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생멸의 인연 - 오의, 의식

서원365 2013. 8. 29. 15:23

 ② 生滅(생멸)의 因緣(인연)

  ○ 五意(오의)와 轉起(전기)

復次生滅因緣者(부차생멸인연자) 所謂衆生依心(소위중생의심) 意意識轉故(의의식전고)

다시 다음 生滅(생멸)하는 인연이라는 것은 소위 중생이 마음에 따라 意(의)와 意識(의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 인연이란 직접적 원인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간접적 원인을 말한다. 여기서는 생멸이 일어나게 된 인과 연을 밝혔다.

* 元曉 : 처음 가운데에 ‘인연’이라고 말한 것은 아리야식의 심체가 모든 법을 변작(變作)하는 것이니 이것이 생멸인(生滅因)이고, 근본무명이 심체를 훈습하여 움직이게 하니 이것이 생멸연(生滅緣)이다. 또한 무명주지(無明住地)는 모든 염법의 근본으로 모든 생멸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因)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육진의 경계는 칠식의 물결의 생멸을 요동시키니 이것이 생멸연이며,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하여 인연이 나타난다.

* 憨山 : 일심 생멸은 진여 본각과 망상의 불각이 서로가 인(因)과 연(緣)이 됨을 밝혀 아리야식이 일체법을 냄을 밝혔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依阿梨耶識(이의아리야식) 說有無明(설유무명). 不覺而起(불각이기) 能見能現(능견능현) 能取境界(능취경계) 起念相續(기념상속) 故說爲意(고설위의)

이 뜻이 무엇인가? 아리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음을 말한다. 불각이 일어나고, 능히 보며, 능히 나타내며, 능히 경계를 취하며, 생각을 일으켜 상속되니 그러므로 意라고 한다.

* 以依阿梨耶識 說有無明(이의아리야식 설유무명) : 아리야식이란 진여에 무명이 작용하여 생긴 마음이 작용이다. 그러므로 아리야식을 말하면 저절로 무명을 말하게 된다.

* 무명으로 인하여 불각이 있고, 불각으로 인하여 망견(妄見)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경계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대상에 집착한다. 그리고 망념이 끊이지 않는다.

* 元曉 : 처음에 아리야식(阿黎耶識)이라고 말한 것은 위에서 말한 心(所謂衆生依心의 心)이니, 곧 생멸의 인이고, 說有無明이라 한 것은 무명이 아리야식에 있는 것이니 곧 생멸의 연이다. 이 인연에 의해 의(意)와 의식(意識)이 전변함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以依阿黎耶識 說有無明이라고 한 것이다.

* 元曉 : 不覺而起라는 것은 소의(所依)인 심체가 무명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일어나 움직이는 것으로, 이것이 업식(業識)이다. 能見이라고 한 것은 곧 심체가 다시 능견(能見)을 이룬 것이니 곧 전식(轉識)이다. 能現이라고 한 것은 곧 심체가 능현을 이루는 것이니 곧 현식(現識)이다. 能取境界라고 한 것은 현식이 나타낸 경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니 곧 지식(智識)이다. 起念相續이라 한 것은 취한 경계에 대하여 모든 추념(麤念)을 일으킨 것이니 상속식이다.

 

此意復有五種名(차의부유오종명) 云何爲五(운하위오)

이 意(의)에는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라 하는가?

* 此意를 위의 此義와 같이 보아, ‘이러한 뜻’에는 이라고 해석하면 원효의 해설이 맞다.

* 이기영 : 원효의 해설을 설명하면서 意(의)는 심(心), 의(意), 의식(意識)의 意(의)가 아니라, ‘이 뜻’에는 다섯 가지 이름이 있다고 해석함이 옳다고 함.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원효의 해설

팔식에 따른 분류

業識

本識, 心

아리야식(제8식)

轉識

現識

智識

제7식, 意

말나식(제7식)

相續識

生起識의 첫째, 意識

의식(제6식)

* 憨山 : 논서에 의(意)를 생멸하는 주체로 삼고 칠식과 팔식을 통체적으로 의(意)라고 몀칭하였다. 그 때문에 다음 문장에서 의(意)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一者(일자) 名爲業識(명위업식) 謂無明力(위무명력) 不覺心動故(불각심동고)

첫째, 業識(업식)이라고 하니, 무명의 힘이 불각심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 진여가 무명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움직이는 것을 업식이라고 한다.

* 元曉 : 不覺心動이라 한 것은 업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일어나 움직임(起動)의 뜻이 업의 뜻이기 때문이다.

 

二者(이자) 名爲轉識(명위전식) 依於動心(의어동심) 能見相故(능견상고)

둘째, 轉識(전식)이라고 하니, 불각심을 움직여 능히 볼 수 있는 相이기 때문이다.

* 元曉 : 依於動心 能見相故라고 한 것은 앞의 업식의 움직임에 의해 능견의 상을 바꾸어 이루는 것이다.

 

三者(삼자) 名爲現識(명위현식) 所謂能現一切境界(소위능현일체경계) 猶如明鏡現於色像(유여명경현어색상) 現識亦爾(현식역이) 隨其五塵(수기오진) 對至卽現(대지즉현) 無有前後(무유전후) 以一切時(이일체시) 任運而起(임운이기) 常在前故(상재전고)

셋째, 現識(현식)이라고 하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마치 밝은 거울에 빛깔과 모양이 나타나는 것처럼, 현식(現識) 또한 그러하다. 그 오진(五塵)을 따라 대상이 이르러 곧 나타나지만 전후가 없다. 일체의 시간에 임의로 운행하며 일어나 항상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다.

* 五塵(오진) :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 현식(現識)은 대상을 대하면 저절로 그 대상을 나타낸다. 의지와 관계없이 그러하며, 바로 나타내므로 시간의 전후가 없다. 항상 그러하다.

* 元曉 : 업식, 전식, 현식은 시간적 단멸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리야식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 元曉 : 能現一切境界라고 한 것은 앞의 전식의 견(見)에 의해 능현의 작용을 일으킨 것이니, 위의 글(‘不覺’)에서 以依能見故境界妄現이라고 한 것과 같다. 현식은 전식에 의하지만 능견의 작용이 곧 능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 能見能現이라고 한 것이다.…以一切時 任運而起 常在前故라고 한 것은 제육식과 칠식 사이에 단멸하는 때가 있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四者(사자) 名爲智識(명위지식) 謂分別染淨法故(위분별염정법고)

넷째, 智識(지식)이라고 하니 染法(염법)과 淨法(정법)을 분별하는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 여기서부터는 분별하는 주체가 의식하게 된다. 비록 미세하기는 하지만,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고, 그렇게 하는 자아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말나식이라고 한다. 위의 아리야식은 주관이 생겨나고 이와 동시에 대상을 나타내지만, 이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 元曉 : 지식(智識)이라는 것은 제칠식이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과보를 염정법이라고 이름하니, 저 염정법을 분별하여 아와 아소라고 계탁하기 때문에 分別染淨法이라고 한 것이다.

 

五者(오자) 名爲相續識(명위상속식) 以念相應不斷故(이념상응불단고)

다섯째, 相續識(상속식)이라고 하니, 생각들이 서로 응하여 끊이지 않기 때문이며,

 

住持過去無量世等(주지과거무량세등) 善惡之業(선악지업) 令不失故(령불실고)

과거의 한량없는 세상들에서의 선업과 악업을 머물러 잃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復能成熟現在未來苦樂等報(부능성숙현재미래고락등보) 無差違故(무차위고)

또 현재와 미래의 괴로움과 즐거움 같은 업보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能令現在已經之事(능령현재이경지사) 忽然而念(홀연이념) 未來之事(미래지사) 不覺妄慮(불각망려)

현재의 이미 겪은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헛되게 생각하게 한다.

*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끊임없이 헛된 생각이 이어지므로 상속식이라고 한다. 원효는 상속식이 미세한 분별식인 지식(智識)과 다른 거친 분별이므로 의식(意識)에 속한다고 하였다.

* 元曉 : 상속식(相續識)이라는 것은 의식(意識)이니 … 念相應不斷故라고 한 것은 법집이 상응하여 오래 상속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는 자체가 끊어지지 아니함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한 것이고, 住持이하는 공능(功能)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하였다.

 

 

 ○ 三界唯心(삼계유심)

是故三界虛僞唯心所作(시고삼계허위유심소작) 離心則無六塵境界(리심즉무륙진경계)

그러므로 三界(삼계)는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허위이며, 마음을 떠나서는 육진 경계도 없다.

* 三界(삼계) : 탐욕의 세계인 욕계(欲界), 탐욕을 벗어났지만 물질적인 속박이 있는 색계(色界), 물질적인 속박을 벗어난 정신적인 세계인 무색계(無色界). * 元曉 : 是故 아래는 세 번째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 맺어 밝혔다. … 처음에 是故라고 한 것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식(業識 ~ 相續識) 등이 마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이런 뜻이므로 삼계는 모두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십지경(十地經)≫에서 “불자야. 삼계는 다만 일심이 지은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一切法(이일체법) 皆從心起(개종심기) 妄念而生(망념이생) 一切分別(일체분별) 卽分別自心(즉분별자심) 心不見心(심불견심) 無相可得(무상가득)

이뜻이 무엇인가? 일체의 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서 잘못 생각하여 생기니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한 것이다.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므로 얻을 수 있는 모습이 없다.

* 一切分別 卽分別自心(일체분별 즉분별자심) : 모든 분별은 곧 자기 마음을 분별한 것이다. 경계상이라는 것도 마음이 무명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 것이며, 무엇인가 보았다면 그것은 모두 마음을 분별한 것이 된다. 그런데 마음이 마음을 볼 수 없거니와 그 본체가 공하여 무엇을 보았다면 그것은 모두 망념이다.

* 心不見心 無相可得(심불견심 무상가득) : 마음은 마음을 볼 수 없다. 일체의 분별이 자기 마음을 분별한 것이므로 본래 볼 수 없는 것을 분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얻을 수 있는 모습 또한 없는 것이다.

* 元曉 : 此義云下 이하는 널리 해석한 것인데 그 중에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제법이 없지 않지만 있지 않음을 밝혔고, 나중에 제법이 있지 않지만 아주 없지는 않음을 밝혔다. 처음에 以一切法 皆從心起 妄念而生이라 한 것은 모든 법이 나타남이 없지 않음을 밝힌 것이고, 一切分別 卽分別自心 心不見心 無相可得이라 한 것은 모든 법이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만약 꿈 가운데 보는 모든 일처럼, 이와 같은 소견(所見)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능견과 소견의 두 가지 상이 있을 것이나, 그 꿈 가운데에는 실로 두 가지 법이 없다. 삼계의 모든 마음이 다 이 꿈과 같으니 마음을 떠난 밖에는 분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一切分別 卽分別自心이라 한 것이다. 또한 자심에 나아가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이 칼이나 손가락 같은 것이 (칼) 스스로를 자르거나 (손가락 스스로를) 가리키지 못함과 같기 때문에 心不見心이라 한 것이다. 이미 볼 만한 대상이 없으며, 또한 스스로 볼 수 없으니, 소견이 없기 때문에 능견도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능과 소의 두 가지 상이 모두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無相可得이라 한 것이다.

 

當知世間一切境界(당지세간일체경계) 皆依衆生無明妄心(개의중생무명망심) 而得住持(이득주지)

마땅히 알라. 세간의 모든 경계는 다 중생들의 무명 망심에 의하여 머물러 있게 된다.

 

是故一切法(시고일체법) 如鏡中像無體可得(여경중상무체가득) 唯心虛妄(유심허망)

그러므로 일체법은 거울 속의 모습이 얻을 만한 실체가 없는 것처럼, 오직 마음의 헛된 망상일 뿐이다.

 

以心生則種種法生(이심생즉종종법생) 心滅則種種法滅故(심멸즉종종법멸고)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갖가지 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일체법은 거울 속의 그림자처럼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지만, 현상으로 없는 것도 아니다.

* 憨山 : 실로 진여일심은 본래 생멸이 없지만, 최초의 일념무명이 망심으로 요동하기 때문에 이윽고 광대하여 차별적인 모습 없는 진여일심이 삼계의 허망한 차별법으로 되었다. 이야말로 삼계의 모든 허망한 법이 일심에서 일어나 망념을 따라 나온 것이다.

- 중략 -

이 논서는 일심이 곧바로 진여임을 지적하여 견성성불을 하게하였다. 다만 일념무명의 실재하는 세상이 없음을 오해(悟解)하기만 하면 바로 불지가 발현하리라. 이는 이른바 “무념임을 관찰할 수만 있다면 불지를 향한다.”고 했던 경우에 해당한다.

* 元曉 : 當知 이하는 있지 않으나 없지도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當知世間 ~ 無體可得 唯心虛妄라고 한 것은 있지 않음을 밝힌 것이고, 以心生則法生 이하는 없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무명의 힘에 의해 불각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내지 일체의 경계 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心生則種種法生고 한 것이다. 만약 무명의 마음이 사라지면 경계가 따라서 사라지며, 모든 분별심이 모두 따라서서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心滅則種種法滅이라고 말한 것이니 찰나를 기준으로 생멸을 밝힌 것이 아니다.

 

 

 ○ 意識(의식)

復次言意識者(부차언의식자) 卽此相續識(즉차상속식) 依諸凡夫(의제범부) 取著轉深(취착전심)

다시 다음에 意識(의식)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相續識(상속식)에서 모든 범부가 취하고 집착함에 따라 점점 깊어져,

 

計我我所(계아아소) 種種妄執(종종망집) 隨事攀緣(수사반연) 分別六塵(분별륙진) 名爲意識(명위의식)

나와 내 것을 헤아려, 갖가지 헛된 집착이, 일에 반연함에 따라 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한다.

* 計我我所(계아아소) : 나와 내것을 헤아림.

* 隨事攀緣(수사반연) : 반연이란 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는 것. 事(사)는 보통 말하는 일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유무형의 것.

* 憨山 : 여기에서는 의식이 바로 앞의 상속식이지만 단지 범부가 외부의 육경(六境)을 취하여 나와 내것으로 집착하고 육진을 반연하여 나의 수용(受用)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사고가 계속해서 분별한단 뜻에서 意의 識이라고 명칭하였다.

대체로 이 의식은 상속식을 근본 뿌리로 삼는다. 때문에 상속하는 분별로 아애(我愛)를 깊이 집착하여 견사이혹(見思二惑)을 일으키고, 삼업을 짓는 것은 바로 의식일 뿐이다. 이는 육추상 가운데 집취상(執取相)과 계명자상(計名字相)에 해당한다.

 

亦名分離識(역명분리식) 又復說名分別事識(우부설명분별사식) 此識依見愛煩惱增長義故(차식의견애번뇌증장의고)

또 分離識(분리식)이라고 하며 또 다시 分別事識(분별사식)이라고 하니, 이 識(식)이 見(견)번뇌와 愛(애)번뇌에 따라 증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見愛煩惱(견애번뇌) : 견번뇌와 애번뇌라는 뜻. 견번뇌는 이치에 어두워 일어나는 번뇌이며 상사각에서 끊어진다. 애번뇌는 애착으로 인한 번뇌로서 생존욕이나 생식욕 같은 선천적인 것으로 이치를 안다고 해서 끊어지지는 않는다. 견번뇌는 견혹(見惑)으로 인한 것이고, 애번뇌는 생활상의 애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므로 수혹(修惑)으로 인한 번뇌이다.

* 元曉 : 분리식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육근에 의해 각각 육진을 취하는 것이니, 이는 말나식이 각각의 근에 의하지 않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분리식이라 이름한 것이다. 또 과거와 미래, 안과 밖의 여러 가지 사상(事相)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분별사식이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依見愛煩惱增長義故라는 것은 분별사식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왜냐하면 견수번뇌(見修煩惱=見愛煩惱)가 증장됨에 따라 여러 가지의 일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