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수행신심분 - 오문 - 지관쌍수

서원365 2013. 10. 15. 17:28

  ③ 止觀雙修(지관쌍수)를 권함

若行若住若臥若起(약행약주약와약기) 皆應俱行(개응구행)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눕거나 일어나거나 다 止(지)와 觀(관)을 마땅히 함께 수행해야 한다.

* 《앙굿다라 니까야≫ 쭌다 경(Chunda-sutta)

도반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합니다. ‘법에 열중하는 우리는 참선하는 비구들을 칭송하리라.’라고.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합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불사(不死)의 경지를 몸으로 체득하여 머무는 이러한 경이로운 인간들은 세상에서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합니다. ‘참선하는 우리는 법에 열중하는 비구들을 칭송하리라.’라고.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합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심오한 경지를 통찰지로 꿰뚫어 보는 이러한 경이로운 인간들은 세상에서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所謂雖念諸法自性不生(소위수념제법자성불생) 而復卽念因緣和合(이부즉념인연화합) 善惡之業(선오지업) 苦樂等報(고락등보) 不失不壞(불실불괴)

이른바 제법의 자성이 나지 않음을 생각하더라도, 다시 곧 인연화합인 선악의 업과 고와 락과 같은 과보가 잃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음을 생각해야 하며,

* 앞부분은 지행(止行)이며, 뒷부분은 관행(觀行)이다.

* 元曉 : 雖念諸法自性不生이라한 것은- 비유문(非有門)에 의해 지행(止行)을 닦는 것이다. 而復卽念因緣和合이라 한 것은 비무문(非無門)에 의해 관행(觀行)을 닦는 것이다. 이는 실제를 건립하지 않은 채 모든 법을 건립함을 따르기 때문에 지행을 버리지 않고 관행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니, 진실로 법이 유가 아니지만 무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雖念因緣善惡業報(수념인연선오업보) 而亦卽念性不可得(이역즉념성불가득)

비록 인연의 선악과 그 과보를 생각하더라도, 또한 곳 자성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 앞부분은 관행(觀行)이며, 뒷부분은 지행(止行)이다.

 

若修止者(약수지자) 對治凡夫住著世間(대치범부주착세간) 能捨二乘怯弱之見(능사이승겁약지견)

만약 지(止)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범부가 세간에 머물고 집착하는 것을 대치할 수 있으며, 二乘(이승)이 겁내고 약한 견해를 버릴 수 있다.

* 元曉 : 止를 닦으면 첫째 범부의 주착(住着)하는 고집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가 집착한 인법상(人法相)을 없애는 것이며, 둘째 이승의 겁약한 소견을 다스리는 것으로 오음이 있다고 보아 그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若修觀者(약수관자) 對治二乘不起大悲狹劣心過(대치이승불기대비협렬심과) 遠離凡夫不修善根(원리범부불수선근)

만약 觀(관)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二乘(이승)이 대비심을 일으키지 않는 좁고 하열한 허물을 대치할 수 있으며, 범부가 선근을 닦지 않는 것을 여읜다.

* 元曉 : 觀을 닦으면 첫째 이승의 협열(狹劣)한 마음을 없애는 것으로 널리 중생을 살피어 대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둘째 범부의 게으른 뜻을 다스리는 것이니 무상(無常)을 보지 아니하면 분발하여 도에 나아감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以此義故(이차의고) 是止觀二門(시지관이문) 共相助成(공상조성) 不相捨離(불상사리)

이런 뜻이므로 이 지와 관의 두 문은 함께 서로 도와 이루며,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않는다.

 

若止觀不具(약지관불구) 則無能入菩提之道(약무능입보리지도)

만약 지와 관을 갖추지 않으면 보리의 도에 들 수 없다.

* 元曉 : 지(止)와 관(觀)은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④ 道(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방편

復次衆生初學是法(부차중생초학시법) 欲求正信(욕구정신) 其心怯弱(기심겁약) 以住於此娑婆世界(이주어차사바세계) 自畏不能常値諸佛親承供養(자외불능상치제불친승공양)

다시 다음 중생들이 처음 이 법을 배워 바른 믿음을 구하고자 하나, 그 마음이 겁이 많고 약하여 이 사바세계에 머묾으로써 스스로 늘 모든 부처님께 가서 친히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懼謂信心難可成就(구위신심난가성취) 意欲退者(의욕퇴자) 當知如來有勝方便(당지여래유승방편) 攝護信心(섭호신심)

두려워 말하길, “신심을 성취하기가 어렵다.”고 하며 의욕이 물러나는 사람이라면, 여래께서는 뛰어난 방편이 있어서 거두어 신심을 보호하심을 알아야 한다.

 

謂以專意念佛因緣(위이전의념불인연) 隨願得生他方佛土(수원득생타방불토) 常見於佛(상견어불) 永離惡道(영리악도)

이것은 뜻을 하나로 하여 염불한 인연으로 바라는 것에 따라 다른 불국국토에 나서 늘 부처님을 뵙고 악도를 영원히 떠남을 말한다.

 

如修多羅說(여수다라설) 若人專念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약인전념서방극락세계아미타불) 所修善根廻向(소수선근회향) 願求生彼世界(원구생피세계) 卽得往生(즉득왕생) 常見佛故(상견불고) 終無有退(종무유퇴)

경에서 설하신 것처럼 만약 사람이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하고 선근을 닦아 회향하며, 저 세계에 나기를 바라면, 곧 가서 나서 항상 부처를 뵙기 때문에 마침내 물러남이 없다.

 

若觀彼佛眞如法身(약관피불진여법신) 常勤修習畢竟得生(상근수습필경득생) 住正定故(주정정고)

만약 저 부처님의 진여법신을 관하고 늘 부지런히 닦고 익히면 필경 왕생할 수 있으니, 正定聚(정정취)에 머물기 때문이다.

* 사리불아, 작은 선근(善根)이나 공덕과 인연으로는 저 세계에 날 수 없다. 사리불아,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을 지니고, 하루나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를 외우되, 한 마음으로 흐트러짐이 없다면, 그 사람은 목숨을 다 할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모든 성인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이 뒤바뀌지 않고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에 가서 날 것이다. -《아미타경》

* 元曉 : 정정취에 머무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견도(見道) 이상을 이제 정정이라고 하니 무루도에 의거하여 정정을 삼기 때문이다. 둘째, 십해 이상을 정정이라고 하니 불퇴위에 머무는 것을 정정으로 삼기 때문이다. 셋째, 구품왕생을 모두 정정이라고 하니 수승한 연(緣)의 힘에 의해 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