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微子篇 6, 7

서원365 2017. 1. 6. 17:55

6. 長沮桀溺 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장저)와 桀溺(걸익)이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孔子께서 지나시다가, 子路를 시켜 나루가 어디 있는지 묻게 하였다.

-耦(우): 나란히 밭을 갈다. 짝.


*二人 隱者. 耦 並耕也. 時孔子自楚反乎蔡. 津 濟渡處.

두 사람은 隱者이다. 耦는 나란히 밭을 가는 것이다. 그때 孔子께서는 楚나라에서 蔡나라로 돌아가시고 계셨다. 津은 물 건너는 곳이다.


•長沮曰 “夫執輿子 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長沮가 말했다.

“저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子路가 말했다.

“孔丘입니다.”

“이 분이 魯나라의 孔丘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분은 나루를 알 것입니다.”


*執輿 執轡在車也. 蓋本子路御而執轡 今下問津 故夫子代之也. 知津 言數周流 自知津處.

執輿는 수레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 것이다. 본래 子路가 말을 몰면서 고삐를 잡았을 것인데, 지금 내려서 나루를 물으므로 夫子께서 대신하신 것이다. 나루를 안다는 것은 자주 주유하여 스스로 나루터를 알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轡(비): 고삐, 재갈.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桀溺에게 묻자 桀溺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仲由(=子路)라고 합니다.”

“바로 魯나라 孔丘의 무리입니까?”

대답하여 말했다.

“그렇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것이 天下가 다 그러한데 누가 더불어 바꿀 것인가?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떤가?”

써레질하며 그치지 않았다.

-而誰以易之(이수이역지): 以는 與의 뜻

-且而與其從~(차이여기종~)의 而는 汝의 뜻.

-耰(우): 흙을 파 엎다, 씨를 덮다.


*滔滔 流而不反之意. 以 猶與也. 言天下皆亂 將誰與變易之? 而 汝也. 辟人 謂孔子, 辟世 桀溺自謂. 耰 覆種也. 亦不告以津處.

滔滔는 흘러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以는 與과 같다. 천하가 다 어지러운데 누구와 함께 바꾸려 하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而는 汝이다. 사람을 피함은 孔子를 이르고, 세상을 피함은 桀溺이 자기를 이른다. 耰는 씨를 덮음이다. 또한 나루터를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子路行 以告 夫子憮然曰 “鳥獸 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 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子路가 가서 고하자, 孔子께서 멍하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鳥獸(조수)와는 함께 무리를 지을 수 없다. 내가 이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천하에 道가 있으면 丘가 더불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憮(무): 어루만지다, 멍한 모습.


*憮然 猶悵然, 惜其不喻己意也. 言所當與同群者 斯人而已, 豈可絕人逃世以爲潔哉. 天下若已平治 則我無用變易之. 正爲天下無道, 故欲以道易之耳.

憮然은 멍함과 같은데, 자기 뜻을 알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신 것이다. 마땅히 같은 무리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일 뿐이니, 어찌 사람을 끊고 세상을 피함으로써 깨끗함으로 여길 수 있는가. 세상이 이미 평화롭게 다스려진다면 내가 바꾸려 할 필요 없다. 바로 天下가 無道하기 때문에 道로써 바꾸려 할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悵(창): 슬퍼하다, 멍한 모양, 원망함, 아무 생각이 없는 모양, 한탄함.


*程子曰 “聖人不敢有忘天下之心, 故其言如此也.”

程子(明道)께서 말씀하셨다. “聖人께서는 감히 천하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 말씀이 이와 같다.”


*張子曰 “聖人之仁 不以無道必天下而棄之也.”

張子께서 말씀하셨다. “聖人의 仁은 道가 없다고 하여 반드시 天下를 버리시지 않는다.”

-桀溺과 長沮는 그 당시가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는 시기라고 본 것 같다. 그러므로 이미 시대가 지난 周나라의 질서는 회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孔子의 노력은 헛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나루를 묻는 사람에게 나루를 알려주면 될 것이지, 참으로 괴팍한 사람들이다.


7. 子路從而後. 遇丈人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動 五穀不分 孰謂夫子?” 植其杖而芸.

子路가 따르다 뒤쳐졌다. 지팡이에 삼태기를 멘 丈人을 만났다. 子路가 물었다.

“그대는 夫子를 보왔소?”

丈人이 말했다.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五穀(오곡)을 구분하지도 못하는데 누구를 夫子라고 하는가?”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계속 맸다.

-蓧(조): 삼태기 -芸(운): 김맬 운.


*丈人 亦隱者. 蓧 竹器. 分 辨也.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植 立之也. 芸 去草也.

丈人은 또한 隱者이다. 蓧는 대나무 그릇이다. 分은 분별함이다. 五穀을 분별하지 못함은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돌아다님을 책망한 것이다. 植은 세우는 것이다. 芸은 김매는 것이다.

-菽(숙): 콩


•子路拱而立,

子路가 두 손을 맞잡고 서 있자,


*知其隱者 敬之也.

隱者임을 알고 공경한 것이다.


•止子路宿 殺鷄爲黍而食之. 見(현)其二子焉.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子路를 머물게 하여 묵게 하고, 닭을 잡고 기장으로 밥을 지어 먹게 했다. 두 아들로 하여금 만나보게 하였다. 子路가 떠나서 고하니,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隱者(은자)이다.”

子路를 시켜 돌아가 만나게 하였으나, 가보니 떠나고 없었다.

-黍(서): 기장.


*孔子使子路反見之, 蓋欲告之以君臣之義. 而丈人意子路必將復來, 故先去之以滅其跡, 亦接輿之意也.

孔子께서 子路를 시켜 돌아가 보게 한 것은 君臣의 의리를 말해주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丈人은 子路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먼저 떠나 자취를 없앴으니 또한 接輿의 뜻이다.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子路가 말했다.

“벼슬하지 않음은 의가 없음이다. 長幼(장유)의 예절은 폐할 수 없는데, 군신의 義를 어찌 폐할 것인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면서 큰 윤리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함은 義를 행하고자 함이다. 道가 행해지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子路述夫子之意如此. 蓋丈人之接子路甚倨 而子路益恭 丈人因見其二子焉. 則於長幼之節, 固知其不可廢矣. 故因其所明以曉之. 倫 序也. 人之大倫有五.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仕所以行君臣之義, 故雖知道之不行而不可廢. 然謂之義 則事之可否 身之去就 亦自有不可苟者. 是以雖不潔身以亂倫, 亦非忘義以殉祿也. 福州有國初時寫本, 路下有‘反子’二字 以此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 未知是否?

子路가 夫子의 뜻을 이와 같이 서술하였다. 丈人이 子路를 대접함이 매우 거만하였으나. 子路가 더욱 공경하므로 丈人이 그 때문에 두 아들에게 子路를 뵙게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長幼의 예절에 대하여 참으로 폐할 수 없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그로인해 그 밝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倫은 차례이다. 사람의 큰 윤리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 이것이다. 벼슬함은 君臣有義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道가 행해지지 않음을 알더라도 폐할 수 없다. 그러나 義리고 한다면 일의 可否와 몸의 거취이니 또한 구차하게 할 수 없음이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비록 몸을 깨끗이 하여 윤리를 어지럽히지는 않으나 또한 의를 잊고 祿을 따르지도 않는 것이다. 福州에 國初(宋初)의 사본이 있는데 路 아래의 ‘反子’라는 두 글자가 있는데, 이것을 子路가 돌아오자 夫子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옳은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朱子가 丈人이 子路를 거만하게 대접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子路가 더욱 공경하였으므로 丈人이 두 아들로 하여금 子路를 보게 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다. 그러하다면 자취를 지우고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丈人이 자기 아들에게 子路를 보게 하여, “저런 사람들과 얽히지 말라.”고 하고 경계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范氏曰 “隱者爲高, 故往而不反, 仕者爲通 故溺而不止. 不與鳥獸同群 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 此二者皆惑也, 是以依乎中庸者爲難. 惟聖人不廢君臣之義 而必以其正, 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

范氏가 말했다. “隱者는 자신을 고상하게 여기므로 가서 돌아오지 않으며, 벼슬하는 사람은 자신을 통달했다고 여기므로 빠져서 멈추지 않는다. 鳥獸와 함께 무리지어 살지 않으면 性命의 정을 결단하여 富貴를 탐하니, 이 두 가지는 다 미혹된 것이다. 이러므로 中庸에 의지하기가 어렵다. 오직 聖人께서 君臣의 의리를 폐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그 正道로 하시니 , 혹 떠나고 혹 머물러 마침내 道를 떠나지 않는다.”

-饕(도): 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