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한글 정토삼부경

무량수경 - 03

서원365 2009. 2. 5. 09:06

○ 극락세계에서 나려면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설하심.)

오역죄를 저지른 중생을 제외한 모든 중생은 무량수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잠깐만이라도 그 세계에 나기를 원한다면, 그 부처님의 원력으로 왕생하게 된다. 왕생하는 중생들은 세 가지가 있다.

 높은 수준의 중생들 : 욕심을 버리고 출가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무량수 부처님을 일심으로 생각하며, 여러 가지 선근 공덕을 쌓아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들. 이런 이들의 임종 시에 무량수 부처님께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나신다.

 중간 수준의 중생들 :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일심으로 무량수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끔 착한 일도 하며, 계율도 지키고, 탑과 불상을 조성하며, 사문에 공양하고 꽃과 향으로 공양하되 이 공덕을 회향하고 저 불국토에 나고자 하는 이들.

 낮은 수준의 중생들 : 공덕을 쌓지는 못했지만 한결 같은 정성으로 열 번만이라도 무량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이들. 임종할 때 저 부처님을 뵙고 왕생하게 된다.

 (이어지는 게송 중의 일부)

 전생에 착한 공덕 못쌓은 이는 이 경의 말씀을 들을 길 없고

 온갖 계행 청정하게 닦은 이라야 부처님 바른 법문 들을 수 있네.


 일찍이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 않고 이런 일 믿으리니

 겸손하고 조심스레 듣고 행하여 즐거이 뛰놀며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게을러빠진 사람은 이 법문 믿기가 심히 어렵지만

 전생에 부처님을 뵈온 이는 이와 같은 가르침 즐겨 들으리.


 * 핵심은 믿음이다. 이 경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일심으로 무량수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를 수 없다. 믿음이 없이 수 천 수 만 번을 염불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정토 왕생자의 이득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설하심)

 저 불국토의 보살은 모두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러 다음 생에는 부처님 자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중생 구제를 위해 큰 원을 세운 보살은 예외이다. 저 불국토 성문은 몸에서 발하는 광채가 한 길이고, 보살의 광채는 100유순을 비춘다. 그 중에서도 두 보살이 가장 뛰어나다.

 한 분은 관세음이고 다른 분은 대세지이다. 이 두 보살은 이 세상에서 보살행을 닦다가 저 불국토에 왕생하였다.


 저 불국토에 왕생하는 사람은 누구나 32상을 갖추며, 모든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와 신통이 자재하다. 가장 둔한 사람도 설법을 듣고 깨달으며[音響忍] 진리에 수수하여 깨닫는다.[柔順忍]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성불할 때까지 다시는 나쁜 세상에 들지 않으며, 전생을 아는 숙명통(宿命通)을 얻는다. 그러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부러 사바세계에 태어나기도 한다. 보살들은 생각에 따라 공양거리가 나타나 아침 식사 때마다 무량수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여러 세계로 다니면서 부처님께 공양한다. 그리고 점심 전에 무량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온다.


 무량수 부처님은 칠보로 된 강당에 성문과 보살을 모아놓고 성불의 길과 뛰어난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듣고 깨닫지 않는 이가 없다. 여러 천신들은 갖가지 꽃과 향과 음악으로 무량수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을 공양하는데 이때의 즐거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보살들에게는 저 불국토에 있는 물건들에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으므로 가고 오는데 걸림이 없고,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으므로 마음은 중도에 머물러 자유자재하다. 친하고 먼 것이 없으므로 남과 다툴 일이 없다. 중생들에게 자비롭고 이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그 마음은 항상 부드럽고 화평하여 성내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없다. 보살에는 평등한 마음과 뛰어난 원력(願力), 깊은 자비심, 한결같은 마음, 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본능적인 욕망을 멸했고, 나쁜 길에 떨어진 어리석은 생각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다.

 보살들은 온갖 보살행을 닦아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깊은 선정과 삼명(三明)과 육신통(六神通)과 삼혜(三慧)를 얻고 칠각지(七覺支)에 전념하여 불도에 정진하고 있다.  육안(肉眼)은 모든 사물을 분명하게 볼 수 있으며, 천안(天眼)은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보고, 법안(法眼)은 사물을 잘 관찰하여 그 본질을 보며, 혜안(慧眼)은 지혜에 의해서 진실을 보고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한다. 이 네 눈을 갖춘 불안(佛眼)은 모든 존재의 본성을 보고 있다.

 * 삼명(三明) - 나와 남의 전생을 훤히 아는 지혜(宿命智證明), 중생의 미래와 생사의 과보를 아는 지혜(生死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 미혹한 생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漏盡智證明)

 * 삼혜(三慧) - 보고 들은 바 법의 뜻을 부지런히 구하여 그른 법을 버림(聞慧), 법의 뜻을 思惟함(思慧). 사유한 다음 선정(禪定)에 의해 닦아 익힘.(修慧)


 보살들은 지혜에 바탕을 둔 설득력을 가지고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편다. 삼계는 텅 비어 어떠한 사물도 내 것이라고 할 게 없다고 관찰하며, 불도에 전념하여 자유로운 설득력으로 본능에 의해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구제한다. 보살은 진여계에서 중생계로 내려온 것이다. 모든 것이 불생불멸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중생들에게 설명할 때는 고집멸도(苦集滅道)로써 하며, 속론을 좋아하지 않고 정법(正法)만으로 말한다.


 보살들은 온갖 선근을 닦아 오로지 불법을 숭상한다. 모든 것이 공적(空寂)하다고 알아 마음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번뇌를 다 없앴다. 심오한 가르침을 들으면 의심하지 않고 항상 그 가르침대로 수행한다. 자비로운 마음이 간절하여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어 불도의 궁극에 이르러 중생들을 피안으로 이끈다. 어떠한 의심의 그물도 끊어버릴 수 있는데, 그러한 지혜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불법을 남김없이 알고 있다.

 모두 말하려면 백천 겁을 해도 할 수 없으니 대강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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