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신심명

신심명-3

서원365 2008. 5. 11. 08:46
 

11. () () () () () () () ()

* 움직임을 멈추어 멈춘 데로 돌아가려 하나 멈춘 것이 다시 더욱 움직인다.

* 彌(미) - 두루, 널리, 더욱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을 수도의 목표로 삼은 경우가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 할 수 있다. 온갖 생각들이 들끓고 있어서 괴로우니 이러한 마음이 고요해지면

번뇌도 다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들을 멈추려고

하면 그것이 동기가 되어 더욱 더 움직이는 것이 마음의 특징이다.

 설령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木石(목석)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12. () () () () () () () ()

* 양변에 막혀있기만 하면 어찌 그것이 한 가지임을 알 것인가?

* 滯(체) - 막히다. 兩邊(양변)은 멈춤과 움직임

 자칫하면 움직이는 것은 마음의 참 모습이 아니고 고요하게 멈추어 있는 것만이

 마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둘 다 마음의 모습이며 그러므로 한

 가지이다.

 

13. () () () () () () () ()

* 한 가지라는 사실을 통하지 못하면 두 곳에서 공능을 잃어버린다.


14. () () () () () () () ()

* 유를 보내려다 유에 빠지고 공을 쫓으려다 공을 등진다.

 유를 보내려는 생각 자체가 유위의 행위로써 또 다시 유에 빠지게 되며, 공을 쫓

으려는 것자체가 공상(空相)을 만들어 공을 등지게 된다.


15. () () () () () () () ()

* 말과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상응하지 못한다.

 말이 많고 생각이 많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에 합치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도라는 것은 ‘아!’ ‘그렇군!’ 등의 간단한 감탄사나 수긍으로 충분하다. 유

 마거사가 아무 말하지 않음이나 염화시중의 미소가 오히려 실상을 잘 설명하고 있

 다.

 또 많은 말과 생각이 오히려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추리하고 논증하고

 요리 조리 재는 동안 점점 道(도)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틀을

 가지는 것이 되어 실상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보았다고 치자. 그러면 소나무를 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남에게

 소나무를 설명하고 평가하고 듣는 이가 짐작하면 점점 소나무의 본디 모습으로부

 터 멀어질 뿐이다. 道(도)도 이와 같다.


16. () () () () () () () ()

* 말과 생각을 끊으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틀과 기준을 끊어버리면 비로소 도와 일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하지 않는 데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과 생각을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침묵하고 아무 생각 없게 되

 는 것은 아니다. 妄想(망상)과 妄念(망념)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말도 않

 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사실 그러한 것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설령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木石(목석)이 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7. () () () () () () () ()

* 근본으로 돌아가면 종지를 얻지만 비춤을 따르면 종지를 잃어버린다.

* 隨照(수조) - 마음이 고요함을 寂(적)이라고 하고 경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照(조)라고 한다.

 隨照(수조)는 간택과 위순, 증애 등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만든 틀에 따라 세상이 비추어지므로 실상을 볼 수 없다. 隨照(수조)를

 하지 않음이 歸根(귀근)이며 寂(적)이라고 한다.

 無常(무상)이며 無我(무아)라고 하였으니 무상하고 무아임을 체득함을 寂(적)이라

 고 한다. 그렇다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함이 멈춘 것은 아니다. 세상 만상이 드

 러나기는 마찬가지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함이 멈춘 것이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이 홀연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18. () () () () () () () ()

* 잠시라도 돌이켜 보면 오히려 전공보다 낫다.

* 須臾I(수유) - 잠깐

 세상의 모든 것이 空(공)이라고 보는 것을 前空(전공)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19. () () () () () () () ()

* 앞의 경계가 공하여 변하는 것은 모두 망견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공이라고 보고 거기에 얽매이면 모든 것이 없는 것이 되니 이 또한 망견

다.


20. () () () () () () () ()

* 참을 구하려 하지 말고 다만 견해를 쉬어라.

 현상 이외에 따로 참다운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분별심 때문에 여실히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분별심만 버리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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