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憲問篇 20, 21, 22, 23, 24, 25

서원365 2017. 1. 1. 14:13

20. 子言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공자가 衛(위) 나라 靈公(영공)의 무도함을 말하자, 康子(강자)가 말했다.

“이와 같은데 어찌하여 지위를 잃지 않습니까?”


*喪 失位也.

喪은 지위를 잃음이다.


•孔子曰 “仲叔圉 治賓客, 祝鮀 治宗廟, 王孫賈 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仲叔圉(중숙어)는 빈객을 다스리고, 祝鮀(축타)는 종묘를 다스리며, 王孫賈(왕손가)는 군대를 다스립니다. 이러하니 어찌 그 지위를 잃겠습니까?”


*仲叔圉 卽孔文子也. 三人皆衛臣 雖未必賢 而其才可用. 靈公用之 又各當其才.

仲叔圉는 곧 孔文子이다. 세 사람은 衛나라 신하인데 비록 꼭 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재주를 쓸 만했다. 靈公이 등용하였으며, 또 그 재주에 각각 합당했다.


*尹氏曰 “衛靈公之無道宜喪也 而能用此三人 猶足以保其國, 而況有道之君 能用天下之賢才者乎? 詩曰‘無競維人, 四方其訓之.’”

尹氏가 말했다. “衛나라 靈公의 無道함이라면 마땅히 지위를 상실해야 하지만, 이 세 사람을 쓸 수 있어서 오히려 나라를 보전하기에 족했는데, 하물며 도리를 지키는 군주가 천하의 어진 인재를 등용함이겠는가? 『詩經』에 ‘인재 등용을 막강하게 하면 사방이 따른다.’고 하였다.”

-지도자의 가장 큰 임무는 자기가 직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다. 등용된 사람이 최대한 생각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무형의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지도자가 일일이 할 일을 정하고 지시하면 아랫사람은 시키는 일만하고 능동성을 발휘하지 못해 그 지도자가 지도하는 집단은 활기를 잃어버린다.


21. 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怍(작) : 부끄러워하다.


*大言不慚 則無必爲之志 而不自度其能否矣, 欲踐其言 豈不難哉?

큰소리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것을 할 수 없는지를 스스로 헤아리지 않으니, 그 말을 실천하려 하나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22. 陳成子弑簡公.

陳成子(진성자)가 簡公(간공)을 죽였다.

-簡公(간공)은 齊의 군주이고, 陳成子(진성자)는 齊의 대부이며, 이름이 恒이다.


*成子 齊大夫 名恒. 簡公 齊君 名壬. 事在春秋哀公十四年.

成子는 齊나라 大夫인데 이름은 恒이다. 簡公은 齊나라 君主인데 이름은 壬이다. 이 일은 『春秋』 哀公 14年 條에 있다.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陣恒弑其君 請討之.”

공자가 목욕하고 조회하여 애공에게 고하였다.

“陣恒(진항)이 자기 임금을 시해했으니 청컨대 토벌하십시오.”


*是時孔子致仕居魯. 沐浴齊戒以告君 重其事而不敢忽也. 臣弒其君 人倫之大變, 天理所不容, 人人得而誅之, 況鄰國乎? 故夫子雖已告老 而猶請哀公討之.

이때 孔子께서는 벼슬을 떠나 魯나라에 살고 계셨다. 목욕재계하고 군주에게 고한 것은 그 일을 중히 여겨 감히 소홀히 하지 않으신 것이다. 신하가 그 君主를 시해한 것은 人倫의 큰 변고이고, 天理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니, 사람마다 그를 죽일 수 있는데, 하물여 이웃나라이겠는가? 그러므로 夫子께서 告老하셨는데도 오히려 哀公에게 토벌하기를 청하셨다.

-告老(고로): 늙어서 더 이상 벼슬을 할 수 없다고 임금에게 고하는 것.


•公曰 “告夫三子.”

애공이 말했다.

“세 대부에게 말하라.”


*三子 三家也. 時政在三家 哀公不得自專, 故使孔子告之.

三子는 三家이다, 이때 政事가 三家에 있어서 哀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공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였다.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이므로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임금께서는 세 대부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孔子出而自言如此. 意謂弒君之賊 法所必討, 大夫謀國 義所當告, 君乃不能自命三子, 而使我告之邪?

孔子께서 나오셔서 이렇게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 뜻은 군주를 시해한 역적은 법에 반드시 토벌해야 할 것이며, 大夫는 國事를 도모하니 의리상 마땅히 고해야 하니, 君主가 스스로 三子에게 명할 수 없어서 나를 시켜 고하게 한 것인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之三子 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세 대부에게 가서 고하니 안 된다고 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이므로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以君命往告 而三子魯之强臣 素有無君之心 實與陳氏聲勢相倚 故沮其謀. 而夫子復以此應之, 其所以警之者深矣.

군주의 명으로써 가서 고하셨으나, 三子는 魯나라의 강력한 신하로서 평소 임금으로 여기는 마음이 없었고, 실제로 陳氏와 명성과 권세가 서로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도모함을 저지한 것이었다. 夫子께서 다시 이렇게 응하셨으니 경계하심이 깊다.


*程子曰 “左氏記孔子之言曰 ‘陳恒弒其君, 民之不予者半. 以魯之衆, 加齊之半, 可克也.’ 此非孔子之言. 誠若此言 是以力不以義也. 若孔子之志 必將正名其罪, 上告天子 下告方伯, 而率與國以討之. 至於所以勝齊者, 孔子之餘事也, 豈計魯人之衆寡哉? 當是時 天下之亂極矣. 因是足以正之 周室其復興乎. 魯之君臣, 終不從之 可勝惜哉!”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左氏가 孔子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陳恒이 그 君主를 시해하자 인정해주지 않는 백성이 半이었다. 魯나라의 무리에 齊나라의 半을 더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孔子의 말씀이 아니다. 정말로 이 말과 같다면 이는 힘으로써 한 것이고 義로써 한 것이 아니다. 만약 孔子의 뜻이 반드시 그 죄를 바로 지칭하여 위로는 천자에게 고하고 아래로는 方伯에게 알려 동맹국을 거느리고 토벌하셨을 것이다. 齊나라를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공자의 나머지 일이니 어찌 魯나라 사람이 많고 적음을 계산했겠는가? 이때가 되어 천하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였다. 이로 인해 바로 잡았다면 周 왕실이 다시 부흥했을 것이다. 魯의 군신들이 마침내 따르지 않았으니 애석함을 어찌 다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方伯(방백): 제후 또는 제후를 거느리는 우두머리 -予(예): 즐겁다.

-與國(여국): 동맹국


*胡氏曰 “春秋之法 弒君之賊 人得而討之. 仲尼此擧, 先發後聞可也.”

胡氏가 말했다. “春秋의 법은 군주를 시해한 역적은 사람마다 토벌할 수 있으니, 仲尼의 이 일은 먼저 토벌하고 나중에 알림이 좋다.”


23. 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而犯之.”

子路(자로)가 군주를 섬김에 대해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속이지 말고 안색을 범하여 간하라.”

-犯之(범지): 신하의 말에 군주가 싫어하는 빛을 보이더라도, 굽히지 않고 諫(간)하는 것.


*犯 謂犯顏諫爭.

犯은 안색을 범하여 諫爭함을 이른다.


*范氏曰 “犯 非子路之所難也 而以不欺爲難. 故夫子教以先勿欺而後犯也.”

范氏가 말했다. “犯은 子路가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나, 속이지 않음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夫子께서 먼저 속이지 말라고 하고 나중에 犯할 것을 가르치셨다.”


24. 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밑으로 통달한다.”

-上達下達(상달하달): 위라고 함은 천리나 도리를 말한다. 아래라고 함은 물질적인 것을 말한다. 위라고 함은 公利를 말하며 아래라 함은 私益을 말한다.


*君子循天理 故日進乎高明, 小人循人欲 故日究乎汙下.

君子는 天理를 따르므로 날로 높고 밝은 데로 나아가고, 소인은 人欲을 따르므로 날로 더러운 곳에 떨어진다.

-汙(오): 더럽다, 추잡하다.


25. 子曰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옛날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고, 지금의 배우는 사람은 남을 위한다.”

-爲己에 대해서는 「학이편」 第6章의 註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나왔었다.


*程子曰 “爲己 欲得之於己也. 爲人 欲見知於人也.”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爲己는 자기 몸에 얻으려 하는 것이다. 爲人은 남에게 알려지고자 하는 것이다.”


*程子曰 “古之學者爲己 其終至於成物. 今之學者爲人 其終至於喪己.”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그 마침이 날을 이루게 하는 데 이른다. 지금의 배우는 사람을 남을 위하여 그 마침이 자기를 상실하는데 이른다.”


*愚按 聖賢論學者用心得失之際 其說多矣, 然未有如此言之切而要者. 於此明辨而日省之 則庶乎其不昧於所從矣.

내가 보건대 성현들이 배우는 사람이 마음 씀의 잘잘못의 실제를 논함은 그 설이 많지만, 이 말의 절실함과 긴요함만 한 것이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밝게 분별하고 매일 살펴보면 따를 바에 거의 어둡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