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사찰 사진

고란사의 벚꽃

서원365 2013. 4. 24. 17:41

 

고란사의 벚꽃

 4월 21일 오전 10시 반경에 추풍령에 도착해보니 주변 산들이 모두 눈으로 하얗다. 편의점 주인이 전날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전날이라면 곡우(穀雨)였다.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날이다. 나중에 친구들이 대구 갓바위에도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고 했다. 기상 이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찬바람이 매서워, 날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설핏 들지만, 곧 잊어버리고 계속 부여로 향한다.

 

 부여는 여느 봄 날씨 그대로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걸으니 좀 덥게 느껴진다. 부여는 오곡 비빔밥이 대표적인 음식인지 식당 안내판 메뉴에 오곡 비빔밥을 적은 식당이 많다. 큰 입간판을 세우고 거기에 대표적인 음식점과 그 자리로부터의 거리, 대표 음식,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는데,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나는 전부터 사람 이동이 많은 곳에 안내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좀 큰 안내판에 주요 건물이나 시설이 표시된 주변 지도를 그려놓고, 동심원을 그려 거리를 표시하면 참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가까운 거리는 묻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다. 대개 외지에서 온 사람은 위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웬만하면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의 입장에서 봐도 한참 동안 줄 서서 고객을 태우고 보니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하면 짜증이 날 것이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봐도 필요 없이 차량 운행을 하여 공기를 더럽히게 된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다. 부소산성은 북쪽은 백마강을 끼고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한쪽만 방어하면 되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천혜의 요새가 있고,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잘못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부소산성 산책로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낙화암의 삼천궁녀 얘기를 하고 있다. 아내도 삼천궁녀를 어떻게 거느렸을까 하고 놀라워한다.

“삼천궁녀는 사실이 아니야. 여기 지형을 잘 봐. 앞쪽은 평야고 뒤쪽은 절벽이니 당나라 군대는 바로 이쪽 앞에 진을 치고는 공격해왔겠지. 당나라군이 성벽을 넘어오니까 성안의 부녀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절벽으로 쫓겨, 나중에는 더 이상 피할 데가 없으니까 서로 떠밀려 떨어진 거야. 궁녀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성안의 부녀자라고 봐야하지.”

 신라는 왜 당과 손을 잡았을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고구려-백제-왜가 동맹을 하고 있었으므로 신라는 당 이외에는 손잡을 나라가 없었다. 특히 의자왕이 수시로 신라를 공격하였으므로 고립무원의 신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난국을 돌파하는 방법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당나라 역시 고구려가 거세게 대항했으므로 고구려를 견제하는 방법으로 신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충 흥수  계백

 역사는 승자의 논리로 기록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의자왕의 실정이 제법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망국의 요사스런 징조를 여러 가지로 기록해놓았다. 물론 대부분 지어낸 것이고, 뜬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자왕이 성충과 같은 충신을 멀리한 것은 사실이다. 부소산성을 들어가면 오솔길을 돌아 바로 만나는 것이 삼충사(三忠祠)이다. 삼충사는 백제에 끝까지 충절을 지킨 성충, 흥수, 계백 등 세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성충은 의자왕의 음란한 생활을 간하다가 투옥되었고, 결국 감옥에서 죽었다. 흥수는 나당 연합군이 진격해올 당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왕에게 국가가 위급할 때 동으로는 탄현(炭峴)을 지키고, 서로는 백강(白江)을 지키라고 하였으나 간신들이 다른 의견을 내는 바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패망하였다. 계백은 결사대 오천으로 지금의 논산시 연산인 황산벌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충신은 주군을 잘못 만나면 반드시 욕을 당하게 되어 있다. 간신은 자기의 유불리를 따져 처세하다가 위험을 빠져나간다.

 

 부소산성은 예전에 수학여행 학생들을 이끌고 다녀간 적이 있다. 이번에 다시 찾은 것은 충청도 출신인 아내가 낙화암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가보고 싶다고 해서였다. 수학여행 학생을 인솔하면서 여행하는 것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언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신경쓰다보면 여유 있는 감상은 어렵다. 부소산성은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곳곳에 있는 문화재가 없어도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고 바람과 숲과 새들을 벗 삼아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좋다. 여럿이 오는 것보다는 혼자 오는 것이 더 좋겠다.

   부소산성에는 벚꽃이 만개했다가 막 지고 있었다.

 벚꽃이 한창이다. 만개했던 벚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함박눈처럼 떨어진다. 군창지(軍倉址)에 이르니 노래 소리가 떠들썩하다.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이 “백마강” 노래를 부르고 있다. 처절했던 전투도, 나당 연합군에 밀려 낙화암 아래 강물 속으로 떨어진 부녀자들의 애환도 그저 재미있는 얘깃거리로만 남아 있다. 군창지는 조선 시대에 군량을 보관하던 곳이라고 한다. 1915년에 군창지 지하에서 쌀과 보리, 콩 등이 불에 탄 채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군창지 : 소나무만 제 멋을 자랑하고 있다.

 군창지를 돌아 사자루(泗泚樓)로 올라간다. 앞이 탁 트이고 부여 시가지와 구룡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백마강(금강의 하류)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자루에 올라보면 부소산이 한 나라의 도읍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자루에서 본 부여 전경

 사자루에서 내려와 낙화암 쪽으로 향한다. 날씨도 화창하고 휴일이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낙화암으로 향하는 길 가에는 작자 미상의 시비가 서있다. 모두 백제의 마지막 전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고 있다. 낙화암 꼭대기에 세워진 백화정(百花亭)은 주변의 소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보이며,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탐방객들은 빼어난 경관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린다. 특히 백화정 옆의 소나무는 운치를 한껏 더하는데, 만약 소나무가 없었더라면 백화정은 제법 쓸쓸하게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손잡이가 없는 나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정자에 오른다. 옆에 있던 어떤 여성분이

“저거 봐. 저거. 살아있는 그림이야.”

라고 한다. 기둥 사이의 사각형 공간이 바깥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멋진 액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싱그럽고 힘 있는 소나무 가지, 하얗게 핀 벚꽃, 그 사이로 보이는 백마강의 푸른 물결, 그리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 아내는 좀 더 있다가 내려가자고 하지만, 계속 올라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더 머무르기가 미안해, 어쩔 수 없이 내려오고 만다.

 

백화정

 백화정에서 본 백마강

 백화정 아래로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가면 절벽에 고란사가 붙어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오색 연등으로 아름답게 장식을 해놓았다. 전각이라고는 극락보전, 삼성각이 전부이고, 종무소도 극락보전 건물에 방 한 칸을 내어 만들었다. 절 이름을 표시하는 편액도 같은 건물에 붙어 있다. 아주 작은 절이다. 극락보전 안에는 스님 한 분이 줄 지어 드나드는 사람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경에만 열중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합장하고 섰다.

‘무상(無上)의 진리를 전해주신 부처님께 엎드려 절합니다. 전해주신 진리를 온전히 깨닫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번뇌를 벗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삼배를 올린다.

고란사

 전각에서 나와 다시 절을 둘러본다. 위로는 낙화암 절벽이 솟아 있고 밑으로는 백마강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전각 뒤로 돌아가니 고란정이 있다. 한 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란다. 옛날 어떤 노부부가 늙도록 아들이 없었는데, 할아버지가 이 약수를 너무 많이 먹어 어린애가 되었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어린애가 된 할아버지를 키웠는데,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벼슬이 좌평까지 오르게 되었단다. 왕에게도 늘 이 물을 떠다 바쳤는데, 암벽에 자라는 고란 잎을 띄워 고란약수임을 증명했다고 한다. 줄을 서서 한 잔을 마시고 나오니 초등학생들이 약수를 먹겠다고 줄을 서 있다. 담임 선생님이,

“너희들 몇 살이야? 여덟 살이야. 이 물을 먹으면 다섯 살이 되는데, 그래도 먹을 거야?”

하고 묻자, 아이들을 일제히

“예, 먹을 거예요!”

하고 외친다.

 고란초는 바위에 붙어사는 양치식물이다. 잎이 둥글고 길쭉하다. 언뜻 보면 절벽에 잎만 한 개씩 붙어 있어서 꼭 바위에서 잎이 솟아난 것 같다. 잎 가운데는 세로로 두 줄 나란히 둥근 점이 박혀있다.

 

유람선에서 본 낙화암

 고란사를 뒤로 하고 강가로 내려가 보니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배를 타면 바로 부소산성 입구 쪽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배에서 본 낙화암과 고란사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낙화암도 그냥 조그만 언덕 같고, 그 언덕에 조그마한 고란사가 붙어 있다. 유람선에서는 잠시 관광 안내 방송을 하더니 “백마강” 노래를 들려준다. 함께 탄 초등학생들은 노래에는 관심이 없고 장난치느라 바쁘고, 인솔 선생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멀리 낙화암 절벽에 핀 벚꽃이 유난히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