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금강경

금강경-10 莊嚴淨土分 第十

서원365 2009. 7. 26. 07:01

○ 莊嚴淨土分 第十

 佛 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昔在燃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 在燃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부처님이 계시던 곳에 계실 때 법에 얻으신 바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세존님. 여래께서 연등부처님 계시던 곳에서 법에 실로 얻으신 바가 없습니다.』

* 燃燈佛(연등불) - 과거 부처님 중의 한 분,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시 선혜보살로 있었는데, 연등불로부터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한다.

* 於法 實無所得(어법 실무소득) - 여기서 法이란 연등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이다. 얻은 바가 없다고 한 이유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얻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연등부처님의 설법은 깨닫게 하는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진리는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국한해 버리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 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 안 하느냐?』

『안 합니다. 세존님.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요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 장엄이란 멋있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절을 짓고 단청을 하는 것은 외적 장엄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실상을 바로 보고 경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은 진정한 장엄이다. 장엄이라는 말부터 상대적 개념이어서 어떠어떠한 것이 장엄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또 진정한 장엄이란 이러한 규정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색성향미촉법에 사로잡혀 장엄을 생각하면 이미 장엄이 아니다. 또 부처님 세계라는 것도 깨달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부처님 세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번뇌의 세계이니 불토(佛土)라는 상(相)을 지으면 이미 불토가 아니다.

 또 보살이 ‘내가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하면 아상을 짓게 된다.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야 한다. 마땅히 보이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마땅히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한다. 마땅히 머무름이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 六祖 慧能 大師가 五祖 弘仁 大師의 문하에 들기 전에 應無所住 而生其心란 말을 듣고 크게 발심을 하였다고 한다.

* 淸淨心(청정심) - 깨끗한 마음. 무엇을 깨끗하다고 하는가? 무소주(無所住)의 마음을 청정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원래 청정하며 청정하지 않은 바가 없다. 다만 탐진치의 삼독으로 인해 분별심이 생기므로 청정하지 않게 된다.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 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수보리야, 비유하건데 어떤 사람이 있는데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아니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매우 큽니다, 세존님.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이 아닌 몸을 이름하여 큰 몸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 須彌山王(수미산왕) - 세계의 한가운데 수미산이 있으며, 모든 산들 중에 으뜸이기 때문에 수미산왕이라고 한다.

*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다. 설령 몸이 수미산만큼 크다고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며, 그냥 크다고 말할 뿐이다.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되며, 작은 사람도 더 작은 사람에 비하여는 큰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큰 몸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 말할 뿐이다. 진실로 큰 몸이란 일체에 무주(無住)한 마음이다. 장엄이라는 것 역시 이와 같다. 큰 몸과 장엄이란 말에 집착하면 바로 실상에서 멀어진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도 이와 같아서 여러 가지로 설하셨으나, 설하신 말에 집착하면 본지를 잃게 된다.

 앞에서 성문 4과에 대해 설명하였고, 여기서는 보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