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憲問篇 17, 18, 19

서원365 2017. 1. 1. 11:48

17. 子路曰 “桓公 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 未仁乎?”

子路(자로)가 말했다.

“桓公(환공)이 공자인 糾(규)를 죽였는데, 召忽(소홀)은 죽고, 管仲(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어질지 않은 것입니까?”


*按春秋傳 齊襄公無道 鮑叔牙奉公子小白奔莒. 及無知弒襄公 管夷吾召忽奉公子糾奔魯. 魯人納之, 未克, 而小白入 是爲桓公. 使魯殺子糾而請管召 召忽死之 管仲請囚. 鮑叔牙言於桓公以爲相. 子路疑管仲忘君事讐 忍心害理, 不得爲仁也.

『春秋左傳』을 살펴보건대 齊나라 襄公은 무도하여 鮑叔牙(포숙아)가 公子 小白을 모시고 莒(거)로 달아났다. 無知(사람 이름)가 襄公을 시해하자 管夷吾와 召忽은 公子 糾를 모시고 魯나라로 달아났다. 魯나라 사람이 (糾를) 돌려보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小白이 들어갔는데 이 사람이 桓公이 되었다. 魯나라에 사신을 보내 子糾를 죽이게 하고 管夷吾와 召忽을 오라고 청하자, 召忽은 자결하였고 管仲은 죄인으로 자청하였다. 鮑叔牙가 桓公에게 말하여 재상이 되게 하였다. 子路는 管仲이 주군을 잊고 원수를 섬겼으니 마음을 차마 天理를 해쳐 仁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子曰 “桓公 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桓公이 제후를 규합하되 무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 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 仁만 하겠는가?”

-九는 糾의 뜻. 『春秋左傳』에는 糾로 되어 있다고 한다. 糾라는 이름이 나오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쓴 듯하다.

-이 부분은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이다. 공자가 忠을 강조하나 맹목적인 충이 아니라, 仁을 이루기 위함이며, 초점은 백성들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九 春秋傳作‘糾’ 督也, 古字通用. 不以兵車 言不假威力也. 如其仁 言誰如其仁者, 又再言以深許之. 蓋管仲雖未得爲仁人 而其利澤及人 則有仁之功矣.

九는 『春秋左傳』에는 糾로 되어 있는데, 감독한다는 뜻인데, 古字에는 통용되었다. 兵車를 쓰지 않음은 威力을 빌리지 않음을 말한다. 如其仁은 누가 그 仁만 한 자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또 다시 말씀하셔서 깊이 인정하신 것이다. 管仲은 미록 어진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익과 은혜가 사람들에게 미쳤으면 仁의 공이 있는 것이다.


18. 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 殺公子糾 不能死又相之.”

子貢(자공)이 말했다.

“管仲(관중)은 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桓公이 공자인 糾를 죽였는데도 따라 죽을 수 없었으며, 또 그를 도왔습니다.”


*子貢意不死猶可 相之則已甚矣.

子貢은 죽지 않은 것은 오히려 괜찮지만, 도운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子曰 “管仲 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 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管仲은 桓公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가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霸 與伯同 長也. 匡 正也. 尊周室攘夷狄 皆所以正天下也. 微 無也. 衽 衣衿也. 被髮左衽, 夷狄之俗也.

霸는 伯과 같으니 우두머리이다. 匡은 바름이다. 周 왕실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침은 모두 천하를 바르게 한 것이다. 微는 無이다, 袵(임)은 옷의 옷깃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왼쪽으로 옷깃을 여밈은 夷狄의 풍속이다.

-袵(임): 옷깃 -衿(금): 옷깃 -被(피): 이불, 풀어 헤치다.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어찌 평범한 사내와 여인이 작은 신의를 위해 스스로 목을 메 그 시신이 도랑에 뒹굴어 알아주지 않음과 같겠는가?”

-經(경): 縊(액), 목메다. -溝瀆(구독): 도랑


*諒 小信也. 經 縊也. 莫之知 人不知也. 後漢書引此文 莫字上有人字.

諒(량): 작은 신의이다. 經은 목을 맴이다. 알려지지 않음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음이다. 『後漢書』는 이 글을 인용하였는데 莫字 위에 人字가 있다.


*程子曰 “桓公 兄也, 子糾 弟也. 仲私於所事 輔之以爭國 非義也. 桓公殺之雖過 而糾之死實當. 仲始與之同謀, 遂與之同死 可也, 知輔之爭爲不義, 將自免以圖後功亦可也. 故聖人不責其死而稱其功.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桓公은 형이고, 子糾는 동생이었다. 管仲이 일을 사사로이 하여 糾를 도와서 나라를 다투게 한 것은 義가 아니었다. 桓公이 그를 죽인 것은 지나쳤지만, 糾의 죽음은 실은 당연하다. 管仲이 처음에 糾와 함께 모의하였으니 그와 함께 같이 죽는 것도 괜찮고, 그를 도와 다툰 것이 不義임을 알아서 후에 功을 도모하여 스스로 죄를 면하려는 것도 괜찮다. 그러므로 聖人께서 그 죽음을 책망하시지 않고 그 功을 칭찬하셨다.


*若使桓弟而糾兄 管仲所輔者正 桓奪其國而殺之 則管仲之與桓, 不可同世之讐也. 若計其後功而與其事桓, 聖人之言 無乃害義之甚, 啓萬世反覆不忠之亂乎? 如唐之王珪魏徵 不死建成之難 而從太宗, 可謂害於義矣. 後雖有功, 何足贖哉?”

(伊川의 말이 이어짐)만약 桓公이 동생이고 糾가 형이라면 管仲이 도운 것은 옳으며, 桓公이 나라를 탈취하고 죽였다면 管仲과 桓公은 세상을 같이 할 수 없는 원수이다. 만약 후일의 공을 계산하여 桓公을 섬긴 것을 인정하신다면, 聖人의 말씀은 義를 해침이 심하여 만세에 반복되는 불충의 亂을 열어놓지 않았겠는가? 唐나라 王珪와 魏徵이 乾成의 難에 죽지 않고 太宗을 따랐으니, 義를 해침이 심하다 할 수 있다. 비록 후에 功이 있지만 어찌 충분히 속죄가 될 것인가?”

-乾成之難(건성지난): 乾成은 唐太宗 李世民의 형으로서, 세력이 강해지는 李世民을 죽이려다 도리어 죽었다. 이때 王珪와 魏徵은 둘 다 형인 乾成 편에 있었다.


*愚謂管仲有功而無罪 故聖人獨稱其功, 王․魏先有罪而後有功 則不以相掩可也.

내가 말하건대, 관중은 功이 있고 죄가 없으므로 聖人께서 홀로 그 功을 칭찬하셨다. 王珪와 魏徵가 먼저 죄가 있고 나중에 공이 있으나 서로 가릴 수 없음은 맞다.

-義에는 大義와 小義가 있다. 국민과 인류를 위하는 것은 大義이며, 공과 사를 가려 공을 따르는 것도 大義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친분에 바탕을 둔 약속과 의리는 小義이다. 小義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大義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와 친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국민을 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義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義를 쫓는 것이다.


19. 公叔文子之臣大夫僎 與文子 同升諸公

公叔文子(공숙문자)의 대부인 僎(선)이 文子(문자)와 함께 公朝(공조)에 올랐다.

-臣이라고 한 것은 家臣을 말한다. 公은 제후의 조정이다. 함께 올랐다는 것은 자기의 가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리지 않고 추천하여 함께 올랐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臣 家臣. 公 公朝. 謂薦之與己同進爲公朝之臣也.

臣은 家臣이다, 公은 제후의 조정이다. 그를 추천하여 자기와 함께 같이 나아가 제후의 臣이 되었음을 이른다.


•子聞之 曰 “可以爲文矣.”

공자가 듣고 말쓸하셨다.

“가히 시호를 文이라고 할 수 있다.”

-文이라는 시호는 백성에게 작위를 내려준 경우에 쓴다. 文이란 또한 이치를 따라 文章을 이룸을 말한다.


*文者 順理而成章之謂. 謚法亦有所謂錫民爵位曰文者.

文이란 이치를 따라 文章을 이룸을 말한다. 시호를 정하는 법에 또한 이른 바 ‘백성에게 작위를 내려준 것을 文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錫(석): 주석, 주다, 다리, 은백색, 하사(下賜)함.


*洪氏曰 “家臣之賤而引之使與己並, 有三善焉. 知人 一也, 忘己, 二也, 事君 三也.”

洪氏가 말했다. “가신으로 천함에도 이끌어 자기와 함께 나란히 서게 한 것은 세 가지 선함이 있다. 사람을 알아본 것이 하나요, 자기를 잊은 것이 둘이요, 군주를 섬김이 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