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陽貨篇 1, 2, 3

서원365 2017. 1. 4. 21:57

◎ 陽貨 第十七

*凡二十六章

모두 26장이다.


1.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而往拜之 遇諸塗.

陽貨(양화)가 孔子를 불러 만나 보고자 하였으나, 孔子는 만나지 않았다. 孔子에게 돼지를 보냈으므로, 孔子께서는 그가 없는 틈을 타 가서 사례하려하였는데, 길에서 만났다.


*陽貨 季氏家臣 名虎. 嘗囚季桓子而專國政. 欲令孔子來見己 而孔子不往. 貨以禮 “大夫有賜於士 不得受於其家 則往拜其門.”, 故瞰孔子之亡而歸之豚 欲令孔子來拜而見之也.

陽貨는 季氏의 家臣인데 이름은 虎이다. 일찍이 季桓子를 가두고 國政을 마음대로 했다. 孔子를 자기에게 오게 해서 만나려 했는데 孔子께서 가시지 않으셨다. 貨는 禮에 “大夫가 士에게 선물을 내렸으면 그 집에서 직접 받지 못했으면 그 집에 가서 사례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孔子께서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돼지를 보내어 孔子로 하여금 와서 인사하게 해서 만나려 했다.

-瞰(감): 보다, 멀리 내려다보다, 물고기가 눈이 감기지 않는 것.


•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智)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공자에게 말했다.

“오시오. 내가 당신과 말 좀 하겠습니다.”

“보배를 품고서도 나라를 혼미하게 버려두면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종사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그 시기를 놓치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예, 내가 차차 벼슬을 하겠습니다.”

-懷其寶而迷其邦(회기보이미기방):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내버려 둔다는 뜻.

-亟(기): 자주, (극): 빠르다.


*懷寶迷邦, 謂懷藏道德, 不救國之迷亂. 亟 數(삭)也. 失時 謂不及事幾之會. 將者 且然而未必之辭. 貨語皆譏孔子而諷使速仕. 孔子固未嘗如此 而亦非不欲仕也, 但不仕於貨耳. 故直據理答之, 不復與辯, 若不諭其意者.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말은 道德을 품어 감추고서 나라의 혼란함을 구하지 않음을 이른다. 亟(기)는 자주이다. 때를 잃음은 일의 기회에 미치지 못함을 이른다. 將이란 또 그럴 것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貨의 말은 다 孔子를 나무라고 풍자하여 빨리 벼슬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孔子께서는 참으로 일찍이 이와 같지 않으셨고, 벼슬을 바라시지 않는 것은 아니요, 다만 貨에게 벼슬하시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치에 의거하여 대답하셨고, 다시 더불어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 그의 뜻을 깨닫지 못하신 것처럼 하신 것이다.

-陽貨가 벼슬하라고 한 것은 자기에게 벼슬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孔子는 짐짓 모르는 체 하면서 벼슬하겠다고 한 것은 벼슬하는 것이 도리에 맞고 벼슬할 기회가 있으면 벼슬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말한 뜻이 서로 다르다.


*陽貨之欲見孔子 雖其善意 然不過欲使助己爲亂耳. 故孔子不見者 義也. 其往拜者 禮也. 必時其亡而往者 欲其稱也. 遇諸塗而不避者 不終絕也. 隨問而對者 理之直也. 對而不辯者, 言之孫而亦無所詘也.

陽貨가 공자를 보려고 한 것은 비록 善意였지만 그러나 자기를 돕게 해서 亂을 일으키고자 한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孔子께서 만나보시지 않은 것은 義이다. 가서 사례하신 것은 禮이다. 반드시 그가 없을 때 가신 것은 그에게 맞추신 것이다. 길에서 만나서 피하시지 않은 것은 끝까지 끊지 않으신 것이다. 물음에 따라 대답하신 것은 도리가 곧은 것이다. 대답하시되 변론하시지 않은 것은 말이 공손하되 또한 굽히신 바가 없는 것이다.

-詘(굴): 굽히다.


*楊氏曰“揚雄謂‘孔子於陽貨也, 敬所不敬, 爲詘身以信(伸)道.’ 非知孔子者. 蓋道外無身, 身外無道. 身詘矣而可以信道, 吾未之信也.”

楊氏가 말했다. “揚雄이 ‘孔子께서 陽貨에게, 공경하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공경하셨으니, 몸을 굽혀 道를 펴려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孔子를 안 사람이 아니다. 道 밖에 몸이 없고 몸 밖에 道가 없다. 몸을 굽혀 道를 펼 수 있음을 나는 믿지 않는다.”

-孔子가 陽化(양화)를 피한 것은 그가 季氏(계씨)의 가신임에도 季桓子(계환자)를 가두고 국정을 함부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선물도 피함이 옳지, 선물을 받고 그가 없는 틈을 타 사례하러 가는 구차한 행위를 할 필요가 있는가?


2.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성품은 서로 가깝지만 익힘은 서로 멀다.”

-사람의 성품은 다 비슷하지만, 후천적인 요소 때문에 멀어진다.


*此所謂性兼氣質而言者也.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 習於惡則惡, 於是始相遠耳.

이 이른 바 性을 氣質과 겸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氣質의 性은 참으로 좋고 나쁨이 같지 않음이 있다. 그러나 그 처음을 말하면 다 심하게 서로 멀지 않다. 다만 善을 익히면 善하고, 惡을 익히면 惡하다. 이에 비로소 서로 멀어질 뿐이다.


*程子曰 “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氣質의 性을 말씀하신 것이지, 性의 근본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만약 그 근본을 말씀하셨다면, 性은 곧 理이고, 理는 善하지 않음이 없다. 孟子께서 말씀하신 ‘性은 善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어찌 서로 가까움이 있겠는가?”

-何相近之有哉(하상근지유재): 가깝다는 것은 가깝기는 하지만 다름이 있다는 말이므로 本然之性에 대해서는 가깝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같음과 가까움은 다른 것이다.


3. 子曰 “唯上知與下愚 不移.”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과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이것은 위 章을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氣質이 서로 가까운 가운데 좋고 나쁨이 일정하여서 익혀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程子曰 “人性本善 有不可移者何也? 語其性則皆善也,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 所謂下愚有二焉. 自暴自棄也. 人苟以善自治 則無不可移 雖昏愚之至, 皆可漸磨而進也.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絕之以不爲,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 仲尼之所謂下愚也. 然其質非必昏且愚也, 往往强戾而才力有過人者, 商辛是也. 聖人以其自絕於善, 謂之下愚, 然考其歸則誠愚也.”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성품은 본래 善하지만,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본성으로 말하면 다 善하지만, 그 재질로 말하면 下愚의 변하지 않음이 있다. 이른 바 下愚에는 둘이 있으니 自暴와 自棄이다. 사람이 진실로 善으로써 자기를 다스린다면 변화하지 못함이 없어서 비록 어둡고 어리석음이 지극해도 다 점차 연마해서 나아갈 수 있다. 오직 自暴한 사람은 믿지 않음으로써 거부하고, 自棄한 사람은 체념하여 단절하니, 비록 聖人이 함께 살아도 교화해 들어갈 수 없다. 仲尼께서 말씀하신 下愚란 것이다. 그러나 그 氣質이 반드시 어둡고 어리석은 것은 아니며, 왕왕 강하고 사나워서 才力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으니 商辛이 그러한 사람이다. 聖人께서 스스로 善하기를 거절함을 下愚라고 하셨으니, 그 귀결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리석다.”

-商辛은 紂王을 말한다.

-戾(려): 사납다.


*或曰 “此與上章當合爲一 子曰二字 蓋衍文耳.”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것과 위 章은 마땅히 합하여 하나로 해야 하니, ‘子曰’이란 두 자는 필요 없는 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