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책이야기

똥친 막대기

서원365 2009. 1. 4. 18:42

김주영 글, 강산 그림

비채 펴냄

 

  농부 박기도씨네 논두렁에는 목을 한껏 재끼고 봐야 끝을 볼 수 있는 백양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그리고 어른의 손이 쉽게 닿을 위치에 가지가 나 있어서, 나무둥치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박씨가 논에 써레질을 하던 날,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 소리에 놀란 박씨네 소가 도망을 친다. 새끼를 밴 탓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소를 몰기 위해 백양나무 가지를 꺾는다. 그래서 백양나무 가지는 자기 의사와는 아무 관계없이 세상에  던져진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지는 것처럼. 어디 사람뿐이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백양나무 가지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운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먼저 박씨네 암소를 모는 회초리가 되었다. 다행히 회초리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초등학생 울보 소녀 재희를 만난다. 울보 소녀이지만 또래들에게는 당찬 모습을 가진 재희다. 그리고 재희로 인해 나뭇가지는 운명이 바뀐다.

 박씨는 나뭇가지를 암소 목 타래에 꽂은 채로 두었다가 그대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가자 박씨는 나뭇가지를 뽑아 사립문의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꽂아 둔다. 그리고 재희의 종아리를 치는 회초리가 되고, 똥치는 막대기가 된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께서 지게 작대기 정도 크기의 막대기로 정낭(우리 동네에서는 변소를 이렇게 많이 불렀다.)을 휘휘 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변소 위에 떠 있는 똥 덩어리들이 서로 엉켜 그냥을 퍼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변소 안쪽 벽에 기대 놓으셨는데, 백양나무 가지도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재희가 자기를 집적거리는 머슴애들을 쫓아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똥이 묻은 나뭇가지를 휘휘 내두르자 머슴애들이 기겁을 하고 물러선다. 재희는 나뭇가지를 봇도랑에 던져버렸고, 덕분에 나뭇가지는 수분을 흡수하고 생기를 찾는다. 범벅이 된 똥 찌꺼기도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 다음에 나뭇가지는 개구리 낚싯대로 사용된다. 재희가 자기 어머니 몸보신을 시켜드리려고 나뭇가지 끝에도 실을 매고 파리를 매달아 떡개구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봇도랑에 다시 던져버린다. 모내기가 끝나 봇도랑 물이 줄어들고, 자칫하면 메마른 가지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꿈을 접으려 할 즈음 홍수가 진다. 그리고 나뭇가지는 멀리 물에 떠내려간다. 그리고 마침 떠내려 온 돼지의 등에 얹혀 물가로 나와 또 다른 봇도랑 가에 박혀 우뚝 섰다. 그리고 여기서 뿌리를 내린다. 

 백양나무 나뭇가지는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장소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꿈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봇도랑 가에 뿌리를 내리면서 말한다.

 “나는 비로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내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방 어디를 살펴보아도 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새 잎을 피우려는 작업울 훼방 놓을 천적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똥친 막대기란 한 마디로 하잘 것 없는 존재란 뜻이다. 하잘 것 없는 것에서 나아가 똥을 휘젓는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리는 존재이다. 그러나 꿈을 버리지 않는 한 하잘 것 없는 존재는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불성을 갖추고 있으며, 또 각자가 우주의 중심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처를 이루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를 이룰 것이다.

 이 책은 또 지은이의 향수를 소가 눈을 감고 되새김질 하듯이 맛있게도 그려 놓았다. 나뭇가지가 가슴 두근거리며 만났던 재희라는 소녀도 지금쯤은 어디선가 아이들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농촌의 모습, 그 당시에는 참으로 벗어나고 싶고 힘들었던 그 모습들이 참 맛나다. 그리고 책속의 장면들을 따라 내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해질 녘 시골에서 밥 짓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써레질 하는 어른들의 “이랴이랴! 이놈의 소.”하고 소를 어루는 소리, 골목이나 공터에서 머슴애들이 여자 아이들을 놀리는 소리, 논 가 길 위에서 새참을 먹는 모습, 지금은 푸세식이라고 부르는 옛날 변소,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사립문, 논두렁을 뛰어 다니던 개구리, 그리고 엄청나게 키가 컸던 미루나무, 선생님께서 시킨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까까머리 학생들… 그러면서 잠시 모든 것을 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