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微子篇 8, 9

서원365 2017. 1. 6. 19:17

8. 逸民 伯夷叔弟虞仲吏逸朱張柳下惠小連.

숨어사는 사람은 伯夷(백이), 叔弟(숙제), 虞仲(우중), 夷逸(이일), 朱張(주장), 柳下惠(유하혜), 小連(소련)이다.


*逸 遺逸. 民者 無位之稱. 虞仲 卽仲雍 與大伯同竄荊蠻者. 夷逸‧朱張 不見經傳. 少連 東夷人.

逸은 버려져 쓰이지 않음이다. 民이란 지위가 없음을 칭한다. 虞仲은 仲雍이니 泰伯과 함께 荊蠻으로 도망간 사람이다. 夷逸과 朱張은 경전에 보이지 않는다. 少連은 東夷 사람이다.

-竄(찬): 숨다, 달아나다, 숨기다, 받아들이다, 손을 놓다.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弟與.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뜻을 꺾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음은 伯夷(백이)와 叔弟(숙제)이다.”


•謂柳下惠小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柳下惠와 小連에 대해 말하되,

“뜻을 꺾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윤리에 맞고, 행위가 사려에 맞으니, 이러할 뿐이다.”


*柳下惠事見上. 倫 義理之次第也. 慮 思慮也. 中慮 言有意義合人心. 少連事不可考. 然記稱其“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懈) 期悲哀, 三年憂”. 則行之中慮, 亦可見矣.

柳下惠의 일은 위를 보라.(本篇 第2章) 倫은 의리의 차례이다. 慮는 思慮이다. 中慮는 뜻과 의리가 人心에 맞는 것을 말한다. 少連의 일은 상고할 수 없다. 그러나 『禮記』 「雜記」에 “居喪을 잘하여 3일을 태만하지 않았고, 석 달을 느슨해지지 않았으며, 1년동안 슬퍼하였고, 3년간 근심하였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행위가 사려에 맞았음을 또한 알 수 있다.


•謂虞仲吏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虞仲(우중)과 夷逸(이일)에 대해서 말하되,

“숨어살며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폐함은 권도에 맞았다.”


*仲雍居吳 斷髮文身 裸以爲飾, 隱居獨善 合乎道之淸, 放言自廢 合乎道之權.

仲雍(중옹)이 吳(오)에 살 때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였으며, 벌거벗은 것으로써 꾸밈으로 삼았다. 숨어살면서 혼자만 선한 것은 道의 맑음에 합치하고, 함부로 말하여 자기를 버린 것은 道의 權道에 합치하였다.

-隱居獨善 合乎道之淸(은거독선 합호도지청): 淸이란 "잘못되었음에도 욕심 때문에 재물이나 자리를 취함"과 같은 것이 없이 도리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하게 되는데 그것을 淸貧이라고 한다. 자기 혼자만 선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는 도리를 지켰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단발문신하고 벌거벗은 것을 꾸밈으로 했다는 것은 가난했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자기만의 淸을 위해 백성을 버려두는 것은 최선은 아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 孔子는 비록 제후가 어질지 못하다고 해도 백성을 위해 도를 펼칠 기회가 있다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放言自廢 合乎道之權(방언자폐 합호도지권): 權道란 본래는 하면 안 되지만 다른 더 큰 목적을 위해 방편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형수의 손을 잡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물에 빠진 형수를 건지기 위해 형수의 몸을 만지는 것은 권도이다. 仲雍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 말들이 아마도 예에 어긋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그런 말을 해서 자기를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잘못된 말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權道라고 한 것이다.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나는 이와 다르니,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


*孟子曰“孔子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所謂無可無不可也.

孟子께서 말씀하시길 “孔子게서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셨고, 멈출 만하면 멈추셨으며, 오래 할 만하면 오래하셨고,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셨다.”고 하셨으니 이른바 可함도 없고 不可함도 없는 것이다.

-孔子가 벼슬을 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몇 가지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管仲은 그가 모시고 있던 公子 糾를 따라 죽지 않았다. 이에 대해 子路와 子貢이 「憲問篇」第17章, 第18章에서 管仲이 不仁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孔子는 管仲이 무력을 쓰지 않고 諸侯를 규합하고, 천하를 바로잡은 것을 들어, 작은 신의 때문에 목숨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 「陽貨篇」第5章에 보면 公山弗擾가 費읍에서 季氏를 배반하고 孔子를 부르자 가려고 하였고, 또 「陽貨篇」第7章에 보면 佛肹이 中牟에서 晉大夫 趙氏를 배반하고 孔子를 부르자 역시 가려고 하였다. 이를 보면 공자가 벼슬하고 하지 않음은 그의 말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諸侯나 大夫라고 해도 그의 말을 쓰지 않으면 바로 그만 두었고, 배반자라고 해도 그의 말을 써주면 벼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백성을 안정시키고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질서란 명분에 맞는 질서이므로, 배반자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는다면, 그런 행위로 인해 또다시 봉건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니,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謝氏曰“七人隱遯不汙則同, 其立心造行則異. 伯夷叔齊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蓋已遯世離群矣. 下聖人一等 此其最高與. 柳下惠少連 雖降志而不枉己 雖辱身而不求合 其心有不屑也. 故言能中倫, 行能中慮. 虞仲‧夷逸隱居放言 則言不合先王之法者多矣. 然清而不汙也 權而適宜也, 與方外之士害義傷教而亂大倫者殊科. 是以均謂之逸民.”

謝氏가 말했다. “7명은 은둔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은 것은 같았으나 마음을 세우고 나아가 행함은 달랐다. 伯夷와 叔齊는 天子도 신하로 삼을 수 없고 諸侯도 벗으로 삼을 수 없으니, 이미 세상을 등지고 무리를 떠난 것이다. 聖人 아래로는 1등이니 이들이 가장 높다. 柳下惠와 少連은 뜻을 꺾었으나 몸을 굽히지 않았으며, 비록 몸은 욕되었으나 세상에 영합하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그 마음으로는 불결함을 좋게 여기지 않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말이 윤리에 맞았고, 행동이 思慮에 맞았다. 虞仲과 夷逸은 은거하면서 함부로 말하여, 말이 선왕의 法에 맞지 않음이 많았다. 그러나 깨끗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으니, 權道로써 마땅함에 맞았다. 方外의 선비가 의를 해치고 가르침을 손상하여 큰 윤리를 어지럽시는 것과 등급이 달랐다. 이 때문에 똑 같이 逸民이라고 한 것이다.”

-遯(둔) 달아나다. (돈): 달아나다.


*尹氏曰“七人各守其一節 而孔子則無可無不可 此所以常適其可 而異於逸民之徒也.”

尹氏가 말했다. “7人은 각각 하나의 절개를 지켰지만 孔子께서는 可함도 不可함도 없으셨으니, 이는 늘 그 가함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며, 벼슬 없이 은둔한 무리들과는 달랐다.”


*揚雄曰“觀乎聖人則見賢人. 是以孟子語夷․惠 亦必以孔子斷之.”

揚雄이 말했다. “聖人을 관찰하면 賢人을 알 수 있으니 이러므로 孟子께서 伯夷와 柳下惠를 말씀하실 때 또한 반드시 孔子를 기준으로 단정하셨다.”


9. 大(太)師摯適齊.

太師(태사)인 摯(지)는 齊(제)로 갔다.


*大師 魯樂官之長. 摯 其名也.

大師는 魯나라 樂官의 長이다. 摯는 그의 이름이다.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亞飯인 干은 楚로 갔고, 三飯인 繚(료)는 蔡로 갔으며, 四飯인 缺(결)은 秦으로 갔다.

-천자는 새벽, 낮, 저녁, 밤에 식사를 하였다. 亞飯, 三飯, 四飯은 모두 제후가 식사 때 음악으로 흥을 돋우어 식사를 권하는 관리이다. 제후는 새벽밥을 먹지 않았으므로 亞飯이 첫 번째 식사를 담당한 관리이다. 魯(노)나라고 三桓의 횡포로 도가 행해지지 않자, 모두 나라를 떠났다는 말이다.


*亞飯以下 以樂侑食之官. 干繚缺 皆名也.

亞飯 이하는 모두 음악으로써 식사를 돕는 관리이다. 干과 繚, 缺은 다 이름이다.

-侑(유): 돕다.


•鼓方叔 入於河.

북치는 方叔(방숙)은 河內로 들어갔다.


*鼓 擊鼓者. 方叔 名. 河 河內.

鼓는 북을 치는 사람이다. 方叔은 이름이다. 河는 河內이다.


•播鼗武入於漢.

작은 북을 흔드는 武(무)는 한중으로 들어갔다.

-播(파): 흔들다.

-鼗(도): 작은 북, 땡땡이, 북의 자루를 돌리면 북 끝의 줄에 달려 있는 방울이 북면을 쳐서 소리 나게 하는 북.


*播 搖也. 鼗 小鼓 兩旁有耳 持其柄而搖之 則旁耳還自擊. 武 名也. 漢 漢中.

播는 흔듦이다. 鼗는 작은 북인데 양옆에 귀가 있어서 그 자루를 잡고 흔들면 옆의 귀가 돌이켜 스스로 친다. 武는 이름이다. 漢은 漢中이다.


•少師陽 擊磬襄 入於海.

少師(소사)인 陽과 경쇠를 치는 襄(양)은 섬으로 들어갔다.


*少師 樂官之佐. 陽․襄 二人名. 襄卽孔子所從學琴者. 海 海島也.

少師는 樂官의 보좌관이다. 陽과 襄은 두 사람의 이름이다. 襄은 곧 孔子께서 찾아가 거문고를 배운 사람이다. 海는 바다의 섬이다.


*此記賢人之隱遯以附前章, 然未必夫子之言也. 末章放此.

이것은 賢人이 은둔한 것을 기록하여 앞 章에 붙인 것인데, 반드시 夫子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지막 章도 이와 같다.


*張子曰 “周衰樂廢 夫子自衛反魯 一嘗治之. 其後伶人賤工識樂之正. 及魯益衰 三桓僭妄 自大師以下 皆知散之四方 逾河蹈海以去亂. 聖人俄頃之助 功化如此. ‘如有用我 期月而可’. 豈虛語哉?”

張子께서 말씀하셨다. “周나라가 쇠퇴하고 樂이 폐하여졌는데, 夫子께서 衛나라로부터 魯나라로 돌아와 일찍이 한번 다스리셨다. 그 뒤 광대와 미천한 악공들도 음악의 바름을 알게 되었다. 魯나라가 더욱 쇠퇴하여지자 三桓이 참람하게 함부로 하니, 太師로부터 이하 다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황하를 건너고 바다를 건너 어지러운 나라를 떠날 줄 알았다. 聖人의 잠시 도움이 그 효과가 이와 같았다.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된다.’고 하신 말씀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逾(유): 넘다. -蹈(도): 밟다. -俄(아): 잠깐. -頃(경):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