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公冶長 9, 10, 11, 12

서원365 2016. 12. 20. 20:18

9.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宰予(재여)가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 흙으로 된 담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내가 宰予에게 무엇을 꾸짖을 것인가?”

-何誅(하주): 무엇을 꾸질 것인가? 결국 宰予를 꾸짖을 것도 없다는 뜻으로 포기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만큼 심각하게 꾸짖은 것이다.


*晝寢 謂當晝而寐. 朽 腐也. 雕 刻畫也. 杇 鏝也. 言其志氣昏惰 教無所施也. 與 語辭. 誅 責也. 言不足責 乃所以深責之.

晝寢(주침)은 낮이 되어 자는 것이다. 朽(후)는 썩음이다. 雕는 깎고 다듬는 것이다. 杇(오)는 흙손질이다. 그의 뜻과 기운이 흐리고 게을러 가르침을 베풀 데가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與는 어조사이다. 誅는 질책함이다. 책망하기도 부족하다고 말씀하셔서 심하게 질책하신 것이다.

-朽(후): 썩다. -杇(오): 흙손, 흙손질. -鏝(만): 흙손, 흙손질.

-與는 어조사로서, 말의 語氣를 조절할 때 쓴다.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사람을 대함에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지만, 지금은 내가 사람을 대함에 그 말을 들으면 그 행실을 보게 되었으니, 宰予 때문에 이렇게 고쳤다.”

*宰予能言而行不逮 故孔子自言於予之事而改此失 亦以重警之也.

宰予(재여)는 말을 잘하나 행실이 미치지 못하므로 孔子께서 스스로 宰予의 일 때문에 이 잘못을 고쳤다고 하여 거듭 깨우치신 것이다.


*胡氏曰 “‘子曰’疑衍文, 不然 則非一日之言也.”

胡氏가 말했다. “‘子曰’이란 말은 필요 없는 글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날의 말씀이 아닐 것이다.”

-위의 문장과 이어진다면, 子曰이란 말이 두 번 들어갈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필요 없는 말이거나, 위에서 한 말과 아래에서 한 말이 다른 날에 한 말이라는 뜻이다.


*范氏曰 “君子之於學, 惟日孜孜 斃而後已, 惟恐其不及也. 宰予晝寢 自棄孰甚焉? 故夫子責之.”

范氏가 말했다. “군자가 학문에 있어서 오직 날로 부지런하여야 하며, 죽고 나서야 그치니. 오직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 宰予가 낮에 잤으니, 스스로 포기함이 무엇이 더 심하겠는가? 그러므로 夫子께서 책망하신 것이다.”

-孜(자): 부지런하다. -斃(폐): 죽다.


*胡氏曰 “宰予不能以志帥氣 居然而倦. 是宴安之氣勝 儆戒之志惰也. 古之聖賢未嘗不以懈惰荒寧爲懼 勤勵不息自强, 此孔子所以深責宰予也. 聽言觀行 聖人不待是而後能 亦非緣此而盡疑學者. 特因此立教 以警群弟子 使謹於言而敏於行耳.”

胡氏가 말했다. “宰予는 뜻으로써 기를 통솔하지 못하여 편안하여 나태하였다. 이것은 편안하려는 기가 우세하고 경계하는 뜻은 게으른 것이다. 옛 성현들은 일찍이 나태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부지런하고 힘쓰며 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이 孔子께서 宰予를 심하게 질책하신 이유이다. 말을 듣고 행실을 본다는 것은 聖人께서 이 일이 있은 뒤에야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며, 또한 이 때문에 배우는 사람들을 다 의심하신 것도 아니다. 이것 때문에 가르침을 세워 여러 제자들을 깨우침으로써 말을 삼가고 행실에 민첩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儆(경): 경계하다. 위급하다.


10.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棖.” 子曰 “棖也 慾 焉得剛.”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굳센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申棖(신정)이 있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

棖(정)은 욕심이니 어찌 강직할 수 있을까?“

-탐욕이 있으면,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칠기는 해도 굳셀 수 없다.


*剛 堅强不屈之意 最人所難能者 故夫子歎其未見. 申棖 弟子姓名. 慾 多嗜慾也. 多嗜慾 則不得爲剛矣.

剛은 굳고 강하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인데, 사람이 할 수 있기가 가장 어려우므로, 夫子께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탄식하신 것이다. 申棖은 제자 성명이다. 慾은 즐기고 욕심냄이 많은 것인데, 그러면 剛함이 될 수 없다.

-嗜(기): 좋아하다, 즐기다.


*程子曰 “人有慾則無剛, 剛則不屈於慾.”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욕심이 있으면 강직하지 않고, 강직하면 욕심에 굽히지 않는다.”

*謝氏曰 “剛與慾正相反. 能勝物之謂剛 故常伸於萬物之上. 爲物揜之謂慾, 故常屈於萬物之下. 自古有志者少, 無志者多, 宜夫子之未見也. 棖之慾不可知 其爲人得非悻悻自好者乎. 故或者疑以爲剛. 然不知此其所以爲慾耳.”

謝氏가 말했다. “强直함과 욕심은 정반대이다. 외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을 剛이라고 하므로 늘 만물의 위에 펴있다. 외물에 가려지는 것을 慾이라고 이르니, 그러므로 만물 아래에 늘 굽힌다. 예로부터 뜻있는 자 적고 뜻이 없는 자가 많았으니, 당연히 夫子께서 보시지 못하신 것이다. 棖의 욕심을 알 수 없지만, 그 사람됨이 고집이 세고 자기 지조를 아끼는 자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혹자는 그것으로써 剛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慾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揜(엄): 가리다. 덮이다. -悻(행): 성내다. -悻悻: 고집이 세고 성을 잘 냄.


11.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공이 말하였다.

“남이 저에게 加(가)하기를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을 저도 역시 남에게 加(가)하지 않고 싶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야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다.”

-加諸我(가저아): 諸(저)는 어조사이다. 加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음은 도덕률의 기본인데 왜 자공에게 “너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을까? 加(가)는 내면적으로도 그러한 것을 말한다. 조금만 도덕성을 갖추면 행위나 말은 자제할 수 있지만 마음까지 그렇게 되기 어려우니, 마음까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즉 어질지 않으면 할 수 없다.

孔子가 말한 仁은 따로 자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며,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恕란 노력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子貢言我所不欲人加於我之事, 我亦不欲以此加之於人. 此仁者之事 不待勉强 故夫子以爲非子貢所及.

子貢이 나는 남이 나에게 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仁者의 일이며 노력하거나 억지로 할 필요가 없으므로, 夫子께서 子貢이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程子曰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仁也.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恕也. 恕則子貢或能勉之, 仁則非所及矣.”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에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나 역시 남에게 함이 없는 것은 仁이다. 나에게 베푸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恕이다. 恕라면 子貢이 혹 힘쓸 수 있으나 仁이라면 미칠 바가 아니다.”


*愚謂 無者自然而然 勿者禁止之謂, 此所以爲仁恕之別.

내가 생각하건대, 無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고, 勿이란 금지함을 이르니, 이것이 仁과 恕의 차별이 되는 이유이다.


12.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이 말하였다.

“夫子의 문장을 들을 수 있었으나, 夫子께서 性과 天道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


*文章 德之見乎外者 威儀文辭皆是也. 性者 人所受之天理, 天道者 天理自然之本體, 其實一理也.

文章은 덕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威儀(위의)와 文辭(문장에 있는 말)가 모두 이것이다. 性이란 인간이 받은 天理이며, 天道란 천리가 저절로 그러한 본체인데, 그 실제는 하나의 이치이다.


*言夫子之文章 日見乎外, 固學者所共聞, 至於性與天道 則夫子罕言之 而學者有不得聞者. 蓋聖門教不躐等 子貢至是始得聞之, 而歎其美也.

夫子의 문장은 일상적으로 밖에 드러나 배우는 사람들이 진실로 함께 듣지만, 性과 天道에 이르러서는 夫子께서 드물게 말씀하셔서 배우는 이들이 들을 수 없었다. 聖門의 가르침은 등급을 뛰어넘지 않아서 子貢은 이때 이르러서야 비로소 듣고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 것이다.

-罕(한): 그물, 드물다. -躐(렵): 밟다. 뛰다, 넘다. 건너뛰다.


*程子曰 “此子貢聞夫子之至論而歎美之言也.”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子貢이 부자의 지극한 말씀을 듣고 아름다움을 찬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