아버지, ‘윰’은 어머니를 의미하기에 부모존이라고도 번역한다. 이러한 합체존은 힌두교에서 들여왔다.

   힌두교에서는 남존을 절대자인 시바신(Śiva神), 여존을 성력(性力)인 샥티(Śakti)로 간주한 후 이들의 성교를 ‘세계창조’와 결부시키는데, 금강승에서는 동일한 외형의 합체존을 빌려와 남존을 ‘자비 방편’, 여존을 ‘반야 지혜’를 상징한다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성교의 오르가즘을 ‘깨달음의 대락(大樂)’에 대비시킨다. 이와 같이 금강승에서는 불교 밖에서 유래한 종교의식이나 존상을 들여와 불교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수행법과 의례를 개발해 내었다.

또    이 외에도 밀교 경전에는 성(Sex)과 관련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밀교’ 수행법에는 성행위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오해다. 밀교는 엄격하고도 청정한 계율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밀교는 문자 그대로 ‘비밀스러운 가르침’인데,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남부끄러워서 비밀스럽게 수행한다.”는 의미의 비밀이 아니라, 스승이 그 가르침을 제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한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가르침인 소승과 대승의 현교(顯敎)에 대비되는 이름이다. 밀교에서는 그만큼 스승과 제자 사이에 1대1의 교섭이 잦다.

   밀교를 불교 탄트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구별하기 위해서 불교라는 말을 덧붙여 부르는 것이다. 탄트라(Tantra)는 원래 옷감을 짜는 ‘베틀’, 또는 ‘베틀에 세로로 걸어 놓은 날실’을 의미하는데, 의미가 전용돼 ‘토대, 체계, 교리’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탄트라에는 ‘의례나 명상의 지침’이 실려 있기에, ‘추상적인 가르침’이 담긴 소승이나 대승의 수트라(Sūtra, 經)와 대조된다.

   그 외에 금강승의 교학적 토대나 수행목표는 모두 대승과 마찬가지다. 금강승의 교학적 토대는 대승불교사상인 중관(中觀)과 유식(唯識)에 있으며, 그 수행목표 역시 대승과 마찬가지로 성불이다. 금강승이 대승과 차별되는 점은 그 수행방법에 있다. 대승과는 비교되지 않는 다종다양한 수행방법을 갖는다는 점에서 금강승을 ‘방편승(方便乘)’이라고 부른다.

   밀교에서는 이와 같은 여려 수행방식으로 부처의 지혜인 법신과 마음인 보신과 몸인 화신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 금강승 수행의 최종 목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금강승의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대승교학에 근거해 ‘보리심’을 익혀서 이기심이 전혀 없고, 공성(空性)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파악한 수행자에 한해 금강승 수행에 들어갈 자격이 부여된다고 말한다. 칼을 어린아이에게 주지 않는 것과 같다. 금강승 수행은 가치중립적인 심신의학으로 관상 수행을 통해 염력(念力)을 키우고 몸을 변화시키기에 강력한 방편의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금강심(金剛心)---금강처럼 견고한 신앙심을 말하며, 금강처럼 단단해 어떠한 것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굳은 믿음을 말한다.

   

*금강심론(金剛心論)---금타(金陀, 1898-1948) 스님 저서. 벽산당(碧山堂) 금타 스님은 일제 식민통치와 해방 후의 혼돈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철저히 감추고 살다가 가신 분이다. 모든 경전을 섭렵했기에 박학다식하고, 금타 스님 저서 <금강심론(金剛心論)>만 읽으면 모든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다.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의 스승이기도 하다.

    <금강심론>은 보살 수행위차(修行位次)에 있어서 성문십지(聲聞十地), 보살십지(菩薩十地) 또는 52위, 55위나 56위 등 그런 여러 가지 위차를 대비하고 회통해 해탈십육위(解脫十六位) 하나의 체계를 세운 것이다.

    <금강심론>은 어떻게 수행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불하는가를 철저히 경전에 근거해서 서술했다. 따라서 경전의 인용 폭은 소승 ․ 대승 ․ 밀교를 총망라했다. 또 보편타당해서 어느 수행법도 부정하지를 않았다. 간경(看經), 진언(眞言), 참선(參禪), 관법(觀法), 이 모두 다 경계는 같다고 했다. 그러기에 간경 수행하는 사람이이나 진언하는 사람이나 화두 하는 사람이나 다 <금강심론>을 읽는다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금강심론>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이 제2장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다. 보리방편문은 중생에서 부처의 길까지 간결하게 일러준 법문이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르신 분이 올라가는 길을 지도를 보고 손으로 짚어가면서 일러주듯이 범부에서부터 부처가 되는 길을 철저히 경전에 근거해 말씀하셨고, 경전의 폭은 소승 경전부터 대승, 밀교까지 총 망라했다.---→금타(金陀) 스님 참조.

     

*금강역사(金剛力士, Vajrapani)---원래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코끼리 60만 마리 힘을 가진 역사(力士)로서, 어떤 거짓도 허용할 수 없게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눈을 금강안(金剛眼)이라 한다. 한편 금강역사는 금강문을 지키는 야차(夜叉)이기도 한데, 불교의 대표적 호법신장(護法神將)이다. 이를 인왕(仁王)이라고도 해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받아들였다.---→금강문(金剛門) 참조.

       

*금강유정(金剛喩定)---금강삼매(金剛三昧)와 같은 말. 금강심(金剛心) ․ 금강정(金剛定)이라고도 한다. 금강의 견고하고 예리한 성질에 비유해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선정(禪定). 온갖 분별과 번뇌를 깨뜨려버리는 선정을 말한다.

       

*금강저(金剛杵, vajra)---‘저(杵)’는 고대 인도의 무기 중 하나로 제석천(인드라)이 코끼리를 타고 아수라와 싸울 때 사용하는 것이란다. 무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리하고 뾰족했으나 차츰 불교의식구로 전용되면서 불꽃[寶杵]이나 탑 모양[塔杵]으로 변모했다.

    산스크리트어 ‘바즈라(Vajra)’에는 ‘벼락’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인도 신화에 나오는 제석천(Indra-인드라 신)이 갖고 다니는 벼락같은 힘을 가진 무기인 금강저(金剛杵)가 이러한 힘을 상징한다. 손잡이 양끝에 예리한 칼날이 달려있는 방망이로, 둘레에 연꽃과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어 천둥의 모양을 따랐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금강저는 힘을 나타내는 무기로 삿된 것들을 모두 쳐부수는 강력한 무기로서, 불교에서는 항상 몸에 지녀 금강과 같은 지혜로 미혹을 깨뜨려 부수는 지혜의 무기를 상징하며, 번뇌를 없애는 보리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금강지저(金剛智杵)ㆍ견혜저(堅慧杵)라고도 한다.

    밀교에서는 의식을 거행할 때 엄격한 법식에 따라 여러 가지 물건을 사용하는데, 총칭해서 밀교법구라고 한다. 그 중에서 금강저는 특히 중시한 의식용 불구(佛具)의 하나인데, 지금도 호신부로 팔고 있다. 하지만 밀교가 성행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금강령, 금강저, 화사형 향로(火舍形 香爐) 등이 일부 전해지는데, 대부분 중국 원나라에서 유입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13~14세기에 주로 사용됐다.

        

*금강정경(金剛頂經)---밀교경전으로서, 금강계의 여러 경전 중 특히 다음 세 가지를 통틀어 이르는 총명(總名)이다. 그러나 줄여서 불공 번역본만을 <금강정경>이라 이르기도 한다,

    ① 불공(不空) 번역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 3권. 현존하고 있는 금강정경계 경전 중 가장 많은 내용이 담겨 있으며, 흔히 <초회금강정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줄여서 보통 이를 <금강정경>이라고 한다. 명칭의 의미는 여러 경전 중 최고이며, 모든 여래의 진실을 수록한 실천규범 왕경(王經)이라는 뜻이다. 이 경은 <대일경(大日經)>보다 약간 늦게 AD 670~690년(7세기 말엽)경 동남부 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일경>과 함께 밀교의 근본사상을 설하는 근본경전인데, <금강정경>이 대일경보다 밀교교의에 대해 더 정교하다고 한다.

    ② 시호(諡號) 번역 <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교왕경(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三昧敎王經)> 30권.

    ③ 금강지(金剛智) 번역 <금강정유가중약출염송경(金剛頂瑜伽中略出念誦經)> 4권.

위의 번역자로 등장하는 금강지(金剛智)는 인도 승으로서 당대(唐代) 중국에서 활약했으며, 불공(不空)은 그의 제자이다. 그리고 시호(施護)는 송대(宋代)에 활약한 밀교승이다.

   <금강정경>은 밀교의 독자적인 비밀의궤(秘密儀軌)를 상술한 것으로 관정(灌頂:여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물을 스승이 제자의 머리에 붓는 의식을 행해 부처의 지위를 계승케 하는 것)의 규칙이나 진언(眞言) 그리고 여러 인계(印契) 등이 설명돼 있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금강정경>이 티베트밀교의 기초가 돼 있다.

    

*금강지(金剛智)---극히 견고한 지혜. 곧 여래(如來)의 지혜를 의미한다.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바쥬라보디, 671~741)---남인도출신 승려로 720년 중국 당나라 뤄양(洛陽)에 들어가 밀교를 크게 펼쳐 중국밀교의 개조가 됐다. 그와 같은 시대 밀교승려인 선무외(善無畏)가 <대일경(大日經)> 등을 번역한 데 반해, 금강지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중국에 전하고 번역했으며, 그 외에 다수 밀교경전을 번역했다.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이라고도 한다.

  

*금광명경(金光明經)---금광명(金光明)의 세 글자에서 ‘금(金)’은 존귀한 것이며, ‘빛(光)’이란 온갖 것을 비추어 어둠을 없애고, ‘밝음(明)’은 만물에 응해 모두 이익 되게 한다는 뜻이다.

    <금강명경>은 참회하는 법, 업장(業障)의 소멸, 사천왕(四天王)에 의한 국가 보호,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국왕의 공덕과 이 경전을 설하고 독송하는 이의 공덕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5세기 중엽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 번역. <법화경>ㆍ<인왕경>과 더불어 호국삼부경에 속한다. 이 경의 설법을 믿고 자기의 죄를 참회하면 자신은 물론 나라와 왕도 귀신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설법하고 있다. <금광명경>은 신라와 고려에서 매우 존숭됐으며, 이에 근거해서 인왕백고좌회를 열기도 했다.

    

*금구(金口)---부처님 입을 말한다. 부처님 몸이 황금빛이므로 그 입을 금구라고 하며 또 금강과 같이 견고하므로 이렇게 말한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말하기도 한다. 부처님 말씀은 만세에 없어지지 않는 진리이고 금강과 같으므로 금구라 하고 또 금빛 입으로 하는 말이므로 금구라 한다.

        

*금당(金堂)---가람(伽藍)의 중심 건물로 본존불을 안치하는 전당을 말한다. 금색의 불상을 내부에 안치하기 때문에 금당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금륜(金輪)---4륜 중의 제일 윗층임.---→사륜(四輪) 참조.

 

*금불부도로 목불부도화 니불부도수 진불내이좌(金佛不度鑪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真佛內裏坐)---<벽암록> 제96칙, 조주(趙州從諗, 778~897) 화상의 삼전어(三轉語)법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조주 선사의 시중(示衆)이다.

          ※전어(轉語)란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깨달음으로 전향하도록 하는 말이다. 전미개오(轉迷開悟)라는 말과 같이 중생의 몸과 마음을 부처의 몸과 마음으로 전향시키는 전신(轉身)의 의미인데,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을 때 한 마디 법문으로 깨달음을 체득해 자유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심기일전(心機一轉)하도록 하는 선승의 법문을 일구(一句)라고 한다. 선에서 말하는 일구는 일전어(一轉語)이며, 삼구(三句)는 삼전어(三轉語)이다.

          ※시중(示衆)---대중에게 법문을 내려 가르치는 것을 ‘시중(示衆)’이라고 한다.

 

    어느 날 조주 화상은 수행자들에게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도록, 심기(心機)를 일전시킬 만한 세 마디 획기적인 법문을 하셨다.

    「쇠 부처(金佛)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金佛不度鑪),

      나무부처(木佛)는 불을 건너지 못하고(木佛不度火),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泥佛不度水).

      참된 부처(眞佛)는 마음속에 있다(真佛內裏坐).」

   쇠로 만든 부처님은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고 만다.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에 들어가면 타버려 불을 건너지 못한다. 진흙으로 만든 토불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버린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부처는 안에 가만히 앉아계시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로ㆍ불ㆍ물에 들어가도 이 부처님은 끄떡하지 않는다. 어떤 희ㆍ로ㆍ애ㆍ락 감정 상태나, 손ㆍ해ㆍ득ㆍ실에도 이 부처님(心佛)은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나고 죽는 일에도 상관없다. 그러니 형상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오로지 심불(心佛)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참다운 부처는 형상으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불상이 곧 부처는 아니다. 허나 형상을 떠나서 부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 이와 관련해 파조타(破竈墮) 화상 이야기가 전한다.

   하루는 화상이 주장자로 절에 모셔진 조왕신(竈神-부엌신)을 때려 부셨다. 조왕신은 박살이 났는데, 그 속에서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동자가 나타나서 사례를 하는 것이다. 고맙다면서,

   “지난날에 나 자신을 저버리고 산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신이 되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서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신들도 번뇌가 끊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까닭에 자기 맘에 따라 취사선택을 할 때도 있다. 다시 말해 집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 그 동자는 조왕신이 좋아보였던가 보다. 그래서 그 속(조왕신 속)으로 들어가서 공양을 받고 하니까 대단히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파조타 스님이 주장자로 그것을 알고 조왕신을 부셔버리니까 동자가 그때야 그런 생활이 부질없음을 알고 풀려난 것에 대해 사례를 했던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금불이나 목불이 용광로나 불을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임을 밝힌 이야기이다.

   보리나 열반, 진여, 불성, 이런 말들이 모두 몸에 걸친 의복과 같고, 역시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의문이 없으면 번뇌도 없다. 궁극적인 실제 이치라도 어디에 둘 수가 있으랴! 망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은 허물이 없다. 단지 불법의 이치를 구명하기 위해 참선하라는 가르침이다. 다른 것은 다 방편이다. 오로지 마음속에 부처를 담도록 하라는 말이다.  

 

 

*금사자장(金獅子章)---본명은 화엄금사자장(華嚴金獅子章)인 방대한 글이다.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뜰 앞에 놓인 금사자를 가지고 비유해 10문(門)으로써 화엄의 교관(敎觀)을 나타낸 글이다.

   법장은 여기서 ‘이(理)’는 이치요 ‘사(事)’는 현상이다. 법신의 바탕이 이치요, 그로 인해 드러나는 마음의 모습이 현상이다. 이치가 작용해 현상이 일어나니 이치를 떠나 현상이 있을 수 없고 현상에서 그 이치가 드러나니 현상에서 이치를 분리할 수 없어, 본디 서로 ‘상즉’ 한다. 금으로 만든 금사자(金獅子)에 있어서,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佛性을 금으로 표현]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여러 가지 수행방편이란 뜻]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해 표상(불성에 의지해서 수행결과)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고 했다.

 

        

*금시조(金翅鳥)---가루다(Garuda)와 같은 말.---→가루다(Garuda) 참조.  

        

*금어(金魚)---불화나 불상을 조성하는 무리들의 우두머리. 불화를 제작하는 이들을 불모(佛母), 화사(畵師), 화승(畵僧) 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이 중 으뜸이 금어이다.

         

*금타(金陀, 1898-1948) 스님----전북 고창(高敞) 출신으로 속명은 김영대(金寧大)이다.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919년 고창 만세 시위에 참여한 후 왜경의 마수를 피해 산사로 피신했다가 백양사에서 만암(曼庵)스님을 친견하고 출가 사문의 길에 들어섰으며, 주로 백양사 운문암에 주석했다. 벽산당(碧山堂) 금타(金陀) 스님은 일제식민통치와 해방 후의 혼돈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철저히 감추고 살다가 가신 분이다. 스님의 깨달음의 세계는 범인이 헤아리기 힘들다. 스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메모지에 남긴 것을 그의 제자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이 <금강심론(金剛心論)>이란 표제(表題)를 붙여 편찬했다. 그가 지은 <금강심론(金剛心論)>만 읽으면 모든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고 했다.

    <금강심론>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이 제2장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다. 보리방편문은 중생에서 부처의 길까지 간결하게 일러준 법문이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르실 분을 위해, 올라가는 길을 지도를 보고 손으로 짚어가면서 일러주듯이 범부에서부터 부처가 되는 길을 철저히 경전에 근거해 말씀하셨고, 경전의 폭은 소승 경전부터 대승, 밀교까지 총 망라했다.---→금강심론(金剛心論) 참조.

                 

*급고독(給孤獨, 빠알리어 anāthapiṇḍika(아나타핀디카)---중인도 사위국(舍衛國, 코살라국) 장자이자 재상,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舍)을 지어드린 수달타(須達多, Sudatta/수닷타)의 별명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나타핀다다(anāthapiṇḍada)라 한다.

    수달타는 원래 배화교 신자였다가 부처님 제자가 됐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한량없었고, 어려운 이에게 항상 옷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고독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라는 의미의 급고독(給孤獨), 즉 아나타핀디카(아나다 핀다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수보리가 바로 급고독 장자의 조카이다. 정사를 지어 바친 후에도 자주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집으로 청해 공양을 올렸으며, 재산이 다한 후에는 죽이라도 보시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다.---→기원정사(祇園精舍), 아나타핀디카(빠알리어 Anāthapindika) 참조.  

        

*기(機)---‘근기(根機)’란 말을 줄여서 기(機)라고 한다. 근기(根機)란 부처님의 교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할 때 쓰인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교화될 수 있

는 소질과 능력, 개인이 타고난 그릇, 또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역량을 말한다. 그런데

기는 반드시 무엇인가의 근성(根性 ; 근본이 되는 성질이나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근기(根機)라 하며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① 소질과 능력의 고하에 따른 상ㆍ중ㆍ하근기로 나누고,

     ② 지니고 있는 품성에 따라 악 근기와 선 근기로 나누기도 하며,

     ③ 기질의 민첩성에 따라 돈(頓)근기와 점(漸)근기로 나누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근기(根機), 방편시설(方便施設) 참조.

         

*기기상응(機機相應) 구구상투(句句相投)---<벽암록(碧巖錄)> 제50칙에 나오는 말이다. 경계마다 대응하고 구절마다 투합한다는 말인데, 여기서 ‘기기(機機)’는 말이나 행동 등 모든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어떤 경계에도 알맞은 대응을 내놓고, 어떤 말에도 즉시 적합한 대답을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놓고 붙잡고 긍정하고 부정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경지를 보여줌을 말한다. 그리고 수행의 현장에 있어서는 스승의 기용(機用)이 제자의 심성(心性)과 상응하고, 서로 주고받는 언구(言句)가 서로 계합하는 것을 말한다.

 

 

*기도(祈禱)---기도란 빈다는 뜻이다. 불교사전에 의하면, “기도란 마음으로 소원하는 것을 빌어서 불ㆍ보살의 가피(加被)를 구하는 것. 흔히는 재앙을 없애며, 질병이 낫기를 비는 등 현세에 대한 행복을 구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빈다’는 의미의 기도라는 말은 불교에서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도’라는 말은 원래 불교적 용어가 아니고,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후대 대승불교에서 생긴 비불교적 용어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신(神)이나 어떤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불교에서 절대자를 인정한다면 유신론(有神論)이 돼버린다. 그러므로 맹목적 ․ 무속적 ․ 미신적 기도는 불교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므로 원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도는 불교에서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교계에서 기도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부처님이나 신에게 적극적으로 빌어 그 초자연적인 위신력을 기계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현세 이익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도, 자기 욕심을 구현하고자 하는 현세구복적인 기도이다.

   다른 하나는 부처님에 귀의해 믿음을 가지고 참회함으로써 죄를 소멸하고, 감사ㆍ보은ㆍ찬탄ㆍ숭앙 등을 위한 수행차원에서 행해지는 비공리적(非公利的)인 기도가 있다. 부처님을 향한 신앙에 장애가 오거나 자기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도록 부처님을 향한 신앙심이 더욱 향상되도록 간절히 희구하는 수행자의 순수한 기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기복적인 기도는 비판대상이지만, 두 번째 기도는 허용되는 경향이다. 오늘날 할머니 불자로 대표되는 많은 여성신자들이 부처님이나 보살을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그 앞에서 사사로운 복을 빈다. 이것은 명백히 불교교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기복신앙이다. 그런데 두 번째 것은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신행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에서 하나의 수행법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혼란스러운 것은 사찰에 따라, 그리고 스님에 따라 기복신앙 형태의 기도를 공공연히 권하고, 심지어 장사 속을 드러내는 일조차 빈다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론적인 정립이 부족하고 교의를 제대로 모르는 하열한 불자들로서는 어떻게 대처해 할지 막연하다.

   그런데 기도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적 시각을 가진다거나 기도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불자를 위한 다음과 같은 지침이 있다. 이는 불교에서 기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찰에서도 수행차원에서 기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기도는 자신의 발원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불교의 복이란 중생이 바른 도리와 바른 이상을 향해 자신을 사심 없이 내던지는 마음가짐 속에서 근원적으로 자기구제가 열린다는 의식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흔히 기도는 불ㆍ보살의 가피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도의 성취원리는 자기의 정화를 통해 얻게 되는 자기발현(自己發顯) 혹은 자기계발(自己啓發)이다. 이와 같이 기도란 마음의 개혁이며, 그것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영험이 있는 것은 불교적 가치의 상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물질주의와 결탁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이렇게 이해한다고 하면 기복신앙이 불교를 타락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기복에서의 기도가 이타적 실천의 맹세인 서원(誓願)으로 바뀔 때 기복불교는 대승 방편으로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기도를 하는 것은 업장을 녹이고 번뇌를 끊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원을 세우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기도를 하다 보면 사바세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믿음이 생기게 된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삼독(三毒)의 장애로 인해 잡념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대원력(大願力)을 세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이러하므로 불교가 종교이므로 무조건 기도를 기복이라 폄하한다거나 신앙심보다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방법도 지나친 일이다.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도 경건한 기도를 하고 있고, 불교에서도 한마음으로 불공드리는 나이든 할머니들을 무조건 기복신앙이라 폄하하는 건 잘못이다.

   기도는 자신을 참회하고 집중하며 발원하면서 그렇게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생기고 깊어지는 가장 초기단계의 신행이라는 것이다. 성불은 멀고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신행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 그리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경험했다면 그것에서부터 신앙심이 나오고 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컨대, 영장을 받고 군 입대를 앞둔 신심 깊은 젊은이가 영장을 받아들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리되, “나를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곳으로 배치시켜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기복불교에 해당되겠지만, “부처님 이제 저는 군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낯모르는 제 또래의 젊은이들과 공동생활을 해야 하기에 자칫 계를 어기고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에 흔들림이 있을지 두렵습니다. 제발 제 마음이 군 생활에서도 한결같이 흐트러짐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라며 간절히 기도한다고 하자다. 이런 기도조차도 비불교적이라고 욕한다면 그것은 편견일 따름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불교에는 기도라는 말보다는 불공(佛供)이란 말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도’란 말은 자칫 기독교 따라 하기 같다는 것이다.   

       

*기도발(祈禱發)---기도발(祈禱發)이란 무엇인가? 불ㆍ보살님이 중생들의 기도에 감응하시는 것을 기도발이라 한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의 간절한 염원의 기도에 외면하지 않는다. 한 중생이라도 사랑의 품으로 껴안으려 하신다. 기도발은 불ㆍ보살님의 본원력(本願力). 공덕력(功德力). 가피력(加被力)이다. 즉, 기도발은 부처님의 가피력이다. 부처님이 가엾은 중생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이것을 기도발이라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을 전지전능 하신 분이라 믿고, 그 은혜에 기대를 걸어, 탐ㆍ진ㆍ치 삼독심에 물든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군상들이 기도발 잘 듣는 사찰을 찾아, 그런 스님을 찾아 몰려다닌다.

  『그래서 중생은 기도발을 받아야 한다. 중생의 간절함과 부처님의 사랑이 기도발을 발생시킨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절망과 아픔에 허덕이는 나약한 자에게 사랑의 보약을 투여한다. 이것이 기도발이다. 기도발은 기도의 영적 에너지의 원리를 설명한 용어이다. 기도의 힘. 기도 효험. 기도 성취가 그것이다. 기도발(祈禱發)이라 할 때 발(發)의 개념은 힘 내지는 강한 기운 즉 에너지이다.

   화투에는 끝발이 좋아야 하고. 술을 마시면 술발이 있어야 한다. 화장을 할 때는 화장발을 받아야 하고. 말을 할 때는 말발이 서야 한다. 약을 먹으면 약발을 받아야하고.… 중생은 선한 기운을 많이 받아야 한다.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하듯이 불ㆍ보살님의 수승한 기도발을 간단없이 받아야 한다. 유전생사에 헤매는 중생이 기도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광 스님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표현인 것 같아 씁쓸하다. 기도발이 잘 듣는 절을 찾아, 부처님을 찾아, 스님을 찾아가, 오로지 소원성취를 위해 일념인 불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종교인지 미신인지 구별이 안 된다.

        

             

*기독교와 불교---인간의 간절한 열망이 응집돼 그것이 종교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고통에서 해방을 희구하는 간절한 서민의 열망이 해탈을 지향하는 불교를 탄생시켰듯이, 그 500여년 뒤 인간사회의 끝없는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응집돼 기독교가 성립됐다.

    기독교가 형성된 AD 1세경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국제질서가 안정돼 여행이 자유롭던 시기였다. 유럽과 파레스타인 지방까지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유지됐고, 중동지역은 파르티아에 의해 치안이 확보돼 있었다. 이 두 대국이 서로 대치상태에 있기는 했으나 피차 전쟁을 피하고 있었으므로 교역은 활발했고 여행은 자유로웠으며, 생활은 비교적 풍요로웠다.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역사학자 케네스 스콧 라두렛(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시기에, "불교는 이미 인도, 실론(스리랑카), 중앙아시아, 중국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윌 듀런트(Will Durant, 1885~1981)는 아소카왕이 불교 선교사들을 인도의 모든 지역과 실론,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그리스까지 보냈으며, 이들이 기독교 윤리학(ethics of Christ)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기원전 270년경, 인도에서는 아소카왕이 집권했다. 집권 이후에 그는 불교를 정비해, 선교사들을 전 세계에 파견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그리하여 아소카왕은 그의 미션(mission)이 서방 국가들에게 우호적으로 수용됐다고 기록했다.

    그리하여 초기 비교종교학으로 유명한 학자인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는 그의 책 “India: What it can teach us”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일치성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불교가 기독교 보다 최소한 4백년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이가 불교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준 역사적인 경로를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나는 매우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쳐줄 수 있다. 그 비슷한 이유는 예수가 인도에 유학했기 때문이다. 그 안정된 세계 질서 속에 파레스타인 지방을 방문한 인도 선지식들이 예수의 총명함에 감복해 예수의 인도유학을 권유하자,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소원이 절실하기도 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학문이 발당했던 인도로 안심하고 유학을 보냈다. 그리하여 인도에 유학 와서 불교에 심취했던 예수는 불교는 물론, 의학을 비롯한 오명(五明)을 익히고, 티베트까지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혔다.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토마스 복음서와 나그 함마디 텍스트(Nag Hammadi texts)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다음과 같은 책들에 의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 Elaine Pagel의 The Gnostic Gospels (1979)

      • Elaine Pagel의 Beyond Belief (2003)

      • Elmar R. Gruber와 Holger Kersten의 The Original Jesus (199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인도에 유학해서 불교를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한편, 변질된 유대교 일파인 에세네파(Essenes派)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성장했다. 따라서 예수의 사상 가운데는 불교적 색체가 배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 차이는 있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전지전능하지만 석가모니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자연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훌륭한 분이었을 따름이다.

   기독교는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주장하지만 불교는 일종의 진화론에 해당하는 연기론을 주장한다.

불교는 절대적인 창조신을 부정하는 무신론(無神論)의 입장에서 업과 행위를 말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는 조건에 의해 존재하고, 조건에 의해 소멸해가는 연기(緣起)의 법칙에 따라 흘러가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불교는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하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무엇이든 둘로 나눈다. 선과 악, 하느님과 사탄, 구원과 지옥….

   불교는 각자 삶의 주인공은 본인이라 한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의 삶은 피조물로서 신에게 예속돼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신은 처음 인간을 만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아담과 이브에게 ‘먹으면 반드시 죽을’ 그 위험한 선악과나무(그것이 상징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를 그들 곁에 심어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신이 진정으로 그의 자식과 같은 아담과 이브의 장래를 생각했다면 그런 나무는 아예 만들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고, 그것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어 부득불 만들었다면 일이 잘못되고 난 뒤에 한 것처럼, 미리 아담과 이브가 그 나무에 접근 하지 못하게 무슨 장치를 설치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신의 뜻에 반해 그 과일을 따 먹었다 하더라도 신이 그들의 자애로운 부모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옳고 그름(선악)조차도 모르는 상태의 아담과 이브에 대해 그렇게 가혹한 벌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잘못에 대해 그 일과는 관계도 없는 그들의 후손들에게까지 영원한 벌을 내린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게다가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신 자신은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호진    

   불교는 스스로 깨달아 성불하라고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증득할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는 신에게 완전 복종해야만 구원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해탈은 고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속박을 벗어났다는 것은 자유를 얻었다는 뜻과 같다. 그래서 불교는 자유를 이야기하지 복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복종을 요구한다. 오직 복종을 통해서만 모든 것이 얻어지거나 이루어진다.

    “기독교에서 구원을 결정짓는 것은 선행을 통해 성취되는 공덕이 아니라 신에 대한 충성이기 때문에, 그 길에서는 선한 자일지라도 신을 믿지 않으면 버려지고, 악한 자일지라도 신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에 비해 불교는 부처님이나 불법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만으로 높은 행복을 성취할 수는 없다고, 불제자 자신이 보다 많은 선행을 쌓고, 보다 높은 덕을 이루며, 마음을 보다 청정하게 할 때에만 행복의 차원이 향상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법은 신자 자신이 주체가 돼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기독교는 구원을 경정하는 자가 신이라는 것, 즉 신자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서, 기독교는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보는데 비해 불법은 인간이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붓다는 “사랑하지 말라 또한 미워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예수에게 사랑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렇지만 붓다에게 사랑은 마음의 시소가 한쪽으로 기운 것을 의미하고,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언젠가 반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즉 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해, 붓다가 미음과 함께 사랑까지도 버리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선 공(空)을 최고의 진리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자가 신(神) 자신에게 지은 죄에 대해서는 사면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신자)가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까지 사면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 김정빈 <경> 참조.

    또한 행복이란 자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복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노예는 아무리 행복해도 노예일 뿐이다. 마치 복종이 행복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인간이 가장 편한 것은 복종하는 거다. 복종하면 지시만 받고 행동하면 되니까. 자유라고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위험한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예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고, 그저 복종만 하면 된다.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동질성이 많다.

    불교는 브라만교의 선민의식과 계급주의를 지양하고 만인평등을 주장했다.

    기독교는 유태교의 선민의식을 지양하기 위해 세계주의를 지향했다.

    그 외에도 막스 뮐러(F. Max Müller)의 주장처럼 비슷한 점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이렇게 다른 점도 불교를 배운 예수가 불교 그대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새로운 종교를 성립시킬 수 없었던 점도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 지방 나름의 특성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후세에 변질된 것처럼 예수를 계승한 후세인들에 의해 변질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진리는 하나인데 - 기독교와 불교>라는 제목의 법정 스님 글을 보자.

    『나는 가끔 이런 대접을 받는다.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가게 주인은 정확한 발음으로,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한다. 물론 얻으러 온 탁발승으로 오인하고 한 말일 것이다. 태연하게 물건을 골라 돈을 치르고 나오면서 돌아보면 복잡한 표정이다.

혹은 기독교인들끼리 산사에 놀러와 어쩌다 찬송가라도 부를라치면 기를 쓰고 제지하는 산승들이 또한 없지 않다.

    이와 같은 씁쓸한 현상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일까.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적인 신념에서라기보다, 이교도라면 무조건 적대시하려 드는 배타적인 감정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만이 유일한 것이고 그밖에 다른 종교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미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맹목에서일 것이다. 이렇듯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선민의식이 마치 자기의 신심을 두텁게 하는 일인 양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시야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단견(短見)들이 읽는 경전이나 성경의 해석 또한 지극히 위태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글이나 말 뒤에 들어 있는 뜻을 망각하고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는 표면적인 언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 한 어떤 종교든지 그 나름의 독자적인 상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상징이 맹목적인 숭배물로 되거나 혹은 다른 종교에 대해 우월을 증명하는 도구로 쓰인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오해는 이해 이전의 상태이다. 따라서 올바른 비판은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 그런데 그릇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일부 종교인들은 성급하게도 인식을 거치지 않고 비판부터 하려 든다. 물론 인식이 없는 비판이란 건전한 비판일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들이 진정으로 자기 종교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저절로 타종교의 본질도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역사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은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에 매몰된 자들이다. 이러한 광신도들이 오히려 타종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네 종교조차도 황폐하게 한다.

    이전까지 기독교도와 불교도 사이에 바람직한 대화의 길이 트이지 못한 그 원인을 찾는다면, 상호간에 독선적인 아집으로 인한 오해에 있었을 것이다.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사랑은 편애가 아니고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은 이교도를 포함한 모든 이웃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즐겨 읽는 <요한의 첫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부처님’으로 바꿔 놓으면 사이비 불교도들에게 해당될 적절한 말씀이다.』---→‘예수 인도에 유학하다’ 참조.

        ※에세네파(Essenes派)---그리스도 시대의 유대교의 일파. 신비적인 금욕주의를 부르짖으며, 하느님과의 보다 완전한 일치를 추구해 사해(死海) 주변에 종교적 공동생활권을 만들고 공동생활을 했다. 재산은 공유이며, 예배와 독서와 공동식사를 중요한 행사로 삼았다. 그 대부분은 결혼을 사양한 것 같으며,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이 이 파에 속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금세기 최대의 발견(1945)의 하나인 <사해문서(死海文書)>의 소유자였던 쿰란 교단이 이 파라고 하는 설은 매우 유력하다. 이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중간기의 성서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됐다. 이 파는 1세기말 경 소멸됐다.

        

*기리마난다경(빠알리어 Girimānanda sutta)---앙굿따라 니까야(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실려 있는 경이다. 이 경은 열 가지 산냐(인식)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병을 앓고 있는 기리마난다 장로를 위해 설한 가르침이며, 부처님의 예언대로 기리마난다 장로가 이 경을 듣자마자 병에서 회복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요즈음도 병석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보호주(빠릿따)로 이 경을 낭송하곤 한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핀디카 사원에 머무셨다. 그때 기리마난다 장로가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으므로, 아난다 장로가 부처님께 가서 삼배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기리마난다 장로가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 대한 연민심으로 기리마난다 장로를 방문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난다여, 그대가 기리마난다 장로에게 가서 열 가지 인식(샨냐)에 대해 말해주면 그가 열 가지 인식을 들을 때 병이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열 가지 인식이란 무상에 대한 인식(Aniccasaññā), 무아에 대한 인식(anattasaññā), 부정(不淨)에 대한 인식(asubhasaññā), 위험에 대한 인식(ādinavasaññā), 버림에 대한 인식(pahānasaññā), 탐욕 없음에 대한 인식(virāgasaññā), 소멸에 대한 인식(nirodhasaññā), 세상이 다 즐겁지 않다는 인식(sabbaloke anabhiratasaññā),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다는 인식(sabbasankharesu aniccasaññā),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ānāpānasati)이다.

         

*기바(耆婆, 祇婆, 지와까, 지바카/Jīvaka)---붓다 재세 시에 의왕(醫王)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의술로 이름 높았던 명의(名醫)로서 붓다 주치의였다. 본명이 지와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이다.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왕사성(王舍城) 창녀 암라팔리(Amrapali) 혹은 살라바티(sālavati)라는 말이 있다. 그녀는 자기 인기가 떨어질까봐 아들을 낳아 쓰레기 더미에 버렸는데,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 빈비사라(bimbisāra)왕의 아들이며, 아사세태자의 이복형제인 아바야(abhaya)왕자가 데려다 양육했다. 성장한 기바는 펀자브(Punjab) 북쪽 지역에 있던 건타라국(乾陀羅國) 탁샤실라(takṣaśila-덕차시라국)에 가서 그곳의 명의였던 빈가라에게 7년 동안 사사받은 뒤 본국으로 돌아와, 왕사성에 머물면서 치료했다. 불법에 귀의해 깊은 신심을 지녔다. 그는 부처님 풍병을 고쳐서 의왕(醫王)이라고까지 칭송됐다. 그래서 빈비사라왕과 궁중의 주치의로 임명됐고 부처님과 승가의 주치의 역할도 했다.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아사세왕도 가바를 주치의로 삼았다고 한다.

   지와까는 수다원과를 증득한 뒤 하루에 두 번씩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갔으며 부처님께서 머무는 왕사성의 죽림정사(Veḷuvana)가 너무 멀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망고 숲을 승가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전에 망고 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특히 아사세왕이 태자였을 때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시해한 뒤 왕위에 올랐으나 그 후 크게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아사세왕을 부처님께 귀의시킨 사람이 기바였다.

 

   

*기반경(基盤經, 빠알리어 upanisā-sutta)---<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 - 상응부아함(相應部阿含)> 제23경을 말한다. 이 <기반경>에서는 연기법으로 괴로움이 일어나는 과정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과정(해탈 열반의 과정)을 함께 설명하고 있으며, 수행체계와 관련된 설명을 하고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기반경>에서는,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가 멸진(滅盡)하고, 번뇌가 멸진하는 지혜는 해탈(解脫)을 기반으로 하고, 해탈은 이탐(離貪)을 기반으로 하고, 이탐은 염오(厭惡)를 기반으로 하고, 염오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을 기반으로 하고, 여실지견은 삼매(三昧)를 기반으로 하고, 삼매는 행복(幸福)을 기반으로 하고, 행복은 경안(輕安, Passaddhi)을 기반으로 하고, 경안은 희열(喜悅)을 기반으로 하고, 희열은 환희(歡喜)를 기반으로 하고, 환희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믿음은 괴로움을 기반으로 하고, 괴로움(dukkha)은 태어남(生)을 기반으로 하고, 태어남은 바와(有)를 기반으로 하고, 바와는 취착(取)을 기반으로 하고, 취착은 갈애(渴愛)를 기반으로 하고, 갈애는 느낌(受)을 기반으로 하고, 느낌은 촉(觸)을 기반으로 하고, 촉은 육입(六入)을 기반으로 하고, 육입은 명색(名色)을 기반으로 하고, 명색은 식(識)을 기반으로 하고, 식은 행(行)을 기반으로 하고, 행은 무명(無明)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해져 있다.---→‘괴로움(苦, 빠알리어 dukkha)의 극복’ 참조. 

 

*기복불교(祈福佛敎)---개인이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복을 구하거나 비는 모습을 기복불교라 한다. 불교가 민간신앙을 흡수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생겼다. 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나 복을 구하고자 하는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祈福)’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특히 ‘기복(祈福)’이란 단어는 불교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는 교리와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불교 신행 속에 ‘기복’을 인정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다만 1998년 홍법원에서 나온 <불교대사전> 개정판에 ‘기복불교’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여기에 기복불교 정의는 다음과 같다.

   “복을 비는 불교란 뜻으로 경전에는 없는 말이다.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깨달아 참 부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에서 오직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과 복만을 빌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기복불교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기복불교를 설명하고 있으나 ‘경전에 없는 말’임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반면 ‘수복(修福)’에 대해선 “많은 선행을 실천하는 것, 여러 가지 선근을 닦는 것”으로 뜻풀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작선(作善)’이 언급된다. 작선에서 또 ‘득복(得福)’이란 말이 결합돼 ‘작선득복(作善得福)’이란 말도 나온다. 그러나 ‘선을 행한 과보로서의 복’이란 뜻풀이로 미루어 경전에서 말하는 ‘복 짓기’로서 ‘작복’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작선득복의 좋은 예는 부처님이 시각장애를 가진 제자 ‘아니룻다’의 헤진 옷을 꿰매주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이때에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복 짓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러주셨다.

   부처님은 복이 있고 없음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뒤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복된 업을 닦는[修福] 이’라거나 ‘복짓기[作福]를 싫어하지 말라’는 말씀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복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경전에서는 ‘수복’과 ‘작복’에 대해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신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해야 복을 받는다는 ‘기복’의 출전 예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에는 기복불교로 여길 수 있는 신앙대상이 너무 많다. 산신이나 칠성신 등에서 아들 낳기를 기원한다거나 사업성공, 대학입시합격, 승진, 영전, 당선 등과 관련된 신앙대상을 찾는 미신에 가까운 불교가 기복불교이다. 이 같은 기복신앙은 불교 가치를 잊게 하는 표층신앙(表層信仰)이어서 자칫 불교 본래의 이타적 성격을 도외시할 우려가 있다. 더구나 이런 형상이 젊은 신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돼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기복으로 흘러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신행을 수행으로 바꿔야 한다. 수행의 결과로서 원력을 세우는 것이지 수행 없는 원력은 모순이다. 예컨대 뭘 바라고 빌기 전에 수행이 앞서야 하고, 그럴 때 기복하고 바라는 신행은 수행으로 전환돼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수불스님

   헌데 “한국의 괜찮은 사찰에 가면 전국구 보살, 왕 보살님 등등이 계신다. 30~40년 절에 다니신 분들이다. 하지만 이 분들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을 보면… 솔직히 실망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분들이 사찰을 찾아가면… ”왜 왔어? 누구냐? …“ 이런 식으로 쳐다본다. 혹 스님이라도 뵈려고 하면 찬바람이 씽씽 분다. ”왜 내 스님 찾아… ?“ 라고 하면서… 시기심으로 뭉쳐져 있는 보살들이 많다. 특히 절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 더한 것 같다. 이것이 모두 다 기복불교의 민낯일 것이다. 나만 복을 받아야 하고 나만 잘 돼야 하는데… 남이 끼어들까봐… 혹시 내 복 가로챌까봐… 낯선 사람들에게 쌀쌀하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 실론섬

   이런 유의 왕보살들이 ’치마불교=여성불교=기복불교’로 등식화하는 장본인들이다. 따라서 불교 발전의 입장에서도 이런 풍토는 없어져야 하는데, 이런 인사들에게 기대는 승려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와 같이 기복신앙 문제는 한국불교의 해묵은 과제다.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신행할 것인가,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불교를 교리적 측면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비판적 입장에 선다. 반면 신앙적 측면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는 입장이다.

   불교가 종교인 이상 머리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지식불교는 남의 소를 헤아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그러나 바른 목표를 정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기복불교를 무작정 옹호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대중적 요구가 있다고 해서 교리 자체를 왜곡하고 이에 바탕한 신행을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불교가 교리와 신행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데에 있다. 교리는 지혜를 강조하는데 신행은 무명을 지향하고 있다.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문제는 다른 나라의 불교, 혹은 다른 종교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기복불교 옹호는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곤란하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그러나 ‘복을 받기 위해 복을 비는 행위’인 기복(祈福)이 문제다.

   헌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도성장의 결과, 어려운 시기를 살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노인들은 이론불교에 어두워 기복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고도한 불법수행을 요구할 수도 없다. 어쩌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성들의 기복 행위에서 더 순수한 불교 정신을 볼 수도 있다” 즉, 이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초월적 존재의 구원만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다하는 주체적이고 이타적인 존재이다. 기복불교는 그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다가 보니, 교계 일부 스님들은 방편론을 내세워 기복불교 수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기복을) 고치려고 하다가는 대중적 신행력의 원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선은 기복의 방법을 불사 위주에서 자비의 실천, 중생에 대한 희사 등으로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복도 공덕 짓기의 한 방편이다’라는 주장이다.

   또한 “기복을 없애자는 것은 편협한 것으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거나 “기초신행으로 기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복적인 면에서 절을 찾는다. (중략) 물질적 어려움이나 정신적 불안에 대한 해결을 얻고자 부처님께 복을 구하고자 절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변화와 변질은 분명 엄격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종교의 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가르침을 보다 효율적 또는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선 시대에 맞는 조건에 따라 변화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질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기복은 불교를 타락시키고 변질시키는 최대 요인이다. 가르침마저 왜곡돼 기복과 작복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이 그토록 비판하고 배격한 주술주의, 기복주의, 의례주의, 물질주의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불교계가 겪고 있는 난관이다. 방편이 지나치다가 보니, 무엇이 불교적인 것이고 무엇이 비불교적인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에 와 있음을 경계하는 성찰의 대목이다.

   “한국불교가 정체성을 찾아 부처님의 말씀대로 중생들에게 구원의 종교로 보다 넓고 가까이 다가서려면 기복불교부터 극복해야 한다. 기복은 불교라는 간판을 달고 그 내용은 기독교나 힌두교를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현실론을 들어 기복을 옹호하는 주장은 지양해야 한다. 그것은 불교 스스로의 변화를 외면하는 행위다. 뼈를 깎는 자정과 쇄신이 있을 때 훌륭한 불교의 미래를 견인할 개혁가와 불교운동가가 배출될 것이다. 무엇보다 타락과 변질의 요인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은 불교를 망치는 해악과 독이 된다는 것을 먼저 깨달을 일이다.” - 김종만

   그런데 노인네들이 절에 가서 기복불교를 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도’를 방편이 아니라 불교 본연의 모습처럼 공공연히 선전(?)을 하고, “기돗발… 운운”하는 말을 불교방송에 나와서조차 거리낌 없이 되뇌는 스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불교방송국의 정규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이런 분들이 더 힘을 쓰는 형국이다.

   거기에다가 지방 소규모 사찰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스님들의 경우, 오히려 기복불교를 부추기고, 기복불교를 통해, ― 예컨대 천도재를 비롯해, 온갖 명목의 기도 날을 정해 신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심지어 부적까지도 만들어 파는 등 상업행위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승려들이 기복불교에 앞장 서는 일이 더 큰 문제다. 그런 일이 없다면 늙은 여인네들이 절에 가서 올리는 기도쯤이야 연민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부처님의 큰마음, 그 포용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자.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못 배워 무식한 아낙네들이 행하는 신행이면, 그 형태야 어떻든 신행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웃으실 것이다.

   그러나 외롭고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그들에게 부처님의 청복(淸福)이 돌아가게 발원하는 것이야말로 불자의 바른 길일 것이다.

   부처님이 바보 주리반트카(Cudapanthaka)에게 빗자루를 주며, 단지 “먼지를 털고 때를 닦자”라는 말을 외우게 하셨다. 그런데 노인네들은 그래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도는 외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주리반트카보다는 낫지 않은가. 스님들이 먼저 타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반듯한 모습의 영향을 받아 기복불교도 차츰 시정돼갈 것이다.---→기도(祈禱) 참조.

 

              

*기사굴산(耆闍崛山, 산스크리트어 그리다라쿠타/Gṛdhrakūṭa)---영축산(靈鷲山)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이 그리다라쿠타라서 이를 소리 번역해서 기사굴산이라 했다. 고대 중인도에 있던 마가다국(摩竭陀國, magadha國)의 도읍지인 라자그리하(왕사성/王舍城, 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에서 동북쪽 약 3㎞ 지점에 있는 산으로 붓다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부처님이 도심 근처에 있는 죽림정사에 자주 머무시다가 번잡하면 기사굴산에 올라가 머무셨다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 수제자인 가섭(迦葉) 존자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기사굴산에서 선정을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고 해와 달빛이 없어졌으며 동시에 새와 짐승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다. 가섭 존자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것은 부처님께서 몸이 쇠약해서 입적을 알리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기사굴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한다. ---→영축산(靈鷲山) 참조.

    

*기세간(器世間)---기세계(器世界)라고도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같은 말이다. 우리 중생이 살고 있는 산하대지 등을 포함한 현실세계를 가리킨다. 넓게는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환경과 물질세계 모두를 포함하는 우주를 말한다.

        

*기세경(起世經)---6세기 말 수(隋)나라시대에 인도출신 학승 사나굴다(闍那崛多) 등이 번역했다. 총 10권 12품으로 구성된 이 경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과 여러 가지 변화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은 무상한 것이며, 이 무상한 세상을 벗어나 안락한 불도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씀대로 불도를 지키고 온갖 악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즉, 부처님께서 코살라국(Kosala)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의 가리라(迦利羅) 석실(石室)에 계실 적에 여러 비구에게 세계와 국토의 조직ㆍ기원ㆍ성립ㆍ파괴 등의 까닭과 그 과정을 말한 것이다. 이역본으로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ㆍ<장아함경>의 제4분에 있는 <세기경(世記經)>이 있다.

     

*기신론(起信論)---→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참조.

      

*기신론소(起信論疏)---<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의 줄인 말.---→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참조.

       

*기야(祇夜)---산스크리트어 geya, 빠알리어 geyya의 음사. 중송(重頌)과 같은 말임.---→중송(重頌), 게송(偈頌) 참조.

     

*기어(綺語)---공교롭게 꾸며서 겉과 속이 다른 말. 마음속에는 남을 해치고 속일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달콤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말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큰 악업(惡業)이 되는 언행이므로 ‘10악(十惡)’의 하나에 든다.

     

*기연(機緣)---계기, 동기와 비슷한 말. 깨달음을 얻게 된 동기, 깨닫게 된 계기를 말한다.

      

*기오개(棄五蓋)---선법(善法)을 할 수 없게 하는 마음을 덮고 있는 탐(貪)ㆍ진(瞋)ㆍ도거(掉擧)ㆍ혼침(昏沈)ㆍ의(疑) 등 중요한 다섯 가지 번뇌가 있다. 즉, 탐욕이 마음을 덮는 탐욕개(貪慾蓋), 분노가 마음을 덮는 진에개(瞋恚蓋), 마음이 들뜨고 불안 근심이 생기는 도회개(掉悔蓋), 마음이 흐려지는 수면개(睡眠蓋), 법에 대한 확신이 없이 부처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의법개(疑法蓋)이다. 이 다섯 가지 번뇌가 일으키는 장애를 오개라 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번뇌가 일으키는 장애를 버리는 것을 기오개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탐욕개(貪慾蓋) ― 다섯 가지 감각적 탐욕을 비롯해 모든 욕망의 근원은 ‘나’라는 환상과 ‘내 것’이라는 집착,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필사적인 애착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단정하게 앉아서 선정을 닦다가도 마음에 욕각(欲覺)이 생겨 부질없는 생각이 계속 이어지므로, 이 탐욕을 그치지 않으면 마침내 근심이 생기는 데까지 이르므로 이를 버려야 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정관(不淨觀)을 닦는 것이 도움이 된다.

     ②진에개(瞋恚蓋) ―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일에 대해 성내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탐욕 다음에 경계해야 할 것이 성냄이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비관(慈悲觀)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③도회개(掉悔蓋) ―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유희에 빠지는 것을 몸의 들뜸이라 한다. 그리고 읊고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시비 가리는 것을 좋아하며, 이익 없는 담론을 장황하게 설하는 것을 입의 들뜸이라 한다. 이러한 들뜸과 회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율을 준수해야 하며, 산란한 마음을 극복하는 대처법으로 호흡관(呼吸觀)이 있다.---→도회개(掉悔蓋) 참조.

     ④수면개(睡眠蓋) ― 마음이 흐리고 몸이 무거움으로써 자유롭지 못하게 심성을 가리는 번뇌, 속마음이 어둡고 산란한 것을 면(眠)이라고 하고, 오욕(五慾) 칠정(七情)이 어둡게 가려서 지절(支節)을 방자하게 놀리며 자리에 누워 깊이 잠이 든 것을 수(睡)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정신적 해이와 육체적 졸음이 수행에 큰 장애다. 특히 참선 중에 애를 먹는 부분 중의 하나가 졸음이다. 수마(睡魔)라고 할 정도로 위력적으로 덤벼든다. 다른 개는 감정이 깨달아서 없앨 수 있지만 잠이란 죽은 사람과 같아서 촉감을 느끼지 못하고 느낌이 없는 까닭에 제거해 없애기가 어렵다. 이에 대한 극복방법은 사수념(死隨念-죽음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이라 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모든 것은 무상함을 관하면, 정신이 번뜩 들 것이다.

           ※지절(支節)---마디마디가 생긴 상태, 중생의 번뇌 구조를 말한다.

     ⑤의법개(疑法蓋) ― 의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것은 도(道)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다. 첫째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요, 둘째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며, 셋째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의 해로움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믿고, 스승을 믿으며, 법을 믿는 마음을 굳건히 하면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500년---인류역사에 있어서 기원전 500년은 참으로 의미 깊은 시기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욱한 원시세계에서 비로소 인류문명에 세련된 지성(知性)이라는 고도의 정신문화가 성립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문명이 형성돼 오늘날의 서구문화의 싹이 텄고, 인도에서는 브라만교와 불교를 비롯한 소위 육사외도(六師外道) 등이 흥기했고, 중국에서는 유교를 비롯한 제자백가가 성행했다. 이리하여 기원전 500년은 인류문명의 축이 형성된 시기로 편가 받고 있다.

       

*기원정사(祇園精舍, 산스크리트어 Jetavana)---붓다께서 마가다국 왕사성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을 때 서북인도 사위국(코살라국;舍衛國) 장자이자 재상인 수닷다(sudatta, 수달타/須達多)가 마가다국 왕사성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뵈려고 새벽같이 성문을 나와 죽림정사로 갔다. 부처님은 수잣타를 위해 사성제와 갖가지 설법을 해주셨다. 수잣타는 그 자리에서 삼귀의를 하고 우바새가 됐다. 그리고 부처님께 자기네 나라인 사위국에 가서도 설법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사를 지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처님이 정사가 완성되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사리풋타 당신을 공사감독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수닷타는 원래 배화교 신자였다가 부처님 제자가 됐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한량없었고, 어려운 이에게 항상 옷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고독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아나다 핀다다(빠알리어 아나타핀디카/Anāthapiṇḍika)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역으로는 급고독(給孤獨)이라 한다.

    부처님께 약속을 하고 귀국한 급고독이 정사를 지을 곳을 물색한 결과 그가 택한 곳이 사위성(舍衛城:시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는 곳인데, 그곳이 사위국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땅이었다. 그 땅을 흥정하다가 기타태자와도 뜻이 맞아 함께 정사를 지어드리게 됐다. 그래서 정사 이름이 두 사람 이름을 합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祇園精舍)이라 했다.

    이후 부처님께서는 이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오래 머물며 교화를 했고, 우기(雨期) 안거를 자주 이곳에서 행했다고 전해진다. <금강경> 등 수많은 경전을 설하시고 25안거를 지내신 곳이다. 부처님은 다른 교단 수행자들과 신통력을 겨룬 사위성의 신변(神變), 즉 쌍신변(雙神變)과 천불화현(千佛化現)의 기적으로 보이신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일화는 후일 수많은 불교미술의 모티브가 됐다.

    그 당시 사위국 파사닉왕(波斯匿;파사세나디/Prasenajit)도 부처님 제자였다. 현재의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북부에 있는 옛 시라바스티(舍衛城)의 유적 마헤트(Maheth) 남문 밖의 사헤트(Saheth) 유적이 기원정사 터라고 한다.---→아나타핀디카(빠알리어 Anāthapindika) 참조. 

    

*기타 태자(祇陀太子, 산스크리트어, 빠알리어 Jeta)---기원전 5~6세기경 부처님 생존 시 사위국 급고독(給孤獨) 장자와 더불어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드린 서북인도 사위국(舍衛國, 코살라국) 파사익왕의 태자이다. 그러나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그 파사익(파세나디, 波斯匿王)왕 부인 이름이 말리카(말리, 末利)이다. 말리카는 원래 사위성(舍衛城, 시라바스티)에 사는 한 브라만의 제스민 동산을 손질하던 하녀로 원래 이름은 카필라였으나, 제스민 동산에서 한 사문을 정성껏 공양한 바 있다. 그런 착한 마음씨의 카필라는 제스민을 뜻하는 말리카(Mallika)라는 이름을 얻었고, 결국 파사익왕의 왕비로 간택됐다고 한다.

왕비가 된 뒤 자신이 공양했던 사문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임을 알고 기원정사(祈園精舍)에 머물고 있는 부처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듣고 귀의했으며, 파사익왕도 부처님 제자가 되게 했다고 한다.

    그 말리카에게 태어난 아들이 바로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지을 땅을 기증한 기타태자이고, 딸은 훗날 아유타야(아유타, 阿踰陀)국왕과 결혼한 스리말리부인(승만부인, 勝鬘夫人)이다. 승만부인은 부처님으로부터 장차 보광여래(연등불)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바 있고, 대승경전 가운데 여래장(如來藏)사상을 천명하는 대표적인 경전인 <승만경>의 주인공이다. 승만부인이 기타태자의 누이이다.

       

*긴나라(緊那羅, 산스크리트어 Kiṃnara)---인도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 진타라(眞陀羅), 견타라(甄陀羅) 등으로 음역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다. 의인(擬人) 혹은 인비인(人非人), 가신(歌神), 악신(樂神)으로 한역되며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명치 않다.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데서 유래한 말로서 나중에 이 말이 주는 인상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짓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다. 긴나라는 사람과 비슷한데 다만 말머리 형상의 머리 위에 한 개의 뿔이 달려 있고, 제석천이 노래와 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팔부신중(八部神衆)이란 천계를 지키는 수호신 천(天), 물속을 지키며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용(龍), 사람을 도와주는 야차(夜叉), 병을 고쳐주는 건달바(乾闥婆), 여러 개의 얼굴과 팔을 지닌 아수라(阿修羅), 새 형상의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그리고 마후라가(摩羅迦)를 가리킨다. 마후라가는 그림 속에서는 주로 머리에 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조각상일 경우에는 한 손에 뱀을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석굴암의 마후라가상은 오른손에 칼을 든 모습이다.

              

*길상(吉祥, 산스크리트어 śrī/수리)---‘길사유상(吉事有祥)’이라는 말을 줄인 말이고, 산스크리트어 śrī의 의역으로서 ‘경사스러움’, ‘번영’, ‘행운’, ‘아름답고 착한 징조’라는 뜻으로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인간이 살면서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모든 것들이 잘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 축원해주고 찬탄을 하는 것이 길상의 진정한 의미이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축원하는 말이면 모두 ‘수리’의 뜻이다. “행복하십시오, 훌륭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성공할 것입니다, 잘 될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등 칭찬과 찬탄과 상대방을 향한 긍정적인 격려의 표현은 모두 ‘수리’ 속에 포함된다. 관련단어 길상선사(吉祥善事)는 더할 수 없이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란 말이다. 문수보살을 산스크리트어로 만주슈리(Manjusri)이라 하는데, 그 이름에 ‘sri‘란 말이 들어 있어서 ‘묘길상(妙吉祥)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며, 따라서 ’길상‘은 문수보살를 뜻하기도 한다.

  

*길상존(吉祥尊)---산스크리트어 ‘수리=길상(吉祥)’한 존자(尊者)라는 뜻이다. 따라서 ‘좋은 조짐을 주실 존자이시여’라는 뜻이고, 결국 부처님이나 문수보살 혹은 관세음보살을 뜻한다고 하는데, 문수보살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이 만주슈리(Manjusri)이고, 그 이름에 ‘sri‘란 말이 들어 있어서 길상존은 주로 문수보살을 지칭할 때 쓴다.

        

*길상천(吉祥天)---산스크리트어 쉬리마하데비(sri-maha-devi:행복의 여신이라는 뜻)의 역어로서, 길상천녀(吉祥天女) 또는 공덕천(功德天)이라고도 한다. 원래 인도신화에서는 비쉬누신(神)의 아내이고, 애욕의 신 카마(Kama)의 어머니이며, 행복을 주관하는 여신이었다. 실리마하제비(實利摩訶提毘)ㆍ마하실리(摩訶實利)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불교에 수용된 후로는 복덕을 주는 여신이 돼, 이 천녀(天女)에게 공양을 하면 누구나 복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밀교에서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의 비(妃)로서 북방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형상은 일정하지 않으나 아름다운 얼굴에 천의(天衣)를 걸치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길장(吉藏, 549~623)---남북조시대에서 수 ․ 당시대에 걸쳐 활동한 고승. 중국 삼론종(三論宗)의 중흥조(中興祖)로 추앙받는다. 중관사상(中觀思想) 대가로서 가상대사(嘉祥大師)라고도 불리며, 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 사람 안세고(安世高)의 후손이다. 그는 진제(眞諦三藏, 499~569)를 만나 길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비슷한 시기에 천태종엔 지의(智顗, 538~597) 대사가 있었다.

    남북조시대 사회적 혼란과 전란 속에서도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삼론종의 근본문헌들에 대한 주석서 〈삼론현의(三論玄義)>를 저술해 삼론종(三論宗) 교리를 대성했으며, 특히 <중관론소(中觀論疏)>는 중론연구의 궤범이 되는 획기적 저서이다. 그 외에 <대승현론(大乘玄論)>ㆍ<이제의(二諦義)>ㆍ<법화현론(法華玄論)>ㆍ<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 등 40여 부가 있다.

그는 수(隋) 양제(煬帝)에 의해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많은 승려와 일반 신도들을 위해 강론을 하기도 했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중국에서 지장(地藏) 신앙 성지로 이름난 곳이 내륙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위치한 구화산(九華山)이다. 그곳에서 신라왕자 출신 김교각 스님이 철저한 두타행을 닦아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의 화현이라 불리었다. 스님은 99세 나이로 좌탈입망 했는데, 그 후 3년이 지나도록 시신이 썩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자, 그가 열반하기 전 유언대로 그 육신에 개금해 육신보살(肉身菩薩)로서 김지장(金地藏)으로 모시게 됐다.

    김교각 스님의 속명은 김중경(金重慶)이고, 697년 신라 제32대 효소왕 4년에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33대 성덕왕이고, 그의 이복동생 두 사람은 제34대 효성왕과 제35대 경덕왕이다.---→구화산(九華山) 참조.

 

 

*까따왓투(Kathāvatthu)---한역해서 논사(論事)라 한다. 현재 남방 상좌부에 전하는 빠알리어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에는 7론(七論)이 유명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논사(論事)>이다.---→‘논사(論事, 까따왓투/Kathāvatthu)’ 참조. 

        

*까비르(Kabir, 1440~1518)---까비르는 가난한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일찍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는 베 짜는 직조공이었던 회교도 집안에서 자라서 평생 베를 짜며 평범한 삶을 살다 갔지만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詩)도 손수 글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혼의 말들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해져서 인도 신비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그리하여 시성이라 일컫는 타골과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다. 까비르의 시는 타고르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까시나 수행---수행대상을 말한다. 사마타(samatha) 수행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는 훈련이므로, 먼저 마음을 집중시킬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상좌부불교의 이론서인 <청정도론>에는 사마타 수행의 대상으로 모두 40가지가 열거돼 있다. 그 중 네 가지는 무색계선의 대상이고, 나머지는 색계선의 대상이다.

    전자는 후자를 성취한 다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므로, 처음 수행하는 사람은 나머지 36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는, 붓고, 검푸르고, 문드러진 등의 더러운 모습[부정상(不淨相)] 열 가지,

불ㆍ법ㆍ승ㆍ죽음ㆍ호흡 등 계속해서 생각할 대상 열 가지,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하나의 대상만이 두루 가득한 까시나(kasina, 遍處, 遍滿) 열 가지.

     ---지ㆍ수ㆍ화ㆍ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근본 물질, 청ㆍ황ㆍ적ㆍ백(靑黃赤白)의 네 가지 색깔,

     ---광명, 허공, 이상 열 가지이다.

    수행자가 집중할 대상은 수행자의 기질에 따라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한다.

<청정도론>에는 수행자의 기질에 탐하는 기질, 성내는 기질, 어리석은 기질, 믿는 기질, 지적인 기질, 사색적인 기질의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고, 그 기질에 맞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구사론>에서는 오직 더러운 모습을 관찰하는 것[不淨觀]과 호흡을 관찰하는 것[持息念]의 두 가지 문(門)만이 있을 뿐이라고 단언하면서 전자는 탐하는 기질[貪]에게 적합하고, 후자는 이지적인 기질[尋]에게 적합하다고 단순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설명을 보면 수행자가 어떠한 대상을 선택해 수행하는가에 따라 성취가 빠르기도 하고 어렵기도 함을 알 수 있다. 경전에도 대상의 선택이 잘못돼 수행의 성취를 보지 못하는 사례가 언급돼 있다. 이 점은 간화선에서 화두(話頭)를 선택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화두를 자신의 기질을 알아볼 수 있는 스승에게서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 실론섬 주해모음

    까시나 수행에서 물을 까시나로 이용할 경우, 수행자는 먼저 대야에 물을 떠 놓고 눈을 뜬 상태에서 그것을 바라보아 표상(表象-마음에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을 나타냄)을 얻는다. 그 다음, 눈을 감고 얻어진 표상을 주시해 표상이 흩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게 한다. 다시 그다음, 그 표상을 조금씩 확장해 온 우주를 가득 채운다. 까시나 수행을 통해 수행자는 높은 선정, 또는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할 수는 없다. 깨달음은 객체(대상, 까지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심신, 또는 객체를 표상하는 마음작용을 통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정빈 <경> --→쌍신변(雙神變, 빠알리어 Yamaka-pātihāriya) 참조.

 

    

*깔라마경(Kalama sutta - A3:65)---<깔라마경>은 남방 빠알리어 삼장에는 앙굿따라니까야에 속하며, 한역 경전에는 중아함경 제3권-16에 <가람경(伽藍經)>이란 이름으로 실려 있다. 내용은 부처님께서 깔라마(Kalama)족 사람들에게 들려준 유명한 권고의 말씀이다. 불법(Dhamma)이 깨달음으로 가는 모든 단계에서 신중히 검토해보는 자세를 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의 시야를 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경의 내용 일부는 아래와 같다.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함께 코살라국(Kosala-伽覽國) 케사푸타(Kesaputta, 코사풋타) 마을을 지나시다가, 일행이 마을 북쪽에 있는 싱사파 동산(시섭화림/尸攝和林)에 머물렀을 때였다. 케사푸타 마을의 깔라마인들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석가족의 아들 사문 고타마 존자가 코살라에서 유행하시다가 케사푸타에 이르셨다. 그리고 저 세존 고타마에 대한 좋은 명성이 이와 같이 퍼지고 있다. 그 분 세존께선 바로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者)이시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으신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으신 분(覺者, 佛)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

   세존께서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maaras),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들 및 인간들에게 당신 스스로 직접 깨달아 분명히 파악하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아라한을 뵙는 것은 실로 훌륭한 일이다.”

   그래서 케사푸타의 깔라마인들은 세존께서 머물고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 도착하자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한쪽 편에 앉았다. 한쪽 편에 앉은 케사푸타의 깔라마인들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곳 케사푸타를 방문하는 바라문이나 다른 수행자들은 오직 자기들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가르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헐뜯고 비방합니다. 또 다른 바라문이나 수행자들도 오면 그들 역시 자기들만의 가르침만을 자랑스럽게 가르치고 다른 이들의 가르침은 헐뜯고 있어서 저희들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대하면 그대들의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대 깔라마인들여,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이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깔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들은 나쁜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을 일이며, 이들은 지혜로운 이에게 책망 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그대 깔라마인들이여,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에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깔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들은 좋은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고, 이들은 지혜로운 이에 의해 칭찬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이롭고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그대로 받아들여 살도록 하라.”

   「<깔라마경>은 의문이 일어날 때는 자유롭게 탐구해 보도록 권장하신 경이다. 이 경의 참뜻은 광신, 완고함, 독단, 편협함을 벗어난 가르침을 드러내 보이는 데에 있다. 모든 현상은 불법의 영역 속에서 바르게 이해돼야 하므로 통찰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경에서 통찰력은 나쁜 방법은 버리고 좋은 방법은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이 따라야 할 원칙을 제시해주고 사물판단의 기준을 담고 있는 이 깔라마경은 부처님 가르침의 뼈대부분에 속한다.」 - 실론섬

 

*깔라빠(산스크리트어 kalāpa)---깔라빠(kalāpa)는 무리, 더미, 무더기, 적집이란 뜻으로 아비담마에서 물질의 무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음이 항상 마음의 작용들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는 것처럼 모든 물질도 단독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항상 무리지어서 일어나고 멸하는데 이런 무리를 깔라빠라고 한다. 이 깔라빠는 지(地, 땅, pathavī)ㆍ수(水, 물, āpo)ㆍ화(火, 불, tejo)ㆍ풍(風, 바람, vāyo)ㆍ색(色, 물질, rūpa)ㆍ향(香, 냄새, gandha)ㆍ미(味, 맛, rasa)ㆍ양(養, 영양분, ojā)의 8가지가 있다.

    이 8가지는 물질의 무리를 이루는 최소의 구성요소로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인 아위닙보가(avinibbhoga)라고 한다. 그래서 8가지로만 구성된 깔라빠를 ‘순수한 8원소(suddhaṭṭhaka)’라고 표현하고 있다. 모든 깔라빠는 이들 여덟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그 깔라빠의 특성에 따라 다른 물질을 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다 다른 하나가 더 붙으면 9원소(navaka)가 되고 다시 하나가 더 붙으면 10원소(dasaka)가 되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9원소는 8가지 아위닙보가에다 생명기능(命根)이라는 물질이 하나 더 붙어서 9원소가 된다.

    이 아위닙보가는 물질의 무리인 깔라빠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므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위빠사나에서 깔라빠가 중요한 이유는 <청정도론(18장 후반부와 19장 전반부)>에 깔라빠를 명상하는 것이 위빠사나의 시작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최소단위로서의 법으로 존재를 살피지 않고 개념으로서만 존재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법의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는 것이라 정의하는 위빠사나는 반드시 이러한 개념적 존재를 분석해서 법으로 환원해서 살펴야한다. 그리고 물질은 정신적 현상(受ㆍ想ㆍ行ㆍ識)보다 거칠고 그래서 살피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다 보니 위빠사나의 시작도 바로 이러한 물질의 깔라빠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깔라빠를 관찰하거나 명상한다함은 이러한 물질을 개념으로 파악하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떨쳐내고 땅, 물, 불, 바람, 물질, 냄새, 맛, 영양분 등의 적집으로 본다는 것이다.

    위빠사나 중에도 우리는 이러한 무수한 개념으로 무의식 중에 자신을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을 버리고 법의 조합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 깔라빠를 명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깔라빠로 보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리 깊은 수행일지라도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사마타거나 아니면 다른 엉뚱한 현상에 놀아나면서 그것을 수행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깔라빠를 명상하는 것이 위빠사나의 시작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실론섬 주해모음

   

   

*깜마 웨가(빠알리어 Kamma-vega)---‘업력(業力)의 작용’이라 번역한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어머니 자궁 안에서 태아로 형성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세 가지란 여성의 난자, 남성의 정자, 그리고 깜마 웨가(Kamma-vega)라고 하는 업력(Kamma-energy)인데, 경에서는 이것을 은유적으로 혼(魂)이라는 의미를 가진 간답바(gandhabba, 건달바/乾達婆)로 표현하고 있다.

   이 업력은 임종하는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방출된다고 한다. 부모는 단지 태아의 몸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 요소만을 제공해 줄 뿐이다. 태아 속에 잠재해 있는 성격상 특성, 성향과 능력들에 관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삶에 매달리다가 죽는 순간에 업력을 방출하는데, 이 업력(Kamma-vega)은 수태 준비가 된 새 어머니의 자궁에 전광석화처럼 찾아든다. 업의 힘이 난자와 정자에 충격을 주면서 거기에서 하나의 응결체로서 소위 원생세포가 생겨난다. 이 과정은 말을 할 때 생기는 공기진동의 작용에 비교될 수 있다. 공기진동은 다른 사람의 청각 기관에 부딪쳐 순전히 주관적 느낌인 소리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소리 감각이 옮겨간 것이 아니라 단지 공기진동이라는 힘의 이동만이 일어났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사람이 방출한 업력은 부모가 마련해 준 질료에 작용해 새로운 태아를 잉태해낸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어떤 실체나 영혼이 옮겨간 것이 아니라 단지 업 에너지(Kamma-vega)가 전달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삶(uppatti-bhava)은 과거의 업(kamma-bhava)에 상응해 나타난 것이며, 미래의 삶은 현재의 업에 상응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른바 자아(自我)라는 것은 세세생생 순간순간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변화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흡사 파도가 얼핏 보기에는 바다 위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순간순간 에너지를 전달받으며 물이 제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불과하듯이, 엄밀히 생각해보면 궁극적 의미에서는 윤회의 바다를 옮겨 다니는 영구적인 자아(自我)라는 실체는 없다. 단지 거듭거듭 살고자 하는 충동과 의지에 휘말린 육체적, 정신적 현상의 과정만 있을 뿐이다.

   헌데 오늘날 뇌 과학이 발달하고, 심지어 투명 뇌 기술이 미국에서 한국인 학자(정광훈 MIT大교수)에 의해 개발된 실정인데, 이러한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남방불교이론은 얼핏 보기엔 힌두이즘의 아트만(atman)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 <청정도론>을 비롯한 남방 상좌부불교의 논서들 역시 아비담마의 이론을 담고 있어 부처님의 원음(근본불교)에서 상당히 비약한, 오히려 힌두적인 것이 많으므로 과학적 검증에 무리가 있음을 유념할 일이다.---→업력(業力-깜마 웨가/Kamma-vega) 참조.

     

                       

 

*깨달음에 대한 논쟁---붓다의 깨달음에 대한 이해에 갑론을박이 있다. 이를 통해 붓다의 깨달음에 접근해보자.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응 스님 - 「깨달음은 원래 붓다와의 문답과 기억의 억념(憶念-마음에 깊이 새김)을 뜻하는 사띠(sati)로 연기(緣起)와 공(空)을 ‘이해하는 깨달음’이었지 궁극적 완성의 ‘이루는 깨달음’이 아니었다. 조사선과 간화선을 봐도 기억을 뜻하는 사띠와 마찬가지로 깨달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반추해서 ‘이해하는 깨달음’이다. 후기로 갈수록 사띠에 위빠사나, 삼매, 선정들이 결합돼서 ‘이해하는 깨달음’이 ‘이루는 깨달음’으로 고준해지고 연금술처럼 신비화됐지만, 오늘날은 깨달음에 스마트 폰, 다양한 분야의 책들만 봐도 연기와 공의 이해가 가능하다. 독서와 사유야말로 이 현대시대의 사띠이자 간화선이다. 그러니 ‘이해하는 깨달음’은 가능하고 실천의 영역인 역사(사트바, 자비보살행)를 실천하지 못해도 깨달음은 훼손되지 않으며, ‘이루는 깨달음’은 자신도 중생도 구제하지만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부처님은 고행을 통해서도 아니요, 선정을 통해서도 아닌 논리적인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깨달음은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이루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 즉 신비로운 경지가 아니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청할 때 삼매와 선정을 통해 수련하라고 지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충분히 깨달음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현응 스님은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며 “불교의 요체는 ‘이루는 깨달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깨달음’에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며, 조계종의 간화선(看話禪) 수행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셈이다.

    계속해서 현응 스님의 주장이다.

    현재 한국의 조계종에서 깨달음을 위한 수행은 평생에 걸친 과업이다. 깨달음을 위한 노력은 3개월, 6개월 정도로는 언급조차 할 수 없고, 여러 해가 지나고 수십 년 이상을 참선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수십 년을 투자해도 현실적으로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보기 힘들어 돈오(頓悟)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이다.…

    깨달음은 불교도에게 선결과제이자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깨달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에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

    한국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몸과 마음의 완성된 경지이자 모든 번뇌를 끊고 고매한 인격을 이룬 높은 경지’로서 ‘깨달음’ ‘확철대오’ 등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정의하는 깨달음은 대단히 추상적으로, 깨달음이란 것을 이렇게 모호하게 설정해서는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방법도 불분명하고, 깨달음의 성취 또한 어느 수준의 어떤 것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평생을 노력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까닭도 깨달음이라는 내용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란 "모든 번뇌를 끊고 고매한 인격을 이룬 높은 경지"가 아니라, "세상을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깨달음만큼이나 자비와 실천을 강조한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실천에 나서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이며 "자비야말로 역사적 행위의 원동력으로서 깨달음과 역사를 묶어내는 고리"라는 것이다.

    현응 스님은 시종일관 사띠와 간화선 모두 대화를 기억하고 잘 성찰해,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맑음과 밝음은 스스로 아는 작용이 비추는 보너스다. ‘간화선은 참구(參句)해야지 참의(參意)해서는 안 된다’는 선사들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모두 체험을 강조한 수행법들이다.

중국 선불교의 탄생은 인도 승 달마의 도래를 계기로 중국 교학 불교의 이해에 치중한 이론적 천착이나 지적 이해에 갇힌 사변적 불교를 붓다의 깨달음, 실천정신으로 다시 돌이키자는 성찰적 심자각(心自覺)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먼저 깨달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본다.

    유경 스님 - 「붓다는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다. 어떤 문헌에서도, 어떤 의식의 이해로도 알 수가 없는 문제, 즉 인간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가장 근원적 연유를 밝히기 위해서 출가했다. 붓다는 홀로 깊은 선정과 사유 중에 모든 것은 변해간다는 무상(無常)을 깨달았다. 무상한 중에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도 깨달았다. 의식의 이해 차원을 벗어난 깊은 선정 중에 12연기로 생사의 세계를 통찰했으며, 고(苦)의 원인과 처방을 밝힌 4성제(四聖諦),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중도(中道), 중도로 가는 8가지 바른 길(八正道)을 밝혔다. 붓다의 수행이었던, 사띠(sati)는 37조도품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의 지관(止觀) 정혜(定慧) 수행, 심지어 다른 종교의 명상수행에도 관통하는 키워드로, 이해(undetstand)가 아니라 마음집중(mindfulness), 깊은 알아차림(awareness)을 뜻했다. 이것은 몸의 감각과 마음의 의식, 무의식이 다 동원된 상태지, 그저 머리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통찰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붓다가 행하던 호흡명상 수행법을 전한 중국 후한시대 안세고의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제목이 ‘아나바나(anapana, 들숨날숨) 사띠(sati, 念, 알아차림awarenesss, 마음집중mindfulness, 마음을 지킴-守意)’의 경전이다. 붓다는 수시로 숲속에 들어 호흡명상을 했으며, 그 명상의 주요 수행법이 사띠(sati,念)인 것이다. 붓다가 호흡을 지켜보면서 선정에 들었다면 간화선자는 화두를 들고 선정에 든다. 호흡이든 화두든 사마타(止)든 위빠사나(觀)든 선정(定)이든 지혜(慧)든 좌선이든 행선이든 알아차리기(사띠)는 모든 관찰, 통찰, 수행, 명상을 관통하는 기저이다. 이 사띠를, 가르침을 외워 기억해 ‘이해하는 깨달음’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은 붓다의 말씀에도 어긋난다. 붓다는 “내가 한 말이라도 그냥 믿지 말고 꼭 스스로 확인해 보라.” 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붓다는 물질의 영역을 관찰하고 비물질의 영역을 관찰해서 소멸의 영역에 이른 이들은 생사윤회에서 벗어난다[수타니파타]고 했다. 물질의 영역은 감각의 영역이고, 비물질의 영역은 정신의 영역이며, 소멸의 영역은 물질과 몸, 정신과 마음의 장애를 모두 벗어난 영역이다. 이것을 어찌 가르쳐서 외우고 전달해서 이해로 깨달을 수 있겠는가.  붓다의 제자들 중 붓다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듣고 잘 기억해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던 아난이 깨닫지 못해 오백나한이 모인 결집에도 참석하지 못할 처지라 낙담한 채 베개를 베고 돌아눕다가 깨우쳐서 가까스로 아라한의 결집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일화와, 잘 외운 아난보다는 지혜제일인 사리자에게 법을 부촉했다는 고대 경전인 <수타니파타>의 기록, 그리고 꽃을 들어 보이자(拈花) 미소로 화답한 가섭에게 마음을 부촉했다는 <오등회원(五燈會元)>의 기록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라 체험, 체득이다. 깨달음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 다시 달걀 속으로 돌아 갈 수 없다. 중생의 고통을 듣는 관세음보살과 중생의 고통을 건지러 간 지장보살이 어떻게 이해의 차원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구제하지 못해도 나의 ‘이해의 깨달음은 훼손되지 않는다’ 하겠는가. ‘이해하는 깨달음’과 ‘이루는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형태상 기왕의 해오(解悟)와 증오(證悟)를 풀이한 듯하다. 하나의 삼매를 제대로 이루면 백 천 삼매가 가능해지듯, 참으로 이해한 깨달음이라면 이루는 깨달음으로 변해가는 게 아니다. 자비보살행으로 확장될 뿐이다.

 

    이번에는 현응 스님에 대한 수불 스님의 논박이다.

    수불 스님 - 「진리란 ‘잘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고 얻고 알고 깨우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을 수 있다. 이해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은 수행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안다. 이해하는 것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세계 불교학자들마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깨달음이 이해라는 주장은 수행자들을 모두 바보로 만드는 희론이자 책상물림의 말이다.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순차적으로 결국 노사(老死)도 사라져서 괴로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무명이 소멸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만 실제로 무명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명만 소멸되면 순차적으로 노사까지도 소멸될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무명이 소멸될 것인가?’ 하는 것은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이다. ‘잘 이해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현응 스님은 연기법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말하지만, 깨닫기 전에는 연기법의 진면목을 바로 알기 어렵다. ‘중도(中道)’는 사무치고 사무쳐서 끝내 통해야 하는 것이지, 이해로서는 도저히 그 실상을 파악할 도리가 없다. ‘깨달음’은 불이법(不二法)에 속하고, ‘이해’는 이법(二法)에 속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이해하는 것이다’는 말은 곧 ‘상을 여읜 것(깨달음)은 상을 가진 것(이해)이다’라는 무의미하고 모순된 주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인 ‘이법’의 논리로 중도의 ‘불이법’을 재단하려는 모든 시도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 그렇게 되면 ‘범주오류’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까지 더하게 된다. 분별망상으로 불이법을 더듬다가 ‘마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현애상(懸崖相)을 내어서, 하급의 차원으로 퇴타해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 운운하는 것을 고봉 화상은 <선요(禪要)>에서 ‘원숭이가 장대로 달을 따려한다’고 경책했다.」- 불교닷컴에서

 

    다음은 이재열 원장과 김재성 교수의 논박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은 초기경전인 상윳따니까야의 내용을 언급한 뒤, “연기를 깨달았다는 것은 이해가 아닌 체험이고, 그 체험은 선정 수행을 통해 실현된다”며,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을 포함하지만 더 나아가 체험적으로 증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전에도 부처님은 무색계 사선정과 멸진정에 이르러 연기를 사유하고 새벽에 도를 깨쳤다고 명시돼 있다”며 “현응 스님은 경전의 근거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사견으로 연기와 깨달음을 오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재성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는 “오비구가 부처님의 대화로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선정을 통해 깨달았음이 경전에 분명히 나와 있다고 지적하고, “아난 존자가 기억력이 탁월했지만 아라한과를 얻지 못해 처음 결집에 참여하지 못했던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와 같이 깨달음에 대해 갑론을박하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남방 상좌부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란 없다. 성불에 이르는 모든 길은 붓다께서 6년의 수행 끝에 모두 다 발견하고 깨달아 놓았다. 그것은 바로 팔정도와 바라밀이 바로 그것이다. 팔정도와 바라밀은 불교적 윤리이며 도덕적 지침이자 그 자체가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다. 팔정도와 바라밀은 성불에 이르는 길이며, 그리고 성불로 가는 인간들이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붓다가 발견해 놓은 그 진리를 믿고 그대로 불도를 걸어가면 된다.

    선불교는 무엇을 더 깨닫겠다는 것인가? 깨닫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선불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럼 붓다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즉, 붓다가 발견해 놓은 성불에 이르는 여러 길들이 있는데, 그중 많은 부분을 숨겼거나 아니면 붓다가 발견해 놓은 길 말고 성불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찾고자 한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붓다가 발견해 놓은 길 이외에 또 다른 길이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길로 간다면 결코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그러기에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불교는 불교가 아닌 것이다.

     선불교가 추구하는 길이 올바른 길일 수도 있고, 붓다가 깨달아 놓은 진리보다 더 좋은 진리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달마교나 혜능교 또는 선교라고 하면 된다. 불교라는 이름을 덧붙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시비비가 일어날 필요도 없다. 불교는 불교대로 선교는 선교대로 각자의 길을 가면 되기 때문이다. 굳이 선교가 불교라는 이름 속에 파 묻혀서 붓다를 들먹이거나 붓다의 진리를 도용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달마교 혜능교 간화교 선교 뭐 이런 이름으로 바꾸면 된다.

 

    다음은 김나미 교수의 주장이다.

    “오늘 한국불교의 문제점 하나를 끄집어 들었다. 우리 불교는 깨달음과 이것에 기인한 수행 풍토로 인해 정도(正道)의 길을 잃었다. 한국불교는 깨달음이라는 묘원한 환상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한마디로 하자면 깨달음 대신 열반이 모든 수행의 목적이 돼야 한다. 깨달음에는 연기법에 대한 통찰이 요구되는 반면 열반은 팔정도 수행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단지 열반의 선행 조건일 뿐이며 깨달음의 단계부터 시작, 이것을 기반으로 최종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으로 나아가는 구도가 돼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을 한다면 그 수행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고 목표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열반이 수행의 최종적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다. 깨달음만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 한,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채 삼독에 물든 중생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불교가 불음(佛音)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깨달음으로 인해 수단과 목적이 전도(顚倒)된 채 수행의 핀트가 잘못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단과 목적으로서의 깨달음과 열반의 자리가 뒤바뀐 혼란에서 오는 문제이다. 여기서 둘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것은 바로 둘의 원위치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깨달음은 수단이고 열반은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는 수단이어야 할 깨달음을 목적이라고 하고 있으며 목적인 열반은 설 자리조차 없다. 게다가 간혹 깨달음과 열반을 대등한 것이나 동의어라 하여 ‘열반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열반이다.’라고도 한다.“

 

    다음은 이태승 교수의 깨달음에 대한 주장이다.

    “‘깨달음’을 불교 수행의 목적이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불교의 근본 성격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정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혜의 종교’라고 정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곧 불교의 근본성격은 깨달음을 통한 지혜의 증득이며, 또한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체험을 통해 심신의 인격이 변화돼, 몸과 말과 정신적인 행위의 일체가 더 이상 번뇌에 사로잡힘이 없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 지혜를 강조하는 불교의 근본목적이 아닐까?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본 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더 이상 번뇌가 없는 완전한 인간의 삶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로운 삶을 위해 중생들로 하여금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는 ‘지혜로운 삶’의 근본성격과 일치가 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깨달음은 지혜를 일으키는 종교체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체험은 인간의 깊은 의식의 세계와 관계한 의식의 내적 전환, 인격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 내면의 의식 세계를 통찰하는 방법이 선정으로, 이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체험함으로써 지혜의 증득이 이루어진다.“

 

    다음은 각묵 스님의 주장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깨달을 것인가.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초기경전에서는 깨달음을 사성제, 팔정도, 연기, 오온의 무상ㆍ고ㆍ무아의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사성제이다. 사성제(四聖諦)란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사성제를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숫타니파타> 558번째 게송에 “나는 알아야할 바를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알아야할 것을 알았다는 것은 고성제(苦聖諦)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았다는 것은 도성제(道聖諦)를 말한다. 버려야할 것을 버렸다는 것은 집성제(集聖諦)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꿰뚫어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처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성제를 꿰뚫어 아는 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다음은 다른 분들의 주장이다.

    “현응스님께서 조계종에서 하안거 동안거 등 그 수많은 세월의 수행기간 동안 사실상 깨달았다고 하는 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어쩌면 깨달음은 올바른 이해를 통해 얻는 게 아닐까 라고 설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실로 공허한 그들만의 꿈이 된지 오래이다.” - 길을걸으며

    “흔히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굉장히 신비화시키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깨달음을 스스로 알아서 그것을 언어로 필설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깨달음이거나 불교적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우리의 상상 생각 사고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붓다의 45년 설법이 그것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절대적 진리를 깨달았지만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중생들을 위해서 언설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중국의 조사들이나 성철스님도 많은 설법과 책들을 펴냈습니다. 모두다 깨달음을 자신 나름대로의 언설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승들이 깨달음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자기모순이고 궤변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란 어느 특정인이나 출가승들만의 전유물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려운 교리일 수록 쉽게 풀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들으면 바로 바로 이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비비꼬아서 어렵게 하고 신비화시켜서 어느 특정인들만의 전유물인냥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불교의 참모습이 아닙니다.“ - 실론섬  

 

*깨달음의 단계---불교에서 ‘깨달음’(覺, ssk. bodhi)을 이르는 단계는 다양하다. 보리수 아래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께서 체득했던 ‘최상의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에서부터 대승보살의 서원인 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서의 ‘깨달음’, <화엄경>의 보살수행 52위, 유식에서의 보살수도 5위, 그리고 <대승기신론>에서 수행과정의 단계적 깨달음을 말한, 시각(始覺)의 네 단계[四覺]로서 범부각(凡夫覺),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구경각(究竟覺)과 같은 깨달음도 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이란 열반 혹은 해탈과 동의어로서 최종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고, 또 시각(始覺)의 네 단계에서처럼 수행과정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어서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다.---→사각(四覺) 참조.

 

*깨달음의 모순---<금강경> 제17분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약유인언(若有人言)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실무유법(實無有法)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어시중(於是中) 무실무허(無實無虛)」-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해 나를 비방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았다고 할 그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 대략 이런 말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라고. 즉,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금강경>에서는 이 당연한 말까지도 위와 같이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라거나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에 어떤 모순이 있는가.

   과연 여래는 깨달음을 얻으신 분인가. 그렇지 않다. 깨달음을 얻은 여래 혹은 부처란 없다. 깨달음을 얻은 ‘나’가 있다거나,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벌써 상대성에 빠진 생각이다. 깨달은 부처가 있고, 깨닫지 못한 중생이 있어서 어리석은 중생이 깨달은 부처님 세계로 나가기 위해 수행을 한다는 생각은 벌써 부처와 중생을 둘로 나누어놓은 생각이다. 부처는 그 어떤 분별의 세계에도 몸을 담고 있지 않다. 생사와 열반, 중생과 부처라는 두 가지 극단 어디에도 부처는 없다. 부처는 어디에 있어야 한다거나, 어떤 상태로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깨달은 자리라는 어떤 존재적인 틀에 부처를 가둘 수는 없다.

   부처는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음’을 의미한다. 깨달았다는 것은 완전히 무아(無我)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즉, ‘내가 없음’을 온전히 자각한 것, 구경무아(究竟無我)인 것이다. 무아가 곧 깨달음일진대, 어디에 깨달은 ‘나’를 붙일 수 있을 것인가. 무아, 내가 없는데, 어디에 깨달은 ‘나’를 내세울 수 있는가.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에게 오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깨어있는 순간 바로 부처인 것이다. 깨어있는 순간, 오직 깨어있음의 빛만이 있을 뿐, 나와 너라는 상대개념도 사라지고, 생사, 중생과 부처라는 분별 또한 사라진다. 바로 그 것, 깨어있음, 그것이 바로 부처다. 그러므로 ‘깨달으신 부처님’이라는 별도의 실체를 상정한다면 그것은 무아도 아니요, 깨달은 부처, 깨닫지 못한 부처라는 분별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는 깨달음을 얻은 ‘나’에 갇혀있기 때문에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아(我)’는 깨닫지 못한다. 무아(無我)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무아는 말 그대로 무아, 내가 없음이며 텅 비어 있음이고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무자성(無自性)과 공(空)이기 때문에 주체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깨달았다’는 말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깨달을 내가 없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일진대 스스로를 깨달음의 주체로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은 스스로의 무명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여래라는 주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그 어떤 깨달음의 상태를 얻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여래’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음’도 없다. 그렇기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이다. 언어 자체에 큰 모순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깨달음’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며, ‘깨달은 자’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고, ‘얻음’에 집착해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해 여래를 비방하는 것과 같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래가 아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여래는 없다. 또한 여래가 얻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그 어떤 법도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어떤 특정한 법이 아니다.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만한 그 어떤 법이 없다. 여래가 얻은 법이라는 것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는 것이다. 여래가 어떤 법을 얻었다면 그것이 참된 것, 실다운 것이라는 말인데, 여래가 얻은 법은 실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헛된 것 또한 아니다. 실다운 법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헛된 법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누구나 말할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라고, 그러나 얻을 깨달음이 없다. 깨달음이라는 것을 어떤 실체적인 것, 진리다운 어떤 것으로 생각지 말라. ‘어떤 것’으로 고정지어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깨달음이 아니며 진리도 아니다. - 법상 스님

   이는 ‘깨달음’이라는 어떤 상을 설정해두고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착하는 오류를 경계해서 한 말이다. 열심히 정진해서 늘 깨어 있으면 저절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 ‘깨달음’이라는 정해진 그 어떤 것은 없다는 말이다.  

 

         

*깨달음이란---‘깨달음’이란 불교역사 2600여년 가운데 가장 많은 질문이고,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불교 용어 중에 ‘깨달음’이라는 말만은 유독 우리말이다. ‘부처님 오신 날’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하지만 참으로 애매한 추상적인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꿈(미망)에서 깨어나 본래의 상태(진실)를 회복한다거나 그릇된 견해나 편견 선입견 등을 깨트려 본래의 참된 면목을 드러낸다는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에 대해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 깨달음의 대상과 내용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 지혜의 종교라고 한다.

   ‘붓다(buddha)-불타(佛陀)’는 말 그대로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불교도의 이상인 열반(혹은 해탈)은 절대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그런데 문제는, 붓다의 깨달음은 다른 유일신교의 종교와 달리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변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2천 6백여 년에 걸친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해석의 도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권오민

    불교에서 ‘깨달음’을 표현하는 말에는, 깨달음, 열반, 해탈, 대오, 혜오, 증오, 증득, 돈오, 돈증, 대각, 정각, 도피안, 득도, 달도, 견성, 성불, 등각, 무상정등각, 구경각, 묘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원돈, 원각, 원적, 적멸, 멸도, 적정, 한소식… 등 수십 개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 한 마디로 ‘깨달음’을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은 상황에 따라 그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짐을 나타내기도 한다.

    깨달음, 해탈이란 탐(貪) ․ 진(瞋) ․ 치(癡)의 소멸이고, 괴로움에서 벗어남이며, 그것은 곧 불교의 핵심 가치인 무상(無常) ․ 무아(無我) ․ 공(空)에 대한 이해를 깨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타니파타(경집/經集)>에서 붓다는 왜 자신이 깨달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 바 있다. “나는 알아야 할 바(苦聖諦)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道聖諦)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滅聖諦)을 버렸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깨달은 사람)이다.-수타니파타 558게” 이는 곧 깨달음은 ‘사성제를 철견(徹見)’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등에서 붓다는 연기법을 통해서 정각을 이루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연기법을 깨달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연기의 가르침은 무아(無我)와 같은 말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을 일컫는 용어도 다양하고, 이를 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깨달음의 특징들을 통해 깨달음의 정의에 접근해야 하겠다.

     ①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일단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사성제 ·연기·무아를 깨달아 탐 ․ 진 ․ 치, 그리고 고(苦)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②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는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새로 말들어낸다는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있어온 진리에 대한 발견이라는 점이다. 붓다는 연기법을 설명하면서, “연기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나오지 않건 간에 이 법은 존재의 이법(理法)으로서 존재와 더불어 있어 온 것이다.”라고 하셨다.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해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뿐이란 말이다.

     ③ 이와 같이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진리에 대한 눈뜸’이었다.

     ④ 그러던 것이 대승불교, 특히 선종(禪宗)에 와서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바로 봄으로써 부처가 된다[견성성불(見性成佛)]’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깨달음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깨달아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깨치게 되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 ‘견성성불’은 자기 마음을 바르게 가져, 자기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쳐야 한다는 선종(禪宗)의 이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⑤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음의 전환을 뜻한다. 즉, 깨달음이란 해탈(解脫)을 의미하며, 해탈은 온갖 번뇌와 고(苦)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워진, 해방과 자유의 개념을 나타낸 말이다. 이는 마음 상태가 바뀐, 자기초월을 의미하며, 불교수행과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⑥ 깨달음은 윤리도덕을 초월한다. 왜냐면 깨달음은 윤리나 도덕과 같은 그런 관념하고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깨달음은 윤리도덕을 초월하지만, 깨달은 인간은 윤리도덕 안에 있다. 깨달은 인간은 가장 윤리도덕적인 인간이란 말이다. 때문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경지는 윤리도덕을 초월하지만 깨달은 인간은 윤리도덕 안에 있다. 그것이 열반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인간이 지켜야 될 근본도리를 지키지 않고 마치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윤리도덕을 파괴하는 것을 깨달음처럼 생각해서 그것을 마치 깨달은 자의 매력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잘못된 모순이다. 가장 윤리도덕적인 사람이 깨달음을 얻은 자이지, 깨달음과 윤리도덕의 파괴는 전혀 관련이 없다.

     ⑦ 깨달음이란 ‘내가 추구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궁극의 진리를 확연히 깨친 것’을 말한다. 즉, 참선을 하든, 간경을 하든, 염불을 하든, 나를 비롯한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 가를 확철대오(廓徹大悟) 함을 깨달음이라 한다.

     ⑧ 그런데 불교라는 종교적 입장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도 단계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지적 단계이다.

         두 번째는 정서적 단계이다.

         마지막은 행동적 단계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지적단계의 깨달음은 있으나 정서적 단계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붓다는 ‘깨달음 지상주의자’가 아니다. 오로지 깨달음의 결과로서 자비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리심의 참된 보살의 실천, 즉 보리행을 강조한 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깨달음’이란 것을 단순히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영화에서 미국을 본 것을 가지고 미국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⑨ 깨달음이란 부처님도 알려줄 수 없고, 스승도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본인만이 수행과정을 통해 스스로 체험하고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용어가 다방면에 쓰이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⑩ 원래 깨달음이란 붓다 수준의 정각(正覺)을 말하고, 그 외에 소소한 알음알이가 타파되는 과정을 견처(見處)라 하고, 한 소식했다, 초견성했다고 하는 것이 온당한 표현일 것이다.

     ⑪ 깨달음은 탐ㆍ진ㆍ치의 번뇌가 소멸되는 것이다. 다만 수행과정에서 수행자의 업장(業障)이 소멸될수록 많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그런 과정을 점검하고 바른 수행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수행자는 옆길로 새지 않고 바른 수행의 길로 빠르게 갈 수 있다.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모한 수행자는 소소한 자신의 체험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높여서 남의 스승 노릇을 해, 마구니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눈 먼 자가 눈 먼 자를 이끌어서 같이 구렁텅이에 빠지듯이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마구니 함정에 빠진다.

     ⑫ 특히 수행자가 조심해야 할 경우는 견처, 한 소식, 초견성의 경지가 올 때이다. 이때는 어지간한 경전(經典)을 해석할 수 있게 되며, 조사어록(祖師語錄)도 무슨 뜻인지 알게 되고, 모든 사물을 볼 때마다 그 이치를 알기 때문에 그 이치를 표현하는 게송(偈頌)이 저절로 튀어나오므로 게송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규범이 우습게 보이므로 방탕해질 수도 있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지기 때문에 애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또는 미친 사람처럼 쏘다니기도 한다. 이는 수행자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관념이 모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때가 수행자에겐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이때 올바른 스승이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수행자는 자칫 마구니의 길로 빠져버릴 수 있다.

     ⑬ 깨달음의 본질은 앎이다. 다만 깨달음은 앎은 앎이되 일반적인 앎과는 다른 특별한 앎이다. 여느 앎이 사성제(四聖諦)라는 틀 밖에서 얻어지는 앎인데 비해 깨달음은 사성제라는 틀 안에서 얻어지는 앎이요, 여느 앎이 타인ㆍ타물을 대상으로 추구해 얻는 앎인데 비해 깨달음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추구해 얻는 앎이며, 여느 앎이 점진적으로 얻어지는 이지적(理智的)인 앎인데 비해 깨달음은 훌쩍 뛰어오르듯이 비약적으로 성취되는 직관적(直觀的)인 앎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깨달음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이런저런 논란이 붙을 수 없는 자명한 진실이다. - 김정빈 <경> 

    이와 같이 깨달음이란 우리가 아는 일상에서 쓰는 뜻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일상에서 깨닫는다는 말은 문득 알았다는 뜻이지만 불교에서 깨달았다는 말은 알기는 안 것이지만 의식으로 안 것이 아니고 무의식마저 다 없어져서 만법의 본질을 요달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지로 스님들은 깨닫는다는 말보다는 견성(見性)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깨달으면 바로 영원한 자유인인 것이다. 곧바로 붓다 행이다.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한다.

 

    다음은 깨달음에 대한 조성택 교수의 글이다. 요약이지만 많은 시사점이 있다.

    “깨달음의 역사는 인종적ㆍ문화적 경계를 넘어 확산된다. 대승불교는 동아시아에서 다시 진화해 선불교를 낳았다. 선불교에서는 불ㆍ보살(佛菩薩) 외에 조사(祖師, master)라는 존재가 ‘깨달음의 존재’로서 등장한다. 조사들은 깨달음이란 ‘멀리서’ 혹은 ‘오랜 세월에 걸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장’ ‘지금 여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조사들은 ‘마음이 곧 부처요(心卽佛)’,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이 곧 깨달음(見性卽佛)’이라고 가르친다.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이어지는, 사자상승(師資相承)하는 선종(禪宗)의 역사는 깨달음의 전승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깨달음이라는 ‘체험’을 불교의 요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확철대오(廓徹大悟)의 최종적 깨달음만을 유효한 불교수행의 목표라 생각하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라고 여기는 ‘깨달음 지상주의자(至上主義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많은 불교인들은 -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또 직접 수행을 직하든 하지 않든 간에 - 근기나 수행의 방식을 따지거나 우선순위를 논할 뿐 ‘깨달음’은 여전히 중요하고 불교의 중심이며 요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깨달음을 ‘체험’이라고 하거나 혹은 ‘체험된 깨달음’만을 유효한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불가피하게 개인화, 밀실화 될 것이며, 깨달음은 소수 선택된 자들의 ‘특권’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이후 한국불교 전통에서 소위 ‘깨달은 자’의 말과 행위에 있어 역사적ㆍ사회적 타당성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행위를 하든 어떤 법문을 하든 그것들은 전적으로 ‘깨달음의 표현’이다. 그 표현과 내용이 용납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어리석은 중생이라서 그럴 뿐이다. 때로 세간에서 깨달았다고 믿고 있는 어떤 선지식의 ‘깨달음’이 유효한 지에 대해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의 정도가 낮은 자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로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불교에서 깨달음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특권화’ 돼 있다. 그리고 그 특권화 된 영역을 거론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불교계에서 금기시 된다.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교인들 스스로가 언설로써 평하기를 거부하는 ‘금기의 영역’이다. 종단에 비판적인 재가지식인들이나 활동가들조차도 종단의 ‘권력’과 ‘금력’에 대한 비판은 서슴지 않으면서, ‘깨달음의 영역’에 대한 의심과 비판은 ‘스스로’ 삼가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의 폐해는 출가 스님의 경우보다 재가자들의 경우가 오히려 더 심각하다. 가장 큰 문제는 “깨닫지 못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하는 낮은 자존감이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불교인들에게 ‘세속’은 수행의 현장이 아니라 수행의 ‘걸림돌’로 여겨진다. “선방에서 몇 철을 수행해도 깨달을까 말까인데 세속에서 사는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재가불자들이 수행의 주체가 아니라 출가자들의 수행을 지켜보고 관전평을 하는 ‘관중’이 되고 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스님이 깨달았다더라” 혹은 “못 깨달았다더라” “A 스님보다 B 스님의 깨달음이 더 크다” 등의 관전평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깨달음은 신비한 ‘무엇’이 돼버리기도 하고 일상적 체험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신비의 경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깨달음을 스님들에게 기대하고 심지어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깨달음의 문제는 소통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많은 재가신자들은 스님의 말씀을 이 지상의 언어가 아니라 ‘깨달음’의 초월적인 언어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소위 큰 스님의 말씀일수록 그런 기대감이 더 두드러진다. 뭔가 특별한 메시지를 고대한다. 불행한 일이다. 일상적 소통과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알쏭달쏭한 법문이 때로 더 큰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현대 한국불교의 한 진경(眞景)이다. 못 알아듣는 것은 듣는 이의 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때로 고개를 주억이며 알아듣는다고 믿게 하거나 스스로 믿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어쩌면 이런 불통의 상황 속에 스스로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런 불통의 상황을 적절히 신비화해 오히려 자신을 숨기는 은폐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의 깨달음이 일종의 ‘체험’이며 이 체험이 불교의 요체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깨달음이 단지 종교적 체험으로만 머문다면 불교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라는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 - 때로 불교전통에서 말하는 생사의 문제 - 가 결코 작은 문제이거나 사소한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개인은 개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와 결코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라는 종교가 개인의 생사문제에만 국한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제도적 종교로서의 존립근거를 없애는 일이며 연기와 무아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의 세계관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깨달음은 여전히 불교 수행자의 이상이요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부처님 이래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전통에서 ‘깨달음’은 단지 어떤 경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특수한 체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에 이르는 '수행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에 자기초월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행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냉난자지(冷暖自知)’라고 했다. 즉 깨달음의 세계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 봐야 안다는 뜻이다. 불법(佛法)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해야 깨닫는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의 변하지 않는 존재성과 연기적으로 펼쳐지는 모양이 너무도 정확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의식의 관점에서 깨달음을 얻지 않고 추상적으로 진리를 생각으로만 그려내는 불확실한 존재성을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존재의 진실을 올바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깨달음은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다. 의식을 넘어선 직접적인 앎이다. 직접 스스로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법(法)을 지접 맛을 보는 것이다.- 카페 ‘言下大悟’에서

 

    다음은 <깨달음의 문제>에 대한 강병조 교수의 글이다.

    우리나라 선(禪)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중시한다.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 먼저 깨달은 상태에 대해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선사들은 참선하는 동안에 나타나는 시공간 개념을 초월한 몸의 상태나, 작은 물소리도 크게 들리는 지각의 변화나, 화두의 의문이 풀리는 어떤 해답을 깨달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러한 생리적 또는 심리적 현상은 오랜 참선 후에 생길 수 있는 뇌의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현대 의학은 말한다.

    한 예를 여기 소개한다. <뉴스위크>에 실린 ‘신경 신학(neuro-theology)’이란 제목의 내용 일부이다. 제임스 오스틴(James Austin) 박사는 미국 보스턴에 사는 신경과 교수이다. 그는 참선을 오래했으며 이날도 참선하면서 영국 템스 강가에 서 있다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오스틴은 갑자기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 다른 어떤 깨침(enlightenment)의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물리적인 세계와 구분된 그의 개인 존재(individual existence)의 느낌은 밝은 새벽에 아침 이슬처럼 증발돼버렸다. 그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as they really are)' 보였다고 말한다. '나, 나에게, 나의 것(I, me, mine)'의 감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영원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동경, 혐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불어넣으려는 생각은 사라졌다. 나는 사물의 종국적인 성질(the ultimate nature of things)을 이해함으로써 아름다워졌다고 그는 말했다.

    오스틴 박사가 신경과 의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순간을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의 순간으로 생각했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가 경험한 것을 뇌 회로로 설명했다. 위협감을 모니터하고 공포심을 등록하는 편도체(amygdala)의 활동이 감소해야만 한다. 공간 지남력(指南力)을 담당하고, 자신과 세계를 분명하게 구별하게 하는 두정엽 회로는 조용해져야만 한다. 시간 지남력을 담당하고 자의식(self-awareness)을 느끼게 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의 회로는 분리돼야만 한다. 개인(selfhood)의 고등기능으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잠깐 중단되거나, 용해되거나, 의식에서 삭제되는 것 같다.

   오스틴의 이 논문은 1998년 MIT출판사가 <선(禪)과 뇌(Zen and the Brain)>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불교신문> 2008년 10월 22일자에는 부산 해운정사 조실 진제 스님이 용맹정진에 참가한 사부대중에게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라는 화두를 내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진아(眞我)를 찾으라는 이 화두를 여래장이나 불성처럼 불변하는 실체가 상주한다는 여래장사상을 따라 존재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을 찾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에 불과할 것이다. 불변하는 실체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을 우리 불자들이 다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욕심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없애려면, 자연이 기능하는 원리(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원리)를 깨달아 욕심을 적게 부리며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이란 자연법칙을 제대로 아는 것을 말하고, 무지에 의한 고통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해탈이요 열반이며, 이런 상태가 깨달은 상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진리를 미리 알고 바르게 살아서, 편안히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열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종교인 동시에 철학이요, 과학이며, 심리학이고 정신수양의 도(道)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간 싯다르타는 생존 당시 연기(緣起), 무아(無我),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팔정도(八正道), 공(空)사상, 중도(中道) 등 아주 과학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현대 과학에 맞지 않는 교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석가모니의 과학정신을 현대과학으로 재해석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된다. 원래의 석가모니의 과학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국불교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불교는 이제 위에 열거한 비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깨침과 근본 가르침 즉 연기, 무아, 사성제, 삼법인, 팔정도, 공사상, 중도사상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혹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현대과학에 맞지 않는 교리가 있다면 석가모니의 과학정신을 받아들여 현대과학에 맞게 재해석하면 된다. 이와 같은 개혁은 석가모니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지 결코 개혁이 아니다.

 

   이어서 다음은 각묵 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반론이다.

   “깨달음의 경지도 정확한 언어표현으로 표현돼야 한다. 비불교적인 언표를 사용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승이라느니 최상승이라느니 하는 것은 단지 감언이설일 뿐이다. 오히려 깨달음을 신비화하고 절대화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깨달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느니 깨달아봐야 스스로 안다느니 하는 것도 깨달음을 호도하는 무지몽매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께서는 불교의 창시자며 불자들의 스승이고 사표인 분이다. 그분 부처님께서는 결코 애매한 언표나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는 어떤 언어표현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은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 팔정도를 실현하는 것, 오온ㆍ12처ㆍ18계의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는 것, 12연기를 순관ㆍ역관하는 것 등으로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부디 <대승기신론>과 같은 후대의 논서를 절대시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초기불교를 잘못이해하거나 폄하하거나 깨달음을 절대화하는 듯한 태도는 버리기 바란다.”

   다음은 김나미 교수의 주장이다.

   “오늘 한국불교의 문제점 하나를 끄집어 들었다. 우리 불교는 깨달음과 이것에 기인한 수행 풍토로 인해 정도(正道)의 길을 잃었다. 한국불교는 깨달음이라는 묘원한 환상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한마디로 하자면 깨달음 대신 열반이 모든 수행의 목적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깨달음에는 연기법에 대한 통찰이 요구되는 반면 열반은 팔정도 수행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단지 열반의 선행 조건일 뿐이며, 깨달음의 단계부터 시작, 이것을 기반으로 최종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으로 나아가는 구도가 돼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을 한다면 그 수행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고 목표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열반이 수행의 최종적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다. 깨달음만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 한,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채 삼독에 물든 중생으로 남을 것이다 .”

      

 

*꼬삼비(kosambi) 비구 사건---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10 안거 때 인도 북부 꼬삼비 지역에서 승가의 분쟁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꼬삼비 지방의 고시따 수도원에는 각기 오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학식과 덕망이 높은 두 비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스승 비구 중 한 비구는 계를 가르치는 율사였고, 다른 한 비구는 경을 가르치는 강사(講師)였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분쟁은 두 비구 집단 사이의 분쟁으로 확대됐고, 부처님의 만류조차 듣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분쟁하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훈계하셨다. ― 맛찌마 니까야 <수번뇌경(隨煩惱經)>

    『다툼을 일삼는 자들은 여러 목소리를 내면서 아무도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가가 분열할 때도 아무도 자신의 허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현명한 대화는 잊어버리고 말꼬리만 물고 늘어진다. 입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대로 지껄여 무엇에 이끌려 그러는지 그것을 모른다.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 것을 훔쳤다.”라는 이런 생각을 품은 자, 그들의 원한은 끝나지 않는다.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 것을 훔쳤다.”라는 이런 생각을 품지 않는 자, 그들의 원한은 영원히 멈추리.

      참으로 이 세상 어디에서나 원한은 원한으로 결코 그치지 않는 법, 원한은 원한을 비움으로 그치게 되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제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이것을 아는 자들은 그 분쟁을 그만둘 것이다.

      뼈를 부수고, 생명을 빼앗고, 소와 말과 재물도 약탈하고, 왕국을 침략하는 그런 자들도 화합하는데, 어째서 그대들은 그러지 못하는가.

     만일 그대 믿는 지혜로운 벗과 현명한 도반을 만나거든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그와 함께 만족하고 마음챙기며 길을 가라.

     만일 그대 믿는 지혜로운 벗과 현명한 도반을 만나지 못하거든 왕이 정복한 영토를 버리고 떠나듯 홀로 가라. 마치 숲 속을 거니는 코끼리처럼. 차라리 혼자 갈지언정 어리석은 자와 함께하지 말고 혼자서 가라. 악행을 하지 마라. 마치 초연하게 숲 속을 거니는 코끼리처럼.』

    이 게송을 남기신 뒤 부처님은 홀로 꼬삼비를 떠나 빠릴레이야까(Parileyyaka)숲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부처님의 충고도 듣지 않는 스님들의 행동에 분개한 재가자들이 석 달 안거 동안 꼬삼비 승가에 대한 공양을 거절했고, 석 달 동안 고생을 한 비구들은 안거 후 부처님을 찾아가 사죄를 하게 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만일 진실하고 지혜로우며 덕 높은 벗을 만나거든 그와 함께 즐겁게 살며,

     마음 집중을 잘 수행해 삶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러나 만일 진실하고 지혜로우며 덕 높은 벗을 만나지 못하거든 마치 왕이 한번 점령한 땅을 미련 없이 포기하듯 홀로 자유로이 살아가라 …

    그럴 때는 차라리 홀로 살아가라. 어리석은 자와는 벗이 될 수 없느니라. 다만 홀로 살아갈지니 악행을 범함이 없이 자유로이 숲속을 거니는 저 코끼리처럼.“

      

*꼰단냐(빠알리어 안나 콘단냐/Aññā Koṇḍañña)---카운딘야(Kauṇḍīnya)라고도 하며, 한역해서 교진여(憍陣如) 혹은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구린(拘隣)이라 하기도 한다. 부유한 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관상학의 대가였던 그는 태자가 정등각자가 될 것을 예견하고 출가하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네 명과 함께 출가했으며, 이들을 다섯 비구라고 한다. 즉, 석가모니가 출가한 뒤 정반왕(淨飯王)이 석가모니의 소식을 알기 위해 밀파한 다섯 사람, 석가모니를 수행해서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부처님 초전법륜(初轉法輪) 당시 다섯 비구 중 최초로 깨달음을 증득한 사람이다. 당시 부처님은 “꼰단냐는 깨달았다-완전하게 알았다(aññasi vata bho koṇḍañño)”라고 두 번이나 외치셨다고 하며, 그래서 그는 안냐꼰단냐(완전하게 안 꼰단냐)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5일 뒤에 <무아상경(無我相經, Anattalakkhaṇa-sutta)-S22i59>을 듣고 아라한이 됐다고 하며,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첫 번째 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앙굿따라 니까야> 일집(AⅠ:14:1-1)에서 ‘구참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불리고 있다. 꼰단냐 존자는 혼자 한거하기를 좋아해 대중처소에는 아주 드물게 나타났으며, 부처님보다 먼저 히말라야의 찻단따숲(chaddanta-bhavana)에서 반열반에 들었다고 한다.---→초전법륜(初轉法輪, Dhamma-cakka-pavattana), 다섯 비구(五比丘) 참조.

       

*꿈반다(Kumbhanda)---부단나(富單那)라 한역한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의 일종으로 프레타(Preta)와 더불어 수미산 남쪽에 거주하며, 남섬부주(南贍浮洲)와 사찰의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의 권속이다. 수미산 남쪽에서 증장천왕의 통치를 받는 꿈반다는 숲이나 산에 감추어진 보물을 관리하는 천신으로 큰 위신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보호해 준다고 한다. 원래 꿈반다(Kumbhanda)는 배가 부른 모습을 하고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로서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해 증장천왕 부하의 천신이 됐다.

        

*끽다거(喫茶去)---‘차나 한 잔 마시라’는 말이다. ‘끽다(喫茶)’는 차를 마시라는 말이고, 거(去)는 명령형 조사이다. 당나라 때 ‘무(無)’자 화두로 유명한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가 차(茶)를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문답에 유래된 말이다. 그리하여 끽다거(喫茶去)는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극치를 보여주는 꽤 까다로운 공안으로 유명하다.

     「봄에는 아름다운 온갖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이 비추네.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날리도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품지 않으면 이때가 인간세상의 좋은 시절이로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조주 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형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문답도 격식이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조주 선사가 나이 80에서 120세에 입적할 때까지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어떤 수행승 두 사람이 그를 찾아와 절을 올리며 이렇게 물었다.

     “불법의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 선사는 대답 없이 되물었다.

     “전에 이곳에 온 일이 있었는가?” 하시니, 한 수좌가 대답하되,

     “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그럼 끽다거(喫茶去) - 차나 한 잔 마시게”라 하셨다. 그리고 옆에 같이 온 수행승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 그러니 그 수행승은 답했다.

     “예,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또 말했다.

     “그럼 자네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라고 했다.

    그러자 그 선문답을 듣고 있던 원주(院主)가 의아해 하며 선사께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와 본 적이 있다는 수행자에게도 차를 권하고, 와 본 적이 없다는 수행자에게도 똑같이 차를 권하시니 어인 일입니까?” 그러자 원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사가 큰 소리로 원주! 하고 불렀다. 이에 놀란 원주가 엉겁결에 예! 하고 대답을 하니, 선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원주,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시자(侍子)가 말했다.

     “스님께서는 누가 무엇을 물어도 끽다거 하시는데, 도대체 요령이 통하지 않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에 조주 선사는 말했다.

     “옳도다. 너도 끽다거(喫茶去)!” 그 순간 시자는 문득 활연대오(豁然大悟) 득도(得道)했다고 한다. 곧 넓게 트인 골짜기처럼 마음이 활짝 열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은 같을지라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 그 찻잔을 만지는 따스함도 느끼는 차맛도 즐기는 차향도 약간씩은 다르듯이 깨달음도 스스로 깨우치라고 조주 선사가 끽다거(喫茶去)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주 선사가 ‘차나 한 잔 마시라’고 한 것은 수행승들에게 주는 공안으로서, 일체의 관념과 분별을 다 여의고, 일체를 다 내려놓고, 쓸데없이 이런 저런 걸 묻지 말고,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 네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너 속에 다 들어있는데, 엉뚱한 곳에 와서 뭘 묻고 찾으려 하느냐 하는 말인 듯하다. 그러니‘너의 주인공은 어디에 두었느냐, 정신 차려라’ 하는 뜻이기도 하다.

   

<ㄴ>---------------------------------------------

*나가(산스크리트어 Naga)---나가(Naga)란 산스크리트어로 뱀(특히 코브라)이라는 의미인데,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이다. ‘나가’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뱀이 아니라 정령의 하나인 ‘뱀 신’을 일컫는다. 지금도 네팔에는 곳곳에 ‘나가 신’이 장식돼 있다. 이것이 불경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갈 때 '용(龍)'이라는 한자로 번역됐다.

    나가의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는데, 변형된 것으로는 많은 목(대개는 일곱 개나 아홉 개)을 가진 큰 뱀으로 표현되는 일도 있고, 사람 모습을 취할 수도 있다. 불교에서 ‘나가’는 불교신도를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경전을 지키는 물의 신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나가는 용수(나가르주나)를 자기네 왕국에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반야바라밀다경>이 재발견됐다는 신화가 전하기도 한다.

     

*나가대정(那伽大定)---불교에서 말하는 위대한 고요, 대적광(大寂光)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나가는 큰 뱀, 용을 가리키는 말로 용수(龍樹)의 이름이 나가르주나(Nagarjuna)이다.

    그리고 대정(大定)은 큰 삼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가와 대정을 합쳐 용정(龍定)이라고도 한다. 즉, 나가대정(那伽大定)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定)에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대적(大寂)이나 대정(大定)이 없으면 큰 지혜가 나오지 않으므로 나가대정은 큰 지혜가 나오는 원천을 뜻한다. 또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관계없이 깊은 정에 들어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그래서 <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을 보면 고승들 삼매의 극치를 나가대정(那伽大定)에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편 부처님과 아라한을 나가(那伽)라 한다. 그래서 무궁무진한 조화력을 가진 부처님의 큰 정력(定力)을 뜻하기도 한다. 용은 항상 고요한 가운데에서 사심 잡념 없애기를 계속해 능히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기 때문에 부처님의 큰 정력에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큰 정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가대정이라 한다.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 150?-250?)---<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로 알려진 마명(馬鳴, 아슈바고샤, Asvaghosa, 100~160?)의 제자 가비마라(迦毘摩羅)의 제가라고 한다. 그러니 마명의 손제자인 셈이다.

    나가르주나는 석가모니 입멸 후 600여년이 흐른 뒤 나타나서 불교사상을 재조립해 대승불교를 확립시킴으로써 ‘제2의 붓다’ 혹은 ‘팔종(8宗)의 조사’로 숭앙 받아, 용수보살로 칭송되고 있다. 실존인물로 보살 칭호로 불리는 사람은 용수를 비롯해 마명(馬鳴), 세친(世親) 정도이다. 그리하여 선종에서는 그를 서천 28조 가운데 한 분으로 모신다.

    나가르주나는 남인도 바라문계급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해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으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 귀의해 <반야경> 계통 공(空)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켜 중관(中觀, Madhyamaka)사상을 정립해, 대승불교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했다. 즉, 마명(馬鳴, AD80?~150?)보살의 뒤를 이어 대승법문을 선양하니, 대승불교가 이로부터 발흥했다. 그리하여 <화엄경>을 그가 집성했다는 설이 전한다.

    그리고 중관사상을 논술한 <중론(中論, Madhyamaka-Sastra)>을 비롯해 <대지도론(大智度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지었다. 이 세 문헌을 함께 불러 “삼론(三論)”이라 부르고, 중국에서 4~5세기경에 유행했던 삼론종이라는 종파의 이름이 여기에 기인하며, 그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관학파라 했다.

    그는 부파불교 대중부의 이론을 종합해 초기 상좌부의 실상법(實相法)과 인과법(因果法)이 무상(無常)ㆍ무아(無我)라고 하는 부처님 기본가르침에 어긋나며 연기(緣起)하는 것은 서로 의지해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모든 일체 법(현상)은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모든 대승경전이 공(空)사상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중론(中論)>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空)을 연기설로 해명함으로써 대승불교의 철학적 이론을 확립했지만 생생한 깨달음의 실체인 해탈지경을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공으로 바꿔버림으로써 불교를 사실에 관한 법에서 관념이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나가르주나에 의하면, 진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적이고 방편적인 진리와 절대적 진리. 상대적이고 방편적인 진리에서 보면, 현상세계는 존재론적으로 비실재라 할지라도 보통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는 완전한 설득력을 가지고 실재한다. 반면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체의 것들이 실은 비실재라는 것을 정신이 깨닫게 되지만 그러나 이런 진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중관사상(中觀思想) 참조.

     

*나가세나(Nāgasena, 那先)---→메난드로스(Menandros)왕, 밀린다왕문경 참조.

   

*나냐(빠알리어 nana)---지혜, 혹은 통찰지혜라는 뜻이다. 이에 관한 글을 보자.수행자는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괴로움을 아는 지혜(dukkhanupassana-nana)이다. 이와 함께 수행자는 피로함, 뜨거움, 고통, 아픔과 같은 것들을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육체에 깃든 고통스러운 감각을 경험하게 되고, 육체는 고통의 덩어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도 또한 괴로움을 통찰해 아는 것이다.

   그 뒤에는, 모든 물질과 마음은 스스로의 속성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며, 수행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행자는 사물은 요소일 뿐이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살아있는 실체이거나 생물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자아가 없다는, 무아(無我)를 아는 지혜(anattanupassana-nana)이다.

    이와 같이 무상(anicca), 고통(dukkha), 무아(anatta)를 알게 되면, 도의 지혜(막가-나냐, magga-nana)와 과의 지혜(팔라-나냐, phala nana)가 성숙해서 열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열반의 첫 번째 단계에 도달하면 불행하고 저급한 존재로 윤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는 이 첫 번째 단계에라도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라연(那羅延)---천상계에 거주하는 역사(力士)로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제석천(帝釋天) 권속으로, 집금강(執金剛)의 하나이며,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위대한 신(神)인 비시누를 가리키는 말이다.---→집금강신중신(執金剛身衆神) 참조.

       

*나락(奈落, 산스크리트어 naraka)---지옥을 가리키는 말이다.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란타(Nālandā, 那爛陀)대학---나란타(Nālandā)는 마하비하라(Mahāvihāra/大寺-나란타사)가 있던 지명이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 주 파트나에서 남동쪽 55마일 거리에 위치한 바르가온 지역이다. 거기에 큰 절이란 의미의 마하비하라(Mahāvihāra-大寺) 내에 부설돼 있던 대학이 나란타대학이다. 즉, 인도 고대 마가다국(Magadha國) 수도 왕사성(王舍城-라자그리하) 북쪽에 인접해 있던 나란타사원 부설대학이었다. 날란다대학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아소카왕이 건립한 나란타사원에 굽타왕조 때 나란타대학이 부설돼, 대승불교 학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했으며, 역사상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다.

   사원교육기관인 나란타대학의 전성기는 5세기부터 12세기까지로서, 굽타왕조에 이어 하르샤 왕조(Harsa Empire, 590~647)와 팔라 왕조(Pala Empire, 8~12세기)시대이다. 기원전부터 사원학교로 존재해 왔었지만, 종합대학 성격의 대규모 사원대학이 된 것은 굽타왕조시대부터이다. 이후 팔라 왕조시대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티베트, 중국, 한국,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유학승이 와서 공부했었다. 631년에 현장(玄奘)이 이곳에 왔을 때, 학생이 1만 명, 교수가 2천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전, 4세기 말 5세기 초, 중국 동진(東晉)의 구법승 법현(法顯)이 왔을 때에도 사원대학으로서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강의는 주로 대승불교가 중심이었지만 소승불교에 대한 강의도 있었고, 불교뿐만 아니라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sad)와 같은 힌두 바라문의 학문은 물론, 논리학(因明), 의학,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양수업도 실시했다고 한다. 대학 안에서는 매일 백여 곳에서 강의가 열렸고, 뛰어난 학승들을 많이 배출했다.

   대승불교 중관파(中觀派)의 창시자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가 학장을 지냈고, 그의 제자 제바(提婆, 아리야데바/Āryadeva, 170~270)가 나가르주나의 학통을 이어서 발전시켰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AD. 5세기 인물인 무착(無着, Asanga, 아상가)과 세친(世親, Vasubandhu, 바수반두) 형제도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하며, 세친의 제자인 호법(護法)과 덕혜(德慧)를 비롯해, 중국의 의정(義淨)과 현장(玄奘)은 물론 신라의 혜초(慧超)를 비롯한 많은 구법승들도 주로 이 나란타대학에서 공부했다. 신라에서는 혜초 외에 현태(玄泰), 혜륜(慧輪, 반야발마), 혜업(慧業) 스님 등이 날란다사원대학에서 공부했다. 현태는 티베트를 경유해 인도에 들어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왔고, 혜륜은 제자 현유와 함께 사자국(스리랑카)에 가서 종신(終身)했다. 의정(義淨) 법사에 의하면 혜업의 산스크리트어(梵本) 저서를 직접 봤을 정도로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했는데, 그는 나란타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현장이 다녀간 7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승불교 교학의 중심이었던 나란타 사원은 8세기 초 불교를 보호하던 굽타 왕조가 몰락하고 바라문의 힌두교가 번창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결정적으로 13세기 초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고르(Ghor)왕조가 북인도를 침공하면서 나란타사원과 함께 나란타대학도 완전히 파괴됐다. 이슬람의 침략자들은 많은 스님들을 죽이고, 사원과 대학을 불태웠는데 그 불길이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될 정도로 많은 장서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란타사(Nālandā, 那爛陀寺-마하비하라/Mahāvihāra/大寺)---나란타는 지명이다. 고대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王舍城-라자그리하) 북쪽, 지금의 인도 비하르 주 파트나에서 남동쪽 55마일 거리의 바르가온 지역(나란타)으로, 그곳에 위치했었던 사찰이어서 나란타사라 한다. 원래 명칭은 큰 절이란 의미의 마하비하라(Mahāvihāra-大寺)이다. 그 나란타사에 불교사원대학(나란타대학)이 부속돼 있어 유명했다.

   나란타사원이 세워지기 전에, 이곳은 암몰라(菴沒羅)라고 하는 망고 숲이었는데, 오백 명의 상인들이 거금을 주고 그 숲을 매입해 부처님께 봉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상인들에게 3개월 동안 법을 설하셨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상인들은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부처님께서는 이곳 망고 숲에서 가끔 유숙한 바 있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나란타 마하비하라(大寺)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왕에 의해서 사리불 존자의 사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사원인데, 큰 규모로 확장해서 발전시킨 것은 굽타왕조 쿠마라굽타(kumāragupta) 1세(414~455) 때이다. 이후 역대 왕들이 증축해 명실공히 인도 불교 중심지가 됐다.

   나란타사에 부속된 나란타 사원대학은 티베트ㆍ중국ㆍ한국과 중앙아시아에서 유학승이 올 정도로 유명했으며, 현장(玄奘)이 다녀간 7세기 초까지만 해도 학생이 1만 명, 교수가 2천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란타 사원은 7세기 중엽 벵갈 지방의 팔라(Pala) 왕조의 비호를 받으면서 밀교 4대 사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8세기 초 불교를 보호하던 굽타 왕조가 몰락하고 바라문의 힌두교가 번창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결정적으로 13세기 초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고르(Ghor)왕조가 북인도를 침공하면서 나란타 사원은 완전히 파괴됐다. 이슬람의 침략자들은 많은 스님들을 죽이고, 사원을 불태웠는데 그 불길이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 1953년~)---인도에서 심각한 하층계급인 불가촉천민(dalit) 출신 지도자. 인도 푸네대학교 총장, 국제통화기금 자문관, 인도 중앙은행 수석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인도의 절대적 신분제도를 극복해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도의 살아 있는 영웅’이다. 인도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로 자리 잡은 그는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외국 언론들은 그를 향후 인도중앙은행 총재, 재무장관, 나아가서는 인도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기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저서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은 1993년에 출간돼 12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달리트(dalit) 참조. 

   

*나로파(Naropa, 1016~1100)---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당시 불교학의 중심지인 카슈미르에 유학했다. 그는 귀향해 3년을 보낸 뒤 1032년 결혼했다가 결혼생활 8년 후 이혼하고 다시 카슈미르로 가 3년 동안 머물렀고, 1049년 나란타사(Nalanda寺)로 가서 여러 스승으로부터 대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나란타대학에서 철학 종교 논쟁에서 탁월한 학식을 인정받아 학장으로 추대됐으며, 8년간 학장으로 가르침을 펴는 동안 많은 학자가 배출됐는데, 티베트에서 온 마르파(Marpa, 1012∼1109)에게 요가를 포함한 여러 심오한 교리를 전수했다. 그 마르파가 훗날 티베트에 돌아가서 티베트불교의 유력 종파인 카규파(Kyagupa, 喝擧派)를 일으켰다.

   나로파는 나란타대학에서 가르침을 펴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던 중 어느 날 금강승(金剛乘)의 가르침을 탐구하는데, 책 위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다. 놀라서 위를 쳐다보니 추악한 악마의 얼굴을 한 천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천녀는 그가 그 경전의 뜻을 알고 읽는가를 묻고 그에게 틸로파를 소개했다.

   이에 그는 학장 직위를 사임하고 이름을 숨긴 채 유랑하다가 틸로파(Tilopa, 988∼1069)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됐다. 그로부터 법을 전수받기 위해 사원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끓는 물속에 들어가는 등 열두 가지 혹독한 시련을 견디면서 틸로파가 입적할 때까지 12년 동안 그에게 헌신하며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극한의 시련을 통해 틸로파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최상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 마르파에 의해 틸로파가 카규파의 창시자로 추대되고, 나로파가 2대조로 추대됐으며, 마르파 자신은 3대조, 그의 제자 밀라레빠(Milarepa)가 4대조가 되는 것이다.---→마르파(Marpa), 밀라레빠(Milarepa) 참조.

 

              

*나마(빠알리어 nāma)---빠알리어 나마(nāma)는 정신, 마음, 비물질을 말한다. 그리고 물질, 몸을 루빠(rupa)라 한다. 그래서 12연기에서 명색(名色)을 빠알리어로 나마 루빠(nāmarūpa)라고 한다. 나마(nāma)는 정신이고 루빠(rūpa)는 물질이다. 이때 정신은 오온 중에서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그리고 식온(識薀)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질은 몸(身)을 뜻하는 색온(色蘊)이다.

    미얀마의 장로 마하시 사야도는 “나마는 문자적으로 ‘이름’을 뜻하는 말이지만 오온에서 물질(色)을 제외한 느낌(受), 표상(想), 행(行), 식(識)의 4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정신을 지칭한다. 한역은 명(名)이라 하고, 영역은 mind, mentality라고 한다.”라고 했다. 그 외에 명(이름, nāma)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다.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그러나 관악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산일뿐이다. 사람들이 관악산이라고 이름 붙여서 관악산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저 멀리 있는 관악산은 결코 관악산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기 때문에 관악산이 된 것이다.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과 이름을 가져야만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돼 산다면 이름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이름이나 명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름이나 명칭이 필요하다. 무언가 구분하고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이나 명칭은 한두 개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이름 외에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아버지나 어머니로 불리고, 회사에 가면 과장이나 사장 등으로 불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접속을 하면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아이디가 있고 필명이 있기 때문이다.

    명칭과 관련된 게송이 있다. 하늘사람이 부처님에게 “무엇이 모든 것을 이기고 무엇이 그보다 나은 것이 없는가? 어떠한 하나의 원리가 참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했다.

     “명칭이 모든 것을 이기고 명칭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명칭이란 하나의 원리가 참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네.” - 명칭경(Namasutta-, 상윳따니까야 S1.61, 전재성 역)

     “명칭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무엇보다 더 나은 것이 없노라.

     명칭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 하노라 - 각묵 스님 역 

    경의 제목이 Namasutta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들은 ‘명칭 또는 이름“ 등으로 번역했다.

나마경(S1.61)은 ‘명칭’이 키워드이다. ‘이름 지어짐’으로 인해 그 이름에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재성 님은 “명칭이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각묵 스님은 “명칭이 모든 것을 짓누른다”고 번역했다.

    필명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게송에서는 “명칭이 모든 것을 이기고 명칭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S1.61)”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은 “명칭이라는 하나의 원리가 참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네(S1.61)”라 하신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나무(南無, 산스크리트어 Namo)---산스크리트어 Namo(Namas)를 번역한 말이 ‘귀의(歸依)’이다. ‘귀의’란 믿음을 받들고 몸을 바쳐서 구원을 청하는 생각이며, 마음의 깨달음에 의지해 일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해 마음속에 무한한 안위(安慰)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곳은 우리가 머무를 섬으로서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준다. 염불(念佛) 가운데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나무(南無)’를 말하며, 이에는 일곱 가지 뜻으로 한역된다.

    ① 귀의(歸依) ―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 만법의 근원이고, 상주불변하는 영원한 실상(實相)이며, 인연소기(因緣所起)의 원인이신 법신불(法身佛)에게 돌아가 의지함이란 뜻이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말은 품에 안긴다는 말과 같다.

    ② 귀명(歸命) ― 목숨을 들어(擧命)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 영원한 실상이신 법신불께 목숨 바쳐 돌아간다, 의지한다는 말이다.

    ③ 귀경(歸敬) ― 돌아가 공경하고 경배한다는 뜻으로 만법의 근원이신 법신불에 돌아가 공경하고 경배한다는 뜻이다.

    ④ 경례(敬禮) ― 공경하고 예배한다는 뜻으로 인연소기의 원인이시며 공(空)이시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이신 분을 공경하고 예배한다는 말이다.

    ⑤ 구아(救我) ― 나를 구원해 준다는 뜻으로 상주불변하는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다.

    ⑥ 도아(度我) ― 나를 제도(濟渡)해 준다는 뜻으로 상주불변하는 법신불께서 나를 열반의 진리 세계로 인도애 건네주신다는 뜻이다. ※도(度)는 도(渡)와 통용어(通用語)

    ⑦ 신종(信從) ― 믿고 좇는다는 뜻으로 인연소기의 허상(虛像), 생멸(生滅)의 세계에서 영원한 실상이신 존재를 믿고 따른다는 말이다.

이상의 말을 종합해볼 때, ‘나무(南無)’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신불(神佛)께 자신의 명(命)을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이다.

    헌데 이러한 사상은 명백히 초기불교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신 합리성과 신비를 배제한 정신에 맞지 않는다. 부처님은 창조주 따위는 시설하신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창조주를 들먹인다는 것은 불경하기 짝이 없다. 이는 다분히 힌두교화한 밀교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산스크리트어 Namo-Amitabha)---아미타불(阿彌陀佛)에 귀의한다는 불교용어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여섯 글자로 돼 있기 때문에 육자명호(六字名號)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이름이자 일종의 진언(眞言)으로서, 절이나 불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기도문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Namo-Amitabha인데, Namo는 예배한다, 귀의한다는 말이며,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고, abha는 광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는 뜻인데, 결국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말이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로서 서방정토에 살며 인간구제에 진력하는 부처로 묘사된다. 그래서 정토종(淨土宗)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정성으로 염(念)하면 극락왕생한다고 가르친다.

    헌데 나무아미타불을 찾으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 뒤 따른다. 그 이유는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같이 끝없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소원을 성취하게 해 주고자 하며, 아미타불을 스승으로 삼고 그 모습을 자신이 쓰고 있는 관(이마)에 모시고 있다. 그래서 대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 읊는다.

    

*나반존자(那畔尊者)---오직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대상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선 나반존자가 ‘홀로 깨친 이’라는 뜻에서 독성 또는 독성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보통 사찰의 독성각에 모셔지고 있다. 독성(獨聖)이란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침을 열어 성자가 된 자를 말하며, 독수성(獨修聖), 독각(獨覺), 연각(緣覺), 벽지불(壁支佛)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숭상하는 신앙대상이라서 나반존자라는 명칭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나 5백 나한의 이름 속에 보이지 않고, 불경 속에서도 나반존자의 명칭이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중국의 불교에서도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은 없다. 사찰에서 산신, 칠성, 용왕들과 나란히 신봉되는 것으로 봐서 우리 토속신앙이 불교적인 색깔을 띤 불 ‧ 보살로 변형돼 절에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최남선(崔南善)은 “절의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신 나반존자는 원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 신앙의 것이었다. 옛적에 단군을 국조로 모셨으며, 단군이 뒤에 산으로 들어가서 산신이 됐다고도 하고 신선이 됐다고도 해서 단군을 산신으로 모시거나 선황(仙皇)으로 받들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사찰 뒤 언덕 조용한 곳에 전각을 세우고 산신과 선황을 같이 모셨으며, 또 중국에서 들어온 칠성도 함께 모셨다.”라고 해서 나반존자상을 단군의 상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불교계 일부에서는 독성각 건립이 조선후기에 나타는 것으로 미루어 봐서, 나반존자를 단군으로 보지 않고, 나반존자를 말세의 복밭으로 보고, 복을 줄 수 있는 아라한의 한 사람으로 신앙하며, 18나한의 하나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를 이름만 바꾸어 신앙대상으로 승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반존자의 형상은 하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으며, 눈썹은 매우 길게 묘사돼 있고 미소를 띤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중국에서 신앙대상이 된 ‘빈두로존자’ 모습을 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독성(獨聖) 참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 Lorenz, 1917~2008)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지만 나중에 카오스(chaos)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사용해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초기값)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또는 “북경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다음날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초기 값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는 이렇듯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됐다. 가령 1930년대의 대공황이 미국의 어느 시골 은행의 부도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면, 이것은 ‘나비효과’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작게는 이웃이나, 크게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데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일파만파(一波萬波)라고 했다. 강물이나 연못에 돌을 던지면, 수면의 물결이 둥그렇게 일면서 끝없이 퍼져나간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이미 삼천여년 전에 한 사람의 불행이 전 인류의 불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의 구제가 전 인류의 구제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에서 인류 구제를 전제한 동업중생(同業衆生)의 개념이다. 우리는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호흡을 같이 하는 공업소감(共業所感-공동책임)이다. 곧 동업중생이다.---→‘카오스(chaos)의 이론과 불교’, ‘가이아(Gaia)의 이론’ 참조.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참조.    

      

*나습(羅什)---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을 줄여서 나습(羅什)이라고도 한다.---→구마라습(鳩摩羅什) 참조.

     

*나옹(懶翁, 1320년∼1376년)---고려 말 고승. 법명은 혜근(彗勤), 호가 나옹(懶翁)이다. 경상도 영덕 출신이고, 21세 때 친구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문경 공덕산(孔德山) 대승사(大勝寺) 묘적암(妙寂庵) 요연(了然) 선사를 찾아가 출가했다. 그 뒤 전국의 이름 있는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대오(大悟)했다.---→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 참조. 

    1347년(충목왕 3년) 원나라로 건너가서 연경(燕京)을 거쳐 명주(溟州) 보타락가산(補陀洛伽山)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여러 사찰에 주석한 후 귀국해 회암사 주지로서 절을 중수했다. 그는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 입장을 취했고, 임제(臨濟) 선사 선풍을 도입해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부도는 양주 회암사 터와 여주 신륵사(神勒寺), 그리고 대승사 묘적암에 남아 있다. 아래는 유명한 나옹 선사의 선시(禪詩)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聊無怒而無惜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나옹화상(懶翁和尙) 발원문(發願文)---나옹화상(懶翁和尙)은 고려 말의 변혁기를 살다간 선승이다. 공민왕의 왕사로도 활약하다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셨다. 그는 수행방법에 있어서는 염불은 매우 중요시했다. 염불을 청정한 마음으로 계속해나간다면 모든 중생들은 삼악도를 벗어나 정각의 지름길로 갈 수 있다고 보셨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나옹화상께서 쓰신 발원문은 우리나라 불교의례에서 자주 염송되는 서원문 중 하나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아세세생생처(願我世世生生處) - 원하옵건대 세세생생 나는 곳 어디에서나

     상어반야불퇴전(常於般若不退轉) - 언제든지 불법에서 퇴전치 아니하고

     여피본사용맹지(如彼本師勇猛智) - 부처님의 복과 지혜 두루 함께 갖추옵고

     여피사나대각과(如彼舍那大覺果) - 보신이신 노사나불 대각의 울안에서

     여피문수대지혜(如彼文殊大智慧) - 칠불님의 스승이신 문수보살 큰 지혜와

     여피보현광대행(如彼普賢廣大行) - 보현보살 육도만행 모두 함께 실천하며

     여피지장무변신(如彼地藏無邊身) - 지장보살 서원행을 남김없이 본을 받고

     여피관음삼이응(如彼觀音三二應) - 관음보살 분신으로 무량중생 제도코자

     시방세계무불현(十方世界無不現) - 시방세계 곳곳마다 남김없이 몸을 나퉈

     보령중생입무위(普令衆生入無爲) - 모든 중생 교화하여 열반경지 얻게 하며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 나의 이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 나의 모양 보는 이는 해탈도를 얻어지이다.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 - 이와 같이 교화하기를 영원토록 계속해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 부처니 중생이니 이름조차 없사이다.

     원제천용팔부중(願諸天龍八部衆) - 바라옵건데 천용팔부 금강신장이시여

     위아옹호불리신(爲我擁護不離身) - 도량을 수호하고 나의 몸을 보호해

     어제난처무제난(於諸難處無諸難) - 모든 재난 소멸하고 하는 일에 장애 없길

     여시대원능성취(如是大願能成就) - 지심으로 합장하고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나유타(那由陀, 산스크리트어 nayuta)---아승기(阿僧祇)와 더불어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의 단위임. 아유타(阿由陀;많은 수라는 뜻)의 백배라고 한다. 수천만ㆍ수천억ㆍ수만억이라고 하나 일정하지 않다. <법화경>에 대통지승불(大通知勝佛)의 수명이 오백사십만억(五百四十萬億) 나유타 겁(那由他劫)이라 했다. 천태 대사께서는 한량없고 가이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라는 수치를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표현했다.

   

*나찰(羅刹)---나찰은 악한 귀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으로, 불교에서 악귀(惡鬼)의 총칭이다. 사람을 먹는 두려운 귀신이었으나 부처님께 귀의해 불교 수호신이 됐다.

      

*나투시다---우리말 ‘나타나다’의 고어. 굳이 ‘부처님께서 나투시다’로 번역한 까닭은 단순히 중생의 오관에 비치어 인식돼진 대상이 아니고, 부처님 스스로 의지로써 나타나셨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른바 화신불(化身佛)로서 진여(眞如) 그 자체인 법신불(法身佛)이 아니고, 인간의 몸을 빌려 오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한(羅漢)---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인 말이다. 아라한은 본래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후에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위치로 바뀌었다. 부처님 생존 시의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수행자들 가운데 수행의 최고 단계에 이른 이상상(理想像)을 말했다. 수행 결과에 따라서 범부(凡夫) · 현인(賢人) · 성인(聖人)의 순서로 구별이 있고, 성인 중의 최고를 아라한이라 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성립되면서 ‘보살’이 생겨 아라한을 나한(羅漢)이라 고쳐 부르고, 그 격이 보살 아래로 떨어졌다.

    세상의 존경을 받아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자(尊者)라는 의미에서 응공(應供)이라 하기도 한다. 또한 번뇌를 끊고 생사윤회를 거듭하지 않는 성자로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이므로, 진리에 상응한다는 의미의 응진(應眞)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6가지 신통력과 8가지 해탈 법을 모두 갖추어 번뇌에서 벗어난 부처에 버금가는 성자로서 신앙의 대상이 됐다. 나한들은 석가 열반 후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열반에 들지 않고 수명을 연장해 계속 속세에 머물러 장차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8세기 후반에 말세신앙과 함께 16나한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주로 16나한과 오백나한이 신앙됐는데,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영산전(靈山殿)의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6대 제자 또는 16나한, 혹은 18나한, 오백나한을 봉안했다. 나한전이나 응진전을 따로 건립한 사찰도 있다. 나한을 살적(殺賊)이라고도 하는데, 살적이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항복 받았다는 말이다.---→아라한(阿羅漢, Arhan) 참조.    

    

*나한전(羅漢殿)---나한을 모신 전각(16 혹은 500나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16나한은 석존께서 열반하신 후 미륵불이 나타나기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 받은 분들이라고 한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주불이고, 대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고 있다.

       

*낙덕(樂德)---‘낙(樂)’은 안락이란 뜻으로 생멸변화가 없는 세계에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난 적정무위(寂靜無爲) 안락한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즉 무위안락 한 것이다. 안락이란 보통 그냥 재미있고 어떠한 유한적인 안락이 아니라, 조금도 변치 않는 영생의 안락을 말한다.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 ․ 락 ․ 아 ․ 정(常樂我淨)에서 ‘낙’이 이에 해당한다.

     

*낙처(落處)---공안의 요긴한 도리인 포인트가 되는 구경(究竟)을 이르는 것으로 세속말로서는 초점, 포인트 등으로 불린다. 참학인(參學人)에게는 핵심이 되는 자성을 여의지 않는 가운데 깨달아 알아야 할 요긴한 법리(法理)가 되는 의심처를 이르는 용어이다.

     

*난식(亂識)---망식(妄識), 염식(染識)과 비슷한 말로서, 어지러운 생각, 온갖 망상을 일컫는 말이다.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망식이고, 오염된 의식이 염식이다. 그리고 난식의 반대말은 정식(淨識)이다. 정식이란 더러움과 번뇌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의식이다.

         

*난타(難陀, Nanda,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 ?~?)①---석가모니 이복동생. 정반왕(淨飯王) 아들이며, 모친은 석가모니 어머니 마야 부인의 동생이기도 하고, 부처님 계모이기도 한 마하파사파제(摩訶波娑波提)이다. 난타는 부처님의 32상(相) 중에서 2종을 제외하고 모두 갖추었을 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녔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 손타리(孫陀利) 역시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는 그 아내를 못 잊어 출가하는 것을 꺼려했으나, 부처님이 방편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괴로운 모양을 보여, 그를 불도에 귀의케 해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아내 이름을 따 손타리난타(孫陀羅難陀)라고 하는데, 이는 목우난타(牧牛難陀)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목우난타(牧牛難陀)---본래 소를 먹이던 사람이었으므로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 그는 일찍이 소를 먹이는 목동이면서 출가해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난타(難陀, Nanda, 빈녀/貧女)②---붓다 당시, 고대인도 코살라(Kosala)국 수도 사위성(舍衛城)에 살던 가난한 여인[빈녀(貧女)]의 이름. 그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부자였고, 언제나 착한 누나처럼 우아한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우경(賢愚經)>이라는 불경은 그녀의 아름다운 행적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난타는 어느 날 길거리에 나갔다가 부자들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봤다. 그녀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난타는 궁리 끝에 구걸해서 은전 한 닢을 얻어 그것으로 기름을 샀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만들어서 기원정사로 찾아갔다. 먼발치에서 부처님을 뵌 그녀는 구석진 곳에 초라한 등불을 밝히고 설법을 들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흩어지자 등불도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벽이 돼도 꺼지지 않고 점점 더 밝은 빛을 내는 등불 하나가 있었다. 난타가 깨끗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밝힌 그 등불이었다. 당번을 맡은 목련 존자는 날이 밝아오자 기름을 아끼려고 등불을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난타의 등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난타가 밝힌 등불이 어떤 큰 등불보다 더 오래 어둠을 밝히는구나. 이 등불은 태풍으로도 끌 수 없고, 바닷물을 다 부어도 끌 수 없다. 누구보다 깨끗한 마음으로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공덕으로 ‘등광불(燈光佛)’이라는 부처님이 될 것이다.” 라고 수기했다. 이러한 수기를 받은 난타는 기뻐하며 출가를 발원하니 부처님이 허락을 해 비구니가 되도록 해주었다.

    가난한 여인의 깨끗한 정성을 뜻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고사성어는 이 설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난타(難陀, Nanda, 5세기경)③---유식(唯識) 10대 논사(論師)의 한 사람. 마음작용에 대해 견분(見分)ㆍ상분(相分) 2분설(分說)을 제창했다. 미륵(彌勒, 마이트레야/Maitreya)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등의 주석에 참여했다.

      

*난타(難陀, Nanda)와 발난타(跋難陀, Upananda)④---8대 용왕 중에서 난타와 발난타 두 형제용왕을 말한다. 두 용왕은 불법의 수호자로서 난타를 환희(歡喜)라 번역하고, 발난타를 선환희(善歡喜)라 번역한다.

       

*난행도(難行道)---용수(龍樹)와 세친(世親) 등이 불법(佛法)을 일반 세상의 도(道)에 준해 난(難) ․ 이(易) 둘로 나눈 바 있어, 이에 힌트를 얻어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담란(曇鸞, 476~542)은 세친의 <정토론(淨土論)>에 주석을 달아 <정토론주(淨土論注)>를 써서, 수행을 난행도와 이행도(易行道) 2도설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범부가 외부 힘에 의해 왕생할 수 있는 이행도를 역설함으로써 타력본원(他力本願)의 정토교 교의를 처음으로 천명했다.

    수행을 함에 있어서 자력에 의해 성불을 추구하는 것을 난행도, 불ㆍ보살의 원력에 의지해 수행해가는 것을 이행도라 하는데, 난행도는 근기가 수승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고, 이행도는 근기가 약간 미천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불교는 일반적으로 자력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난행도의 종교로 알려져 있으나, 불ㆍ보살의 원력에 의한 이행도가 시설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세속 중생은 근기가 다양하고 저열해서 누구나 높고 수승한 난행도를 성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이행도(易行道),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타력본원설(他力本願說) 참조.

   

*날마다 좋은 날---→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참조.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증도가(證道歌) 참조.

     

*남무(南無)---→나무(南無, 산스크리트어 Namo) 참조.

           

*남방불교(南方佛敎, 테라와다 불교, 상좌부불교)---남방불교란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불교를 지칭한다. 인도에서 서역지방(중앙아시아)을 거쳐서 중국, 몽고, 우리나라, 티베트, 일본 등 동아시아에 전해진 불교를 북방불교 또는 북전불교(北傳佛敎)라고 하는데 대응해 남방불교 혹은 남전불교(南傳佛敎)라 한다.

    남방불교권을 흔히들 테라와다 불교(상좌부불교)라고 한다. 따라서 좁고 엄격하게 말하자면 상좌부 불교는 20여개 부파불교 중의 일개 종파에 불과하다. 즉, 불멸 후 100여년이 지나자 계율과 교리 해석문제로 불교계에 분열이 일어났다. 최초의 분열[근본분열]은 당시 계율과 교리의 해석에서 시대 흐름에 맞춰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던 대중부(大衆部, Mahāsaṃghika)와 전통을 고수하려던 장로들 모임인 테라와다[상좌부(上座部)]로 갈라졌다. 이 두 계열이 소승불교의 2대 부문이 됐는데, 대중부는 시대적 변화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테라와다(상좌부)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유지ㆍ보존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대중부와 상좌부는 지속적인 지말분열의 과정을 걸치면서 소위 부파불교라는 독특한 시대상을 연출하게 된다. 이것을 아비달마(abhidharma)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때 갈라져 나간 부파의 숫자는 도합 20여개 부파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편 최초의 두 부파 가운데 대중부는 결국 와해돼 사라졌고, 다른 대부분의 지말 부파들 또한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스리랑카라는 고립된 지역에 정착한 상좌부 불교는 여러 차례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원래의 모습을 흩뜨리지 않고 오늘에까지 계속된다. 바로 이 부파를 테라와다 불교로 일컫는 것이다. 현재에도 테라와다 불교는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테라와다 불교 종단는 23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 권위와 전통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붓다의 육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빠알리어 경전을 전승하고 보유하고 있는 2500년 불교의 종갓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경전결집의 역사와 경전의 전승과정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붓다의 육성이 담겨 있는 경전이라고 소중하게 소지하고 공부하는 빠알리어 경전내용은 아소카왕 시절에 있었던 제3차 경전결집의 산물이다. 인도 대륙에서 있었던 제3차 경전결집은 당시 20여개 부파 중에서 그나마 붓다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공인된 상좌부가 전승 및 보유하고 있던 경전(율장 및 경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집의 내용이 고스란히 당시 실론(스리랑카)이라는 남쪽 섬나라로 전승됐던 것이다.

    이렇게 남방에 부파불교시대 근본불교를 계승한 상좌부(上座部)의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adin)의 불교가 전해졌기 때문에 테라와다(Theravāda) 또는 남방상좌부불교라고도 하는 남방불교는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남방 일대에 전파됐다.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전래된 시기는 BC 3세기 아소카왕(Ashok, B.C. 273~232년경) 때이다. BC 3세기 제3차 불전결집을 끝낸 마우리아왕조 아소카왕은 그의 아들 마힌다(Mahinda:摩呬陀) 장로와 딸 상가미타(Sanghamitta) 비구니 등 일행을 스리랑카에 파견했다.

    이에 스리랑카 국왕 데바낭삐아-티사(Devanampiya-Tissa, 재위 BC 250~207)는 이들을 맞이해 수도인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 마하 위하라(大寺, Mahavihara) 사원을 세워 그들에게 기증함으로써 남방불교 거점이 되게 했다. 이것이 스리랑카 상좌부불교의 기원이다.

    그런데 AD 1세기경 왓따가마니 아바야(Vattagamani Abhaya)왕이 아바야기리 위하라(Abhayagiri Vihara, 무외산사/無畏山寺)를 건립해 마하팃사(Mahatissa) 장로에게 헌납함으로써 스리랑카불교는 대사파와 무외산사파 둘로 나뉘어 서로 경쟁을 하게 됐다.

    그 후 대사파는 상좌부계통 불교를 고수했는데 비해, 무외산파는 AD 1세기에 대중부, 그리고 AD 3세기에는 대승불교를 각각 받아들여 대사파와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AD 4세기경 마하세나(Mahasena, 334-362년 재위)왕 집권 시에는 대사파를 탄압했기 때문에 무외산사파의 대승불교 황금시대가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사파는 이에 굴하지 않고 청정한 상좌부(분별설부)의 교학과 계율을 잘 유지했고, 결국은 상좌부불교를 고수한 대사파(大寺派)가 압도하게 됨으로써 대승불교는 사라지고 스리랑카엔 초기 근본불교(상좌부불교)가 고스란히 살아서 전승하게 됐다.

    그리고 대사파에서는 BC 1세기 중반에 제4차 불전결집을 단행했다. 즉, 알루위하라(Alu Vihara) 석굴사원에서 경전 편찬회의를 개최했는데, 이 편찬회의는 마하테라 라키타가 주재 하고, 상좌부계통 분별설부교의를 고수하는 500명의 학승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7년에 걸쳐 네 차례의 결집을 통해 그때까지 스리랑카에 전해오던 상좌부계통 불교의 모든 교의를 총망라한 경(經) ‧ 율(律) ‧ 론(論) <빠알리어 삼장(三藏), Tipiṭaka>을 완성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빠알리어 삼장 일체를 종려나무 잎을 말려 거기에 문자로 기록했다. 이로써 불교사상 처음으로 완성된 <빠알어 대장경>이 조성된 것이다. 종려나무 잎에 적은 대장경이어서 패엽경(貝葉經)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초기경전인 <경ㆍ율ㆍ론 빠알리어 삼장=니까야(Nikaya)>이 훼손됨이 없이 패엽경(貝葉經)이라는 형식으로 고스란히 스리랑카에 전승되게 됐다.

    그리고 스리랑카로 전래된 경전(빠알리어 삼장)은 AD 5세기에 미얀마로 전래 됐고, 미얀마의 통일왕조인 페간(Pagan)왕조에 의해 13세기에 태국으로, 14세기에는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로 전파됐다. 이렇게 해서 남방 상좌부불교가 오늘날까지 번성하게 됐다.

    남방불교의 여러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붓다 당시의 초기교단적 전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것이 남방불교이다. 그러므로 북방불교가 초기불교 교의를 확대해석한 대승불교 중심인데 비해 남방불교에서는 초기 근본불교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 대승불교권에서 남방불교를 폄하해서 소승불교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방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니라 남방 상좌부불교이다. 소승불교란 부파불교시대 근본상좌부와 대중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파불교를 총칭하는 말이다. 현재의 남방불교에는 부파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근본상좌부 계통의 분별설부불교가 전해졌으므로 소승불교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최근 남방불교(상좌부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짐으로 인해, 마치 막혔던 미지의 세계가 갑자기 열린 듯한, 그래서 호기심, 신비로움, 새로운 발견과 같은 심리상태가 팽배해져서, 무비판적으로 남방의 여러 불교이론들이 도입되고 있다. 그리고 남방불교이론을 소개하는 일부 인사의 경우, 마치 개선장군 모양으로 설치면서 대승불교를 깔아뭉개듯이 하는데, 그것도 꼴불견이다.

    적어도 북전불교(대승불교)의 이론들은 수세기에 걸친 검토와 검증을 거쳐서 정착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오늘날 마구잡이로 도입되는 남방불교(상좌부불교) 이론의 경우는 아직 북방 불교권에서 검증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소한 이론들이 나타나서, 이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일이 진정되고 차분한 검증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구나 남방불교이론의 용어의 경우, 거의 일본에서 번역된 것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어서, 이점도 검토돼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빠알리어 니까야>와 <청정도론>은 근본불교가 아닌 아비달마 불교이며, 아비달마 불교이면서도 부처님의 정수를 놓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아비달마 불교는 크게 20여개의 부파로 나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나뉘는 가운데 어느 부파는 교학의 정수를, 어느 부파는 수행의 정수를, 어느 부파는 불제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우선하는 부파 등으로 나뉘었다면, 남방 상좌부는 이해하기 쉬운 불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대승불자들이 당시 상좌부불교에 대해 법실유(法實有)라 해서 비판했을 때, 그것에서 상좌부불교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해서 인도 문화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던 상좌부는 반성과 변화가 나타나는데, 스리랑카라는 변방에 있던 남방 상좌부는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비판을 벗어난 채 ‘법실유’ 전통을 이어오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지금 초기불교 운운하면서 한국에 남방불교를 전하는 이들은 ‘실유법’을 주장하는 상좌부 불교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유법’으로 해석하고 있는 남방 상좌부는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방 상좌부불교는 ‘실유법’을 주장하는 불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쌍윳다니까야>에는 실유법에 거슬리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hyojin ---→불전 결집(佛典結集) 참조.

           ※남방불교와 대승불교의 관계---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이미 여러 부파의 발생과 성쇠를 거쳤고, 인도반도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불교는 중도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늘 중심을 곧게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긴 불교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의 핵으로 기억하는 용수, 무착, 세친, 보리달마, 혜능 등 옛 스승들의 업적은 다름 아닌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의 정신, 현실 세계로의 복귀였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쳤을 때, 대사회적 유연성을 잃고 굳어 갈 때, 혹은 전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흐르지 못하고 정체돼 있을 때, 둑을 뚫고 새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끌어들인 새물은 이미 거기 있었던 우물,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에서 퍼 올린 것이다. 가장 오래된 샘에서 새물을 길어 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파야 할 우물도 바로 그 자리다.

그러나 특정 전적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나머지를 폄하하는 흐름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 편 가르기로 보이기도 한다. 한역경전과 빠알리어, 범어(梵語, Sanskrit) 경전을 비교하면서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역과 인도 원전의 상호 보완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역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도어 원전을 통해 쉽게 풀리기도 하고, 역으로 인도 원전의 모호한 부분이 한역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역 전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와 인도 전적 중심의 연구 성과 역시 배척과 질시가 아닌 상호 존중과 보완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 예로 초기경전의 눈으로 후기 경전을 점검하고, 대승경전의 입장에서 초기경전을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 개인, 지역사회, 한 나라, 나아가 전 세계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연기의 세계관이다. 몸소 앞서서 그것을 보이고 퍼뜨려야 할 사회적 의무를 자진해서 짊어진 승가는 연기의 바른 이해와 실천, 곧 지혜와 자비의 두 날개로 날아가는 나비다. 그것이 바로 승가의 굳건한 뼈대요 따뜻한 피인 것이다. - 재연 스님

 

    

*남방 상좌부(南方上座部)의 논서(論書)---북방불교에는 부파불교의 대표적인 논서로 7론이 있는데, 남방 상좌부에도 7론이 조성돼 전하고 있다. 즉, ①법집론(法集論), ②분별론(分別論), ③논사(論事), ④인시설론(人施設論), ⑤계론(界論), ⑥쌍론(雙論), ⑦발취론(發趣論)이다.

   이들 7론은 BC 250년 무렵부터 BC 50년 사이 200여년에 걸쳐 성립됐는데, 북방과 달리 남방 상좌부에서는 7론을 단순한 논서가 아니라 성전으로 꼽는다. 그리고 7론을 거쳐 붓다고사의 <청정도론(淸淨道論)>에 이르러 하나의 완성된 사상체계를 실현했다. 이 이후 나타난 논서는 대개 난해하고 복잡한 <청정도론>에 대한 해석서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빠알리어 칠론(七論)의 성립연대가 확실치 않으며, 그 성립순서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칠론 외에 <지도론(指道論)>, <장석론(藏釋論)>, <밀린다팡하(Milindapanha)> 등 세 가지 논서가 더 있다. 이것들은 아비달마 논서라고 할 수 없지만 내용상 아비달마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서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① 법집론(法集論, Dhammasangani)---초기 팔리어 논서이고, 내용은 불교의 여러 주제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으므로 초기불교의 복잡한 사상을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설계도 역할을 제공해준다.

   제1장에서는 마음과 마음작용(心. 心所)을 다양하게 분석적으로 고찰했다. 이른바 89심(八十九心)이 여기서 설명되며, 마음작용으로서 40가지 정도가 언급되고 있다.

   제2장에서는 물질적 존재(色)를 한 가지 종류에서 11가지 종류로 분류해, 그것 역시 각각 다양하게 분석했다.

   제3장에서는 일체존재를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방법 22가지와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방법 100가지, 나아가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또 다른 방법 42가지, 도합 164문(門)으로 나누어 설했다.

   제4장에서는 앞장의 그것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다시 아비달마 논모 122문(門)으로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경의 논모(論母)라고 하는 이유는 <니까야>인 <장부경전>의 <상기티숫탄타, Sangitisuttanta>에서 언급되고 있는 술어 가운데 일부분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점에서 볼 때 북전 논서의 <족이문족론(集異門足論)>과 비슷한 관계이다.

        ※논모(論母, 마띠까/mātṛkā)---불타법문의 취지나 요의를 추구하면서 다양한 경설을 널리 분별 해석(廣釋)하기도 하고 종합 정리하기도 했는데, 이를 논모(論母, mātṛka) 혹은 논의(論議, upadeśa)라고 한다. 또한 논점이나 주제를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해 둔 목록과 열거되는 연구제목을 논모라 하기도 하며, 더러 논장(論藏)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② 분별론(分別論, 비방가/Vibhanga)---<법집론>을 보충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논서이다. 북전 <법온족론(法蘊足論)>과 비슷한데, 아함 가운데 주요한 교설을 뽑아 그것을 종횡으로 분석 고찰했다.

    ③ 논사(論事, Kathavatthu)---아소카왕 치하에서 단행된 제3차 불전결집에서 장로 목라리풋타 팃사(Moggaliputtatissa)가 논사를 설했다고 한다. 전체는 시종 문답형식으로 일관되며 주석서를 보지 않고서는 문답의 주객이 누구며,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자가 어떤 부파 소속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상좌부의 정통설을 세워 다른 부파의 이설(異說)을 깨뜨린다고 하는 독특한 내용을 갖고 있다.

    ④ 인시설론(人施設論, Puggala pannatti)---이 논서는 불교경전 가운데 '사람'에 관해 언급된 부분을 추리고 정리해서 열 개 항목으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 '인시설(人施設)'이라는 뜻은 편의상 사람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불교교리는 무아설(無我說)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무아이고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의 존재이지만 우선 사람이라고 명칭하고 편의상 독립자존의 존재로 가정한다는 뜻에서 '시설(施設)'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 중에 언급되는 인(人)에 관한 용례의 집성을 '인시설(人施設)이라고 부르고 있다.

    ⑤ 계론(界論, 界說論, 다뚜까타/Dhatukatha)---‘요소(dhātu)들에 관한 가르침(kathā)’으로 번역되는 <계론>은 <법집론>을 보충한 논서이다.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 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다.

     ⑥ 쌍론(雙論, 야마까/Yamaka)---논장의 모호한 심리현상에 관한 전문술어 중에 애매하고 잘못된 사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집된 논서이며, 문제 제기를 항상 쌍(yamaka)으로 하기 때문에 쌍론이라 했다. 즉, 전물술어나 문제, 개념들을 상반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비해 논의함으로써 주요한 교설 가운데 나타난 용어의 의미.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대비하고 검토했다.

    ⑦ 발취론(發趣論, Patthana)---칠론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의 논서이다. 그 내용은 연기법의 가르침을 자세히 치밀하게 정리해 놓았다. 즉, 24연(二十四緣)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다. 여러 가지 연(緣)은 아함경전 이래 여러 곳에서 설명되고 있지만 그것을 24연으로 정리해 설한 것은 이 논서가 처음이다. 현재 미얀마에선 가장 중요한 논서로 취급되고 있다.

이 외에 특수한 세 가지 논전(論典)이 있다. 연대적으로는 대개 칠론 다음의 것(혹은 칠론 중 그 성립 연대가 늦은 것보다는 조금 앞선 것인지도 모른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 지도론(指導論, 넷티파카라나/Nettippakarana)---AD 1세기 전후 인물이라고 하는 캇차야나(Kaccayana)의 저서로, 경전 이해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만한 것이다.

     • 장석론(藏釋論, 페타코파데사/Petakopadesa)---이것은 지도론의 보유(補遺)라고 볼 수 있다.

     • 미란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밀린다팡하/Milindapanha)---BC 150년경 서인도를 지배하던 그리이스인 왕 메난드로스(Menandros, 인도 이름은 밀린다/Milinda)와 불교의 나가세나(Nagasena) 장로 사이에 이루어진 불교교의에 관한 대론(對論) 기록으로, 다른 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한역 대장경 안에도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란 이름으로 전하고 있으며, 팔리어 논전보다 오히려 더 오래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그 원형은 기원전후 무렵에 성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경(經)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닌 일종의 교의학습서이지만 칠론처럼 번쇄하거나 형식적인 논의가 많지 않으며 실제적인 문제에 따른 풍부한 문답으로 매우 흥미 있는 문헌이다.

위의 세 가지 논서는 경장이나 논장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위치에 있지만 전통적으로 남방 상좌부에서 상당히 중요시하는 것이다. 미얀마의 상좌부 교단에서는 이 세 가지 논서를 모두 경장 중의 '소부(小部)'에 포함시키고 있다.

     • 청정도론(淸淨道論, 비숫디맛가/Visuddhimagga)---붓다고사(Buddhagosa, 불음/佛音)가 AD 440년 경 저술한 <청정도론>은 칠론 이래 전개돼 온 남방 상좌부의 모든 교리를 하나로 정리해 조직적으로 설한, 바로 이 부파를 대표하는 가장 체계적인 논서이다. 붓다고사보다 200~300년 앞선 인물인 우파팃사(Upatissa)는 <해탈도론(解脫道論, Vimuttimagga)>이라는 저술을 남겼는데, 붓다고사는 그것을 기초로 증보해 이 논을 지었다. <해탈도론>의 원문은 알려지지 않지만, 다만 다소 변화를 받은 텍스트의 역본이 한역 대장경 가운데 전하고 있다.

    <청정도론>은 모두 23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계(戒), 정(定), 혜(慧) 삼학의 순서에 따라 붓다 교법을 실천의 도(道)로서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즉 먼저 스스로 경계해 출가자로서의 생활을 올바르게 가다듬고(戒의 淸淨), 나아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고요히 한곳에 집중하는 삼매 수련을 거듭함(定의 淸淨)에 따라 깨달음으로 향하는 깨끗하고 밝은 지혜를 획득한다(慧의 淸淨)고 하는 도(道)를 설하는 것이 이 논서의 요강이다. 그러면서 남방 상좌부 특유의 존재론이나 심리론, 인식론을 내포해 다채로운 아비달마적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다. 또한 경 ‧ 율 ‧ 논 삼장에서 많이 인용한 것도 이 논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청정도론>이 대저이기도 하거니와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그 후 남방 상좌부에서는 이를 간명하게 정리한 강요서(綱要書)들이 나타났다.

     • 입아비달마론(入阿毘達磨論)---이는 89심(八十九心), 52심소(五十二心所), 물질적 존재 4대종(四大種) 및 24소조색(二十四所造色)에 대해 운문으로 해설한 것이다.

     • 색비색별론(色非色別論)---이는 초보적인 입문서로서 산문으로 써진 소론이고, 이의 작자는 붓다닷타(Buddhadatta)라고 한다.

     • 체요략론(諦要略論)---이는 운문만으로 이루어진 <입아비달마론>과 마찬가지로 색(色), 심(心), 심소(心所), 열반(涅槃)에 대해 개설했고, 담마팔라(Dhammapala)의 저작이다. 이 작자는 주석가로서 초기경전에 대한 주석서을 지은 유명한 담마팔라와는 동명이인으로 그보다는 후대 인물일 것으로 추측된다.

     • 섭아비달마의론(攝阿毘達磨義論)---이의 저자 아누룻다(Anuruddha)는 9세기 이후 인물로 추측된다. 이는 후세까지 오랫동안 이 부파의 아비달마 학습 교과서가 됐던 것으로 그 명성이 대단히 높다. 산문으로 서술하고 운문으로 정리하는 방법에 따라 89심(八十九心), 52심소(五十二心所), 마음이 작용하는 14과정, 28색(二十八色), 여러 가지 실천항목, 12연기(十二緣起), 24연(二十四緣) 등 남방 상좌부 아비달마의 주요학설 전반에 걸쳐 간결하고도 정연하게 해설하고 있다.  

      

      

*남방불교의 특징---북방불교가 대승불교인데 비해 남방불교는 테라와다, 즉 상좌부(上座部)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상좌부란 부처님이 입멸하신지 100년쯤 지나서부터 시작된 교단분열 당시, 개혁을 반대하고 부처님 법을 그대로 계승하기를 주장했던 장로들 부파를 말한다. 따라서 교학사상이나 수행전통 및 계율준수 등에 있어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부처님 원음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고집하며, 초기경전인 <빠알리어 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방불교는 초기불교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방불교에서는 아직도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① 빠알리어 경ㆍ율ㆍ론 삼장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어서,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은 남방불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아서 없다.

     ② 남발불교 대장경을 <경ㆍ율ㆍ론 삼장> 혹은 <빠알리어 삼장>이라 하고, 그 중 경전부분을 <니까야(Nikaya)>라 한다.

     ③ 신앙대상은 고타마 붓다(석가모니)만이다. 따라서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과 같은 석가모니 외 부처는 남방불교에는 없다.

     ④ 남방불교에는 보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새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 등이 없다. 따라서 중생이 수행정진해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위가 보살이 아니라 아라한(阿羅漢)이다.

     ⑤ 계율을 엄수하는 초기불교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출가자 중심의 교단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지계가 엄격한 비구는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고 있으며, 특히 태국에서는 남자는 일생에 한 번은 출가수행승이 돼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⑥ 위빠사나(vipassanā, 觀), 사마타(Samatha, 止), 사마디(Samadhi, 定) 등 부처님 당시 수행체계가 발달돼 있다.

     ⑦ 비구니 교단은 11세기경에 그 맥이 끊긴 채로 단절됐으므로 여승은 없다.

     ⑧ 북방 대승불교에서는 남방불교를 소승불교라 칭하며 폄하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초기불교 형태를 계승하고 있으며, 세계불교 본부도 스리랑카에 있다.---→패엽경(貝葉經), 제4차 불전결집 참조.

     

*남비니원(藍毘尼園)---룸비니동산을 말함.---→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 참조.

       

*남산종(南山宗)---중국 당나라시대에 번성한 불교 율종(律宗)의 한파. 율종은 불교에

서 율장(律藏)을 근본 종지(宗旨)로 하고 있는 종파를 말한다. 중국에서 시작됐고, <사

분율(四分律)>에 의거하기 때문에 사분율종이라고도 한다.

    계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상부율종(相部律宗)ㆍ동탑종(東塔宗)ㆍ남산종(南山宗)으로

분립했다. 상부율종은 <사분율소>의 저자 법려(法礪)가 개조이고, 동탑종은 <사분율개

종기>의 저자 회소(懷素)가 시조이다. 이 양파는 서로 상쟁하는 일이 많았고 모두 오래

가지 못하고 쇠태했다. 남산종은 도선(道宣)이 개조인데 오랫동안 교세가 번성했다. 사

분율은 불멸 후 100년에 담무덕(曇無德)이 중국에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시대의 겸익(謙益)이 인도에 가서 율을 연구하고 돌아왔으나 개

종한 일은 없었고, 신라의 자장율사(慈裝律師)가 당나라에 가서 남산종을 배우고 돌아와

서 통도사에서 금강계단을 세우고 계를 설해 개조가 됐다.

       

*남섬부주(南贍浮洲)---구역(舊譯-당나라 현장법사 이전에 행해진 번역을 뜻함)으로는 남염부주(南閻浮洲) 혹은 남염부제(南閻浮提)라 했다. 불교 우주관 내지 세계관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땅을 말한다. 불교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 바다 네 곳에 큰 섬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섬을 남섬부주라 하고, 이곳에 우리 인간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염부(閻浮)라는 수목이 많이 자라는 곳이라서 염부주라고도 한다. 염부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 인도에 널리 분포돼 있는 낙엽 교목을 말한다. 4~5월경에 옅은 노란색의 작은 꽃이 피고, 짙은 자줏빛의 열매를 맺는다. 염부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므로 남섬부주는 불교 발상지인 인도를 상징하는 말로 추정된다.---→염부제(閻浮提), 사대주(四大洲) 참조.

    

*남순동자(南巡童子)---<화엄경> 입법계품(立法界品)에 나오는 말이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진리를 찾아 남쪽으로 여행했으므로 남순동자(南巡童子)라고도 한다.--→선재동자(善財童子) 참조.

 

*남악 형산(南岳衡山, 1300.2m)---양자강 이남의 최고 명산인 호남성 남악 형산은 드넓은 호남평야 한 가운데 있다. 중국 5대 명산(五嶽)의 하나로 예부터 종교의 성지로 이름이 높다. 남악 형산은 조사선의 우뚝한 봉우리인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와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1) 선사가 법을 펴신 곳이고 마조(馬祖道一, 709∼788) 스님께서 깨치신 곳이다. 그리하여 회양 스님께서 마조와 석두 두 스님과 법거량을 나누셨던 곳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은 6조 혜능(慧能) 대사가 주석했던 광동성 조계와 함께 중국 선불교 남종(南宗)의 양대 성지로 불린다.

   강서(江西)의 으뜸은 마조, 호남(湖南)의 으뜸은 석두라는 말에서 강호(江湖)라는 말의 유래가 됐다고 하듯이 선종사(禪宗史)의 흐름으로는 남악에서 발원한 가느다란 물줄기가 둘로 나뉘어 산을 내려와 드디어 도도한 대하가 돼 중원을 흠뻑 적셨고 급기야 한국, 일본까지 덮게 됐던 것이다.

   회양 스님께서 계셨던 남죽조 시대에 창건된 복엄사(구 반야사)와 묘탑(墓塔), 그리고 마조 스님께서 오도하셨던 마경대(磨鏡台)는 척발봉(擲鉢峰: 복엄사 창건주인 천태종의 남악 혜사 선사가 황제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 이 봉우리에 올라 자신이 쓰던 발우를 내던진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산봉우리 아래 산록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남종선의 돈오 선사상이 마조 문하에 백장 회해(百丈悔海), 남전 보원(南泉普願), 대주 혜해(大珠慧海) 들이 연이어 배출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 법맥에 생생히 흐르고 있다.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당나라시대 선승이며, 남종선(南宗禪)의 거봉으로서 선종 제7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육조 혜능 대사의 사법(嗣法) 제자 10인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제자에 유명한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가 나왔다.

   남악회양 선사는 일평생을 거의 이름 없는 수행자로 살았으나 선종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최대 업적은 선불교의 심요(心要)인 ‘돈오(頓悟:本自成佛)와 평상심(平常心)’을 마조에게 전한 것이라 하겠다. 돈오를 가능케 하는 원천은 일상생활 속의 늘 변함없는 평상심이란 것이다.

   남악회양 스님은 열다섯의 나이로 율종(律宗) 사찰에서 출가해 약관 스무 살에 계를 받았다. 한동안 계율 수행에 몰두했으나 늘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던 스님은 숭산에 계시던 혜안(慧安) 선사의 권유로 광동성 조계 남화사의 육조 스님을 찾아뵙는다.

      육조: 어디서 왔는가?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

      육조: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습마물 임마래/什磨物恁磨來)요?

   여기서 ‘습마물(什磨物)’은 ‘무엇’이란 뜻이고, ‘임마(恁磨)’는 ‘어떻게, 어찌해서’란 뜻이다. 그래서 ‘습마물 임마래’란 ‘뭣 하러, 어떻게 이렇게 왔는가?’라는 말이다. 이는 “너는 대체 무엇인가? 또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선불교에 있어서 ‘이 무엇’이란 문제는 오늘날 화두로 유명한 ‘이 뭣고’와 같은 말로서, 따지고 보면 우리 불교 전부를 들어서 얘기하는 말이나 같다. 불교란 대체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네가 찾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물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회양 스님은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된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이것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이고, 없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웃고 슬프고 눈물 나는 이것은 도대체 뭔가? 있다고 하자니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하자니 분명하고 또랑또랑하게 보고 듣고 느끼는 이것은 또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다가 8년만에야 홀연히 깨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회양 스님은 다년간 계율을 연구할 정도로 무척 성실한 성품이셨으나 빼어난 천재가 아닌 평범한 범부(凡夫)였던 같다.

   역대 조사와 하물며 육조 스님의 의발을 뺏으러 쫓아왔던 혜명 스님까지도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않을 때 어떤 것이 수좌의 본래면목인가?’ 라는 육조 스님의 한 말씀 아래 바로 근본을 깨칠 정도로 대개 언하대오(言下大悟) 하셨건만 스님께서는 어리석은 범부처럼 오랫동안 참구한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리고 ‘무엇이 어떻게 왔는고?’ 하는 말이 곧 선(禪)의 화두(話頭)에서 ‘이 뭣고’ 하는 말의 연원이기도 하다. ‘그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하는 말에는 나(我) 자체가 천지우주와 같이 연기법으로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 하는 말 가운데 일체존재가 다 들어가 있다.

   이런 선문답 끝에 남악 선사는 6조 혜능 선사를 시봉하면서 부단히 수령을 거친 뒤 혜능 선사의 법맥을 이었다.---→마전성경(磨磚成鏡) 참조.  

       

*남양 혜충(南陽 慧忠, ?~775)---당나라 때 선승으로 속성은 염(冉)씨이다. 어려서 육조 혜능(惠能) 선사를 따라 배우고 그의 법을 이었다. 육조가 입멸한 후에 여러 산에 두루 머물렀는데, 남양(南陽)의 백애산(白崖山)에 들어가 40년을 산문 밖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761년 숙종이 그의 명성을 듣고 조칙을 내려 서울로 불러 스승의 예로 맞이했다. 황제 숙종, 대종(代宗) 등의 두터운 귀의를 받았으나 항상 담박한 본성 그대로 천진 자연을 즐겼다.

    혜충은 행사(行思), 회양(懷讓), 신회(神會), 현각(玄覺) 등과 함께 혜능 문하의 5대 종장(宗匠)으로서 선풍을 날렸다. 그의 선풍은 심신일여(身心一如),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종지로 하고 또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처음으로 주창했다. 더욱이 남방의 선객들이 경전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배척했는데, 삼장(三藏)을 연구하고 교학을 중시하며, 항상 스승의 설법에 의거해 말했다. 775에 입적하자 조정에서 대증국사(大證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무정설법(無情說法), 즉심시불(卽心是佛), 국사삼환(國師三喚) 참조.

     

*남염부주(南閻浮州)---구역(舊譯-당나라 현장법사 이전에 행해진 번역을 뜻함)에서는 남염부주(南閻浮州) 혹은 남염부제(南閻浮提)라 했다.---→남섬부주(南贍浮洲) 참조.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스리랑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전해진 불교를 남전불교라 하며, 스리랑카의 마하 위하라(大寺派, Mahavihara)에서는 BC 1세기 중반에 제4차 불전결집이 이루어졌다. 즉, 알루위하라(Alu Vihara) 석굴사원에서 500명의 학승들이 참여해 7년에 걸쳐 네 차례의 결집을 단행했다. 그 결과 그때까지 스리랑카에 전해오던 상좌부계통의 모든 교의를 총망라한 경(經) ‧ 율(律) ‧ 론(論) <빠알리어 삼장(三藏), Tipiṭaka>을 완성했다.

    그리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빠알리어 삼장> 일체를 종려나무 잎을 말려 거기에 문자로 기록했다. 이로써 불교사상 처음으로 <대장경>이 조성됐다. 종려나무 잎에 적은 빠알리어 대장경을 패엽경(貝葉經)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초기경전인 <경ㆍ율ㆍ론 빠알리어 삼장(빠알리어 대장경)>이 훼손 없이 패엽경(貝葉經)이라는 형식으로 고스란히 스리랑카에 전승되고 있다. 이것이 남전대장경이다. 그 남전대장경 속의 경장을 빠알리어로 <니까야(Nikaya)>라 한다.

    이 남전대장경이 남방불교의 소의경전이며, 19세기 초 서양인들에 의해 연구가 시작됐다. 그리하여 1882년에는 영국에서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가 중심이 돼 런던에 설립된 <Pali Text Society>에서 영역본을 출판했다.---→남방불교(南方佛敎), 니까야(Nikaya)와 북방아함경(阿含經)의 관계, 팔리어삼장, 패엽경(貝葉經) 참조.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5)---당나라시대의 선승.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 130여 명 중 백장(白丈), 서당(西堂)과 함께 유명한 삼대사(三大士)의 한 사람으로 무심선(無心禪)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30여 년 간 지주(池州) 남전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밭을 갈며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자연 속에서 세상시비와 사상추구마저 잊어버리는 무심선(無心禪)을 터득해 훗날 선승들에게 고존숙(古尊宿)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그가 남긴 화두 중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 ; 남전이 고양이의 목을 베다)가 유명하다. 835년 87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제자로 무자(無字)화두로 유명한 조주 종심(趙州從諗)을 두었다.

         ※무심선(無心禪)---무심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달리 일체의 망념을 여읜 진심(眞心)인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궁극의 경계로 삼는 선법임.

         ※고존숙(古尊宿)---선문(禪門)의 위대한 선승에 대한 존칭.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중국 당나라시대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5)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절에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으로 나누어진 선방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절에 와서 동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하고, 서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했다.

    이때 각 당의 수행승들은 그 고양이가 서로 자기네 당(堂)의 고양이라고 우기다가 마침내 선방이 시끄러워졌다. 이때 남전 스님이 나타나서 고양이를 집어 들고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눈 밝은 말 한마디를 하면 죽이지 않겠지만 눈 밝은 말을 못한다면 이 고양이를 베어버리겠다.”라고 했다.

    좌중은 이에 이말 저말 한 마디씩 했지만 모두 남전의 기대에 어긋났다. 그래서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베어 죽였다. 헌데 저녁에 조주(趙州從諗, 778~897)스님이 외출에서 돌아와서 스승인 남전 스님에게 귀가인사를 드리자, 남전이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주에게 물었다.

    “자, 그대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러자 조주는 아무 말 않고 짚신 한 짝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를 본 남전은, “그대가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참선하다 말고 고양이 한 마리를 가지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싸우는 한심한 대중을 보고 남전은 고양이를 집어 들고 한마디 밝은 말을 이르라 했다. 이르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베어버리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살려야하는 위급한 순간이 닥친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이르라는 말은 동과 서로 갈라져, 혹은 좌와 우로 갈라져 다투는 너희들 한계를 넘어선 말 한마디, 아니면 우주의 본질에 대해, 진실에 대해, 마음에 대해, 도(道)에 대해, 또는 내가 고양이를 들고 있는 뜻에 대해, 어떤 것도 좋으니 밝은 말 한마디 이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흡족한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다들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동과 서, 좌와 우로 갈라진 이념의 울타리에 갇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꿎게 고양이만 두 동강나고 말았다.

    “이 고양이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고 - 좌우로 갈라져 - 싸운단 말인가, 한심한 놈들아!”라는 엄중한 꾸지람이었다.

    큰 도에 발심한 사람들은 시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한 시비의 근본을 없앨 줄 알아야 한다. 별스럽지도 않은 고양이 한 마리에 온 절 스님들이 법석을 떨다가 애꿎은 고양이만 목이 달아났다.

    그래서 훗날 설두(雪竇) 선사가 송(頌)을 했다.「양쪽 승당의 납자들은 모두 엉터리 중/ 먼지만 일으킬 뿐 어쩔 줄 모르는구나/ 다행히도 남전 화상이 법으로 심판해/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 시비를 가렸네(兩堂俱是杜禪和 撥動煙塵不奈何. 賴得南泉能擧令 一刀兩段任偏頗)」

    그러나 외출에서 돌아온 조주는 짚신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돌아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조주두재초혜((趙州頭戴草鞋)’라는 또 하나의 화두이다. 이것을 보고 남전은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조주의 선기(禪氣)를 인정했다.

    고양이를 집어든 뜻을 짚신 한 짝을 머리에 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으니 이 뜻이 대체 무엇일까? 이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라는 화두는 조금의 티끌도 묻어있지 않는 맑은 것이라, 공연히 여기에다 이러니저러니 답을 하거나 사족을 달면 점점 더 진흙탕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고,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 진다. 화두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비유로도 대신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이 화두는 직접 화두를 들고 체험해야 알 수 있다. - 그래도 종잡을 수 없다면, 알음알이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 게 선문답의 진수이니까. 더 알려면 수행을 거쳐 깨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굳이 사족을 단다면, 조주 스님이 짚신을 머리에 인 것은, 아래에 있어야 할 짚신이 위로 올라갔으니 아래위를 나누는 기준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것은 좌와 우로 나누는 기준도 무너뜨린 것을 말한다. 어쭙잖은 것으로 동서로 나뉘어 다툰 것을 힐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좌우 이념의 벽을 허물 줄 몰라 끊임없이 일으키는 갈등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 선사---송 대의 선승으로 금나라의 외침을 받아 북송과 남송으로 갈라지던 격동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23세에 출가한 후, 운문종(雲門宗)의 3대조(三代祖)인 지문 광조(智門 光祚) 문하서 수행했으며,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를 많이 남겼다.

           

*남종선(南宗禪)---중국 당나라시대 선종 제5조 홍인(弘忍, 601~674)에게는 걸출한 두 제자가 있었다. 신수(神秀)와 혜능(慧能)이다. 그리고 신수 계통을 북종선(北宗禪), 혜능 계통을 남종선이라 한다. 북종선이 양자강 북방에서 <능가경(楞伽經)>을 근거로 단계적 깨달음[점오(漸悟)]을 주장한 데 비해, 남종선은 주로 남쪽 지방에서 <금강경(金剛經)>을 근거로 행동적이고 즉각적인 깨달음[돈오(頓悟)]을 주장했다. 이를 가리켜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하나, 후대에는 남종선이 특히 발전해 선종이라 하면 으레 남종선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선종의 기본 종지(宗旨)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할 수 있는데, 혜능에게 있어 견성성불은 인간의 본성을 대상화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본래부터 깨달음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며, 이것을 알고 난 다음 불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을 아는 것이 그대로 불타라는 것이다. 즉, 성불은 불타가 되는 것보다 불타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성불은 점오가 아니라 자성(自性)이 곧 진불(眞佛)임을 깨우치는 돈오이다. 이러한 사상의 줄기는 후에 임제종(臨濟宗) ․ 위앙종(仰宗) ․ 조동종(曹洞宗) ․ 운문종(雲門宗) ․ 법안종(法眼宗) 등의 5가(五家)를 형성했으며, 한국에서는 신라 때에 임제종 계통이 유입돼 9산선문(九山禪門)을 이루었고, 그 후 한국불교의 중요한 줄기가 됐다.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우리나라 선가에서 대표적 선승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北趙州)”에 빗대어,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고 하는데, 송담은 현재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이다. 그리고 남 ‘진제’는 대구 동화사의 조계종 기본선원의 조실(祖室)을 맡아 끊임없이 수행자들을 지도해. 영남지역 법맥(法脈)을 잇는 대표적인 선승으로 꼽히다가 2012년 조계종 종정에 취임한 분이다.

       

*남화사(南華寺)---육조 혜능(慧能) 선가 주지로 있었고, 가장 오래 머문 절이다. 현재 중국 광조우(廣州)에 있는 남화사(혹은 남화선사)는 원래 보림사(寶林寺)였고, 당대에는 흥천사(興泉寺)라고도 했다가 송나라 때부터 남화사라 불리고 있다.

    혜능 선사는 당나라시대인 677년에 이 절 주지가 돼 이후 30여 년간 이곳에서 법을 펴 남화선사는 실질적인 육조 도량인 셈이다. 중국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의 황금기인 당ㆍ송 시대의 사상적 지주였던 선불교의 사실상 진원지였고, 동아시아 선불교 중심지였다.

선종조정(禪宗祖庭)으로 제일 유명해 ‘영남제일 선사(禪寺)’라는 칭호가 붙은 남화선사는 한 ‧ 중 ‧ 일의 선승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이곳에 혜능 선사의 진신불(육신상)이 모셔져 있다.

         

*남화진경(南華眞經)---<남화경〉이라고도 하며, 중국의 장주(莊周, BC 365~290)가 지은 <장자(莊子)>의 다른 이름이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장주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했으므로 그의 저서 <장자>를 높이어 부른 이름이다. 내편(內篇, 7편), 외편(外篇, 15), 잡편(雜篇, 11편)으로 이루어졌으나, 이 중에서 내편 7편만이 장주의 저서가 확실하고, 나머지는 의문시 되고 있다.

    장자는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해 노자와 함께 도교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강조했고, 인간 지식의 판단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는 또 죽음을 찬미했고, 무사태평ㆍ무용의용(無用之用)ㆍ무위(無爲)ㆍ무욕(無慾) 등을 주장했으며, 인간 현실의 허구성을 신랄히 풍자했다. 이러한 도교사상이 중국불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납의(納衣, 衲衣)---승복을 일컫는 말. 세속 사람들이 버린 옷을 기운 옷, 혹은 못 쓰는 헝겊이나 버려진 헝겊으로 누더기처럼 기워서 만들어진 옷이라는 뜻이다. 스님이 자신을 '납자(納子)'라고 낮춰 부르는 것도 납의에서 나왔다. 그런데 똥을 닦는 헝겊과 같으므로 분소의(糞掃衣)라고도 했다.

    헝겊조각을 기워 가사를 만드는 것은 버려진 유정물의 재활용을 통해 생명을 보호하는 대자대비의 극치에서 나온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옷을 깁는 일은 만유의 연기론적인 연관을 실제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은 생명공동체인 신성한 대지를 자연 그대로 보호하는 깊은 통찰 위에서 나온 환경 윤리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납자(衲子)---납승(衲僧)이라고도 함. 납의(衲衣)를 입은 승려라는 뜻이다.

           

*내세관(佛敎의 來世觀)---불교에서 내세(來世)는 삼세(三世)의 하나로서 윤회설(輪回說)과 더불어 불교의 내세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윤회(輪廻)는 불교의 생사관이면서 내세관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내세 혹은 윤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피하셨다.

    부처님이 코살라국(Kosala, 사위국)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적에 마라구마라(Māluṅkyaputta, 摩羅鳩摩羅) 존자는 홀로 번뇌에 빠졌다. 이 세계는 영원한지, 영혼은 몸과 같은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이러한 의문을 부처님에게 묻자, 부처님께서는 유명한 ‘독화살에 박힌 사람’ 비유로 답하셨다.

    “마라구마라여, 나는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네가 제기한 문제는 인간의 의식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방식으로도 논증할 수 없으므로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이며, 또 수행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내세관이나 윤회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피하셨다. 그리하여 부처님 자신은 최후까지 법신앙(法信仰)으로 일관해 입멸 때에도 「내가 설한 법과 율(律, vinaya)이야말로 내가 없는 후세의 스승이다.」라고 유언하셨다. 신행의 방향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는 나름의 내세관과 윤회설이 생겨났다. 그것은 불멸 이후 100여 년경부터 시작된 부파불교시대 소위 아비달마불교에서 싹텄고, 특히 불교가 중국을 거치면서 더욱 확장되고 첨가돼 화려한 내세관과 윤회설이 정립됐다.

    그리고 불교에서 영혼을 내세로 옮겨가는 주체로서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중유(中有=中陰)라 하고, 유식론(唯識論)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했다. 여기에서의 중유(중음)란 이승과 저승의 중간 위치에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 일회의 삶은 생유 ‧ 본유 ‧ 사유 ‧ 중유라는 4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다.

    곧 모태에 의탁해 태어나는 순간을 생유(生有)라 하고, 출생 후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생전의 존재를 본유(本有)라 하며, 죽는 순간을 사유(死有),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존재를 중유(中有)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즉시 다음 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 얼마 동안[49일간] 중유의 존재로 머문 뒤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고 봤다.

    그런데 중유(中有)기간에 대해서는 다소 이설이 있었다. 칠칠일(七七日)이라는 설과 칠일(七日)이라는 설이 있었으며,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사십구일을 기해 49재[천도재(薦度齋)]를 행하는 칠칠일설이 일반화돼 있다.

    대부분 사람은 중유기(中有期)에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본다. 따라서 중유단계는 생전의 업을 심판받는 기간인 동시에 타력으로 망자의 구제를 도모할 수 있는 기간으로 수용됐다. 이에 따라 유족이 망자를 위해 행하는 지극한 공덕으로 부처님 가피를 받아 망자의 내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49일간의 중유기간 동안 망자를 보다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사십구재[천도재]가 불교 상례(喪禮)의 의미로 자리한 것은 이러한 관념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月明師)는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지어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었다. 불교에서는 생시에 불도를 열심히 닦고 선업을 많이 쌓은 이는 죽어서 서방정토 즉 극락(極樂)세계에 가고, 불도를 수행하지도 않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짐승으로 윤회전생(輪廻轉生)하거나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한 염원 때문에 신라 문무왕 때 <원왕생가(願往生歌)>라는 왕생설화(往生說話)에는 광덕(廣德)이라는 이의 높은 덕과 신앙심을 통해 친구인 엄장(嚴莊)까지 감화시켜 서방정토인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불교 내세관은 업(業)사상과 윤회설(輪廻說)에 기초해 성립했다. 윤회의 주체는 업(業) 또는 아뢰야식(阿賴耶識) 안에 함장 돼 있는 선악의 종자이지만, 그 윤회하는 객관적인 세계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이다. 그리고 그 주관적인 세계는 천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등 육도(六道)인데, 이를 일컬어 삼계육도의 윤회전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상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본다. 그러니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말이나,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다는 자작자수(自作自受)란 말을 되새겨서 신(身) ‧ 구(口) ‧ 의(意) 삼업(三業) 등 각종 죄업을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이 내재돼 있다.

    그리고 현세의 삶은 모두 전생에서 지은 업보 때문에 생긴 것이고, 현세의 삶은 또한 다음에 다시 태어날 생의 모습을 결정한다. 현세의 업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6가지 윤회의 삶이 되풀이된다. 인간은 현세에서 계속적으로 업을 짓는 한 고통스런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며, 오직 해탈(解脫)을 통해서만이 이러한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불교 내세관이나 삼계(三界) 속에 나오는 천상(天上)과 같은 환상적 세계나 극락과 같은 초월적 세계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을 가진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초기경전에 나오는 초월적인 현상이나 윤회,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같은 의견을 가진 저명한 일본인 불교학자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의 <삼계(三界)와 출세간(出世間)>이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의 통속설에 의하면, 세계에 관한 설명으로 삼계(三界)와 출세간(出世間) 이야기가 있다. 삼계는 선악업에 의한 생사윤회 세계이고, 출세간은 윤회를 초탈한 열반계라고 돼 있다.…

   그리고 이 삼계와 출세간에 관한 설명은 일단 붓다 자신에 의해 말해진 것이라 하더라도, 부파불교에서와 같이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삼계를 생물이 생존하는 구체적 세계로 상세하게 서술한 것은 붓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초기불교를 공부한다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불교세계관이 이 우주를 설명하는 유일한 잣대인 것으로 잘못 알거나, 그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는 이 우주에 실재(實在)하지 않는다.… 요컨대, 이것은 초기불교에서 관념적으로, 기껏해야 비유적 혹은 신화적으로 선정(禪定)에 의해 도달되는 세계를 설명한 것을 부파불교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불합리하기 그지없게 된 것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오늘날 내세(來世)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허황된 이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불교의 가장 강한 특징이 부처님이 “와서 보라!”고 하신 말씀처럼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교의인데, 부파불교시대에 비과학적인 허황된 이론들이 너무 많이 편입돼 불교철학을 우습게 만들어 놓았다. 다만 불교 우주관이라는 측면에서 종합적인 얼개를 구성함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 상정됐을 뿐이다. 따라서 교훈적으로 이해하는 범위에 한정해야지 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해서 천도재 같은 상업적인 것으로 흐르면 곤란하다.

        

*내세불사상(來世佛思想)---부처님이 입멸하시자 바로 유골이나 유품, 유적 등을 통해 부처님을 추모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차제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신할 불(佛)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불타숭배 역사가 전개됐다. 불타숭배는 석가모니를 대신할 구체적인 불을 구하는 불타관(佛陀觀)과, 한 불에 대해서 현실신(現實身, 色身)과 영원신(永遠身, 法身)등, 이신(二身)을 상정해서 고찰하는 불신론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신하는 구체적인 불을 구하는 불타관에서는, ‘과거불사상’에서 단서를 찾아 ‘미래불사상’으로 발전했다. 이리하여 미래에 불이 출현해 석가모니불을 대신해 구원의 손길을 편다는 신앙으로서, 도솔천에 머물고 있는 미륵(Maitreya)보살이 먼 미래에 화생해 석가의 뒤를 보충해 부처가 돼 사람들을 구제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미래불사상 다음에 내세불사상이 생겼다. 즉, 현대에도 내세의 다른 국토에 가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서, 대표적인 내세불로는 동방묘희국(東方妙喜國)의 아촉불과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의 아미타불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내세타토불(來世他土佛)사상이 일어나서 이것이 미래불로서의 미륵보살까지도 일종의 내세불로 변화했다. 즉, 미륵보살이 미륵불이 됨으로써 미륵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미래불사상으로서의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에 대해, 내세불사상화 한 것을 미륵상생신앙(彌勒上生信仰)이라 부르는데, 후에 <미륵하생경>과 <미륵상생경> 등 두 종류의 미륵경전이 편집되기고 했다. - 田村 芳朗.

     

*내원궁(內院宮)---불교 설화에 의하면, 수미산 꼭대기 하늘 위에 도솔천이라는 천상세계가 있고, 여기에 내원궁ㆍ외원궁이 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내원궁에 있으면서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지 못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있으며, 장차 인간 세상에 출세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말로서, 본래불(本來佛)사상, 불성(佛性)사상, 여래장(如來藏)사상,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즉 진여연기(眞如緣起)의 교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승불교 중기 이후(AD 3세기 이후)에 나타난 사상이다. 여래장사상에서는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했으며, 이 가능성을 여래장이라고 했다. 여래장은 본질적으로 불성(佛性) 또는 진여(眞如)와 동일한 개념이다. 이 여래장(如來藏)사상과 불성(佛性)사상이 유식학에 채택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끝까지 법신앙(法信仰)으로 일관하셨다. 따라서 입멸하실 때에도 “내가 설한 법과 율(律, vinaya)이야말로 내가 없는 후세의 스승이다.”라고 유언하셨다. 그러나 신도들은 항상 석가모니라는 인격(佛)을 통해 법을 듣고 수용했었는데, 그 인격체가 사라지자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미래불사상이다. 미륵(彌勒)보살이 먼 미래에 화생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뒤를 보충해 부처님이 돼 사람들을 구제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미륵(Maitreya)보살로 대표되는 미래불사상이 다시 내세불사상으로 발전했다. 현대에도 내세의 다른 국토에 가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서, 대표적인 내세불로는 동방묘희국(東方妙喜國)의 아촉불과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내새타토불사상(來世他土佛思想)이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滿佛思想)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현재 이 세계에도 불(佛)이 시방 어디에나 가득 존재한다는 신앙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엄경>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Virocana)이다. 시방변만불사상이 철저하게 되면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이 된다. 즉 불이 바로 지금 우리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신앙이다. 이것은 <열반경> 등 제2기(AD 4세기) 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사상으로서, 여래장'(如來藏)이라던가 불성'(佛性)이란 말이 그것을 나타낸다.』- 田村 芳朗. ---→여래장(如來藏) 참조.

       

*내전(內典)---경(經) ‧ 율(律) ‧ 논(論)과 어록(語錄) 등 불교경전을 말한다. 이에 비해, 불교 밖의 다른 전적을 외전(外典)이라 한다. 출가인은 내전을 익히고 나서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을 공부한다. 출가인이 외전을 먼저 익히면, 그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다. 칼로 진흙을 베면 칼만 상한다. 출가한 사람은 일단 내전을 익히는 데에 열중하고, 내전이 어느 정도 익어서 자기 것이 됐을 때,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을 공부하는 것, 이게 제대로 된 순서다.

        

*냉난자지(冷暖自知)---물이 그릇에 가득 담겨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접 만져 봐야 알 수 있다. 즉 깨달음의 세계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 봐야 안다는 뜻이다. 불법(佛法)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해야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네 가지 무량한 마음가짐(四無量心 appamaññā)을 말한다.---자비희사(慈悲喜捨) 참조.

   

     

*네 가지 대답---불교에서는 제자들의 물음과 그 대답도 설법 방식의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물음에 대해 네 가지 형식의 대답으로 답변하셨다.

     ①정답(定答) ― 보통의 대답이다. 상대가 ‘이런가?’ 하고 묻는 말에 대해 ‘그렇다’ 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형식을 일향기(一向記)라고도 하는 것으로 단정적 대답이다. 예를 들면,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죽는다.’라고 단정해서 대답하는 것이다.

     ②분별답(分別答) ― 구분해서 좀 더 자세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상대자가 한 말에 대해 ‘이 부분은 좋지만 이 부분은 나쁘다.’ 또는 ‘여기는 옳지만 저기는 틀린다.’고 좋고 나쁨을 나누어 말해주는 것이다. 이를 분별기(分別記)라고도 한다. 즉, 조건에 따른 대답이다. 예를 들면, ‘죽은 자는 모두 윤회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뇌 있는 자는 윤회하고, 없는 자는 재생하지 않는다.’ 라고 조건에 따라 구분해서 답하는 것이다.

     ③반문답(反問答) ― 일단 되물어보는 것이다. 힌트를 주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형식이다. 반문기(反問記)로서 되물어서 대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월등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엇과 비교해서인가?’라고 다시 묻고, ‘하늘과 비교해서’라고 질문자가 말한다면 ‘열등하다’ 하고, ‘짐승보다’라고 한다면 ‘월등하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④치답(置答) ― 전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답을 않으면 상대가 반성을 하게 된다. 어디가 잘못됐을까 하고 생각을 고치게 된다. 그러니까 상대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다. 사치기(捨置記)라고도 한다. 논의 자체가 무익한 경우,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만동자(蔓童子-말룽까뿌따)가 부처님께 질문한 허황된 형이상학의 질문 14가지에 대해 부처님이 무기(無記)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네 가지 답변 형식을 가르침에 규칙으로 삼으셨다. 덮어 놓고 자상하게 하는 것만이 자비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꾸짖는 것도 자비이다. 경우에 따라 물리치는 것도 자비이다.

             

*네 가지 마음---아비달마에서는 우리의 마음상태를 크게 네 가지 마음으로 분류한다.

     ① 욕계의 마음(kāmāvacara-citta) - 선정 즉 근본 집중(appanā-samādhi)의 경지에 들지 않은 나머지 모든 심리상태를 뜻한다.

     ② 색계의 마음(rūpāvacara-citta) -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근본 집중에 든 심리상태를 뜻한다.

     ③ 무색계의 마음(arūpāvacara-citta) - 네 가지의 무색계 선에 든 심리상태를 뜻한다. 네 가지의 무색계 선은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④ 출세간의 마음(lokuttara-citta) - 세상을 넘어서는 과정으로 구성된 마음이다. 즉, 열반에 든 심리상태를 뜻한다. 출세간의 마음에는 네 단계의 깨달음인 수다원,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는데 이 각각의 단계는 다시 도의 마음(magga-citta)과 과의 마음(phala-citta)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마음으로 나누어져서 모두 8가지가 있게 된다.

    욕계에 있는 사람이 집중을 계발해서 초선(初禪), 이선(二禪), 삼선(三禪), 사선(四禪)의 색계 선에 들면, 그것이 색계 선의 마음(rūpavacara-jhāna-citta)이고, 같은 방법으로 집중을 계발해서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면 그것은 무색계 선의 마음이 됨을 뜻한다.- 실론섬 주해모음

    

*네 가지 집착(取, upādāna)---갈애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팔리어 ‘우파다나(upādana)’는 ‘강렬한, 극심한’이란 뜻의 ‘upa’와 ‘움켜쥐다, 잡다’라는 뜻을 가진 ‘ādāna’의 합성어이므로, ‘꽉 움켜쥠’ 즉 극심한, 지나친 갈애를 뜻한다. 네 가지 집착은 다음과 같다.

     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慾取, kāmā-upādāna) -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kāma-taṇhā)에서 비롯된 집착을 말한다. 감각대상들은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든 중생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러한 감각대상들은 색(色, 형상), 성(聲, 소리), 향(香, 냄새), 미(味, 맛), 촉(觸, 감촉)의 다섯 가지이다.

    예컨대, 형상[色]은 눈에 즐겁고 매력적인 대상이다. 그것은 원래 아름다움을 지닌 것 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실재하거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건 간에 즐거운 형상은 남자, 여자, 소비상품 등에서 쉽게 발견된다. 남자를 매혹시키는 것은 여자의 모습이고, 여자를 매혹시키시는 것은 남자의 모습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원하는 것은 옷, 보석, 자동차 등이다.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단지 형상이나 색깔만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외모만이 아니라 몸 전체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사람을 탐욕스럽게 하는 소비상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감각적 쾌락의 또 다른 원천은 몸의 감촉이다.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 편안한 옷, 겨울에 따뜻한 것과 여름에 시원한 것, 이성(異性)의 몸, 이 모든 들이 감촉에 대한 갈애만이 아니라 생명체나 무생명체의 몸 전체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는 감촉 대상이다. 감촉은 몸 전체에 대한 집착에 이르게 한다.

     ② 사견에 대한 집착(見取, diṭṭhi-upādāna) - 업과 그 과보는 없으며 내생, 정등각자, 아라한이 없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예컨대, 사견은 보시란 좋은 업을 짓는 행위가 아니고 단지 돈만 날리는 것이라는 견해 같은 것이다. 이 견해는 선행의 가치와 과보를 부정한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보시행은 보시자를 기쁘게 하고 보시 받는 자를 물질과 정신으로 이롭게 하고 심지어는 굶주린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보시자는 평판이 좋고 큰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죽어서는 천신계에 태어난다. 이러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견은 대체로 갈애에 뿌리를 두고 있고 물질에 대한 인류의 증대하는 갈망과 함께, 업에 대한 회의주의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들 사견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불교인의 사명이다.

     ③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 sīlabbata-parāmāsa-upādāna) – 팔정도(八正道)와 아무 상관없는 의식과 의례를 행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예컨대, 종교적인 의례 의식, 천도재(薦度齋)와 같은 의식을 행하거나 고행과 같은 수행으로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④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我語取, atta-vāda-upādāna) – 영혼, 자아, 살아있는 실체에 대한 믿음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이는 유신견(有身見)과 같은 것을 말한다. 유신견은 중생들이 몸과 마음이 자아(自我)이며, 혹은 자아의 소속이라고 잘못 아는 견해를 말한다. 몸과 마음은 모두 인연 소생법으로 갖가지 조건들이 모여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중생의 무지로 인해 ‘나’ 혹은 ‘나의 것’이라 오인하는 것이다. 해탈과 깨달음은 이 같은 견해가 잘못됐음을 알고 벗어나는 것이다. - 실론섬 주해모음

    

*네 가지 통찰(빠알리어 paṭivedha)---네 가지 통찰은 다음과 같다.

     ① 두루 아는 지혜에 의한 통찰(pariññā-paṭivedha) ― 고제(苦諦)에 대한 완전하고, 바른 이해를 뜻한다.

     ② 버림에 의한 통찰(pahāna-paṭivedha) ― 집제(集諦)는 버려야 한다는 통찰을 뜻한다.

     ③ 체험에 의한 통찰(sacchikiriya-paṭivedha) ― 멸제(滅諦)를 실현함을 뜻한다.

     ④ 수행에 의한 통찰(bhāvanā-paṭivedha) ― 도제(道諦)를 수행을 통해 계발함을 뜻한다. 

     

*네란자라강(Nerañjarā, 尼連禪河)---갠지스강의 지류(支流), 벵갈 지방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부다가야(buddhagayā) 지방을 지나간다.

    싯다르타가 초인적인 고행을 털고, 몸을 씻기 위해 네란자라강에 들어갔을 때 물에 비친 그의 모습을 경전은 이렇게 전했다. 가비라성을 떠난 지 6~7년이 흘렀다. 처음엔 당시 유행하던 수정주의(修定主義)에 의탁했다. 선인으로 알려진 알라라 칼리마와 우다카 라마푸틴한테 가르침을 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교설에 그쳤다.

    그리하여 네란자라 강변의 우루베라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통 고행주의자들의 수행터였다. 6년간 그가 행한 고행의 치열함은 악마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수행이었지만 그와 같은 극단의 수행으로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고행을 버리고 선정에 들기로 했다.

    오랜 고행으로 몸은 뼈 가죽만 남을 정도로 쇠약해진 싯다르타는 네란자라강에서 몸을 씻고 얼마 동안 마을 처녀 수자타로부터 우유와 꿀에 쌀을 넣고 끓인 유미죽을 받아먹었다. 오랜 고행과 금식을 해온 싯다르타가 갑자기 일반 음식을 드셨다면 반드시 탈이 나셨을 터, 수자타의 유미죽을 드시고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네란자라강변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했다.

    이후 싯다르타는 평온한 가운데 선정에 들어가, 비로소 존재의 실상이자 어둠을 밝히는 진리로서 중도연기(中道緣起)를 깨닫는다. 즉, 선정에 드신 지 7일째 되는 새벽에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순간, 석가세존께서는 심안이 확연히 열리면서 무상정등각, 즉 아라한과를 얻으셨다.

       

*념(念)---→염(念, 빠알리어 sati, 산스크리트어 smṛti) 참조.

    

*념념(念念)---→염념(念念) 참조.

    

*념념상속법(念念相續法)---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 참조.

    

*념념심부절 념불불리심(念念心不絶 念佛不離心)---육도중생(六道衆生)이 겪는 삼재(三災) 팔난(八難)의 환난, 곧 근심ㆍ 두려움ㆍ모든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염(念)하고 실행하면 다 구제받는다고 하셨다. 생각과 생각마다 부처님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고 부처님을 본받겠다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찰나찰나 마음을 일으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의 땅, 곧 정토라는 것이다.

       

*노모불견불(老母不見佛)---<오등회원(五燈會元)>에 나오는 말이다. 부처님이 사위성(舍衛城)을 방문하셨을 때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나왔으나 성 동쪽에 살고 있던 한 노파는 부처님을 보지 않으려고 문을 닫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노파의 열 손가락 끝에서 부처님이 뚜렷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이 문을 닫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는 ‘노모불견불(老母不見佛)’ 이야기이다. 노파의 손가락 끝에 나타난 부처님은 누구라도 저마다 성품에 다 갖추어져 있는 자성불(自性佛)로서 참 부처님이다. 손가락 끝에서 부처님이 나타나는 까닭은 노파가 모든 집착을 벗어나 노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경계가 참 부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참 부처가 아닌 형상으로 나타난 석가모니 몸에 집착하고 그가 한 말에 집착해 참 부처를 보고 찾으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것을 알고 있으므로 노파는 석가모니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성품에 본디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만 부처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자비심의 표출이다. 중생들의 잘못된 소견들을 깨뜨리고 올바른 앎을 드러내려는 방편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남송시대에 대천 보제(大川普濟) 스님이 편찬한 선서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 송대에 발간된 다섯 가지 선종사서(禪宗史書)를 압축한 선종의 통사(通史)이다. 책명은 다섯 가지의 등사(燈史)를 회통(會通)해서 하나로 엮었다는 뜻이다.

  

*노사나불(盧舍那佛)---천태종에서는 삼신불(三身佛)로 법신불(法身佛) ‧ 보신불(報身佛) ‧ 화신불(응신불)을 말한다. 그리고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는 자성신(自性身)ㆍ수용신(受用身)ㆍ변화신(變化身)의 3신을 말하는데, 이는 각각 법신ㆍ보신ㆍ화신(응신)에 대응되며 그 개념도 비슷하다. 그리고 법신불은 비로자나불, 보신불은 노사나불, 화신불은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보신불(報身佛)은 인(因)에 따라 나타타는 불신(佛身), 과보와 수행의 결과로 나타나는 불신을 말하는데, 이를 수용신(受用身)이라 하며, 선근공덕의 과보를 수용하는 붓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수용신을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 분류한다.

    자수용신은 수행을 통해 얻어진 불과(佛果)와 내적 체험에 의해 스스로 증득한 자내증(自內證)의 법문을 스스로 수용하고 즐기는 불신이다.

    타수용신은 이 깨침의 보과(報果)와 뛰어난 법문을 다른 사람에게 수용시키기 위해 지도하고 교화하는 불신이다. 즉, 깨달음의 경지와 기쁨을 중생(衆生)들에게 설해 나누어주고, 그들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수용하게 하기 위해 나타내는 불신(佛身)을 말한다.

    타수용 불신으로 실제로 존중되고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님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있으며, 이들 부처님은 특별한 권능과 함께 극락전, 약사전 등 독립전각에 봉안된다.

    이에 비해 자수용 보신불로 대표적인 부처가 노사나불인데, 자수용 보신불인 노사나불은 독립된 전각에 모시지 않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비로자나불 왼편 협시불로 봉안된다.

    결국, 노사나불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신 공덕으로 나타나신 보신 부처님으로 복(福)과 덕(德)이 가득하게 이 세상의 불쌍한 모든 사람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이다. 그리고 천태종에서 말하는 보신불인 노사나불의 ‘노사나(盧舍那)’는 정만(淨滿), 즉 법성ㆍ불성이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법신이 그냥 그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신의 체에 불성이 충만해 있는 것이다. 다만 화엄종에서는 노사나불을 본존불인 비로자나불과 같은 말로도 쓴다.---→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 삼신불(三身佛) 참조.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중국 서진(西晋)시대 도사(道士) 왕부(王浮)가 지었다고 하는 위경(僞經)이다. 왕부가 일찍이 승려 백원(帛遠)과 불도(佛道)에 대해 논쟁을 벌여 여러 차례 굴복 당했는데 이에 원한을 품고 거짓으로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용은 노자가 일찍이 인도에 들어가 석가불(釋迦佛)이 돼 호인(胡人)을 교화했다면서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도교의 교조(敎祖)가 불교의 교조인 석가보다 앞섰다고 말하고 있다. 즉,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중국에서 인도로 건너가서 인도인이 된 바로 노자(老子)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실마리가 이미 <후한서(後漢書)>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후한 무렵부터 이런 이야기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불(道佛) 투쟁이 격화됨에 따라 도교를 우위에 놓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노자화호경>은 시대가 지나면서 내용이 불어나 2권, 10권, 11권 본 등이 나오기도 했다.

   

*노행자(盧行者)---중국 선종(禪宗)의 6조 혜능(慧能) 대사를 일컫는 말임. 그의 속성이 노(盧)씨라서 이런 말이 생겼다.그는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현(新興縣)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이 가난해 공부를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해다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24살 때에 장터에서 가서 나무를 팔고 돌아오다가 어떤 분이 <금강경(金剛經)>을 읽는 소리를 담 밖에서 듣고 마음에 깨친 바가 있어 황매산(黃梅山)으로 가서 오조(五組) 홍인(弘忍) 선사를 찾아뵙고 그가 시키는 대로 디딜방아 찧는 일에 종사했었다.

   그런 어느 날 오조 스님이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함에, 당시 교수사(敎授師)였던 신수(神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신시보제수 심여명경대 시시동불식 물사야진애(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리라.」벽에 걸린 이 글을 보고 노행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그 옆에 붙였다.

  「보제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묻으랴.」

   오조 홍인 선사는 노행자의 글을 높이 평가해 그를 후계자로 인가하고 조사의 법통을 전하는 징표로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시기하는 사람들을 피해 남방으로 돌아가 18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나타나 비로소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켰다.---→혜능(慧能, 638~713) 참조.

             

*녹야원(鹿野苑, 미가다야, Migadāya)---바라나국(婆羅捺國)에 있었던 부처님이 첫 설법[초전법륜(初傳法輪)]을 행한 사승 동산.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인도 바라나시(Varanasi-베나레스) 북방 약 7㎞에 위치한 사르나트(Sarnath) 유적이 곧 녹야원 터이다. 붓다가 보드가야(Bodhgaya)에서 정각을 이루신 삼칠일(三七日) 후에 이곳에 와서 5명의 수행자[五比丘]에게 사성제(四聖諦) 법을 비롯한 진리를 설해 이들의 귀의를 받았다. 사르나트는 과거 사슴이 많이 살고 있어서 사슴동산-녹야원(鹿野園)이라 불렀다고 한다. 아소카왕이 불교성지를 순례할 당시 이곳에 탑과 석주(石柱)를 세운 뒤, 뭇 신도의 숭앙을 받아왔으며, 8세기 초 현장(玄奘)이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엔 정사(精舍)가 있었다고 한다.

   

*녹자모(鹿子母, 위사카 미가라마따/Visākhā Migāramātā)---미가라마따(녹자모)는 미가라(Migāra)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위사카는 결혼 전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이미 예류과를 얻은 여신도로서 세존께서 보시자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을 받은 여인이다. 바로 사왓티(사위성) 동쪽 원림[東園林]에 있는 미가라마따강당(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은 위사카 미가라마따가 지어 부처님께 바친 것이다. 위사카는 각층에 500개의 방이 있는 중각(重閣)의 미가라마따강당(녹자모강당)을 지어 승가에 시주했는데, 부처님은 생애의 후반부에 20년간 사왓티 시에 머물 때에 하루를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보내면, 다음날은 이곳에서 보낼 정도로 많은 경들이 이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위사카는 결혼 후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왓티(사위성)에서 시집살이를 하면서 종교문제로 시집과 갈등이 생겨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하자, 시아버지와 재판까지 하면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면 지참금의 2배를 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내 시집식구를 꼼짝 못하게 한 여인이다.

    그러함에도 위사카는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조건을 내걸고 시아버지를 설득하고 집안에 법석을 열어 부처님을 초청해서 법문을 듣게 됐다. 그때 휘장 뒤에서 이를 엿들은 남편(미가라)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재가불자로 귀의하도록 했다. 그래서 고마워하는 남편으로부터 미가라의 어머니(鹿子母)라는 칭호를 듣게 됐다고 한다.

    위사카는 현모양처였다. 시아버지나 남편이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절대로 굴하지 않고 여법(如法)하게 행동을 했다. 그리하여 가산을 잘 수호하고 안방마님으로서 제 몫을 다했다. 그녀는 베푸는 여자여서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녹자모강당은 기원정사 옆에 있다고 해서 동원정사(東園精舍)로도 불린 절이다. 공사감독은 목갈라나가 했으며 부처님은 이곳에서 6차례나 여름안거를 보냈다.---→위사카(Visākha) 참조.

               

*논(論,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대법(對法)을 말하며, dharma는 법, abhi는 -에 대해라는 뜻. 곧, 불타가 말한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이 논이다. 오랫동안에 걸쳐 많은 논(論)이 만들어지고 후일 이를 정비한 것이 논장(論藏)이 됐다. 경(經)ㆍ율(律)은 붓다 재세 중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논은 붓다 입멸 후 제자들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논의 작제(作製)는 부파불교시대의 특징으로서 각 부파는 불교 교법에 대한 주석은 물론이고, 거기에서 도출된 설법의 해석에 의거해 자파(自派)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수립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그 내용이 각 부파에 따라서 상이한 특징을 나타냈다.

    아소카왕 이후 불교 사원이 많이 지어지기 전에는 승려들이 정주하지 않고 주로 유행을 했으므로 게송은 쓸 수 있었지만 논문을 쓸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파불교시대에 접어들어 한 곳에 정주하게 되고, 절이 많이 세워지고, 자기 방이 생겨 머무르게 되면서부터 승려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져 게송이 아닌 논문 같은 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논서로 대표적인 것은 남전불교와 북전불교 공히 칠론(七論)이 있다. 그 외에 유명한 논서로는, 소승 논서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저술로는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발지론(發智論)>, <대비바사론(對毘婆沙論)>, <구사론(俱舍論)>, <청정도론(淸淨道論)> 등이 있으며, 대승 논서로는 <중론(中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ㆍ<섭대승론(攝大乘論)>ㆍ<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ㆍ<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이 유명하다.

   

*논모(論母, 마띠까/mātikā, 마트리카/mātṛkā)---이는 논모(論母), 지모(智母), 본모(本母), 행모(行母)라고 번역된다. 논의 처음에 두는 목차와 같은 것으로 법의 요목이나 법수적인 것을 함께 모은 것이다. 논장의 법과 의미를 형성하고 증장하는 토대가 된다.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용어 중에 하나가 바로 율모와 논모이다.

   율모(律母)는 율의 계조문이나 조목을 위한 요목(배경, 사람, 사건, 제정 방법, 명령 부분, 죄, 무죄, 파계, 죄의 생성 이유 등), 세부 요목의 논구를 말한다.

   논모(論母)는 경의 논모와 아비달마의 논모가 있다. 논모는 사람, 경전, 수, 의미상, 문장 형식상으로 구분한다. 빠알리 7론의 논모로서 법(dhamma)은 주로 오온, 십이처, 십팔계, 사성제, 22근으로 구성된다. - 각묵 스님

   즉, 논문 처음에 두는 목차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책 목차처럼 단순히 제목만 쓴 것이 아니라, 논모를 ‘개요’라고 번역하듯이 경과 율의 주요주제(내용)를 표제어만 뽑아서 외우기 쉽고, 전체를 파악하기 쉽게 간략히 축약한 것이다. 즉, 불설에 의해 제시된 어떤 논제에 대해 그 논점이나 주제를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해 둔 것을 모은 목록이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5~6줄 전후 정도로 축약해 놓아서 논모만 봐도 그 경(經)ㆍ율(律)이나 논(論)의 내용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아비달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용어 중에 하나로서, 논모 혹은 논의(論議, upadeśa)라 하기도 하며, 더러 논장(論藏)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논사(論事, Kathāvatthu)---현재 남방 상좌부에 전하는 빠알리어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에는 7론(七論)이 유명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논사(論事)>이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논장으로,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 치하에서 단행된 제3차 불전결집에서 목갈리풋타 티사(Moggaliputta-tissa) 장로가 천여 명의 학승들 도움을 받아 조성했다고 한다. 아비담마 칠론 중에서 부처님이 설하지 않으신 것으로 전승되어온 책이다.

    당시 외도(外道)들이 승가의 물질적 풍요를 탐해 승가에 들어와 자신들의 교설을 퍼뜨리는가 하면, 여러 부파의 이설이 난무해 승가의 계율과 수행이 문란해 있었다. 이에 목갈리풋타 티사 장로가 다른 부파의 견해를 논파하고 상좌부의 교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아소카왕의 지원을 받아 쓴 책으로 부파불교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단정하지 않는” ‘분별설(分別說, vibhajja-vāda)’을 지지하는 사람은 불교도이며, 이에 반하는 비구는 불교도가 아니라고 판단해 승단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분별설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논사(論事)>이다. 원래 붓다의 교단은 일찍이 분별설(分別說)의 교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분별설이란 아주 상세히 분석해 가르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 <논사(Kathāvatthu)>는 상좌부의 정통설을 세워 다른 부파의 이설(異說)을 깨뜨린다고 하는 목적을 가진 내용으로 시종 문답형식으로 일관되며 주석서를 보지 않고서는 문답의 주객이 누구며,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자가 어떤 부파 소속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논(論)ㆍ소(疏)---경(經)이란 부처님 가르침을 정리한 것이고, ‘논(論)’이란 부처님이 설하신바 경전을 해석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알기 쉽게 묻는 자(問者)와 답하는 자(答者)를 세워 묻고 답해 정리(正理)를 밝힌 것이 논이다. 그러니 ‘논(論)’이란 경을 풀이한 것으로 부처님 제자나 보살, 혹은 높은 경지의 학승, 선지식이 지은 것이다. 예컨대, 마명(馬鳴)ㆍ용수(龍樹)ㆍ무착(無着)ㆍ세친(世親) 같은 대학승이 쓴 경전 해설서에 붙이는 이름으로서 거의 경전에 버금가는 무게를 지녔다. 그리고 논을 모은 것을 논장(論藏)이라 한다.

    소(疏)는 논에 대한 주석서이다. 소(疏)는 경이나 논을 더 자세히 풀이한 것으로서, 경전 분량이 적을 때는 낱말 하나하나를 풀어 설명해 놓기도 했다. 소(疏)는 보통 사람이 쓴 것을 말하지만, 이도 역시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야 쓸 수 있다.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같은 제목을 지니며, 중국의 학승이나 원효 대사 같은 분이 쓴 것을 소(疏)라고 했다.

         ※종요(宗要) : 경전의 내용을 간추려서 알기 쉽게 설명한 글. 

        

*논장(論藏, 빠알리어 Abhidhamma-piṭaka,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 Piaka)---아비달마(阿毘達磨)라 음역한다. 3장(藏)인 경(經) ․ 율(律) ․ 논(論) 중 ‘논’을 모은 것으로 부처님 가르침인 경(經)과 율(律)에 관해 주석 ․ 연구한 문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즉,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고 쉽게 전하기 위해 부처님 말씀을 요약하거나 주석을 단 것 중에서 특히 선지식의 글을 논장이라 하고, 부처님 법과 같이 높이 취급했다. 논장은 <구사론>, <발지론>, <대비바사론>, <청정도론>, <성유식론>, <대승기신론>과 같이 제목만 봐도 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논장에는 설일체유부 7론과 남방상좌부 7론이 유명하다. 

      

*뇌고(牢固)---뇌고란 아주 튼튼하고 굳다, 단단하고 견고하다, 깰 수 없이 튼튼하다는 말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설명된 오뇌고설(五牢固說)에 의하면,

      ① 해탈뇌고(解脫牢固) ―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의 오백년 동안을 해탈뇌고라 한다. 이 시기에는 지혜를 얻어서 깨달음을 열고 해탈하는 이가 많은 시대라 했다.

      ② 선정뇌고(禪定牢固) ― 해탈뇌고 다음 오백년을 말하는데, 수행해 도를 이루는 이가 적어도 선정(禪定)을 이루는 이가 많은 시대라 했다.

      ③ 다문뇌고(多聞牢固) ― 세 번째 오백년을 말하는데, 이 시기에는 지식이 많아 이론이 발달하고, 불법을 열심히 청문(聽聞)하는 이가 많으나 실제 수행이 쇠퇴한 시대라 했다.

      ④ 탑사뇌고(塔寺牢固) ― 네 번째 오백년을 말하는데, 이때는 절을 짓고 탑을 세우는 일이 성행하는 시대라고 했다.

      ⑤ 투쟁뇌고(鬪爭牢固) ― 다섯 번째 오백년으로서, 이때는 서로 자설(自說)만이 훌륭하고 타설(他說)은 못하다고 다툼이 일어나는 시대로, 이 시대를 후오백세라 한다. 그러나 이 후오백세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 부처님의 설법에 진실한 믿음을 낸다고 했다. 이런 상태로 불교가 전승돼가는 시기이다.---→말법시대(末法時代) 참조. 

          

*누진통(漏盡通)---육신통(六神通)의 하나. 지극한 수행정진을 한 결과 얻게 되는 여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한 능력을 육신통이라 한다. 그 중 누진통은 다른 다섯에 비해 가장 얻기 힘든 신통이다. 누진통은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로서, 다른 종교로서는 얻어질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초능력이다.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끊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람이 이에 통하면 극락에 이른 것과 같다고 한다.

    다른 5신통은 외도(外道)나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얻을 수 있지만, 누진통만은 부처 또는 아라한(阿羅漢)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붓다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이 누진통을 얻어 부처가 되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누진통을 포함한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붓다는 제자들이 이러한 신통력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셨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불제자들이 이와 같은 신통을 함부로 나타내는 것을 계율로 정해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지혜의 종교이지 다른 종교처럼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육신통 참조.

     

*늑나마제(勒那摩提, Ratnamati)---보의(寶意)라고도 한다. 중인도 출신 승려로, 508년에 북위(北魏) 뤄양(洛陽)에 와서 세친(世親)의 <십지경론(十地經論)> 등 총 6종 24권을 번역했다.

  

*능가경(楞伽經, 산스크리트어 랑카바타라 수트라/Lankavatara-Sutra)---<능가경>은 능가성에 들어가 설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능가라는 말은 도달하기 어렵고(不可到), 들어가기 어렵다(難入)는 뜻이다. 이는 여래의 심오한 경지는 도달하기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말해 놓은 것이다.

    원제는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이고, <입능가경(入楞伽經)>이라고도 한다. 유식유가행파에 영향을 주었으며, 선(禪)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래서 참선하는 경이라 해서 <능가경>을 선경(禪經)이라고도 한다.

    <능가경>의 핵심 사상은 "잠재의식"과 "종자식"이다. 사람이 어떤 사상(事象)을 만났을 때, 언제 한번 본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세에 그러한 인연이 있었는데, 비록 자신의 영혼이 과거에 죽었어도, 마치 식물의 씨앗인 종자가 남아 이것이 자라듯이 모든 사람들에겐 과거세의 종자가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자식(種子識-아뢰야식)이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잠재의식과 종자식을 관(觀)해 유식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 그리고 이것을 "선관법(禪觀法)"으로 수행해 체득하겠다는 것이 바로 "선종"의 좌선이다. 이 방법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거쳐 고도의 수행단계가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 능가경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것을 일러 점차 수행을 통해 깨닫는다고 해서 "점오"라 한다.

    이 〈능가경〉에 대해서 중요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달마 대사가 처음 중국에 건너왔을 때 이 경을 ‘여래심지(如來心地)의 요문(要門)’이라 해서 이를 의지해 수행의 지침을 삼도록 했기 때문이다. 달마가 혜가에게 심인을 전해 줄 적에 이 4권 〈능가경〉을 전했다 하고, 중국에 오직 이 한 권의 경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다. 또한 달마 대사가 중국에 와서 세운 초기 선종을 ‘능가종’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이 〈능가경〉이 선종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반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5조 홍인 대사에 이르러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능가경〉대신에 간명한 내용으로 돼있는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도록 권해 다시 〈금강경〉이 선수행의 큰 역할을 하게 됐다

    <능가경>의 중요한 교의의 하나는 장식(藏識-아뢰야식)의 설명이다. 4권 경의 첫 품인 ‘일체불어심품’에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결국 마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서 일체 현상을 낳는 신비로운 마음을 장식이라 말하고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의 근원이 되는 마음은 일체 정신작용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와 같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장식이라 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오직 장식 밖에 없으며 나머지 모든 것은 장식이 나타내 놓은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 했다.

    장식이 모든 것을 낳는 것은 마치 큰 바다가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하고, 사람들이 장식을 모르는 것은 파도만 보고 바다 전체를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장식의 신비로운 이치를 깨닫기 위해 선을 닦아야 한다 하며, 선을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관찰의선(觀察義禪), 반연진여선(攀緣眞如禪),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의 넷으로 구분 설명하고 선을 닦아야 여래의 심지를 얻는다고 했다.

    <능가경>은 <십지경(十地經)>,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더불어 대승불교 유심사상을 표방하



는 대표적인 경전이며,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과 함께 선종에서 매우 존중되고 있다. 4세

 



기경에 형성된 듯한데, 일부는 그 이전에 형성된 듯하다. 구성은 붓다가 나바나왕(羅婆那王)의 권

 



청(勸請)에 의해 랑카(楞伽:현재의 스리랑카)에 건너가 스리랑카 능가산(楞伽山)을 배경으로 불

 



제자 중 대표적인 질문자인 대혜(大慧, Mahāmati)의 물음에 대해 대승불교의 여러 교설을 설명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경전은 대승불교 중에서도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여래장사상(如

 



來藏思想)에 입각해 그 이전의 여러 학파의 설을 풍부하게 채택하고, 이들 학설이 종교경험과 어

 



떻게 맺어져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오법(五法), 삼성(三性), 팔식(八識), 이무

 



아(二無我) 등 대승경전에 나오는 여러 사상들을 종합 융화하고 있다. 그리고 여래장과 아뢰야식

 



의 사상적 결합을 하고 있다. 여래장과 아뢰야식이 하나라는 말이다.


    “요컨대 미혹의 세계가 벌어지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 것이 유식사상이라면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근거를 설명한 것이 여래장사상이고, 바로 그것을 설한 경전이 <능가경>이다.”- 계환 스님

    한역본으로는 유송(劉宋)시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능가아발타라보경(楞伽阿跋陀羅寶經)>과 북위(北魏)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 당나라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등 세 가지가 있고, 그 외에 티베트역이 현존하는데 그 중에서도 유송시대 구나발타라역본이 가장 원초적(原初的)인 형태를 전하고 있다.---→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참조.

        

*<능가경> 사종선(四種禪)---<능가경>에 제시한 4종선을 말한다.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관찰의선(觀察義禪), 반연여선(攀緣如禪), 여래선(如來禪) 등 네 가지이다.

     ①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 성문, 연각, 외도 등의 수행자들이 인무아(人無我)를 관찰함에 있어서 무상과 고의 부정에만 집착하는 것인데, 이는 관(觀)과 다르지 않으니 상(想)이 제거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범부(소승불교도 및 외도)들이 행하는 선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

     ② 관찰의선(觀察義禪) - 의미를 관찰하는 선정으로서 공관의 선정, 법무아(法無我)를 관찰해 점차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③ 반연여선(攀緣如禪) - 진리에 안주해 망상을 낳지 않는 선정, 망상이 생하지 않는 진여에 입각한 선을 말한다.

     ④ 여래선(如來禪) -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가서 자각성지상(自覺聖智相)의 3종 낙주(樂住)를 얻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삼매를 포괄하는 최고의 선정.

※자각성지상(自覺聖智相)이란 보살 마하살이 홀로 고요한 곳에서 스스로 깨닫고 관찰하며 다른 것으로 말미암지 않나니 망상을 떠나서 더더욱 위로 승진(昇進)해 여래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초기 선종 역사를 기록한 서적. 사자(師資)란 스승과 제자란 말이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에서-달마(達摩)-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신수(神秀)-제8조 보적(普寂)에 이르는 선사 8대에 관한 전기이다.

    708년 당나라시대 정각(淨覺)이 기록했다. 단순한 인물평전이 아니라 다양한 선사상을 담고 있어 초기 선종사 연구에 긴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다만 6조 혜능(慧能) 대신 북종선의 신수(神秀)를 올린 점으로 봐서 북종선 중심이라 할 수 있다. 1907년에 돈황에서 발견된 이후 북종선에 대한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는 계기가 됐다.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유송(劉宋)시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능가경(楞伽經)>의 원명이다.---→능가경(楞伽經) 참조.

    

*능가종(楞伽宗)---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산스크리트어 Gunabhadra, 394~468)가 번역한 4권본 <능가경(楞伽經)>에 의거해 선법(禪法)을 펼친 달마(達摩) 대사와 2조 혜가(慧可) 계통을 총칭하는 말인데, 능가종(楞伽宗)이란 명칭은 그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훗날 이 분야를 처음 연구한 호적(胡適, 1891~1962)이 붙인 것이다.

    

*능견(能見)과 소견(所見)---보는 작용을 능견, 보이는 것을 소견이라 한다. 따라서 눈을 능견(能見-보는 측)이라고 부르고 눈에 보인 것을 소견(所見-보이는 측)이라고 부른다. 능견과 소견은 연기 관계에 있다. 따라서 능견이 없으면 소견이 있을 수 없다. 능견인 눈이 없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책과 컵 등을 눈에 보인 것[所見]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말이다. 또 이렇게 눈도 없고, 눈에 보인 것도 없다면, 양자 관계인 ‘보는 작용’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능견상(能見相)---능견이란 인식주체를 가리킨다. 능견상은 전상(轉相)에 상응한다. 상응하다는 말은 어울리다, 비슷하다는 말이니 능견상이 곧 전상이란 말인데, 무명(無明)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 인식 주관이 능견상이다. 진여의 지혜는 본래 주객의 구분이 없지만, 무명에 미혹돼 진여의 지혜가 허망 분별이 돼 차별 경계를 보는 것이 전상이다. 무명업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 능견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능사(能捨)ㆍ능시(能施)---능사(能捨)란 무엇이든지 버릴 수 있는 마음이다. 돈이 있는 것이 좋지마는 없어도 낙심하지 않고 가난해지면 그때는 또 그 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또는 지위가 높은 것이 좋지마는 낮아져도 낙심하지 않고 버릴 때가 되면 버려도 그만이라고 생각을 한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지마는 맛없는 것을 먹어야 할 때에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이른 바 능사이다.

    능시(能施)란 굳이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다. 내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남에게 나누어 주자, 혼자만 행복하게 되면 미안하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능시이다.

    부언하면 처음에는 ①집착(執着)으로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②능사(能捨)로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③능시(能施)로 자기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남은 행복하게 해주자고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이 과정은 불교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사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대뜸 되는 것은 아니다. 집착ㆍ능사ㆍ능시의 순서로 차차 나아가는 것이 불교수행 곧 바른 삶이다. 

   

*능소(能所)---능소란 주관과 객관을 말한다. 동작의 주체가 되는 것을 능(能), 동작의 객체ㆍ목적ㆍ대상을 소(所)라 한다. 수행자는 능행(能行), 수행해야할 내용은 소행(所行). 사물을 능히 볼 수 있는 눈은 능견(能見)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만물(대상)은 소견(所見)이다. 능소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이 같은 대립의 상태에서는 상대가 끊어진 절대의 경지인 열반을 체험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능소란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 같은 대대(待對)가 있게 되면 절대인 참 도리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능소를 뛰어넘는 것이 공부의 중요한 마루턱이다.---→능견(能見)과 소견(所見), 능연(能緣)과 소연(所緣), 능전(能詮)과 소전(所詮) 참조.

   

*능엄경(楞嚴經)---원제는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印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라는 긴 이름이지만, 줄여서 <수능엄경> 혹은 <능엄경>이라 약칭하고 있다. 경전의 긴 이름을 해석하면, “부처님의 이마처럼 높은 비밀의 가르침을 닦아 증득하기 위해 모든 보살들이 만행을 닦으면 마침내 다 이루어지는 으뜸가는 경”이라는 뜻이다. ‘능엄(楞嚴)’이라고 하는 말은 용맹스러운 행위, 또는 아주 건전한 행위, 건사한 분별, 건전한 분별력 이런 뜻이다. 이와 같이 아주 건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분별력을 능엄(楞嚴)이라고 한다. 이 경은 밀교계통 경전이며, 부처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해 얻는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아난(阿難陀) 존자가 점심 공양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등가(摩登伽)’라는 처녀에게 물 한잔을 얻어 마시게 되는데, 그녀는 아난 존자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마등가는 집에 돌아와 주술을 잘하는 어머니를 졸라서 결국 아난 존자로 하여금 집으로 오게 만들어버린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아난 존자가 마도(魔道)에 걸려서 위기에 처한 것을 아시고 ‘능엄주(楞嚴呪)’를 외워서 구출해 내었다. 그 후 아난은 마등가의 유혹에 홀린 것이 자신의 수행부족임을 알고, 부처님께 도를 닦는 방법을 여쭙게 됐는데, 그때 부처님과 아난 존자와의 문답이 <능엄경>의 주요내용이다.

    선정의 힘과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의 공덕력을 찬양하고, 이 다라니에 의해 모든 마귀장을 물리치고 선정에 전념해 여래의 진실한 경지를 얻어 생사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후 목적임을 밝혔다.

    이 경은 밀교사상이 가미돼 밀교적인 색채가 짙지만 선정(禪定)이 역설돼 있기 때문에 밀교 쪽보다는 선가에서 환영을 받아 중국에서 이 경의 주석은 모두 선문에 의해 이루어졌다.

<능엄경>은 인도의 나란다사(那爛陀寺)에 비장된 이후로 인도 안에서만 유통시키고 타국에는 유출하지 못하도록 왕명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국에 전래되지 못하다가 당(唐) 중종(中宗) 때인 705년 인도 스님 반랄밀제(般剌蜜帝)에 의해 전래되고 방융(房融)과 함께 한역됐다고 한다.

    <능엄경>은 천태, 화엄, 유식, 밀교, 선종, 정토 등 여러 불교사상을 수행의 입장에서 회통시킨 경전이지마는, 그 내용으로 봐서 중국에서 많이 가필돼 오히려 중국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AD 720년경 중국 선종에서 찬술한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내용이 붓다가 여러 경전에서 설한 것을 총정리한 것이기에 다른 경전에서보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수행서라 할 수 있다. 전체 10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제7권에서 능엄신주(楞嚴神呪)를 설명하고 있으며, 제8권에서는 보살의 수행단계로 57위(位)를 설하고, 제10권에서는 오음(五陰)의 근원을 설하고, 경을 마친 뒤 이 경의 공덕에 관해 부언하고 있다.

    이 경이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고려대장경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봐 이미 그 이전에 유입됐음이 분명하며, 우리나라 불교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전문 강원에서는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과 함께 4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돼 있다.---→위경(僞經) 참조.

        ※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 - 백산개는 흰 비단으로 덮개를 만든 양산으로서 왕위를 상징하는데, 불지공덕(佛智功德)이 수승함을 전륜성왕에 비유한 것이다.

        ※ 마등가(摩登伽. Matanga)---바라문 여인.

        ※ 능엄경엔 밀교계통의 불공삼장(不空三藏, 불공금강, 705~774)이 도입해 한역하고, 조선 후기에 개운당조사(開雲堂祖師)가 주석을 단 <유가심인능엄경(瑜伽心印楞嚴經)>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 헌데 이 능엄경은 변질된 외도 경전이라는 비판이 있다.---→개운 조사(開雲祖師) 참조.

 

*능엄선(楞嚴禪)---능엄선은 <능엄경(楞嚴經)>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참선수행법이다. <능엄경>에서 설하는 25가지 수행방법인 이십오원통(二十五圓通) 중, 25번째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근원통’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근 가운데 이근(耳根, 귀, 청각), 즉 귀로 듣는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이다. 소리를 들을 때 듣는 자 즉 무엇이 듣는지 그 자성(본성)을 깨닫는 이치로, 이것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 또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고 한다. 들은 것을 되돌려서(反聞) 자신의 자성, 자신의 본성이 듣게 해(聞自性) 자각함으로써 번뇌를 잊고 불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이근(耳根) 하나가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해탈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원통(圓通)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안근(眼根)이나 비근(鼻根)이 아닌 이근이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입과 코도 마찬가지며,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앎이 생기고, 마음과 생각은 분잡해서 단서가 없지만, 이근은 담장에 막히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오직 이근만이 전체를 통하는 진실한 것이다. 이근이 탁 트여서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각각 자성을 반조해 불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근원통 수행은 바깥에서 나는 소리(外耳聲)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소리(內耳聲)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깥의 소리란 바람소리, 물소리, 또는 타인이 염불, 독경하는 소리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소리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즉 다라니나 나무아미타불 등 염불소리, 독경소리를 자신의 본성이 듣는 것이다. 즉,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들음으로써 ‘누가 이 소리를 내고 누가 이 소리를 듣는가?’, ‘듣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을 통해 번뇌를 단절하고 자성이 곧 불성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엄선 수행법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고, 그 다음에는 ‘돌이켜서 듣는 그 놈을 자성이 듣는(反聞聞性)’ 것인데, 중국 명ㆍ청(明淸) 대에 형성된 염불시수(念佛是誰-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 화두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인가라는 반문을 통해 본래면목을 깨닫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이근원통(耳根圓通) 반문문성(反聞聞性)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아난아! 소리도 사라지고 메아리도 없어지게 되면 너는 들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은 것이 없다면 듣는 성품(자성)이 이미 없어져서 고목과 같을 것이니, 종(鐘)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과 없음을 아는 것도 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너에게서 그 듣는 성품 자체가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한다면 무엇이 있어 그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저절로 소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지, 소리가 생겼다가 없어짐이 너의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아니니라.”

   선불교에서 <능엄경>을 중시한 것은 중국 송 대부터로 특히 선원에서 선승들이 능엄주를 외우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송 때인데, 능엄주를 외우면 보다 쉽고 빠르게 능엄삼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불교에서 <능엄경>을 강조한 이는 고려중기 청평거사 이자현(李資玄)이 있으며, 근현대에는 용성(龍城) 스님과 성철(性徹) 스님께서도 <능엄경>을 중시해 제자들에게 능엄주를 외우라고 강조하셨다. 능엄주에 마음을 집중시켜 능엄삼매를 얻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윤창화 ---→이근원통(耳根圓通) 참조.

 

       

*능엄신주(楞嚴神呪)---원명은 대여래불정능엄신주(大如來佛頂楞嚴神呪)인데, 줄여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더 줄여서 능엄신주 혹은 능엄주라 한다. <능엄경(楞嚴經)> 10권 중 제7권에 능엄신주가 실려 있다. 능엄경과 능엄신주 관계는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 관계와 비슷하다.

    성철 스님이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좌들과 신도들에게 능엄신주 기도를 시켜서 유명해졌고, 지금도 성철 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사 백련암에서는 새벽기도 때 능엄신주를 독송하고 있다. 능엄주(楞嚴呪)에서 능엄이란 말이 ‘용맹’이라는 의미여서 능엄주가 좋지 않은 것, 내가 살아가는데, 또 공부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런 마(魔)의 요소들을 쳐부순다든지, 항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그런 의미가 이 ‘용맹’이라고 하는 뜻 속에 포함이 돼 있다.---→수능엄(首楞嚴) 참조.

   

*능연(能緣)과 소연(所緣)---능연과 소연이라는 단어는 유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인데, ‘연(緣)’은 서로 인연을 맺는다는 말이고, 인연을 맺어야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유식에서는 우리 마음은 능동적이고 주관적으로 사물의 가치를 좌지우지하며 판단한다고 보고 있으며, 외부대상은 수동적이며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인식대상[대경(對境)]을 소연(所緣)이라하고 대상을 보고 아는 것을 능연(能緣)이라고 한다.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의 관계와 같다.

    유식불교에서는 주관과 객관을 능연과 소연으로 말하는데, 이 둘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파악된다. 인식이 성립되는 조건으로 인식대상은 인정하나 주관과 객관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식대상은 ‘의존되는 것’이며,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은 그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연(객관)이 없으면 능연(주관)도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대상은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공(空)], 동시에 주관도 실체가 아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사물을 인식하는 것을 반연(攀緣)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연하는 인식작용을 능연이라 하고, 반연된 인식대상을 소연이라 한다. 그래서 근본지(根本智)를 진리에 계합해 능연과 소연의 차별이 없는 절대의 참 지혜라고 했다.

       

*능인(能仁)---능히 인(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능인적묵(能仁寂默)---부처님의 이름 산스크리트어 Sakyamuni의 한자식 표기음을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한다. 석가는 종족의 이름이고, 무니는 성자라는 존칭이다. 그러므로 석가종족에서 태어난 거룩한 성자란 뜻이다.

    그리고 부처님 이름을 뜻으로 옮겨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이라 한다. 즉, 일체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인 능인(能仁)과 부처님의 절대의 진리를 깨달은 경지인 적묵(寂默),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능인적묵(能仁寂默)이라 한 것이다.

    천태 대사는 ‘적묵(寂默)’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능인(能仁)’으로 해서 열반(涅槃)에 머무르지 아니 한다고 했다. 즉, 적묵, 곧 진실로 절대의 진리를 깨달았으므로 깨달은 몸으로써 열반 속에 가만히 있지를 않고, 능인, 곧 세상의 미혹한 인간 가운데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구원하는 인간불사에 애쓴다는 뜻이다.  

   

*능입(能入), 능도(能度)---용수(龍樹, 나가르주나)는 <대지도론>에서 말하기를, “불법대해 신위능입 지위능도(佛法大海 信爲能入 智爲能度) - 불법(佛法)의 대해(大海)는 믿음(信)을 능입(能入)으로 하고 지혜(智)를 능도(能度)로 한다. 즉, 불법이라는 큰 바다에는 믿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지혜가 있어야 건너갈 수 있다.”고 했다.

     • 능입(能入)이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 능도(能度)란 능숙하게 건너간다는 말인데, 능숙하게 제도한다는 말로도 쓰인다. 즉, 제도를 하는 자와 제도를 받는 자 모두 일승(一乘) 안에 있으므로 능히 제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능은 보살, 도는 중생에 해당한다고 했다.

            

*능작인(能作因, karana-hetu)---<구사론(俱舍論)에서는 인과 연을 다시 자세히 분류해 육인사연(六因四緣)의 이론을 전개했다. 육인은 능작인(能作因) ․ 구유인(俱有因) ․ 상응인(相應因) ․ 동류인(同類因) ․ 편행인(遍行因) ․ 이숙인(異熟因)을 말한다.

    능작인이란 어떤 결과를 성립시키기 위해 자체를 제외한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조력하는 모든 조건의 총칭이다. 이를테면 A라는 법이 생겨날 때 A를 제외한 다른 모든 법은 직 ․ 간접으로 A법의 생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즉, 다른 법의 생기를 장애하지 않는 원인을 말하는 것으로, 일체의 유위법은 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위 ․ 무위법을 능작인으로 삼는다. 결국 능작인이란 직접적인 원인과 보조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총칭한다. 예를 들어, 씨앗은 식물의 직접적 원인인 반면 햇빛과 물, 흙은 식물의 보조적 원인이다.

    능작인에는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낳는 힘을 갖진 유력능작인(有力能作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무력능작인(無力能作因)이 있다. 유력능작인은 적극적으로 작용해 결과를 낳게 하는 인(因)을 말하고, 무력능작인은 소극적으로 결과의 발생을 방해하지 않는 인이다. 그러니 직 ․ 간접의 원인 모두를 통틀어 능작인이라 한다. 예를 들면, 축구시합에서 이겼다면, 선수들 실력은 직접적인 원인, 즉 유력능작인이고,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위한 써비스, 혹은 상대방의 실력, 그날의 컨디션 등은 간접적인 원인, 즉 무력능작인이 된다.

    일체 유위법은 오로지 그 자신을 제외한 그 밖의 일체법에 대해 능작인이 된다고 하는 말은 직접으로 결과를 낳게 하는 유력능작인과 결과를 낳는데 장애하지 않는 무력능작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설명이라는 뜻이고, 이는 증상연(增上緣)과 동일한 개념이다.---→육인(六因), 증상연(增上緣) 참조.

    

*능전(能詮)과 소전(所詮)---문자가 뜻을 발생하는 것을 능전(能詮)이라 하고, 문자에 의해 나타나는 뜻을 소전(所詮)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주관 ․ 객관’이라 하지 않고, 능(能-주된 것)과 소(所-객인 것)라는 말을 많이 쓴다. 모든 경전에서는 법(法)과 의(義)를 통해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는데, 법은 언설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의는 언설의 표현을 통해 전달하는 근본 뜻이다. 따라서 법이 없이는 뜻이 드러나지 않고, 뜻이 없는 법은 단순한 음향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법(法)은 가르침 내지 진리를 설명하는 주체이므로 능전(能詮)이라 하고, 의(義)는 법을 통해서 드러나는 객체라서 소전(所詮)이라 한다.

    <화엄경>을 예로 든다면, <화엄경> 원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인데, 경 자체는 능전(能詮)이고, 경에 담긴 내용인 대방광불화엄을 소전(所詮)이라 한다. 즉, <화엄경>에서 능은 <화엄경>이고, 소는 법계이며 진리다.

    그러니 소전(所詮)은 설명된 것. 경문(經文)을 통해 나타내는 문구 속의 뜻을 이른다. 가르칠 전(詮)자를 써서 능전은 능히 가르친다, 능히 말한다, 능히 표현한다는 뜻이다. 능전의 상대는 소전(所詮)인데 이것은 가르쳐질 것, 설명되어질 것이고, 법계 즉 진리를 말한다.

    교리(敎理)상으로는 능전(能詮)은 교화(敎化)의 주체이고, 소전(所詮)은 교화의 대상이다. 그리고 문법적으로는 명사 그 자체를 능전의 명(名)이라 하며, 명사가 가리키는 존재(법)을 소전의 법(法)이라 한다. 중(中)은 소전(所詮)의 이(理), 즉 불교의 근본원리를 표방한 것이고, 논(論)은 능전(能詮)의 교(敎), 즉 그 근본원리를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능전(能詮)---이치나 의미를 나타낸 글귀 혹은 문장을 말한다.

       ※소전(所詮)---글귀나 문장으로 나타낸 이치 혹은 의미. 경문(經文)을 통해 나타내는 문구 속의 뜻을 이른다. 따져서 알아낸 바, 설명되는 쪽, 문(文)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 의미를 말한다.

   

*능행자(能行者)---6조 혜능(慧能) 선사의 다른 이름. 5조 홍인(弘忍, 601~675)의 문하에서 행자로 수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니간타 나따뿟따(Nigantha Nataputta)---불교도들이 부르는 자이나교의 개조 이름이다. 니간타(Nigantha)는 속박을 벗어난 자라는 뜻이고, 나따뿟따(Nataputta)는 나따(Nata)족 출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왓타마나(Vatthamana, Vardhamina, 增長, 번영하는 자)이지만 자이나교도들은 그가 크게 깨쳤다 해서 마하위라(Mahavira, 大雄, 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勝者,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했다. 그의 가르침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자이나(Jaina)라고 부르므로 자이나교라 한다. 그는 붓다와 같은 시대 왓지(Vajji)의 베살리(Vesali) 부근에서 왕족 아들로 태어났다. 32세에 출가해 사문이 돼 12년간 고행한 끝에 마침내 완전지(完全智)를 얻었다고 하며, 그 후 30여 년간 교화활동을 하다가 72세에 입멸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거의 같은 시대에 개창돼 니간타는 부처님에 대해 항상 열등의식을 가지고 경쟁적인 입장을 취했던 인물이다. 니간타는 산자야(Sanjaya)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했다. 즉, 자이나교의 중심사상은 이원론적 체계로서, 고대 애니미즘을 계승한 이 사상은 세계를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두 범주로 이루어진 것으로 봤다. 불교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는 업(業, karma)을 자이나교에서는 물질적인 실체로 간주해 이것이 생명체에 개입해 윤회에 얽매이게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업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 참회와 고행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즉,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돼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했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봤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 되면 성자로까지 추앙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았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다.

         

*니까야(Nikaya, 尼柯耶)와 북방 아가마(Agama=아함경/阿含經)와의 관계---최초의 공식적인 성문불전은 마우리아 왕조 아소카왕 때 이루어진 제3차 불전결집에서의 일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약 200여년은 구전기간이었다.

    이 구전기간동안 부처님 가르침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교리 상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알 수가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과 가르침은 기억의 한계와 논사들 개인적 관심과 기호에 따라 많은 변질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소카왕 때 성문화가 이루어지고, 각부파마다 경전의 기초적인 성문화가 진행됐으나 20여개 부파가 치열한 논쟁을 벌임으로써 거기서도 많은 변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 부파들은 자신들이 전승해온 교법을 기초로 경전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각 부파마다 경전이 있었으며 부파별, 특징에 따라 경전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세친(世親)과 논쟁을 벌인 중현(衆賢, 상가바드라/Samghabhadra)은 “각 부파에서 전승한 교법에 따라 서로 다른 경을 부정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각 부파, 특히 상좌부와 대중부의 대립은 부처님 법에 대한 입장 역시 크게 달랐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각 부파별로 경전이 있어 그 종류가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상좌부계통 남전 <니까야>와 설일체유부의 북전 <아가마>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현존하는 초기경전(4아함과 5니카야)과 율장(여섯 부파의 廣律)은 각각의 부파에 의해 찬집(纂集, 편찬 결집) 전승된 것으로, ‘아함(āgama)’과 ‘니카야(nīkāya)’라는 말 자체가 ‘전승돼 온 것’, ‘부파 혹은 부파에 의해 결집된 성전’이라는 뜻이다. 즉, 부파불교시대 조성된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성전 결집의 기준은, <대반열반경>에서 설한 이른바, ‘4대교법(mahā apadesa)’이었다. 즉,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경․율․교법)을,

    ① 불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 대다수 박식한 장로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③ 경과 율과 논모(論母, 주석)를 지닌 다수의 비구로부터,

    ④ 혹은 그러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그의 말을 잘 듣고 단어와 문장을 잘 파악한 다음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율(vinaya, 調伏)을 드러내는지를 검토하여,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불설로 판단하여 버려야 하고, 그러하다면 불설로 취해야 한다.”

   그런데 <니까야>의 경우, 인도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 스리랑카에 전해져, 인도의 정치적 변화에 의한 영향을 비교적 받지 않아 고스란히 전승될 수 있었고, <아가마>는 북인도에서 번성한 쿠샨왕조에서 편찬 보존되다가 북방 및 중국으로 전래돼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아함경>으로 자리 잡아 온전히 전승되고 있다. 그 외 나머지 경전들은 인도의 정치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의 침입과 힌두교에 흡수돼 불교가 소멸함으로써 사라졌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경은 BC 3세기 아소카왕의 제3차 불전결집 때 상좌부가 주도해 공식적으로 만들어 남방에 전한 <니까야>와 AD 2세기 카니시카왕의 제4차 불전결집 때 설일체유부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아가마(아함경)> 뿐이다.

    상좌부계통 분별설부(分別說部)가 스리랑카에 전한 <니까야>는 오늘날 남방경전으로서 근본경전인 <빠알리어 삼장(빠알리어 대장경)> 안의 경(經) 부분을 뜻한다. 빠알리어로 적힌 <니까야(Nikaya)>는 ‘5 니까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북방경전이라 할 산스크리트어 경전인 <아가마(agama)>는 중국에 전해져서 <아함경(阿含經)>이라 하며, ‘4 아함(阿含)’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엄격히 구분하자면, 아가마(Agama, 阿含)와 니까야(Nikaya, 部)는 차이가 있다. 니까야는 상좌부에서 전승한 것이고, 아가마는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 전승한 것이다. 당시 부파 간에 불설ㆍ비불설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아가마와 니까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방경전 속의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는 북방경전인 <아함경>에는 빠져있다. 그리고 <니까야>와 <아함경> 모두 그 하나하나가 하나의 경(1經)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經)으로 집성돼 있다. <니까야>나 <아함경) 각 경전 하나에 다시 많은 경이 실려 있다는 말이다.

    — 빠알리어 <5부 니까야>와 북방 한역 <4 아함(阿含)>의 비교 —

      ①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 장아함(長部阿含) - 길이가 긴 경을 모은 것.

      ②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aya - 중부아함(中部阿含) - 중간 정도 길이의 경을 모은 것.

      ③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 - 상응부아함(相應部阿含) - 주제가 분명한 경들을 주제별로 모은 것. 잡아함(雜阿含)이라고도 한다.

      ④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 증지부아함(增支部阿含) -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중 주제의 법수가 분명한 말씀을 숫자별로 모아 결집한 경으로 하나부터 열하나까지 모두 11가지 모음으로 분류했다.

      ⑤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 - 위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짧은 경들을 모은 것으로, <쿳다까 니까야> 안에는 법구경, 자설경, 본생경, 수타니파타(경집/經集), 장로게(長老偈) 등 15개의 중요한 소경이 들어있다. 이 쿳다까 니까야(소부)가 한역 <아함경>에는 없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상응부)와 북방경전의 잡아함(雜阿含) 사이에도 다소 차이가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빠알리어 경전이라는 것은 결국 18-20여개의 부파불교 중의 하나였던 상좌부의 전승에 불과한 것이다. <청정도론>도 상좌부라는 부파의 논서일 뿐이다. 각 부파는 각자의 전승경전이 별도로 있었고 그리고 논서도 방대한 량이 각 부파가 개발해 있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는 부파불교가 모두다 소멸을 했으나 스리랑카 섬으로 전래된 상좌부의 전통이 그나마 오늘날까지 살아있어서 현재 니까야 경전을 붓다의 원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청정도론>도 일개 상좌부라는 부파불교의 논서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철학적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인도에 있던 부파들이 남겨놓은 방대한 논서가 월등하다고 볼 수 있다.

   니까야든 아함경이든 경전이란 것도 결국 기록물인데, 후대의 우리들은 경전의 글자에 국한해서 맹목적으로 그것만 신봉할 것이 아니라 경전의 숨은 내용이나 행간을 잘 파악하고 공부해야 일개 부파의 불교를 넘어선 불교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아함경(阿含經), 잡아함(雜阿含) 참조.

     

  

*니까야(Pāli Nikāya)의 절대성---오늘날 남방불교를 공부하는 일부 인사들은 남방불교만이 정통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잘못 변질된 불교로 매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불교를 마치 사교(邪敎) 집단의 하나로 몰아가는 극단적인 모습조차 보이고 있다. 물론 한국불교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1500년 한국불교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심지어 원효 대사까지도 길을 잘못 든 인사로 폄하하고 있으니, 이런 편협한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음을 인지해야 하겠다.

   「남방의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도들이 사용하고 있는 빠알리 니까야(Pāli Nikāya)가 불설(佛說)을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다는 것은 공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빠알리어가 바로 고타마 붓다께서 사용했던 언어고, 그러니 오직 빠알리 니까야만이 정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점은 율장 <소품(Cullavagga)>에 전하는 기사를 보면 자명해질 것이다.

    바라문 출신 형제 비구들(Yamelu & Tekula)이 붓다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출신 지역, 가문, 카스트가 다른 사람들이 출가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각각 자기네 방언을 씀으로써 붓다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붓다의 말씀을 베다 언어(chando)로 바꿔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이에 붓다께서 심히 꾸짖어 나무라셨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나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내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꾸짖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붓다의 가르침을 베다 언어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그리하면 ‘dukkaṭa(突吉羅, 惡作)’를 범한 것이다. 각기 자신의 방언으로(sakāya niruttiyā) 붓다의 가르침을 익힐 것을 허락하노라!” [Cullavagga II-33.]

   이 기사를 단순히 고타마 붓다의 베다 언어(산스크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거나, 빠알리 니까야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다. 앞뒤 정황과 문맥을 살펴보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을 어떤 특정 언어로 고착시켜 정전(正典)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에 전하는 불전은 여러 방언으로 암송되던 가르침이 몇 차례의 결집을 통해 승가의 대다수가 사용하던 언어로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챙겨야 할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배우는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게 한다는 고타마 붓다의 열린 사고와 실천이다. 나아가 번역의 당위를 주장할 수 있는 전거(典據)가 된다.

    세상만사 변하게 마련이다(aniccā sabbe saṅkhārā). 불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무상과 연기의 원리야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해도 우리가 수용하고 실천하는 불교가 고타마 붓다의 본래 메시지의 깊이와 무게에서 동일한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빠알리 경전 역시 이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고, 전혀 다른 문화 배경과 고유의 문자와 언어 전통을 가진 옛 중국인들이 받아들인 불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외래 사상을 수용하는 고대 중국인들이 상당부분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과 함께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감도 함께 작용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한역 경전이나 중국인들의 수행이 불교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다수의 교종(敎宗)과 율종(律宗)의 부단한 활동은 그 내용에 있어 무상, 무아, 공, 연기의 바른 이해와 거기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적용과 실천에 관한 집단 지성의 고뇌이자 결실인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변화한 것이 선종(禪宗)이다. 이것이 오직 불교 내부의 일로 그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가와 도가, 유가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키우고 때로는 깎아 다듬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선종은 정교하고 치밀한 교학과 도덕적 바탕에서 제 고유의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부화한 자유분방한 나비요, 중국 불교의 꽃인 셈이다.

   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이미 여러 부파의 발생과 성쇠를 거쳤고, 인도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불교는 중도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늘 중심을 곧게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긴 불교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의 핵으로 기억하는 용수, 무착, 세친, 보리달마, 혜능 등 옛 스승들의 업적은 다름 아닌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의 정신, 현실 세계로의 복귀였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쳤을 때, 대사회적 유연성을 잃고 굳어 갈 때, 혹은 전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둑을 뚫고 새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끌어들인 새물은 이미 거기 있었던 우물,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에서 퍼 올린 것이다. 가장 오래된 샘에서 새물을 길어 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파야 할 우물도 바로 그 자리다.

   그러므로 특정 전적(典籍)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나머지를 폄하하는 흐름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 편 가르기로 보이기도 한다. 한역경전과 빠알리어, 범어(梵語, Sanskrit) 경전을 비교하면서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역과 인도 원전의 상호 보완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역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도어 원전을 통해 쉽게 풀리기도 하고, 역으로 인도 원전의 모호한 부분이 한역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역 전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와 인도 전적 중심의 연구 성과 역시 배척과 질시가 아닌 상호 존중과 보완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 예로 초기경전의 눈으로 후기 경전을 점검하고, 대승경전의 입장에서 초기경전을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 개인, 지역사회, 한 나라, 나아가 전 세계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연기(緣起)의 세계관이다. 몸소 앞서서 그것을 보이고 퍼뜨려야 할 사회적 의무를 자진해서 짊어진 승가는 연기의 바른 이해와 실천, 곧 지혜와 자비의 두 날개로 날아가는 나비다. 그것이 바로 승가의 굳건한 뼈대요 따뜻한 피인 것이다.」 - 재연 스님

   

     

*니다나카타(Nidanakatha, 인연담/因緣談)---빠알리어로 된 초기 붓다 전기인데, 5세기경 붓다고사(Buddhagosa)가 정리했다고 하며, 빠알리어 문헌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붓다 전기라 평가된다.

니다나카타(인연담)는 <자타카(Jataka, 본생경)>의 주석서인 <자타카 앗타카타(Jataka-attakatha)>의 일부인데, 초기경전 여기저기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붓다에 관한 전기를 시기별로 붓다 일생을 일관되게 정리했다고 하는 점에서 최초의 불타전(佛陀傳)이라 할 수 있다. ‘먼 인연담’, ‘멀지 않은 인연담’, ‘가까운 인연담’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연등불로서 천상계에서 수행하고 있던 시대, 제2부는 도솔천에서 하생해서 탄생과 성도까지, 제3부는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건립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니뎃사---→닛데사(Niddesa, 義釋) 참조.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 1953년~)---인도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1953년에 태어난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 뭄바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여러 국제무대에서 인도를 대표하는 그는 인도중앙은행 수석 경제보좌관으로 근무했고 국제통화기금과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의 중앙은행 자문관 등 국제기구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또 대중 연설가 및 사회 활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인도 최상위 랭킹 대학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에 <인도의 금융 경제학>, <암베드카르 박사> 등이 있으며, 특히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도 그는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신불교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다무는 달리트 운동을 일으킨 빔라오 람지 암베르카르 박사에게 영향을 받아 자식 교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이 받은 천대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암베르카르 박사가 달리트들에게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고 한 가르침을 따랐다. 그리고 힌두교도로 죽지 않겠다는 암베르카르 박사를 따라 자신도 가족도 모두 불교로 개종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평등사상이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렌드라 자다브는 이러한 신분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다. 태어난 신분을 절대 바꿀 수 없는 인도의 절대적 신분제도를 무너뜨리면서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도의 살아 있는 영웅이다.

 

   

*니련선하(尼連禪河)---니련하(尼連河)라고도 한다. 나이란자나(Nairañjanā)강을 음역해 니련선하라 한다.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동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 이름으로, 항하(恒河, 간지스강)의 한 지류이다. 석가모니가 출가 후 6년 동안 고행한 뒤, 니련선하 강물에서 목욕을 하시고 우루벨라 촌장 딸 수자타(Sujata)가 바친 영양이 풍부한 우유죽(유미죽/乳米粥) 한 그릇을 공양 받고 기운을 차려서 니련하강가 보리수 아래 앉아서 정각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니련하 부근 사라(Salā, 沙羅) 쌍수(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현재 파트나(Patna) 지역의 팔구(Phalgu)강을 말한다.

        

*니밋따(니미따, 빠알리어 nimita)---상(相)의 여러 개념들 중에 하나가 니밋따이다. 형상, 겉모습이란 뜻이다.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자기가 겪은 과거로부터의 많은 경험, 기억의 총합에 의해 그 대상으로부터 생겨난 ― 얻은 인상(표상, 영상, 전체적인 첫 인상)을 말한다. 중생의 경험이란 오염된 경험들이기에 오염된 눈에 나타난 인상이라는 말이다. 즉, 니밋따(相)는 감각기관으로 대상을 감각할 때, “탐ㆍ진ㆍ치에 오염된 마음에 비친 ―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금강경>에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상(相)이 니밋따에 해당한다.

    그리고 무상삼매(無相三昧) 할 때의 무상(無相)은 'animitta'이다. ‘nimitta'에 부정접두어 ’a'를 붙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상(無相)을 ‘니밋따가 없다’ ― ‘어떤 대상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무상삼매에서의 무상(無相)은 ‘탐ㆍ진ㆍ치가 없는 마음 ―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마음에 나타난 대상을 말한다.---→상(相, 빠알리어 산냐/sañña, 산스크리트어 samjna) 참조.

     

*니야야(산스크리트어 Nyaya)학파---니야야(尼夜耶)로 소리 번역한다. 고대 인도에서 논리학(因明, Hetu-vidyā)을 연구한 정리파(正理派)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Nyaya는 원래 이론(理論)ㆍ정리(正理)를 뜻하는 말인데, 후대에 내려와서 논리학적 연구 일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리하여 인도논리학은 니아야학파와 불교에 의해 체계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 학파를 창시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부처님과 성이 같은 가우타마(고타마/Gautama)로서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아서 BC 1~2세기, 혹은 AD 1~2세경 사람이라 한다. 이 학파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은 그릇된 인식에 있으므로 그릇된 인식을 제거하고 계율을 지키고 요가수행을 하면 해탈에 이른다고 했다.

    그리고 올바른 인식에 이르는 추론의 방법으로 오지작법(五支作法) ― 오분작법(五分作法)라고도 함 ― 을 내세웠다. 이들의 주된 목적은 합리적인 이론과 현상의 분석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인식방법으로 직접지각, 추론, 유비(類比, 비슷한 사물과 비교해 판단하는 것), 성언(聖言, 베다에 쓰여 있는 성스러운 말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것)의 네 가지를 내세웠으며, 추론(추리 판단)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과 비슷한 오지작법(五支作法)을 만들어 낸 것인데, 종(宗)ㆍ인(因)ㆍ유(喩)ㆍ합(合)ㆍ결(結)의 다섯 부분으로 된 논식의 예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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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宗) - 주장 - 말은 무상하다.

인(因) - 이유 - 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유(喩) - 비유 - 예를 들면, 병(甁)과 같다.

합(합) - 적용 - 병과 같이, 말도 지어낸 것이다.

결(結) - 결론 - 그러므로 말은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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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宗) - 주장 - 나는 학생이다.

인(因) - 이유 -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유(喩) - 비유 - 공부하는 사람은 학생이다. 예컨대, 수능을 대비하는 수험생과 같이.

합(合) - 적용 - 나는 공부한다.

결(結) - 결론 - 그러므로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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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 주장 - 산에 불이 났다.

인(因) - 이유 - 왜냐하면 연기가 나기 때문이다.

유(喩) - 실례 - 마치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나듯이.

합(合) - 적용 - 이처럼 산에서 연기가 난다.

결(結) - 결론 - 그러므로 산에 불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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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식에서 종(宗)은 주장ㆍ명제ㆍ판단 등을 말하고, 인(因)은 이유, 유(喩)는 구체적인 예(例), 합(合)은 유(喩)를 기반으로 해서 종(宗)과 인(因)을 결합한 것, 결(結)은 종(宗)을 되풀이한 결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은 대 전제를 먼저 제시하지만 니야야학파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연역추론을 했다. 그런데 5지작법은 연역추리와 귀납추리를 둘 다 포함하고 있다. 종(宗)ㆍ인(因)은 귀납이고, 유(喩)ㆍ합(合)ㆍ결(結)은 연역추리인 셈이다.

    인도인들도 참다운 삶에 대해 논리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고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Nyaya 철학이다. AD 2∼3세기에 니야야학파의 기초가 마련되고, 논리학에 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집대성시켜나갔으며, 특히 진보적인 지식과 논리를 구사하는 불교도들과 많은 논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용한 불교논리학과 니야야학파의 끊임없는 논쟁 결과 인도 논리학이 발달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미륵(彌勒)ㆍ무착(無着)ㆍ세친(世親) 등도 이 논리학을 사용했는데, 이때의 논리학을 인명(因明, Hetu-vidyā)이라 했다. 여기서 인(因, hetu)이란 논증의 형식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뜻하며, 명(明)은 학문이란 뜻으로서, 인명이란 이유나 근거[因]를 해명한다, 인(因)을 밝힌다[明]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논리학을 인(因)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인명이라 했으며, 인명을 불교에사 받아들여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데 활용했다.

    인도철학의 각 학파들은 자신들 교리를 널리 인식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인식론을 발전시켰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대인도 논리학은 형식 논리학인 서양 논리학에 비해서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며, 실생활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그 추론식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이 고대인도 논리학은 추리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5세기에 등장한 진나(陳那, Dignaga)는 종(宗)ㆍ인(因)ㆍ유(喩)의 세부분으로 된 삼지작법(三支作法)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진나(陳那)가 등장하기 이전 논리학을 고인명(古因明), 진나 이후에 완성된 논리학을 신인명(新因明)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宗)과 결(結)은 똑같은 명제이고, 서양 논리학의 결론에 해당한다. 그리고 인(因)은 소 전제, 유(喩)는 대 전제에 해당한다.---→인명(因明, 산스크리트어 hetu-vidya), 진나(陳那, 디그나가/Dignāga) 오지작법(五支作法), 삼지비량(三支比量), 불교와 정반합(正反合), 삼량(三量), 정리철학(正理哲學, 니야야/Nyaya 철학) 참조.

 

      

*니치렌(日蓮)---일본 카마쿠라시대(12C말~14C초)의 고승으로 불교개혁의 지도자, 일련종(日蓮宗)의 시조이다. 12세에 천태종을 배우고 16세에 출가했다. 일본 천태종의 성산 교토의 히에이산(比叡山, 848.3m), 나라, 와가야마의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11년간 수행하고 나서 <법화경>이야말로 최고의 경전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1253년 ‘나무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외치고 <법화경> 신앙인 일련종을 창시했다. 1260년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몽골의 침입을 예언했으며, <법화경>만이 말세의 국가에 평안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으며, 정토교 등 다른 종교를 강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두 번이나 유배를 당했다. 한번은 막부에서 다른 종교를 비판한 죄로 니치렌을 잡아들여 참수하려고 했으나, 강한 광선이 나타나서 사형 집행인의 눈에 반사돼 쓰러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처형은 중단되고 니치렌은 ‘사도’라는 섬으로 유배당했다.

    그는 범부가 <법화경>의 제목인 ‘나무묘호렌게쿄’를 제창하면 나무묘호렌게쿄의 일곱 자에 포함돼 있는 석존의 공덕을 자연히 물려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근대에 들어서 니치렌의 종교가 다시 주목받게 되고, 일본에서 국가주의 부흥의 기운 속에서 정치적 역할을 했다. 또한 근대에 있어서 니치렌의 사상이 많은 신흥종교에게 사상적 소재를 제공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창가학회(創価學會) 등의 여러 교단에서 니치렌을 조사(祖師)로 받들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도 창가학회는 자신들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종교정당인 공명당을 창당하는 등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으며, 외국에의 전교 사업이 활발한 편이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창가학회(創価學會) 계통의 일련종(日蓮宗)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정부에서 '사이비종교'로 지정하고 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일본 천리교(天理敎)와 함께 이 땅에 뿌리내리며 점점 퍼져가고 있다. 2013년 100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를 기반으로 한 신흥종교다가 보니 기존의 불교교세가 강한 영남권에서 교세가 강한 것으로 추측된다. 매주 한 번씩 화광신문(和光新聞)이란 기관지와 월마다 법련이란 책을 발행하고 있다. 원만치 못한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닛데사(Niddesa, 의석/義釋)---쿳다까니까야/Khuddaka Nikāya, 소부/小部)에는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숫타니파타(경집/經集), 닛데사(Niddesa;義釋)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닛데사이다.

    닛데사는 수타니파타(Sutta Nipata) 제1장의 ‘외뿔소의 뿔’과 마지막 두 편인 제4장 ‘여덟 장’과 제5장 ‘피안으로 가는 길의 장’에 대한 완벽한 주석서이다. 사리풋타(sāriputta)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이 경은 빠알리어 삼장의 니까야(經)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초기, 부처님 당시의 주석서인 논장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경은 대의석(Mahaniddesa)과 소의석(Culaniddesa)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닛데사는 우빠세나(Upasena)의 Saddharmmapajjotika라는 자체의 주석서가 있는데, 거기에 사리풋타의 작품이라 돼있다. ※의석(義釋, niddesa)---옳은 해석이라는 뜻임.

     • 대의석(大義釋) - 마하 닛데싸(Maha Nidessa) - 수타니파타(經集)의 의품(義品)에 관한 주석서.

     • 소의석(小義釋) - 쭐라 닛데싸(Cula Nidessa) - 수타니파타(경집)의 피안도품(彼岸道品)과 서각경(犀角經)에 관한 주석서.

    다음은 대의석(大義釋)의 내용에 관한 해설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하니까 현재의 바깥 경계[外境]에 집착하라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현재의 외경을 인식 경험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경전에서는 경고하고 있다. 특히 <대의석(大義釋)>에서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해석하고 있다.

    “눈으로 색을 보아도 탐할 것을 탐하지 않으며, 성낼 것을 성내지 않으며, 혼미한 데에 속지 않으며, 노여워할 것에 노여워하지 않으며, 더럽힐 것을 더럽히지 않으며, 교만히 할 것에 교만하지 않는다. 귀로 소리를 들어도, 코로 냄새를 맡아도, 혀로 맛을 느껴도, 몸으로 부딪치는 것에 닿아도, 의식으로 법을 인식해도 탐할 것을 탐하지 않으며, 성낼 것에 성내지 않으며, 혼미한 데에 속지 않으며, 노여워할 것에 노여워하지 않으며, 더럽힐 것을 더럽히지 않으며, 교만히 할 것에 교만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하고, 들리는 것은 들리는 대로 하고, 깨달아지는 것은 깨달아지는 대로 하며, 인식되는 것은 인식되는 대로 해,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들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깨달아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인식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속박되지 않고, 그것에서부터 벗어나고 풀려나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 들리는 것, 깨달아지는 것, 인식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속박되지 않고, 그것에서부터 벗어나고 풀려나 무애자재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

    이러한 경지가 곧 깨달음을 이룬 선사(禪師)들의 삶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불교도들의 이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의 초심자는 우선 과거와 미래의 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생활하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모든 집착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대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불교도들이 바라는 이상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 그러면 생사에도 걸림이 없을 것이다. - 마성스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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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茶角)---절에서 간식과 차를 맡은 소임. 절에서 안거를 위한 결제가 시작되면 그 전날 스님들이 모두 선방에 모여서 용상방(龍象榜-소임)을 짠다. 여기서 승납(僧臘-승려가 된 햇수)이 가장 짧은 스님이 다각 소임을 맡는다.---→용상방(龍象榜) 참조.

  

*다라니(陀羅尼, 산스크리트어 dharani)---신도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우는 주문(呪文, 비밀스러운 문구)으로서, 암송하면 커다란 효험이 있다는 신성한 글귀. 부처님 말씀을 주문형식으로 만든 것으로, 내용은 긴 경전에 실려 있는 근본적인 원리를 짧게 요약한 것이다. 원래 경전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고, 다라니를 암송하면 경전 전체를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글귀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독송한다. 한자로 번역하지 않는 것은 번역으로 말미암아 그 의미가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 신비성을 간직하기 위함이다. 다라니를 한문으로 총지(總持) 혹은 능지(能持) ‧ 능차(能遮)라 번역하기도 한다.

원래는 주문과 구별됐으나 후에 주문과 같은 것이 됐다. 주문의 길이가 짧은 것은 진언(眞言, mantra) 또는 주(呪)라 하고, 긴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 한다. 다라니의 공덕에 대해서는 <능엄경(楞嚴經)>에 구체적으로 잘 설명돼 있다.

    진언은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으로 실담문자((悉曇文字, 산스크리트문자)로 된 「옴 마니 반메 훔」이나, 개법장 진언인 「옴 아라남 아라다」처럼 짧으면 한 자, 길어야 두 세 줄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라니는 훨씬 길다. 예컨대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나 <능엄경>의 능엄신주(楞嚴神呪),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등은 상당히 길다. 이러한 다라니를 송지(誦持)하면 그것으로 마음을 통일하고 구경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강조함으로써 순박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주의할 일이다. 예컨대, 「옴 마니 반메 훔」 육자진언을 암송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는 것 따위로 말이다.

    다라니를 총지(總持)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외어서 모든 법(法)을 가진다는 뜻,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뜻이다. 총지(總持)에서 ‘총(總)’이란 모든 공덕이 다 포함돼 있다는 말이고, ‘지(持)’는 마음에 새겨서 지닌다 혹은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사전에 미리 막아낸다는 뜻에서 능차(能遮)라고도 한다.

    다라니는 선(善)을 유지해 잃지 않고, 악(惡)을 멈추어 일으키지 않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착한 일을 할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해 나가고, 악한 마음이 일어날 듯하면 억제해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다라니이다. 다라니는 나 혼자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라니 정신을 나누어 주는데 그 생명이 있으므로 ‘다라니주를 준다’고 한다. 이는 계속 노력해가는 데 힘이 될 말을 준다는 그런 뜻이다.

    주(呪)라는 것은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는 말이다. 입으로 무슨 말을 부르면, 그 말이 자기의 입에서 나가서 자기의 귀에 울리고, 자기의 귀에 울리면 그것이 자기의 마음에 들어간다. 즉, 항상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실행하는 노력 가운데서, 몸(身)ㆍ입(口)ㆍ마음(意)의 삼업(三業)이 갖추어져서 서로 영향을 주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심신(心身)의 덕목을 체득(體得)하고 항상 좋게 해주는 그런 종교생활이 다라니주의 힘이다. 그러니까 기분이라고 하는 느낌이라든가, 마음이라고 하는 정적작용(情的作用)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주문을 부르면 산란하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아지면서 큰 힘이 솟는다.---→총지(總持, 산스크리트어 dharani) 참조.

         ※참고

          • 총지(總持) - 진언을 외워서 모든 법을 가진다는 뜻.

          • 능지(能持) - 진언을 외우면 능히 모든 법을 가질 수 있다는 뜻.

          • 능차(能遮) - 진언을 외우면 능히 번뇌를 차단할 수 있다는 뜻.

  

*다라수(多羅樹, 산스크리트어 tāla)---종려나무과(야자수)에 속한 나무 이름. 인도남부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자라는 열대식물임. 가지가 없으며 높이는 30m에 달한다. 자라는 꽃 이삭을 자르면 즙액이 나오는데, 이 즙액은 설탕 원료로 쓰고 발효시키면 럼(rum)이라는 술이 된다. 또 이것을 증류한 것이 아라크(arrack)라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술이다.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다라수잎이 고대 스리랑카에서 불경을 새기는 종이 역할을 했다. 다라수잎은 종이보다 습기에 강해 보존성이 뛰어나는데, 그 다라수잎을 패다라(貝葉, 貝多羅葉, pattra)라 했다. 다라수잎을 채취해 삶아서 말려 너비 6.6cm, 길이 66cm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잘라, 잎 면에 송곳(철펜)으로 글자를 새기고 그을음을 올린 후 닦아내면 움푹 팬 곳에 먹이 들어가 글자가 선명히 나타난다. 이렇게 불경을 새긴 잎 끝에 구멍을 뚫어 꿰매면 패엽경(貝葉經)이 된다. ※고대인도 북부지방은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 대신 썼다.---→패엽경(貝葉經) 참조.

  

*다르마(法, 달마/達磨, 산스크리트어 dharma, 빠알리어 dhamma)---인도 고전인 <베다>에서 사용된 법(法)이라는 말. 자연계 법칙, 인간계 질서를 나타내고, 후에는 정도(正道) ‧ 정의(正義)로 변했으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진리, 불법, 법칙, 또는 제법(諸法) 등 의미로 쓰였다. 다르마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지닌 말이어서 해석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의논을 거듭했으며, 그것을 종합하면,

     1)법칙, 법, 기준, 2)도덕, 종교, 3)속성, 성격, 4)가르침, 5)진리, 최고의 실재, 6)경험적 사물, 7)존재의 형태, 8)존재의 요소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한역 불전에서는 이 모든 의미가 법이라는 하나의 역어 속에 포함돼 있다. 아비달마 논서에는 다르마라는 어휘를 대개 위의 6),7),8) 중 어느 하나로 사용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진리, 사물 등으로 많이 쓰인다.---→담마(曇摩, 빠알리어 dhamma) 참조.

 

*다르마팔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1933)---→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1933) 참조.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대법안탑(大法眼塔) 참조.

       

*다문뇌고(多聞牢固)---불멸 후 세 번째 500년을 말한다.---→‘후오백세, 오오백년(後五百歲 五五百年)’ 참조.

       

*다보불(多寶佛, 산스크리트어 프라부타라트나/Prabhutaratna)---다보여래(多寶如來)는 동방 보정세계(寶正世界) 교주를 일컫는다. 대보불(大寶佛)이라고도 하며, 일정한 모습은 없다.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나온다. 이 다보불이 과거에 보살로 있었을 때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장차 입멸하면 온몸 그대로 사리가 돼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는 장소에는 반드시 출현해 그 설법의 위력을 증명하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다보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는 자리마다 보탑 모습으로 솟아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했다고 한다. 따라서 다보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은 언제나 석가탑 옆에 쌍으로 안치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불국사 다보탑이 석가탑 옆에 쌍으로 있다.

    그리고 다보불은 <법화경>이 정법(正法)임을 증명하는 증명불이다.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그 때 보탑 가운데서 커다란 음성을 내어 찬탄해 말씀하시되, 착하고 착하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능히 평등(平等) 대혜(大慧)이며,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의 호념하시는 <묘법화경>으로써 대중을 위해 설하심이라.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이라. 석가모니 세존이 설하시는 바는 다 진실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으로 다보불이 증명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허공에 머물러 계신 다보여래 보탑 안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들어가셔서 다보여래와 자리를 나누어 앉으시고 법화경을 설하셨다. 이것이 <법화경>을 허공에서 설하셨다고 하는 “이처삼회(二處三會) <법화경> 회상(會上)”을 의미한다.

        ※이처삼회(二處三會)---2처는 영산(靈山)과 허공을 말한다. 이 2처 중에서 영산에서는 초회(初會)와 종회(終會)를 설하고, 중간의 1회는 허공의 보탑(寶搭) 중에서 설한다. 경 처음부터 보탑품 전반까지는 영산인 기사굴산에서 설하고, 보탑품 후반으로부터 신력품 끝까지는 허공의 다보탑 중에서 설하고, 촉루품 이하는 다보탑에서 나와서 영산의 본좌(本座)에 돌아가 설한다. 

   

*다불사상(多佛思想)---불교는 본래 일불사상이다. 누구나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오직 붓다 한 분만 있고, 붓다 이외 부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힌두교 다신사상이 유입돼 들어와서 다불사상이 정착된 것이다. 대승시대에 수많은 부처가 만들어지는데, 본래 불교가 일불사상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승경전에서 이들을 다른 세계 부처라고 했다. 이 사바세계 부처님이 아니라 서방세계 부처님, 동방세계 부처님,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아미타불은 서방세계 부처, 약사여래는 동방세계 부처님이다.

    그렇지만 본래 불교는 일불사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 그리고 대승에서 미래에 오실 부처님으로 마이트레야(Maitreya, 미륵), 그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불교 정신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의 다불신앙은 언제 어디에나 부처님이 존재한다는 대승신앙의 한 형태로 성립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53불과 천불신앙이 유행했다. 그리하여 천불을 모시기 위한 천불전(千佛殿)을 따로 짓기도 했다. 천불에는 과거 장엄겁(莊嚴劫)에 출세한 천불, 현겁(現劫)에 출세하는 천불, 미래의 성수겁(星宿劫)에 출세할 미래천불이 있어서 이를 합친 것이 삼천불이다.

  

*다비(茶毘, 산스크리트어 자비타/Jha-pita)---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시체를 화장(火葬)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다섯 가지 정견(正見)---<초전법륜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에 대한 지혜 – 이를 일러 바른 견해 정견(正見)이라 한다.”

요약하면, 사성제(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정견의 도이다. 이는 바른 알아차림(正念)과 바른 집중(正定)을 계발하는 방법으로 계발해야 한다. <마찌마 니까야>의 주석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정견이 있다고 한다.

    ① 업이 자신의 것이라는 바른 견해(kammassakata-sammādiṭṭhi)

    ② 선정에 대한 바른 견해(jhãna-sammādiṭṭhi)

    ③ 위빠사나에 대한 바른 견해(vipassanā-sammādiṭṭhi)

    ④ 도에 대한 바른 견해(magga-sammādiṭṭhi)

    ⑤ 과에 대한 바른 견해(phala-sammādiṭṭhi)---→업자성정견(業自性正見) 참조.

 

      

*다섯 비구(五比丘)---붓다가 대각을 이룬 후 녹야원에서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할 당시 설법대상이 됐던 최초의 다섯 비구를 말한다.

그리하여 다섯 도반은 최초의 다섯 비구가 됐다. 즉, 아래 다섯이다.

    ①꼰단냐(Kondanna:倧蓮如) - 카운딘야(Kauṇḍīnya), 콘다냐, 교진여(橋陣如), 아야교진여(阿若橋陳如)라고도 한다.

    ②와빠(Vappa:婆頗) - 바슈파(Bāṣpa), 바파(婆頗, Vappa), 바수라, 뱌시파, 다사발라 카샤파(Dasabala Kasyapa, 십력가섭/十力迦葉)이라고도 한다.

    ③밧디야(Bhaddhiya:婆提) - 바드리카(Bhadrika, 발제(跋提), 바제(婆提)라고도 한다.

    ④마하나마(Mahanama:摩訶男) - 마하나만(Mahānāman) -마하마남, 마하남이라고도 한다. 석가족으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다. 구리태자(俱利太子)라고도 한다.

    ⑤아싸지(Assaji:阿說示) - 아슈와지트(Aśvajit), 아슈바짓(Asvajit), 알비(頞鞞), 아설시, 마승(馬勝)이라고도 한다.

   이들 다섯이 바로 붓다의 첫 제자들이다. 다섯 비구들 중에서도 위에서 열거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진리의 눈, 즉 법안(法眼)을 얻었다. 콘단냐가 맨 먼저 붓다 가르침에 눈을 떠 붓다의 첫 제자이자 붓다 다음으로 첫 아르하트(arhat, 아라한(阿羅漢): 진리를 깨달은 자)가 됐다. 깨달음은 얻은 콘단냐는 곧장 계(戒)를 받고자 붓다에게 청했고, 붓다는 그에게 구족계(具足戒)를 줬다. 그로써 콘단냐는 구족계를 받은 첫 비구가 됐고, 다른 네 비구도 그를 이어 깨달음을 얻고 구족계를 받았다. 특히 아사지는 나중에 붓다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지혜 제일 사리풋타(사리자)를 교단에 입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래 이 다섯 사람은 정반왕의 명으로 고타마가 출가 후 사문으로 고행을 할 때 경호의 임무를 띠고 따라 다녔던 수행원이었다. 그러나 고타마가 고행을 그만두자 그 곁을 일단 떠났었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초전법륜(初轉法輪) 참조. 

 

           

*다자탑(多子塔, Pahuputraka)---베살리 서쪽에 있던 탑 이름. 옛날에 어떤 장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재산이 한량없고, 아들 딸이 각 30인이 있었다. 그 장자는 수행이 뛰어난 분으로 나중에 벽지불(辟支佛)을 증득했다. 그리고 입적한 후 그 자손들이 아버지를 위해 탑을 세웠다. 따라서 여러 자손들이 함께 세운 탑이므로 다자탑이라 했다. 그 외에 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한다.

    ① 옛적에 어떤 나라 임금의 부인이 육태(肉胎-미숙아)를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고 해서 항하에 던져버렸다. 그 육태는 하류의 어떤 국왕이 주어서, 마침내 아들을 삼았다. 아들이 자라서 왕이 돼 상류로 쳐들어가다가 이 탑에서 그 어머니를 만나, 그 땅이 부모의 나라임을 알고, 싸움을 중지했다고 한다.

    ② 부처님이 일찍이 이 탑 앞에서 가섭을 만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그를 앉게 했다고 한다(多子塔前分半座).

    ③ 부처님이 석달 뒤에 입멸한다는 예언을 이 탑 근처에서 했다는 말이 전한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다자탑(多子塔)은 중인도 바이살리(Vaishali, 毘舍離) 서북쪽에 있던 탑 이름이다. 바이살리는 빠알리어로 베살리(Vesali)라는 곳으로 뒷날 제2차 불전결집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세 곳에서 가섭 존자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소위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이야기 가운데 첫 번째의 것이다.

    왕사성(라자그리하)에 한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재산이 한량없이 많고 아들과 딸이 각각 30명이 있었다. 장자가 멀리 나갔다가 어느 숲에 이르러 때마침 누군가가 큰 나무를 베는 것을 봤다. 그 나무는 가지가 너무도 무성해 여러 사람이 끌어도 잘 끌어내지 못했다. 그 다음에 작은 나무를 베는 것을 봤다. 작은 나무는 가지가 없어서 한 사람이 끌어도 걸림이 없었다. 이일을 보고 장자는 깨달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내가 큰 나무를 베는 것을 보니 가지와 잎이 매우 무성해

      빽빽한 숲이 서로 얽혀 있어 벗어날 수가 없네.

      세상일도 그러하여 남녀와 모든 권속들이

      미움과 사랑으로 얽혀 있으면 생사의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작은 나무는 가지가 없어서 빽빽한 숲에 걸리지 않나니

      저 일을 보고 이 몸을 살피건대

      미움과 사랑의 속박을 끊으면 생사의 숲에서 저절로 해탈하리라.

    그리하여 장자는 이 일로 벽지불의 과위(果位)를 얻었다. 그가 열반에 들자 여러 아들들이 그를 위해 탑묘(塔廟)를 세웠다. 여러 아들들이 탑을 세웠다 해서 그 탑을 다자탑(多子塔)이라 부르게 됐다. 뒷날 부처님께서 이 다자탑 앞에서 인간과 하늘의 무리들에게 설법을 하시는데 가섭(迦葉) 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도착했다. 이에 부처님이 앉아있던 자리를 나누어 가섭을 앉게 하시니 대중들이 모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이것이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이다.---→삼처전심(三處傳心) 참조.

  

*단(檀, 산스크리트어 dana/檀那)---단나(dana)는 베푼다는 말로서 한역한 것이 보시(布施)이다. 만약 안으로 믿는 마음이 있고, 밖으로 복밭(福田)이 있고, 재물이 있어서, 이 셋이 화합할 때 마음에 사법(捨法)이 생해 능히 아끼고 탐냄을 깨뜨린다. 이것을 단이라 한다. 즉, 단(檀)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고, 단바라밀은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의미한다. 우리말 돈(화폐)이 단나(dana)에서 온 것이라 한다. 베푼다는 뜻의 ‘단나‘가 중국에서는 단(檀)이 되고, 우리말로는 ‘돈’이 됐다고 한다.---→단나(檀那, 旦那), 단월(檀越, 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 참조.

        ※사법(捨法)---일체를 놓아버리는 것, 보시하고 복을 짓는 법.

   

*단견(斷見, 산스크리트어 uccheda-drsti)과 상견(常見, sasvata-drsti)---사람들 생각 속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뿌리박고 있다. 그것이 단견과 상견이다.

      • 단견(斷見)---단견은 나와 세상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질 뿐이라는 허무론에 빠지는 극단적인 견해이다. 즉, 모든 존재가 무상(無常)해 허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으면 심신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에 돌아간다는, 존재자체를 아주 없는 것으로 끊어 없애버린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 즉,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생각이다. 물질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먹고 잘살자. 쾌락주의가 된다. 사람이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없고 영혼도 없다는 주장인데 이는 비유(非有, 無有)에 빠진 것이다. 무신론도 여기에 해당한다.

      • 상견(常見)---단견에 반대되는 상견은 나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여기는 견해이다. 고정불변의 그 무엇, 즉 항상(恒常) 하는 것이 있다는 견해가 상견이고, 없다고 하면 단견이다. 초기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르침이 단견과 상견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연기법은 단견에도 상견에도 떨어지지 않는 중도이다.

    상견은 죽은 다음에도 영혼(오온)이 있기에 끝없이 지속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내생을 위해 오늘의 삶을 희생하자. 영혼, 윤회설 등의 기반이 상견이다. 육체는 사멸하나 영혼은 불멸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유(有)에 빠진 것이다. 기독교의 영혼에 대한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단견을 잘못 이해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부득이 윤회사상을 끌어들여서 방편으로 쓴 것이다. 그리하여 깨달으면 윤회로부터 해탈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윤회한다... 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편이 결국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 됐다. 단견도 생각이요, 상견도 생각이다. 똑 같은 생각이다. 단견은 없다는 생각이고, 상견은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상견과 단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상견과 단견은 서로 대립되는 견해이다. 세상은 본래 조용하나 상견과 단견으로 인해 늘 다투고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을 모두 그릇된 견해라고 본다. 특히 불교에서 무아를 잘못 이해하면 ‘죽고 나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상견은 단견을 받아들이고 단견은 상견을 받아들이면서 보다 더 발전적인 것을 재창출해 내라는 것이 ‘단상중도(斷常中道)’이다. 그리고 내 생각(고정관념, 我相, 無明, 알음알이)을 버리면 그 자리에 ‘참 나(진리)’가 드러난다고 한다.---→상견(常見), 단멸공(斷滅空), 단상갱(斷常坑) 참조.

     

*단경(壇經)---→육조단경(六祖壇經) 참조.

   

*단공(但空)---공에 치우쳐서 불공(不空)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묘유(妙有)의 일면을 인정하지 않고, 허무에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만유의 모든 법이 공하다는 한편만 알고 불공(不空)의 이치는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단공의 반대말이 부단공(不但空)이다.

        ※불공(不空, 산스크리트어 asunnata)---불공이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많이 등장하는 말인데, ‘공이 아니다, 공이 없다’는 그런 뜻도 되고, ‘비어 있지 않다’라는 말로도 쓰인다. 예 ; 해탈 열반에 이른 여래와 아라한은 육입(六入)을 지닌 몸이 남는다. 이것은 불공(不空)이다. - 이 경우엔 공이 아님을 말한다.

        ※부단공(不但空)---공도 역시 공(空)하다는 절대 부정(否定)의 공을 부단공이라 한다.

 

*단나(檀那, 旦那)---‘단나’는 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를 음사한 말로서, 절이나 승려에게 시주(施主)하는 일, 공양과 보시를 말한다. 그래서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바라밀을 단나바라밀 혹은 ‘단나’를 줄여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고도 한다.---→단(檀, 산스크리트어 dana/檀那), 단월(檀越, 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 참조.

     

 

*단말마(斷末魔)---단말마란 ‘말마(末魔)’를 끊는다는 말이다. ‘말마’는 산스크리트어 ‘marman’로서 육체의 관절이나 육체의 치명적 부분, 즉 급소를 의미한다. 이것을 건드리거나 부딪치면 심하게 아프거나 죽기도 한다. 단말마는 그 급소를 끊는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수(水) ‧ 풍(風) ‧ 화(火) 삼대(三大) 중에서 한 종류가 유달리 많아지고, 그것이 말마와 부딪쳐 목숨이 끊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 빈사상태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단말마의 고통’이라고 한다.

   

*단멸견(斷滅見)---→단견(斷見)과 같은 말. 단견(斷見) 참조.

 

         

*단멸공(斷滅空)---단멸공이란 이 세상은 단 한번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견해를 말한다. 단견(斷見)으로 말미암아 공(空)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단멸공 또는 악취공(惡取空)이라 한다. 그리고 더러 단멸공을 무기공(無記空)과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생이 한번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번 깨달으면 됐지 더 이상 깨달을 것도 닦을 것도 없어서 이대로가 영원한 낙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 경지의 사람들을 말한다. 요즘 견성하면 성불자라고 떠들면서 보림하지 않는 수행의 무리들이 바로 단멸 공견에 떨어진 사람들이다.

    무기공이란 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념(無念)의 지혜가 아닌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즉, 공사상(空思想)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빈 마음으로 앉아 있음을 무기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에 집착하면 단멸공이라는 삿된 소견에 떨어져서 어둡고 명료하지 못한 무기에 빠져 미혹한 어둠[無明]에 싸이게 된다.---→단견(斷見), 무기공(無記空) 참조.

    

*단멸론(斷滅論, 산스크리트어 uccheda-vāda)---붓다시대에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아지타(Ajita) 등 유물론자들의 주장이다. 단멸론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정통 바라문적인 아(我, atman)의 상주(常住)를 인정하는 설과는 반대로 아(我) ‧ 영혼은 신체 파괴와 함께 완전히 단멸, 소실해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이다. 이들은 사회현상에 대해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을 주장하면서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우연론을 지지했다.

    이러한 이론은 불교 무아(無我)이론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붓다는 사후 세계(내세)를 부정하지 않았고, 특히 업(業)의 과보를 강조함으로써 단멸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지타(Ajita)---본명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고대인도 반(反)브라만적 자유사상가인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한 명으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인간은 지(땅)ㆍ수(물)ㆍ화(불)ㆍ풍(바람) 등 네 가지 원소로 구성돼 있고, 그것들은 인간이 죽은 후, 각각의 집합체로 돌아가며, 시체가 화장된 후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영혼이나 내세를 부정하고, 또 선악업(善惡業)에 의한 과보도 부정했다.---→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 참조.

   

*단상갱(斷常坑)---단견과 상견의 구덩이라는 뜻이다. 단견(斷見)이란 모든 존재는 항상 변해가는 것이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서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말한다. 상견(常見)은 이와 반대로 사람이 죽으면 몸은 없어지지만 자아는 없어지지 않으며 과거나 미래에도 끊어지는 법이 없다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있다ㆍ없다’와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이러한 견해에 빠지는 것을 수행의 장애물로 여긴다. 곧 단견과 상견의 구덩이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본다.

    

*단상 이견(斷常二見)---일체만유(一切萬有)가 덧없어서 항상 하지 못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정식(情識)이 있는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버린다는 소견을 단견(斷見)이라 하며, 일체만유인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으로 소견을 지어 이 몸도 죽어서 다시 태어나 항상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는 상견(常見)을 짓는 이 두 가지의 치우친 변견(邊見)을 단(斷)ㆍ상(常) 이견(二見)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두가 사견(邪見)인 잘못된 것이다.

    

*단상중도(斷常中道)---중도(中道)는 불교의 핵심사상이다. 중도에 대한 이해 없이 불교 교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단상중도(斷常中道)는 사람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죽으면 그만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배쳑함을 말한다.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은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지은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불자가 아니면서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종교도 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불교에서는 단견(斷見)이라 해 배척하고, 이와 반대되는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생각도 상견(常見)이라 해서 배척한다. 이렇게 단견, 상견을 모두 물리친 것이 단상중도이다.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의심은 사견(邪見)에서 비롯된 허망한 생각이다. 연기법은 붓다가 깨달은 인간과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진리이다, 연기법을 깨달으면 생사윤회의 실상을 깨달아 그 같은 허망한 의심이 사라진다. 육체는 죽으면 우리 생이 끝이라는 단견과 영혼은 죽지 않고, 내세에 가서 태어난다는 상견은 모두 외도들의 사상이고 주장이다.

   외도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아(自我)을 주장한다, 바라문교에서는 아트만을 자아라고 주장하고,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인 지바(jīva)가 자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붓다는 무아(無我)를 주장했다, 시간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자아는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을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기법은 무아(無我)의 도리를 깨달게 하는 진리이다, 단상중도는 12여기를 깨달아 단견과 상견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상윳따 니까야 <사후의경(Parammarana-sutta)에 보면 사리불과 깟싸빠 존자가 사후의 여래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나오는데, 여기에 부처님이 답을 하지 않으신 이유가 잘 표현돼 있다.

   여기서 존자 깟싸빠는 사리불이 “여래가 사후에도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고 답을 한다. 그 이유로 깟싸빠는,

   “그것은 바른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을 시작하는데 맞지 않고, 싫어해 떠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라짐에 도움이 되지 않고, 소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적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곧바른 앎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기서도 부처님이 중도라 해서 다른 길이 있기에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답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실상을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단월(檀越, 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시주(施主)와 같은 말임. 단주(檀主)라고도 한다. 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 따위를 공양하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재가불자를 백의단월(白衣檀越)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단월을 불제자, 재가신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단(檀, 산스크리트어 dana/檀那), 단나(檀那, 旦那) 참조.  

     

*단전(單傳)---단전은 불교 문자로서,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한다는 말이다. 즉,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을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쓰며, 문자 · 언어를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름을 강조한 말이다. 곧 「심인(心印)을 단전(單傳)한다」고 말한다.

  

*단제 선사(斷際禪師)---당나라시대 황벽 희운(黃壁希運, ?~850) 선사를 말함. 어느 날 스님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 선종(宣宗) 황제가 될 사람이 찾아와서 그에게 법을 묻는데, 그는 세 번이나 뺨을 때려 준 일이 있었다. 훗날 선종(宣宗)이 즉위해 그에게 추행사문(麁行沙門-거친 중)이라는 법호를 주려고 하자 재상 배휴(裵休)가 간하기를 “황벽 선사가 폐하에게 세 번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 윤회(三際輪廻)를 끊는 뜻입니다.”라고 하니, 곧 단제선사(斷際禪師)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고 한다.---→황벽 희운(黃壁希運, ?~850) 참조.

   

*단주(短珠)---54개 이하의 구슬을 꿰어 만든 짧은 염주.

    

*단지불회(但知不會)---보조국사의 <수심결(修心訣)>에 나오는 말이다.

「약욕구회 변회부득 단지불회 시즉견성(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만약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고, 다만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임을 알면, 깨달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알려고 하면 알지 못할 것이며, 다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견성하리라」

    대체로 이런 뜻이다. 여기서 ‘회(會)’는 앎, 깨달음,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아는 것’이란 뜻이다. 이 세상에는 정치인, 학자, 기자, 작가, 예술인, 종교인, 사상가 등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득실거린다. 이들은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음-앎’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이념, 사실 등이 모두 진실이라고 확고히 믿고 집착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고 사회를 시끄럽게 한다. 그러다가 끝내 자신조차도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단지불회(但知不會), 단지 알지 못함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알면 얼마를 알며, 조금 아는 것 같아도 내가 나를 믿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없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 자꾸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참으로 앎’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수행에 임하는 수행승이 조금 아는 걸 가지고 아는 체하거나, 조금 깨친 걸 가지고 대오한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견성하겠다고 욕심을 내면 더욱 견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제대로 된 수행승이라면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래서는 도저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더욱 용맹정진하는 이에게 견성이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다.

   

*단하소목불(丹霞燒木佛)---중국 당나라시대 단하 천연(丹霞天然, 739~824) 선사가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혜림사(慧林寺)란 절에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몹시 추웠다. 불을 좀 피웠으면 싶은데 나무가 없었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佛像)을 보니 마침 목불(木佛)이었다. 도끼로 그 목불을 쪼개어 불을 피웠다.

그 절 원주가 뒤늦게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노발대발했다. 단하는 막대기로 재를 뒤적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석가여래의 몸은 화장해 많은 사리가 나왔다기에, 나도 이 부처님한테서 사리를 좀 받을 까 해서......”

“여보,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사리가 안 나올 바에야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님이요.”라고 했다.  

   이것은 참 부처를 드러내기 위해 거짓 부처를 부순 비상한 방편이다.

   수많은 사찰과 거기에 모셔진 불상(佛像)들은 형상을 보고 부처를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종의 아이콘이다. 불교가 일반인들이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의 특별한 비의(秘意)나 주문을 감추어 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범함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像)을 만들고 절을 한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부처의 모습을 보고 부처를 봤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됐다고, 부처의 형상을 보고 여래(如來)를 봤다고 생각 한다면 차라리 전륜성왕을 여래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단호히 말씀하셨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만약 형상으로 부처를 보려고 하거나 소리나 음성으로 부처님를 구하는(알아보려는)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 형상을 통해 진리(여래)를 깨치려하면 깨칠 수 없다는 말이다.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말이다.」

   수많은 사찰과 거기에 모셔진 불상(佛像)들은 형상을 보고 붓다를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단하(丹霞)의 이야기는 조금 과장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시사하는 바는 부처님은 형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부처인 것이다.  

      

*달라이라마(Dalai-Lama)---15세기 초에 티베트에서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가 종교개혁을 단행해서 탄생하게 된 티베트불교(라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겔룩파(거루파/格魯派/황교) 수장인 법왕(法王)의 호칭이다.

    ‘달라이’는 바다를,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달라이라마는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위까지 가진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제14세로서 중국군 티베트 진주로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달리트(dalit)---인도 신분제도에서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가리킨다. 카스트(caste)제도에 따른 인도신분제도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피정복민 및 노예, 천민) 등 4계급으로 구분돼 사성제도(四姓制度)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성제 최하위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하는 수드라보다도 더 낮은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을 달리트라 한다. 인도 13억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데, ‘이들과 접촉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천민을 부처님 당시의 고대엔 산스크리트어로 짠달라(candala)라 했으며, 이를 중국에서 음역해 전타라(旃陀羅)라고 했고, 여자는 전타리(旃陀利)라 했다.

    그런데 마하트마 간디가 이들에게 '신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하리잔(Harijan)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에 숨어 있는 동정적 의미에 반발해 스스로를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dalit)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달리트는 불가촉천민의 대표적 명칭이 됐다. 그러나 인도정부의 공식호칭은 ‘예정 카스트(scheduled caste)’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도 자각이 일어나서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는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인권 차원에서의 사회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워낙 오래된 체질화된 제도여서 개혁하기가 무척 어렵다.---→신불교운동(Neo-Buddhism Movment),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람 라즈(Ram Raj),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 1953년~) 참조.

     

*달마(達磨, 산스크리트어 dharma)---→다르마(法, 달마/達磨) 및 담마(曇摩, dhamma) 참조.

      

*달마(보리달마/菩提達磨, 산스크리트어 Bodhi Dharma, ?~528)---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셋째 왕자로 태어나 출가해서 붓다 제27대 직계 제자인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28대 조사(祖師)가 됐다. 당시 인도 불교는 밀교 일색이었으나 그마저도 힌두교화 해서 더 이상 불교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의 혜안이 있었기에 그의 권유로 달마는 AD 6세기 초 해로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 양(梁)나로 건너와서 선불교(禪佛敎)를 전함으로써 중국선종 시조가 됐다. 이리하여 6세기 이후 불교는 그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을 중심으로 선(禪)불교로 찬란하게 번성하게 됐고, 밀교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선(禪)은 중국화 된 선불교전통을 따르고 있다.

    헌데 같은 인도출신으로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보리유지(菩提流支)는 달마 대사를 시기한 나머지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AD 528년 달마를 독살했다는 말이 전한다. 이에 하남성 웅이산(熊耳山, 해발 912m)에 장사를 지냈는데, 독살 당한 달마 대사는 관속에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은 달마 대사가 무제를 만나는 장면이다. 달마가 만난 양 무제는 비록 절실한 불교신자라고 하지만 황제의 권위는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제와 달마 간에 묻고 답하는 내용을 보면 달마 대사의 생사를 초월한 의연한 모습이 생생히 부각된다.

    황제가 말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많은 절을 짓고, 경을 소개하고, 스님들에게 도첩을 내린 것이 셀 수 없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달마의 조금도 거리낌 없는 답이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황제는 불쾌했다.

     “그러한 공덕들은 윤회 속에 흩어지고 말 그림자같이 형태가 없는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달마나는 신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유위의 공덕은 소용없음을 말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요”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온전해서 그 자체는 공적 합니다. 이 같은 공덕은 세간에서 구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진리라는 것이요?”

     “텅 비어 있으니 성스럽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이렇게 황제를 자극한 달마는 비밀리에 북위(北魏)의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로 숨어들어 9년간 면벽수행을 한다.

   달마가 중국으로 와서 선(禪)을 전하고자 했지만, 교학이 성한 터라 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였다. 양 무제를 통해 선을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양 무제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달마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아니구나!’ 해서, 소림굴로 들어가서 9년 동안 면벽을 하며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대사도 수행하다 졸리면 눈썹을 뽑아 던졌고 눈썹이 던져진 자리에는 차나무가 자라났단다. 추후 중국 선종의 상징이 되는 차(茶)와 선(禪)이 인연을 맺는 사연이다. 달마상의 특징은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다. 소림굴 면벽 9년 수행을 하면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기 위해 결국 눈꺼풀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서 달마는 눈꺼풀이 없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6세기부터 7세기에 걸친 당시 중국은 급격한 사회변혁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 불교의 이상을 달마에게 구했다. 벽관(壁觀)으로 일컬어지는 독자적인 선법과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4구절에 그의 교의가 집약돼 있다. 9년간 면벽좌선을 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을 안심법문을 통해 제2조가 되는 제자 혜가(慧可)에게 수함으로써 중국 선종이 시작됐다.

   달마 선의 특색은 대화의 어기(語氣)에 있으며, 마침내 사람들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게 됐다. 이 문답이 선종의 모든 것이다. 최근 둔황에서 출토된 자료에 따르면, 그의 근본사상으로?이입사행(二入四行)’을 설교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달마는 <능가경>을 중시하고 이입과 사행의 가르침을 설파해 당시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講說佛敎)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해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 조사선을 강조했다.

   저서로 <달마어록>이 전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의 돈황 지방에서 새롭게 발굴된 자료이다. 소위 돈황의 선 문헌 가운데 하나로, 달마의 말씀을 전해주는 최고의 문헌이다.

    후에 공과 무아를 일러준 달마 대사의 법을 깨달은 무제는 달마 대사를 다시 만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추모하는 심정을 달랜다.

       「봐도 보지 못하고, 만나도 만나지 못하니(見之不見 逢之不逢)

       옛날이나 지금이나, 후회스럽고 한스럽구나(古之今之 悔之根之)」

            ※그 무렵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송운(宋雲)이 돌아오는 길에 파미르고원에서 달마 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대사는 주장자에 신발 한 짝을 꿰어 들고 유유히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송운이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자, “서천으로 가노라. 너의 임금은 이미 돌아가셨느니라.”라고 했단다. 송운이 달마 대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작별하고 귀국해보니 과연 임금이 승하하고 다음 임금이 즉위해 있었다. 그리하여 송운이 돌아오다가 겪은 일을 임금에게 보고하니 무덤을 파보도록 지시했다. 그랬더니 관속에는 신발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

           ※송운(宋雲)---중국, 남북조시대 승려. 돈황 사람. 생몰연대 미상. 북위(北魏) 말, 효명제 사절로 중앙아시아제국을 순방했다. 낙양을 출발, 서역남도를 거쳐서 간다라 각국을 역방, 각각 국서를 봉정했으며, 대승불전 170부를 얻어 가지고 522년 귀국했다. 그의 여행기는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수록돼 있는데, 당시 여러 나라 사정 및, 불교신앙 상태와 불적(佛跡) 등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서역사정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이지만, 문헌학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다.

          ※달마 대사의 사구게(四句偈)---“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喘) 심여장벽(心如墻壁) 가이입도(可以入道)-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으며,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 ---선도론(禪道論) 참조.

 

    

*달마급다(達磨汲多, 笈多, Dharmagupta)①---BC 3세기경 인도승려, 담무덕(曇無德)이라 불리며, 법장(法藏) ․ 법호(法護)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부파불교 화지부(化地部)에 속했었으나, 법장부(法藏部)를 만들어 독립했다. 이 법장부를 담무덕부(曇無德部)라고도 한다. 담무덕은 출가한 승려가 불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 율전인 <사분율(四分律)>을 작성했다.

         ※사분율(四分律)---담무덕이 상좌부(上座部)의 근본율 중에서 자기 견해에 맞는 것만을 네 번에 걸쳐 뽑아 엮은 율서. 4대 계율서(戒律書)의 하나이다.

      

*달마급다(達磨汲多, 笈多, Dharmagupta, ?~619)②---중국 수나라시대 활약한 인도 출신 승려로서 616년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을 한역했다. 이에 따라 이후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이 구체화됐다.

      

*달마 서래의(達摩西來意)---달마 대사가 서쪽 땅 인도에서 동쪽 땅 중국으로 건너 온 까닭이 무엇인가라는 말. 불교 근본이 무엇이냐, 불법의 참 뜻이 무엇이냐 라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즉,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가져온 진리의 근본은 무엇인가 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조주(趙州從諗, 778~897) 선사 대답은 뜻밖에도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였다. 이 말은 화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잣나무는 감정이 없는, 무심한 나무이다. 무심이란 공(空)을 뜻한다. 즉, 무심한 공의 상태가 바로 달마 대사가 서쪽(인도)으로부터 가지고 온 선(禪)의 진리요, 그대가 찾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이다.

    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당나라시대 우두종(牛頭宗)의 숭혜(崇慧, ?~779) 선사에게 어떤 수좌가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기 전에도 (중국에) 불법이 있었습니까?(如何是 祖師西來意?)” 이에 대한 물음의 답이,

    “만고에 변함없는 허공에 하루아침의 바람과 달(萬古長空 一朝風月)”이었다.

    태고부터 있어온 영겁의 하늘(공간)에 어느 날 문득 바람 한번 스쳐 지나가고 달빛 비친 격이랄까. 달마(達摩)가 서쪽에서 오기 전에도, 석가가 입을 열어 설법하기 전에도, 불법은 있었다는 얘기이다. 달마의 전법이나 석가의 설법은 모두 만고장공의 일조풍월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모든 것이 공(空) 그 속에 있음이라는 말이다.---→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참조.

   

*달마선(達磨禪)---조사선(祖師禪)을 말한다. 달마선은 달마대사에 의해 전개된 선법이다. 달마 이후 2조 혜가(慧可, 478~593), 3조 승찬(僧瓚), 이어서 4조 도신(道信, 580~651), 도신의 뒤를 이은 제5조 홍인(弘忍, 602~675), 홍인 선사 아래에 신수(神秀, 602~706)와 혜능(慧能, 683~713)이 배출됐다.

   달마 이전의 중국 불교는 경전 위주의 이론이었다. 주로 교학 위주의 불교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달마가 그의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선(禪)을 통해 얻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법이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인도에는 이미 밀교가 성행해서 불교가 쇠퇴 일로에 있던 때였기에 그의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의 지시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와 보니 선 위주가 아니고 교리 위주인데, 이것마저도 부처님 법을 정확히 이해 못한 상태였다. 불교가 중국인들 사이에 토착화가 제대로 안 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달마로부터 조사선이 전개돼 나갔다. 따라서 달마 이전의 중국 불교는 교리 위주, 달마 이후의 불교는 선 불교라 하겠다. 6조 혜능은 이 두 가지 불교를 원흉회통 시켰으니, 돈오는 교리로, 수행은 선으로 지속하는 중국식 불교를 완성했다.  

    신수는 북쪽지방을 중심으로 선법을 폈기 때문에 신수선을 북종선이라 하고, 혜능은 남쪽을 중심으로 선법을 폈기 때문에 혜능선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한다. 이리하여 남북 선종이 양립해 당나라 시대 달마선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결국 남종선이 주류를 이루었고, 남종선은 특히 황벽(黃檗, ~856)과 임제(臨濟, ~867)에 의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때에 임제종풍이 일어나고 위양종(僞仰宗), 조동종(曹洞宗), 법안종(法眼宗), 운문종(雲門宗)이 출현했는데, 이 5종이 모두 달마선 계통, 특히 혜능 계통에서 나온 선종이다. 이러한 선불교를 우리나라에 전래한 것은 신라말 신행(神行, ~779)이었다. 그 후 많은 명승이 나서 9산이 성립됐고, 고려에 들어와서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이를 통합해 임제 계통의 맥을 이은 조계종을 창시했다. 이 후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게 돼 오늘에 이러고 있다.

    이러한 달마선의 종지(宗旨)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조사선(祖師禪) 참조.

     

*달마 선도론(禪道論)---→선도론(禪道論) 참조. 

    

*달마야중(達磨耶衆)---여기서 ‘달마’는 중국에 선을 최초로 전한 달마 대사가 아니라, 진리라는 의미의 ‘달마(다르마, dharma)’를 말한다. ‘야(aya=耶)’는 접미사로 ~에게, 영어로는 ‘to’의 뜻이고, ‘중(衆)’은 무리란 말이다. 따라서 달마야중은 달마야(dharmāya=達磨耶)라는 산스크리트어에 ‘모음’이란 뜻의 ‘중(衆)’이라는 한자를 합친 글이므로 달마야중은 ‘진리를 추구하는 무리에게’라는 뜻이 된다.

 

  

*달마어록(達磨語錄)---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의 간쑤성(甘肅省) 돈황석굴(敦煌石窟, 둔황석굴)에서 새롭게 많은 불교 자료들이 발굴됐다. 그 돈황의 문헌 가운데 달마어록이 있었다. 달마의 말씀을 전해주는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달마(Dharma)란 만물의 순수한 본성을 일컫는다. 달마의 눈으로 보면 모든 현상은 공(空)하게 보인다. 거기에는 집착도 없으며 주도 객도 없다. 달마(Dharma)란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기는 하지만 쉽게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사물의 본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불의 성질은 뜨겁다. 얼음의 달마는 차가운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달마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아(無我)이며, 침묵이며, 자비심이 용솟음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구하는 행위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대를 본질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달마[菩提達摩]가 가르친 진리의 핵심이다. 즉,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이 달마어록의 요체이다.

도(道)에 이르는 길은 많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두 가지란 원리적인 방법과 실천적인 방법이다.

   원리적인 방법이란 가르침에 의해서 본질을 알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똑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감각[見聞覺知]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망상을 등지고 실체로 돌아와 벽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은 나도 없고 남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에게는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다. 그런 사람들은 경전을 대하고도 흔들림이 없으며, 무언중에 원리와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이입(理入), 즉 원리로 도에 들어갔다고 부른다. 실천적인 방법[行入]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을 사행(四行)이라고 부르는데 다음과 같다.

    ①. 억울함을 참는 것이다. ― 보원행(報怨行)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 불행不幸을 만나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나는 본질적인 것에서 등을 돌리고 하찮은 것을 위해 살았으며, 여러 가지로 존재의 겉모습을 바꾸어 가며 방황해 왔다. 그러면서 까닭 없이 자주 화를 내고, 수없이 계율을 위반하는 죄를 범했다. 지금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과거의 잘못으로 벌을 받고 있다. 어떤 신(神)이나 인간도 잘못된 행위가 언제 그 열매를 맺는지 미리 예견할 수 없다. 나는 열린 가슴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억울하다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경에 이르기를 “그대가 불행을 만나더라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사리(事理)에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그대는 원리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억울함을 참으로써 그대는 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②. 인연(因緣)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수연행(隨緣行)

    모든 사람은 본래의 자아(自我)란 것이 없으며 단지 인연에 따라 움직인다. 만일 우리가 어떤 큰 보상, 즉 부와 명성을 얻는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우리가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일 뿐이다. 인연이 다하면 그것은 또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그러니 기뻐할 것이 없다.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인연을 따라오는 것임을 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마음이 들뜨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다. 세속의 즐거움 따위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침묵 속에서 도를 따른다.

    ③.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다. ― 무소구행(無所求行)

    이 세상 사람들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항상 어떤 것을 갈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항상 무엇인가를 구하는 중에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깨어 있다. 그들의 이성은 세상의 길과 차원을 달리한다. 그들은 마음을 성스러운 곳에 고정시키고 몸마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화시킨다. 모든 현상계는 공(空)하다. 그것들은 추구할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이며 복과 화는 영원히 함께 한다. 삼계에 머무는 것은 불타는 집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육체가 있는 한 그 사람은 고통스럽다. 어떤 사람이 그 속에서 평화롭게 안주할 수 있겠는가?

     ④. 다르마(Dharma)를 따라 사는 것이다. ― 칭법행(稱法行)

    다르마란 만물이 본질적으로 순수하다는 진리[本性]를 일컫는다. 이 진리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텅 빈 공(空)이다. 거기에는 더러움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다. 경에 이르기를 "다르마는 어떤 존재도 포함하지 않는다. 존재의 오염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르마에는 자아가 없다. 자아의 미추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진리를 체득하고 확신해서 다르마에 따라 실천한다. 그대가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을 때 그대는 이미 도 안에 있다.

이상을 살펴 볼 때, 보원행(報怨行)은 자기의 기존관념을 버림이요. 수연행(隨緣行)은 모든 것이 상호작용함이요. 무소구행(無所求行)은 만물에 집착함이 없이 행하는 자비심이요. 칭법행(稱法行)은 다양한 변화에 대처하는 응용력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입사행(理入四行)을 명심해서 어떤 경우에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떻게 불행한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부처와 나는 둘이 아니라고 달관해야 한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싫든 좋든 나의 언행이 누군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 또한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럴 때 보원행과 수연행을 통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힘든 일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 무소구행을 통해 필요에 따라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칭법행을 통해 자신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어떤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 근본적으로 괴롭지 않은 마음을 얻게 된다. 다친 마음의 치유는 결국 지혜로운 수행의 실천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외에 <달마어록>엔 본성론(本性論), 진신론(眞身論), 선도론(禪道論), 관심론(觀心論), 안심론(安心論) 등이 있다.---→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참조.

      

   

*달마 혈맥론(達磨血脈論)---→혈맥론 참조.

      

*달무상법(達無相法)---형상이 없는 법을 통달했다는 말이다. 중생은 상을 따라 움직인다. 유형의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법(相法)이다. 물론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등도 상법에 속한다.

    반면 무상법(無相法)은 어떠한 형상도 없다는 법이다. 상(相)을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형상이 없으므로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앞에 있는 그 무엇을 보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욕을 들어도 칭찬을 들어도 똑같다는 말이다. 무상법(無相法)에 달통하셨다는 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標月之指)---불교에서는 표현된 언어ㆍ문자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한다. 달은 진리, 깨침을 나타내고 손가락은 언어ㆍ문자 등 상징세계를 가리킨다. 그런데 손가락[교법(敎法) 혹은 경전]에 집착하면 달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교법도 버리라고 한다. 깨달으려 하지 않고 알음알이 이론공부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선가에서 참선 등 용맹정진을 해 돈오(頓悟) 할 것을 주문하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담당국사(湛堂國師, 13세기)---금나라 왕자로 알려진 인물로서 고려에서 활동한 승려. 순천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의 한 사람으로 제9세 국사였으며, 송광사 천자암(天子庵)의 주인공이다. 천자암엔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을 비롯해서 나한전ㆍ산신각ㆍ법왕루ㆍ요사 등이 있다. 암자 뒤쪽에는 천연기념물 제88호 쌍향수(雙香樹)가 서있다.

    이 두 그루 곱향 나무에는 창건자인 담당국사와 연관된 전설이 전한다.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가 금나라 장종(章宗)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해준 것이 인연이 돼 그 왕자 담당을 제자로 삼아 데리고 귀국한 뒤, 두 사람이 짚고 온 지팡이들을 암자 뒤뜰에 꽂아둔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한다. 이 나무는 수령 800년에 높이 12.5m에 이른다. 그러나 보조국사와 담당국사 당시와는 다소 연대적 차이가 있다.

  

*담란(曇鸞, 476~542)---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중국 정토종 개조. 아미타불 본원(本願)에 착안해 타력본원설(他力本願說)을 가장 먼저 주장했다. 담란은 세친의 <정토론(淨土論)>에서 힌트를 얻어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으로 정토사상을 확립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고유 민간신앙도 원용해 정토사상을 중국에 정착시키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하여 후세에 그를 중국정토종 제1조라 불렀다.

    담란은 모든 중생은 부처님 가피를 입는 타력으로 ‘왕생(往生), 불퇴전의 경지, 보살도(菩薩道)’ 세 가지를 완성한다는 타력본원설을 주장했다. 모두 아미타불 대원(大願)의 작용으로 부처님 가피를 입지 않는 자가 없다고 했다. 이는 타력본원을 단적으로 잘 말해 주며, 불 ․ 보살의 이타적 구제 원력에 의지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처 본원설의 사상적 기반이 된 불경이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이다. 그리고 자력구원(自力救援)의 대표적인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면 타력본원(他力本願)의 대표적인 부처님은 아미타불이다.

    한편 <무량수경론> 주석서인 <왕생론주(往生論注)>를 저술해, 아미타불 본원과 그 성격을 올바르게 포착해서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로 분별해 타력본원설(他力本源說)을 주장하면서 난행도를 버리고 보살의 본원력(本願力)에 편승하는 이행도를 따를 것을 선포했다.---→타력본원설(他力本源說) 참조.

         ※타력본원설(他力本源說)---부처와 보살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타력구원 사상임.

  

*담림(曇林)---선종 초조(禪宗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대사 제자로서 주로 6세기, 5호16국시대에서 수나라시대까지 활약한 인물이다.

    담림은 처음 북위(北魏)에서 불전번역가 보리유지(菩提流支)를 도와 필수자(筆受者)로 많은 공헌을 했다. 필수자란 서방에서 온 승려가 불전의 대의를 구두로 번역해 들려주면, 그것을 한문으로 정리해 필사하는 사람으로서, 번역가인 동시에 편집자라고 할 수 있다. 어학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야 하며,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재질이 있어야 필수자가 될 수 있었다. 담림은 매우 우수한 필수자였을 뿐만 아니라 <승만경(勝鬘經)>의 연구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대표적인 간경인(刊經人)이었다.

    그런 그가 어떤 경로로 교학을 등지고 보리유지를 떠나, 진검(眞劍)으로 도를 구하는 달마 교단에 참여하게 됐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문헌이 없다. 다만 경전연구와 보급만으로는 불법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해, ‘경론에서 선으로’ 진로를 바꾸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달마의 제자가 된 담림은 스승의 어록을 정리해 역사에 남겼다. 담림이 남긴 <달마어록(達摩語錄)>은 극히 간결하며, 교설 역시 단순명료한 것이 특색이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 보류유지가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달마 대사를 독살했다는 말이 전하는 것 같다.

  

*담마(曇摩, 빠알리어 dhamma)---산스크리트어 달마(dharma)에 해당하는 ‘불법’을 일컫는 팔리어이다. 즉, 부처님 말씀을 팔리어 경전에서는 ‘담마(dhamma)’라 한다. 한자로는 법, 불법, 진리, 부처님 가르침 등으로 나타낸다.---→다르마(法, 달마/達磨) 참조. 

    

 

*담마딘나(Dhammadinnā, 法施)---부처님 당시 위사카(Visākha) 장자와 부부였던 비구니로서, 불교사에서 최고의 부부라 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부처님께서 죽림원(竹林園)에 계실 때 백만장자인 부호였던 남편 위사카는 신심 있는 재가 신자로서 부처님의 설법을 경청하고 보리심을 발해 예류자가 됐다. 그 후 위사카 장자는 다시 일래과(사다함)를 얻으면서 “감각적 욕망과 악의”라는 두 가지 장애가 현저하게 약화됐다.

   그리고 다시 5년 뒤 위사카는 마가다국의 빈비사라(頻毘娑羅, Bimbisara)왕, 그리고 많은 이와 더불어 아나함(불환과)의 단계에 들어섰다. 불환자(아나함)에게 감각적 욕망와 악의는 완전히 제거된다. 두 가지 장애가 완전히 제거됐기 때문에 위사카 장자는 즐거운 느낌, 격분, 분노, 실망, 불쾌감, 불행, 역겨움, 근심, 애정 등으로부터 벗어났고, 세속적인 욕망마저 모두 소멸하게 됐다. 재산에 대한 탐욕도 아내에 대한 애정도 사라지고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열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황홀한 기쁨과 환희의 느낌 안에 있었다. 위사카 장자가 사원으로부터 집으로 귀가할 때 그는 마치 출가한 승려처럼 고요해 보였고, 주위환경에 의해 산란해짐 없이 평온했다. 마치 부지런히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수행자 같았다.

   이러한 위사카의 전과 같지 않은 행동을 눈치 챈 담마딘나는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남편 위사카는 자신은 이미 옛날의 위사카가 아니며 열반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로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아내인 담마딘나에게 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에 담마딘나는 남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자신 역시 출가수행의 길에 나아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하여 남편이 준다고 한 재산에 대해 “당신이 뱉어버린 침(재산)을 나 또한 받아 지니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그 길로 부처님 교단에 출가해 담마딘나 비구니가 됐다. 남편의 재산까지도 물리쳐버리고 철저한 무소유로 수행에 임했던 담마딘나 비구니를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으로 칭찬하셨다.

    「탐욕에 눈멀면 분명한 대상도 거꾸로 보인다.

      앞에도 뒤에도 중간에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빈손으로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법구경>

   위의 게송은 부처님께서 담마딘나 비구니를 칭찬하신 말씀이다. 담마딘나는 <아라한구덕경>에서는 ‘시법(施法) 비구니’로 번역돼 있다. 담마딘나 비구니의 이야기는 <증일아함경>과 <아라한구덕경> 등에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담마딘나 비구니는 다른 비구니들과 함께 여러 해 동안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수행에 전념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성자 비구니가 됐다. 자신의 깨달음을 완성한 담마딘나 비구니는 옛날에 인연 있던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라자그리하(왕사성)로 돌아왔다.

위사카는 옛 아내 담마딘나 비구니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찾아갔다. 위사카는 아내가 아닌 비구니로 담마딘나를 공경 예배했다. 그리고 그녀의 깨달음을 검증하기 위해 문답을 나누었다. 그 때 담마딘나의 해답은 너무도 분명했다. 그 내용이 <교리문답의 짧은 경(有明小經)-M44)>에 남아있다.

그래서 경전에는 ‘진리의 뜻을 잘 분별하고 모든 법의 부분을 널리 설하는 것이 제일인 비구니(分別義趣 廣說分部)’, 또는 ‘능히 묘법을 방편으로 잘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능력(能於妙法 善巧敷宣)이 있는 제일의 비구니’라고 찬탄해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교리에 밝은 비구니였다는 말이다.

   부처님 당시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 大愛道)의 출가 이후 여성들도 거침없이 출가수행자의 길에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제일의 비구니’로서 이름을 드날리는 이들이 있었다.

    담마딘나 비구니의 경우는 무소유(無所有)의 수행과 자신이 모든 교리와 이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남에게도 잘 이해시켰던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소유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린 맑은 모습이다. 세상에 욕심이 없으면 눈에 가렸던 혼탁함이 걷히기 때문에 자연히 세상의 이치를 밝게 비추어 볼 수가 있다. 탐욕에 눈이 어두우면 눈앞에 분명한 것도 거꾸로 보기 쉽기 때문이다. 담마딘나 비구니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일지감치 물질의 소유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세상의 이치를 밝게 비추어 보는 진리의 소유자가 됐던 것이다.

    

     

*담마류지(曇摩流支, Dharmaruci)---5세기에 중국 5호 16국시대 후진(後秦)에서 활약한 서역출신승려. 법락(法樂)이라고도 한다. 405년에 중국으로 왔으며, 그는 계율을 잘 알았으므로 구마라습 등과 <십송률(十誦律)> 번역에 참여했다.---→십송률(十誦律) 참조.

     

*담마야사(曇摩耶舍)---서역 계빈국출신 승려, 중국이름은 법명(法明)이다. 5세기 초 진(晋)나라 때 중국에 와서 역경사업을 펼치다가 5세기 중엽 송(남북조시대의 송)나라 때 서역으로 돌아갔다. 담마야사 제자에는 인도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축법도(竺法度)가 있었다. 그도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를 잘해 스승을 도와 역경사업에 종사했다.---→축법도 참조.

        ※계빈국(罽賓國)---펀자브(Punjab) 북쪽, 카불(Kabul) 동쪽에 있던 고대 국가.

        

*담마팔라(Dhammapāla)---5세기 후반에 나타난 남방(스리랑카) 상좌부 마하비하라파(大寺派)의 주석가로, 확실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붓다고사(Buddhagosa, 불음/佛音)와 더불어 남방 상좌부 최대 주석가로 꼽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장로게>, <장로니게> 등 초기불교경전의 주석을 쓰고, 나아가서 붓다고사(불음)의 저서 <청정도론(淸淨道論)> 주석서를 남겼다. 그러나 남방 상좌부에서 <체요략론(諦要略論)>을 쓴 담마팔라, 그리고 대승유식학파의 호법(다르마팔라)과는 다른 사람이다.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금강산에 머물고 있다는 보살이다.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이라는 이상향에서 12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금강경>을 설하고 있다고 하며, 금강산 12000봉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담무(曇無)란 빠알리어 dhamma(法)를 소리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이란 법을 일으키는 보살이란 뜻이므로 법기보살(法起菩薩)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80권 화엄경> 제보살주처품에 보살들이 머무는 곳 23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금강산은 그 중 여섯 번 째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동해의 금강산으로 표현해 경전 속의 금강산이 곧 우리나라 금강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화엄경소>에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이 보살이 머무는 곳은 중향성(衆香城)인데, 실제 비로봉을 내금강 쪽에서 바라보면 병풍처럼 감는 봉우리들이 보여, 이를 중향성이라 한다. 그리고 비로봉은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에서 따온 것이고, 만폭동 계곡 아래에는 법기봉이 위치해 있다.

   

*담무덕(曇無德)---달마급다(達磨笈多)와 동일 인물.---→달마급다(達磨笈多) 참조.

   

*담무참(曇無讖, 산스크리트어 Dharma-rakṣa, 385~433년)---중인도 출신으로 10세에 출가한 후, 처음에는 소승불교와 인도 일반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그 후 대승불교를 연찬한 후, 수많은 대승경전을 가지고 서역 구자국(龜玆國)과 노선국(露善國)을 거쳐 둔황에서 수년간 머무르며 북량(北涼) 왕 저거몽손(沮渠蒙遜, 재위:401년~433년)의 비호 하에 <대집경(大集經)>, <대운경(大雲經)>, <불소행찬(佛所行讚)>, <열반경(涅槃經)> 등을 한역함으로써 그가 번역한 경 ‧ 율들은 중국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거몽손의 오해를 받아 피살됐다.

  

*담연(湛然, 711~782)①---중국 당나라 천태종을 중흥시킨 제6조이다. 형계 존자(荊溪尊者)ㆍ묘락 대사(妙樂大師)ㆍ원통 존자(圓通尊者)라 불리기도 한다. 유학을 했으나, 17살 때 방암(金華方巖)에게 천태지관(天台止觀)을 전수받고, 뒤에 현랑(玄朗)을 스승으로 천태교의를 익혔다. 율 ‧ 선 ‧ 화엄 ‧ 유식사상 등을 깊이 공부하고 강남에서 천태교학의 저술을 연구, 무정물에도 불성이 있다고 주장해 천태교의를 발전시켰다. 저서에 <법화현의석첨(法華玄義釋籤)>, <법화문구기(法華文句記)>, <마하지관보행전홍결(摩訶止觀輔行傳弘訣)>, <지관의례(止觀義例)>, <지관대의(止觀大意)> 등이 있다.

  

*담연(湛然)②---맑다, 투명하다는 뜻인데, 잔잔한 호수나 가을 하늘같이 마음이 맑고 깨끗해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한다. 소지장(所知障) 또는 이장(理障)의 가림이 없이 대보리(大菩提)의 지혜로 온갖 법을 이(理)와 사(事)의 모든 측면에서 밝게 아는 것을 말한다.

원효(元曉) 대사는 자신의 저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대의를 기술하는 문단에서 “본성, 즉 마음의 근원은 있음과 없음을 떠나 있어 홀로 청정[淨]하며, 마음의 근원은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원융하고 있어서 담연하다(湛然: 편안히 다 비추다, 적정한 가운데 대지혜가 있다)”라고 말했다.

  

*담징(曇徵, 579~631)---고구려 승려. 영양왕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불교학은 물론 오경에도 능통했고, 채색, 지묵, 공예에도 능해 일본 불교미술사 발전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그가 그린 법륭사(法隆寺) 금당벽화는 불후의 명작으로 전해 온다. 이 밖에 맷돌 제조법도 가르쳐 일본 문물 개화에 크게 기여했다.

  

*담판한(擔板漢)---인간은 원래 150도를 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널빤지를 등에 짊어지면, 옆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가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컫는 불교용어이다. 선종에서는 소승 나한을 좁은 소견이라 해서 담판한이라 한다.

     

*담허(倓虛, 1875~1963)---근현대 중국 스님으로, 휘(諱)는 융함(隆銜)이고, 자는 담허(倓虛)이며, 하북성 출신으로 속가 이름은 복정(福庭)이다. 모친의 꿈에 승려가 나타나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는 청을 받고 다음날 스님을 낳았다. 12살 때 외갓집에 갔었는데 외할머니가 보니 엄연한 스님의 모습이었다. 17살에 결혼을 했고, 저승을 다녀오는 꿈을 꾸고는 출가의 뜻이 굳어졌다. 그리하여 틈틈이 경전을 탐독했으며, 특히 <능엄경>을 읽고 깊이 깨달은 바 가 있었다.

    늦은 43세(1917년)에 출가했다. 절강성의 관종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제한 스님으로부터 천태교법을 전수받았다. 스님은 마음을 기울여 가르침을 청했고 남달리 진전이 빨랐다. 제한 스님께서는 스님으로 하여금 북방불교를 부흥하게 하기 위해 각별히 정성을 다해 가르쳐주셨다. 아들 4명 중에 두 분이 출가를 했다.

    스님은 평생 강경과 설법, 사찰건립과 도제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스님은 체구가 크고 위엄이 있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찼다. 매번 법상에 오를 때마다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스님은 수많은 곳에서 사찰을 중건, 중수했으며, 가능한 각 사찰에 불학원을 설치해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중에서 청도의 담산사(湛山寺)가 성황을 이루었다.

    스님은 평생 교(敎)로는 천태학을 가르치고 수행(行)은 정토를 근본으로 삼았다. 평소 후학들에게 지관(止觀)과 염불을 닦을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염불할 것을 간곡히 권했다. 문하에 염불공부가 깊어 미리 갈 시간을 알고 해탈을 얻은 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30여 년간 <반야심경>, <금강경>, <아미타경>, <능엄경>을 수없이 설했고, 시방총림을 9곳, 불학원(佛學院) 13곳, 굉법지원(宏法支院) 17곳을 건립했으며, 해문(解門)은 천태, 행문(行門)은 정토로 대중들을 이끌었다. 각 사찰마다 오후 불식과 하안거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셨는데 북방불교에서 보기 드물었다.

    항일전쟁 승리 후 담산사(湛山寺)로 돌아오신 스님은 상좌들의 요청으로 평생의 사적을 구술(口述)하고 제자 대광(大光)이 <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을 편성했다.

    스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대중들을 맞이해 강의를 하셨으며,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항상 대중들에게 이르기를 불법의 요지는 간파(看破), 방하(放下), 자재(自在)에 있다고 하셨다. 1963년 열반 하셨는데 세수89세, 법랍 38년이었다.

     

*당간지주(幢竿支柱)---당간(幢竿)이란 사찰에서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부처님 공덕을 기리는 당(幢;깃발)을 다는 깃대를 말한다. 이 깃대(장대)를 양쪽에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일반적으로 당간지주는 돌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나 철제 혹은 목제인 경우도 드물게 있다.

    석재 당간지주로는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 보물 제4호)가 유명한데, 이 당간지주 서주(西柱-서쪽 지주) 서면(西面)에 826년(신라 흥덕왕 1)에 채석해 이듬해 2월에 완성했다는 주기(柱記)가 각자(刻字)돼 있어서 당간지주양식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당간은 나무장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철제 당간으로는 충북 청주 용두사 터 철 당간에 그 조성연대와 철통 척 수가 새겨진 명문이 있어서 국보 제41호로 지정돼 있고, 계룡산 갑사의 것도 철제 당간이다. 그리고 통도사 석당간처럼 석제 당간도 있었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삼문(三門) 형식이 정착되기 이전에 사찰의 존재를 표시한 것으로 경내 바깥쪽에 위치해 지금의 안내간판과 같은 역할을 하던 유물이다. 당간(幢竿)이라는 깃대 위쪽에 도르래 장치를 해서 당(幢)을 부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당간에 부착하는 당이란 깃발과 같은 장엄물로서 천으로 만들어 길게 늘어뜨리는 번(幡)과 같은 표찰을 의미했다. 옛날에는 수 십 미터 높이의 당간에 그 절의 소속 종파나 특정행사와 관련된 깃발을 내걸어 장엄했다고 한다.

    당간의 유래는 인도 기원설과 중앙아시아 기원설 두 가지가 있다. 인도 기원설에는 불탑을 장엄하는 일산(日傘)과 깃발 등 장엄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즉, 불탑을 장엄하던 깃발 중에서 일부가 당간으로 변했다는 주장이나 설득력이 약하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당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기원설은 솟대에서 비롯된다. 중앙아시아 샤먼들은 신성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신장대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솟대’이다. 솟대란 ‘소도(蘇塗)’라는 신성한 지역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기념물로 그 위에 새를 조각해서 얹어 놓았다. 여기서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동물로 침엽수ㆍ사슴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샤먼들의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이것이 불교에 편입돼 당간으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당간은 절 입구에 하나를 세운 반면에 중국 당간은 경내에 쌍으로 세운 것이 다르다. 중국불교는 북로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 신장대 문화보다는 인도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까닭에 금당 좌우에 당간을 세웠는데,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좌우당간(左右幢竿)이다.

      

*당래불(當來佛)---당래불은 미래에 오는 부처를 말한다. 부처의 출현을 시간에 따라 과거불(過去佛) ․ 현재불(現在佛)) ․ 당래불(當來佛)로 나누기도 하는데. 과거세에 나타난 부처를 과거불 또는 고불(古佛)이라 하고, 미래에 나타나는 부처를 당래불 또는 후불(後佛)이라고 한다. 과거불에는 석가모니의 전생에 그가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는 연등불(燃燈佛)을 비롯한 과거7불(석가모니도 포함됨) 등이 있고, 미래불(당래불)에는 현재 도솔천(兜率天)에 있다가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후 56억 7,000만 년이 지나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성불한다는 미륵불이 있다. 소승은 부처를 향해 공부하는 당래불 사상이요, 대승은 부처임을 자각하는 본래불 사상이다.

  

*당번(幢幡)---당번이란 당(幢)과 번(幡)을 말한다. 당(幢)은 절에서 의식이 있을 때, 절 앞에 세우는 깃발이다. 깃발에는 불화(佛畵)를 그려 부처님이나 보살의 위엄을 나타낸다. 승번(勝幡)이란 불ㆍ보살(佛菩薩), 곧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의 성덕을 나타내는 깃발이다. 불교가 일어나기 전, 고대 인도에는 100 여개의 바라문 교파가 항상 바라문 교법에 대해 토론을 하고 승패를 겨루었다. 그 때 토론에서 지는 편은 항복을 하고, 이긴 편은 그 표적으로 자기 집 대문 앞에 깃대, 곧 승번(勝幡)을 세웠다. 고대 인도의 이러한 바라문교 신앙문화가 불교에 유입된 것이다.

    

*당체즉공(當體卽空)---모든 존재가 존재 그대로 공하다는 말이다. 불교를 이해할 때 분석할 석(析)과 빌 공(空)자를 합한 석공(析空)이 있고, 곧 즉(卽)과 빌 공(空)자를 합한 즉공(卽空)이 있다.

석공(析空)은 현대 물리학적으로 분석해 들어가서 쪼개고 쪼개서 그야말로 아주 궁극적인데 이르러서 모두가 다 소립자(素粒子)가 되고 종당에는 에너지 파동으로 비어버리는 것을 석공이라 한다.

    즉공(卽空)은 현대인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것인데, 바로 있는 것 그대로 공이란 말이다. 사람을 보면 사람 그대로 공이고, 금은 금 그대로 공이어서 바로 당체(當體) 그대로 비어있음을 말한다. <반야심경>의 색즉공(色卽空)과 같은 말이다. 바람에 의해 일어난 파도가 그대로 물이고, 물 그대로 파도인 것을 직관해서 그대로 보라는 것이 당체즉공이다. 불교에서는 사람들 안목에 따라 보고 듣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몇 가지로 분류해서 이야기한다.

     첫째, 보통 사람들, 즉 범부의 안목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집착한다고 본다.

     둘째, 성문(聲聞)들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존해, 보이고 들리는 모든 존재들이 공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안다.

     셋째, 연각(緣覺)들은 스스로 체험을 통해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결합된 가유(假有)이기 때문에 공하다는 것을 안다. 교리적 용어로는 필경공(畢竟空), 또는 분석공(分析空) 견해이다.

     넷째, 보살들은 모든 존재가 존재 그대로 공하다는 것, 곧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안다.

보고 듣는 일은 모두가 환영이며 삼계는 실재하지 않는 허공의 꽃[공화(空華)]과 같으니, 번뇌가 소멸된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그 모든 것이 꿈속의 일과 같다고 하는 <능엄경> 가르침은, 보살의 안목으로 볼 때 모든 존재가 그대로 공하다는 당체즉공(當體卽空)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중생 모두가 거품을 가지고 산다. 아무리 금붙이를 많이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림자에 그림자를 붙인 것이다. 마음 찾기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일체물질이 사실은 텅텅 빈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했다. 물질 그대로가 공(空)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같이 물질을 분석해서 아는 석공(析空)이 아니라, 당체즉공(當體卽空)이고,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중생이 생사 윤회하는 모든 세계인 삼계에 오직 마음뿐이란 말이다. 색즉공(色卽空)은 그렇게 분석한 뒤에 공(空)이라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바로 공, 당체즉공(當體卽空)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당체가 바로 공인가. 모든 것이 인연법을 따르기에, 연기법은 우주대법(宇宙大法)이다. 우리가 불교를 생각할 때는 언제나 연기법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중생은 연기법을 모르고 성자는 연기법을 안다는 차이이다. 진여불성이 연(緣) 따라서 잠깐 나타난 것이 세상현상이다. 당체즉공(當體卽空)이란 말이다.” - 청화(淸華) 스님

    <반야심경>은 일관되게 공(空)사상, 무(無)의 사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고, 모든 것이 있음을 근거로 해서 삶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한결같이 없다, 공이다, 공으로 봐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공으로 봤을 때 인간이 가진 무한한 능력을 한끝 펼쳐 보일 수가 있으며. 본래 갖춘 부처로서의 어떤 삶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일관 되게 하고 있다.

    대게 공(空)을 이야기를 할 때 연기(緣起)를 이야기한다, 모든 존제는 인연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이 모여서 비로소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그렇고, 우리 육신, 집, 자동차, 전부가 다… 이것과 저것이 어우러져서, 그 어우러진 인연의 힘으로 있는 동안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인연의 힘이 다하면 낱낱이 흩어지기 때문에 연기의 입장에서 볼 때 공이라 보는 것이다. 그것을 분석공(分析空)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 육신 역시 잘 살아야 백년이면 다 죽게 돼 있다, 어떤 견고한 자리도, 부귀영화도, 세월이 오래 가면 끝내 무상해서 흩어지고 망가져서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듯이 끝내 공(空)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경공(畢竟空)이다. 그런데 <반야심경> 입장은 연기(緣起)이기 때문에 공(空)이라고 하는 분석공(分析空)도 아니고 무상하니까 공이라고 하는 필경공(畢竟空)도 아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즉 색 그대로 공이라고 한다,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공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니 그것을 당체즉공(當體卽空)이라고 한다. 연기는 연기 그대로, 물거품은 물거품 그대로, 돌은 돌 그대로, 사람은 사람 몸 그대로 공이다. 분석공(分析空)이니, 필경공(畢竟空)이니 하는 것은 공을 이해해 보려고 억지를 쓴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당취(黨聚)---당취(黨聚)란 승려들의 비밀결사 조직을 말한다. 구도(求道)가 승려의 본래목적이긴 하지만 지배세력에 핍박받는 백성들을 묵과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 중생을 먼저 구하는 것이 대승불교정신이라 주장하고, 그 무엇보다도 보민(保民) 보국(保國)사상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 당취들의 신념이듯이 상당히 진보적인 승려들이었다.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해 국난극복 선두에 섰던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사명당 유정(惟政) 같은 이들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을 신불승(神佛僧)이라고도 했다.

    한편 불교가 탄압받았던 조선시대 중기 이후 억불숭유정책으로 일부 유생들이 승려를 잡아다가 노비로 삼거나 여승들을 습격해 겁탈하는 등 훼불행위가 심각해지자 승려들 간에 자위수단으로 결성한 반체제 승려들 비밀결사 조직도 당취라 했다. 이런 당취(黨聚) 본거지는 전국적으로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조선조 당시에 대표적인 곳으로는 3개파를 꼽는데, 지리산파, 금강산파, 그리고 변산반도파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선의의 당취 외에, 학문이나 수행이 없는 승려들이 모여서 조직한 비밀결사를 말하기도 했다. 이런 자들 모임을 폄하해서 땡추(당취)ㆍ땡땡이중이라는 말이 생겼다. 특히 조선조에 승려지위가 땅에 떨어진데다가 조선 중기 이후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수행이 없는 불량배에 가까운 당취들이 생겨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대경관심(對境觀心)---눈에 보이는 경치를 보면서 내 마음을 보라는 말이다. 보이는 것을 볼 때 보이지 않는 것도 보라는 뜻이다. 선은 대경관심(對境觀心)을 강조한다. 대경관심은 밖의 사물을 대할 때 그 사물과 연계되는 자신의 마음을 통찰함으로써 순간(生)이 곧 영원(死)임을 깨닫는 것이다. 감성적 초월을 통해 순간을 영원으로 인식함으로써, 움직이는 현상세계 가운데서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본체를 인식하려 한다. 선 수행자의 눈에는 세간의 만물은 움직이면서도 고요한 것이고, 일시적이면서도 영원한 것이다.

    만물의 움직임과 고요함, 시간의 길고 짧음은 본질적으로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이른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고, 만물일여(萬物一如)의 도리이다.

   

*대광명(大光明)---태양광명이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지혜광명은 시방삼세를 두루 비추기 때문에, 태양광명에 비유해서 지혜광명을 대광명이라 한다. 태양광명은 구름이 끼면 밝지 못하지만, 지혜광명은 어떠한 것도 다 비추기 때문에 태양광명보다 더 밝은 것이다. 그리고 대광명은 아미타불을 뜻한다.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 摩詞拘絺羅)---한자로 대구치라경(大拘緻羅經)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대구치라는 사리불의 외삼촌으로, 마하구치라(摩詞拘絺羅)라고도 한다. 대슬(大膝)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나면서부터 손톱이 길었으므로 장조범지(長爪梵志)라고도 한다. 뒤에 불문에 귀의, 말재주가 뛰어나 문답 제일이라 불린다.

   <대구치라경>은 <중아함경(中阿含經)>에 실려 있는 경으로, 사성제, 5근, 오취온, 무상정, 멸진정 등에 대한 내용이 설해져 있다. 다음은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차이에 대한 내용이다.

   사리불 존자가 구치라 존자에게 물었다.

   “현자! 구치라여!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간 것과 무상정(無想定)에 들어간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존자 구치라가 대답했다.

   “멸진정에 들어간 비구는 상(想)과 지(知)가 즉 사유(思惟)가 멸했지만, 무상정에 들어간 비구는 상(想)과 지(知)가 멸하지 않았다,”

   사리불이 또 물었다.

   “현자! 구치라여!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와 무상정에서 일어날 때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존자 구치라가 대답했다.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는 내가 멸진정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비구가 무상정에서 일어날 때는 나는 상(想)이 있는가? 없는가? 라고 생각한다.”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면 상(想)과 사유(思惟)가 멸한 경지다, 멸진정은 육입처(六入處)가 멸한 것이다, 육입처에서 비롯된 것이 허망한 사유와 지각이다, 허망한 지각과 사유가 멸한 경지가 멸진정이다. 멸진정에 들어가면 죽은 사람과 똑 같다고 한다. 숨도 멈추어져 있고 곁으로 보기에는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가 구치라 존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구치라 존자는 멸진정에 들어간 비구와 죽은 사람과 차이는 수명이 멸하지 않았고, 따뜻한 체온이 있고, 식(識)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육근(六根)은 생명 현상이고, 육입(六入)은 의식(意識) 현상이다. 멸진정은 육입처를 멸하므로 육입처에서 비롯된 허망한 사유와 지각을 멸한 경지이다,---→‘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차이’ 참조.

 

    

*대기(大機)---뛰어난 근기. 기(機)는 소질ㆍ능력이라는 뜻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대기대용(大機大用)이란 뛰어난 임기응변의 기량을 완벽하게 활용함을 뜻한다. 즉, 깨달음이 원숙한 경지에서 나오는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마음을 허공과 같이 가지고 마음 씀은 바늘 끝과 같이 세세밀밀해 부처님의 마음 씀과 같은 경지가 되는 것을 말한다.

    대기대용이란 상대(相對)가 끊어진 절대(絶對)의 경지에서 나오므로 걸림이 없고 자유롭다. 그것은 결국 몸과 마음의 실다운 주인으로서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쓰는 경지이다. 대소유무(大小有無)를 초월한 자리에서 순간순간 선악(善惡) 시비(是非)를 가리는 자유자재한 솜씨이다. ​다시 말하면 시공(時空)을 초월한 자리에서 시공 가운데로 출입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절대와 상대가 혼연일체가 된 부사의한 경지다.

    대기(大機)란 죽음이 없고 실패가 없고 손해가 없는 경지이므로 ​언제든지 죽을 수 있고 질 수 있고 손해 볼 수 있는 대용(大用)을 구사할 수 있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오면 경우에 따라서는 대갈일성(大喝一聲)해 ​살인검(殺人劍)을 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을 치기도 하며, ​묵묵부답으로 양구(良久)하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숨어버리기도 하며, ​또는 즉시 져주기도 하면서, 상대에 떨어지지 않고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자기가 살고 남도 살리며, 자기도 이기고 남도 이기게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진 언행인 것이다.

         ※용례 ―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무위(無爲)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필요할 때는 또 전광석화처럼 대기대용(大機大用)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전북 고창군 서운사(禪雲寺) 입구의 부도 밭에는 <백파대사비白坡大師碑)>가 있다.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비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律師)의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白坡)만이 이에 해당할 만하며,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백파가 팔십 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야이기 때문에 비문 제목을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라 했다고 적혀있다.

   

*대기설법(對機說法, 산스크리트어 pariyaya-desana)---듣는 이, 혹은 질문하는 이의 이해수준(근기)에 따라 그에 맞추어 적절한 언어와 방편으로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응병여약(應病與藥)], 가르침을 받는 자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그에 알맞은 가르침을 설함이 대기설법이다. 수의설법(隨宜說法), 수기설법(隨機說法)과 같은 말. 수기산설(隨機散說), 근기설법(根機說法), 응기접물(應機接物), 방편설법(方便說法)이라고도 한다. 차제설법(次第說法)과 비슷하다.

    우리가 경전을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더러 있다. 불경에 상호 모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혼과 윤회의 질문에 대해서 침묵할 경우라든지, 혹은 여기에선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기에선 다르게 이야기 한다든지. 그 사람에게 그 답이 적합 하느냐 않느냐에 따라서 답하고, 답하지 않고 그런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부처님 가르침이 대기설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을 때, 그 사람 물음에 대해 답을 주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일률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의사가 감기환자가 오면 감기약을 주고, 독감환자가 오면 독감약을 주는 것과 같다. 말룬카 뿌따(Malunkyaputta) 비구가 와서 14가지를 질문했을 때, 붓다가 답하지 않고 독화살을 이야기한 것은 그 비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생사 해탈이지, 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방 상좌부불교의 <니까야>를 해설한 <정정도론>에서는 인간의 기질을, ① 탐하는 기질, ② 성내는 기질, ③ 어리석은 기질, ④ 믿는 기질, ⑤ 지적인 기질, ⑥ 사색하는 기질이다. 이렇게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생들의 다양한 기질에 따라 또는 축적된 성향에 따라 근기에 맞게 부처님이 설하셨는데 이를 방편설, 또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차제설법(次第說法) 참조.

     

*대념처경(大念處經, 빠알리어 Maha Satipathana Sutta)---‘대념처경’에서 마하(Maha)는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고, ‘념(念)’은 사띠(sati)를 말한다. 그리고 ‘처(處, paṭṭhāna/빠따나)’는 마음집중의 대상을 말한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경전이란 의미이다. 팔정도의 정념(正念) 즉 삼마사띠(samma sati)를 설하는 염처계 경전들 중 중요한 경전 3가지가 있다.

    • 맛지마니까야 118. 들숨날숨에 마음챙김경(anapanasati, 아나빠나사띠, 안반수의경)

    • 맛지마니까야 119. 몸에 대한 마음챙김경(kayagatasati, 까야가타사띠, 염신경)

    • 디가니까야 22. 대념처경(maha sati patthana, 마하 사띠 빠따나)

위 세 가지 중 세 번째, 즉 빠알리어 삼장 중 디가니까야(Digha-nikaya, 長部)에 실려 있는 것을 4세기말에 계빈국(罽賓國) 출신 학승 구담 승가제바(瞿曇僧伽提婆, Gautama Saṃghadeva)가 한역했다.

   그리하여 <대념처경(大念處經, Mahāsatipṭṭhāna-sutta)> 혹은 <사념처경>이라고도 하는데,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anapanassati)>과 더불어 수식관(數息觀-호흡법) 수행의 중요한 경전이다. 그리고 이 <대념처경>에 위빠사나(vipasyna) 수행법과 사마타(śamatha) 수행법이 잘 설명돼 있어서 남방불교에서는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경이다.

   <대념처경>을 사념처경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 경전이 몸의 관찰[身念處], 느낌의 관찰[受念處], 마음의 관찰[心念處], 법의 관찰[法念處] 등 사념처(四念處)에 대한 내용이 설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념처경>에서 부처님께서 말했다.

   “비구들이여! 중생의 정화(淨化)를 위한, 슬픔을 건너기 위한,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이것은 네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사념처 위빠시나이다. 무엇이 넷인가? 몸에서는 몸을, 감각에서는 감각을, 마음에서는 마음을, 법에서는 법을 전심전력으로 마음을 챙겨 분명한 앎으로 계속 관찰해서 세상의 욕망과 고뇌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느니라.”라고 했다. 즉, 사념처 수행이란 몸, 느낌, 마음, 현상, 이 네 가지를 마음챙김 하는 것이다.  

     다음은 네 가지 마음챙김에 대한 법문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대중들이여,

      • 여기 대중은 몸에서 몸을 관찰[身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자가 된다.

      •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受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자가 된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心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자가 된다.

      •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자가 된다.”---→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 사념처관(四念處觀), 승가제바(僧伽提婆), 염처경(念處經, Satipṭṭhāna-sutta), 아나빠나사띠(빠알리어 anapana sati),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 참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당나라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이 17년간(629년~645년) 인도로 구법여행을 한 구법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현장이 장안을 떠나 불교학 중심지인 나란타(Nalanda:那爛陀)대학에 들어가 수학한 후 인도와 서역을 두루 살피고 돌아오기까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여행기로서, 당시 불교정세나 그 지방형편을 아는데 요긴한 자료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문 없는 큰 도라는 말이다. 문이 없는데(無門) 들어가고 길이 없는데 가는 고로 대도(大道)라는 것이다. 문이 없는데 들어간다 함은 동쪽도 서쪽도 없으며, 남과 북이 없고, 안과 밖도 없고, 앞도 뒤도 없고,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둥긂도 모남도 없고, 길고 짧음이나, 크고 작음과 같은 분별이 없음을 말함이다.

    길이 없는데 간다 함은 막힘도 통함도 없고, 밝음도 어둠도 없으며, 거룩함도 평범함도,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으며 늙고 젊음의 구별 또한 없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을뿐더러 선과 악의 나눔이나 진짜다 가짜다, 옮다 그르다 하는 시비도 있을 수 없음이니 이를 일러 길 없는 길을 간다 함이다.

    문 없는 문을 들어서고, 길 없는 길을 감은 걸림이 없는 마음이다.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물질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신에도 구애받지 않으니, 두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를 뜻함이다. 물질의 본질을 알고 보면 물질이 아니요(色則是空), 정신도 그 본질을 캐보면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닐진대(空則是色), 공연히 인간들이 천만 가지 경계를 짓고 부질없는 이름을 붙여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시비를 하지만, 티끌만큼도 치우침이 없는 것이 걸림 없는 마음이라. 그건 마치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되 산이 물에 젖지 않고, 구름이 산허리를 어루만지며 지나되 높은 산허리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함이다.

   이와 같이 큰 도는 본래 일정한 고유한 문이 없고, 천지에 조금도 장애가 없이 천지만물이 모든 것에 조금도 막힘이 없이 무장무애(無障無礙)한 그러한 경계가 이른바 대도무문이다. 그래서 그런 대도라는 것은 끝도 갓도 없이 광대무변한 것이고, 또는 무량(無量)의 공덕(功德)을 갖춘 자리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모든 법(法)을 총망라해서 조금도 흠절이 없는 원만 무결(無缺)한 그런 뜻을 가리켜서 대도무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도무문에 따르는 말씀은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선(禪)의 참선(參禪)에 관한 논장(論藏)에 있듯이, 대도무문(大道無門) 천차유로(千差有路)라, 대도라 하는 큰 진리는 본래 문이 없지만은 또 인연이 따르면 그때는 천차유로라, 천 가지 만 가지의 길이 있다는 말이다.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황제 무제(武帝)에게 지공화상(誌公和尙. 418~514) 지어 바친 선시집(禪詩集) <대승찬(大乘讚)>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 대도는 항상 눈앞에 있어,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 ― 비록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대도(大道)란 마음을 말한다. 마음은 눈앞에 있다. 눈앞[目前]이라는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눈앞이 아니다. 마음이 곧 눈앞이란 말이다.

  또 눈앞[目前]이란 말은, ‘일이 목전(目前)에 닥쳤다’는 표현이 있듯이 시간적으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 뜻이고, 공간적으로는 내가 직접 보고 있는 ‘바로 여기’란 뜻이다. 따라서 대도(大道)란 것은 ― 마음이란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 바로 여기, 내가 지금 깨어있는, ‘나’란 존재가 있는 이 자리란 말이다. 그러니까 도(道)가 곧 내 존재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 도가 있다 이런 말이다.

   그래서 원효 대사도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들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것들이 사라진다고 한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면 법도 따라 일어나고 ― 심즉생종종법생(心卽生種種法生)

      마음이 사라지면 법도 따라 사라진다. ― 심즉멸종종법멸(心卽滅種種法滅)“

   또 <화엄경>에는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고 해서 같은 내용의 글귀가 나온다.

   그래서 입처개신(立處皆眞),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진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대도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말은 대도(大道)란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인 바로 이것이라는 말이다. 대도는 언제나 이것인데, 우리의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 것이 문제이다. 흐트러진다는 것은 무언가에 꺼들리고, 구속되고,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모습[相]을 따라간다’, 혹은 ‘경계에 머문다’고 말한다. 경계를 안 따라가고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확인된다.

   도(道)는, 마음은 둘이 아니다, 온 우주가, 온 세상이 한 결 같이 이것(손가락 하나를 눈앞에 들어 보임)처럼 둘이 아닌 한결같이 이것이다. 도는 눈앞에 있어서 이 순간 직접적이고 끊어짐이 없다. 그러나 모습은 지속적일 수 없다.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 밖을 보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계속 바뀐다. 그래서 모습을 인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 발밑을 보면 항상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아무리 변화무쌍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마음은 자기 자리에 항상 있어서 전혀 변화가 없다. 모습은 무상하게 변하지만 도는 전혀 변화가 없다.

   그런데 도가 눈앞에 있으나 보기가 어렵다. 이것이 문제인데, 왜 보기 어려우냐 하면 모습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모습을 따라가기 때문에 변함없는 도를 놓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이다. 변화하는 모습이란,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다 변하는 것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변하는 것이고, 코의 냄새, 입의 맛, 몸의 촉감, 이런 것들이 다 변화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느낌, 생각, 욕망 같은 것들도 자꾸 변해가는 것들이다. 이런 스쳐 지나가는 모습[相]들을 따라가면 이 변하지 않는 도(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임)를 놓치게 된다.

   우리는 앞서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비유에서처럼, 변화하지 않는 이 자리(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임)에 서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한결같은 이 자리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우리는 변하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서 한결같은 이 자리를 놓치고 있다. 변화하는 모습에 정신이 팔리더라도, 한결같이 변화하지 않는 자리, 여기에서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의 진실이다.

   모습에 꺼들리는 습관 때문에 도를 보기는 어렵지만, 도는 반드시 볼 수 있다. 늘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지금 한 순간에도 생각은 바뀌고 모습도 바뀌고 시간도 바뀌고 있지만, 그 바뀌는 순간은 항상 이 순간이다.

 

*대림정사(大林精舍, Mahavana)---바이샬리왕이 지어서 부처님에게 기증한 정사이다. <잡아함경>에 의하면, 대림정사 내에는 원숭이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대림정사의 아소카왕 석주 남쪽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원숭이 연못이 있고, 그 옆으로는 중각강당(重閣講堂) 터가 있어 부처님이 많은 설법을 하셨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 중각강당(重閣講堂)은 <화엄경> ‘입법계품’을 설법한 장소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여러 번 설법을 하셨다고 전한다.

   원숭이 연못은 원숭이 떼가 부처님께서 목욕하시도록 판 연못이라고 전해지는데, 옛날에 부처님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현장(玄奘) 법사가 이곳을 찾았을 당시의 기록에도 “아소카 석주 남쪽에 연못이 있다.”고 돼 있다.

   특히 바이샬리는 교통, 문화, 경제에 있어서 북인도의 중심지였고, 대승불교의 발생지이며, 유마거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마경>의 배경이고, 최초의 비구니교단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성도 후 6년, 부왕의 장례식을 마친 후 이곳 대림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양모 파사파제(波斯派提 - 파자파티, 大愛道)와 500명의 샤카족 귀부인이 부처님께 귀의함으로써 최초의 비구니 승단이 형성된 곳으로 부처님과 인연이 깊다.

   부처님 당시 바이샬리는 상업이 발달해 살기가 넉넉했으므로 부처님과 스님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발우를 어느 지역에 한 줄로 놓아두면 신도들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담아 주었는데, 어느 날 부처님이 자신의 발우를 제자들 발우에 섞어 놓았는데, 원숭이가 그 많은 발우들 중에서 부처님 발우를 골라내어 근처 나무에 올라가서 꿀을 따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아소카 왕의 석주는 1969년 발굴 당시에는 석주의 중간 부분까지 땅속에 묻혀있었지만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석주의 높이는 13m이다. 바이샬리의 석주는 BC 250년 경 아소카 왕이 세운 석주로 현재 남아 있는 석주 가운데 원형 그대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부처님이 처음 당신의 열반을 예견하신 곳도 바로 여기 바이샬리였다. 80세가 되면서 라즈기르에 머물던 부처님은 그 곳을 떠나 스스로 열반의 행보에 나셔서 나란다와 파트나를 거쳐 이곳 바이샬리에 들렀다. 그리하여 대림정사는 부처님이 열반을 처음으로 말하신 곳으로, “아난다야 이것이 내가 이 성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현생의 육신으로는 이 성에 다시 올 수 없음을 일러주셨다. 그리고 부처님은 마치 코끼리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바이샬리를 응시하시고는 노쇠한 몸으로 이곳을 떠나 파바 마을을 거쳐 쿠시나가르로 갔다고 전해진다.

   또한 부처님 입멸 후 100년경 이곳에서는 계율에 관한 새로운 수정주의자들이 생겨나 10사(事)의 합법성을 주장하자 보수적인 장로들은 그것을 위법이라 비난하여 이곳에서 700명의 비구들이 집회를 가지면서 10사를 비법(非法)이라고 배척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이곳 바이샬리에서 불전 제2차 불전결집이 이뤄졌고, 이렇게 해서 불교교단은 보수성향의 상좌부와 진보성향의 대중부로 갈라지게 됐다.

     

*대매 법상(大梅法常, 752~835)---9세기 당나라 때 스님이다. 10대에 출가해 온갖 경과 논에 통달해 강의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많이 아는 것은 말재주에 보탬이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깨닫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 자신의 경전을 읽어야 된다싶어 스승을 찾아 나섰다가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을 찾아뵈었다.

    그리하여 “부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간절한 물음이었다. 이에 대한 마조 선사 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즉심시불(卽心卽佛)].”

     여기서 법상 스님은 크게 깨달았다. 의문이 콱 풀렸다.

     “어떻게 지녀야 합니까?”

     “네 스스로 잘 보호해 가져라.”

    이 법문을 듣고 법상 스님은 얼마 곡식과 종자를 구해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 산이 대매산(大梅山)이었다. 매화가 많아서 대매산이다. 그 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이미 이 마음이 부처인 줄 알았으니, 그는 이 마음을 살피고 쓸 줄을 알면 됐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고….

    스승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법문 위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법상 스님은 조그마한 초막을 짓고 살면서 수행을 했다. 깨달은 사람이 더 닦을 것이 있나 하겠지만 바로 알았기에 때문에 참으로 닦을 수가 있었다. 깨닫기 전에 닦은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깨달은 사람이 계속 정진하는 것이 보임(保任)이다.

    “수행! 닦는 행위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것이다. 보임수행(保任修行)해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한순간이지만 닦음은 늘 지속해야 할 과제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울이 밝은 바탕을 지니고 있지만 가만히 두면 더렵혀지듯이 우리 마음도 그런 것이다.” - 법정 스님

  

*대면불상식(對面不相識)---매일같이 얼굴을 대하고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도, 서로 상대방 마음을 잘 모르면 모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 도반(道伴)은 서로 천리를 떨어져 살아도 마음은 항상 같이 있고, 중생들은 비록 같이 살아도 마음은 서로 천리 밖에 있다. 따라서 혈연보다 법연(法緣)이 더 중요하고, 법연 중에서도 진정한 도반이 돼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법수란 대장경 가운데 중요한 부분과 수행에 요긴한 부분을 숫자로 분류 정리한 불교교리를 뜻한다. 즉, 숫자를 통해서 불교교리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일승(一乘), 이제(二諦),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 오온(五蘊), 육바라밀(六波羅蜜),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구품왕생(九品往生), 십선(十善)…37조도품, 52위… 삼천대천세계 등 숫자로 된 법(진리)을 말한다.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가 법수에 관한 대표적인 서적이다. 줄여서 <삼장법수>ㆍ<대명법수>라고 한다. 명(明)나라 일여(一如) 등이 1419년 왕명을 받아 50권으로 엮은 것으로, 대장경에 있는 법수(法數)를 모아 숫자 순서대로 배열하고 각 항목을 간략히 해설한 책이다. 일심(一心)에서 시작해 마지막 8만4천 법문까지 1600여 명목(名目)이 실려 있다. 오늘날로는 일종의 사전과 같은 책이므로 강원에서 공부하는 승려들에게 있어서 참고서 역할을 했다.---→법수(法數) 참조.

   

*대명주(大明呪)---진언(眞言) 중에도 짤막한 것은 종자라 하고, 조금 긴 것은 그냥 진언이라고 하며, 더 긴 것은 다라니(陀羅尼, dharani)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입으로 나오는 것은 진언이다. 명주(明呪)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몸 전체가 명(明)이 되는 것이다.

    대명주(大明呪)란 큰 지혜 광명으로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주문이라는 말인데, '마하반야바라밀' 7자를 대명주라고 한다. 반야지혜는 무시무종하고 불생불멸하며, 시방 삼세를 두루 밝게 비춰주는 광명을 가졌고, 육바라밀과 팔정도를 능히 행하며, 정사(正邪)를 능히 구별하고, 무명 번뇌를 능히 끊어버리며, 참 지혜광명을 나타내게 하는 크게 밝은 주문이란 뜻이다. ‘옴마니반메훔’을 육자(六字) 대명주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해서 우리 스스로가 마하반야바라밀이 되자는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진언이고, 몸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이 되는 것이 명주이다. 경에 보면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대명주(大明呪)를 외우면 스스로 몸에 괴로움이 없고 또한 남도 괴로움이 없고 둘이 다 편안하느니라. 왜냐하면 대명주(大明呪)며 무상주(無上呪)이기 때문이니라.”라고 했다.

따라서 대명주는 입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이 외워야 한다. 몸이 외울 정도니까 많이 외워야 하며 일심으로 외워야 한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은 대명주, 내 몸 자체가 반야바라밀이 되는 것이다.---→반야바라밀 참조.

  

*대모니(大牟尼)---대일여래(大日如來])의 별칭이다. 모니(牟尼, muni)는 적묵(寂黙)이라 번역하며, 번뇌 망상의 시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할 때의 ‘모니’도 이에 해당한다.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5세기 초 중국의 학승 법현(法顯)이 인도에서 가져와서 한역했다. 총 6권 18품으로 구성된 이 경은 부처님과 열반 및 불성에 대한 교리를 설법하고 있다. 여기서 니원(泥洹)은 열반(涅槃)을 음역한 말이다. 따라서 경명은 “부처님께서 니원(열반)에 대해서 설한 경”이란 뜻이다.

    418년에 법현이 <대반열반경> 제9권을 번역했는데, 이것을 이름 해 <대반니원경>이라 한다. 그 후 421년에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40권)>의 제1권~제10권까지의 내용에 해당한다. 이 경이 중국철학 심성론(心性論)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경전은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階有佛性)”는 명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열반학에서는 이를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개유불성에서 일천제인(一闡提人)은 제외된다. 즉, 일체의 중생은 모두 자기 자신 안에 불성을 가지고 있다. 한량없는 번뇌를 남김없이 제거하면 불(佛)이 곧 밝게 나타나는데, 일천제는 제외된다고 했다. 일천제 경우는 성불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천제(一闡提, 산스크리트어 잇찬티카/Icchantica)---불교의 정법을 훼방하고 구원될 가망이 전혀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을 말한다. 결국 선근(善根)을 모두 잘라 버린 자[단선근(斷善根)]를 말한다.---→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참조.

        

*대반야경(大般若經)---원명은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으로서 중요한 대승경전이다. 전체 600권으로 반야부 계통 경전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방대한 경으로 대승경전 성립 중기에 집대성된 것으로 보이며, AD 7세기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한역했다. 보통 <600권 대반야경>이라 한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공(空)사상을 천명하고 있으며, 육바라밀 중 특히 반야바라밀을 강조하고 있다. 반야는 부처님 모체요 육바라밀의 원천으로서 일체불법이 반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육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고, 육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일체지혜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공사상을 설하고 있다. 분량으로도 가장 방대한 경전으로 그 사상적 내용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 첫머리에 이 경을 배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현존하는 대승경전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분량이 많고 경명도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한다.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 ⑨이취반야경 ⑩대반야경의 열 가지이다. 이 가운데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⑩번의 600권 <대반야경>에 포함돼 있다.---→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참조.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aparinibbana Sutta)---<대반열반경>은 석존께서 돌아가심(열반하심)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 경전이다. 대반(大般)이라는 말은 조금도 흠절이 없는 모든 것을 다 포섭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석존이 돌아가실 무렵에 행한 모든 법문을 다 포괄(包括)한 경전이란 말이다.

   <대반열반경>은 보통 줄여서 <열반경>이라고 하는데, 소승과 대승 두 종류가 있다.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은 모두 <대반열반경>이라 이름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다. 부피도 대승 열반경은 한글로 번역해서 1000페이지 분량이지만 소승 열반경은 불과 150페이지로 분량이 적다.

   소승 <대반열반경> 중 빠알리어 남방 디가니까야에 실려 있는 것으로,

    • 빠알리어 본 <마하빠리닛바나 수탄타(Mahāparinibbāna Suttanta)>가 있다.

그리고 한역된 소승 <대반열반경>으로는 <장아함경(長阿含經)> 속에 실려 있는 것으로 <유행경(遊行經)>이 있다. 그리고 이에는 몇 가지 이역본이 있다.

    • 법현(法顯)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서진(西晋)의 학승 백법조(白法祖)가 번역한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

    • 구마라습 번역의 <불유교경(佛遺敎經)> 등이 있다.

   소승 <열반경>은 석존이 열반할 때를 전후한 사정을 전하고 있는데, 비교적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해 기록돼 있다. 여기서는 석존 입멸 후 교단의 의지처가 ‘법(法, dharma)’과 ‘자신’에 있음을 밝혀 - 법귀의 자귀의(法歸依 自歸依)라고 해서 법과 율을 중심으로 교단을 운영할 것을 말하고 있다.

   대승의 <대반열반경>은 후대에 대승보살 스님들이 만든 경전인데, 석존의 말보다는 대승보살스님들이 석존의 열반에 대해 생각하는 사상을 석존의 입을 빌어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석존 입멸 사실을 계기로 석존의 본질이 법신(法身)에 있음을 말하고, 불신상주(佛身常主),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중도(中道)사상, 일천제성불(一闡提成佛)을 주된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원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대승 <대반열반경>의 중요 한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동진(東晋)의 법현(法顯)이 418년에 번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6권,

    •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421년에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0권[北本],

    • 유송(劉宋) 때 혜관(慧觀), 혜엄(慧嚴) 등이 담무참과 법현이 번역한 것을 대조해 수정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권[南本]이 있다.

    • 이외 몇 종류의 부분 역이 있으며, 티베트어 역본도 현존한다.

   원효 대사가 <열반종요>를 저술할 때 근거로 사용한 것은 혜관, 혜엄 등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36권본이고,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6권본도 참조했다.

   원효 대사는 <대반열반경>을 “지금 이 경은 불법의 큰 바다이고, 방등(方等)의 비밀 창고로 그 가르침은 측량하기 어렵다. 진실로 넓고 넓어서 끝이 없고, 깊고 깊어서 바닥에 이를 수 없다. 바닥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다하지 않음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음이 없다. 여러 경전의 부분을 통합해 온갖 흐름[萬流]을 일미(一味)에로 돌아가게 하고, 부처님 뜻이 지극히 공정한 것임을 열어 보여 백가(百家)의 서로 다른 논쟁[異諍]을 화해시켰다”라고 평해, 이 경이 대승의 큰 가르침으로서, 경전의 서로 다른 모든 논의를 하나로 통합하는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원효는 <대반열반경>을 부처님의 일생 동안의 법문을 총 정리한 것으로 가장 심오한 이론을 담고 있다고 본 것이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실 무렵에 대한 경전이니까 마지막으로 모든 법문(法門)을 담은 것이고, 부처님의 반열반에 대한 논사들의 해석-철학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불제자들은 부처님의 반열반에 대해 바르게 알려면 반드시 <아함경-장부>과 <니까야-디가 니까야>에 전해지는 소승 <대반열반경>과 북전 대승 <대반열반경>을 바르게 읽고, 부처님의 행로를 바르게 따라가 부처님 반열반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열반경(涅槃經) 참조.

       

   

*대방광(大方廣)---대방광’이라 함은 붓다의 깨달은 진리를 이르는 말이다. 붓다의 진리는 온갖 것을 다 포함하고 있어 한량없이 큰 것이므로 대(大), 만법의 모범이 돼 변치 않는 체성(體性)이므로 방(方), 그 덕이 널리 우주에 관통하므로 광(廣)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마하(Maha, 摩訶)라 할 때 그 의역이 ‘대(大)’라 하겠는데, 여기 서 ‘대(大)’란 단순힌 크다는 뜻만이 아니라 ‘완전한’ ‘크고 위해한’ 그런 뜻으로서 대방광이란 뜻이기도 하다.

  

*대방광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대방등여래장경(大方等如來藏經) 참조.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산스크리트어 Maha-samni-pata-sutra)---줄여서 <대집경(大集經)>이라고도 한다. 전체 60권으로 구성돼 있다.---→대집경(大集經) 참조.    

   

*대방등여래장경(大方等如來藏經)---여래장을 설명한 최초의 경전이다. 줄여서 여래장경(如來藏經)이라고도 한다. 서진(西晋)의 법거(法炬, 290∼312)가 한역했다고 하며, 5세기 초 인도 출신의 학승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359∼429)가 다시 번역했다. 이역본으로는 불공(不空:705∼774)의 <대방광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이 있다.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 심식설(心識說)의 5위 75법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에 나오는 말인데, 대번뇌지법이란 염오(染汚)된 마음과 두루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으로, 여기에는 여섯 가지 옳지 못한 마음작용이 있다.

즉, 치(癡-어리석음, 無明 혹은 無智), 방일(放逸-선법을 닦지 않게 하는 의식작용), 해태(懈怠-열심히 노력하지 않게 하려는 의식작용), 불신(不信-믿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 혼침(惛沈-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의식작용), 도거(掉擧-마음을 안정되지 않게 하는 의식작용)의 여섯 가지가 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동북쪽에 영축산(靈鷲山-영취산)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산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법문을 하셔서 이러한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설법하시는데, 갑자기 대범천왕(大梵天王)이 허공중에서 꽃을 보냈는데, 부처님이 허공에 떨어지는 한 송이 꽃을 집어 설법을 들으려고 모인 대중에게 쳐들어 보이며, “이 도리를 아느냐? 허공에서 이 꽃을 보내온 도리를 아느냐?” 하시는 듯, 묵언으로 미소를 지으셨기 때문에 이것을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한다.

   이때 모인 청법대중(請法大衆)은 왜 부처님께서 귀중하신 법문을 하시다말고 꽃 한 송이 붙잡으시고 묵언하시며 빙긋이 웃고 계시는가? 하고,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때 오직 상수제자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로써 화답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셨다. “여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이 순간부터 선(禪)의 역사가 시작됐으며, 최초로 화두가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이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실려 있다. 그리하여 염화미소(拈花微笑) 혹은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는 말이 이 경에 처음 나와서 이 경을 <염화시중경>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 외에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란 말도 이 경에 처음 나온다.

   헌데 이 경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란 설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대장경에 끼이지도 못하고 있다. 대개 대승경전은 각기 어떤 목적이 있어 이를 위해 만들어졌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도 목적이 있었다. 당시 중국에는 이미 교상판석(敎相判釋)을 통해 <화엄경>이 최고다, <법화경>이 최고다, 하는 입장이 강해져 있었을 때, 조사선(祖師禪)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높이기 위한 근거로 이 경을 제작했다고 한다.

 

   

*대법(對法)---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대법(對法)을 아비달마의 번역어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도 있어 여기서 몇 가지 의미를 검토해 본다.

     ① 첫째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아비달마[論]란 말을 대법(對法)으로 해석했다. 아비달마(산스크리트어 Abhidharm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abhi + dharma = 對 + 法)」이어서 대법(對法)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대법(對法)이란 ‘부처님 법(dharma)을 본의에 맞게 밝히는 것’이라는 뜻으로, 곧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주석 ㆍ 연구 ㆍ 정리 ㆍ 요약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대법은 아비달마의 다른 이름으로서, 법(法), 즉 부처님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말한다. 이와 같이 아비달마는 부파불교시대에 생산된 여러 논(論, sastra)과 논서(論書)들을 뜻하며, 오랫동안 많은 논(論)들이 만들어지고 후일에 이 논들이 쌓이고 정비돼 논장(論藏)이 됐다. 따라서 이럴 경우, 아비달마논을 대법논(對法論)이라 하고, 아비달마 논서를 대법논서(對法論書)라 표기한다.

    ② 둘째 승의법(勝義法)과 세속법(世俗法)을 비대함을 대법이라 한다. 즉, 대법(對法)을 승의대법과 세속대법으로 나누며, 여기서 법(法)은 열반 및 4제(四諦)를 가리킨다.

      • 승의대법(勝義對法)은 무루(無漏)의 지혜와 이에 따라 일어나는 심왕(心王)ㆍ심소(心所)를 말하는데, 이는 무루법으로 4제의 이치를 대관해 열반에 대향하는 것이므로 승의대법이라 한다.

      • 세속대법(世俗對法)은 세속의 지혜와 모든 논(論)들을 말한다. 이들은 승의대법의 방편이 된다는 뜻으로 세속대법이라 한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대법은 승의의 아비달마와 세속의 아비달마의 두 가지로 나뉘며, 이 두 가지 뜻을 합해 대법이라 했다. 말하자면 진제와 속제 2제를 합쳐 대법이라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승의의 아비달마는 무루혜(無漏慧)이고, 세속의 아비달마는 유루혜(有漏慧)이다. 그런데 궁극에 가서 깨치기 위해서는 세속의 아비달마[유루혜]는 모두 승의의 법(勝義法, 무루혜)인 열반을 대향해야 한다. 즉, 진리를 대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깨칠 수 있다.

     셋째 상대 되는 법, 상대적인 법의 논리로 구성돼 있음을 대법(對法)이라 한다. 이에 대해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오조 홍인(弘忍, 601~674) 선사께서 열 명의 큰 제자들을 불러 앉혀놓고 말씀하신 데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雙)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해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해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마저 없게 하라.…

    밝음이 원인이며 어둠은 연분이다. 밝음이 침몰하면 어둠이 된다. 이와 같이 밝음으로써 어둠을 나타내고, 어둠으로써 밝음을 나타내며, 들어내는 것(來)과 제거해버리는 것(去)이 서로 조건이 돼 중도란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 밖의 질문에서도 죄다 이와 같이 해야 한다.”라고 했다. 즉, ‘본체와 작용’, ‘번뇌와 보리’, ‘실과 허’ 이런 식으로 상대적으로[대법의 논리]로 구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논란하는 말(語)과 직언하는 말(言)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 가지가 있다. 유위와 무위. 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용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다.

    자성(自性)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 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 함과 덧없음이 상대이며, 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 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다. 유정 무정의 대법인 어(語) 언(言)과 법(法) 상(相)에 열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계인 무정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룬다.

    이 삼십육대법(三十六對法)을 잘 알아 쓰면 곧 도(道)가 모든 경전의 법을 꿰뚫어 나가고 들어옴에 곧 양변을 여의어 자성을 움직여 쓰며, 사람과 함께 이야기 할 때에도 밖으로는 모습에서 모습을 떠나고, 안으로는 공에서 공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아비달마(阿毘達磨, 빠알리어 abhidhamma,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 삼십육 대법(36對法) 참조.

   

*대법고경(大法鼓經)---5세기 중엽 남송(南宋=劉宋)에서 활약한 인도 출신 학승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산스크리트어 Gunabhadra, 394~468)가 번역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 교리대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면 그것이 곧 이른바 불교의 이상인 열반이라는 것을 설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에서 부처님이 가섭 존자에게 이르기를 “내가 열반에 들어 40년이 지난 후, 지금 전하는 법을 잘 간직했다가 큰 법고(大法鼓)를 만들어 치고, 법회를 열어 불법의 진수를 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적혀 있다.

   

     

*대법안탑(大法眼塔-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사르나트(Sarnath)의 녹야원(鹿野苑) 앞에 있는 대탑이다.

   사르나트(Sarnath)의 녹야원은 현재의 바라나시 북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바라나시역에서 버스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다. 깨달음을 얻은 지 칠칠일(49일)만에 부처님께서 녹야원을 찾아가서 최초의 설법인 사성제(四聖諦) 및 팔정도(八正道)와 중도(中道)의 법을 설해 교진여(橋陳如, Ajnata Kaundinya) 등 다섯 비구(五比丘)를 제도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래서 이곳 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의 수례바퀴를 굴린 장소로서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라 명명돼 있는 불교역사에 있어 아주 소중한 곳이다.

   부처님 최초의 설법과 설법지를 기념하기 위해 아소카왕은 처음 이곳에 다르마챠크라(Dharmachakra:法輪) 스투파라 불리기도 하는 탑을 건립했다. 현재의 이름 다메크(Dhamekh)는 산스크리트어Dharmaiksark가 와전된 것으로 원래는 법안(法眼), 즉 ‘진리를 본다’를 의미해, 이곳은 곧 ‘진리를 보는 탑’ 또는 ‘진리를 관하는 곳’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이 탑은 기단부의 직경 28.5m, 높이 33.53m(기반까지 포함 42.06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높이 11.2m에 이르기까지는 통상적인 기단부 대신 큰 돌을 쌓았고, 그 위는 벽돌로 쌓았다.

   처음 아소카왕에 의해 이 탑이 건립될 당시는 벽돌로 조성된 작은 규모의 탑이었지만, 이후 굽타 왕조 시대인 AD 320~550년에 이르러 현재의 규모로 증축됐고, 탑 외벽에 8개의 감실이 연잎 형상 위에 조성돼 4방위불을 포함한 8방위불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35년 사르나트 전역에 걸친 발굴 작업을 주도했던 영국인 알렉산더 컨닝햄(Alexander Cunningham)이 이 탑의 중심부 수직갱도를 파내려 가던 중 정상에서 91.4cm 정도의 아래 부분에서 “제법(諸法)은 인(因)에서 생긴다. … ”라고 기록된 6~7세기경의 ‘법신게(法身偈)’를 발견했다.---→법신게(法身偈) 참조.

      

*대보적경(大寶積經)---<대보적경>은 붓다께서 49년간 설법하신 가운데 가장 중심부분인 방등부(方等部)에 속하는 경전이다. 방등(方等)이란 넓게 평등하다는 뜻인데, 당시 인도사회에 있었던 4성 계급의 부당성을 타파하고 일체는 연기법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다. 그러한 방등이념을 구현하는 경전들이 방등경인데, <대보적경> 역시 방등부 경전에 속한다.

큰 법의 보배를 한 곳에 쌓았다는 뜻의 이 경은 하나의 단독경이 아니라 별개의 여러 경전들을 한데 묶어 정리 집성한 일종의 혼합경이다. 8세기 초 당나라에서 인도 출신 학승 보리유지(菩提流支)가 편집한 것으로 모두 49종의 불경을 모아 49회 77품 120권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이 <대보적경>을 집대성한 보리유지는 북위(北魏)에서 활약하다가 달마(達磨) 대사를 독살했다는 보리유지와는 다른 인물이다.---→방등부 경전(方等部經典) 참조.

    

*대본경(大本經, 빠알리어 Maha Padhana Sutta)---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제일 첫 경이 <장아함경>이고, 그 제1경인 <대본경(大本經)>에서 제30 <세기경(世記經)>에 이르기까지 짤막한 이야기로 돼 있거나 상당히 긴 이야기로 돼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두루 설해져 있다. 남방 상좌부 경장인 장부(長部, 디가니까야) 속 제1경이 <범망경(梵網經, Brahmajalasutta)>인데 비해 <팔만대장경>의 제일 첫 번째 경은 <대본경>이다. <팔만대장경>에서 가장 첫 번째 경전의 이름이 ‘대본(大本)’인 것은 불교의 큰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대본경>의 내용은 고타마 붓다와 여섯 전임자의 장엄한 설화이다. 과거칠불이 태어나고 출가하고 수도하고 성도하고 설법하는 일 등, 이들 부처님들 공덕과 생애에 대한 내용으로 불타관(佛陀觀)을 말하고 있다. 불교 교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지만 이론적으로는 깨달은 사람이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으므로 단 한 사람만의 절대적인 교주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여러 부처님 즉 무수한 부처님이 있을 수 있다.

    불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설법을 함으로써 종교적 역사가 시작됐다. 만약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혼자 가슴에 품고 열반에 들었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 설법은 불교가 종교적 출발하는 시발점이라 하겠다. 이 경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어떤 방법으로 깨닫고, 왜 설법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석가모니불의 깨달음과 설법의 이유를 말해준다.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하기 전에 중생들이 배신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중생의 욕망과 반대되는 가르침이다.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라면 과연 몇이나 따를지 모를 일이었다. 부처님은 그래도 설법을 결심했다. 경전은 이때 ‘범천 권청(梵天勸請)’이라는 형식을 빌어 문학적 묘사를 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의 자비심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말해주는 장치다.

    그리고 <대본경>엔 부처님의 탄생게가 설해져 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제도하리라[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라고 돼 있다.

    이 같은 초기경전의 탄생게는 부처님이야말로 가장 존귀(최존)하고 최상이고 최고로 나타난다. 그리고 위의 내용과 달리 현재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또 다른 부처님의 탄생게는 다음과 같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모든 세상의 고통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문맥이 똑 같지는 않으나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으로는 송(宋)나라 때 법천(法天)이 한역한 <불설칠불경(佛說七佛經)>과 <비바시불경(毗婆尸佛經)> 등이 있다.

 

   

*대분심(大憤心)---선종에서 화두참구(話頭參究)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나는 분발심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즉, 화두에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마음 상태란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이니, 이 삼요는 솥의 세 발과 같아서 하나라도 궐(厥)하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져 바로 서지 못함이라.

    ① 대신심(大信心)---큰 믿음이란 일체중생이 제불보살과 조금도 차이가 없이 똑같으며 자신이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다. 형상에 차별이 있고, 나타난 능력에 차이가 있고, 그가 쓰는 덕행에 차이가 있고, 수명에 차이가 있더라도, 본성은 그러한 차이에 상관없이 지혜와 온갖 공덕이 똑같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이와 같으며 이것은 영겁으로 변치 않고 어떠한 동요에도 상관이 없는 불멸의 법으로서 어떠한 강한 압력에도 흔들리거나 빼앗기거나 때 묻을 수 없는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본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에서 참선자의 기본자세가 이루어진다.

   자신이 진리의 주체일진대 그에게는 끝없는 지혜와 용기와 덕성이 원래로 충만하다.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고 뜻하는 바를 구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원래로 풍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상생활이 그 본분에 어긋남이 없는 행이 될 수밖에 없다. 밝음과 긍정과 너그러움과 용기는 선자(善者)의 기본 표정이다.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을 모르고 어떠한 상황에도 희망을 불태우는 불굴의 용진(勇進)이 거기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이 제불보살과 일체중생과 함께 함을 믿는 것이므로 언제나 중생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한다. 원래로 자신과 더불어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애를 걸고 다시 세세생생(世世生生)을 던져서라도 이룩하고자 하는 큰 서원과 정진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돌리고 불국토 실현에 두는 것이다. 수행자가 만약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큰 원(願)이 없게 되고 큰 원이 없으면 정진력이 약해진다.

    ② 대분심(大憤心)---큰 분심이란 제불보살과 다를 바 없이 불성을 가진 내 자신이 원래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부족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범부중생의 삶에 빠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내는 것이 대분심이다. 큰 믿음에서 큰 분심이 일어난다. 이러한 분심이 분명해야 공부 중에 잡념이나 번뇌 망상이 올라오더라도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두와 겨룰 수 있게 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보살은 모든 악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發心)해 바로 끊으며, 모든 악이 이미 생겼을 경우에는 그것을 끊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끊는다.

   또 모든 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이 생겨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수행하며, 모든 선이 이미 생겨났을 경우에는 그것에 머물러 잃지 않고 다시 왕성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수행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큰 강물에 자기 몸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는 필시 강물을 건너가기 위해 큰 노력과 정진(精進)을 할 것이요, 이런 큰 노력과 큰 정진 때문에 꿈에서 깨어날 것인데, 일단 깨고 나면 지금까지의 행위는 그치게 될 것이다.

   보살도 마찬가지여서, 본래 부처여야 할 중생의 몸이 네 개의 큰 강물[사폭류(四瀑流)-번뇌의 폭류] 속에 있음을 보고, 이를 건너게 해주기 위해 큰 노력과 정진을 일으킨 탓으로 부동지(不動地;노력 없이도 저절로 보살행이 이루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바, 일단 이 경지에 이르고 나면, 모든 몸과 말과 마음의 작용이 다 그쳐서, 이행[二行 ;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 상행(相行;모습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이 온통 나타나지 않게 된다.) 이 온통 나타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이 분심에서 억겁의 무명을 뚫고 온갖 분별의 함정에서 단번에 벗어나 대자유의 평원으로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큰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분심이야 말로 수행자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③ 대의심(大疑心)---큰 의심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을 의심하거나 참선법을 의심하라는 말이 아라 철두철미하게 화두를 참구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듭 말한 바와 같이 화두는 법성(法性)의 제시이므로 망상망념과 무명에 갇혀 살고 있는 범부로서는 알 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왜 그렇게 말씀하셨나, 왜? 라는 의심이 가슴을 저미고 답답한 것이 우주를 뒤덮으며,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것이니 화두는 여기 이르러서 전심전력을 기울여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의 마음 상태를 의정(疑情)한다. 의정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큰 깨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화두로서 명백하게 법 자체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찌해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무엇이냐. 분명히 내게 있는 이 도리, 명백히 화두에서 밝혀 주었거늘 어찌해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온몸, 온 생각이 오직 화두 덩어리가 돼 화두로 눕고 화두로 잠들게 된다.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이냐 하는 일념이 끊이지 않는다. 요컨대 의정 없는 화두공부란 있을 수 없다. 생생하고 명료한 의정이 필경 본분을 밝혀낸다.

   나옹(懶翁) 스님도 이렇게 가르치고 계신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부딪치고 또 부딪쳐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똑똑히 참구하라. 화두 위에서 그 뜻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단박 깨뜨려야 비로소 집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만약 화두가 들어도 들리지 않고 냉담하고 아주 재미가 없으면 낮은 소리로 서너 번 연거푸 외워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르면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라. 저마다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가운데에서도 더욱더 용맹정진하면 갑자기 탁 터져 백 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화두를 통한 선 수행은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폭발적인 의문을 가져야 하며 추진력을 갖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할 뿐 새로운 귀착지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은 화두를 천편일률적으로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의심을 돈발(頓發)시켜 주는 화두를 찾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혹 스승에게 받은 화두라도 잘 잡히지 않을 때에는 자주 찾아가서 원인을 제거하는 방편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 의정이 생기면 활구(活句)요, 그렇지 않으면 사구(死句)이다. 사구이니 활구이니 하는 것은 사람에게만 있을 뿐 화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디 자기 마음에서 솟구치는 의정(疑精)에 따라 활구를 참구해야 할 것이다.---→‘화두(話頭) 참구(參究)’ 참조.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mahā-vibhāṣā-śāstra)---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 논서로서 원명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娑論)>인데, BC 3세기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Katyayaniputra)가 저술했다는 <발지론(發智論)>에 대한 주석서이다. 이 논서의 분량이 200권이나 돼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핵심이 되는 주제나 개념들을 종합해 간결하게 재구성한 <아비담심론>이 저작됐다. 이 논서는 분량은 적지만 유부의 사상을 종합적이고 창조적으로 조직했으며 후에 세친의 저술인 <구사론>의 모델이 됐다. 그래서 여러 논사들의 형식적 모델, 즉 먼저 운문으로 핵심적인 교설을 기술하고 산문으로 부연 설명한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후 저술된 모든 논서들은 모두 이 형식을 따르고 사상적인 영향도 이 텍스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AD 2세기 중엽 인도를 통일한 쿠샨왕조(대월지국/大月氏國) 카니시카(Kaniska)왕 보호 아래 협(脇, Pārśva/파르스바) 존자를 중심으로 해서 법구(法救), 묘음(妙音), 세우(世友), 각천(覺天) 등 논사와 500여명 아라한들이 카스미라(迦濕彌羅, Kasmira)국에 모여 결집한 책으로 전체 분량이 200권이다. <대비바사론>은 <발지론>의 주석서인 만큼 그 구성과 내용은 모두 <발지론>과 비슷하다.

    부파불교시대에 불경 주석과 연구에 종사한 주석가들을 비바사사(Vibhasika, 毘婆沙師)라고 불렀으며, 이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어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라 했다. 이 논서가 나타남으로써 교리에 대한 연구 주석의 세분화는 한층 더 촉진됐고, 고찰 역시 더욱 더 정밀해졌다.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발지론>에서 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해 논의했다. 또한 이를 통해 유부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자신들 부파 내의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나 다른 학파의 학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어서 실로 설일체유부 학설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북량(北涼) 부타발마(浮陀跋摩), 도태(道泰) 등이 번역한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娑論)>이 있으며, 당나라 현장(玄奘) 번역본도 있다. 전자를 구역이라 하고, 현장 번역을 신역이라 한다.

    <발지론>이 저술된 이래 아비달마 문헌의 전개는 그에 대한 주석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비바사론>이다. <대비바사론>이 편집된 이후에는 아비달마의 이론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루게 됐는데, 그 대표적인 논서는 다음의 것들이다. 법승(法勝)의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법구(法救)의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세친(世親)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등이다.

  

*대비심(大悲心)---중생을 불쌍히 여겨서 고통으로부터 구제해주고자 하는 마음.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의 줄인 말.

   

*대비주(大悲主)---대비심(大悲心)이 무한하다고 하는 관세음보살을 지칭한다.

   

*대사(大師)---일반적으로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 임금이 덕이 높은 승려에게 호를 내릴 때 붙이던 칭호로 당(唐)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 이래로 사용됐다. 예로부터 공법(空法)의 세계를 공부하는 선승들은 선사(禪師)라고 했고, 공법을 공부한 다음 색법(色法)의 세계에 내려와 공부한 원효 스님 같은 분은 대사라고 칭했다. 대사는 출 ‧ 세간에 모두 능한 도인을 말함이다.

   

*대선지법(大善地法, 산스크리트어 kuśala-mahā-bhūmikā dharmā)---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의 심식설(心識說)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에 나오는 말인데, 선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이다. 즉, 여러 가지 선심(善心)에 따라 일어나는 심소로서,

     ①신(信) ―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의식작용.

     ②불방일(不放逸) ―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제함과 집중을 지속하는 마음.

     ③경안(輕安) ―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

     ④사(捨) ―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상태.

     ⑤참(慚) ― 스스로 죄를 뉘우치는 것.

     ⑥괴(愧) ―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것.

     ⑦무탐(無貪) ― 대상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것.

     ⑧무진(無瞋) ― 미워하지 않는 의식작용.

     ⑨불해(不害) ― 해치지 않는 어질고 착한 성질의 의식작용.

     ⑩근(勤) ― 열심히 노력하게 하는 의식작용.

   이상과 같은 10가지 마음작용이 대선지법을 구성한다. 대선지법(大善地法)이라는 말에서 '대(大)'는 커다란 선(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 마음작용이 선심과 ‘두루 함께[大]’ 일어나며 선심에서 ‘항상[大]’ 발견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지(地, bhumi)’는 의식작용의 근거가 되는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대지법이란 선, 불선, 무기 등 일체의 마음과 두루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아미타 3존불 중 하나로서 아미타불 우보(右輔)처 보살이다. 줄여서 세지보살이라고도 한다. 뛰어난 지혜를 상징하며, 지혜광명으로 일체중생을 널리 비추어, 삼악도(三惡道/三道苦)를 떠나 위없는 힘을 얻게 해주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가난과 고통에 좌절해 쓰러지는 중생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며 부단히 독려해 마침내 정토세계에 당도하게 하는 보살이다.

    일반적으로 대세지보살의 모습을 보면 머리에 쓴 보관에 보병이 새겨져 있을 뿐 그 밖에는 화불(化佛)이 담긴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과 별반 차이가 없다. <관무량수경>에 “이 보살의 신체는 관세음보살과 동일하며 원광(圓光)을 갖추고 널리 비추고 있다. 머리 정상부분의 육계 위에 하나의 보병이 있다. 그 밖에 신체의 모습은 관세음보살과 동일하다”라고 돼 있다.

   

*대ㆍ소승의 관계 ― 소승은 대승을 무시했다----소승(Hinayana)이라는 말은 부파(아비달마)불교에 반동으로 생겨난 이른바 대승(Mahayana)에 의해 폄하돼 붙여진 이름이다. Hinayana의 역어는 ‘작다’이지만 그 원어 hina는 ‘마땅히 버려야 할’, ‘저열한’, ‘천한’의 뜻을 지닌 말이다. 그래서 소승 대신 하승(下乘), 하열승(下劣乘)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제불(諸佛) 보살의 어머니라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통해 불과(佛果)를 추구하며 6바라밀을 실천하던 일단의 보살승들이 <소품(小品)> 계통의 반야경전을 작성하면서 스스로의 도를 ‘대승(大乘)’이라 칭하고, 기성의 불교 특히 설일체유부 비바사(毘婆沙)를 중심으로 하는 아비달마불교를 멸시해서 소승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왜 소승인가? 초기대승 교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다만 두 가지로서,

    첫째는 자신의 이익(열반)만을 설할 뿐 중생을 위한 자비심을 설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는 개아(個我;중생)의 공(空)만을 설하고 일체법의 공을 설하지 않기 때문으로, 그 협소함이 소 발자국에 괴인 물과 같기 때문에 소승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학에서 우리의 도식적 이해의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승과 소승의 구분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개 이러하다.

    ① 부파불교는 아라한을 이상으로 삼는 성문승(聲聞乘)이며, 대승은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승(菩薩乘)이다.

    ② 부파불교는 삼계육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업보사상(業報思想)이며, 대승불교는 원행사상(願行思想)이다.

    ③ 부파불교는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가르침이다.

    ④ 부파불교는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유(有)의 입장이며, 대승불교는 반야지혜에 의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의 입장이다.

    ⑤ 부파불교는 지극히 형식적이며 번쇄한 철학과 이론을 위한 이론이 많지만, 초기대승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중시한다.

    ⑥ 소승불교는 학문과 이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경지는 저속한 것이었고 출가자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고차원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입장에 서며, 나아가 재가자불교를 표방하고 평이한 교설을 설하는 가운데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음을 추구한다.

   이는 대개의 불교학개론서 내지 대승불교개론서에서 한결같이 진술되고 있는 바이며, 우리가 상투적으로 되뇌고 있는 대ㆍ소승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같은 도식적 논의의 이면에는 이미 좋고 나쁘다는 판단이 개입돼 있으며, 따라서 이는 적어도 어떤 한 종파적 이념가의 발언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학문적 발언은 될 수 없다.

   원래 ‘소승’이라고 폄하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은 대승에서 사회적 실천구도자인 보살의 이타행과 아(我)ㆍ법(法)의 일체개공(一切皆空)이 전제가 됐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을 폄하하지만 그 이면에 나타나는 대ㆍ소승의 비정상적인 관계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표방하며 나타난 보살의 불교는 분명 새로운 불교였지만, 그것은 기존의 상식과 가치에서 벗어난 불교였다. 처음부터 그들은 기존의 불교와는 논의의 출발점을 달리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불타가 남긴 교법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불타를 해석했으며, 그렇게 해석되어진 불타 즉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지금 여기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려는 이상을 능동적으로 표방했다.

   그리하여 세존 고타마가 남긴 교법, 이를테면 5온ㆍ12처ㆍ18계의 제법분별, 12연기의 유전과 환멸, 나아가 세속의 고(苦)와 열반의 고멸(苦滅)을 설한 4성제(四聖諦), 그에 관한 지혜[智]와 지혜의 획득 등이 모두 ‘허망한 것’일 따름으로 몰아갔다. 이는 바로 우리가 주문과도 같이 외우는 270자 <반야심경>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반야바라밀다에 대해 당시 성문승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대승공관의 일차적 타겟은 기존 성문승, 특히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였으나 그들에게 있어 대승은 애당초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대승 흥기 이전의 논서인 <육족론(六足論)>이나 <발지론(發智論)>은 시기적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대승이 흥기해 왕성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시기에 작성된 세친(世親)이나 중현(衆賢)의 저술 어디에도 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어떤 논에 의하면 소승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승을 배운 이와는 물조차 다른 강에서 길러다 마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히라까와(平川彰)는 그 이유를 부파불교의 교리적 결백성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요시모또(吉元信行)는 교학의 전제가 달랐기 때문에 대승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신흥(新興)의 대승은 다만 소수 신출내기의 아마추어였을 뿐이었다.

현장(玄奘)이 인도에 체재할 무렵(AD. 630~644), 이 시기는 이미 대승이 흥기한 지 7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도 땅에는 이른바 소승이 압도적이었다. 그가 방문한 불교사원의 수는 총1,196곳으로, 그 중 대승은 사원 116개소에 승려 수 19,400명, 소승은 사원 638개소에 승려 수 130,130명으로 소승이 대승보다 월등히 많았으며, 대ㆍ소승을 겸한 사원은 139개소, 승려 수 22,900명이어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했기에 그들(소승)은 아비달마논서 그 어디에서도 대승을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비판한 적이 없었음에도 대승은 자신의 학설이 불설임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기성의 성문승을 비판이 아닌 부정의 대상(魔)으로 취급했으며, 이에 따라 생겨난 명칭이 바로 ‘소승’이었다.

   나아가 대승의 논사들은 그들의 대승경론을 용궁이나 도솔천에서 배워온 것이라고 과장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게도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주장해 성문(聲聞) 독각(獨覺)은 끝내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는 종성(種姓)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승의 보살이 성문이 지향하는 열반에 들지 않으려 했듯이, 성문은 애당초 불과를 엿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이론상 불과의 증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승은 분명 새로운 불교였다. 그것도 기존의 불교와는 타협점을 갖지 않는, 진보도 발전도 아닌 새로운 혁신이었다. 그들은 불타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불타의 말씀(경전)을 결집했다. 기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불교라고 할 수도 없는, 그리고 그 결함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반야바라밀다의 공관(空觀)은 주석가들의 피나는 헌신에 의해 역사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것은 동점(東漸)하면서 보다 강화됐으며, 마침내 우리나라에 이르러 성문의 아비달마불교는 불교학에서 아예 배제되고 말았다. 나아가 오늘날에서조차 그 전통이 지속돼 내려오고 있는 스리랑카 등 남방의 제 불교를 ‘소승불교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소승이라 일컬어진, 지금도 그렇게 일컬어지고 있는 아비달마불교는 불교철학의 최초의 전개로서, 불교학 상의 거의 모든 문제를 노정시키고 있다. 그것은 대승공관에서 항상 말하듯이 그 자체로서는 열등하지도 않으며, 방편설도 아니다. 그것은 대승과는 또 다른 형태의 진리설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불타 자내증(自內證)을 엿보기에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소승불교일고(권오민)>를 간추린 것임.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 참조.

   

    

*대승(大乘, Mahayana)---‘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해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한다. 소승(小乘)이 자기완성[自利]을 목표로 한 ‘탈 것’임에 비해 대승은 많은 사람들의 구제[利他]를 목적으로 하는 ‘큰 탈 것’이라는 말이다. 곧, 대승이란 모든 중생이 다 타고 생사를 넘어 피안의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큰 수레를 의미한다. 이 수레는 바로 불법을 비유해 말한 것으로, 불법 중 가장 구경적(究竟的)인 것이 바로 대승법이라는 뜻이다.

   ‘대승(大乘)’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소품반야경〉이다. 이 경의 편찬자들은 자신들을 법사(法師)라고 호칭하며, 반야바라밀의 완성을 통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불퇴전의 보살(菩薩)이라고 했다. 이들 법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대승, 즉 큰 수레라고 부르는 반면, 기존의 불교교단의 가르침을 소승(小乘), 즉 작은 수레라고 칭하고, 불탑공양보다 대승의 가르침인 반야를 설한 경전에 대한 공양이 수승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법사와 경전에 대한 공양이 강조되는 〈대품반야경〉과 <화엄경>, <법화경> 등과 같은 초기 대승경전이 계속적으로 편찬되면서 대승불교가 그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AD 2세기 초엽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대승법이란 발보리심(發菩提心)을 해 보살행을 닦고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으로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것이 구경의 목적으로 했다. 그러므로 대승은 성불을 목적으로 발심수행을 한다. 중생이 불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우선 자신을 닦기 위해 신심(信心)을 내어야 하고, 그 신심을 바탕으로 해야 증득할 수 있다. 따라서 대승은 자신의 마음을 중요시하므로, ‘대승기신(大乘起信)’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중생심을 근본으로 하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은 자심(自心)의 수행을 중요시해 “대승법이란 이른바 중생심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일체 모든 것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시작하고 마음으로 귀결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중생심이 바로 수행의 주체이므로, 이 중생심을 통해 생멸심을 멸하고 진여심을 발현할 때 비로소 이상적인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인격을 완성하고 성불의 경지를 증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대승은 중생을 제도해 성불할 수 있게 함을 이상으로 하며, 대승의 법문은 세간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할 수 있는 법이다.

   헌데 대승불교는 너무 다양하다. 그러다가 보니, 중국에서는 위험하게 부분적으로 외도의 발상까지도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수용했다. 그리하여 불교에 혼선이 야기됐으므로 이제 진정 대승불교가 해야 할 일은 대승 교학 안에서 잘못 주장되고 있는 외도의 가르침을 걸러내야 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비약한 중국 일부 스님들의 언표를 가지고 그것이 대승불교라고 해서는 혼선을 막지 못한다. 진정한 대승은 반야ㆍ중관, 즉 용수(龍樹)의 중론과 회쟁론을 토대하고, 대승의 아비달마라 일컫는 세친(世親)의 <유식 30송>을 토대로 해야 한다. 반야ㆍ중관이나 유식계열에서는 아트만 류의 ‘참나‘를 설하지 않는다.

   중국의 여래장(如來藏)계열에서는 심식설(心識說)에 그들의 노장(老莊)사상을 가미해 불성(佛性), 진아(眞我-참나), 심지어 자성(自性)까지 주장을 하고 있는데, 한국불교에서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있다. 학자들은 대승불교 흥기에 대해,

    ①부파불교의 교리 해석에 반발해서 대승불교가 흥기했다.

    ②부파불교의 불전문학과 찬불승에 의해서 발전했다.

    ③불탑신앙에서 대승불교가 발전하게 됐다.

   이러한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는 찬불승이나 불탑신앙에서 발전된 대승의 입장은 법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중심하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극대화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신화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너무 강조되고 있고, 따라서 부처님을 너무 신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초기불교나 아비담마불교 입장과는 거리가 멀고, 대승불교 주류와도 다른 측면이다.

   다시 말하면, 법을 중심에 두고 있는 초기불교 - 아비담마 - 반야ㆍ중관 - 유식의 불교사의 전개는 주류 입장이고, 찬불과 믿음을 중심에 두고 있는 일부 대승의 흐름은 신앙이 중심이기에 법을 중시한 주류 입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불교를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대승이라는 이름 안에도 전혀 다른 이질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후대로 갈수록 이런 이질적인 측면이 통합되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더욱 유의해야 할 일이다.

   다만 대승불교 교학에서도 반야ㆍ중관과 유식유가행의 기본교학은 초기불교나 아비담마 불교의 법해석을 토대로 하고 있으므로 대승에서도 너무 빗나간 부분을 교정하는 일이다. 불교는 그 시대상황과 지역상황에 따라 각자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해왔다. 인도에서는 인도불교의 문화가 있고,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와 스리랑카, 미얀마 등 남방에서는 그들대로의 전통문화와 습합된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러한 문화는 문화대로 존중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을 존중해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그런 입장에서 빗나간 대승의 반성이 필요하다.---→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참조.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편찬---고대 인도문화를 주도해 온 인도 아리안족은 남달리 종교적 성향이 강한 종족이었다. 종교적 감정이 풍부한 이 종족은 기억력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종교적 영감이 산스크리트어라는 뛰어난 언어를 낳았고, 이 언어 덕분에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나 기억할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 같다.

    인도에서 불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방대한 성전들이 모두 암송에 의해 전해져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도의 과거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데에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다. 고도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인도는 거의 기록문화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사실은 후대로 전승돼온 현상들을 여러 가지로 연관 지음으로써 유추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불교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불타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는 보통 불교경전이라 하면 일반 사람은 판독할 수 없는 어려운 한자대장경을 먼저 연상한다. 그래서 불타는 처음부터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신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은 중국으로의 불교도입에 따른 한역(漢譯)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원래 처음부터 경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불타 스스로도 그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저서나 기록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보관하거나 전승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나 신도들이 머릿속에 기억해, 정리하고, 보존, 전달해 왔을 따름이다. 수백 년 동안은 글자로 베껴 쓰는 일도 없었다. 이는 당시의 일반적인 전통이기도 했다.

그러나 특히 불교의 입장에 있어서는 그에 대한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제자들로서는 불타의 성스런 말씀을 문자로 옮기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이는 마치 불타 입멸 후 얼마 동안은 그의 거룩한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묘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불타의 설법내용에 대해서는 제자나 신도가 실제로 들은 바에 따라 기억 속에서 파악하고, 구술에 의해 전달하는 것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그 내용을 한 마디도 어긋나지 않게 기억 속에 간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설법에 대해 어느 정도의 줄거리만 대강 기억했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그 대요의 파악에 있어서 여러 사람이 똑같을 수가 없었을 것이며, 같은 설법을 듣고도 듣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불타가 입멸하고 난 후, 사소했던 이러한 견해의 차이가 보다 심각한 상황을 야기할 우려가 있었다. 그 내용이 달라지거나 자신의 견해를 불타의 것인 양 강변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따라서 불타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분의 실제 가르침을 확인하고 정리해 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불타의 가르침을 직접 청취한 제자들이 전체회의라 할 수 있는 모임을 갖게 됐다.

    이상과 같은 목적에서 가진 불제자들의 회합을 결집(結集)이라 한다. 비록 이 모임의 결과가 문자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임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후대에 경전(經과 律)으로 결실을 맺게 됐으므로, 이 모임의 성격을 경전편찬회의(經典編纂會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집은 역사의 시차를 두고 여러 차례 있었다.

      제1결집은 불타 입멸 직후에,

      제2결집은 불타 입멸 후 100년에,

      제3차는 불타 입멸 후 200여 년이 지난 아소카왕 시대에,

      제4차는 불타 입멸 후 400년 혹은 600년경에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있었다고 하나, 제4차 이후의 결집에 대해서는 사실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제4차에서는 논장(論藏)이, 제5차에는 대승경전이, 제6차에는 밀교의 진언(眞言)이 각각 결집됐다고 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남방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는 12세기에 제4결집을 독자적으로 집행했고, 미얀마에서는 19세기 후반과 1954년에 각각 제5차와 제6차의 결집을 집행한 바가 있다.

    물론 경전의 편찬에서 중요했던 것은 제1차 결집이다. 여기서 이후의 모든 경전의 골격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때는 왕사성(王舍城)에 500명의 제자들이 모여, 불타의 설법을 결집했다고 한다. 이때 확정된 내용들은 암송에 의해 전해오다가 적어도 기원전 1세기 이후에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사용한 언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도의 방언인 빠알리어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였다. 전자에 의한 경전은 남방으로 전해져 남방불교의 성전이 됐고, 후자에 의한 경전은 북방으로 전해져 한자로 번역됨으로써 북방불교의 성전이 됐다.

 

    <대승경전(大乘經典)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이미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됐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새로운 신앙운동이었다.

   <초기 대승불교의 연구(1968)>라는 논문은 일본 불교학자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에 의해 발표된 논문으로, 이 논문은 대승불교 기원에 대한 것이다. 그 때까지 대승불교의 기원은 주로 부파불교(部派佛敎) 가운데 대중부(大衆部)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히라카와는 그 기원을 재가신자(在家信者)를 중심으로 하는 불탑교단(佛塔敎團)이라고 지적해 경제적 기반을 불탑에 주어지는 보시(布施)라고 추정했다. 불탑교단 기원설은 세계 불교 연구의 역사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며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학설은 현재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비판,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구사적인 의의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신앙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의 불교가 승원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교학을 지향해 너무 전문적인 법(法) 중심의 불교를 전개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출발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불타 신격화의 일환이었다. 즉, 불전(佛傳)과 본생담(本生譚) 등을 통해 점차 심화돼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했으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행을 설하게 됐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의했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을 대승이라 불렀다.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자연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전생, 그 전생에 이미 성불 하셔서 불타가 되셨는데, ― 이것을 본생성불(本生成佛)이라고 함 ― 이 세상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고 보는 입장에서 편찬한 경전이다.

    소승경전은 현생성불(現生成佛)의 입장의 경전이다. 현생이라고 하면 금생에 성불하신 것으로 보는 금생성불(今生成佛)을 말한다.

    대승경전은 본생성불(本生成佛)의 입장이다. 본생이라고 하는 이 ‘본(本) 자’는 과거의 과거, 전생이라는 의미와 같다. 전생, 그 전생에 성불하셨는데,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러 중생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또 즐거움이 있는 세계를 보이고자 오셨다. 그래서 일부러 불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출가하는 모습, 고행하는 모습, 성불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비방편(慈悲方便)이라고 하는데, 자비방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입장이다.

    소승경전에서는 금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금생에서 성불했다, 이렇게 보는 것으로 불타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경전에서는 전생, 즉 본생에 성불했다고 해서 불타를 역사를 초월한 초역사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고민도 하시고, 출가도 하시고, 도를 닦으신 것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자비와 그 자비를 성취시키는 방편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불타를 보는 입장에서 편찬한 것이 대승경전이다. 즉, 대승경전은 불법의 멋진 확장이다.

    부파불교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대승불교에선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해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불타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보리살타)’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상을 표명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경전 ― 대승경전과 논서들을 편찬해갔다. 따라서 대승경전은 지금까지의 경전 ― 즉, <아함경>과는 전혀 다른 형태,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법, 새로운 문학형식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초기불교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전이 여기저기서 꼬리를 물고 나타나게 됐다.

 

    <대승경전의 성립>

    불교의 경전으로서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많다. 일체경(一切經)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가운데, 한역 장경은 중국 후한(後漢) 이래 원대(元代)에 이르는, 무릇 1천여 년 간에 걸쳐 중국에서 한역된 경전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 수는 무려 1천 6백여 부, 6천 권 가량의 수량이 된다. 이들은 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번역된 것이지만, 더러 빠알리어 등에서 번역된 것도 있다. 한역 경전을 중심으로만 놓고 볼 때도 불교의 경전은 실로 방대하다. 현장(玄奘) 스님이 번역 출판한 <600권 대반야경> 하나만 해도 기독교 성경의 24~25배 분량이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생각할 때 실로 경전의 분량이 얼마나 방대한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 많은 경전들이 다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경전이 불멸 후 제자들의 결집에 의해 후대에 전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불타라 하더라도 그 방대한 양을 다 설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경ㆍ율 중에는 후세의 사상 학설, 또는 그 때 일어났던 일들을 기재하는 것도 많다. 따라서 교의가 다양하고 서로 모순되는 것도 적지 않으므로 불타 한 분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경전에 대해 일찍부터 대ㆍ소승의 구별을 세워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른바 소승경전이라고 칭해지는 여러 부의 아함과 대승경전인 반야ㆍ법화 등을 비교해 보면 체재 자체가 다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함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타의 실록이라 단언할 수 없듯이, 대승경전이 아함의 뒤에 일어난 것이라 해도 모두 불설에 기초한 것으로서, 불설의 법의(法義)를 깊이 해석하고, 깊이 관해, 종래의 소극적 소승불교를 혁신하도록 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승이 참다운 불교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대승경전의 편찬은 불멸 후 4~500년, 즉 서력기원전후에 생산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대승경전도 한결같이, 「여시아문(如是我聞)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밀로 시작한다. 그것이 전승돼온 불타의 말씀임을 표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초기졍전에서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이 있었다. 그러나 대승경전에서 이 말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

    이에 대해 <대지도론>의 저자 나가르주나(龍樹)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고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는 말하고 있다.

    “부처님 경의 도입부분에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라는 말을 쓰는가. 그것은 불법의 대해(大海)는 신(信)을 능입(能入)으로 하고, 지(智)를 능도(能度)로 삼는바, ‘이와 같이’라 함은 곧 신(信)이다.”라고 했다. 즉, 용수의 이 말은 이미 글자 그대로 들은 바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경전을 읽는 사람은 불타의 말씀을 믿고 읽으러 들어가야 하고, 지혜가 있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초기경전 결집 당시 불타의 제자들이 불타 말씀을 직접 들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불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불타의 생존 시도 아니고 불타에게 직접 교육을 받은 불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불타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식어갈 때에, 대중들이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방편의 차원에서, 그리고 불법에 대해 불타나 그 제자들과 다름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위와 같은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 대승경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승경전이 출현해 육바라밀을 시설한 불교혁신운동에 대해 보수파가 반발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승교도와 보수파와의 알력은 용수의 이런 말로 해결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알력은 <도행반야경> 등의 초기 대승경전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용수(龍樹)를 지나 무착(無着) 시대에 이르러 대승경전이 불설이라는 논증이 공공연하게 나타난다. 무착은 <대승장엄론>에서 8인(八因 - 不記, 同行, 不行, 成就, 體, 非體, 能治, 文異)을 열거해 대승이 참다운 불설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무착은 <현양성교론>에서는 10인(十因)을 나열하고, <성유식론>에서는 7인(七因)을 설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것들은 모두 추상적인 논의에 그치고 있어 사실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모두 불타 친설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종교 역시 인간문화사의 한 단면으로, 세태와 함께 변하고 발달해야하는 것이라면 불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소승에서 대승으로, 또 공교(空敎)에서 중도교(中道敎)로 발전했듯이 경전도 이에 맞추어 편찬돼 오늘에 이르렀을 것임은 사실이다.

   “오늘 날 대승불교 흥기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학자들은 대개 그 기원을 전통 부파교단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다. 대승경전 역시 이전의 경전을 수용해 해석하고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종류와 분량이 확대돼 간 것이지 결코 ‘역사적 붓다’의 권위를 빌려 날조된 것이 아니며, 경전의 증광 또한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경전해석의 패턴을 의식해 이루어진 것이지 결코 자유로이 무제한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권오민

    그런데 이와 같이 대승경전이 불타 친설(親說)이 아니고, 시대를 따라 점차 편찬된 것이라 하더라도,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서, 편찬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 당연히 이런 정도의 문제제기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무리 그렇게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끝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큰 난관이 가로막고 있다.

    그 첫째 난관이란, 대승경전 편찬자들은 하나 같이 그 배후에 숨어있기 마련이어서, 즉 전면에 나서지 않으므로 편찬자를 알아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불타의 이름을 빌릴지언정 스스로 나서서 감히 불타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로 봤을 때, 대승경전 편찬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용수보살(龍樹菩薩) 역시 숨어서 주도하거나 도울 뿐이지 외람되게 전면에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난관은,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 남아 있는 대승경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원본이 많이 남아 있어야 그들의 상호비교를 통해, 혹은 문맥의 어느 부분에서 유추해 조금의 실마리라도 찾겠는데, 그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셋째 난관은, 중국인들의 그릇된 선입견이 한 몫을 한 것이다. 과거에는 정보통신의 한계 때문에 중국인들은 대승경전 모두가 불타의 친설이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난관은 기록문화의 전통이 없는 인도에서 문헌을 얻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누구’의 문제는 거의 포기 상태이고, 연구의 초점이 ‘언제 어디서’로 옮아가 있다. 헌데 이것마저도 인도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다. 이 역시 역사적 흔적이나 문헌기록에 근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 발간됐던 대승경전의 번역 연대로부터 추정해 그 대강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에 소위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성행해 이에 근거했으나 이는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황된 이론이어서 믿을 것이 못된다. 그리고 중국에서 번역된 대승경전의 목록과 고고학적 발굴에 의한 산스크리트어본 경전 등에 의해 대승경전의 편찬 지역을 개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들에 의하면, 시기적으로는 기원전후에서 6~7세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계속 제작됐고, 지역적으로는 한곳에 편중되지 않고 남인도, 중인도, 북인도, 중앙아시아, 심지어 중국 등 각지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역을 거쳐 들어온 대승경전의 각 이본을 비교해 보면, 경전이 남인도에서 편찬됐다고 하기도 하고, 북인도에서 편찬됐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서역지방에서 대승경전이 원활하게 유통되려면 아무래도 북인도에서도 적지 않게 편찬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불교경전이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진 것은 후한(後漢) 무렵이고, 일찍 안식국(安息國), 대월지국(大月支國), 강거국(康居國) 등 소위 서역이라 일컫는 중앙아시아의 사문이 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온 삼장이 통과했던 지역에도 불교가 전파됐고, 그 지역에 포교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개발된 실크로드를 따라 2세기 이후 후한시대에 중국으로 불경이 전해지게 되는데, 이때 산스크리트의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이들은 주로 실크로드 주변에 위치한 국가 출신의 불교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중국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중국인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쳤으므로, 한자로 된 북방경전은 인도로부터 직접 전수된 경전에 비해 그 본래의 의미가 다소 변질되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담고 있을 소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경전을 번역할 때 원본을 첨삭 개조하기도 하고, 그 뜻을 이어 새로운 경전을 편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찬술의 위경이 다수 있다고 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서역에서 편찬된 위경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 대승경전인 <도행반야경> 등에 의하면, 최초의 대승경전이라 할 반야경은 남인도에서 처음으로 편찬된 것 같다. 남인도에 연고가 있는 문수보살이 <도행반야경>의 처음에 미륵과 함께 등장하고, 또 <아사세왕경>, <수능엄삼매경> 등의 초기 대승경전에서도 문수의 활약을 서술하고 있어, 이들이 활약한 남인도에서 일부 대승경전이 편찬됐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후대에 가서 밀교가 전파되면서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741)의 제자이고 중국에 많은 전적을 소개한 불공(不空, 705~774)은 실론 태생이며, 밀교경전이 모두 남인도 보타낙가산(補陀落伽山)을 설법 장소로 하고 있음으로 봐서 이 지방에서 밀교와 관음 계통의 경전이 편찬됐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도행반야경>에도 반야바라밀은 남인도에서 차례로 전파돼 북인도로 전파됐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서 북인도란 설일체유부의 중심지인 카슈미르 지방과 간다라 지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보수적이고 매우 교권을 중시한 상좌부의 일파인 유부의 근거지인 북인도 카슈미르 지방에서 먼저 대승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물론 후에는 이 지역을 포함해서 중앙아시아 일대에 걸치는 북방지역이 오히려 대승불교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도행반야경>의 최초 부분이 반야경전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반야경전 대부분은 스스로 그것이 남방(南方)에서 기원한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대승불교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야경은 부처 중심의 대승불교를 법(法) 중심의 종교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 즉,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도(道)를 고양하고 재가로부터 출가(出家)로 전환시켜 대승불교의 전문화로 발전했다.

    그런데 대승불교 경전도 대부분 석가모니 부처가 직접 말한 것처럼 돼 있으나, 고증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님이 밝혀져 위경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석가모니의 직설(直說)은 아니지만 진설(眞說)이라는 입장이다.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글과 말이라면 석가모니의 직설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모든 경전은 불타의 사상과 실천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승경전들은 결코 불타의 사상과 실천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승경전 편찬자들은 그들 나름의 확고한 신념과 목표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불타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고지식하게 불타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전하는 초기 성문들과 다르게 대승경전 편찬자들은 불타의 진의를 꿰뚫는, 시대에 맞는 이치를 대승경전에 나타내는 것에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불타의 정신을 살리는 길임을 확신했다. 그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대승불교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문수(文殊), 용수(龍樹), 마명(馬鳴), 무착(無着), 세친(世親) 등과 같은 뛰어난 선지식들의 생각도 한결 같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BC 1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 대승경전으로 중요한 것은 반야경ㆍ법화경ㆍ십지경ㆍ무량수경ㆍ아미타경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독창적으로 편찬된 경전도 있지만 단편적으로 형성된 것을 하나로 모은 것도 있으며, 원래 있는 구본(舊本)에 증광한 것도 있고, 혹은 다소 수정을 간한 경전도 있었을 것이다. 한역된 경전 중에는 중역(重譯) 된 것이 상당수 있는데, 그들을 비교해보면 그 역본들이 완전하게 동일하지 않고, 후역일수록 항상 증광되고 있다. 그것은 중요한 경전이 일단 제작되면, 그것에 대해 증광과 수정이 가해져서 첨삭 개찬됐음을 말하고 있다. 반야경, 화엄경 등 대승 경전을 대표하는 것의 이본을 놓고 비교해 보면 더욱 확실해 진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날조된 후대 창작이라는 것은 「불법=불설」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생각이며, ‘아비달마불교는 초기불교의 왜곡’이라거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라는 말 또한 불교의 전통과 역사성을 무시하고 불교의 시대적 구분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잡아함과 중아함은 유부의 전승이고, 5니까야는 상좌부의 전승으로, 초기경전 자체가 이미 아비달마화 한, 출가 승려를 위해 편찬된 교과서(E. 라모트; 櫻部建)였기 때문이며, 각각의 부파가 불타의 취지(dharma)를 밝히려고 했듯이 대승불교 역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의 모본ur-text이 된 원초적 형태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의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비바사사(毘婆沙師)를 비롯한 다수의 대ㆍ소승의 논사들은 제1결집은 멸실됐으며, 그 후로도 무량의 경전이 은몰했다고 전한다.)” - 권오민 

   

   <대승경전의 삼대 원류>

    ① 공관적(空觀的) 경전 ― 반야부 경전 ― 반야사상, 공(空)사상, 무아사상, 중관사상의 논서.

    ② 유심론적(唯心論的) 경전 ― 해심밀경, 무량수경, 아미타경, 법화경, 유식(唯識) 계통 논서.

    ③ 공과 유심을 모두 섭수한 경전 ―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천수경.

  

   <시기별로 편찬된 대승경전>

    ① 초기 대승경전 -- 반야부경전(般若部經典), 육바라밀경(六波羅蜜), 보살장경(菩薩藏經), 삼품경(三品經), 도지대경(道智大經), 반야삼매경(般若三昧經), 수능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 아미타경(阿彌陀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

    ② 중기 대승경전 -- 대방등여래장경(大方等如來藏經), 해심밀경(解深密經), 유마경(維摩經), 승만경(勝鬘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능가경(楞伽經), 앙굴마라경(鴦掘魔羅經), 금강명경(金剛明經) 등.

    ③ 후기 대승경전 --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등.---→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참조.

  

 

*대승계(大乘戒)의 특징---대승계란 대승불교권에서 제정한 계율을 의미한다. 원래 초기대승불교는 별도의 율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초기대승불교는 소승불교(부파불교)가 지나치게 출가자 위주였음에 반발해서 출발했으므로 출가수행의 우위를 부정해서 경 및 논만 있을 뿐 율장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될 때는 소승ㆍ대승의 불전이 섞여서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는 원칙적으로 소승의 구족계(具足戒-250계)를 그대로 채용했다.

    그러다가 후대에 오면서 <범망경>, <보살선계경>에 기초를 둔 계율이 제정되면서 그 틀을 갖추게 됐다. 대승계가 계율에 대한 엄격함보다는 ‘선한 마음’이 강조되면서 자칫 파계에 대한 명분이 될 수 있는 반면, 소승계는 계율조목에 대한 엄격한 실천이 강조되므로 교단의 청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결국 대승계가 계율조목 하나하나에 대한 실천을 강조하기보다는 보살행을 강조한 것이라면 소승계는 조목 하나하나에 대한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출가자의 청정성을 유지하고 궁극적인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점이 대 · 소승계의 차이이다.---삼취정계(三聚淨戒) 참조.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줄여서 <기신론(起信論)>이라고도 하는데, 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이라는 뜻이다. 기신(起信)이란 이 논의 글에 의해 중생의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신이라고 말한 것이니, 신(信)은 결정적으로 그렇다고 여기는 믿음을 말한다.

   <신기론>은 화엄종, 천태종뿐만 아니라 정토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파에 영향을 준 그런 문헌이었다. 이문헌의 핵심 사상은 “모든 번뇌의 근원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의 습관에서 오는 것으로, 모든 법은 오직 자기 마음의 비춤에 있다.”고 해서 이것이 선법수행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대승기신론>는 산스크리트 원본이나 티베트역은 없고 한역본만 있는 탓에 인도에서 찬술된 것인지 중국에서 찬술된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논서이거나, 적어도 중국에 들어온 인도나 중앙아시아 역경사들의 가르침을 듣고 역경에 참여한 중국인 역경사들이 정리한 것으로 여기는 논서이다.

    지은이로 알려진 마명(馬鳴, 아슈바고샤/Asva ghosa, 100∼160?)은 인도 브라만 출신의 대학자였다. 당시 인도의 학문중심지, 마가다 지방 여러 도시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에서 패한 후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그가 <대승기신론>을 저술한 것은 불교사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며, 이로 인해 대승사상이 크게 떨쳤다. 그러나 그의 생존연대가 불확실해 그의 저술 여부를 확실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양(梁)나라 때 진제(眞諦, Pramārtha, 499∼569)와 당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의 한역본이 각기 전하며, 한국에는 실차난타 한역본이 전해지고 있다.

    원효 대사는 <대승기신론>이란 제목에서 “‘대(大)’란 진리의 당체(當體), 이 논의 근본 본체(宗體)를 말함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탐(貪)ㆍ진(嗔)ㆍ치(痴) 등 번뇌에 가려져서 나타나지 못하니 이것을 미(迷)라 하고, 그 미(迷)에서 오(悟)로 나아가는 힘을 승(乘)이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에 대승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이 중생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다. 이 자성청정심을 반조(反照)해 찾는 것을 기신(起信)이라 한다. 기신이란 이 논의 뛰어난 기능(勝能)이니 본체(體)와 작용(用)을 합해 제목으로 삼아 대승기신론으로 한 것이다. 대승이란 받아들이는 그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고, 그 위에서 믿음을 발하는 행위는 대승의 작용이다. 이와 같이 대승과 기신은 체와 용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대승기신론’이란 “이 논문에 의지해서 중생들의 믿음을 일으킨다(依此論文 起衆生信)”는 뜻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당나라의 현수 법장(賢首法藏)은 “대승은 일으킬 수 있는 것(能起)이고, 믿는 마음은 일으켜진 것(所起)이니, 대승이 믿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라고 했다. 즉, 대승기신이란 말을 풀면 '대승이 믿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서, 중생이 일으키는 믿음이란 대승에서 비롯된 것이며, 대승이란 본체론적인 진리가 있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작용적인 진리가 일으켜진다는 말이다.

    믿음을 일으키는 것(起信)이 중요하다. 제 아무리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선포 역시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주관과 관계를 맺지 않는 순수객관이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그것은 단순한 관념 내지는 표상일뿐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바로 대승 자체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야말로 궁극적인 진리를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해주는 최고의 실천행인 것이다.

    불교 전적(典籍)들은 대부분 분량이 많고 번거로운 문체, 지루한 설명이 많아 핵심 대의를 파악하기에 어려운 경향이 많다. 하지만 <대승기신론>은 치밀한 내용구성, 간결한 문체, 독창적인 철학체계 등 모든 면에서 대승불교 후기에 나타난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서이자, 불교문학사상 최대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시 인도에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사상, 즉 중관파(中觀派)와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의 사상을 지양ㆍ화합시켜 진(眞)과 속(俗)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미오(迷汚) 한 현실 생활(俗) 가운데에서 깨달음의 단계(眞)에 이른 사람은 아직 염오한 단계(俗)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진속일여(眞俗一如)ㆍ염정불이(染淨不二)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론과 실천 양면에 있어서 여러 교리사상을 받아들여 작은 책 속에 대승경전에 설해져 있는 모든 사상의 진수를 요약해 종합적으로 회통(會通)했으며, 논리를 체계적으로 세워 대승불교 본질을 밝혀놓고, 인간생명의 위대함을 설한 논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치의 심오함이 마음 깊이 새겨지게 한다.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철학 내지 심리학 저서와 같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설명해 놓은 논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경전구절.., 마음을 지니고 인생을 살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을 모르는 것이 중생이라 한다.

AD 1세기를 전후해 지어진 저서에서 마음에 대한 논리 정연한 분석을 해놓은 <기신론>의 내용을 보고 감탄한 서양학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수행의 요지를 간명하고 구체적으로 설해서 수행의 지침을 명쾌하게 밝혀놓았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얼마만큼 위대하고, 그 위대한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마음을 깨우쳐 가면 그것이 바로 불타라는 사실을 밝혀놓았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논서이다.

    그리하여 불교의 중요사상인 공사상, 진여사상, 유식과 유심사상, 그리고 실천사상으로서의 육바라밀, 지관, 아미타불 신앙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돼 있으며,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사상의 입장에서 체계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일컫는 대승(大乘)은 소승(小乘)과 대립되는 대승이 아니라, 인간생명의 위대함[大]과 그 위대한 생명이 피안의 세계를 향해 몰입해 가는 무한한 능력이 있음[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다루는 생명문제를 통합해 체계화한 대승불교 개론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이 논서는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강원에서 필수과목인 4교과에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과 함께 포함될 정도로 존중되고 있다.

    그런데 「<대승기신론>이 비록 여래장 계열의 논서이나 여래장연기(緣起)를 설하고 있는 점이 여타 여래장에 관한 설과 다른 점이다. 즉, 번뇌에 덮여있는 여래장에서 자성청정의 여래장으로 현현시키는 본래 부처의 회복과정을 <대승기신론>에서는 생멸심(生滅心)과 불생멸심(不生滅心)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래장설(如來藏說)은 여래장[佛性]의 자성이 본디 청정함에도 어떻게 번뇌에 얽혀 있게 됐는지에 대해서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승기신론>에서는 여래장을 연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중생이 중생이 되는 연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즉, <대승기신론>에서는 불생멸심의 여래장이 자성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무명(無明)의 영향을 받아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인 아뢰야식으로 바뀌어 연기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진리의 세계가 하나인 줄 모르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이 작용해 한 생각이 움직이면[業相], 대상을 보는 주관이 생기고[轉識], 이렇게 보는 주관으로 해서 객관이 나타난다[現識]. 그래서 주관을 자아로 삼고 객관을 아소(我所, 내 것)로 삼아, 사랑과 미움을 일으키는 자아의식인 말나식이 생긴다. 그 마음을 의지하므로 고락(苦樂)이 생기고 이에 허망한 생각을 일으켜 계속 이어지면서[相續識] 대상에 대해 집착하게 되고[執取相], 집착에 의해 대상을 헤아리면서 그에 대해 갖가지 업을 일으킨다[起業相]. 그리고 그 업에 매어 고통 받으니 자유롭지 못한 중생이다. 이것이 무명으로 인해 본디 청정했던 여래장이 연기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아리야식연기(阿梨耶識緣起), 혹은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라고 한다. 이는 이전의 여래장설에서는 설명해 주지 못했던, 중생이 중생이 되는 연유이다. <대승기신론>은 이처럼 여래장이 무명번뇌의 영향을 받는 과정을 연기적으로 전개해 보여주고 있다. - 지운 스님

    그런데 문제는, <대승기신론>이 여래장 계열의 경론이라서 불교의 주류 흐름인 「초기불교-아비담마-반야ㆍ중관-유식」의 관점과는 다른, ― 불교의 주류에 들지 못하는 여래장 계열의 이론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기시론>에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대승불교에서 만들어낸 이론이지 초기불교의 이론은 아니라고 한다. 초기경들에 공(空)이라는 술어가 드물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공이니 법공이니 구공이니 하는 용어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래장 계열의 경론은 법을 중심으로 한 체계가 아니라 믿음(信)을 중심으로 삼는 체계인데, 이러한 여래장 계열의 대표 논서가 바로 <대승기신론>이라는 것이며, 이는 믿음의 문제를 핵심에 두고 있는 논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은 믿음의 대상으로서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이나 일심(一心)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힌두교의 자아(自我-atman)이론과 같아서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無我)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승기신로소(大乘起信論疏)>를 저술한 원효 대사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원효 대사가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논서를 저술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래장 계열의 사상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검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元曉, 617∼686) 대사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주석한 저작으로, 주석서 중 최고로 평가되는 명저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국가나 종파를 초월해 널리 유포돼, 이에 관한 주석서가 수백여 종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기신론삼대소(起信論三大疏)」이다. 즉, 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수나라 혜원(慧遠, 513~592)의 <대승의장(大乘義章)>, 당나라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이다.

    그런데 기신론 3대소 중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그 내용에 있어서 단연 혜원의 <대승의장>를 능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수 법장의 <기신론의기>도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대목이 허다하며, 원효의 견해를 표현만 바꿔 재정리한 곳도 적지 않다. 따라서 원효 대사의 <대승기신론소>가 으뜸가는 기신로소로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신론연구에 기본문헌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일명 <해동소(海東疏)>라 하고, 혜원의 <대승의장>을 <정영소(淨影疏)>, 현수가 지은 <기신론의기>를 <현수소(賢首疏)>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승불교에는 두 가지 사상계통이 있는데 하나는 중관사상(中觀思想)이고 다른 하나는 유식사상(唯識思想)이다. 그런데 중관과 유식의 두 철학체계는 그 본질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리 상에 여러 가지 대립적 차별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신론은 이 두 철학체계를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으로 각각 부르고 있는데, 이 2문이 갖는 교리 상의 대립적 차별현상 속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원효 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잘 밝혀놓았다.

    최근(2015년) 독일에서 발견된 <대승기신론소>는 돈황본이 아니라 중국 투르판 본으로 <대승기신론소>의 여러 이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은 현존 최고본인 돈황본보다 200여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번 투르판본 <대승기신론소>의 발견으로 원효 대사의 명성과 사상적 영향이 중앙아시아 돈황과 투르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당나라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편찬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주석서이다. 원효(元曉, 617-686) 대사의 주석서인 <대승기신론소>, 혜원(慧遠)의 주석서인 <대승의장(大乘儀章)>과 더불어 <대승기신론>의 3대 소로 일컬어진다.

    <대승기신론의기>는 원효 대사의 <대승기신론소>를 거의 답습했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원효 대사는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현장(玄奘, 602-664)의 유식학(唯識學)을 융화시켜 주석한 반면, 법장은 현장의 유식교학을 배제하고 여래장사상만으로 <대승기신론>을 해석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상·하 2권으로 된 고본이 보물 제1663호로 지정돼 있다.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6세기 중엽에 인도 출신의 학승 사나야사가 한역했다. 2권으로 된 이 경은 사람을 잡아먹던 악마의 왕이 부처님을 섬기고 불도를 닦아서 부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든 것의 본성이 같다고 설법하고 있다. 이역본으로는 지바하라가 번역한 <증계대승경(證契大乘經)>이 있다.---→증계대승경(證契大乘經) 참조.

      

*대승무계(大乘無戒)---대승무계라는 것은 계(戒)를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스스로 계에 맞도록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대승교에서는 계(戒)를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코 계(戒)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 계가 필요 없을 만큼 행동이 반듯하다는 말이다.

    

*대승불교 기원설---대승불교의 원류 혹은 기원에 관한 탐구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확정적인 결론은 나지 않는 상태이다. 대체로 지금까지 대승불교 성립에 관한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는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노력이고,

     둘째는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불교의 내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노력이다.

     셋째는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서 대승불교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첫째, 대승불교 성립의 조건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자 시도한 경우, 대승불교가 힌두교와 이란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적 혼란이 대승불교 발전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승불교흥기를 헬레니즘과의 교섭에 의한 영향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고대인도 북부에는 그리스 식민지 국가인 박트리아(Bactria, BC 255-139)가 있었고, 이 국가는 한 때 불교가 국교였다. 박트리아는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북부 발흐(Balkh)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계 왕국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쿠샨제국(Kushan Empire)은 그리스계라기 보다는 페르시아 계에 가깝지만, 박트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리스-인도 왕국을 계승함으로써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인도의 불교를 동시에 받아들인 타림분지의 초원 출신의 월지 민족이다. 쿠샨왕조는 양 문화를 융합해 그리스계 불교문화인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문화를 재창조함으로써 불교사(佛敎史)에 회기적인 분수령을 만든다. 쿠샨왕조는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장악하면서 동시에 불교문화를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아시아로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대승불교를 탄생시켜 동아시아로 전해준다는 사실이다. 중국 한국 일본 월남 대만 등의 대승불교는 바로 이 쿠샨왕조의 그레코-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Bhāgavad Gīt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바가바드 기타>와 <법화경>은 유사한 점이 많고, <바가바드 기타>의 박띠(Bhakti) 신앙이 대승경전 불타신앙 성립에 영향을 미쳤고, 대승불교의 범신론적 불타관(佛陀觀)은 힌두교의 신관(神觀)과 <우파니샤드>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아미타불(amitābha)과 보살 등의 사상은 이란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고 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특징인 보살사상의 형성에 있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보살사상이 이란 종교와의 접촉을 통해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180년 마우리아왕조의 멸망으로 인도는 다시 분열시대를 겪었고, 200여년의 혼란기를 거친 후 아프가니스탄 북쪽, 아무르강 남쪽의 중앙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이란계의 쿠샨왕조(Kusan/貴霜, 대월지국/大月氏國)가 일어나 인도 북부로 진출해서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통일제국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 북인도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에 빠졌고 전통적인 사회제도와 관습 등은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가 새로운 종교운동, 즉 불탑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대승불교 발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AD 2세기경의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Kaniska, 迦貳志加王)은 호불 군주로서 불교를 적극 후원함으로써 대 ․ 소승의 불교가 동시에 꽃피게 됐다는 주장이다.

    둘째, 대승불교의 기원을 불교 내부에서 찾고자 시도한 경우이다. 대승불교의 기원을 불교 내부에서 찾고자 함에는 대표적인 두개의 가설이 있다. 하나는 대중부 기원설과 재가의 불탑 기원설이다.

   먼저 대중부 기원설부터 검토해 보자. 많은 학자들은 대승불교의 기원을 대중부(大衆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불신론(佛身論), 아라한(阿羅漢)을 인간적으로 보는 점, 공사상(空思想), 법무아(法無我) 등을 설한 점 등을 들어 대중부가 대승의 기원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 기원의 문제에 대해 외부적인 요인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대중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음을 많은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교리적인 공통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단사적으로 보면 ‘비구승가(Bhikkhu- saṅgha)’와는 별도로 ‘보살가나(Bodhisattva-gaṇa)’가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출가자 집단에서 대승불교를 전적으로 주도했다고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만일 대중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 대승불교 교단이었다면 굳이 별도의 대승계경(大乘戒經)을 찬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부는 이미 <마하승기률(摩訶僧祇律)>이라는 율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는 재가불자들에 의한 불탑 기원설이다. 본래 성전 암송가로서 원시경전의 내용을 해박하게 꿰고 있었던 법사(法師, 다르마바나카)들은 불탑을 중심으로 한 찬불승[讚佛乘: 佛傳文學]을 발전시켜오기도 한 이들이기에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해, 내용적으로는 원시경전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구성과 형식, 문체와 체제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함으로써 대승불교 성립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가신자(在家信者)를 중심으로 하는 불탑교단(佛塔敎團)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으로 보시(布施)를 함으로써 찬불승들과 더불어 불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탑교단 기원설은 불교연구의 역사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며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들은 부파들의 아미달마불교가 승원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교학을 지향해 너무 전문적인 법(法) 중심의 불교를 전개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새로운 불교운동을 출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불타 신격화의 일환이었다.

    셋째, 최근에는 대중부 외에도 대승과 공통된 주장을 하는 부파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승의 기원을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교리적 유사점은 단지 대중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파와의 관련성 또한 있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 경량부(經量部)에 속했던 비유자(譬喩者, Darṣṭāntika)들의 설에는 대승불교와 공통되는 교리가 보이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경량부에 속한 하리발마(訶梨跋摩, Harivarman, 250~350년경)가 지은 <성실론(成實論)>은 대승 논서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또 화지부(化地部)와 법정부(法藏部) 등이 대승경전과 관계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는가 하면, 심지어 상좌부계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조차도 대승불교의 발전에 일정 부분 공헌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승불교 발생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정리할 수 있고, 대승불교 성립의 직접적인 사회적 배경은 사회적 혼란으로 나타난 불탑숭배이고, 그 중심은 재가신자의 활동이 있었으며, 보살이 출현함으로써 대승불교가 성립됐기 때문에 불전문학(佛傳文學)과 불탑신앙(佛塔信仰)이 대승불교의 원류라는 주장도 있고, 부파들 내부에 대승불교와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는 가설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운동의 주체가 부파교단의 출가자 집단이었다는 주장과 기존의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그룹, 즉 불전문학과 불탑신앙을 주도했던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집단이 대승불교의 성립을 주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역사의 퍼즐 맞추기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아무튼 대승불교는 다양한 외적인 요인과 불교 내적인 복합적 요소가 얽혀 전개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전된 사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다양한 원인에 의해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다른 이질적 요소를 통합하면서 발전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확실히 해 둘 것은, 대승불교가 불법의 멋진 확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교는 궁극의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현실문제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라도 그 종교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철저하게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일반대중들에게는 현실이익적인 의례나 기원 등의 소박한 종교적인 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이러한 것이 절실히 요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불교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초기불교의 고집을 꺾고, 인도사회의 문화를 불교적인 원리로 재구성하는 내면화의 과정을 통해 이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기존의 불교 전통 위에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사상적인 변화와 함께 인도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경향이 현저해지면서 불교는 더욱 화려해지고 풍부해졌다. 일부에서 불교를 왜곡시켰다고 편협한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대승불교의 깊은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대승불교 본거지의 이동---어떤 학문이나 종교의 전통은 반드시 그 발상지에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의 발상지가 중국이지만 청나라시대인 조선 중기 이후엔 유학의 전통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자부하기도 한 때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불교 발상지가 인도이지만 오늘날 불교전통은 스리랑카에서 지켜지고 있다. 기독교도 예루살렘에서 생겨났지만 오늘날 로마를 비롯한 서양에서 그 전통을 더 잘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다음과 같은 예화가 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마가다국에 12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가운데 자이나교단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가뭄을 피해 교단을 잠시 옮길 것인지 죽음을 무릅쓰고 이곳에 남을 것인지…. 상당수 원로와 수행자들이 끝까지 남자고 했지만, 교단의 수장은 그보다 많은 대중들의 뜻에 따라 남쪽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은 사람들은 어렵더라도 그곳을 지키며 살기로 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러 남쪽으로 갔던 교도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깜짝 놀랐다. 교조 마하비라 때부터 이어져오던 전통을 깨고 수행자들이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에게 옷을 입는다는 건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는 수행자의 다짐을 깬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자이나교가 옷을 입지 않는 공의파(空衣派)와 흰 옷을 입는 백의파(白衣派)로 나뉜 것도 이 때부터이다. 이와 같이 때때로 전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곳은 그 전통의 발상지가 아닐 수 있다. 자이나교처럼 전통 문화권에서 벗어난 이들이 오히려 전통의 계승에 더 적극적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중국에서 선불교(禪佛敎)가 발달한 것도 인도에서 더 이상 불교(대승불교)가 발 불일 수 없게 되자, 그 중심부가 달마(達磨)에 의해 중국으로 옮아온 것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대승(大乘)은 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Mahayana(buddhism)의 번역으로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연(摩訶衍)이라 음역하고, 상승(上乘)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소승(小乘)은 산스크리트어 히나야나/Hinayana(buddhism)의 번역어로서 작은 수레라는 뜻이다. 이 소승(Hinayana)이라는 말은 아비달마불교에 반동으로 생겨난 이른바 대승(Mahayana)에 의해 폄하돼 불린 명칭이다. 역어로서는 ‘작다’이지만 그 원어 hina는 ‘마땅히 버려야 할’ ‘저열한’ ‘천한’의 뜻을 지닌 말이다. 그래서 하승(下乘), 하열승(下劣乘)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특히 설일체유부의 비바사(毘婆沙)를 중심으로 하는 아비달마불교를 멸시해 소승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승(乘, yāna)은 수레를 의미하며, 중생을 태워서 미혹의 차안(此岸)에서 생사고해를 건너 열반의 세계인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교법을 가리킨다. 그리고 승(乘)은 궁극적으로 가치 있고 파괴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추구를 뜻한다.

    BC 6세기에 성립한 불교가 인도 전국으로 발전하고, 종교로서 확립된 것은 불멸 200여년 후인 BC 3세기 무렵의 마우리아 왕조(Maurya dynasty) 아소카왕(Ashoka, 阿育王) 때였다. 아소카왕은 불교를 국교로 정해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제3차 불전결집을 주도해 논장(論藏)을 정비하기도 했으며, 초기 근본불교를 계승한 상좌부계의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adin) 교의를 스리랑카에 전했다.

    그런데 당시의 불교(부파불교)는 교리연구(아비달마교학)에만 치우쳐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으며, 상좌부를 제외한 일반 부파불교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 근본정신마저 멀리하고 있었다. 즉,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난 후 기원 전 3세기 무렵에 교단 내에 교리해석문제에 이견이 생기고, 주도권 다툼으로 교파가 20여개 부파로 분열됐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교단분열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部派佛敎)라 하며, 이 부파불교를 대승불교 측에서는 소승불교라 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소승불교는 상좌부를 제외한 여타 부파불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부파불교시대의 특징은 각부파가 자기네 이론을 정당화하려다가보니 지나치게 교리중심으로 발전해 불교교리가 너무 번쇄해졌고, 승려집단은 자기수행과 교리연구에만 몰두하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까닭에 일반대중들과 거리가 멀어졌으며, 부처님 본래 뜻도 많이 퇴색했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멀리하고, 부처님 말씀을 해석할 때, 자기들 주장대로 논서(아비달마)를 편집했다.

    이러한 현상에 반발해서 BC 1세기(불멸 후 500년)경부터 원래의 부처님 사상, 부처님 원음으로 돌아가서 대중을 구제하자는 기치를 내세운 불교개혁운동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대승불교였다. 이 운동은 원래 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부파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보급하기 위해 재가자를 포함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진보적인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시도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당시의 불교(부파불교)와는 다르다는 의미로 기존의 불교계를 작게 본다는 의미에서 소승이라고 하고, 자기네는 대승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갈라졌다.

    소승은 주로 승단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이론과 실천에 엄격했으며 초인적 수행을 권장했고 부처님 말씀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담마(법)의 해석에 배타적이었으며, 가능한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이러함이 당연히 계율과 수행의 지침에서 교조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대승은 주로 재가불자를 중심으로 형성됐고 엄격한 초인적 수행과 너무 많은 계율(하면 안 된다)에 반발했다. 부처님 말씀을 형식보다는 의미론적으로, 즉 진보적이고 개방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대승은 특히 대중에 포커스를 두고 그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중의 욕망과 인기에 영합하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부처님을 오히려 절대적 신(神)처럼 형상화 해서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 초기부터 불상과 석탑이 대거 이루어지게 됐다.

    소승은 대승이 부처님과 불교의 경전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며 순수성보다는 자의적 해석을 내세워 자신들의 목적과 수단을 위해 이용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대승은 이를 맞받아쳐서 소승의 승려들이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이기적 작태를 멈추지 않고 배타적 권위와 권력을 굳건히 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리하여 소승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승을 배운 이와는 물조차 다른 강에서 길러다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승불교가 나타난 것은 시대적 요구라는 설이 있다. 상당히 타당한 주장이다.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반야, 유식, 밀교 사상이 나타났듯이 이를 뒤집어 보면,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창작 불ㆍ보살도 등장했다는 말이다.

    이 운동의 주안점은 다 함께 같이 간다는 뜻으로서, 계율이나 교법에 얽매이고 전통을 고집하면서도 부처님 원음을 어기면서 형식화돼가는 부파불교(소승불교)의 벽을 깨뜨리고, 출가 수행승만이 중심이 되는 좁은 생각을 물리치자는 것이었다. 중생은 본래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보살의 길인 반야지(般若智)와 공(空)사상, 대자대비사상 등을 바탕으로 해 육바라밀의 완성을 위해 정진한다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중생구제에 목표를 두는 것이 부처님 참뜻이고, 부처님이 현세에 출현했던 근본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또 다른 사상적 특징은 붓다관을 새롭게 해 무수한 붓다와 보살을 창조해냈다는 점이다. 무신론적인 소승에 대해 대승은 유신론적이며, 1불 사상에서 다불(多佛)사상으로 전개해나갔다.

   쉽게 말해서, 대승불교는 불타가 행한 길이나 아라한의 길은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부처가 되려 하는 대신 부처를 구원자로 숭배하며 그에게서 자비와 긍휼을 바라게 됐고, 점차 무수한 부처와 보살들이 숭배 대상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은 민중을 대변하는 민중불교라 하겠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힌두교에서 유행하고 있던 박티(Bhakti)신앙을 받아들여 부처님을 믿기만 하면 법을 몰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아미타불신앙이 보편화돼 나타난 정토교(淨土敎)가 있었다.

          ※박티(Bhakti) 신앙---힌두교에서 인격적인 신에 대한 강한 애착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신앙운동. 신애(信愛)라고 번역된다. 박티는 신도와 신 사이의 이원적 관계를 상징한다. 원래 박티란 신에 대한 헌신을 통해 신과 인간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는 일종의 대중적 신앙운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의 개념을 넓혀서 많은 보살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자기만의 해탈보다는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역할을 이상으로 삼고, 광범위한 포교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에 비해 소승불교에서의 신행은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따라서 소승불교는 중생구제보다 자기수행에 역점을 두는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이기적 모습이라 규정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고 했다. 즉, 대승불교는 중생을 제도해 불타의 경지에 이르게 함을 이상으로 하며, 그 교리와 이상과 목적이 모두 크고 깊다고 해서 대승이라 했다.

    그리하여 BC 1세기 무렵에 시작된 이 운동은 AD 2~3세기에 이르러 용수(龍樹, 나가르주나)를 비롯한 뛰어난 사상가들의 출현으로 중관사상(中觀思想)과 공사상(空思想)을 기초로 한 대승불교의 사상적 체계가 확립됐다.

    대승불교의 발상지는 대월지국(大月氏國)을 중심으로 한 인도북부와 중앙아시아지방으로 추측된다.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이 죽은 후 인도는 다시 분열시대를 겪었으나, 200여년이 지난 후 아프가니스탄 북쪽, 아무르강 남쪽의 중앙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이란계의 쿠샨왕조(Kusan/貴霜, 대월지국/大月氏國)가 일어나 인도 북부로 진출해서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통일제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AD 2세기경의 카니시카왕(Kaniska, 迦貳志加王)은 호불 군주로서 불교를 적극 후원함으로써 대 ․ 소승의 불교가 동시에 꽃피었다.

    대승불교는 이후 중국, 티베트, 한국, 일본 등 주로 북방으로 전파됐으므로 북전불교라고 하고,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 남방으로 전파된 상좌부계 불교를 남방불교 혹은 남전불교(혹은 소승불교)라 한다. 특히 근본불교를 계승한 상좌부계 불교가 전파된 남방불교는 부처님 당시의 불교를 계승해 근본불교 내지는 초기불교와 흡사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현재 남방불교가 보유한 경전은 소승경전(부파불교경전)이 아니라 초기경전이다. 그러므로 남방불교의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빠알리어 삼장)>을 소승경전이라 칭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 직설을 소승이라 깎아내리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대승경전 편찬은 AD 1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대승경전 편찬은 대개 3기로 나누어 조성됐다고 보는데,

      • 초기는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샨왕조가 번창하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하는데, 대체로 대승불교가 시작되면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다. 이때 조성된 대승경전으로는 AD 1세기경에 반야계통의 대승경전이 나타나고, AD 1~2세기경에 <화엄경>과 <법화경>이 나타났는데, 이들 경전에는 박티신앙의 영향으로 초기경전에 없던 여러 가지 형태의 불 ․ 보살이 나타나게 됐다. 그 외에 <정토3부경-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유마경> 등이 이때 조성됐다.

      • 중기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 시대까지로서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조성된 대승경전으로는 여래장계 경전인 <승만경>, <대반열반경>과 유식계 경전인 <능가경>, <해심밀경> 등이 있다.

      • 후기 - 대승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됐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계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의 성립을 통해 밀교(密敎)가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7세기말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된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대승불교운동을 촉발시킨 부파불교는 갈수록 미세한 교리해석에만 매몰돼 점차 교의가 더 번쇄해져서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이러한 부파불교에 반항해 대승불교가 나타났고, 대승불교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등장으로 부파불교의 번쇄한 아비달마 교학이 비판을 받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비달마 교학이 소멸돼서 부파불교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대승불교시대로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승불교운동은 부파불교와의 공방 속에서 자라나고, 부파불교도 대승운동으로 인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와 더불어 발전해나갔다. 그리하여 부파불교가 완성되는 시기는 바로 보살중심의 대승불교운동이 드러나는 시기와 겹치게 된다. 따라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시기적으로 엄밀하게 나눌 수가 없다.

   참고로, 현장(玄奘) 스님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당시 현장 스님이 방문한 불교사원 가운데 60여 곳은 소승사찰이었고, 24여 곳은 대승사찰이었으며, 15곳 정도는 대ㆍ소승을 겸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대소승을 겸하는 곳을 제외하면 당시 인도불교는 소승사원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소수인 대승에서는 저돌적으로 초기불교나 아비담마(아비달마)를 중시하는 소승을 심하게 공격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부처님 당시에는 대승이라는 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대념처경(D22)>에는 마음챙기는 공부를 일승도(一乘道, 유일한 길, ekaayana-magga)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승은 불멸 500년 후에 생긴 것이기에 당연히 초기경에는 나타 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승불교(초기불교)가 남방권에서 2500년 이상을 전승돼 오늘날에도 훌륭하게 살아 있으니 대승불교를 버리고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상당하다.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이러한 배경엔 대승불교를 왜곡되고, 타락해서 변질된 불교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왜곡되고, 타락한 것이 아니다.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에 머물지 않고, 보다 확장되고, 현지에 맞게 적응한, 보다 개방적인 불교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승불교는 한국화한 불교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소승불교(小乘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심(大乘心) 참조.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대승불교는 BC 1세기경 소승불교에 반대해서 일어난 개혁세력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불교란 말이고, 승(乘)은 싣고 운반한다는 뜻이다. 소승이란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부파불교(아비달마 불교)를 지칭한 말이다. 당시 소승불교는 승려들만의 종교였음에 비해 불교를 널리 민중에까지 보급하기 위해 비교적 진보적 인사라고 할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수레, 대승불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재가자를 포함시켜나갔다.

    초기 대승불교 운동가들이 불교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 모든 문제점을 통합해 소승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개인적 성취 득도가 부처님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이 성불하기는 쉽다. 고행하면 바로 도통한다. 그러나 이래서는 인류가 개선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도 당신의 여러 진리 안목 중에서 연기법을 열심히 설법하셨다. 연기법을 깊이 공부하면 개인적 해탈보다 인류전체의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소승과 대승의 분열은 불교의 분열로서 이를 이해하는 것은 대승과 소승에 대해 이해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소승은 주로 승단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이론과 실천에 엄격했으며 초인적 수행을 권장했고 부처님 말씀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담마(Dhamma, 법)의 해석에 배타적이었으며 가능한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이러함이 당연히 계율과 수행의 지침에서 교조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대승은 주로 재가불자를 중심으로 형성됐고 엄격한 초인적 수행과 너무 많은 계율, 그것도 주로 “…하면 안 된다”는 내용에 반발했다. 부처님 말씀을 형식보다는 의미론적으로, 즉 진보적이고 개방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대승은 특히 대중에 포커스를 두고 그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중의 욕망과 인기에 영합하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부처님을 오히려 절대적 신(神)처럼 형상화 해서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 초기부터 불상과 석탑이 대거 이루어지게 됐다.

    소승은 대승이 부처님과 불교의 경전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며 순수성보다는 자의적 해석을 내세워 자신들의 목적과 수단을 위해 이용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대승은 이를 맞받아쳐서 소승의 승려들이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이기적 작태를 멈추지 않고 배타적 권위와 권력을 굳건히 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를 인간으로 보고, 고타마 한 사람의 탄생으로 성불은 마지막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의 부처는 절대자로 존중되며, 신(神)의 화신이고, 그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데, 이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설정된 이념이었다. 따라서 중생도 수행만 열심히 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소승은 자신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으나, 대승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다.

    또한 대승에서는 보살(菩薩)의 개념을 확장해 모든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출가자들만의 해탈보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대승은 열반의 경지에 안주하는 소승 성자의 이상(아라한)을 비난하고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내세운 점에 특징적인 차이가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수행자는 각자의 정신세계에만 몰입해 사회와는 분리된 채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개인 해탈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탈의 수행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상적 존재를 아라한(阿羅漢) 또는 나한(羅漢)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소승불교는 자신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으나, 대승불교에서는 교조를 신화적 존재 내지는 절대자로 신격화하고, 구제대상을 모든 인류로 확장해 중생구제를 최고이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소승으로 해탈을 이룬 성문(聲聞), 연각승(緣覺乘=獨覺乘)은 법신(法身)이라 하지 않고 해탈신(解脫身)이라 한다. 해탈신은 개인 아(我)의 해탈을 이루었기에 중생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방편반야(方便般若)가 없어 영적권능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대승의 여러 법신은 보살수행의 공덕으로 무수한 방편반야가 있어 무량한 지혜와 방편을 행할 수가 있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소승에서 깨침은 석가모니불만 가능하다고 봤기에 소승 출가자는 적멸을 성취해 아라한(阿羅漢)이 돼서 영적능력을 키우는 불경연구에 심취했다. 스스로 성불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이것을 비불교적 사유라고 했다. 대승에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깨달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수보리가 계속 말한다. “발보리심한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라고.

    그래서 소승이 엘리트 집단의 불교라면 대승은 민중불교라 할 수 있다. 소승은 선택받은 이, 승려로서 삶을 유지할만한 지식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충족되는 이들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비해 대승은 범부중생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법화경>의 약초유품을 통해 나타나듯이 모든 이에게는 각자에 맞는 깨달음의 길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대승불교는 후대에 발생한 불교라서 거품이 전혀 없을 수 없고,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점차 초기불교가 더 의미 있게 부각되는 점 또한 사실이다. 위로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는[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인 보살행도 깨달음이 없이는 실천하기 어렵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점이 대승불교에 부과된 무거운 과제이다.

    중생구제란 노숙자를 먹여주고 재워주며 치료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 타인을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 깨달음 없이는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이끌고 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 불교는 스스로 수행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종교이다. 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전해 줄 수도 없다. 따라서 중생구제란 깨닫도록 가르치고 이끄는 행위가 우선이다.

    그리고 소승에서는 마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삼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높다. 생각을 일으키면 곧 집착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고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생각을 일으켰다 하면 자기 생각에 치우치는데, 존재의 본능이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수행은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없애는 쪽으로 치우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마음을 오히려 이용한다. 자기만을 위해 생각을 일으킨다면 고통이지만 남을 위해, 중생을 위해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자비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승과 소승의 차이다. 생각이란 게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는가에 따라 고통과 행복으로 나뉜다. 자기를 생각하면 고통이고, 남을 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자비이다. 자비심이나 보리심도 결국 생각이다.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자기 하나에 국한되므로, 점점 더 마음이 좁아지지만, 남을 위한 생각은 무궁구진해서 마음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500여년이 지난 AD 1세기경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육성이 담긴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 -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시대상황에 부응해 사상을 확장한 해설서이다. 따라서 소승불교(초기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대승비불설은 지나친 비약이다. 이러하므로 대 ․ 소승 불교의 실질적인 구분 점은 각 불교가 지니고 있는 경전과 수행방법의 차이점에 있을 따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인도에서 부파불교가 사라짐으로써 소승불교도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따라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를 비교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하겠으나 대승불교의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소승불교와 대비할 수밖에 없는데, 남방불교(상좌부불교)가 소승불교(부파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아 이에 기준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분류해 본다.

    ① 소승불교는 아라한을 이상으로 삼는 성문승이며, 대승은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승이다.

    ② 소승불교는 3계 6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업보사상이며, 대승불교는 이타주의의 원행사상(願行思想)이다.

    ③ 소승불교는 삼세실유 법체항유의 유(有)의 입장이며, 대승불교는 반야지혜에 의한 일체개공의 입장이다.

    ④ 소승불교는 지극히 형식적이며 번쇄한 철학과 이론을 위한 이론이 많지만, 초기대승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중시했다.

    ⑤ 소승불교는 학문과 이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경지는 저속한 것이었고 출가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고차원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입장에 서며, 나아가 재가불교를 표방하고 평이한 교설을 설하는 가운데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음을 추구한다.

    ⑥ 소승은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들어낸다. 좀 더 살펴보자.  

     ①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의 구원을 추구하지만 소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중시한다. 소승불교는 교리해석에만 치중하고 사회와 분리된 출가 수행주의를 강조한다. 대승불교는 크게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는데 교종은 소승불교처럼 경전해석을 통한 교리해석을 중시하고 선종(禪宗)은 그것을 비판한다.

     ② 소승불교(남방불교)는 <빠알리어 삼장>이라 해서 경(經)ㆍ율(律)ㆍ논(論) 3장을 갖추고 있지만 대승불교는 출가수행의 우위를 부정했기 때문에 경 및 논만 있을 뿐 율장은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될 때는 소승ㆍ대승의 불전이 섞여서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는 원칙적으로 소승의 구족계(具足戒-250계)를 채용하게 됐다.

     ③ 소승불교의 <빠알리어 삼장>은 빠알리어로 씌어졌는데, 대승경전은 주로 산스크리트로 씌어졌고, 대개 원본은 소실되고 한문이나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④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을 중국의 승려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 설법한 것[불설(佛說)]이라고 믿었으며, 그 내용의 차이는 설법 시기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태종(天台宗) 개조인 지의(智顗, 538∼597) 대사가 오시교판(五時敎判)이라 해서 경전의 설법순서를 시간적으로 분류해 ‘5시(五時)’로 나누었다.

     ⑤ 무신론적인 소승에 대해 대승은 절대자를 신봉해 유신론적이며, 일불사상(一佛思想)에서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발전했다. 즉, 과거불사상(過去佛思想)을 발단으로 해서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리라는 미래불사상이 일어났으며, 아울러 서방정토의 아미타불 또는 동방 묘희국(妙喜國)의 아촉불로 상징되는 내세불사상과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으로까지 발전했다.

    대승불교가 부처님을 신격화한 것이라든지, 관세음보살ㆍ문수보살ㆍ미륵보살 등을 등장시킨 것은 힌두교의 절대신 개념을 첨가한 것이다.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이 세상의 사방 어느 곳에나 붓다가 가득 차 있다는 사상, 그 대표적인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붓다는 현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불성사상(佛性思想)을 말한다.

  

     ⑥ 소승은 분석적 방법인데 비해 대승에서는 직관적 방법을 중시한다. 불교식 표현으로는 분별(分別)적 방법에서 무분별(無分別)적 방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별지(分別智)에 대한 무분별지(無分別智 - 般若라고도 함)라는 술어가 생기게 됐다.  

    부처님이 연기설을 설한 것도 그 방법은 분석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분별의 가르침, 즉 지혜의 도(道)는 범속한 대중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부처님 생존 당시의 제자들이 대부분 교육 받은 귀족 출신의 우수한 지성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부처님의 이런 분석적인 방법에 수긍이 간다. 이런 분별적인 엘리트주의의 불교를 직관적 방법에 의해 대중 쪽으로 돌리려고 한 것이 대승이다.

     ⑦ 대승불교는 붓다를 초세간적(超世間的) 존재로 보며,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붓다는 그 화신(化身)으로 규정한다. 불교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고 하는 깨달은 성인이 되는 것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편협한 이기적 추구라고 보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다른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成佛)을 늦추는 보살(菩薩 bodhisattva)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만들었다.

     ⑧ 보살이라는 말은 원시경전에도 나오는데, 원시경전에서는 부처가 되기 전의 석존을 말했다. 이 보살을 대승불교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정립했다. 소승에서는 아라한은 될 수 있어도 붓다가 될 수는 없다고 한데 대해 대승에서는 모든 중생은 보살도인 육바라밀을 완전히 닦으면 해탈한다고 했고, 동시에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⑨ 보살의 가장 큰 공덕인 자비(慈悲)가 초기불교에서 강조했던 지혜(智慧, 반야)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보살을 통해 생기는 공덕은 중생들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관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의 정토교(淨土敎) 같은 타력적(他力的) 신앙 활동을 이끌었다.

     ⑩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와 다르게 공사상, 중도사상, 보살의 바라밀 실천사상 등이 존재한다. 소승불교에는 공성(空性, Sunyata)의 개념이 없는데, 대승은 이 세상의 궁극이 공성이라고 한다.

     ⑪ “초기 불교가 뿌리라면 대승불교는 가지나 꽃인데 근본적인 가르침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을 신격화해서 신격화에 의존하는 가르침이다. 소승불교의 가르침은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다. 그래서 소승불교를 배운 사람은 철학박사학위를 주지만 대승불교를 한 사람은 문학박사학위를 준다.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변질해서 권력과 결탁을 하니까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게 <금강경>이다.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다. 그런데 당시 그걸 쓴 사람을 밝히면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그걸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 전재성  

     ⑫ 소승불교에서는 개인적인 해탈 혹은 열반이라는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는데 비해, 대승불교에서 보리(菩提, Bodhi)를 획득하고, 중생구제를 추구한다.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대중을 교화한다(下化衆生)는 출가주의에서 재가주의로 중점이 바뀐다. 이는 소승은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임을 말한다.

     ⑬ 소승불교에서 출가자들을 성문(聲聞, Sravaka)이라 부르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아라한과를 얻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열반(涅槃)을 추구하는 것인데 비해, 대승불교 수행자들은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기 위해 바라밀(도피안)로 알려진 완벽을 추구하고자 시도하기 위해 보리를 구하는 것을 서약한 보살(菩薩)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⑭ 소승불교에서 열반이란 무명(無明)으로 인한 세속적인 부정한 것들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대승불교에서는 부정한 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대불변의 고요함[적정(寂靜)]을 얻어, 조작이 없고 변함이 없는 본성에 도달하고[무위(無爲)], 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의 수행을 통해 진여(眞如), 불성(佛性)의 경지에 도달함[멸도(滅度)]이다.

     ⑮ 소승불교신자들은 붓다가 한 겁에 단 한번 나타났다고 믿는 반면,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 안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한다.

     ⑯ 대승불교는 <금강경>, <화엄경> 등 대승경전을 공부하고 간화선(看話禪)을 하며, 소승계통인 남방불교는 초기경전과 위빠사나(vipasannā) 명상법을 하고 있다는 차이 정도가 있으나 지금은 남방 수행방법을 대승에서도 받아들이는 추세다. 따라서 소승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 하겠다.

     ⑰ 소승경전(남방상좌부경전)은 석가모니불이 설한 경전으로 함에 비해 대승경전은 법신불이 설한 것으로 돼 있다. 대승경전을 편찬할 때는 이미 석가모니불이 안 계셨기 때문에 법신불이 설한 것으로 한 것이다.

     ⑱ 초기경전은 이성적인데 비해 대승경전에는 신화적ㆍ설화적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많다.

    ※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에 대한 숭산(崇山行願, 1927~2004) 스님의 법문이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전통은 모두 우리가 여행하려는 곳의 지도와 차량을 제공하지만 그 방법은 각각 다르다. 소승불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혼자 가는 것과 같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

    이에 비해 대승불교 수행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닌 일체중생들과 같이 가는 것이다. 소승불교가 먼저 삶의 고통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비해 대승불교는 본래 아무것도 없음을 가르친다. 본래 고통도 없고 열반도 없다. 우리가 고통을 만들면 고통이 생긴다. 대승불교적 입장(관점)에서 보면 고통조차 본래 헛되고 공허한 것이다. 육체는 공해 실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써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생각할 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괴로움도 없으며, 괴로움의 원인도 없으며, 괴로움에서 빠져 나오려고 할 필요도 없고, 얻어야할 열반도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진리다. 벽은 하얗다. 그것이 진리다. 하늘은 푸르다 그것 또한 진리다. 바로 지금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이것 역시 진리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존재들을 위해 맑게 살아 갈 수가 있다. 우리와 다른 존재들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들과 함께 행동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과 함께한다. 자유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마치 버스나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는 아주 명확하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우리의 본성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본성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무엇이 열반이냐?“ 하고 묻는다면, 당신이 아무리 그것을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치 황홀한 꿈을 꾸어 입조차 열 수 없는 벙어리처럼 된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아주 깊고 명확한 것을 이해했지만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 이전이기 때문에 입을 열수가 없는 것이다. 말과 언어 이상의 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다. 깨닫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다. ‘탕’ 하고 책상을 치며, 이것은 깨달음과는 또 다른 범주이기 때문이다. 탕!』

 

    이상과 같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간에는 차이점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불교이므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간에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다.

     ① 두 종파 모두 집착, 증오, 망상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② 두 종파 모두 사성제와 8정도를 인정한다.

     ③ 두 종파 모두 이 현세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고 믿는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에서는 우선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선업을 행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로 해탈 열반(아라한)을 성취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멸 후 개인의 해탈 열반보다는 보살행을 주장하는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고, 다시 대승불교 입장에 반기를 들고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행보다 우선 자신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보아 집착이 사라지면 저절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 ‘나’라는 아상과 집착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이 된다. 또한 선불교 수행을 통해 마음의 고정관념, 번뇌를 깨치는 견성(見性)을 이루면 그 또한 집착이 소멸돼 자연스런 자리이타의 보살행이 나온다. 그러므로 초기불교를 계승한 남방 상좌부불교나 대승불교, 혹은 우리나라 선불교 모두가 해탈 열반을 추구하고 있는 점은 같다.

   그러나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대승의 입장에서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을 논해왔다. 그러다가보니 은근히 소승(부파불교)을 폄하하는 듯한 내용이 지배적이었다. 그러한 폐단에 대해 권오민 교수가 대ㆍ소승의 차이에 관해 정리한 글이다.

     ①부파불교는 아라한을 이상으로 삼는 성문승이며, 대승은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승이다.

     ②부파불교는 3계 6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업보사상(업보사상)이며, 대승불교는 원행사상(願行思想)이다.

     ③부파불교는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가르침이다.

     ④부파불교는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유(有)의 입장이며, 대승불교는 반야지혜에 의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의 입장이다.

     ⑤부파불교는 지극히 형식적이며 번쇄한 철학과 이론을 위한 이론이 많지만, 초기대승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중시했다.

     ⑥소승불교는 학문과 이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경지는 저속한 것이었고 출가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고차원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입장에 서며, 나아가 재가불교를 표방하고 평이한 교설을 설하는 가운데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음을 추구했다.

   이는 대개의 불교학개론서 내지 대승불교개론서에서 한결같이 진술되고 있는 바이며, 우리가 상투적으로 되뇌고 있는 대ㆍ소승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도식적 논의의 이면에는 이미 좋고 나쁘다는 판단이 개입돼 있으며, 따라서 이는 적어도 어떤 한 종파적 이념가의 발언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학자적 발언은 될 수 없다.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불교는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니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전개된 온갖 상이한 학적체계가 모여 이루어진 매우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인 체계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타의 말씀(교법)이 그의 자내증(自內證)을 근거로 한 가설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권오민

   따라서 온갖 해석과 주의주장이 있을 수 있다. 부파의 성립과 대ㆍ소승의 구별, 특히 대승비불설도 그런 맥락의 한 가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래전, 부파불교 당시에도 대승경전을 붓다 교설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 그리고 근래에 들어 본격적으로 대승비불설을 제기한 일부학자들은 역사적으로 대승경전은 붓다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즉, 초기경전인 <아함부 경전>은 불설이 맞으나 대승불교는 붓다 입멸 후 약 500년 이후에 성립한 새로운 교설로서 붓다가 직접 설한 교설이 아니므로 불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일본인 도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 1715~1746)이고, 그의 저술 <출정후어(出定後語)>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부파불교 당시에는 지나치게 교리를 미세하게 다루어 너무 불교교의가 번쇄해졌고, 그러다가 보니 일부부파에서는 붓다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붓다 교설인 무아론에 배치되는 주장, 즉 유부에서는 법체(法體), 독자부(犢子部)와 정량부(正量部)에서는 개아(個我, pudgala) 등을 제시해 윤회의 주체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보니 부파불교에서는 붓다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잊어버리고, 순전히 유(有)와 무(無), 곧 양변의 유 ‧ 무사상을 가지고 싸움을 일삼았다. 어떤 부파는 유(有)를 가지고 붓다 근본사상이라고 하고, 어떤 부파는 무(無)를 가지고 붓다 근본사상이라고 주장하니 붓다의 근본사상이 무너지는가 하면, 부파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편집할 때, 자기들 주장대로 경전을 편집함으로써 붓다의 중도사상이 왜곡되기도 했다.

   이러함에 반발해서 대두된 대승불교가 ‘근본불교 복구운동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에 앞장섰던 선구자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였다. 용수는 <중론(中論)>과 <대지도론(大智度論)> 등 많은 저술을 통해 부파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를 확립했다.

   용수는 붓다 중도사상을 바로 세우고 널리 펼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대승불교에서 붓다 근본사상을 복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립한 사상이 지금까지 동아시아 북전불교(北傳佛敎)를 지배해오고 있다. 이러함으로 인해 오늘날에 있어서 대승불교가 근본불교인 붓다 사상을 복구 확장한 것이지 결코 변질시킨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즉, 대승불교는 공(空)사상을 바탕으로 붓다 당시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고, 대승경전은 그 근간이 근본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므로 붓다 교설이 아니라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북방불교권에서는 대승경전을 붓다 가르침, 내지 그 근본취지를 더욱 선양해 발전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이를 높이 숭앙하고 있다. 즉, 붓다 교설인 초기경전 내용을 확장한 것이 대승불교인데, 오히려 이를 공격하는 이론이 대승비불설이다.

   전통적인 불교교육을 받아 대승경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온 사람이라면 아함부의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새삼 대승경전이 연기설의 새로운 전개요 재해석이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반야부의 공사상(空思想)은 일차적인 연기설의 변신에 해당한다. 이어서 전개되는 대승경전들 역시 연기설의 전개에 다름 아니다. 실로 대승불교는 논(論) 불교였다. 그리하여 발전된 중도(中道) ‧ 진여(眞如) ‧ 연기(緣起) ‧ 법계(法界), 등 그 화려하고 정묘한 교의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공사상만 해도 얼마나 정묘한가. 붓다 교설인 연기설이 이렇게도 확장될 수 있음이 놀랍다.

   헌데 붓다께서 저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 형이상학적 모색을 금지하고, 간단명료하게 깨달음을 직시하게끔 가르치셨다. 붓다께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제기와 답변을 무시하거나 금기시했고, 언제나 깨달음을 향해 직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대승경전은 퍽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다.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학(唯識學)이야말로 언어문자에 의하지 않고는 논의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형이상학 영역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겼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붓다 당시는 일체의 형이상학을 거부하고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왜? 붓다가 생존해 계셨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붓다 입적 후 불교는 여타 종교사상과 교류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온갖 교리 상 질문이나 비판에 직면해야 했으며, 이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대승경전이나 논서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형이상학적인 상징들이 서로 교류 상승함으로써 더욱 형이상적으로 발전해 초기불교의 모습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비불설 운운 하지만 이는 불교가 발전하기 위한 하나의 진통에 불과했다.

   “붓다께서 일체지자로서 3세의 모든 실상을 밝혔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대상황이 달라 이후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에 해당하는 미처 다하지 못한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부파불교시대 그리고 대승불교에서 그런 시대에 맞게 붓다 말씀을 확장할 필요가 있어서 대승경전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성철(性徹) 큰스님 같은 분도 “대승은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진정한 불설”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붓다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져갈 무렵, 대중들이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불법에 대해 붓다와 그 제자들과 다름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굳은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대승경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걸 두고 비불설이라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기준으로 2000년 이전의 일들을 재단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누구나 불교에 관심을 가진다면 한번은 거처가야 할 혼란스러운 과정이 대승비불설이다. 이로 인한 충격도 있지만 이로 말미암아 한발 나아가게 됨도 사실이다. 그것은 개인에게나 불교 전반에 대해서나 마찬가지이다. 진통 없는 성장이 없는 법,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개인적인 신앙과 정신적 성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대승불교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대승비불설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나 고의적인 회피는 신행이나 교의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편협한 일방적 주장이나 악의적인 비판들로 인해 본질이 왜곡될까 염려스러운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오늘 날 대승불교흥기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학자들은 대개 대승불교의 기원을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서 대승경전도 편찬됐을 것이라 보고 있다. 즉, 이전의 경전을 수용해 해석하고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종류와 분량이 확대돼 간 것이지 결코 ‘역사적 붓다’의 권위를 빌려 날조된 것이 아니며, 경전의 증광(增廣) 또한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경전해석의 패턴을 의식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결코 자유로이 무제한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불법(佛法) 혹은 불교사상의 다양성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한다. 불교는 결코 교조주의가 아니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진실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다. 불교의 다양성은 처음부터 용인됐다. 「불법(불교사상)=불설=친설」이라는 도식은 부처님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후세인들의 강고한 편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날조된 창작이라는 것은 「불법=불설=친설」이라는 도그마(Dogma)를 전제함에서 비롯된 편견이며,… ‘대승불교는 불설이 아니다’라는 말은 불교의 전통과 역사성을 무시하고 불교의 발전과정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권오민

   불교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교는 붓다나 경전 자체에 대해 올바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지 맹신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열린 종교인 불교는 맹신적인 자세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지혜(般若)를 닦으라고 한다.

   진리는 붓다가 설하든 설하지 않았든, 또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언제나 그 자체로서 떳떳하게 진리여야 한다. 따라서 만일 무엇이 진정한 깨달음이고, 또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스스로의 지혜로써 판별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대하는 경전이 비록 위경(僞經)임이 분명하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인 불교의 목적과 실천에 모두 큰 장애를 일으킬 수는 없다.

   대승경전들이 근본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고, 또 그 참뜻을 새롭게 전하고자 한 것임이 분명한 이상, 그것들을 붓다의 교설이 아니라고 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초기불교와 소승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참뜻은 붓다의 깨달은 진리에 있고, 그 진리를 열어 보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초기경전이 대승불교 흥기 4~5백년 전에 성립한 것이라 해도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이 실제로 경전으로서 문자화돼 편찬되기 시작한 것은 「BC 1세기~AD 1세기」 시기로서 거의 동일하다. 때문에 대승경전(특히 초기 대승경전)의 교의적 궤의 뿌리가 초기불교의 경전 그것과 그 궤를 같이 했으면 했지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편찬한 법사(法師, 다르마바나카)들은 본래 성전 암송가로서 원시경전의 내용을 해박하게 꿰고 있었고, 찬불승[讚佛乘: 佛傳文學]을 발전시켜 오기도 한 이들이기에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해, 내용적으로는 원시경전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구성과 형식, 문체와 체제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했으므로” - 박경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은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경전 찬술자들은 비록 부처님에 가탁(假託)해서라도 부처님 법을 확장 발전시켜야겠다는 의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경 ․ 율 ․ 논 삼장에서,  논(論)은 경전의 해석 또는 주석이라고 하지만 사실인즉 형이상학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견해표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저술한 문헌들을 ‘경전’이라 하지 않고 모두 ‘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오늘날 대승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대승비불설 등 많은 문제점들이 저절로 해결됐을 것이다. 알고 보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 못지않게  논(論)위주의 불교였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편찬함에 있어서 부처님 이름에 가탁(假託)한 것을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처님 이름에 가탁(假託)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을 수도 있고, 외람돼 자기이름으로 못하고 부처님께 의지한 것이 가탁일 수 있다.

   “불교는 붓다보다도 진리 그 자체를 지향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경전의 권위는 ‘붓다의 직설(直說)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 이홍구

   그리하여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 탓”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초기불전으로 간주되고 있는 5니까야와 4아함경은 부처님의 직설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직설 그대로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어느 시기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특정 부파에서 편집된 불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최근 아함경이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전으로 간주하거나 이들 경전을 근거로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오는 가운데 아함경과 니까야도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대승경전을 불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사상사에 대한 무지와 폐쇄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일 뿐 교학적ㆍ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부파불교 전공자인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ㆍ사학ㆍ철학(제17호)>에 게재된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이란 논문에서 ‘비불설 논쟁’이 대승과 소승 사이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논쟁이 결코 아니라 각 부파 간에 빈번하게 다뤄졌던 일반적인 논쟁이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규명했다. 특히 오늘날 붓다의 친설로 여겨지는 한역 아함경과 남방불교의 니까야도 당시 설일체유부 상좌부 등 각 부파의 교학적 견해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때론 불설의 내용까지 바꾸면서까지 새롭게 편찬한 경전들로 대승경전의 편찬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부파불교 시대에도 불설의 진위 논쟁은 끊이질 않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에 포함되고 율에 나타나면 불설이다”라는 <대반열반경>의 정의에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라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타가 설한 것이든 제자가 설한 것이든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로 수지할 수 있다. - 대비바사론“ “불법은 오로지 불타의 입으로 설해진 것만이 아니라 일체 세간의 진실하고 좋은 말은 다 불법이다. - 대지도론, 성실론”라는 견해가 불설을 판정하는 교파 간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 부파의 불설론이 경전 편찬의 이론적 근거가 됐던 까닭에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과 니까야를 곧이곧대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과 니까야 또한 비불설이며 대승경전이 대승론자에 의해 찬술 결집된 것이라면 아함경과 니까야 역시 부파의 논사들에 의해 취사선택되고 찬술 결집된 경전들로 그 당시조차 비불설로 비판 받았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구의 복색을 한 마구니 설’이라고까지 아비달마불교를 비난했던 대승의 찬술자들도 아비달마의 불설론 전통을 ‘계승’해 경전을 편찬하고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불설 논쟁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논쟁은 구호나 선전에 근거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일뿐더러 폐쇄적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맹목의 논쟁’일 따름이다. 불설과 비불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진실(법성)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전통이라는 권위에 의지하지 말고 진실에 의지하라는 것이 대소승의 공통된 불설관이었다.”며 “요즘 일각에서 아함경이나 니까야만을 올바른 붓다의 가르침으로 주장하거나 거꾸로 아함경이나 니까야를 초심자를 위한 경전쯤으로 얕잡아 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권 교수는 “오늘 우리가 시비 결택해야 할 것은 종파에 따른 혹은 역사와 전통에 따른 불설ㆍ비불설이 아니라 ‘진실’ 바로 그것”이라며 “대승이 그러했듯 이제 바야흐로 오늘의 진실을 오늘의 언어형식으로 결집하고 그것의 불설과 비불설을 시비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보신문

이러한 문제를 천착함이 중요한 것이지 한 뿌리에서 돋아난 줄기요 꽃인 것을, 잘못 핀 꽃이라고 탓하면 뿌리 채 흔들려 자칫 나무마저 죽어버릴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지금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소승이고 대승이고, 초기불교고 힌두불교고 결국 이천오백년 동안 그 속에 내재된 사회역사적 현실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전에 대한 붓다의 궁극적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경전의 단어 숲 속에 우리 불자들이 서로 파묻히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전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천신(天神)들은 인도 전통의 민간신앙이나 풍습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리고 오계(五戒)의 덕목들도 모두다 당시 인도의 전통적인 도덕관이었다. 힌두교이든 누구이든 불살생을 부르짖고, 특히 자이나교도들은 불교도들보다 더 불살생에 철저했다. 해탈도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법에서 이미 알려졌던 내용을 불교가 차용한 것이다. 사선정(四禪定) 사무색정(四無色定) 등도 모두 요가수행법에서 체계화 됐던 것을 불교가 차용한 것이다. 윤회(輪迴)사상도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이다.

   이러한 많은 인도의 사상들을 불교가 차용하고 도입해서 붓다는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불교적으로 재정립했다. 그리고 연기ㆍ무상ㆍ무아ㆍ고 등의 불교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했기에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불교에 대한 실망감을 깊이 위로해 준 것이 바로 초기불교이지만, 그 급속한 전파와 성급한 이해로 지금 같은 건설적이지 못한 소모적 논쟁들과 보살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하기에 참된 진리는 누가 얘기하든 진리로 바로 볼 수 있는 깊은 불교적 연륜과 이해를 가지신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실론섬, 길을걸으며.

   전세계의 어느 종교이든지 종교를 창시한 교주는 글을 남기지 않는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결집해 이를 구전했고, 후에 문자로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부처님의 ‘친설(親說)’이라 하는데, 이와 비교해 부처님 사후 5~600백년이 지난 시점에 성립된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글’로써 전승했고, 이를 ‘불설(佛說)’이라 한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은 누구나 ‘불법(佛法)’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글로써 표현한 것도 불설로 보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이름을 사칭한 속임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찬사와 영광을 담아내는 형식으로서 부처님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獻呈)’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수많은 경전이 찬술됐고, 이런 전통은 중국에서도 양산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금강삼매경>도 있다. - 진흙속의 연꽃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 새로운 대승경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대승경전은 찬술될 수 있다. 하지만 천 년 전 만들어진 대장경의 목록에 등재된 경 이외의 경은 아직까지 출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 때문일까 미국 UCLA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교수는 강의에서,

   “대승경전을 2000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오늘날의 대승불교가 시대와 문화, 역사의 변천에 따라 가고 있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대승경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과 같다. 그런 대승경전은 보통 ‘불설(佛說)’로 불린다. 위경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찬술된 경전이다. 그래서 경의 이름 앞에 불설이 붙는 이유가 될 것이다.---→‘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혹은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 참조.  

               

               

*대승선(大乘禪)---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이치[아공(我空)과 법공(法空)]를 알고 닦는 수행으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 할 수 있는 방법의 선(禪)을 말한다. 용수(龍樹)와 달마(達磨) 대사가 주장한 대승수행의 입장에서 닦는 선인데, 세상 경계를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아서 닦는 선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경계 속에서 닦아가는 선을 말한다.

    대승불교는 용수(龍樹)의 공사상(空思想)에 근거해서 성립했다. 그리고 용수가 제창한 대승불교는 ‘대승선(大乘禪)’이라고 하는 수행체계를 바탕으로 해서 세워졌다. 대승선의 핵심이 바로 ‘중관(中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中道)’에 입각해서 세워진 관법이다. 중(中)이란 근본을 여의지 않으면서도 경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자리를 말한다. 중의 자리는 본래 갖추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는 세워서 갖추어야 하는 자리이다. 중관이란 그렇게 갖추어진 중의 자리를 관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세 가지 방법이 공(空) ‧ 가(假) ‧ 중(中) 삼관법이다.---→천태삼관 참조.

    그리고 달마(達磨) 대사는 그의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에게 불법을 배워 크게 대승선(大乘禪)을 제창하고, 양(梁)의 무제(武帝) 때에 중국으로 건너와 왕을 뵈었으나 뜻이 맞지 않아 숭산(嵩山)의 소림사에 들어가서 9년간 면벽(面壁) 참선해 득도했다.

이런 달마 대사가 외친 대승선은 대승수행의 입장에서 닦는 선, 곧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을 말한다. ‘나’뿐만 아니라 일체법의 공성(空性)을 깨닫고 해탈을 추구하기 위해 닦는 선이다. 즉, 자아(自我)와 대상이 모두 공함을 알고, 그런 다음에 드러난 진리에 의거해 수행하는 것인데, ‘나’도 비어있고, 일체만법도 다 비어있다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슨 이데올로기나 무슨 주의, 또는 어떤 학설, 주장, 이런 것은 모두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지 본래 이것이 이른바 무가정(無假定)의 원리가 못되는 것이다. 이런 법공 자리를 미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라 하면 사회주의사상을 원리적으로 믿고서 모두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경직된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이다. 불교를 공부하더라도 법공을 철저히 못 증(證)한 사람들은 꼭 자기 식으로, 같은 법문도 자기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자기주장, 자기가 느끼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공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고서 해탈을 위해 닦는 것이 대승선이다.

    내 몸이 내 마음을 구성하는 것도 공(空)이지만, 일체만법(一切萬法), 즉 산이나 들이나 또는 태양이나 별이나 천체나, 남이나 나나 일체 법이 다 비었다는 법공(法空)을 믿는 것이다. 소승들은 내가 비어 있는 것을 느낀다 하더라도 일체만법이 비어있는 줄은 모른다. 그러나 대승은 일체만법이 비었음을 아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아(我)도 공(空)이요, 일체만법도 공(空)이란 것을 말한 법문이고, <금강경(金剛經)> 또한 나도 공이요, 일체만법이 공인 것을 해설한 경전이다. 불교 공부는 내가 원래 비어 있고 우주 전부가 비었다는 것을 모르면 잘 안 되는 것이다. 참선도 역시 화두를 드나 염불을 하나 이와 같이 아공, 법공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망상이 잘 끊어진다.

     

*대승시교(大乘始敎)---당 대에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주도한 화엄종 교판(敎判)에서 불교 가르침을 소승교(小乘敎) ․ 대승시교(大乘始敎) ․ 대승종교(大乘終敎) ․ 돈교(頓敎) ․ 원교(圓敎) 등의 5교(五敎)로 분류했다. 그 중 대승시교란 소승으로서 처음 대승에 들어온 대승초문에게 가르치는 얕은 교법, 초보단계란 의미에서 시교라 했다. 여기에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의 둘이 있다.

    상시교는 유식학과 이에 관련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 <해심밀경> ․ <유식론> 등을 말하고, 공시교는 공(空)사상을 설한 <반야경> ․ <중론> ․ <백론> ․ <십이문론> 등 일체의 모든 것은 공(空)이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현상과 본성을 설한 유식학 계통을 상시교라 하고, 모든 존재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하는 진리를 단적으로 표현한 중관사상을 공시교라 했다.---→상시교(相始敎), 공시교(空始敎), 법장(賢首法藏) 참조.

     

*대승심(大乘心)---불교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구제만 추구하는 사람을 작은 수레에 비유해 ‘소승(小乘)’이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다 함께하면서’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심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큰 수레에 비유해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말하면, ‘위로는 성불하기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는 마음[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다.

    다음은 육조(六祖) 혜능(慧能) 선사의 삼승(三乘)에 대한 말씀이다. 어떤 학인이 육조에게 물었다.

   “부처님이 삼승법을 설하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셨는데,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일러주십시오.”라고 했다. 삼승(三乘)은 소승(小乘), 중승(中乘), 대승(大乘)이다. 이에 대해 육조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보고 듣고 읽고 외우고 하는 것은 소승이고, 법을 깨달아서 뜻을 아는 것[오법해의(悟法解義)]은 중승이고, 깨달은 법에 의해 닦고 행하는 것[의법수행(依法修行)]은 대승이다. 그리고 생각 생각이 머무는 데가 없으면[염념무주(念念無住)] 그것이 최상승이다.”

    간단하고 쉽고 분명한 말씀이다. 소승은 범부들이 하는 것이고, 중승은 중등근기의 사람이 하는 것이고, 대승은 보살같이 근기가 높은 이들이 하는 것이다. 그 위에 최상승이란 삼승을 훨씬 뛰어넘는 상근기를 말함이다. 견성을 해서 만법에 걸림이 없으니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취하고 그럴 일이 없는 것이 최상승이다.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 참조.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불교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비달마는 부처님의 지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논(論)부분을 총칭해 이르는 말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은 세친(世親)의 형 무착(無着)이 지은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集論)에 대한 주석서로서 세친이 지었다. 이 두권을 하나로 세친의 제자인 안혜(安慧, 475~555)가 편찬했다.

   이것을 당나라 현장(玄奘)이 번역한 했는데, 고려 현종 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권에 판각됐었고, 현재 그 인쇄본이 전하고 있다(국보 제251호).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 가로 12.2㎝이다. 이 책은 종이의 질, 새긴 기법, 먹색 등으로 보아 11세기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集論) 참조.

   

  

*대승열반(大乘涅槃)---인도 대승불교 유식계통의 학승 호법(護法, Dharmapāla, 530~600) 등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해 4종열반(四種涅槃)을 세웠다.

     ① 본래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 - 일체 유정(有情)이 본래 갖추어 있는 진여(眞如)가 객진번뇌(客塵煩惱)에 덮여서 나타나지는 않아도 본래 청정한 열반성(涅槃性)은 있다 해서 자성청정열반이라 했다.

     ②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진여(眞如)가 번뇌를 벗어났기 때문에 번뇌는 다 없어졌어도 소의신(所依身)은 남아 있는 열반임.

     ③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 번뇌가 없어져서 진여(眞如)가 생사고(生死苦)를 벗어났고, 소의신(所依身)도 죽어버려서 온갖 고가 다 없어진 열반임.

     ④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 진여(眞如)가 소지장(所智障)을 벗어나서 대비심(大悲心)이 있으므로 열반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대 지혜가 있으므로 생사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인연 따라 중생세계에 나와서 생사에 자유자재로 구제활동을 한다고 했으니 대승열반은 적극적이며 활동적이며 자리이타(自利利他) 겸행이다. 이와 같이 무주처열반은 대승보살정신에 입각한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쉽게 말하면, 무주처열반은 지혜에 의해 번뇌를 끊고 청정한 지혜를 얻어, 생사에도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소승열반은 소극적이고 독선적이며 자리(自利)뿐이라는 주장이다.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원효(元曉) 대사가 대승의 진실한 참회법에 대해 지은 글 이름이다. 대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만약 법계(法界)에서 소요하려고 하는 자는 네 가지 위의(威儀)를 조금도 황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덕(德)을 생각하고, 항상 실상을 생각하며 업장(業障)을 녹여야 한다. 널리 육도(六道)의 가없는 중생을 위해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께 귀명(歸命)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은 서로 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며 전체가 곧 하나이다. 비록 머무는 바가 없으나 머무르지 않은 바도 없고, 비록 하는 바가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없으니, 낱낱 상호(相好)와 낱낱 모공(毛孔)이 끝없는 세계와 한없는 미래세에 두루 하며, 구애됨도 없고 장애됨도 없으며, 아무런 차별도 없이 쉬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시방삼세의 한 티끌과 한 생각과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차별됨도 없고, 대자대비의 반야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어 불공법(不共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연화장(蓮華藏) 세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아 끝없는 광명을 비치니 한없는 중생이 모여, 굴릴 것도 없는 대승의 수레를 굴리며, 보살대중들도 허공에 가득히 모여 받을 것도 없는 대승의 법락(法樂)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들은 이 한결같고 실다운 삼보의 허물없는 장소에 같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해, 귀머거리 같고 장님 같으니, 불성(佛性)이 없는 것인가, 어째서 이와 같은가. 무명(無明)의 뒤바뀜으로 망령돼 바깥 경계를 일으키고, <나>와 <나의 것>이라 집착해 가지가지의 업(業)을 지어 스스로 덮고 가리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아귀가 물을 불이라고 보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앞에서 깊이 부끄러워하며 보리심을 발해 정성된 마음으로 참회해야 한다.

         ※불공법(不共法)---보살이나 중생에게는 없는 부처님께만 있는 32상 팔십종호는 부처님의 신체의 특징인데 반해 불공법은 부처님께만 있는 덕상을 말하는데, 18가지가 있어서 18불공법이라 한다.

       ~~~~ 중략 ~~~~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무명(無明)이 본래의 마음을 덮어 망령 돼 육도(六道)를 지어, 여덟 가지 고통의 바다에 돌아다니다가 안으로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힘에 훈습되고, 밖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의지해 겨우 믿고 이해하게 된다. 나와 중생이 오직 잠들어 긴 꿈을 꾸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망령되게 실제로 착각해 육진(六塵)과 남녀(男女) 등 상대적 개념[이상(二相)]을 만들어 좋다하고 싫다 하게 된다. 이것은 나의 꿈이지 사실은 아닌데, 무엇을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탐내고, 무엇을 성낼 것인가. 수없이 사유하고 꿈과 같이 관(觀)하면서 점점 닦아 여몽삼매(如夢三昧)를 얻으면, 이 삼매로부터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긴 꿈으로부터 활연히 깨어나면 본래부터 유전(流轉)함이 없으며, 다만 이 일심(一心)이 일여상(一如相)에 누웠음을 알 것이다. 만약 긴 꿈에서 깨어나고자 능히 이와 같이 수없이 사유한다면 비록 육진이 만연해도 실다운 것이 아니니, 번뇌를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게으르지 말라. 이것을 대승육정참회라고 이름 한다.“

         ※육정(六情)---육근(六根)과 같은 말, 즉 눈, 코, 귀, 혀, 몸, 마음을 말함. 위 글은 중생은 육정(六情)을 통해 만들어지는 온갖 번뇌 때문에 죄를 짓거나 괴로워한다. 그리고 육정 자체가 죄이므로 근본무명(根本無明)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인생이 본래 무생(無生)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일심(一心)으로 돌아가 본각(本覺)과 하나가 되는 것이 참된 참회라고 해, 적극적인 참회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승율장(大乘律藏, Mahayana-Vinaya Piṭaka)---흔히 계(戒)는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것이고 율(律)은 타율적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율을 위반했을 때는 상응하는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로 내려올수록 이러한 구분은 모호해져 계율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고 있다.

    계에는 소승계와 대승계가 있는데 전자를 율의계(律儀戒)라고 부르고 후자를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부르며,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돼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돼 있다. 삼취정계란,

     첫째 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둘째 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셋째 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원래 소승에서는 출가, 재가 남녀의 구별에 따라 오계, 팔계, 십계, 구족계 등을 들고 있지만, 대승에서는 이러한 것을 성문계(聲聞戒)라 하고 따로 대승보살을 위한 보살계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 둘을 합해서 이계(二戒)라고 부르고 있다. 소승불교는 출가자 중심이므로 그 율장도 출가자를 위한 것이 주가 되고 있으나, 대승불교의 율장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살들을 위한 계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적용 범위도 더 넓고 또한 사회성도 증강돼 있으며,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 대승계율의 2대 근본경전이 <범망경>과 <보살영락본업경>이다. - 한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대승의장(大乘義章)---<대승의장(大乘義章)>이라는 책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동진(東晋)시대의 승려 여산 혜원(慧遠, 334~416)이 지은 것이고, 하나는 수(隋)나라시대 정영사 혜원(慧遠, 523~592)이 지은 것이다. 공교롭게 두 저자의 이름조차 같아서 혼란을 주고 있다.

    • 먼저 동진(東晋)시대의 승려 여산 혜원(慧遠, 334~416)이 지은 <대승의장>부터 보자. 3권 18장으로 돼 있는 이 책은 여산 혜원(慧遠)이 대승의 교의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을 당시 강북에서 활약하던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에게 물었는데, 이에 대해 구마라습이 답해준 것을 정리해 묶은 책이다. 혜원이 저술한 책으로 다른 사람과의 문답을 통해 혜원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나타낸 것으로 일종의 논쟁을 기록한 책이다. 혜원은 여산에 주석하면서 염불수행 등 불교 수행의 실천적인 면에 치중했었다. 두 사람의 대론을 통해 그 당시의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이해됐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원래의 이름은 <문대승중심의십팔과(問大乘中深義十八科)>였는데 후대에 이르러 <대승의장>으로 불리게 됐다. - 지안 스님

    • 다음은 수나라시대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 523~592)이 지은 <대승의장>에 관해 알아보자.

    수(隋)나라시대 정영사 혜원(慧遠)이 지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해설서로서 불교교리 중 중요한 것 249과(科)를 5편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러 경전과 논서, 수나라 이전 여러 학파의 주장을 모아 분류한 뒤 대승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주석한 일종의 불교백과사전이다.

   중국불교에서 대승의 교의를 체계화 해 법수(法數)의 행상(行相)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위ㆍ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였다. 그리고 수나라시대에 대승불교의 교의를 종합해 놓은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띤 <대승의장(大乘義章)>이 나왔다. 혜원(慧遠)이 대승의 중요한 요의를 뽑아 제목을 삼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여러 경론에서 관련된 내용을 발췌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은 책이다.

   모두 20권으로 돼 있는 이 책은 그때까지의 불교연구의 결과를 총결산해 놓은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혜원은 원래 지론학파(地論學派)의 대가였다. 지론학파는 <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의거해 사상적인 이론을 전개시켰기 때문에 지론종이라 불렸다. <십지경론>은 인도의 유식사상가 세친(世親, Vasubandhu)이 <화엄경> ‘십지품’을 주석한 것이다. 이 지론종이 <화엄경>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해 나중에 화엄종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섭대승론>의 영향을 받았음도 알 수 있고, 이 책 내용에 <능가경>과 <대승기신론> 사상이 강하게 드러난다.---→기신론소(起信論疏) 참조.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유식학을 정립한 무착(無着, 310~390)의 저서로서, 인도 유식(唯識)의 중심 논서(論書)의 하나이다. 보살이 수행해야 할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서술해 대승경전의 요점을 드러낸 저술로서 모두 24품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무착은 대승불교가 붓다의 친설임을 역설했다. 부처의 본생(本生) 및 여러 가지 인연, 비유, 설화 따위의 90종이 실려 있다. 7세기 초 당나라시대 인도 출신의 학승 파라파밀다라(波羅頗蜜多羅, 산스크리트어 prabhākaramitra, 565~633)가 한역했다,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밀교계 경전으로 10세기 초반에 완성돼 10세기 말경에 중국에 전래됐고, 송(宋)나라 때 북인도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 출신 밀교계통 승려 천식재(天息災, 10세기경)가 한역했다. 이 경전은 티베트 등 범어를 중심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지역에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경전이다. 밀교 총지종(摠持宗) 소의경전인데, 그 주제는 관자재보살과 육자진언이다. 이 경전이 「옴 마니 반메 훔」 육자진언을 설하는 유일한 경전이기도 하다.

   

*대승종교(大乘終敎)---대승종교란 대승 종극(終極)의 가르침으로서 근기가 원숙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법화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화엄경>을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하고,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해서 <법화경>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꼽아 마지막으로 일승의 관문에 들어가는 것을 법화라고 해서 대승종교를 원교보다 더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당나라시대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주도한 화엄종 교판(敎判)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소승교(小乘敎) ․ 대승시교(大乘始敎) ․ 대승종교(大乘終敎) ․ 돈교(頓敎) ․ 원교(圓敎) 등의 5교(五敎)로 분류했는데, 이 속에 대승종교가 있으며,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하고, <화엄경>을 원교라 해서 오히려 원교(圓敎)를 불교의 최고 위치에 두었다. 즉, 화엄종에서는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해서 최후의 교리이긴 하지만 원만원교는 못 된다고 해서 <법화경>의 대승종교를 원교 아래 두고 <화엄경>을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원효(元曉) 대사는 “부처님은 항상 일승만을 설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 전체가 오직 일승만을 설했다. 일승을 사부대중이 못 알아들으니까, 근기에 따라 이것저것 혹은 삼승을 설하신 것이지,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라고 법문이 더 수승할 이유가 없다. 다 똑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불교에서 가장 구경인 최후 원리를 설한 경을 화엄 ․ 법화라 하는데, 화엄 ․ 법화 둘 모두를 총칭해서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일승원교(一乘圓敎) 참조.

  

*대승찬(大乘讚)---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양(梁)나라 지공화상(誌公和尙, 418~514)의 선시집. <대승찬(大乘讚)>은 지공 화상이 황제(武帝)에게 지어 바친 글이다. 지공 화상은 당시 고구려ㆍ신라에까지 그 이름이 잘 알려질 정도로 명성이 높은 고승이었다. <대승찬(大乘讚)>은 짧은 시구 속에 불교의 진수를 잘 표현한 선시로서 3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과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히는 게송 이다. 고려 말 백운 화상(白雲和尙)이 편찬한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할자본 <직지심체요절>에도 실려 있다. 다음은 <대승찬>의 앞 부분이다. 1.

1.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 대도는 항상 눈앞에 있어,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 - 비록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2. 약욕오도진체(若欲悟道眞體) -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하면,

막제성색언어(莫除聲色言語) - 소리, 색,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3. 언어즉시대도(言語卽是大道) - 언어가 바로 대도이니,

불가단제번뇌(不假斷除煩惱) - 번뇌를 끊어 제거할 필요가 없다.

4. 번뇌본래공적(煩惱本來空寂) -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지만,

망정체상전요(妄情遞相纏繞) - 망령된 생각이 번갈아 서로 얽힌다.

5. 일체여영여향(一切如影如響) - 모든 것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니,

부지하오하호(不知何惡何好) - 뭣을 좋아하고 뭣을 싫어할지 알 수가 없다.

6. 유심취상위실(有心取相爲實) - 마음을 가지고 모양을 취해 진실로 여기면,

정지견성불료(定知見性不了) - 끝내 견성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지공화상(誌公和尙, 418~514) 참조.

          

*대신근(大信根)ㆍ대분심(大憤心)ㆍ대의정(大疑情)---참선에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옛날 중국 원나라 몽산(夢山德異, 1231~1308) 스님께서는, 상근기(上根機)는 7일이면 깨칠 수 있고, 중근기(中根機)는 한 달이면 깨칠 수 있으며, 설사 하근기(下根機)라 할지라도 한 철이면 깨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선 - 즉, 참선함에는 반드시 세 가지가 구족해야 한다.

     첫째로, 크고 굳은 믿음 - 대신근(大信根)이 있어야 한다. 이 일은 하나의 수미산을 의지함과 같은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나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으며 나도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기필코 깨닫고 말겠다는 분발하는 마음 -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한다.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적에 당장 한 칼에 두 동강을 내려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경허(鏡虛) 스님이 턱 밑에 송곳을 꽂아 놓고 공부한 것도 졸음에 대한 자기분심 때문이었다.

     셋째로, 크게 의심하는 마음 -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한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곧 드러날 듯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것과 같다. 이때에는 그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된다. 어머니가 외아들 생각하듯, 고양이가 쥐 잡듯 몰두해야 한다. 의심은 공부의 생명이다. 이상은 도립 법전(道林 法傳, 1925~ ) 스님의 법문이다.

    

*대운경(大雲經)---5세기 경 중국 북량(北涼)에서 담무참(曇無讖)에 의해 한역된 <대방등무상대운경(大方等無想大雲經)>의 약칭. 그러나 위경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경에 정광천녀(淨光天女)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일절이 있다. 당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재위 690~705)는 그의 애인, 설회의(薛懷義)로 하여금 승려 법명(法明) 등과 공동으로 이 경에 부회한 <대운경소(大雲經疏)>를 짓게 했다. 그리하여 “태후(측천무후)는 미륵불의 하생이며, 황제에 올라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 경(經)을 주상(奏上)받은 측천무후는 690년 당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하고 국호를 주(周)로 고쳐 이른바 무주혁명(武周革命)을 이룩했다. 그리고 <대운경>을 전국에 분배해 여러 주에 대운사(大雲寺)를 짓게 했다. 각 대운사에서는 지방의 고승, 학승을 불러 강의하게 하고, 불교의 흥륭과 주왕조(周王朝)의 정통성을 인정시키려 했으며, 승려들은 <대운경(大雲經)>을 암송하며 제국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대웅전(大雄殿)---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堂宇)를 말한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했다. 따라서 대웅전 주존불은 석가모니불이며, 대개 가람 중심이 되는 전당이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 불멸의 업적을 남긴 분이라면 대웅은 내면의 성숙과 이웃사랑을 완성한 분을 일컫는 말이다. 대웅전에 있는 불ㆍ보살상을 살펴보자.

    ① 석가모니 부처님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迦葉)존자와 아난(阿難)존자가 시립(侍立)하고 있는 경우, 불국사 대웅전이 그렇다. 가섭에게서 선(禪), 아난에게서 교(敎)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② 석가모니 부처님 중심으로 제화갈라(提和竭羅)보살과 미륵(彌勒)보살이 협시하는 경우, 범어사 대웅전이 그렇다. 이 같은 불상의 형태를 삼세불(三世佛)이라 한다. 제화갈라보살은 정광여래(錠光如來) 또는 연등불(燃燈佛)이라 해서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미래불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재불, 해서 삼세불이라 한다.

    ③ 석가모니 부처님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계시는 법당, 우리나라의 사찰의 기본형이다. 따라서 많은 사찰에 이 같은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행원(실천)이 있어야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게 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④ 대웅보전(大雄寶殿)라 할 경우,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 삼신불(三身佛)이 있다. 법신불은 비로자나불, 보신은 노사나불, 화신은 석가모니불이다. 이럴 경우 대개 비로자나불이 중심에 있다.

 

     

*대원경지(大圓鏡智)---<대지도론>에 나오는 사지(四智)의 하나. 사지(四智)란 불성 및 진여에서 나타나는 지혜를 네 가지로 설명하는 것으로,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말한다. 이 중 대원경지란 번뇌에 오염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를 일컫는다.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아뢰야식에서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진여본성이 발현된 상태를 말한다. 경(鏡)은 거울이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이니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찰해 선을 기르고 악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둥근 거울에 모든 그림자가 나타나듯이 뚜렷이 만상을 깨우쳐 알며, 존재의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보는 지혜이다. 이는 법안(法眼)이 열리는 지혜로서, 곧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 이르러 대자대비심이 나오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구제할 수 있는 경지이다.

    수행을 해서 전식득지(轉識得智)의 단계에 이르면 제8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청정하고 완전한 지혜로 변한다. 즉, 수행을 통해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갖가지 망념과 망식들을 정화해서 번뇌가 없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얻는 것이 전식득지이고, 이것이 유식학의 목적이다. 그리고 전식득지를 할 때, 아집(我執)의 때로 물든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전개된다. 그것이 원만하게 성취된 모습으로서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세계다.

그리고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하면 이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그 견성은 대원경지를 내용으로 한다. 구경각을 성취한 자리, 즉 자성을 깨친 그 자리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한다.---→사지(四智), 오지(五智), 전식득지(轉識得智) 참조.

  

*대월지국(大月支國)---인도 쿠샨(Kusan/貴霜)왕조를 지칭하며, 중국으로부터 대월지국, 월지국(月支國), 대월저국(大月氐國), 월저국(月氐國) 등으로도 불렸다. 원래 초원의 유목민족이었으며, 기원 전 3세기경 타림분지에 거주지를 두고 동서무역을 독점해 당시에는 흉노를 압박할 만큼 그 세력이 강헸다. 그러나 BC 2세기경 흉노족에 패배해 서쪽으로 쫓겨났다.

    흉노족에 밀려난 월지족은 아프가니스탄 북쪽, 아무르강 남쪽 땅의 대부분의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고, 인도 북부와 서부로 진출해, 파키스탄 서부까지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에 BC 1세기경 쿠샨제국(대월지국)을 건설하고, 그 중심지는 인도 간다라지방이었다.

    AD 2세기 중엽엔 출현한 카니시카왕(Kaniska, 迦貳志加王)은 유명한 호불군주로서 그에 의해 제4차 불전결집이 이루어졌고, 대 ․ 소승이 아울러 꽃 피었으며, 이 무렵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다.

  

*대유령(大庾嶺)---소유령과 구별되는 대유령(1,000m, 주봉 관음봉은 1,428m)은 광동성, 호남성, 강서성 등 남부 세 성(省)의 분수령이고, 주강(珠江)과 양자강(揚子江)의 두 갈래가 나눠지는 분수경계이며, 천혜의 요새지로 손꼽히는 험난한 곳이다. 이런 까닭에, 100km가 넘게 길게 쭉 뻗은 산맥을 딛고 우뚝 선 대유령 주위는, 남과 북의 기후 차이가 뚜렷하며, 매우 다양한 동식물의 분포로 인해 자연 그대로가 동물원이고 식물원인 셈이다.

    중국 선불교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육조 혜능(慧能) 선사는, 아직 수계도 받지 못한 떠꺼머리 행자 신분으로 한밤중에 스승인 오조 홍인(弘忍, 602~675) 선사로부터 궁극적인 가르침과 인가를 받고, 깨달음의 징표로 의발(衣鉢)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몰래 홍인 선사의 배웅을 받으며 질시하는 무리들을 피해서 새벽같이 남쪽으로 도망갔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혜능을 질시하는 수백 명의 무리들이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했으나 따라잡지 못해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갔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가지 않고 뒤쫓았는데,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장군 출신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했다. 혜능이 달아나기 두 달 반 만에 대유령(大庾嶺) 정상에서 혜명(慧明)에게 따라잡혔다.

    이때 혜능이 혜명에게 던진 질문이 ‘불사선불사악 정여시 나개시 명상좌 본래면목(不思善不思惡 正與時 那箇是 明上座 本來面目 ―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마시오. 바로 이럴 때 어떤 것이 혜명 상좌의 본래면목이요)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혜명은 크게 깨달아 오히려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혜명도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식견과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이,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袈裟)는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했단다---→혜능(慧能, 638~713), 본래면목(本來面目) 참조.

  

*대인연경(大因緣經, Mahānidāna Sutta)---초기불전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長部)>에 실려 있는 경으로 부처님이 연기법(緣起法)에 대해 설하신 경이다. 아래는 그 내용의 일부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지금의 델리 근처)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 연기(緣起)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제게는 분명하고 또 분명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 아난다여,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 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老死)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태어남을 조건으로 해 늙음과 죽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生)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해 태어남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존재[有]를 조건으로 해 태어남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해 존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취착을 조건으로 해 존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해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갈애를 조건으로 해 취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해 갈애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느낌(受)을 조건으로 해 갈애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대일경(大日經)---밀교근본경전 가운데 하나로서 <금강정경(金剛頂經)>과 함께 2대 경전을 이룬다. 원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舍那成佛神變加持經)>이고, 그 뜻은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성불해서 신묘한 변화를 나타내고 가지(加持)를 통해 중생을 부처와 일체가 되는 경지로 이끄는 경’이라 하겠다.

    <대일경>은 7세기 중엽 서부인도에서 성립됐다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제1 입진언문주심품」부터 「제31 촉루품」이상까지가 <대일경>의 원본으로서 당나라 학승인 무행(無行)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제32 진언행학처품」 이하 「제36 진언사업품」 이상 7품까지는 공양절차법으로서 당 대에 인도출신 승려 선무외(善無畏, 637~735)가 가져와서, 이것을 원본과 함께 묶어 한역했다. 그리고 9세기 초엽 티베트어 역본이 전한다.

    <대일경>은 7세기 중엽 서부인도에서 성립됐다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 대에 인도출신 승려 선무외(善無畏: 637~735)가 한역한 것과 9세기 초엽 티베트어 역본이 전한다. 밀교근본경전 가운데 하나로서 <금강정경(金剛頂經)>과 함께 2대 경전을 이룬다.

    <대일경>은 다른 대승경전들과는 달리 “보리심을 인(因)으로 하고, 대비를 근본으로 하며, 방편을 구경(究竟)으로 한다.”고 해서, ‘보리심’을 중시한 <반야경>의 흐름을 이으면서도, 역사적 인물인 붓다를 새롭게 이해해 법신불로서의 ‘대일여래’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에서는 다른 대승경전들과 달리 본존불이 석가불이 아니라 대일여래라고 불리는 비로자나불(Vairocan, 바이로차나불)이다.

    그리고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가 성립하는 사상적 근거가 됐고, <대일경>의 사상은 태장만다라로 집약되는데, 태장이란 어머니 자궁처럼 만물을 탄생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대비(大悲)의 만행(萬行)에 의해 보리심이 자라나고 방편활동이 일어나므로 대비를 태장이라고 표현한다.---→태장계 만다라 참조.

  

*대일여래(大日如來, Vairocan)---밀교 본존불. 대일여래는 비로자나(毘盧遮那)로 번역하는데, 비로자나는 해의 별명으로서 ‘대일’은 ‘위대한 광휘[대변조(大遍照)]’를 뜻한다. 그래서 마하비로자나(摩訶毘盧遮那)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찰 대적광전(大寂光殿) 주존으로 모셔진 비로자나불을 말한다.

    밀교 이전 <범망경>과 <화엄경> 등에서는 비로자나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한 세계주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불타관 형성은 법신(法身)사상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상 실재했던 석가모니불과는 달리 우주적 통일 원리의 인격화를 붓다로 본 것이다. 따라서 대일여래의 기본적인 성격은 절대적인 원리의 인격화이자 불타관이다. 즉,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이외에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영원불멸의 붓다가 있어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고 본다. 실존인물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의미를 확장한 철학적 상상이고 시설이다.

         ※변조(遍照)---부처님 빛이 온 누리, 모든 사람의 마음에 두루 비춘다는 뜻.

  

*대일여래삼부경(大日如來三部經)---밀교계통의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소실지경(蘇悉地經)을 말한다.

  

*대자대비(大慈大悲)---자비를 강조한 말이다. 불 ㆍ 보살의 넓고 큰 자비. 중생의 고통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다는 뜻이다.---→자비(慈悲, 산스크리트어 maitrī-karunā) 참조.

  

*대자재천(大自在天, 산스크리트어 Maheśvara)---마혜수라(摩醯首羅)라 음역한다. 색계의 맨 위에 있는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사는 신(神)이다. 힌두교에서는 창조신 브라만(Brahman), 보존의 신 비슈누(Vishnu)와 함께 3대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며, 힌두교의 시바(śiva)를 말한다. 시바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파괴와 창조, 정적이면서 역동적인 양면성을 지닌 신이요, 세계의 주재신이라 하는데, 이 힌두교의 시바(Shiva)가 불교에 수용돼 얻은 이름이 대자재천이다.

    따라서 대자재천은 마헤슈바라(Mahesvara:시바의 별칭)를 의역한 말로,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자유롭게 주재한다는 뜻이다. 복신(福神), 전쟁의 주(主), 길상(吉祥)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지위가 낮아져 주로 신중탱화에 다른 신과 함께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신중탱화에서 중심이 되며, 동진보살(童眞菩薩)과 함께 나올 때는 중앙에 나란히 그려진다. 그러나 불교 세계에서 최고의 천(天)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물기도 한다. 이는 자재천의 보신(報身)이 색계의 자재천궁에 거주한다는 외도(外道)의 설을 받아들인 것이다.

    장엄한 궁전에 거처하며, 육십천신을 거느리고 백천녀의 호위를 받는다. 하얀 얼굴에 눈이 3개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 중 가운데 눈은 시바의 눈처럼 세로로 길게 박혀 있다. 8개의 팔을 가진 모습으로도 표현되며, 이 때 각 팔에는 해, 달, 연꽃, 무기 등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다라에는 흰 소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자재천(自在天), 마헤슈바라(산스크리트어 Mahesvara, 魔醯首羅), 시바(Śiva, Shiva) 참조.

        

*대장경(大藏經)---부처님 가르침[경(經)]과 부처님이 정한 교단의 규칙[율(律)], 그리고 경과 율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해석한 선지식들의 논술[논(論)] 등 삼장(三藏)을 모은 불교경전의 총칭이다. ‘대장경’이란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중국 수나라시대였다. 그 전에는 삼장(三藏)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 했다. 그리고 대장경이라는 이름의 목판이 처음 조성된 것은 중국 송(宋)나라 시대였다. 그때까지는 모든 불경이 필사본이었다.---→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 참조.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중국 남송시대 말기인 13세기 중반에 복건성 영덕(寧德)의 우바새(優婆塞: 남자 재가 신도) 진실(陳實)이 편찬한 것으로, 대장경에 수록된 여러 경론과 성현 전기류를 8문으로 나눈 뒤, 그 문을 다시 60품으로 세분하고 각 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해 집대성한 사전류이다. 현재 이 책이 우리나라에도 전하고 있어 보물 제1335호로 지정돼 있다. 전존본(傳存本) 중에 최고본(最古本)으로 추정된다.

      

*대적광전(大寂光殿)---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도 한다. 대적광전은 청정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신 당우(전각)이다. 좌우 부처불로는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우리나라 선종(禪宗)사찰에서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를 의미하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으로 장엄한 연화장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대적광전은 화엄사상을 토대로 성립된 사찰에 주로 세워진다.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 협시로 조성하는 경우에는 전각의 명칭을 비로전(毘盧殿) 혹은 화엄전(華嚴殿)이라 한다.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일본에서 대정 연간(1912∼1925)에 간행한 활자판 대장경을 말한다.---→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 참조.

    

*대종소조(大種所造)---남방 상좌부에 있어서는 색법(물질적 존재)을 사대종(四大種) 및 대종소조(大種所造)로 정의했다. 사대종이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원소를 의미하고, 대종소조란 이러한 네 가지 원소에 의해 합성된 제물질을 의미한다. 남전 아비달마는 대종소조의 색(色)으로서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색(色), 성(聲), 향(香), 미(味), 남근(男根), 여근(女根), 명근(命根), 심사(心事), 단식(段食), 신표(身表), 어표(語表), 허공계(虛空界), 색(色)의 가벼움, 색의 부드러움, 색의 적응성, 색의 적집, 색의 지속, 색의 노성(老性), 색의 무상성 등 24가지를 들고 있다.

    처음 다섯 가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은 오관(五官=五根)이며, 색(색채, 형태), 성(聲, 목소리뿐만 아니라 소리 일반), 향(香), 미(味)는 오관 중 앞 네 가지 안(眼), 이(耳), 비(鼻), 설(舌)의 대상을 말한다.

    남, 여근은 성적 기능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명근(命根)은 생명적 기능의 근본이 되는 것이며, 심사(心事)는 마음자리로 생각되는 심장이다. 단식(段食)이란 입으로 섭취하는 음식물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 육체를 지탱, 유지하는 작용을 말하며, 신표(身表)와 어표(語表)는 내심(內心)의 업(業, 心. 心所의 작용)이 신체의 동작과 말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허공계(虛空界)란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 가지 ‘색(色)의 가벼움, 색의 부드러움, 색의 적응성’은 색법이 공통적으로 갖는 변응성(變應性)을 말한다. 마지막 네 가지 ‘색의 적집, 색의 지속, 색의 노성(老性), 색의 무상성’은 유위(有爲)이고, 무상(無常)인 색법이 공통적으로 갖는 성질인 유위사상(有爲四相)으로서, 생기, 지속, 변화, 소멸의 성질을 말한다. 이것들은 말하자면 색법의 속성이지만 그 자체를 바로 색법이라고 생각했다.

     

*대주 혜해(大珠慧海, 8~9세기)---당 대에 백장 회해(百丈悔海), 남전 보원(南泉普願)과 더불어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제자이다. 대주 혜해 선사 전기는 그다지 명확하게 기록돼 있지 않아서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그는 마조 문하에서 6년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해탈은 오로지 돈오에만 있다고 하는 돈오입도(頓悟入道)의 요지를 밝혔다. 저서로는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제방문인참문어록(諸方門人參問語錄)> 등이 있다.

    혜해는 건주(建州, 福建省) 사람으로 법을 구해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 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구하려고 왔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를 두고 밖에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다.”

    그러자 혜해 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자가보장(自家寶藏)]이다. 거기 일체가 구족해 있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구나.” 이 말 끝에 혜해 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知的)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스님은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 스님 시봉을 했다.---→자가보장(自家寶藏) 참조.

  

*대중공사(大衆公事)---승가 고유의 의결구조를 말한다. 현대사회의 대표적 의결방식인 대의제는 다수의 대중을 대표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지만 대중공사는 그 절의 승려 전원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이다. 사찰운영이나 승려 문제 등에 대해 승려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경우 스승 제자의 관계를 떠나 모든 승려가 모여 대중공사를 여는데, 이를 통해 모든 승려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난 뒤에 시비를 가린다. 그리고 4부 대중이 모여 작게는 절집의 문제, 크게는 불교계 문제 전반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대중부(大衆部, 마하상기카, 빠알리어 Mahāsaṅghika, 산스크리트어 Mahasamghika, 摩訶僧祗部)---인도에서 성립된, 부파불교시대의 종파이다. 부처님이 입멸한 후 약 100여년 지난 기원전 4세기 중반 교단 내에 교리해석문제에 이견이 생기고, 기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교단 내에 분열이 일어났다. 분열은 처음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됐는데, 이를 근본분열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대중부는 훗날 대승불교 탄생의 기반이 됐다. 보수파 장로(長老)들에 의해 형성된 상좌부(上座部)에 대해,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의 젊은 혁신적인 사람들에 의해 구성됐다.

   상좌부 계통은 학문적 전통이 강한데 비해 대중부는 좀 더 종교적인 측면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붓다를 신격화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붓다만이 가진 32가지의 모습[32상]과 자타카와 같은 붓다의 전생담을 이야기했다.---→부파불교(部派佛敎), 근본불교(根本佛敎), 상좌부(上座部) 참조.  

   

*대지도론(大智度論, Mahaprajnaparamita­sastra, 마하프라즈냐파라미타샤스트라)---<마하반야바라밀경=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로 초기 대승불교시대인 AD 2∼3세기 무렵 용수(龍樹, Nagarjuna, 150?-250?)의 저서이다. 흔히 <지도론(智度論)>, <대론(大論)>, <석론(釋論)> 등으로 약칭되며, 초기대승 교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저서이다.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전하지 않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만 전한다. 한역본이 100권 정도로 방대한 것이지만 원서는 그 10배나 되는데, 구마라습은 그 중에서 처음의 <대품반야경> 서품에 해당하는 34품만 완역하고, 이하는 초역했다고 한다. 주석서이지만 원시불교ㆍ부파불교ㆍ초기대승불교로부터 인도사상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인용된, 당시로서는 불교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방대한 저서로서 불교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대지도론> 100권을 통해 용수는 그의 사상을 자세히 펼쳤고, <중론>은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 ‘지도(智度)’란 반야바라밀을 뜻한다.

    <대지도론>이 의도하는 바는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반야공(般若空)사상을 기본입장으로 하면서 <중론>이 부정적 입장을 취한데 비해 제법실상(諸法實相:모든 현상은 空으로서만 진실한 형태를 취함)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대승보살 실천도의 해명에 힘썼다.

   “불법의 대해(大海)는 신(信)을 능입(能入)으로 하고 지(智)를 능도(能度)로 한다.” 이 말은 <대지도론>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불법을 대해에 비유했다. 소소한 지혜나 노력으로 건널 수 있는 작은 냇물이나 강이 아니다. 바다라 했으니까 들어간다(入)했고 건넌다(度)고 했다. 그것이 신(信)에 의해 들어갈 수 있고, 지(智) 즉 반야의 지혜에 의해 건널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용수는 그의 저서 <중론(中論)>에서 말했다. “세속 일(세속의 진리)에 의하지 않고는 최고의 진실은 설해지지 않는다. 최고의 진실에 의하지 않고는 열반은 깨달아지지 않는다.” 세속의 일이란 우리들의 일상적 세계요, 소위 언어로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세계다. 사실 불법의 대해는 이 세속적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불법의 대해의 기슭이며 물가인 것이다. 따라서 불법의 대해에 신(信)을 지니고 들어가 실천에 노력하면서 더욱 그 실천을 겸허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어디까지나 집착을 지니지 않고 일체가 공(空)임을 지혜로 깨달을 때에만 그 대해는 건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실론섬

 

     

*대지법(大地法, 산스크리트어 mahā-bhūmika)---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에서 세운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를 다시 6가지 세부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지법이다. 6가지 세부 그룹은 대지법(大地法: 10가지) ·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을 말한다.

   (1) 대지법(大地法, 생기하는 범위가 큰 마음작용 10가지)

 

 

   ①수(受) ― 고 · 낙 · 불고불락을 느끼는 것.

 

 

 

   ②상(想) ― 표상, 차이를 인식, 개념화.

 

 

 

   ③사(思) ― 의지, 의업(意業), 선ㆍ불선ㆍ무기를 지음.

 

 

 

   ④촉(觸) ― 접촉, 근ㆍ경ㆍ식의 화합, 대상을 만남.

  

 

 

   ⑤욕(欲) ― 욕구, 하고자 함, 희구(希求).

 

 

 

   ⑥혜(慧) ― 판단, 간택(簡擇-여럿 가운데에서 골라냄).

 

 

 

   ⑦염(念) ― 기억, 명기(明記-분명히 밝히어 적음), 잊지 않음(不忘).

 

 

 

   ⑧작의(作意) ― 경각(警覺), 대상을 향함, 주의.

     

 

 

   ⑨승해(勝解) ― 인가(印可-대상이 옳음을 소상하게 밝혀 인정함), 인가(認可-

 

 

 

정하여 허가함), 결정.

 

 

 

   ⑩삼마지(三摩地) ― 삼매, 심일경성(心一境性), 마음집중.

 

   여기서 대(大)는 대법(大法)을 말한다. 대법(大法)은 마음작용(심소법)을 말한다.

   지(地)는 법(法)이 일어나는 장소 또는 공간을 말한다. 여기서 ‘법’은 심소법, 즉 마음작용을 말하므로, 지(地)는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의지처 또는 장소, 공간을 뜻한다. 즉, 지(地)는 마음(심왕)을 말한다.

   그러니 대지(大地)는 대법(大法)의 지(地: 장소, 공간)라는 말인데, 마음(심왕)이 대법(大法-심소)의 지(地)가 된다는 의미이다.

    (2) 대선지법(大善地法, 모든 선의에 수반해 일어나는 마음작용 10가지)

신(信), 근(勤), 사(捨,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참(懺, 마음에서 스스로 죄를 뉘우치는 것), 괴(愧, 자기의 죄를 남의 앞에서 뉘우치는것), 무탐(無貪), 무진(無瞋), 불해(不害), 경안(輕安, 몸을 쾌적, 편안하게 하고 마음이 선업을 짓게 하는 것), 불방일(不放逸)

    (3)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마음을 어지럽히는 마음작용 6가지)

무명(無明), 방일(放逸), 해태(懈怠), 불신(不信), 혼침(昏沈), 도거(掉擧, 마음이 들뜨는 것)

   (4)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모든 착하지 못한 마음에 수반해 일어나는 마음작용 2가지)

무참(無懺), 무괴(無愧)

   (5)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성질이 나쁘고 의식에 수반해 생기는 마음작용 10가지)

분(忿, 분노), 복(覆, 죄를 덮어 감추는 일), 간(慳, 인색한 것), 질(嫉, 시샘), 뇌(惱, 번뇌), 해(害, 위해), 한(恨, 원한), 첨(諂, 아첨), 광(誑, 속이는 것), 교(憍, 교만)

   (6) 부정지법(不定地法, 성질이 선도 악도 아니고 그 어느 쪽에도 수반하지 않는 마음작용 8가지)

악작(惡作, 선이든 악이든 지은 바를 상기해 몹시 후회하는 것), 수면(睡眠), 심(尋, 사물을 깊이 살피는 것), 사(伺, 사물을 자세히 추구하는 것), 탐(貪), 진(瞋), 만(慢), 의(疑)---→심왕(心王), 심소(心所) 참조.

 

 

*대집경(大集經, 산스크리트어 Maha-samni-pata-sutra)---원제는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이며, 전체 60권으로 구성돼 있다. ‘대방등’은 대승경전을 통칭하는 말이고, ‘대집’은 많이 모았다는 말이어서 경 이름은 ‘대승의 교리를 많이 모았다’는 뜻이 된다.

    분량이 많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 등 여러 사람이 부분별로 한역했고, 부처님이 시방(十方) 불ㆍ보살들에게 대승법인 공(空)사상과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굴복시키는 법, 다라니 공덕 등을 설한 경전으로서 밀교적인 요소가 강하다. 천태종 오부대승경(五部大乘經)의 하나이다.

    

*대집월장경(大集月藏經)---원명은 <대방등대집월장경(大方等大集月臟經)>이고, 줄여서 <월장경(月藏經)>이라고 한다. 불교의 경전 가운데 말세를 예견한 경전이다. ---→월장경(月藏經) 참조. 

     

*대천(大天, 마하데바)---→마하데바(산스크리트어 Mahādeva) 참조.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커서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는 법문(法門), 즉 진여(眞如)를 가리킨다. 진여(眞如)의 실체가 광대해서 포섭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대(大)이고, 일미평등(一味平等)해 온갖 차별을 두지 않으므로 총상(總相)이며,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므로 법(法)이고, 관찰하는 지혜가 나고 들므로 문(門)이라 한다. 따라서 진여불성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다.

   즉, 대총상법문이란 것은 본체론(本體論)적인 의미라든가 또는 현상적(現象的)인 의미라든가 모든 실존적(實存的)인 의미가 다 포함돼있는 부처님 가르침이다.

 

    

*대통경(大通經)---중국 도교경전이라고 하지만, 불교 선사들의 선시 모음같이 여겨진다. 한국에서도 몇몇 종교단체와 수행단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글이다. 그러나 이 대통경이 언제 누가 지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나오는「불괘일사(不掛一絲)-실오라기 하나도 걸리지 않는다.」는 화두(話頭)로도 알려져 있다.

    

*대통 신수(大通神秀)---→신수(大通神秀: 606?~706) 참조.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 산스크리트어 Mahabhijna-jnanabhibhu)---<법화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처님으로서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 전에 성불하셨다고 한다. 대통중혜여래(大通衆慧如來)라고도 한다. 과거 한량없고 끝없는 불가사의 아승지겁(阿僧祇劫) 부처님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에, 대통지승불은 출가 전에는 전륜성왕이었고 16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부왕이 성도해 대통지승불이 되자 아들들은 부왕이 가신 길을 사모해 모두 출가해 사미가 됐다. 이들이 모두 출가해 성불했으니 아촉불, 아미타불을 비롯한 열여섯 부처가 출현했는데, 석가모니불이 열여섯째 부처라고 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원제는 <이만오천송반야(二萬五千頌般若)>이고, 이를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이라고도 한다. 404년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했다. 용수(龍樹)가 저술한 <대지도론(大智度論)>이 바로 이 <대품반야경>에 대한 주석서이다. 구마라습이 번역한 또 하나 반야경인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과 구별하기 위해 <대품반야경>이라 이름 했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은 총 27권 90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경전은 공(空)의 교리에 기초해 중생을 구제하는 방도에 대해 설법한 대표적인 반야경전이며, 공(空)에 입각한 집착 없는 지혜의 완성, 곧 반야바라밀이 가장 뛰어난 수행이라 하고, 그 바라밀을 체득하는 방법과 그 바라밀의 무한한 공덕을 설하고 있다. 반야부에서 현장(玄奬)이 번역한 600권 <대반야경> 다음 가는 큰 경전이다. 이역본으로는 286년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광찬(光讚)반야바라밀경>(10권)과 291년 무차라(無叉羅)가 번역한 <방광(方光)반야바라밀경>(20권)도 있다. 용수(龍樹)의 대표작인 <대지도론(大智度論)>이 바로 반야경에 대한 주석서이다.

    <반야경>이란 단일경전이 아니고 같은 계통에 속하는 많은 경전의 총칭이다. 그래서 현존 대승경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방대한 양이 <반야경>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러한 다수의 반야경전류를 편의상 <대부반야경전(大部般若經典)>과 <잡부반야경전(雜部般若經典)>으로 나누고, 대부반야경전류를 다시 대반야경계(大般若經系)와 대품계(大品系), 그리고 소품계(小品系)의 셋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독송되고 있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은 <잡부반야경전>에 속하는 반면, <대품반야경>은 대품계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대승불교는 소승교단(부파불교)이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을 지적하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는 새로운 불교운동에서 비롯됐고, 이러한 새로운 불교운동을 이끈 사상이 바로 <반야경>이다. 즉, 대승불교사상이라는 것은 부처님 근본사상을 이어받아 사상적으로 부단히 발전해 왔는데, 이러한 불교의 새로운 사상이 태동될 때마다 새로운 경전성립은 불가피했고, 이때 새롭게 성립된 경전은 그때마다 <반야경>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경전이 성립돼 유포될 때마다 이것이 중국에 전래되면 그때마다 새로운 경전으로 번역됐다. 이렇게 경전제작과 유포 및 번역이 반복됨에 따라 반야경류 경전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 다양한 반야경들 사상을 총망라해 정리한 경전이 <이만오천송반야경>이고, 이것을 번역한 것이 바로 <대품반야경>이다.---→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대반야경(大般若經), 대지도론(大智度論) 참조.

  

*대행(大行)---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영원에 걸쳐 여러 선행을 행하고 공덕을 쌓는 일로서 대승의 실천, 곧 육바라밀 등의 행업(行業)을 말한다.

    

*대행(1927~2012) 스님---비구니 승려이고, 금세기 최고 선지식의 한분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1950년 강원도 상원사에서 방한암 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했다. 1972년 경기도 안양에 한마음선원을 건립해 선원장으로 활동했다.

    대행 스님 법문의 주요 주제는 ‘주인공(主人空)’이었다. 이는 선불교의 ‘주인공(主人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선불교의 ‘인격화된 불성’인 주인공의 개념을 확장시켜 법계의 비어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선종의 주인공(主人公)에서의 ‘公’을 ‘空’으로 바꿨다고 했다. 또 평생을 수행하던 대행 스님에게 주인공(主人空)은 내면의 소리로 화두와 같은 수수께끼를 던져 스님의 수행을 인도했다. 그리하여 의심의 덩어리인 의단(疑團)을 태우도록 스님을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대행 스님은 과학의 기초가 한마음에 있음을 알고 심성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정신과 물질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不二思想)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주인공(主人空)은 소우주적 실천행이면서 모든 생명존재 각자에게 내재된 청정한 자성이되, 이것의 바탕은 역시 공심(空心)이지만, 또한 선사들이 말하는 ‘평상심(平常心)’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상심이기에 ‘생활 속의 불교’라고 말한다.

     

*대현(大賢, 생멸연대미상)---통일신라 승려. 한국 유가종(瑜伽宗) 시조. 원측(圓測) 문하에서 경ㆍ률(經律)을 공부하고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일화들이 많다. 752년(경덕왕 11)에 가뭄이 심하자 왕명을 받고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술한 후 향로를 들고 주문을 외자 우물물이 높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경주 남산(南山) 용장사(茸長寺)에서 깊은 이치를 깨닫고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를 저술했다. 그 밖에 <약사경고적(藥師經古迹)>, <보살계본종요배과(菩薩戒本宗要排科)>, <대승기신론내의약탐기(大乘起信論內義略探記)> 등이 있다.

  

*대혜선(大慧禪)---대혜선이란 중국 남송시대인 1130년 경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 의해 정립된 간화선법을 말한다. 그 이전에 중국의 전통적인 선은 조사선(祖師禪)이었다. 간화선(看話禪)에서 ‘간(看)’은 주시하다, 참구하다는 뜻이고, ‘화(話)’는 화두(話頭)를 가리킨다. 따라서 ‘간화’란 화두를 참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분별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무분별 직관적인 방법으로 참구하는 것이다.

    즉,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으로 일구의 공안에 몰두하는데, 예를 들면, 개에게도 불성이 있나(狗子無佛性),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마 3근(麻三斤) 등을 화두로 해서 마음에 의심의 덩어리(疑團)을 일으켜서 참구해 의단을 깨뜨리는 것이다. 의단을 깨뜨리면 즉시 의식의 속박을 초월하고, 마음속의 지견이 쉬게 되며, 일상의 관습적인 성격ㆍ사유를 일으키는 것들을 쳐부수고, 세속의 명예와 이익 그리고 시비분별로 들끓는 번뇌를 벗어나서, 밝고 맑고 철저한 마음으로 어떠한 경계에 부딪쳐도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간화선(看話禪) 참조.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중국 남송시대 선승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며, 사호(賜號)는 ‘불일(佛日)’이요, 속성(俗姓)은 해씨(奚氏), 대혜는 호, 종고(宗杲)는 법명으로 안휘성(安徽省) 영국현(寧國縣)에서 태어나 12세에 향교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세간(世間) 공부가 어찌 출세간법(出世間法)을 구(求)하는 것만 같겠는가.” 라 생각하고, 16세에 출가했다. 그 후 원오 극근(圓悟克勤) 문하에서 임제선(臨濟禅)을 수행했다. 송 왕조가 금나라 침공을 받아 남쪽으로 패퇴할 당시 재상이었던 진회(秦檜)가 금과 화의를 맺었다.헌데 대혜를 따르던 수행자 가운데에는 금과의 화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진회의 탄압은 대혜까지 미치게 돼, 대혜는 승적을 박탈당하고 호남의 형주(衡州)와 광동의 해주(海州)로 유배당했다. 그러다가 1156년 진회(秦檜)가 죽자, 만 15년의 유배 생활에서 돌아와 고종의 사면으로 승적을 회복했다.

    대혜 선사는 묵조선(默照禪)을 비판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정립해 선종불교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과 태고종은 조사선(祖師禪) 전통을 이은 간화선을 그 종지로 하고 있어서 간화선을 확립한 대혜 종고는 한국불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저술로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서장(書狀)> 등이 있다. 특히 <서장>은 대혜 선사가 그의 문하와 거사 및 유학자들의 질문에 답한 선(禪)의 요지를 설명한 편지글이다. <벽암록>과 더불어 간화선 교과서로 불리며, <대혜서(大慧書)>라고도 한다. 다음은 선사의 임종게(臨終偈)이다.

      생야지임마(生也只恁麽) - 삶도 이대로였고,

      사야지임마(死也只恁麽) - 죽음도 이대로인데,

      유게여무게(有偈與無偈) - 남길 말이 있느냐 없느냐 라니,

      시심마열대(是甚麽熱大) - 이 무슨 번거로움이냐. ---→대혜선(大慧禪), 서장(書狀) 참조.

  

*덕산 방(德山棒) 임제 할(臨濟喝)---임제 할(臨濟喝) 덕산 방(德山棒) 참조.

    

*덕산 선감(德山宣鑒, 782~865)---당나라 때 선승. 덕산은 후학을 제접(提接;맞이하다)함에 있어서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번개 같이 ‘방(棒)’을 내리셨다. 항상 방타(棒打)를 가르침의 도구로 써서 ‘덕산 방(德山棒)’이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엄격하게 수행을 시키는 계열에 속했다.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 임제종(臨濟宗)을 창설한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와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의 종조(宗祖)가 되는 덕산(德山) 선사, 이 두 분 스님을 조사들 가운데 영웅이라고 해 칭송하고 있다.

    덕산은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학연구가 깊었다. 특히 <금강경>에 능통해 세상에서, 스님의 속성이 주(周)씨이므로, 주금강(周金剛)이라 칭송했다. 그런데 그 무렵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해서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어느 날 점심때가 돼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그 노파가 묻는다.

     “스님, 떡을 파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등에 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 이것들은 내가 평생을 연구한 <금강경>에 관한 논문과 책들이지.”

     “그렇다면 제가 <금강경>에 관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대답을 해 주시면 떡을 거저 드리고 대답을 못하시면 저뿐만 아니라 이 고을 어디에서도 떡을 잡수실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덕산은 속으로 웃으면서, <금강경>이라면 내가 모르는 구절이 없으니 오늘 떡은 공짜로 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노파가 물었다.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

    여기서 점심(點心)은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인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느냐는 말이다. 점심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려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한 것이다. 일설에는 이때부터 점심이라는 용어가 낮 끼니의 용어로 정착됐다는 설도 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 도대체 이런 질문은 어느 경에도 없다. 당대 <금강경>의 대가요 최고의 실력자라 자부하는 자신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말문이 딱 막혀 버렸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고 모로 외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버렸다. 이 질문은 언어문자를 떠난 질문이다. 어떤 이론이나 논문 소초 같은 글로써는 설명되지 않는다. 덕산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모두 시공에 매이고, 업식에 붙어서 돌아가는 마음이므로, 그런 유루식을 가지고는 일거일동이 모두, 함이 있는 행동이 되고, 업을 짓는 행동이 된다. 그러기에, 떡 하나 먹는 것도, 온통 죄를 짓는 것이다. 진리의 세계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주금강’이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로 <금강경>의 대가인 덕산스님이지만 용담 선사의 사하촌에서, 떡 파는 노파에게 위와 같은 선문답을 받고 바른 답을 못했다.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은 모두 허망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본마음이 못 된다. 모두 분별망상에 사로잡힌 마음이라서, 순수하고 착한 진여본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떡 하나를 먹더라도 바로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일체중생이 잘도 먹고 사는데, 다들 어떤 마음으로 먹고 살까?

     중생은 중생심으로 먹고,

     보살은 보살심으로 먹고,

     부처는 보리심으로 먹네.

    한갓 중생임을 벗어나지 못한 덕산 선사로서 분별을 떠난 선문답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 그 동네에서는 점심을 먹지 못하고 굶게 됐다. 덕산은 대답을 못하고, 노파에게 물었다.

     “이 근방에 큰 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선원(龍潭禪院)에 용담 숭신(龍潭崇信) 선사가 계십니다.”라고 했다. 이에 덕산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선원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용담 스님과 마주 앉은 덕산 스님, 대담을 하다가 밤이 늦어 객실로 가려는데, 밖이 아주 캄캄해 보이지 않자, 용담 스님이 등불을 켜서 덕산 스님에게 주었다. 그런데 막 신발을 찾아 신으려는 찰나, 용담 스님이 불을 확 불어 꺼버렸다. 환하던 것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그 순간 덕산 스님이 크게 깨달아 활연개오(豁然開悟)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덕산은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다. “모든 현변(玄辯;깊은 이치의 말)을 다해서 온 천하의 사람이 당할 수 없다고 해도, 깨달은 경지에서 볼 때는 태허공(太虛空;큰 허공) 가운데 있는 조그만 터럭 하나를 둔 것과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세상의 중요한 근본)를 다 한다 해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라고 했다. 이것은 바로 지식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라고 하겠다.

    전에는 지식이 장한 줄 알았다가 바로 깨쳐 놓고 보니 자기야말로 진짜 마군(魔軍)의 제자가 돼 있었더라는 것이다. 덕산은 이렇게 깨치고 나서, 사람을 가르치는 데 누구든 어른거리면 무조건 몽둥이로 때렸다. 부처님이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리고 도둑이 와도 때리는 미친 사람이 됐다. 또한 온 절 안을 뒤져서 무슨 책이든 눈에 띄기만 하면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런데 덕산의 몽둥이 밑에서 무수한 도인(道人)이 나왔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의 운문종(雲門宗과),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의 법안종(法眼宗)이 또한 이 몽둥이 밑에서 나왔다. 이렇듯 자기개발이란 오직 마음을 닦아서 삼매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지 언어문자에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라 했다.---→가불매조(呵佛罵祖), 임제 할(臨濟喝) 덕산 방(德山棒) 참조.

   

*데바닷따(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Devadatta, 데와닷타, 제바달다)---붓다 제자 가운데 배반자이다. 붓다의 삼촌 곡반왕(斛飯王)의 아들로서 붓다에겐 사촌 동생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붓다를 25년 동안 성의를 다해 시봉해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칭송된 아난다(Ananda, 阿難)의 친형이다.

   그는 5통(五通)을 얻어 신통력이 뛰어날 정도로 총명했으나 평소에 붓다께 경쟁심 내지는 시기심으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몇 가지 불미한 사건들도 있었는데, 붓다 만년(72∼73세)에 데바닷따가 붓다께서 연로하시니 물러나시고 교단을 자신에게 승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붓다께서는 사리불과 목건련에도 맞기지 않는데, 하물며 너 같은 사람에게 맡기겠느냐 라고 하셔서, 데바닷따는 심한 모욕감을 느껴 붓다께 거역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됐다.

   데바닷따는 자기를 따르는 500여 명 비구를 규합해 승단을 이탈해서 여러 번 붓다를 살해하려 했고, 마가다국 아사세태자(阿闍世太子)를 꼬여 그 부왕 빈비사라왕을 시해하게도 했다. 따라서 악인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데바닷따는 붓다를 살해하기 위해 영축산 꼭대기에서 바위를 굴린 적이 있었다. 때마침 하늘의 제석천이 영축산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바위가 구르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 싶어서 신통력으로 바위를 분쇄시켜 자갈로 만들어 위기를 모면케 했다. 붓다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바위 파편이 맨발이신 붓다의 세 째 발가락과 네 째 발가락 사이를 찢었다.

   붓다께서는 바늘 끝으로 쑤시는 것 같이 아파 도저히 참을 수 없으셨다. 그래서 주치의 기바(耆婆, 지와까, 지바카/Jīvaka)를 불러 환부를 보여주셨다. 기바는 발가락을 자세히 보더니, 환부가 곪았으므로 수술을 해야 한다며 몹시 아프실 것이라 했다.

   붓다께서는 내가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가 전연 움직임이 없으면, 그때 도려내라고 하시고 곧 수술을 받으셨다. 불전(佛傳)에 의하면, 그때 붓다께서는 육신을 그 자리에 놔두고 마음만 도솔천에 올라가셨다가 수술이 끝나자 내려오셨다고 한다. 붓다께서는 수술이 끝나고 환부가 다 나을 때까지 거의 1개월 10일을 민가에 탁발도 못 다니셨다고 한다.

   어느 날 유마힐(維摩詰) 거사가 붓다께서 다치셨다는 것을 전해 듣고 문병을 왔다. 유마힐 거사는 붓다께서 고통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데바닷따는 못된 놈이라고 몰아세웠다.

   이에 붓다께서는 “나에게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고통을 주는 데바닷따가 없었으면, 내가 어찌 인욕(忍辱) 수행을 할 수 있었겠는가. 데바닷따가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대성인(大聖人)이라고 받드는 것은 데바닷따가 내 수행을 도왔기 때문이다. 내 은인이다. 전생에는 내 스승이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밀린다팡하(Milinda-panha)>에 따르면 데바닷따는 붓다 당시에 산채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 다섯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 데바닷따는 그래도 초기에는 출세간의 삶(梵行, brahma-cariya)을 살았기 때문에 무간지옥에서 10만겁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격은 뒤에 다시 인간계에 태어나 아띠싸라(Aṭṭhissara)라는 벽지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데바닷따가 여래의 가르침을 받아 출가하면 그의 고통은 끝날 것임을 아시고는 한없는 자비의 마음으로 그를 출가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데바닷따가 데와라자(Deva-rāja, 天王)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만일 붓다가 데바닷따를 출가시키지 않았다면 그는 1조의 겁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도(道)---도(道)란 무엇인가, 그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정도로 이해되지만, 종교적으로는 의미가 더 깊고 다양해하다. 유가(儒家)에서는 도의 도덕적 면을 강조해서 인간행위의 올바른 길, 인간의 가치기준 등 행동규범으로 이해하며, 나아가서 하늘의 이치[천도(天道)]을 의미하는가 하면, 마음을 닦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교(道敎)에서는 종교적 의미가 더 강해서, 도는 우주만유의 본체이면서 형이상학적인 실재(實在)라 주창하고, 인생의 모든 행위와 자연계 섭리는 모두 도 아님이 없다고 했다.

    불교의 경우, 도는 진리(Dharma) 그 자체, 근본적인 원리 또는 이치, 사람 본성(本性)을 가리킨다. 여기서 본성이란 본래면목(本來面目)과 비슷한 말이다. 따라서 도(道)란 태초로부터 인간 자신의 중심이고, 처음이며, 마지막 근본자리, 그리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과정을 말한다. 즉, 깨달음 자체를 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자리를 깨닫기 위해 하는 수행과정을 도라고 한다.

    그리고 사제(四諦) ‧ 팔정도(八正道) 등에서 설명하는 도는 ‘올바름’, ‘당위(當爲)’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도를 닦는 것을 수도(修道)라 하고, 양극단을 피하는 바 철학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 당시대의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평상심이 도라고 했고[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에 대해, “꾸밈이 없고, 시비(是非)가 없고, 취함과 버림이 없고, 한결같아서 끊임이 없고, 속됨도 없으며, 성스러움도 없는 것”이라 했다.

세상 사람은 도(道)라고 하면 특별한 것 또는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도란 그런 높은 차원의 진리가 아니라 범부가 일상생활을 하는 그런 마음가짐임을 천명하고 있다. 마음에 번뇌가 없고,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 한결같이 수행을 통해 추구하는 대승심이 도란 것이다.

    따라서 거짓 없는 참된 이치가 진리이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치가 도이다. 그런 이치를 활연(豁然)히 깨닫는 것을 오도(悟道)라 하고, 번뇌가 없는 청정한 지혜에 의해 4제(四諦)와 12연기(12緣起) 도리를 깨닫는 수행과정을 견도(見道)라고 한다. 그런 도를 말할 때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끝은 도달함이고, 성취이다. 시작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끝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끝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하는 방식과 방법 등이 모두 도이다. 불자들에 있어서 열반에 이르기 위해 붓다가 제시한 수행법들이 모두 도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도란 것은 성취하려는 사람의 성취될 수 있는 길과 성취 또는 도달(到達)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말이다.

      

*도각문전찰간착(倒却門前刹竿着)---아난 존자는 부처님 시봉을 25여 년을 해서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어서 부처님 10대 제자 중 다문(多聞) 제일이라 칭송 받았다. 그런 아란이지만,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네가 천 날 만 날 배우는 것이 한 날 참선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팔만 사천 대장경을 다 외우다시피 해도 결국엔 생사문제를,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금생에 비록 네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지만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하셨다. 그렇게 부처님이 아난 존자를 꾸짖으신 바가 있었다.

   법문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삶에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중 부처님 열반 후에 가섭 존자가 부처님 대를 이었는데, 고심하던 아난 존자가 가섭 존자에게 가서 여쭈었다.

   “사형님이시여, 금란가사(金襴袈裟) 외에 어떠한 법을 부처님께 전해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대법의 급소를 바로 찌른 말이기는 했다. 이 중대하고도 긴요한 질문에 가섭은 돌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난아!”

   “네!”

   “절문 앞의 찰간을 꺾어버려라(倒却門前刹竿着).”라고 하는 한 마디였다. 도각찰간(倒却刹竿) 하라는 말이다.

   찰간이란 단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하는 돌로 만든 지주 가운데에 나무 혹은 쇠로 깃대 모양을 만들어 각 종파를 나타내는 표기로 삼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덕이 높은 스님이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이기도 하다. 그것을 꺾어버려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슨 뜻인가? 아난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날 간화선에서 화두(話頭)의 시초였다.

   이것은 깨침의 소관이지 문자나 말의 의미로 해독하는 해답의 논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치열한 정진 속에서 제대로 안목이 열린 납자라면 ‘문간에 있는 찰간(刹竿)을 꺾어버려라[도각찰간(倒却刹竿)]’라는 말까지도 본래 쓰러뜨리고 말고 할 찰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야, 그래서 선이 필요한 것이다.

   가섭은 퉁명스럽게 말 한 마디를 던져놓고 쓰다 달다 말없이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리하여 아난은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잊은 채 용맹정진 사흘을 지나 나흘이 되는 새벽녘에 극심한 피로 때문에 잠깐 누우려는 순간, 마음이 사라지면서 깨달음의 빛이 일어났다. 불타던 깨침의 정열은 대자대비의 환희로 변해 시방법계가 활짝 열렸다. 아난은 감격한 나머지 가섭의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두드리며,

   “사형! 사형! 이제 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가섭도 기뻐하며,

   "어서 들어오느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비로소 경전편찬회의에 참석해 부처님 말씀을 들은 대로 다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해 경의 결집(結集)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 후 가섭 존자로부터 법통(法統)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섭이 창안한 독특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이심전심법(以心傳心法)을 그의 제자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분별명상 부지휴(分別名相不知休) 입해산사 도자곤(入海算沙徒自困)’ 참조.

 

 

*도감(都監)스님---사찰에서 돈이나 곡식 같은 것을 맡아보는 일, 혹은 그 일을 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다.

 

*도거(掉擧, 빠알리어 uddhacca, 산스크리트어 auddhatya - 들뜸)---큰 번뇌심으로서 정신이 바깥 경계에 끌려 다니므로 마음이 이리저리 날뛰어 안정되지 못하고 번뇌 망상이 어지럽게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들뜨고 혼란스러운 흥분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혼란에 빠진 마음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혀 집중력이 없는 상태, 번뇌 망상에 시달리는 혼란 상태이다. 초조해 있다거나 긴장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긴장되거나 들떠서 혼란 상태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는 긴장해버린다. 어떤 발표할 기회가 있어도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기 전에 벌써 긴장해 버리는 일은 흔히 있다. 면접 등에서도 준비를 다해 갔음에도 면접장에서 자기 이름이 불린 순간 긴장해서 어쩔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이 도거이다.

    예컨대, 아이가 최선을 다해 연극을 하고자 무대에 오르는 순간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또는 연극을 하다가도 무대에서 객석에 있는 어른들을 보자마자 도거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경우 머리가 띵 하고 굳어져 통나무처럼 서서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경직된다. 어른의 경우, 산행을 가다가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을 경우, 당황해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런 마음 상태도 도거이다. 도거 상태가 되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때에 나쁜 짓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긴장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긴장해서 굳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무엇을 하려고 하면 실수를 연발해서 발표를 그르치기 일쑤다. 이런 불안정하며 산란한 도거는 심소(心所)의 하나인 불선심소(不善心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야 하는 것인가? 일으키지 않으면 본래 없는 것인즉 마음을 스스로 적정(寂靜)하게 하고, 선정(禪定)에 머무를 수 없는 경계라면 스스로 화두를 들어 참구함으로써 마음을 돌려 번뇌가 일어남을 막으며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감정이 고양된 상태는 도거, 그 반대는 혼침(昏沈)이다. 항상 좋은 일은 없는 법, 만약 감정이 고양되면 다음에 닥쳐올 그 고양된 감정의 하강을 슬기롭게 기다려야 한다.

    이 들뜸은 경에서 후회(kukkucca)와 합성돼 선정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 nīvaraṇa) 가운데 네 번째 장애로 나타난다. 또한 이 들뜸은 10가지 족쇄(結, saṁyojana) 중의 아홉 번째 족쇄로 아라한이 돼야만 비로소 완전히 극복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불선(不善)에 항상 존재하는 원초적인 동요라고 할 수 있다.

    

*도고마성(道高魔盛)---도고마성이란 수행이 깊어갈수록 마의 방해가 심해진다는 말이다. 수행자의 수행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구니의 방해가 커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수행이 깊어질수록 수행자나 수행자의 주변에 갑자기 좋지 않은 일들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수행력으로 수행자의 업장이 녹아나는 과정에서 마구니는 수행자의 몸을 상하게 하다든지 이도 되지 않으면 수행자의 주변(일가친척 등)에 붙어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 등으로 수행자는 출가 후 독신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나 수행자의 주변에 좋지 않은 일들이 갑자기 발생했을 때, 수행을 잘하지 못해 주화입마(走火入魔)의 현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진실한 수행을 한 경우에는 오히려 수행자의 업장이 녹아나서 생긴 현상일 수 있다고 한다.

※주화입마 (走火入魔)---몸속의 기를 잘못 운용해 맥을 타고 온 몸을 돌아야 할 기가 다리나 머리에 뭉쳐서 내려오지 않는 등의 부작용을 일컬음. 흔히 기 수련을 하다가 너무 무리를 하거나 잘못해서 기혈이 역행하고 얽히며 막히는 증상을 말한다. 대략 내공을 쌓다가 어느 단계에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으면 주화입마를 입는다고 한다.

        

*도과(道果, 산스크리트어 mega-phala)---도과(道果)란 수행을 행해 얻은 과보를 말한다. 즉, 보리(菩提)의 과보로서 얻는 열반 - 깨달음을 의미한다. 도(道)는 길의 과정, 혹은 성취의 단계를 말하고, 과(果)는 길의 궁극적인 열매를 뜻한다.

   그런데 수다원과 혹은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은 욕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도과를 얻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아라한 자신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하면 이는 곧 아라한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도과는 있어도 도과를 얻은 자는 없다. 무아이기 때문이다. 다만 집착이 끊어진 그러한 정신적인 상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도과(道果)는 있어도 도과에 든 자는 없다.”고 한 말이나 “아라한은 있어도 아라한이 된 자는 없다.”는 것이 같은 맥락의 말이다.

   도과(道果)는 하나의 정신적 상태이므로 이것을 얻은 자아를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내가 도과를 얻었다거나, 또 도인이라는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나’라고 하는 자아가 개입되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있어도 부처가 된 자가 없다’는 말을 함께 쓰기도 한다. 이 말은 부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도과(道果)는 열반을 의미한다. 도(道)는 지향하는 것으로 길을 뜻하며, 과(果)는 결과에 이른 것으로 상징적으로 열매라고 한다. 그래서 도과는 하나의 완성을 말한다. 그리하여 피안으로 건너갔다고 하는데 이것이 열반이다. 그런데 열반은 의식이 끊어진 상태라서 이르기는 해도 들어가는 것을 알 수가 없다.

   부처남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일반적 특성인 무상, 고, 무아라는 것을 알아 집착을 끊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상(無常)은 항상 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이고, 고(苦)는 불만족을 말한다. 아무리 얻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아(無我)를 알지 못하면 결코 집착을 끊을 수가 없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자아를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느낌에서 갈애가 소멸돼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아는 언어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기존의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수행을 해서 이 단계의 지혜가 나야 비로소 무아를 안다. 그러므로 범부 중생은 도저히 무아를 알 수가 없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마음에 자아(自我)가 없다는 말이다. 자아가 있어서 이것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아를 이해해야 ‘도과는 있어도 도과를 얻은 자’는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무아이기 때문에 ‘깨달음은 있어도 깨달은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출세간의 도과(道果)는 다음 4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① 수다원 도과(sotapatti magga phala, 預流) ― 유신견, 사견, 의심, 질투,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 등에서 벗어난 첫 번째 도과로, 마음이 5장애(감각적 욕망, 악의, 무기력, 불안,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맑은 평온함과 행복감이 절로 솟아나서 법열(法悅)의 환희에 휩싸이는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도에 들자마자 과를 통과한 직후에 알아차림이 되돌아오는 순간, 도과를 통과한 전(全)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한순간 밝은 불빛이나 어떤 형상을 보거나 번뇌가 제거되면서 통증과 열감이 야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열반을 체험한 직후에는 사띠가 느슨해져 정신적 흐름을 명확히 알아차릴 수 없어 대상이 모호해지므로 수행이 퇴보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며칠 지나면 완화돼 다시 현상을 명확하고 순일하게 알아차리게 된다고 한다.

     ② 사다함 도과(sakadagami magga phala, 一來) ― 수다원의 다음 단계인 2번째 도과로, 거친 탐ㆍ진ㆍ치가 제거돼 아직 미미한 번뇌들이 잔존하기는 하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단계이다. 수다원과 사다함은 계행(戒行)을 잘 준수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성취할 수 있지만, 아나함은 선정삼매가 충분히 깊어져야 성취되므로 힘겨운 용맹정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한다.

     ③ 아나함 도과(anagami magga phala, 不還) ― 사다함의 다음 단계인 3번째 도과로, 욕계의 감각적 욕망과 성냄, 근심 등이 제거된 상태이다. 이 단계에서 마지막 도과인 아라한에 오르려 할 때는 “정해진 시간 동안 아나함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지혜를 성취할 수 있기를” 서원하면서, 앞 단계들과 동일한 수행과정을 거치며 용맹정진 해야 아라한에 오른다고 한다.

     ④ 아라한 도과(arahanta magga phala, 應供) ― 불법의 최고 단계이자 마지막 도과로, 모든 번뇌와 무명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 최상의 성자인 아라한에 등극하게 된다. 이처럼 매 단계마다 반복되는 수행과정과 용맹정진으로 각 도과의 지혜가 성숙되며, 이를 위해서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이 필수적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도광회적(韜光晦迹)---진리를 깨달아 큰 역량을 갖춘 사람이 자기의 심신을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이름 없고 흔적 없이 숨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에게도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이른다.

        

*도그마(dogma)---원래 기독교의 교리를 일컫는 말이다. 교회에 의해 부동의 진리로 인정돼, 이성(理性)으로서의 증명이나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ㆍ교의(敎義) 등을 말한다. 자기 종교의 교리만이 옳다거나 가장 우수하다고 고집하는 독단적ㆍ독선적인 교조적(敎條的) 생각이나 주장을 일컫는다. 극히 위험한 발상으로 사회 갈등과 공격적인 사상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일반사회에서는 충분한 근거나 명증(明證)도 없이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도량(道場)---부처님이나 보살이 도를 닦는 곳, 또는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은 불도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절(사찰)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도량석(道場釋)---하루 중에서 제일 처음 올리는 기도. 사찰에서 새벽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을 말한다. 하루 중에서 사람 정신이 가장 맑을 때가 새벽시간이다. 수면을 통해 피로했던 심신이 새로워진 탓도 있지만 어둠이 가시고 밝음이 퍼져가는 새벽은 대우주의 기(氣)가 가장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천지만물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첫새벽 목탁소리는 잠들어 있는 유정(有情) ․ 무정(無情), 일체 생명체들이 법음(法音)을 듣고 미망에서 깨어나라고 각성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있다. 도량석을 함에 있어서는 목탁을 갑자기 치지 않고 서서히 약한 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까닭은 모든 신들이나 생명들이 놀라지 않고 깨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도리천(忉利天, 산스크리트어 Trāyastriṃśa)---부파불교시대 아비달마불교가 확립한 우주관에서 분류되는 천(天)의 하나. 불교 우주관에 따른 28천(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 가운데 욕계(欲界) 6천의 제2천에 해당한다. 이 도리천에는 33천(天)이 있다고 한다. 전혀 과학적 근거는 없는 환상의 이론이다.

    불교 우주관에서 볼 때 우주중심에 수미산(須彌山, Sumeru)이 있고, 그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다. 도리천의 모양은 사각형을 이루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봉우리가 있으며, 중앙에는 선견천(善見天)이라는 궁전이 있다. 선견천 안에는 도리천의 우두머리 제석천(帝釋天, Indra)이 머무르면서 사방 각 8천, 도합 32천의 신(神)들을 지배한다. 32천에 선견천을 더한 천상계(天上界)를 33천이라 하는데, 33천(三十三天)을 도리천이라고 하는 까닭은 33을 인도말로 음역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죽은 뒤 다시 태어난 곳이 바로 도리천이다.---→욕계 6천(欲界六天) 참조.

    

*도무횡경(道無橫經)---"진리에 이르는 길은 하나일 뿐 샛길은 없다"는 말이다.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말이다. 부처가 되는 길은 생사를 해탈하고 지혜를 밝히는 길 하나 밖에 없고, 샛길이나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인간 세상에는 샛길도 있고 지름길도 있고 적당히 하는 길도 있지만 진리를 깨치지 않고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도법아사리(都法阿闍梨)---불교교단에서 스승을 아사리라 한다. 그리고 도법아사리는 주로 밀교계통에서 이르는 아사리로, 밀교 태장계ㆍ금강계 모든 법을 전해 받아 스승이 된 대아사리 승려를 이르는 말이다.---→아사리 참조.

   

*도불용수 단막오염(道不用修 但莫汚染)---도를 구하는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다만 본성 자리가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범부는 끊임없이 애를 쓰고 찾고 노력하고 수행을 하려고 한다. 우리가 기울이는 모든 유위(有爲)의 노력이 우리를 원래의 본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범부는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닦고 수행하고 있다.

   범부의 마음이라는 칠판은 의도적인 행위의 글자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각이 사라진 무위(無爲)라는 텅 빈 칠판을 마주하면 불안하다. 도를 이루지 못하는 범부는 좌선이나 화두, 염불 혹은 명상 등과 같이 어떤 수행이라도 의지해야 안심이 된다. 그 모든 수행이, 수행이 없는 무위를 이루려고 하는 줄 모르고 말이다. 본래 최상승은 자성(自性)이 원만청정해서 그 자성에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제록(臨濟錄)>에서는, “인위적인 조작을 붙여서 수행으로 원만하게 하는 것은 너희들이 오히려 생사 업을 짓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도불용수(道不用修) 단막오염(但莫汚染) - 도를 구하는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다만 본성 자리가 물들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는 닦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닦아서 얻어진 것은 반드시 부서지니 곧 성문(聲聞)과 같아지며, 만약 닦지 않는다고 하면 곧 범부(凡夫)와 같아진다(僧聞 如何是脩道 道不屬脩 若言脩得 脩成還壞 卽同聲聞 若言不脩 卽同凡夫).고 했다.

   물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수행이다. 뭘 닦아서 보태려고 하지 말라, 이것이 최상승 수행법이다. 법의 정법, 안목을 세워 스승과 선문답으로 그 자리에서 확신하면서 바로 반야바라밀의 삶을 평생 살아나가는 것이 바로 최상승 수행이라고 했다.

 

      

*도사(島史)---→디파방사(Dīpavaṁsa, 島史) 참조.

    

*도생(道生, 355~434)---동진(東晉)의 승려로 구마라습(鳩摩羅什)의 문하 4철(四哲)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속성은 위(魏)씨고, 15살 때에 축법태(竺法汰) 밑에서 승려가 돼 도를 배웠으므로 축도생(竺道生)이라고도 한다.

    승조(僧肇, 384~414)와 함께 구마라습 문하에서 활동한 도생은 ‘돈오성불론(頓悟成佛論)’을 제창했다. 도생은 중국불교에서 최초로 돈오론(頓悟論)을 제창했고, 그로부터 본격적인 불성론(佛性論)이 전개됐다. 중국 불교계에서는 인도로부터 전래한 불교를 그 본의를 잃지 않고 가장 중국식으로 해석해 불교의 중국화를 이룬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에 <법화의소(法華義疏)>, <주유마경(註維摩經)>, <불성당유론(佛性當有論)>, <법신무색론(法身無色論)> 등이 있다.

   

*도서(都序)---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줄여서 도서라고 부르는데 중국 화엄종 제5조이며 하택종의 제5조이기도 한 당나라시대의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년~841년) 선사의 저술이다. 1500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듯하다. 도서의 핵심은 선과 교의 본뜻은 둘이 아니라는 선교일치사상에 관련된 요긴한 내용이다. 현재 우리나라 조계종 승려교육원인 강원에서 배우는 교과에 들어있다.

   이 <도서(都序)>의 서문을 배휴(裴休)가 썼는데, 그는 그 서문에서 “어떻게 한 분의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불교의 종의를 용수(龍樹)는 공으로, 마명(馬鳴)은 진여일심으로 이해했으며, 용수의 공관을 어떠한 까닭에서 천태 지의(天台智顗)는 일심삼관(一心三觀)으로, 법융(法融)은 일체의 공적(空寂)으로 이해했는가? 또한 보리달마(菩提達摩)로부터 비롯된 선법을 어떠한 근거에서 혜능(慧能)은 돈오로, 신수(神秀)는 점수로 받아들였는가?“라고 해서, 불교의 포용의 경계를 설파하고 불교는 다양한 교리와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도선(道詵, 827~898)---신라 말 고려 초 승려. 도선은 영암출신으로 우리나라 풍수지리설 창시자이다. 속성은 김씨로, 846년(문성왕 8)에 지금의 전남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수도하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ㆍ 무법법(無法法)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신승(神僧)으로 추앙 받게 됐다. 저서로 전해지는 것은 <도선비기(道詵秘記)>ㆍ〈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ㆍ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등이 있다.

 

  

*도선(道宣, 596~667)---당나라 초기 율종(律宗)의 승려. 계율종(戒律宗) 남산파(南山派)의 개조로, 세칭 남산율사(南山律師)라고도 한다. 그는 지수법사(智首法師)에게 율(律)을 배웠다. 나중에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백천사(白泉寺)에 머물면서 율학의 연구와 전파에 진력했다. '남산율종'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645년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돌아와 그가 가지고 온 불교경전의 번역 사업에 착수했을 때 도선도 초청돼 참가했다.

   658년 기원정사를 모방한 서명사가 완성되자 그곳의 상좌로 모셔졌다.

   662년 고종이 승려들은 임금과 부모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칙령을 내리자 현장 등과 함께 상소해 마침내 그 칙령이 철회되도록 했다.

   667년 2월 정업사에서 계단(戒壇)을 창립하고 각지에서 찾아온 20여 명의 사람들에게 계를 주었는데, 이것이 후세에 계단을 건축하는 모범이 됐다.

   계율은 불교도의 생활규범이자 삼학의 하나로서 수행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석존께서 입멸에 드신 이후 결집된 율장에는 다양한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 성격이 다른 많은 율장이 등장했다. 그리하여 중국에는 <사분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등 각종 율전이 번역됐지만 각각의 특징 못지않게 중국문화에 맞는 적절한 수용준비가 필요하게 돼, 중국문화에 토착화된 율종의 출현이 기대됐다. 그리하여 〈사분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광통율사 혜광이지만, 그것을 대성한 사람은 도선이었다. 그는 율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서 <사분율행사초〉, <사분율갈마소>, <사분율계본소> 등을 율종의 3대부라 일컫는다. 그는 당시 중국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로 지목됐고, 여러 서적을 지었다.

    • <사분률행사초(四分律行事鈔)>(3권) - 율전.

    • <속고승전(續高僧傳)>(30권) - 양(梁)나라 초에서 당나라초의 승려들의 전기.

    • <석가방지(釋迦方志)>(10권) - 인도 지리에 관한 저서.

    • <집고금불도논형(集古今佛道論衡)>(4권) - 도교를 낮추고 불교를 선양하려는 의도에서 쓰인 저서.

    • <광홍명집(廣弘明集)>(30권) - 불교를 옹호하는 논서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홍명집>은 승우(僧祐:445~518)의 <홍명집>을 계승해 발전시킨 것으로서 중국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율종의 3대부 - <사분율행사초>, <사분율갈마소>, <사분율계본소> 등 35부 188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겼다. 

 

 

 

*도성제(道聖諦, 산스크리트어 Mrga satya)---도제(道諦)라고도 한다. 4제(諦)의 하나. 깨달을 원인인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수행을 말한다. 이 인행(因行)으로 말미암아 번뇌와 업을 끊고 인생의 괴로움을 면한다. 곧 무위적멸(無爲寂滅)한 멸제(滅諦)의 경지를 증득할 길이므로 도(道)라 한다. 열반의 경지인 멸제(滅諦)에 나아가는 길에 대한 것이다. 그 길이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고, 그 핵심이 팔정도(八正道)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도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이상 도(道)의 여덟 가지 각지 중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는 혜(慧)의 도,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는 계(戒)의 도, 그리고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삼매(正定)는 정(定)의 도이다.

    우선 바른 견해(正見)에 대한 붓다의 말씀을 보자. “도제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을 말한다. 그 방법은 여덟 가지의 수행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가 곧 팔정도의 수행방법이다.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도성제는 위에서 제시된 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즉 고의 멸진에 이르는 구체적인 실천항목이다. 종교의 생명은 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데 있다. 걸어간다는 것은 곧 실천수행을 의미한다. 도성제의 구체적인 실천항목으로는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라 불리는 팔정도이다.

    ‘도(道)’란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이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길을 말한다.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팔정도(八正道)이다.---→팔정도(八正道) 참조.

   

*도솔천(兜率天, 산스크리트어 Tusita-deva)---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가 확립한 우주관에서 욕계(欲界) 6천 중 제4천이다. 산스크리트어 듀스타(Tusita)의 음역으로서, 의역해서 지족천(知足天) 또는 희락천(喜樂天) 등으로 번역한다.

    불교에서는 세계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산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있는 욕계 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은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머물고 있는 천상정토(天上淨土)를 말한다. 미륵보살이 등장하면서부터 총 27천 중 아래에서 4번째 위치하는 도솔천이 불교의 이상 세계인 극락과 같은 비중을 점하는 불국정토의 위치를 갖게 됐다. 이 하늘은 보관·칠보·광명·연화 등으로 장엄돼 있고, 자연히 생긴 악기에서 십선(十善)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설하는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천인들은 이 음악 소리를 듣고 높은 깨달음을 얻고자 발원한다는 것이다. 중생은 10가지 선업을 닦으면서 미륵보살의 정토세계에 태어나길 원하면 이 도솔천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곳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4백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칠보로 장식된 내원궁에서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머물고 내원궁 밖의 외원에는 온갖 즐거움이 가득해 끊임없이 유희가 이어진다. 그리고 외원에는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만족하며 머물고 있다. 미륵보살이 이곳 내원궁에서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며 인간이 사는 세상인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해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 미륵이 내려온 인간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성인이 되게 하고 열반에 든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륵상생도솔천경>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바라나시국의 칼파리 촌에서 태어난 한 바라문 계급의 아들인데, 부처님의 제자가 돼 교화를 받고 마침내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현재 그곳에서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미륵은 4천 세, 인간의 나이로 56억 6천 7백만 년을 보낸 뒤에 지상으로 내려와 성불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 고려 초기에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바라면서,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설법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미륵신앙이 크게 유행했다. 도솔천 보다 위에는 화락천과 타화자재천이 있고,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등은 도솔천 아래의 하늘이다.---→욕계 6천(欲界六天), 도리천(忉利天) 참조.

  

*도신(道信, 580~651)---선종 제4대 조사로서 중국 선종의 실질적 창시자로 여겨지는 선승이다. 도신은 ‘동산법문(東山法門)’을 열어 중국 선종교단을 형성 체계화했다. 일곱 살에 출가해 사미승이 됐고, 제3대 조사인 승찬(僧璨, ?~606) 선사에게 불법을 배웠다. 도신의 선사상은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신라 승 법랑(法朗, 632~?)에 의해 한반도로 전해졌다.

   도신의 선법인 염불선은 초기불교의 염불관을 계승 발전시킨 형태로서 부처님의 존재를 우주원리이자 생명의 근본인 법신불(法身佛) 관점에서 인식하고 닦는 수행법이다.

   제4조 도신 선사가 쌍봉산(雙峰山)에 사조사(四祖寺)를 세운 유래는 자못 흥미롭다. 새로운 절터를 찾는 도신에게 쌍봉산의 상서로운 기운은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며칠씩 금식하며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그 사연을 물었다.

    “스님, 왜 여기서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십니까?”

    “가사 한 벌 놓을 만한 땅에 절을 짓고 싶습니다.”

    “가사 한 벌의 땅 정도쯤이야, 좋습니다. 내가 시주하겠습니다.”

    도신이 던진 가사 한 벌이 덮은 땅은 놀랍게도 사방 십 리에 미치었다.

    마침내 도신은 쌍봉산 자락에 사조사를 짓고 농토를 개간해 농사를 짓는 한편 불법을 전파해 크게 선종의 문을 열었는데, 한 때 사조사의 수행 대중이 5백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쌍봉산과 같은 지역의 6조 혜능(慧能)이 주석했던 황매산(黃梅山)은 2조 혜가(慧可)가 주석했던 사공산(司空山), 3조 승찬(僧璨)이 주석했던 천주산(天柱山)과 더불어 ‘선의 황금 삼각지’로 불린다. 서로 백여 리 간격을 두고 있는 이 지역에서 2, 3, 4, 5, 6조가 100여 년간 선을 중흥시켰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도신 스님은 ‘서산(西山) 4조’ 스님으로 불린다. 스님이 주석했던 쌍봉산이 황매산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5조 홍인(弘忍)은 황매산 동쪽에 주석했다 해서 ‘동산(東山) 스님’으로 불린다.

    도신 대사는 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사상을 주장하고 몸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하는 농선쌍수(農禪雙修)를 실천하기 위해 탁발에 의존하던 종래의 공양방식을 지양하고 사조사 주변의 농토를 개간해 자급자족 하는 선풍을 확립했다.

    스님들의 건전한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켰고 관의 도움이나 백성들의 시주 없이 대중살림이 가능해져 세금을 줄일 수 있었다. 대사는 한 승려가 먹을거리를 얻어 평생 굶주림을 면하려면 좌선을 근본으로 수행하되 15년은 노동을 병행해야만 된다고 했으며, 이는 훗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하신 백장(百丈) 선사의 가르침보다 백년이나 앞선 선지식의 지혜였다.

    도신의 사상적 입장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등에 의하면 그가 천태 지의와 마찬가지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중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불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도신 대사는 훗날 간화선 수행법으로 발전한,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즉 마음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는 간심법문(看心法問)을 폈다. 간심법문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면서,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한다면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법문이다.

    도신 스님은 당 태종으로부터 ‘대의선사(大醫禪師)’라는 시호를 받은 의왕(醫王)이기도 하다. 사찰이 건립되고 대중이 모이자 자급자족은 물론 승단의 병(病)도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도신 스님은 직접 산에 나는 약초를 모아 <초목집성(草木集成)>이란 약서를 저술했으나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본초강목’에 명저로 소개되고 있어 도신 스님의 의술을 짐작케 한다.

    그리하여 당 태종 이세민의 옴을 치료한 대사는 상을 내리기 위한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네 번째, “이번에도 도신이 응하지 않으면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흠차대신의 칼 앞에 목을 내밀며 입궐을 거절해 흠차대신을 빈손으로 보냈다. 이러한 사실은 초조 달마대사의 ‘무공덕(無功德)!’ 일갈과 같은 맥락의 수행자 위의(威儀)일 것이다. 청화(淸華) 스님은 염불선의 효시를 제4조 도신이라 진단했다.

       ※사조사(四祖寺)---중국 후베이성(湖北省) 황강[黄冈]에 위치한 사찰. 도신(道信) 선사에 의해 624년에 창건됐으며, 황메이현(黄梅縣) 현 정부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5㎞떨어진 포어산(破额山)에 있다. 예전에는 쌍봉사(双峰寺)라고도 했다. 본래의 건축물은 매우 큰 규모로 축조됐으나, 전쟁으로 인해 소실돼 소규모로 축소됐다..---→동산법문(東山法門), 간심법문(看心法問), 심지법문(心地法門) 참조. 

 

 *도안(道安, 312~385)---중국 전진(前秦)~동진(東晉) 시대의 승려로 초기 중국불교의 기초를 닦은 대표적 학승(學僧)이다. 불교교단을 조직했으며 교단의 규칙을 성문화하고, 종래의 경전연구를 반성하며 새로운 방법을 수립하는 등 큰 공적을 남겼다. 대체로 도안 이전에는 인도 혹은 서역 출신 승려들을 중심으로 불교가 발전해왔다면, 도안 이후부터는 사실상 중국인에 의해 불교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인도 승 불도징(佛圖澄)에게 사사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전진(前秦) 왕 부견(符堅)은 강북을 통일하고 도안을 장안으로 모셔왔다. 그는 이때부터 385년 72세로 입적할 때까지 번역된 수많은 경전에 대한 목록을 제작해 후대 불교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최초의 경전목록인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을 도안이 지었다. 또 경전을 서분(序分)ㆍ정종분(正宗分)ㆍ유통분(流通分)의 3분과로 나누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까지는 불교경전 해석에 있어서 노장(老莊)의 무(無)사상을 빌어서 불교 반야사상을 설명하는 등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시대였으나 도안은 이를 비판하고 격의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공(空)’을 일체제법의 본성임을 풀이했다.

    또한 당시 출가자들 성은 주로 출생국이나 스승의 성을 따랐는데, 도안은 이를 비판하고 출가자는 모두 불타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이므로 석(釋)씨로 성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석도안(釋道安)으로 칭했고,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삼분(三分) 참조.

     

*도업(道業)---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는 교통사고의 위험 때문에 꼬리 물기를 하면 안 되지만 불법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끝없는 의문부호와 꼬리 물기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면 불교는 물음의 종교라고 하지 않았는가. 선가의 화두 "이뭣고"도 자신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도업은 수행이며 정진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 그것이 도업이다. 도업이란 도를 성취하고 진리를 성취하는 그런 업을 이르며, 도행(道行)이라고도 한다. 결국 수행이란 마음을 닦아 불성을 깨치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수행자가 상(相)을 떠나는 행위는 생각으로나 행위로나 참다운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보시한다 하더라도 상을 떠나서 행해야 그것이 도업(道業)이 된다. 중생이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선업에 지나지 않는다. 선업이 도업이 되려면 먼저 깨달음을 얻어 공관(空觀)을 확립해야 한다.

 

 

*도의(道義, 생몰연대미상)---우리나라에 최초로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을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 조계종단의 종조로 받들고 있다. 성은 왕씨(王氏). 법호는 명적(明寂), 시호는 원적(元寂)이며 도의는 법명이다. 북한군(北漢郡-지금의 서울) 출생이다.

   일찍이 출가해 784년(선덕왕 5) 바다를 건너 당나라 오대산으로 가서 공중으로부터 종소리를 듣는 등 문수보살의 감응을 얻었다. 조계(曹溪)로 가서 혜능(慧能)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을 참배했을 때, 조사당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강서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 ~ 814) 선사에게 법을 물어 의혹을 풀고 지장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백장산(百丈山)의 백장(百丈懷海, 720~814) 선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강의 받았는데, 그 때 백장이 “강서의 선맥(禪脈)이 모두 동국승(東國僧)에게 속하게 됐구나.” 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무르다 821년(헌덕왕 13) 귀국해 선법(禪法)을 펴고자 했으나, 당시 신라 사람들이 교학(敎學)만을 숭상하고 무위법(無爲法)을 믿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 시절인연이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제자 염거(廉居/廉居, ?~844)에게 남종선을 전하고 죽었다.

   도의 선사의 부도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상복리 억성사지(億聖寺址)와 울산시 상북면 석남사(石南寺)에 있다. 억성사는 강현면 둔전리 진전사(陳田寺)의 말사로서 진전사에서 8km 북쪽 지점에 위치해 있다.

   도의 선사로부터 법을 받은 염거(廉居) 화상 또한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음을 알고 긴 침묵 속에 수행에 전념하다가 제자 체징(普照體澄, 804~880)에게 법을 전하고 입적했다. 그 후 체징은 전라남도 장흥의 가지산으로 옮겨 가지산파(迦智山派)를 세워 크게 선풍을 떨쳤다. 그런데 이 때 도의를 제1세, 염거를 제2세, 자신을 제3세라고 해서 도의를 가지산파의 개산조로 삼았다.

  

 

*도의청정(度疑淸淨)---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마음의 청정(visuddhi)을 닦음에 일곱 단계가 있어, 이를 칠 청정(七淸淨)이라 하는데, 그 네 번째가 도의청정이다. 초기경전인 <역마차경(驛馬車經/Rathaviniitasutta)-중부아함(맛지마니까야) 제24경>에 실려 있다.

도의청정(度疑淸淨)이란 일체의 애매함ㆍ의심ㆍ어중간한 마음 등이 사라지고 마음이 단단하게 목적을 향해서 직진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의대생이지만 문학도 하고 싶고, 고고학도 하고 싶고, 음악도 하고 싶다는 등의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부의 연구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타 학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의학부의 연구에 방해가 되므로 애매함이나 엉거주춤한 마음을 지우고 의학의 연구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그로부터는 자신의 길(道)을 편하게 나아간다. 위빠사나 실천의 경우도 그와 닮은 단계가 있다.

    칠청정 중에 제3단계인 견청정(見淸淨)에 도달한 수행자는 위빠사나 명상의 경험으로 붓다께서 설하신 가르침은 그대로 진리임을 납득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실천을 계속해 붓다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의 경험으로 실증해간다.

    그리고 생명(命)에 대해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언급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들으면, 「저것도 옳은 것 같다. 이것도 옳은 것 같다. 혹은 둘 다 틀린 것 같다.」등의 의문이 생겨나 마음이 애매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애매함, 엉거주춤함, 의심으로 번민하고 있는 것은 마음의 오염이다. 객관적으로 자기관철을 계속해가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증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남의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게 된다. 즉, 견청정에서 한 단계 마음이 성장한다. 그리고 깨끗하게 된다. 그것이 도의청정(度疑淸淨)이다. 의심을 건너 마음이 청정해지는 단계에 이른다는 말이다.

  

*도인(道人)---도인이란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와서 중국문화와 만나면서 기존 비슷한 말을 사용해 불교를 해석하고 번역했는데, 불교에서 이상의 인산상은 부처님이요, 보살이요, 견성한 사람, 불교적 수행에 달통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이 도인이라 하겠는데, 말하자면 도인(道人)이란 인류의 어버이가 돼 범부중생을 이끌어줄 사람이다.

    하므로 도인이라 함에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다만 세속에 살면서도 연잎처럼 물들지 않고 늘 청정해 그 행동이 반드시 따를 만하고 그 말이 반드시 표본으로 삼을 만해야 할 것이. 그러려면 일관성이 있고, 확실성이 있어야 하며, 언제 어떤 상황이건 그 말과 행동이 언제나 똑 같다. 이와 같이 도인의 모습은 불변부동이요, 일관성을 지녔기에 흔들림이 전혀 없다. 범부중생은 현상을 보고 그게 본 모습인줄 알지만 도인은 현상(現象)이 아닌 본래모습, 즉 일체만물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친견한다.

    그리하여 당나라시대 위앙종(潙仰宗)을 연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는 어느 날 상당(上堂)해서 도인(道人)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를 닦는 사람의 마음은 거짓 없이 곧고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으며, 허망한 마음씨도 없어야 한다. 듣고 보는 모든 일상에 굽음이 없어야 하며, 그렇다고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마음이 경계에 꺼들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은 단지 물든 세속사를 치유하는 측면에서 말씀하셨을 뿐이니, 허다한 나쁜 지견과 망상 습기가 없으면, 맑고 고요한 가을 물처럼 청정할 것이다. 맑고 잔잔해 아무 할일도 없고 막힐 것도 없으리니, 그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부르기도 하고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라고도 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서, 원래의 산스크리트 본에는 없는 부분이다. 비록 산스크리트 본에는 없지만, 한역에서 그 부분을 삽입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번역이라고 한다.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밀인데, 이 말 앞에 원인이 되는 문장이 있다.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라는 구절이다.

    그리하여 반야 지혜를 깨치면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텅 빈 것임을 알게 되고, 자아라는 실체가 없음을 알게 되며,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중생의 천만가지 고통은 다 집착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집착에서 벗어나면 고통은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도작(道綽, 562-645)---당나라시대 승려. 정토교 제1조 담란(曇鸞, 476~542)의 행적에 감복해 정토종에 귀의했다. 그때가 48세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정토교의 선포에 노력했다. 특히 <무량수경>을 중시해서 설법 교화했다. 저서에 <관무량수경>의 해석서인 <안락집(安樂集)>이 있다. 그는 <안락집>을 통해 불법을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으로 분별하고, 교법이 시대와 근기에 상응해야 공덕을 성취하기 쉽다고 했다. 그의 문하에 선도(善導, 613~681)가 나와 정토교를 대성시켰다.---→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선도(善導, 613~681) 참조.

  

*도제(道諦)---→도성제(道聖諦) 참조.

   

*도종지(道種智)--- 삼지(三智)의 하나. 삼지란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말하는 일체지(一切智)ㆍ도종지(道種智)ㆍ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하는데, 도종지란 모든 현상의 차별을 아는 지혜. 혹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수행을 두루 아는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삼지(三智) 참조.

  

*도차제(道次第, Lam rim)---티베트 불교에서 사람을 작은 사람, 중간 사람, 큰 사람의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즉, 티베트 불교에서 도(道)의 차제(次第-단계)는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시설하신 가르침으로서 사람을 작은 사람, 중간 사람, 큰 사람의 세 종류 사람으로 설명하며, 이에 대해 설명을 한 원전이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 1357~1419)가 지은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이다. 이 구분의 기준은 지향하는 목적을 근거로 해서 구분한 것이다.

     • 작은 사람 ― 현생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현생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생이 있음을 알려주고, 업에 대한 과보가 있음을 설명한다. 악업을 지어 내생에 지옥, 아귀, 축생의 악도에 떨어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생각하게 하고, 악업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의 가르침을 일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사람에게는 업보의 가르침과 삼귀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감로수의 가르침이다. 악업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생각하는 만큼 귀의하는 마음도 커진다.

     • 중간 사람 ― 내생의 복락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내생의 복락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수행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내생의 복락도 물거품이다. 아침 이슬처럼 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사람에게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일러준다. 그 가르침이 고ㆍ집ㆍ멸ㆍ도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이고, 연기(緣起)의 가르침이다.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의 고통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 인간의 고통을 살펴봄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고통의 원인이 업과 번뇌임을 알고, 연기한 것을 알아야 한다. 고통의 없음도 연기한 것임을 앎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난다.

     • 큰 사람 ― 중간 사람과 달리 일체중생과 함께 부처님 깨달음으로 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을 보살이라 한다. 보살은 자기 혼자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과 적멸에 들지 않는다. 항상 중생의 고통을 보고 있기 때문에, 대자대비의 마음 때문에 보살은 혼자 무여열반에 들지 않는다. 보살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부처님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 가능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보살은 오늘도 부단히 노력한다.---→총카파(Tsong–kha–pa) 참조.

   

*도탈(度脫)---해탈(解脫)의 다른 표현이다. 도(度)는 건널 도, 탈(脫)은 벗을 탈, 그래서 미혹한 중생이 번뇌의 고해에서 괴로워하며 생사만을 되풀이 하고 있음에서 구출해 생사 없는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의 저 언덕[피안]으로 건네주는 일을 말한다. 모든 번뇌와 속박을 끊어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도피안(到彼岸, 산스크리트어 Paramita)---파라미타(Paramita)를 소리 번역해서 바라밀 또는 바라밀다라 하고, 의역을 해서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度)라고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인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인 정토(淨土 - 열반)에 다다르는 일, 또는 그를 위한 보살의 수행,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피안은 깨달음 세계이고, 미혹의 세계인 차안(此岸)과 상대되는 말이다. 따라서 도피안은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 즉 열반을 의미한다.

피안은 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이데아와는 다르다. 피안은 자신 속에 내재하며 자신이 변화된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용어로 열반ㆍ해탈ㆍ무위ㆍ적정 등이 있다. 모두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뜻하며,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피안이라 할 수 있다.---바라밀(波羅蜜) 참조.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후한(後漢)시대 지루가참(支婁迦讖)이 한역,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계통에 속한다.

   그리고 요진(姚秦)에서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번역했다. 보살은 오직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 바라밀을 체득하는 방법과 그 바라밀의 무한한 공덕을 설하고 있다.〈도행반야경〉의 최초 부분이 반야경전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반야경전 대부분은 스스로 그것이 남방(南方-남인도)에서 기원한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도현(道顯)---고구려 승려. 일본에 가서 대안사(大安寺)에 머무르면서 교수하는 한편 <일본세기(日本世紀)>라는 역사책을 지었다고 한다.

   

*도회(掉悔)---도(掉)는 들뜬다, 흔들린다는 뜻, 회(悔)는 뉘우친다는 말. 들뜨거나 한탄하는 번뇌를 말한다. 정법(正法)을 수행하기로 서원(誓願)을 세운 사람이, 경계를 당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후회스런 생각이 들어서 서원이 물러갈 경우, 이를 도회라고 한다. 곧 정법 수행을 방해하는 번뇌가 된다.

    

*도회개(掉悔蓋)---오개(五蓋)의 하나. 들뜨거나 한탄하는 번뇌. 여기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입의 동요[구도(口掉)]이니, 이른바 세속의 노래를 좋아하고 부르거나 기뻐하며, 옳고 그름을 논쟁하고 다투고, 이익 없는 희론과 세속적인 상스러운 언어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을 구도(口掉-입의 동요)라고 한다.

    둘째는 몸의 동요[신도(身掉)]이니, 이른바 말을 타고 이리저리 치달리듯 방일하기만 좋아하고, 힘으로 서로 치고 받는 것, 또는 경박한 몸짓을 말하나니, 이것을 신도(身掉-몸의 동요)라고 한다.

    셋째는 마음의 동요[심도(心掉)]이니, 심정이 방탕해서 마음의 감정대로 방일하게 놀아나거나 나쁜 감각이나 견해를 갖는 것. 감정이 방탕하고 방종한 생각을 반연하며 문예와 세간의 재주나 기술을 생각하는 온갖 나쁜 각관(覺觀), 천박한 정신을 말하나니, 이로 인해 법의 이익을 잃는 것이다. 이것을 심도(心掉-마음의 동요)라고 한다. 이 동요의 법은 동요한 뒤에 그로 인해 뉘우침이 생기는 것이니, 크고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 항시 쫓기는 마음에 시달리며 두려워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심도인데, 사람 마음을 파괴한다.

    

*독각(獨覺,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연각(緣覺)ㆍ독성(獨聖)ㆍ벽지불(辟支佛, pratyeka-buddha)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불린다. 다른 나라에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신앙대상이다. 불교계에서는 나반존자가 18나한 중의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는 나반존자상을 모시기도 하지만 독성 탱화가 많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독성(獨聖)을 단군 내지는 환웅일 것이라 하기도 한다.

    벽지는 산스크리트어 음역이다. 소승을 보통 성문(聖聞)이라 하고 성문보다 조금 나은 지위를 독각이라 하는데, 독각도 소승에 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붓다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승도 없이 스스로 깨달아, 고독을 즐기며 설법도 하지 않는 불교 성자. 과거 숙세(夙世; 지나간 시대)에 선근(善根;좋은 과보를 낳게 하는 착한 일)이 많아서 자연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12인연이나 인연법을 관찰해 깨닫기도 한다. 독각은 부처가 없거나 문화가 없는 시대, 심지어 불교가 없는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비록 대철대오 할 수는 없을지라도 현실을 초월한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다.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인연법칙을 관찰해 정각(正覺)을 이룬 뒤 삼칠일(21일) 동안 선정(禪定) 상태에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자기가 깨달은 인연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어떻게 설파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그러나 정각(正覺)의 진리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기 때문에 그대로 열반에 들어버릴까 하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상태를 독각이라고 볼 수 있다.

    독각에는 부행독각(部行獨覺)과 인유독각(麟喩獨覺) 두 가지가 있다.

     ① 부행독각은 앞서 성문이었을 때 불환과(不還果-아나함과)까지 얻고 제4아라한과를 증할 때에 부처님의 교도를 받지 아니하고 홀로 스스로 깨친 것을 말한다.

     ② 인유독각은 홀로 살면서 100대겁(大劫) 동안 수행해 선근공덕을 닦아 마침내 홀로 깨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부행(部行)이라 함은 성문이었을 때 여럿이 모여 단체수행을 한 것을 말하고, 인유(麟喩)라 함은 처음부터 짝이 없는 독주자(獨住者)임을 말하는 것이다. 벽지불을 오직 자리(自利)의 행만이 있고, 이타(利他)의 생각이 없으므로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 없으며, 따라서 불과(佛果)을 이루지 못하는데, 이것을 벽지불의 사비상(捨悲障)이라 한다.---→나반존자(那畔尊者), 독성(獨聖), 연각(緣覺), 벽지불(辟支佛) 참조.

   

*독경(讀經)---독경은 불경 경문(經文)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독송(讀誦)이라고도 한다. 독경은 부처님 가르침에 깊은 믿음을 내고 감사하고 환희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일심으로 불경을 외우거나 읽는 것이다. 불자가 독경을 해야 하는 것은 신행상(信行上)의 일과이며, 또한 수행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독경은 난해한 한문경전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그 뜻을 명확히 한다는 데서 출발했으며, 범어(梵語) 부분의 경우에는 범어 그대로 소리 내 읽음으로써 그 음에 실린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의식에 있어서는 독경의 음성과 음률의 중요성도 강조 있다. 그래서 의식에 있어서 독경을 할 때는 고저, 장단, 강약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독경(讀經)은 대표적인 경전공부 방법의 하나로서 경전공부임과 동시에 모든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경을 하는 것은 무엇을 빌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일념(一念)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경(寫經)과 마찬가지로 한 마디 한 마디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을 공경심을 내어서 정성스럽게 읽되 경을 읽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읽혀서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생활하는 가운데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커다란 목적이 있다. 즉, 독경을 통해 부처님 교훈을 되새기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를 받들어 지키고 수행을 쌓음으로써 생활에 밝은 지혜를 얻어 마침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성불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경으로 독경 소리를 내면 소리의 크기와 깊이에서 무리가 없는 유연한 독경이 이루어질 것이다.

   

*독댄(Togden)---독댄(Togden)은 티베트 불교에서 수행성취를 통해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맹렬 전진하는 수행승들을 말한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무문관(無門關) 수행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들은 출가수행자이긴 하지만 밀라레빠(Milerapa, 1052~1135)의 전통에 따라서 머리를 깎지 않고 하얀색 가사를 걸치는 특징이 있다.

    인도의 북서지방의 따시종에는 15년 이상의 무문관 수행을 지속하는 많은 독댄들이 있다. 12년간의 무문관 수행을 마치면 비로소 밀라레빠의 하얀색 가사를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평생을 정해진 공간 속에서 밀교수행에 전념을 하지만 가끔씩 전법, 교육, 의식 등의 임시소임을 맡아서 무문관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따시종은 인도의 북서지방에 위치한 작은 산간 지역으로,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 온 수행승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따시종의 독댄들은 수행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재건과 포교활동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밀라레빠(Milerapa) 참조.

    

*독두사문(禿頭沙門)---독두(禿頭)란 대머리를 뜻함. 비록 머리를 깎았으나 사문의 행이 없는 출가자. 옷이나 밥을 위해 머리를 깎고 출가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묘한 말로써 민중을 현혹시키고 계를 지키지 않고 수행이 없는 비구를 꾸짖는 말이다. 독인(禿人)ㆍ독노(禿奴)ㆍ독두거사(禿頭居士)라고도 한다.

    ‘독’은 머리털이 빠진 것, 곧 머리카락이 없다는 말이다. 머리털을 깎아 겉모습은 스님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속인과 다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계율 또한 지키지 않아서 반승반속(伴僧半俗) 혹은 비승비속(非僧非俗)인 파계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두의식(獨頭意識)---전오식(前五識)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의식하는 작용. 6식(識) 가운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등 전5식은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등 5근(根)이라는 육체의 다섯 부분에 의지해 활동하는 심식들이다. 그런데 제6 의식은 의(意)를 근거로 해서 활동한다. 그 제6식인 의식은 전5식보다 포괄적인 사고를 하는데, 판단이나 추리, 상상 및 기억 등 넓은 의미의 의식이며, 나아가 이에 바탕 한 경험을 종합하고 통일시키는 통각작용(統覺作用)과 요별의식(了別意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6의식은 전5식과 동시에 생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전5식과 공동으로 작용하는 오구의식(五俱意識)과 단독으로 작용하는 독두의식(獨頭意識)이 있다.

   독두의식이란 전5식과 공동으로 작용하지 않고 내면세계에서 단독으로 의식활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생각하는 일이라든가, 현재의 일은 물론 미래의 일을 추리하고 예측하며 계획하는 일, 혼자서 깊은 사유에 빠져 생각하는 일, 또 여러 가지 잡념이나 상상 따위를 야기하며 온갖 생각을 할 때가 많은데, 이러한 심리작용 등이 모두 독두의식으로서 그 종류가 매우 많다. 이와 같이 독두의식에 속하는 내용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내용별로 다시 분류하면, 좌선할 때의 정중의식(定中意識-머릿속에 온갖 출몰하는 상념들)과 독산의식(獨散意識-어떤 대상도 없이 단독으로 실체가 없는 이름이나 모양을 대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공상, 망상, 환상들), 몽중의식(夢中意識-꿈속에서의 의식활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정중의식(定中意識) - 제6의식에는 정중의식(定中意識)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는 모든 차별과 혼란에서 벗어난 정심(定心)과 상응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통해 산란의식과 같은 마음을 정지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선정(禪定) 가운데 유지되는 의식을 말하며, 동시에 입정(入定) 가운데 나타나는 지혜로운 마음을 정중의식이라 한다. 명상이나 참선 수행할 때의 의식을 말한다. 불자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의식활동이다.

    2) 독산의식(獨散意識) - 선정 중의 의식은 아니면서 전5식을 동반하지 않고 일어나는 의식(제6식)이다. 독산의식은 평소의 의식이 안정되지 못하고 다른 심식과는 관계없이 단독으로 헤매는 것을 뜻한다. 단독으로 헤매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상실하고 인식의 대상(法境)과도 일치하지 못하며 방황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때의 의식은 산만하고 분열된 현상을 보이며 정처 없이 밖을 향해 달려 나가려는 산란심소(散亂心所)를 야기하게 된다.

   독산의식은 산란하게 흩어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암기력(暗記力) 역시 힘을 쓰지 못한다. 이들 내용을 종합해 산란의식(散亂意識)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의식이 극도로 정상을 잃고 산만하게 되면 비정상의식으로 변하게 되며, 결국 광식(狂識)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때의 광식은 사실을 곡해하는 전도(顚倒)된 마음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를 미쳤다고 표현한다.

   예들 들면, 눈병이 난 사람이 푸른 하늘을 누렇게 보는 것과 같이 모든 대상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착각과 환각을 야기하는 예가 많다. 이런 현상을 비량심(非量心)이라고 한다. 즉, 그릇되게 인식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럴 때 인식 내용을 세 가지로 구별해 말한다. 그것을 삼량(三量)이라고 하는데, 양(量)이라는 말은 헤아린다는 뜻으로서 양탁(量度)이라고 하며, 이는 대상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삼량에는 현량(現量), 비량(比量), 비량(非量)의 셋으로 구별한다.

     • 현량(現量)은 앞에 놓인 사물을 틀림없이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무엇이나 틀림없이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 비량(比量)은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량은 종합해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나 간혹 틀리게 인식될 수 있는 확률이 많다. 예를 들면, 산 너머에 연기가 보일 때 어떤 집에 불이 났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집에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를 착각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비량(比量)은 틀릴 수 있는 인식의 내용을 가진다.

     • 비량(非量)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매사를 그릇되게 판단하는 인식의 내용이다. 이상과 같이 인식의 내용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산란의식은 비량(非量)의 인식을 파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해 산란심을 없애는 정신 수양이 매우 필요하다 하겠다.

    3) 몽중의식(夢中意識) - 몽중의식도 독산의식이긴 하지만 깨어 있을 때의 의식과는 구분한다. 몽중의식은 글자 그대로 꿈 가운데서의 의식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꿈은 천태망상으로 나타나고 또 비현실적인 꿈들이 많아 꿈을 꾼 자신도 꿈의 내용을 믿으려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러한 꿈의 주인공을 불교에서는 제6의식의 작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식학에서는 이들 꿈을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순전히 환상이며 거짓작용이라는 것이다. 이는 의식이 아무런 근거 없이 헤매는 것이어서 되도록 꿈이 없는 것을 정신건강에 유익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꿈은 공허한 의식작용으로서 실다운 것이 없기 때문에 의식의 피로만 가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꿈을 가몽(假夢), 가찌 꿈이란 것이다.

   다른 하나의 꿈은 전혀 거짓된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이다. 그 이유는 <유가사지론> 등에서 꿈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사실이 의식을 통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므로 꿈은 전혀 현실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꿈을 실몽(實夢)이라 한다. 실몽의 경우는 유식학적으로 해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실생활 속에서 객관계와 주관계를 모두 포함한 법경(法境)을 인식하는 심식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오식과 같이 인식의 활동을 하면서도 최종적인 결정은 의식이 하기 때문에 그 결정적인 의식 활동이 꿈속에서 사실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구별해 수발업(隨發業)과 정발업(正發業)을 구분하기도 한다. 발업(發業)이라는 말은 행동을 하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눈, 귀, 코, 입, 몸 등 오온을 통해 활동하는 전오식은 자연발생적으로 외부의 인연에 따라 나타나며, 또 수동적으로 의식에 따라서 활동하는 심식들이기 때문에 전오식의 행동을 수발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6 의식은 전오식과 달리 의식적이고 사유적이며, 어떤 동작을 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전오식과 더불어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도 그 내용과 가치를 결정하는 심식은 곧 의식(제6식)이기 때문에 이 의식의 활동을 정발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의식의 기능은 매우 강력하고 주관계의 활동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그 활동의 업력이 이른바 아뢰야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다시 의식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잠이 깬 상태나 잠을 자고 있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항상 의식을 통해 평소 익혔던 일들이 현재의 심행(心行)과 신행(身行)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독사 비유경(빠알리어 Āsīvisopama-sutta)---<독사 비유경(S.197)>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사대(四大)를 네 마리의 독사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네 마리 독사에 기겁을 한 사내가 도망쳐 나와 팔정도(八正道)라는 뗏목을 타고 강 반대편의 피안(彼岸), 즉 열반(涅槃)에 도달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독영경(獨影境)---유식학에서 나오는 말이다. 독영경은 주관이 단독으로 착각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말한다. 즉, 독영경(獨影境)은 주관적 영향 하에 나타나는 망상적 경계이다. 제6식인 의식이 허공 꽃이나 토끼 뿔의 모습을 떠올릴 경우는 영상만 있고 의탁하는 본질이 없는데 이를 독영경이라 하는 일종의 환상이다.

   공화(空華)란 무엇인가? 눈병의 일종으로 눈에 꽃 모양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런 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게는 그 꽃이 실제로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야밤에 산에 가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흠칫 놀란다. 귀신도 아니면서 귀신이 돼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리하여 독영경은 별도의 객관적 존재가 없이 주관이 단독으로 드러낸 환영처럼 눈병 난 사람의 앞에 보이는 경계 같은 것이다. 독영경은 제6 의식에서 많이 일어난다. 홀로 독(獨), 그림자 영(影), 그래서 주관이 제멋대로 그려 낸 영상(影像)을 말한다. 영상이 왜 생기느냐, 대상을 분별하기 때문에 생긴다. 대상을 분별하는 것이 모두 독영이다.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다. 토끼 뿔, 거불 털, 그리고 새끼를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따위를 말한다. 뱀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지만 의식상으로는 존재한다. 그것이 독영경이다.

   때로는 자신이 마음속에 갈구하고 있는 바를 외부로 투영함으로써 그 외부로 하여금 나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줄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토록 사랑한 사람이건만, 결혼해서 2년 반도 되지 않아 사랑은 시들고 만다. 사랑의 묘약, 그 유효기간은 2년 반이라는 보고가 있다.

   왜 그럴까? 진정으로 사랑한 그 사람, 그 당체를 좋아한 것인가? 사실은 그 사랑한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형의 형이상(形而上)을 덧씌워놓고, 그 형성된 ― 자기가 소망하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그 자기 주관, 원망(願望)을 투영해서 그 그림자를 절대화한 사랑, 그것을 일러 유식은 독영경(獨影境)이라 한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대개 독영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자부(犢子部, 산스크리트어 vātsī-putrīya)---붓다가 입멸한 후 300년경 부파불교시대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갈라져 나온 부파로, 가주자(可住子)를 파조(派祖)로 했다. 후에 독자부에서 다시 법상부(法上部) ․ 현주부(賢胄部) ․ 정량부(正量部) ․ 밀림산부(密林山部)의 4부가 갈라져 나왔다. 이 독자부에서 윤회의 주체로서 뿌드갈라(pudgala, 個我)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즉,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가 있다는 것인데, 마치 바라문들의 주장인 아트만(atman)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와 같이 윤회의 실체를 인정한 점에서, 불교 근본교리인 무아설과 상치되며, 이 때문에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 즉 불법 안에 있는 외도로 비난받았다.

   그런데 독자부는 교의적 공동체가 아니라 한 종족 또는 혈연 공동체가 모두 불교도로 전향해 독자부를 구성한 독특한 부파였다. 이것은 고오타마 붓다가 속한 샥카족이 집단으로 불교에 전향한 경우와 비슷하다. 따라서 독자부는 출가 사문(Śrāmaṇa)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혈통을 따르기 때문에 붓다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배치된다. 출가를 통하거나 계를 받아 상가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혈통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독자부 부파의 일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가의 전통에서는 이단적이었다.

   그리고 독자부는 만유(萬有)를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三世)와 무위(無爲)ㆍ불가설(不可說)로 나눈 소위 오법장설(五法藏說)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윤회의 주체로서의 뿌드갈라라는 실체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 뿌드갈라를 가현적(假現的) 존재로 파악하고 오온(五蘊)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해서, 그 설명이 곤란한 점을 인정하고 불가설장을 세운 것은 나름의 교리적 발전이었다. 아무튼 독자부의 입장이나 같은 입장을 취한 설일체유부나 경량부의 입장은 초기불교의 자아이론과 존재에 대한 관점을 벗어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개아(個我, 뿌드갈라/pudgala) 참조.

 

 

*독화살의 비유---→전유경(箭喩經) 참조

  

*돈교(頓敎)---얕고 깊은 일정한 수행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 도를 닦아가는 차례와 단계를 밟지 않고 모든 지위를 초월해 단박 깨달음에 이르게 함을 가르친 법문을 일컫는 말이다. 돈오(頓悟)와 같은 맥락이고, 점교(漸敎)에 대비된다. 돈교(頓敎)는 특별히 상근기의 지혜로운 수행자를 위해 문자 언어와 사량(思量)을 여의고 수행의 차제를 뛰어넘어 불성의 진여 자리를 성취케 하는 교법으로 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유마경(維摩經)> ․ <원각경(圓覺經)> 등이 있다.

    실제로 화엄종의 오교십종(五敎十宗) 교판에서 오교(五敎) 중 하나이고,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에서 화의사교(化儀四敎) 중의 하나이다.

    대체로 화엄은 돈교(頓敎)의 가르침이다. 화엄은 처음부터 완전한 세계로부터 시작된다. 당나라시대의 화엄 제4조 징관(淸凉 澄觀 : 738~839)도 화엄은 돈교임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궁극의 불교 가르침은 돈교라고 봤다. 부분적으로 세상을 보던 소승의 사상이 대승으로 오면서 전체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됐다. 소승적 눈으로 보면 세상은 분명 점교이고, 차제법문(次第法門)이란 말이다. 그러나 대승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 그냥 그대로 돈교이다. 본래성불(本來成佛)이 돈교를 뜻한다.

    이러한 돈오의 성불론은 선종에서 주장했다. 즉, 미망과 깨달음은 한 생각 차이이니 본성이 단지 일념에 상응해 중생의 자아가 바로 본성을 보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돈오설불론이다.

    그리하여 육조 혜능(慧能) 선사는 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지식들이여, 근기가 낮은 사람이 돈교를 듣는 것은 마치 약한 나무나 작은 풀이 큰 비를 만난 것과 같다. 뿌리가 약한 나무나 작은 풀이 큰비를 맞으면 모두 거꾸러져 더 자랄 수 없듯이 근기가 낮은 사람들도 이와 같다.

원래 반야의 지혜를 갖추고 있어 큰 지혜가 있는 사람과 차별이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

    이는 삿된 견해가 무거운 걸림돌이 되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렸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지 않으면 햇살이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는 본디 크고 작은 것이 없다. 하지만 모든 중생이 어리석은 이들과 슬기로운 이들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그 지혜가 같지 않다. 밖에서 찾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찾아 수행하면 자신의 성품을 깨달을 수 없으니 이는 근기가 낮은 사람이다.

만약 돈교를 듣고 알았다면 바깥 경계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늘 바른 견해를 일으킬 뿐 번뇌와 망상에 언제나 물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참 품을 본 것이다.”…

    그리고 “자성(自性)은 둘이 없는 불이법(不二法)이고, 불이법인 자성을 깨닫는 것이 돈교(頓敎)이다. 세계의 모든 법의 자성은 둘이 없는 불이법이고, 세계의 온갖 법을 볼 때 불이법으로 보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다만 언제나 어디서나 불이법을 보는 견성이 바로 돈교인 것이다. 불이이므로 당연히 선정을 닦아 해탈을 이룬다고 하지 않으며, 유루니 무루니 하고 나누지도 않고, 유위니 무위니 하고 나누지도 않으며, 중생이니 부처니 하고 나누지도 않고, 수행이니 깨달음이니 하고 나누지도 않는다.”

    돈교에는 문득 깨달음만 있을 뿐, 점진적인 수행은 없다. 문득 깨달아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면 만법을 대함에 언제나 불이법문 속에 있으니 늘 한결같고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혜능 선사는 이렇게 읊었다.

     “바른 견해를 일러 출세간이라 하고, 삿된 견해를 일러 세간이라 한다.

     삿됨과 바름을 모두 물리쳐버리면 깨달음의 본성은 완전히 흠이 없다.

     이 게송은 돈교이며, 또 진리의 배라 부른다.

     어리석게 들으면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깨달으면 찰나 사이일 뿐이다.”---불이법(不二法), 돈오돈수(頓悟頓修) 참조.

      

*돈오돈수(頓悟頓修)---불교는 수행을 강조한다. 때문에 돈오돈수(頓悟頓修:깨치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와 돈오점수(頓悟漸修:깨친 후에도 계속 닦아야 한다)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다.

    돈오돈수는 깨달은 이후(돈오)에 더 이상 궁극적으로 닦아야 할 것이 없이 단박에 모든 것이 전부 닦아졌으므로(돈수)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는 절대 경지의 깨달음을 일컫는 것이고, 돈오점수는 깨달은 이후(돈오)일지라도 오랫동안 살아온 습기(習氣, 과거의 잘못된 습관)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려면 점차로 습기 제거를 위한 닦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오점수는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처음 말하고 난 이후, 우리나라 불교에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진심(眞心)의 이치를 먼저 깨친 뒤에 오랜 습기(習氣)를 제거해가는 수행방법이다.

    그러다가 성철(性澈, 1912년~1993) 스님이 <선문정로(禪門正路)>라는 저서를 통해 지눌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비판하고 돈오돈수를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육조 혜능(慧能, 638~713) 계통에서 돈오돈수를 주장했고,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 이후 돈오돈수설을 고수하고 있다. 성철(性澈) 스님이 돈오돈수설을 주장한 후 돈오돈수(頓悟頓修)냐 돈오점수(頓悟漸修)냐 하는 것을 놓고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중국 그리고 티베트에서 깨달음이란 돈오냐, 점오냐 하는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禪)의 올바른 수증(修證)이고 돈오점수(頓悟漸修)설은 선의 이단 수증론이라고 역설했다. 적어도 선수증(禪修證)에 관한 한 돈오점수는 애초에 전적으로 틀린 것이고, 오직 돈오돈수여야 옳다고 말했다. 돈오돈수는 닦아서 깨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라서 범부중생으로서는 함부로 토를 달 일이 아니다.

    그런데 중생에겐 불성이 있다. 하지만 가려져 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바로 불성이 가려져 있느냐, 완전히 드러나 있느냐의 차이다. 뭐가 가리냐 하면 바로 내 마음이 가리고 있다. 그러니 이런 마음으로 죽어라고 찾아봐야 더더욱 가려질 뿐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이 마음이 그 부처의 성품을 가린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금강경>에 마음을 항복받으라는 내용이 나온다. 수행을 방해하는 게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만있지 않고 천방지축이다. 그래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어도 온갖 망상이 떠오른다. ‘나’란 놈은 즉 마음인데, 고요하게 있지 않으려고 한다. 고요하게 있으면 불성이 드러난다. 그러면 이 ‘나’라는 놈은 사라지게 된다. 박살이 난다.

    진리와 나(마음)는 상극이다. 진리가 드러나면, ‘나(我相)’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나’라는 놈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해를 한다. 그게 망상이다. 저 성품(불성)을 깨닫지 못하면, 이 마음을 ‘나’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아의 뜻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부처님 법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겨우 이론 밖에는... 그러니 해탈의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이다. 이 마음을 ‘나’로 알고 도를 닦고 있으니까 윤회의 주체를 갈고 닦고 앉아 있는 꼴이다. 움직이는 이 마음, 이걸 ‘나’로 알고 도를 닦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불교 이외에 도 닦는 곳들이 모두 다 이 마음을 ‘나’로 알고 도를 닦고 있다. 그래서 해탈이 그런 곳엔 아예 없다.

    일상적으로 쓰는 이 마음, 움직이는 이 마음은 허상이고, 진짜 ‘나’는 아니다. 그냥 생겼다가 사라지는 생각의 파편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 파편들이 계속 이어지니까, ‘나’가 항상 있는 줄 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인다. 마치 하늘의 구름과 같다. 항상 구름이 끼여 있어서 하늘의 태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태양은 언제나 거기에서 빛나고 있다. 헌데 그 구름을 단 한방에 모조리 치워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 수행을 하면서 조금씩 치워버리는 것이 돈오점수(頓悟漸修)이고, 한방에 확 치워버리는 게 돈오돈수(頓悟頓修)이다.

    이에 대해서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는, “성문(聲聞)은, 성인(聖人)의 마음에는 본래 지위ㆍ인과ㆍ계급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마음으로 헤아려 허망한 생각을 해 원인을 닦아 결과를 얻으려 한다.”고 하면서, “만약 상근기 중생이라면 문득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서 말을 듣고 바로 알아차려서, 다시는 계급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 즉시 본성을 깨닫는다.” 고 했다.

    그런가 하면, 황벽 희운(黃蘗希運) 선사는,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잃고 자기의 본래 마음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찾고 구하며 애써 노력해 순차적으로 깨달으려 한다면, 무한한 세월을 애써 구하더라도 영원히 깨달음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당장 마음이 없음만 못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는, “한 번 마침에 모두를 마치는 것이며, 한 번 깨달음에 모두를 깨닫는 것이며, 한 번 증득(證得)함에 모두를 증득하는 것이다. 마치 한 타래의 실을 끊음에 한 번 끊으면 한꺼번에 끊어지는 것처럼, 가없는 법문을 증득함에도 단계란 없다.”고 했다.---→돈오점수(頓悟漸修), 돈점 논쟁(頓漸論爭) 참조.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당나라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 8~9세기) 스님의 어록집이다. 대주 선사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문하에서 6년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돈오입도(頓悟入道)의 요지를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해탈은 오로지 돈오(頓悟)에만 있다고 했다. 여기서 ‘돈(頓)’은 일시에 망념을 없애는 것이며, ‘오(悟)’는 무소득(無所得)을 깨닫는 것이고, 돈오를 이루려면 좌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문장은 대부분 평이하며, 기발한 표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은 선 체험이 담겨 있어 주목된다. 다음은 <돈오입도요문론>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이 논을 지은 이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大株 慧海) 스님이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祖堂集)>권14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마조 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대주 혜해 스님은 건주(福建省) 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월주(浙江省)의 대운사 도지(道智) 스님에게 출가해 득도했다. 그 후 스님은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 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자가보장(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佛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 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사용이 자재한데 어찌해서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끝에 혜해 스님은 크게 깨쳐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知的)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스님은 뛸 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 스님을 시봉했다. 그 후 도지 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 스님을 봉양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 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서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저술했다.

    이 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 스님이 훔쳐서 마조 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하고 감탄하시었다. 대중 가운데 혜해 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大珠)은 바로 혜해 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 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 보니 큰 도인임에 틀림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됐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혜해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부하게 됐고, 그 후 혜해 스님을 대주(大珠) 스님이라 부르게 됐다.”

      

*돈오점수(頓悟漸修)---줄여서 돈점(頓漸)이라 한다. 불교에서 선(禪) 수행을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진심(眞心)의 이치를 먼저 깨친 뒤에 오랜 습기(習氣)를 제거해가는 수행방법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 1158-1210) 스님의 주장이다.

돈오(頓悟)란 단박에 깨닫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돈오돈수란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인데, 육조 혜능(慧能, 638~713) 계통에서 돈오돈수를 주장했고,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 이후 돈오돈수설을 고수하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성철(性澈, 1912년~1993) 스님이 돈오돈수를 주장했다.

    지눌(知訥) 스님은 깨침과 닦음의 이론으로 선오후수(先悟後修)인 돈오점수를 주장했거니와 돈오점수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 먼저 돈점(頓漸)이란 말이 어떤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깨침과 닦음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깨침과 닦음이 시간과 단계를 거치는 점차적인 것인가[漸], 아니면 시간과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頓] 가능한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어왔다. 특히 대승불교에서 그러한 논의가 활발해 점차적이라고 보는 입장을 점문(漸門) 혹은 점교(漸敎), 바로 가능하다는 입장을 돈문(頓門) 혹은 돈교(頓敎)라고 했다. 그러나 돈점에 관한 논의는 쓰임에 따라 각기 다르니 그를 대략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부처님 설법형식에 의한 구별 - 예를 들면 근기를 초월해 바로 설했다는 <화엄경>은 돈교, 근기에 맞추어 점차로 설한 <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등의 여러 경은 점교.

     ② 사상의 내용에 의한 분류 - 일정한 차례에 따르지 않고 단번에 해탈을 얻는 방법을 말한 것을 돈교, 원칙적으로 차례를 밟아서 해탈케 하는 가르침을 점교.

     ③ 수행의 과정에 따른 구별 - 사상 상의 돈교에 의해 일시에 깨침을 얻는 것을 돈오, 점교에 의해 수행해 첨차로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나아가는 것을 점오. 이 경우 전자는 수행하는 절차와 경과하는 시간을 말하지 않으나 후자는 그 과정으로 칠현(七賢), 칠성(七聖), 52위(位),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등을 말한다.

     ④ 선종에서 깨침을 기준으로 한 분류 - 시간과 차제를 거치지 않고 일시에 바로 깨칠 것을 주장하는 것이 돈, 점차로 차제를 밟아 깨친다고 하는 것이 점. 물론 지눌이 논의하는 돈점은 선(禪)에서 깨침을 중심으로 논하는 입장이다. 즉, ④의 입장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선에서 돈점설의 배경은 어떠한 것인가?

    선에서 돈점설의 원형은 초조 달마(達磨, ?~528)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입은 돈오로 사행은 점수로 각기 대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돈점의 논의를 위해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단경>에서의 이른바 “남돈북점(南頓北漸)”이 혜능(慧能)의 친설인가 하는 의문은 접어두고라도 적어도 거기서 선에서의 돈점논의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남 ‧ 북종이란 말은 육조 혜능과 그 문인들을 남종, 신수(神秀, 606?~706)를 북종이라 했음은 주지의 일이다. 그러나 그들 간에는 지역적 차이 이전에 선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현저했으니, 근본적으로 남의 혜능이 돈오를 강조했다면 북의 신수는 점수를 강조했다. 혜능의 가풍을 남돈선(南頓禪) 혹은 남돈종(南頓宗), 신수의 가풍을 북점선(北漸禪) 혹은 북점종(北漸宗)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신수와 혜능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바로 점문과 돈문, 점종과 돈종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신수(神秀)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본래청정하다. 이것을 지키고 잃지 않겠다는 노력이 종교적 실천이며 닦음이다. 몸은 보리수며 마음은 명경대다. 티끌에 더럽히지 않도록 신ㆍ구ㆍ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지키고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학(三學)이란 악을 짓지 않는 것이요[戒], 뜻을 맑히는 것[定]이며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慧]이다. 신수에 있어서 마음은 거울과 같다. 따라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마음의 거울에 티끌이 묻지 않도록 열심히 털고 닦는 일이다. 즉, 그의 선은 ‘거울 닦는’ 작업이며, 그것은 ‘닦음’에 중점이 있다. 이러한 신수 선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것이 돈황문서 중의 하나인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磨南宗定是非論)>이 라는 혜능의 제자 신회(神會, 670~762)의 저술이다. 이 책은 8세기경 신회가 북종을 이단으로 몰아치며, 남종을 선양한 기록으로 북종 신수의 가르침을 가리켜 “마음을 응집해서 명상하고, 마음을 가라 앉혀서 고요함을 유지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밖을 제어하고, 마음을 닦아 안으로 깨달음을 구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신회에게 이러한 가르침은 ‘우자(愚者)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단경> ‘남돈북점품’에서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住心觀靜)하는 것”이라는 북종에 대한 <단경>의 평과 일치한다.

    여기에 비해 혜능의 남종선은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는 사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요, 깨침을 강조할 뿐인 것이다. 그야말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소식이다. 그에 있어서 선(禪)은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거울 닦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하는 것’은 선(禪)이 아니라 ‘병(病)’이다. 선은 혜능에 의하면 본래 산란하지 않은 자성(自性)에 눈뜨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성자오(自性自悟)요, 돈오돈수(頓悟頓修)이며, 역무점차(亦無漸次)인 것이다. 여기서 ‘돈오돈수 역무점차’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깨침이란 점차적인 것이 아니라 돈오며 돈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혜능의 삼학은 밖으로 무엇을 닦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품으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자기성품으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계(戒)요, 정(定)이며, 혜(慧)인 것이다. 이는 바로 자성이 일상생활에 밝게 드러나는 일행삼매(一行三昧)요, 그러므로 돈수인 것이다. <단경>은 남돈가풍은 대근지인(大根之人)을 위한 수승한 가르침이요, 신수의 북점가풍은 소근지인(小根之人)을 위한 열등한 가르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선의 돈점(頓漸) 논의는 남북종 간의 많은 논란이 돼오다가 징관(澄觀, 738-839)과 종밀(宗密, 780-841)에 이르러 이론적으로 체계를 지어 구분했다. 지눌에 의하면, 징관은 깨침[悟]을 닦음[修]에 종속시켜 점의 문을 세웠고, 종밀은 닦음을 깨침에 종속시켜 돈의 문을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같은 돈오점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돈 ‧ 점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즉 징관은 점문(漸門)의 입장에서 수(修)를 강조하는가 하면, 종밀은 돈문(頓門)의 입장에서 오(悟)를 강조하는 돈오점수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징관과 종밀의 입장을 섭렵한 다음에 지눌은 그들의 돈과 점을 아울러 그 자신의 돈오점수설을 확립했다.

    지눌은 “돈오란 범부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해, 제 성품이 참 법신임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허덕이며 헤매다가 갑자기 선지식의 지시를 받고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보면 번뇌 없는 지혜의 본성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니 그 때문에 돈오라고 한다.”라고 했다.

    돈오란 ‘심즉불(心卽佛)’이라는 사실에의 눈뜸이며, 자기존재의 실상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다. 돈오가 있기 전에 ‘나’에 대한 인식은 ‘사대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미혹이었다. 그 존재에 대한 미혹의 결과가 부처를 찾으면서 마음 밖으로 추구하는 이른바 ‘외구(外求)’이다. 그러던 것이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일념회광(一念廻光)해서 마음을 반조(返照)했을 때 존재의 실상이 밝게 드러난다. 그 드러난 모습은, ① 본래 번뇌가 없으며[本無煩惱] ② 무한한 지혜가 본래부터 갖추어져서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자리라는 것이다.

    본래 번뇌가 없다는 사실의 발견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투철한 앎이 없을 때 번뇌는 끊어야 할 대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오는 본래 번뇌란 실체가 없고 따라서 끊어야 할 대상도 아니라는 사실에의 눈뜸이다. 이 눈뜸은 일념회광으로 비로소 가능하다. 한 생각의 돌이킴으로 해서 견자본성(見自本性)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념회광과 견자본성은 하나이며 동시이다. 그러므로 ‘돈(頓)’인 것이다. 지눌은 반조자심(返照自心), 회광반조(廻光返照) 등의 표현을 함께 쓰기도 한다. 일념회광은 단순한 지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실상을 확실히 아는 생생한 체험이며, 그것은 미(迷)에서 오(悟)로의 질적인 전환을 말한다. ‘내가 부처’라는 말은 바로 이때에 터지는 탄성이다.

    이렇게 자성의 참모습을 분명히 깨쳐 아는 돈오는 수행의 구극이며 완성인가? 지눌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지눌에 의하면, 돈오란 불과(佛果)를 증득한 최후의 완성이 아니라 처음으로 마음의 실상에 눈뜨는 체험이며, 따라서 완성을 위해서는 점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음의 성상(性相)을 확실히 아는 것이 구태여 완전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오는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참다운 닦음의 출발이며 진정한 의미의 신(信)의 확립인 것이다. - 강건기

돈오점수론은 깨쳤더라도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다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다. 훈습론(熏習論)인데, 훈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과거부터 익힌 어떤 습관을 말한다. 정확히 말해서 훈습이란 어떤 향기가 옷에 밴 거나 내 몸에 밴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습기(習氣)라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생각의 전환이 왔다고 그래서 모든 생활이 단번에 360도로 전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돈오점수설의 기초이다. 돈오돈수설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오점수설, 돈오돈수설 모두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수타니파타(Suttanipata-경집/經集)>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오는 것도 아니고, 점차적으로 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게 붓다의 근본입장이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돈오도 아니고 점오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돈점 논쟁은 비불교적인 논쟁이라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에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번잡해지고 쓸데없는 걸 가지고 논쟁을 하는 그런 형태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돈오돈수(頓悟頓修) 참조.

    

*돈점 논쟁(頓漸論爭)---중국불교사에 있어서 불교의 깨달음에 대해 돈오를 주장하고, 그에 따라 돈(頓)ㆍ점(漸)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바로 동진(東晉)때의 도생(道生; 竺道生, ? ~434)이었다.

   도생에 의해 깨달음의 방법론에 돈오성불론(頓悟成佛論)이 제시되고, 그에 따라 ‘돈점(頓漸)’ 논쟁이 일어나게 되자, 중국불교의 모든 종파와 불교인들은 돈오 혹은 점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깨달음’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돈오의 이론은 불성론(佛性論)의 발전과 동일한 행보를 갖고 있었다.

  돈오가 중국불교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나라시대에 선종에서 다시 돈점논쟁이 나타났다. 이른바 ‘남돈북점(南頓北漸)’의 논쟁인데, 혜능(慧能) 계통의 남종은 ‘돈오’이고, 신수(神秀) 계통의 북종은 ‘점오’에 머물러 있다는 논쟁이다. 이는 사실상 북종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혜능(慧能) 계통의 남종이 중국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면서 ‘돈오’의 이론과 방법은 명실상부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선종의 ‘돈오론(頓悟論)’은 중국의 전통사상과 정서가 혼합돼 본래 인도불교의 교의(敎義)와는 형식과 내용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색채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형성된 ‘돈오’와 인도의 전통적인 불교가 중국과 인도가 아닌 다른 장소인 티베트에서 만나 정면으로 부딪히는 상황이 나타나게 됐다.

   티베트 티송 데첸(TriSongDeChen, 742~797, 赤松德贊)왕의 주제로 인도 승 적호(寂護)의 제자 까말라쉴라(Kamalasila-파드삼바바)와 중국 하택 신회(荷澤神會, 670-762)의 제자 대승화상(大勝和尙, 마하연) 사이에 돈점논쟁이 전개된 것이다. 논쟁의 결과에 따라서 패한 측은 승리한 측에 화환을 헌상하고 티베트를 떠난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다. 티베트의 자료에 의하면 이 논쟁은 서로 간에 아주 격렬하게 진행됐고, 그 결과는 초반에는 대승화상이 우세했으나 결국 패배해 사주(沙州; 지금의 돈황)로 쫓겨나고, 그에 따라 인도불교가 티베트 사회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돈점논쟁은 1981년 당시 조계종 종정이던 성철(性徹) 스님이 그의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를 세상에 냄으로써 시작됐다.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 보조사상연구원이 송광사에서 개최한 “불교사상에서의 깨달음과 닦음”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였다. 이 대회에 참석한 돈오점수론자들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다시 3년 뒤인 1993년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 학술대회에선 돈오돈수에 의한 반론이 적지 않았다.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의 돈오점수를 두고 성철 스님은 이미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하던 해 <백일법문>에서부터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를 비판해왔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선종의 돈점론을 가장 체계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종합해 깨달음과 닦음의 선불교적 모범 답안을 마련한 분으로 평가받던 지눌 선사를 정면적인 비판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한국 선불교의 표준수행준칙으로 간주돼온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선문 정통의 배반이며 정법(正法)의 최대 장애물이라고 맹공하고 있다. 초인적 수행을 통해 탁월한 깨달음을 성취한 분으로 존중받던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를 비판한 것이었기에 한국 선불교의 관행과 토대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조사어록이나 선지식들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너무 경직된 마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조사 스님들 말씀은 으레 노파심에서 중생들이 그때그때 어떤 문제에 막혀 있는가, 무슨 문제에 고민하는가에 따라 내리는 간절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점수(漸修)에 치우쳐서 자꾸만 계급을 따지고 고하, 심천을 가리는 사람들한테는 돈오돈수로써 마땅히 분별을 쳐부수어야 하겠고, ‘본래 부처인데 닦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점차로 닦아 나가는 점수를 역설해야 할 것이다. 이런 도리를 전제로 해서 법문을 이해해야 한다.

   큰스님(성철)은 보조 지눌(普照知訥) 국사를 엄청 비판했지요. 그걸 ‘돈점논쟁’이라 부르는데 돈오돈수(頓悟頓修, 단 번에 깨치어 도를 이룬다)와 돈오점수(頓悟漸修, 깨쳤다 해도 습기는 남아 있으니 점차 닦아 나가야 한다)의 수증론(修證論, 닦음과 깨침의 논리)을 말하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문자와 이론으로 깨달음을 아는 것은 해오(解悟)이지 증오(證悟, 자신이 깨달음을 체득함)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증오라야 진정한 깨달음이요, 대각의 성취이지 해오의 단계는 문자와 언어로서만 아는 것이기에 궁극적인 깨달음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큰스님이 보조 스님을 비판하는 대목은 초기 보조사상은 ‘해오’에 머물렀으나 보조 스님 말기에는 ‘증오’라야 한다고 보조 스님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는데, 후학들은 초기의 보조사상에만 머물러 있다는 질타(叱咤)이지요. 보조 스님을 바로 알고 참선수행자는 돈오돈수를 근본목표로 해야 한다는 큰 가르침이지요. 큰스님은 자신의 이 말씀을 <선문정로(禪門正路)>라는 책에 자세히 해 놓으셨지요.”』-무비 스님

 

    돈오수동불(頓悟雖同佛) - 곧장 깨달으면 부처님과 같지만

    다생습기심(多生習氣深) - 다생에 찌든 버릇은 그대로이네.

    풍정파상용(風定波尙湧) - 바람은 잠잠해져도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현염유침(理現念猶侵) - 이치는 드러나도 망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네.

   이는 돈점에 과한 보조 국사(普照國師)의 게송이다.

   한국 불교의 가장 큰 병폐중의 하나가 돈점논쟁이 아닌가 한다. 마음공부의 모든 이치는 부처님의 경전이나 많은 선사들의 어록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으며, 또한 굳이 마음 밖에서 확인을 않더라도 공부인은 공부과정에서 스스로 확인을 할 수가 있다. 체험 후에 공부가 익어감에 따라서 점차 경계에 꺼들리는 마음이 조복되고 차차 안정돼 감을 스스로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스스로 확인이 되고 경(經)과 전(傳)에서 확인이 가능한 것을, 백해무익한 돈점논쟁을 일으킴으로써 많은 수행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깨달음의 해가 뜨더라도 무량겁에 얼어붙은 중생심의 얼음은 곧장 녹지 않는다. 또한 어떤 체험이 있다 한들, 이치가 밝지 않다면 그 체험은 아직 온전한 체험이 아니다. 비록 번뇌장(煩惱障)을 넘어섬으로써 일상적인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경전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미세한 생각마저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체험 후의 공부의 과정에서는 진실로 선지식의 냉철한 지도가 반드시 그리고 끊임없이 필요한 것이다.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능엄경>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치는 곧 깨달을 수 있는지라 깨달음과 함께 의문은 소멸되나 습기(習氣)는 곧 바로 제거할 수 없기에 차례를 인해 점차 소멸이 돼간다 - 이즉돈오(理則頓悟) 승오병소(乘悟竝消) 사비돈제(事非頓除) 인차제진(因次第盡).」

   지금은 모든 경전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다보니 모든 경전과 어록의 검색이 앉은 자리에서 바로 가능하다. 돈오돈수(頓悟頓修)를 검색하면 모두 <선문정로>와 연결이 된다. 이외에는 과거 어느 기록에서도 돈오돈수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대부분 보림(保任)이니, 오후수행(午後修行)이니 하며 견성의 체험 후에도 끊임없는 덜어내고 비우는 공부를 강조하고 있는 구절은 부지기수이지만, 돈오돈수를 강조하고 있는 경(經)이나 전(傳)은 찾아보기 힘들다. - 청안(淸眼)

       

*돈증(頓證)---단박에 깨침. 여러 가지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의 보리를 이룩함. 돈교(頓敎), 돈오(頓悟), 즉증(卽證)과 같은 맥락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말이다.

          

*돈황석굴(敦煌石窟, 둔황석굴)---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 남동쪽 24km 지점의 명사산(鳴砂山) 동쪽 절벽을 판 석굴군으로, 막고굴(莫高窟)이라고도 한다. 왜 막고굴(莫高窟)이라 하게 됐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원래 사막(漠)이였지만 후대에 변해 막(莫)자를 쓰게 됐다, 처음 굴을 조성한 스승님을 뛰어 넘을 수 없다(莫高), 굴이 주변보다 높은 곳에 조성돼 다른 곳 보다 높다(莫高), 이런 구구한 설명이 있다.

    북방유목민족이 중심이 돼 세워진 5호16국은 중국의 유교나 도교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따라서 불교를 수용했고, 전진(前秦)시대인 AD 366년에 승려 낙준(樂僔)이 굴을 파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275동은 양식 상 5세기 북위(北魏, 386년 ~ 534년)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빠르면 4세기, 늦으면 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전진(前秦), 북위(北魏),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唐), 오대(五代), 송(宋), 서하(西夏), 원(元)시대까지 약 1000여년에 걸쳐 조성됐으며, 석굴이 1,600m에 걸쳐 2단 또는 3단으로 파여 전체 굴이 1천여 개. 그 중 발굴돼 일반에 공개된 것이 492개이다. 이 석굴에는 불교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유입될 초창기 것, 전성기 중원풍의 것, 그리고 쇠퇴 ‧ 형식화된 밀교시대 것 등 석굴 하나하나에 그 시대와 문화가 반영돼 있다.

    돈황(둔황) 부근에는 천불동(막고굴) 외에 서천불동, 유림굴(楡林窟), 수협구(水峽口-小千佛洞)가 있다. 서천불동은 막고굴 서쪽 40km지점에 있고, 19굴로 돼 있으며, 북위, 당, 오대의 벽화, 소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유림굴은 막고굴 동쪽 100㎞, 안서의 남쪽으로 약 80㎞ 떨어진 만불협에 있고, 총 40굴 가운데 29개의 굴에 북위에서 당에 이르는 시대의 벽화가 있다. 또 수협구굴은 현존하는 것이 6굴 정도의 소규모 석굴이다.

    헌데 명사산은 왕모래가 진흙과 섞여 다져진 역암(礫岩)이어서 불상을 새길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그래서 벽면에 진흙을 발라 그 위에 그림을 그렸고, 그 부근의 강(월아천/月牙泉) 바닥의 진흙을 채취해 이겨서 불상을 만들었다. 석굴 조성 초기에는 불도징(佛圖澄), 구마라습(鳩摩羅什), 법현(法顯) 등 고승들이 돈황석굴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

    돈황석굴은 20세기 초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07년에 영국의 스타인(Sir Mark Aurel Stein, 1862~1943)이 탐험해 약 15,000점의 한문, 티베트 문자로 된 경전, 고사본과 500여 점의 비단, 종이, 마포에 그려진 불화류를 약탈해갔다. 현재 그것들은 대영박물관, 인도국립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다. 1908년에는 프랑스의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에 의해 석굴사진이 소개되고, 약 5,000여점의 고사본, 약 150점의 회화, 공예품이 약탈돼 파리국립도서관 등에 보관됐다. 이후에도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각국의 방문단이 다녀갔고, 1987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막고굴 중에 제45굴의 칠존상을 비롯해, 제57굴의 보살 벽화, 제158굴의 열반상, 제285굴의 비천도 등이 주목을 받는다. 제148호굴에는 막고굴에서 가장 큰 불상인 와불이 조성돼 있으며, 제96호굴에는 유명한 당나라 측천무후가 조성한 33m 높이의 대불(北大像)이 있다.

    특히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어지는 제17호 굴에서는 송대(宋代)까지의 경전이나 문서, 자수 등이 5만 여점 이상 발견됐는데, 그 내용이 방대해 이를 연구하는 ‘둔황학’이 탄생할 정도였다. 그러나 발견자 왕원록(王圓籙, 1851~1931)이 유물들을 외국 조사단에게 헐값에 팔아 넘겨서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은 6천여 점에 불과하다. 신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과 <육조단경> 돈황본도 이 제17굴에서 발견됐다.

     

*돌(咄)---꾸짖을 돌. 꾸짖다, 놀라 지르는 소리, ‘어이!’ 이런 말이다.

 

*돌길라법(突吉羅法)---돌길라(突吉羅)는 ⓟdukkaṭa, ⓢduṣkṛt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악작(惡作)ㆍ 악설(惡說)이라고 한다. 좁은 뜻으로는 악작만을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악작과 악설을 뜻한다. 말로 저지른 모든 죄를 말하며, 비교적 가벼운 죄를 말한다. 특히 고의로 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한 명의 비구를 선택해 그 앞에서 참회를 하고 인가를 받아야 한다. 고의가 아니고 우연한 실수로 했을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된다.

 

        

*동군(東君)---①태양(太陽) 혹은 태양신, 해 나라, ②청제(靑帝-봄을 맡은 동쪽의 신), ③봄, 봄의 신, 봄바람을 일컫기도 한다.

       

*동념즉괴(動念卽乖)---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 이어 어긋나버린다는 말이다. 어떤 생각 또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어의 한계, 표현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구즉착(開口卽錯)이란 말과 비슷하다. 개구즉착이란 입으로 진리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그 순간 십만 팔천 리나 멀어진다고 해서 입을 여는 순간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말이다. 즉, 입을 열어 말하는 순간, 곧 어그러진다는 것이다. 이에 동념즉괴(動念卽乖)는 개구즉착이란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만 움직여도 곧 어긋난다는 말이다.---→개구즉착(開口卽錯) 참조.

    

*동류인(同類因, sabhaga-hetu)---<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는 육인(六因)의 하나이다. 육인은 능작인(能作因) ․ 구유인(俱有因) ․ 상응인(相應因) ․ 동류인(同類因) ․ 편행인(遍行因) ․ 이숙인(異熟因)이다. 동류인은 인과가 서로 비슷한 종류이기 때문에 동류라 했고, 인(因)과 동류이므로 동류인이라 했다. 여기서 동류란 선악이라는 도덕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지 물질현상이나 정신현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선의 관념과 행위는 선의 관념과 행위를 낳고, 악의 관념과 행위는 악의 관념과 행위를 낳으니, 선은 선과의 인이고, 악은 악과의 인이어서 전자는 후자의 동류인이다. 즉,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처럼 원인과 결과가 그 성질을 같이 할 경우에 그 원인을 말한다. 원인과 같은 성질의 결과를 찰나 후에 가져오게 하는 원인을 동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같은 성질이라 함은 원인이 선이라면 결과도 선이며, 원인이 욕계에 속하는 것이라면 결과도 욕계(동류의 계)에 속한다는 말이다. ---→육인(六因), 사연(緣) 참조.

       

*동리산문(桐裡山門)---동리산파(桐裡山派)라고도 하는데, 신라시대 혜철(惠哲)이 전남 곡성의 태안사(泰安寺 혹은 大安寺)에 개창한 산문을 일컫는다. 9산 선문의 하나로서, 풍수지리 원조라 불리는 도선(道詵) 등이 배출됐다고 한다.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은 1985년 무렵 태안사에서 3년 결사를 시작으로 대중교화를 시작해 동리산문(桐裡山門)을 다시 일으키고 염불선을 통한 통불교를 주창했다.

    

*동사섭(同事攝)---사섭법(四攝法)의 하나. 인간생활 혹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네 가지 포용태도를 사섭법 또는 사섭사(四攝事)라고 한다. 사섭법엔 보시섭(布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동사섭(同事攝)이 있다. 이 중 동사섭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인데, 부처나 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나타내어 사업, 고락, 화복 따위를 함께해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는 방법을 이른다.---→섭(攝), 4섭법(四攝法) 참조.

       

*동산법문(東山法門)---중국 선종 제4조 도신(道信)을 이은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의 선법(禪法)을 말한다. 도신과 홍인은 기주(호북성) 황매현 쌍봉산(雙峰山 = 일명 파두산/破頭山, 西峰과 東山 두 봉우리가 있었음) 서봉에 함께 머물렀으나 도신이 입적한 후, 홍인은 그 산 동쪽에 있는 동산(東山 = 빙무산/馮茂山)에 있는 유거사(幽居寺)로 옮겨 그의 선법을 선양했기 때문에 동산법문이라 일컫는다.

    도신의 선법은 좌선해 오로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본성을 주시하는 일행삼매(一行三昧)와 하나를 응시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움직이지 않는 수일불이(守一不移)로 요약될 수 있다.---→일행삼매(一行三昧) 참조.

        ※황빙무(黃馮茂)---지방호족으로 원래 동산의 산 주인이었음. 그가 5조 홍인을 존경해 이 산을 기증했기에 산 이름을 빙무산이라고도 함.

        ※수일불이(守一不移)---오로지 한 물건을 응시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움직이지 않음.

      

*동산 수초(洞山守初, 910~990)---중국 송(宋)나라 시대의 승려. 그가 말한 ‘마삼근(麻三斤)’은 유명한 화두이다. 수초(守初)는 동산선원(洞山禪院)에서 오랫동안 주석하다가, 990년 81세로 입적했다.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와 이름이 비슷해서 간혹 혼돈을 일으킬 때가 있다. 동산 양개(洞山良介)는 중국 당나라 시대 조동종(曹洞宗)의 창시자이다.

    어느 승려가 수초 선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이에 동산 화상이 말했다. “마삼근(麻三斤)”이다.

    그때 수초 선사가 마(麻)를 저울로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저울에 달고 있던 마의 무게가 세 근이었다. 그래서 수초는 태연히 마 삼근(麻三斤)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별로 신경 써서 대답한 것 같지 않은데, 이게 유명한 공안이 됐다. ---→마삼근(麻三斤), 투기(投機) 참조.

   

*동산 양개(洞山良介, 807-869)---중국 당나라 시대 조동종(曹洞宗)의 창시자. 물에 비치는 자기 그림자를 보고 대오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릴 때 출가해 21살 때 숭산(嵩山)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63세, 법랍 42세인 869년, 방장실에서 조용히 열반했다. 저서에 <보경삼매(寶鏡三昧)>와 <현중명(玄中銘)>, <대승경요(大乘經要)>, 조동록(曹洞錄) 등이 있다. 조동록은 동산 양개(洞山良价) 스님의 어록이다.

    동산스님은 어려서 마을에 있는 절에 출가한 후 남천 보원(南泉普願, 748~835),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등 여러 고승을 찾았는데, 영우 선사의 지시에 따라 운암 담성(雲巖曇晟, 782∼841) 스님을 찾아 선지(禪旨)를 대오하고 그의 법을 계승했다. 이때 동산스님은 게송을 지었는데, 이것이 선문오도송(禪門悟道頌)의 효시라고 한다. 859년에 신풍산(新豊山)에서 지내다가 후에 장시성 동산(洞山)의 보리원(普利院)으로 옮겨 종풍선양에 힘썼다. 동산이란 호가 이때 붙여졌는데, 그의 제자가 언제나몇 백명에 이르렀고, 그의 교학은 제자인 조산 본적(曹山本寂)에 이르러 조동종으로 대성했다.

    조산 본적(曹山本寂, 840~901) 스님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19세에 출가해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동산 스님을 뵙고서 스님의 깊은 법을 전수받았다. 훗날 동산과 조산 두 분의 가르침을 이어서 조동종이 형성됐는데, 조동종(曹洞宗)이라는 종명은 동산 양개의 동(洞)과 조산 본적의 조(曹)를 각각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신라 말 이엄(利嚴, 870∼936) 스님이 조동종 법(法)을 전해왔다.

        

*동업중생(同業衆生)---말 그대로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같은 부류이며, 업이 같은 중생임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세계의 유기적 일체성을 강조하고, 나와 타인의 근거 및 존재의 형태가 서로에 연결돼 상호의존재성이 연기적 법칙성에 의해 지배돼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동업중생이라는 표현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하는 것은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동반의 업이 있다는 것이다. 즉, 개인에게만 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타인으로 살아가지만 동시대의 모든 인간과 세계를 규정하는 업이 또한 있음을 말한다. 예컨대, 오늘에 있어서 환경문제, 종교간 갈등, 테러방지 등은 모든 인류의 공동 관심사항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동업중생(同業衆生)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같은 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과보를 받게 된다.  

    우리는 작게는 이웃이나, 크게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데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일파만파(一波萬波)라고 했다. 강물이나 연못에 돌을 던지면, 수면의 물결이 둥그렇게 일면서 끝없이 퍼져나간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이미 삼천여년 전에 한 사람의 불행이 전 인류의 불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의 구제가 전 인류의 구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에서 인류 구제를 전제한 동업중생의 개념이다. 우리는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호흡(呼吸)을 같이 하는 공업소감(共業所感)이다. 곧 동업중생(同業衆生)이다. ---→‘나비 효과’, ‘가이아의 이론’ 참조.

         

*동원정사(東園精舍, 鹿子母講堂)---사위성(舍衛城) 교외에 있었던 정사(精舍). 고대인도 앙가국(鴦伽國) 장자의 딸로서 비사카모(毗舍佧母)란 처녀가 있었다. 일명 비사겁모, 비사카(毘舍佧), 녹자모(鹿子母), 녹모(鹿母)라고도 했다. 코살라(Kosala)국 수도 사위성(舍衛城)의 장자 녹자(鹿子)와 결혼한 후, 한 가족이 모두 부처님께 귀의했다. 남편 녹자(鹿子)가 그녀를 어머니와 같다라고 칭찬을 했다고 해서 세상에서 녹자모(鹿子母)란 별명으로 불렀다. 녹자모가 사위성 교외에 동원정사(東園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붓다께서도 가끔 동원정사에서 안거를 지내셨다. 

 

*동자(童子, 산스크리트어 Kumara)---불가에는 불상, 보살상, 나한상, 신중상 외에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인격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인물이 바로 동자상(童子像)이다. 천진스러운 얼굴, 도톰한 양 볼에 미소 짓는 입술, 해맑은 눈동자를 한 이러한 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의미는 출가하지 않은 어린 아이라는 뜻으로 유동(幼童)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동녀(童女)도 동자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동자상은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에서 문수동자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중탱화나 산신탱, 독성탱, 명부전의 시왕탱에서 마주치곤 한다. 그 외에도 요즘은 사찰마다 작은 동자상을 구입해 사찰 여기저기에 놓아두고 있다. 동자의 산스크리트 명은 쿠마라(Kumara) 혹은 쿠마라카(Kumaraka)이다. 이 말을 음역하여 구마라(鳩摩羅), 구마라가(鳩摩羅伽)라 했으며, 동자(童子)로 의역했다.

불교에 동자승(童子僧)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에서는 ‘동자(童子)’라는 개념 규정의 기준을 신체적인 성장 발달에 두기보다는 구도를 향한 서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출가해 불법에 귀의하고 구도자로서의 조건을 구비하면 그것으로서 동자의 요건을 갖춘 것이다. 그러한 동자승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도자가 바로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이다.

    그런데 <대지도론(大智度論)>등 여러 경전에 의하면, 4세 또는 8세 이상 20세 미만의 아직 출가하지 않은 사람을 일러서 동자라고 정의한다.

   동자가 많이 등장하는 경전으로 <화엄경>을 꼽을 수 있다. 거기 「입법계품(入法界品)」을 보면 '5백의 동자가 있고, 그 이름은 선재(善財) 동자, 선행(善行) 동자… 등이 나오고, 다른 경전 속의 인물로서 만동자(童子, Malunkyaputta)도 있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삼매를 얻어 붓다의 길로 들어서고 있으며, 부처님의 전생을 이야기한 설산동자(雪山童子)의 구도열은 비장하기까지 하다.---→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 참조.

 

      

*동정일여(動靜一如)---성철(性徹) 스님은 화두수행을 점검하는 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셨다. 즉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숙면일여/熟眠一如)이다.

     ㆍ동정일여는 얘기하거나 밥 먹을 때와 같이 움직이거나 고요하게 있거나 동정(動靜)의 상태에서도 화두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경지이며,

     ㆍ몽중일여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생각되는 경지이고,

     ㆍ숙면일여는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에도 화두가 생생하게 있는 경지를 말한다. 성철 스님은 이처럼 깨어있거나 잠자거나 간에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돼야 깨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깨달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동주(東洲)---불교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은 바다이고, 그 바다 네 곳에 각기 대륙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대륙을 남섬부주(南贍部洲)라 하고, 이곳이 지구로서 인간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곳 대륙은 동쪽의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쪽의 서구부주(西瞿浮洲), 북쪽의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서구부주는 본래 서우화주(西牛貨洲)라고 했는데, 이곳은 보름달 모양의 지형으로, 그 지역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사주(四洲) 가운데 북구로주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한다. 이곳은 정사각형의 그릇 덮개 모양으로 생긴 땅이고, 이에 사는 사람들은 천 년 동안 장수를 누리고, 다른 지역보다 평등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승처(勝處)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수미산 동쪽 바다에 떠있는 대륙을 동승신주(東勝身洲)라 하는데, 줄여서 동주(東洲)라 한다. 이곳은 반달 모양의 지형으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신체와 용모가 빼어나고 각종 질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수명이 250세이고 키가 커서 ‘승신(勝身)’이라 하기 때문에 동승신주(東勝身洲)라 한다.

    

*동진주(童眞住)---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중, 제11위(位)에서 20위까지를 십주(十住)라 한다. 10신위(信位)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住)라 한다. 그 10주 중에 제 8주가 동진주이다.

    ① 발심주(發心住) : 10신(信)의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의 관법이 완성돼 진무루지(眞無漏智)를 내고, 마음이 진제의 이치에 안주하는 것.

    ② 치지주(治地住) : 항상 공관(空觀)을 닦아 심지(心地)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것.

    ③ 수행주(修行住) : 만선(萬善) 만행(萬行)을 닦는 것.

    ④ 생귀주(生貴住) : 정히 부처님의 기분을 받아 여래 종(宗)에 들어가는 것.

    ⑤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부처님과 같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방편행을 갖추어 상모(相貌)가 결함(缺陷)이 없는 것.

    ⑥ 정심주(正心住) : 용모가 부처님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은 것.

    ⑦ 불퇴주(不退住) : 몸과 마음이 한데 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것.

    ⑧ 동진주(童眞住) : 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는 것이, 마치 동자가 천진해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10신(身) 영상(靈相)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것.

    ⑨ 법왕자주(法王子住)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해(智解)가 생겨, 다음 세상에 부처님 지위를 잇는 것.

    ⑩ 관정주(灌頂住) : 보살이 이미 불자가 돼, 부처님의 사업을 감당할만하므로, 부처님이 지수(智水)로써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에서 왕자(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국왕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동체대비(同體大悲)---불교교리 핵심사상의 하나. 동체(同體)라는 것은 한 몸 또는 같은 몸,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이다. 대비(大悲)는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남의 고통마저도 공감하는 무한한 사랑을 말한다. 나와 남이 따로 없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 남의 생명을 내 생명과 동일하게 본다는 경지,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하고,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시방일가(十方一家) 사생일신(四生一身)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 만물과 자기 몸이 하나임을 이해한다. 만물과 내가 하나임을 알기 때문에 만물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같은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중생의 괴로움이 곧 자기 자신의 괴로움이 돼 그 괴로움마저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 불보살(佛菩薩)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라고 하는 연기법과도 일맥상통해 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불이(自他不二), 불인지심(不忍之心), 원융무애(圓融无涯) 정신도 같은 맥락이다.---→가이아(Gaia)의 이론 참조.

        ※사생(四生)이란 태ㆍ란ㆍ습ㆍ화 사생 또는 동서남북 사방에 사는 모든 사람이라는 뜻.

   

*동체삼보(同體三寶)---불 ․ 법 ․ 승 삼보가 의미상으로는 각각 다른 것이나 본질적으로 일체라고 하는 것을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 한다. 이것은 삼보(三寶)의 본체인 진여법신(眞如法身)에서 나타난 세 가지 방면을 표현한 것이고, 우주본원의 이체(理體)에 갖추어 있는 세 가지 방면을 말하며, 동일한 진여의 체상(體上)에 갖추고 있는 구족한 덕상(德相)의 세 방면(모습)이므로 동체삼보라 한다.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오등회원(五燈會元)> 중의 하나인 중국 송(宋)나라시대 정수(正受)가 1201~1204년 간행한 <가태보등록(嘉泰寶燈錄)>에 나오는 말이다.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라, 모든 사물에 대해 취사(取捨)를 하지 말라. 제 마음에 드는 것은 취하고, 제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버리고, 이 취사심은 바로 차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차별심으로 인해 온갖 시비가 일어난다. 퍼뜩 시비심이나 차별심이 일어났다 하면 정념(正念)을 놓치게 되고, 정념을 놓치면 사심(邪心)에 떨어지고, 사심에 떨어지면 바로 집착을 하게 된다.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라, 중생들은 자기 마음에 든 사람하고는 가까이하고, 자기 비위에 안 맞고 자기 뜻에 안 맞는 사람은 미워하고 멀리한다.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친하고 친하지 않고 하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 누구나 다 평등하게, 특별히 친할 것도 없고,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어야 한다. 증애심(憎愛心)이 강한 사람은 도 닦는데 참 어려움이 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삼라만상을 일컫는 불교용어이다. ‘삼라만상 두두물물(森羅萬象 頭頭物物)’은 세상 모든 것을 의미하며, 낱낱의 개체마다 모두 진리가 들어 있다는 뜻에서 쓰이는 말이다. 나아가서 두두물물 세상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뜻에도 쓰인다.

     •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도(道)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도(道) 그 자체라는 말. 두두물물 진로현신과 같은 뜻이다.

     • 두두물물진로현신(頭頭物物 眞露現身) ― 이 세상의 모든 일이나 만물이 모두 다 그대로 부처(법신불)의 나타남이란 뜻으로, 사사물물에서 언제나 진리를 느끼고 발견한다는 말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과 같은 맥락이다.

    • 두두물물 화화초초(頭頭物物 花花草草) - <화엄경>에 두두물물 화화초초가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이라 했다. 꽃 하나 풀 한 포기 하나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만유가 다 불성뿐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불성, 그것은 그저 존재의 근원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눈에도 안 보이는 원자의 힘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듯이, 그보다 더 미세하고 보다 더 근원적인 불성의 힘은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 두두물물 처처불상 사사불공(頭頭物物 處處佛像 事事佛供) - 삼라만상의 하나하나 물건물건마다 곳곳마다 부처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하는 일마다 불공이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두두물물 진진찰찰(頭頭物物 塵塵刹刹)---두두물물은 세상 모든 것, 진진찰찰은 낱낱, 모든 존재, 티끌 하나하나, 끝도 없이 많은 존재,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 삼라만상 모든 것이란 말이다.

    • 두두물물이 부처 아님이 없다---조사선의 백미 <사가어록(四家語錄)> 속의 <백장광록(百丈廣錄)> 강설에 나오는 말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불타행이며 두두물물이 부처 성품의 바다! ‘중생이 부처[衆生是佛]’임을 설한 선종의 실질적인 확립자 백장 선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한 백장 선사의 어록에 나온다. 이 우주에 가득 찬 진리 자체가 부처란 말과 같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다. 고통은 그것이면 충분하다.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가 있다.」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라고 해서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첫 번째 다가온 느낌을 잘못 다루어 두 번째 느낌을 일으키는 데 비해, 성자는 첫 번째 느낌을 잘 이해하고 잘 다루어 그것을 두 번째 느낌, 즉 번뇌로 만들지 않는다. 부처님을 이를, “첫 번째 화살을 맞기는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잡아함경 권17>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인데, 첫 번째 화살은 전생의 업으로 받는 화살이라고 보면 되고, 두 번째 화살은 현생에 내가 지은 업으로 받게 되는 화살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전생에 지은 업(첫 번째 화살)에 의한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지금 살면서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첫 번째 화살을 받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두 번째 화살까지 받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이다.

    첫 번째 화살은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것만 해도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고 아플 것이다. 첫 번째 화살은 타인이나 환경이 나에게 쏘는 것이기 때문에 막을 길은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사실 내가 쏘는 것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있다. 내가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자살을 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화살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작은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신을 또다시 비난하고 질책하는 것도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린 것도 그러하다.

    처음에 일어난 분노가 첫 번째 화살이고, 그 분노로 인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욕을 함으로써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이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그 순간에 자신의 분노, 감정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즉, 내가 지금 몹시 화가 났구나 하고 자각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미국의 뇌 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는 그의 저서 <긍정의 뇌>에서 감정 회로가 작동되고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데 90초(한 감정이 신경계와 육체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평균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만 참으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첫 번째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두 번째 화살을 날리면 그것이 자기에게로 되돌아와서 더욱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두순(杜順, 557~640)---수 ‧ 당시대 승려. 속성(俗姓)은 두(杜)씨고, 정식 호칭은 법순(法順)이다. 중국 화엄종의 개조(제1조)로서,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關門)>ㆍ<오교지관(五敎止觀)>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신라의 자장율사(慈裝律師)는 당나라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서 수행하고, 화엄종의 두순(杜順)과 계율종의 도선(道宣)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643년 많은 장경(藏經)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했다.

        

*두타(頭陀, 산스크리트어 Dhuta)---제거, 세척을 의미하는 Dhuta를 음역한 말.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떨쳐 없애고 심신을 수련해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운수행각으로 온갖 쓰라림을 겪으며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타(頭陀)를 수치(修治), 세완(洗浣), 기제(棄除), 도태(陶汰) 등으로 번역한다.---→두타행(頭陀行) 참조.

   

*두타행(頭陀行, 산스크리트어 Dhuta)---욕심을 버리고 번뇌를 털어 버린다는 뜻이다. 초기불교 이래 무소유, 무집착, 인욕을 체득하기 위한 불교수행자들의 수행방법이다. 모두 12조항이 있어서 이를 12두타행이라고 부른다.

     ① 인가와 떨어진 조용한 숲 속에 머문다(在阿蘭若處),

     ② 항상 걸식한다(常行乞食),

     ③ 걸식할 때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걸식한다(次第乞食),

     ④ 하루 한 끼만 걸식한다(受一食法),

     ⑤ 밥을 욕심내어 먹지 않는다. 과식하지 않는다(節量食),

     ⑥ 점심 이후에는 과실즙, 꿀, 우유 등도 마시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⑦ 사람들이 쓰고 버린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着弊衲衣),

     ⑧ 다만 세 가지 가사만을 소지한다. 삼의(三衣)만 소유한다(但三衣),

     ⑨ 무상관에 도움이 되게 무덤 곁에 머문다(塚間住),

     ⑩ 나무 아래에 산다(樹下止),

     ⑪ 지붕이나 벽이 없는 곳에 앉는다(露地座),

     ⑫ 다만 단정히 앉기만 할 뿐 눕지 않는다(但座不臥, 常坐不臥, 長坐不臥).

    이러한 수행은 그 목적이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지, 억지로 육신을 괴롭히는 인도의 전통적인 고행과는 다르다. 석가모니 10대 제자 가운데 마하가섭(迦葉) 존자가 두타행을 가장 잘 닦았기에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했다.

 

*둔황석굴---→돈황석굴(敦煌石窟) 참조.

   

*득력(得力)---공부가 많이 익숙해지면 힘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까 힘을 덜게 된다. 이와 같이 힘 덜게 되는 것을 득력(得力)이라, 힘을 얻는 것이라고 고인(古人)들은 표현했다.

    예컨대, 법회에 참석했다가 법회가 끝나서 신발을 신을 때,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갈 때, 또 역(驛)으로 가서 전철을 탈 때, 타고 가면서, 그 찰나 찰나 간에 자기의 한 생각을 방일(放逸)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단속(團束)을 해 가지고, 돌이켜서 ‘이 뭣고?’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무단히 방치해 두지 않고 그 놈을 단속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득력(得力)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앉거나 서나 그놈이 단속이 되고 공부가 돼 갈 때에 그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 꼭 밤잠을 자지 않고 며칠씩 버티고 앉아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 송담 스님

 

 

*들숨날숨(anapana, 安般, 出入息)에 마음챙기는 공부(出入息念)---호흡명상(安般禪, 安般念, anāpānasati)이라고도 한다. 들숨날숨(a-na-pa-na, 安般, 出入息)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사념처)의 21가지 명상주제 가운데서 맨 처음에 언급된 마음챙김의 대상이다. 그리고 들숨날숨은 이미 <맛지마 니까야>에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출입식념경(出入息念經, M118)>으로 따로 독립돼 나타나기도 하고 <들숨날숨 상윳따=S54>로 편성돼 모두 20개의 경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명상주제이다.

   특히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언급하고 있는 <맛지마 니까야> - <긴 삿짜까 경-M36>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부처님께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을 통해서 증득한 초선(初禪)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고 판단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긴 라훌라 교계경-M62>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도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가르치고 계신다. 여러 주석서들은 아난다 존자 등 중요한 직계제자들도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서 <디가 니까야 주석서-DA.iii.763>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은 “모든 부처님과 벽지불과 성문들이 특별함을 증득해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머무는 기초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불교 수행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 <청정도론>에서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아주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청정도론>은 특히 <들숨날숨 상윳따-S54>의 모든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열여섯 단계의 정형구를 토대로 해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을 다시 네 개씩 조를 짜서 네 가지로 묶여져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에 배대되며, 모두 16단계의 공부법으로 정리하고 있다.

    <들숨날숨 상윳따>의 모든 경들에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는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 ?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라는 열여섯 단계의 공부법으로 정리돼 나타난다.

   특히 <청정도론>에서는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법을 ① 헤아림 ② 연결 ③ 닿음 ④ 안주함 ⑤ 주시 ⑥ 환멸(還滅) ⑦ 두루 청정함 ⑧ 되돌아봄의 여덟 단계로 설명하는데 아주 요긴한 가르침이므로 <청정도론>의 해당부분인 제8장 189번 문단 이하를 정독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것은 안세고 스님이 옮긴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에 ‘마음챙김의 여섯 가지 경우(守意六事)’로 나타나는 수(數)ㆍ수(隨)ㆍ지(止)ㆍ관(觀)ㆍ환(還)ㆍ정(淨)의 여섯 단계의 수행과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이고, 구마라습 스님이 옮긴 <좌선삼매경>에서 ‘들숨날숨을 통한 삼매의 6종문 16분’에 나타나는 수(數)ㆍ수(隨)ㆍ지(止)ㆍ관(觀)ㆍ전관(轉觀)ㆍ청정(淸淨)과도 비교가 되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아울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청정도론-VIII.194>에서 들숨날숨을 챙기는 것을 ‘숨이 계속해서 닿는 부분에 마음챙김을 두고’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설명으로 남방 스님들이 많이 인용하는 구문이다.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법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대림스님 역>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다음은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의 열여섯 단계 정형구이다.- 각묵 스님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sikkhati),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각묵 스님  ---→출입식념(出入息念, anāpānasati), 아나빠나사띠(빠알리어 anapana sati), 대념처경(大念處經), 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 염처경(念處經), 사념처관(四念處觀) 참조.

 

   

*등각(等覺)---등(等)은 평등, 각(覺)은 깨달음으로서, 부처님의 깨달음과 비슷한 깨달음, 거의 같은 깨달음, 거의 동등한 깨달음을 말한다. <화엄경> 보살 52위 중 제51위에 해당하며, 제52위가 묘각(妙覺)이다.

    수행이 꽉 차서 지혜와 공덕이 바야흐로 부처의 묘각(妙覺)과 같아지려고 하는 자리. 곧 보살의 가장 높은 지위이고, 그 지혜가 부처와 거의 같다는 뜻으로 등각이라 한다. 대승불교 수행자 또는 보살승의 수행자 수행계위에서 최후 단계인 부처의 깨달음, 즉 구경각 직전 단계를 말한다. 구경각인 묘각과는 1등급 차이가 있지만 그 깨달음과 지혜, 온갖 공덕이 원만한 부처님 지혜와 지극히 비슷하다, 또는 거의 같다는 뜻에서 등각이라고 한다.

    보살이 수행을 쌓아나가 등각을 이루면 대사(大士)라 하며, 대사는 산스크리트어 마하사트바(mahāsattva)의 번역어로 마하살(摩訶薩) 또는 마하살타(摩訶薩埵)라고도 하는데, 부처와 보살을 통칭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보살만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사(大士)의 ‘사(士)’와 보살(菩薩) · 마하살(摩訶薩)의 ‘살(薩)’은 모두 산스크리트어 사트바(sattva)의 번역어로, 유정 또는 중생을 뜻한다.---→묘각(妙覺) 참조.

   

*등각(等覺)과 묘각(妙覺)---깨달음은 수행정도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 등각이나 묘각은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것을 말한다. 당나라시대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인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경에 이르기를 ‘등각, 묘각’이라는 말이 있으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色, 물질)이면서 곧 공(空)함을 등각(바른 깨달음)이라 하고, 색도 아니고, 공함도 아님을 묘각(묘한 깨달음)이라 한다. 또한 깨달을 것도 없고, 깨달음이 없다는 것조차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사안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의 두 이름을 붙인 것이며,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묘각(妙覺) 참조.

  

*등무간연(等無間緣)---4연(緣)의 하나. 차제연(次第緣)과 같은 말임. 인간의 생각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한다. 한꺼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생각을 못한다. 그 대신 한 가지 생각은 다음 한 가지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생각은 흐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앞생각과 뒷생각이 인(因)과 연(緣)이 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등무간연으로 앞생각이 없어지면서 뒷생각을 발생시키므로 뒷생각의 뿌리가 앞생각이 된다. 즉, 연속하는 마음 활동에서 뒷생각은 앞생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원인이 돼 다음 생각을 일으키는데, 이 경우에 원인이 되는 것을 등무간연, 결과가 되는 것을 증상과(增上果)라고 한다.---4연(緣), 증상과(增上果), 증상연(增上緣) 참조.

         ※4연(緣)---모든 법의 인연(因緣) ․ 차제연(次第緣=등무간연) ․ 연연(緣緣) ․ 증상연(增上緣)을 말함.

 

*등정각(等正覺, 산스크리트어 Samyaksam buddha)---부처님의 십호(十號)의 하나. 삼막삼불타라 쓰기도 한다. 번역해 정등각(正等覺) 정변각(正遍覺) 정변지(正遍智)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평등하고 바른 깨침을 말한다. 또한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 평등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십호(十號)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등지(等持, samadi)---삼마지(三摩地)로서 등지(等持)로 번역된다. 마음을 항상 한 대상에 집결해 활동시키는 것, 능히 마음을 잘 제어하고 호지(護持)함으로써 밖으로 치닫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고 하며, 선정과 지혜가 평등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고 한다.

   삼매란, 심념(心念)이 정지(定止)하므로 정(定)이라 하고, 우리 마음이 흔들려서 분별 시비하는 도거(掉擧)를 여의므로 마음이 가지런하게 평등하게 돼서 등(等)이라 하며, 마음이 산란치 않으므로 지(持)라 한다. 중생 마음은 산란스러운 산심(散心)인 것이고, 수행이 돼서 삼매에 들면 안정된 정심(定心)이라 한다. 그런데 산심과 정심에 통하고, 다만 유심(有心)으로 평등보지(平等保持)함을 삼마지(三摩持), 곧 등지(等持)라 한다.---→사마디(산스크리트어 samadhi, 定), 삼매(三昧, 빠알리어 사마디/samādhi) 참조.

    

*등지(等至, 산스크리트어 samāpatti)---삼마발저(三摩鉢底)라 음역. 정(定)의 다른 이름이다. 몸과 마음이 평등하고 안온해지는 상태인 삼매의 일종이다. 즉, 혼침(惛沈)이나 도거(掉擧)를 떠나 심신이 평온하게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정(定)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등(等)의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등지라 말한다. 즉, 정(定)의 힘으로 도달한 신심안정의 상태, 이를 통해 능히 수승한 지위에 이르게 되는 까닭에 등지라고 한다.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해 혼침과 산란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정(平靜)하고 평화스러운 경계를 의미하며,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하므로 이를 지(至)자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를 음역해서 삼마지(三摩地), 삼마제(三摩提) 혹은 삼마제(三摩帝)라 하고, 의역으로 등지(等持)라 한다. 그리하여 삼마지도 등지로서 음은 같으나 가질 지(持)자를 쓰고, 삼마발저는 이를 지(至)자를 쓴다.---→삼마발제(三摩鉢提) 참조.

  

*등지보살(登地菩薩)---<화엄경>에서 천명한,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52단계에서 제41에서 제50까지를 10지(十地)라 한다. 십지 중 초지인 환희지(歡喜地)에 오른 보살을 등지보살(登地菩薩)이라 하고, 그 이전 보살을 지전보살(地前菩薩)이라고 한다.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長部)---빠알리어 경장(Sutta Piṭaka) 5부 중 첫 번째 경전집으로, 붓다의 설법 중 긴 길이의 것을 모아 놓은 초기경전, 북전 한역경전으로는 <장아함경(長阿含經)>에 해당한다. 가장 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비롯해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 <유행경(遊行經)>. <사문과경(沙門果經, Sāmaññaphala Sutta)>, <세기경(世記經)>, <선생경(善生經)> 등 34개 경문이 실려 있다. 모두 34개 경이 3품(品)으로 나뉘어 있다. 3품은 다음과 같다.

     ① 실라칸다박가(Sīlakkhanda-vagga, 계온품/戒蘊品) 13경

     ② 마하박가(Mahā-vagga, 대품/大品) 10경

     ③ 빠띠까박가(Pāṭika-vagga, 당학품/當學品) 11경

 

*디그나가(Dignāga)---5~6세기 인도 불교논리학자.---진나(陳那, 산스크리트어 디그나가/Dignāga, 420∼480 혹은 480∼540?) 참조.

     

 

*디빠왕사(Dīpavaṁsa, 島史)---디빠왕사(Dīpavaṃsa)와 마하왕사(Mahāvaṃsa)는 스리랑카를 비롯한 동남아 테라와다 불교국가들에서 테라와다 정통성을 증명해주는 전거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문헌이다. 디빠왕사는 다양한 관점의 역사관을 담고 있는 일종의 야사(野史) 모음집인 반면 마하왕사는 마하위하라(Mahāvihāra) 세력의 역사관을 토대로 제작된 장편연대기이다. 이러한 이들의 연대기적 차이점은 두 가지 서술상의 불일치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인용에 주의를 요한다.

   디빠왕사는 빠알리어로 쓰인 스리랑카 역사와 신화를 결합한 연대기로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 불교를 중심으로 해서 4세기 초에서 5세기 초에 걸쳐 작성됐으며, 기존에 전해지던 다양한 문헌들의 모음집으로서 단일 저자의 저술이 아니다. 편자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전체 22장(章)의 게송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제1~8장에는 불교성립부터 아소카왕시대에 이르는 인도 정치사ㆍ불교사, 제9장 이하에는 스리랑카 건국에서부터 마하세나왕(4세기중반)시대까지 스리랑카 정치사ㆍ불교사가 언급돼 있다.

    <디빠왕사(島史, Dīpavaṃsa)>에 따르면 아소카왕이 불교교단을 풍족하게 지원해 줌으로써 교단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안이한 생활을 바라고 출가하는 자가 많아지고 승가의 계율이나 수행이 문란해졌다. 그 때문에 승가에 싸움이 일어나 월례행사인 포살(布薩)도 잘 행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승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목갈리풋타 팃사(Moggaliputta-tissa, 목건련제수/目健連帝須) 장로가 아소카왕의 지원을 받아 승가를 숙정했다. 즉, 불교를 분별설(分別說, vibhajja-vāda)이라고 말한 사람은 불교도이며, 이에 반하는 비구는 불교도가 아니라고 해서 승가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여기서 vibhajja는 해체, 분석, 분별이라는 뜻으로 상좌부불교는 부처님 말씀을 분석적으로 이해해서 설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분별론자(vibhajja-vādin)라고 불렀다. 그래서 남방 상좌부를 분별상좌부라고도 부른다. 아무튼 이 교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비담마 칠론(七論) 중 하나인<논사(論事, 까따왓투/Kathāvatthu)>이고, 그 후 목갈리풋타 팃사는 1,000여명의 아라한을 선발해 9개월에 걸쳐 제3차 불전결집을 완성했다고 한다.---→마하왕사(Mahavamsa, 大史)

   

*따타가따(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tathagata)---여래(如來)라는 말은 따타가따(Tathagata)에서 번역한 말이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호칭한 이 말은 초기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여덟 가지 이유 때문에 세존께서는 여래이시다고 했다 - (디가 니까야, DA.i 59~60).

     ① 여여하게(tatha) 오셨다(agata)고 해서 여래이시다.

     ② 여여하게 가셨다(gata)고 해서 여래이시다.

     ③ 사실대로의 특징으로(tathalakkhanam) 오셨다고 해서 여래이시다.

     ④ 사실대로 법을 확실하게(yathavato) 정등각(abhisambuddha)하셨기 때문에 여래이다.

     ⑤ 사실대로 보시기(tathadassita) 때문에 여래이시다.

     ⑥ 사실대로 말씀하시기(tathavadita) 때문에 여래이시다.

     ⑦ 여여하게 행하시기(tathakarita) 때문에 여래이시다.

     ⑧ 지배(abhibhavana)의 뜻에서 여래이시다.---→여래(如來,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tathagata/따타가따) 참조.

   

*딴뜨라(Tantra)---→탄트라(tantra), 탄트라 불교 참조.

      

*뗏목의 비유---참 진리는 말이나 글로는 표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처님께서 말로써 진리를 설하신 것이 불법(佛法)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늘 “나의 법문은 방편이요, 뗏목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문에는 항상 불설일자(不說一字)의 입장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불설일자(不說一字)란 부처 경지는 문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절대자의 입장에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고 항상 스승의 입장에서 법문을 하셨다.

    “원래 경(經)의 원어(原語)인 Sūtra는 동사 siv 또는 sīv(꿰매다의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 실, 끈, 줄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위로는 진리와 성현의 말씀을 꿰고[貴穿] 아래로는 중생(의 고통과 미망)을 거둔다는[攝持] 것이 경의 ‘근본 기능이요, 존재이유’인 것이다. 부처님이 자신의 가르침을 상류층의 언어인 베다(Veda)어가 아니라 각 지방의 민족어(民族語)로 전하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즉, 초기불교가 친설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언어 인식과 표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언어가 돼 중생들의 개아적 언어 인식과 한없는 거리와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붓다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제자들로 하여금 법[진리]을 자각케 하려고 했을 뿐이지 자신의 말을 절대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하기도 한 것이다.” - 이홍구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여래가 항상 말하듯이, 내가 설한 법문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은 것이다. 법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랴(如來常設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부처님 가르침은 탐욕⋅분노⋅무지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뗏목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탐⋅진⋅치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불교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불교주의자’가 돼서 타 종교인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비방한다면, 이건 부처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행자가 돼야지 불교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에 반박할 때 불쾌감이 일어나고, 자신의 이념과 사상이 다르면 거부감이 올라오며, 자신과 종교가 다르면 적대감이 일어난다. 이럴 때 우리는 ‘아! 내 안에 상(相)이 있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림이 우리를 상(相)에서 해방시킨다. 상(相)으로부터 벗어나면 불쾌감과 분노가 사라진다. 이렇게 해탈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불교는 교조적 믿음이 아니다. 따라서 이분법적 분별을 지양한다. 분별은 번뇌일 뿐이다. 불교는 관용유화(寬容宥和)를 지향해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광신적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중국 당나라시대에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가 제시한 유명한 화두이다. 한 선승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 이 말은 달마가 가져온 진리가 무엇이냐? 즉, 무엇이 선(禪)의 진리냐? 라는 뜻이다. 이에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

    무슨 뜻일까? 화두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이다. 또한 화두는 암호나 밀명과 같아서 지식과 알음알이로는 분석되지 않는다. 오직 큰 의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탐구하다가 보면 결국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선불교와 화두의 속성이다. 따라서 화두는 깨달음의 경지이므로 알음알이로 풀이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께서도 언어로서 법의 본체를 삼지 않았던 것은 말과 문자는 진리를 일러주는 데에 완벽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통감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이치를 터득한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가 말 이전인 부처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般妙心)을 이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해설한다면, 잣나무는 감정이 없는 - 무심한 나무이다. 무심(無心)이란 공(空)한 것을 뜻한다. 즉, 무심한 공(空) 상태가 바로 달마대사가 서쪽(인도)으로부터 가지고 온 선(禪)의 진리요, 그대가 찾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인데, 이런 해석도 주제넘은 짓이다. 그 진의는 말 밖에 있다. 허니 답을 찾느라 불교서적을 뒤적거리며 시간 낭비하다가, “가리키는 달은 바로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일이 없도록 할 일이다.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았다는 달마 조사가 중국에 와서 소림굴 속에 들어가 면벽을 시작하니, 심법을 전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처지에서, 달마 대사가 전하려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질문의 단초이다.

    말로는 전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해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에 전해진 그 수많은 불경의 가르침은 무엇이기에 심법이 따로 있다며,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며, 조사가 왔으니, 그 달마(達磨) 조사가 전하려 한 정법의 핵심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답이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달마는 부처님 법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 법이 무엇일까. 바로 마음을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달마 대사는 부처님이 깨친 마음을 전하려 중국에 온 것이다. 왜냐하면 달마 대사는 부처님이 깨치신 그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부처님과 똑 같은 마음을 깨쳤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이치를 알리기 위해 중국에 왔다. 그러나 그것을 말이나 글로는 전할 수가 없다. 이런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중생으로서야 답답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이것을 찾는 것이 선(禪)이다.

    이것은 경전에도 없다. 마음이 어떻게 경전에 있겠나. 다만 선(禪)공부하고 수행한 사람만이 마음의 진리를 알고 그 대답의 비밀한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경전에도 없는 것을 내가(조주) 무슨 재주로 말로 알려주겠나.” 그러니 “뜰 앞의 잣나무”라는 게다. 옛 선사께서 흔히 거론하신 토끼 뿔 ― 뿔이 없는 토끼인데 무슨 토끼 뿔인가, 거북 털 ― 털이 있을 리 없는데 무슨 거북 털인가, 이러한 말과도 같은 속성의 말씀이다.

    다 실답지 않은 헛소리일 뿐이다. 본분사(本分事)를 잊어버리고 지말사(枝末事)에 걸려 세월만 보내는 사람들, 따져서 이치로만 알려고 하고, 들려달라고 하니, 언어문자로 흉내만 내는 사람들에게 일러 줄 말이 ‘정전백수자’밖에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말장난 할 생각 그만두고 가서 정진하라는 경책이다. 결론은 깨치라는 말이다. 실답지 않은 말을 아무리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달마대사 서래의(達磨大師西來意)’의 진의는 너 자신이 깨칠 때 드디어 드러날 것이란 의미이다.---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참조.

        ※인도가 중국에선 남남서에 위치하지만 당시엔 서역(西域)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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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나경(빠알리어 Ratana-sutta)---보배경, 보경(寶經) 혹은 보주(寶呪)라고도 하며, 수호경 중에 대표격이다. 수타니빠따에 실려 있는 경으로서 남방 테라바다 불교의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이 수호경은 쿳다까니까야(소부)의 쿳다까빠타(Khuddakapatha :小誦經)에도 실려 있다. 마치 우리나라 <천수경>처럼 테라바다 불교권에서는 라따나경을 늘 수지독송한다고 한다. 수호경이지만 주문이 아니라 불ㆍ법ㆍ승 삼보를 찬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아래는 17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 라따나경에서 변역한 게송의 하나이다.

    “이 세상과 내세의 그 어떤 재물이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여래에 견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깨달은 님 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할지이다-전재성역

    이 세상과 내세에서라도 부처님과 같은 보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따나경>을 <보배경>이라 한다. 빠알리어 라따나(ratana)는 ‘보배’ 또는 ‘보석’을 뜻하는 말이다. 세 가지 보배가 있다고 해서 <라따나경>에서는 불ㆍ법ㆍ승 삼보에 대해 찬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라마교(喇嘛敎, Lamaism)---티베트를 중심으로 한 밀교계 불교를 라마교라 한다. 현재 라마교는 티베트, 몽고, 만주, 부탄, 네팔 등지에 퍼져있다.

    인도 출신 명승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Guru Padma-sambhava, 蓮華上座師)를 교조로 삼는다.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는 인도 나란타사에서 밀교를 수학, 747년 티베트왕 초청으로 입국, 티베트 고유종교인 Bön교를 흡수해 불교를 정착시켰다.

    15세기 초에는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가 종교개혁을 단행해 신파(新派)를 만들었다. 이를 황파(黃派), 종래의 종파를 홍파(紅派)라 했다. 이때부터 몇 개의 분파가 생겼으나 황파가 점점 세력을 넓혔다. 따라서 현재의 티베트 라마교는 주로 황파이다. 승려인 라마를 불ㆍ법ㆍ승 3보와 함께 숭배하고 최고의 승려를 달라이라마(Dalai Lama)라 부른다. ‘달라이(Dalai)’는 바다란 뜻이고, ‘라마(Lama)’는 스승이란 뜻이다. 라마교 최고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정치ㆍ종교 두 가지 권한을 다 지배한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제14세로서 1959년 중국군을 피해 측근들과 함께 인도로 탈출, 인도 북서부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티베트 불교 참조.

      

*라마가경(羅摩伽經)---<고려대장경>을 원전으로 해서 일본에서 발간한 <신수대장경>의 제10권 p851~p876에 있는 경전이다. 중국 동진(東晋)시대 성견(聖堅) 스님이 AD 388~407년 사이에 한역한 경전이다. ‘라마다경’이라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다.

    이 글귀에 나오는 ‘야소(爺蘇)’를 기독교의 교주 예수로 보느냐 아니면 야속한 범부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이 글에 나오는 야소를 예수라고 본다면, 예수라는 사람이 인도에 와서 부처님 제자가 됐다가 다시 돌아가서 불법을 펴면, 그의 가르침은 곧 기름을 부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등불이 아니고 밤낮에 구애 없이 밝은 해와 달과 같은 반야의 등불이 될 것이란 말이 된다.

    어느 말이 맞는지 아직 확답을 얻지 못했다. 아무튼 예수님 가르침이 곧 부처님 가르침과 같은데, 편협한 인간들에 의해 성인들의 큰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자기네 편의대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기에 갈등이 끊일 사이가 없는 것이다. <라마나경>은 <화엄경> 계통 경전인데,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보현보살 등 500보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신 경전이다. 아래는 경의 내용 일부이다.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제타정사에 있을 때,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 스님과 신자 1250명이 함께 했느니라.

     사리불언 하시불도종이(舍利弗言 何時佛道終耳) - 사리불이 묻되 언제 불교가 끝나나이까?

     오도지전야 년오백후말세야(吾道之轉也 年五百後末世也) - 나의 도가 전한 지 오백년이 지나면 말세가 될 것이다.

    사리불재언 년오백후 불도단이무계학호(舍利弗再言 年五百後 佛道斷而無係學乎) -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오백년 후에는 불도가 끊기고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없습니까?

    기시 상수제자 야소자서래(其時 上首弟子 爺蘇自西來) - 그 때 훌륭한 제자인 예수가 서쪽에서 와서,

     학이시습 이전어대진(學而時習 而傳於大秦) - 열심히 배우고 틈틈이 익혀 대진[로마]으로 전할 것이니,

     하시야소래 오도지유무등야(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 - 예수가 올 때에 나의 불교는 기름 없는 등[無油之燈]처럼 되었겠지만,

     야소재림 오도중흥(爺蘇再臨 吾道中興) - 예수가 재림하니[다시 불을 붙이니] 나의 도는 중흥할 것이다.

     여등각료 야소지주 약불야(汝等覺了 爺蘇之主 若佛也) - 너희들은 확실히 알라 예수가 말하는 주는 바로 부처이니라.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급제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佛說是經已 長老舍利弗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尼) - 부처님이 이 경을 말하자 장로 사리불로부터 여러 스님들과 신도들,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신수봉행(一切世間 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信受奉行) - 모든 신과 악마까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했다.

    위 문장 중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에서 야소에 대해 대체로 불교 측에서는 예수로 해석하고 있으나, 기독교 측에선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라마니경>이 초기경전이 아니고 대승경전이다. 따라서 부처님 친설이 아니다. 때문에 누가 있어 500년 후에 야소가 서쪽에서 올(爺蘇自西來) 것을, 어떻게 알아서 예언을 했겠는가. 때문에 기독교 측에서 위경이라 항의해도 변명하기가 궁색한데, 그래도 이상한 것은, 대승불경이라 하더라도 지금부터 2000여 년 전 경전이니, 그 무렵 예수가 인도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전혀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아전인수격으로 이기적인 해석을 배제한 양심적인 식견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이 나와서 불교ㆍ기독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떠나 인류의 등불이 될 해석을 해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예수 인도에 유학하다’ 참조.

    

    

*라마나 마하르쉬(Ramana Maharshi, 1879~1950)---인도 힌두 철학자이다. 큰 스승(大師)이라고 불리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비차라(vicāra, 자아 탐구)를 권했다.

   그는 인도 남부 마드라스 마두라이 중류층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자아 탐구법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없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홀로 이리저리 계속 방황하다가 인도 타밀나두(Tamil Nadu) 북쪽에 위치한 아루나찰라(Arunnachala)라는 언덕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런데 마하르쉬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챈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마하르쉬의 이름은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는 어떤 공식적인 강의나 책을 쓴 적도 없으며, 아루나찰라를 한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탐구법만 꾸준하게 권유한 외에는 어떤 다른 가르침을 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르쉬가 세상을 떠나 지 6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하르쉬처럼 꾸준하게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성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한 서적, 특히 중세 신비주의 시인인 까비르(Kabir, 1440~1518)의 전기를 깊이 읽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전통적 수행법에 따라 자아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나는 누구냐?” 라고 스스로 묻고, 나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는 결국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도 아니다. 두뇌는 육체와 함께 썩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인격과 감정도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깊은 의문을 가졌다. 그 깊은 자아탐구는 그를 초월하는 의식 상태로 이끌었는데, 희열을 느끼는 이 상태를 힌두 철학에서는 ‘사마디(samādhi)’ 즉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그는 이후 고향 마을을 떠나 시바 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아루나찰라로 가서 은자가 됐으며, 그 뒤 인도에서 가장 젊은 구루의 한 사람이 됐다.

    라마나 마하르쉬에게 크게 감명 받은 영국인 폴 브런턴이 〈인도의 신비를 찾아서(My Search in Secret India)>라는 책을 발간하자,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라마나 마하르쉬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죽음과 악은 비차라로 쫓아버릴 수 있는 환상일 뿐이며, 비차라를 실천하면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되풀이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비차라를 실천하거나 박티(Bhakti, 헌신과 신애)를 실천하면 된다고 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결과로 이끄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다. 결국 마하르쉬 가르침은 무의식의 혼돈과 자기조절 결핍 속에서 스스로를 상실해가는 인간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다.

 

 

*라자그리하(산스크리트어 Rājagṛha, 王舍城)---라자가하(Rājagaha)라고도 하는데, 이 경우 rāja(왕)+gaha(집)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한역으로 왕사성(王舍城)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 중인도 지금의 비하르(Bihar)주 파트나(Patna) 남쪽에 있는 라즈기르(Rajgir) 지역에 위치했던 마가다국(Magadha, 摩伽陀國) 수도이다. 당시 마가다국을 다스린 왕은 빈비사라(Bimbisara)왕이었고,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영취산(靈鷲山)이 왕사성 동북쪽 약 3㎞ 지점에 있었다.

   부처님 제자들 중에 ‘10대 제자’라고 꼽는 핵심 멤버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왕사성 근처 출신이 많았다. 그것은 불교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라자그리하 일대가 마가다국의 영토였고, 마가다국왕이 불교를 지지하고 재정적인 후원을 많이 했기에 이 지역에서 유능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된 것을 의미한다. 브라만 출신의 사리불(舍利弗, Sariputra)과 목건련(木健蓮, Maudgalanaka)의 고향도 모두 라자그리하 일대여서 자연스레 불교의 중심교단이 여기에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에도 사리불과 목건련의 고향이 이 근처임을 밝히고 있다.---→빈비사라(頻毘娑羅), 왕사성(王舍城, 산스크리트어 Rājagṛha/라자그리하) 참조.

    

  

*라후라(羅睺羅, Rahula)---한역해서 라운(羅雲)이라고도 한다. 붓다 아들이면서 출가해서 제자가 됐다. 어머니는 야소다라(Yasodara, 구이/俱夷)임. 붓다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밀행(密行) 제일이라 했다, 밀행 제일에서 ‘밀행’이란 남들이 알지 못하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계율을 세밀한 부분까지 실천한 것을 말한다. 배운 바 그대로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실천했다고 한다. 라후라는 7세에 출가한 최초의 동자승으로 주로 부처님 제자 사리풋타(Sāriputta)가 보살피고 지도했다고 한다.   

    

*라훌라바드라(羅喉羅跋陀羅, Rahulabhadra, 200년~300년경)---용수(龍樹)의 제자 제바(提婆, Aryadeva: 170년~270년)의 제자, 용수의 손제자로서 반야(般若)와 공(空)사상에 밝았으며, 용수가 주장한 팔불(八不)을 주석해 중관학파 성립에 기여했다.   

  

*람 라즈(Ram Raj)---인도 신불교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의 한 사람. 2001년 11월 4일 수천 명의 힌두교 최하층민인 달리트(不觸賤民)들이 불교로 개종하기 위해 뉴델리 암베드카르 바반(Ambedkar Bhavan) 광장에 운집했다.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한 이 개종집회(Diksha ceremony)는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년)가 주도했던 신불교운동 이후 반세기만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람 라즈는 최하층 카스트 힌두교도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All India Schedule Castes and Scheduled Tribes를 통솔하는 총수이다. 삭발한 머리에 손에는 오색의 불교기(佛敎旗)기를 든 수천 명 군중들이 불상과 암베드카르 사진 앞에서 팔리어로 된 찬트(전례음악)를 낭송하는 가운데, 람 라즈는 “이 순간이 수천 명 달리트(不觸賤民)들이 힌두교를 거부하기로 결심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선언했다. 당초 백만 명의 달리트들이 운집해 인도 역사상 최대 규모 개종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다수 사람들이 경찰력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람 라즈는 이 개종의식에서 삭발하고 람 라즈라는 이름 대신에 우디트 라즈(Udit Raj)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그것은 자신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힌두교와 결별은 곧 카스트 제도에 대한 거부를 의미했다. 람 라즈는 이 집회 의미가 “어떤 특정한 공동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카스트 제도를 허물고 싶을 따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불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곧 카스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람 라즈는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세계의 다른 종교들에 비해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불교 가르침은 인도 다른 종교와는 달리 모든 추종자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기 때문에 불교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달리트(dalit),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신불교운동(Neo-Buddhism Movment) 참조.

 

*랑달마(Rang Darma, glang darma)의 폐불(廢佛)사건---티베트에서 10세기 초 토속종교인 뵌(Bon)교와 불교 세력 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랑달마(Rang Darma)의 폐불(廢佛)사건은 티베트의 정치세력을 약화시키고, 불교는 분산돼 약 1세기 가량 침체기를 걷게 된다.

   티베트 토속종교인 뵌(Bon)교는 무속, 태양, 달, 산, 나무 같은 정령 숭배가 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 중에 자신들을 뵌뽀(Bonpo)라고 부르던 뵌교도들은 종교적 수행의 한 형식으로 동물 희생제의(祭儀)를 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불살생과 비폭력을 삶의 실천적 원리로 제시하는 불교와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0세기 초 랑 다르마(Rang Darma)가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비불교도였다. 랑 다르마는 선대 뵌교 장관들의 도움으로 중앙 티베트의 불교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박해는 특히 비구 상가(僧伽)에 심하게 행해졌으며, 수많은 스님들이 강제로 환속되고 살해됐다. 그 결과 거의 반세기 이상 중앙 티베트에는 불교를 공부하는 승원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많은 밀교 수행자(Tantrika)들은 일반인의 모습으로 은밀히 수행을 계속했고, 랑 다르마는 5년간의 실정(失政) 끝에 한 불교 승려에 의해서 살해됐다. 랑 다르마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은 공석이 된 왕위를 놓고 서로 심한 다툼을 벌였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계승하지 못하고, 이후 약 3세기 반가량 유력한 중앙 집권자가 들어서지 못한 티베트는 지방 영주들에 의해 각 지역들이 하나의 독립국가처럼 다스려 졌다.

   랑 다르마의 박해와 왕조의 몰락으로, 세 분의 고승님이 동부 티베트의 캄(Kham) 지방으로 이주해 거기서 승가의 계율 전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었다. 이 세분의 스님들에게 법을 모두 이어받은 제자는 라첸 공빠 랍쌜(bLa chen dgong pa rab gsal, 952-1035)이었는데, 약 반세기 가량 중앙 티베트에서 사라졌던 승가 계율의 법맥은 그와 중앙 티베트에서 온 10명의 제자들에 의해 다시 이식되게 됐다. 그래서 10세기 중반 중앙 티베트의 승원들은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고, 번역 작업과 수행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

   이 폐불 사건을 계기로 티베트 불교의 성격을 전전기(前轉期)와 후전기(後轉期)로 구분한다. 전전기 불교는 왕실의 지원 아래 일관된 사원 건립과 역경사업이 이루어졌다면, 후전기 불교는 뚜렷한 종파불교를 형성하게 된다.

 

         

*레비(Sylvain Lvi, 1863~1935)---실뱅 레비(Sylvain Lévi)는 프랑스의 동양학자로서, 프랑스에서 산스크리트 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인도, 네팔,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이전에 유럽에서 구할 수 없었던 유식학파의 중요 문헌을 비롯한 여러 중요 대승불교 문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러 새로운 판본, 번역본을 내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는 1920년대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 샨띠니께딴(Shantiniketan)의 대학에서 티베트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힌두 문명이라고 하면 발상지인 인도에만 국한시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동남아시아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남아시아에 최초로 등장한 국가는 대부분 인도문명을 바탕으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히려 인도보다 더 인도적인 문명을 꽃피웠다. 실뱅 레비는 인도의 문화 전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혜의 어머니, 인도는 자신의 신화를 인근 국가에게 전하고 전 세계에 가르쳐왔다. 법과 철학의 어머니, 인도는 아시아의 3/4에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하나의 이념, 하나의 예술을 주었다. 인도는 신성한 언어, 문학, 여러 제도를 알 수 없는 세계의 극한까지 전파했다.”

    레비의 말처럼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 문명은 다른 토양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오늘날의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다. 특히 힌두 문명은 캄보디아의 토착민인 크메르인에게 종교와 경전, 성직자, 세계관, 하나의 문자 체계 등 세련된 생활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힌두 문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앙코르 문명이다.

그리고 레비는 벨기에 사람 루이 드 라 발레 뿌생(Louis de La Valle Poussin, 1869-1938) 등의 제자를 길러내 유럽 불교 연구 발전에 공헌했다.

          

*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싯다르타가 태어난 곳. 인도 가비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산인데, 인도 국경에서 4km 정도 떨어진 현재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동산이다.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는 곳 주변에 작은 강줄기가 있고, 싯다르타의 나라, 카필라바스투는 이곳 룸비니에서 서쪽으로 30여 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 좁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저만치 싯다르타의 탄생지, 마야데비 사원이 보인다. 마야부인은 만삭의 몸으로 그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부처님 생모 마야부인이 출산일이 가까워 친정으로 가던 도중, 음력 4월 8일 이곳 무수(無憂樹)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불을 낳았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해당하는 곳으로 폐허로 방치돼 있었는데, 1896년 독일 고고학자 알로이스 포이러(Feuhrer)가 여기서 돌기둥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아소카왕 석주였는데,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인 아소카는 기원전 250년 석가모니불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룸비니 동산을 찾아 네 개 불탑과 꼭대기에 말 형상을 얹은 돌기둥(아소카 석주) 하나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 이 석주에는 재위 20년에 룸비니를 찾은 사실과 룸비니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한 내용 등이 새겨져 있다. 이에 의해 룸비니가 세상에 알려졌고,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으며,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8세기 혜초(慧超) 스님이 이곳 룸비니를 다녀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사방에 도둑 떼와 맹수들이 들끓었으며 사람의 자취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도둑이나 맹수들이 없고,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에는 마야데비 사원이 세워져 있다. 마야데비 사원에는 마야부인당(摩耶夫人堂)과 목욕지(池)가 있고, 아쇼카대왕의 석주(石柱)가 있다.

   5세기 무렵 이곳을 다녀간 중국의 법현(法顯) 스님은 '마야왕비가 목욕한 연못은 많은 스님들이 그 물을 퍼 마신다'라고 기록했고, 7세기에 다녀간 현장(玄奘) 스님은 "이곳에는 석가족들이 목욕하던 연못이 있다. 물이 맑아 마치 거울과 같으며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싯다르타 연못은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할 수 없을 만치 탁하다.

 

  

*룽다(Lungdar)---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희망, 소원, 안전 등을 기원하며 거는 깃발. 얼핏 만국기처럼 보이는 이 오색찬란한 깃발은 청(靑, 하늘), 백(白, 구름), 적(赤, 불), 녹(綠, 물), 황(黃, 땅)의 순서로 단다. 푸른색은 시린 하늘을 상징하며, 흰색은 히말라야 만년설을, 붉은 색은 열렬한 불심을, 초록색은 푸른 물을, 누른색은 풍요로운 대지와 곡식을 상징한다.

  

*륵나마제(勒那摩堤, 산스크리트어 Ratnamati)---보의(寶意)라 번역. 중인도 사람. 학식이 고명하고 사리에 밝으며 특히 선관(禪觀)에 통달했다. 508년 중국 낙양(洛陽)에 와서 칙명을 받고 보리유지(菩提流支)와 함께 <십지론(十地論)> 등 번역에 종사했다. 그러나 번역 사업을 하면서 보리유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따로 한 벌을 번역했다. <십지론>ㆍ<법화론>ㆍ<보적경론(寶積經論)> 등에 두 가지 번역이 있음은 이런 까닭이다.

    

*리그베다(Rigveda)---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문헌으로, 브라만교 근본경전인 4베다 중 첫째 문헌인 <리그베다 상히타> 약칭이다. ‘리그’는 성가(聖歌), ‘베다’는 경전, ‘상히타(sahitā)’는 경전 집성(集成)을 뜻하는 말이다.

    제식(祭式) 때에 제관(祭官)이 부르는 찬가를 모아서 기록한 것이며, 베다 문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10권, 1,028의 운문찬가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은 기원전 1000년을 기점으로 해서 그 전후 수백 년에 걸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암송에 의해 후세에 전해지다가 차츰 정비 ‧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베다는 인도에 이주해 온 아리아인(Aryan)인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유방법과 종교적 지식을 모아 편찬한 성전의 명칭으로 리그베다(Rig-veda), 사마베다(Sama-veda), 아주르베다(Yajur-veda),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네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그 성립이 오래된 것이 리그베다로서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베다시대라고 하며, 바라문 문화 제1기에 해당한다.

    신들을 찬미하는 시가모음집인 리그베다에는 무수한 자연신들이 등장한다. 대개 태양이나 불, 바람, 강과 같은 자연 현상의 다양한 힘(에너지)들, 또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신격화돼 천신으로서 숭배되고 찬미되고 있다. 이런 신들 가운데 인드라((因陀羅, 산스크리트어 Indra, 帝釋天)는 최고 천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의 거룩한 행위에 대한 찬미 외에도 리그베다는 부(富), 다산(多産), 장수(長壽), 승전(勝戰) 등과 같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들을 간구하는 기원을 함께 담고 있다. 인드라(제석천) 등 리그베다 내용 일부가 불교에도 받아들여졌다.

     

*리스 데이비스(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5~1922)---팔정도를 세상에서 최상승의 진리로 알고 실천한 영국의 대표적인 불교 학자이다. 그는 경전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가 중요시되는 서구사회에서 빠알리 경전을 연구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준 선각자다. 리즈는 영국의 콜체스터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다. 브링 톤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그는 법정 변호사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독일의 브레즈라우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해 철학박사가 됐다. 1864년 실론에서 판사로서 일하는 동안 사찰의 율장을 공부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 1872년 귀국 후에도 법관으로 일하면서 빠알리 경전언어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1882년에는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빠알리어 교수가 됐고, ‘빠알리 성전협회’를 창립해 동서의 많은 학자들과의 교류를 맺게 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경전을 학문차원이 아니라 종교인의 자세로 연구하고 이를 삶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수행 이력은 오늘날까지 많은 불교학자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1895년에는 <불교인의 성서들> 시리즈를 시작했고, 여기에는 수십 권의 영문 번역이 수록됐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불교입문서>, <본생담>, <율서>, <불교의 역사와 문헌>, <불교의 인도>, <빠알리어 영어사전> 등이 있다. 

*린포체(Rinpoche)---티베트불교의 특징으로 린포체란 살아있는 부처(活佛) 산부처(生佛), 큰 스님이란 뜻이다. 윤회설에 의해 환생(還生)이란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과거생에 출가 수행자로 수도에 전념하다가 죽은 후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했다는 것이 증명된 사람을 말한다. 티베트불교는 사람의 환생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어린아이 중에서 자신의 전생을 증명한 아이를 떠받드는데 그 아이를 린포체라고 한다. 증명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이 죽기 전에 미리 자신이 어디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가 전생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른 스님들이 특정 인물을 찾은 다음 각종 질문을 해서 선정하기도 한다. 린포체의 환생증명에 대한 상황은 보통 3살에서 시작해 6세에 걸쳐 시험을 하는데 보통 달라이라마께서 예증을 통해 린포체로 증명을 하는 것으로 방식을 정하고 있다.

 

 

 ----------------------------------------------이상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편집 기술이 서툰 나머지 이 <불교 용어 일람>을 한 곳에 모아서 집성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용자께서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곳에 모아서 나름의 편집으로 편리하게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o> 부분까지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 편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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