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한글 원각경

한글 원각경 금강장보살장 제4

서원365 2010. 4. 11. 14:19

○ 금강장보살장 제사

 이때 금강장보살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들을 위해 여래의 원각이 청정하고 대다라니의 인지법행과 점차방편을 잘 말씀해주셔서, 모든 중생들의 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법회 중에 있는 중생들이 부처님께서 자비롭게 깨우쳐주심을 입어 허깨비가 덮여 있는 것을 벗고 밝게 되어 지혜의 눈이 청정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를 이룬 것이라면 어떤 이유로 다시 모든 무명이 있습니까? 만약 모든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인연으로 여래는 다시 본래 부처를 이루었다고 하십니까? 온 우주의 각각의 중생들이 본래 불도를 이룬 뒤 무명이 생긴 것이라면 모든 여래는 언제 다시 모든 번뇌가 생기겠습니까?

* 불도를 이룸과 본래 부처를 묻고 있다.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래 부처라면 불도를 이룰 일이 없고, 무명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본래부처라고 하는가? 또 본래 부처인데 무명이 생겼다면 여래에게도 다시 무명이 생기지 않을까?

 오직 바랍니다. 한량없는 자비로써 모든 보살을 위하여 비밀의 진리를 여시고 말세의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수다라의 가르침인 了義法門(료의법문)을 듣게 하시어 영원히 의심을 끊게 하여주십시오.』

* 修多羅 - 경(sutra)

 이 말을 마치고 오체투지 하였는데 이와 같이 세 번을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금강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해 여래의 깊고 비밀한 구경 방편을 묻는구나. 이 모든 보살의 최고의 가르침인 요의 대승은 능히 배우는 모든 보살과 말세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적인 믿음을 알게하여 의심을 영원히 끊게 할 수 있으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다.』

 그때 금강장보살이 가르침을 기쁘게 받들고 모든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모든 세계 시작과 마침, 남과 사라짐, 앞뒤, 유무, 모이고 흩어짐, 일어나고 멈춤이 생각 생각마다 서로 이어져 순환하고 왕복하며 가지가지 취하고 버린다. 이 모두가 윤회이다. 윤회를 벗어나지 않고 원각을 분별하려 하면 그 원각성이 곧 같이 유전하게 되어 윤회를 벗어났다고 하나 옳지가 않다.

* 정견을 갖추지 못하고서 판단하는 모든 것이 환인데 그 幻으로써 보여진 원각 역시 환이 된다. 이는 마치 알록달록 칠해진 안경을 쓰고 물체의 색을 구별하려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움직이는 눈이 고요한 물을 흔들 듯, 가만히 있는 눈에 불 바퀴를 보듯, 움직이는 구름이 단을 움직이듯, 움직이는 배가 언덕을 옮기듯 또한 이와 같다.

 선남자여, 모든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 저 물체가 멈추는 것도 오히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생사에 유전하는 미혹한 마음이 아직 청정해지지 않았는데 그 마음으로 부처님의 원각을 본다면 어찌 그것이 움직이지 않을 것인가? 이러므로 문득 세 가지 의혹이 생기는 것이다.』

* 실제로 원각을 깨닫지 못하고 원각을 추리하려 들면 결국 엉뚱한 곳에 이르고 마니, 이 역시 幻(환)이다. 수행하는 사람 중에는 논리로써 실상을 찾으려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幻을 짓는 것일 뿐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눈병이 걸린 사람이 허공의 꽃을 헛보지만, 만약 눈병이 없어지면 ‘이 눈병이 이미 사라짐에 언제 다시 눈병이 생길까?’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눈병과 허공의 꽃은 상대하여 기다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허공의 꽃이 이미 허공에서 사라졌을 때 ‘허공이 언제 다시 허공의 꽃을 생기게 할까?’하고 말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허공에 본래 꽃이 없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다.

* 허공의 꽃이 헛것이고 착각이었음을 알았다면 그뿐이지 언제 다시 허공의 꽃이 나타날까 생각할 사람은 없다.

생사와 열반이 일어나고 사라짐과 같으며 묘각의 두루 비춤은 허공의 꽃과 눈병을 떠나는 것이다.』

* 깨달음이란 무명을 벗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상을 잘못 보는 일도 없다.

 

『선남자여, 허공이 잠시만 있거나 없거나 한 것이 아니다. 하물며 여래의 원각에 수순하여 허공의 평등한 본래 성품이 됨이겠는가?

 선남자여, 금광을 녹여 나온 금은 다시 녹임이 없다. 이미 금이 되었다면 다시 금광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무궁한 시간이 지나도 금의 성질은 무너지지 않으며 본래 성취함이 없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니 여래의 원각도 역시 이와 같다.』

* 금은 금의 原鑛에서 나온다. 일단 녹여 금을 제련해내면 다시 원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원광에 금이 없었다면 금이 나올 수가 없다. 결국 중생에게는 원래 원각에 무명이 씌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선남자여, 모든 여래의 원각심에는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으며, 성불과 성불 아님도 없으며 헛된 윤회와 윤회 아님도 없다.

 선남자여, 모든 성문의 원만한 경계만으로는 심신과 말이 다 끊어졌지만 여래가 친히 증득한 열반에는 이를 수 없다. 하물며 범부의 알음알이로 여래의 원만한 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하나 마침내 태울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윤회의 마음으로 윤회의 견해를 내어 여래의 큰 적멸의 바다에 들어가지만 결국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들이 먼저 시작도 없는 윤회 근본을 끊어야 한다.

* 윤회의 근본은 無明이다. 비유하자면 염색된 안경을 끼고 아무리 색을 구별하려해도 구별할 수 없다. 먼저 염색된 안경을 벗어야 하며, 염색된 안경을 벗었을 때는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냥 눈앞에 나타난다.

 선남자여, 지음이 있는 사유는 유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모두 육진과 망상 인연의 기운이니 실제의 마음 본체가 아니다. 허공의 꽃과 같아 이 사유를 이용하여 부처님 경계를 분별하려 하면 그것이 오히려 허공의 꽃이 다시 허공의 열매를 만드는 것과 같다. 망상만 펼칠 뿐이니 옳은 것이 없다.

 선남자여, 허망한 들뜬 마음이 교묘한 견해가 많아서 원만한 방편을 성취하지 못하니, 이와 같은 분별은 바른 질문이 되지 않는다.』

* 요리조리 재고, 추리하면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으나, 그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을 설하셨다.

 금강장보살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의 적멸한 본성은 시작과 끝이 없다.

 만약 윤회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되풀이 하여

 다만 윤회 속에 있을 뿐이니 부처님의 바다에 들 수 없다.

 비유하면 금의 원광을 녹임에 금은 녹였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또 본래 금이 있다하여도 녹임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한번 참다운 금의 본체가 이루어지면 다시는 원광이 되지 않는다.

 생사와 열반, 범부와 부처

 똑같이 허공의 꽃이 되며, 사유도 오히려 허깨비 변화이니

 하물며 허망함을 꾸짖을 것인가? 만약 이 마음을 안다면

 그 후에 원각을 구하게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