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책이야기

눈먼 자들의 도시

서원365 2014. 1. 26. 11:57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o/정영목

해냄출판사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눈이 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사람이 네거리 정지선에서 교통 신호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우유처럼 희게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름을 붙이면 백색 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백색 실명은 전염병이다. 백색 실명자와 눈이 마주친 사람도 역시 백색 실명이 된다. 최초 실명자를 집으로 데려다 주고 그의 자동차를 훔친 자도 백색실명이 되었으며, 최초 실명자를 검진한 안과 의사도 역시 실명이 되었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정부는 실명자들을 수용소에 격리시키고 군인들에게 지키게 한다.

 

 안과의사 부인은 눈이 먼 체 하며 자기 남편과 함께 수용소로 들어간다. 정문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눈먼 자들이 정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면 그대로 사살해버린다. 수용소 안은 어떨까? 아무도 간호해주거나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다. 눈이 멀까 두려워 아무도 수용소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갑자기 눈인 먼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로지 먹을 것에 매달린다. 아무 데나 배설하고 씻지도 못한다. 수용소 안은 악취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가운데 군인들이 가져다주는 얼마 안 되는 음식에 관심이 집중된다.

 

 음식이 충분하지 않자 수용소 안에도 깡패들이 등장하여 음식을 독차지한다. 깡패는 총을 가지고 있고, 본래 맹인인 사람이 돕고 있다. 깡패들은 환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값진 물건을 모두 빼앗고 음식을 조금 준다. 다음으로는 여자들에게 몸을 요구한다. 수용된 사람들은 깡패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도 도시에서는 눈먼 자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버스 기사가 운전 중에 갑자기 눈이 멀어 사고를 내기도 하고, 비행기 조종사가 갑자기 눈이 멀어 비행기가 추락하기도 한다.

 

 착취를 당하는 쪽은 가만히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안과의사 아내가 총을 가진 깡패를 가위로 찔러 죽인다. 각 병실에서 지원자들이 모여 깡패 병실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본래 맹인이었던 자의 총격에 두 사람이 희생된다. 깡패 병실은 또 있을지도 모를 공격을 막기 위해 입구 쪽에 매트리스와 침대로 바리게이트를 쳐 방어한다. 그러자 한 여자가 가지고 있던 라이터로 매트리스에 불을 질렀다. 불은 곧 병동 전체에 옮겨 붙고 환자들은 일부는 타죽고 일부는 병동을 탈출해서 나온다. 그들은 사살당할까 두려워 정문 쪽으로 가지 못한다. 그런데 이미 정문에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들도 이미 백색 실명에 전염된 것이다.

 

 자유의 몸이 된 같은 병실 사람들 7명은 안과의사의 아내와 함께 거리로 나선다. 거리는 악취가 풍기고, 실명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잠겨 있지 않은 집은 네 집 내 집이 없다. 한 번 집을 잊어버린 사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직 먹을 것을 찾아 배회하고 있다. 쓰레기와 배설물로 더러운 거리에는 시신들이 즐비하고, 개들이 그것을 뜯어먹고 있다.

 

 안과의사의 아내에 의지한 7명의 환자들은 서로 끈에 의지하여 몇 집을 거친 뒤 안과의사의 집으로 간다. 다행히 잠겨 있는 문을 아무도 열지 못했다. 더러워진 신발과 옷을 현관에서 모두 벗고 새 옷을 갈아입은 뒤 집안으로 들어간다. 한 모금의 물이 아쉬운 상황. 함께 있던 남자 아이가 물이 먹고 싶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변기 속의 물을 가져다준다. 그러다 문득 병 속에 물이 있음을 기억해내고 그 물을 정말 소중하게 먹는다. 세찬 비가 내린다. 빗물로 실명된 이후 처음으로 몸을 씻는다. 여전히 문제는 먹을 것이다. 가게마다 먹을 것은 이미 대부분 없어진 상황이다.

 

 며칠 뒤 시골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을 그냥 두고 정말 시골로 가야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최초 실명자가 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낀다. 실명에서 다른 실명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하였다. 아내에게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의 아내가 대답한다. 눈 먼 것은 생각하지마라고 충고한다. 이런 충고에 짜증이 난 그가 눈을 번쩍 뜨는 순간 앞이 보였다. 새벽에는 의사가 시력을 회복하였다. 아래층에서도 눈이 보인다고 누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생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이 되면 자기 생명부터 돌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윤리를 택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행위가 결국 나와 너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윤리 그 자체는 무의미하다. 윤리를 지키는 것이 숭고한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굶주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최대의 관심사는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음식은 충분한데 추위가 심했다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물건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모든 물질적인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돈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며, 또한 각종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돈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나, 이 소설 속에서 음식에 대한 관심 집중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전체주의 사회처럼 독재 권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권력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먹이에 집착하는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적일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내면을 보면 동물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동물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리하여 동물적 욕구를 억누르고 더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동물적 욕구 충족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동물적 욕구 충족을 포기하면서 다른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 욕구 충족에 눈멀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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