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公冶長 13, 14, 15, 16. 17

서원365 2016. 12. 20. 20:21

13.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는 들은 것이 있어서 실천하지 못하면, 듣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唯恐有聞(유공유문): 聞(문)은 배운 것을 말한다. 그냥 지식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것을 들으면 먼저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까 염려하여 다른 것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말이다. 그만큼 子路가 실천을 소중히 여겼다는 말이다. 子路)가 顔淵이나 子貢처럼 뛰어나지는 않지만, 배우면 실천했음 알 수 있다.


*前所聞者旣未及行, 故恐復有所聞而行之不給也.

앞에서 들은 것에도 이미 실행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다시 듣는 것이 있으면 실행이 충분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給(급): 넉넉하다.


*范氏曰 “子路聞善 勇於必行, 門人自以爲弗及也. 故著之. 若子路 可謂能用其勇矣.

范氏가 말했다. “子路가 좋은 것을 들으면 반드시 실행함에 용감하니, 문인들이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것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子路라면 그 용감함을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다.”


14.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子貢이 물었다.

“孔文子는 무엇 때문에 文이라고 하였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총명하고 배움을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므로 文이라고 한 것이다.”

-文(문)이란 시호를 정한 이유를 물은 것이다. 시호는 무조건 아름답게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실을 돌아보아 그에 맞게 짓는다. 그래서 임금이 시호를 내려줄 때도 시호 아래에 그 시호를 정한 이유를 함께 설명해둔다. 敏(민)은 일에 임하여 민첩하다는 뜻도 있고 총명하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아래의 蘇轍(소철)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孔文子가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으므로, 그런 사람에게 文이란 시호를 준 것을 의아하게 여겨 子貢이 孔子에게 물은 것이다.

*

孔文子 衛大夫 名圉. 凡人性敏者多不好學, 位高者多恥下問. 故謚法有以勤學好問爲文者, 蓋亦人所難也. 孔圉得謚爲文 以此而已.

孔文子는 衛나라 大夫이며, 이름은 圉(어)이다. 대체로 사람의 성품이 총명한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는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시호를 정하는 방법에서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文으로 한 것이 있으니, 또한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蘇氏曰 “孔文子使太叔疾出其妻而妻之. 疾通於初妻之娣 文子怒 將攻之. 訪於仲尼 仲尼不對, 命駕而行. 疾奔宋, 文子使疾弟遺室孔姞. 其爲人如此而謚曰文 此子貢之所以疑而問也. 孔子不沒其善 言能如此, 亦足以爲文矣, 非經天緯地之文也.”

蘇氏(轍)가 말했다. “孔文子는 太叔疾이 그의 처를 쫓아내게 하고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疾이 첫 부인의 여동생과 정을 통하자 文子는 노하여 치려하였다. 仲尼에게 물으니 仲尼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수레를 재촉하여 떠나가셨다. 疾이 宋나라로 달아나자 文子가 疾의 동생인 遺(유)에게 孔姞(공길=공문자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그 사람됨이 이와 같은데 시호를 文이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子貢이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孔子께서 그 좋은 점을 없애지 않고, 이와 같으면 또한 文이라고 시호를 할 만하다고 말씀하셨으니, 經天緯地(경천위지)의 문이 아니다.”

-蘇轍(소철:1039~1112): 蘇軾의 아우이다. 당송 팔대가 중의 한 사람. 字는 子由이다.

-奔(분): 달아나다.

-經天緯地(경천위지): 經은 날줄이고 緯는 씨줄이다. 날줄과 씨줄로 베를 짜듯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孔子께서 子産(자산)에 대해 말씀하셨다.

“군자의 道(도)가 넷 있으니, 몸가짐은 공손하며, 일에서는 삼가며, 백성들을 기름에는 사랑하고, 백성을 부림에는 의로워야 한다.”

-子産(자산): 鄭(정) 나라 大夫(대부) 公孫僑(공손교)

-義(의): 마땅히 하게 되어있는 것에 따라 함을 말한다. 즉, 하게 되어 있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子產 鄭大夫公孫僑. 恭 謙遜也. 敬 謹恪也. 惠 愛利也. 使民義, 如都鄙有章․上下有服․田有封洫․廬井有伍之類.

子産은 鄭나라 大夫인 公孫僑(공손교)이다. 恭은 겸손함이다. 敬은 삼가는 것이다. 惠는 사랑하고 이롭게 함이다. 백성을 의롭게 부림은 도시와 시골에 따라 법도가 있고, 상하의 신분에 따라 복장이 있으며, 밭에는 둑과 도랑이 있고, 집과 마을에는 다섯 가구가 한 조가 되게 한 것과 같다.

-恪(각): 삼가다. -洫(혁): 봇도랑 -廬(려): 농막 집


*吳氏曰 “數其事而責之者 其所善者多也, 臧文仲不仁者三‧不知者三是也. 數其事而稱之者, 猶有所未至也, 子產有君子之道四焉是也. 今或以一言蓋一人 一事蓋一時, 皆非也.

吳氏가 말했다. “그 일을 세어서 책망한 것은 잘하는 것이 많은 것이니 臧文仲(장문중)이 어질지 못한 것이 셋이요, 알지 못한 것이 셋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일을 세어서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이르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이니, 子産에게 군자의 도가 네 가지라는 것이 이것이다. 지금은 혹 한 마디 말로써 한 사람을 덮고 한 가지 일로써 한 때를 덮으니 이것은 잘못이다.”

-공자가 子産을 칭찬할 때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칭찬 한 것은 그 외에는 잘못하거나 미진한 것이 많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 한 마디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16. 子曰 “安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사람들과 잘 사귄다. 오래 되어도 공경하니…”

-善與人交(선여인교): 사교성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도리에 맞게 사귄다는 뜻.

-久而敬之(구이경지): 처음 사귈 때는 상대를 잘 모르고 친밀하지도 않아 조심하고 상대를 공경하다가, 그 사귐이 오래 되면 허물없이 지낸다는 의미에서 상대를 막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安平仲(안평중)은 오래 되어도 여전히 공경했다는 뜻.


*晏平仲 齊大夫 名嬰.

-安平仲(안평중)은 齊나라 大夫이며 이름은 嬰(영)이다.


*程子曰 “人交久則敬衰, 久而能敬 所以爲善.”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귐이 오래되면 공경함은 약해지니, 오래되어도 공경할 수 있다면 잘하는 것이 된다.”


17. 子曰 “藏文仲 居蔡 山節藻棁 何如其知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藏文仲(장문중)이 거북을 보관하되, 산을 조각하고 마름을 그렸으니 어찌 그가 안다고 할 것인가?”

-藏文仲(장문중): 魯의 大夫, 이름은 辰(신)

-居蔡(거채): 蔡(채)는 점치는데 사용하는 거북.

-山節藻棁(산절조절): 棁(절)은 조꾸미. 山節(산절)은 朱子(주자)에 따르면 節(절)은 기둥 머리의 斗拱(두공)이며, 棁(절)은 들보 위의 동자기둥이다. 점치는 거북을 보관하는 방의 기둥에 산과 수초인 마름을 그려 넣었다는 말이다. 산과 수초는 모두 신을 상징하니, 쓸데없이 신에게 의지하려한다고 하면서 선비답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안다고 하는 것은 단지 지식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올바른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안다고 한다. 藏文仲이 많이 안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만, 그의 행위를 볼 때 그렇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臧文仲, 魯大夫臧孫氏 名辰. 居 猶藏也. 蔡 大龜也. 節 柱頭斗栱也. 藻 水草名. 梲, 梁上短柱也. 蓋爲藏龜之室 而刻山於節 畫藻於梲也. 當時以文仲爲知, 孔子言其不務民義, 而諂瀆鬼神如此, 安得爲知. 春秋傳所謂“作虛器” 卽此事也.

臧文仲은 魯나라 大夫인 臧孫氏이다. 이름이 辰(신)이다. 居는 보관함과 같다. 蔡(채)는 큰 거북이다. 節은 기둥 머리의 斗栱(두공)이다. 藻(조)는 수초 이름이다. 梲(절)은 들보 위의 짧은 기둥이다. 대개 거북을 보관하는 방에 두공에는 산을 조각하고, 梲에는 藻를 그렸다. 당시 文仲을 안다고 하였지만, 孔子께서는 그가 사람의 도의를 힘쓰지 않고, 귀신에게 잘 보이려 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春秋左傳』에 “쓸데없는 기물을 만들었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일이다.

-藻(조): 말, 바닷말.


*張子曰 “山節藻梲爲藏龜之室, 祀爰居之義, 同歸於不知宜矣.”

張子(橫渠)께서 말씀하셨다. “거북을 보관하는 방에 산절조절한 것과 爰居(원거)라는 새에게 제사지낸 뜻은 똑 같이 알지 못함에 돌아감이 마땅하다.”

-張橫渠(장횡거:1020~1077): 이름은 載(재). 북송 유학자. 주자에게 큰 영향을 준 程顥, 程頤가 그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