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한글 원각경

한글 원각경 문수보살장 제1

서원365 2010. 4. 11. 14:05

○ 서장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많은 불경들이 이렇게 시작한다. 불경은 다른 종교의 경전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모르면 바로 물을 수 있으므로 그런 것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곧 부처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 사람이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한 것은 지금부터 나오는 말들이 자신의 말이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임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한때 바가바께서 신통대광명장의 삼매에 드시니, 이는 모든 여래가 빛으로 장엄하여 머무는 자리로서 모든 중생의 청정한 깨달음의 자리이다.

* 바가바(婆伽婆) - 부처님의 다른 호칭, 薄伽梵(박가범)이라고도 하며, 모든 덕을 갖추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라는 뜻.

* 신통대광명장(神通大光明藏) - 걸림이 없는 대지혜의 자리

* 삼매(三昧) - 마음이 온전히 평온하여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상태, 온전한 집중 상태 (samadhi) 삼매와 정수를 같은 말로 사용하기도 하며 삼매정수라고도 한다.

* 모든 중생들의 청정한 깨달음의 자리, 신통대광명장이 중생들의 깨달음의 자리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깨달은 자리나 중생들의 깨닫는 자리는 같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같지만 중생들은 무명이 걷히지 않았으므로 중생이며, 부처는 무명이 완전히 사라졌으므로 부처이다.

 

 몸과 마음이 적멸하고 평등한 본바탕이 우주에 두루 가득차서 불이(不二)를 따라서 (불이)의 경계에서 모든 청정한 국토를 드러냈다.

* 불이(不二) - 분별심이 사라져 생각에 물듦이 없는 것

 

 대보살마하살 10만 명과 함께 하였으니, 그 이름은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보안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청정혜보살, 성덕자재보살, 변음보살, 정제업보살, 보각보살, 원각보살, 현선수보살 등으로써 상수가 되었으며 모든 권속들이 다 삼매에 들어, 여래의 평등한 법회에 머물렀다.

* 모든 권속 - 위에 이름을 나타낸 보살들은 대보살들이다. 이 보살들에게 딸려 있는 보살들을 권속이라고 표현하였다. 그 권속들의 지도자로서 윗분이 되는 분들이 바로 이 대보살들이다.

* 평등법회 - 부처님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고하가 있을 수 없다. ≪금강경≫ 정심행선분에 보면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깨달음에 있어서 높낮이가 없다.

 

○ 문수보살장 제일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발에 이마를 대고 예를 취한다는 것은 공경심을 지극히 표현한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지극한 공경심을 표현할 때 이러한 예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것이나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것이나 의미는 같다.

 

『크게 자비로우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법회에 온 모든 대중들을 위해 여래가 본 자리에서 일으킨 청정한 因地法行(인지법행)을 설명하여주시고, 또 보살이 대승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내어 모든 병을 멀리하게 설하셔서, 미래 말세의 중생들이 대승을 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慈(자)는 자애로운 것을 말하며 悲(비)는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 대승(大乘) -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이다. 작은 수레는 혼자밖에 못 타지만 큰 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다.

* 모든 병 - 반야심경에 보면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 - 전도된 몽상을 멀리 떠남)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경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諸病(제병) 즉, 모든 병은 진리를 깨닫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본래 원각의 자리는 청정하지만 제병이 있으므로 그 본 바탕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본 바탕을 갖추고 있어서 병만 사라지면 저절로 그 본 바탕이 드러난다.

* 因地法行 - 이 경의 핵심 단어이다. 인지란 깨달음의 길을 시작하는 것. 始覺(시각)이다. 果地(과지)의 상대어이다.

이 말을 마치고 五體投地(오체투지) 하였는데 이와 같이 세 번을 청하였다.

* 五體投地 -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를 가리켜 오체라 한다. 오체가 땅에 닿는 것은 오체투지라고 한다. 보통 절을 할 때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오체투지가 된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의 인지법행을 물어, 말세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대승을 구하는 자가 바르게 머물러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구나.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이때 문수사리보살은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였고, 모든 대중들이 조용히 들었다.

* 질문의 핵심은 인지법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은 모든 보살들이 인지법행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말세 중생들이 사견에 빠지기 않게 하기 위함이다.

 

『선남자여, 無上(무상)법왕은 대다라니문이 있어서 이름을 원각이라 하니, 모든 청정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이 흘러나와 보살을 가르친다.』

* 無上法王 - 위없는 진리의 왕. 즉 부처님이며,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본래 자리이다.

* 陀羅尼(다리니) - dharani를 음역한 것이다. 摠持(총지)나 能持(능지)라고 번역한다. 또는 부처님이나 보살의 서원이나 덕, 가르침, 지혜 등을 담은 주문을 뜻하며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한량없는 공덕을 총체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서 摠持(총지)를 뜻한다.

* 淸淨眞如 - 청정한 진여, 무명에 물들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

* 波羅蜜(바라밀) - 到彼岸(도피안), 즉 진리의 세계로 건너감 또는 진리의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보통 육바라밀을 말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일체의 것이 모두 바라밀이다. 육바라밀 - 布施(보시), 持戒(지계), 忍辱(인욕), 精進(정진), 禪定(선정), 般若(반야)이며, 여기에 방편, 願(원), 力(력), 智(지)를 합쳐 10바라밀이라고 한다.

『모든 여래는 본래 자리에서 인지법행을 일으켜 두루 비추는 청정한 깨달음에 의지하여 무명을 영원히 잘라버려야 비로소 불도를 이룬다.

 선남자여,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무시이래로 가지가지 전도된 생각을 하니, 혼미한 사람이 사방을 바꾸는 것처럼, 4대를 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육진의 그림자를 자기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비유하면 눈병이 있는 사람이 공중에 꽃을 보는 것이나 두 개의 달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도 병자는 헛되이 집착을 하니, 헛된 집착 때문에 이 허공의 자성을 미혹할 뿐만 아니라, 진짜 꽃이 생겨나는 곳도 미혹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헛되이 생사윤회가 있으므로 무명이라고 부른다.』

* 顚倒 - 실제의 것과 거짓이 뒤바뀐 것을 말한다. 상하, 좌우, 전후, 眞僞(진위) 등이 뒤바뀐 것이다. 끝없이 변하는 것을 고정된 실체로 착각하는 것, 있지도 않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는 것 등을 말한다.

* 사방을 바꿈 - 동을 서라하고 남을 북이라고 하는 것처럼 동서남북을 바꾸는 것

* 4대는 地水火風으로서 몸을 이루는 네 가지 성질이다. 지는 고체, 수는 액체, 화는 온기, 풍은 호흡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흩어져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신체는 실체가 없다.

* 六塵 - 六識(眼耳鼻舌身意)의 대상이 되는 六境(色聲香味觸法)을 말한다. 마음 속을 오가는 이러한 것들은 가지가지 생각들이고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선남자여, 이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실체가 없으니, 꿈 속의 사람이 꿈 꿀 때는 없는 것이 아니지만 깨면 남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많은 공중의 꽃이 허공 속에서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곳이 있다고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생겨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생겨난 것이 없는 가운데 헛되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이렇기 때문에 생사를 윤회한다고 설명한다.』

* 꿈속에서 본 것들이나 눈에 병이 걸려 공중에 꽃이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볼 그 당시에는 있는 듯이 보이지만 꿈을 깨거나 눈병이 나으면 사라진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사라진 곳이 있을 리가 없다. 무명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 깨닫고 나면 홀연히 사라지지만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생사가 없는데도 그것을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헛되이 보기 때문이다. 헛된 것을 보고 집착하니 생사를 윤회한다고 말한다. 본디 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선남자여, 여래의 인지에서 원각을 닦는 사람은 空華(공화)를 알게 되므로 윤회가 없으며 또한 몸과 마음이 없다. 생사를 받는 것을 조작해서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없기 때문이다.』

*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일부러 조작하여 없게 한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성품이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생사 속에서 헤맨다.

『이 깨달음이라는 것도 오히려 허공과 같고 허공을 아는 것도 곧 허공의 꽃이나, 그렇다고 깨닫는 성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있음과 없음을 모두 버렸을 때 청정한 깨달음에 따른다고 한다.』

* 깨달음이란 무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에 무명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다. 눈병이 들어 공중에 꽃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지만 이것이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또한 착각이 없었다면 없을 것이다. 허공의 꽃을 보는 것 역시 지견이지만, 허공 꽃이 아님을 아는 것 역시 지견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것을 깨닫는 성품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허공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항상 부동하기 때문이다. 여래장에서는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며 지견이 없기 때문이다. 법계의 성품은 궁극적으로 원만하여 시방에 두루 펼쳐 있는 것과 같으니 이를 일러 인지법행이라고 한다.

 보살은 이 때문에 대승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내며, 말세 중생들이 이 수행에 의지하므로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는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문수여, 마땅히 알라.

 모든 여래가 깨달음의 수행 본 자리에서

 지혜로써 깨달아 무명을 알아내

 공중의 꽃과 같은 것임을 알았으니 윤회를 벗어났다.

 또 꿈속에 본 사람이 깨고나면 없으니

 깨닫는다는 것도 허공과 같아 평등하여 움직임이 없다.

 깨달음이 온 세상에 두루하면 곧 불도를 이룰 수 있다.

 뭇 허깨비 사라져 없는 곳에는 도를 이룸도 없으니

 본성이 원만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 가운데

 보리심을 내며 말세의 중생들은 이를 닦아

 사견에 빠지지 않는다.

* 成道亦無得 - 道라는 것은 진리에로 가는 길이다. 이미 진리에 가 있는 자에게 새롭게 도를 이룰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