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八佾篇 23, 24, 25, 26

서원365 2016. 12. 18. 20:32

23. 子語魯大師樂曰 “樂 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如也 以成.“

孔子께서 魯(노)나라 大師에게 樂에 대해 말해주셨다.

“樂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은 합하여 풀어놓을 때는 조화를 이루며, 분명하고 연속되어 한 장을 끝마쳐야 합니다.”

-大(太)師(대사): 樂官이다. 당시에는 음악이 많이 폐지되고 무너졌기 때문에 공자가 이를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翕(흡): 합하다. 화합하다. -從(종): 풀어놓다. (縱) -純(순): 조화함.

-皦(교): 희다, 분명하다. -繹(역): 풀다, 연달아 하다.


*語 告也. 大師 樂官名. 時音樂廢缺 故孔子教之. 翕 合也. 從 放也. 純 和也. 皦 明也. 繹 相續不絕也. 成 樂之一終也.

語는 말해줌이다. 大師는 樂官의 이름이다. 그때 음악이 폐지되고 망가졌으므로 孔子께서 가르치셨다. 從은 풀어놓음이다. 純은 조화이다, 皦(교)는 분명함이다. 繹은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음이다. 成은 음악이 한번 마침이다.


*謝氏曰 “五音六律不具 不足以爲樂. 翕如 言其合也, 五音合矣 清濁高下 如五味之相濟而後和. 故曰純如. 合而和矣, 欲其無相奪倫 故曰皦如. 然豈宮自宮而商自商乎. 不相反而相連, 如貫珠可也, 故曰繹如也, 以成.”

謝氏가 말했다, “오음과 육율을 갖추지 않으면 음악이 되기에 부족하다. 翕如는 그 합함을 말하니, 오음이 합하여 청탁과 高下가 마치 다섯 가지 맛이 서로 도와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純如라고 말한 것이다. 합하여 조화하니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게 하려 하니, 그래서 皦如라 하였다. 그러나 어찌 宮은 궁음만 내고 商은 상음만 내겠는가? 서로 반대되지 않고 서로 연결하여 마치 구슬을 꿴 듯이 해야 되니 그러므로 繹如라고 하여서 끝낸다고 하신 것이다.”

-五音(오음): 宮, 商, 角, 徵, 羽

-六律(육율): 黃鐘, 太簇(태주), 姑洗(고선), 蕤賓(유빈), 夷則(이칙), 無射(무역)

-五味(오미): 酸(산:신맛), 醎(함:짠맛), 辛(신:매운맛), 甘(감:단맛), 苦(고:쓴만)


24.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 久矣, 天將以夫子 爲木鐸.”

儀 땅의 封人이 공자를 만나기를 청하면서 말했다.

“君子가 이곳에 오면 내가 일찍이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從者가 공자를 만나게 해주자,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이 (孔子가) 어찌 벼슬을 잃은 것을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도가 없는 지 오래 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으로 목탁을 삼으려합니다.”

-儀封人(의봉인): 衛나라 국경을 관장하는 관리

-從者見之(종자현지): 從者는 누구를 따르면서 호위하고 심부름 하는 사람. 곧 공자의 제자들이다. 從者가 공자를 뵙게 해주었다는 뜻.

-何患於喪乎(하환어상호): 喪은 잃어버리는 것. 공자가 벼슬이 잃었음을 말함. 이 당시에는 공자가 벼슬이 없이 전국의 제후들을 만나고 있었다.


*儀 衛邑. 封人 掌封疆之官, 蓋賢而隱於下位者也. 君子 謂當時賢者. 至此皆得見之 自言其平日不見絕於賢者, 而求以自通也. 見之 謂通使得見. 喪 謂失位去國, 禮曰“喪欲速貧”是也.

儀는 衛나라 읍이다. 封人은 국경을 관장하는 관원인데, 아마도 어진이지만 아랫자리에 숨어사는 사람일 것이다. 君子는 당시 현자를 이른다. 여기 이르면 다 찾아봤다는 것은 평소에 현자에게 거절당하지 않았음을 말하여 스스로 통하기를 구한 것이다. 見之는 통하여 자기로 하여금 만나보게 함을 이른다. 喪은 지위를 잃어 나라를 떠남을 이르니, 『禮記』에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려 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木鐸 金口木舌, 施政教時所振 以警衆者也. 言亂極當治 天必將使夫子得位設教, 不久失位也. 封人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 其所得於觀感之間者深矣.

木鐸은 입은 쇠로 되어 있고, 혀는 나무로 되어 있는데, 정사를 베풀거나 가르칠 때 흔들어서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마땅히 다스려지니, 하늘이 반드시 夫子로 하여금 벼슬을 얻고 가르침을 베풀게 하여, 오랫동안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봉인이 夫子를 한 번 보고 바로 이렇게 말했으니, 그가 보고 느끼는 동안에 얻은 것이 깊다.


*或曰 “木鐸所以徇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以行其教, 如木鐸之徇于道路也.”

또는 말했다. “목탁은 길에 순행하는 것이니, 하늘이 夫子로 하여금 벼슬을 잃게 하여, 사방을 주유하면서 그 가르침을 행하게 하는 것은 목탁이 길에 순행하는 것과 같다.”

-徇(순): 주창하다. 호령하다, 자랑하다. 여기서는 巡行.

-후세에 孔子의 사상이 중국 政敎의 중심이 되었으니, 결국 목탁이 된 셈이다.


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孔子께서 韶를 평가하여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고 하셨다. 武를 평가하여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않다.”고 하셨다.

-韶와 武(소무): 韶는 舜樂이며 武는 武樂이다. 舜과 無는 舜임금과 武王을 뜻한다. 堯임금이 舜임금에 왕위를 물려주자 舜임금은 사양하다가 받아 德治를 행했으며, 武王은 紂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善政을 베풀었다. 『書經』「武成」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앞에 있는 무리들은 창을 거꾸로 들고서 뒤를 공격하니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다녔다.(前徒倒戈 攻于後以北 血流漂杵) 周武王(주무왕)이 공격을 하자 殷의 앞선 무리들이 배반하여 도리어 자기편을 쳤다는 내용이지만, 일부 배반자가 있었다고 해도 저항이 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德이 있어 천하가 쉽게 歸屬(귀속)한 듯하지만, 승자가 지은 글에도 저 정도라면 모두 武王에게 복속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殷(은) 말기에 정치가 혼란했음은 사실이겠으나, 이를 이용하여 武王이 殷을 정복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韶 舜樂, 武 武王樂. 美者 聲容之盛. 善者 美之實也. 舜紹堯致治, 武王伐紂救民 其功一也. 故其樂皆盡美. 然舜之德, 性之也, 又以揖遜而有天下, 武王之德 反之也, 又以征誅而得天下 故其實有不同者.

韶(소) 순임금의 음악이고, 武는 무왕의 음악이다. 美란 소리의 형용이 성대함이다, 善이란 아름다움의 실제이다. 舜임금은 堯임금을 이어 정치를 하였고, 무왕은 紂王을 정벌하여 백성들을 구하였으니, 그 공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 음악이 다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舜임금의 덕은 본성대로 하고 또 읍하고 사양하여 천하를 얻었으며, 武王의 덕은 본성을 되찾은 것이고 정벌하고 주살하여 천하를 얻었으니 실제에는 같지 않음이 있다.


*程子曰 “成湯放桀, 惟有慚德, 武王亦然. 故未盡善. 堯‧舜‧湯‧武, 其揆一也. 征伐非其所欲 所遇之時然爾.”

程子께서 말씀하셨다. “成湯이 桀王을 내친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武王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매우 좋지는 못하다. 堯, 舜, 湯, 武는 그 법도는 하나이다. 정벌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러한 때를 만나서 그럴 뿐이다.”

-揆(규): 헤아리다, 법, 道.

-초기 사회에서는 왕권이 미약해서 세습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차츰 왕권이 강화되고 세습체제가 이루어졌는데, 堯舜때와 湯王과 武王 때는 사회가 이미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禮를 함에 공경하지 않고, 喪을 치름에 슬퍼하지 않다면, 내가 무엇으로써 볼 것인가?

-모두 實(실)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말이다.


*居上主於愛人 故以寬爲本. 爲禮以敬爲本, 臨喪以哀爲本. 旣無其本 則以何者而觀其所行之得失哉.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위주로 하므로 너그러움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禮를 함에 敬으로써 근본으로 삼으며, 喪에 임해서는 슬픔으로 근본을 삼는다. 만약 이미 근본이 없다면 무엇으로써 행실의 잘잘못을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