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삼대 - 체대와 상대

서원365 2013. 9. 21. 07:52

 

 

(4) 三大(삼대)

  ① 體大 相大(체대 상대)

    ○ 眞如(진여)의 自體相(자체상)

復次眞如自體相者(부차진여자체상자) 一切凡夫聲聞緣覺菩薩諸佛(일체범부성문연각보살제불) 無有增減(무유증감) 非前際生(비전제생) 非後際滅(비후제멸) 畢竟常恒(필경상항)

다시 다음에 진여의 자체상이라는 것은 모든 범부와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모든 부처가 더하거나 뺄 것이 없으며, 전에 생겨남도 아니고, 후에 사라짐도 아니며, 필경 항상하다.

* 진여의 체(體)를 설명하였다. 진여 자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늘거나 줄지 않으며, 늘 그러하다. 부처라고 해서 더 크거나, 범부라고 해서 더 작지도 않다. 과거에 생겨난 바도 없으며 미래에 사라질 것도 없어서 늘 그러하다.

 

從本已來(종본이래) 性自滿足一切功德(성자만족일체공덕)

본래부터 성품이 스스로 일체의 공덕을 만족하니,

 

所謂自體有大智慧光明義故(소위자체유대지혜광명의고) 遍照法界義故(편조법계의고) 眞實識知義故(진실식지의고) 自性淸淨心義故(자성청정심의고) 常樂我淨義故(상락아정의고) 淸凉不變自在義故(청량불변자재의고)

이른 바, 진여 자체는 대지혜광명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법계를 두루 비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며, 참되게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며, 자성이 청정한 마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며, 常樂我淨(상락아정)의 뜻이기 때문이며, 청량하고 불변하며 자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진여의 공덕을 설명하였다. 진여는 공이요, 모습이 없다. 그러나 중생과 관계[因緣]가 이루어지면, 중생을 제도하려는 모습(相)을 나타낸다. 이를 공덕이라고 한다.

* 지운 : 眞實識知(진실식지)는 선가에서 말하는 공적영지(空寂靈知)이며 반야(般若)이다.

* 지운 : 진여훈습에 의해 왼쪽이 타파되어 오른쪽의 것이 나타남

진여훈습 대상

진여훈습 결과

計名字相, 起業相

淸凉不變常住

執取相

常樂我淨

相續識

自性淸淨

智識

眞實識知

現識

遍照法界

轉識

大智慧光明

業識

如來法身

 

* 常樂我淨(상락아정) :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염(染)에 대응하는 말이다. 염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이고 물든 것이지만, 진여는 늘 즐겁고, 무가 아니며, 청정하다. 진여는 공이다. 그러므로 변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常이며, 번뇌가 없으므로 樂이며, 텅빈 그 모습이 나의 본 모습인 我이며, 진여 자체는 물들지 않으므로 淨이다.

* 憨山 :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다하도록 변함이 없음을 常이라하고, 중생의 괴로움 속에 있어도 그 괴로움이 관여하지 않음을 樂이라 하고, 생사에 처하여도 생사에 구속되지 않음을 我라 하고, 삼세육추의 생멸하는 모습을 편력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음을 淨이라고 한다.

 

具足如是過於恒沙(구족여시과어항사) 不離不斷(불리부단) 不異不思議佛法(불이불사의불법) 乃至滿足(내지만족) 無有所少義故(무유소소의고) 名爲如來藏(명위여래장) 亦名如來法身(역명여래법신)

이와 같은 갠지스 모래보다 많은 여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며, 다르지도 않으며, 부사의한 불법을 구족하여 만족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여래장이라고 하며, 또한 여래법신이라고 한다.

 

 

   ○ 眞如(진여)의 自體相(자체상)을 거듭 밝힘

問曰(문왈) 上說眞如其體平等(상설진여기체평등) 離一切相(리일체상) 云何復說體有(운하부설체유) 如是種種功德(여시종종공덕)

문 : 위에서 진여의 본체는 평등하여 일체상을 떠난다고 하였으면서, 어찌하여 다시 이와 같은 갖가지 공덕이 있다고 말하는가?

 

答曰(답왈) 雖實有此諸功德義(수실유차제공덕의) 而無差別之相(이무차별지상) 等同一味(등동일미) 唯一眞如(유일진여)

답 : 비록 실로 이러한 모든 공덕의 뜻이 있지만, 차별의 모습이 없고, 한 가지 같은 맛이고 유일한 진여이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無分別離分別相(이무분별리분별상) 是故無二(시고무이)

이 뜻이 무엇인가? 분별이 없음으로써 분별상을 여의니, 그러므로 둘이 아니다.

* 진여의 공덕은 한 맛으로 같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중생들의 업식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이(無二)라고 하였다. 비유하자면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기가 설명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겠다는 생각 밖에 없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생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그것은 교사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 각자의 수준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서 그런 것이다.

* 고순호 : 진여는 온갖 相을 떠났다고 하면서 다시 여러 차별적인 공덕의 상을 설하니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상을 떠났다는 것은 여실공의 면이며, 공덕이 있다는 것은 여실불공의 면을 이른 것이니, 이런 문답은 이를 회통시키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復以何義(부이하의) 得說差別(득설차별) 以依業識生滅相示(이의업식생멸상시)

다시 무슨 뜻으로 차별을 설하는가? 업식의 생멸하는 모습에 의하여 보인다.

* 元曉 : 以依業識生滅相示(이의업식생멸상시) - 생멸상 내에 모든 허물이 있지만, 다만 그 근본만을 들었기 때문에 업식(業識)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런 허물에 대하여 모든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此云何示(차운하시) 以一切法(이일체법) 本來唯心(본래유심) 實無於念(실무어념) 而有妄心(이유망심) 不覺起念(불각기념) 見諸境界(견제경계) 故說無明(고설무명)

이것이 어떻게 나타는가? 모든 법이 본래 오직 마음일 뿐, 실제로 망념이 없지만 망심이 있어서, 깨닫지 못하여 망념을 일으켜, 모든 경계를 보므로 무명이라고 한다.

* 本來唯心 實無於念 而有妄心(본래유심 실무어념 이유망심) :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본래 허망한 생각이라는 것도 없지만,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허망한 생각도 꿈과 같은 것이고, 그것이 지어낸 경계도 역시 꿈과 같은 것이다.

 

心性不起(심성불기) 卽是大智慧光明義故(즉시대지혜광명의고)

심성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곧 그것이 대지혜광명의 뜻이기 때문이다.

 

若心起見(약심기견) 則有不見之相(즉유불견지상) 心性離見(심성리견) 卽是遍照法界義故(즉시편조법계의고)

만약 마음이 견(見)을 일으키면 보지 못하는 모습이 있는 것이나, 마음의 성품이 견(見)을 떠나면 곧 이것이 법계를 두루 비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 망견이 일어나 보면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허깨비와 같은 것을 본다. 이를 여의었을 때 실상을 볼 수 있다.

 

若心有動(약심유동) 非眞識知(비진식지) 無有自性(무유자성) 非常非樂(비상비락) 非我非淨(비아비정) 熱惱衰變(열뇌쇠변) 則不自在(즉부자재) 乃至具有過恒沙等妄染之義(내지구유과항사등망염지의)

만약 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면 참답게 아는 것이 아니며, 자성이 없으며, 항상함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며, 我(아)도 아니고, 청정함도 아니며, 뜨거운 번뇌로 쇠잔하고 변하여 자재하지 않으며. 나아가 갠지스강 모래들보다 많은 헛된 물듦의 뜻이 있다.

 

對此義故(대차의고) 心性無動(심성무동) 則有過恒沙等諸淨功德相義示現(즉유과항사등제정공덕상의시현)

이 뜻에 대비(對比)하기 때문에, 마음의 성품이 움직이지 않으면, 갠지스강 모래보다 많은 모든 청정한 공의 뜻을 나타냄이 있다.

 

若心有起(약심유기) 更見前法可念者(갱견전법가념자) 則有所少(즉유소소) 如是淨法(여시정법) 無量功德(무량공덕) 卽是一心(즉시일심) 更無所念(갱무소념) 是故滿足(시고만족) 名爲法身如來之藏(명위법신여래지장)

만약 마음이 일어나 다시 목전의 법을 보아 생각을 한다면 모자라는 것이 있겠지만, 이와 같은 청정한 법의 한량없는 공덕은 곧 일심이라 다시 생각할 바가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만족하니 이름을 법신여래의 藏(장)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