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인생
지은이 : 위기철
출판사 : 청년사
2009년 개정판 63쇄
초등학교 3학년 여민이가 본 세상을 어른의 눈으로 그린 이야기. 아니면 어릴 때 본 것을 어른이 되어서 회상하며 쓴 이야기이다.
만 아홉 살, 나의 아홉 살을 돌아보면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6학년 때의 나를 돌아봐도 그저 어린애였을 뿐이지, 그다지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성장은 했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여민이처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었다. 내가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남도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3학년짜리 아이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다.
이 책에는 참으로 가난했던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이 직접 보고 듣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70년대가 되기 전에는 굳이 달동네가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참 어렵게 살았다. 나는 달동네에서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농촌이 꼭 달동네보다 크게 낫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끝없이 거짓말 하는 기종이는 누나와 산다. 누나는 공장에 다니면서 기종이를 학교에 보낸다. 토굴 할매는 혼자 살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었다. 골방 철학자는 외부 사람들과 사고의 교류 없이 폐쇄적인 삶을 살다가 자살한다. 틈만 나면 술에 취해 아내를 괴롭히고 살림을 부수는 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길에서 얼어 죽는다. 그리고 그의 장남은 5학년 때 공장에 취직하러 떠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허가 건물을 지어 방세를 받는 풍뎅이 영감도 있다, 그리고 그저 월급이나 받아 챙기고 아이들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는 담임 교사도 등장한다. 베트콩 이야기, 월남전에서 한 쪽 팔을 잃은 하상사, 줄줄 비가 세는 방…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다지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자기가 직접 그렇게 살았거나, 적어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 보면서 자랐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옛이야기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게 하는 책.
이러한 가난한 모습들은 지금도 있다. 물론 그 당시보다야 낫겠지만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때보다 더 할지도 모른다.
문득 올해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침에 휴대전화를 받으니 한 학모가 자기 아이를 수학여행에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깜짝 놀라 어디 몸이 안 좋으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 보내는 집도 있구나 하였다. 나는 이제 이 정도로 가난한 집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 학기에 5만원 하는 방과후 학교 활동에 돈이 없어 참가시키지 못하겠다는 부모도 있었다.
나는 그때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수학여행에 데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었다.
그리고 아이들 세계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가난한 그들의 놀이터는 가까이 있는 숲 속이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놀이 감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온 동네 모든 것이 놀이 감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고 남학생과 여학생과의 사랑.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으로 내가 겪었던 것과 어찌 그리 같은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교실에 가보면 책상 위에 아예 이름 두 개를 나란히 적어놓고 중간에 ♡를 그려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사랑의 표현도 직선적이다. 사랑한다는 말도 직선적이고 싫다는 말도 직선적이다. 여민이와 우림가 보여주는 반의적인 행동을 찾아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쉽게 만나기도 하지만 쉽게 헤어지기도 하는가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 석가모니 부처님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보다 60년대 사람들은 모두 불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돌아본 60년대의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때보다 훨씬 부유한 지금의 사람들보다 훨씬 정이 많았고, 남에게 주기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끝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현실에 끝없는 불만을 품는다면 평생 가도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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