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금강경

금강경-1 法會因由分 第一

서원365 2007. 2. 12. 05:59
  경 이름 해설

* 金剛 - 能斷金剛(능단금강) -- 모든 쇠를 이기는 쇠 중의 쇠

* 般若 - 지혜

* 波羅蜜 - 바라밀다(paramita)의 준말, ‘바라’는 언덕, ‘밀다’는 도착, 저 언덕에 도착함

法輪(법륜) 해설 - 이 말은 복고적인 느낌을 풍긴다. 불교에서 서쪽을 이상향으로 보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아리아인들은 서북부로부터 인도로 들어왔고,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힌두스탄 평원을 지나오면서 수 많은 크고 작은 강들을 건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월이 흐르고 신분제도가 세분화되고 인간 사회에 각종 차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서민들로 볼 때는 옛날 즉 서쪽에 살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쪽 강 건너 서쪽 언덕에 살 때가 좋았었다는 생각이 인도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이다.

*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능단금강바라밀경,vajarcchedika-prajna-paramita-sutra)구마라즙에 의해 처음 한역되었으며, 육조 혜능 스님 이후 선종의 所衣經典(소의경전)이 되었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금강과 같은 지혜로 저 언덕(진리의 세계, 행복의 세계)에 이를 수 있음을 설한 부처님 말씀이라는 뜻

* 宗境의 해설 - 『금강경이란 자성이 견고하여 만겁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금강의 성품이 견고하고 강한 데 비유한 것이요, 반야란 지혜이고 바라밀은 피안에 오른다는 뜻이다.』

* 금강경을 32분으로 나누는 것은 양무제의 아들 소명 태자로부터 비롯되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 바라밀다라고 하니 여기서 저기로 건너간다고 생각하여 여기와 저기로 나누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건너가기 전과 건너간 후가 다른 것이 아닌데, 망념이 여기를 번뇌라고 하고 저기를 해탈이라고 할 뿐이다. 이는 모두 어리석은 분별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 法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 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 俱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들 1250인과 함께 계셨다.

* 如是我聞(여시아문)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여기서 ‘나’는 阿難(아난) 존자를 말한다. 아난존자는 늘 부처님 곁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으므로 多聞第一(다문제일)이라고 칭한다. 대개의 불경은 이와 같은 말로 시작된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머지않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를 이야기 하고 모두의 의견이 일치되면 정리하는 것인데, 이때 아난존자가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들었다고 한 것은 지금부터 하는 말들은 자신의 견해가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또한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강렬한 신심이 배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 舍衛國 祈樹給孤獨園(사위국 기수급고독원 - 祇園精舍)--코살라 국의 수도인 사위성(舍衛城) 남쪽에 있는 불교사원, 원래 기타(祗陀, Jeta) 태자의 소유였으나, 수달타(須達多, Sudatta)가 사서 지었다. 수달타는 외로운 사람에게 많이 베풀었으므로 급고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수달타가 이 동산을 부처님을 위해 바치려 하자 소유주인 기타 태자는 금으로 동산을 덮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곳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으므로 거절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수달타가 묵묵히 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협조하게 되었다. 이를 본 기타 태자가 동산을 무상으로 제공하였으며, 입구가 되는 쪽은 기타 태자 자신을 위해 남겨 주면 자신도 부처님께 건물을 지어 바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워진 것이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하는데 줄여서 기원정사라고 한다.

* 比丘(비구-bhiksu, bhikkhu) - 남자 출가 수행자. 걸식하는 수행자, 번뇌를 끊은 자, 악을 물리치는 자 등의 뜻이 있다.

* 大比丘 千二百五十人(대비구 1250인) - 처음 설법을 들은 5비구, 야사와 더불어 부처님의 제자가 된 50여명의 비구, 카샤파 형제와 함께 귀의한 1000여명의 비구,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와 함께 한 200여명 등을 합쳐 대강 1250명이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는 나중에 수 만 명에 이르고 귀의하는 재가 신도들도 매우 많았다. 그러므로 대비구만 이 설법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제자들과 재가 제자들이 함께 들었다고 봐야 한다.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그때 세존께서 식사 때가 되어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시고, 사위대성에 들어가 그 성 안에서 걸식을 하셨는데, 차례대로 걸식하시고 본래의 거처로 돌아오셨다.

* 食時(식시) - 식사 때를 뜻한다. 아침에 걸식을 하여 巳時(사시 ; 오전 9시~11시)에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식사는 하루에 한 번만 하였다.

* 着衣持鉢(착의지발) - 着衣(착의)는 着服(착복)과 같은 뜻이다. ‘옷을 입고’ 鉢(발)은 鉢盂(발우)를 말한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이다. 持鉢(지발)은 ‘밥그릇을 들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중에 수많은 제자들이 따르는 스승이 되셨지만, 자신의 식사를 제자가 대신 탁발하지 않고 직접 하셨다. 걸식을 하는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손수 하셨다.

* 次第乞已(차제걸이) - 차례대로 빌다. 차례대로라 함은 부유한 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라는 뜻이다. 마하가섭존자는 늘 가난한 집만을 골라 걸식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할 기회를 주어 복을 쌓게 하기 위함이었다. 수보리존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부잣집만 골라 걸식하였다. 차례대로 걸식하였다는 것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평등하게 보고 차례대로 하였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어디서 시작했던지 일곱 집을 걸식한다. 만약 일곱 집을 걸식하였는데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면 원래의 거처로 돌아가 조용히 자신을 반성한다. 또한 같은 집에 중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가장 앞장 선 사람이 가장 먼 골목으로 걸식을 하고, 그 다음 사람이 그 다음 먼 골목으로 들어가 차례대로 걸식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坐而坐

 식사를 마치시고 옷과 발우를 정리하시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않으셨다.

* 訖(흘) - 이르다. 마치다. 敷(부) - 펴다

* 금강경을 설하기 전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세존께서 몸소 탁발을 하시고, 몸소 발을 씻고, 옷과 발우를 정리하시는 모습을 쉽게 그릴 수 있다.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과 깨달으셨다고 해서 자기를 스스로 높이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계신다. 많은 사람의 스승이지만, 부처님을 따르는 수행자들과 동일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계신다.