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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10) - 열반

서원365 2009. 3. 11. 20:09

 

13. 열반


 가. 목갈라나(목건련, 목련)의 죽음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지도 45년이 지났다.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머물던 어느 날 교단에 슬픈 일이 일어났다. 부처님을 늘 옆에서 모시던 목갈라나가 죽림정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목갈라나는 죽림정사 가까운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다. 부처님 교단을 파괴하려고 기회를 엿보던 외도(外道) 한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는 부랑아들을 모아 돈을 줄 테니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부랑아들은 목갈라나가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는 접근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이에 외도는 가까이 가기 어려우면 멀리서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가까이 간 그들은 망설이다가 누군가 던진 돌에 맞은 목갈라나가 동요도 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돌을 던졌다.

 그리고 며칠 뒤 돌 무더기 속에서 죽어 있는 목갈라나가 발견되었다. 화가 난 아자세왕은 즉시 범인을 찾아내 사형에 처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울분을 토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육체는 무상한 것이다. 목갈라나처럼 깨달은 이에게는 육체는 아무런 보람도 없다. 그에게 있어서 생사의 문제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 자기 자신과 법에 의지하라

 이제 부처님께서는 세속의 나이가 80이 되셨다. 그 즈음 죽림정사 부근에는 큰 가뭄이 들었다. 그래서 제자를 각지로 흩으셨다.

 “지금 이 나라는 흉년이 들어 매우 궁핍하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수행인들이 구걸하며 지내는 것은 옳지 않으니 너희들은 각각 분산해서 이곳을 떠나라.”

 부처님은 제자들을 흩어지게 하시고 아난다와 함께 계셨다. 이 무렵 부처님께서는 병환이 드셨다. 몸이 매우 쇠약해지셨다.

 ‘제자들이 멀리 흩어져 있을 때 열반에 드는 것은 좋지 않으니 조금 더 견뎌야겠다.’

 부처님은 병든 몸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래서 곁에서 보기에는 병환이 다 나으신 듯하였다. 아난다가 여쭈었다.

 “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의 교단의 일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아난다야. 교단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이냐? 나는 지금까지 안팎을 구별하지 않고 법을 설하여왔다. 법을 설하는 데 있어서 아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내가 교단을 통솔한다든가 교단이 나에게 의지했다면 내가 간 다음의 일을 지시하겠지만 특별히 그럴 일이 없다.”

 “나는 벌써 여든이다. 나는 마치 낡은 수레와 같다. 수리하면 조금은 더 운행할 수 있겠지만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힘써 정진하면서 이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 정(定)에 들었을 때는 나의 몸은 안온하고 번민도 고통도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가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 부디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자기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여라. 내가 죽은 뒤에도 이 법대로 수행하는 자는 곧 나의 진실한 제자이며 참다운 수행자이다.”


 다. 사리불의 죽음

 부처님께서 “자기에게 의지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곧 퍼졌다. 그리고 그 말씀이 떠나실 준비를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근심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리불이 찾아와 부처님께 청을 드렸다.

 “저는 차마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이 생의 인연을 마감할까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놀란 수행자들이 부처님과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따름으로써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비록 떠날지라도 경법(經法)은 남아 있을 것이다. 또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너희들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첫쩨, 중생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먹을 것을 주어 생명을 잇게 하고, 둘째는 병든 사람을 보살펴 주어 편안케 해주며, 셋째는 가난하고 고독한 자를 보호해 주며, 넷째는 선정을 닦는 이를 위하여 옷과 법을 보시하고 보살펴 주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법이 있으면 항상 부처님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사리불에게 경법(經法)을 설명하도록 하셨다. 사리불은 차근차근 부처님의 가르침이 삿된 무리에 의해 오도되지 않도록 설명하였다. 그리고 슬픔을 누르며 부처님께 배례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의 청을 허락하셨다.

 죽림정사를 떠난 사리불은 고향인 나란타로 돌아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리불의 입멸 소식이 들려왔다. 많은 제자들이 슬퍼하였다. 부처님은 더욱 쇠약해지셨으나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더욱 몸을 가다듬으셨다.


 라. 불법을 지키는 지혜

 “비구들아 무엇이 바른 법을 지키는 길인지 설명하겠다.

 첫째,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부처님께 직접 이 같은 가르침과 계율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인정하거나 반대하지 말고 잘 생각하여 경전과 계율과 법과 대조한 다음에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둘째, 만일 어떤 비구가 ‘나는 화합한 스님들과 부처님의 말씀을 많이 들은 장로들에게서 직접 이 같은 계율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면 바로 인정하거나 반대하지 말고 잘 생각하여 경전과 계율과 법과 대조한 다음에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그 다음 두 가지는 어떤 비구가 계율을 지키며 육의를 가진 비구의 입을 빌려 삿된 법을 주장하려 할 때 바른 수행자의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도 부처님을 여행을 계속하셨다. 부처님께서 파바성 부근에 이르자 제자들은 쉬어가실 것을 청하였다. 성 안에 드시자 모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공손하였다. 그 중 대장간을 하고 있는 춘다라는 사람이 와서 설법을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양하시지 않고 설법하셨다.

 부처님은 춘다의 집에서 춘다가 올리는 공양을 받으셨다. 춘다는 특별히 부처님께는 전단향 나무의 버섯으로 만든 음식을 올렸다.

 “춘다여, 이 음식은 다른 비구들에게 주었는가?”

 춘다는 깜짝 놀라며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셨다. 쿠시나가라로 방향을 잡으신 것이다. 좀 걸으시던 부처님께서 등뼈가 아프시다면서 아난다에게 자리를 펴라고 하셨다. 아난다는 춘다가 공양한 음식 때문이 아닌가 하고 여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춘다가 준 음식이 나의 마지막 식사가 될지라도 춘다의 잘못은 아니다.”

 부처님의 병환은 춘다가 공양한 버섯요리 때문에 악화되었다. 흥분한 제자들을 부처님께서는 나무라셨다. 춘다의 음식이 잘못되었을지라도 춘다의 정성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내가 성도하여 처음 받은 공양과 열반에 앞서 받은 마지막 공양은 그 공덕이 가장 큰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춘다를 배려하고 계셨다.


마. 대열반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에 도착하셨다. 젊은 바라문이 자기 집에 가서 쉬시라고 권해드렸지만 간곡하게 사양하셨다. 일행은 좀 더 걸어 사라쌍수에 도착했다. 아난다가 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자 부처님께서는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신 채 누우셨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이승에서의 인연을 마감하시려는 것을 짐작하고 슬픔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공양에 대해서 설법하셨다. 그것은 법을 잘 받아 지니고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난다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홀로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자니 한 비구가 찾아와 부처님께서 찾으신다고 하였다. 급히 부처님께로 달려가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슬퍼하지 마라. 일찍이 내가 가르친 것과 같이, 사랑하고 친근한 자도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 생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너는 나에게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더욱 정진하여 번뇌를 멸한 아라한이 되어라.”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이라는 소문은 곧 퍼졌다. 그때 나이가 120세나 된 수바트라라는 브라만이 찾아왔다. 그는 지혜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 동안 풀지 못한 의문을 풀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가 그를 막고 부처님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도 뜻을 굽히지 않자, 이렇게 실랑이가 일어나는 것을 눈치 채신 부처님께서 그를 막지 말라고 하셨다. 부처님을 만난 수바트라는 여쭈었다.

 “부처님, 세상에는 유명한 여섯 사람의 스승이 있고, 그들은 저마다 다른 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법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어느 종교에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 없다면 제1의 사문과가 없고, 제2, 제3, 제4의 사문과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르침의 근본은 이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기에 사문과가 있고, 그것은 곧 최상승의 진리를 얻는 보배로운 행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나이 29세에

 선한 도를 찾아 출가를 하였다.

 수바트라여 난 출가한 지

 이미 오십 년이 되었다.

 계와 정과 지혜의 행을

 혼자서 깊이 생각하였고

 바른 법의 요긴한 점을 설하였다.

 이 밖에는 사문이 없다.

 수바트라는 그 자리에서 출가 의식을 갖고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 《잡아함경》의 <수발타라경(須跋陀羅經)>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내가 열반한 뒤에는 계율을 존중해야 한다. 계율은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살아 있다고 해도 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청정한 계율을 지닌 비구는 장사를 하지 말며, 짐승을 기르지 말며, 하인을 부리지 말고, 또 재물을 멀리하라.

 사람의 길흉을 점치지 말며, 주술을 부리거나 선락을 만들지 말라. 권세를 가진 자와 사귀어 서민을 괴롭히지 말라. 바른 생각으로 남을 구제하라. 자기의 허물을 숨기거나 이상한 행동과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지 말라. 음식과 의복을 보시 받을 때는 알맞게 받고 축적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설법을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 설법을 들은 제자들은 조용히 슬픔을 삭이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초선(初禪)과 2선(禪)과 3선을 지나 멸상정(滅相定)에 드셔계셨다. 멸상정에 드셨다면 곧 열반에 드시게 된다.

 세존이 모든 선정에 들어 출입하시며 설법하기를 27회 반복하시고, 칠보상에 우협을 대시고 누우시자 북수남족(北首南足) 서향배동(西向背東)이었다. 칠보상을 묘한 영략으로 장엄하고 사라수림 사상팔척(四雙八隻)이 사방에서 여래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존이 밤중에 제사선에 드시어 고요히 소리 없으시니 이때 열반에 드셨다. 대각 세존이 열반에 드시니 사라수 동서 합하고 남북이 합하여 보상을 덮어 즉시 희게 변하여 백학(白鶴)과 같으며, 나뭇가지와 꽃과 열매와 줄기가 다 터지고 떨어지며 말라죽었다. 《大般涅槃經》 〈應眞還元品〉

 부처님에게서는 평화로움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침묵 속에서 열반에 드셨다.

 이를 알아챈 제자들은 그 동안 참아왔던 슬픔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통곡하는 제자들이 있는가 하면 땅위에서 뒹구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룻다는 제자들과 백성들을 달랬다.

 그리고 아난다는 장례 준비를 하였다. 장례는 화장으로 준비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쌓아놓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다. 조용히 그 이유를 생각하던 아니룻다는 제자들의 수장인 마하카샤파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냈다. 카샤파는 당시 포교를 위해 떠나 있었으며,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7일이 지나서야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마하카샤파는 슬픔을 참지 못했다.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여 더욱 안타까워했다.

 “부처님, 정녕 가셨습니까? 제가 미처 오기도 전에 부처님은 가셨습니까?”

 그가 슬퍼하자 제자들은 또다시 솟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처님의 발이 저절로 관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일제히 예배를 올렸다. 그러자 부처님의 두 발은 다시 조용히 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영원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몸을 바꾸기 위해 돌아가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이부분을 더 정확하게 적으면 부처님은 몸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 맞다. 부처는 더 이상 몸을 받지 않으며, 늘 보신불로 계신다. 다만 인연에 의해 중생을 제도하려할 때는 몸을 받아 태어나신다.

 

 부처님의 다비식이 끝나고 난 뒤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모셔가기 위해 언쟁이 있었다. 그러나 한 장로의 중재로 여덟로 나누어 8개국으로 흩어져 모셔졌다.

 마하가샤파는 3개월 뒤 교단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곧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처님 법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