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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영혼의 노래

서원365 2013. 6. 11. 09:58

인디언 영혼의 노래

 

지은이 : 어니스트 톰슨 시튼, 줄리어 M. 시튼

세계적인 동물학자, 박물학자, 화가. 1860년 영국 출생. 저서로는《내가 아는 야생 동물》《동물기》가 있음. 1900년부터 급진적인 환경주의자가 되었음. 줄리어 M. 시튼은 그의 부인임.

옮긴이 : 정영세

펴낸곳 : 책과 삶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문화 교실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극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했다. 대신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단체로 극장에 가서 영화 관람을 하였다. 물론 희망자에 한해서 갔는데,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그때 문화교실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서부 영화였다.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동부에 들어가 정착한 뒤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그 지역에 사는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에 정착하는 내용을 그린 것을 서부 영화라고 한다. 대체로 악당들이 주민들을 괴롭히면, 권총을 찬 정의의 용사들이 악당들을 쳐부수는 내용이거나, 서부로 진격하는 백인들과 인디언들 간의 전투 내용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마치 내가 정의의 서부의 사나이가 된 듯한 착각 속에서 며칠을 보내곤 했고,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될 줄을 알았다면서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하곤 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영화를 보고 나면 교실 뒤편에서 서부의 사나이 흉내를 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럴 때 대개 인디언들은 무식한 야만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바보처럼 미국인들의 개척 정신을 본받아야 하며, 미개한 인디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모두 그러한 미국인들의 행위를 개척이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부터 미국인들의 행위는 개척이 아니라 침략이며,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단에서 교과서 내용에 관계없이 이러한 면도 있음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나는 내가 교단에서 미국인들의 침략행위를 미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가능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지만, 미국인들의 행위와 기독교인들의 행위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사고는 정당하다고 본다.

 

 저자는 말한다. 인디언들은 백인과 기독교가 아메리카에 들어오기 전에는 평화롭고 높은 정신적 삶을 살았다. 그들은 용감하였고, 늘 신과 함께 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한번은 선교사가 일요일에 수레를 모는 인디언들을 질책하면서 일요일이 주일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였다. 어리둥절하던 인디언은 한참만에야 비로소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알겠습니다. 당신의 신은 한 주에 한 번씩 오시는군요. 저의 신은 매일 매순간 저와 함께 있는데.”

 

 인디언들은 천막을 옮길 때 고아와 과부들의 것부터 먼저 옮겼고, 천막을 칠 때도 고아와 과부의 것부터 쳤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지 않았으며, 손님들에게도 늘 친절했다.

호의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친절하도록 하라. 항상 너의 손님이 피곤하고 춥고 배고픈 상태라고 생각하라. 굶주린 개가 너의 천막에 들어오더라도 먹이를 주도록 하라. 이 책에 적혀 있는 인디언들의 규칙이다.

 

 1492년에 콜롬부스 일행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인디언들은 환영하였다. 《기독교죄악사》에 따르면 콤롬부스는 원주민 6명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데려가 개종시켰고, 2차 항해 때는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으나 이사벨 여왕의 명령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러나 콜롬부스는 원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노예로 팔았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인디언들은 상대가 말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다. 한 선교사가 와 2시간이나 연설하였지만, 그들은 끝까지 들은 뒤 모여 회의를 하였다. 그리고 회의한 결과를 선교사에게 전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들의 선조가 이 땅에 들어온 뒤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조그마한 땅을 요구했고, 우리는 청을 들어주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는 더 많은 땅을 요구했고, 급기야 모든 땅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종교까지 강요하고 있습니다. …형제여 당신들은 위대한 영에게 경배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백인들끼리도 왜 의견이 다른지요?”

 

 처음에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찾은 것은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누리가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했지만 인디언들에게는 종교를 강요하였다. 이러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다. 2011년부터 일어난 땅밟기 기도가 그것이다. 절에 가서도 하고, 자기 교파가 아닌 교회 근처에 가서도 한다. 땅밟기 기도란 특정 지역을 돌면서 기도함으로써 그 지역의 세력이 붕괴되도록 하는 기도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종교 시설에 방화를 하거나 조형물을 파괴시키는 등의 직접적인 공격도 감행한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사고는 우월주의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우월주의가 있다. 백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 백인이 가장 진화된 인종이며, 진화된 인종이 그렇지 못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백인 우월주의이다. 이러한 사고가 노예무역, 인종 차별 등의 심각한 폐해를 낳았다. 다음은 종교 우월주의이다. 기독교는 가장 발달된 종교이자 진리에 바탕을 둔 유일한 종교이며, 기독교 신자는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강요하게 만들고 다른 종교를 사악한 종교라고 보고 공격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말로 사악한 종교는 다른 사람의 내면세계를 부정하는 종교이다.

 

 이러한 백인 우월주의와 종교 우월주의가 인디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런 점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인디언들은 사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소중히 여긴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사슴 사냥을 하는 인디언들의 기도이다.

  “너를 죽여야 해서 미안하다. 형제여. 그러나 나는 너의 고기가 필요했다. 내 아이들이 배고 고파 울고 있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형제여. 너의 용기와 힘과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 자, 여기 나무 위에 너의 뿔을 달아주마….”

 

 이 책의 저자 시튼 부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고차원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백인들이 들어와 파괴하고, 더럽혔다는 것이다. 다행이 최근에는 백인들 사회 일각에서 이러한 반성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디언들의 세계가 너무나 파괴되어 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10년 컬리지에이트 교회는 1628년 네덜란드계 이민에 의해 자행된 만행에 대해 레나페족에게 사과를 하였다.

 

 2010년 미국 정부와 의회는 그 동안 백인들의 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약 6천만에서 1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디언들에 대해 사과를 하였다.

 

 또,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대통령은 인디언 자녀 기숙사에 운영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 기숙사는 인디언 자녀를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교육시키며 기독교 교리를 주입시켰다.

그러나 그보다 우월주의와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월주의가 우리들 마음 속에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인들을 무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흑인이나 동남아 계열의 민족은 무시한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 미국에서 백인과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우월주의와 본질적으로 같음을 명심해야 한다.

 

 바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따라 자기 삶을 설계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나쁘다고 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한다든지,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야말로 사악한 것이다.

 

 의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생각을 소중히 여기고, 누구나 자기 생각에 따라 살고,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이와 상반되는 행위를 불의로 보고 막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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