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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1) - 탄생 ~ 어린 시절

서원365 2009. 2. 26. 07:59

  

1. 탄생

 마야왕비는 꿈에 상아가 여섯 개 나있는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슛도다나 왕(정반왕:淨飯王)은 왕자를 잉태한 꿈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기뻐하여 마지않았다. 왕의 부름을 받은 64명의 바라문들도 왕자의 잉태가 틀림없다고 하였다. 과연 그로부터 마야왕비는 차츰 배가 불러 드디어 만삭이 되었다.

 그 당시 인도에는 아이를 친정에 가서 낳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마야왕비는 관습에 따라, 화창한 봄 어느 날 아이를 낳기 위해 카필라성을 떠나 친정인 콜리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야왕비가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를 느끼고 곧 거기에 포장을 쳤다. 산통이 점점 심해져 마야왕비는 무우수 가지를 잡았다. 그리고 왕자는 왕비의 옆구리를 열고 힘찬 울음과 함께 세상으로 나왔다. 결혼한 지 20여년이 되었지만 왕자가 없어 걱정하던 이 나라에 드디어 왕자가 태어난 것이다.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는 땅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과 땅위에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2천 600여 년 전의 일이다.

 슛도다나왕과 마야 왕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온 나라가 이 경사에 흥겨워하였다. 왕은 왕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지었다. 일체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이는 기록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는 인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는 내세관이 대단히 강해 현세의 기록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불경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 인물과 동시대에 태어났거나, 아니면 그 후대로 짐작하고, 다른 기록에 등장하는 부처님에 관한 행적이나, 불교 유적, 불교의 전파에 대한 흔적을 통해 이보다 앞서가나 적어도 이와 동시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하여 적어도 2600여 년 전에 탄생했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인도의 신분 제도인 카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브라만은 입에서 태어났고, 크샤트리아는 옆구리로 태어났으며, 바이샤는 음부에서,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족이므로 크샤트리아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분만이 이루어지지 않아 제왕절개를 해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마야왕비가 출산 후 7일 만에 죽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뜻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이 다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의모든 나를 가리킨다.


2. 어린 시절

 

 가. 예언과 어머니의 죽음

 당시 유명한 예언가인 아시타 선인이 태자의 얼굴을 보더니 장차 자라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든지 아니면 출가하여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자기가 나이가 많아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생후 5일이 되든 날 태자 책봉식이 있었다. 여기에 초대된 8명의 바라문들도 역시 같은 예언을 하였다. 특히 교진여는 단호히 왕자가 출가하여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슛도다나 왕은 출가한다는 말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교진여는 왕비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왕자의 탄생이라는 기쁨도 잠시 곧 큰 슬픔이 찾아왔다. 마야 왕비가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키워졌다.


 나. 무술 시합

 싯다르타 태자는 건강하게 자라났다. 태자의 신분이었으므로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나이가 들게 됨에 따라 군왕으로서 필요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무엇을 배우든 실증을 느끼지 않았고, 항상 그 성적은 탁월하였다. 7세 때 스승이 된 비사밀다는 항상 훌륭한 태자에 비해 자신의 식견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탄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술 시합이 열렸다. 달리기, 뜀뛰기, 씨름을 차례로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활쏘기를 했다. 쇠로 된 과녁을 백 보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소년들이 차례로 활을 쏘았다. 드디어 싯다르타 태자의 차례가 되었다. 태자는 과녁을 두 배나 먼 2백 보 떨어진 곳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시위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시윗줄이 ‘뚝!’하고 끊어져버렸다. 다른 활을 가져다주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를 지켜보던 왕은

 “너의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활이 있다. 그 활은 너무 강해서 아무도 시위를 당긴 적이 없다.”

고 말하고 가져오게 하였다. 태자는 그 활을 힘껏 당겼다. 화살은 강한 시윗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 과녁 한가운데 꽂혔다. 구경 온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졌다. 


 * 전륜성왕 - 세계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자기의 수레바퀴를 어디나 굴릴 수 있는 왕이라는 뜻이다. 무력을 쓰지 않고도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


 다. 번민의 시작

 어느 해 봄에 카필라 성에는 매년 파종기 때마다 열리는 농경제(農耕祭)가 열렸다. 싯다르타 태자도 부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가하였다. 의식이 시작되자 농부가 밭을 갈고 그 해의 첫 씨앗을 왕이 직접 땅에 뿌렸다.

 궁중 밖의 세상은 궁중 안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싯다르타 태자는 특히 농부들의 고생을 느꼈으며,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 뒤에는 농부들의 수고가 있음을 알았다.

 그때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농부가 방금 간 밭에 꿈틀거리며 나온 벌레를 새가 쪼아 먹는 것이었다. 곧이어 더 큰 새가 작은 새를 잡아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계를 본 것이다. 태자는 엄청난 고뇌를 품고 제단에서 조금 떨어진 염부수(閻浮樹)라는 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뇌는 더 근원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같다.

 ‘저들이 저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다시 죽음을 맞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