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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뇌(煩惱, 산스크리트어 klesa)>

서원365 2017. 12. 30. 05:48

                               <번뇌(煩惱, 산스크리트어 klesa)>

                              

                

‘   번뇌’란 말의 원어인 산스크리트어 ‘클레사(klésa)’는 고통스럽다, 더럽다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더러워진 마음, 괴로운 마음, 상처 주는 것, 괴롭히는 것이라는 뜻인데, 우리들을 괴롭히고 해쳐서 오류로 이끄는 불선(不善)의 마음을 번뇌라고 한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 업(業)을 짓게 되며,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미혹의 세계를 헤매게 된다.

   번뇌란 번요뇌란(煩擾惱亂)을 줄인 말로서 우리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괴롭히는 등 미혹하게 하는 나쁜 정신작용을 총칭한다.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는 불교 심리용어이다.

   중생은 사물을 대할 때에 그것을 욕심내어 소유하려 하고, 본능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게 되며, 경쟁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살생까지 하게 된다. 또한 번뇌는 사물에 대해 참다운 진리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지혜의 눈을 가려 버리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집착하게 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해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과 갈등, 그리고 고통 모두를 번뇌라고 한다.

   그러나 번뇌의 정체를 확실히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을 물을 것 없이, 큰 문제는 큰 번뇌를 일으키고 작은 문제는 작은 번뇌를 일으켜서 인생 전체를 번뇌 속으로 빠뜨린다. 따라서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는 논리까지 전개된다.

   이러하므로 불교에서는 번뇌의 깊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파악해서 해결한다는 것은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참다운 길이며, 그 지름길이 된다고 본다. 불교의 모든 법문은 이 번뇌를 다스리는 교훈이며, 번뇌가 다할 때 거기에는 해탈이 있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의 본래 모습은 청정하지만 손님과 같은 번뇌로 인해 더럽혀진 상태일 뿐이라는 의미를 뜻하기 위해 번뇌를 객진(客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별도로 붙여진 표현이다.

   번뇌는 혹(惑), 취(取), 수면(隨眠), 전(纏), 염(染) 등 여러 말로 표현되고 있다.

   번뇌는 이치에 어둡고 현상의 세계에 대해 미혹해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혹(惑)이라고도 한다.

   또 외부대상을 사랑함으로써 그것을 가지려고 집착해 구하는 상태를 취(取)라고 해 번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번뇌는 주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마음속에 사악한 성격과 성벽(性癖)으로 잠재해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면화되기 때문에 마음을 따라 잠자고 있다는 뜻으로 수면(隨眠)이라 한다. 육체가 잠잔다는 수면(睡眠)이란 말과 음이 같아서 혼돈하는 수가 있다.

   또한 잠재적인 경우와 구별해 표면에 나타나는 번뇌를 전(纏)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나쁜 마음에 물듦이므로 염(染)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도 사(使), 계(繫), 결(結), 박(縛), 루(漏), 개(蓋), 구(垢), 객진(客塵), 폭류(暴流), 진로(塵勞) 등 여러 말이 있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번뇌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번뇌를 칭하는 용어도 다양하다.

   이러한 번뇌의 분류방법은 수십 종에 달하지만, 일반적으로 근본번뇌와 수번뇌, 견혹(見惑)과 수혹(修惑),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으로 나눈다.

                  

   1) 근본번뇌(根本煩惱)는 모든 번뇌의 체(體)가 되는 근원적인 번뇌로서 본혹(本惑)이나 근본혹(根本惑)이라고 한다. 근본번뇌에는 탐(貪:욕심)ㆍ진(瞋:성냄)ㆍ치(癡:어리석음)ㆍ만(慢:거만)ㆍ의(疑:의심)ㆍ견(見:삿된 소견)의 6번뇌가 있다. 이 중에서 견(見)을 다시 다섯[오견(五見)]으로 나눈다.

    ① 신견(身見):유신견(有身見)을 줄인 말로, 나와 나의 것, 나의 견해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 오온(五蘊)이 인연화합해서 이루어진 ‘나’를 영원한 존재로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아견(我見)과 같은 말이다.

    ② 변견(邊見):변집견(邊執見)을 줄인 말로, 편벽된 극단적인 견해, 그리고 이에 집착하는 것.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어느 한쪽에 얽매여 중심을 얻지 못하는 극단적인 견해. 이분법적 견해를 말한다.

    ③ 사견(邪見):삿된 견해로서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그릇된 견해. 정견(正見)의 반대말이다.

    ④ 견취견(見取見):잘못된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것.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해 거기에 집착하는 것. 졸렬한 지견(知見)을 잘못 믿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⑤ 계금취견(戒禁取見):잘못된 계율이나 금지조항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드는 것.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그리하여 위의 오견(五見)에다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라는 5번뇌를 합해 10번뇌, 10수면(十隨眠) 또는 10사(十使)라고 한다.

    ① 탐(貪)은 자기가 애착하는 대상을 얻고자 하는 욕심,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에 대해 집착하고, 또 명예, 재물 등을 바라고 구함에 싫어함이 없는 정신작용을 뜻한다. 이를 탐욕(貪欲)ㆍ탐애(貪愛)ㆍ탐착(貪著) 또는 욕(欲)ㆍ애(愛)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② 진(瞋)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와 배척 내지 화내거나, 자신의 감정에 거스르는 것에 대해 미움과 성냄을 일으켜 몸과 마음을 뜨겁게 괴롭혀 평안을 얻지 못하는 정신작용을 뜻한다. 진에(瞋恚)ㆍ진노(瞋怒) 등으로도 표현한다.

    ③ 치(癡)는 곧 무명(無明)으로서 아집에 얽매인 삿된 분별, 진실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치와 사물에 대해 어두운 정신을 의미한다. <성유식론>에서는 모든 번뇌의 일어남에는 반드시 치(癡)가 결부돼 일어난다고 했다.

    ④ 만(慢)이란 스스로를 높이고 타인을 멸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심정이다. 이 만은 다시 3만ㆍ7만ㆍ9만 등으로 분류된다.

    ⑤ 의(疑)는 불교의 사제(四諦)와 연기(緣起) 등의 도리와 인과의 이치 등에 대해 의심하고 미혹돼,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정신작용을 일컫는다.

이 중 탐ㆍ진ㆍ치 3가지는 모든 악업을 낳는 근본이므로 삼독심(三毒心), 삼불선근(三不善根), 삼박(三縛)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는 10번뇌 가운데 말나식(末那識:자아의식)에 상응해 항상 일어나는 번뇌를 아치ㆍ아견ㆍ아만ㆍ아애의 4번뇌 - 4혹(四惑)이라고 한다.

    ① 아치(我癡)---아치란 자아(自我)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 오온가합(五蘊假合)의 자기 진상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즉, 진정한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我)’는 우리가 보통 집착심으로 나를 내세우는 ‘나’가 아니라 그 집착심이 있기 전의 ‘나’를 뜻한다. 그것은 곧 무아(無我)라고도 하며 진아(眞我)라고도 한다. 이러한 ‘나’는 다른 말로 말하자면 진여성(眞如性) 또는 불성(佛性) 그리고 법성(法性)과도 통하는 나이다. 이와 같은 나에 대해 전도된 마음으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작용을 치(痴)라 하며 치는 무명(無明)이라고도 한다.

    ② 아견(我見)---아집(我執)이라고도 하는데, 자기견식(自己見識)을 고집하는 일이다. 4번뇌의 하나이자 오견(五見)에서 ‘신견(身見)’과 같은 말이다. ‘나’ 혹은 자아(自我)를 고집하는 견해. 자아(自我)에 변하지 않고 항상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아치(我癡)에서 비롯된 망령된 견해가 5온(五蘊)의 일시적 가화합(假和合)인 심신을 항상 하는 자아의 실체로 오인하고 집착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즉, 아치라는 번뇌가 야기한 후에 곧 나타나는 망견(妄見)을 뜻한다.

    ③ 아만(我慢)---4번뇌의 하나이자 사만(四慢)의 하나이다. 아견(我見)에서 더욱 나아가 자신을 스스로 높여 잘 난 체하면서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하게 구는 것. 즉, 아견에 의해 설정된 자아가 존재한다고 거만하게 우쭐대는 것이다. 이것은 아견이 연장돼 나타난 형태의 번뇌이다. 즉, 아만은 아치의 번뇌에서 아집이 생기고, 아견에서 더욱 객관화된 번뇌이다. 이는 나를 밖으로 나타내려는 심리가 싹 튼 것이며, 그 생각이 강하게 나타나면 오직 자기만이 존귀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못하다는 태도가 은연중에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④ 아애(我愛)---아애는 마음속 깊이 집착한 자아(自我)에 대해 참으로 소중하다고 애착하는 정신작용을 뜻한다. 즉, 마음속에 참다운 자아[진아(眞我)]를 망각한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비 진리적이고 일시적인 자아[가아(假我)-허상]를 설정해 고정적으로 탐심(貪心)과 애착심을 야기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를 아탐(我貪)이라고도 하며, 설정돼진 허상인 자아상을 한결같이 사랑하므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또한 생사윤회의 고(苦)에 빠져 있다.

   

   2) 수번뇌(隨煩惱)는 근본번뇌에 수반돼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수혹(隨惑) 또는 지말혹(枝末惑),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도 한다. 수번뇌를 다시 대ㆍ중ㆍ소의 수번뇌로 구분한다.

    ① 대수번뇌(大隨煩惱)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방일(放逸) - 방자해 계율을 무시하는 것.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 해태(懈怠) - 게으름, 즉 선법(善法)을 닦음에 있어 용맹정진하지 않으면서 악에는 적극적인 것.

     • 불신(不信) - 마음을 더럽혀 진리를 믿지 않는 것.

     • 혼침(昏沈) - 잠이 와서 정신이 몽롱하듯 몸과 마음이 무겁고, 침울하고, 무기력해진 상태.

     • 도거(掉擧) - 마음이 들떠서 침착하지 않은 것.

     • 실념(失念) - 망념(忘念)이라고도 하며, 그릇된 염, 잘못된 생각.

     • 산란(散亂) - 마음이 중심을 못 잡고, 대상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

     • 부정지(不正知) -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그릇되게 이해하는 마음작용. 신ㆍ구ㆍ의(身口意) 삼업이 바르게 머물지 못해 나쁜 업으로 물든 오염된 지혜가 그 바탕이 되는 것.

    ② 중수번뇌(中隨煩惱)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무참(無慚) - 스스로 악을 범하고도 부끄러운 마음을 내지 않는 것.

     • 무괴(無愧) - 타인에 대해 악을 범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

    ③ 소수번뇌(小隨煩惱)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분(忿) - 분(憤)과 같은 의미를 가진 글자인데 두 글자는 모두 화를 낸다는 분노를 의미한다.

     • 간(慳) - 인색함, 남에게 베풀지 않음.

     • 복(覆) - 자기의 죄업을 숨기는 것.

     • 질(嫉) - 시기 질투하는 것.

     • 뇌(惱) - 다른 이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는 것.

     • 해(害) - 생명체를 위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 한(恨) - 분노의 대상에 집착해 원한을 품는 것.

     • 광(誑) - 거짓된 마음.

     • 첨(諂) - 아첨하고, 왜곡되고, 위선된 마음.

     • 교(驕) - 교만한 것.

   

   3) 수혹(修惑)과 견혹(見惑)---수혹과 견혹을 2혹(二惑)이라고 한다.

    ① 수혹(修惑)은 사혹(思惑)이라고도 하며, 10번뇌 중의 탐ㆍ진ㆍ치ㆍ만ㆍ의와 같이 습관적이고 정의적(情意的)인 번뇌로서 오랜 수행의 실천을 통해서만 끊을 수 있으며, 선천적인 미혹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그릇 돼 있는 것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좀처럼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습관과 성벽에 의한 끈질긴 미혹으로서 오랫동안의 수행 노력에 의해 점차 조금씩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둔사(鈍使:성질이 둔한 번뇌)라고 한다.

    ② 견혹(見惑)은 삿된 소견이나 무지에서 생기는 이론적이고 지적인 번뇌로서 올바른 견해가 서면 곧 제거되는 것을 말한다. 견혹은 주로 후천적인 것으로서 바른 이론을 듣고 잘 이해하기만 하면 즉시 제거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이사(利使:예리한 번뇌)라고 한다.

   

   4)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불교수행과 깨달음을 방해하고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이장(二障)이 있다.

   번뇌장(煩惱障)은 아집(我執)에 의해 중생이 생사의 세계에 유전하게 돼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번뇌를 번뇌장이라 한다.

   소지장(所知障)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 소지장이다. 즉, 법집(法執:존재 또는 교법에 대한 집착)에 의해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번뇌를 소지장이라 한다.

   번뇌장은 자기 자신의 감정적인 열정과 관련된 번뇌이고, 자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번뇌이다. 반면에 소지장은 외적인 현상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에 기초한 번뇌이다. 소지장은 지혜의 결여로서 결국은 깨달음의 장애가 된다. 번뇌장이 정서적인 혼란을 가리킨다면, 소지장은 지적인 편견과 우매함을 포괄한다. 말하자면 번뇌장은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번뇌이고, 소지장은 후천적인 번뇌라 할 수 있다.

     

   이 외에 결(結), 계(繫), 박(縛), 개(蓋), 루(漏), 구(垢), 장(障) 등의 번뇌가 있다.

     • 결(結)은 결사(結使)라고도 하는데, 번뇌는 중생을 미혹된 생사 하는 고통의 상태에 매듭지어 단단히 동여매 묶는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은 중생을 욕계에 매어 두는 번뇌, 색계와 무색계에 매어두는 번뇌를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 계(繫)는 매어둔다는 뜻의 박(縛)과 함께 사용한다. 즉, 계박(繫縛)이란 마음이 번뇌나 망상 등에 의해, 혹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구속돼 자유를 잃은 상태, 혹은 마음이 얽매이 있는 것을 말한다.

     • 개(蓋)는 착한 마음을 덮어 가로막기 때문에 덮을 개(蓋)라 하는데, 주로 깨끗한 수행을 덮는 작용을 하는 번뇌를 묶어 부를 때 사용한다. 여기에 오개(五蓋)가 있다.

     • 루(漏)는 ‘흐른다’ ‘새어나간다’라는 뜻으로, 인간이 번뇌 때문에 각종의 악업을 행하고 그 결과 고(苦)가 그 사람의 삶에 누출(漏出) - 새어나와서, 이러한 고의 누출로 인해 그 사람은 미혹의 세계를 유전(流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루(漏)를 곧 번뇌라고 한다.

   중생은 자기의 눈ㆍ귀ㆍ코 등의 여섯 감관들로부터 항상 잘못함(과실)과 재난을 흘러 내보내므로 루(漏, skt. āsrava)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번뇌는 큰물이 사람 가축을 모두 떠내려 보내듯 번뇌라는 물결이 착한 성질을 흘러 보내기 때문에 폭류(暴流) 또는 류(流)라고도 한다.

     • 구(垢)는 번뇌가 더럽고 거친 마음의 때 먼지와 같다는 의미에서 구(垢)라 부르며, 이에는 진구(塵垢), 구예(垢穢), 혹구(惑垢), 염구(染垢), 객진(客塵) 등의 표현이 있으며, 구(垢)는 주로 지말번뇌를 일컫는데 사용한다.

     • 장(障)은 번뇌가 성스런 수행의 길을 막고 방해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장(障, skt. āvaraṇa)이라 표현한다. 부파불교에서는 번뇌를 멸한 다음에도 멸진정(滅盡定)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번뇌장(煩惱障)과는 별도로 해탈장(解脫障)을 세워 구별했다.

  

   이 외에도 번뇌에 대한 분류에는 삼망집(三妄執), 오개(五蓋), 오둔사(五鈍使), 오견(五利使), 오욕(五慾), 오대혹(五大惑), 육대혹(六大惑), 10사(使) 등의 다양한 분류가 있다. 심지어 ‘108 번뇌(煩惱)’라 하기도 한다.

   ‘백팔(108)’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 6경(六境)이라는 여섯 가지 대상을 파악할 때에 호(好)ㆍ오(惡)ㆍ평(平=非好, 非惡)의 셋 감정이 발생해 18이 된다. 그 하나하나에 염(染)과 정(淨) 두 가지가 있어 합하면 36이 된다. 여기에 또 각각 과거ㆍ현재ㆍ미래 셋이 있어, 합계 108 번뇌가 된다는 설이다. 번뇌의 종류가 많은 것을 보이기 위해 108이라는 수를 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표현들이 모두 번뇌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표현으로 나타내는 번뇌의 구체적인 내용들과 그 표현의 용법에는 넓은 뜻 좁은 뜻 등으로 달리 사용하기도 하고, 또 각 입장에서 이들을 묶어 분류하기도 하므로 내용들 간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중복되거나, 때로는 빠지고 또 서로 달리 분류됨으로써 복잡한 내용이 된다.

   한편 번뇌의 본체를 정사(正使 또는 使)라고 하고, 이런 번뇌의 본체가 소멸한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번뇌의 남은 기운을 습기(習氣)라 표현하기도 한다. 습기는 마치 향을 담았던 그릇이 향을 비었어도 향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배어있음에 비유한다. 또는 이와는 달리 번뇌의 종자를 습기라고도 한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번뇌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를 하고 분석하고, 이의 세세한 대처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번뇌를 다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고, 해탈과 보리와 열반을 획득하려는 것이 불교이다. 즉, 번뇌는 방황이며 당혹이기 때문에, 이 번뇌를 끊는 것이 방황의 ‘차안’에서 ‘피안’에 이르는 도피안(到彼岸, 바라밀다)이고, 그 방법으로서 육바라밀이 주장된 것이며, 이것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이다. 이렇게 해서 번뇌를 다해서 욕망을 끊고 정각(正覺)을 연 성자가 아라한으로, 다시 윤회의 고통에 빠지지는 않게 된다. 다만 이러한 극복 방법을 소승의 각(覺)이라고 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입장이다.

   대승불교에서는 그것보다는 번뇌의 극복을 위해, 마음의 걸림 없음을 통해 보살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번뇌를 깨우쳐 해결하고자 대승적 해결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한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란 말이다. 이와 같이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 한 것은, 번뇌의 성품이 비었음을 깨우치는 것이 번뇌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의 첩경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번뇌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라야 깨달음의 꽃이 필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누구나 본래 바탕엔 불성이 있다. 그런데 그 불성이 분별작용, 즉 유와 무, 이것과 저것, 양과 음, 강과 약, 흑과 백, 너 나 등 2분법적 차별상으로 인해 번뇌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분별작용만 쉬게 하면 번뇌는 사라지고, 곧 불성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특히 화엄교리 가운데 법계연기(法界緣起)란 말이 있다. 우주만유가 모두 인연 따라 얽혀있음을 뜻한다. 법계우주만유는 천차만별이라 하지만 피차가 서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하나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만유를 모두 동일한 수평선 위에 두고 볼 때에는 중생과 불(佛),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 등과 같이 대립적으로 생각하던 것도 실제는 모두 동등한 것이며, 번뇌가 곧 보리요, 생사가 곧 열반이어서 만유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것으로 보게 된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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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misan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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