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微子篇 1, 2, 3, 4, 5

서원365 2017. 1. 6. 10:39

◎ 微子 第十八

*此篇多記聖賢之出處. 凡十一章.

이 篇은 聖賢의 나감과 머무름을 많이 기록하였다. 모두 11章이다.


1.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微子(미자)는 떠나고, 箕子(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比干(비간)은 간하다 죽었다.


*微箕 二國名. 子 爵也. 微子 紂庶兄. 箕子比干 紂諸父. 微子見紂無道 去之以存宗祀. 箕子比干皆諫 紂殺比干 囚箕子以爲奴 箕子因佯狂而受辱.

微와 箕는 두 제후국의 이름이다. 子는 작위이다. 微子는 紂王의 庶兄이다. 箕子와 比干은 紂王의 숙부이다. 微子가 紂王의 無道함을 보고 떠나 宗祀를 보존하였다. 箕子와 比干은 다 간하였는데 紂王이 比干을 죽였고, 箕子는 가두어 종으로 삼았는데 箕子는 미친 척 하면서 辱을 받았다.

-佯(양): 거짓, ~체 하다.


•孔子曰 “殷有三仁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에는 세 명의 어진 사람이 있다.”


*三人之行不同 而同出於至誠惻怛之意. 故不咈乎愛之理, 而有以全其心之德也.

세 사람의 행동은 같지 않았지만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사랑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 그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

-怛(달): 슬퍼하다, 근심하다. -咈(불): 어기다.


*楊氏曰 “此三人者 各得其本心, 故同謂之仁.”

楊氏가 말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그 본심을 얻었으므로 똑같이 어질다고 말한다.”


2.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柳下惠(유하혜)가 옥관이 되었다가 세 번 쫓겨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떠날 만하지 않은가?”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을 것인가? 도를 굽혀 사람을 섬기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떠날 것인가?”

-굽히지 않고 正道로 하다보면 다른 나라에 가도 쫓겨날 일이 있고, 正道를 굽혀서 섬길 것이라면 굳이 쫓겨날 일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士師 獄官. 黜 退也. 柳下惠三黜不去 而其辭氣雍容如此 可謂和矣. 然其不能枉道之意 則有確乎其不可拔者. 是則所謂‘必以其道而不自失焉’者也.

士師는 獄官이다. 黜(출)은 물러남이다. 柳下惠는 세 번 내침을 당했는데도 떠나지 않았고 그 말기가 온화 느긋함이 이와 같았으니 和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道를 굽힐 수 없다는 뜻은 확고하여 빼낼 수 없었다. 그러니 소위 ‘반드시 그 道로 하되 스스로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必以其道而不自失焉(필이기도이불자실언): 『孟子』「公孫丑上」第9章에 있다.


*胡氏曰 “此必有孔子斷之之言而亡之矣.”

胡氏가 말했다. “이는 반드시 孔子께서 단정하신 말씀이 있었을 것인데 없어졌다.”


3. 齊景公 待孔子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齊(제)나라 景公(경공)이 공자를 대우하여 말하였다.

“만약 季氏(계씨)에게처럼 한다면 나는 할 수 없다. 季氏(계씨)와 孟氏(맹씨)의 사이로써 대우하리라.”

(그리고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늙었으니, 그의 말을 쓸 수 없다.”

孔子가 떠나가셨다.

-季氏(계씨)는 상대부요 孟氏(맹씨)는 하대부이다.

-不能用也(불능용야): 공자의 말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그의 道를 펼칠 것을 원한 것이지 벼슬을 원한 것은 아니므로, 이 말을 듣고 떠난 것이다.


*魯三卿 季氏最貴 孟氏爲下卿. 孔子去之 事見世家. 然此言必非面語孔子, 蓋自以告其臣 而孔子聞之爾.

魯나라 三卿 중 季氏가 가장 높고 孟氏가 下卿이었다. 孔子께서 떠나신 일은 『史記』「公子世家」에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은 틀림없이 孔子 면전에서 한 말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 신하에게 말해준 것을 孔子께서 들으셨을 것이다.


*程子曰 “季氏强臣 君待之之禮極隆. 然非所以待孔子也 以季‧孟之間待之 則禮亦至矣. 然復曰‘吾老矣不能用也’ 故孔子去之. 蓋不繫待之輕重, 特以不用而去爾.”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季氏는 강력한 신하여서 君主가 대우하는 예절이 극히 융숭하였다. 그러나 孔子를 대우하는 것은 아니요, 季氏와 孟氏의 사이로 대우한다면, 또한 禮가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나는 늙었다, 그의 말을 쓸 수 없다.’고 했으므로 孔子께서 떠나신 것이다. 대우함의 輕重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다만 말을 쓰지 않기 때문에 떠나신 것이다.”


4. 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제나라 사람이 여악사를 보내자 季桓子(계환자)가 받았다. 삼일 간 조회를 열지 않자 공자는 떠나갔다.

-歸(귀): 보낸다는 뜻.

-공자가 노나라 司寇가 되어 재상의 일을 보자, 제나라에서 두려워하여 여악사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3일을 조회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떠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군주를 간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었지 않은가?


*季桓子 魯大夫 名斯. 按史記, “定公十四年 孔子爲魯司寇 攝行相事. 齊人懼, 歸女樂以沮之”.

季桓子는 魯나라 大夫이며 이름은 斯이다. 『史記』를 살펴보건대 “定公 14年 孔子께서 魯나라 司寇가 되셔서 정승의 일을 대신 행하였다. 齊나라 사람이 두려워하여 女樂士를 보내 沮止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尹氏曰 “受女樂而怠於政事如此, 其簡賢棄禮, 不足與有爲可知矣. 夫子所以行也 所謂‘見幾而作 不俟終日’者與?”

尹氏가 말했다. “女樂士를 받아 정사를 태만하게 함이 이와 같앗으니, 賢者를 소홀히 하고 禮를 버려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하기에 부족함을 알 수 있다. 夫子께서 떠나신 것은 이른 바 ‘기미를 보아 일어섬이니 종일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見幾而作 不俟終日(견기이작 불사종일): 『周易』 「繫辭傳下」에 있다.


*范氏曰 “此篇記仁賢之出處 而折中以聖人之行 所以明中庸之道也.”

范氏가 말했다. “이 篇은 仁者와 賢者의 나가고 머묾은 기록하였는데, 聖人의 행실로 절충하였으니 中庸의 道를 밝힌 것이다.”


5. 楚狂接輿 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 殆而.”

초나라 광인인 接輿(접여)가 노래하면서 공자를 지나치며 말했다.

“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난 것은 간할 수 없으며,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다. 그만 두라, 그만 두라. 지금에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은 위태롭다.”

-공자를 鳳(봉)에 비유하였다, 봉황은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으니, 그 당시는 도가 없으므로 숨어야 한다는 뜻이다.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왕자불가간 래자유가추): 이미 지난 것이야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숨으라는 뜻이다.


*接輿 楚人 佯狂辟世. 夫子時將適楚 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鳳有道則見, 無道則隱, 接輿以比孔子, 而譏其不能隱爲德衰也. 來者可追, 言及今尙可隱去. 已 止也. 而 語助辭. 殆 危也. 接輿蓋知尊孔子而趨不同者也.

接輿는 楚나라 사람인데 미친 척 하면서 세상을 피했다. 夫子께서는 그때 楚나라로 가려고 하셨으므로 接輿가 노래하면서 그 수레 앞을 지나간 것이다. 鳳은 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道가 없으면 숨으니, 接輿가 孔子를 鳳에 비유하고, 숨지 못함이 그 德이 쇠했다고 기롱한 것이다. 오는 것은 따를 수 있다고 한 것은 지금이라도 오히려 숨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已는 멈춤이고, 而는 어조사이다. 殆는 위태로운 것이다. 接輿는 공자를 존경할 줄 알았으나 취향이 같지 않은 사람이다.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孔子께서 내려 함께 얘기하고자 하셨으나 빨리 걸어 피하여서 함께 말하지 못했다.


*孔子下車 蓋欲告之以出處之意, 接輿自以爲是 故不欲聞而避之也.

孔子께서 수레에서 내려 떠나고 머무름의 뜻을 말해주시려 했지만, 接輿는 자기를 옳게 여겼으므로 들으려하지 않고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