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책이야기

미움받을 용기

서원365 2016. 5. 15. 13:45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전경아

2016

인플루엔셜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특히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이다. 제목을 보면 대부분 다시 한 번 보게된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좋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물러서서 보기”나 “완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처음에는 철학자의 설명에 크게 반발하던 청년이 마지막에는 전폭적으로 철학자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이 책이 무엇이 문제여서, 내가 수용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너무 단순화하고 한 가지로만 설명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〇 목적론적 심리학

  이 책은 알프레드 아들로(Alfred Adler)의 목적론적 심리학을 나름대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목적론의 상대어는 원인론이다.

  프로이드와 같은 심리학자는 인간이 어떤 심리를 갖게 된 이유를 과거의 경험에 둔다. 반면에 아들러는 목적에 둔다. 예를 들어보자.

  적면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적면공포증이란 대중이나 낯선 사람 또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이다. 이런 적면공포증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주장한다.

  “적면공포증이 있는 것은 그것을 고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고백하지 못하는 핑계를 위해 적면공포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즉. 적면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적면공포증을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핑계나 변명거리로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사람이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적면공포증을 핑계거리로 가지고 있고 싶어 하기는커녕,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척 노력을 하며, 그렇게 해서 극복하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어쩔 수 없이 생각되어지는 것과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되어지는 것은 과거의 영향이다.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재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두 개를 혼동하면 안 된다.

  목적론적 심리학으로 모든 것을 보려는 것은 당연히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불행하게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냥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므로 무시하라고 한다고 해서 무시해지는 것은 아니며, 어떤 경우는 특별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〇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저자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간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며,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고민 문제를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든, 안 맺든 기본적인 고민과 근원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고민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 등이며, 근원적인 고민은 죽음과 관련된 고민이다. 어쩌면 이것이 더 큰 고민이다.

  아들러의 이런 주장은 그의 심리학이 목적론적 심리학인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심리학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심리학이란 인간 심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에 반해서 이 저자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아들러의 심리학은 단지 심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주장을 통하여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하려하는 데 있는 듯하다.


〇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 답은 간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된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쓰다가 정작 자기 행복은 잃어버린다.”(『물러서서 보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사람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나의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미워하든 좋아하든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나의 행위는 나의 몫이다.

  또한 내 삶의 주인은 언제나 나이며, 남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과제의 분리라고 하였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조언은 해줄 수 있지만, 결국 해야 할 사람은 그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작정 남의 인정을 무시하고 살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저자의 생각을 인정할 수 없다. 남의 인정에 신경 쓸 것인가 아닌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집단에서는 다른 사람의 인정, 특히 상사의 인정을 잃는다는 것은 그 집단에서의 추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추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승진 등에 있어서 결정적인 불이익을 받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상황을 무시하고 단순화한 원칙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인 것이다.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〇 공동체 감각

  저자는 “타인을 친구로 생각하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을 공동체 감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 특정 집단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인류, 나아가 동식물과 무생물도 포함시킨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남으로부터 칭찬받을 필요 없이 공헌하고 있다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고, 나아가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헌이란 행위로서의 공헌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공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짐만 되고 걱정거리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간혹 심한 장애로 인해 가족들에게 그저 걱정거리만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누가 데려가주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될까?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지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가족들은 병을 앓고 있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환자인 아버지가 무슨 역할을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로서의 공헌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보면, 그 공헌은 환자인 아버지 입장에서 본 것이 아니라, 가족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과는 다르다. 한 생명체의 가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관계 속에서 가치가 살아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공동체 감각이라는 설명에서 보듯이, 여기에 이르면 아들러의 심리학은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철학이고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러는 칭찬이나 야단을 모두 부정적으로 본다. 그런 것은 수직적 관계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바람직한 행위는 지원이며, 이를 다른 말로 용기 부여라고 한다.


〇 아들러의 행복론

  이 책은 아들러의 행복론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인생론이다. 그렇다면 아들러의 행복론은 무엇인가? 아들러는 행복이 타자 공헌에서 얻어진다고 믿는다. 타자 공헌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현재(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 때 행복은 얻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행복론이지, 누구에게나 통하는 행복론인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여기’에 살며,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결과에 매달리는 인생은 현재의 삶은 결과를 위할 때만 의미가 있으며, 현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난일 뿐이다. 이런 삶은 긴 고통과 짧은 행복으로 구성된다.(“물러서서 보기”에서) 그리고 목적을 성취했을 때 일시적으로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다시 공허함에 빠지게 된다.


'■ 책 이야기 ■ >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뻬씨의 인생여행  (0) 2017.02.11
바리데기  (0) 2016.07.15
모든 숨마다, 나  (0) 2015.11.05
이기는 대화  (0) 2015.09.16
동물농장  (0) 201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