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八佾篇 4, 5, 6, 7

서원365 2016. 12. 16. 19:48

4. 林放 問禮之本,

林放이 禮의 근본에 대해 물으니,


*林放 魯人. 見世之爲禮者 專事繁文 而疑其本之不在是也 故以爲問.

林放(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 세상에서 禮를 하는 것을 보니, 번거롭게 꾸미는 것에 전념하므로 그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다고 의심하였으므로 질문을 한 것이다.


•子曰 “大哉, 問.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크도다. 질문이여.

-大哉(대재) 問(문) : 예의 지엽적인 것을 묻지 않고 근본적인 것을 물었으므로 칭찬한 것이다.


*孔子以時方逐末 而放獨有志於本 故大其問. 蓋得其本 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

孔子께서 당시 사람들이 지엽적인 것만을 따르는데, 放이 홀로 근본에 뜻을 두었으므로 그 질문을 크게 여기신 것이다. 대개 그 근본을 얻으면 禮의 전체가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다.

-逐(축): 쫓다, 빠르다.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해야 하고, 喪은 다스리기보다는 슬퍼해야 한다.”

-與其易也 寧戚(여기이야 영척): 易(이)는 다스리는 것이다. 喪禮가 일정한 격식에 따라 잘 치러지도록 함이다. 戚은 다만 슬퍼하고 격식은 소홀히 하는 것이다.


*易 治也. 孟子曰 “易其田疇.” 在喪禮 則節文習熟 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 戚則一於哀 而文不足耳. 禮貴得中. 奢易則過於文 儉戚則不及而質, 二者皆未合禮. 然凡物之理 必先有質而後有文, 則質乃禮之本也.

易(이)는 다스림이다. 『孟子』에서 말하되 “밭두둑을 다스린다.”하니, 喪禮에 있어서는 節文에 익숙하나 애통하고 슬퍼하는 실제는 없는 것이다. 戚(척)은 슬퍼하기만 하고 文이 부족한 것이다. 禮는 中을 얻음을 귀하게 여긴다. 奢와 易는 文에 지나치고, 儉과 戚은 미치지 못해서 질박하니, 두 가지는 다 禮에 합당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이치는 먼저 본질을 우선하고 난 뒤에 文이 있는 것이니, 質은 禮의 근본이다.


*范氏曰 “夫祭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 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禮失之奢 喪失之易, 皆不能反本 而隨其末故也. 禮奢而備 不若儉而不備之愈也 喪易而文 不若戚而不文之愈也. 儉者物之質, 戚者心之誠, 故爲禮之本.”

范氏가 말했다. “무릇 제사에서는 敬이 부족하고 禮가 남음이 있는 것이 禮가 부족하고 敬이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고, 喪은 그 슬픔이 부족하고 禮가 남음이 있는 것보다는 禮가 부족하고 슬픔이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 禮가 잘못되어 사치하고, 喪이 잘못되어 형식적으로 다루는 것은 모두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禮가 사치하여 잘 갖추어짐은 검소하여 갖추어지지 않음이 나음만 못하고, 喪이 형식적으로 다스려 문채나는 것이 슬퍼하고 문채나지 않음의 나음만 못하다. 검소란 사물의 바탕이고 슬퍼함은 마음의 정성이니 그러므로 禮의 근본이다.


*楊氏曰 “禮始諸飲食 故汙尊而抔飲. 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 所以文之也 則其本儉而已. 喪不可以徑情而直行 爲之衰麻哭踴之數 所以節之也 則其本戚而已. 周衰, 世方以文滅質, 而林放獨能問禮之本, 故夫子大之, 而告之以此.”

楊氏가 말했다. “禮는 음식에서 시작되었는데, 옛날에는 웅덩이를 술잔으로 삼고 움켜서 먹었다. 簠․簋․籩․豆․罍․爵의 꾸밈을 만든 것은 文飾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근본은 검소했다. 喪은 곧바로 감정을 나타내어 바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衰麻(최마)와 곡하고 발구르기의 수를 제정한 것은 절제를 위한 것이나 그 근본은 슬퍼함에 있다. 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세상이 문식함으로써 바탕을 사라지게 하는데도 林放만이 禮의 근본을 물으니, 夫子께서 크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汙(와): 웅덩이, 더러울 오. -尊(준): 술 그릇. 높을 존, 높일 존. -抔(부): 움켜쥐다.

-簠(보): 제기 이름 -簋(궤): 제기 이름 기장과 피를 담았으며, 簠는 둥글고, 簋는 네모졌다.

-籩(변): 제기. (과실을 담음) -豆(두): 제기, 콩. (국을 담음) -罍(뢰): 술그릇

-爵(작): 술잔 -徑(경): 곧바로, 지름길 -衰麻(최마): 베로 만든 상복


5.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夷나 狄과 같은 오랑캐에게도 임금은 있으니, 중국에 없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중국의 무질서를 한탄한 글이다. 오랑캐도 질서가 있는데, 諸夏(제하;중국)에는 위아래가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亡은 無와 통한다.

-夷狄(이적) :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문화가 발달된 나라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그 주변의 민족을 모두 오랑캐라고 생각했다. 夷는 동쪽 오랑캐, 狄은 북쪽 오랑캐이다. 참고로 蠻은 남쪽 오랑캐, 戎은 서쪽 오랑캐이다. 그리고 그 당시 中國은 三晋지방을 말하며, 대강 黃河 중류 지역이다.


*吳氏曰 “亡 古無字 通用.”

吳氏(棫)가 말했다. “亡은 옛 無자인데 통용한다.”


*程子曰 “夷狄且有君長 不如諸夏之僭亂 反無上下之分也.”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夷와 狄에도 또 임금이 있는데, 諸夏에 참람하고 어지러워 도리어 상하의 구분이 없는 것 같지 않다.”


*尹氏曰 “孔子傷時之亂而歎之也. 亡 非實亡也, 雖有之, 不能盡其道爾.”

尹氏이 말했다. “孔子께서 당시의 어지러움을 슬퍼하셔서 탄식하신 것이다. 亡은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고 비록 있지만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할 뿐이다.“


6.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季氏가 泰山에 旅祭를 지내자, 孔子께서 冉有(염유)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말릴 수 없었느냐?” 대답하여 말했다. “할 수 없었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오호라, 일찍이 태산 신령이 林放만도 못하다고 하느냐?”


*旅祭名 泰山山名 在魯地. 禮 諸侯祭封內山川 季氏祭之 僭也. 冉有 孔子弟子 名求 時爲季氏宰. 救, 謂救其陷於僭竊之罪. 嗚呼, 歎辭. 言神不享非禮 欲季氏知其無益而自止, 又進林放以厲冉有也.

旅는 제사 이름이며, 泰山은 산 이름인데, 노나라 땅에 있다. 禮대로 하면, 제후는 봉해받은 곳 안의 山川에 제사를 지내는데, 계씨가 제사를 지낸 것은 참람하다. 冉有는 孔子의 제자인데 이름은 求이며, 그때 季氏의 신하가 되었다. 救(구:구원함)는 참람한 죄에 빠진 것을 구원하는 것을 이른다. 嗚呼는 감탄사이다. 神은 禮가 아니면 흠향하지 않음을 말씀하셔서 季氏가 그 무익함을 알아서 스스로 멈추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 林放을 추켜세워 冉有를 장려하신 것이다.

-旅祭는 천자가 산천에 지내는 제사이다. 그런데 季氏가 참람하게도 태산에 제사를 지냈으므로 가신으로 있는 염유에게 그것을 말릴 수 없었는가 하고 물은 것이다. 그러면서 林放을 내세운 것은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해 질문을 했었기 때문이다.


*范氏曰 “冉有從季氏, 夫子豈不知其不可告也. 然而聖人不輕絕人 盡己之心, 安知冉有之不能救 季氏之不可諫也. 旣不能正, 則美林放以明泰山之不可誣 是亦教誨之道也.”

范氏가 말했다. “冉有는 季氏를 따랐으니, 夫子께서 어찌 冉有가 고할 수 없음을 모르셨겠는가? 그러나 聖人은 가볍게 사람을 끊지 않아 마음을 다하시니, 冉有가 바로 잡을 수 없음과 季氏가 간할 수 없음을 어찌 모르셨겠는가? 이미 바로 잡을 수 없음에 林放을 찬미하여 태산의 신을 속일 수 없음을 밝히셨으니 이 또한 가르치는 방법이다.”

-安知(안지): ‘어찌 알겠는가?’라는 말이지만 문맥상 ‘어찌 모르다’로 봄이 옳겠다.


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공자가 말했다.

“君子는 다투는 바가 없으나, 활쏘기에서는 반드시 다툰다. 읍하고 사양하면 오르고, 내려와서 마시니, 이런 다툼이 군자의 다툼이다.”

-射(사) : 활쏘기, 즉 大射禮(대사례)를 말한다. 대사례는 왕과 신하가 함께 활쏘기를 하면서 君臣 간에 화합을 도모했던 행사이다. 단순히 무술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덕을 닦는 방법으로 생각하였다. 예(禮)ㆍ악(樂)ㆍ어(御)ㆍ서(書)ㆍ수(數)와 더불어 六藝(육예) 중의 하나였다. 射臺(사대)에 오르기 전에 허리를 굽혀 읍하고 사양하며, 내려와서는 함께 쏜 사람이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긴 사람이 읍하면 진 사람이 술을 마셨다. 활쏘기는 대회이므로 승부를 다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승부를 다투어도 반드시 禮로써 한다.


*揖讓而升者 大射之禮 耦進三揖而後升堂也. 下而飲, 謂射畢揖降, 以俟衆耦皆降, 勝者乃揖不勝者升, 取觶立飲也. 言君子恭遜不與人爭, 惟於射而後有爭. 然其爭也 雍容揖遜乃如此 則其爭也君子, 而非若小人之爭矣.

읍하고 사양하고 오른다는 것은 大射(대사)의 禮에 짝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뒤에 堂에 오르는 것이다. 내려 마신다는 것을 활을 다 쏘고 읍하고 내려와 모든 짝들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승자는 읍하고 못이긴 자는 올라가서 술잔을 들고 마시는 것을 이른다. 군자는 공손하여 남과 다투지 않지만 오직 활쏘기에서는 다툼이 있다. 그러나 그 다툼은 온화한 모양과 읍하고 겸손함이 마침내 이와 같으니 그렇다면 그 다툼이 군자이니, 소인의 다툼과 같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耦(우): 짝, 상대. -俟(사): 기다리다. -觶(치): 술잔 -雍(옹): 누그러지다. 온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