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심진여문

서원365 2013. 8. 17. 15:26

 3. 解釋分(해석분)

  1) 總說(총설)

已說立義分(이설입의분) 次說解釋分(차설해석분)

이미 입의분은 설명하였으니, 다음은 해석분을 설명하겠다.

 

解釋分有三種(해석분유삼종) 云何爲三(운하위삼) 一者顯示正義(일자현시정의) 二者對治邪執(이자대치사집) 三者分別發趣道相(삼자분별발취도상)

해석분은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가 된다고 하는가? 첫째, 바른 뜻을 드러냄이며, 둘째, 그릇된 집착을 다스림이며, 셋째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함이다.

* 分別發趣道相(분별발취도상) : 發趣는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로 나아감이다.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함. 그 내용은 뒤에 나온다.

* 해석분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가를 미리 말하고 있다.

 

 

  2) 顯示正義(현시정의)

  (1) 二門(이문)

顯示正義者(현시정의자) 依一心法(의일심법) 有二種門(유이종문) 云何爲二(운하위이)

바른 뜻을 드러낸다는 것은 一心法(일심법)에 의해 두 가지 문이 있음이니, 무엇이 둘이 된다고 하는가?

 

一者心眞如門(일자심진여문) 二者心生滅門(이자심생멸문)

첫째, 심 진여문이며, 둘째 심 생멸문이다.

是二種門(시이종문) 皆各總攝一切法(개각총섭일체법) 此義云何(차의운하) 以是二門(이시이문) 不相離故(불상리고)

이 두 가지 문이 모두 각각 일체법을 거두니, 이 뜻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 이문이 서로 떨어지기 않는 까닭이다.

* 元曉 : 일체법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寂靜)하여 오직 일심일 뿐인데, 이러한 것을 심진여문이라고 이름 하기 때문에 (≪능가경(㘄伽經)≫에서) ‘적멸이란 일심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일심의 체가 본각이지만 무명에 따라서 움직여 생명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 여래의 본성이 숨어있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는 ≪능가경≫에서 말하기를

“여래장이란 선과 악의 원인으로서 일체의 취생을 두루 잘 일으킨다. 비유하자면 환술사가 여러 가지 취(趣)를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과 같다.”

고 한 것과 같다. 이런 뜻이 있으므로 ‘일심이란 여래장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는 일심의 생멸문을 나타낸 것으로 아래 글의 (심생멸문에서) 心生滅者 依如來藏故 有生滅心라고 하고 이어 此識 有二種義 …一者 覺義 二者 不覺義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다만 심생멸심만을 취해서 생멸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생멸자체와 생멸상을 통틀어 취하여 모두 생멸문 안에 둔다는 뜻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문이 이러한데 어떻게 일심이 되는가? 염정(染淨)의 모든 법은 그 본성이 둘이 없어 진망(眞妄)의 이문(二門)이 다름이 있을 없기에 일(一)이라고 이름하며, 이 둘이 없는 곳이 모든 법 중의 실체인지라 허공과 같지 아니하여 본성이 스스로 신해(神解)하기 때문에 심(心)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일(一)이 있을 수 있는가? 일도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심이라고 말하는가? 이런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이니 무엇이라고 지목할지 모르겠으나 억지로 이름을 붙여 일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是二種門 皆各總攝一切法이라고 한 것은 위의 입의분 중에서 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을 해석한 것이니 위에서는 바로 ‘마음이 일체법을 포괄함’을 밝혔으나, 是二種門 皆各總攝一切法을 나타내었다. 是二門 不相離故라고 한 것은 각기 총괄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는 진여문은 염정의 통상(通相)이며 통상 밖에 따로 염정이 없기 때문에 염정의 모든 법을 총섭할 수 있음과 생멸문은 각기 염정을 나타내어 염정의 법이 모두 포함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또한 일체의 모든 법을 총섭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통상과 별상이 다르긴 하나 다 같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是二門 不相離고 말하였다.

* 元曉 : <별기> 진여문은 모든 법의 통상이며, 통상밖에 다른 제법이 없어서 모든 법이 다 통상에 의하여 포괄된다. 이는 미진이 질그릇의 통상이며, 통상 밖에 질그릇이 없어서 질그릇이 모두 미진에 의해 포섭되는 것처럼 진여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생멸문이란 바로 이 진여가 선과 악의 인인지라 연과 화합하여 모든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사실 모든 법을 만들어 내지만 이 법이 모두 진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도 진여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 以是二門不相離故(이시이문불상리고) : 진여문과 생멸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는 체요 생멸은 용이다. 생멸하는 마음이 따로 있고, 여여한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여로만 있다면 생멸하는 세계를 거둘 수 없고, 생멸로만 있다면 진여를 거둘 수 없다. 양자가 둘이 아니므로 총섭한다고 한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한 바 空卽是色 色卽是空이다.

 

 

  (2) 心眞如門(심진여문)

   ① 離言眞如(이언진여)

心眞如者 卽是一法界大總相法門體.

심진여라는 것은 곧 하나의 法界(법계) 大總相法門(대총상법문)의 본체이다.

 

所謂心性(소위심성) 不生不滅(불생불멸) 諸法唯依妄念(제법유의망념) 而有差別(이유차별), 若離妄念(약리망념) 則無一切境界之相(즉무일체경계지상)

소위 심성이란 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오직 妄念(망념)에 의해 차별이 있는 것이니, 만약 망념을 떠나면 일체경계의 모습이 없다.

* 元曉 : 卽是一法界라고 한 것은 진여문이 의지하는 체(體)를 든 것이니, 일심이 바로 일법계이기 때문이다. 이 일법계가 진여와 생멸의 두 문을 통틀어 포괄하지만, 지금은 별상(別相)의 문을 취하지 않고, 이 중에 다만 총상법문(總相法門)만을 취하였다. 그러나 총상에 사품이 있으며, 이 사품 중에서 삼무성(三無性)이 나타내는 진여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大總相이라고 한 것이다. 궤법으로서 참된 이해를 내기 때문에 법이라고 이름 하며, 통틀어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門이라고 이름한다. 이는 일법계 전체가 생멸문이 되는 것처럼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되는 것이다.

* 四品(사품) :(은정희) - 각체상(覺體相)의 네 가지 대의, 즉 여실공경(如實空境), 인훈습경(因熏習鏡), 법출리경(法出離鏡), 연훈습경(緣熏習鏡)

* 삼무성(三無性) :(은정희) - 미오(迷悟)의 일체 모든 법을 유(有)의 관점으로 변계, 의타, 원성으로 나눔에 대하여 공의 관점으로 삼무성을 세우는 것 a.相無性 - 변계소집성(분별성)의 것은 미정(迷情)의 앞에 나타나는 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니, 노끈을 잘못 보아 뱀으로 여기지만 뱀의 자성이 없는 것. b.生無性 -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 성립되는 의타기성의 것은 일시적인 가현(假現)한 모양에 불과하여 실성이 없으니, 노끈은 삼과 사람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노끈의 실체가 없는 것. c. 勝義無性 - 진여는 원만 상주하는 것으로 만유의 근원인 원성실성 곧 절대법이므로 아무런 모양도 없음을 말함. 삼에서 노끈과 뱀의 모양을 인정하기 어려움에 비유한 것.

* 元曉 : 心性(소위심성) 不生不滅(불생불멸) - 진여문에 의해 그 심성을 논한 것. 심성이 평등하여 삼세(三世)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諸法唯依妄念(제법유의망념) 而有差別(이유차별) - 변계소집상(徧界所執相)을 든 것. 若離妄念(약리망념) 則無一切境界之相(즉무일체경계지상) - 변계소집상에 대하여 無相性을 나타낸 것.

* 一法界大總相法門體(일법계대총상법문체) : 한 법계인 대총상법문의 체가 바로 심진여이다. 대총상법문은 일체라고 표현하면 쉽다. 이것이 하나의 법계를 이루며 그 본체는 심진여가 된다.

* 진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나, 망념으로 인해 사람마다 나타남이 다르다. 그러나 망념만 떠나면 진여가 드러나니 그 진여에는 일체의 경계가 없으므로 평등하다. 진여 자체는 늘 그대로이며,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다.

 

是故一切法(시고일체법) 從本已來(종본이래) 離言說相(이언설상) 離名字相(이명자상) 離心緣相(이심연상)

그러므로 일체법은 본래부터 언설의 相을 떠나며, 名字(명자)의 相을 떠나며, 心緣(심연)의 상을 떠난다.

* 離言說相(이언설상)은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뜻. 離名字相(이명자상)은 이름과 글자로 나타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름과 글자로 나타내면 이미 그것이 어떤 모양을 지니게 돼, 규정하게 되므로 본래의 진여를 떠나게 된다. 離心緣相(이심연상) -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뜻.

 

畢竟平等(필경평등) 無有變異(무유변이) 不可破壞(불가파괴) 唯是一心(유시일심) 故名眞如(고명진여)

필경 평등하며, 변이가 없으며, 파괴할 수 없으며, 오직 한 마음이므로 진여라고 한다.

 

以一切言說(이일체언설) 假名無實(가명무실) 但隨妄念(단수망념) 不可得故(불가득고)

모든 言說(언설)은 임시의 이름일 뿐, 실제가 없는 것이며, 다만 망념만 따를 뿐, 그 실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言眞如者(언진여자) 亦無有相(역무유상) 謂言說之極(위언설지극) 因言遣言(인언견언)

진여라고 말하는 것도 相이 없으며, 말하자면 言說의 궁극은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 것이다.

* 元曉 : 是故一切法(시고일체법) ~ 因言遣言(인언견언) - 먼저 의타성법(依他性法)에 의해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을 밝혔고, 다음은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뜻에 의해 평등진여를 나타냈으며, 뒤에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까닭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是故一切法이라고 한 것은 연(緣)을 따라 의타기법을 내는 것을 말하며, 離言說相이라 한 것은 음성으로 말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며, 離名字相이라 한 것은 명구(名句)로 설명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 의타기법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모든 훈습을 따라서 차별이 나타나지만, 말할 만한 본성의 차별을 떠난 것이다. 이 말할 만하고 반연한할 만한 차별을 떠났다면 이것은 평등한 진여의 도리이므로 畢竟平等 또는 故名眞如라고 한 것이다.

* 말로써 무엇이라고 설명하나 그것은 실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면 아무 것도 전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진여라고 하지만, 그 말을 버리고 말이 가리키는 바를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설한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다.

 

此眞如體(차진여체) 無有可遣(무유가견) 以一切法悉皆眞故(이일체법실개진고)

이 진여의 본체는 버릴 것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참되기 때문이다.

 

亦無可立(역무가립) 以一切法皆同如故(이일체법개동여고)

또 따로 세울 수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 진여라고 하는 것은 일체법과 독립하여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체를 떠나 따로 보내거나, 따로 독립할 수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참되고 일체의 법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 유식삼성(唯識三性) - 지운 스님 설명

a.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분별성이다. 상에 집착하여 이리저리 분별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별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있는 것 같지만, 이치를 따져보면 없으므로 情有理無라고 한다.

b.의타기성(依他起性) - 의타성이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인연에 따라 생겨남을 보는 것이다. 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모습은 있는 것 같지만 성품은 없으므로 相有性無라고 한다.

c.원성실성(圓成實性) - 진실성이다. 실상이며, 진여연기이다. 말과 생각을 떠난 자리이다. 情無理有 相無性有이다.

 

當知一切法(당지일체법) 不可說不可念(불가설불가념) 故名爲眞如(고명위진여)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일체법은 언설로 설명할 수 없으며 심의식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러므로 진여라고 한다.

 

問曰(문왈) 若如是義者(약여시의자) 諸衆生等(제중생등) 云何隨順(운하수순) 而能得入(이능득입)

묻는다. 만약 이와 같은 뜻이라면 모든 중생들이 어떤 방법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答曰(답왈) 若知一切法(약지일체법) 雖說無有能說可說(수설무유능설가설) 雖念亦無能念可念(수념역무능념가념) 是名隨順(시명수순),

답한다. 만약 일체법을 비록 설하기는 하나, 설할 수도 설명할 만한 것도 없으며, 비록 생각하여도 역시 생각할 수도 생각할 말만 것도 없으니, 이를 안다면 이것이 바로 隨順이라고 한다.

 

若離於念(약리어념) 名爲得入(명위득입)

만약 망념을 떠나면 체득해 들어간다고 한다.

* 진여라는 것은 말로서 설명하려 하나 설명할 수도 설명할 것도 없으며, 생각하려 하나 생각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아는 것이 진여에 접근하는 방법이며, 이것일 것이다 저것일 것이라는 생각을 떠남으로써 체득할 수 있다.

* 元曉 : 답 중에 雖說 雖念이라고 한 것은 법이 없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떠났기 때문이며, 無有能說可說 無能念可念라고 한 것은 법이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유에 집착하는 소견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중도관을 따르는 것이므로 수순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 원효의 正觀(正念) - ① 알아차림 - 생각과 대상의 변화를 알아챠려 무상함을 안다. ② 끄달리지 않음. ③ 마음 챙김 - 대상에 끄달리지 않으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함. 선정 ④ 깨어 있음 - 지혜, 심안으로 비추어보나 인식하지 않음. 무분별지라고 함.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망념을 타파한다.

 

 

   ② 依言眞如(의언진여)

復次(부차) 此眞如者(차진여자) 依言說分別(의언설분별) 有二種義(유이종의) 云何爲二(운하위이)

또 이 진여라는 것은 말에 따라 분별하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이 둘이 되는가?

* 진여라는 것을 말로 나타낼 수 없으나,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힌트도 줄 수 없다. 그래서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여, 그것을 아는 길잡이로 삼는다는 것이다. 분별이라 함은 여기서는 생각으로 진여를 추측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것을 말로써 나타낸다는 뜻이다.

* 지운스님 :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써 설명하는 것은 수행의 출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삶과 죽음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발심(發心)하게 하여 수행을 출발하게 하기 위함이다.

 

一者(일자) 如實空(여실공) 以能究竟顯實故(이능구경현실고) 二者(이자) 如實不空 (여실불공) 以有自體具足(이유자체구족) 無漏性功德故(무루성공덕고)

첫째는 如實空(여실공)이니 구경으로써 참다움을 나타내는 까닭이며, 둘째는 如實不空(여실불공)이니 자체로써 無漏性(무루성)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無漏性(무루성) : 번뇌가 없음.

 

 

    • 如實空(여실공)

所言空者(소언공자) 從本已來(종본이래) 一切染法(일체염법) 不相應故(불상응고) 謂離一切法差別之相(위이일체법차별지상), 以無虛妄心念故(이무허망심념고)

이른 바 공이라는 것은 본래 모든 염법이 상응하지 않으므로 일체법의 차별상을 떠난 것을 말하니, 허망한 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 染法(염법) : 無明(무명)으로 인해 생멸하는 차별적인 세계. 이를 떠난 것이 진여이다.

* 元曉 : 一切染法 不相應故라 한 것은 능소(能所:主客)의 분별로서는 진여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一切法差別之相라고 한 것은 대상으로서의 모습[所取相]을 떠나기 때문이다. 無虛妄心念고 한 것은 주관적 견해[能取見]를 떠나기 때문이다. 곧 여읜다는 뜻을 가기조 공을 풀이한 것이다.

 

當知眞如自性(당지진여자성) 非有相(비유상) 非無相(비무상), 非非有相(비비유상), 非非無相(비비무상), 非有無具相(비유무구상), 非一相非異相(비일상비이상), 非非一相(비비일상), 非非異相(비비이상), 非一異俱相(비일이구상).

마땅히 알라. 진여 자성은 유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유상이 아님도 아니고, 무상이 아님도 아니며, 유와 무가 함께 있는 상도 아니며, 일상도 아니고 異相(이상)도 아니며, 일상이 아님도 아니며, 異相(이상)도 아님도 아니며, 일상과 異相(이상)이 함께 함도 아니다.

* 모든 상(相)이란 생각이 지어낸 것이다. 있다는 상, 없다는 상, 다르다는 상, 다르지 않다는 상 이 모두가 망념이 만든 것이다. 진여란 이런 생각을 떠난 것이다.

 

乃至總說(내지총설) 依一切衆生(의일체중생) 以有妄心念念分別(이유망심념념분별) 皆不相應(개불상응) 故說爲空(고설위공) 若離妄心(약리망심) 實無可空故(실무가공고)

내지 총설하면 일체 중생이 망심이 있어서 생각 생각의 분별에 의하여 모두 상응하지 않으므로 공이라고 설하니, 만약 망심을 떠나면 실로 공이라고 할 것도 없는 까닭이다.

* 위에서 공이라는 것은 차별상을 떠나고 망심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분별로서 진여에 부합하려 한다면 그러한 것이 모두 망념이 된다. 망심을 떠난 것이 공이므로, 만약 망심을 떠난다면 따로 공이랄 것이 없다. * 憨山 : 여기에서는 여실공의 의미를 간략히 풀이하였다. 진여의 실체는 망념이 본래 없음을 의지하였음을 말한다. 때문에 진여 자체에는 망념의 오염이 여실하게 비었다라고 설명하였다. 만일 망념의 오염을 떠나기만 한다면 비었다고 설명할 만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진여 자체는 원래부터 일체의 염법으로 더불어 상대적 의존관계로 호응하지 않기 때문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말해본다면 외적으로 일체 망법의 차별적인 모습을 떠났다면 인식할 대상의 세계[境]가 단절하였고, 내적으로는 허망한 심념이 없다면 망상의 진행인 심의식이 단절하였다. 이처럼 인식의 주체인 심의식과 심의식이 그림자인 대상의 세계가 모두 단절하였다. 그 때문에 여실공일 뿐이라고 하였다.

 

 

 

    • 如實不空(여실불공)

所言不空者(소언불공자) 已顯法體空無妄故(이현법체공무망고) 卽是眞心(즉시진심) 常恒不變(상항불변) 淨法滿足(정법만족) 故名不空(고명불공), 亦無有相可取(역무유상가취) 以離念境界(이리념경계) 唯證相應故(유증상응고)

이른 바 不空(불공)이라는 것은 이미 법체가 공하여 망녕됨이 없음을 드러내므로 곧 이 眞心(진심)은 항상 불변하고 정법을 만족하므로 不空(불공)이라고 한다. 또한 相이 있어 취할 만한 것이 없으며 생각을 여읜 경계는 오직 증득하여야 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모든 망상을 여의면 진여들 증득하게 되며, 진여를 증득해야만 진여와 상응하게 된다. 즉 부합하게 된다. 생각으로 짐작하고 상상한 주관이나, 그 주관의 대상이나, 주객관의 분별로 생긴 상은 진여와 부합되지 않으므로 불상응이라고 하였다. 왜 불공이라고 하였는가? 망상이 걷힌 진여는 허상이 아니라 참되기 때문에 불공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