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八佾篇 21, 22

서원365 2016. 12. 18. 17:53

21. 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 以松, 殷人以柏 周人 以栗 曰 使民戰栗.”

哀公이 宰我에게 社(사)에 대해 물었다. 宰我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夏后氏는 소나무로 사의 신주 나무로 삼았고, 殷나라 사람은 잣나무로 하였으며, 周나라 사람은 밤나무로 하였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戰栗(전율) : 두려움을 느낌. 戰慄(전율)과 같다.

-社(사) : 토지신을 모신 사당이다. 그 앞에 신주 나무를 심었다.

-宰我(재아) : 공자의 제자로서 이름은 予이다.


*宰我 孔子弟子 名予. 三代之社不同者 古者立社 各樹其土之所宜木以爲主也. 戰栗 恐懼貌. 宰我又言周所以用栗之意如此, 豈以古者戮人於社, 故附會其說與.

宰我는 孔子의 弟子이며, 이름은 予(여)이다. 三代의 사당이 같지 않은 것은 옛날에 사당을 세우면서 각기 그 땅의 마땅한 나무를 심어 신주로 삼은 것이다. 戰栗(전율)은 무서워하는 모습이다. 宰我(재아)가 또 周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한 뜻을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아마도 옛날에 사당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부회하여 이 그 말을 한 것일 것이다.

-附會(부회): 억지로 갖다 붙임.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공자가 듣고 말했다.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마친 일이라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갔으므로 탓하지 않겠다.”

-宰予(재여)가 이미 말을 뱉었으므로 탓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은 이 말을 통해 심하게 탓하고 있다. 孔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는 德으로서 모범을 보여 백성들을 교화하며, 궁극적으로는 無爲의 化였으니, 宰我의 이런 말을 매우 싫어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哀公에게 밤나무를 심은 뜻이 백성들을 겁주려는 것이라고 한 宰我를 꾸짖은 이유는 그 말을 들은 애공이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리려 하지 않고 겁주는 방법으로 다스리려 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咎(구): 허물, 재앙, 책망하다. -遂(수): 마치다, 완수하다. 따르다, 순응하다.


*遂事 謂事雖未成 而勢不能已者. 孔子以宰我所對 非立社之本意, 又啓時君殺伐之心, 而其言已出 不可復救, 故歷言此以深責之 欲使謹其後也.

遂事는 일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형세가 그만둘 수 없는 것을 이른다. 孔子께서 宰我가 대답한 것이 사당을 세운 본뜻이 아니요, 임금의 살벌한 마음을 열어주었으나, 그 말이 이미 나왔으므로 복구할 수 없으므로 이것을 차례로 말씀하셔서 심하게 책망하여 그 뒤로 삼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歷(역): 지내다, 역력하다, 차례.


*尹氏曰 “古者各以所宜木名其社 非取義於木也. 宰我不知而妄對 故夫子責之.”

尹氏가 말하였다. “옛날에 각각 토질에 맞는 나무로써 그 社를 명명하였을 뿐, 나무에서 뜻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宰我가 이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답하였으므로 夫子께서 꾸짖으신 것이다.”


22. 子曰 “管仲之器 小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사람됨이 작다.”

-管仲(관중, ?~BC 645) : 齊(제)나라 桓公(환공)을 도와 부국강병을 이루어 覇者(패자)가 되게 하였다. 사람의 그릇이 작다고 한 것은 개인적 이익에 사로잡혀 도리를 돌아보지 않은 졸장부라는 뜻이다. 齊나라 桓公 때에 卿의 벼슬에 올랐던 그는 환공의 개혁 추진을 도왔다. 토지등급에 따라 세금을 걷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동시에 염전·제철업을 일으켜 제나라를 춘추시대 가장 막강한 맹주로 만들었다. 저서 『管子』, 물질이 바탕이 되어야 도덕 교화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霸諸侯. 器小 言其不知聖賢大學之道 故局量褊淺規模卑狹 不能正身修德以致主於王道.

管仲(관중)은 齊나라 대부이며, 이름은 夷吾(이오)이다. 桓公(환공)을 도와 제후의 覇者(패자)가 되게 했다. 그릇이 좁다는 것은 성현의 大學의 도를 몰랐으므로 局量이 좁고 얕으며 규모가 낮고 협소하여 자기를 바르게 하고 덕을 닦음으로써 군주가 왕도에 이르게 할 수 없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褊(편): 좁다. 옷 품이 좁다. 도량이 좁다.


•或曰 “管仲 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 不攝 焉得儉.”

어떤 사람이 물었다.

“관중은 검소하였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管(관)씨는 三歸(삼귀)를 두었으며, 家臣을 겸하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겠는가?”

-三歸(삼귀): 歸는 시집가는 것을 말한다. 三歸는 한 번에 세 姓의 여자를 얻는 것을 말한다. -成百曉. 또는 돌아가 쉴 곳이 세 곳이나 있었을 정도로 사치했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한다.


*或人蓋疑器小之爲儉. 三歸 臺名. 事見說苑. 攝 兼也. 家臣不能具官 一人常兼數事, 管仲不然 皆言其侈.

어떤 사람은 그릇이 작다는 것이 검소함이 되는가 하고 의심하였다. 三歸는 臺의 이름이다. 이에 대한 일이 『說苑』에 보인다. 攝(섭)은 겸함이다. 가신은 관리를 모두 갖출 수 없으며 한 사람이 여러 일을 겸하는데, 관중은 그렇지 않으니 다 사치스러움을 말씀하신 것이다.


•“然則管仲 知禮乎?” 曰 “邦君 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 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그러면 관중은 禮를 알았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도 管氏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 두 임금이 우호를 맺을 때 술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두는데 管氏도 술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두었으니, 管氏가 禮를 알았다면 누가 예를 모를까?”

-樹塞門(수색문): 樹는 병풍이며, 塞은 가린다는 뜻

-反坫(반점): 反은 되돌린다는 뜻. 坫은 臺. 술잔 같은 것을 올려놓는 데 쓰임.

-孔子의 말은 일관되어 있다. 자기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禮를 지키는 것이요, 또 그것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或人又疑不儉爲知禮. 屏 謂之樹 塞 猶蔽也, 設 屏於門 以蔽內外也. 好 謂好會. 坫 在兩楹之間, 獻酬飲畢 則反爵於其上. 此皆諸侯之禮 而管仲僭之 不知禮也.

어떤 사람이 검소하지 않음이 禮를 아는 것인가 의심하였다. 병품을 樹 (수)라 하고 막음은 蔽와 같으니, 문에 병풍을 설치함으로써 내외를 가리는 것이다. 好는 우호의 모임을 이르는 말이며, 坫(점은 두 기둥 사이에 있으니, 술을 주고 마시기를 마치면 그 위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다. 이 모두가 제후의 禮인데 管仲이 그것을 참람하게 하였으니 禮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楹(영): 기둥


*愚謂孔子譏管仲之器小 其旨深矣. 或人不知而疑其儉 故斥其奢以明其非儉. 或又疑其知禮 故又斥其僭以明其不知禮. 蓋雖不復明言小器之所以然, 而其所以小者, 於此亦可見矣. 故程子曰 奢而犯禮, 其器之小可知. 蓋器大 則自知禮而無此失矣. 此言當深味也.

내가 생각하건대, 孔子께서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나무라신 것은 그 취지가 깊다. 어떤 사람이 몰라서 그가 검소한 것인가 의심하므로 그가 사치함을 들어 그가 검소하지 않음을 밝히셨고, 또 어떤 사람이 그가 禮를 안다고 의심하므로 그가 참람함을 지적하여 그가 禮를 알지 못함을 밝히셨다. 대개 비록 그릇이 작음은 이유를 다시 밝혀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릇이 작은 이유를 이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고 禮를 범하니 그 그릇이 작음을 알 수 있다. 그릇이 크다면 스스로 禮를 알아서 이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斥(척): 물리치다, 나타나다, 지적하다.


*蘇氏曰 “自修身正家以及於國 則其本深 其及者遠 是謂大器. 揚雄所謂‘大器猶規矩準繩 先自治而後治人者’是也. 管仲三歸反坫 桓公內嬖六人 而霸天下 其本固已淺矣. 管仲死 桓公薨, 天下不復宗齊.”

蘇氏(軾)가 말했다.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르게 하여 나라에 미치면 그 근본이 깊고 미치는 것이 머니, 이를 大器라고 한다. 楊雄이 말한 바 ‘큰 도량은 規矩準繩과 같아서 먼저 스스로를 다스린 후에 남을 다스린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관중은 三歸와 反坫을 두었고, 桓公은 안으로 여섯 명의 여인을 두고서 천하의 패자가 되었으나, 그 근본은 참으로 얕았다. 관중이 죽고 환공이 죽자 천하는 齊나라를 다시는 종주로 삼지 않았다.

-規矩準繩(규구준승): 원그림쇠, 곡척, 수준기, 먹줄.

-蘇軾(소식:1036~1101): 송나라 문인. 字는 子膽. 호는 東坡). 시(詩), 사(詞), 서예(書藝)에도 뛰어났다.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

-楊雄(양웅): 중국 한나라 때 학자.


*楊氏曰 “夫子大管仲之功而小其器. 蓋非王佐之才 雖能合諸侯正天下 其器不足稱也. 道學不明 而王․霸之略混爲一途. 故聞管仲之器小 則疑其爲儉, 以不儉告之, 則又疑其知禮. 蓋世方以詭遇爲功 而不知爲之範 則不悟其小宜矣.”

楊氏가 말했다. “夫子께서는 管仲의 공을 크게 보시고 그 그릇은 작게 보셨다. 왕을 보좌하는 인재는 아니어서 비록 제후를 회합하고 천하를 바로 하였으나 그 그릇이 칭찬하기에는 부족하였을 것이다. 道學이 밝지 못하고 왕도와 패도를 섞어 한 길로 삼았다. 그러므로 管仲이 그릇이 작다는 말을 들으면 그가 검소한 것인가 의심하고, 검소하지 않다고 하면 그가 禮를 안다고 또 의심하였다. 세상이 바야흐로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함을 공으로 삼으니, 법대로 할 줄 알지 못하니, 그 그릇이 작음을 깨닫지 못함이 당연하다.“

-詭(궤): 속이다. 꾸짖다.

-사람이 크다는 것이 무엇인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으니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공적이 큰 것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 마음이 小我的 用心을 벗어남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공적을 남겼더라도 그것의 동기가 단지 개인적 야망이라면 그냥 큰 욕심을 가진 小人일 뿐이다. 管仲은 비록 그가 모시는 君主를 覇者로 삼았지만, 正道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역시 크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