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해석분 - 삼대 - 용대

서원365 2013. 9. 21. 07:59

 

 ② 用大(용대)

   ○ 用(용)의 原理(원리)

復次眞如用者(부차진여용자) 所謂諸佛如來(소위제불여래) 本在因地(본재인지) 發大慈悲(발대자비) 修諸波羅蜜(수제바라밀) 攝化衆生(섭화중생)

다시 다음에 진여의 작용이라는 것은 이른 바 모든 여래가 본디 因地(인지)에 있을 때, 큰 자비심을 내어 모든 바라밀을 닦고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였다.

* 因地(인지) : 수행하는 지위, 과지(果地)의 상대어로서 과지는 성불이다.

 

立大誓願(입대서원) 盡欲度脫等衆生界(진욕도탈등중생계) 亦不限劫數盡於未來(역불한겁수진어미래) 以取一切衆生如己身故(이취일체중생여기신고) 而不取衆生相(이불취중생상)

큰 서원을 세워 중생계를 다 평등하게 제도하여 해탈케 하고자 하고, 또한 한정 없는 겁수로 미래를 다하며, 모든 중생을 자기 몸처럼 취하기 때문이며, 중생상을 취하지는 않는다.

* 지운 : 본행(本行)과 본원(本願)과 방편(方便)을 용대(用大)라고 한다.

* 인지(因地)에서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을 본행(本行)이라고 하고, 모든 중생을 차별 없이 다 제도하고 한 것을 본원(本願)이라고 한다. 그 방편이 지혜와 자비이다.

* 元曉 : 諸佛如來) ~ 攝化衆生이라 한 것은 본행(本行)을 든 것이며, 立大誓願 ~ 盡於未來이란 것은 본원(本願)을 든 것이다.

* 은정희 : 衆生相(중생상) - a. 사상(四相)의 하나로서 중생들의 잘못된 소견으로 자기 몸은 오온이 임시로 화합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고집하는 견해 b. 중생이 이미 열반의 이치를 증오(證悟)하였으나 증오했다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 여기서 중생상은 b의 뜻임.

* 憨山 : 무엇 때문에 중생상을 취하지 않는가? 중생이 자기와 평등하다는 것을 여실히 알기 때문인데, 이는 제일의 마음(第一心)이다. 그 때문에 논서에서 말하기를 ‘광대한 제일심은 장구하여 그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모든 부처님의 수행인지의 마음이다.

* 지운 : 이 부분은 방편을 나타낸 것이다. “자기 몸처럼 본다.”는 것은 비(悲)이며, “중생상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智)이다.

 

此以何義(차이하의) 謂如實知一切衆生及與己身(위여실지일체중생급여기신) 眞如平等(진여평등) 無別異故(무별이고)

이것이 무슨 뜻인가? 모든 중생과 자기 몸을 진여로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음을 참되게 알기 때문이다.

* 중생은 미혹에 빠져 있을 뿐 그 성품은 다 평등하다. 이를 진여평등(眞如平等)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을 지혜롭게 안다고 한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차별상을 가지고 있지만 깨달은 사람은 중생과 차별상을 가지지 않는다.

* 元曉 : 以取一切衆生如己身故 ~ 眞如平等라 한 것은 지(智)와 비(悲)의 방편을 든 것이다.

 

以有如是大方便智(이유여시대방편지) 除滅無明(제멸무명) 見本法身(견본법신) 自然而有不思議業(자연이유불사의업) 種種之用(종종지용)

이와 같은 대방편지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 법신을 보아, 저절로 불가사의한 업의 갖가지 작용이 있다.

* 이와 같은 갖가지 작용이 있으므로 용대(用大)라고 한다.

* 元曉 : 이 부분은 두 번째 果를 드러낸 것으로 세 가지가 있다. a.以有如是大方便智는 전인(前因)을 든 것. b. 除滅無明 見本法身은 자리(自利)의 果. c.自然而 이하는 작용의 모습을 나타낸 것.

 

卽與眞如等(즉여진여등) 遍一切處(편일체처) 又亦無有用相可得(우역무유용상가득)

곧 진여와 더불어 같이 모든 곳에 두루 미치되 또한 얻을 만한 작용의 모습은 없다.

 

何以故(하이고) 謂諸佛如來(위제불여래) 唯是法身智相之身(유시법신지상지신) 第一義諦(제일의제) 無有世諦境界(무유세제경계) 離於施作(리어시작) 但隨衆生見聞(단수중생견문) 得益故說爲用(득익고설위용)

왜냐하면 모든 여래는 오직 법신지상의 몸일 뿐이며 第一義諦(제일의제)로서 세간의 경계가 없으며 베풀고 만드는 것을 떠난 것이니, 다만 중생이 듣고 봄에 따라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用(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第一義諦(제일의제) : 진제(眞諦)라고도 한다. 진여 본체의 진리를 말한다.

* 離於施作(이어시작) : 제불의 법신은 의도적으로 베풂이 없지만, 중생이 보고 들음에 따라, 모든 중생에 평등하게 작용하여 이익을 얻게 한다.

三大

體大

如實空, 범부부터 부처까지 누구나 평등. 증감이 없이 항상함.

法身

업식을 여의면 불신(佛身)은 볼 수 있는 모습이 없음을 깨닫게 됨.

相大

如實不空, 무량한 공덕,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업식에 따라 차별이 있음.

用大

如實不空, 진여의 작용.

報身

응신이 전식의 작용임을 알아 따로 한정된 모습이 아님을 알지만, 업식에 의존하여 무량한 색신과 모습과 상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함.

應身

분별사식에 의해 부처가 따로 밖에 있어 온 것으로 생각함.

 

 

 ○ 用(용)의 二種(이종), 應身(응신)과 報身(보신)

此用有二種(차용유이종) 云何爲二(운하위이)

이 用(용)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두 가지라고 하는가?

一者(일자) 依分別事識(의분별사식) 凡夫二乘心所見者(범부이승심소견자) 名爲應身(명위응신) 以不知轉識現故(이불지전식현고) 見從外來(견종외래) 取色分齊(취색분제) 不能盡知故(불능진지고)

 

첫째, 분별사식에 의한 것으로 범부와 이승의 마음에 보이는 것을 응신(應身)이라 이름 하니, 轉識(전식)의 나타냄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온 것이라 보고 한정된 세계에 집착하여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色分齊(색분제) : 보이는 차별상의 내용이나 정도.

* 지운 : 기도나 수행 중에 부처나 보살이 나타나면 범부나 이승은 그것이 부처님의 진여가 아리야식의 전식으로 나타난 것인 줄 모르고 밖에 따로 있어서 온 줄 안다. 이를 응신이라고 한다.

* 元曉 : 依分別事識이란 것은 범부와 이승은 오직 식(識)뿐임을 알지 못하고 바깥의 경계에 있다고 계탁하는 것이다. 불신을 보고서 마음 밖에 있다고 생각함은 의식(意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니 그래서 분별사식에 의해 본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전식에 의해 색상을 나타낸 것인 줄 모르기 때문에 以不知轉識現故 見從外來라고 한 것이다.

* 達磨 : 《少室六門》<悟性論> - 붓다에는 삼신이 있는데, 화신과 보신과 법신이다. 만약 중생이 늘 선근을 실천하면 화신이 나타나고, 지혜를 닦으면 보신이 나타나고 무위를 깨치면 법신이 나타난다. … 하급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무릇 복력을 일으켜 화신불만 보고, 중급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번뇌를 단제하여 무릇 보신불만 보고, 상급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보리를 증득하여 법신불만 보지만, 상상(上上)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안으로 원적의 경지를 비추어보아 본래 마음이 곧 붓다임을 발명한 까닭에 분별 마음을 통해서 붓다를 터득하지 않는다.

* 憨山 : 범부와 이승은 삼계만법이 심식의 그림자임을 모르고 마음 밖에서 외진(外塵)을 헤아린다. 이는 내 마음의 육식의 분별이다. 그래서 부처를 보는 것도 역시 외진으로 찾아오게 되니, 칠식의 분별지상에서 나타난 미세한 모습인 보신임을 모르기 때문에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부처의 모습인 응신만을 보게 된다.

 

二者(이자) 依於業識(의어업식) 謂諸菩薩從初發意(위제보살종초발의) 乃至菩薩究竟地心所見者(내지보살구경지심소견자) 名爲報身(명위보신)

둘째 업식에 의한 것으로 모든 보살이 처음 마음을 낸 때부터 보살의 구경지까지의 마음이 보는 것으로 報身(보신)이라고 하는 것을 이른다.

 

身有無量色(신유무량색) 色有無量相(색유무량상) 相有無量好(상유무량호)

몸에는 한량없는 색신이 있고, 색신에는 한량없는 모습이 있으며, 모습에는 한량없는 好(호)가 있다.

* 은정희 : 相好(상호) - 부처가 갖추고 있는 여러 가지 신체적 특징들이다. 相은 몸에 특별히 잘생긴 것을 말하고, 好는 相 중에 자세한 모습이다. 이 상호(相好)가 완전하여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것을 불신(佛身)이라고 한다.

* 元曉 : 依於業識이란 것은 십해 이상의 보살은 오직 마음일 뿐 바깥의 경계가 없는 뜻을 잘 알아서 업식의 뜻을 따라 불신을 보기 때문에 업식에 의해 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보살은 그 분제(分齊)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곳에 따라 한계가 없으며… 훼손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장애 없는 불사의한 일이 모두 육도의 심행의 훈습 및 진여의 불사의훈(不思議熏)으로 말미암아 성취한 것이므로 이런 뜻이므로 보신이라 하며, 그러므로 (아래 문장에서) 具足無量樂相故 說爲報이라 하였다.

所住依果(소주의과) 亦有無量種種莊嚴(역유무량종종장엄)

안주하는 依果(의과)에도 또한 한량없는 갖가지 장엄이 있다.

 

隨所示現(수소시현) 卽無有邊(즉무유변) 不可窮盡(불가궁진) 離分齊相(리분제상) 隨其所應(수기소응) 常能住持(상능주지) 不毁不失(불훼불실)

곳에 따라 나타냄이 곧 끝이 없고, 分齊相(분제상)을 떠나 그 장소에 따라 응하여항상 주지하면서 훼손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

 

如是功德(여시공덕) 皆因諸波羅蜜等無漏行熏(개인제바라밀등무루행훈) 及不思議熏之所成就(급불사의훈지소성취) 具足無量樂相故(구족무량락상고) 說爲報(설위보)

이러한 공덕은 다 모든 바라밀과 같은 무루의 수행의 훈습에 의한 것이며, 불가사의한 훈습이 성취한 바이며, 한량없는 안락한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에 보신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 부처가 보이는 것은 보는 사람의 식(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 여래 법신은 늘 안주하여 훼손되거나 잃는 것이 없다. 보신불로 보이는 것도 수행자의 수행의 결과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므로 보신이라고 한다.

* 元曉 : ≪攝論≫의 주장에 의하면 지전(地前 : 10지 전)에서 보는 것을 변화신이라 하고, 지상에서 보는 것을 수용신(受用身)이라 하였다. 이제 이 론에서는 범부와 이승이 보는 육도의 차별의 상을 응신이라고 하고, 십해 이상의 보살이 보는 분제를 여읜 색을 보신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같지 않은 것은 법문이 한량없어 오직 한 길만이 아니므로 곳에 따라 시설(施設)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攝論≫ 에 지전의 흩어진 마음으로 보는 분제가 있는 상을 말하기 때문에 화신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 론에서는 보살의 삼매로 보는 분제를 여읜 상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보신에 속하는 것이니 이런 도리가 있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 은정희 : 변화신 - 3신(자성신, 수용신, 변화신) 중의 하나. 이승과 범부를 교화하기 위해 성소작지의 힘에 의해 화현한 불신(佛身)

 

 

又爲凡夫所見者(우위범부소견자) 是其麤色(시기추색) 隨於六道(수어륙도) 各見不同(각견불동) 種種異類(종종리류) 非受樂相(비수락상) 故說爲應(고설위응)

또 범부에게 보이는 것은 바로 거친 대상으로 육도에 따라 각각 보이는 것이 같지 않아 갖가지 다른 종류가 안락한 모습을 받지 않으므로 설하여 응신이라고 한다.

* 보이는 대상은 불신(佛身)이다. 범부는 여실히 보지 못하고 육도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며, 다 같이 낙상(樂相)을 받는 것이 아니며, 보는 자에 응하여 다르게 나타나므로 응신이라고 한다.

 

復次初發意菩薩等所見者(부차초발의보살등소견자) 以深信眞如法故(이심신진여법고) 少分而見(소분이견)

다시 다음에 처음 마음을 낸 보살들이 보는 것은 진여법을 깊이 믿으므로 조금이나마 보아,

* 元曉 : 以深信眞如法故 少分而見이라 한 것은 십해 중에 인공문(人空門)에 의하여 진여의 이치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비슷하게 안 것이므로 少分而見이라 하였다.

* 지운 : 십해(十解)의 보살의 경지에 든 사람은 인공문(人空門)에 들어서 조금만 본다.

 

知彼色相莊嚴等事(지피색상장엄등사) 無來無去離於分齊(무래무거리어분제) 唯依心現不離眞如(유의심현불리진여)

보신의 色相(색상)과 장엄과 같은 일이 옴도 없고 감도 없어 分齊(분제)를 여의어, 오직 마음의 분별에 의해 나타나되 진여를 여의지 않음을 안다.

 

然此菩薩猶自分別(연차보살유자분별) 以未入法身位故)이미입법신위고)

그러나 이 보살은 오히려 스스로 분별하는 것은 법신의 지위에 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憨山 : 이 보살은 삼해초심(三解初心)으로부터 본각 진여로 업식을 훈습하여 유식관을 닦는다. 그래서 삼현십지를 지나 보살의 구경삼매심 가운데서 보이는 불신이 보신의 미세한 모습인 것이다. 이는 실로 업식심으로 나타났을 뿐 마음 밖의 외진으로부터 찾아온 것이 아니다. … 어떤 사람은 이 문제를 두고 ‘부처님이 중생이 처한 상황을 따라 불신을 나타낸다.’고 하나, 이 의미는 아닌 것이다.

 

若得淨心(약득정심) 所見微妙(소견미묘) 其用轉勝(기용전승) 乃至菩薩地盡見之究竟(내지보살지진견지구경)

만약 정심지(淨心地)를 체득하면 보는 바가 미묘하고, 그 작용은 더욱 수승해지며, 나아가 보살지가 다하면 구경을 본다.

 

若離業識則無見相(약리업식즉무견상) 以諸佛法身(이제불법신) 無有彼此色相迭相見故(무유피차색상질상견고)

만약 업식(業識)을 여의면 볼 만한 모습이란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피차의 색상으로 상견함이 없기 때문이다.

* 無有彼此色相迭相見故(무유피차색상질상견고) : 피차(彼此)라고 한 것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분리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상대하여 봄이 있다는 것.

* 元曉 : 若得淨心 이하는 지상에서 보는 바를 나타낸 것이며, 若離業識則無見相라고 한 것은 업식에 의하여야 전상과 현상이 있기 때문에, 업식을 여의면 곧 보는 상이 없는 것이다.

* 지운 스님의 설명

부처

법신으로 보임

보살, 연각, 성문

보신으로 보임(수행 정도에 따라 보임)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응신으로 보임

* 위의 표에서 연각과 성문은 아래 칸인 응신에 대응하도록 되어야 함.

* 《金剛經》威儀寂靜分第二十九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라는 것은 온 바도 없거니와 간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지운 :《圓覺經》普眼菩薩章 第三 : 몸 소멸 ⟶ 마음 소멸 ⟶경계소멸(아리야식 경계상 소멸) ⟶ 경계가 소멸했다는 생각 소멸(아리야식 능견상 소멸) ⟶ 비환불멸(非幻不滅:원각, 적멸)

 

問曰(문왈) 若諸佛法身離於色相者(약제불법신리어색상자) 云何能現色相(운하능현색상)

문 : 만약 모든 부처의 법신이 色相(색상)을 떠난 것이라면, 어떻게 색상을 나타낼 수 있는가?

* 고순호 : 色相(색상)을 보신과 응신이라고 보았다. “법신은 색상을 떠난 것인데 어떻게 색상인 보신과 응신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라는 뜻이다.

 

答曰(답왈) 卽此法身是色體故(즉차법신시색체고) 能現於色(능현어색)

답 : 곧 이 법신이 색상의 본체이기 때문에 색상을 나타낼 수 있다.

* 고순호 : 법신이 보신과 응신의 본체이기 때문에 능히 보신과 응신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所謂從本已來(소위종본이래) 色心不二(색심불이) 以色性卽智故色體無形(이색성즉지고색체무형) 說名智身(설명지신)

이른바 본래 色(색)과 心(심)이 둘이 아니며 色(색)의 본성이 智(지)이기 때문에 색의 본체는 무형이며, 智身(지신)이라고 말한다.

* 고순호 : 色心不二(색심불이)는 일반적으로 색법과 심법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니 유심(唯心)과도 같은 뜻의 말인데, 여기에서의 色心不二(색심불이)는 흐름으로 보아 색은 보신과 응신을 말하고 심(心)은 일심진여인 법신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심의 작용을 지(智)라고 하면 색성(色性)이 곧 지(智), 색성즉지(色性卽智)가 된다.

 

以智性卽色故(이지성즉색고) 說名法身遍一切處(설명법신편일체처)

智性(지성)은 곧 色(색)인 까닭에 법신이 모든 곳에 두루 한다고 말한다.

 

所現之色無有分齊(소현지색무유분제) 隨心能示十方世界(수심능시시방세계) 無量菩薩(무량보살) 無量報身(무량보신) 無量莊嚴(무량장엄)

나타난 색에는 分齊(분제)가 없기에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능히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보살과 한량없는 보신과 한량없는 국토의 장엄을 나타낼 수 있다.

 

各各差別(각각차별) 皆無分齊(개무분제) 而不相妨(이불상방)

각각의 차별이 다 分齊(분제)가 없어서 서로가 방해하지 않는다.

 

此非心識分別能知(차비심식분별능지) 以眞如自在用義故(이진여자재용의고)

이는 心識(심식)의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眞如(진여)의 자재한 작용의 뜻이기 때문이다.

 

 

 ○ 眞如門(진여문)으로 들어감

復次顯示從生滅門卽入眞如門(부차현시종생멸문즉입진여문)

다시 다음에 생멸문에서 진여문으로 들어감을 나타내 보인다.

 

所謂推求五陰(소위추구오음) 色之與心(색지여심) 六塵境界畢竟無念(륙진경계필경무념) 以心無形相(이심무형상) 十方求之(시방구지) 終不可得(종불가득)

이른바 五陰(오음)을 추구해보면 色(색)과 心(심)이다. 六塵境界(육진경계)에는 필경 생각이 없으며, 마음에는 형상이 없어서 시방으로 구해도 마침내 얻을 수 없다.

* 五陰 色之與心(오음 색지여심)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오음이며, 이중 색(色)이외의 수상행식(受想行識)을 마음으로 본 것이다.

* 六塵境界(육진경계) 필경무념(畢竟無念) :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경계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 따로 생각할 만한 독립된 형상이란 없다.

* 十方(시방) : 동서남북과 그 간방(間方)과 상하

 

如人迷故(여인미고) 謂東爲西(위동위서) 方實不轉(방실부전)

혼미한 사람이 동을 서라고 하여도 방향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이,

 

衆生亦爾(중생역이) 無明迷故謂心爲念(무명미고위심위념) 心實不動(심실부동) 若能觀察(약능관찰) 知心無念(지심무념) 卽得隨順入眞如門故(즉득수순입진여문고)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 무명의 미혹 때문에 心(심)을 念(념)이라고 하나 心(심)은 움직이지 않으며, 만약 능히 관찰하여 심에 념이 없음을 알면 곧 수순하여 진여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 心(심)은 진여이고 念(념)은 망념이다. 중생들은 망념을 진여라고 착각하나, 심에는 망념이 없다.

* 憨山 : 최초의 일념이 없었다면 생상(生相)이 없고, 무명망념의 생상이 없다면 중생이란 본래 없다. 그 때문에 무명을 직관하도록 가르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심 진여문으로 단박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였던 것이다.

* 지운 스님의 설명

 

 

꿈에 비유(流轉緣起, 流轉門)

還滅門

本覺

 

깨어 있어서 부유한 집에 있으면서 그것을 자각

究竟覺, 覺心初起 心無自性

不覺

根本無明

 

근본무명이 사라짐⇧

業相

阿梨耶識

꿈이 생김

업상이 사라짐 10지보살⇧

能見相

阿梨耶識

꿈 속에서 봄.

주관을 버림 9지보살⇧

現相

阿梨耶識

꿈 속에서 대상이 나타남.

객관을 버림, 무념 8지보살⇧

智相

末那識

꿈 속의 사물에 집착[法執]

법집을 버림, 隨分覺⇧

相續相

意識

꿈 속의 빈곤한 몸을 인정[我執]

아집을 버림, 相似覺⇧

執取相

感覺, 受

꿈 속에서 탐진치를 일으킴.

凡夫覺⇧

計名

字相

꿈 속의 사실에 의미를 부여

佛法 학습⇧

起業相

꿈 속에서 업을 지음. 선악의 행위

내적 관찰⇧

業繫

苦相

업에 의해 고통스러워하거나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음.

괴로움을 자각하고 보리심을 일으킴. 始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