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子罕篇 6, 7, 8, 9

서원365 2016. 12. 24. 22:10

6. 大(태)宰問於子貢曰 “夫子는 聖者與? 何其多能也.”

大宰(태재)가 子貢(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신가? 어찌 그렇게 多能(다능)하신가?”

-大宰(대재): 벼슬 이름. 太宰(태재)와 같음.


*孔氏曰 “大宰 官名, 或吳或宋 未可知也.” 與者疑辭. 大宰蓋以多能爲聖也.

孔氏(安國)이 말했다. “大宰는 관직 이름인데 吳나라인지 宋나라인지 알 수 없다.” 與란 의문사이다. 大宰는 多能을 聖으로 여긴 듯하다.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貢(자공)이 말하였다.

“진실로 하늘이 풀어놓으신 성인이실 것이며, 또한 多能(다능)하시다.”

-縱(종): 풀다.


* 縱 猶肆也,言不爲限量也. 將 殆也,謙若不敢知之辭. 聖無不通多能乃其餘事,故言又以兼之

縱은 풀어놓음이니, 한량할 수 없음을 말한다. 將은 거의이며, 겸손하여 감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 말이다. 聖은 통하지 않음이 없으며 多能함은 그 나머지 일이니, 그러므로 “또”라고 말하여 겸한 것이다.


•子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 賤 故多能鄙事. 君子 多乎哉? 不多也.”

공자가 듣고 말했다.

“大宰(대재)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젊었을 때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많았었다. 군자가 능함이 많은가? 많지 않다.”

-孔子는 3세 때 아버지가 죽었으므로 매우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따라서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었다. 그래서 孔子가 당시 사대부들이 잘 모르는 비천한 일도 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하게 할 줄 아는 것이 君子의 조건은 아니다.


*言由少賤故多能 而所能者鄙事爾,非以聖而無不通也. 且多能非所以率人,故又言君子不必多能以曉之.

젊을 때 미천했기 때문에 능한 것이 비천한 일일 뿐이요, 聖人이라서 통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多能으로써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므로, 또 君子는 반드시 多能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셔서 깨우치신 것이다.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牢(뇌)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등용되지 않았으므로 재주를 익힌 것이다.’”

-吾不試(오부시): 試(시)는 用(용)과 같으니, 벼슬자리에 쓰임을 말함.


*牢 孔子弟子 姓琴 字子開,一字子張. 試 用也. 言由不爲世用故得以習於藝而通之.

牢(뇌)는 공자의 제자이며 성은 琴(금) 자는 子開(자개) 또는 子張이다. 試는 등용됨이다. 세상에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주를 익혀서 통달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吳氏曰 “弟子記夫子此言之時 子牢因言昔之所聞有如此者, 其意相近故并記之.”

吳氏가 말했다. “弟子기 夫子의 이 말을 기록할 때 子牢가 옛날에 이와 같은 것을 들은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 뜻이 비슷해서 倂記한 것이다.”


7.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어떤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묻는데 무식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을 들어서 다 말해준다.”

-空空如也(공공여야): 아는 것이 없이 텅 빈 모습. 정말 무식한 것.

-叩(고): 잡다. 들다.


*孔子謙言己無知識 但其告人 雖於至愚 不敢不盡耳. 叩 發動也. 兩端 猶言兩頭, 言終始․本末․上下․精粗 無所不盡.

孔子께서 겸손하게 자기는 지식이 없고 다만 남에게 알려줄 때 비록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감히 다하지 않음이 없을 뿐이라고 하셨다. 叩(고)는 發動함이다. 兩端은 兩頭와 같은 말이니, 終始와 本末, 上下, 精粗 등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말한다.


*程子曰 “聖人之教人 俯就之若此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 聖人之道 必降而自卑 不如此則人不親. 賢人之言 則引而自高 不如此則道不尊. 觀於孔子孟子 則可見矣.”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聖人께서 사람을 가르침에 굽혀서 나아감이 이와 같으니, 사람들이 높고 멀어서 가까이 하지 않을까 염려하셨다. 聖人의 道는 반드시 내려서 스스로 낮추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賢人의 말은 끌어서 스스로 올리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道가 높아지지 않는다. 孔子와 孟子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尹氏曰 “聖人之言 上下兼盡. 卽其近 衆人皆可與(예)知, 極其至 則雖聖人亦無以加焉, 是之謂兩端. 如答樊遲之問仁知 兩端竭盡 無餘蘊矣. 若夫語上而遺下, 語理而遺物, 則豈聖人之言哉?”

尹氏가 말했다. “聖人의 말씀은 위 아래를 겸하여 다한다. 淺近한데 나아가면 보통 사람들도 모두 참여하여 알 수 있고, 그 지극한 것을 다하면 비록 聖人이라고 또한 더할 것이 없으니, 이를 兩端이라고 이른다. 樊遲가 仁과 知(智)를 물었을 때 兩端을 다하여 남김이 없이 답했던 것과 같다. 만약 위만 말하고 아래를 남기고, 이치만 말하고 사물을 빠뜨린다면 어찌 聖人의 말씀이겠는가?”

-樊遲之問仁知(번지지문인지): 「雍也篇」 第20章에 보인다.


8. 子曰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봉황새가 오지 않고 황하에 河圖(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난 것인가 보다.”

-鳳鳥不至(봉조부지 ): 鳳凰(봉황) 새가 오지 않다. 순임금과 문왕 때 봉황새가 날아왔었다고 한다.

-河不出圖(하불출도): 伏羲(복희) 때 용마의 등에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황하에서 나왔기 때문 河圖(하도)라고 한다.

-吾已矣夫(오이의부): 봉황과 하도는 성군 때 태평성대를 알리는 祥瑞(상서)이다. 이러한 것이 나타나지 않으니 공자 자신의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鳳 靈鳥 舜時來儀 文王時鳴於岐山. 河圖 河中龍馬負圖 伏羲時出 皆聖王之瑞也. 已 止也.

鳳(봉)은 신령스런 새인데, 舜임금 때 와서 춤을 추었으며, 文王 때 岐山에서 울었다. 河圖는 황하에서 나온 용마가 등에 그려진 그림인데, 伏羲 때 나왔으니 다 聖王의 祥瑞이다. 已는 끝남이다.


*張子曰 “鳳至圖出 文明之祥 伏羲舜文之瑞不至 則夫子之文章 知其已矣.”

張子께서 말씀하셨다. 봉황이 오고 河圖가 나옴은 문명의 상서인데, 伏羲와 舜임금과 文王 때의 상서가 오지 않으니 부자의 文章이 그칠 것을 알 수 있다.“


9. 子見齊衰(자최)者 冕衣裳者 與瞽者 見之 雖少必作 過之必趨.

공자는 상복을 입은 사람이나 관복을 입은 사람이나 맹인을 보면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반드시 일어섰으며, 지나칠 때는 반드시 빨리 지나갔다.

-齊衰(자최): 衰(최)는 縗(최)로서 상복이다.

-必作(필작): 作(작)은 일어섬.

-趨(추): 빨리 지나감.


*齊衰 喪服. 冕 冠也. 衣 上服, 裳 下服. 冕而衣裳 貴者之盛服也. 瞽 無目者. 作 起也. 趨 疾行也. 或曰少 當作坐.

齊衰는 상복이다. 冕은 冠이다. 衣는 위 옷, 裳은 아래 옷이다. 관을 쓰고 의상을 한 것은 귀한 자의 盛服이다. 瞽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 作은 일어섬이다. 趨는 빨리 달림이다. 혹 말하였다. “少는 마땅히 坐가 되어야 한다.”


*范氏曰 “聖人之心 哀有喪 尊有爵 矜不成人 其作與趨 蓋有不期然而然者.”

范氏가 말했다. “聖人의 마음은 喪이 있는 이를 슬퍼하고, 벼슬이 있는 이를 높이며, 온전하지 않은 이를 가엽게 여기니, 일어나고 종종걸음 치는 것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尹氏曰 “此聖人之誠心 內外一者也.”

尹氏가 말했다. “이 聖人의 참된 마음은 안과 밖이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