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雍也篇 25, 26, 27, 28

서원365 2016. 12. 22. 21:26

25.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文을 널리 배우고 禮로써 요약한다면 또한 위배되지 않을 것인저.”

-不畔矣(불반의): 畔(반)은 叛(반). 徒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


*約 要也. 畔 背也. 君子學欲其博 故於文無不考, 守欲其要, 故其動必以禮. 如此 則可以不背於道矣.

約은 要約이다. 畔(반)은 등지는 것이다. 君子가 배움을 널리 하고자 하므로 文에 대해 고찰하지 않음이 없고, 지킴에 그 요약하려 하니 그 움직임을 반드시 禮로써 한다. 이와 같으면 도를 등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程子曰 博學於文而不約之以禮 必至於汗漫. 博學矣, 又能守禮而由於規矩, 則亦可以不畔道矣.

程子(明道)께서 말씀하셨다. “文을 널리 배우고 禮로써 요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방만함에 이르고, 널리 배우고 또 禮를 지킬 수 있다면 법도에 따르면 또한 도를 등지지 않을 수 있다.”


26. 子見南子 子路不說(열).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가 南子를 만나보자 子路가 기뻐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맹세하여 말하였다.

“내가 부정한 것이 있다면 하늘이 싫어하리라. 하늘이 싫어하리라.”

-南子(남자): 衛靈公(위령공)의 부인으로 음탕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南子가 보고 싶어 해서 만나주자 子路가 이를 싫어한 것이다. 당시 벼슬을 하면 그 主君의 부인을 알현하는 것이 예였다고 한다.

-矢之(시지) : 맹세하다.


*南子 衛靈公之夫人 有淫行. 孔子至衛 南子請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蓋古者仕於其國 有見其小君之禮.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 故不悅.

南子는 衛나라 靈公의 부인으로 淫行이 있었다. 孔子께서 衛나라에 이르시자, 南子가 만나보기를 청하자 孔子께서는 말로 사양하시다가 부득이 만나보신 것이다. 대개 옛날에 그 나라에 벼슬을 하면 그 부인을 만나는 禮가 있었다. 子路는 夫子께서 이 음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욕이 된다고 여겨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小君(소군): 군주의 부인을 말함.


*矢 誓也. 所 誓辭也, 如云“所不與崔慶”者之類. 否 謂不合於禮, 不由其道也. 厭 棄絕也.

矢는 맹세함이다. 所(맹세코)는 맹세하는 말이다. “맹세코 崔와 慶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와 같은 종류이다. 否는 禮에 부합하지 않고 도리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厭은 버리고 끊음이다.


*聖人道大德全, 無可不可. 其見惡人 固謂“在我有可見之禮 則彼之不善 我何與焉”. 然此豈子路所能測哉. 故重言以誓之, 欲其姑信此而深思以得之也.

聖人의 道는 크고 덕이 온전하여 可함과 不可함이 없다. 惡人을 봄에 참으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만나볼 만한 禮가 있다면 저 사람의 불선이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이르신 것이다. 그러니 이를 子路가 어찌 측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다시 말로써 맹세하신 것이니 그가 우선 이것을 믿고 깊이 생각하여 터득하게 하신 것이다.


27.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 久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의 덕은 지극하다. 사람들이 오래 하는 것이 드물다.”


*中者 無過無不及之名也. 庸 平常也. 至 極也. 鮮 少也. 言民少此德 今已久矣.

中이란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의 이름이다. 庸은 平常이다, 至는 극진함이다. 鮮은 적음이다. 사람들이 이 덕을 가진 것이 적은 것이 지금에 이미 오래 되었다.


*程子曰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定理. 自世教衰 民不興於行 少有此德久矣.”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치우치지 않음을 일러 中이라 하고, 바뀌지 않음을 일러 庸이라 한다. 中者이란 천하의 바른 道이며 庸이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한 이후 사람들이 중용의 실행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 덕을 적게 가진지가 오래 되었다.”


28.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子貢이 말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것이 무엇인가? 반드시 성인이다. 堯舜(요순)도 오히려 그것을 부족하게 여겼다.”

-聖(성)은 학문과 인격의 극치를 말한다. 한 사람이 聖(성)을 이루어 정사를 펴면 백성들이 편안해진다.


*博 廣也. 仁以理言 通乎上下. 聖以地言 則造其極之名也. 乎者 疑而未定之辭. 病 心有所不足也. 言此何止於仁 必也聖人能之. 則雖堯舜之聖, 其心猶有所不足於此也. 以是求仁 愈難而愈遠矣.

博은 넓음이다. 仁은 이치로 말하면 上下에 통하는 것이다. 聖은 지위로 말하면 그 극에 도달하는 것의 이름이다. 乎는 의심하여 정하지 않는 말이다. 病은 마음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仁에 멈출 것인가, 반드시 聖人이라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즉 비록 堯舜이라도 이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仁을 구하면 더욱 어렵고 더욱 멀게 될 것이다.

-造(조): 만들다, 조작하다. 나아가다. -愈(유): 더욱.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仁이라는 것은 자신이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고, 내가 통달하고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以己及人 仁者之心也. 於此觀之 可以見天理之周流而無閒矣. 狀仁之體 莫切於此.

나로써 남에게 미치는 것이 仁者의 마음이다. 여기에서 살펴본다면 天理가 두루 흘러 사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仁의 모양을 형용함에 이보다 절실함이 없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가까운 것에서 취해 비유한다면 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能近取譬(능근취비): 近(근)은 자기를 말한다. 위의 己欲立이 近(근)이다. 立人이 譬(비)이다.


*譬 喻也. 方 術也. 近取諸身, 以己所欲譬之他人, 知其所欲亦猶是也. 然後推其所欲以及於人 則恕之事而仁之術也. 於此勉焉 則有以勝其人欲之私 而全其天理之公矣.

譬는 비유이다. 方은 방법이다. 가까이 자신에게서 취하여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으로써 남에게 비유하면, 그가 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안다. 그런 뒤에 그 바라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 恕하는 일이요 仁하는 방법이다. 이에 힘쓰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겨냄이 있고, 天理의 공정함을 온전히 하게 된다.


*程子曰 “醫書以手足痿痹爲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若不屬己 自與己不相干. 如手足之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仁至難言, 故止曰:‘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欲令如是觀仁, 可以得仁之體.“

程子(明道)께서 말씀하셨다. “醫書에서 팔과 발이 마비된 것을 不仁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仁이라는 이름을 가장 잘 형용하였다. 仁者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삼아서 자기가 아님이 없다. 자기임을 인정한다면 어디인들 이르지 않을 것이며, 만약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자기와 상간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손과 발이 마비되면 氣가 통하지 않아서 모두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널리 베풀어 사람들을 구제함은 바로 聖人의 功用이다. 仁은 말하기가 지극히 어려우므로 다만 ‘내가 서고자 함에 남을 서게 하며, 내가 통달하고자 함에 남을 통달하게 하니, 가까운 데에서 취해 비유함이 仁의 방법이라고 이를 만하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仁을 보게 하여 仁의 本體를 터득하게 하신 것이다.“

-痿(위): 바람 맞다, 저리다, 마비되다. -痹(비): 저리다.


*又曰 “論語言‘堯舜其猶病諸’者二. 夫博施者 豈非聖人之所欲. 然必五十乃衣帛, 七十乃食肉. 聖人之心, 非不欲少者亦衣帛食肉也, 顧其養有所不贍爾, 此病其施之不博也. 濟衆者 豈非聖人之所欲? 然治不過九州. 聖人非不欲四海之外亦兼濟也, 顧其治有所不及爾 此病其濟之不衆也. 推此以求修己以安百姓, 則爲病可知. 苟以吾治已足, 則便不是聖人.”

또 말씀하셨다. “『論語』에 ‘堯舜도 그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고 말한 것이 둘이니, 무릇 널리 베푼다는 것은 어찌 聖人의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오십이 되어야 비단을 입었고 칠십이 되어야 이에 고기를 먹었다. 聖人의 마음에 젊은 사람도 또한 비단옷을 입히고 고기를 먹게 하고자 아니할 것인가, 돌아보건대 그 기르는데 부족한 바가 있기 때문이니, 이것은 그 베풂이 넓지 못함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어찌 聖人이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스림이 九州에 불과하니, 四海의 밖도 또한 아울러 구제 안하고자 함이 아니나, 그 다스림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을 뿐이어서 구제함이 많지 않음을 부족하게 여겼다. 이것을 미루어 자기를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구해보면, 부족하게 여김을 알 수 있다. 만약 나의 다스림이 이미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곧 聖人이 아니다.”

-贍(섬): 넉넉하다.

-論語言‘堯舜其猶病諸’者二: 「憲問篇」에 이 말이 또 나온다.

-정치를 하다보면 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러므로 내 정치가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것은 백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聖人이라고 할 수 없다.


*呂氏曰 “子貢有志於仁 徒事高遠 未知其方. 孔子教以於己取之 庶近而可入. 是乃爲仁之方, 雖博施濟衆 亦由此進.”

呂氏가 말했다. “子貢이 仁에 뜻이 있었으나 다만 高遠한 것을 일삼아 그 방법을 몰랐다. 孔子께서 자기에게서 취하는 것으로써 가르쳐 주시니, 거의 가까워서 들어갈 수 있을까 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仁의 방법이니 비록 널리 베풀고 사람들을 구제함이라 할지라도 또한 여기로부터 나아간다.”

-처음부터 실천하기 어려운 高遠한 것을 하려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라도 실천하라는 뜻이다. 사랑의 실천도 이와 같으니, 지금 내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질서를 지키고 예절을 지킴은 모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것의 실천도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