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인연분

서원365 2013. 8. 17. 11:37

Ⅱ. 正宗分(정종분)

 1. 因緣分(인연분)

  1) 論(논)을 짓는 인연

初說因緣分(초설인연분)

먼저 인연분을 설한다.

 

問曰(문왈) 有何因緣(유하인연) 而造此論(이조차론)

묻는다. 어떤 인연이 있어 이 논을 짓는가?

 

答曰(답왈) 是因緣有八種(시인연유팔종) 云何爲八(운하위팔)

답한다. 이 인연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이 되는가?

 

一者(일자) 因緣總相(인연총상) 所謂(소위) 爲令衆生(위령중생) 離一切苦(이일체고) 得究竟樂(득구경락) 非求世間名利恭敬故(비구세간명리공경고)

첫째, 인연을 종합하면 소위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떠나 궁극의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며, 세속의 명예와 이익과 공경 받음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다.

* 令(령) : ~하여금 ~하게하다.

* 得究竟樂(득구경락) : 究竟(구경)은 궁극적이라는 뜻. 궁극적 즐거움[究竟樂]은 곧 열반을 말한다.

* 마명보살이 이 논을 지은 것은 중생을 위한 것이지, 마명보살 자기가 명예나 이익을 얻는다든지, 세상 사람으로부터 공경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二者(이자) 爲欲解釋如來根本之義(위욕해석여래근본지의) 令諸衆生正解不謬故(영제중생정해불류고)

둘째, 여래의 근본 뜻을 해석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바르게 이해하게 하고 그릇되지 않게 하고자 하려는 까닭이다.

* 爲欲(위욕) : 하고자 하다.

* 謬(류) : 그릇되다. 오류.

 

三者(삼자) 爲令善根成熟衆生(위령선근성숙중생) 於摩訶衍法(어마하연법) 堪任不退信故(감임불퇴신고)

셋째, 선근이 성숙한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법을 감당하여 믿음을 물러나지 않게 하고자 하려는 까닭이다.

* 堪任不退(감임불퇴) : 감임(堪任)은 임무를 감당함. 불퇴(不退)는 불퇴전(不退轉)으로 믿고 수행함에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

* 善根成熟衆生(선근성숙중생) : 이미 수행의 마음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四者(사자) 爲令善根微少衆生(위령선근미소중생) 修習信心故(수습신심고)

넷째, 선근이 적은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을 닦아 익히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五者(오자) 爲示方便(위시방편) 消惡業障(소악업장) 善護其心(선호기심) 遠離癡慢(원리치만) 出邪網故(출사망고)

다섯째 방편을 보여 나쁜 업장을 없애고 그 마음을 잘 지켜 어리석고 교만한 마음을 멀리 여의어 삿된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한 까닭이다.

* 邪網(사망) : 경을 잘못 이해하여 잘못된 견해에 걸려 있는 것.

* 憨山 : 여기서부터 여덟째 인연까지는 근기가 하열하여 수행신심에서 쉬이 물러나는 자들이 많은 방편을 의뢰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의 네 인연이 있게 된 것이다.

 

六者(육자) 爲示修習止觀(위시수습지관) 對治凡夫二乘心過故(대치범부이승심과고)

여섯째, 止觀(지관)을 닦아 익힘을 보여 범부와 二乘(이승)의 마음의 허물을 對治(대치)하기 위한 까닭이다.

* 止觀(지관) : 뒤에 설명이 나옴.

* 二乘(이승) :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을 말한다. 성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아라한의 경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연각은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혼자 수행을 하여 연기법을 깨달아 아라한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연각을 벽지불(辟支佛) 또는 독각(獨覺)이라고 한다. 이승의 마음의 허물이란 이승이 자기의 번뇌를 끊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중생 구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말한다.

* 對治(대치) : 상대하여 다스림.

 

七者(칠자) 爲示專念方便(위시전념방편) 生於佛前(생어불전) 必定不退信心故(필정불퇴신심고)

일곱째, 專念(전념)의 方便(방편)을 보여, 부처님 전에 태어나서 반드시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八者(팔자) 爲示利益(위시이익) 勸修行故(권수행고)

여덟째 이익을 보여 수행을 권하기 위한 까닭이다.

有如是等因緣(유여시등인연) 所以造論(소이조론)

이와 같은 인연이 있으므로 論(논)을 만들었다.

* 첫째부터 여덟째까지의 자세한 내용들이 이후부터 전개되는 이 기신론의 내용들이다.

 

 

  2) 論(논)의 특색

問曰(문왈) 修多羅中(수다라중) 具有此法(구유차법) 何須重說(하수중설)

묻는다. 경에 이 법이 갖추어져 있는데 왜 굳이 다시 설해야 하는가?

* 修多羅(수다라:sutra) : 경전.

* 이 기신론에서 설명하는 모든 것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에 다 설해져 있다. 그런데 왜 다시 이 기신론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答曰(답왈) 修多羅中(수다라중) 雖有此法(수유차법) 以衆生根行不等(이중생근행부등) 受解緣別(수해연별)

답한다. 경에 비록 이 법이 있지만, 중생들의 근기와 수행이 같지 않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조건이 다르다.

 

所謂(소위) 如來在世(여래재세) 衆生利根(중생이근) 能說之人(능설지인) 色心業勝(색심업승) 圓音一演(원음일연) 異類等解(이류등해) 則不須論(즉불수론)

소위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중생들의 근기도 뛰어났고, 부처님도 색신과 마음의 업이 훌륭하여 원만한 말씀으로 한번 설명하시면, 서로 다른 부류가 다 같이 이해하였으므로 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衆生利根(중생이근) : 利는 예리하다는 뜻이다. 즉 중생들의 근기가 둔한 것이 아니라 뛰어나다는 뜻이다.

* 能說之人(능설지인) : 설하는 사람이므로 여기서는 부처님을 가리킨다.

* 圓音一演(원음일연) : 원만한 소리(圓音)는 그 말씀이 원만하여 누구나 이해하기 좋다는 뜻이다.

* 元曉[요약] : 원음(圓音)은 일음(一音)이니, 여기에 대한 여러 논사들의 설이 있다. a.부처는 제일의신(第一義身)이니 만상(萬像)을 영원히 끊어 형체와 소리가 없으나 다만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한량없는 형체와 소리를 나타낸다. 부처의 편에서 보면 소리가 없으니 일음이지만 중생의 편에서 보면 근기에 따라 하나가 아니다. 이는 경에 ‘그 무리들의 음에 따라 중생에게 널리 알려준다.’고 한 것과 같다. b.부처님 편에서 말한다면 실로 형체와 소리가 있으며 그 소리가 다름이 없이 일음이며, 원만하여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 이 원음이 증상연(增上緣)이 있기 때문에 근기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로 나타난다. 이는 ≪유마경≫에 ‘부처가 일음으로 법을 연설할 때에는 중생이 무리에 따라 각각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c. 여래가 실로 많은 음성이 있어서 모든 중생이 가진 언음(言音)이 여래의 법륜의 음성에 포섭되지 않음이 없다. 그런데 부처의 음성은 장애가 없어서 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이다. 일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일음이라 하고, 하나가 곧 일체이기 때문에 원음이라고 한다. 이는 ≪화엄경≫의 ‘일체 중생의 말하는 법을 여래가 한 말로 연설하여 다하여 남음이 없다. 모두 정밀한 음을 알아듣게 하고자 하시니, 보살이 이로 인하여 처음 발심하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 增上緣(증상연:Adhipati-pratyaya) : (은정희 해설) - 네 가지 연의 하나. 다른 것이 생겨나는 데 힘을 주어 돕는 여력증상연(與力增上緣)과 다른 것이 생겨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부장증상연(不障增上緣)의 2종이 있다.

* 異類等解(이류등해) :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서로 달랐지만[異類] 부처님의 설법이 뛰어나 다 같이 이해했다[等解].

 

若如來滅後(약여래멸후) 或有衆生(혹유중생) 能以自力(능이자력) 廣聞而取解者(광문이취해자)

여래께서 입멸하신 뒤라면, 혹 자력으로 널리 듣고 알 수 있는 중생도 있고,

* 元曉 : 널리 경을 들음으로써 부처의 뜻을 알게 되어 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

 

或有衆生(혹유중생) 亦以自力(역이자력) 少聞而多解者(소문이다해자)

또는 역시 자력으로 적게 듣고도 많이 아는 중생도 있으며,

* 元曉 : 널리 경을 듣지 않았지만 경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역시 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或有衆生(혹유중생) 無自心力(무자심력) 因於廣論(인어광론) 而得解者(이득해자)

또는 스스로 심력이 없어 널리 논한 것으로 인해 알 수 있는 중생도 있으며,

* 元曉 : 불경에만 의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심력이 없다고 말한 것이고 ≪지도론≫≪유가론≫ 등의 논을 들음으로써 알게 된다고 말하였다.

 

或有衆生(혹유중생) 復以廣論文多爲煩(부이광론문다위번) 心樂摠持少文(심락총지소문) 而攝多義(이섭다의) 能取解者(능취해자)

또는 다시 널리 논한 글이 많은 것을 번거롭게 여기고 총지의 글이 적으나 많은 뜻을 거두고 있음을 마음으로 즐겨 알아들을 수 있는 중생도 있다.

* 摠持(총지:dharani) :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면 다라니(陀羅尼)이다. 부처님께서 하신 뜻과 내용 및 의리 등을 잃지 않고 다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요점 또는 핵심을 말한다.

* 元曉 : 근기가 예리하기는 하지만 번거로움을 참지 못해 오직 글이 간략하면서 뜻이 풍부한 논에 의해서만 불경에서 설한 뜻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如是此論(여시차론) 爲欲總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故(위욕총섭여래광대심법무변의고) 應說此論(응설차론)

이처럼 이 논은 여래의 넓고 크고 깊은 법의 가없는 뜻을 총섭하기 위해서, 마땅히 이 논을 설한다.

* 元曉 : 此論 이하는 따로 네 번째 사람에 대한 것이니, 반드시 기신론을 지어야만 하는 뜻을 결론지어 밝힌 것이다.

* 원효대사에 따르면 이 기신론이 필요한 사람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 기신론을 읽으면 불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