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책이야기

소년이 온다

서원365 2020. 1. 19. 19:04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경기 2016 초판25)

 

1988년까지만 해도 국가원수모독죄라는 것이 있었다. 1988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이 법은 최고 형량이 징역 7년이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는 자칫하면 좌경 또는 용공세력으로 몰려 처벌되었다. 심하면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대통령도 비판할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 아직까지 보안법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의사 표현에 대해서 법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는다.

이렇게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자유가 널리 보장받게 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희생과 노력의 대가로 이루어진 자유를 오히려 노력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 쓰는 사람들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폄하하고 심지어 적색분자들의 소행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광주에서 학살을 명령한 사람들은 또 다른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 그 당시 장교나 사병으로 진압에 참가한 군인들은 명령자들의 말에 속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당시에는 아마도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정말로 빨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인가?


2009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위의 책 에필로그 중에서


그러나 광주는 고립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정신이 우리 역사에 살아 있고 또 우리 사회를 변모시켰으니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족을 돌보지 못한 채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비목(碑木)의 주인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 2.28민주운동과 4.19의 의거, 부마민주화 운동, 6월 민주화 운동 등 각종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 그리고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수많은 국민들


여기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옳다고 해서 저것이 틀린 것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경제발전에 공헌했다고 해서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고 해서 경제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런 이분법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동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자녀를 잃은 사람에게는 어떤 말이나 보상도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유가족들이 많이 살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적어도 그들 가슴에 못 박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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