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憲問篇 7, 8, 9 , 10, 11, 12

서원365 2016. 12. 29. 20:39

7. 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이면서 어질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없다.”


*謝氏曰 “君子志於仁矣, 然毫忽之間 心不在焉, 則未免爲不仁也.”

謝氏가 말했다. “君子가 뜻이 仁에 있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마음이 있지 않으면 不仁이 됨을 면할 수 없다.”


8. 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치게 하지 않을 수 있는가?”


*蘇氏曰 “愛而勿勞 禽犢之愛也, 忠而勿誨, 婦寺(시)之忠也. 愛而知勞之 則其爲愛也深矣, 忠而知誨之, 則其爲忠也大矣.”

蘇氏(軾)가 말했다. “사랑하면서 수고하지 않음은 짐승의 사랑이고, 충성하면서 깨우치지 않음은 부인과 내시의 충이다. 사랑하면서 수고롭게 함을 아는 것은 그 사랑함이 깊은 것이요, 충성하면서 깨우친다면 충성됨이 크다.”

-犢(독): 송아지

-정말로 사랑한다면 수고를 통해 인내심을 키우게 하고,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하며, 나아가 실력을 갖추게 한다. 그냥 고생스럽지 않게 하고 편하게만 하는 것은 참된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충성한다면 잘못된 것을 깨우쳐 주어 바른 길을 가게 한다. 무작정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순종하기만 하는 것은 충성의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귀를 막고 듣기 좋은 말에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다. 미움 받고 쫓겨나기 딱 좋다.


9. 子曰 “爲命 裨諶 草創之 世叔 討論之 行人子羽 修飾之 東里子産 潤色之.”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외교 문서를 만들 때 裨諶(비침)이 초안을 하고, 世叔이 내용을 검토하고, 行人인 子羽가 다듬고, 東里의 子産이 문체를 아름답게 하였다.”

-草創은 초안을 잡아 처음 만드는 것이다. 討論은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修飾은 첨삭하는 것이며, 潤色은 글을 매끄럽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裨諶以下四人 皆鄭大夫. 草 略也, 創 造也, 謂造爲草藁也. 世叔 游吉也 春秋傳作子大(太)叔. 討 尋究也. 論 講議也. 行人 掌使之官. 子羽 公孫揮也. 修飾 謂增損之. 東里地名, 子產所居也. 潤色 謂加以文采也. 鄭國之爲辭命 必更此四賢之手而成 詳審精密 各盡所長. 是以應對諸侯 鮮有敗事. 孔子言此 蓋善之也.

裨諶 이하 네 사람은 다 鄭나라 大夫이고, 草는 대략이며 創은 처음 지음이니, 처음 지어서 초고를 만드는 것을 이른다. 世叔은 游吉이니 『春秋左傳』에는 子大叔으로 되어 있다. 討는 찾고 연구함이다. 論은 강론함이다. 行人은 사신을 관장하는 관리이다. 子羽는 公孫揮(공손휘)이다. 修飾은 늘리고 줄이는 것을 이른다. 東里는 지명인데 子産이 거처하던 곳이다. 潤色은 문채를 더하는 것이다. 鄭나라의 외교문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이 네 賢人의 손으로 고쳐 이루어 상세하게 살피고 정밀하여 각각 장점을 다하였다. 이로써 제후를 응대하어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孔子께서 이를 말씀하신 것은 칭찬하신 것이다.

-藁(고): 원고


10. 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어떤 사람이 子産(자산)이 어떤 사람인지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子產之政 不專於寬, 然其心則一以愛人爲主. 故孔子以爲惠人, 蓋擧其重而言也.

子產의 政治는 오로지 관대만 베풀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은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그러므로 孔子께서는 은혜로운 사람으로 하셨으니, 그 중요한 것을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問子西 曰 “彼哉彼哉.”

子西(자서)에 대해 묻자, 말했다.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여.”

-彼哉彼哉(피재피재): 이렇게 말한 것은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子西 楚公子申 能遜楚國 立昭王 而改紀其政 亦賢大夫也. 然不能革其僭王之號, 昭王欲用孔子 又沮止之. 其後卒召白公以致禍亂, 則其爲人可知矣. 彼哉者, 外之之詞.

子西는 楚나라 公子 申인데 楚나라를 양보하여 昭王을 세워 정치를 개혁하였으니 또한 어진 大夫이다. 그러나 王이라고 참칭한 것을 고칠 수 없었고, 昭王이 孔子를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막았다. 그 뒤 마침내 白公을 불러들여 禍亂을 초래했으니,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彼哉는 외면하는 말이다.


•問管仲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管仲(관중)에 대해 묻자, 말했다.

“이 사람은 伯氏의 騈邑(병읍) 삼백호를 빼앗았으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생을 마쳤지만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沒齒(몰치) : 齒는 年이라는 뜻. 즉 죽었다는 뜻.


*人也 猶言此人也. 伯氏 齊大夫. 騈邑 地名. 齒 年也. 蓋桓公奪伯氏之邑以與管仲, 伯氏自知己罪 而心服管仲之功. 故窮約以終身而無怨言.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 而富人莫之敢拒”者, 卽此事也.

人也는 이 사람과 같은 말이다. 伯氏는 齊나라 大夫이다. 騈邑은 지명이다. 齒는 해이다. 桓公이 伯氏의 읍을 빼앗아 管仲에게 주었으나, 伯氏는 스스로 자기 죄를 알아서 마음으로 管仲의 功에 심복하였다. 그러므로 궁색하게 죽었지만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荀卿이 말한 바 “그에서 書社 300호를 주었으나 부자들이 감이 막지 않았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이다.


*或問 “管仲子產孰優?” 曰 “管仲之德 不勝其才. 子產之才 不勝其德. 然於聖人之學, 則槪乎其未有聞也.”

어떤 사람이 물었다. “管仲과 子産은 누가 낫습니까?” (朱子가) 말했다. “管仲의 덕은 그 재주를 이기지 못했고, 子産의 재주는 그 덕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聖人의 학문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다.”

-書社(서사): 25家戶를 里라 하고 里에 社를 세웠는데, 그에 속하는 사람의 이름을 호적에 쓴 것이라고 한다.-成百曉


11. 子曰 “貧而無怨 難, 富而無驕 易.”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處貧難 處富易 人之常情. 然人當勉其難 而不可忽其易也.

가난하게 사는 것은 어렵고 부유하게 사는 것은 쉬운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情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어려움을 마땅히 힘써야 하고 그 쉬운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것이란 가난한데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쉬운 것은 부유한데도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힘써야 하고, 부유하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12. 子曰 “孟公綽 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藤薛大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孟公綽(맹공작)은 趙나라나 魏나라의 가신의 우두머리로서는 충분하나, 藤(등)나라와 薛(설)나라의 대부는 될 수 없다.”

-孟公綽(맹공작): 魯(노)의 대부. 老는 家臣(가신)의 우두머리.

-맹공작의 인물됨이 가신의 우두머리로서는 충분하지만, 대부는 제후의 일을 하므로 藤과 薛과 같은 작은 나라라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公綽 魯大夫. 趙魏 晉卿之家. 老 家臣之長. 大家勢重 而無諸侯之事, 家老望尊, 而無官守之責. 優 有餘也. 滕薛 二國名. 大夫, 任國政者. 滕薛國小政繁, 大夫位高責重. 然則公綽蓋廉靜寡欲, 而短於才者也.

公綽은 魯나라 大夫이다. 趙氏와 魏氏는 晉나라 卿의 집안이고, 老는 가신의 수장이다. 큰 집안의 權勢가 중하지만 제후의 일은 없고, 家老는 명망이 높지만 관직을 맡을 책임은 없다. 優는 넉넉함이다. 滕과 薛은 두 나라 이름이다. 大夫는 국정을 맡은 사람이다. 滕과 薛은 나라가 작으나 政事가 번거로워 大夫는 지위가 높고 책무가 무겁다. 그렇다면 公綽은 아마 청렴하고 고요하며 욕심이 적었지만 재능이 적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楊氏曰 “知之弗豫 枉其才而用之 則爲棄人矣. 此君子所以患不知人也. 言此 則孔子之用人可知矣.”

楊氏가 말했다. “미리 알지 못하여 그 재능을 굽혀서 등용하는 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君子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이것 말씀하셨다면 孔子의 인재 등용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