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야기 ■/논 어

論語集註 子張篇 7, 8, 9, 10, 11, 12

서원365 2017. 1. 8. 21:24

7. 子夏曰 “百工居肆 以成其事, 君子學 以致其道.”

子夏(자하)가 말했다.

“수공업 기술자는 관청의 제작소에서 그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움으로써 그 도를 지극하게 한다.”

-肆(사): 방자하다. 여기서는 관청의 제작소이다.

-그런데 百工도 배우고 갈고 닦아 더욱 기술을 발전시키고, 선비도 역시 배우고 갈고 닦아 인격을 도야 한다. 비유가 적절치 못하다.


*肆, 謂官府造作之處. 致 極也. 工不居肆, 則遷於異物而業不精. 君子不學 則奪於外誘而志不篤.

肆는 관청의 제작하는 곳이다. 致는 지극함이다. 기술자가 작업장에 있지 않으면 마음이 다른 물건에 옮겨져 작업이 정밀하지 못하다. 군자가 배우지 못하면 외적인 유혹에 마음이 빼앗겨 뜻이 독실하지 못하다.


*尹氏曰 “學所以致其道也. 百工居肆 必務成其事. 君子之於學, 可不知所務哉?”

尹氏가 말했다. “배우는 것은 그 道를 지극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기술자가 작업장에 있으면서 반드시 그 일을 이루게 힘쓴다. 君子가 배움에 있어서 힘써야 할 것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愚按 二說相須, 其義始備.

내가 살펴보건대, 두 가지 말은 서로 보완되어야 그 뜻이 비로소 완비된다.

-二說相須(이설상수): 하나는 위의 朱子의 설명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尹焞의 설명을 말한다. 朱子는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고, 尹焞은 道를 지극히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배움도 강조되어야 하고, 道를 지극히 함도 강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8. 子夏曰 “小人之過也 必文.”

子夏(자하)가 말했다.

“소인은 과실에 반드시 변명한다.”

-文(문): 文飾으로서 꾸민다는 뜻이다. 과실이 있으면 고쳐야 함에도, 소인은 스스로 변명하여 이러저러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도 그러하여, 공연히 자기 생각에 집착을 하고 고치지 못한다.


*文 飾之也. 小人憚於改過 而不憚於自欺, 故必文以重其過.

文은 꾸밈이다. 小人은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으므로, 반드시 文飾하여 그 허물을 무겁게 한다.


9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子夏(자하)가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변함이 있으니, 멀리서 보면 의젓하고, 가까이 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보면 분명하다.”


*儼然者 貌之莊. 溫者 色之和. 厲者 辭之確.

儼然(엄연)이란 모습이 장엄함이다. 溫이란 얼굴빛이 온화함이다. 厲(려)란 말이 확실함이다.

-儼(엄): 의젓하다, 공손하다, 삼가다.


*程子曰 他人儼然則不溫 溫則不厲 惟孔子全之.

程子(伊川)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은 의젓하면 온화하지 않고, 온화하면 말이 확실하지 않으니, 오직 孔子께서 온전히 갖추셨다.”


*謝氏曰 “此非有意於變 蓋並行而不相悖也. 如良玉溫潤而栗然.”

 謝氏가 말했다. “이것은 뜻에 변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좋은 옥이 따뜻하고 윤이 나며 단단한 것과 같다.”

-栗(율): 밤, 밤나무, 익다, 여물다.

-三變이란 세 번 변함이 아니라 세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즉 의젓하면서도 온화하고 동시에 분명하다. 小人은 의젓하면 의젓하기만 해서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온화하면 온화하기만 해서 차마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여 상대의 눈치를 살펴서 주저주저하거나 아첨한다. 그러나 君子는 의젓하면서도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하며, 따뜻하게 포용하면서도 맞는 것은 맞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하여 그 언행이 확실하다.


10. 子夏曰 “君子 信而後 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則以爲謗己也.”

子夏(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믿음을 얻은 뒤 백성을 부리니, 믿음을 얻지 못하면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긴다. 믿음을 얻은 뒤 간하니 믿음을 얻지 못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한다.”


*信 謂誠意惻怛而人信之也. 厲 猶病也. 事上使下 皆必誠意交孚 而後可以有爲.

信이란 성의가 간곡하여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주는 것이다. 厲는 괴롭힘과 같다.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부림은 다 반드시 성의가 서로 믿어진 뒤에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孚(부): 믿다.


11.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子夏(자하)가 말했다.

“大德이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小德은 들쭉날쭉해도 괜찮다.”

-閑(한) : 막다, 막히다, 문지방, 울타리.

-보다 더 근본적이고 큰 덕을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 것을 갖추었다고 해서 작은 것을 함부로 대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무단횡단 금지 조항을 어길 수 있지만, 무단횡단이 사소한 것이라고 해서 어겨서는 안 된다.


*大德小德, 猶言大節小節. 閑 闌也 所以止物之出入. 言人能先立乎其大者 則小節雖或未盡合理, 亦無害也.

大德과 小德은 큰일과 작은일과 같은 말이다. 閑은 울타리이니, 사물의 출입을 막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 큰 것을 확립하면 작은 것은 비록 이치에 다 맞지 않아도 또한 해로움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闌(란): 가로막다, 무늬, 난간.


*吳氏曰 “此章之言, 不能無弊 學者詳之.”

吳氏가 말했다. “이 章의 말은 폐단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배우는 사람은 잘 살펴야 한다.”


12.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灑掃應對進退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子游(자유)가 말했다.

“子夏(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에서는 좋은데, 이것은 지엽적인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 된 것인가?”


*子游譏子夏弟子 於威儀容節之間則可矣 然此小學之末耳, 推其本 如大學正心誠意之事 則無有.

子游는 子夏의 弟子가 용모나 예절에 대해서는 괜찮지만 이는 小學의 지엽적인 것일 뿐이며, 그 근본을 미루어 대학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하는 일에서는 없다고 기롱한 것이다.


•子夏聞之曰 “噫 言遊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而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子夏가 듣고 말했다.

“아아, 言遊(언유)가 지나치다. 군자의 도를 어느 것을 먼저라고 하여 가르치고, 어느 것을 나중이라고 하여 게을리 할 것인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별되는 것과 같다. 君子의 도는 어찌 속이겠는가?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음은 오직 聖人이다.”

-有始有卒者(유시유졸자): 처음부터 마침까지 모두 구비함을 뜻함.

-초목에 크고 작음이 있듯이 배우는 사람도 깊고 얕음이 있다. 무조건 원대한 것을 억지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倦 如誨人不倦之倦. 區 猶類也. 言君子之道 非以其末爲先而傳之 非以其本爲後而倦教. 但學者所至 自有淺深, 如草木之有大小, 其類固有別矣. 若不量其淺深 不問其生熟 而槪以高且遠者强而語之, 則是誣之而已. 君子之道, 豈可如此? 若夫始終本末一以貫之, 則惟聖人爲然, 豈可責之門人小子乎?

倦은 “사람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다.”고 할 때의 倦과 같다. 區는 分類와 같다. 君子의 道는 지엽적인 것을 우선으로 전하는 것도 아니고, 그 근본을 뒤로 하여 가르침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다만 배우는 사람이 이르는 것이 얕고 깊음이 있음이 초목에 크고 작음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종류가 참으로 구별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얕고 깊음을 헤아리지 않고 그 설고 익음을 따지지 않아서 다 같이 높고 먼 것을 억지로 말해준다면 이것은 속이는 것일 뿐이다. 君子의 道가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만약 시작과 마침, 근본과 지엽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다면 오직 聖人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어찌 문인 小子들을 책망하겠는가?


*程子曰 “君子教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 而後教以大者遠者. 非先傳以近小, 而後不教以遠大也.” 又曰 “灑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愼獨.”

程子(明道)께서 말씀하셨다. “君子가 사람을 가르침에 차례가 있으니, 먼저 작고 가까운 것을 가르치고 뒤에 크고 먼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 먼저 가깝고 작은 것을 가르친 뒤에 멀고 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 말씀하셨다. “물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것은 곧 形而上의 일이니 이치에 크고 작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君子의 道는 다만 홀로 있음을 삼가는 데 있다.”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灑掃應對 與精義入神貫通只一理. 雖灑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自灑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

또 말씀하셨다.(伊川) “聖人의 道는 다시 정미하고 엉성함이 없다. 물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로부터 의리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과 더불어 관통하면 단지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비록 물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이라도 다만 왜 그러한가를 보아야 한다.” 또 말씀하셨다. “모든 사물은 근본과 지엽이 있으나 근본과 지엽을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물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이 바로 그러하니, 여기에는 반드시 그러한 까닭이 있다.” 또 말씀하셨다. 물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로부터 올라가면 곧 聖人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


*愚按 程子第一條, 說此章文意, 最爲詳盡. 其後四條, 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學者當循序而漸進 不可厭末而求本.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

내가 살펴보건대 程子의 말씀 첫 조항은 이 章의 글 뜻을 가장 상세하게 함을 다하였다. 그 뒤 네 조항은 다 정미하고 엉성하며, 근본과 지엽이 그 나눔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임을 밝혔다. 배우는 사람은 차례를 따라 차츰 나아가되, 지엽적인 것을 싫어하고 근본만을 구해서는 안 된다. 이는 첫 조항과 더불어 서로 表裏가 되니, 末이 곧 本이 되니 다만 末만 배우면 本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물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는 그 바탕에는 仁의 마음이 있다. 이는 德을 갖춘 君主가 나라를 다스리는 마음과 근본은 같다. 그러므로 어리고 학문이 얕을 때는 가깝고 작은 일부터 배우되, 그렇다고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이 있기만 하다고 해서, 또는 가깝고 작은 일에서 그 근본정신을 알고 실천한다고 해서 齋家治國平天下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