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사찰 사진

수덕사에서 꽃을 보다

서원365 2011. 8. 20. 19:07

 

충청도는 내 아내의 고향이 있는 곳이다. 인간도 뭇 생명체들처럼 인연에 끌리면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자주 수덕사 얘기를 했지만, 먼 거리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결심을 하고 무작정 수덕사를 향해 나서게 되었다. 대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아침 잠을 설치게 하였다.

수덕사 주차장에 내려 보니 주차장 규모도 제법 컸고, 입구에 늘어선 상가와 식당들이 제법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만큼 수덕사를 찾는 참배객과 관광객이 많다는 말이다. 산문을 지나 수덕사 경내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있는 조각품들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오줌 싼 아이가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는 모습도 있고, 보자기에 싼 상자 모양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점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산사의 경내가 넓은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절에서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싶었다.  

 

 

  길가에는 개상사화가 어지러이 피어 있었다. 개상사화는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고 보니 수덕사가 생겨난 전설도 이 꽃말과 비슷한 점이 있다.

 옛날 수덕이라는 도령이 있었다. 그런데 수덕 도령은 어느 날 사냥을 갔다가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수덕 도령은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덕숭 낭자는 수덕 도령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끈질기에 청을 하자 마침내 덕숭 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지으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수덕 도령은 기쁘게 절을 지었으나 그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여 절을 짓자마다 불타버렸다. 다시 마음을 잘 챙겨 예배를 올리고 절을 지었으나 가끔 떠오르는 낭자 생각 때문에 다시 절은 불타버렸다. 세 번째는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절이 완성되자 덕숭 낭자도 청혼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혼은 하였지만, 덕숭 낭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수덕 도령이 억지로 안으로 하자 뇌성벽력이 일어나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 쪽만 수덕 도령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중에 버선 모양의 꽃이 자랐는데 버선꽃이라고 하였다. 사실은 덕숭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하였고, 산 이름을 덕숭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원담선사 부도

멀리 德崇叢林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조금 오르니 길 오른쪽에 부도탑이 보였다. 세워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다가서서 보니, 수덕사 제3대 방장스님인 원담(圓潭)대선사의 부도탑이었다. 원담 대선사. 처음 듣는 법명이었다. 하기야 내 짧은 지식으로는 거의가 다 처음 듣는 것이기 마련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길이다. 일주문에서 보면 좌우에 우거진 나무 때문에 계단길은 터널 속을 지나는 듯하다. 수덕사의 사천왕상은 참으로 역동적이었다.

금강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고 계단길을 다 오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대웅전 앞 마당에 이른다. 뒷쪽 덕숭산이 수덕사를 감싸고 있다. 평일인데도 수덕사는 붐볐다. 법고 앞에서는 어떤 노인이 목청을 돋우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곧장 대웅전으로 올라가 정례하였다. 가족들의 영가들이 내세에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안해지는데 미력이나마 보탤 것을 서원하고, 불법을 열심히 배울 것을 서원하였다.

대웅전을 나와 절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대웅전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았다. 해설판을 보니 국보 49호로 지정된 건물이었다. 고려 충렬왕(1308년)에 지은 건물로서 아주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진신사리탑 

마당 한 가운데 있는 탑은 보개 윗부분이 금으로 칠해져있었다. 수덕사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리탑인가보다 하고 가까이 가보니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참배객들이 사리탑에서 합장을 하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내와 함께 탑돌이를 하면서 대웅전에서 했던 대로 서원하였다.

 

 

탑돌이를 하고나서 넉넉한 그늘을 가진 느티나무 아래에 앉았다. 문득 보니 당우에 크게 적혀 있는 世界一花란 현판이 보였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다. 그렇다. 꽃잎과 꽃술과 이파리와 꽃대가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의지해 있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고, 토양이 있고, 햇빛이 있고, 공기가 있고, 한량없는 것들이 서로 의지하여 한 송이 꽃을 피운다. 그리하여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하나의 꽃이 된다. 그런 것을 잊고 꽃잎이 서로 다투고, 꽃송이와 꽃대가 서로 싸우고, 꽃송이가 이파리를 무시하면 이 세상은 어느새 지옥을 연출한다.

산문 밖 산채 비빔밥은 참 매우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곡사에 들러 백범 선생의 발자취도 느껴보았다. 백범 선생이 기거했다는 요사채 바로 앞에 오래된 목련 한 그루가 있었는데, 3월에 피는 자목련 한 송이를 피우고 있었다.

 

마곡사에서 본 자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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