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수행신심문 - 오문 - 관문(觀門)

서원365 2013. 10. 14. 15:21

  ② 觀門(관문)

復次若人唯修於止(부차약인유수어지) 則心沈沒(즉심침몰) 或起懈怠(혹기해태) 不樂衆善(불락중선) 遠離大悲(원리대비) 是故修觀(시고수관)

다시 다음에 만약 사람이 止(지)만 닦으면 마음이 가라앉거나 게으름이 일으나며, 여러 선함을 즐기지 않고 대비심을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觀(관)을 닦는다.

* 지운 : 위빠사나(觀觀) 수행의 조건 a.선지식에 의지해야 한다. 선지식의 조건은 많이 아는 것,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연민을 가짐(가장 큰 조건), 역경을 견딜 수 있음 등이다. b.가르침에 대한 신중한 탐구. c.육식 자제. 이것은 자비심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나쁜 음식을 먹지 말 것. 이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 憨山 : 心沈沒(심침몰) - 진여에서 오로지 고요함으로만 취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 가지 실수를 하게 된다. a.게으름을 피우며 모든 선업을 수행하지 않으므로 자리(自利)를 잃는다. 그 때문에 다음으로 법상관으로써 그것을 다스리고 성취하였던 것이다. 둘째, 대비심을 멀리 여읜다면 이타(利他)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대비관으로 대치하고 대원관으로 성취하였던 것이다.

* 지운 : 위빠사나 방법. a. 문(聞) - 법문을 들음. b. 사(思) - 비판적 관조적 사유. c. 수(修) - 확인.

* 元曉 : 사(思)의 네 가지 방법 a. 능정사택(能正思擇) - 어디서나 현상계의 모든 차별상을 감싸는 궁극적 성품을 바르고 깊이 생각함. 맑은 행으로 반연하는 경계, 좋은 방편으로 반연하는 경계, 번뇌를 맑히는 경계. b. 최극사택(最極思擇) - 인연 경계에서 존재자의 궁극적인 본질인 진여를 가장 잘 생각함. c. 주변심사(周徧尋思) - 심(尋)은 거친 생각이다. 인연 경계에서 지혜로운 행으로 분별하는 마음이 있어, 그 모습을 취함에 두루 살피고 생각함. d. 주변사찰(周徧伺察) - 인연 경계에서 세밀하게 살피고 두루 챙기는 마음.

 

     ○ 法相觀(법상관)

修習觀者(수습관자) 當觀一切世間有爲之法(당관일체세간유위지법) 無得久停須臾變壞(무득구정수유변괴)

觀(관)을 닦아 익히려는 사람은 마땅히 모든 세간의 유위의 법이 오래 정지할 수 없으며 순간순간 변하고 괴멸됨과

* 무상(無常)을 관함

 

一切心行念念生滅(일체심행념념생멸) 以是故苦(이시고고)

일체의 심행이 생각마다 생멸하여, 이러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 고(苦)를 관함.

 

應觀過去所念諸法恍惚如夢(응관과거소념제법황홀여몽) 應觀現在所念諸法猶如電光(응관현재소념제법유여전광) 應觀未來所念諸法猶如於雲忽爾而起(응관미래소념제법유여어운홀이이기)

과거에 생각한 제법이 꿈처럼 흐릿하다고 관해야 하며, 현재에 생각하는 제법은 번개 빛 같다고 관해야 하며, 미래에 생각할 제법도 구름처럼 홀연히 일어난다고 관해야 한다.

* 무아(無我)를 관함.

 

應觀世間一切有身悉皆不淨(응관세간일체유신실개부정) 種種穢汚無一可樂(종종예오무일가락)

세간에 있는 모든 몸이 다 깨끗하지 않고 갖가지로 더러워서 즐길 것이 하나도 없다고 관해야 한다.

* 부정(不淨)을 관함.

* 근본불교의 관법 수행은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관하여 몸은 부정하고, 감수 작용은 괴로우며, 마음은 무상하고,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음(無我)을 관하는 것이다. 이를 사념처관(四念處觀)이라고 한다.

* 《앙굿따라 니까야》<깨달음경> 사람에 따라 다른 수행법 -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서 부정관(不淨觀), 악의롤 제거하기 위해 자비관(慈悲觀), 자아관을 제거하기 위해 무상관(無常觀), 산란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수식관(數息觀)을 한다.

* 고순호 : 유위법이란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 모든 사물을 말한다. 인연에 관계없는 열반과 같은 것은 무위법이라고 한다.

* 憨山 : 무상관(無常觀) - 상주라고 집착하는 것을 대치. 고관(苦觀) - 즐거움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대치. 무아관(無我觀) - 주재한다고 집착하는 마음을 대치. 부정관(不淨觀) - 청정하다고 집착하는 마음을 대치.

 

 

    ○ 대비관(大悲觀), 대원관(大願觀), 정진관(精進觀)

如是當念(여시당념) 一切衆生從無始世來(일체중생종무시세래) 皆因無明所熏習故(개인무명소훈습고) 令心生滅(령심생멸)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모든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부터 다 무명으로 훈습된 원인 때문에 마음이 생멸하게 하였다.

 

已受一切身心大苦(이수일체신심대고) 現在卽有無量逼迫(현재즉유무량핍박) 未來所苦亦無分齋(미래소고역무분재) 難捨難離(난사난리)

이미 모든 몸과 마음의 큰 괴로움을 받았고, 현재도 한량없는 핍박이 있으며, 미래에도 괴로움을 받는 것이 한계가 없을 것이니, 버리기도 어렵고 여의기도 어렵다.

 

而不覺知(이불각지) 衆生如是(중생여시) 甚爲可愍(심위가민)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중생은 이와 같아 심히 불쌍하다.

* 이렇게 보는 것을 대비관(大悲觀)이라고 한다.

 

作此思惟(작차사유) 卽應勇猛立大誓願(즉응용맹립대서원) 願令我心離分別故(원령아심리분별고) 遍於十方修行一切諸善功德(편어시방수행일체제선공덕)

이와 같이 사유하여, 곧 마땅히 용맹하게 대서원을 세워 내 마음이 분별을 떠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시방에 두루 모든 선한 공덕을 닦아 행하며,

 

盡其未來(진기미래) 以無量方便(이무량방편) 救拔一切苦惱衆生(구발일체고뇌중생) 令得涅槃第一義樂(령득열반제일의락)

미래를 다 하도록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모든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중생을 구해내어 열반의 제일의 즐거움을 얻게 해야 한다.

* 이렇게 보는 것을 대원관(大願觀)이라고 한다.

 

以起如是願故(이기여시원고) 於一切時一切處所有衆善(어일체시일체처소유중선) 隨己堪能(수기감능) 不捨修學(불사수학) 心無懈怠(심무해태) 唯除坐時專念於止(유제좌시전념어지) 若餘一切悉當觀察應作不應作(약여일체실당관찰응작불응작)

이와 같은 원을 일으켰으므로. 언제 어디에 있는 여러 선행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대로 닦고 배움을 버리지 않아. 마음이 게으르거나 태만함이 없어야 한다. 오직 좌선할 때 止(지)를 수행할 때만은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에서는 지어야 할 것과 짓지 말아야 할 것을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 이렇게 보는 것을 정진관(精進觀)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