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대치사집 - 인아견

서원365 2013. 9. 23. 08:38

 

 3) 對治邪執(대치사집)

  (1) 二種 邪執(이종 사집)

對治邪執(대치사집) 一切邪執(일체사집) 皆依我見(개의아견) 若離於我(약리어아) 則無邪執(즉무사집)

삿된 집착을 다스린다는 것은 모든 삿된 집착이 다 我見(아견)에 의지하므로, 만약 나를 떠나면 삿된 집착이 없다는 것이다.

 

是我見有二種(시아견유이종) 云何爲二(운하위이) 一者人我見(일자인아견) 二者法我見(이자법아견)

이러한 我見(아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무엇을 두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人我見(인아견)이고 둘째는 法我見(법아견)이다.

* 我見 人我 法我(아견 인아 법아) : 我에 대한 견해를 아견(我見)이라고 한다. 見이란 여기서는 정견(正見)을 벗어난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인아(人我)란 개별적인 인간의 실체를 말한 것이며, 법아(法我)는 모든 사물의 실체를 말한다.

* 憨山 : 人我見(인아견) - 오온을 실제로 주제하는 我가 있다고 헤아리는 것. 불법 안에서 대승의 가르침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그 가르침을 미혹하여 허망하게 집착하고 말을 따라 집착하는 것. 法我見(법아견) - 오온 등 일체법에 각자의 자체 성품이 있다고 헤아리는 것. 이승인이 일으키는 견해이다.

* 元曉 : 人我見이란 총상(總相)을 주재하는 자가 있다고 계탁하기 때문에 인아집이라고 한다. 法我見이란 일체법이 체성(體性)이 있다고 계탁하기 때문에 법집이라고 한다.

 

 

   ① 人我見(인아견)

人我見者(인아견자) 依諸凡夫(의제범부) 說有五種(설유오종) 云何爲五(운하위오)

人我見(인아견)이라는 것을 모든 범부에 따라 설명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一者(일자) 聞修多羅說(문수다라설) 如來法身畢竟寂寞(여래법신필경적막) 猶如虛空(유여허공) 以不知爲破著故(이불지위파착고) 卽謂虛空是如來性(즉위허공시여래성)

첫째, “경에 여래 법신이 마침내 적막 하여 허공과 같다.”고 하는 것을 듣고, 그것이 집착을 부수기 위한 것임을 모르고 허공이 바로 여래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何對治(운하대치) 明虛空相是其妄法(명허공상시기망법) 體無不實(체무불실)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虛空相(허공상)이 망법이어서 본체가 없어 실제가 아님을 밝혀야 한다.

 

以對色故有(이대색고유) 是可見相(시가견상) 令心生滅(령심생멸)

色(색)에 대비하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이 것 역시 볼 수 있는 상이며,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하게 한다.

 

以一切色法本來是心(이일체색법본래시심) 實無外色(실무외색) 若無色者(약무색자) 則無虛空之相(즉무허공지상)

모든 色法(색법)은 본래 마음이며, 실로 밖의 색이 없으며, 색이라는 것이 없다면 허공의 모습도 없다.

 

所謂一切境界(소위일체경계) 唯心妄起故有(유심망기고유) 若心離於妄動(약심리어망동) 則一切境界滅(즉일체경계멸) 唯一眞心無所不遍(유일진심무소불편)

이른바 모든 경계는 오직 마음이 헛되이 일어나 있는 것이며, 만약 마음이 헛된 움직임을 떠나면 모든 경계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참된 마음만이 두루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此謂如來廣大性(차위여래광대성) 智究竟之義(지구경지의) 非如虛空相故(비여허공상고)

이것은 여래의 광대한 성품이며 지혜의 궁극적 의미라고 하는 것이니, 허공의 모습과 같지 않다고 하는 이유이다.

* 여래 법신이 적막하다고 하여, 허공과 같다고 하면 허공과 같은 모습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허공과 같은 모습이라고 하면, 이미 모습이 있는 것이며, 이는 볼 수 있는 모습인 색상(色相)에 견주어 상상한 것이다. 그러나 색상이나 허공상이나 볼 수 있는 상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이렇게 되면 진여인 마음이 생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럴 경우 허공은 경계 중의 하나이며, 경계란 망념이 일으킨 것이므로 진여와는 무관한 것이다.

* 지운 : 허공은 주객이 상대하여 증감이 있으나 공은 주객이 사라져 증감이 없다.

* 憨山 : 허공은 변계소집의 망법이다. 이는 망정(妄情)으로 소집(所執)인 공상을 변계(徧計)한 것일 뿐[情有] 자체인 법신에는 실재하지 않으므로 진여의 이치엔 본래 없는 것이다.[理無] 이를 변계하여 허망하게 집착하고 실제가 있다고 여기면서 마주할 색법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따라서 마음이 생멸하게 할지언정 보편한 진여법신은 아니다.

 

 

二者(이자) 聞修多羅說(문수다라설) 世間諸法畢竟體空(세간제법필경체공) 乃至涅槃眞如之法(내지열반진여지법) 亦畢竟空(역필경공) 從本已來(종본이래) 自空離一切相(자공리일체상)

둘째, 경에서 “세간의 모든 법은 필경 본체가 공하며, 나아가 열반의 진여법도 필경 공하여, 본래 스스로 공하여 일체의 모습을 여읜다.”고 하는 것을 듣고

 

以不知爲破著故(이불지위파착고) 卽謂眞如涅槃之性(즉위진여열반지성) 唯是其空(유시기공)

그것이 집착을 부수기 위하기 때문인 줄 모르고, 진여 열반의 본성이 오직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云何對治(운하대치) 明眞如法身自體不空(명진여법신자체불공) 具足無量性功德故(구족무량성공덕고)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진여법은 자체가 불공임을 밝혀야 하니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唯是其空(유시기공) : 오직 공하기만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무(絶對無)에 떨어지게 된다. 공이란 번뇌가 없으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며, 영향을 받으면 언제든 작용하는 힘을 갖추고 있어서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있다. 진여는 여실공[不變]과 여실불공[隨緣]을 모두 갖추고 있다.

* 憨山 : (어떤 사람은) 진여와 열반을 단멸의 공으로 헤아린다.… 그러나 진여법신의 자체는 여실하게 공적하지 않음을 밝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무루의 심공덕을 빠짐없이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三者(삼자) 聞修多羅說(문수다라설) 如來之藏無有增減(여래지장무유증감) 體備一切功德之法(체비일체공덕지법)

셋째 경에 “여래장이 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모든 공덕의 법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듣고,

 

以不解故(이불해고) 卽謂如來之藏(즉위여래지장) 有色心法自相差別(유색심법자상차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래장은 色法(색법)과 心法(심법)으로 그 모습에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云何對治(운하대치) 以唯依眞如義說故(이유의진여의설고) 因生滅染義(인생멸염의) 示現說差別故(시현설차별고)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오직 진여의 뜻에만 설명한 때문이니, 생멸의 물듦의 뜻으로 인하여 나타내 보여 차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 여래장이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듣고, 색법과 심법으로 따로 있어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여 여래장 자체는 생멸이 없다. 업식에 의해 생멸의 양상이 나타날 뿐이다. 즉, 위에서 업식에 의해 생멸상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니, 진여는 차별이 없지만, 업식에 의해 차별상을 볼 뿐이다. 생멸의 인연을 여의면 색법이나 심법이나 차별이 없다.

* 憨山 : 일체법이 유일한 진여일 뿐이라면 색법과 심법이 둘이 아니어서 원래 차별이 없다. 단지 생멸상의 오염된 의미로 인해 모든 진여공덕상의 차별을 제시해서 나타냈을 뿐이다. 이는 진여가 망정으로 인해 생멸상의 오염으로 뒤집힌 것을 상대하여 진여공덕상의 차별이 있음을 설명했을지언정, 진여자성이야 어찌 생멸상인 색법과 심법의 차별이 동일하겠는가?

* 元曉 : 因生滅染義 示現~이라 한 것은 윗글에서 “업식의 생멸상에 의해 나타낸다.”고 하고, 내지 설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四者(사자) 聞修多羅說(문수다라설) 一切世間生死染法(일체세간생사염법) 皆依如來藏而有(개의여래장이유) 一切諸法不離眞如(일체제법불리진여)

넷째, 경에 “모든 세간의 생사의 염법이 다 여래장에 의하여 있는지라 모든 법이 진여를 여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을 듣고

 

以不解故(이불해고) 謂如來藏(위여래장) 自體具有一切世間生死等法(자체구유일체세간생사등법)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장 자체에 일체 세간의 生死(생사) 등의 법을 갖추었다고 한다.

 

云何對治(운하대치) 以如來藏(이여래장) 從本已來(종본이래) 唯有過恒沙等諸淨功德(유유과항사등제정공덕) 不離不斷不異眞如義故(불리부단불리진여의고)

어떻게 상대하여 다스릴 것인가? 여래장은 본래부터 갠지스강의 모래수보다 많은 모든 청정한 공덕(淨功德)이 있어서 진여의 뜻을 여의지도 않고 끊지도 아니하여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以過恒沙等煩惱染法(이과항사등번뇌염법) 唯是妄有(유시망유) 性自本無(성자본무) 從無始世來(종무시세래) 未曾與如來藏相應故(미증여여래장상응고)

갠지스강 모래수보다 많은 번뇌의 염법은 오직 허망한 존재일 뿐 본래부터 성품이 없는 것이어서, 시작이 없는 때부터 일찍이 여래장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若如來藏體有妄法(야여래장체유망법) 而使證會永息妄者(이사증회영식망자) 則無有是處故(즉무유시처고)

만약 여래장 자체에 망령된 법이 있다면, 진여를 증득하고 이해하여 망령됨을 영원히 쉬게 한다는 것이 옳게 될 곳이 없기 때문이다.

* 생사의 염법이란 본래 여래장에 있지도 않는 것이 망념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만약 진여에 이러한 망법이 있다면 증득한다고 해서 그것을 쉬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이 망법인 줄 알면 그것은 사라진다.

* 憨山 : 중생들이 허망으로 일어난 생사염법은 여래장진체를 의지하여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이는 여래장 진체가 허망한 생멸의 인연을 따른 의미임을 알지 못한다. 이윽고 여래장성엔 생사염법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고 집착하게 되는데, 이것은 진체(眞體)에 허망한 염법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어떻게 대치해야만 하는지 그 문제를 말해보자. 여실불공한 여래장은 원래부터 항하사를 능가하는 성공덕을 갖추어 그것은 여실불공한 진여의 자체와 다르지 않다. 모든 생사염법은 허망한 변계소집성으로 있을 뿐, 그것은 본래 자성이 없이 원래부터 여래장성과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만일 여래장의 진체에 정말로 허망한 생사법이 있다면 진여를 증득하고 허망을 쉬게한다는 것은 옳다고 긍정할 곳이 없게 된다.

 

 

五者(오자) 聞修多羅說(문수다라설) 依如來藏故有生死(의여래장고유생사) 依如來藏故得涅槃(의여래장고득열반)

다섯째, 경에 “여래장에 의지하여 생사가 있고, 여래장에 의지하여 열반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듣고,

 

以不解故(이불해고) 謂衆生有始(위중생유시) 以見始故(이견시고) 復謂如來所得涅槃(부위여래소득열반) 有其終盡還作衆生(유기종진환작중생)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은 시작이 있고, 시작을 보기 때문에, 여래가 열반을 얻어도 그 마침이 있어서 다시 중생이 된다고 한다.

 

云何對治(운하대치) 以如來藏無前際故(이여래장무전제고) 無明之相亦無有始(무명지상역무유시)

어떻게 대치하는가? 여래장은 과거가 없기 때문에 무명의 모습도 시작이 있지 않다.

* 여래장은 중생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늘 갖추어져 있으며, 열반도 그러하다. 다만 무명에 가리어져 보지 못할 뿐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러므로 무명도 시작도 없다.

 

若說三界外(약설삼계외) 更有衆生始起者(갱유중생시기자) 卽是外道經說(즉시외도경설)

만약 삼계 밖에 다시 중생이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곧 외도경의 설명이다.

*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는 무명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삼계가 없다면 무명에 물든 중생도 없다.

 

又如來藏無有後際(우여래장무유후제) 諸佛所得涅槃與之相應(제불소득열반여지상응) 卽無後際故(즉무후제고)

또, 여래장은 미래가 있지 않으며 모든 부처가 얻은 열반과 그것과 더불어 상응하여 곧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 고순호 : 여래장이니 열반이니 하는 것을 중생이 느끼며 사는 생멸의 세계와는 관계없이 불생불멸이요 무시무종이다. 따라서 여래장이란 시간적으로 과거가 없기에 그로 인한 무명의 모습도 시작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무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중생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라고 한다. 따라서 삼계 외에 새삼스럽게 중생을 처음 시작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외도의 경전에서나 설하는 것이지 정법인 불법에서 설하는 것을 아니라는 것이다.

열반을 얻는다는 것도 불생불멸이요 무시무종인 여래장과 합일되는 것이라 과거가 있을 리 없으니 미래도 있을 리 없어 끝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 《圓覺經》金剛藏菩薩章 第四 : 금광을 녹여 나온 금은 다시 녹임이 없다. 이미 금이 되었다면 다시 금광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무궁한 시간이 지나도 금의 성질은 무너지지 않으며 본래 성취함이 없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니 여래의 원각도 역시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