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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5) - 죽림정사에서

서원365 2009. 3. 2. 19:29

8.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가. 빈비사라왕의 귀의

 부처님께서 빈비라사왕을 만난 것은 출가 직후였다. 그때 빈비사라왕은 사문 고타마였던 부처님께 성불하면 자기를 제도해달라고 부탁하였었다.

 부처님께서 장림원에 이르렀을 때 빈비사라왕은 대단히 반갑게 여기며, 많은 신하와 시종들과 함께 몸소 부처님을 뵈러 왔다. 친히 수레에서 내려 예를 갖추고 안부를 서로 물었다.

 그때 부처님 옆에 있는 카샤파 존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부처님은 젊으시고, 카샤파 존자는 나이가 많았으므로 부처님이 카샤파 존자의 제자인줄 알았던 것이다. 이를 눈치 채고 빈비사라왕이 카샤파 존자에게 안부를 물었다.

 “지금도 불에 제사지내는 일을 게으르지 않게 잘 하십니까?”

 “아닙니다. 왕이시여. 저는 불에 제사지내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행해 온 불에 대한 제사는 오욕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인간의 생이 주는 고통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은 집착이 없고 태어남도 없는 적정의 세계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어 부처님의 설법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빈비사라왕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나. 죽림정사

 다음 날 빈비사라왕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 1250명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하루 한 끼 식사만 하였다. 음식은 화려하지도 특별한 맛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식사는 몸을 지탱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미각적 쾌락 추구 역시 탐욕이며, 수행자의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비사라왕도 정갈하고 정성이 들어갔지만 간소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빈비사라왕은 오랫동안 부처님께서 자신의 영토에 머무시길 바랐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머무실 장소를 찾아보았다. 마을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장소로 떠올린 곳은 벨로바나(竹林苑)였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죽림원에서 기거하시길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청을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빈비사라왕은 기쁜 마음으로 정사(精舍)를 지었다. 최초의 절이 지어진 것이다. 절을 다 지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셨다.

“올바른 법에는 ‘나’와 ‘내것’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내것’이 있다고 믿는다. 이 헛된 마음을 버려야 비로소 해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 목갈라나와 사리푸트라

목갈라나(目蓮)라 불렸던 우파팃샤와 사리푸트라(舍利弗)라 불렸던 코올리타는 산자야라는 수행인의 제자였다. 그들은 모두 부잣집의 아들로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낀 그들은 스승을 하직하고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새로운 스승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탁발을 나간 우파팃샤는 한 수행자를 만났다. 단정한 몸과 빛나는 눈을 본 우파팃샤는 그가 아라한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누구에게서 수행하는지 물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 야슈바짓이었다.

 그리하여 우타팃샤는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시다는 것도 알았다. 우파팃샤는 즉시 돌아가 코올리타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대중들에도 알려 부처님께 가서 법을 듣자고 제안했다. 산자야는 단호히 자기 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결국 남자는 무리와 부처님께로 가자는 무리로 갈라져, 우파팃샤와 코올리타는 250명의 동료와 함께 부처님께로 떠나갔다. 산자야는 자신의 법에 대한 집착과 자만심이 결국 제자를 잃게 했다고 자책하면서 자살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우파팃샤와 코올리타는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바로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이다.


 라. 외도들의 시험

 한편 산자야가 제자들을 잃고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곧 널리 퍼졌으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그러한 일이 자기들에게도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비난의 노래를 퍼뜨렸다.

   마가다국에 한 고승이 나타나

   산자야의 제자를 모조리 앗아 갔네.

   아, 다음은 또 누구의 차례일까?

 이 노래는 금새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도 퍼졌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7일이 지나면 그런 노래는 사라질 것이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답해 주라고 하셨다.

   위대한 여래는

   정법에 의해 교화하시네

   법에 의지해 교화하는 지혜로운 이에게

   질투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네.

 두 노래가 퍼지고 7일이 지나자 부처님을 비난하는 노래는 더 이상 입에도 오르지 않았다.

 한번은 마나기라는 여인을 임신한 것처럼 꾸며, 외도들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부처님을 모함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셨다. 부처님의 온화한 자태와 자비로운 미소에 부끄러움을 느낀 마나기는 스스로 임신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배를 가렸던 것을 풀어버리고 조용히 참회의 절을 올렸다.


 마. 마하카샤파(Mahakasyapa)

 부처님께서 죽림정사 부근의 숲 속에서 앉아계실 때 핏파리라는 수행자가 다가와 절을 올리며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그는 마가다국의 마하티르타라는 바라문 촌의 부유층의 아들이었다. 부처님은 그를 받아들여 마하카샤파(大迦葉)라고 부르셨다.

 핏파리는 출가 전에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고, 결혼을 피하기 위해 황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만들어, 이 여인상과 같은 여인이면 결혼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여인상과 꼭 닮은 카필라니라는 여인이 있었다. 결국 두 집안 사이에 혼담이 오고갔다. 핏파리는 수행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카필라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하려하였다. 그런데 카필라니 역시 결혼에 뜻이 없었으므로 편지를 써서 핏파리에게 보냈다. 그런데 중간에서 두 심부름꾼이 만나 뜯어보고는 “아이들 장난 같은 말만 널어놓았군.”하면서 내용을 반대로 바꾸어 서로 전달하였다. 이리하여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은 확고했으므로 결혼 뒤에도 청정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출가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은 출가하였다.

 마하카샤파는 지혜가 출중한 제자였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어느 날 라자그리하로 부처님께서 돌아오시는 도중이었다. 부처님께서 큰 나무 아래에 앉으시려 하시자, 마하카샤파는 얼른 웃옷을 벗어 네 겹으로 만든 뒤 깔아드렸다.

 “이 옷은 매우 부드럽고 보기 좋구나.”

 “그러시면 그 옷을 부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무엇을 입을 것인가?”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법을 배워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입고 계시는 분소의를 주십시오.”

 분소의란 묘지 같은 곳에 버려진 천 조각을 모아서 만든 옷이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은 단지 옷을 바꾸어 입는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마하카샤파는 분소의를 입음으로써 두타행(少欲知足)의 철저한 실천의 의지를 보인 것이며, 부처님께서 옷을 물려주신 것은 법의 전승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 수닷타(Sudatta)와 기원정사

죽림정사 인근의 코살라의 중심 도시 슈라바스티에는 수닷타라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라자그리하에 사는 어느 부자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았으므로 자주 라자그리하에 오곤 했다. 어느 날 수닷타가 자기 처남집에 들렀을 때, 처남은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웬일인가 하고 물으니 다음 날 부처님 공양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닷타는 매우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부처님께서 오신다고 하니 크게 흥분하여 당장이라도 만나 뵈려 했다. 그러자 처남이 간곡하게 막았으므로 다음 날 새벽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일어나 부처님께로 향했다. 어둡고 무서웠지만 꾹 참고 가던 수닷타는 어떤 묘지에 이르렀다. 그때 밝아 오는 여명 속에 묘지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 수닷타는 그 사람이 부처님임을 알아보았다. 부처님께서는 수닷타에게 진리를 설하셨다. 수닷타는 부처님께 세 번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 귀의한 수닷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기 위해 처남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도 정성을 다하였다. 수닷타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다음 우안거(雨安居)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오셨으면 합니다.”

 우안거란 여름 우기 때 한 곳에 머물러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승낙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수닷타는 우안거 동안 머물 정사(精舍)를 짓기로 하였다. 마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좋은 장소를 찾고 보니 그곳은 제타 왕자의 땅이었다. 수닷타는 제타왕자를 찾아가 그 땅을 사고 싶다고 하였으나 제타 왕자는 팔 수 없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로 설득을 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는 제타 왕자가 말했다.

 “당신이 저 동산을 뒤덮을 만한 황금을 준다면 팔겠소.”

 물론 이 말은 수닷타를 포기하게 함이었다. 그러나 수닷타는 기쁜 마음으로 황금을 구하러 다녔다. 소문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와 황금도 늘어났다. 수닷타의 정성에 감복한 제타 왕자는 그냥 그 땅은 수닷타에게 주었다.

 “그러나 입구 부근은 나에게 주시오. 나도 승단을 위해 선물을 하고 싶소.”

 제타 왕자는 입구의 빈터에 문을 만들고 부속 건물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정사가 바로 기원정사(祇園精舍)이다.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이라고도 한다.

*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 - 기타(祗陀, Jeta) 태자의 소유의 숲이라는 뜻과, 급고독이 만든 동산이라는 뜻이다. 수닷타는 외로운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으므로 급고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