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원각경

원각경 문수보살장 제1

서원365 2010. 3. 31. 20:09

○ 文殊菩薩章 第一

 於是(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在大衆中(재대중중) 卽從座起(즉종좌기) 頂禮佛足(정례불족) 右繞三匝(우요삼잡) 長跪叉手(장궤차수) 以白佛言(이백불언)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文殊師利菩薩 - 보통 문수보살이라고 하며 문수사리법왕자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 중에 지혜가 가장 뛰어난 보살이라고 하여 법왕자라고 한다. manjusri를 음역한 것이 문수사리이다. 妙吉祥(묘길상), 妙德(묘덕), 濡首(유수), 妙音(묘음)이라고 번역한다. 대웅전의 부처님 왼쪽에 있는 보살이다. 이 장에 문수보살이 먼저 등장하는 것은 지혜로써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열심히 수행을 하더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지혜로써 제시된 길을 믿고 이해하면 마침내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문수보살은 이 信解(신해)를 이끌어낸다.

* 頂禮佛足 - 발에 이마를 대고 예를 취한다는 것은 공경심을 지극히 표현한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지극한 공경심을 표현할 때 이러한 예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것이나 무릎을 굻고 손을 모으는 것이나 의미는 같다.

 大悲世尊(대비세존)

크게 자비로우신 세존이시여.

* 大悲 - 悲는 慈悲(자비)의 준말이다. 慈(자)는 자애로운 것을 말하며 悲(비)는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願爲此會(원위차회) 諸來法衆(제래법중) 說於如來(설어여래) 本起淸淨(본기청정) 因地法行(인지법행)

 원컨대 이 법회에 온 모든 대중들을 위해 여래가 본 자리에서 일으킨 청정한 因地法行을 설명하여주시고,

及說菩薩(급설보살) 於大乘中(어대승중) 發淸淨心(발청정심) 遠離諸病(원리제병) 能使未來(능사미래) 末世衆生(말세중생) 求大乘者(구대승자) 不墮邪見(불타사견)

 또 보살이 대승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내어 모든 병을 멀리하게 설하셔서, 미래 말세의 중생들이 대승을 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諸來法衆 - 법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 즉 10만 보살을 말한다.

* 於大乘中 -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이다. 작은 수레는 혼자밖에 못 타지만 큰 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다.

* 遠離諸病 - 반야심경에 보면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 - 전도된 몽상을 멀리 떠남)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경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諸病(제병) 즉, 모든 병은 진리를 깨닫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본래 원각의 자리는 청정하지만 제병이 있으므로 그 본 바탕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본 바탕을 갖추고 있어서 제병만 사라지면 저절로 그 본 바탕이 드러난다.

* 因地法行 - 이 경의 핵심 단어이다. 인지란 깨달음의 길을 시작하는 것. 始覺(시각)이다. 果地(과지)의 상대어이다.

 作是語已(작시어이) 五體投地(오체투지) 如是三請(여시삼청) 終而復始(종이부시)

 이 말을 마치고 오체투지 하였는데 이와 같이 세 번을 청하였다.

* 五體投地 -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를 가리켜 오체라 한다. 오체가 땅에 닿는 것은 오체투지라고 한다. 보통 절을 할 때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오체투지가 된다.

 

 爾時(이시) 世尊(세존) 告文殊師利菩薩言(고문수사리보살언)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善哉善哉(선재선재) 善男子(선남자) 汝等(여등) 乃能爲諸菩薩(내능위제보살) 諮詢如來(자순여래) 因地法行(인지법행) 及爲末世一切衆生(급위말세일체중생) 求大乘者(구대승자) 得正住持(득정주지) 不墮邪見(불타사견) 汝今諦聽(여금제청) 當爲汝說(당위여설)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의 인지법행을 물어, 말세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대승을 구하는 자가 바르게 머물러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구나.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時(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奉敎歡喜(봉교환희) 及諸大衆(급제대중) 黙然而聽(묵연이청)

 이때 문수사리보살은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였고, 모든 대중들이 조용히 들었다.

* 질문의 핵심은 인지법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은 모든 보살들이 인지법행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말세 중생들이 사견에 빠지기 않게 하기 위함이다.

 

 善男子(선남자) 無上法王(무상법왕) 有大陀羅尼門(유대디라니문) 名爲圓覺(명위원각) 流出一切(유출일체) 淸淨眞如(청정진여) 菩提涅槃(보리열반) 及波羅蜜 (급파라밀) 敎授菩薩(교수보살)

『선남자여, 無上(무상)법왕은 대다라니문이 있어서 이름을 원각이라 하니, 모든 청정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이 흘러나와 보살을 가르친다.』

* 無上法王 - 위없는 진리의 왕. 즉 부처님이며,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본래 자리이다.

* 陀羅尼(다리니) - dharani를 음역한 것이다. 摠持(총지)나 能持(능지)라고 번역한다. 또는 부처님이나 보살의 서원이나 덕, 가르침, 지혜 등을 담은 주문을 뜻하며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한량없는 공덕을 총체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서 摠持(총지)를 뜻한다.

* 淸淨眞如 - 청정한 진여, 무명에 물들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

* 波羅蜜(바라밀) - 到彼岸(도피안), 즉 진리의 세계로 건너감 또는 진리의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보통 육바라밀을 말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일체의 것이 모두 바라밀이다. 육바라밀 - 布施(보시), 持戒(지계), 忍辱(인욕), 精進(정진), 禪定(선정), 般若(반야)이며, 여기에 방편, 願(원), 力(력), 智(지)를 합쳐 10바라밀이라고 한다.

 

 一切如來(일체여래) 本起因地(본기인지) 皆依圓照淸淨覺相(개의원조청정각상) 永斷無明(영단무명) 方成佛道(방성불도)

『모든 여래는 본래 자리에서 인지법행을 일으켜 두루 비추는 청정한 깨달음에 의지하여 무명을 영원히 잘라버려야 비로소 불도를 이룬다.

 云何無明(운하무명) 善男子(선남자)

 선남자여,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一切衆生(일체중생) 從無始來(종무시래) 種種顚倒(종종전도) 猶如迷人(유여미인) 四方易處(사방역처) 妄認四大(망인사대) 爲自身相(위자신상) 六塵緣形(육진연형) 爲自心相(위자심상)

 모든 중생들이 무시이래로 가지가지 전도된 생각을 하니, 혼미한 사람이 사방을 바꾸는 것처럼, 4대를 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육진의 그림자를 자기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譬彼病目(비피병목) 見空中華(견공중화) 及第二月(급제이월)

 비유하면 눈병이 있는 사람이 공중에 꽃을 보는 것이나 두 개의 달을 보는 것과 같다.

 善男子(선남자) 空實無華(공실무화) 病者妄執(병자망집) 由妄執故(유망집고) 非唯惑此虛空自性(비유혹차허공자성) 亦復迷彼實華生處(역부미피실화생처) 由此(유차) 妄有輪轉生死(망유륜전생사) 故 名無明(고 명무명)

 선남자여,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도 병자는 헛되이 집착을 하니, 헛된 집착 때문에 이 허공의 자성을 미혹할 뿐만 아니라, 진짜 꽃이 생겨나는 곳도 미혹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헛되이 생사윤회가 있으므로 무명이라고 부른다.』

* 顚倒 - 실제의 것과 거짓이 뒤바뀐 것을 말한다. 상하, 좌우, 전후, 眞僞(진위) 등이 뒤바뀐 것이다.

* 四方 易處 - 동을 서라하고 남을 북이라고 하는 것처럼 동서남북을 바꾸는 것

* 4대는 地水火風으로서 몸을 이루는 네 가지 성질이다. 지는 고체, 수는 액체, 화는 온기, 풍은 호흡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흩어져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신체는 실체가 없다.

* 六塵 - 六識(眼耳鼻舌身意)의 대상이 되는 六境(色聲香味觸法)을 말한다. 마음 속을 오가는 이러한 것들은 가지가지 생각들이고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善男子(선남자) 此無明者(차무명자) 非實有體(비실유체) 如夢中人(여몽중인) 夢時 非無(몽시 비무) 及至於醒(급지어성) 了無所得(료무소득) 如衆空華(여중공화) 滅於虛空(멸어허공) 不可說言(불가설언) 有定滅處(유정멸처)

 何以故(하이고) 無生處故(무생처고) 一切衆生(일체중생) 於無生中(어무생중) 妄見生滅(망견생멸) 是故(시고) 說明輪轉生死(설명윤전생사)

『선남자여, 이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실체가 없으니, 꿈 속의 사람이 꿈 꿀 때는 없는 것이 아니지만 깨면 남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많은 공중의 꽃이 허공 속에서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곳이 있다고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생겨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생겨난 것이 없는 가운데 헛되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이렇기 때문에 생사를 윤회한다고 설명한다.』

* 꿈속에서 본 것들이나 눈에 병이 걸려 공중에 꽃이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볼 그 당시에는 있는 듯이 보이지만 꿈을 깨거나 눈병이 나으면 사라진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사라진 곳이 있을 리가 없다. 무명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 깨닫고 나면 홀연히 사라지지만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생사가 없는데도 그것을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헛되이 보기 때문이다. 헛된 것을 보고 집착하니 생사를 윤회한다고 말한다. 본디 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善男子(선남자) 如來因地(여래인지) 修圓覺者(수원각자) 知是空華(지시공화) 卽無輪轉(즉무륜전) 亦無身心(역무신심) 受彼生死(수피생사) 非作故無(비작고무) 本性無故(본성무고)

『선남자여, 여래의 인지에서 원각을 닦는 사람은 空華(공화)를 알게 되므로 윤회가 없으며 또한 몸과 마음이 없다. 생사를 받는 것을 조작해서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없기 때문이다.』

*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일부러 조작하여 없게 한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성품이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생사 속에서 헤맨다.

彼知覺者(피지각자) 猶如虛空(유여허공) 知虛空者(지허공자) 卽空華相(즉공화상) 亦不可說無知覺性(역불가설무지각성) 有無俱遣(유무구견) 時則名爲淸覺隨順(시즉명위청각수순)

『이 깨달음이라는 것도 오히려 허공과 같고 허공을 아는 것도 곧 허공의 꽃이나, 그렇다고 깨닫는 성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있음과 없음을 모두 버렸을 때 청정한 깨달음에 따른다고 한다.』

* 깨달음이란 무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에 무명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다. 눈병이 들어 공중에 꽃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지만 이것이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또한 착각이 없었다면 없을 것이다. 허공의 꽃을 보는 것 역시 지견이지만, 허공 꽃이 꽃이 아님을 아는 것 역시 지견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것을 깨닫는 성품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何以故(하이고) 虛空性故(허공성고) 常不動故(상부동고) 如來藏中(여래장중) 無起滅故(무기멸고) 無知見故(무지견고) 法界性(여법계성) 究竟圓滿(구경원만) 徧十方故(편십방고) 是則名爲因地法行(시즉명위인지법행)

『왜냐하면 허공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항상 부동하기 때문이다. 여래장에서는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며 지견이 없기 때문이다. 법계의 성품은 궁극적으로 원만하여 시방에 두루 펼쳐 있는 것과 같으니 이를 일러 인지법행이라고 한다.

 菩薩 因此(보살 인차) 於大乘中(어대승중) 發淸淨心(발청정심) 末世衆生(말세중생) 依此修行(의차수행) 不墮邪見(불타사견)

 보살은 이 때문에 대승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내며, 말세 중생들이 이 수행에 의지하므로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는다.』

 

 爾時 世尊(이시 세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 而說偈言(이설게언)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文殊汝當知(문수여당지) 문수여, 마땅히 알라.

 一切諸如來 從於本因地(일체제여래 종어본인지)

 모든 여래가 깨달음의 수행 본 자리에서

 皆以智慧覺 了達於無明(개이지혜각 료달어무명)

 지혜로써 깨달아 무명을 알아내

 知彼如空華 卽能免流轉(지피여공화 즉능면류전)

 공중의 꽃과 같은 것임을 알았으니 윤회를 벗어났다.

 又如夢中人 醒時不可得(우여몽중인 성시불가득)

 또 꿈속에 본 사람이 깨고나면 없으니

 覺者如虛空 平等不動轉(각자여허공 평등부동전)

 깨닫는다는 것도 허공과 같아 평등하여 움직임이 없다.

 覺遍十方界 卽得成佛道(각편시방계 즉득성불도)

 깨달음이 온 세상에 두루하면 곧 불도를 이룰 수 있다.

 衆幻滅無處 成道亦無得(중환멸무처 성도역무득)

 뭇 허깨비 사라져 없는 곳에는 도를 이룸도 없으니

 本性圓滿故 菩薩於此中(본성원만고 보살어차중)

 본성이 원만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 가운데

 能發菩提心 末世諸衆生(능발보리심 말세제중생)

 보리심을 내며 말세의 중생들은 이를 닦아

 修此免邪見( 수차면사견)

 사견에 빠지지 않는다.

* 成道亦無得 - 道라는 것은 진리에로 가는 길이다. 이미 진리에 가 있는 자에게 새롭게 도를 이룰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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