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심생멸문 - 시각

서원365 2013. 8. 22. 14:25

   • 始覺(시각)

   - 不覺(불각), 凡夫覺(범부각)

又以覺心源故(우이각심원고) 名究竟覺(명구경각) 不覺心源故(불각심원고) 非究竟覺(비구경각).

또 마음의 근원을 깨달았으므로 구경각이라고 하고,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 못했으므로 구경각이 아니라고 한다.

* 元曉 : 전체적으로 표시한 것 가운데 覺心源故 名究竟覺라고 한 것은 불지(佛地)에 있는 것이며, 不覺心源故 非究竟覺이라 한 것은 금강(金剛) 이전이다.

* 金剛喩定(금강유정) : 은정희 - 금강이 견고하여 다른 것을 깨뜨리는 것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을 말함. 대승에서는 제 십지보살이 소지장과 번뇌장의 종자를 한꺼번에 끊고 불지에 들어가기 위해 드는 선정.

 

此義云何(차의운하) 如凡夫人(여범부인) 覺知前念起惡故(각지전념기악고) 能止後念(능지후념) 令其不起(영기불기)

이 뜻은 무엇인가? 凡夫(범부) 같은 사람은 먼저 생각이 惡(악)을 일으킨 것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나중 생각을 멈추어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雖復名覺(수부명각) 卽是不覺故(즉시불각고)

비록 다시 覺(각)이라고 하지만 곧 覺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오형근의 해설 : 우리 마음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생멸심(生滅心)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서 악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악의 싹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마음에 생겨난 악의 싹을 잘라낸다고 해도 악의 근원인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악의 싹을 인식한다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 元曉 : … 저 심성이 본래 생멸상을 여의었으나, 무명이 있어서 자신의 심성을 모르는 것이며, 심성을 어김에 의해 적정을 여의기 때문에 동념(動念)의 사상(四相)을 내는 것이니, 사상은 무명과 화합하는 힘에 의해 심체로 하여금 생주이멸(生住異滅)하게 하는 것이다. 소승의 논의 중에 ‘마음이 미래 중에 있을 때는 아직 생멸하지 않다가 업력에 의해 사상을 끌어 심법으로 하여금 생주이멸하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대승의 사상(四相)도 그와 같다. 경의 말에 ‘이 법신이 모든 번뇌에 의해 동요하는 바가 되어, 생사를 왕래하니 중생이라고 한다.’는 것과 같다. 이 론의 아래 글(‘본각’)에서 自性淸淨心 因無明風動이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 범부는 생각이 악을 일으킴을 보고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생멸 현상에 집중하여 다음에는 그러한 것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할 뿐이다.

 

 

   - 相似覺(상사각)

如二乘觀智(여이승관지) 初發意菩薩等(초발의보살등) 覺於念異(각어념이) 念無異相(념무이상) 以捨麤分別執著相故(이사추분별집저상고) 名相似覺(명상사각)

二乘(이승)의 觀智(관지)와 처음 뜻을 낸 보살들이라면 망념의 異相(이상)을 깨닫고, 망념의 異相(이상)이 없어지니 거친 분별집착상을 버렸으므로 상사각이라고 한다.

* 觀智(관지) : 사리를 관하는 지혜. 이승(二乘) 즉 성문과 연각은 망념이 탐진치에서 비롯된 집착 때문임을 안다.

* 지운 : 念異(염이) : 주객의 앎이 유지되어 의식의 밖으로 향해 대상을 인식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의심, 견해의 생각이 순간순간 대상에 따라 달리 일어나는 것.

* 憨山 : 이상(異相)이란 아(我)와 아소념법(我所念法)을 차별하여, 이 둘의 상대적 대립 관계를 잊지 못하다가, 점점 깨달아, 아와 법을 집착하고 취하는 망념을 타파하여, 아와 법이 다른 모습으로서의 실제는 끝내 얻지 못함을 알았음을 말한다. 그 때문에 ‘망념에는 아와 아소념법의 다른 모습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을 육추의 편에서 요약한다면 집취상과 계명자상을 타파한 것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추분별의 집착을버렸다.’라고 말하였고, 그러나 아직은 진여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단지 비교해서 추상적으로 관찰해서 알기 때문에 법신보살이 진여를 깨닫는 것과 서로 매우 흡사하다는 의미에서 상사각이라고 말하였다.

* 보살은 십신(十信)을 포함한 삼현보살(三賢菩薩)을 말한다.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을 말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생각의 대상들이 내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탐진치, 의심, 교만, 邪見 등의 마음으로 인해 마치 색안경을 낀 것처럼 왜곡되어 보이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아집을 버리게 된다. 이러한 집착을 여의는 모습이 깨달음과 유사하다고 해서 상사각이라고 한다.

 

   - 隨分覺(수분각)

如法身菩薩等(여법신보살등) 覺於念住(각어염주) 念無住相(념무주상) 以離分別麤念相故(이이분별추념상고) 名隨分覺(명수분각)

법신보살 같은 경우는 망념이 경계에 집착함 깨달아, 생각에 주상(住相) 이 없어서 분별하는 거친 망념의 모습을 떠나므로 이름을 수분각이라고 한다.

* 法身菩薩(법신보살) : 십지(十地)의 경지에 든 보살

* 憨山 : 住相(주상) - 분별하는 망념과 분별의 대상인 경계에서 주관과 객관이 상대적으로 의존하여 이 둘의 상대적인 의존 관계를 염념이 잊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주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육추 삼세의 편에서 요약하면 지상(智相), 상속상(相續相), 능견상(能見相), 능현상(能現相)을 깨닫는데 해당한다. 이 사종주상을 구생아집(俱生我執), 구생법집(俱生法執)인 이집(二執)이라고 한다. 법신보살은 이 이집을 자기가 수행하여 깨달은 분야만큼의 집착을 타파하고, 타파한 만큼 진여법신을 증득한다. 수행한 만큼 진여를 깨닫는다고 해서 수분각이라고 한다.

* 元曉 : 사상 안에 각각 차별이 있다. 생삼(生三), 주사(住四), 이륙(異六), 멸칠(滅七)을 말한다. … 생상과 화합하여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네 가지 주상을 일으킨다. … 무명이 주상과 화합하여 계탁(計度)하여 아(我)와 아소(我所)가 공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여 일으킨다. … 무명이 이상(異相)과 화합하여 바깥 경계는 위순(違順)을 떠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일곱 가지 멸상을 일으킨다. 이른 바 身口 일곱 가지 악업이다. 이러한 악업이 이심(異心)을 없애어 악취에 떨어지기 때문에 멸상이라고 한다.…이리하여 사상이 일어남은 일심이 유전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근본 무명을 원인으로 한다. … 또 소상(所相)의 심(心)은 일심에서 오는 것이며, 능상의 상은 무명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난 상이 그것이 이르는 곳에 따라서 그 작용에 차별이 있어서 경계의 별상을 취하는 것을 수법(數法)이라 이름한다. 이는 참으로 근본 무명이 평등성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소상의 심이 이르는 곳마다 총괄하는 주인이 되어 경계의 통상(通相)을 요달함을 심왕(心王)이라 말하니 그 본래의 일심이 모든 법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 모든 외도들이 흔히 심왕을 재주(宰主)니 짓는 자니 받는 자니하고 계탁하는데 이는 그것이 자성이 없이 연을 따라 유전하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生相

리야식

業相

무명에 의해 불각의 망념이 움직여 비록 생멸이 있지만 見分과 相分이 아직 나타나지 않음. 生相이 장차 곧 작용하려는 데 이른 것과 같음.

動念에 의해 다음에 能見을 이루는 것, 生相이 막 작용하는 때 이른 것.

能見에 의해 境相을 나타내는 것. 아직 이르지 오지 않은 생상이 현재시에 이른 것.

住相

7

我癡

나의 진상을 모르고, 무아를 모르는 것.

我見

身見, 보통 오온의 화합을 나라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나라 할 것이 없는데 나로 잘못 아는 것.

나에 대한 집착

我慢

나를 높이려는 마음

전6

貪, 瞋, 癡, 慢, 疑, 見(惡見, 진리에 대해 가지는 잘못된 견해)

身三

殺生, 偸盜, 邪淫

妄語, 綺語(교묘하게 꾸미는 말), 惡口, 兩舌

 

 

   - 究竟覺(구경각)

如菩薩地盡(여보살지진) 滿足方便(만족방편) 一念相應(일념상응) 覺心初起(각심초기) 心無初相(심무초상) 以遠離微細念故(이원리미세념고) 得見心性(득견심성) 心則常住(심즉상주) 名究竟覺(명구경각)

菩薩地(보살지)를 다한 것 같으면 방편을 만족하고 일념이 상응하여,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相을 깨달아, 처음 일어나는 相도 없으며, 미세한 망념도 멀리 여읜 까닭에 마음의 본성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곧 常住(상주)하니 구경각이라고 한다.

* 菩薩地盡(보살지진) : 보살의 경지를 마침, 보살 십지(十地)의 마지막 단계인 법운지(法雲地)를 마친 것.

* 滿足方便(만족방편) : 수행에 필요한 모든 방편을 다 완성함.

* 一念相應(일념상응) : 일념이 진여 즉 본각과 하나가 됨.

* 覺心初起 心無初相(각심초기 심무초상) :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 그 처음 일어나는 상도 없음. 처음 일어나는 상이란 곧 무명으로 인해 처음 상이 생김을 말한다.

* 心則常住(심즉상주) : 마음이 늘 如如하여 변함없음.

 

是故修多羅說(시고수다라설) 若有衆生(약유중생) 能觀無念者(능관무념자) 則爲向佛智故(즉위향불지고)

그러므로 경에 말하되 만약 어떤 중생이 無念(무념)을 관할 수 있으면 佛智(불지)를 향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元曉 : 能觀無念者 則爲向佛智故라고 한 것은 인지(因地)에 있을 비록 미세한 념을 아직 여의지 못했지만, 무념을 도리를 잘 보는 것이니, 잘 보는 이것이 불지(佛智)를 향함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又心起者(우심기자) 無有初相可知(무유초상가지) 而言知初相者(이언지초상자) 卽謂無念(즉위무념)

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처음 모습을 알 수 없으니, 처음 모습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무념을 말하는 것이다.

* 元曉 : 又心起者란 위에서의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지, 깨달았을 때 초상이 있음을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無有初相可知라고 한 것이며, 그러면서도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초상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마치 방향을 알았을 때에 서쪽이 동쪽인 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여래가 깨달았을 때, 처음의 동상(動相)이 바로 본래 고요한 것인 줄 아는 것이기 때문에 卽謂無念을 말한다고 한 것이다.

* 而言知初相者 卽謂無念(이언지초상자 즉위무념) : 초상(初相)이란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 처음 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안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 무념인 것을 안다는 뜻이다.

 

是故一切衆生(시고일체중생) 不名爲覺(불명위각) 以從本來(이종본래) 念念相續(념념상속) 未曾離念(미증이념) 故說無始無明(고설무시무명).

그러므로 모든 중생을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으며, 본래부터 생각과 생각이 서로 이어져 일찍이 생각을 떠나지 않으므로 시작도 없는 무명이라고 한다.

* 중생은 망념이 이어져 그치지 않으니, 즉, 무념이 아니니. 각이라고 하지 않는다.

 

若得無念者(약득무념자) 則知心相生住異滅(즉지심상생주이멸) 以無念等故(이무념등고) 而實無有始覺之異(이실무유시각지이)

만약 무념에 이르게 되면, 心相(심상)의 生住異滅(생주이멸)을 알게 되어 無念(무념)과 같으므로 실로 始覺(시각)에 차이가 없다.

* 知心相生住異滅 以無念等(지심상생주이멸 이무념등) :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며 변하고 사라지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본체가 아님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념(無念)과 같다고 하였다.

* 實無有始覺之異(실무유시각지이) : 무념에 이르게 되면 시각(始覺)이 본각(本覺)과 다르지 않다는 것.

 

以四相俱時而有(이사상구시이유) 皆無自立(개무자립) 本來平等(본래평등) 同一覺故(동일각고)

四相(사상)은 동시에 있어 자립함이 없으며, 본래 평등하여 覺(각)과 같기 때문이다.

* 사상(四相)은 위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말한다. 생주이멸은 마음의 본체에서 나온 것으로 사상이 자립하지 못하면 무념과 같으므로 각(覺)과 같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